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 단 한 권의 소크라테스전
황광우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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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는 것이 이로울 때에도 사람은 왜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일까?"

여덟아홉 살 비트겐슈타인이 가진 생각이란다. 까칠한 사람이란 느낌이 먼저 드는 이 철학자의, 기록으로 남겨진 최초의 철학적 성찰이다.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의 첫문장이기도 하다. 평전은 이어진다. "만족스러운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결국 그런 경우에는 거짓말을 해도 잘못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비트겐타인이 이런 고민을 할 즈음은 세기말(그는 1889년생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이들 대부분은 그로부터 100년 후, 20세기와 작별하고 21세기의 새로움을 영접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역사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399년, 한 세기가 막 시작되던 즈음의 아테나이 법정,

 

"하지만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천병희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론> 중 

 

자신을 유죄로, 곧이어 사형까지 선고한 배심원들과 시민들 앞에서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그러나 널리 알려져 있듯 소크라테스 자신은 단 한 편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플라톤이 쓴 거의 대부분의 대화편에, 크세노폰의 몇몇 저작에 '환생하여' 대화를 이끄는 단골 등장인물 소크라테스. 그의 말은 무수히 많고, 그의 행보는 늘 분주하다. 그나마 한마디 한마디가 짧다는 점은 대단한 미덕이다. 여가가 있는 삶이 왜 좋은가를 역설하는 동안에도 정작 자신의 삶은 그리 한가해보이는 않은 듯하다. 하는 일 없이 바쁜 사람, 실속이 없는 사람, 옛말에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했던가! 그는 철학적 담론, 대화를 너무 사랑한 '가난한' 사람이었다.

 

글머리 인용에서 비트겐슈타인이 고민한 '진실'은 소크라테스에게라면 어떤 단어로 대체할 수 있을까? 앎, 정의, 좋음, 우애, 절제, 용기... 떠오르는 단어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특유의 문답식 대화를 시작하고 있으리라. 거짓말을 하는 것이 왜 이롭다는 것이지? 거짓말을 하는 것은 결코 이로울 수 없다. 그라면 단박에 그러나 차근차근 상대방의 숨통을 조이는 악동의 모습을 연출하여 곧 입증했으리라. [어린 시절의 비트겐슈타인의 고민이 별 것 아니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고르기아스>에서 열변을 토하는 소크라테스를 떠올린다. 피해를 당하는 것이 피해를 입히는 것보다 낫다. 피해를 입히고도 처벌받지 않은 사람이 가장 불행한데, 그보다 한 단계 덜 불행한 사람이 피해를 입히고 그에 마땅한 처벌을 받은 사람이다. 양심, 마음의 평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수사학은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 편에 서서 불의를 덮고 죄를 덮어주는 역할, 곧 '환심을 사는 아첨'이며, 영혼을 파는 장사일 뿐이라는 논지를 전개하는(정확한 인용은 아님), 소크라테스다운 모습 그리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실제의 소크라테스가 이러한 논의를 진행했을까? 진위를 가리는 일은 녹록지 않다. 플라톤의 글을 통해 생전의 소크라테스가 쏟아낸 것이 유력한 말속에 담긴 진리와 진실을 추수해야 하는 후학들 입장에서는, 그렇다. 쉽게 풀리지 않는 숙제다. 잘 맞는 옷처럼 '인문학자'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황광우의 신간, <<사랑하라>>를 읽었다. 잘 빚어낸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중 <  ~전> 한 편을 만났을 때의 즐거움을 그의 소크라테스 해석과 해설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인 소크라테스를 만나는 일은 늘 안개속을 거는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사상의 쌍생아인, 스승 소크라테스와 제자 플라톤을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소크라테스가 없었다면 저 위대한 플라톤 사상이 탄생할 수 없었겠지만, 마찬가지로 플라톤이 없었다면 저 심오한 소크라테스 사랑 역시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215면)

 

플라톤의 저작으로 소크라테스를 만나는 일은 늘 안개 속을 헤매기의 되풀이다. 대화편들이 집필된 시점이 그렇고, 대화편들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대화 시점 추정도 끊임없는 논란 속에 있다. 어디까지가 스승의 사상이고, 어디서부터가 '청출어람' 플라톤의 사상인지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대화편들을 하나하나 읽는 동안 안개가 조금 걷힌다 싶다가도, 아, 이것부터 읽고 이것을 읽었어야 했는데, 그렇다면 더 이해하기 쉬웠을 텐데, 그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저자도 서문에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듯, 희랍고전 원전번역서들이 상당히 많이 나와 있다는 것. 박종현, 천병희 선생, 정암학당 학자들의 노고가 있어, 어쩌면 '단 하나뿐인 소크라테스 전'의 출간이 가능했으리라.

서양 고전만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고전들이 문자로 고정된 오랜 역사를 가진 덕분에 혹은 그랬기 때문에, 하나의 저작, 한 사람의 사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앞서 먼저 읽어야 할 책들이 있고, 곧 선행독서는 필수이다. 가령,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는다는 것이, 그 위험을 몰랐기에 과감히 떠날 수 있는 모험이 되는 것처럼,

 

'지혜-사랑'(필라-소피아)이 우리가 읽히 알고 있는 '철학'이다. 소크라테스는 삶은 곧 지혜를 사랑하기, 그의 영원한 연인은 철학이었고, 소크라테스의 사랑은 철학하기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하라'에 생략된 말은 지혜를 사랑하라, 곧 '철학하라'라고 할 수 있다. 황광우는 이것을 "소크라테스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적 열정의 본질은 ‘사랑’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크세노폰의 <<향연>>에서 발견하는 소크라테스의 사랑은 정신적인 사랑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육체적 사랑은 마치 땅을 임차한 농부의 사랑과 같다. 이런 농부의 관심은 땅을 돌보는 데 있지 않고, 농작물의 소출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그러니 세월이 흘러 땅의 지력이 황폐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영혼을 향한 사랑은 다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아끼는 이는 토지를 소유한 농부와 같다. 농부는 땅을 돌보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이 경우 세월이 흐를수록 땅의 힘이 좋아지고 농작물이 잘 자라듯이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도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이 책 142면 재인용, 원전은 <<크세노폰의 향연, 경영론>>73면)

 

그래서일까, 저자 황광우는 "플라토닉 사랑의 원조"는 플라톤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였다고 진단한다(141면). [모든 리뷰, 특히 북리뷰에도 어떤 공식 같은 것이 있음을 잘 알지만, 붓가는대로(자판 두드려지는 대로?) 소감과 와 닿는 구절을 빌미로 이야기하는 중이다.]


1950년 에릭 R. 도즈가 쓴 <<그리스인과 비이성적인 것>>이라는 책이 있다. 그리스의 양대 서사시, 3대 비극작가의 비극들과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들,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비롯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서와 <역사>와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등의 역사 등을 두루 섭렵한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십수 년 만에 고향을 찾은 그날처럼 감회가 새로운, 그런 책이다. 제목처럼 '비이성적인 것'들을 탐색하는 주제에 충실한 책이지만, 그동안 고전들을 읽었기에 술술 '읽히는' 남다른 즐거움을 준다.


황광우의 <<사랑하라>>의 경우, 그동안 소크라테스와 만나기 위해 '플라톤'이란 이름의 안개속에 머물거나 헤맨 기억이 있는 독자들에게, 그러한 즐거움을 줄 것인데, 그것은 안개가 걷힐 때의 개운함, 쾨청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쾌청한 기분은 안갯속을 헤매본 사람들만이 아는 것. 그러나, <<철학콘서트>>1,2,3의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문장의 안내자답게, 플라톤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만나러 가는 초보독자에게는, 훌륭한 나침반 역할을 해주는 책이 <<사랑하라>>이다.

 

<후일담>#1. 사무실이 입주한 빌딩은 개인 소유가 아니다. 층마다 칸마다 주인이 따로라는 점에서는 오피스텔과을 떠올리면 되는데, 일반 사무실들의 소유자가 저마다 다른 뿐이다. 그리고 극소수이나 주인이 입주한 경우도 있고, 대부분은 사무실 주인이 임대를 내준 경우이다. 무슨 일이 생길까? 날마다 치워야 하는 쓰레기 양이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공유공간은 모두의 것이면서 그곳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상태라, 늘 청소와 관리 상태가 부실할 수밖에. 주인이 한 사람이라면, 관리비를 좀 올리더라도, 미화원을 고용하는 등 청결을 유지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라야 건물과 공간의 가치가 높아지고..

#2. 요즘 생활협동조합이 전가의 보도인 양, 한때 사회적 기업 타령을 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영리위주인 주식회사와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협동조합형 기업에 있음을 안다. 그러나, 모두가 주인이면서 모두가 주인이 아닌, 앞서 인용한 임차한 농부의 땅처럼 척박해질 수 있음을, 그러므로 본래 목적에 충실해야 함을 떠올리게 된다.

#3. 욕체적인 사랑도 사랑이고 정신적인 사랑도 사랑이다. 사랑이 어디 무 조각처럼 분명하게 갈리던가? 이 사랑도 하고 저 사랑도 하라, 중요한 것은 우선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랑을 믿나요? 라는 물음 앞에서 한참을 생각하게 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간다. 사실이 그러하므롤, '사랑하라'라고 톤을 높이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시대에. 사랑은 하는 것, 사랑하는 거두절미하고 시작하는 것, 일단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하라. 이는 고전읽기에도 오롯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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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13-11-05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빠서, 다시 들러 오탈자를 잡아야 할듯, 그댄 이 댓글도 없겠지요.

oren 2013-11-0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imeroad님의 글을 읽으니 평생 소크라테스를 가장 훌륭한 인물의 본보기로 삼았던 몽테뉴가 '소크라테스'에 대해 쓴 여러 대목들이 두루 떠오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

소크라테스는 사람이었다

한 청년이 철학자 파나이티오스에게, 현자도 사랑을 해도 되느냐고 물어 보자, "현자는 치워 두라. 그러나 자네와 나는 현자가 아니니까, 우리를 타인의 노예로 만들고, 자신을 경멸하고 싶어지게 하는 그런 마음 뒤집히는 강렬한 일에는 걸려들지 말자"고 대답하였다. 이런 사태의 충격을 지탱할 수 없는 심령에게는, 그 자체로 격정을 일으키는 일에 몸을 맡길 수 없다고 하는 말은 진실이며, 예지와 연애는 병행할 수 없다고 한 아게실라오스의 말을 압도하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헛되고 부적절하고 수치스럽고 옳지 못한 처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방식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둔중한 육체와 정신을 잠 깨워 주기에 적당하고 건전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내가 의사라면, 나와 같은 기질과 조건을 가진 인물에게는 나이가 지긋하기까지 생기를 돋우고 정력을 일으키며 늙음에 잡히는 일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다른 어느 처방보다도 이 처방전을 적어 줄 것이다. 우리가 아닌 그 주변에 머무르는 동안, 맥박이 아직 뛰는 동안,

처음으로 흰 머리칼 겨우 생기며
노령(老齡)은 아직 강건하고 몸을 가눌 수 있는 동안
운명의 여신 라케시스에게 뽑을 실이 남아 있는 동안
아직도 내가 다리를 쓰며 지팡이를 쓰지 않아도 좋을 동안, (주베날리스)

우리는 이런 따위의 몸이 찌르르 울리는 정열로 초대받고 애무받을 필요가 있다. 사랑은 저 현명한 아나크레온에게 젊음과 정력과 쾌활성을 얼마나 돌려 준 것인가를 보라.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나보다도 훨씬 더 늙어서 사랑의 대상을 두고 말했다. "내 어깨를 그의 어깨에 기대고, 내 머리를 그의 머리에 가까이 하며, 우리가 같이 책을 들여다보노라니, 거짓말 아니라, 내 어깨는 무슨 짐승이 무는 듯 찌르르하더니, 그 뒤 닷새 동안을 두고 근질거리며, 나는 마음속에 끊임없이 저린 느낌을 받았다." 우연히 어깨를 접촉한 것만으로도, 나이 탓에 식어 쇠약해져 가는 심령을 덥게 하다니! 그리고 인간 심령 중의 제1의 심령을 개혁해 주다니, 그럼 왜 못할까? 소크라테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른 아무것도 되려거나 닮으려고 하지 않았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中에서

timeroad 2013-11-05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편제인가요, 그 후속편인가요, 살구꽃이 흩날리는 날, 구성지게 창을 쏟아내는 젊은 여인 곁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보이는, 그 할배. 이른 살에 세상을 뜨는 쏘 선생에게는 아직 젖먹이 아들이 있었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댓글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니 좀 이상한 시대네요?

timeroad 2014-03-0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제 장흥에 다녀왔는데, 위 영화는 <천년학>이었더군요.
 

천병희 원전번역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출간되었다. 책정보에 나와 있듯이 <윤리학>은 <정치학>을 위한 개론서이면서, 정치학은 윤리학에서 그린 밑그림, 곧 개인과 가족의 행복을 보다 넓은 범위의 공동체 국가(폴리스)의 행복으로 확대 적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표지들은 이런 두 저작의 관계에 충실한 셈이다. '윤리학'을 읽으면서 떠올린 다른 책들의 어떤 대목에 맞춰,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이 책의 출간에 앞서 여러 권의 다른 번역으로 읽었다. 강독에 가까운 해설서도 나와 있어 읽었다. 그러나 어떤 주석이나 해설이나 강독보다도 텍스트 자체로 다가와야 하는 것이 번역의 1차 소임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러한 사전 독서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인데, 천병희의 '윤리학'은 안개가 걷힌듯 속도를 내서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당대(2013년)의 나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살아 숨쉬는 저작'으로 다가왔다.

일명 '산파술'이라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대화의 상대방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일깨움이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학습법이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눈높이 학습법이며, 궁극으로는 자기주도의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교수법이다. 물고기를 먹는 법만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고 있으며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는 것이 앎의 시작이자 완성임을 역설하고 있다.

알다시피 소크라테스의 어머니의 직업은 산파였다. 요즘으로 치면 산부인과 의사였다. 우선은 아이가 안전하게, 가급적이면 아이 엄마의 산고도 줄이는 방법으로 태어남의 과정을 ‘케어’하는 것이 좋은 산파가 가진 자질이고 기술이며 재능이었으리라. 거칠지만 소크라테스가 부모 특히 어머니로부터 얻은 유산은 바로 그 어머니의 직업에서 받은 것이고, 그것을 가르치고 배움의 학습법으로 응용 발전시켰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부모의 역할은 조기교육이니 조기유학이니 대안교육이니 하면서 공교육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들에 대한 못미더움 때문에 요란을 떨기 이전에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잘 해내는 그 자체로 자식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바로 부모 자신들의 인생의 완성도에 있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크라테스에서 아리스토렐레스로, 고대 서양철학자 3대의 가교 역할을 하는 플라톤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선후의 두 학자 사이에서 묘한 상태로 낀 처지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지금 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트텔레스의 집안은 대대로 궁정 의사 집안이었다. 우리 역사로 치면 전의(典醫)였다. 우리 역사에서 조선 후기에, 궁내부의 태의원에 속하여 왕의 질병과 왕실의 의무(醫務)를 맡아보던 주임(奏任) 관직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집안 대대로 가업처럼 직업을 이어가는 흐름이었다고 하니, 일종의 업계의 비밀(노하우)을 유산처럼 대물림하는 절차가 반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과정의 되풀이를 통해 의술의 발전에 활력을 주는 측면도 없지 않았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의사라는 직업은 무엇보다 인간이 가진 몸의 건강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당시 불안정한 궁정의 상황이나 아버지의 이른 작고 등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의 길을 걷지는 않게 되는데, 궁극적으로 그는 인간의 행복을 규명해낼 뿐 아니라 만학(萬學)의 아버지로서, 이른바 인류에게 ‘학문’이라는 골치아픈 세계를 선물하게 되는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기준으로 어디까지가 스승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생각이고, 어디서부터가 스승인 플라톤의 생각인지를 구분해내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두 스승이 주창한 이론은 소크라테스의 경우 지극히 상식적인 앎(상태)에서 논지를 전개하여,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이고 플라톤의 경우는 스승의 생각에서 출발하여 체계화와 심화의 과정을 거쳐 가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당위적이고 하여 심플한 측면이 있다. '좋음의 이데아'론이 그 대표라 할 것인데, 받아들이기만 한다면(마치 오늘날 상당수 종교가 믿음의 문제에 집착하고 그런 방향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처럼) 흔히 하는 말로 ‘플라토닉한 사랑’처럼 어찌 보면 마음의 평안을 얻기란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스승으로부터의 독립의 꿈을 결코 놓지 않았으니, 의사 집안의 출신다운 사물과 개념에 대한 ‘자연과학적인’ 접근방법을 유전인자인 양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한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이상적으로 꿈꾸는 사랑에 비해 현실의 사랑은 구체적이고 팍팍하다. 사랑에 대한 다른 점들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만사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관찰과 분석에 입각한 디테일한 문제로 다가오는 ‘문제적인’ 세상이었다. 결국 인간의 정신작용으로 분류할 수 있는 만족, 곧 인간의 행복의 문제에 대한 혜안을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담았다는 점에서 그는 훌륭한 정신의 의사로서의 가업을 계승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유한 사상이냐를 구분해내는 문제도 스승과 스승의 스승의 뒤엉킴 못지않게 학문의 중요한 과제물일 것이다. 아카데미아에서 배우고 가르치면서 플라톤 문하에서 지낸 세월이 20년이다. 그의 초기의 저작들은 플라톤의 저작에서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대화편의 형식을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카데미아 시절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초기 저작들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정치학><시학> 등 현존하는 그의 저작들은 후기의 학원내부용 교재였던 것이 책의 형식으로 묶이게 된 것들이다. 앞서 초기의 저작들이 책의 형식으로 묶여서 널리 읽히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 당대에 확인할 수 있었던 것과는 비교가 되는 점이다. 키케로(기원전106~43년)는 사는 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초기 대화편들을 읽은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몰(기원전 384~322년) 연대를 고려하면 상당히 중요한 기록이다.

“이 시기(아카데미아에서 20년)에 그는 스승인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윤리학과 정치학에 관한 많은 대화편들을 써서 출간한 것으로 보이는데, 문체가 유려하다고 키케로(Cicero) 등에게 칭송받던 그의 대화편들은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이 책 <옮긴이 서문>에서)

 

키케로가 자신의 저서 『의무론』에서 아들(뤼케이온학파, 일명 소요학파, 아리스토텔레스의)과 달리 자신은 아카데미 학파에 속함을 밝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아카데미아에 소장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아리스토렐레스의 초기 대화편들을 읽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아카데미아 학파와 소요학파는 양자 모두 소크라테스계열과 플라톤계열에 소속되고 싶어하니까, 진정 나는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을 테니 소요학파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의 철학책들을 읽으면서, 네 자신이 책들의 내용 자체에 대해 판단을 내리도록 하라.”(<키케로의 의무론> 18면, 허승일 옮김)

이런 키케로가 탐독한 초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의 영향은, 다름 아닌 키케로의 저서 <우정에 관하여>와 <노년에 관하여> 등에 시사점을 주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플라톤이 숱한 자신의 대화편에서 직접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듯이, 키케로의 경우도 ‘우정’의 소중함과 ‘노년’의 즐거움, 곧 생을 어떻게 마감하느냐에 대한 심오한 문제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자리에 본인은 없다. 오히려 나는 다만 기록자일 뿐이다, 라는 설정을 통해 설득력을 배가시키는 장치를 사용한 것인데, 나는 이것이 플라톤과 조금 다른 방식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가진 대화편 형식에서 참고한 바가 없지 않으리라, 추정해본다.

또 하나, 키케로에게서 발견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의무론>을 집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아들에게 남기는 유언과도 같은 아버지의 당부 말씀인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전달하는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그러니까 키케로의 경우는 편지 형식으로 직접 아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에 의해 정리되었다고도 하고, 그저 아들에게 ‘헌정한 책’으로서의 의미만 있을 뿐이라는 등 의견이 분분한데, 굳이 아들을 독자로 특정하지 않고 이론을 전개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어쨌거나 키케로의 경우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에게 윤리학을 남겼듯이, <의무론>을 남기고자 한 것으로 판단할 때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생기는 셈이다.

더구나 조선 후기의 다산 정약용[1762(영조 38)∼1836(헌종 2)] 유배지에서 망가진 집안의 신세를 직시하고 분발할 것을 아들들에게 강조하는 편지들(『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창비)까지 연동하여 읽는다면, 유의미한 독서가 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에게 주는 형식의 <윤리학>을 집필하면서도, 이 책의 쓰임에 대해 잘 파악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듯 하다. 윤리학 1권 제10장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가?” 제11장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운세가 죽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가” 등에서 솔론을 언급하고, <일리아스>의 프리아모스 왕의 일생을 거론하면서 언급하는 얘기들이 그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1장 끝에서 다음과 같이 논의를 맺는다.

“따라서 친구들의 행운 또는 불운이(1) 죽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은 미치지만(2), 그 영향은 행복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거나 그와 비슷한 변화를 가져다주는 그런 종류나 그런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당대는 물론이고 이후로도 그 명성이 높거나 평판이 좋은 사람을 살았던(2) 이의 후손이나 지인들의 삶이 불행을 맞이할 때(1), 죽은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논의하는 것, 세인들의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은 아니었다느니, 무수한 말을 하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의 인생은 아버지의 인생일 뿐이지 않을까, 당연하지만 촘촘하게 행복의 이모저모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인망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듯이 살피고 있다.

이 말은 동양의 역학(사주)으로 돌아와 이른바 사주, 생년(生年), 생월(生月), 생일(生日), 생시(生時) 가운데, 자신의 태어난 시각 곧 ‘생시’는 말년운(末年運)인데, 이 말년운이 아직 펼쳐지지 않은 미래운으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사주니 점이니 해서 그 분야 전문가들을 수소문하여 대가를 지불하고 미리 알고자하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되었다고 하자, 노년의 행복을 무엇인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하고 특히 행복하게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여한(餘恨)을 두고 떠나는 일생은 결코 행복했다 말할 수는 없으니까. 바로 이 때에 가장 큰 부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손들이 대대손손 행복하게 살아갈 것으로 굳게 믿어 의심하지 않아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왕조도 아닌데 권력을 3대 세습하는 북한이나 자기들이 이나라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리는 것처럼 은근히 과시하지만 알고 보면 부의 세습과정에 불과한 삼성가의 모습도 궁극에는 모든 인간이 가진 행복이라는 프레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저마다 다른 형태의, 처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자손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라고, 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도록 교육에 열을 올리고, 기러기아빠와 그 엄마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공교육을 맡은 교사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대안학교로 보내는 경우와도 같이(아이가 원한다는 것을 전제로 진학하는 것으로 알지만, 아이가 깨닫기 전에 부모 입장에서 이런 교육은 아니다라는 선험적인 결론이 먼저인 경우가 일반형일 것이다, 그 밖의 과외 운운하는 과열된 교육열에 대한 운운을 또 할 필요가 있겠는가)-김두식 교수가 <불편해도 괜찮아> 초반부에서 자식교육에 관한 우리의 현 상태를 적시하듯이,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것이 인간이고 인생인 것을~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 돋보이는 점이 바로, 자식인 니코마코스는 편집이나 제작과정에서든 아버지가 너에게 준 것이라고 제목에서부터 못박아 두어서이든, 잘 참고하여 좋은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은근하게 담았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혹자는 제목에 아들 이름을 넣은 그 자체에 대해 아버지의 ‘욕심’을 말할 수도 있겠으나(뛰어난 행적을 남긴 조상의 비석을 남길 때 그 조상만이 아니라 후손들의 이름도 새겨진다는 점을 유념하시라, 비석은 선조에 대한 의무감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인정욕구가 더불어 새겨지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제목을 지었다는 확증은 없으므로, 어쨌거나.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아테네의 10대 웅변가 중 한 사람인 이소크라테스(기원전 436~338년)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교하며 키케로가 남긴 한마디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가장 훌륭한 그리고 오래된 리뷰가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와 이소크라테스에 대해서도 나는 똑같이 생각하는데, 그들 각자는 자신들의 연구에 심취한 나머지 서로를 경멸했다.”(의무론)

플라톤이 광장에서 연설했다면, (플라톤의 제자로 아테네의 유명한 웅변가) 데모스테네스가 플라톤에게서 배운 바를 계속 연구하여 발표하기를 원했다면, 둘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극히 수사적이고 눈부신 저작활동을 하였으리라고 키케로는 이들 두 쌍의 비교의 연장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평가하고 있다. 메시지의 전달 방식으로 말을 선택했느냐 문자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의 방식을 계승한 사람이면서, 보편적인 사실(진리)에서 근거를 찾아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나갔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충실한 제자로서의 면모를 저작에 담아냈다. 책의 제목에만 충실하자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일종의 지침을 아버지로서 남긴 것인데, 단지 니코마코스에게만 맞춤한 것이 아니고 훗날을 살아갈 모든 후배들을 위한 선배 아리스토텔레스의 따듯한 사랑과 꼼꼼한 배려를 담은 것이 이 책 윤리학이라 할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고 꿰어야 보배다. 부뚜막에 소금이라도 집어넣어야 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정치학’으로 나아가는 개론서이다. 달리 얘기하면 정치학은 윤리학의 밑그림이고 행복론의 적용범위를 보다 큰 사회로 국가(폴리스)로 확대한 것이라 할 것인데, 공정사회를 외치던 지난 정부 시대를 살면서 숱한 국민들이 왜 ‘정의린 무엇인가’ 타령을 했는지, 다음 정부인 2013년 현재는 우리는 우리가 간직했어야 할 도덕성(윤리)이 그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확인하고 맞이하고 있다. 기간에 여러 권의 윤리학 번역서들이 나왔고, 그 가운데에는 원전번역도 있지만, 학문 차원에 앞서, 쉽게 읽고 자신의 삶에 우리 일상과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데에 적시타와 같은 출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서들)의 개념어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70대 중반의 희랍라틴어 원전번역의 노전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새롭게 펴낸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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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 그리스어 원전 번역, 개정판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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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고전번역의 `노전사` 천병희표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어떤 모습일까, 무척 궁금하네요. 시학을 읽었고 정치학을 읽었는데, 그 번역자가 윤리학이라 더욱 각별할 듯, 주석서 해설서 없이도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에 가깝지 않을까 싶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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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넷신문 동영상 인터뷰를 보고 김두식 교수를 알게 되었다. 너무 고전 그것도 서양고전에 빠져 헤어오지 못하고 있어서일까, 스테디셀러 책들까지 거의 읽지 않게된 것도 한 이유이고, 이 책 저자도 언급하는 것처럼, 힐링이니 치유니, 성공학이니 긍정주의심리학에 기반한 자기계발서의 다른 버전으로 보이는 것들이 책이니 강연이니 해서 너무 요란스러웠다. 그 세계에 침잠해본 사람으로서의 경계의 한 방법이었다. 지금이야 지방도시에 머물지만 2008년 촛불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했던 입장에서, 인터뷰에서 그리고 책에서 카메라와 관련된 얘기에, 맞아 그래.. 지금도 열심히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바가 적지 않았고, 그 현장에서 그 상황을 살피는 분들 중에 이런 분도 있었겠구나 생각하니, 묘한 동지의식이랄까, 어린 시절 구입하기를 욕망했으나 그 욕망을 실행하지 못했던 장난감에 카메라를 비유했지만, 사실 카메라를 만져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촬영을 한다는 것은 그 말 자체로 프레임을 안다는 것이다. 이론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글이 가지는 선명성, 그리고 진정성이 다가오는 것은, 그 끝을 찾아내고 한쪽의 끝은 다른 쪽의 시작일 것인데, 그 경계를 본다는 것, 바로 프레이밍이주는, 사태와 상황과 나를 관찰하게 하는 힘일 것이다. 서두가 길었는데, '사자가죽'과 관련된 상징과 그렇게 풀어나간 이야기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좋았는데, 어쩌면 그것은 고전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최근에 면밀히 살핀 358편에 이르는 정본이솝우화에 소개된 <사자가죽을 쓴...> 우화는 다음과 같다. 

 

267. 사자 가죽을 입은 당나귀와 여우

당나귀가 사자 가죽을 입고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놀라게 했다. 당나귀는 여우를 보자 역시 겁을 주려 했다. 여우는 [전에 당나귀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던 터라] 당나귀에게 말했다. “잘 알아둬. 네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면 나도 너를 겁냈겠지.”

간명하다. [ ] 안은 원전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른바 공식 교훈은 "이와 같이 무식한 사람도 점잔을 빼며 잘난 체하지만 수다를 떨다가 본색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코스프레 정도였던 것 같은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야기 스스로가 가진 힘인지 스토리텔링을 거치면서 숱한 이본들을 만들어내고, 본래 이야기가 뭐였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서 인용했다. <사(士)자 가족, 사자가죽> 편을 가장 흥미롭고, 그리고 김두식 교수의 책에 실린 어떤 에피소드보다 주제에의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직 못 본 책이 많은지라, 위 우화의 패러디랄까 써머싯 몸 장편(掌篇)소설 얘기를 이 책에서 보고 무척 반가웠다. 달은 예술적 가치나 창작의 위대함, 6펜스는 현실을 의미하는 상징, <달과 6펜스>의 작가는 장편이나 손바닥 소설이나 프레임을 분명하게 기획하고 주도하는 작가인 것 같다. 

 

<사자가죽>의 주인공 로버트 포리스티어, 그는 당나귀와 매우 비슷한 사람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풍경으로 보면, 지금은 꿈도 꿀 수 없지만, 몇년 전까지의 미용실 원장(대체로 여성이다) 남편들의 캐릭터가 아닐까, 많이 웃었다. 지금은 미용사의 인구가 60만 명이라는 대한민국 국군의 숫자보다 더 많단다(얼마전 이곳 지방도시를 찾아온 전 의원에게 들었다). 그 미용실 원장 아내들이 있어 기본생활은 되고, 남편은 자신의 유예했던 꿈을 찾아 더 매진하고, 뭔가 빛나는 성과를 낼 수 있었으면 참 좋았으리라. 자식도 없었다는데, 단지 아내가 아끼는 개여서가 아니라, 자식 대신이었을 개를 살리기 위해 포리스티어는 불 속으로 뛰어들었을 수 있다. 신사 코스프레를 하고 살아가야 했던 포리스티어는 이미 신분이 들통난 상황에서 외롭고 힘들었을까, 그런 그가 마음을 준 대상이 개였을 수 있다. 소문 안 나게 부자인 사람들이 사람을 믿지를 못해 친구는 없고, 개를 정도 이상으로 사랑한다는데, [결론] 이솝우화의 정본은 그 교훈에서 보듯, 말조심만 했어도.. 이다. 얼마나 믿을 사람이 없었으면 꼼꼼히 메모했겠나, 말하는 대신.. "잘 알아도, 네가 말해야 할 순간에 말하지 않고, 메모만 하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면.. " 여우 같은 여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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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는 헤어지면 그만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그러할까요? 부모와 자식 사이에 대해서는 아주 냉정한 얘기가 있습니다. 또 나으면 되지 않느냐고, 아마도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비극 <안티고네>에 나오는 대사일 것입니다. <오뒷세이아>를 촘촘하게 살펴 읽고 있습니다.

 4권. 메넬라오스는 바다노인에게 형의 소식을 듣다 모래밭에 뒹굴며 애곡을 합니다. 이 남자들, 참 와 닿죠, 한류열풍을 얘기할 때, 일본 여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우는 남자에 반응을 했다지요? 메넬라오스는 파리스, 헥토르는 아가멤논 그런 장남과 차남의 대입과 비교가 가능한데, 어쨌거나 차남인 메넬라오스 형이 죽었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립니다. 멋집니다. 모양이 좀 구겨져도 진심으로 한 사람의 떠남을 슬퍼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런저런 마음씀씀이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서 자기 마음을 억제하는 그들의 모습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일리아스>를 읽건, <오뒷세이아>를 읽는 중이건, 아이스퀄로스나 에우리피데스가 쓴 그리스 비극을 읽는 분이건 간에, 정리가 좀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대체 이 사람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는데,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먼저 펠롭스가의 족보부터 살펴보기로 하죠.

제우스->탄탈로스->아들인 펠롭스가 힙포다메이아와 결혼하여 세 아들
아트레우스(1),

튀에스테르(2),

핏테우스(3)를 낳았죠.
핏테우스는 아테네의 아이게우스 왕의 아내로, 테세우스를 낳는 아이트라의 아버집니다. <플루타르코스영웅전> '테세우스 전'에서 핏테우스의 지혜로, 아이게우스는 아이트라와 자고, 테세우스라는 후사를 이를 소중한 영웅 자식을 낳게 되는 것, 이 부분은 딸들 쪽이니 그렇다치고,

 

아들로는 아트레우스(1)와 튀에스테르(2)가 대권 경쟁을 싫든좋든 하게 되겠지요. 더구나, 튀에스테르는 형 아트레우스의 아내인 형수 아에로페를 유혹하다가 발각되어 추방됩니다(오뒷세이아 부록 576~577면 아트레우스). 나중에 형 아트레우스는 화해하자며 동생을 불러들이고 잔치를 벌입니다. 튀에스테르의 두 아들을 죽여 그 고기로 음식을 장만한 것인데, 나중에 이를 알게 된 튀에스테르는 질겁하고 달아다며 형을 저주하지요. 이후 튀에스테르는 모르고 자신의 친딸 페로피아와 교합하여 아이기스토스를 낳는데, 바로 이 아이기스토스가 사촌 형제 둘이 트로이아와 원정 간 사이에 사촌 형수인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유혹하고, 정부가 된 상황.
<오뒷세이아> 3권에서 왕홀이 펠롭스->아트레우스->튀에스테르를 거쳐 아가멤논에게 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지는, 이 집안에 피의 복수가 점철되는 갈등관계로 보아,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왕위 경쟁도 심상치 않았으리라는 것. 그 피가 어디 가것습니까? 메넬라오스가 그대로 뮈케네에 머무는 상황이라면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우리의 조선시대 왕위 계승 관계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결국 메넬라오스가 헬레네를 차지하기 위한 구혼자들의 경쟁에서 최종 선출됨으로써 헬레네의 남편이 되는 점도 행운이지만, 튄타레오스의 사위가 될 뿐만 아니라 데릴사위로서 스파르테의 왕위를 물려받는다는 점, 바로 이 덕분에 아가멤논은 순조롭게 왕위를 지킬 수 있는 득을 본 셈이라는 것이죠. 헬레네가 없는 스파르테는 끈이 떨어진 갓인 셈이니, 헬레네가 제자리에 돌아와야 메넬라오스도 왕다운 것이지요. 해서, 헬레네에게 늘 부드러운 남자라야 해요. 그것이 그의 행복이면서 슬픈이지요. 메넬라오스만으로는 왕위를 지키기란 힘든 것, 더구나 헬레네에게는 제우스 핏줄이건건, 사람 튄타레오스 딸이건 남자 형제가 둘씩이나 있는 상황입니다. 트로이아 원정에 이 남자 형제들 둘이 왜 오지 않았지 하고 헬레네가 스카이하이에서 찾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말입니다.

 

<오뒷세이아> 4권. 메넬라오스는 아가멤논이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아기기스토스가 공모하여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바다노인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지만, 본인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간에 결국 귀향이 늦어지고, 오레스테스와 그 누이가 복수를 끝낸 상태에서 돌아오는데, 가만 보면 메넬라오스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다독거리기만 하는 상황. 텔레마코스는 그냥 전우의 아들만은 아닌 조카인데, 하여 좀더 적극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을 듯한데, 선물을 주고 환대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도에 머물지요. 그런데, 메넬라오스의 입장에서 비록 형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헬레네와 동행하여 집(메넬라오스의 집은 뮈케네)으로 돌아가는 입장인데, 처형인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여야 하는 상황. 헬레네는 언니를 죽여야 할 것인데, 헬레네의 입장에서는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언니의 행실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지요. 메넬라오스도 난처한 입장이고요, 그러나 꼭 나서야 한다면 메넬라오스는 다른 관계를 떠나 형의 복수를 할만한 위치에 있지만(앞서 <안티고네>를 언급했지요), 신의 핏줄을 받은 헬레네 덕분인지 '영생'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정리하면, 4권에서 메넬라오스가 들려주는 아이귑토스 부근에서의 환상여행을 저승에 다녀온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죠. 앞서 테세우스와 헤라클레스가 지옥을 다녀왔고 이후에 오뒷세우스도 저승여행을 할 참인데, 이곳에 다녀오면 사람이 이전과는 달리 정상이 아니라네요. 한 번 죽은 사람이 두 번씩이나 저승에 가야하니, 암튼 보통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겠지요. 말하자면 4차원. 바다노인이 들려주는 메넬라오스의 앞날, 헬레네와 함께이겠지만 암튼 만사를 떠나서 행복한 노년으로 가는 길에 그들은 있습니다. "그가 잘나서라기보다는 부인을, 장인을 잘 만나서, 제우스 사위로서의 덕을 톡톡히 보는 메넬라오스!

 

아가멤논의 귀향과 사망, 그 복수극, 어쩌면 할아버지인 펠롭스의 결혼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아트레우스 가의 그늘진 이야기는 작은 트로이아 전쟁, 혹은 트로이아 전쟁의 속편으로까지 이야기할 정도이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화, 서사시, 비극을 관통하는 고전읽기가 그렇게 함으로써 많이 편해진달까, 그런 장점이 있습니다.

 

"펠롭스가의 저주"
펠롭스는 펠로폰네소스(펠롭스의 섬이란 뜻의 이 지명은 펠롭스에게서 유래했다) 반도로 가서 힙포다메이아와 결혼하게 되는데,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아버지 엘리스의 왕 오이노마노스와의 전차 경주에서 반드시 이겨야 함, 그는 오이노마노스의 마부 뮈르틸로스를 매수해 경주 때 바퀴가 빠져 왕이 전차에서 떨어져 죽게 만든다. 그러나 펠롭스는 약속한 보수를 주기는 커녕 마부를 바다에 던져 죽인다.  

위위 도표에서 보듯이,, 암튼 약속을 지키지 않아, 펠롭스 가의 저주가 시작된 겁니다. 
파리스의 사과에서, 제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를 사랑했으나  그녀가 아버지보다 더 강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는 그녀를 아이아코스의 아들 펠레우스와 결혼시킵니다. 이 결혼식에 다른 신들은 모두 초대 받았으나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이 초대받지 못하자, 그녀는 앙심을 품고 거기 모인 신들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황금 사과를 던집니다. <일리아스> 723면 파리스 소개 부분입니다.
서운함이 없게 하라!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제대로 챙기지 못해 서운한 사람이 생기면 그 원한이 깊게 아로새겨지는 모양이니다. 아로새겨진다, 쉬운 표현이 아닙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는 것이 충족되었을 때, 일단 대접을 하고, 댁은 누구시오, 라고 나그네를 접대하는 그들의 접대문화가 그가 고귀한 신일 수도 있으니, 소홀함을 원천적으로 방지하자는 데서(물론 인정이 넘치는 공동체를 위한 ..)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이제 동양신화로 잠시 여행을 할 시간.  

<산해경>에는 서왕모에 대한 여러 기록이 있습니다. , 서왕모는 인간이라기보다는 반은 짐승이고
반은 사람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의 여신, 중국의 서쪽 끝에 있는 곤륜산에 산다고 하는데, 하늘에서 내리는 돌림병이나 재앙 같은 무시무시한 일들과 더불어 코를 베거나 손발을 자르는 등 다섯 가지 잔인한 형벌을 다스리는 여신, 그러한 책무 더하기, 서쪽이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 서쪽은 해가 지는 곳으로 어둠과 죽음의 땅, 고대 중국에서 동쪽은 서쪽과 반대로 생명과 탄생의 땅이지요.

우리나라 조선시대, 서쪽에는 감옥과 처형장 등 형벌과 죽음에 관련된 기관을 배치, 한양 서쪽의 고태골은 처형장, 고태골로 간다, 골로 간다 골로 보낸다. 1970년대까지 서울 시내의 서쪽에 형무소(감옥), 소년원, 화장터 등이 지속된 방향입니다. 이와 달리 전농동은 '설농탕'의 어원에서 보듯이 농업 장려 곧 생명산업과 관련된 것, 동쪽과 관계가 있죠.
그러나 극은 극과 만나는 법이라, 서왕모는 죽음의 신만이 아니라,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힘, 곧 영생과 불사의 능력을 지닌 생명의 여신이기도 했습니다. <산해경>에 의하면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에는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 열매가 자라는 나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천도)복숭아 얘깁니다.
-주나라 때의 목왕, 주목왕은 여신 서왕모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러스스토리,
-한나라 때는 동왕공이라는 서왕모의 남편 신을 만들어내기도, 여성에게는 보호자인 남성이 있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관념의 침투가 가져온 결과, 음과 양이 평형을 이뤄야 한다는 음양오행설에 의한 짝짓기 산물,
그런데, 서왕모의 열렬한 팬은 바로 한무제입니다. 장수를 열망한 그는 서왕모의 강림을 기원, 칠월칠석날 서왕모가 아홉가지 빛깔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천상에서 내려와 선물로 불사의 복숭아 선도(仙桃)를 선물합니다. 서왕모가 관리하는 '반도원'이라는 복숭아밭에서 딴 것으로 이곳의 복숭아나무는 3천년 만에 꽃이 피고 다시 3천년 만에 열매를 맺으며 그것을 한 개라도 먹으면 1만 8천년까지 살 수 있답니다. 바로 선물을 주고받는 이곳에 한무제의 신하이던 동박삭이 있었으니, 그는 서왕모의 귀한 열매를 훔쳐먹은 재담꾼으로(나쁜 남자!) 한무제를 즐겁게 해주던 그는 이미 신이었던 것, 그렇게 오래살았다 해서 '삼천갑자 동방삭'이라는 얘기 속에 그는 양생하네요.


*반도원은 이후에도 크게 도둑을 맞는데, 명나라 때 지어진 유명한 환상소설 <서유기>, 서왕모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손오공이 홧김에 반도원의 선도를 거의 다 따먹어버렸다네요. 그래서 벌을 받고 삼장법샤가 조건부로 해제를 해주고 부리고? 일할 기회를 주고, 비정규직 같아..

바로 이 대목에서, 에리스가 앙심을 품고 던지는 파리스의 사과와 비교해 볼 만하죠. 그것이 펠롭스의 저주의 연장선인지 알 수 없으나 세 아들 중에서 핏테우스 쪽의 가계에도 흥미로운 사건, 다사다난한 사건이 끊이지 않으니,
<흥부전> 제비 다리를 고치는 흥부는 무엇을 바라고 그리 하지 않았지요. 힘들고 치친 그리고 다친 나그네를 없는 살림이지만 잘 대접하여 보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복을 내리게 된다. 반대로 의도를 가지고 제비 손님을 맞이한 놀부는 도리어 잃고 망하게 된다. 유사성이 있습니다.

펠롭스와 그의 손자 메넬라오스는 신부를 차지하는 경쟁에서 어쨌거나 우승하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네요. 그러나 당첨은 순간, 이후 댓가가 너무 크네요.  <오뒷세이아> 4권을 읽으며 너무 생경하게 생각하지 말지니,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고뇌랄까, 이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던 거이고, 그들은 필명의 인간이었던 것 아닐까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들의 표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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