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회상록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크세노폰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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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노폰이 소크라테스를 '회상한' 저술들의 '발견'은 그간 플라톤에 ‘의해’ 추정할 수밖에 없던 소크라테스 읽기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 <향연>,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그것이다. 그간 번역가 천병희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필두로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에서 시작하여, <국가>를 위시한 중기 대화편들, 후기 저작을 대표하는 <법률>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원전 번역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번역사를 ‘새로’ 썼다. 위작 논란에서 자유로운 플라톤의 대화편들 대부분을 한 번역가가 우리말로 옮겼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며 새로 열린 길이었다.

 

새로운 번역사를 쓰다, 대부분의 플라톤 대화편을 원전번역한 천병희
그런데 궁금했다. 그런 천병희 선생이 우리말로 옮길 다음 책은 무엇일까? 그런데, 뜻밖에도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관련 저작이라 흥미로웠다. 어쩌면, 이번 저작은 이후에 출간되었지만 선생은 오래 전에 번역하여, 플라톤 대화편 번역에 가늠자로 삼지 않았을까? 플라톤의 자상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화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인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문득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저 산 저 너머에 걸린 무지개나 그 숲 어디쯤에서 노래하는 파랑새처럼.
그런데 천병희의 크세노폰 번역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래 전에 펴낸(단국대 출판부) 것을 새롭게 다듬어 펴낸 <페르시아 원정기>(숲, 2011)가 있다. ‘원정기’에 이어 필자는 번역 출간된 크세노폰의 다른 저작 <키로파에디아 -키루스의 교육>(이은종 옮김, 주영사, 2012)를 읽었다. <페르시아 원정기>도 흥미진진했지만 그 연장선에서(저자가 페르시아에 원정 과정에서 취재한 자료를 기반으로) 쓴 <키로파에디아>는 한 편의 소설(실제로 옮긴이는 소설로 규정했다)처럼 부담 없이 읽혔다. "이 사람 뭐지?" 필자는 크세노폰이 다루는 주제도 그렇거니와, 그의 글이 가진 독특한 스타일(문체, 기술 방법)에 매료되었다. 크세노폰은 그 시대에 어떻게 ‘작품’인 듯 ‘작품’이 아닌,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저술을 하였을까? 그 '용기'가 궁금했다. 무엇을 위해? 그 ‘무엇’을 한동안 고민하면서 찾아야 했다. 부제에서 보듯 <키로파에디아>는 일종의 전기로 교육 문제를 다룬다. 한 인물의 혈통, 타고난 자질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가 어떤 교육을 받아 탁월한 지배자가 되었는지, (비록 적성 국가의 위인이라도) 아테나이의 독자들에게 모범을 제시한다.

 

플라톤 대화편 번역의 가늠자로 '회상록'은 미리 번역되지 않았을까?
크세노폰은 그리스에 大퀴로스(페르시아, 아카이메니다이 왕조의 시조)의 리더십을 소개하는 것이다. '리더는 따르는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당연하신 말씀이다), '항상 좋은 리더는 없다'(때론 따르는 사람이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 리더십의 발휘에 필수적인 도구(tool) 중 하나가 '두려움'이란다. 국내에서만 17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에서 충무공은 전사들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리더십을 발휘한다. 이처럼 <키로파에디아>에서 소개하는 리더십에는 야전의 지휘관이기에 현장에서 터득가능하였을 생생함이 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적진에서 터득한 그 나라의 리더십을 자국의 1만 용병들을 탈출시키는데 적용한다. <페르시아 원정기>는 그런 이야기다. 세월이 흘러도 빛날 뿐만 아니라 응용 가능한 가치를 담고 있다. 때문에 <키로파에디아>와 함께 <페르시아 원정기>는 훗날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알렉산드로스가 휴대한 고전이 <일리아스>만은 아니었던 것).
크세노폰이 사건을 주관적인 견해에 따라 기술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 원정기>도 예외가 아닐뿐더러 자전적 저작으로, 그러한 저작을 대표한다. 이 <원정기>에 퀴로스2세의 용병 제안을 받아들인 크세노폰이 고민하는 대목이 있다. 적성국가의 내전에 용병으로 참전한다! 이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왜 사전에 용병 참여 여부를 나와 상의하지 않았느냐고 나무란다. 용병대의 참여가 훗날 고향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실제 그런 일이 벌어진다). 출전하더라도 신탁에 가서 묻는 등 (신중했다는) 모양새를 갖추라고 조언한다(머잖아 국가의 신들을 부정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될 소크라테스의 당부다). 두 사람이 부자(父子)나 다름없는 사제지간이었음을 엿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두 사람이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던 것으로 믿어지고.'(천병희 해설) 있다. 

 

생전의 소크라테스와의 마지막 만남이 담긴 <페르시아 원정기>
이것이 크세노폰이 생전의 소크라테스를 만난 마지막으로 기록이다. 그런데 크세노폰(기원전 430/25년경~355/50년경)의 생몰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와 플라톤(기원전 427~347)과는 달리 5년 남짓의 특정할 수 없는 세월이 있다. 어쨌든 2년 동안의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 기간(기원전 401년 3월~399년 3월)에, 아테나이의 소크라테스는 사망한다.
때문에 그는 기원전 399년의 아테나이, 소크라테스가 고발되어 재판정에 펼친 세기적인 변론을 지켜볼 수 없었다[플라톤은 이 재판을 참관했다(1)]. 투옥되어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감옥에도(2), 사형 집행 현장(3)에도 크세노폰은 배석할 수 없었다. 가까이에서 이 과정을 지켜본 플라톤(당시 28세)에 비해(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이란 대화편에 이 과정을 담았다), 물리적인 거리에서 시간상의 차이에서 크세노폰은 스승의 죽음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가 임종할 때 그 자리에 배석했다는 헤르모게네스로부터 들은 내용을 토대로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쓴다. 동명의 플라톤의 대화편에 비해 길이는 짧고 깊이가 없다고 평가된다. 또한 스승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담담하다. 재판 현장의 속기록을 읽는 듯이 세세한 플라톤의 <변론>에 비하면 무성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크세노폰은 자신의 '변론' 서두에서부터 단도직입으로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깔린 핵심을 짚는다. 집필에 앞서 크세노폰은 (헤르모게네스로부터) 소크라테스가 맞이한 최후의 삶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플라톤을 비롯한)의 글을 통해 당시의 정황을 읽었다.

 

단도직입, '변론' 서두에서 스승의 죽음을 진단하는 크세노폰
그런데 이들의 기록은 그(소크라테스)의 '잘난 체하는 말투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고 일축한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당한 것은 그가 고발된 죄(나라의 신들을 믿지 않고/새로운 신들을 들여오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 때문이 아니라(변론 자체에서는 이겼으나) 당시 기득권자들(시민배심원)의 심기를 거슬린 '괘씸죄' 때문에 죽었다, 라고 결론짓는다. 소크라테스가 행한 변론 내용보다는 그의 변론 태도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거침이 없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어쩔 수 없이' 맞이한 것이 아니라 '자초한' 것이라는데, 행간 곳곳에서 "이 양반, 큰 코 닥칠 줄 알았어."라는 저자의 혼잣말이 튀어나오는 듯하다. 스승이자 아버지와 같은 소크라테스와 나눈 평소의 대화 스타일(말투, 태도 혹은 근성)을 잘 알기에 가능한 진단이다. 스승의 죽음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이들 사제지간의 우정은 두터웠고, 그만큼 허물없었음을 엿본다. 당대에 그리고 훗날의 독자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그들은 훨씬 가까웠을 것으로 예상한다. 때문에 거두절미(去頭截尾) 크세노폰은 헤르모게네스가 증언하는 비밀, 그(소크라테스)가 "의도적으로 잘난 체하는 말투를 썼음"을, 짧은 지면에도 일부를 할애하여 소개한다. 

 

헤르모게네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변론해야 할지도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소크라테스: 자네는 내 인생 전체가 변론을 위한 준비였다고 생각지 않나?
헤르모게네스: 어째서 그렇습니까?
소크라테스: 나는 불의한 짓이라고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않고 살아왔으니, 그것이야말로 변론을 위한 가장 훌륭한 준비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세." (<변론> 앞부분의 서술을 대화로 구성_필자)

 

"내 인생 전체가 변론을 위한 준비였다고 생각지 않나?"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길게 늘어놓을 이유가 없으며 그의 스타일도 아니다. 이런 짧은 길이 때문에 장황한 연설문(변론 내용) 형식의 플라톤의 <변론>에 대한 일종의 소회(리뷰)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변론’은 플라톤의 관련 대화편 <크리톤>과 <파이돈>에 대한 리뷰이기도 하다. 그러나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는 왜 그랬을까(독자라면 누구나 나름대로 대답할 수 있는 해석적 질문에 대해), 독자의 한 사람처럼 간명하게 '의견'을 제시한다. (1)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웠다. (2)배심원들의 반감을 ‘산’ 탓에 자신의 유죄를 더 '확실하게' 만들었다. (3)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일단 결정하자 죽음 앞에서도 유약해지지 않고(플라톤의 <변론>) 죽음을 기다릴 때도(<파이돈> 죽을 때도(<파이돈> 쾌활할 수 있었다.(크세노폰의 <변론> 32~33)
크세노폰의 '변론'은 같은 책에 수록된 <소크라테스의 회상록>의 연장선에 있는,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아니 '변론'은 상대적으로 긴 '회상록'(이 논문 전체라면)에 대한 개요(그 논문의 '초록')이며 서문이다. 그런데 간명한 '변론'에서 크세노폰은 고발자 중 1인인 멜레토스를 논박하는 소크라테스가 발언을 상세히 재구성한다. "…… 나를 인류 최대의 축복인 교육 전문가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나를 사형에 처하라고 그대가 고발하는 것이 더 놀랍다고 생각하지 않소?"라고. 재판에 관해 세세히 보고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던 크세노폰이 굳이 '소크라테스는 인류 최대의 축복인 교육 전문가다.라는 명제를 제시하는 걸까?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결연한 태도(일련의)를 '통해' 최후의 순간까지 시민들을 교육하였다고(가르침을 행하였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당대의 플라톤에게, 훗날 플라톤을 의해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마중하는 후학들에게 크세노폰은 '가볍게'(경박 혹은 경솔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인류 최대의 축복인 교육 전문가', 회상록은 그리스판 <키로파에디아>
크세노폰은 용병으로 참전한 경험에서 <페르시아 원정기>를 썼고, 더불어 <키로파에디아>라는 그 성격을 "역사서도 정치철학서도 아니며 사실을 바탕으로 쓴 역사소설로 규정"(역자 서문)할 수밖에 없는 저술을 남겼다. 그런데, 정작 두 권의 대표 저술을 하게 되는 원정 기간에 고국에서는 스승이 사형선고를 받고 ‘서거’했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크세노폰은 세 편의 회상록에 늘 가까이 있었지만 그 때는 몰랐던 ‘파랑새’를 상기함으로써, 또 하나의 아테나이 시민교육을 위한 ‘키로파에디아’를 남긴 것은 아닐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플라톤의 ‘작품’들(대화편들)은 말과 행동으로 그려볼 수 있는 자연인 소크라테스의 '그리는' 데 걸림돌이 된다. 당대의 시대가 맞닥뜨린 문제들에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소크라테스의 대화가 그처럼 어려웠다면, 그런 소크라테스를 아테나이의 젊은이들이 골프스타의 행보를 쫓는 갤러리처럼 따랐을 리 없다. 오히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의 회상록>을 통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상식적인) '설득하는' 소크라테스(삶과 철학)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닐는지, 크세노폰이 그리는 소크라테스는 플라톤 고유의 철학 세계도 엿보는 단초가 되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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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2-12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의 행적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크세노폰의 저작들과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함께 설명해 주시니 소크라테스의 행적이 훨씬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저는 크세노폰이 지은 책은 여태껏『페르시아 원정기』밖에 읽은 게 없는데, 그 책에 나타난 크세노폰의 불굴의 용기와 지혜에는 정말로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겠더군요. 여담입니다만, 크세노폰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도 여기저기 등장하는데(<아게실라오스 편>, <안토니우스 편> 등), 숱한 영웅들의 가슴 속에 귀감으로 남아 있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어서 기분이 좋더군요. 크세노폰이 쓴 『키루스의 교육』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도 나오고, 다른 책에서도 자주 마주친 적이 있는데 여태껏 읽어보지 못했네요. 나중에 시간이 나면 크세노폰의 저작들을 한꺼번에 쭉 읽어보고 싶습니다.
* * *
두 사람의 갑작스럽고 이상한 죽음은 나에게 고통과 아쉬움을 남긴다. 나는 한니발에게도 존경을 표한다. 그는 그토록 많은 전투를 치르면서도 한 번도 다친 적이 없었다.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에 나오는 크리산테스 또한 마찬가지이다. 칼을 뽑아 적을 치려는 순간, 후퇴 명령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곧바로 무기를 거두고 겸손하게 물러났다. 이런 것에 비하면 두 영웅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채 어리석게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렇다고 두 영웅의 행동이 아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펠로피다스는 적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 복수하고자 용기를 내어 한 일이기 때문이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펠로피다스와 마르켈루스의 비교> 중에서

timeroad 2019-02-14 18:42   좋아요 2 | URL
플라톤에게 28세는 터닝포인트입니다. 턴레프트인지 턴라이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그렇게 보인다이지 숱한 연구 결과가 있을 (후손들) 그들의 논의야 어찌 알겠어요, 다만 뭔가 다름이 있다. 소포클레스가 처음으로 비극경연에서 우승활 때 그 나이가 28세라네요. 고맙습니다.

oren 2019-02-12 18: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를 인류 최고의 인물로 숭앙했던 몽테뉴도 크세노폰을 자주 언급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난 김에 『몽테뉴 수상록』 중에 <이름에 대하여>라는 글 속에 있는 흥미로운 글을 덧붙여 봅니다.(옹테뉴는 도대체 모르는 게 없는 둣한 사람인데도, 평생 동안 ‘나는 무엇을 아는가‘를 화두로 삼고 살았다니, 그저 기가 막힐 뿐입니다.)
* * *
수많은 혈족들에 동성 동명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잡다한 민족·시대·국가에도 또 얼마만큼 많은가? 역사상에는 소크라테스가 셋, 플라톤이 다섯, 이리스토텔레스가 여덟, 크세노폰이 일곱, 데메트리오스가 스물, 그리고 테오도르가 스물 있었다.

timeroad 2019-02-14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세계는 이미 인간 세상에 펼쳐지지 않았을까? 채색이 화려하지는 앉지만 비록 흑백화라도. 4B연필은 스케치에 필요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2B연필이더군요. 현장에는 비도 내리니까요. 몽테뉴는 밑그름의 가치를 알았던 사람 같아요.
 

 

*이타케의 108명이나 되는 사내들 중에 페넬로페의 마음을 흔든 이가 단 한 명도 없었을까? 오뒷세우스가 떠날 때 아들 텔레마코스는 갓 태어난 상태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돼지치기 막사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알아보지만 여신 아테네가 개입한 덕분이다. 피를 나눈 상태는 아니라서 그런가? 귀향하여 궁궐에 와 있는 남편 오뒷세우스를 페넬로페는 알아보지 못한다. 한 나라 왕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 남편의 부재, 그렇게 20년 세월이 흘렀다. 무엇보다 집을 떠나기 전 오뒷세우스가 아내와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 작년에 나온 개정판 <오뒷세이라>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주석을 해당 면으로 옮기는 변화만이 아니라, 날로 새롭고 다듬어지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석도 읽을 때마다 새롭다. 웨스턴 영화 <셰인>과 이 서사시의 주인공 오뒷세우스의 심리를 비교해보았다. 좀 길다.(글쓴이)

 

서부 영화의 고전 <셰인>, 1890년 초여름, 태양이 내리쬐는 어느 날. 초록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와이오밍 고원에 한 사나이가 말을 타고 나타난다. 단정한 몸차림에 침착한 태도, 눈매는 온화하면서도 예리함이 번뜩이며 뜨내기 카우보이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곳에는 동부에서 이주해 온 개척민들이 살고 있다. 개간한 토지는 그들 소유로 법률이 보장했다. 수수께끼의 사나이는 개척민의 한 사람인 죠 스타레트의 집에서 물을 얻어 마시고 저녁 식사까지 초대 받는다. 사나이는 스타레트의 호의를 받아들여 하룻밤 신세를 진다.

이 사내의 이름은 셰인, 그를 살갑게 맞이한 이들은 스타레트와 아내 마리안과 아들 조이, 단출하지만 단란한 가족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 지방에서 오래 전부터 목축업을 하고 있는 라이커 일당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라이커는 툭하면 개척민들을 못살게 들볶으며 이들의 모든 땅을 차지하려 한다. 스타레트가 부리던 일꾼들도 라이커의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 상태다. 그러한 사정을 말한 스타레트는 셰인에게 월동준비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머물러 달라고 한다(신작 영화가 아니기에 스포일러에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이 글은 이 영화에 대한 디테일을 기억해야만 와 닿는 것이 있을 것이기에-필자)  
부탁을 받아들인 세인은 소재지에 물건을 사러갔다가, 라이커 일당에게 곤욕을 치르지만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스타레트의 당부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라이커 일당 때문에 소재지를 오갈 때는 단체로 움직이기로 한다. 이때 또다시 시비를 걸어오는 스타레트 일당과 싸움이 붙은 셰인은 물러서지 않고 적시적절한 스타레트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를 지켜보면서 자랑스러워하는 죠이... 소년의 간절한 요청에 셰인은 사격시범을 보이고, 어머니 마리안도 셰인에게 점점 더 깊은 호감을 느끼는데 셰인 또한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평화는 거기까지다. 마을 사람 하나가 라이커가 고용한 총잡이 잭 윌슨에게 사살되자, 겁을 먹은 마을 사람들은 떠나려 한다. 한 집씩 떠나면 공동체는 무너지고 모든 목장부지는 라이커의 소유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스타레트는 라이커와의 결투를 위해 집을 나서려 한다. 셰인은 이런 스타레트를 쓰러뜨리고 대신 싸우러 가는데, 죠인와 마리안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죠이는 셰인을 뒤쫓아간다. 처음으로 소재지에 총을 차고 나타난 셰인. 생사를 가르는 결투가 벌어지고 셰인의 총에 윌슨은 나자빠진다. 그리고 나머지 라이커 일당도 처치한다. 그리고 죠이 덕분에 마지막 한 녀석까지 처치하고 자신도 한 쪽 팔에 부상을 입는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그러나 그가 떠나지 말기를 간절히 요청하는 소년 죠이.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속 머물 수가 없다고 눈물을 흘리는 소년에게 말하는 셰인에게 셰인이 당부한다.
"어머니에게 더 이상 이 마을에 총이 필요 없다고 말씀드려라"
그리고 셰인은 떠난다. "잭은 총도 뽑지도 못했어요! 돌아와요 셰인!" 하고 소리치는 소년의 메아리를 뒤로 한 채.

 

<셰인>의 줄거리다. 소년기에 TV(주말의 명화)로 보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전편에 흐르는 이 영화의 주제는 셰인과 소년의 우정이다. 나아가 스타레트와 그의 아내 마리안과 아들 조이라는 한 가정과 정처 없이 떠돌던 셰인 사이의 특별한 우정이다. 그러나 셰인이 이들의 오두막을 찾은 바로 그날부터, 마리안이 셰인을 대하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소년 조이는 셰인에게 기대하는 것을 말로 행동으로 표현하고 셰인은 그런 소년의 요청을 받아주는 등 둘의 호감이 표면으로 드러나지만, 셰인과 마리안 사이의 호감은 미묘하면서도 잔잔하게 배경처럼 깔리고 있다.
보다 놀라운 사람은 남편이자 아버지인 스타레트다. 처한 상황 때문에 셰인의 도움과 그의 머묾이 절실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필요 때문이라고만 단정하기에는 호의적인 태도로 셰인을 맞이하고 대한다. 내 가정을 지켜야 하기에 지금 라이커 일당에게 시달리고 있지만, 나도 한때는 좀 놀아본 적이 있는 총잡이였다는 것이, 라이커 일당과 결전을 위해 떠나려고 몸부림치는 그의 대사에서 드러난다. 이를 통해 이전에 스타레트가 셰인에게 가진 감정의 일단을 짚어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결투에서 죽게 되면) 아내와 아들을 지켜달라는 부탁까지 한다.
앞서 스타레트를 지도자로 한 정착민들의 독립기념일 축제에서, 자신과 아내의 춤에 이어, 셰인과 자신의 아내가 춤을 추는 장면을 담담하게 지켜본다. 특히, 마리안이 남편을 담장 밖으로 밀어내면서 셰인에게 춤을 요청하는 장면에서도 그저 부드럽게 바라볼 뿐이다. 셰인과 아들 조이가 가까워지는 상태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지만, 아내와 불과 얼마전까지는 이름도 존재도 몰랐던 떠돌이 총잡이 셰인은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그러므로 질투가 생길 것이고, 이를 표출할 것 같기도 한데, 결코 그러지 않는다. 아내와 자식을 공유하자는 것인가? 라이커 일당이 스타레트와 셰인 측을 자극하는 대사에서도 셋의 미묘한 상태를  언급한다. 영화 전편에 미묘한 '트라이앵글'이 설정되어 있다.

 

먼저 셰인의 입장에서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 오두막을 찾기까지 셰인의 삶은 한마디로 '길 위의 인생'이다. 단란한 가정을 만났다. 그 풍경 속에 한 사람이 되어 이제는 머물고 싶다. 그간 억누른 정착에 대한 욕망이 꿈틀댄다. 더구나 세 가족의 구성원들이 저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보여주는 호의를 뿌리치고 싶지 않다. 마당 한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거목의 그루터기를 제거하기 위해 도끼로 이를 찍어내고 있는 장면에서 스타레트가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데, 셰인과 스타레트 둘이 힘을 합쳐 거대한 그루터기를 드러내는 시점에서 둘의 혹은 셰인과 이 가족이 맺는 협력관계는 자연스럽다. 얼마나 머물게 될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만큼은 내 역할을 하자. 더구나 떠도는 삶,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누군가를 살상하는 삶에도 염증이 나 있는 상태이기에 안정과 휴식이 필요하던 참인데 참 잘된 것이다.

 

반면에 스타레트의 입장에서는, 당장은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 그러나 한 발만 잘못 내딛으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 부숴질지 모르는 행복이다. 이 상태를 그는 잘 안다. 법적으로야 합법이지만 공권력이 그 권리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주지 않는다. 성질 같으면 라이커 일당과 한 판 겨뤄 내가 죽든, 네가 죽든 불안정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남겨질 아내와 자식, 이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머뭇거릴 수밖에. 그러한 때에 나타난 셰인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다. 어쩌면 최악의 상태에서 가장인 자신의 역할을 대신해줄 수도 있는 사람이다. 라이커 일당의 압력 때문에 떠나버린 기존의 일꾼들과는 다른 존재다. 셰인에게서는 그런 포스가 보인다. 

마리안의 남편, 곧 한 남자로서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당면한 상황을 냉정하게 살필 때, 만에 하나 자신이 잘못되어도 식구들은 살아야 한다. 스타레트게 셰인은 자신의 부재시를 대비한 남져질 가족들을 위한 일종의 종신보험이다. 젊은 날 자신도 셰인처럼 떠돌며 총잡이 생활을 했다. 정착하고 가정을 이루고는 있으나, 현재 셰인의 상태를 너무나 잘 안다. 그런 점에서도 동병상련, 동지애를 느낀다. 셰인은 부재시 자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상태에 있음을 확신하는데, 이 점을 살피는 것도 이 영화를 새롭게 해석하는데, 관건이다. 가장으로서의 갈등과 냉정한 선택, 차선책이 필요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플라톤이 『국가』에서 주창한 도발적인 제안 처자공유제를 살펴보아야 할까? 어쨌든 집(가정)이 절실하게 그리운 한 남자와 행복하지만 그 행복을 지키느라 고단한 한 사내가 맺고 다지는 미묘한 우정이 이 영화가 간직한 함의이며, 해체를 위한 핵심키다.

이제 <오뒷세이아>를 살펴보자. 20년이 흘렀는데도 감감무소식인 남편을 기다리는 페넬로페, 참 대단하다. 한데 기나긴 세월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집으로 돌아가는 오뒷세우스의 귀향도 집요함에서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부창부수다. 그래서 오랫동안 두고두고 읽히는 고전이겠지만,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에게 20년의 기다림은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 전쟁을 치렀다는 10년 세월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생사를 알 수 없는 이후 10년의 기다림은 기약이 없다. 이 정도면 전사했거나 귀향하다가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가장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밤이면 밤마다 가산을 축내는 파티를 하며 선택을 강요하는 108명의 구혼자들, 페넬로페에게는 108번뇌다.
아무리 지혜가 많은 오뒷세우스라지만 20년 만에 집을 찾으면서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사전에 그럴만한 준비를 해놓고 떠났기 때문일까? 아들 텔레마코스의 양육을 절친인 멘토르에게 맡겼던 것처럼. [페넬로페에게나 오뒷세우스에게나 신혼 시절 맺은 맹세가 대체 무엇이었기에. 여러 평론가들이 지적처럼 <오뒷세이아>의 또 다른 주인공은 텔레마코스이며, 소년에서 성인으로 변신하는 성장이 또 하나의 주제이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아버지를 만나고, 그런 아버지가 제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면서 텔레마코스는 어른이 된다.]

<셰인>에서 가장인 스타레트는 가정을 지키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생활 기반은 안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뿐인 목숨을 걸어야만 그것이 기능하다. 나 하나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아! 그러나 내가 죽는다면... 아내와 아들이 겪을 고초가 눈에 밟힌다(<일리아스> 6권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이별 장면이 떠오른다). 보통의 사내라면 아버지이자 남편인 자신을 대신할 누군가 특히 다른 사내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셰인에게 남겨질 가족을 부탁한다. 그것이 스타렉트가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소년 조이에게 셰인은 관객들이 웨스턴 영화에서 만나고자 하는 그런 영웅이다. 그러나 아직은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다. 라이커와 그가 고용한 쌍권총잡이 잭 월슨을 모두 물리쳤다. 이제 조이네나 인근의 개척민들은 자기들이 개간한 땅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의 숙원을 이룬 셰인은 왜, 왜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잭은 총도 뽑지도 못했어요! 돌아와요 셰인!"
조이의 한마디가 긴 울림으로 남아 있다. 셰인은 결코 돌아갈 수가 없다. 자칫 자신이 대신할 수도 있었던 한 가정의 행복, 그런 아버지의 자리를 확인하였기에, 그 돌아갈 수 없다.
"어머니에게 더 이상 이 마을에 총이 필요 없다고 말씀드려라."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에게 전하란다. 전쟁은 끝났다. 이제 평화다. 그러나 셰인은 그 자체가 전쟁인 삶으로 복귀한다. 그러한 길 위에 다시 섰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를 쓰고 50년쯤 후에 『오뒷세이아>를 썼단다. 『일리아스』가 인간의 전쟁 이야기라면, 『오뒷세이아』는 평화와 안정을 찾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다. 오뒷세우스에게는 바다라는 막강한 적이 남아 있다. 아직 불법이 횡행하는 미국의 서부는 강한 자, 빠른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적자생존의 전장(戰場)이다. 셰인에게 서부의 사막은 오뒷세우스가 직면하여 각종 모험을 겪어야만 하는 바다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오뒷세이아』를 이끄는 힘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천병희 옮긴이 서문)이다. 정황상 다시 황야로 정처 없는 길을 떠나는 셰인에게, 10년이고 20년이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이나 가정이 있을 리 없다(그러나 이 기억은 쉽게 떨치지 못할 것 같다).  

오뒷세우스는 아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나우시카아를 떠난다. 그가 파이아케스 족의 나라를 떠나는(『오뒷세이아』 13권) 대목을 떠올려 보라. 물론 텍스트에서는 이러한 이별을 밋밋하게 다룰 뿐이지만, 지난 10년의 모험담이 사실은 파이아케스 족의 나라에서 오뒷세우스가 들려준 이야기라는 점. 사윗감으로서의 적합성을 심의한 심층인터뷰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이런 사람이요! 이야기보따리만이 아니라 오뒷세우스도 거기 주저않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얘기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고, 이전에 만나 한때 안주했던 여인(요정)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끌림을 주는 인간 여인 나우시카아가 있다. 그간의 여행에 지친 오뒷세우스는 하마터면 나우시카아라는 여인을 집으로 삼을 뻔 한 것이다.

 

그는 더운 물을 보자 반가웠다./ 머릿결이 고운 칼륍소의 집을 떠난 뒤로/  보살핌을 자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때 신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받은 나우시카아가/ 지붕을 튼튼하게 떠받치는 기둥 옆으로 다가섰다가/ 눈앞의 오뒷세우스를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그에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손님! 고향땅에 가 계시더라도 이따금 나를/ 생각하세요. 그대에게는 누구보다 내가 생명의 은인이니까요."/ "나우시카아여, 고매한 알키노오스의 따님이여!/ 헤라의 크게 천둥 치시는 남편인 제우스께서는 내가 그렇게/ 고향에 돌아가서 이제 귀향의 날을 볼 수 있게 해주시면 좋으련만!/ 그러면 그곳에서도 나는 신께 기도하듯 그대에게 기도하겠소,/ 언젠까지나 날마다. 그대는 나를 구해주었으니까요, 아가씨!"(『오뒷세이아』 8권 450~468행)

 

나우시카아는 담담하게 오뒷세우스를 붙잡을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속마음까지 그럴 리는 없다. 헤라의 남편으로서의 제우스를 강조하는 오뒷세우스의 말 이면에 흔들림이 있다. 서사시에서 직접 언급한 두 사람, 오뒷세우스와 나우시카아의 이별 장면. 어쩌면 나우시카아를 만남으로써 한때 안정을 찾은 오뒷세우스는 그 때문에 고향, 곧 자신의 집을 간절하게 그리고 문득 그리워하며, 다시 귀향길을 이어가게 하지 않았을까?
영화 <셰인>의 마지막 장면, 소년에게서 자꾸만 멀어지는 말 위에 오른 셰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마터면 자신이 가장(家長) 역할을 할 뻔했던 마음의 집을 떠나는 그는 그는 어디선가 자신만의 홈 스위트 홈을 찾았을까? <셰인>이 어른들(만)을 위한 흔치 않은 웨스턴 영화로 평가 받는 까닭을 나름 살폈다. 잔잔하지만 머무름과 떠남 사이에 고뇌하는 오뒷세우스의 모습도 보았다.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그 말'을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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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2-25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셰인>과 <오뒷세이아>를 절묘하게 엮어주셨군요. 저도 그 영화를 까마득한 옛날에 아주 흥미롭게 봤었답니다. 이렇게 다시 그 영화 속 인물들을 글 속에서 만나고 보니 그 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눈앞에서 다시금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 그리고, 오뒷세우스의 기나긴 모험 이야기도 여전히 흥미롭게 들리고요. 나우시카아 공주와의 이별은 사실 영화로 꾸며졌더라도 `결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가슴 아린 장면`이 될 수밖에 없었겠다 싶습니다. 사실 오뒷세우스가 천신만고 끝에 그 섬에 안착해서 그녀와 함께 보낸 `꿈같은 세월`이 결코 적지 않았는데, 그 두 사람의 `석별`이 생각보다 너무 밋밋하고 짧게 마무리되는 게 이상할 정도이긴 했다는 말씀을 듣고 보니, 저로서도 마음 한켠에 그런 느낌을 가졌던 터라 더욱 공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너무 `삶`을 `연연해` 하기에 그런 걸까요?
* * *
사람들은 오디세우스가 나우시카와 이별했을 때처럼, 그렇게 삶과 이별해야 한다. ㅡ 연연해 하기보다는 축복하면서.
- 니체, 『선악의 저편』



timeroad 2019-02-13 09: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렇게 댓글까지 써주시니. 퍼내고 또 퍼내도 마르지 않은 샘이라고 비유하는데,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글감을 줍니다. 님이 쓰신 여러 리뷰에서도 그 경지를 느낍니다. 사실 페넬로페가 집 안에서 벌인 전쟁이 더 참혹하지 않았을까,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한때 전북 남원에서 살았습니다. 시내에서도 40여 분을 가야 하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오일장을 보려면 시내까지 버스로 나가야 했습니다. 공설시장 부근에 광한루가 있는데, 사는 동안 두 번밖에 둘러보지 못하였네요. 광한루라는 건물 옆 유원지의 동북쪽에는 성춘향을 모신 사당이 있는데, 묘하게도 그 건물 뒷편으로 상사화가 참 많이도 피어있었어요.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평생을 혼자 사시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사찰 같은 곳에 심는 꽃이지, 여염집에서는 심지 않는다는 꽃 말이죠. 페넬로페와 춘향의 삶을 비교해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108명의 구혼자들은 오뒷세우스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죠. 나중에 거치 차림을 하고 춘향의 마음을 떠보는 이몽룡은 거지로 변장하고 페넬로페의 마음을 시험하는 것과 오버랩이 되고요. 춘향에게 러브콜을 던지 사내가 어찌 변학도뿐이었을까요? 어쨌든 페넬로페가 당면한 전쟁 같은 상황이 참혹하기에, 아우시카아와 오뒷세우스의 `사랑`이 행간을 읽어야 할 정도로 밋밋하게 처리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 <티스베>(1909년)

 

"시기심 많은 담장이여.

왜 연인들을 방해하는 거니?
우리가 서로 온몸으로 결합하도록

네가 허락하거나, 그것이 과하다면

우리가 입이라도 맞출 수 있도록
네가 조금씩 열리는 것은

너에게는 얼마나 사소한 일이니?
우리가 네 고마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야,

우리의 말을 사랑하는 이의 
에 전해줄 통로가 주어진 것이

네 덕분임을 우리는 알고 있어."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83-185면

 

세월이 흐르면 곧 해묵은 기억이 되겠지만, 주말드라마 <내 딸, 금사월>이 후반부에 이르면서, 금사월이 친엄마에게는 철천지 원수인 집안의 남자와 결혼을 선언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의 반감이 적지 않았다. 더구나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거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운운하는 금사월의 대사에 시정자들은 반응했다. 이러한 사정 때문인가, 스토리는 그것이 일종의 속임수였음을 금사월이 친엄마에게 고백하는 것으로 수습한 듯하다. 이런 해프닝을 보면서 느낀 바는 이렇다. 시청자들은 그간의 누적된 억울함을 지켜보았기에, 속시원한 '징악'을 바란다는 것.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 아주 드문 사례의 해결이라고 할지라도 드라마니까, 영화니까, 드라마나 영화에서만이라도 그런 모습을 보고자 하는 시청자들 마음을 읽는다. 드라마가 너무 복잡해졌지만, 어쨌든 작가는 사월(백진희)과 찬빈(윤현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가능한 사랑으로 바꾸고자 했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들의 사랑을 이루는데 걸림돌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불타오른다는 것이 사랑의 방정식 중 하나이니까.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실린 많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애절한 사랑 이야기 하나를 꼽으라면, 「퓌라무스와 티스베의 사랑」를 나는 선택한다. 이 이야기의 새로운 버전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한여름밤의 꿈』이다. 벽돌 벽을 성벽 수준으로 에워쌌다는 높다란 도시 바뷜론. 젊은이들 가운데 가장 잘 생긴 퓌라무스와 동방의 모든 처녀들 가운데 가장 미인 티스베. 두 젊은이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이웃이다. 한데 두 집 사이에 놓인 담장은 어마어마하게 높아, 벽돌로 쌓았지만 성벽에 가깝다. 살다보니 서로 알게 되고 사귀다가 그 사랑이 깊어졌다. 머지않아 둘은 결혼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두 집안의 가장들은 자식들의 결혼은 물론이고 교제조차 무조건 반대다.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은 가까이 있으나 먼 두 집안 사이의 감정의 벽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장벽에도 틈새는 있다. 부실시공 때문에 생긴 하자(瑕疵), 아주 좁은 틈 하나가 있다. 벽에 금이 가 있는 것(하자는 틈 하(瑕)에 흠 자(疵)이다.) 이 틈새를 통해 두 연인은 목소리로 사랑을 나눈다. 막으면 막을수록 더욱 불타오르는 사랑!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갈구인지, 집안 어른들, 특히 가장의 독단에 대한 반항인지 오늘날 드라마나 영화의 로맨스에서도 통용되는 시츄에이션이다. 조건 없는 사랑이란 세파에 시달리며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두루 경험한 기성의 시각에는 철부지들의 불장난에 불과함에도. 

둘은 마침내 목소리만을 겨우 듣는 감질나는 사랑에서 벗어나 한 걸음 더 진도를 나가자고 약속한다. 어둠이 내리면 감시자들을 속이고 대문 밖으로 나와 만나기로 결정한 것. 약속 장소는 집 밖 탁 트인 들판을 가로질러 어디쯤 무덤가에 서 있는 어떤 나무 아래다. 바뷜론 성벽을 쌓았다는 세미라미스의 남편인 나누스의 무덤가에 서 있는 뽕나무다. 그곳에는 "눈처럼 흰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키 큰 뽕나무 한 그루가 시원한 샘물 바로 곁에" 서 있었다. (오로지 텍스트만으로 저편의 누군가와 소통하던 PC통신 시절, 사람들은 불원천리를 탓하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차를 몰았다. 이처럼)

 

대문을 나선 티스베가 먼저 약속 장소인 나무 아래로 간다. 그런데 암사자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난다. 방금 소 떼를 습격했는지 주둥이가 온통 피투성이다. 달빛 덕분에 재 빨리 위험을 감지한 티스베는 부근의 어두운 동굴 안으로 피신하는데, 엉겁결에 목도리를 떨어뜨리고 만다. 연못에서 갈증을 해소하고 돌아오던 사자는 그 목도리를 발견하고는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그렇게 티스베의 목도리에는 사자의 입와 입가에 묻는 피가 묻는다. 뒤늦게 약속한 나무로 향하던 퓌라무스가 바로 이 목도리를 발견한다. 모두 내 탓이야! 나 때문에 내 사랑 티스베가 처참하게 죽었구나! 퓌라무스는 절규한다. 그리고 티스베의 죽음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 그는 차고 있던 칼을 빼어 자신의 옆구리를 찌른다. 그렇게 죽어가면서 그는 상처에서 칼을 뽑았다고 한다. 파손된 수도관의 작은 틈새로 물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듯, 피는 청년이 쓰러진 자리 주변을 적시기 시작한다. 그의 피가 뿌려지자 나무의 열매는 검은색으로 바뀌었고, 그의 피에 흠뻑 젖은 뿌리와 거기에 매달려 있던 오디들도 자줏빛으로 물든다. (뽕나무의 열매인 오디는 본래 다 익어도 흰색이었는데, 검붉은 색으로 열리기 시작했다는 '변신'설이다)

이쯤이면 사자가 갔을 거야, 내 사랑 퓌라무스가 진작에 와 기다리고 있을 거야, 티스베는 약속한 나무로 돌아오는데, 장소와 나무 생김새는 익숙한데 열매의 색깔은 그녀를 헷갈리게 한다. 그러나 잠시 후 자신의 연인을 발견한 티스베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통곡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연인의 칼로 티스베도 자결한다.


"죽음만이 그대를 내게서 떼어놓을 수 있었지만 죽음도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어요.

..부모님들이시어. ..우리가 한 무덤에 함께 눕는 것은 시샘하지 말아주세요!"

티스베의 마지막 기도다. 그녀는 칼끝을 가슴 아래에다 대고는 연인의 피로 따뜻한 칼 위에 엎어져 자결한다. 그녀의 기도는 신들과 부모님들을 감동시켰고, 두 연인의 죽음을 지켜본 뽕나무 열매는 그때부터 오늘날처럼 익은 뒤에는 색깔이 검어지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을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BC43~AD17)  가 쓴 『변신 이야기』다.  이 책은 『신들의 계보』와 같은 당시에 현존하는 문헌이나 당대에는 현존하였을 신화 이야기에서 소재를 수집하여, 재창조한 이야기집이다. 아폴로도로스의 『그리스 신화』처럼 도서관의 서지목록처럼 간결하게 정리된 신화집이 있기는 하나, 희랍의 신화들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와 같이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녹아든 형식으로 널리 유포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두 서사시에 비하면 그보다 조금 후세에 집필된 『신들의 계보』는 서사시의 형식이기는 하나, 신들의 족보에 가까운 간결함이 있다. 본래의 신화 이야기를 호메로스처철 작품에 녹아들게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헤시오도스처럼 계보에 충실한 글을 통해 신화를 정리한 경우도 있다. 『변신 이야기』는 전자 호메로스적인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변신담'은 전설이 그에 걸맞는 증거물이 남아 있어야 하듯, 이후로 A가 B로 바뀌었다는 구체적인 사물이 있어야만 한다. 실제로 위에 소개한 오디가 다 익었을 때 오늘날처럼 검붉은 색을 띠게 되는 것은... 과 같은 이야기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이솝의 우화 한 대목에서 어긋나기 시작한다.

 

214 강도와 뽕나무

강도가 길에서 사람을 죽였다. 강도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쫓기자 피투성이가 된 희생자를 버리고 도망쳤다. 맞은편에서 오던 행인들이 손이 왜 그렇게 더럽혀졌느냐고 묻자 강도는 방금 뽕나무에서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강도가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뒤쫓던 사람들이 그를 따라잡았다. 그들은 강도를 붙잡아 뽕나무에 매달았다. 뽕나무가 강도에게 말했다. “당신을 처형하는 데 도움이 되어도 내 가슴은 아프지 않소. 살인은 당신이 저질러놓고 그 피는 나한테 닦으려 했으니 말이오.” 

이 우화의 교훈은 "본성이 착한 사람도 때로는 하찮은 자에게 명예를 훼손당하면 주저 없이 적의를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변신 이야기』는 『이솝우화』보다 한참 후에 집필된 것이지만, 다루는 시대는 『이솝우화』가 화자되던 시대보다 앞선 때를 다루고 있다. 다만, 뽕나무의 열매인 오디는 처음에는 푸른 색이다가 하얀 색으로 변하고 흐물흐물 농익을 무렵에는 붉다 못해 검은색을 띤다. 예전에는 명주실(비단옷의 재료)을 뽑기 위해 누에를 치고, 그 누에의 먹이가 뽕잎이었는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뽕나무를 '오디'를 확보하기 위해(잼이나 와인의 재료로) 재배한다. 열매가 완숙되면 보관성이 아주 낮아 흐물거리기 때문에, 수확기의 날씨나 투입할 적정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일년 농사를 한방에 망치기 십상이다. 조금만 신중했으면 좋았을 것을, 일부의 단서를 가지고 속단하여 죽음에 이르는 퓌라무스나 연인을 따라 죽음을 선택하는 티스베의 사랑처럼, 오디에 얽힌 변신 이야기는 완숙기의 오디 열매처럼 쉽게 떨어져버렀다. 어쨌든. 앞선 시대에 집필된 『이솝우화』가 훗날 집필된 『변신 이야기』보다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놓익은 검붉은 오디 열매의 표면에는 하얀 가루가 날려와 내려 앉아 있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착안하여 '변신' 이야기가 재정리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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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의 오스트리아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을 봤습니다. 며칠 전 jtbc뉴스룸에서 최근 개봉영화 (<좋아해줘>) 홍보차 출연한 배우 이미연에게 손석희 앵커는. "칸막이가 있는 옴니버스 영화가 흥행한 사례가 거의 없죠,"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이 영화야말로 그러한 옴니버스 영화의 전형입니다. 2년 전에 국내에 소개되는데, 예술영화로 분류되어 개봉관 상연은 못하고 예술영화관으로 직행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영화 <셜리>는 여느 옴니버스 영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칸막이가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미국의 대표적 화가인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13편을 가지고,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미국의 30년대, 40년대, 50년대, 60년대 초반까지를 시대상을 스케치합니다. 

 

또한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되는데, 13점의 호퍼의 그림을 재현한 세트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사람이 연기하는 것이지요. 막이 있는 연극을 영상으로 옮긴 느낌이랄까, 옴니버스라는 형식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ABBA의 히트곡으로 뮤지컬 <맘마미아>가 만든 것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장면이 시작될 때마다 세 가지씩 세계 곳곳의 라디오 뉴스가 제기되는 등 딱 그 정도로 시대상을 얘기합니다. 일종의 사진의 캡션(사진설명)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지요. 호퍼의 그림을 소품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어, 호퍼의 그림세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영화를 제대로 음미하기가 어려운, 불친절한 영화인 셈인데, 그래도 이러한 실험 자체로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니었나 그리 생각합니다.

<Hotel Room>(1931), <New York-Movie>(1939),

<Room in New York>(1940), <Office at Night>(1940),

<Hotel Lobby>(1943) <Morning Sun>(1952),

<Sunlight on Brownstones>(1956),<Western Motel>(1957),

<Excursion into Philosophy>(1959), <Woman in the Sun>(1961),

<Intermission>(1963), <Sun in an Empty Room>(1963), <Chair Car>(1965).

이상 13점이 영화에 사용된 작품인데요, 호퍼의 그림은 (국내 독자들에게는) 한 출판사의 피츠 제럴드의 소설 표지로 사용되어, 익숙한 그림들입니다.

 

 

 

 

 

 

 

 

 

 

 

 

 

 

=맨 왼쪽부터 표지의 삽화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간이식당>(1927), <293호 열차의 객실>(1938), <뉴욕의 방>(1932)임.

특히, '단편선2'에 사용된 그림, <Room in New York>(1940)을 배경으로 사용한 이 영화는 비록 내레이션뿐이지만 미국의 경제대공황을 얘기합니다. 현직 기자인 남편은 실직 상태인데, 이 사실을 숨기고 날마다 출근합니다. 사실은 식량배급을 받으러 가는 것이라고, 이 장면의 스틸 컷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딘지 익숙한 풍경이죠?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소감을 말하자면, 호퍼의 그림에는 햇살이 살아 있습니다. 그림 자체로 영화의 세트를 만들었는데, 영화의 곳곳에서도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이 빛과 그림자의 처리입니다. 왜 그러한가, 1959년을 다룬 <Excursion into Philosophy>이란 작품이 배경이 된 부분에서 알 수 있는데,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플라톤의 <국가> 중 동굴의 비유(7권 앞부분)을 직접 읽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래 위는 그림 아래는 스틸 컷.

 

케이프 코드 오전 11시.(여자 주인공이 <국가>를 읽는다)

어릴 때부터 동굴에 갇혀 살아온 죄수들이 있다. 팔다리가 묶여 움직이지 못했고 머리도 고정돼 벽만 봐야 했다.

(어릴 때부터 동굴에 갇혔다니)
그들 뒤로는 거대한 횃불이 있다. 그들과 불길 사이로 통로가 있어서 사람들은 그 길로 각종 동물과 식물의 모형을 들고 나타난다. 동굴 벽에 그 그림자가 비치면 죄수들이 놀라 바라본다.

(여자 읽기 멈춤, 갈매기 울음소리, 그림자)

뿐만 아니라 모형을 든 사람이 말을 하면 소리가 울려 마치 그림자가 말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죄수들은 게임에 빠져들게 된다

(게임, 그림자의 형상을 맞추는 게임?)

비록 이미지의 그림자만 보고 있지만 그것이 그들이 아는 유일한 현실이다. (책을 가슴에 얹은 채 눈을 감고 생각. 현관 문소리, 남편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알지만, 자는 척 한다. 이제 남편이 이어 읽는다.)

 

만약 사슬에서 풀려나 벽에서 돌아선다면 횃불에 눈이 멀 것이다. 실물은 그림자보다 리얼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굴 밖으로 나와 태양 앞에 서면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처음에 보이는 것은 그림자 같은 어두운 형상뿐 조금씩 밝은 것을 보기 시작한다. (생각, 창밖을 잠시) 마지막으로 태양을 보게 된다. 결국 그들은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계절과 해가 바뀌는 원인이 되고 보이는 만물을 주관하는 힘. 그간 동굴에서 봐 왔던 모든 것의 근원이 태양이라는 것을.

(책을 놓고 아내를 한 차례 보다가 밖으로 나간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부분이 '동굴의 비유'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의 본성이 교육을 받았을 때와 교육받지 않았을 때의 차이를 비교해보기 위해 동굴 비유를 든다. 위는 영화의 대사를 그대로 옮긴 것이고, 가령, 천병희의 번역을 따르면

 

"여기 지하 동굴이 하나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게. 동굴의 입구는 길고 동굴 자체만큼 넓으며 빛을 향해 열려 있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다리와 목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기에 언제나 같은 곳에 머물러 있으며, 쇠사슬 때문에 고개를 돌릴 수 없어 앞쪽밖에 볼 수 없네."(국가 514a)

"그들의 뒤편 저 멀리 위쪽으로부터는 불빛이 그들을 비추고 있으며, 불과 수감자들 사이에는 위쪽으로 길이 나 있고, 그 길을 따라서는 나지막한 담이 쌓여 있네. 그 담은 인형극 연출자들이 인형극을 보여주기 위해 자기들 앞에다 세우는 무대와도 비슷하네."(국가 514b)

영화 <셜리에 대한 모든 것> 한 장면,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읽는 대목인데, 실제 책의 표지인지는 알 수 없다.

 

특정 상품을 영화 및 방송의 소도구로 이용하는 일을 PPL(피피엘) 광고라고 하는데, 이 영화 셜리에서는 플라톤의 <국가>와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의 시집이 소품 이상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밀리 디킨슨은 55년 5개월 5일을 살면서 2000여 편에 달하는 시를 썼으나 생전에는 겨우 일곱 편만, 그것도 익명으로 발표한 시인이다. 은둔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방 안에만 틀어박혀 사람을 피했으나 영혼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웠던 여인. 에밀리 디킨슨은 새로운 사상, 시형을 만들어 낸 선구적 여성 시인이다. 끝으로,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최근 공유와 공효진이 등장하는 광고에도 사용되었다. (아래, 그림은 호퍼의 <Sunlight on Brownstones>(1956)이고, 그 아래는, 공유, 공효진이 등장하는 CF의 한 장면, 호퍼의 그림이 영화 '셜리'의 배경이 되고, 영화 셜리의 한 장면이 광고로 등장하는 물고 물리는 영화 관계가 흥미롭다. 호퍼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피츠제럴드의 책들의 표지로 그림이 사용된 것은 그냥 우연이 아닌 것이다. 보통은 책(소설)이 영화의 원작이 되는데, 그림과 그림 속 배경과 그 주인공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걸어나오는 점, 거기에 녹록지 않은 철학서와 시의 세계가 녹아드는, 암튼 영화 <셜리>는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시사점이 많은 독특한 그리고 기념비적인 영화다. 플라톤의 <국가>를 읽으시는 분은 꼭 한번 찾아서 보시기를.

왼쪽은 호퍼의 <Sunlight on Brownstones>(1956)이고, 오른쪽은 공유,공효진이 등장하는 최근 CF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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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22.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다. 음력으로 15일. 굳이 오늘이 정월대보름임을 언급하는 이유는, 음력 1월 1일 설날부터 겨우 보름이 지났을 뿐인데,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스스로) 수소폭탄(이라는) 실험에 이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위성발사, 남측에서는 개성공단(사업) 중단으로 대응하여 나라 안팎이 혼란스럽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 가운데 하나는 이런 정국이 코앞으로 다가온 4.13총선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를 둘러싼 것들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노태우 정부부터 시작되고, DJ 정부에서 본격화된 '햇볕정책'으로 상징되는 대북한 정책의 기반이 흔들린 상태이고, 현 정권은 이러한 흐름을 집권기 내내 유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잖아도 분열한 야권의 입장에서는 다가오는 선거에서 선전하기가 버거운 상태인데,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래서, 햇볕정책이란 말의 출처가 된 원전 이솝우화를 찾아보았다. 교과서에도 실려 널리 알고 있는 이야기다. 희랍어 원전번역으로 358개의 우화를 우리말로 옮긴, 천병희의 정본 이솝우화가 그것이다. 73번째 이야기 <북풍과 해>는 다음과 같다.  

 

 

073 북풍과 해

 

 

북풍과 해가 서로 제가 더 힘이 세다고 다투었다.

그들은 둘 중에서 누구든지 길 가는 사람의 옷을

벗기는 쪽이 이긴 것으로 하기로 정했다.
먼저 북풍이 세차게 입김을 불어대기 시작했다.

사람이 옷을 졸라매자 북풍은 더 세차게 공격했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자 사람은 옷을 껴입었다.

그러자 북풍이 지쳐서 사람을 해에게 맡겼다.

해는 먼저 알맞게 비추었다. 사람은 껴입은 옷을 벗었다.

해가 더 따가운 햇살을 쏘자 사람은 더위를 견디다 못해

드디어 옷을 벗고 근처 강에 멱 감으러 갔다.

 

 

그리스 신화에서 북풍은 Boreas이고 해는 Helios다. 이 이야기의 공식 교훈은 "때로는 설득이 강요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때로는'이라는 말을 갈무리한다. 북풍이 필요할 때도 있고, 햇볕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얘기다.

이 글에서 "해는 먼저 알맞게 비추었다."라는 대목이 와 닿는다. '알맞게'다. 그리고 이어 "해가 더 따가운 햇살을 쏘자" 사람들은 드디어 옷을 벗고 멱을 감으러 강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처음에는 '알맞게' 그 다음에는 '더 따가운 햇살을' 쏘았다고 한다. 한 나라 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나라간 공조하여 펼치는 정책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안보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다는 말이 맞다면, 한번 시행한 정책은 그 효과를 내오기까지 진득하니 추진해야 한다.

개성공단사업에 참여한 이들의 이야기에 따르거나, 현지에서 사업을 담당했던 학자에 따르면, 지난 8년 동안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난 이후, 개성공단사업에 두 정부는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개성공단 사업은 민주정부 10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그런 단기적인 사업이 아니었다. 민주 정부 10년이 '알맞게'에 해당한다면, 이후 정부는 '더 따가운 햇살'을 쏘지는 못할망정 일정한 기조는 유지했어야 하지 않았나. (그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얘기하는 이전 정부의 치적이라고 여겼다는 데서 비극은 시작된다. 5년단임제 대통령제에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사업은 당근과 채찍 두 트랙으로 대북한 정책을 펼치는데 있어 대표적인 유화책이었다. 관계에서는 강요도 필요하고 설득도 필요하다. 이 두 가지는 대화와 소통의 방법이다. 투 트랙 중 하나를 놓아버린 일은 두고두고 뼈아픈 후회할 일로 남을 것이다.

북풍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다. 우화 속에서는 그저 '찬바람'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북한과의 연관 관계에서 남한의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바람으로서의 북풍(北風)과는 좀 다르다. 햇볕정책 폐기선언이라고 할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북풍을 선택한 것은 우리 정부다. 북한에만 북풍이 분 것이 아니라, 공단의 사업자와 그 가족들, 협력업체들 그리고 우리 경제의 주가 등에 영향을 미치는 불안 요소, 대중 무역에서 예견되는 데미지를 고려하면 북풍이 불고 있는 것은 맞다. 그것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그 다음 문제다. 남반구에서의 남풍은 북반구에서의 북풍에 해당한다. 그냥 속이 상해서 해당 우화를 한 차례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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