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행된 <메나드로스 희극>에는 고대 그리스 '신희극'을 대표하는 메난드로스의 현존 작품 4편이 실려 있다. 그가 생전에 100여 편의 작품을 썼다는데, 상당수를 제목만 파악할 수 있는 정도이고, 유실된 상태다. 다만 작품의 파편이랄 수 있는 대사 단편들이 명언들로 남겨져 여러 글들에서 인용되고 있다. 20세기에 이집트에서 다량의 파피루스가 발견되었는데, 덕분에 4편의 그의 희극들을 복원할 수 있었다. 수록된 4편의 글 가운데, 필자는 <사모스의 여인>라는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볼까 한다. 개연성이 있는 사건 혹은 에피소드는 훗날의 작품들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뤄지기 마련이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변용되는지, 그것을 일종의 진화라고 볼 수 있을지, 반드시 선행 작품을 참고한 끝에 새로운 작품에서의 유사한 설정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사는 것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1)2003년 출간된 천병희의 최초 원전번역 (2)최근 펴낸 개정증보판 메난드로스 희극 (3)은 아리스토파네스 일부 작품과 메난드로스의 <사모스의 여인>을 수록한 책. 이상 세 권의 책에는 <사모스의 여인>이 수록되어 있다. <사모스의 여인>은 메난드로스 희극들이 왜 '풍속연극'으로도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는 친숙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결혼 계약’으로도 불리는 신희극 「사모스의 여인」은 약혼 상태인 예비 신랑(모스키온)과 예비 신부(플랑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 상태에서 시작한다. 두 집안은 이웃사촌이고, 곧 사돈이 될 두 아버지, 데메아스(신랑의)와 니케라토스(신부의)가 해외에 나가 있는 사이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둘의 해외 출장(혹은 여행) 기간은 꽤 길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데메아스에게는 젊은 동거녀가 있는데(크뤼시스는 사모스 출신으로, '사모스의 여인'이다.) 예비 부부의 아이가 태어날 즈음 자신의 아이를 유산을 한 상태이다. 크뤼시스는 두 젊은이에게 제안한다. 행복한 출발을 위해 '속도위반'으로 낳은 아이를 자기가 낳은, 데메아스의 아이라고 하겠다고. 그렇게 일은 마무리된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온 두 아버지들은 결혼식을 서두르고, 결혼식을 준비하던 데메아스는 집안의 유모가, 그 아이는 아들 모스키온의 아이라고 말하는 것을 엿듣게 됨으로써 충격을 받는다. 그는 곧바로 크뤼시스와 아이를 집에서 내좇고, 둘은 니케라토스의 집으로 가는데, 그녀는 니케라토스의 아내와 돈독한 사이다. 그 집에는 아이의 생모인 플랑곤이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니케라토스는 딸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당황한다.

신랑 모스키온은 어린 시절에 데메아스에게 입양된 아이로, 물심 양면으로 친아들도 받지 못할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아직 청년임에도 아버지 덕분에 연극 경연의 코로스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놀라운 사실을 들었음에도 아들의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아버지. 자신의 동거녀와 잠자리를 가져, 아이를 낳은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동겨녀의 유혹 때문에 실수한 것이라고 아들을 옹호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신부 측에 알리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런 마음을 알 수 없는 모스키온의 고민은 깊어지고 신부 아버지에게 자기 아이라고 고백하는데, 여기에서 새로운 오해가 시작된다. 자신과 신부 플랑곤 사이에 태어난 아이라는 말이 빠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근친상간의 패륜아를 사위로 맞이할 뻔 했다! 니케라토스는 극노한다. 결국 두 아버지들의 오해가 풀리지만, 절망한 모스키온은 해외용병으로 나감으로써 집을 떠나려 한다. 친자식보다도 자기를 사랑하고 보살펴준 아버지가 자신을 오해했다는 사실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오해가 풀렸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결국 이야기는 헤피엔딩으로 끝난다. *이 작품은 기원전 317년과 307년 사이에 무대에 오른 것으로 추정한다. 일부 누락된 부분이 있지만, 플롯과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복원된 상태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른바 '속도위반'이 예나 지금이나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에게서 문제가 되고 있다. 당연한 사실이 왜 새롭게 다가온 것일까? 피임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20세기 이집트 파피루스의 발견으로, 인류의 피임의 역사는 기원전 187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약이며 기구에 이르기까지 현대에도 예기치 않은 임신이 생기는 상태이니, 옛날에는 속도위반이나 예기치 않은 임신이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둘째, 당시에도 '속도위반'을 수치로 여겼다는 점이다. 하여 부담 없이 출발하기를 바라는 것인데, 사모스의 여인 플랑곤의 배려가 돋보인다. 그러나 과도한 친절은 금물이다. 그 배려로 인해 플랑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사심은 없는 것일까?

셋째, 근친상간의 일종으로 파악한 니케라토스의 반응이다. 그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로 오해하는 것은 당연한데, 빗대는 예가 흥미롭다. 

"테레우스와 오이디푸스와 티에스테스와 그밖의 다른 자들이 저질렀다고 하는 근친상간을, 자네(모스키온)가 무색하게 만들어버렸구먼."

물론 크뤼시스는 말 그대로 데메아스의 동거녀일 뿐이다. 본부인도 아니며, 재혼을 약속한 상태도 아니다. 그녀는 젊어서 아들과 나이차가 크지 않는 듯하다. 그녀의 젊음은 보통의 아버지라면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늙은 남자(아버지)가 젊은 남자(아들)에게 젊은 동거녀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모스키온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점은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일까? 물론 오해하는 상황이지만, 관계로는 근친상간이지만 친자식일 때보다는 심각성은 덜한 상태다. 다만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둥, 큰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여기에서 아테나이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테세우스 관련 신화와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1)천병희와 (2)강대진이 각각 번역한 일명 '도서관'으로 불리는 아폴로도로스의 저작을 통해, 테세우스의 신화의 원형을 만날 수 있다. 책의 후반부 부록과도 같은 '요약집'이라고 실려 있는데, 책의 본문에 해당하는 '도서관' 후반부에서 '요약집' 전반부에 걸쳐 테세우스와 관련된 신화가 소개되어 있다. 

테세우스는 아마존 여인에게서 휩폴뤼토스라는 아들을 얻은 상태에서 아내가 죽자 크레테의 미노스의 딸인 파이드라 공주를 새 아내로 맞이한다. 파이드라는 테세우스에게 아카마스와 데모폰을 낳아주는데, 테세우스의 아들인 휩폴뤼토스를 사랑하게 되고, 자기와 동침하자고 유혹한다. 그러나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는 휩폴뤼토스(남자 아르테미스 여신이라고 할 수 있다)는, 그녀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가 이런 사실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칠까 두려워진 파이드라는 정황을 만들어 그가 자신을 겁탈했다고 모함한다. 테세우스는 포세이돈에게 아들이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마차를 몰고 해변길을 달리던 휩폴뤼토스는 파도에 휩쓸려 비참하게 죽고, 파이드라도 자신의 사랑이 알려지자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다.

 

이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계모 파이드라 이야기는 에우리피데스에 의해 <휩폴뤼토스>라는 비극으로 만들어지는데, 천병희의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1>에 수록되어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테세우스 전'도 참고할 만한 고전이다. 전체를 번역한 동서문화사의 번역에서 테세우스 일대기를 확인할 수 있다. 천병희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원전번역이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주요 영웅 5인씩, 10명만을 다루고 있고, '테세우스 전'은 없다. 동서문화사 번역에는 주석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다희 번역의 영웅전이 여러 권으로 나오고 있는데, 1권에서 테세우스를 만날 수 있다. 

 

 

 

 

 

 

 

 

 

 

 

 

 

 <가운데가 아버지(이윤기 기획) 선생의 유지를 받든 딸 이다희가 우리말로 번역한 영웅전의 1권에 테세우스 편이 수록되어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은 흘러간 가요의 한 대목처럼, '사랑해선 안 될 사람'(전처의 아들)을 '사랑하는 죄'를 짓게 되는 파이드라의 슬픈 사랑을 다룬다. <사모스의 여인>에서 아버지 데메아스는 오해하는 상황이기는 하나, 테세우스처럼 신에게 아들을 죽여달라는 기도를 올리지 않는다. 

 

에우리피데스는 '고희극'의 대표시인인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에 아이스퀼로스와 함께 실명으로 등장하는 비극 시인이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2>에는 <개구리>라는 희극이 실려 있다. 기원전 405년에 공연된 작품으로 40세의 아리스토파네스가 집필하고 연출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등장인물인 디오뉘소스(신)는 헤라클레스로 분장해 저승으로 내려가는데, 위기에 처한 아테네 시민들을 일깨울 (비극)시인 한 사람을 데러오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3대 비극시인은 이미 고인이 되어 저승에 가 있는 상태. 아이스퀼로스와 에우리피데스 중 누가 최고인지 겨루고 디오뉘소스가 심판을 본다. 디오뉘소스는 대결에서 승리한 아이스퀼로스를 지상으로 데려가고, 에우리피데스가 승복하지 않는 가운데, 빈 옥좌는 소포클레스가 차지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기원전 404년에 아테네의 패배로 끝나는데, 기원전 405년은 승전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지만 아테네의 패배가 기정사실이 된 상태다. 

이 작품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자신의 공로를, 비극에서 필요없이 산만한 표현을 줄이고 우리에게 유용한 일상사를 무대에 올려 새로운 비극을 개척한데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아이스퀼로스가 공격한다. 자신은 시민들이 본받을 수 있는 점잖은 영웅들을 묘사했다. 한데 에우리피데스는 뚜쟁이들(<힙폴뤼토스>, 파이드라의 유모), 신전에서 아이를 낳는 여인들(<아우게>의 여사제), 오라비와 살을 섞는 여인(<아이올리스>의 카나케), 자식을 죽이는 여인(<메데이아>) 등 건전한 시민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악한 내용만을 다뤘다고 비난한다.

'고희극'을 대표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는 일종의 문학평론 혹은 공연리뷰인 셈이다. 이 작품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아이스퀼로스의 입을 빌려, 에우리피데스를 비판하는 근거가, 훗날 아리스토파네스 자신과 달리 보통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리는 메난드로스의 출현을 예고하는 듯하다. 소재와 기교에서 메난드로스 희극은 3대 비극작가 중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과 유사한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들은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려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역할보다는, 희극이라는 도구를 써서 당면한 국가/사회의 굵직한 문제들에 처방을 제시하는 여론에 가까웠다. 관객들 중 누구일 수도 있는 보통 인물을 무대에 올리고, 그들이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소재에서 웃음을 찾아낸 메난드로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다음과 같이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개구리>를 패러디한다면?

메난드로스가 작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이 사라진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고자, 다시 디오뉘소소 신을 불러, 저승을 찾게 한다. 아리스토파네스와 메난드로스가 자신이 해결사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디오뉘소스가 심판을 본다. 희극이란 중차대한 국가의 문제를 다뤄야 하며, 비판 기능을 해야 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주장한다. 희극이란 웃음을 선사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지요, 메난드로스는 대선배에게 감히 맞선다. 극과 극이 대립하는 극이 되지 않을까

결국 <비극의 창시자-아이스퀼로스: 인간 중심의 비극 에우피피데스=아리스토파네스:메난드로스>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메난난드로스는 시민 관객들이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휩폴리토스>를 공유하고 있음을 전제한 상태에서 <사모스의 여인>을 무대에 올린 것은 아닐까?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혹은 작품 속 상황을 자기 희극의 또 다른 배경으로 활용(전제)한 건 아닐까? 훗날 <페드라>('파이드라'의 영어)라는 영화가 파이드라 공주를 중심으로 극화되듯, 메난드로스는 '사모스의 여인'을 갈등의 중심에 놓는 <사모스의 여인>으로, 비극 <휩폴뤼토스>의 희극 버전을 새롭게 만들었단 생각이 든다. <사모스의 여인>에서 딸의 아버지가 예비사위를 근친상간을 한 인간 말종이라고(오해하여), 거침없이 쏟아내는 부정한 사례들에는 없지만, 테세우스-파이드라-휩폴뤼토스의 신화(비극)는 이 희극과 씽크로율이 가장 높은 비극이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세계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희극작가이다. 그에 비하면 몰리에르는 무뎌 보이고, 셰익스피어는 어릿광대 티가 난다."

랑프리에의 <고전사전>에 실린 평가이다. 그렇다면, 당대의 시민들이 일상에서 겪는 실감나는 소재를 무대에 올려, 오늘날 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는 세련미와 웃음을 창조한 메난드로스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다음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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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아스 / 프로타고라스 - 소피스트들과 나눈 대화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불법사찰 폭로 뒤 생활고 '장진수 돕기' 모임 꾸린다>(한겨례, 2014.02.26)는 기사를 읽었다.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을 돕기 위한 모임이다. 우리 사회의 내부고발자들이 폭로 이후의 삶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우리 사회 이런 세태가 슬프게 한다. 떠오르는 이름들이 적지 않다. 이문옥 감사관, 윤석양 이병, 김용철 변호사, 표창원 교수.. 

나는 이런 소식을 듣을 때마다, 북해의 청어잡이 어부 이야기을 떠올리곤 한다. 생산지의 청어를 살려서 최종 소비지역까지 옮길 때, 청어가 가득한 어항에 메기 한 마리씩을 넣어서 옮기니 거의 대부분이 살아있더라는. 이 아이디어는 동료 어부들도 공유하게 된다. 작년 이맘 때, 안철수 의원 귀국을 두고, 서울대 조국 교수는 SNS에 '한국 정치판의 살찌고 게으른 청어를 긴장하게 하는 메기의 귀환'이라고 올려 화제가 되었다. 과연 그의 새정치가 어떤 모습으로 결실을 낼 것인지?


천병희 선생의 플라톤 대화편 신간이 나왔다. 대표 소피스트들과의 문답을 담은 고르기아스/프로타고라스다. 두 대화편 원전번역으로 나와 있는 상태고, 둘 다 읽었음에도, 새로운 느낌으로 읽었다. 플라톤과의 새로운 그리고 생생한 만남이다. 작년 이맘때 출간된 플라톤국가원전번역이 호평을 받은 바 있거니와 두 대화편을 묶은 파이드로스/메논과 더불어, 플라톤 철학의 정점인 국가를 이해하는 '징검다리'다. 현재 우리말로 잘 풀어놓아, 새로운 모습의 소크라테스를 다시 만날 수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말 그대로, 대화를 담은 것들이다. 때론 연극 대본처럼 대화자의 이름이 있고 대화만을 고스란히 담는가 하면, 그래서 내가 말했네. "~~~"와 같이 대화 내용을 정리하는 형식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플라톤의 대화편은 대담의 기록이기에, 대화에서 엿볼 수 있는 '말맛'을 제대로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억이 맞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천병희 선생이 단독으로 번역출간한 첫 책일 것이다. 이처럼 시학의 번역가답게, 그 시학이 다루고 있는 그리스의 비극과 희극 작품 전편을 번역했는데,  그리스 비극 전집(전4권), 아리스토파네스희극전집(전2권), 메난드로스희극(1권, 2014년 2월)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실제 연극 무대에 올랐던 작품이기도 하고, 새롭게 각색되어 국내외 무대에 오르는 희곡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이들 희곡들은 '레제드라마(상연보다는 읽힐 목적으로 쓴)로서 손색없이 독자들을 찾아간다. 극적인 효과가 반감되지 않고 읽히게끔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드라마들을 우리말로 고스란히 옮긴 번역가의 노하우가 플라톤 대화편 번역에서도 빛나고 있다.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는,  고르기아스와 그의 추종자들인 폴로스와 칼리클레스까지 세 사람과 1대 3의 토론대결을 벌인다. 거기에다 고르기아스의 추종자들이 대화마당 곳곳에 앉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고르기아스가 청중들을 의식하는 멘트를 날리다가 자신의 발목이 잡는 경우가 있는데, 달리 말하면 대화에 임하는 소크라테스의 스트레스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그중에서도 나는 '소크라테스와 폴로스'의 논쟁을 재밌게 읽었다. 앞서 제시한 내부고발이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부패를 추방하고, 투명한 사회를 이루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떠올렸기 때문이다.

'수사학'은 의술로 분장한 '요리술', 체력단련으로 분장한 '치장술'과 같은 '아첨'일 뿐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단언한다. 이런 수사학이 제대로 사용되는 때는 어느 때인가, 불의에 관한 논의에서 구체화된다. 소크라테스의 논변을 요악하면 다음과 같다.


1)불의를 당하지 않는 사람(이 제일 행복하다),

2)불의를 당하는 사람,

3)불의를 행하고 처벌을 받은 사람,

4)불의를 행하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


들이 각각 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더욱 불행한 사람이다. 폴로스가 생각하는 행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불의를 행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불의를 당하는 자가 있다. 그런데 불의를 행하는 것은[위 3)과 4)] 불의를 당하는 것[2)]보다 나쁘다. 그런데 불의를 행하고도 응분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사람[4)]은 본성상 가장 나쁜 것이자 나쁨의 으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엇보다 불의를 행하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고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사는 동안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불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그런 불의를 행했더라도 마땅한 대가를 치름으으써 가장 큰 악에서 벗어날 길은 열려 있다. 다만 그 길을 걷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불의를 행했다면, 그 자신이든 자신이 돌보는 사람이든, 최대한 빨리 응분의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곳으로 ‘자진해서’ 가야 한다. 아프면 의사를 찾아 병원에 가듯. 그는 재판관에게(우선 경찰서에 가서 자수해야) 가야하며, 불의라는 질병이 고질이 되어 그의 혼(魂)을 치유할 수 없을 만큼 곪게 하는 일이 없도록 서둘러야 한다. 바로 이 순간이, 불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첨쯤으로 여겼던 수사학(연설술)이 제 역할을 할 때다. 수사학이 제대로 쓰일 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제시하는 수사학의 쓰임은 통설을 벗어난다.

 

“자신이나 부모나 동료나 자식이나 조국이 불의를 행할 때 그 불의를 변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수사학은 우리에게 쓸모가 없네. 폴로스. 우리는 그와 정반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네. 누구보다도 자신을 맨 먼저 고발하고 두 번째로 가족이든 다른 친구든 수시로 불의를 행하는 자를 고발하되 그들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건강해지도록 우리는 그들이 행한 불의를 은폐하지 말고 공개해야 한단 말일세.”(480b 94면)

 

충격을 받은 폴로스~ 그를 통해 당시 아테네인들에게도 소크라테스의 이런 주장이 실상과는 달랐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환부를 도려내는 시술이 두려워 병을 키울 것인가? 병은 조기에 발견하여 마땅한 시술을 받을수록 빨리 그리고 오롯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잠시 동안의 고통이 따르는 수술이 두려워 병을 키우지 말라. 소크라테스는 질병에 비유하여 폴로스가 받은 충격을 완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한 방은 아직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면,

 

"그 적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재판관에게 가지 않도록 말과 행동으로 온갖 대책을 강구해야 하네. 그리고 그 적이 법정에 나타나면, 우리는 그가 방면되고 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네."(481a~b, 95-96면)

 

역설이다. 불의를 저지른 사람이 밉거든 그가 저지른 불의에 마땅한 처벌을 결코 받는 일이 없이 살아가도록, 오히려 말솜씨를 발휘해서 결코 용서받지 못하도록 수사학을 사용하라는 얘기다. 앞서 언급한 우리 사회의 내부고발자들의 행위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따르면 결코 해당 조직과 나라에 해악을 끼치는 것일 수 없다. 불의를 행하고 그 불의에 대한 적절한 댓가를 치르라고 말하는 이들은 <고르기아스> 소크라테스가 폴로스에게 제시한 역설에 따른다면, 상(賞)을 받아야 할 대상이지 처벌의 대상일 수 없다.


2400년 전 플라톤을 읽는 마음이 결코 편치 않다. 2012년 대선과정에 공무원들의 선거개입 등으로 야기된 문제가 해소되고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투신한 후손들이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사실은 더욱 힘들 것이다. 해방(독립)은 되었지만 그 독립운동이 실패한 운동이기 때문이기에 그들의 삶이 힘든 것이다. 내부고발자의 이후 삶이 힘겨운 것은, 우리사회가 결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플라톤의 고르기아스/프로타고라스는 잘 읽힌다. 그래서 당면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보이고, 그래서 슬프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필독하기를 바란다.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듯이 어려운 세상일수록 고전의 가치는 더욱 빛나며 상대적으로 그 힘은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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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22-03-29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태이며, 천병희 선생의 역작 중 하나 플라톤의 대화편 전권을 완역한 플라톤전집 3권에 수록되어 있다.

timeroad 2022-03-29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문장만 좀 매끄럽게 다듬는 수즌으로, 당시의 정황을 그대로 전달한다. 카테고리만 변경하였다.
 

천병희 원전번역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출간되었다. 책정보에 나와 있듯이 <윤리학>은 <정치학>을 위한 개론서이면서, 정치학은 윤리학에서 그린 밑그림, 곧 개인과 가족의 행복을 보다 넓은 범위의 공동체 국가(폴리스)의 행복으로 확대 적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표지들은 이런 두 저작의 관계에 충실한 셈이다. '윤리학'을 읽으면서 떠올린 다른 책들의 어떤 대목에 맞춰,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이 책의 출간에 앞서 여러 권의 다른 번역으로 읽었다. 강독에 가까운 해설서도 나와 있어 읽었다. 그러나 어떤 주석이나 해설이나 강독보다도 텍스트 자체로 다가와야 하는 것이 번역의 1차 소임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러한 사전 독서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인데, 천병희의 '윤리학'은 안개가 걷힌듯 속도를 내서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당대(2013년)의 나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살아 숨쉬는 저작'으로 다가왔다.

일명 '산파술'이라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대화의 상대방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일깨움이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학습법이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눈높이 학습법이며, 궁극으로는 자기주도의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교수법이다. 물고기를 먹는 법만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고 있으며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는 것이 앎의 시작이자 완성임을 역설하고 있다.

알다시피 소크라테스의 어머니의 직업은 산파였다. 요즘으로 치면 산부인과 의사였다. 우선은 아이가 안전하게, 가급적이면 아이 엄마의 산고도 줄이는 방법으로 태어남의 과정을 ‘케어’하는 것이 좋은 산파가 가진 자질이고 기술이며 재능이었으리라. 거칠지만 소크라테스가 부모 특히 어머니로부터 얻은 유산은 바로 그 어머니의 직업에서 받은 것이고, 그것을 가르치고 배움의 학습법으로 응용 발전시켰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부모의 역할은 조기교육이니 조기유학이니 대안교육이니 하면서 공교육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들에 대한 못미더움 때문에 요란을 떨기 이전에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잘 해내는 그 자체로 자식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바로 부모 자신들의 인생의 완성도에 있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크라테스에서 아리스토렐레스로, 고대 서양철학자 3대의 가교 역할을 하는 플라톤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선후의 두 학자 사이에서 묘한 상태로 낀 처지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지금 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트텔레스의 집안은 대대로 궁정 의사 집안이었다. 우리 역사로 치면 전의(典醫)였다. 우리 역사에서 조선 후기에, 궁내부의 태의원에 속하여 왕의 질병과 왕실의 의무(醫務)를 맡아보던 주임(奏任) 관직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집안 대대로 가업처럼 직업을 이어가는 흐름이었다고 하니, 일종의 업계의 비밀(노하우)을 유산처럼 대물림하는 절차가 반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과정의 되풀이를 통해 의술의 발전에 활력을 주는 측면도 없지 않았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의사라는 직업은 무엇보다 인간이 가진 몸의 건강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당시 불안정한 궁정의 상황이나 아버지의 이른 작고 등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의 길을 걷지는 않게 되는데, 궁극적으로 그는 인간의 행복을 규명해낼 뿐 아니라 만학(萬學)의 아버지로서, 이른바 인류에게 ‘학문’이라는 골치아픈 세계를 선물하게 되는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기준으로 어디까지가 스승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생각이고, 어디서부터가 스승인 플라톤의 생각인지를 구분해내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두 스승이 주창한 이론은 소크라테스의 경우 지극히 상식적인 앎(상태)에서 논지를 전개하여,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이고 플라톤의 경우는 스승의 생각에서 출발하여 체계화와 심화의 과정을 거쳐 가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당위적이고 하여 심플한 측면이 있다. '좋음의 이데아'론이 그 대표라 할 것인데, 받아들이기만 한다면(마치 오늘날 상당수 종교가 믿음의 문제에 집착하고 그런 방향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처럼) 흔히 하는 말로 ‘플라토닉한 사랑’처럼 어찌 보면 마음의 평안을 얻기란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스승으로부터의 독립의 꿈을 결코 놓지 않았으니, 의사 집안의 출신다운 사물과 개념에 대한 ‘자연과학적인’ 접근방법을 유전인자인 양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한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이상적으로 꿈꾸는 사랑에 비해 현실의 사랑은 구체적이고 팍팍하다. 사랑에 대한 다른 점들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만사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관찰과 분석에 입각한 디테일한 문제로 다가오는 ‘문제적인’ 세상이었다. 결국 인간의 정신작용으로 분류할 수 있는 만족, 곧 인간의 행복의 문제에 대한 혜안을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담았다는 점에서 그는 훌륭한 정신의 의사로서의 가업을 계승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유한 사상이냐를 구분해내는 문제도 스승과 스승의 스승의 뒤엉킴 못지않게 학문의 중요한 과제물일 것이다. 아카데미아에서 배우고 가르치면서 플라톤 문하에서 지낸 세월이 20년이다. 그의 초기의 저작들은 플라톤의 저작에서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대화편의 형식을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카데미아 시절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초기 저작들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정치학><시학> 등 현존하는 그의 저작들은 후기의 학원내부용 교재였던 것이 책의 형식으로 묶이게 된 것들이다. 앞서 초기의 저작들이 책의 형식으로 묶여서 널리 읽히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 당대에 확인할 수 있었던 것과는 비교가 되는 점이다. 키케로(기원전106~43년)는 사는 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초기 대화편들을 읽은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몰(기원전 384~322년) 연대를 고려하면 상당히 중요한 기록이다.

“이 시기(아카데미아에서 20년)에 그는 스승인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윤리학과 정치학에 관한 많은 대화편들을 써서 출간한 것으로 보이는데, 문체가 유려하다고 키케로(Cicero) 등에게 칭송받던 그의 대화편들은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이 책 <옮긴이 서문>에서)

 

키케로가 자신의 저서 『의무론』에서 아들(뤼케이온학파, 일명 소요학파, 아리스토텔레스의)과 달리 자신은 아카데미 학파에 속함을 밝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아카데미아에 소장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아리스토렐레스의 초기 대화편들을 읽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아카데미아 학파와 소요학파는 양자 모두 소크라테스계열과 플라톤계열에 소속되고 싶어하니까, 진정 나는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을 테니 소요학파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의 철학책들을 읽으면서, 네 자신이 책들의 내용 자체에 대해 판단을 내리도록 하라.”(<키케로의 의무론> 18면, 허승일 옮김)

이런 키케로가 탐독한 초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의 영향은, 다름 아닌 키케로의 저서 <우정에 관하여>와 <노년에 관하여> 등에 시사점을 주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플라톤이 숱한 자신의 대화편에서 직접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듯이, 키케로의 경우도 ‘우정’의 소중함과 ‘노년’의 즐거움, 곧 생을 어떻게 마감하느냐에 대한 심오한 문제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자리에 본인은 없다. 오히려 나는 다만 기록자일 뿐이다, 라는 설정을 통해 설득력을 배가시키는 장치를 사용한 것인데, 나는 이것이 플라톤과 조금 다른 방식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가진 대화편 형식에서 참고한 바가 없지 않으리라, 추정해본다.

또 하나, 키케로에게서 발견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의무론>을 집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아들에게 남기는 유언과도 같은 아버지의 당부 말씀인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전달하는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그러니까 키케로의 경우는 편지 형식으로 직접 아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에 의해 정리되었다고도 하고, 그저 아들에게 ‘헌정한 책’으로서의 의미만 있을 뿐이라는 등 의견이 분분한데, 굳이 아들을 독자로 특정하지 않고 이론을 전개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어쨌거나 키케로의 경우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에게 윤리학을 남겼듯이, <의무론>을 남기고자 한 것으로 판단할 때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생기는 셈이다.

더구나 조선 후기의 다산 정약용[1762(영조 38)∼1836(헌종 2)] 유배지에서 망가진 집안의 신세를 직시하고 분발할 것을 아들들에게 강조하는 편지들(『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창비)까지 연동하여 읽는다면, 유의미한 독서가 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에게 주는 형식의 <윤리학>을 집필하면서도, 이 책의 쓰임에 대해 잘 파악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듯 하다. 윤리학 1권 제10장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가?” 제11장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운세가 죽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가” 등에서 솔론을 언급하고, <일리아스>의 프리아모스 왕의 일생을 거론하면서 언급하는 얘기들이 그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1장 끝에서 다음과 같이 논의를 맺는다.

“따라서 친구들의 행운 또는 불운이(1) 죽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은 미치지만(2), 그 영향은 행복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거나 그와 비슷한 변화를 가져다주는 그런 종류나 그런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당대는 물론이고 이후로도 그 명성이 높거나 평판이 좋은 사람을 살았던(2) 이의 후손이나 지인들의 삶이 불행을 맞이할 때(1), 죽은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논의하는 것, 세인들의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은 아니었다느니, 무수한 말을 하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의 인생은 아버지의 인생일 뿐이지 않을까, 당연하지만 촘촘하게 행복의 이모저모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인망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듯이 살피고 있다.

이 말은 동양의 역학(사주)으로 돌아와 이른바 사주, 생년(生年), 생월(生月), 생일(生日), 생시(生時) 가운데, 자신의 태어난 시각 곧 ‘생시’는 말년운(末年運)인데, 이 말년운이 아직 펼쳐지지 않은 미래운으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사주니 점이니 해서 그 분야 전문가들을 수소문하여 대가를 지불하고 미리 알고자하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되었다고 하자, 노년의 행복을 무엇인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하고 특히 행복하게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여한(餘恨)을 두고 떠나는 일생은 결코 행복했다 말할 수는 없으니까. 바로 이 때에 가장 큰 부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손들이 대대손손 행복하게 살아갈 것으로 굳게 믿어 의심하지 않아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왕조도 아닌데 권력을 3대 세습하는 북한이나 자기들이 이나라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리는 것처럼 은근히 과시하지만 알고 보면 부의 세습과정에 불과한 삼성가의 모습도 궁극에는 모든 인간이 가진 행복이라는 프레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저마다 다른 형태의, 처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자손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라고, 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도록 교육에 열을 올리고, 기러기아빠와 그 엄마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공교육을 맡은 교사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대안학교로 보내는 경우와도 같이(아이가 원한다는 것을 전제로 진학하는 것으로 알지만, 아이가 깨닫기 전에 부모 입장에서 이런 교육은 아니다라는 선험적인 결론이 먼저인 경우가 일반형일 것이다, 그 밖의 과외 운운하는 과열된 교육열에 대한 운운을 또 할 필요가 있겠는가)-김두식 교수가 <불편해도 괜찮아> 초반부에서 자식교육에 관한 우리의 현 상태를 적시하듯이,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것이 인간이고 인생인 것을~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 돋보이는 점이 바로, 자식인 니코마코스는 편집이나 제작과정에서든 아버지가 너에게 준 것이라고 제목에서부터 못박아 두어서이든, 잘 참고하여 좋은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은근하게 담았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혹자는 제목에 아들 이름을 넣은 그 자체에 대해 아버지의 ‘욕심’을 말할 수도 있겠으나(뛰어난 행적을 남긴 조상의 비석을 남길 때 그 조상만이 아니라 후손들의 이름도 새겨진다는 점을 유념하시라, 비석은 선조에 대한 의무감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인정욕구가 더불어 새겨지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제목을 지었다는 확증은 없으므로, 어쨌거나.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아테네의 10대 웅변가 중 한 사람인 이소크라테스(기원전 436~338년)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교하며 키케로가 남긴 한마디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가장 훌륭한 그리고 오래된 리뷰가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와 이소크라테스에 대해서도 나는 똑같이 생각하는데, 그들 각자는 자신들의 연구에 심취한 나머지 서로를 경멸했다.”(의무론)

플라톤이 광장에서 연설했다면, (플라톤의 제자로 아테네의 유명한 웅변가) 데모스테네스가 플라톤에게서 배운 바를 계속 연구하여 발표하기를 원했다면, 둘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극히 수사적이고 눈부신 저작활동을 하였으리라고 키케로는 이들 두 쌍의 비교의 연장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평가하고 있다. 메시지의 전달 방식으로 말을 선택했느냐 문자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의 방식을 계승한 사람이면서, 보편적인 사실(진리)에서 근거를 찾아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나갔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충실한 제자로서의 면모를 저작에 담아냈다. 책의 제목에만 충실하자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일종의 지침을 아버지로서 남긴 것인데, 단지 니코마코스에게만 맞춤한 것이 아니고 훗날을 살아갈 모든 후배들을 위한 선배 아리스토텔레스의 따듯한 사랑과 꼼꼼한 배려를 담은 것이 이 책 윤리학이라 할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고 꿰어야 보배다. 부뚜막에 소금이라도 집어넣어야 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정치학’으로 나아가는 개론서이다. 달리 얘기하면 정치학은 윤리학의 밑그림이고 행복론의 적용범위를 보다 큰 사회로 국가(폴리스)로 확대한 것이라 할 것인데, 공정사회를 외치던 지난 정부 시대를 살면서 숱한 국민들이 왜 ‘정의린 무엇인가’ 타령을 했는지, 다음 정부인 2013년 현재는 우리는 우리가 간직했어야 할 도덕성(윤리)이 그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확인하고 맞이하고 있다. 기간에 여러 권의 윤리학 번역서들이 나왔고, 그 가운데에는 원전번역도 있지만, 학문 차원에 앞서, 쉽게 읽고 자신의 삶에 우리 일상과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데에 적시타와 같은 출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서들)의 개념어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70대 중반의 희랍라틴어 원전번역의 노전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새롭게 펴낸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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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넷신문 동영상 인터뷰를 보고 김두식 교수를 알게 되었다. 너무 고전 그것도 서양고전에 빠져 헤어오지 못하고 있어서일까, 스테디셀러 책들까지 거의 읽지 않게된 것도 한 이유이고, 이 책 저자도 언급하는 것처럼, 힐링이니 치유니, 성공학이니 긍정주의심리학에 기반한 자기계발서의 다른 버전으로 보이는 것들이 책이니 강연이니 해서 너무 요란스러웠다. 그 세계에 침잠해본 사람으로서의 경계의 한 방법이었다. 지금이야 지방도시에 머물지만 2008년 촛불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했던 입장에서, 인터뷰에서 그리고 책에서 카메라와 관련된 얘기에, 맞아 그래.. 지금도 열심히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바가 적지 않았고, 그 현장에서 그 상황을 살피는 분들 중에 이런 분도 있었겠구나 생각하니, 묘한 동지의식이랄까, 어린 시절 구입하기를 욕망했으나 그 욕망을 실행하지 못했던 장난감에 카메라를 비유했지만, 사실 카메라를 만져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촬영을 한다는 것은 그 말 자체로 프레임을 안다는 것이다. 이론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글이 가지는 선명성, 그리고 진정성이 다가오는 것은, 그 끝을 찾아내고 한쪽의 끝은 다른 쪽의 시작일 것인데, 그 경계를 본다는 것, 바로 프레이밍이주는, 사태와 상황과 나를 관찰하게 하는 힘일 것이다. 서두가 길었는데, '사자가죽'과 관련된 상징과 그렇게 풀어나간 이야기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좋았는데, 어쩌면 그것은 고전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최근에 면밀히 살핀 358편에 이르는 정본이솝우화에 소개된 <사자가죽을 쓴...> 우화는 다음과 같다. 

 

267. 사자 가죽을 입은 당나귀와 여우

당나귀가 사자 가죽을 입고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놀라게 했다. 당나귀는 여우를 보자 역시 겁을 주려 했다. 여우는 [전에 당나귀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던 터라] 당나귀에게 말했다. “잘 알아둬. 네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면 나도 너를 겁냈겠지.”

간명하다. [ ] 안은 원전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른바 공식 교훈은 "이와 같이 무식한 사람도 점잔을 빼며 잘난 체하지만 수다를 떨다가 본색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코스프레 정도였던 것 같은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야기 스스로가 가진 힘인지 스토리텔링을 거치면서 숱한 이본들을 만들어내고, 본래 이야기가 뭐였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서 인용했다. <사(士)자 가족, 사자가죽> 편을 가장 흥미롭고, 그리고 김두식 교수의 책에 실린 어떤 에피소드보다 주제에의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직 못 본 책이 많은지라, 위 우화의 패러디랄까 써머싯 몸 장편(掌篇)소설 얘기를 이 책에서 보고 무척 반가웠다. 달은 예술적 가치나 창작의 위대함, 6펜스는 현실을 의미하는 상징, <달과 6펜스>의 작가는 장편이나 손바닥 소설이나 프레임을 분명하게 기획하고 주도하는 작가인 것 같다. 

 

<사자가죽>의 주인공 로버트 포리스티어, 그는 당나귀와 매우 비슷한 사람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풍경으로 보면, 지금은 꿈도 꿀 수 없지만, 몇년 전까지의 미용실 원장(대체로 여성이다) 남편들의 캐릭터가 아닐까, 많이 웃었다. 지금은 미용사의 인구가 60만 명이라는 대한민국 국군의 숫자보다 더 많단다(얼마전 이곳 지방도시를 찾아온 전 의원에게 들었다). 그 미용실 원장 아내들이 있어 기본생활은 되고, 남편은 자신의 유예했던 꿈을 찾아 더 매진하고, 뭔가 빛나는 성과를 낼 수 있었으면 참 좋았으리라. 자식도 없었다는데, 단지 아내가 아끼는 개여서가 아니라, 자식 대신이었을 개를 살리기 위해 포리스티어는 불 속으로 뛰어들었을 수 있다. 신사 코스프레를 하고 살아가야 했던 포리스티어는 이미 신분이 들통난 상황에서 외롭고 힘들었을까, 그런 그가 마음을 준 대상이 개였을 수 있다. 소문 안 나게 부자인 사람들이 사람을 믿지를 못해 친구는 없고, 개를 정도 이상으로 사랑한다는데, [결론] 이솝우화의 정본은 그 교훈에서 보듯, 말조심만 했어도.. 이다. 얼마나 믿을 사람이 없었으면 꼼꼼히 메모했겠나, 말하는 대신.. "잘 알아도, 네가 말해야 할 순간에 말하지 않고, 메모만 하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면.. " 여우 같은 여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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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는 헤어지면 그만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그러할까요? 부모와 자식 사이에 대해서는 아주 냉정한 얘기가 있습니다. 또 나으면 되지 않느냐고, 아마도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비극 <안티고네>에 나오는 대사일 것입니다. <오뒷세이아>를 촘촘하게 살펴 읽고 있습니다.

 4권. 메넬라오스는 바다노인에게 형의 소식을 듣다 모래밭에 뒹굴며 애곡을 합니다. 이 남자들, 참 와 닿죠, 한류열풍을 얘기할 때, 일본 여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우는 남자에 반응을 했다지요? 메넬라오스는 파리스, 헥토르는 아가멤논 그런 장남과 차남의 대입과 비교가 가능한데, 어쨌거나 차남인 메넬라오스 형이 죽었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립니다. 멋집니다. 모양이 좀 구겨져도 진심으로 한 사람의 떠남을 슬퍼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런저런 마음씀씀이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서 자기 마음을 억제하는 그들의 모습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일리아스>를 읽건, <오뒷세이아>를 읽는 중이건, 아이스퀄로스나 에우리피데스가 쓴 그리스 비극을 읽는 분이건 간에, 정리가 좀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대체 이 사람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는데,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먼저 펠롭스가의 족보부터 살펴보기로 하죠.

제우스->탄탈로스->아들인 펠롭스가 힙포다메이아와 결혼하여 세 아들
아트레우스(1),

튀에스테르(2),

핏테우스(3)를 낳았죠.
핏테우스는 아테네의 아이게우스 왕의 아내로, 테세우스를 낳는 아이트라의 아버집니다. <플루타르코스영웅전> '테세우스 전'에서 핏테우스의 지혜로, 아이게우스는 아이트라와 자고, 테세우스라는 후사를 이를 소중한 영웅 자식을 낳게 되는 것, 이 부분은 딸들 쪽이니 그렇다치고,

 

아들로는 아트레우스(1)와 튀에스테르(2)가 대권 경쟁을 싫든좋든 하게 되겠지요. 더구나, 튀에스테르는 형 아트레우스의 아내인 형수 아에로페를 유혹하다가 발각되어 추방됩니다(오뒷세이아 부록 576~577면 아트레우스). 나중에 형 아트레우스는 화해하자며 동생을 불러들이고 잔치를 벌입니다. 튀에스테르의 두 아들을 죽여 그 고기로 음식을 장만한 것인데, 나중에 이를 알게 된 튀에스테르는 질겁하고 달아다며 형을 저주하지요. 이후 튀에스테르는 모르고 자신의 친딸 페로피아와 교합하여 아이기스토스를 낳는데, 바로 이 아이기스토스가 사촌 형제 둘이 트로이아와 원정 간 사이에 사촌 형수인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유혹하고, 정부가 된 상황.
<오뒷세이아> 3권에서 왕홀이 펠롭스->아트레우스->튀에스테르를 거쳐 아가멤논에게 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지는, 이 집안에 피의 복수가 점철되는 갈등관계로 보아,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왕위 경쟁도 심상치 않았으리라는 것. 그 피가 어디 가것습니까? 메넬라오스가 그대로 뮈케네에 머무는 상황이라면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우리의 조선시대 왕위 계승 관계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결국 메넬라오스가 헬레네를 차지하기 위한 구혼자들의 경쟁에서 최종 선출됨으로써 헬레네의 남편이 되는 점도 행운이지만, 튄타레오스의 사위가 될 뿐만 아니라 데릴사위로서 스파르테의 왕위를 물려받는다는 점, 바로 이 덕분에 아가멤논은 순조롭게 왕위를 지킬 수 있는 득을 본 셈이라는 것이죠. 헬레네가 없는 스파르테는 끈이 떨어진 갓인 셈이니, 헬레네가 제자리에 돌아와야 메넬라오스도 왕다운 것이지요. 해서, 헬레네에게 늘 부드러운 남자라야 해요. 그것이 그의 행복이면서 슬픈이지요. 메넬라오스만으로는 왕위를 지키기란 힘든 것, 더구나 헬레네에게는 제우스 핏줄이건건, 사람 튄타레오스 딸이건 남자 형제가 둘씩이나 있는 상황입니다. 트로이아 원정에 이 남자 형제들 둘이 왜 오지 않았지 하고 헬레네가 스카이하이에서 찾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말입니다.

 

<오뒷세이아> 4권. 메넬라오스는 아가멤논이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아기기스토스가 공모하여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바다노인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지만, 본인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간에 결국 귀향이 늦어지고, 오레스테스와 그 누이가 복수를 끝낸 상태에서 돌아오는데, 가만 보면 메넬라오스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다독거리기만 하는 상황. 텔레마코스는 그냥 전우의 아들만은 아닌 조카인데, 하여 좀더 적극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을 듯한데, 선물을 주고 환대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도에 머물지요. 그런데, 메넬라오스의 입장에서 비록 형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헬레네와 동행하여 집(메넬라오스의 집은 뮈케네)으로 돌아가는 입장인데, 처형인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여야 하는 상황. 헬레네는 언니를 죽여야 할 것인데, 헬레네의 입장에서는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언니의 행실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지요. 메넬라오스도 난처한 입장이고요, 그러나 꼭 나서야 한다면 메넬라오스는 다른 관계를 떠나 형의 복수를 할만한 위치에 있지만(앞서 <안티고네>를 언급했지요), 신의 핏줄을 받은 헬레네 덕분인지 '영생'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정리하면, 4권에서 메넬라오스가 들려주는 아이귑토스 부근에서의 환상여행을 저승에 다녀온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죠. 앞서 테세우스와 헤라클레스가 지옥을 다녀왔고 이후에 오뒷세우스도 저승여행을 할 참인데, 이곳에 다녀오면 사람이 이전과는 달리 정상이 아니라네요. 한 번 죽은 사람이 두 번씩이나 저승에 가야하니, 암튼 보통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겠지요. 말하자면 4차원. 바다노인이 들려주는 메넬라오스의 앞날, 헬레네와 함께이겠지만 암튼 만사를 떠나서 행복한 노년으로 가는 길에 그들은 있습니다. "그가 잘나서라기보다는 부인을, 장인을 잘 만나서, 제우스 사위로서의 덕을 톡톡히 보는 메넬라오스!

 

아가멤논의 귀향과 사망, 그 복수극, 어쩌면 할아버지인 펠롭스의 결혼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아트레우스 가의 그늘진 이야기는 작은 트로이아 전쟁, 혹은 트로이아 전쟁의 속편으로까지 이야기할 정도이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화, 서사시, 비극을 관통하는 고전읽기가 그렇게 함으로써 많이 편해진달까, 그런 장점이 있습니다.

 

"펠롭스가의 저주"
펠롭스는 펠로폰네소스(펠롭스의 섬이란 뜻의 이 지명은 펠롭스에게서 유래했다) 반도로 가서 힙포다메이아와 결혼하게 되는데,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아버지 엘리스의 왕 오이노마노스와의 전차 경주에서 반드시 이겨야 함, 그는 오이노마노스의 마부 뮈르틸로스를 매수해 경주 때 바퀴가 빠져 왕이 전차에서 떨어져 죽게 만든다. 그러나 펠롭스는 약속한 보수를 주기는 커녕 마부를 바다에 던져 죽인다.  

위위 도표에서 보듯이,, 암튼 약속을 지키지 않아, 펠롭스 가의 저주가 시작된 겁니다. 
파리스의 사과에서, 제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를 사랑했으나  그녀가 아버지보다 더 강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는 그녀를 아이아코스의 아들 펠레우스와 결혼시킵니다. 이 결혼식에 다른 신들은 모두 초대 받았으나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이 초대받지 못하자, 그녀는 앙심을 품고 거기 모인 신들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황금 사과를 던집니다. <일리아스> 723면 파리스 소개 부분입니다.
서운함이 없게 하라!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제대로 챙기지 못해 서운한 사람이 생기면 그 원한이 깊게 아로새겨지는 모양이니다. 아로새겨진다, 쉬운 표현이 아닙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는 것이 충족되었을 때, 일단 대접을 하고, 댁은 누구시오, 라고 나그네를 접대하는 그들의 접대문화가 그가 고귀한 신일 수도 있으니, 소홀함을 원천적으로 방지하자는 데서(물론 인정이 넘치는 공동체를 위한 ..)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이제 동양신화로 잠시 여행을 할 시간.  

<산해경>에는 서왕모에 대한 여러 기록이 있습니다. , 서왕모는 인간이라기보다는 반은 짐승이고
반은 사람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의 여신, 중국의 서쪽 끝에 있는 곤륜산에 산다고 하는데, 하늘에서 내리는 돌림병이나 재앙 같은 무시무시한 일들과 더불어 코를 베거나 손발을 자르는 등 다섯 가지 잔인한 형벌을 다스리는 여신, 그러한 책무 더하기, 서쪽이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 서쪽은 해가 지는 곳으로 어둠과 죽음의 땅, 고대 중국에서 동쪽은 서쪽과 반대로 생명과 탄생의 땅이지요.

우리나라 조선시대, 서쪽에는 감옥과 처형장 등 형벌과 죽음에 관련된 기관을 배치, 한양 서쪽의 고태골은 처형장, 고태골로 간다, 골로 간다 골로 보낸다. 1970년대까지 서울 시내의 서쪽에 형무소(감옥), 소년원, 화장터 등이 지속된 방향입니다. 이와 달리 전농동은 '설농탕'의 어원에서 보듯이 농업 장려 곧 생명산업과 관련된 것, 동쪽과 관계가 있죠.
그러나 극은 극과 만나는 법이라, 서왕모는 죽음의 신만이 아니라,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힘, 곧 영생과 불사의 능력을 지닌 생명의 여신이기도 했습니다. <산해경>에 의하면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에는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 열매가 자라는 나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천도)복숭아 얘깁니다.
-주나라 때의 목왕, 주목왕은 여신 서왕모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러스스토리,
-한나라 때는 동왕공이라는 서왕모의 남편 신을 만들어내기도, 여성에게는 보호자인 남성이 있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관념의 침투가 가져온 결과, 음과 양이 평형을 이뤄야 한다는 음양오행설에 의한 짝짓기 산물,
그런데, 서왕모의 열렬한 팬은 바로 한무제입니다. 장수를 열망한 그는 서왕모의 강림을 기원, 칠월칠석날 서왕모가 아홉가지 빛깔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천상에서 내려와 선물로 불사의 복숭아 선도(仙桃)를 선물합니다. 서왕모가 관리하는 '반도원'이라는 복숭아밭에서 딴 것으로 이곳의 복숭아나무는 3천년 만에 꽃이 피고 다시 3천년 만에 열매를 맺으며 그것을 한 개라도 먹으면 1만 8천년까지 살 수 있답니다. 바로 선물을 주고받는 이곳에 한무제의 신하이던 동박삭이 있었으니, 그는 서왕모의 귀한 열매를 훔쳐먹은 재담꾼으로(나쁜 남자!) 한무제를 즐겁게 해주던 그는 이미 신이었던 것, 그렇게 오래살았다 해서 '삼천갑자 동방삭'이라는 얘기 속에 그는 양생하네요.


*반도원은 이후에도 크게 도둑을 맞는데, 명나라 때 지어진 유명한 환상소설 <서유기>, 서왕모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손오공이 홧김에 반도원의 선도를 거의 다 따먹어버렸다네요. 그래서 벌을 받고 삼장법샤가 조건부로 해제를 해주고 부리고? 일할 기회를 주고, 비정규직 같아..

바로 이 대목에서, 에리스가 앙심을 품고 던지는 파리스의 사과와 비교해 볼 만하죠. 그것이 펠롭스의 저주의 연장선인지 알 수 없으나 세 아들 중에서 핏테우스 쪽의 가계에도 흥미로운 사건, 다사다난한 사건이 끊이지 않으니,
<흥부전> 제비 다리를 고치는 흥부는 무엇을 바라고 그리 하지 않았지요. 힘들고 치친 그리고 다친 나그네를 없는 살림이지만 잘 대접하여 보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복을 내리게 된다. 반대로 의도를 가지고 제비 손님을 맞이한 놀부는 도리어 잃고 망하게 된다. 유사성이 있습니다.

펠롭스와 그의 손자 메넬라오스는 신부를 차지하는 경쟁에서 어쨌거나 우승하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네요. 그러나 당첨은 순간, 이후 댓가가 너무 크네요.  <오뒷세이아> 4권을 읽으며 너무 생경하게 생각하지 말지니,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고뇌랄까, 이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던 거이고, 그들은 필명의 인간이었던 것 아닐까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들의 표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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