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스쿨 여행 중국어 [핵심 표현 정리집 PDF + 테마별 단어 정리집 PDF] - 급할 때 바로 찾아 말한다!
시원스쿨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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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휴대가 편한 여행중국어책입니다. 여행 다닐 때마다 상황에 합당한 표현을, 잠시 책 참조해 가며 접객원, 안내자, 식당 주인, 역무원, 호텔 데스크 등에 내 입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훨씬 즐겁고 편한 여행이 될 것입니다. 다른 책에는 잘 안 나오지만 실제 여행시에는 꼭 필요했던 표현이 많아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여행외국어책은 목차도 목차지만, 목차와는 별개로 가나다순 색인이 따로 있어야 상황이 발생할 때 바로바로 찾아서 참고할 수가 있습니다. "필요한 문장과 단어를 가나다순으로 정리"한 색인이, 목차, 책 특징 소개 페이지 바로 뒤에 나옵니다(책 맨뒤가 아님). 아무리 책 내용이 좋으면 뭐하겠습니까? 필요할 때에 책 어디엔가에 있는 그 정보가 내 눈에 바로바로 들어와야 그게 쓸모가 있는 것입니다. 책의 컨텐츠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부터 접근이 가능해서 좋았습니다. 

모든 단원 앞에는 긴 문장 표현 말고, 개별 단어를 중국어로 뭐라 하는지 생각이 안 날 때 바로바로 찾아볼 수 있도록 별도로 항목을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공항 편에서는, 게이트, 환승, 탑승, 연착 등을 중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32개 단어를 앞부분에 따로 모아 놓았습니다. 카트는 중국어로 뭐라고 할까요? p42에는 手推车(셔우투이처)라고 나옵니다. 한자를 풀이해 보면 손으로 미는 차(車. 수레)지요. 우리말로도 堆는 밀 퇴라고 읽기도 합니다. 퇴고라고 할 때의 그 글자입니다. 책에는 셔우투이처라고 한글로도 적어 주고, 병음기호에는 성조도 표시해 두었습니다. "제일 가까운(the nearest)"은 最近的인데, 뭐 우리말로 하면 "최근적"이니 대충 뜻이 짐작 가능하죠. 역시 병음으로 주이 찐 더 라고 대략의 발음이 나오며 성조에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이 最近的은 간체와 정체 구분이 없어 한국인 눈에도 바로 들어옵니다. 

거리에서 쓸 수 있는 표현들이 p66 이하에 죽 나옵니다. 일단 "~가 어디 있어요?"라는 기본 문형을 알아야 하겠는데, 在哪儿(짜이날)이 그것입니다. 짜이날 앞에다가, 내가 알고 싶은 장소를 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이 레스토랑은 어디에 있나요?"라고 하려면, 這個飯館짜이날이라고 하면 되죠. 물론 간체자로 제대로 적으면 这个饭馆在哪儿입니다. 레스토랑이 饭馆이며, 관형사 "이(this)"가 饭馆입니다. 한국식으로는 반관이지만 중국어로는 판관 비슷하게 읽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조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교통수단, 특히 택시 등을 이용하고 나서 영수증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영수증은 發票(발표)라고 쓰는데 물론 대륙식 간체로는 发票이며 그 발음은 p86에 나오는 대로 파피아오 비슷합니다. 역시 이때에도 병음에 표시된 성조를 최대한 살려 발음해야 하겠습니다. 여튼 영수증이 파피아오이며, 영수증을 달라고 하면 給我發票吧(급아발표파), 간체로는 给我发票吧(게이 워 파피아오 바)입니다. 버스 요금이 얼마냐고 물으려면 車票多少錢(차표다소전)이며, 간체로는 车票多少钱(츠어퍄오 뚜어샤오 치엔)이라고 책에 나옵니다. 

우리나라, 특히 수원 등에 소재한 여러 노래방은 중국인들도 자주 이용하는지 간판에다 練歌廳이라고 써 놓기도 합니다. 물론 저렇게 정체로 쓰면 중국인들이 모르므로 练歌厅이라고 간체로 써야 합니다. 련가청, 풀면 노래를 연습(수련)하는 홀이라는 뜻인데(ㅋ), 廳이라는 글자가 본래 영어의 hall 정도의 방을 뜻하게끔 중국어에서 뜻이 확장되었습니다. 따라서 厅이면 괜히 한국식 한자를 거쳐 관청 같은 걸 번거롭게 떠올리지 말고 hall로 바로 번역하면 거의 안 틀리더라는 게 저 개인적 노하우입니다. 이 책 p106을 보면 호텔에서 로비가 어디냐고 물을 때 大厅在哪儿이라고 하면 됩니다. 즉 로비가 대청(大厅. 따팅)인 것입니다. 짜이날 문형은 이미 앞에서 배웠습니다. 

이 책의 또하나 장점은, 모든 페이지 하단에, 지금 이 단원이 책 전체에서 어느 파트에 해당하는지 표시를 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다른 파트로 가고 싶으면, 구태여 맨 앞 차례로 돌아가서 해당 내용이 몇 페이지에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그 페이지 맨밑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거죠. 뿐만 아니라 책 옆면에 thumb index가 다 나오기 때문에, 손으로 페이지를 후루룩 넘기면서도 내용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접근성이 좋아서 더 효용이 컸던 책이었네요. 

*시원스쿨에서 책을 제공받고 활용해 보며, 솔직하게 또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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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원, 은, 원
한차현.김철웅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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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동은 마포구 소재이니 한강 벨트에 (크게 봐서) 속합니다만 아직도 개발이 미진한 구역이 많아서인지 서울 북부 같는 느낌이 드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일산까지의 거리도 매우 멀지만, 느낌상으로는 일산도 금방 갈 것만 같습니다(제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은원이 성이연을 찾아가는 길이 대흥동에서 버스를타고 일산으로 가는 건데, 개발 초기와는 달리 현재는 매우 침체된 분위기인 일산이 목적지라는 점도 그렇고 뭔가 좀 다운되고 약간은 어둡기까지 합니다. 현재 은원은 집을 비워, 자신의 공간을 "은원 없는 은원의 집(p16)"으로 만든 상황, 여튼 기어이 백석역에 도달해 호수공원 근처 약속한 찻집을 찾은 은원. 이미 성이연은 장소에 나와 있습니다. 

은원은 제 생각에 주위 사람들에게 다소 걱정을 끼치는 타입인 듯도 합니다. 연락이 안 되니 한차연은 안달복달하며 걱정할 만도 합니다. 소설 초두는 차연이 은원을 걱정하며 기어이 그 집에까지 와서 부재를 확인하는 장면입니다. 제주도 여행이 기어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었다는 말인가. p91에서 은원의 어머니는 차연에게 전화를 해 그녀만이 해 주었던, 앞으로 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역할을 부탁합니다. 차연의 답은 남자답게 흔쾌하고 단호합니다. 어머니의 전화가 아니었어도 이미 그럴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차연은 성격답게 "무조건 아이스아메리카노(p127)"를 읊습니다. 그러나 은원은 따뜻한 라떼를 마시겠다며 약간은 뜻밖으로 다른 의견(?)을 냅니다. 이 순간 은원은 아마 아아를 마실 수가 아마 없었을 겁니다. 머리 속에 아카이브처럼 기억을 저장해 두는 게 "변태" 짓일까요? 은원이 하필이면 그 말을 꺼낸 걸 갖고 차연 본인도 아니고 밖에서 보는 독자가 뭔가 위화감을 느낄 필요는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뭔가 아슬아슬해진다는 예감은 은원이 갖는 것 같습니다. 생리 이야기를 꺼내다 "이렇게 편해도 되나?"며 스스로 겸연쩍어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잔잔한 소통과 약간은 수상쩍은 로맨스가 기대되던 초반의 분위기는 이후 급변합니다. 다소곳이 어느 시인(이름은 진이정이라고 합니다)을 여느때처럼 토의할 것 같던 차연과 은원. 물론 차연은 우리가 눈치챈 대로 시인 같은 토픽을 즐길 사람은 아닙니다만 이상하게도 이때 차연은 은원의 말머리를 급히 자릅니다. 평소답지 않죠. 그런데 은원은 오히려 후련함을 느낍니다. 이 후련함은 감정상의 유쾌함이 아니라, 그저 예감만으로 취급했던 불안, 불길 같은 게 여튼 현실임을 깨닫고 느끼는 시원섭섭, 허탈, 체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은원의 운명은 급하게 진로를 잡는데... 남 보기엔 날벼락이겠으나 은원 같은 이가 그리 충동적으로 뭘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집착이 문제였어요. 관계에 대한 집착이 우리를 괴물로 만들었지요.(p204)" 소현정과 이인태 부부는 둘 다 전문의입니다. 기술, 특정 순간과 상황에서 그들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특정 기술에 대해 이해를 갖춘 사람들입니다. 초4인 딸 서인이가 크게 다쳤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가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천공렬 회장이 제안한 놀라운 내용, 유전자 복제를 통해 예전의 딸을 다시 만나라는 게 차분한 이성으로 그 당부가 판단되지 않는다는 다소의 회한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배반당했고, CL바이오 측은 다른 속셈을 감추고 있었던 거죠. 차연은 이미 기술의 위험함을 감지했었으나 다만 현정 부부가 내적으로 어떻게 그 정도의 단단한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는지가 궁금했을 뿐입니다.  

p244에 다시 언급되는 마포구 대흥동은 은원이 다니는 회사 소재지입니다. 차연은 기어이 은원과 다시 연락이 되었고 전화로 접촉이 된지 40분만에 은원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상황이 잠시 fade-out되고, 이제까지 oo로 알았던 ooo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차연의 목에 칼을 들이댑니다. 강원도와 경기도 경계 어디쯤으로 여겨지는 곳으로 끌려간 차연과 은원은 거기서 ooo와 ooo를 만납니다. 심하게 구타까지 당한 듯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다소 생뚱맞은 상황에서 oo은 oo에게 고백 비슷한 걸 합니다! 물론 oo의 생각이 뭐였는지 정도야 우리 독자들이 진즉에 다 눈치챘습니다만 그 상황과 시점이 생뚱맞다는 겁니다. 다만 은원의 생각이 무엇인지가 여전히 아리송한데... 이제 차연과 은원은 천 회장의 비정하고 위선적인 표백을 들으며 그와 맞서는데 다만 이 와중에 약간은 낯설어진 모습을 은원에게서 차연은 느낍니다. 막판까지 결말이 과연 어떻게 될지 예측이 안 되어 더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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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
시가 아키라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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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기 전부터 입소문이 자자해서 기대를 잔뜩 가졌는데, 막상 받고 읽어 보니 마음이 무척 답답해졌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사회구조, 평균적인 사람들의 심성 몇 측면이 닮았다 보니, 이 소설에서 펼쳐지는 사회상이 꼭 일본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각 한국의 여느 싱글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마지리 다카요 씨는 못난 남편을 만나 재산상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그 영향이 친정에까지 미쳐 거의 살림이 풍비박산이 난 상태입니다. 딸 아야나까지 혼자 힘으로 키워야 하는데 그 궁핍함이란 이루말할 수가 없습니다. 

읽으면서 독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이렇게 친절한 사채업자가 있다는 게 말이 될까? 과도한 친절은 뭔가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채업자는 기어이 다카요의 집에 찾아오려 들고, 하필이면 남편에게 받을 빚이 있다는 불량한 사내도 같은 날 찾아오겠다는 기세라서 다카요는 극도로 불안해집니다. 다카요는 이른바 헬스딜리버리라는 준 성매매업소에까지 다닐 뻔했으나 직전에 다르게 진로를 틀었기에 우리 독자들은 더욱 불안해졌다가 잠시 안도하게 됩니다. 지금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누구건 간에, 칼까지 손에 쥔 상태에서 괜히 경솔한 판단은 하지 않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예전부터 일본 미스테리물은 서술 트릭을 교묘히 잘 쓰는 걸작들이 많았습니다. 이 작품은 서술 트릭, 나아가 사건의 배치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트릭인 셈이어서 구성 트릭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칼을 쥔 다카요가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이 생략된 채, 누마지리(p225에 누미지리라고 오타난 부분 있습니다)가 그 마음 좋은 사채업자 밑에 들어가 사부님으로 모시며 일을 돕고 배우는 장면으로 바로 넘어갑니다(그렇게 보입니다). 누마지리는 (기대대로 사람 좋아 보였던) 사부님 밑에서 특유의 순진함도 드러내며 경제적 곤궁도 벗어나고 있는 듯해서 독자는 그나마 마음이 놓입니다. 다만 딸 아야나를 어떻게 할지가 문제인데, 배우자에게서 "딸에게 학대를 가한 적 있다"는 공격까지 받는 판이라서 양육권을 둘러싼 다툼이 불리해질 듯도 합니다... 

와... 지나고 보니 이 부분도, 작가가 노골적으로 힌트를 준 셈이었는데, 독자는 까맣게 몰랐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닮은 점이 많은 사회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 하나가 있습니다(뭔지는 이 리뷰에서 말할 수 없고요). 이 요소 때문에, 이 소설은 한국을 배경으로라면 도저히 그 트릭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 이 소설은, 라디오극이나 영화로 절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지면(紙面) 소설이 담을 수 있는 트릭의 극한까지 몰고갔다는 점에서 저는 정말로 감탄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런 소설은 여태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입소문이 과연 그렇게 날 만했습니다. 

소설은 2부로 구성되었는데, (앞에 말했듯이) 2부에서도 딱히 다카요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진다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적응, 안정을 찾아가는 듯해서, 작품의 긴장은 감소해도 차라리 독자는 마음이 좀 놓입니다. 뭐 별것없고, 그냥 착한 사채업자도 세상에 있긴 하고, 현행법(우리 나라나 일본이나)이 워낙 강하게 규율하기 때문에 요즘은 저런 패턴의 사업도 나오나 보다(이른바 소프트사채) 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물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업계의 실태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가지면 곤란하겠습니다. 별일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소설은 좀 밍숭맹숭하다, 이렇게 착각하고 책을 덮...을 뻔했습니다. 

사실 저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사건의 진상을 잘못 파악했습니다. 마지막에 인물 간의 대사가 바뀌었나 싶은 대목이 있긴 했는데, 둘이 이야기가 잘 안 되어서 ooo가 xxx을 죽이고 비극으로 끝났나 보다 하고 독서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게 지금 사회고발 소설인가, 아니면 미스테리물인가? 분명 걸작 미스테리라고 해서 읽었는데 뭐가 이렇게 심심하지?" 싶어서 양윤옥 역자의 후기를 읽었는데, 엄청난 반전이라고 해서 뭐지 싶어 (좀 이상했던) 마지막만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는데 한동안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속을 수도 있구나! 

반전인 줄 알고 다시 읽어 보니, 소설 곳곳에 빤하게 힌트와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두눈뜨고 속은 셈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책의 제목, 차례에까지도 힌트가 대놓고 주어졌는데 그걸 몰랐다니! 자세하게 짚으면서 여기, 여기, 여기가 암시, 복선이었다고 썰 좀 풀고 싶지만 안 읽은 분들을 위해 자제하고 후기는 마무리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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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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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중후반부에 고아원에 버려진 소년 이고르가, 국가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장군에게 입양되기 불과 몇 시간 전, 표트르와의 살벌한 다툼 때문에 장밋빛 꿈이 사라지고 소년원에 수용되는 비극을 맞았었습니다. 저는 소설에서 이 대목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영화 <백 투 더 퓨처 2>를 보면 주인공 마리(마티)가 "치킨"이라는 조롱을 끝내 참느냐 마느냐로 미래가 바뀌고 말고의 기로에 서는 설정이 있죠. 이런 세팅 자체는 매우 흔하지만, 베르베르는 어린 이고르에게 상황을 냉철하게 살필 이성을 충분히 부여하여, 표트르의 어떤 도발에도 불구하고 "참아야한다!"를 내면에서 끝없이 되뇌는 장면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고르는 실패하지만, 그의 고뇌를 충분히 어필하면서 진부함도 피하고, 수호천사의 구원 시그널을 방해하는 건 외부의 악마 같은 게 아니라 당사자 내면의 못난 고집이라는 주제도 더 선명히 부각합니다. 

한편, 이 2권 p26을 보면 중국 고사 새옹지마가 언급되는데, 우리한테는 너무도 익숙하지만 프랑스인들에게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설화일 것입니다. 1권, 소년원에서 절치부심하던 이고르가 얼마 후 그 장군이 추악한 범죄를 저질러 파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안도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저뿐 아니라 한국 독자 누구라도 새옹지마 고사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다만 새옹지마 항목 소개가 왜 한참 뒤인 이 2권 116번 꼭지에 실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고르가 형벌 부대에 징병되어 체첸과의 전쟁에 끌려가는 운명이, 마치 새옹지마 고사에서 아들 또래들이 맞는 상황과 닮아서일 수도 있죠. 

이 2권 p33을 보면 "관념권"을 설명하면서 리처드 도킨스 등의 입장을 재미있게 풀어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페이지 중간쯤에 보면 자크 모노라는 저자의 <우연과 필연>이 소개되는데, 이 책은 우리 나라에 이미 번역이 되어 있는 인문 명저입니다. 정말 내용이 좋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p37을 보면 비너스가, 1권에서 그리 노래를 부르던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입상하여 소감 중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p44에서 이고르도 수훈 후 상관에게 마땅히 둘러댈 말이 없어 어머니에 대해 공치사를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의 동기는 생판 다른 것인데, 이고르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해서는 이미 1권에서 우리 독자들이 다 알았습니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지난세기에 꽤 유명했던 페전트인데, 현재 젊은 세대에는 지명도가 떨어져서 어떤 사람은 "베르베르가 지어낸 행사임?"이라고 제게 묻기도 했습니다. 1980년에 한국에서도 열려 기념우표도 발행되었습니다. 

p65를 보면 이고르가 낙담하며 스탤론의 영화를 보고 시름을 달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영화는 생각할 것도 없이 테드 코체프 연출의 <First Blood>, 우리가 람보 1편으로 알고 있는 그 영화입니다. 와 그러고 보니 람보하고 이고르가 닮았네 라며 감탄할 필요까지는 없겠는데, 당연히 람보에서 영향을 받아 베르베르가 이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지 않았겠습니까? 스탤론은 이처럼 비주류, 억울이(?) 배역을 자주 맡아 1980년대 백인 일부층에 큰 호응을 얻었는데, 반면 슈워제네거는 그런 배역을 맡은 적이 없는지라 이고르가 뭘 보고 공감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스탤론에게는 현재의 루저로서 울분을, 슈워제네거에게는 자신이 전쟁터에서 누린 승자의 영광을 투사했을 듯합니다. 여기까지는 뭐 그의 자유입니다. 

여튼 이고르는 딴에는 대단한 자제력을 발휘합니다. 경찰서장으로 출세한 바냐를 보고 그의 도발(이고르는 그렇게 해석하는데,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에도 꾹 참는 걸 보면 말입니다. 아마 한때 폭력으로 제 주변을 제패한 자가, 싸움 실력으로는 한참 밑인 자들과 대등하게 살아간다는 자체가 엄청난 굴욕이라고 여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고르에게 부당한 도발을 일삼는 자들도 있으나, 상당수는 그저 사회 통념에 따라 그를 대할 뿐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p97에 나오는, 어떤 남자와 여자가 만나야 그 결합이 오랠 수 있는지에 대한 웰스, 아니 베르베르의 지론이 무척 재미있고, 이 원칙은 저 뒤 p241에 구체적인 사례(뭘까요?)에다 적용이 됩니다. 

이고르는 (악착같기 짝이 없는 카르마 때문인지) 그 생부(이 양반은 이고르가 누군지도 모르죠), 바냐, ooo까지, 전혀 예측 못했던 상황에서 차례로 만납니다. 특히 ooo은 이미 1권에서 죽은 줄 알았기에 독자의 충격은 더 큽니다. 저는 이고르의 편은 아니지만, ooo가 이고르에 대해 그토록 깊은 한을 내내 간직했다는 게 조금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자들은, 폭력의 논리에만큼은 철저하게 맹종하고 언젠가는 폭력으로 파멸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그 운명의 방향을 일단은 (작품 안에서) 정리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말입니다. 

타티야나의 치료에 힘입어 배꼽에 생긴 암이 나은 이고르. 베토벤도 재능이 곧 저주라고 여겼었는지 가장 축복받은 신체 부위인 "귀"에 말년에 탈이 생겼습니다. 이고르는 아마 출생이, 또 모친과 자신을 연결했던 그 흔적 부위가 그리 저주스러웠나 봅니다. 사실 마지막에 이고르가 그런 선택(p181)을 한 게 납득이 인 된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이고르 입장에서는 운명의 신, 수호천사(그로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으니)가 자신을 높이 올렸다가 떨어뜨리는 반복을 도저히 더 참을 수 없었겠고, 타티야나라는 "마지막 엄마"를 또 잃느니 차라리 자신이 먼저 그녀로부터 상실되자며 일종의 복수를 한 셈입니다. 물론 타티야나 입장에서는 뭔 날벼락인지 전혀 몰랐겠고 말입니다. 

자크 넴로드... 팽송은 1권에서 세 의뢰인이 고루 자신의 숨은 욕망을 대변한다고 했으나 이 자크는 팽송, 나아가 베르베르 본인을 너무도 닮아 있어서 어떤 대목은 독자가 읽기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p194에서 메리냐크는 성공한 작가로 등장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자크를 표절했다며 조롱인지 리스펙트인지 알 수 없는 태도를 보입니다. 물론 우리가 알듯이 베르베르는 성공한, 그것도 글로벌리하게 크게 성공한 작가이며 그래서 우리가 지구 반대편에서 이처럼 번역본 개정판까지 나온 작품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발한 아이디어의 과잉이라는 특징적 요소는 베르베르를 사랑하는 독자들마저 아쉬움을 느끼게 하죠. 자크는 아마 다른 평행우주에 사는, 실패한 버전의 베르베르일 수 있습니다. 사실 베르베르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좀 아껴 두지 않고, 마치 아무 피자에나 최대의 토핑으로 보답하는 인심 좋은 주인마냥 지금 집필 중인 작품에다가 모든 기발한 착상을 다 때려박기 때문에, 독자는 나중에 가서 작품들이 잘 구별이 안 되는 곤란함을 겪기도 합니다. 하긴 이 역시도 그만의 창의력이 빼어난 탓이긴 합니다. 

이 작품은 예상을 비껴가 하르마게돈의 대회전을 거쳐 엄청난 비극으로 마무리됩니다(나중에는 하나의 공식이 되긴 합니다만). 딱히 악인이나 빌런이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특정 선역 캐릭터가 기어이 흑화하여 참극이 빚어지는 결말이 충격입니다. ooo는 주어진 운명이 부과한 시련을 매번 극복했기에 독자들은 그를 좋게 보았는데, 사실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매번 뒤로 미루었기에 마지막에 크게 곪아 터진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게 그의 잘못이며, 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100m 세계 신기록을 세우라고 할 수는 없어도 자신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는 성숙함은 누구에게라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는 비난 받아야 마땅합니다. 한편 1권에서도 우리가 봤고, 2권 p67에서도 재확인한 그 업보 때문에, 결말에서 ooo 부부가 그토록 참혹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는 건 좀 심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숫자 7에 얽힌 비밀(p169)은 이 작품에서는 끝내 완전한 해명이 안 되고, 독자들은 14년을 다시 기다려 <신(神. nous les dieux)>에서야 해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천사들의 제국> 1권 p82, p110에 보면 엘로힘, 신들이라는 복수형(plural)에 대해 언급이 있는데, 이른바 존엄의 복수형(pluralis majestatis)이란 것이며 기독교나 유대교나 유일신을 믿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복수형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저 작품 <신>도 원래 프랑스어 원제로는 "우리들, 신(동격)" 정도의 뚯입니다. 베르베르는 이처럼 엄청난 지식을 통해 후속편에 대해서도 제법 깊은 복선을 미리 깔아둔 셈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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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통치성을 넘어서 : 제도적 측면 다층적 통치성 총서 5
이동수 엮음 / 인간사랑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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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여 전인 2월 12일에 다층적 통치성 총서 제6권, 정책적 측면 편을 리뷰했었습니다. 이 5권이 조금 뒤에 출간되었는데, 사실 독자로서 약간 의아하기도 했으나 여튼 당초의 계획대로, 체계를 잡아 계속 출간되는 모습에 매우 안도가 됩니다. 계속하여 힘들면서도 뜻 깊은 작업을 이어 주시는 이동수 교수님, 그리고 인간사랑 출판사 측, 특히 여국동 대표님과 이국재 부장님께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인간사랑에서 펴내는 정치학 서적들을 읽어 보면 한국의 정치학이 이제 얼마나 높은 수준에 도달했는지 새삼 실감합니다. 예전에는 한국어로 된 정치학 전문서 중 읽을 만한 게 별로 없었으며 대부분은 한스 모겐소나 조셉 나이 등의 원서를 힘들여 짚어 나가야만 했습니다. 영어로 된 전문서 중 가장 문장의 난도가 높은 분야가 신학, 정치학 등입니다. 이제 한국 학자들의 유려하고 심도 있는 문장으로 정치학 이론의 높은 경지를 엿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 너무도 큰 기쁨입니다. 

중근세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국세가 극성(極盛)에 달했을 때 세계 최강의 군대는 합스부르크의 심장 빈을 포위했었습니다. 이때 빈이 함락되었다면 그 여파로 시민혁명, 산업혁명 등은 모두 무산되거나 심각하게 지연되었겠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유럽발 혁신과 진보 요소가 상당 부분 거세된, 여전히 중세를 닮은 답답한 모습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때 투르크의 빈 포위를 방해하여 결정적인 도움을 합스부르크에 준 쪽이 폴란드 군대였는데, 이 나라의 융성함과 활기참이 이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나라가 불과 백 년도 안 되어 자신이 은혜를 끼친 오스트리아 등 세 열강에 의해 분할되어 정치적 단위가 지도에서 사라진 비참한 운명을 맞았는데, p15를 보면 이동수 교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1989년 <역사의 종언>을 논하여 크개 유명해졌던)의 "실패한 과두제" 이론을 들어 왜 폴란드 같은 나라가 변화하는 세태에 적응 못했는지를 분석합니다. 논문 중반에 나오는 헝가리도 한때 마찬가지였으나 여튼 19세기에 이른바 Ausgleich 등 대타협을 합스부르크 측과 이뤄 중흥을 도모했습니다. 논문에 나오듯이 헝가리는 한때 투르크에 의해 망했고,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에 의해 속국 신세가 되었으나 지도층이 적절한 타협책을 펴서 민족 말살 단계까지 이르지 않고 높은 수준의 자치를 수백 년 간 유지했습니다. 

북유럽의 스웨덴 역시 본디는 부족 사회에 불과했고, 30년 전쟁 당시 유럽 본토에까지 군사적 영향력을 끼쳐 제국으로 성장하는 듯했으나 막판에 일격을 맞았고, 이어 표트르 대제와의 긴 전쟁에서 기어이 패배하여 국가 차원의 위기를 맞았으나 지도층이 지혜를 발휘하여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산업적 격변기에도 잘 대처하여 경제적 풍요를 유지한 게 성공 요인이었습니다. 왕-귀족-평민 세력이 결국은 제도적 타협을 통해 절멸의 투쟁으로 치닫지 않은 게 생존을 위한 그들의 슬기였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 나오듯 덴마크는 한때 전 유럽을 벌벌 떨게 만든 강국이었으나 스웨덴이 독립해 나간 후에는 오히려 그로부터 존립의 위협을 당했으며, 남으로부터 프로이센이 치고올라오고부터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을 뺏기는 등 나라가 완전히 기우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내부부터 추스려 제도적 안정을 이루고 본연의 강점인 낙농업을 정비하며 무역에 있어서도 경쟁력을 키우는 등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응한 끝에 경제적, 정치적으로 큰 불안 요인 없는 나라를 유지해 갑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자포자기 상태로 극단 폭주하지 않고 자제하며 나머지 자산을 잘 추린 게 생존 번영의 비결입니다. 

헌법에서는 이미 헌정사 초기부터 지자제를 규정하고 있었으나 그 실행이 대단히 느려서 아직은 한국 지방자치 역사가 일천한 편입니다. 김태영 교수는 p75에서 유독 한국에서만 "지방정부 집행부만" 지방자치단체로 파악하는 오류가 만연하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신문 방송에서의 사용례를 봐도, 지자체라고 하면 집행부만을 가리키는 듯한 경우가 많습니다. 광의의 정부에 입법부인 국회가 포함되는 것처럼, 지자체도 지방의회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당연하며, 거꾸로 영미에서는 local council=지방의회=지자체로 이해하는 관행마저 있다고 합니다. 왜 집행부보다 의회가 우선하는지에 대해, 김태영 교수는 왕권에 대항하여 오랜 동안 민의를 관철하는 수단이 의회였던 그들 역사 고유의 특징 때문이라고 추론합니다. 

예전에 동사무소라 불리던 기관이 지금은 주민센터, 행정복지센터로 바뀌어 호칭됩니다. 이 배경에는 지방자치가 읍면동 수준에까지 정착되어야 한다는 1998년 정부 이후의 기조 변화가 깔려 있습니다(p123). 3년 전인 2021년에도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소속의 한병도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읍면동 주민자치회를 신설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를 말단까지 관철하려는 시도를 했었으나, 특정 정치인에 의해 사조직화하여 악용될 우려 때문에 좌초되었습니다. 그러나 필자 채진원 교수는 해당 법안의 진짜 문제점은 따로 있었다며, 주민이 아니라 위원이 주체가 되는 시스템(p127)이 주민 자치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관제화의 위험이 다분하다며 그 모순을 통박합니다. 

조석주 교수는 한국 정치의 제도화와 자율성 사이에 큰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규정하며, 한국 정치의 균열은 첫째 이제는 보수-진보의 일차원으로 설명되지 않고 젠더, 계급, 안보 이슈에 따라 다차원의 동인을 가지며, 둘째 일어난 균열이 한 모습으로 오래 지속되지 않고 그 균열상이 계속 바뀐다는 점에서 동적(dynamic)이라는 특징을 가진다고 지적합니다. 51%의 승리, 49%의 패배로 언제나 소모적으로 귀착되는 선거를 지양하고, 다당제가 정착함으로써 (정파 간 수시 이합집산에 따라)선거에 참여한 모두가 승자가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3의 길"을 설파했고 우리 나라에도 여러 번 방문했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여러 정치 실험을 시도했는데 이 책의 6장에서 임상헌 교수가 분석하는 연계 정부, joined-up government입니다. 부처 할거주의를 극복하고, 연계 유닛을 설치하며(한국에도 국무조정실 같은 게 있기는 합니다), 결정뿐 아니라 정책의 집행 단계에서도 연계성이 담보되도록 개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연계유닛이 분절화하며 오히려 통합 조정이 더 힘들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신 노동당을 표방했던 블레어의 실험이 꼭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유익한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까지는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화용 교수, 이기호 팀장 공저의 마지막 8장은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룹니다. 이주는 짧은 시간에 한국이 워낙 급속한 발전을 이루는 바람에 일어난 현상인데, 출생률까지 급감한 상황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역할은 이제 필수불가결한 위치에까지 가까워졌습니다. 두 필자는 이주 노동자들의 권익과 고용 시스템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 그들을 제도 내로 단단하게 통합하고 산업의 체질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노동의 자유로운 이주는 이미 21세기 들어 전지구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국민국가의 낡은 굴레를 넘어 화합과 포용, 구조연결을 기해야만 이 격변 속에서 살아남는 강국이 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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