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목은 이동순 시인의 시집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가짜 뉴스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너무나 그럴 듯해서 속는 경우도 있고, 특히, 유투브라는 플랫폼을 타는 상당수 ‘●●●TV’들의 범람과 활동이 이런 어지러운 질주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비단 유투브만이 아니고 인터넷 환경에는 이미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가 일상이 되었다. 특정 네티즌의 관심사가 반영된 검색 환경이 제공되는 것이다. 각종 인터넷쇼핑몰은 말할 것도 없다. 해당 영상을 올린 매체(게시자)를 ‘구독’하지 않아도 한두 차례 본 영상들에 대한 흔적(기록)이 저장되고 분류되어 그것과 관련된 영상들이 첫 화면에 ‘메인’으로 노출되어 유사한 주제의 관련 영상들을 자주 보게 되는 ‘쏠림’이 일어나는 것.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흐르면 단편적인 앎에 머물지 않고 교양의 ‘깊이’를 더하는 데 더없이 좋은 도구가 될 것이나, 악성 루머가 휘발성이 더 강하듯이, 정보의 진위도 문제지만 그러한 정보의 쏠림은 편견을 낳고 편견은 고정관념으로 굳어지고, 결코 바람직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회악을 잉태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아는 것이 힘이다.’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이 남긴 말이다. 그는 영국 경험론이라고 부르는 유파의 시조가 된 사람이다. 베이컨은 연역, 즉 일반화된 법칙에서 개별의 결론을 추론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오히려 오류를 야기하기 쉽고, 올바른 지식은 항상 실험과 관찰이라는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류, 베이컨은 경계해야 할 네 가지 유형의 ‘우상’을 제시했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 그것이다.

 동굴의 우상(개인 경험에 의한 우성)은, 각 개인의 고유하고 특수한 본성이나 자신이 받은 교육과 타인과의 교류에 의해서 생기는 우상을 동굴의 우상이라고 명명했다. 자신이 받은 교육과 경험이라는 편협한 범위의 자료를 바탕으로 단정해버리는 오류로 한마디로 ‘독선’이다. 다음은 시장의 우상(전문轉聞의 의한 우상)이다. 언어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생기는 우상,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다. ‘전해들은 말’을 진실이라고 믿고 현혹되는 것. 한마디로 거짓말인데, 오늘날 ‘가짜뉴스’가 얼마나 위험한지 미리 ‘경계’한 듯하다. 극장의 우상(권위에 의한 우상)은 저명한 이의 주장 등 권위와 전통을 아무런 비판 없이 믿는 데서 생겨난 ‘편견‘을 뜻한다. TV나 신문에 등장하는 전문가의 주장은 무조건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인데, 오늘날은 이러한 ’미디어의 우상‘에서 특히 자유롭지 않다. 또 하나, 종족의 우상(자연 성질에 대한 우상)은 인간이란 종족이 가진 한계성 때문에 ‘착각’하는 것으로, 앞선 네 가지 우상들에 우선하기도 하고, 이 때문에 이러한 우상들에서 쉽게 빠져들고 쉽게 헤치고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이상은 최근에 발간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라는 책의 40번째 ‘도구’, <오해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우상> 편을 요약하면서 필자의 ‘의견’을 덧붙인 것이다.  일본 저자인 야마구치 슈(지은이)의 저작을 번역한 책(김윤경 옮김, 다산초당(다산북스), 2019. 01.)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이 18년 동안 유배지에 머물며 집필한 책들 상당수가 제자들과 협업한 ‘편저’이고 보면, 그 정신을 계승한다는 면에서 이 출판사(다산초당)의 정체성에도 맞는다고 해야 할까? 넓게 두루 살피면서 핵심을 뽑아내는 것도 그렇고, ‘실시간’의 세계를 읽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는 책이다.

특히, 오래전에 읽고서 잊고서 지내던 철학자의 세계를 상기(想起)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내게는 베이컨의 제시한 ‘우상’에 관한 기억이 그랬다. 그리고 앞서 정리한 대목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가짜뉴스’가 극성을 부르는 최근 상황에 대한 ‘경계(警戒)’가 맞춤한 것처럼 정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앞서 거론하였거니와 특히, 유투브 시청의 쏠림 현상 때문에 시청자들은 우물 안에 갇혀(동굴의 우상),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폐해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데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전 대통령 전두환 씨가 광주광역시의 법원까지 ‘강제구인’되어 재판정에 섰거니와, 진상규명과 인정 ‘투쟁’을 거쳐 이미 국립묘지까지 조성되어 안장된 5.18 희생자와 유족들을 모욕하는 세력들의 ‘준동’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때다.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도저히 그들을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 어쨌든 가짜뉴스와 유투브의 시청시의 편향성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더욱'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싶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이동순 시인이 있다. 이 시인의 제5시집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된 해는 1992년 봄이었다.(알라딘에 ‘품절’로 분류된다) 앞서의 현상들을  ‘이것 참 문젤세’하며 지켜보면서 떠올린 시집이다. 이 시집의 표제시가 동명의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이다. 시집들이 모인 서가에서 오랜 만에 이 시집을 찾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와, 검색을 통해 모처럼 시를 읽었다.(인용한 시에 오탈자가 있다면 책을 찾은 다음에 수정할 계획이다)  

“저 풀꽃들은/ 어디서 아침을 맞지/ 어떤 모습으로 기지개를 켜지// 밤비에 젖어/ 글썽이는 속눈썹으로/ 그들은 함초롬히 실눈도 떠볼 거야// 사랑아 어둠 속에서/ 깊이 뿌리를 박고 선 풀꽃의 아침처럼/ 흩어질 듯 맺혀 있는 내 사랑아// 마음이 아픈 풀꽃은/ 어떤 표정을 짓지/ 궂은 비 나리는 가을 저녁// 풀꽃의 아랫도리가/ 서늘하게 젖어올 때면/ 저절로 알게 될꺼야// 풀꽃 언저리에/ 송글송글 맺혀 동그마니/ 작은 어깨를 떨고 있는 이술방울// 두 볼이 서서히/ 다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저 가을 들판의 수줍음을//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 -시 전문. 

 

이제 이 시를 읽으려면 도서관에 가거나 이동순 시선집 『숲의 정신』(산지니, 2010)을 구매해야 할 것 같다. 시의 내용과 제목을 연결 짓기가 좀 낯설다고 할까,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이고, 설명이 간단치 않으며 길어질 것이다. 때문에 이 시집이 출간되었을 때 한 신문의 ‘출간단신’으로 대체할까 한다. 단지 이 한 편의 시만이 아니라 이 시집에 수록된 상당수의 시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표제시로 압축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동순 시집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 = "이제 세상은 어느 틈에 `어리석은 지혜자'의 무리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한탄하는 이시인은 삶의 가난함, 고통으로 얼룩진 민족의 역사, 그러한 것들이 뒤엉켜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정황을 담백하게, 그러나 읽는 이의 가슴에 쓸쓸함이 깃들게 하는 어조로 노래한다.”

사법농단으로 마음을 놓고 재판을 받을 수 있나, 의구심이 커지는 요즈음 주목하는 책 한 권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다. <수사학>은 『정치학』과 뗄 수 없는 관계일 뿐 아니라 『시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저자는 수사학에서 이미 언급한 부분들이 있어 <시학>을 간명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저작들을 (원전)번역한 천병희의 『수사학/시학』을 제1원전번역(텍스트)로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안보-군사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전략가들에게 국내외를 막론하고 오래된 전쟁 교과서 역할을 하듯이, <수사학>은 정치인(연설), 법조인, 그리고 작가에게 필독 교과서 중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변론을 하거나(변호사) 기소장을 쓰거나(검사) 판결문을 내는데(판사), <수사학>은 참으로 쓸모가 많은 책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연설문을 작성하는데, ‘그렇게 보이는 것으로’ 함으로써 ‘그런 것으로 여기게’ 하는데 노하우를 집대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던가! 기왕 가짜뉴스로 대중들의 마음을 현혹하는 일을 일처럼 일로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정독하여 노하우를 습득하시기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를 때라고 하지 않는가, 완벽에 가까운 거짓말은 작품이 되어 예술의 경지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니까. KBS1의 <저널리즘 토크쇼J>를 꾸준히 보는데, 가짜뉴스를 비롯하여 특정 언론들의 무소불위의 횡포를 견제하는 몇몇 착한 콘텐츠들이 언론인의 자정과 자성의 메시지를 생산하고 있어 다행이다. 이런 프로그램의 애시청자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힉>을 꼭 챙겨 읽기를 바란다. 보다 깊이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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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역사'에서 다룬 그 전쟁이 발발한 진짜 원인은 따로 있어요, 그는 속삭이듯 그러나 세 차례나 강조한다(이 글에는 인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쐐기를 박는다. 최대한 객관적인 자료에 따라 현대의 사가들에게도 역사기술의 모범을 제시한 그가 조심스럽게 덧붙이는 '의견'이다.

"그러나 과거사에 관해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1권 22장 3절.  그의 예감은 이후 역사, 특히 전쟁의 역사에서 예언이 되었고 적중했다. 인류의 전쟁은 갈수록 첨단무기에 의존하지만, 끝내 핵을 사용하여 공멸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전쟁이 없는 인간의 역사는 없다. 해서 전쟁은 무역전쟁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회적인 전쟁인 것 같지만 전쟁은 자금없이 행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피를 흘리지 않을 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경제력의 대결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삶은 전쟁이라, 일상의 인간이 마주한 삶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투퀴디데스의 '역사'는 지금도 작동한다.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가 환기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새로운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패권 국가가 두려움을 느끼고 무력을 통해 두려움을 해소하려 하면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것. 그러나 간단치 않은 개념이다. 

 

FT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s trap)을 2018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FT는 파이낸셜타임스로 영국의 경제 전문지다. 2019년에도 올해의 단어가 될 수 있을까, 전망은 그럴 것 같다. (오늘은 베트남 하노이 제2차 북미정삼회담 첫째날, 두 정상들은 지금 회담 첫날 일정인 만찬을 하고 있다.) 2018년의 미중무역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어 특히 주목을 받은 이론이다. 이러한 흐름과 한반도의 평화프로세스가 묘하게 맞물렸다. 제1차 북미정상회담(싱가폴),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오랜 기다림 끝에 '실시간으로' 진행중이다. 이 정상회담이 열리는 곳이 왜 하필 베트남(하노이)일까? 패전국의 대통령이 그 현장에서 승리라고는 할 수 없는 전쟁의 또 다른 상대, '불편하기 짝이 없는' 나라의 정상을 만나고 있다. 북한과 베트남. 제2차 세계대전(특히 태평양전쟁)의 승전국 미국이 아시아 변방의 그렇고 그런 나라쯤으로 여기고 참전했다가 쓰라린 패배를 맛본 전쟁의 상대국이다. 두 차례 연이어 패배한 전쟁, 아픈 손가락이다.

 

한국전쟁이야 객관적으로 시작 전의 균형(대립) 상태로 돌아간 것이니 '비긴' 전쟁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16개국이나 참전한 UN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면서도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러므로 미국으로서는 '실패한' 전쟁이다. 실제로 미국은 오래된 전쟁의 종지부를 찍느니 마느니 평화선언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지금까지도 한국전쟁의 결과를 두고 미국은  전승기념행사를 단 한 차례도 연 적이 없다고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도 그때그때 곳곳에서 격돌한 세력들이 저마다 승리했다면서 승전비를 세우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 한반도에 평화의 이정표를 찍는다면, 이야말로 그들의 전승기념행사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운운하면서 그리는 밑그림은 우리의 바람과는 다른 것 같다. 그간 오랜 세월 동안 '한미동맹'을 굳건히 유지해 온 까닭은 무엇일까, 궁극적으로 태평양에서의 제해권(制海權)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며, G2 운운하며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또한 미국이 원망(怨望) 관계인 베트남을 안고 가는 것도(2차 북미회담 장소가 그곳인 것도) 중국 견제의 일환이라고 읽는 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작년 이맘때 특별한 번역서 한 권이  '조용히' 발간되었다. 『예정된 전쟁』(세종서적, 2018.1.31.)이다. 부제에서 언급하는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이 국제 정치판에서 전문가들의 입에서, 그것을 다룬 언론에 회자되먼서 주목받기 시작한 책이다.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이란 용어를 만든 그레이엄 앨리슨의 저작이다. 원제는 <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인데, 한글판 부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이다. 원서의 부제를 직역하면 "어떻게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혹은 '미·중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방법' 쯤으로 정리할 수 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한반도의 평화무드가 조성되면서 번역서의 부제에 '한반도의 운명'이 추가된 것이다.
앞서 그런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비핵화 프로세스는 2018년 1월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로부터 촉발되었다.『예정된 전쟁』은 신탁이라도 받은 듯 기다렸다는 듯이 출간되었다. 예정된 전쟁처럼 '준비된 출판'이었다. 해외의 저자와 출판계약을 하고, 번역자를 섭외하고 번역하고 그 원고를 받은 이후 한 권의 책을 펴내기까지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이 있다. 이를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대단한 변화의 조짐으로 보고, 실제로는 2018평창동계올림픽(2018.2.9~25.)을 전후한 시점에야 한반도의 평화가 무르익었음을 감안하면 이 책의 출간 시점은 미묘하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영문판 원저는 2017년 5월(5.30.)에 출간되었다. 원전이 출간된 이후 우리말 번역본 출간까지 8개월이 소요되었다. 원서와 번역서가 동시출간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끄는 주제를 다룬 책은 아니었다. 어쨌든 저작권이 있는 책의 번역출판에 주어진 8개월은 결코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번역의 아쉬움을 지적하는 소리가 들린다. 출간 일정을 너무 서두른 결과인 듯히다. 세계 유수의 지도자들, 유명인들의 찬사가 추천사에 담겨 있다. 무엇보다 번역본이 출간된 2018년 한 해, 국내외 언론은 '투키디데스 함정'을 인용한 기사를 마구 쏟아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이러한 국내외 정세와 맞물리고 매스컴의 요란한‘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판매량은 그에 비례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전적으로 추정이다). '예정된 전쟁'은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개정판을 낸다면, 저자와 협의하여 ‘투키디데스 함정’을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새로운 언어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깊이 읽는 가운데 탄생했다. 오래된 새로움이다. 그런 발견이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 있는 발견이려면 대중(독자)들의 독서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건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당사자 중 하나인 우리(국민 독자들은)는 과연 '투키디데스 함정'을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정된 전쟁'에 대한 국내에서 반응이 시들하다면 그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숙독한 독자들이 그리 많지 않음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작년과 올해 '전쟁사'의 판매 부수에는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개략적인 내용을 숙지하는 딱 그 지점에서 생각도 행동도 멈춘 것은 아닐까? 원전 텍스트를 제대로 읽은 독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 현상은 그런 짐작을 하게 한다. 사실, 전자책을 포함하여 종이책 읽는 독자층이 줄어든 시대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원인은 늘 보다 근본적인 데에 있다. 이러다가 대학입시나 입사시험을 위해 달달 외우는 시사용어쯤 하나로 '투키디데스 함정'이, 투퀴디데스의 '역사'까지도 가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오이디푸스 콜픔헥스나 플라토닉 러브처럼.

 

"투퀴디데스(기원전 460~400년경)는 상류계급 출신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에 장군으로 선출되어(야전사령관으로) 참전하지만 작전에 실패한 전투(기원전 424년)의 때문에 장군직에서 해임되고 추방되어 무려 20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다. 그 동안 스파르테를 비롯한 펠로폰네소스 지역을 여행하면서 사실(事實)을 수집하고, 확인했는데 이런 자료가 '전쟁사' 집필에 밑바탕이 되었다."

 

"깊은 산 작은 연못 예쁜 붕어 두 마리~" 『펠로폰네스 전쟁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김민기가 노래한 <작은 연못>의 멜로디와 가사가 떠오른다. 저자는 이 전쟁의 주인공들, 아테나이인들과 라케다이몬인들의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제3의시선으로 살핀다. 이들 그리스 세력을 제압하려던 두 차례의 쓰라린 전쟁에서의 패배를 딛고 지중해의 주도권을 쥐려는 영원한 제국 페르시아가 있다. 그들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 양대 세력 모두의 몰락을 부추긴다. 전쟁자금이 고갈된 라케다이몬인들에게 군자금을 지원하면서, 용병처럼 부리며 '밀당'을 한다. 그러나 어부지리(漁夫之利)를 하는 세력은 따로 있으니 필립포스2세와 알렉산드로스의 제국 마케도니아다. 그들 또한 가만히 기회만 엿본 것이 아니었다. 이 전쟁 시기에 아테나이인들과 스파르테인들 사이에서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작업'을 하였다. <전쟁사>는 대충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껏 나타난 역사가들 중 가장 위대한 역사가", 이렇게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머콜리는 투퀴디데스를 평가한다. 19세기 독일의 랑케 등은 투퀴디데스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역사가의 이상으로 추앙했다. "나는 주워들은 대로 또는 내 의견에 따라 기술하지 않고,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든 남에게 들은 것이든 최대한 엄밀히 검토한 다음 기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투퀴디데스는 자신이 참가한 전쟁임에도 객관적인 제3자의 시선으로 서술했다. 함축적인 문체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역사의 교과서를 썼다. 그는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를 주제에서,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사료를 취사선택하는 방식에서 극복하였으며 너무도 일찍 '역사의 완성자'로 자리매김했다. 절제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역사가의 '의견'까지 담아 역사 저널리스트의 면모도 보이는데, 그의 예언과도 같은 메시지는 섬뜩하다.


 

"헤로도토스는 두 차례 치른 그리스의 대(對) 페르시아전쟁을 중심으로 '역사'를 쓴다. 헬라스(희랍:그리스)인들로서는 두 차례 비헬라스인(페르시아제국)들의 거센 침공을 막아냈다. 그러나 저들의 힘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의문을 풀기 위해 발품을 팔면서 탐사하고 기록한다."

 

두 차례(기원전 480/489)의 '위대한' 그리스인들의 전쟁이 끝났을 때, 한 편의 ‘특별한’ 비극이 경연무대에 오른다. 아이스퀼로스(기원전 525/4~456/5)의 「페르시아인들」(472년)이다. 비극의 배경은 살라미스해전에 패배한 페르시아 궁전, (승리자인 그리스의 입장이 아니라) 패배자인 페르시아 인들, '전범'인 그들의 왕이 전쟁에서 겪은 불행을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오만’했다. '교만' 때문에 자제하지 못하였고 전쟁을 일으켰으며 끝내 쓰라린 패배를 안게 된 것이라고. 이 작품이 헤로도토스에게 끼친 영향(집필 동기와 <역사>(전반부에서)에 담은 내용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투퀴디데스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보여주었고, 배웠으며, 그리 실행했다. 투퀴디데스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역사'를 통해 아테나이인들에게 인류에게 경계하고자 한 바가 그렇다. 아이스킬로스(비극 시인)와 헤로도토스(역사가) 같은 선배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만 투퀴디데스는 차분하게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가급적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또 하나의 비극 작품(역사)을 쓴 것이다.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25)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진 해(기원전 431년)에 『역사』를 쓰기 시작한다. 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53세인데 처음 몇 년 동안 전쟁을 체험한다.  『역사』는 기원전 424년에 이미 간행되었고, 그는 곧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한다."

 

팝콘 영화와 같은 일회용 읽을거리가 아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채 서가에서 장기투숙중인 역사는 더욱 아니다. 세계는 왜 지금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 에 주목하는가? 2018년 그레이엄 앨리슨의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이 국제사회에 울린 '경종'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인 것 같다. 당동행 전용열차에 오른 김 위원장이 중국 변방에 위치한 한 역사에 잠시 내려 담배 한 개비를 피웠다는데, 그 답뱃불을 라이터로 붙였든 성냥으로 붙였든 그것이 그리도 대단한 뉴스가 되어 전파낭비를 일삼는 것일까? '전쟁사'의 한 대목이나 그 고전을 깊이 읽는 가운데, 우리가 당면한 비극을 예견하는 텍스트를 이야기하면서 김 위원장의 구상이나 트럼프가 쥔 카드를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일까?

『펠로폰네스 전쟁사』를 제대로 읽었다면 그 경고('투키디데스 함정')가 사전이 아니라 사후에 보낸 재난문자에 지나지 않음을 절감할 것이디.『펠로폰네스 전쟁사』정독한 국내 독자들이 많다면 그와 비례하여 번역서인 『예정된 전쟁』의 판매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펠로폰네스 전쟁사』를 제대로 읽어야, 드센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당사자인 남한이나 북한이 한반도 평화의 길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다. 그에 필요한 살아있는 팁(Tip)을 ‘득템’할 수 있으리라. 청와대를 비롯하여 관련 부처의 고위공무원들, 국정을 입안하는 이들부터 읽어야 할 책이다. 세종대왕처럼 독서휴가라도 줘서 읽게 해야 할 고전인데, 이런 얘기까지 꺼내는 것이 좀 슬프다. 과도한 기대는 금물! 그럼에도 내일의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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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19-02-28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글을 오늘 올리고 보니,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마무리된 모양이다. 강자는 논리는 늘 정의라는 이름으로 펼쳐진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통용되는 논리다.
 

일종의 카드뉴스로 만든 ‘출판사 제공 책소개’가 눈길을 끌어  책(『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을  살피게 되었다. 삶과 비즈니스 현장에서 철학적으로 생각하고 답을 도출하는 법을 알려 주는 실용 철학서란다. 부제는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다. 목차만 읽어보아도 그러한 컨셉트에 충실한 책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그리스 3대 철학자의 저작만 골라보면 다음과 같다.

 

[04 사람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 아리스토텔레스_수사학]

[38 ‘결국 이런 뜻이죠?’라고 말하면 안 되는 이유 : 소크라테스_무지의 지]
[39 이상은 이상일 뿐, 환상에 사로잡히지 말지어다 : 플라톤_이데아]

 

철학(고전 혹은 인문을 적용해도)의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본 사람이라면 참으로 놀라운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언뜻 주워들은 한마디에서도 깨침을 얻기도 하거니와 무심코 읽는 동안 기대 이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나아가 좀 더 깊이 있는 질문으로 이어져 관심 분야로 진입하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는 말처럼 어려우니까 철학이다, 라는 말로 언제까지나 위안을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다만, 몇 가지 눈에 띄는 점에 이의제기를 해야겠다. 내용이 형식을 규정하고, 그 역도 가능하듯이 책의 발상에 걸맞게 책 소개 또한 형식(방법)의 새로움을 제시하여 귀감이 되었다. 그런데, 일러스트와 함께 실린 우화의 내용은 다듬어질 수 있기에 논외로 하고 ‘이솝 우화’를 언급한 본문과 관련하여 할 얘기가 있다. 본문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솝우화에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가 있다.]

"여우가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손이 닿지 않았다.

결국 여우는 "이 포도는 엄청 신 게 분명해. 이런 걸 누가 먹겠어!”라며 가 버린다."

-<철학은 어떻게..> 50면.[01 타인의 시기심을 관찰하면 비즈니스 기회가 보인다 : 프리드리히 니체_르상티망]

이 우화가 현재 어린이들의 교과서에는 어떤 번역으로 실려 있는지 확인해봐야겠지만 제목부터 문제가 있다. 물론 필자도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 「여우와 신 포도」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현존하는 이솝 우화 전편(358편)을 총망라하여 (원전) 번역한 책이 몇 해 전에 나왔다. 희랍-라틴 고전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천병희 선생의 번역이다.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이솝 우화』(숲, 2013.5.)인데, 당시 신문의 신간 안내에서 이 책을 다루면서 화제가 되었다. 「여우와 신 포도」로 알고 있는 우화가 원전을 살피니 그 제목부터 좀 다르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므로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굶주린 여우가 나무를 타고 올라간 포도 덩굴에 포도송이들이 매달린 것을 보고 따려 했으나 딸 수가 없었다.

여우는 그곳을 떠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 포도송이들은 아직 덜 익었어."*

- 「여우와 덜 익은 포도송이」 전문, 『이솝 우화』 53면

짧지만 우화에도 처음과 끝이 있고 중간이 있다. 이것을 ‘전체’라고 하며, 처음과 끝과 중간이 전체를 이루는 부분이다. 어쨌든 첫 인용은 우화의 요약이라고도 할 수 있기에(이 짧은 이야기의 요약이 왜 필요할지는 모르겠으나) '신 포도'가 아니라 '덜 익은' 포도라는 점을 이야기하자.

옮긴이의 설명(주석)를 살핀다. <*'덜 익다'의 그리스어 omphax(복수형 omphakes)는 '시다'는 뜻이 아니라 맛과 관계없이 '덜 익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sour grapes'라는 영어 표현은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주석에 따르자면 영어판을 우리말로 옮기는(중역) 과정에서 생긴 오류다. 덜 익은 포도가 대체로 신 맛이 나고,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 쓴 맛일 수 읽고 설익었을 때는 단 맛이 더 지배적일 수도 있다. 신 맛은 덜 익은 포도가 내는 여러 맛 가운데 하나일 수 있는데 단어 하나를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바람에, 그리고 그것이 교과서나 동화(그림)로 널리 읽히면서 어느덧 '신 포도'로 고정되어 버린 것이다.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필자는 결코 사소하게 여길 수 없다. '사소한'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대단히 복잡한 문제도 차근차근 관련된 사소한 질문부터 풀어가노라면 풀리는 것을 일상에서 경험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고전은 여러 층위의 질문들(해석의 여지가 넓다고 달까) 을 함유하고 있어, 스포일러에도 지장 받지 않으며 읽고 또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발견하는' 그런 저작이다.
사실, 이 책(정본 이솝우화)의 경우도 몇몇을 제외하고 우화마다 주석처럼 '교훈'이 붙어 있는데, 해당 우화 아래 '교훈'을 주석처럼 배치해놓아 우화를 읽고, 이거 뭐지(모든 우화가 그렇게 의도한 바, 친절한 교훈으로 일대일 대응하지는 않거니와) 하다가 '교훈'을 읽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 달까, 생각의 폭을 좁히게 되는 '결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가령, 두 번째로 인용한 우화 「여우와 덜 익은 포도송이」의 교훈은

"이와 같이 사람도 더러는 자기가 맡은 일을 능력이 부족해서 해내지 못하면 시운(時運)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이다. 어쩌면 이런 교훈은 훗날 편저자들이 덧붙인 것으로, 어쩌면 교과서에는 없지만 교사용 교재에는 있는 '지침'인데 이것이 해당 우화들과 짝을 이뤄 남게 된(고착된)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의 내용을 보완하는 각주(脚註: 본문의 어떤 부분을 설명하기 위하여 아래쪽에 따로 달아 놓은 풀이)는 가급적이면 해당 면((이나 양면의 각주를 오른쪽 면 아래에)에 있어 즉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좋다. 대체로 주석이 많은 학술논문들에 질린 경험 때문에 주석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으면, 난해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 후주(後註: 책에서 한 편이나 장 등의 끝이나 책의 맨 끝에 보충하여 주는 말이나 글) 처리를 하는데(이는 출판사의 의도), 꼭 필요한 주석이라면 해당 면에 자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석이 필요 없으면 없을수록 좋겠지만 필요한 주석이라면 그 목적에 맞는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교훈'의 경우는 후추 처리하여 책의 끝부분에 배치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한 편의 우화를 읽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을수록 좋은 우화이고, 대부분의 우화들은 실제로 그러하기에, 알고 보면 '교훈'이 곧 정답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해석의 여지를 미리 차단해버리면 왜 책을 읽는지 회의감이 들게 된다. 책을 읽는 것은 질문을 찾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구나 나름대로 대답할 있는 질문을 ‘해석적 질문’이라 하는데, 가령, "부자가 된 흥부는 왜 형을 찾아갔을까?"(<흥부와 놀부>라면) 같은 질문이다. 정답은 없다. 다양한 견해(의견)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대답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여우와 포도송이」의 경우도 교훈을 배제하고 조금만 더 생각하고, 질문을 찾으면 철학자 니체의 '르상티망'을 경험하지 않겠는가? 우화가 실린 해당 면에 '교훈'을 함께 싣는 것처럼 ‘A는 B다’와 같은 '작위적인' 연결은 위험성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지금 논하는 책과 관련하여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던질 수 있는 해석적 질문을 다룬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일 수 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만 이해하고(외우고)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읽지 않는다면, ‘플라토닉 러브’의 개념만 파악하고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이나 사랑에 대한 논의를 심화한 『파이드로스』를 읽지 않게 된다면 그런 삶(사고)은 얼마나 건조할 것이며, 풍부하고 기지 넘치는 대화를 이끌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그 유명한 비극의 정의('완결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전체적인 행동의 모방')하면서 '전체'에 대해 설명한다.  '전체는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갖는다.'는 것.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처음'과 '중간'과 '끝'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 하나마나 한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아래]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논의가 심각해질 것이니, 이만 하기로 하고. '50가지 생각 도구'를 섭렵하되, 그 과정을 살피는 독서로 이어지기를, 또한 가능하면(특히, 번역된 텍스라면) 한없이 원전에 가까운 번역을 골라 읽으면 좋을 것이다. 제대로 옮겼다면 결코 어려울 리가 없다. 젊은이들을 선동했다는(죄목 가운데 하나) 이유로 소크라테스가 사형 선고를 받았을 리 없다. 소크라테스가 그토록 어렵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면 말이다.

“진정한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담론보다는 이야기를 지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나는 원래 이야기꾼이 아닌지라 …아이소포스의 우화들을 운문으로 고쳐 썼단 말일세.”(플라톤 「파이돈」 61b)
독배를 마시고 죽던 날,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의 고백한다. 아이소포스와 겨룬다는 건 쉽지 않으며, 그와 겨룰 생각이 전혀 없다(아이소포스는 이솝의 그리스어 이름이다). 이솝의 내공을 당대의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 소크라테스가 인정한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는 독자라면 역시 일본인 저자가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쓴 『독학獨學』(이룸북, 2015)이란 책을 참고하기를. 분량도 많지 않고, 독서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는 이에게 특별한 정보를 준다. '스스로 공부하려고 해도 어쩐지 불안하고 미덥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용기와 지침을 주고, 독학 요령을 알려주는 데' 책을 쓴 목적이 있단다. 제목 때문에 독학을 위한 노하우를 담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터득한 독학하는 방법의 일부분은 소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평범하게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의문이 생긴다. 순수한 의문이 많이 떠오를수록 좋을 것이다.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의문이 지식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독학하는 동안 살아있는 지식을 얻게 된다. 사소한 의문 하나를 규명해가다보면 기대한 지식의 바다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을 이어본 것이다. 괜히 꼬투리를 잡아 보라는 달은 못(안) 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탓만 한 것은 아닌지, 숙고하게 된다. <능엄경>(불경)이었던가! 가끔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눈길을 주어야 할 때도 있다. 말이 길어졌다.

*      *      *      *      *      *

[아래] ;"'처음'은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 필연적으로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것이다. 반대로 '끝'은 필연적으로 또는 대게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다음에 다른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중간'은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다음에도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시학』 중 <시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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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5권에서 두 번째로 그려지는 군중 전투(트로이아가 우세한 상황)에 앞서 그리스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자기 부하들을 격려하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 체면을 잃지 말라고 역설한다.

 

"친구들이여! 사나이답게 행동하고 마음속으로 용기를 내시오.
격렬한 전투에서도 서로 남 앞에서의 체면을 존중하시오.
체면을 존중하는 자들은 죽는 자보다 사는 자가 더 많을 것이나
도망치는 자들에게는 명성도 구원도 없을 것이오.” _『일리아스』5: 529~532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란 말이 떠오른다. 충무공이 자주 사용했다는 이 말의 출처는 『오자병법』(필사즉생 행생즉사 必死卽生 倖生卽死)이다. 생사(生死)가 엇갈리는 절체절명의 전장에서 아가멤논이 강조하는 것은 '체면'이다. 대체 체면이 무엇이기에, ‘덕분에’ 살 수 있고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까? 평자들은 이 대목을 희랍 문화가 죄의식의 문화(guilt culture)보다는 수치의 문화(shame culture)에 가깝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하곤 한다.

 

덕분에’ 살 수 있고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수치의 문화(shame culture)
수치심(羞恥心)은 불명예를 안겨줄 성싶은 과거, 현재 또는 미래의 비행(非行)과 관련된 일종의 경멸 또는 무관심이다. 파렴치는 똑같은 비행과 관련된 일종의 경멸 또는 무관심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시학』 <수사학> 2권 6장 수치심) 아리스토텔레스는 들고 있던 방패를 내던지거나 싸움터에서 도주하는 경우를 대표적인 예로 제시한다. 우리 자신이나 돌보는 사람들의 명예를 실추시킬 성싶은 비행은 무엇이든 수치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것. 또한 수치심은 불명예에 대해 느끼는 '인상'이고 그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 때문에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명예를 부여하는 사람들의 '의견'에만 관심이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그들의 의견이 우리에게 중요한 (그) 사람 앞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인지상정이다. 그런 사람들이란, "우리에게 감탄하는 자들, 우리가 감탄하는 자들, 우리가 감탄 받고 싶은 자들, 우리의 경쟁자들, 그들의 의견을 우리가 존중하는 자들이다."(앞과 같음)
그리고 뒤집어 생각한다. 우리는 별로 믿을 게 못 되는 자들 앞에서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아이들이나 동물들 앞에서와 같이). 그런데, 또한 안면이 있는 자들과 안면이 없는 자들 앞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좀 다르다. 안면이 있는 자들 앞에서는 '실제로' 수치스러운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안면이 없는 자들 앞에서는 '관습적으로' 수치스러운 것에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

 

'실제로' 수치스러운 것과 '관습적으로' 수치스러운 것
플라톤(기원전 427~347)의 『향연』은 기원전 381년에 쓴 것으로 추정하는데, 비극작가 아가톤이 기원전 416년 레나이아 제(祭)의 비극 경연에서 처음 우승한 것을 자축하기 위해 베푼 술잔치(symposion)가 배경이다. 이 자리의 참석자들은 에로스(eros; 사랑)에 관해 발언하는데, 첫 번째로 나선 파이드로스는 신화적인 관점에서 에로스를 찬미한다. 그는 곧바로 에로스가 인간들에게 베푸는 가장 큰 은혜는 사랑인데, 그 사랑은 자기를 사랑해줄 연인을 갖는 것, 그리고 연인은 자기를 사랑해줄 소년을 갖는 것이란다. 나이차가 좀 있는 있는 남자들 사이에서 싹트는 '사랑'이 에로스가 준 최고의 선물이란다. 오늘날 말하는 동성애와는 차원이 다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나이어린 소년(연동)과 성인 남자(연인) 사이의 동성애를 사랑의 최고 경지로 보았다. (『향연』) 옮긴이는 사랑하는 자를 '연인'(戀人: erastes), 사랑받는 소년을 '연동'(戀童; paidika 또는 eromenos)으로 옮기고 있다.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연상의 연인)이 사랑받는 사람(연하의 연동)을 평생 동안 인도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은 '사랑'인데, 이것은 혈연, 공직, 부(富)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랑의 원칙으로 수치심과 자긍심을 제시한다. "수치스러운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훌륭하게 행동하는 것에 자긍심을 느끼는“ 이런 감정 없이는 국가도 개인도 위대하고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치스러운 행위와 관련하여 그것을 자신의 연동에게 들킬 때가 가장 괴롭지 않겠느냐, 역설적으로 자신의 수치스러운 행위를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한 사람만 꼽으라면 그의 연동(연인)이다. (물론 '수사학'보다는 '향연' 집필시기가 앞서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실제로' 수치스러운 것(중에서도 가장 수치스러운 것)을 피하고 싶은 거다. 아버지, 친구들, 그 밖의 다른 사람에게는 들킨다 해도 그 사람에게는 숨길 수 있었으면 하는데, 그가 연동이며, 연동에게는 연인이다.
'그러므로' 파이드로스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국가든 군대든 잘 다스려지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연인들과 연동들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 때 그들은 추한 것은 모두 멀리하고 서로 경쟁적으로 명예를 추구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나란히 서서 싸우게 되면 비록 소수라 해도 말 그대로 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연인)은 대열을 이탈하거나 무기를 내팽개치는 것을 연동에게 보이는 것을 가장 싫어할 것이며, 그런 것을 보이느니 몇 번이고 죽기를 택할 것이라고. 이때에 에로스가 불어넣어주는 것은 '용기'인데 사랑의 힘이다.(플라톤의 <향연>, 189e~197a 정리)

 

파이드로스, 연인들과 연동들로 군대를 구성하자
부왕 필립포스가 뷔잔티온으로 원정을 떠나고 없는 사이에, 알렉산드로스(흔히 '알렉산더 대왕'이라 부르는)는 16세밖에 되지 않지만 마케도니아의 섭정 겸 옥새 관리자로 뒤(宮)에 남게 된다. 이 기간에 어느 부족이 반란을 일으키는데, 알렉산드로스는 이들을 무찌르고 그들의 도시에 헬라스 식민시를 세우고 '알렉산드로폴리스'라고 개명한다. 2년 후, 18세 무렵에는 카이로네이아 전투(기원전 338년)에 참가해 헬라스 연합군과 싸웠는데, 그가 맨 먼저 테바이인들의 <신성부대> 대열을 돌파했다고 전한다.
카이로네이아 전투(기원전 338년)는 보이오티아의 카이로네이아 근교에서 벌어진, 필리포스(2세)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이 아테나이-테바이 연합군을 상대로 싸워 압도적으로 승리한 전투다. 마케도니아는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의 주도권을 잡는다. 앞서 아테나이가 델로스동맹의, 스파르테가 펠로폰네소스동맹의 주도국으로 그리스 패권을 잡았던 것처럼, 이후 마케도니아는 코린토스동맹의 맹주국으로 오랜 동안 그들의 시대를 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가 제압했다는 '신성(神聖)부대'가 흥미롭다. 그 당시에도 십자군 같은 것이 있었단 말인가!  

 

18세 알렉산드로스가 무너뜨린 '신성부대'
'신성부대(hieros lochos)는 테바이의 명문가에서 가려 뽑은 300명의 중무장 보병으로 이루어진 정예부대다. 이 부대는 150쌍의 동성애자들로 이루어져 유난히 결속력이 강했다. 이 부대는 기원전 371년 레욱트라에서, 기원전 362년 만티네이아에서 스파르테군을 격파하는 데 부분적으로 기여했으나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병력이 너무 적었다. 기원전 338년 아테나이와 테바이 연합군이 필립포스에게 패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다 옥쇄했다.'(『플루타르코스영웅전』, <알렉산드로스 전> 주44)
사료에 따라 조금 보충하면(출처: 위키백과), 신성부대는 기원전 378년에 보이오타르크(사령관)였던 고르기다스가 창설했는데, 그리스에서 최강이란 찬사를 받은 부대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테바이는 엘리스와 함께 동성애에 가장 개방적인 도시였다는 것. 테바이가 위치한 그리스 중부의 보이오티아 지방에서는 소년애로 알려진 헤라클레스 숭배가 활발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실된 저작에는 헤라클레스의 조카이며 종자이자 애인이었던 이오라우스의 묘소에 관한 묘사가 있는데, 그곳은 고대 테바이의 남성 동성애자 커플이 서로의 사랑을 맹세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플루타르코스는 '신성부대'라는 호칭이 이런 풍습에서 유래한다고 보았다).

 

헤라클레스의 동성애(신화)에서 '신성부대'라는 호칭 유래
플라톤의 『향연』 집필 연대가 기원전 381년이고, 이 대화편이 기원전 416년의 '향연'에서 나눈 이야기인 점을 상기하자. 파이드로스의 제안이 3년 후(기원전 378년) 테바이 군대에 도입된 것일까? 플라톤은 생전에 시켈리아(시칠리아)섬에 있는 시라쿠사이를 세 번 방문했다, 자신의 철인정치론을 현실에 도입해보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만약 ‘향연’의 언급이 신성부대 창설과 인과 관계라면, 플라톤으로서는 뿌듯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사랑의 힘으로 똘똘 뭉친 이들 테바이의 신성부대가 최후를 맞이하는 전투가 그들이 아테나이와 연합한 전투였다. 연동과 연인의 나이차를 감안할 때(이상적인), 150쌍의 그들은 요즘 군대의 '사수와 부사수' 쯤으로 대입할 수 있으리라. 사랑만이 아니라 전술을 전수하고 전수받는 관계이기도 했다면,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으리라. 하필 이들을 멸망시킨 이가 18세의 알렉산드로스였다는 점도 놀랍다. 굳이 인용문을 찾아 그의 면면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알렉산드로스야말로 출중한 외모에 지혜(인문학도)와 기예를 겸비한, 연인이라면 누구나 탐하는 연동이었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어쨌든 이 전투에서 테바이 신성부대 300명 중 254명이 전사하고 나머지 46명은 부상을 당하거나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이들의 숫자가 짝수인 점이 흥미롭지 않은가!) 

 

기원전 381년 『향연』 집필, 기원전 378년 '신성부대' 창설
(내친 김에) 한편, 이들 신성부대가 활약한 기원전 362년 만티네이아 전투는 테바이가 주도한 보이오티아동맹군과 아테나이+스파르테+만티네이아 연합군이 그리스의 패권을 놓고 치른 전투다. 보이오티아 동맹군은 에파메이논다스가 이끄는 보이오티아 군이 좌익을 맡았고, 이들과 맞서는 연합군은 만티네이아 군과 아카디아 군이 스파르테 군(스파르테 왕 아게실라오스 2세)과 함께 우익을 맡았다. 보병끼리의 싸움에서는 보이오티아 군과 스파르테 군이 격전을 벌인다. 그 와중에 에파메이논다스는 몸소 수하들을 이끌고 적들을 공격한다. 적의 총사령관이 최전선에 나가 있음을 간파한 스파르테는 에파메이논다스의 죽음이 승리의 관건이라고 보고 많은 손해를 보면서도 그를 공격하는데 집중했다. 그는 마침내 적이 던진 창을 가슴에 맞고 쓰러진다. 그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은 안티크라테스(스파르타인)라고 플루타르코스는 말하고, 파우사니아스(143~176년 활동 그리스 지리학자, 여행가)는 크세노폰의 아들 그륄로스라고 기록하고 있다. 직업군인이자 저술가인 크세노폰(기원전 428년경~354년경)의 두 아들이 이 전투에 참전했는데, 장남 그륄로스가 전사한 것. 크세노폰의 사망 시기는 정확하지 않은데(기원전 354년경으로 추정), 그가 쓴 『그리스 역사』가 다루는 마지막 사건(기원전 350년대 중후반에 일어난)을 기준으로 가늠한다. 크세노폰이 쓴 『그리스 역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의 막바지(기원전 411년)와 그 이후 4세기 초반의 그리스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투퀴디데스가 그의 '역사'(『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완성하지 못하고, 쓰기를 멈춘 시점(기원전 411년 가을)에서 기원전 362년 여름까지 49년 동안의 헬라스(그리스) 역사를 크세노폰은 서술했다. 크세노폰의 『그리스 역사Hellenica』 마지막 Ⅶ권이 '기원전 369년~기원전 362년'인 것.

66세쯤의 크세노폰은 장남이 전사한 만티네이아 전투를 그의 역사에서 다루었을 것인데, 그런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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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2-26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을 때 자주 등장하던 ‘카이로네이아 전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마침 플루타르코스의 고향도 카이로네이아여서 더욱 흥미롭고, 숱한 후세의 사람들이 그리스 최고의 영웅으로 인정하던 에파메이논다스(키케로는 그를 ‘최초의 그리스인‘이라 불렀고, 플루타르코스를 ‘최후의 그리스인‘이라 불렀지요.)가 스파르테군을 격파한 레욱트라, 만티네이아 전투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담긴 50명의 인물 가운데 에파메이논다스와 대(大) 스키피오의 전기가 후세에 전해지지 않는 건 두고두고 아쉽기만 합니다. 4세기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람프리아스 목록‘(플루타르코스의 작품 목록)에는 그들 두 사람의 전기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던데 말이지요.


timeroad 2019-03-09 01:00   좋아요 0 | URL
오이디푸스 아버지 라이오스가 펩롭스의 궁전으로 피난 갔다가 그의 아들 크뤼십포스에게 반해-이때부터 남자들 사이에 동성애가 시작되었다고 한다.-어린 소년을 납치하자 펠롭스가 라이오스를 저주한다. 그러자 라이오스를 벌주기 위하여 헤라가 테바이로 스핑크스를 보내는데.. <오이디푸스 왕>의 스핑크스 주석(천병희) 일부입니다. 테바이가 동성애에 관대했다는 것이, 이유가 있었네요. 다음 글을 준비하다가, 긴가민가해서 이 글을 수정할까, 했는데 여기에 메모하고 갑니다. 그리스 등 일대의 고지도를 구해서 벽에 붙여야 할지 지명에는 약해서요. 최근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천천히 읽었는데, 시간도둑이더군요. 뒷편 지도 확인하느라 정신없고.. 감사합니다.

oren 2019-02-26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티네이아 전투에서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한 크세노폰의 반응은 『몽테뉴 수상록』에도 나와 있어서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옛날에 그 대목을 필사해 놓은 게 있어서 덧붙여 봅니다.
* * *
가장 심한 고난에 대한 위안이며 진정제

크세노폰은 화관을 쓰고 제물을 바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아들 그릴로스가 만티네아의 전투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이 소식을 들은 첫 충격으로 화관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대단히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화관을 다시 집어서 머리에 썼다.

에피쿠로스도 역시 그의 종말에는 자기 문장의 영원성과 유용성에 위안을 느꼈다. ˝영예와 명성이 수반하는 모든 노고는 견디기가 수월하다.˝(키케로) 똑같은 상처이며 똑같이 처지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군대의 장수는 병사만큼 그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크세노폰은 말하였다. 에파미논다스는 승리가 자기 편으로 넘어 왔다는 소식을 받고,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죽어 갔다. ˝이것이 진실로 가장 심한 고난에 대한 위안이며 진정제이다.˝(키케로) 그리고 이러한 사정들 때문에 사물 자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빗나가며 헷갈려진다.

timeroad 2019-02-27 03:3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어떤 책은 가까이 있어도 자주 펼치지 못하는데 몽테뉴 수상록이 그런 것 같고요, 이런 대목이 있었군요. <그리스 역사>가 다룬 마지막 시점과 아들이 죽은(전투) 시기가 거의 같은 시기 같아(더 살펴야해서, 그러다가 글을 맺었지요. 신라의 화랑 관창은 아버지 김품일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16세의 나이에 잘 알려진 대로 황산벌 전투에서 죽지요. 살아 돌아온 아들을 꾸짖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어디까지가 팩트일까(가짜 뉴스가 횡행하니 별 소릴 다하는 군요) 눈앞에서 자식을 보내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처자식을 죽이고서 출전한 계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런저런 생각했네요. 크세노폰이 군인이었다고는 하지만 절규하는 모습이 그답다는 생각은 들어요. ,
 

플라톤(기원전 427~347)은 <향연>을 기원전 381년에 쓴 것으로 추정하는데(집필 시기), 비극작가 아가톤이 기원전 416년 레나이아 제(祭)의 비극경연에서 처음 우승한 것을 자축하기 위해 베푼 술잔치(symposion)가 배경이다.
크세노폰(기원전 428년경~354년경)도 플라톤과 동일 제목의 대화편을 남겼다. 크세노폰의 <향연>은 기원전 421년 대(大)판아테나이아 축제 때 칼리아스가 자기 집에서 베풀었다는 '가상의' 만찬회에서 있었던 일을 (크세노폰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비록 ‘설정’이라 해도 작중 ‘향연(대화)’ 시점을 크세노폰이 명기한 것은 당시의 소크라테스의 생각(철학)을 추정하는, 단초가 된다. 당시의 소크라테스라면 이런 식으로 발언했을 것이라는, 제자의 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향연>과는 달리 크세노폰이 이 대화편을 쓴 시점은 특정할 수가 없다.

 

한 작가가 특정 작품을 ‘언제’ 썼을까, 하는 문제를 푸는 데는 그의 전기적인 기록을 살핌으로써 가능하다. 크세노폰의 대표작 중 하나인 『페르시아 원정기』(이하 ‘원정기’)에 고스란히 담긴 그의 ‘원정(용병 참여)’은 그가 직업군인이자 저술가로 생을 일관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크세노폰은 이 원정을 떠나기에 앞서(기원전 401년 3월 이전) 소크라테스를 만나 상담한다(‘원정기’에 수록). 만 2년에 걸친 원정이 일단락되었을 때는 기원전 399년 봄으로, 그해에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는 사형을 당한다. 원정이 끝났음에도 크세노폰은 곧바로 귀국하지 못한다(그리고 잠시라도 언제쯤 아테나이에 들렀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지켜볼 수 없었고, 멀리서나마 비보에 애통해하였을 것이다. ‘원정기’는 여느 저술보다 크세노폰의 자전적인 저술이기에 '전기적' 관점에서 크세노폰을 추적하는데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이력을 따라가는 글은 별도로 다루기고 하고) 크세노폰에게 <향연>은 어떤 의미였을까, 관련된 저작들을 살피면서 생각을 펼쳐볼까 한다. 

 

크세노폰이 아테나이에서 추방된 시기(기원전 394년)를 기점으로 이후 시골에서 살며 집필활동에 전념했다는 20년을 계산하면 기원전 374년까지가 된다. 또한 그가 코린토스(펠로폰네소스반도의)로 거처를 옮기기(기원전 371년) 전까지 20년을 집필에 전념한 시기(기원전 391~370년)라고 볼 수도 있다. 아테나이에서 추방당한 그가 스파르테가 준 (올룀피아의) 영지에 정확히 언제부터 머물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추방령이 철회되어 기원전 366년 조국(아테나이)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나이는 62세쯤이 된다. 그렇다면 그는 집필에 전념한 시기에만 집필을 했을까? 다산(정약용)이 유배지에서 18년을 그리 살았던 것처럼.
그런데 그의 사망 시기 또한 특정할 수 없어 (그의 다른 저작인) 『그리스 역사』에서 그가 다루는 마지막 사건을 근거로 추정하고 있다. 『페르시아 원정기』(다른 원정기들에 반론을 제시하는 데서) 또한 말년에 쓴 것으로 보는 점 등(천병희의 옮긴이 서문)에 따르면, 크세노폰은 죽는 순간까지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그가 <향연>을 언제쯤 쓴 것일까, 그 시기를 특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다만 그 집필 시기가 플라톤의 <향연>(기원전 381년)보다 앞서는 것일까, 그 이후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답할 수가 있을 듯하다.

 

크세노폰이 쓴 일련의 글들(<소크라테스 회상록>, <향연>,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거의 같은 시기에 쓴 '소크라테스 회상‘ 모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회상록>에서 그는(당시 자신은 페르시아에 머물렀고, 이후에도 한동안 아테나이에 올 수 없었기에) 소크라테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본 이에게 듣기도 하고, 관련된 기록들을 살폈음을 밝히고 있다. 관련 기록물에는 플라톤의 관련 대화편들이 당연히 포함되었을 것이다. 또한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고'에 속하는 글들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소크라테스-플라톤'(플라톤에 의해 재구성된 소크라테스의 삶과 철학) 문제를 감안하고 쓴 것으로 보인다. 아니 누구보다도 먼저 플라톤의 ’권위에 의한 논증‘ 작업에 이의제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련의 다른 글들보다 (크세노폰의) <향연>에서 그런 흔적(집필 동기)이 두드러진다.

"나는 진실로 훌륭한 사람들의 행동은 진지한 것뿐 아니라 장난삼아 한 것도 언급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경험을 했기에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밝히고자 한다."

크세노폰의 <향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물론 플라톤의 대화편들에서도 소크라테스는 특유의 '산파술'에 의거한 대화의 진행방식(언어유희처럼 보이기도 한다)이나 곳곳에서 재담을 즐길 뿐만 아니라 밉지 않게 짓궂은 장난을 행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크세노폰은 그런 정도로는 평소의 소크라테스의 진면목을 제대로 담았다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향연'이 열렸다는 기원전 421년, 대(大)판아테나이아 축제 때 칼리아스가 자기 집에서 베풀었다는 가상의 만찬회라는 '설정' 자체에서부터 뭔가가 있다.
그리고 그 ‘뭔가’는 플라톤의 <향연>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고 플라톤(<향연>)을 본격적인 패러디했다고 보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서두에서부터 패러디적인 요소를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다만 크세노폰은 자신의 <향연>을 통해(‘의해’가 아니라), 자타가 공인하는 소크라테스의 적통 제자인 플라톤에게 '이의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집필 시기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뉘고, 후기로 나아갈수록 소크라테스의 영향에서 벗어나 플라톤 자신의 철학(혼불멸론이나 이데아론 같은)을 설파하고 있다. 하지만 대화편 전체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소크라테스-플라톤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향연>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에 속하는데, 적어도 크세노폰은 <향연>을 비롯하여 그 이전에 쓰인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섭렵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제 좀 스승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라고!" (‘절제, 절제, 절제’ 스승을 앞세운 마케팅에도 '절제'가 필요함을) 크세노폰은 플라톤에게 일침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플라톤의 <향연>은 기원전 416년의 일을 다룬 것이고, 크세노폰의 <향연> 기원전 421년의 일을 다룬 것이니, 플라톤이나 크세노폰이나 어려서 그 '향연' 자리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토론 주제로 두 번의 ‘향연’은 불과 5년 차이인데 소크라테스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다는 말인가? 또한 플라톤의 <향연>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는 이가 상기(想起)한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설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단한 발언들이 쏟아진 자리였다고 하자. 그러나 기억을 재구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필요에 따라 덧붙여지고, 재구성을 하였을 것이다. 크세노폰은 플라톤 당신도 그 자리에 참석한 당사자가 아니면서 너무 '진지하게' 술잔치에서(나) 나눴을 법한 얘기를 무겁게 전개하는 것 아냐, 반문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나의 스승이기도 했어!' 비록 직업군인으로서 전선을 누비고, 추방당해 오랜 기간을 고국(아테나이)을 떠나 있(었)지만, 크세노폰은 플라톤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초상에 '불편함'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나만 불편한가?’  크세노폰의 독백이 행간에서 읽히는 것이다.

 

 

플라톤의 <향연>에 대한 패러디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로저 스크루턴(1944~ )의 『프뤼네의 향연』(김재인 옮김, 민음사, 1999)을 우연히 읽었다. 소설이라고 해서 ‘그렇고 그런’ 책이다 싶어 서가에 꽂혀 있을 뿐이었던 책이다. 비록 철학자가 쓴 철학소설이지만, 플라톤의 <향연>에 대한 본격적인 (그리고 노골적인) 패러디로, 플라톤주의자들은 금서(禁書) 목록의 1호로 지정하고 싶은 책일 것이다. 본래 『프뤼네의 향연』은 저자의 『크산티페의 대화』(한 권으로 엮은)이란 저서에 수록된 대화편(철학소설) 가운데 하나인데, 한국어판에서 독립시켜 한 권으로 펴냈고, 나머지는 대화편들은 『크산티페의 대화록』이란 별권으로 출간되었다.
『프뤼네의 향연』의 주제도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향연>이 그렇듯이 '사랑'이다. 그런데 저자는 책 뒷부분에에 수록한 글(<‘프뤼네의 향연’과 그 안에 묘사된 인물들>)에서 의미 있는 언급을 한다. ['향연'은,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것 이외에도 몇몇 예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4세기 아테네의 정착된 문학형식이었다.]라는 대목이다. 출처는 J. 마르틴 <심포지움: 한 문학적 형식의 역사>(Paderborn, 1931)다. 아마도 '기원전 4세기'를 말하는 듯한데, 인용에는 '4세기'라고만 되어 있다. 앞서 기원전 얘기를 하고 있으므로, '기원전'을 생략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인용에서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것 이외에도'라는 대목이 중요하다고 나는 보았다.
『프뤼네의 향연』은 플라톤의 <향연>과는 대조적으로 등장인물이 모두 여인들이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는 그의 미망인 크산티페다.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라는 용어의 의미는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 기원한다.(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 하나로 다 알았다고 하는 것과 비교할만한 이야기다) 어쨌든 '위키백과'에 따르면, '플라톤 사랑은 순수하고 강한 형태의 비성적(非性的)인 사랑'이다. 그러나 『프뤼네의 향연』에서는 육체적인 사랑의 가치를 폄하하고 시종일관 근엄한 플라톤의 이미지는 심하게 훼손된다(물론 소설이다). 『프뤼네의 향연』에는 플라톤의 누이와 그 누이의 딸이 ‘향연’에 참석하여 나름의 주장을 필치고, 플라톤마저 간접적으로 등장하여 <향연>(플라톤) 패러디의 임계점을 넘나든다. 크산티페의 우정 어린 변호에 힘입어 플라톤 또한 ‘트라우마’에서 해방되기는 하지만, <19금>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위험한’ 발상을 이 소설은 서슴지 않는다.
'더 이상의 패러디는 아마도 없다'라고 해야 할까? 절판되어 도서관에서나 구해 읽어야 할 상황이라(알라딘 정보) 아쉽지만 말이다. 로저 스크루턴은 그 자신이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크세노폰의 <향연>에서 용기를 얻어, 이런 철학소설을 쓰지 않았나 싶다(움베르토 에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장미의 이름』을 구상했듯이). 로저 스크루턴에 비하면 크세노폰의 <향연>은 플라톤의 '작품'을 점잖게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또래이면서 집필 시기도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의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크세노폰의 '용기'가 돋보인다. 사랑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플라톤이 합리적인 논증 형식을 고집했다면, 크세노폰은 철학적 '직관直觀'에 따라 시원스럽게 가상의 '향연' 한마당을 펼친 것이다.

 

 

-천병희의 (원전번역) <향연>은 세 편의 대화편들과 함께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2012년, 양장본)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다(현재는 2017년 개정판이 나와 있다). (아마도) 개정판을 펴내면서 ‘푸른시원 시리즈’로 『향연』(2016.9.)을, 이어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다룬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2017.3.)을 반양장본으로 펴내, 새롭게 다듬은 번역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하였다. 특히, 『향연>에는 철학자 양운덕의 해설(<사랑의 진리를 찾아서_<향연>읽기, 사랑의 향연에서 진리의 향연으로>)을 곁들여 사랑의 탐구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고 있다.
"철학적 에로스는 '주체의 금욕'을 바탕으로 함께 '진리로 상승하는 길'을 찾는다. 이처럼 지혜를 추구하는 사랑은 새로운 사랑방식을 제시하고, 사랑을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는 '새로운 연예술이자 새로운 '생활양식'이다."
해설의 끝부분 언급은 이렇다. 이 해설은 자신의 책 『문학과 철학의 향연』(문학과지성사) 제4장, 『사랑의 인문학』(삼인) 제2장을 수정·보완한 원고라고 한다. 원전번역과 함께 이처럼 고전 자체가 함유한 ‘미덕’을 읽는 데 도움을 주는 ‘후속작업’에 박수를 보낸다.

-천병희가 원전번역한 크세노폰의 「향연」은 『소크라테스 회상록』에 「소크라테스 회상록」,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절판되었지만 『프뤼네의 향연』(로저 스크러턴, 김재인, 민음사, 1999)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프뤼네의 향연>을 읽으면(철학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플라톤의 『향연』을 다시 펼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비로소 크세노폰의 『향연』(의 가치에도)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프뤼네의 향연』과 세트로 동시에 출간된 『크산티페의 대화』(1999, 절판)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크산티페의 대화』에는 <크산티페의 국가>, <페릭티오네의 파르메니데스>. <크산티페의 법률>까지 세 편의 대화편(철학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들만 보면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법률><파르메니데스>(박종현/천병희/정암학당 필진들에 의해 [원전]번역되어 있다)들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크산티페의 대화』는 플라톤의 주요 대화편들에 대한 패러디로 플라톤 대화편 전편과 관련된 '소크라테스-플라톤'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한다. 어쩌면, 인간 그리고 스승 소크라테스의 미덕을 플라톤이 여러 대화편에서 설파하려 한 것을 한 권에 담아낸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과 『크산티페의 대화』는 저마다의 역할을 하면서 상당수 난해한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접근하는 가이드 역할을 하게 되리라, 필자는 그렇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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