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책, 최장집 한국어판 서문 최장집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 2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최장집 한국어판 서문, 박상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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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의의가 있는 책이다. 일단 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매우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다. 중학교 때, 손무의 <손자병법>에 빠져있었다면, 고등학교 때는 <군주론>에 빠져있었다. 그만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나에게 있어서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책 중 한 권이다.

 

내 서재에 있는 책들 중 가장 많이 봤던 책이며, 가장 많은 손때가 묻은 책이 바로 강정인 역본의 <군주론>과 김원중 역본의 <손자병법>이다. 어쨌든 두 책의 성격은 지극히 현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관념적인 철학서들의 말장난 놀음에 비해 두 책은 명확하고, 인간에 대한 돌직구적인 성찰을 보이고 있는 책이다.

 

 우리 나라의 학계는 지금까지 번역을 위한 번역서들만 존재했었다. 사실 고전이라는 것이 일차적인 문제는 정확한 번역을 위한 논의가 급선무고, 그런 번역의 노하우가 집중됐다면, 그 번역을 토대로 한 학자들의 주관적인 현대화적 해석을 보여줘야만 한다. 그리고 학계 간에서 새로운 해석이나 동향 등을 최대한 친절하게 독자들에게 이해시켜, 전반적인 인문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 학자의 의무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직까지 서양 고전은 좋은 번역서들이 대거 번역되지도 못했으며, 번역된 고전들도 원전 번역이 아닌 이중 번역이 대다수다. 따라서, 안 그래도 어려운 고전을 더 힘들게 읽고 있다. 동양 고전은 이보단 낫다. 최소한 한자문화권인 우리 문화 덕택에 전공자들도 많고, 번역서들도 대거 등장했다.

 

그러나 동양 고전 역시도, 아직도 자구 풀이의 의한 해석에 의한 해석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학자들이 쓴다는 현대화된 고전의 해설서들은 고전이 가지고 있는 깊은 철학적 베이스를 기초로 한 해석이 아닌 일반론적인 내용을 가지고 그저 상술에 입각하여서, 얕게 쓰는 경우가 대부분 작금의 현실이다. 이 원인에는 인문적 인프라를 정책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정부의 문제도 있겠고,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은 기피하고자 하는 소명의식의 부재도 있다.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들은 웬만한 고전은 자국의 언어로 번역이 다 돼있는 실정이다. (솔직히 이중 번역본 대부분은 일본에서 번역된 책이다. 이 부분만 봐도 우린 지금 엄청난 문화적 약소국 가임을 인정해야 한다.)

 

<군주론> 역시 마찬가지다. 엄청 유명한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오역과, 언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번역, 그리고 심지어 이 유명한 고전조차도 이중 번역본이 판치고 있었던 것이 얼마 전이었다. 그래서 강정인 교수가 소명의식을 가지고 <군주론>을 번역하고 번역하여,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이탈리아어 원전 번역 <군주론>을 가질 수 있었다. 수많은 <군주론> 번역서 중에서 까치 출판사의 강정인 <군주론>이 돋보이는 이유는, 그런 열정과 더불어, 똑바로 된 정본을 확립하게 됐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아직까지도, 마키아벨리의 사상적 측면이나 깊은 철학적인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직도 <군주론>을 처세학의 교본, 간사한 기회주의자들의 교본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보고 있으며, 얕은 잔꾀와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런 주장과 맞서서, <군주론>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입장도 있다. 그들은 그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텍스트적인 처세학 내용에만 집중하여, 성급한 일반화로 현실성을 이야기하며 주장하는데, 사실 <군주론>이 현실적인 책임은 맞으나, 왜 현실적인 책인지, 어째서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그러한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됐다. 나는 <군주론>을 많이 읽어봐온 입장으로 (아마 손자와 더불어 100번 이상 읽은 책은 두 책이 유일할 것이다. 예전에는 책 읽는 것에 집착하여 횟수를 기억했는데 100번 넘어가고 나서는 무의미하고 진득한 독서에 방해만 되는 것 같아서, 그다음부터 회독할 때는 세지 않았다.) 시중에 판매되는 모든 <군주론>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웬만한 출판사의 <군주론>을 다 봤었고, 관련 서적이나 <군주론>에 입각한 처세서들도 거의 다 봐 왔었다. 그런데도 사실 <군주론>은 힘들었고 알아가기 힘들었다. 심지어는 정본이라 불리는 강정인 본 <군주론> 역시도 가독성 부분으로 볼 때,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이 책은 사실 이탈리아 원본을 저본으로 한 것 같지는 않다. 영역본을 많이 참고했을 것이다. (참고도서에 영역 본과 이탈리어본 두 개를 다 참고해서 번역했다고 하나, 사실 역자의 약력을 봤을 때, 영역본에 무게를 두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판본들보다, 더욱더 의미가 명확하고 특히나 마키아벨리 사상에 중요한 단어들의 개념 정립과, 번역이 주는 미묘한 단어들까지도 하나하나 고찰해가면서 책을 번역했다.

 

게다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모두 긁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군주론>을 읽어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몇 가지가 있였다. 우선 마키아벨리는 글을 아주 짧게 그리고 강하게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수많은 대명사가 등장한다. 따라서 이 대명사가 지칭하는 대목이 굉장히 헷갈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 장과 장 사이를 넘나들며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글이 짧더라도, 이해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었다. 이 부분은 마키아벨리의 필법이 주는 어려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군주론>은 이 대명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괄호를 통해 지칭하는 바를 알려준다. 따라서 한층 더 이해하기가 편리하게 구성됐다.

 

더불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원전의 단어를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비르투와 포르투나, 네체시타, 프루덴차 이 네 가지의 개념은 마키아벨리의 사상에서 가장 핵심적이다. 그러나 한글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운 단어들이다. 특히 앞에 저 비르투와 포르투나는 책의 핵심 중 핵심인데, 우리나라의 많은 역본들은 저 단어들을 역량, 운명으로 번역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미묘한 어감 차이가 있는 단어들이 원문에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기존 역본들이 저지르고 있는 실수들을 모두 열거하며 상세하고 좀 더 세심하게 단어를 선별하여 번역하고 있는데, 굉장히 의미가 더 와 닿았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배경 지식이다. 이 책은 사실 그냥 봤다간 그대로 멘붕당하기 쉬운 책이다. 마키아벨리의 시대 상황을 알고, 그리고 숱한 역사서에 인용된 영웅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지식은 알아야만 수월하게 책이 읽히는데, 기존의 역본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짧게만 언급하고 지나친다. 그러나 이 책은 상세한 인물 풀이를 시도하고, 또 전체적인 시대를 조감하며 설명해주기 때문에 (물론 자세하진 않지만, 이런 시도가 괜찮았다.) 책의 이해를 한층 더 돕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풍부한 이탈리아의 사진 지도 자료들과 세력들에 지도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곁들였다.

 

박상훈 교수의 번역적인 장점을 총론 하면 '가독성' 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책을 가장 빛나게 하는 부분은 책의 해설이다. 최장집 교수의 해설은 그 어떤 <군주론>의 해석보다도 깊고, 가장 최근의 학계의 논쟁들까지 알기 쉽게 잘 설명해서, 서구나 다른 나라에서는 군주론이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마키아벨리를 왜 오인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들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었다. 인상 깊었던 말은, 마키아벨리를 우리는 전제 군주제를 찬동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나도 솔직히 궁금했다. 왜냐면 나는 <군주론>을 봤을 때에는 마키아벨리가, 군주정을 옹호하는 것 같았는데 뒤의 저작인 <로마사논고>를 볼 때에는 '공화주의를 지지한다.'라고 주장하니, 도대체 어느 모습이 마키아벨리의 모습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책에선 이렇게 해설했다. '군주론 어디에도 마키아벨리가 군주정을 지지하고 체제를 옹호한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로마사 논고에서는 직접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는 공화주의자였지만, 그가 처한 현실적 불가피성(네체시타)을 인식하고 그 해결방안으로 최적의 군주정에 대한 논의를 책으로 만든 것 뿐이었다.(프루덴차)

 

물론 네체시타와 프루덴차는 군주론의 개념인데, 내 임의대로 마키아벨리에 덧씌워본 해석이다.(결론 부분에 상세하게 설명해 보겠다.) 그럼에도 의문이 남는 것이 오전에 작성한 <카스트루초의 생애>에서 밝힌 바와 같이 도대체 그는 왜 <로마사논고>에서 공화정을 주장했으면서 그 뒤의 저작인 <카스트루초의 생애>의 주인공은 전제적 군주정의 주인공을 저술하고 있는가? 이것은 정말로 모순된 부분이었다. (아직도 이 부분이 참 궁금하다 그의 의중은 뭘까.)

 

아무튼 공화주의에 대한 그의 해석을 가지고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케임브리지학파는 마키아벨리를 키케로적 (귀족적) 공화주의라고 해석하고 있으며 다른 소정의 학자들은 민주적(시민적) 공화주의로 해석하고 있었다. 이런 학계적인 동향은 사실 소명 학자들이 좀 더 대중에게 연구 결과에 대해서 알려주고 지식을 공유해야 시민들의 인문적 지식이 높아지는데, 기존의 학계는 그런 전문적 지식은 그들만의 언어와 그들만의 시각으로 공유하고 그들만의 학문을 해 왔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 사태에서 이런 심도 있는 해석과, 현대의 해석론에 대한 동향은 정말이지 돋보였었다. 신선한 해석이나 여러 부분에 대해서 나는 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이랬다간 글만 길어질 것 같아서 자제한다. 아무튼 초독 상태로 이 해설을 보기엔 무리가 많지만 어느 정도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독자라면 최장집 교수의 해설에서 많은 놀라움을 발견할 것이다고 확신한다.

 

사실 리뷰의 초점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내용적으로도 마키아벨리 사상에서 느낀 점도 많았고, 이 책 자체의 의의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었고, 우리나라의 고전계에서 내가 봤을 때, 큰 획을 그은 번역본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언급도 하고 싶었다. 어쨌든 그 큰 획에 대한 부분은 장황하게 설명을 했으니 이제 내용적인 부분으로 느낀 점을 짧게 서술하고자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주제는 뭘까? 솔직히 쉬워 보이고 잔인해 보이고 처세학적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주제를 정의하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보며, 비로소 한 가지로 <군주론>의 주제를 정의할 수 있겠다.

 

'포르투나의 압박에서는 어쩔 수 없는 네체시타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군주(개인)이라면 그런 네체시타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프루덴차로 풀어나가야 하며, 그 프루덴차의 원동력에는 결국 비르투가 존재해야만 한다.'

 

포르투나는 객관적 운명, 조건, 수동적 영향, 여성성을 상징하고

비르투는 이와는 반대로 인간의 주동적인 역량, 의지, 힘, 남성성을 상징한다.

네체시타는 어떤 일에서 파생되는 불가피한 일을 뜻하고

프루덴차는 그 불가피성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대처하는 실천적 이성을 뜻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상, 모략적이고, 음험한 사상의 군주론의 부분은 네체시타에 대응하는 프루덴차의 일부분에 불과했다는 걸 느꼈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네체시타에 대응하는 프루덴차는 여라 가지의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인자한 방법을 써야 할 때는 인자해야 하며, 잔인해질 때에는 잔인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사의 보편적이고 역사적 관점을 봤을 때 잔인한 방법을 행해야 했던 것이 더 많았고, 기존의 세속은 그 가치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군주론>을 통해서 그 부분을 소상하게 밝히려고 했었다. 이런 부분으로 볼 때, 우리가 이해했던 마키아벨리의 모습은 그가 주장했던 프루덴차의 한 방법 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의 책의 가장 모순된 점, 1장부터 25장까지는 혐오스럽고 차갑게 논의가 전개되다가 26장에는 굉장히 뜨거운 기운으로 열변을 토한다. '이탈리아를 야만인들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는 권고' 이 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열변을 토한다. 자기가 지금까지 냉소적으로 이야기하고 혐오스럽게 이야기 한 것은 강력한 조국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서였다고, 그렇게 부르짖는다.

 

그것은 공화주의자인 마키아벨리가 현실론적으로 메디치가의 참주가 결정됐다는 사실(네체시타)를 인지하고 그 군주를 위해, 혹은 백번 이타적으로 생각하여 스스로의 정치 복권을 위해,(사실 둘 다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군주제에 대한 논의를 <군주론>에 담은 것이었다.(마키아벨리의 프루덴차)

 

<군주론>의 모순,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자가 외치기엔 너무나도 모순적인 책. 그래서 그의 대표적인 사상을 담은 <로마사논고>보다도 더 가치있게 돼버린 <군주론> 그 <군주론>때문에 숱하게 오인받아왔고, 오해받아온 그

 

그러나 <군주론>은,

 

그의 불행한 운명(포르투나)에 대응하기 위한 마키아벨리 스스로의 의지(비르투)였다.

설사 관직을 잃고, 매국노로 찍히며, 교형을 당하면서까지 불행을 겪고 무직자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생계가 불투명해진 그였지만,

 

조국 이탈리아가 프랑스와 에스파냐, 그리고 독일로부터 찢겨 울부짖고 시름하는 그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그만의 공화주의적 가치를 담은 책과 그의 사상과는 다르지만 참주의 가치를 담은 책 두 권을 저술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두 권의 책은 모순되지만, 그 두 권의 책을 쓸 만큼 마키아벨리는 조국에 대한 신념이 뜨거웠다. 그것은 그의 비르투였고, 그것은 그의 최선의 프루덴차였다.

 

고전이란 이런 깊은 철학적인 사상이 담겨있다.

이런 깊은 이해 없이 자구 풀이를 가지고 일반론적으로 성급하게 풀이한다는 것은 텍스트를 오독하는 것이고, 그것은 고전에 대한 무례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그래서 가치가 있다.

한층 더 발전된 번역서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서,

그리고 또 이 책에서 참고했다는 곽준혁 교수의 <군주론> 해설서인 <지배와 피지배> 역시도 관심이 갔다. 곽준혁 교수는 일반적 학계의 논리보다는 스스로의 관점에 입각한 해석을 시도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발전된 우리나라의 인문주의를 느꼈다. 반드시 저 책도 사서, <군주론>과 함께 찬찬히 음미하며 사색하며 생각하며 읽어보고 싶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군주론>에 대한 체계를 정리해보면 이렇게 추천하고 싶다. 먼저 마키아벨리의 평전을 한 권 읽기를 바란다. 무조건적으로 읽어야 한다. 시대상황을 모르면 <군주론>의 논의를 따라갈 수가 없다. 평전을 다 읽으면 이 책의 <군주론> 텍스트를 읽기를 권한다. 찬찬히 읽으며 <군주론>의 내용을 음미한다. 해제는 텍스트를 다 읽고 나서 읽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강정인본의 <군주론>과 곽준혁 교수의 <지배와 피지배>를 동시에 읽길 권해본다. 이 정도의 심화 독서가 이뤄지면 적어도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대해서 오독하거나 오해하는 우를 범하진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일전에 나는 <손자병법>의 해설서, 리링 교수의 <유일한 규칙>을 리뷰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받았던 충격, 병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조예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겸손해졌었다. 그리고 그의 책에서 배운 것들이 아주 많았다. 국내에서 출간된 <손자>는 많고 많지만, 내가 볼 때 그 책만이 가치가 있었었다. 국내의 책들은 아직도 번역적인 부분에서 싸우고 있는데, 그 책은 한층 더 나아가 해석학적인 부분과 고문적인 부분까지 고찰하고 있었고, 독자적인 해설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책을 스승처럼 생각하고 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또 다른 필독서인 <군주론>에서 이렇게 좋은 해설과 역본이 나왔다는 것은 정말이지 기뻤다. 더구나 유럽이나 다른 학자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이런 번역과 해설을 달았다는 사실에 나는 무한하게 자부심을 느꼈었다.

 

끝으로 한 가지만 언급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현실의 정치에 가치에 대해서 생각을 하며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정치서고, 현실 정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현실 정치와 너무 동떨어진 내용이라면 그것은 고전이더라도 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나 이 책은 현실 정치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남기는 책이다. 따라서 책을 보며 지금의 대한민국의 정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많은 부분이 보였다. 명분과 도덕주의에 입각한 우리나라의 정치가 보였다. 마키아벨리가 토로하던 부적절한 상황들에 대해서도 현실의 가치에 비춰서 생각도 해 봤다.

 

가장 마음에 와 닿던 말은 마지막 장이다.

 

이탈리아인을 검투사로는 1:1 싸움으로는 강한데, 뭉쳐 놔서 전쟁을 하면 다른 군대에 비해 약하다. 이 뜻은 민중은 좋은 자질이 있으나, 항상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군주는 등장하지 않았고 그것은 모든 민중을 타국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가 생각났다. 개개인이 뛰어나지만... 군집성에서는 약한 부분. 그리고, 지금의 우리의 리더십이라는 가치에 대해서도, 누구나 리더를 꿈꾸고 되려고 하지, 내실 있는 리더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는 사람은? 과연 이 시대에 몇이나 존재한단 말인가? 그 부분도 깊이 생각했었다.

 

 

여러 가지를 느낀 책이다.

아주 좋은 번역, 그리고 아주 좋은 해설, 흠잡을 곳이 없는 군계일학의 책이다. 단 한 가지 흠을 잡자면, 책의 퀄리티가 내용과 해설을 못 따라간다. 이런 책은 응당 양장으로 내야만 한다. 쓸데없는 잡서들보다 이런 내실 있는 책을 양장으로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다소 실망스럽게 나온 책의 퀄리티 때문에 나는 이 책에 겉지를 씌웠다. 그만큼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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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7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리군 2014-05-07 14:59   좋아요 0 | URL
아 예 ㅎㅎ... 괜찮습니다. 가급적이면 http://blog.naver.com/bosom86/209407194 이쪽으로 노출해주셨으면 합니다 ㅎㅎㅎ... 제 개인블로그거든요
 
병경백자
게훤 지음, 김명환 옮김 / 글항아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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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한 책이다. 나는 고전 중 특히나 군사학 고전이 나오면 따지지 않고 바로 주문해서 본다. 군사 모략이나 계략 등이 재미있기도 하고 실제로 동양 철학 중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며, 전쟁이라는 것이 사실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도 어느 정도 공통점이 많기에 병서를 보며 여러 생각을 하지 않나 싶다.

 

 

기존의 우리 출판계에서는 병법서라고 하면 서양 쪽은 클라우제비츠의 병서 <전쟁론>에 중점적이고 동양 병법서는 <손자병법>을 중점적으로 번역한다. 두 책 모두가 가치 있는 책인 건 알겠다만,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풍토가 아쉬웠었고, 저 영향력 때문에 다른 고전들이 대중에게 소개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있다. 특히나 서양 병법서들은 거의 번역이 전무하고 근세 이후의 병서들만 번역하는데, 그리스나 로마 시대 때의 고대 병서들도 번역이 됐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반면 동양 병서는 너무 고대에 치우쳐서 아무래도 근세 이후의 명 청대의 병법서는 번역되지 않는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이 <병경백자>는 아주 반가운 책이었다. 지은이는 명-청 전환기를 살았던 게훤이라는 자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 사람이 수학에 능통했다는 것이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서 수학이 비교적 덜 발달했다. 서양은 고대 플라톤 이래로 수학을 중요시하는 전통이 있었고 모든 학문의 기초엔 수학이 있었다. 수학이란 부분은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동양의 여러 사상과들과는 조금 다른 이성적인 면에 치우쳤으며, 실제로 그가 쓴 병법서인 <병경백자>에 수학적으로 군사를 계산하여 공격과 수비에 대한 부분을 서술한 것이 있었다. 이런 부분은 대략적인 수치로 서술해온 동양의 고대 병서에 비해 실증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책의 구성은 문자 그대로 100글자에 입각하여 병법을 풀이한 책인데, 비슷한 예로 명나라의 유기의 <백전기략>을 들 수 있겠다. <백전기략>은 백 가지의 모략이라는 뜻으로 백 가지의 모략을 서술한 것이 특징이라면, 이 책 <병경백자>는 100가지의 글자를 테마로 제시하고 그 글자에 입각하여 전쟁의 여러 면모들을 고찰하는 방식으로 서술했다는 차이가 있다.

 

 

동양 병법서의 특징은 일단 간결하다는 점인데, <병경백자>역시도 간결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손자병법>을 비롯한 여러 병법서들과 주제 면에서는 크게 특출난 부분은 없었다. '병법은 속임수'라는 주제에서 벗어나진 않지만, 고대 병서에서 보이는 미신적인 부분이나 형이상학적인 표현 등이 없고 다소 문체가 짧고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특히나 고대 병법서에 비해 어려운 표현들을 쉽게 설명하려고 서술하고 있었다.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병법 읽기'라는 장이었는데 그는 여기서 주장한다. 모든 병법은 그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읽을 때 비판적인 자세를 요구하며, 틀린 내용은 수정하고, 현실 상황에 맞지 않은 부분은 고쳐서 바로 인식하여야 한다.라는 주장은 깊이 공감했다. 그가 이 <병경백자>를 쓴 이유도, 고대 이래로 흘러내려오는 병법서들의 정수를 모아서 다시 현시대에 맞게 재정립한 의도도 보였었다.

 

 

쉬운 예로 기본적으로 <손자병법>에 나오는 군략과 모략에 대한, 부분과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 추상적인 이론을 구체화시키는 서술을 했으며 <오자병법>에 보였던 병졸들 간에 편성에서 노비나 범죄자들로 구성된 병력을 만들어 그 부대는 공명심을 내세워 다스려야 한다는, 심리적인 기교론까지 포함하여 적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손자병법>이 왜 그렇게 칭송을 받는가? 사실 <손자병법>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병법 이론을 한 곳에 모아 재정립하고 종합적인 고찰을 지닌 부분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 부분에서 <손자병법>은 동양 고대의 병법 이론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찬가지 부분에서 본다면 이 <병경백자>는 고중세 이래로 흘러나오는 병법 이론들을 그 시대에 맞게 재정립한 종합적인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게훤 특유의 실사적인 시각이 돋보여서, 신선한 부분도 보이긴 하다. 아무튼 책을 읽어봤을 때, 특이사항보다는, 종합적으로 잘 요약했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더불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게훤은 군략과 모략, 그리고 병력뿐만이 아니라, '말'에 대해서도 중요성을 인식했다. 이 부분도 되게 재미있는데, 동양과 서양의 차이 중 동양은 말에 대해서 아끼는 것이 능사라고 주장했고 서양의 경우는 수사학과 논리학이 굉장히 발달했다. 서양 사람들은 군인은 병법을 알아야 하고 문인은 말과 논리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말이라는 것은 문인의 칼과도 같다는 그런 주장을 했다. 즉 동양과 서양은 말의 중요성을 둘 다 인식했지만 동양은 그것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자제하는 입장이었고, 서양의 경우는 그런 중요한 말을 조리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게훤은 신기하게도 서양의 가치관적인 생각을 했다. 그는 전쟁에서도 말의 중요성을 알고, 말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따로 기록할 정도로, 깊이 있게 생각했었다.

 

 

특이한 점은 그런 부분이며, 재미있는 것은 모략이나 계략 등의 이야기를 할 때, 미인을 이용하는 방법이나 적장을 꾀어낼 때 뇌물을 이용하는 방법 등, 선대에 하나씩 빠졌던 부분들을 모두 총괄하여 서술하고 있었다.

 

 

특히나 책 자체가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전쟁의 진법과 같은 세세하고 구체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기보단 전쟁의 큰 흐름과 큰 방도에 대한 물줄기를 이야기하고 있는 점에서는 동양 전통의 병법서의 체계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책을 보다 보면 고대의 병법서에는 두루 뭉실하게 기교를 부려야 한다는 부분들을 <병경백자>에서는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가령 대놓고 군대를 이끄는 장군은 때론 적에게 허세를 부려 적을 혼란에 빠트릴 수도 있어야 한다.라고 명확하게 말하는 부분 등은 전대의 병서에서 두루뭉술하게 형이상학적 도교 사상을 차용하여 설명한 것을 좀 더 구체적이고 간결화하여 서술하고 있었다.

 

 

책이 굉장히 짧은 편이나, 굉장히 흥미가 있는 책이고, 재미가 있었다. 특히나 우리나라 옛날 독서계에서 병법서는 중국의 병서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고 특히 무경칠서라 위시되는 <손자> <오자> <육도> <삼략> <사마법> <울료자> <이위공문대> 7권의 책만을 경으로 높여 칭송하였다. 지금도 번역서들은 <손자>가 가장 많으며 많아 봐야 위의 무경칠서 7권과 <손빈병법>, 제갈량이 지었다는(모작일 가능성도 많음) <장원>,<편이십육책>, 그리고 명대의 유기가 쓴 <백전기략>, <삼십육계>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그래서 사실 아쉽고 아쉬웠는데 이런 신선한 병서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다.

 

 

특히나 저번에 리뷰를 했던 <오자서병법>과 같은 책은 짧은 원문을 가지고 처세학적인 해설을 뻥튀기하여 쓴 책이라 신선함과 한계가 둘 다 있었는데, 이 <병경백자>는 오로지 순수하게 충실한 번역으로만 이뤄진 책이다. 내용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보자면 <오자서병법>은 굉장히 역학적이고 음양학적인 부분을 차용한 병법서인데 반해 <병경백자>는 철저한 현실주의적 책이고, 미신이나 허황된 이론 등을 배격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다소 책 장수에 비해서 값이 높다는 점이 있지만, 글항아리 출판사의 책이 다소 가격이 좀 높은 감이 있지만, 양장본인데다 깔끔한 표지 등이 돋보여서 서슴 없이 책 가격을 지불할 수 있었다.

 

 

인생이란 것은 전쟁을 닮았지만 모든 부분이 전쟁과 같을 순 없다. 병법이란 것은 전쟁을 타파하기 위한 계략이며 모략의 일종이다. 모든 병법의 주제는 속임수다. 적을 어떻게 속여서 내가 이길 것인가. 모든 병법의 주제는 그렇다. 그렇기에 인생의 모든 부분을 그렇게 처세적으로 다룰 순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이런 처세를 모르고 살아갈 수도 없다. 세상은 도덕으로만 살 수도 없으며 모략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 둘 다 적절하게 사용하며, 살아가야 하니, 병법에 지혜를 무용지물로 생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병법에 나온 처세적 부분을 응용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도 병법서가 각광받는 이유는 선현들의 지혜가 아직도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데,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모쪼록 신선한 책이었고, 신간이지만 뜨자마자 바로 구매를 한 책이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 병법서를 좋아하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도 좋은 내용으로 이뤄진 책이 아닌가 싶다. 만족도가 아주 좋았던 책이며, 특히 권모나 모략, 병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일독이 아닌 필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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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한 반격의 기술, 오자서병법 Wisdom Classic 11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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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책이었다.

 

일단 최근에 발간된 신간이고, 책의 제목과 책이 다루고 있는 병법이란 부분이 내 관심을 끌었다. 토요일 약속한 지인을 기다리면서 오프라인 서점에서 봤던 책인데, 신간에 눈을 잘 돌리지 않는 나였지만, 새로운 병법서인 <오자서 병법>에 대한 책이라서 너무 흥미가 갔었다.

 

지인과 만나면서도 머릿속에는 계속 책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와 오자서는 합려왕을 보필한 쌍두마차 명신이었다. 그런 오자서의 병법서라니, 국내에서 발간된 동서양의 병법서는 다 사 본 나였으나, 저 책은 처음이었다. 원래 병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라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지인과 약속 도중 양해를 구하고 서점에 가서 책을 구매했다. 참고로 같이 만난 지인 형도 인문학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책에 굉장한 흥미를 보이고 같이 샀었다.

 

이 책이 내 관심을 끈 이유는 3가지다. 첫 번째,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오자서병법>에 대한 책은 전무했는데, 새로운 병법서를 만났다는 그 즐거움이 가장 큰 목적이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책의 서문에 있었다. 나는 이 책의 서문을 읽고 순간 이 사람이 내 머릿속을 훔쳐봤나 싶었다. 일전에 내가 아쉬워하단 새로운 고전의 발굴에 대한 내용이 서두에 있었다. 저자는 인문학자들이 병법으로 치면 너무 <손자병법>에만 편향된 번역을 보이고 있다는 아쉬움에, 새로운 인문학 텍스트를 발굴해 대중에게 소개를 하는 것 역시도 인문학자들의 소양이라는 것인데 그러지 못한 현실에 대한 아쉬움으로 이 책을 소개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병법에 대해서, 이 사람이 서두에 말하길 병법은 기본적으로 '속임수'라서 인생에 필요는 하되 말을 타고 전쟁이 끝났으면 말에서 내려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논의를 펼치고 있는데, 이 역시 내가 병법을 삶의 지표로 삼고 살아오면서 느꼈던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고전에 대한 아쉬움 http://blog.naver.com/bosom86/206417718 

병법의 한계 http://blog.naver.com/bosom86/206693808

 

두 글에 대한 링크는 다음과 같다. 아무튼, 저자의 이런 사상이 마음에 들어서, 신간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에서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흥분된 마음으로 책을 어제 읽어나갔다.

 

일단 이 책을 읽어 본 느낌은,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컸다. 책의 구성은 3장으로 나눠있다. 1장은 저자가 <오자서병법>을 보고 풀이 한 개론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2장은 <오자서병법>을 잘 이해한 하수, 중 수, 상수, 고수 4명의 위인을 예시를 드는데, 이 2장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거기다 하수는 유비, 중수는 주원장, 상수는 유방, 고수는 모택동 등 중국의 창업자들을 예시를 들었는데, 저기서 나의 경우는 모택동을 제외하고는 빠삭하게 아는 위인들이라, 사실 대충 넘겨가면서 봤었다.

 

책의 가장 핵심은 부록 편인데, 부록에 오자서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설명했고, <오자서병법>이 어떻게 발굴되고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간략하게 말하고 가장 중요한... <오자서병법>의 원문과 번역을 모두 완역했다. 즉 부록이 바로 노른자라는 점이다.

 

여기서 딴죽을 걸자면, <오자서병법>의 책은 번역과 원문 포함해서 11장으로 구성됐다. 즉 그만큼 짧은 죽간본을 250페이지로 뻥 튀겨서 낸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이렇게 읽었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고, 부록 편의 <오자서병법>의 원문을 두 어번 읽고 나 스스로 생각하고 음미하고 난 뒤, 저자가 풀이한 1장인 <오자서병법>의 개론적인 내용을 읽었다. 사실 여기까지만 봐도 이 책의 핵심은 다 알 수 있다. 2장은 솔직히 유비, 주원장, 유방의 역사적 사실과 오자서 병법에 입각해 설명하는 부분은 그냥 빠르게 속독으로 훑어나갔으며, 마지막 고수에 있는 모택동의 경우는 가장 지식이 없어서 제대로 정독했었다.

 

일단 <오자서병법>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음양가적인 사상이 많이 가미됐다. <손자병법>의 경우는 음양적 사상이 가미됐더라도, 절제된 모습을 보이는데, <오자서병법>은 그런 부분이 좀 없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래서 일단 1독으로는 내용 파악에 좀 어려웠다. 대체적인 사상은 기본적 병가 사상과 같았으며, <손자병법>과 같은 내용이 많이 인용됐었다. 중요한 점은 <오자서병법>이 출토된 무덤은 <손자병법>이 출토된 은작산 무덤보다도 더 오래된 무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쉽사리 어느 병서가 위서고 베꼈다는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물론 시대상으로는 <오자서병법>이 더 빠른 시대에 나왔을 가능성이 높지만(출토된 무덤으로 본다면)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손자병법>은 기존의 병가 사상들을 모두 통합적으로 고찰해 낸 흔적이 보이고 종합론 적인 관점이 보이는 책이었고, <오자서병법>은 그런 흔적이 잘 보이지 않다는 점이 차이지만, 두 사상이 같이 내포하고 있는 부분은 시대적으로 병가 사상이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사상, 즉 시대적으로 통용될 만큼 대세적인 사상이 아닐까 싶었다.

 

1장은 <오자서병법>을 공원국 저자가 스스로 풀이 한 총론격 글이라 할 수 있는데, 약자가 가할 수 있는 반격이라는 주제에 입각해서 풀이하고 있었다. 말콤 글래드웰의 <다윗과 골리앗>이 의식됐으며, 약자의 입장에서 강자에게 대응하는 주제의 책들이 요즘 많이 쏟아지는 느낌도 받았다. 그만큼 사회가 각박해지고, 양극화가 심해지니 사회적 저서들 역시도 약자를 위한 전략적인 해석론으로 고전을 풀이하는 게 아닐까도 싶었다.

 

2장은 솔직하게 말해서, 4명의 위인들의 행적을 <오자서병법>에 입각해 평가하는 글인데... 사실 좀 억지성도 느껴졌었던 부분이었다. 더불어, 사실 책의 60%가 이 예시에 활용됐다는 점에서, 그냥 예시를 대폭 줄이고, 부록과 1장만으로 구성해서 책의 군더더기를 모두 빼고, 얇고 값싸게 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물론 이것은 내가 여기에 다루는 영웅들이 익숙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고무적인 부분과 아쉬움이 공존하지만, 오랜만에 번역된 새로운 병법서라서, 사실... 아쉬운 책의 체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매했던 책이다. 앞으로도 소정의 학자들이 이런 신선한 책들을 많이 번역하고 널리 대중화를 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 쓰다 보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 대중적이지 않은 책을 대중에게 설명하려면 예시나 설명이 자세하게 싣어서 비교적 진입 장벽을 어렵지 않게 하려는 저자의 의도도 있지 않을까도 싶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자 긴 예시문에 대해서도 왜 이런 체제를 했는지 수긍은 갔다.

 

아무튼, 중국에서도 널리 번역되지 않은 책인데,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번역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 합려의 쌍두마차, 손무의 <손자병법>과 오자서의 <오자서병법 - 계려>. <손자병법>에 비해 양이 엄청 적지만, 그래도 오나라의 영웅들의 행동과 어록을 지닌 두 책의 병서가 나란히 서가에 꽂혀있으니, 내 마음이 뿌듯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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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역사 속에 살아 있는 인간 탐구 15
한영우 지음 / 지식산업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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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을 만났다. 정도전,

사실 별로 관심 가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냥 이성계의 책사, 권력 다툼에서 이방원에게 끔살당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었다. 사극 정도전을 보면서, 그 옛날 봤던 용의 눈물의 생각났다. 그래서 옛날의 추억이 되살아나서 더 재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를 보면서 정도전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책을 샀다. 시중에는 여러 가지 정도전의 책이 있었다. 그중 가장 정통적으로 인지된 한영우 교수의 평전을 구매했다. 구매하기 전 여러 책들을 비교해보고 샀다. 한영우 교수는 정도전만을 30년간 연구를 해 온 사람이었다. 어쩌면 비교를 하고 나서도, 그 30년이란 권위를 무시 못 하고 이 책을 골랐는지도 모르겠다만.. 

 

 이 책은 사실 한영우 교수의 논문서<정도전 사상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그래서 다른 정도전 평전보다도 내용이 조금 깊은 편이다. (한영우는 일반인이 보기에 쉽게 썼다곤 하나 꽤나 깊은 부분까지 들어가고 있다.) 책의 구성은 일대기를 간략하게 다루고 정치, 사회, 경제, 윤리, 철학 등으로 주제별로 다루고 있었다. 구성 자체에 대해서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일대기보다 아무래도 주제별로 들어가는 부분이 책의 2/3을 차지했다. 5:5의 비율로 글을 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대기는 다른 배경 설명은 뒤로하고, 오로지 정도전의 인생 자체만을 논하고 있었다. 그래서 배경 설명 부분이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넘겨보니 정치 사회 챕터에 외교에 대한 글이 있는데 거기서 시대적 배경 설명이 자세하게 나왔다. 다른 정도전을 다룬 책들과 비교해보자면 문체 자체는 사실만을 전달해주려는 느낌이 강했다. 논설문이 아닌 설명문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주관이 안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객관적으로 느껴졌었다. 특히나 이덕일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랑 비교해보자면, 이덕일의 책은 굉장히 주관이 많고 뭔가 주제나 포인트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고 같이 생각해보자는 서술 방식이다. 대체적으로 조금 감정적인 필력이라고 느꼈는데, 한영우의 책은 그런 부분에서는 차분한 느낌을 받았다. 시중에는 또 <정도전의 선택> 이라는 책도 있는데, 이 책은 전형적인 일대기만을 상세하게 서술했다. 배경 설명도 적절하게 해 주면서, 부담 없이 보기엔 이 책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었다. 서사적으로 흘러가는 구성이니까, 책을 구매하기 전에 가장 고민했던 것이 <정도전의 선택>과 이 책 두 권중 무엇을 살까가 아닌가 싶다.

 

책의 체계대로 리뷰하기보단 일대기를 중심으로 서사적으로 리뷰를 해 볼까 한다.

 

출생 ~ 귀향과 방황

 

출생에 대해서는 사실 별다른 문제점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정도전을 탄핵한 상소들을 살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대목이, 핏줄이 천박하다는 공격이 많았다. 한영우도 이 부분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는데, 신진사대부의 두 계통인 급진파와 온건 보수파, 둘 중 정도전은 급진파의 대표주자였다. 대체적으로 급진파에 속한 사대부들은 출생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고 온건파는 완벽한 혈통을 타고난 경우가 많았다. 정도전 역시 모계 혈통을 흠잡는 경우가 많았다. 모계 쪽에 서출의 피가 섞였다는 것이 흠이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살해할 때, 조영규에게 지시를 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조영규와 정몽주 둘 다 연안차씨 집안 외손이다. 하지만 조영규는 서출의 피가 섞였고 정몽주는 온전한 양반의 피를 이어받았다. 게다가 둘의 사이도 안 좋았다.  

 

정도전이 살해될 때, 이방원의 총애를 받는 하륜도 끔찍한 짓을 저지른다. 자객을 보내 두문동 72현의 하나인 차원부를 비롯하여 연안차씨 내외의 족친 70여 명을 살해했다. 명목상 이유는 차원부가 정도전에 관련됐다곤 하지만, 여기에도 비밀이 있는데 하륜의 피 역시도 서출의 피가 섞였기 때문이었다. 하륜은 개인적으로 보복을 했는데, 서출에 대한 무시 때문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한영우는 주장했다 실제로 이 사건은 나중에 무고로 판명 났다.

 

3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면, 당시 서출에 대한 차별이 엄청난 듯싶었다. 특히나 돌출 행동을 자주 하는 정도전 역시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나 싶다. 부계 계통은 흠잡을 곳이 없지만 말이다.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 이색의 문하에 들어 성리학을 공부하고 여러 사대부들과 교류를 시작한다. 이름난 문인치고 책 많이 안 본 사람이 드물듯, 정도전 역시도 책을 많이 봤다고 한다. 그리고 공부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벼슬을 하기 전 생업에 대해서는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약간의 보수를 받곤 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신돈이 없어지고, 공민왕의 권력이 약화된 시기였다. 공민왕은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새로운 세력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성균관이었다. 그곳에서 왕권 강화를 위한 성리학 엘리트들을 육성했다. 정도전도 성균관 교관들(신진사대부 계열)에 추천을 받아, 성균박사(정 7품)에 임용된다. 권력을 쓰는 자리는 아니지만, 매일 명륜당에서 경전을 가르치고 토론하는 직책이어서 이 시기에도 굉장히 많은 지식을 습득하지 않았나 싶다.  

 

정도전은 공민왕의 눈에 들어, 국가의 제사 의식을 관찰하는 태상박사에 임용됐고, 성실성을 인정받아 예의 정랑(정 6품)까지 오르게 된다. 그러나 공민왕이 암살되고 권문세족들이 권력을 다시 잡자 신진사대부들은 고난을 겪는다. 정도전은 친명 주의를 외쳤는데, 당시 실권자인 이의민은 그런 정도전에게 원나라 사신을 접대하라는 명을 내린다. 정도전은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히고 나주로 유배된다. 그리고 그의 동료들인 신진사대부 역시도 대대적으로 탄압을 받아 각지로 유배당했다.

 

재미있는 부분은 유배 가는 정도전을 붙잡고 염흥방이 '시중의 노기가 좀 있으면 풀릴 것이다. 그러니 가지 말고 기다려라.'라고 은근히 권유한다. 그러자 정도전은 술을 마시고 단호하게 일어난다. '나의 말과 시중의 노여움은 각기 관점이 다르지만, 모두가 나라를 위한 길이다. 왕명이 내려졌는데 어찌 그대 말로써 귀양을 중지시킬 수 있겠는가.' 하고 미련 없이 떠난다. 조금의 타협을 볼 수도 있을 법 한데, 그에게서 타협이란 없었다. 불같은 정도전의 성격을 잘 보여준 대목이 아닌가 싶다.

 

유배지에서 그는 많은 고초를 겪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한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문인들은 배고픔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다. 태생적으로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 생업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글을 쓴 사람들이 많다. 조선만 해도 이황 역시도 그렇고 율곡 역시도 그랬다. 물론 관념적으로 배고픔에 대해서, 백성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말을 외치긴 했으나, 그들이 그런 말을 하고 책을 쓴 곳은 따뜻한 온돌 방이었다.

 

정도전은 많은 저서를 남긴 문인이다. 그러나 건국 초에는 행정 업무와 한양 설계로 바빠서 글을 저술할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즉 이 긴 유배 동안 그는 차가운 골방에서 글을 쓰고, 자신의 사상을 완성해나갔다. 더구나 아내에게서 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통곡의 편지를 받는다. <삼봉집> 가난이라는 글인데 요지는 이것이다. 당신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서 입신양명할 줄 알았는데, 당신은 귀향 가있고 집에 쌀은 없고, 친지들은 연락을 끊은지 오래다. 어떡할 거냐?라는 바가지다.

 

정도전 역시 답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말이 참으로 온당하오, 나에게는 붕우가 있어 정이 형제보다 나았는데 내가 패한 것을 보더니 뜬구름처럼 흩어졌소. 그들이 나를 근심하지 않는 것은 본래 세로 맺어지고 은으로 맺어지지 않은 까닭이오. 그대가 나를 책망하는 것은 사랑해서이지 미워서가 아닐 것이오.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과 같고, 그대가 집을 걱정하고 내가 나라를 근심하는 것이 어찌 다름이 있겠소. 각자 자기의 직분을 다하고 있을 뿐이오. 성공과 실패, 이로움과 해로움, 명예와 치욕, 얻고 잃는 것은 하늘이 정한 것이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오, 무엇을 근심하겠소.'

 

어떻게 보면 참 무책임한 발언인데,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정도전은 사랑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고 있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그런 강한 정신력을 지닌 정도전을 지탱해준 버팀목은 그의 아내였다는 점. 밥 굶는데 실직한 남편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정도전은 당당하게 아내에게 말했다. 사실 이런 말을 한 그 역시도 마음이 많이 괴로웠으리라. 어쩔 수 없는 정신승리.

 

그렇게 3년을 나주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곳 농부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그곳 농부들의 삶을 체험하면서 그의 관념적인 유교사상은 실체성을 가지게 됐다.

 

사실 경우는 다르지만, 나 역시도 1년 정도를 취준생(백수)으로 지낸 적이 있다. 그때 자취방에서 외롭게 혼자서 보낸 시절, 친한 친구의 연락마저도 소원해지게 되고, 결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경험했다. 혼자 있는 시간. 그도 많이 외로웠으리라, 뒤돌아봤을 때 남들에겐 찌질한 백수의 시간으로 보이던 시기지만, 내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던 시기. 그래서 내겐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정도전의 생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은 유배와 방황의 시기였을 것이다. 실제로 정도전의 친구들인 신진사대부들도 각자 유배를 떠났으나 1년이 지나고 다들 복직됐다. 정도전만이 그렇게 홀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집권층에게 찍혔다는 말이다. 글에서 나오듯 복직된 사대부들은 정도전과의 교류에서 조심스럽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저렇게 외로움을 토로하는 것일지도,

 

 실제로 배운 친구들은 왕래가 없는데, 농민들은 그를 찾아와주고 반겨줬다고 한다. 정도전의 글에서 많이 나오는 부분이다. 그의 사상 자체에 있는 민본주의 의식은 아마도 이 때 생성되지 않았나 싶었다.

 

3년이 지나고, 거주지가 나주가 아닌 고향의 영주로 옮겼다. 유배가 풀린 것은 아니라 거주지만 옮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잦은 왜구의 침략으로 경북 북부 지방을 왔다 갔다 했었다. 그러다가 귀양살이가 조금 완화되어,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됐다. 정도전은 그제야 개경으로 올라와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집권층의 한 재상이 자신의 별장을 짓겠다고 정도전의 집을 헐어버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는 집을 5번이나 옮긴다. (같은 이유 인듯) 그런 생활을 6년간 지속한다. 책에는 그가 농민과 함께 걸식도 하고, 초가에서 밭도 갈아서 경직도 하며 식량도 조달하기도 했다고 한다.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생활을 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나라를 바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길고 긴 방황의 종착점. 이성계를 찾아간다.

 

어쨌든 정도전과 이성계는 혁명에 성공한다. 그리고 슬슬 정도전의 정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승인 이색, 그리고 절친한 지기 정몽주, 그리고 야심가 이방원이 그들이었다.

 

 

이색 vs 정도전 - 핵심은 토지문제다.

 

이색과 정도전은 사제지간이다. 더불어 이색은 당시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울대 대학 총장과도 같은 지위에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국제적인 인사였다. 그런 스승의 권위에 맞서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 시기 감히 누가 이색을 공격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정도전은 이색과의 의견 차이를 경험하고 그와는 결별을 선언한다.

 

핵심은 토지 문제를 둘러싼 부분이었다.

 

정도전이 볼 때 가장 농민을 가장 괴롭히는 핵심은 불합리한 토지제도가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고려 시대의 토지제도는 차경제(사전)에 기초를 하고 있었다. 생산량 50%를 지대로 바친다고 하는데, 상당히 높은 수치다. 이 시기는 토지의 사적 소유를 국가가 지나치게 인정한 까닭에 농민들은 토지 지주로부터 엄청난 시달림을 받고 있었다. 더불어 고려 말에는 한 토지에 주인이 7~8명이나 돼서 세율을 다 바치다 보면 실상 농민에게 돌아가는 것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이에 맞서 정도전은 국가가 개입하여 공전을 늘리고 균전제를 실시하는 것이 옮다고 생각했다. 토지의 소유권을 모두 국가에 귀속시켜 공전제를 확립하고, 토지를 균등하게 전 국민에게 배분하여, 토지를 안 가진 자와 경작하지 않는 자가 없게 하고 빈부와 강약의 차이를 없게 하는 것을 구상하는 것, 그리고 토지의 세금 전조는 무조건 국가가 받는데 1/10으로 확 줄이고 기타 잡 세금 따위는 일절 엄금되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런 정도전의 이상을 실천하는데 많은 지주를 가진 권문세족과 특히 스승인 이색 역시도 반감을 표출했다. 이색은 토지제에 대한 문란에 대해 토지에 주인이 많은 것만을 개선시키면 되겠다는 소극적인 입장을 이야기했다. 이색 역시도 사실은 대 지주였었다.  하긴 당시의 대지주의 입장에서 보면 저런 소리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일 수 있겠다 싶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정도전의 토지제에 공감을 표현 사람이 이성계다. 이성계 역시도 굉장히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색과는 대조적이다. 정몽주는 이 때 어땠을까? 정몽주는 이 때 중립적인 입장을 선택했었다.

 

아무튼 정도전의 사상이 이상적이고 최선의 제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당시의 고려의 문란한 수취제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된 점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을 시행하면서(과전법) 많은 난항도 겪고 실제로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정도전이 이런 토지제도를 생각한 것의 중심에는 백성을 위하는 민본 사상이 깊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때 얼마나 난항이 많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데, 반대파 세력들의 공격으로 질린 이성계는 하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고자도 생각했다. 그러나 정도전이 반대했다. 핵심인 이성계가 없다면, 안된다고, 만류하고 만류했다. 정도전의 주장에 이성계 역시도 은퇴를 번복하게 된다. 사실 처음에는 이성계가 역성혁명에 대한 열의가 별로 없었었다. 그런 이성계를 바로잡아준 인물이 정도전이었다.

 

전제 개혁과 우왕과 창왕의 폐위를 놓고 틀어질 대로 틀어진 이색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정도전은 믿었던 지기들을 하나씩 잃기 시작한다. 어쨌든 이 사건을 통해서 권문세족과 지주들은 군사권(최영)을 잃음과 동시에 경제권도 없어지고 있었다.

 

 

정몽주 vs 정도전 - 고려냐 조선이냐?

 

슬슬 조선의 창업이 오를 무렵, 중립적이던 정몽주가 고려의 충신을 자처하고 정도전의 앞길에 막아섰다. 민심도 이성계가 왕위를 찬탈한다고 흉흉했다. 백성들의 동태를 보고 수구세력은 정몽주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뭉친다. 그리고 고려 왕조를 지키기 위해 정도전과 조준 등의 급진적 신진사대부를 공격한다.

 

대체로 온건적인 성향의 사대부들이 정몽주와 함께 뜻을 모았다. 서로 간에 절친한 지기, 힘든 시기 <맹자>를 건넨 친구. 그리고 지금의 정도전의 이념에 중심인 <맹자>를 준 친구, 스승을 넘어서자 이젠 절친한 지기가 가장 강력한 적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태종 이방원을 이야기할 때 외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공신들의 숙청, 그리고 외가 세력들의 척결, 형제의 난, 따르던 측근들의 정리 등등... 비정하지만 그의 내면은 외로웠으리라, 그러나 정도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믿었던 지기와의 이념 갈등으로 인해 결국 서로를 헐뜯고 비방했다.

 

특히 이 시기 정몽주 일파가 정도전을 공격한 것의 주요 내용은 정도전이 가장 싫어하는 천출의 핏줄 이야기가 꼭 섞여있었다. 정도전 역시도 필사적이었다. 이미 스승과의 사투를 생각했을 때,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제거하기로 작정한 그였으니까,

 

그러나 이 시기, 이성계는 정몽주 일파의 강력한 일침을 받고 의기소침해져 가고 있었다. 더구나 이성계 역시도 사냥을 나갔다가 낙마를 하고, 정도전 역시도 귀향을 밥 먹듯 다니고 있을 시기였다. 이 기회를 틈타 수구세력은 군사력을 장악한 이성계를 살해하려고 했었으나, 이 때 구원투수로 나온 사람이 바로 이방원이었다. 위기를 직감한 이방원은 핵심 인사인 정몽주를 스나이핑 했고, 정몽주의 죽음으로 혁명 세력들은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다.

 

 

3. 정도전 vs 이방원 - 왕조의 권력을 둘러싼 사투

 

새 왕조가 개창 되고, 정도전은 바쁜 나날을 보낸다. 먼저 인사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군권력까지 신속하게 장악을 한다. 새로운 정부를 위해 수도를 옮기고 수도의 행정을 구상하고,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이런 데다가 저술서인 <조선경국전>과 <불씨잡변> 등의 정치서와 철학서도 펴 낸다.

 

<조선경국전>에 따르면, 그는 군주는 관념상 지존의 자리고, 실권은 재상이 지녀야 한다고 했다. 즉 군주는 사적으로 토지를 가져도 안 되고(명목상 모든 토지는 왕의 것이라고는 함..), 의견 등을 이야기할 때 재상과 함께 의논을 하여 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재상은 군권력과 인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제도라면 군주가 어리석더라도 재상이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럼 여기서 의문점이 드는데 재상이 타락한 자가 오르면 어쩌겠는가? 정도전은 교육에서 해답을 찾았다.

 

당시 교육관에 대해서, 정도전은 소수 엘리트주의적인 인재 양성 정책을 폈다. 배움의 기회는 노비를 제외하곤 모두 다 평등하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공정한 실력을 통해서 상위 학교로 진학시키는 제도, 고려 시대 음서가 워낙 성행해서 정도전은 실력주의로 관료를 뽑자고 주장했다. 즉 문호는 차별 없이 열어놓는데, 상급 학교로 진학하려면 공정하게 실력으로 올라가야 한다. 최종적으로 우수하게 시험에 통과한 자만이 관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의 의미 없는 대학 졸업장들을 보며, 어쩌면 정도전의 저런 방식도 괜찮지 않나도 싶다. 지금의 우리 시대의 대학은 필수 아닌 필수지만 몇몇 네임드 학교를 제외하곤 별 메리트가 없기도 하니깐, 개인적으로 나도 대학은 정말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학문의 길로 가려는 사람만 대학을 가는 것이 국가적으로 더 효율적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선별된 관료가 행정을 두루 거쳐서 재상이 된다는 것인데, 사실 솔직히 내가 봐도 너무 왕권을 경하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군주는 특성상, 자신의 왕권 강화를 항상 생각하는데, 군주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불합리적인 소리긴 했다. 물론 태조는 정도전의 공이 너무 커서, 뭐라 할 순 없었겠지만, 야심가 이방원에게는 이런 사상은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정도전은 군권을 모두 장악하고 있었다. 문무 양권을 장악하고 그는 요동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훈련에 만전을 가하고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을 잘 몰랐는데, 당시 분위기가 완전 전시체제였다는 점이다. 태조가 정도전이 지은 <진법>을 읽고, 지방 각 도에 보내서 응용하고 못 하는 사람들에게는 곤장을 내리곤 했었다. 그만큼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위의 정치적인 이념은 사실 부차적인 문제기도 하다. 왕조 초기에 군권을 누가 가지느냐에 따라서 권력의 행방이 결정 나기 때문이다.

 

특히나 왕자들과 귀족들의 사병을 국가로 환원하라는 정도전의 명령에 이방원은 직감했겠다. 군사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정치적인 색감이 뛰어난 태종이니까, 이런 핵심을 모를 리가 없었다. 결국 그는 정도전을 주살하는데 성공하고 왕좌를 차지한다. 그리고 정도전은 마지막 정적에게 살해당하면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군권을 장악한 정도전이 왜 그렇게 쉽게 죽었느냐는 데에 대해서 저자는 이방원이 그만큼 불의의 기습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한 나라의 군권을 다 장악한 사람을 암살하기란 쉽지 않다. 즉 그만큼 대처하지 못 했던 순간을 잘 포착한 이방원의 타이밍이 돋보였다.

 

내가 생각한 점은, 왜? 이방원을 정도전은 인정하지 않았느냐?라는 점이다. 그의 <조선경국전>에 따르면 왕은 적장자가 있는 것이 관례지만, 자질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솔직히 태종 이방원이 왕조를 건국한데 가장 큰일을 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태조는 이방원의 과격한 성품이 싫어서 싫어했다. 개인 자질로 보면 이방원은 당시 15세에 과거를 급제했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다. 거기다 태조가 곤경에 처했을 때 구한 공도 있다. 정도전도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거라곤 생각한다. 왜 세자를 방번 방석에 올리는 것을 수락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실제로 태종은 자신이 집권을 하자마자, 개국 공신에 자신의 이름을 추가한다. 인정받고 싶었던 태종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조선의 꽃 세종 - 과연 태종의 희생 결과물로만 볼 수 있는가?

 

태종 이방원을 이야기할 때 항상 들었던 이야기가, 왕조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악행도 서슴없이 저질렀다고 한다. 실제로 맞고 그래서 공신들 대부분을 척결하고 외가 세력에 대해서도 정리를 깔끔하게 해준다. 그렇게 잘 닦아놔서 세종이 꽃피울 수 있었다고 태종의 그런 헌신과 자기희생이 있어서라고 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세종의 치적은 정도전 역시도 영향을 많이 줬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그가 설계한 조선의 뼈대, 행정 체제, 사상과 관념 등은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태종이 권력적으로 청소를 했다면, 실제적으로 조선의 행정 문물을 정비한 것은 정도전이다. 태종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어서, 정도전이 설계한 행정 체제를 수정 없이 받아들인다. 물론 신권 중심의 의정부 서사제를 6조 직계제로 바꾼 것 외에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정도전의 행정이 탁월했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신권과 왕권의 미묘한 지각변동 이후, 세종은 그 둘을 잘 조합하여, 올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도전과 세종의 공통점. 바로 민본주의 사상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백성의 하늘은 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독서가 세종이 삼봉의 저서 역시도 봤을 것이다. 그런 정도전의 사상이 세종에게도 나왔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세종편>에 세종은 백성의 하늘은 임금이 아닌 밥이라고 이야기하는 대목도 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것이 <삼봉집>에서 나온다. '입는 것과 먹는 것이 풍족해야 예의를 안다.' 이 부분은 <관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아무튼 두 사람에게서 이런 공통점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 두 사람이 유학적인 시각의 경제관을 못 벗어났다는 한계점은 있지만, 그래도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로 볼 때는 의미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정도전, 어쨌든 뜨거운 사나이.

 

경세가를 평가할 때, 개인적으로, 보는 부분은 그 사람의 정치사상보다는 경제관념을 주로 본다. 그리고 2순위가 군사학에 대한 지식이다. 현실적인 마키아벨리와 비교해보면 마키아벨리는 정치적인 관점 + 군사학적인 관점이 돋보이는 사상가다. 정도전은 어떨까? 민본정치의 기본은 경제사 상이라고 하는 부분, 그리고 나름의 신권 중심의 정치사상, 그리고 병서를 저술한 병법가, 실제적인 행정 능력에 대한 부분, 더불어 나름의 철학적인 사상까지, 두루 섭렵한 사람이라고 생각됐다. <손자병법>에서도 전쟁의 기본은 경제력이라고 말하며, 경제관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데, 그 부분도 생각났다. 

 

 다른 사상가들이나 다른 사람들보다 정도전의 삶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은, 관념적으로 생각한 부분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말이다. 저술적으로 논설하는 단계가 아닌 실제적으로 실천을 하려고 했던 지식인. 그의 정치 사상서의 중심적인 관점은 <맹자>다. <맹자>는 사실 유교 정치서적인데, 내가 봤던 <맹자>는 지나치게 이상주의에 가까웠었다. 그런 <맹자>의 가르침을 실제적으로 실천하려고 했던 정도전. 이상을 이상으로 끝내지 않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그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그를 보며 독서에 대해서도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많이 했었다. 나도 <맹자>를 봤을 때는 참 재미없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58세에 죽은 정도전, 그의 60 인생의 1/6을 귀향과 방황으로 보냈다. 이 시간 동안, 정도전은 실제로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경험하고 몸으로 백성을 느꼈다. 위인들에게 보이는 공통점, 시련의 시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변화하는데, 정도전은 그 시기를 잘 이겨냈던 점이 인상 깊었다. 이런 시련 속에서 그는 진정으로 민본주의 사상에 대해 눈 뜨게 된다. 그래서 유학자이면서도 백성들을 위한 실용을 먼저 생각한 정도전. 조선 후기에 나타난 실학적인 사상을 조선 초에 생각해 낸 사람.

 

그가 불교를 심하게 배척한 이유 중 하나도, 승려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백성들을 수탈하는 모습, 그리고 신돈의 실정 등이 있다. 뭐 물론 성리학자라서 불교 자체에 호의적이진 않지만, 당시의 불교가 많이 타락한 모습을 보여서 그러지 않나 싶다. <불씨잡변>을 쓴 이유도 한영우는 당시 무학대사와 이성계가 가깝게 지내는 것을 의식해서 쓴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그의 주옥같은 명대사 '밥버러지' <삼봉집>은 과연 이 밥버러지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정도전은 모든 백성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놀고먹는 사람은 국가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며, 사농공상 중 직업이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먹는 사람들을 '간민'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구조적인 취업 사태를 그가 보면 과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서울에도 그가 이룩한 열정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흥인지문(인), 돈의문(의), 숭례문(예), 소지문(지), 보신각(신) 한양의 문을 설계할 때도 그는 자신의 이념을 담아내려고 애썼다. 그뿐일까 광화문을 비롯해 서울의 행정구역 역시도 그가 만든 것들을 그대로 쓰는 곳도 있었다. 그가 지은 이름은 지금까지 내려져오고 사람들에게 불리고 있다.

 

처음 드라마에서 시작한 호기심, 그냥 이성계의 문인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멋진 사람이라서 놀랐다. 드라마가 나온 배경에는, 요즘 애민을 위한 정치인이 없다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도 싶다. 책은 굉장히 자세한 부분까지 잘 설명하고 있다. 사실 내가 쓴 글에 나온 부분은 극히 일대기의 일부분일 뿐이다. 실제로, 그가 행한 많은 행정적인 업적 (출판, 언로, 교육, 사회제도), 그리고 사상적인 업적, 문학적인 업적 등 책에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일독을 하길 권해본다.

 

사실 책의 어조 자체는 굉장히 차분한데 내용이 가슴을 뜨겁게 했던 책이었다. 비 오던 주말 밤, 이 책을 읽느라 밤을 지세웠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책이다. 뜨겁고 열정적인 인생을 살다 간 그의 인생에서 느끼는 바가 많았었다. 그래서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시로 표현도 해 봤었다.

 

 한영우 교수의 책은 <다시찾는 우리역사>를 봤었는데 참 만족했었다. 정도전에 대한 평전 역시도 아주 만족스럽다. 아쉬운 점을 굳이 꼽으라면, 사진 자료가 컬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일대기 부분을 좀 더 배경 설명을 심화해주면 어떨까도 싶다. 한영우 교수의 책을 검색해보니 <율곡 평전>도 있던데 관심이 간다.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참 많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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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 - 올바른 공부의 길잡이
이이 지음, 김학주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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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힘든 일이다. 어느 날 시험 공부를 하다가, 공부가 너무하기 싫어서, 역사 책을 봤던 기억이 있다. 거기서 만났던 넘을 수 없는 인간이었던 율곡 이이. 무려 과거시험을 9번이나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으로 불렸던 율곡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게 과연 인간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조선조 이런 캐릭터는 전무하다.) 지금으로 말하면 고시를 9번이나 1등으로 패스한 뭐 그런 비슷한 예가 아닐까? 아무튼 <격몽요결>은 그 인간 같지 않은 율곡 이이가 학문을 하려는 초학자들을 대상으로 쓴 공부에 대한 개론서라고 할 수 있겠다. 도대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었길래, 아홉 번이나 장원을 급제했는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들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지금 이 책을 다시 봤었다.

 

 율곡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책은 <성학집요>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준비되지 않은 왕인 선조가 등극하자마자, 왕의 자질을 알려주고 왕도적인 정치를 가르치기 위해서 편찬된 책이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격몽요결>은 공부하고 싶은 평민들이 방향을 헤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었다고 율곡은 서문에서 말한다. 전자가 군주의 수신과 치국에 대한 책이라면, 후자는 일반 사람들을 깨우쳐 주기 위한 초학서라고 보면 되겠다. 따라서 조선의 선비들은 이 책을 <소학>, <명심보감>과 같은 명저 훈육서의 반열로 높였었다. 뭐 조선 중기의 사상인 유학과 성리학 사상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정석적인 수신서라고 보면 되겠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유학의 '수신 제가 치국평천하'의 사상이 떠오른다. 1,2,3,4 장은 각각 뜻을 세우고, 낡은 습관을 혁파하고, 자신의 몸을 닦고, 책을 읽는 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즉 수신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되겠다. 이어가서 5,6,7,8장은 제가에 대한 항목이다. 어버이를 섬기는 올바른 방법과, 장례에 대해서, 제사에 대해서, 그리고 집안에서의 예절 등을 설명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수신 항목에서는 좀 본받을 내용들이 많았지만, 제가 항목에서는 시대에 좀 동떨어진 제도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제사 제도나, 장례 절차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9,10장은 사람들과 사귀는 방법과, 사회생활을 하는 법등의 처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치국평천하의 대목은 군주에 치우친 의미라서 조심스럽게 사회 처세론 적인 서술을 하지 않았나 싶었다.(<성학집요>에 담아놨다고 생각해도 될 듯싶다.) 책은 이렇게 총 10 장으로 나눠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수신에 대한 1,2,3,4 장을 집중적으로 봤고, 제가에 대한 5,6,7,8 장은 대충 봤었다. 그리고 9,10장은 다시 집중해서 봤었다. 전문을 다 리뷰하기란 곤란하니 내가 특별하게 느꼈던 몇 대목만을 이야기해보겠다.

 

 1장에서는 뜻을 세우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기존의 유학 사상은 성인을 흠모하고, 공경하며 우러러 본받자는 사상이 기본적이다. 하지만 율곡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기 스스로가 성인보다 못하다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성인 이상으로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존의 유학 사상들이 성인을 대하는 태도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던 부분이었다. 좀 더 적극적인 느낌을 받았었다. <격몽요결> 중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장을 꼽자면 2장을 꼽고 싶다. 2장의 제목은 혁구습으로, 낡은 9가지의 습관을 혁파한다는 뜻인데, 특별히 이 한 대목이 가장 와 닿았었다. 9가지 항목 모두가 나에겐 와 닿았고 느낌이 왔으나, 가장 감동했던 항목을 옮겨본다.

 

다섯째는 글씨 쓰는 데나 공을 들이고 거문고 뜯고 술 마시는 것을 일삼으며 한가히 놀면서 세월을 보내면서도 스스로는 맑은 취미 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이다. 

 

당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가 시험 기간이었고, 공부는 하기 싫은데, 율곡의 책을 보며 진정으로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겠다(?)라고 합리화하며 이 책을 보고 있었었다. 그러다 이 대목을 보고, 돌 맞은 듯 뜨끔했던 기억이 있었다. 살다가 보면, 내가 할 일에 대해서 회피하고 싶고 회피를 선택하고 대체 행동으로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선택된 대체 행동에 대해서 긍정적인 합리화를 할 때도 많았던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항상 저 문장이 생각났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가지는 특성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저 문장이 나에겐 와닿았었다. 그런 회피적 대체 행동을 할 때 저 문장을 떠올리며 고민을 하고 반성을 많이 했었다. 율곡은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지 않았나 싶었고, 결국은 그 역시도 저런 습관이 있었지 않았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추측도 해 봤다.

 

혁구습의 아홉 문장은 모두가 다 의미가 있는 문장들이다. <격몽요결>을 읽지 않는다 해도, 한 번쯤은 2장만이라도 봤으면 느끼는 점이 있지 않나 싶다. (2장이 가장 짧으며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다 나오니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독서에 대한 부분 역시도 기대를 하고 봤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 일반론적인 이야기와 더불어 유학 경전 테크를 제시하고 있었다.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책을 읽을 때 반드시 여려 권을 난잡하게 보지 말고 한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책을 보라는 내용이 있었다. 많은 책을 욕심내서 많은 것을 얻기에 힘쓰며 급급히 서둘러 이것저것 보지 말라는 충고도 한다. 이 부분은 솔직히 개인차가 존재하는 부분이라서 그냥 율곡의 독서 방식이 이렇구나 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나머지 제가에 대한 5,6,7,8장은 <주자가례>, <예기>, <효경>, <소학> 등에 나온 이야기들과 같고, 또 현대에서는 별로 효용성이 없는 듯해서 대충 넘겼다. 그냥 이 시대의 제도는 이렇구나 하고 간단하게 스쳤다.

 

마지막 10장에 있어서는 율곡의 현실론적 관점을 볼 수 있었다. 전문을 옮겨본다.

 

 지금 사람들은 말로는 과거를 준비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힘은 기울이지 않고, 말로는 성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손도 대지 않고 있다. 만약 과거 준비를 두고 따지고 추궁한다면 곧 '나는 뜻을 성리학에 두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힘을 기울일 수가 없다'고 핑계를 대고 또 성리학 공부에 대해 따지고 추궁한다면 곧 '나는 과거 준비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실상 공부를 할 수가 없다'라고 핑계를 댄다. 이처럼 양쪽을 자기 편한 대로 이용하여 어정쩡 날짜를 보내다가 마침내는 과거 보는 일이며 성리학 공부 두 가지 모두를 이루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나이 많아지고 늙은 뒤 비록 후회한들 어찌할 수가 있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성리학은 뭐 진정한 학문 수양에 해당되는 것이겠고, 과거 시험은 입신용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닐까 싶다. 율곡이 이 두 부분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깊이 이해를 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당시 선비들이 뜻 없이 양쪽을 오가며 변명만 하는 사태를 잘 꼬집어서 말하고 있다. 보통 대 사상가들의 경우는 성리학적인 순수 학문 쪽에 더 치중한다고 생각했는데, 율곡은 실제적인 입신에 대한 공부 역시도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역시 구도장원공의 주인공인가... 하고 납득이 갔었다. 아무튼 이 10장 같은 경우는 국가고시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가볍게 읽어본다면 도움 되는 내용이 많아 보였었다.

 

쪽수도 얼마 되지 않고, 어렵지도 않은 책이라서 읽는 데는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고전 치고는 어렵지 않은 문장들로 구성돼 있어서 부담도 없는 편이고 내용 자체도 유가적인 사상에 입각해 교훈적인 내용이 많았다. 물론 이 책 내용이 모두가 다 좋은 내용은 아니다.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생각도 있고, 너무 이상적으로 치우친, 유교적 사관에 입각해서 책을 쓴 부분도 거슬리긴 했었다. 책을 보며 드는 의문점은 과연 이 엄격한 구절들을 율곡은 얼마나 지켰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만큼 이상적이고, 실천하기 힘든 대목들도 많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문구들이 꽤나 많은 거울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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