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셀프 트래블 - 2024-2025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1
신연수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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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작가님의 셀프트래블 홋카이도 편 개정판이 오랜만에 나왔습니다. 초판은 근 십 년 전에 나왔었는데요. 당시 지인과 여행 계획을 짤 때 이 책을 참고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시만 해도 홋카이도만 집중적으로 다룬 여행책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현지에 애정을 갖고 발로 속속들이 톺아본 작가님이 지면에서 말을 건네는 듯한 책이었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그 지인이 나중에 말하기도 하더군요(정작 저는 못 따라감). 

남한 전체 면적에서 경기도와 전라남도를 빼고 남은 곳들과, 홋카이도의 전체 넓이가 비슷합니다. 혹은, 브리튼 섬 중 북부인 스코틀랜드와도 맞먹는 크기입니다. 일본 본토인 혼슈 섬에도 북국의 정취를 (저위도인데도 지형적 이유로) 풍기는 곳도 있지만, 홋카이도는 상대적으로 고위도이기까지 한 터라 그 풍경이 선명하게 exotic합니다. 일찍이 동계 올림픽도 열렸던 곳이고, 일본 정부에서 관광지로 정책적 개발을 해 놓은 터라 여행하기 대단히 편합니다. 

여행서가 대개 그렇지만 이 책도 처음에 여행자들의 필수 미션을 간단히 짚고, 대표 어트랙션들을 상세히 분석하는 순서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장점은 제2부에서 다루는 일곱 곳의 소개입니다. 지금 이 올해판은 말하자면 제4판 격인데, 저 일곱 에어리어는 12년 전 초판에서부터 다뤘더랬습니다. 

p69에 "홋카이도 여행의 시작은 삿포로"라고 나옵니다. 다양한 지역 축제들도 세시에 맞춰 마련되었고, 무엇보다 이곳은 동계 올림픽을 유치했던 곳입니다. 한자로는 札幌(찰황)이라고 쓰는 이곳은, 책에 나오듯이 개척 당시부터 계획적으로 세워진 도시였으므로 매우 쾌적한 인문, 자연 환경을 자랑합니다. 다음 페이지의 지도만 봐도 반듯반듯 직사각형, 아니 거의 정사각형으로 구획된 블럭들이, 이곳이 얼마나 잘 계획되었고 잘 관리되었지를 보여 줍니다. 

영화 <러브레터>는 워낙 명작이기도 하지만 특히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영화이며 일본 문화가 개방되었을 때 초창기에 수입되어 더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배경이 된 오타루[小樽. 소준]가 p111에 소개되었습니다. 책에 잘 설명되듯 한때는 러시아와의 교역으로 번성했으나 현재는 관광지로 명맥을 유지할 뿐입니다. 특이하게도 이곳에는 예술촌이 형성되었는데 사진에서 보듯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단연 눈에 띕니다. 이곳을 찾고 싶을 때를 위해 페이지에는 상세한 주소, 연락처도 나오지만, 맵코드도 일일이 붙어서 독자의 더 큰 편의를 도모합니다. 맵코드 활용법은 p21에 자세히 나옵니다. 

히가시카와[東川]도 작은 마을의 안온한 매력으로 일본, 나아가 세계로부터 관광객을 모으는 고장입니다. 2291m의 높다란 아사히다케[旭岳]이 이 지역을 상징하는 자연 명소입니다(p159). 일본어로 아침을 아사히라고 하므로, 旭이란 글자도 이때는 훈독하여 저렇게 읽습니다. 홋카이도처럼 높은 위도의 지역에 초원이 펼쳐진다는 게 의외이지만 그게 다 지형이 빚은 오묘한 조화입니다. p166에는 비에이[美英]이 소개되는데 사진만 봐도 마음이 상쾌해집니다. 한국인들도 그 풍광이 참 좋아 잘 아는 JR비에이역이 p178에 소개됩니다. 또, 라벤더 때문에 얼마 전 한국에서도 갑자기 유명세를 탄 후라노[富良野]가 눈부신 사진과 함께 p184부터 나오는데... 와, 라벤더 퍼플이 정말 장관입니다. 

온천으로 유명한 도야[洞爺. 동야] 호(湖)는 일본어로도 한국어로도 발음이 비슷합니다. 일본어로는 도야코라고 읽는데, 책(p208)에 저렇게 나오는 건, 호수에 해당하는 부분은 그냥 한국식으로 읽어서 그렇습니다. p210의 지도를 보면 호수 한가운데에 나카지마 섬이 표시되는데 그 모습이 호주 대륙과도 비슷합니다. 그 넓이는 우리나라 여의도보다 조금 더 큽니다. 도야 호 전체의 면적은 마포구, 서대문구, 용산구, 중구를 합친 것과 비슷한데, 같은 칼데라 호인 백두산 천지(天池)의 2/3쯤 됩니다. 

훗카이도의 이름난 고장이라고 하면 역시 하코다테[函館]를 빼놓을 수 없겠는데, p223을 보면 전철노선도가, 일본어와 한국어 모두가 표시된 채로 보기 좋게 제시되었습니다. 이곳이 러시아와 일찍부터 교역이 있었던 곳이라서 p227을 보면 정교회 예배당이 나옵니다. 이 정교회 시설 이름이 일본어로 ハリストス(하리스토스)라고 붙었는데, 본래 일본어로는 그리스도를 キリスト(키리스토)라고 하지 저렇게는 잘 안 쓰죠. 이는 정교회(Orthodox) 관련으로만 저렇게 표기합니다. 

하코다테에는 19세기부터 서양인들이 많이 왕래했기에, 책에 보면 로마가톨릭(중에서도 파리 외방선교회) 모토마치 성당, 성 요한 성당(성공회) 등 기독교 교파별로 고루고루 유적이 다 있다시피합니다. p228에 나오는, 영국 선교사 데닝이라는 사람은, 영국 국교회의 월터 데닝(1846~1913)을 가리킵니다. 또 같은 페이지의 메리먼 콜버트 해리스(1846~1921)도 아주 유명했던 종교인인데, 이 사람은 미국 감리교단 소속입니다. 가히 세계 기독교 박람회장 같습니다. 정작 현대 일본은 기독교세가 가장 약한 편에 속하는 나라인데도 말입니다. 

책 끝에는 맵북 겸 미니노트가 딸려 있어서, 가위로 잘라 쓸 수 있게 배려되었습니다. 홋카이도 여행에 멋진 동반자가 될 예쁜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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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집 컬러 일러스트
김소월 지음 / 북카라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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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들 중 분인 소월. 안서 김억의 제자였고 그로부터 한국인 고유의 정한(情恨)을 아름답게 절실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던 시인. 시에 그림을 곁들였을 때 가장 조화롭게 잘 어울리는, 심상으로나 운율로나 최고의 경지에 올랐던 그였기에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p10)" 이 시 <산유화>에서 셋째 행의 "갈"은 동사 가다의 꾸밈꼴인지, 아니면 가을의 준말인지를 놓고 예전부터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아마도 소월이 그 효과 모두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그리 썼으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p11을 보면 노랑, 분홍, 녹색이 조화롭게 배치된 게, 누구의 눈에도 완연한 봄 풍경입니다. "산유화"라는 이 시가 너무 유명해서 실제로 산유화라는 꽃이 있는 줄 아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꽃은 없습니다. 이 시가 잘 표현한 것처럼, 산에 핀 한 송이 이름 없는 꽃이 풍기는 정겹고 안온한 분위기가 저 세 글자 안에 오롯이 담겼습니다.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p80)>. 세상 모르고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편한 사람이 없을 것 같고, 시적 화자도 그리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지만, 사실은 화자야말로 세상 모르고 산 사람이 맞습니다. 세상 모르고 살았다며 회한, 자괴감을 표현할 때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말이지만, 제10행에서는 반대로 근심 없고 그리움 없는 아이 같은 상태를 희구합니다. p81의 청색 톤 산수화는, 이미 심화(心火)가 사르고 간, 한때 붉었던 제석산(帝釋山)인 듯도 합니다. 제석산이란 이름은 꼭 관서 지방뿐 아니라 한국 어디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p93에는 <오시는 눈>이 실렸습니다. "기다리는 날에는 오시는 눈." 모두 4행인데 각운도 잘 맞고 7-4의 음수율도 빈틈이 없어 시라기보다 차라리 노래 같습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어린이가 바라듯 눈을 기다린다는 게 아니라 아마도 그님을 기다리는 중 야속하게 그를 방해하려 눈이 하필 내린다는 원망 같습니다. 이렇게 눈이 오면 님도 나를 못 찾을 뿐 아니라 나도 길을 못 나섭니다. 그런데 눈이 차라리 고마운 게, 눈도 안 오는데 님이 안 오면 그 이상 절망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눈이 "오신다"는 존대 표현은 예전 사대문 안에 살던 진짜 서울 사람들의 방언 비슷합니다. 페이지 하단 일러스트는 마을 일대가 모두 하얗게 덮인,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담았습니다. 

p120에는 "차(次) 안서 선생 삼수갑산 운(韻)"이란 시가 나옵니다(띄어쓰기는 제가 임의로 했습니다). 제목의 뜻은 책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안서 선생도 책 각주에 나오듯이 스승 김억을 가리킵니다. 북한 정권이 세운 핵시설이 소재한 영변은 평안도에 있고, 삼수 갑산은 함경도 소속입니다(현재 북한 행정 구역 상으로는 양강도). 안서 소월 두 분 모두 평안도 사람이라서 시 세계에 이들 지명이 자주 나옵니다. 삼수갑산은 예로부터 귀양지로 유명했는데, 이 시에서는 님과의 사랑이 꼬이고 꼬여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를 비유합니다. 일러스트는 산 속에 사슴이 노닐고, 오른쪽의 하늘에는 삼수 갑산의 울타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나는 새들이 묘사됩니다. 

p88의 <접동새>도 국어, 문학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작품입니다. 아우래비, 불설워 등은 토속적인 시어라고는 하는데(뜻은 책에 다 설명됩니다), 소월이 시 속에서 만들어낸 어휘이기도 하고 여기서 그의 천재성이 다시 확인됩니다. 진두강은 두만강이라고도 하지만, 진두(津頭) 자체가 한국 어디서나 쓰는 말이므로 구태여 특정 지명이라고 새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죽은 누나를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p89 하단에 소년보다 키가 큰 젊은 여성이 시골길에서 뛰노는 일러스트가 나옵니다. 소월의 시 자체가 입으로 소리내어 읽으면 그대로 노래가 되는 절창인데, 여기에 예쁜 천연색 일러스트가 함께해서 너무도 행복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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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프롬프트 120% 질문 기술 - 업무 속도 10배 향상!
ChatGPT 비즈니스 연구회 지음, 김모세 옮김 / 정보문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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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OpenAI社가 챗GPT라는 생성형 인공지능 개발에 성공한 이후, 좋은 프롬프트를 하는 기술이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래 자신은 검색 실력이 좋다며, 평소 검색하듯이 하면 되지 않겠냐고도 하던데, 그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이런 프롬프트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또 지금 이 책에서 보듯, 그간 프롬프트에 대해서도 연구가 많이 이뤄졌습니다. 

책은 모두 7부분으로 이뤄졌습니다. 챕터 1에서 프롬프트가 무엇인지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이어 업무에서 활용하기, 일상생활에서 요긴하게 쓰기, PC나 스마트폰과 연동하기, 곤란한 상황에서 쓰기, 가장 모범적인 프롬프트의 예 등이 설명됩니다. 프롬프트 하나를 토픽으로, 이처럼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사실부터가, 이미 챗GPT가 어느 정도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왔는지를 확인해 줍니다. 

p26을 보면 고객 클레임에 대한 사과 방법 조사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이런 사항이야 해당 업무에 종사하는 분들만 알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 대목에서 공부해야 할 포인트는, 저 프롬프트란에 써 넣는 질문입니다. "당신은 최고의 고객 지원 담당자입니다. (중략) 적절히 사과하는 방법을 5개 나열하고, 포인트를 상세하게 알려 주십시오." 이제 이런 복합적이고 특정 뉘앙스를 풍기는 질문을 컴퓨터가 알아듣고, 그 답을 자연어와 아무 차이 없는 스타일로 저렇게 내놓는 걸 보면 신기합니다. 다만 제가 아쉽게 느낀 건, 이 정도는 해당 업체에서 더 구체적으로, 더 상황에 특화한 매뉴얼을 이미 마련하고 있어야 맞지 않은가 하는 점입니다. 이 기능이 유용하려면, 이 분야에 전에 종사해 본 적이 없는 초보 사장님한테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업체이건 인플루언서이건 요즘은 인oo그o 같은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p37을 보면 해시태그 전략에 대해 제안을 받는 상황인데, 역시 그 질문은 자연어(自然語)스럽고 매우 구체적입니다. 질문마다 "당신은 최고의 ooo입니다."라는 템플릿 프레이즈가 붙는데, 혹시 "당신은 평균적인, 아니면 이제 갓 일을 시작한 초보 ooo입니다."로 문구를 바꾸면, 그에 걸맞게 다운그레이드된 처방이 제안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 그렇기보다는, 성숙한 엔진답게 "그러시군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상황에 무관하게 저는 최상의 능력을 발휘하겠습니다. 저의 대답은 최고의 ooo일 때와 같답니다."라며 너스레를 떨 것 같습니다.(실제 안 해 봤기 때문에 뭐라고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AI를 활용하지 않는 사장님(중소기업 경영자. 동네 자영업주 등)도 그 나름 창의력을 발휘하여 간판도 재미있게 걸고, 배달앱에다 말도 웃기고 재치있게 광고합니다. 그런데 이런 센스가 전혀 없고 뭐라고라도 홍보는 절실한 사장님이 있다면? 그때도 챗GPT에다 물어 보면 됩니다. 질문이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는데, 음... 모르겠습니다. 책에 나온 예는 대단히 모범적입니다. 하지만 역시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려면 저런 모범적인 답안보다는, 좀 힙하고 기발한 무엇이 더 필요하지 않을지. 

그런데 p90을 보면 재미있는 주제가 나옵니다. 식재료 제조사(制造社)의 마케터로서, 제품 이름을 제안해 보라는 프롬프트에, "신선한 향기와 활기를 담은 '차바라기'로 새로운 차 경험을 시작하세요!"를 내놓는다는데, 이 대답은 일종의 광고 카피로 제시하는 건지, 아니면 앞뒤 장식 문구는 다 제거하든지 하고 "차바라기"라는 이름만 건져 가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자라면 좀 그렇고, 후자라면 차바라기라는 하나의 시안을 비롯 여러 개를 제안받을 수 있을 테니 좋을 듯합니다. 후자 쪽이라면 막 사람한테 영감 떠오르기를 기다리기보다, 이 챗GPT 컨설팅이 훨씬 좋겠습니다. 그런데 작명도 실제 이름이 얼마나 좋냐보다 작명가 누구한테 받았냐가 더 대중에게 어필하듯, 상표 이름도 챗GPT보다는 손혜원 같은 사람에게 받아왔다고 홍보를 해야 더 잘 먹힐 것 같습니다. 또 이게 식재료 제조사인지, 아니면 완제품 마케터인지에 따라 답이 다를지도 궁금합니다. 

일본책이 원서다 보니 하이쿠[俳句] 작성(p109)도 챗GPT한테 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시도는 일본 자체 개발 인공지능 연구 과정을 통해 10년 전부터 이미 시도되었더랬는데 성과가 괜찮았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단조롭다(하이쿠는 특히나, 관행대로만 지으면 아주 밋밋한 실패작이 나오기 쉽습니다)는 생각이 든다면, "독창적인" 등의 키워드를 프롬프트에 넣으라고 합니다. 영문 첨삭(p123) 같은 건 대단히 유용한 기능이겠는데, 사실 이런 것도 이미 20년 전 MS 워드(p148)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한 기능이었습니다. 엑셀 함수를 보여 주고 이게 무슨 기능인지 풀어 줄 수(p140)도 있다고 합니다. 

문제를 풀고 직접적인 해설을 받는 등의 기능은 컴퓨터가 잘 하지만, 메타적인 사고는 인간에게만 가능한 걸로 여겨졌습니다. p158에는 메타정보 생성하는 방법도 나오는데, 다만 이게 컴퓨터 입장에서는 메타라는 의미가 크지 않을 것입니다. 책의 마지막 7장에, 여태 검증된 가장 효과적인 프롬프트들이 표로 정리되었으므로 시간없는 이들에게는 이 부분만 참조시켜도 될 듯합니다. 깔끔하고 멋진 책이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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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입문 - 프랑스어권의 비트겐슈타인 입문 필독서
롤라 유네스 지음, 이영철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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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베이루트 소재 성 요셉 대학교에 재직 중인 학자입니다. 책 뒤표지를 보면 "프랑스어권의 비트겐슈타인 입문서"라는 말이 있는데, 레바논은 1차 대전 후 프랑스의 관리 하에 들어갔었고, 사실 19세기에 이미 나폴레옹 1세가 지중해 일대에 세력을 확장하며 투르크로부터 빼앗아 온 상태였습니다. 프랑스 제3공화정 시대에 베이루트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세운 교육시설이 성요셉대학교입니다. 앞표지에 나온 원제 "Introduction a(아 그라브) Wittgenstein"이라는 문구만 봐도 불어로 원래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철학계의 원로이신 이영철 부대 명예교수가 번역했습니다. 역자 서문 p13을 보면, 원저 중 독어나 영어로 된 문장은 가급적 (불어 원서로부터의) 재인용이 아닌 원문으로부터 번역했다고 밝히시는데 이런 점만 봐도 벌써 믿음이 생깁니다. 지금으로부터 73년 전에 죽은 비트겐슈타인은 그 후로도 끊임없이 재해석되었는데 그의 사상적 깊이와 입체성이 증명되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타고난 지능 자체가 범상치 않아서 천재 캐릭터 자체가 주는 매력이라는 게 있습니다. 저자 서문 p17을 보면 공산주의자, 소련 간첩(p61 이하 참조), 동성애 아이콘 등으로 매번 거듭나고 재해석되는 그를 황홀하게 바라보는 어조가 느껴지는데, 이 중에는 "탈식민의 기수"도 있습니다. 저자도 레바논 사람이다 보니 이런 시각에 특히 공명하는 듯하며, 이렇게 성격 규정을 한 사람은 인도 델리大 교수 비나 다스(Veena Das)입니다. 본문이나 권말 참고문헌 소개에도 이 여성학자의 풀 네임이 나오지 않아서 제가 이 후기에 따로 적어 둡니다. 

아무래도 비트겐슈타인 하면 일반인들이 대뜸 떠올리는 사항이 분석철학, 논리실증주의 등이겠습니다. 이 역시도 사실은 40여년 먼저 고틀로프 프레게가 정초를 놓은 분야이기는 합니다(p219). p73을 보면 역자 각주에서, 프랑스어 원서에는 (독일어로) ist라고 표기되나 이 번역서에는 영어로 is라고 표기한다고 밝힙니다. 사실 비트겐슈타인은 대단히 영어에 능통했고(물론 처음엔 서툴렀죠. p37) 그가 사상의 핵심을 공유한 지인들도 영국인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p73에 나오는 계사(繫詞. copular)를 설명할 때, 뜻이 같은 것 같아도 외연이 훨씬 넓은 영어의 is가 독일어 ist보다 더 적절한 예시 아니었겠습니까. 

전국시대 조(趙)의 공손룡도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을 폈습니다만 2300년 후의 비트겐슈타인 역시 계사로 연결되는 주부와 술부의 관계가 단일하지 않음에 주목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그저 한가하고 무익한 말장난이 아니라 불합리한 언어의 지배로부터 인간 정신을 해방시키려는 노력(p75), 언어에 의해 걸린 마법에 맞서는 투쟁(p151)임을 우리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p78을 보면 역자는 각주를 통해 부정적 사실("일각수는 존재하지 않는다")과 비사실("지구는 항성이다")을 구별하여 초보자를 돕습니다. 우리가 탈근대 탈근대 하는 건 근대의 긍정적 속성에 주목하기보다, 비트겐슈타인도 내내 예민하게 여겼던, "근대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전제로 한 반응인데, 비트겐슈타인은 과학에서 경탄이라는 반응을 제거하고, 오히려 과학의 본래 스탠스인 무관심, 냉담으로, 저런 의도된 탄성과 난리법석에 맞서라고 합니다. 번역문에서, 역자 이영철 박사님의 스타일이 발랄하십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꿈꿀 수 없는 걸 꿈꾸고 견딜 수 없는 걸 견디며 이길 수 없는 적을 이기는 낭만과 시련을 말했는데, p95에 인용되는 <논리철학 논고>의 한 구절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생각될 수 있는 것을 경계짓고, 그로부터, 생각될 수 없는 것을 (따로) 경계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뒤르켐은 궁극의 인간 자유 발현은 바로 "자살"이라고까지 했는데, p115에서 저자 유네스 박사는 비트겐슈타인이 본격적으로 논하지는 않은 자살이라는 테마에 대해 잠시 곁가지 삼아 얘기를 꺼냅니다. 

생전에 비트겐슈타인이 말하지도 않은 걸 어떻게 논의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브라운 신부와 대도 플랑보의 창조자로 유명한 G K 체스터튼(비트겐슈타인보다 15년 연상)은 생전에 <정통론>에서 자살에 대해 일정 분석을 한 적 있는데, 여기서 그는 자살이 하나의 죄일 뿐 아니라, 궁극의 죄라고 합니다. 하다못해 꽃을 훔치는 도둑도 그 아름다움을 칭찬할 줄은 아는데, 자살자는 꽃밭을 아무도 못 즐기게 파괴하는 반달에 가깝다고 비유하면서 말입니다. 그건 그렇다치고, 저자 유네스 박사는 비트겐슈타인과 체스터튼이 어디서 어떤 연결지점을 가진다고 여기길래 이런 대변(代辯)의 구조를 세울까요? 그 근거는 윌리엄 브레너 교수의 논문 "윤리학 기초"에서 찾습니다. 이 논문에서 브레너 교수는 체스터튼의 정통론과 비트겐슈타인의 가치중립론 사이에서 기묘한 공통점을 찾았습니다. 

과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암살자(p16, p225)일까요? 직업 암살자는 물론 생명들도 빼앗지만, 명성이 나려면 기술도 좋아야 합니다. 기존의 모든 엉성한 담론 기초를 일일이 지적, 비판하며 모든 체계를 다시 세워 보려던 그의 노력은 꽃밭에 불을 지르려는 게 아니라 궁극의 낙원을 지으려는 집요함이었습니다. 장자(莊子)의 비유에서처럼, 내가 지금 꿈을 꾸는지 아닌지(p182)를 명확히 알려면 제2의 데카르트가 되어 모든 걸 의심하고 끝까지 파헤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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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얼 씽 - 문학 형식에 대한 성찰
테리 이글턴 지음, 이강선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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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쯤에 테리 이글턴의 <문화란 무엇인가>를 읽고 서평을 남긴 적 있습니다. 역자 이강선 박사는 후기에서 "이글턴이 이번에는 본연의 전공인 문학으로 돌아왔으며, 그것도 소설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사실주의를 옹호하고...(p235)"라며 이 책의 의의를 설명합니다. 이 문장을 읽고 새삼, 사실주의가 소설 장르의 완성, 정착에 그만큼이나 기여했었음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또 본디 마르크스주의의 지평 위에 서 있는 이글턴이기에, 그가 논하는 사실주의가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어느 정도나 상호의존, 포섭, 중첩, 길항하는지도 흥미롭게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책에다가 제목을 "더 리얼 씽"이라 짓다니 과연 그답다 싶었습니다.  

어떤 명제라고 해도, 그것은 사실 진술임과 동시에 평가입니다(p48). 순수하게 어느 하나의 영역에만 속하는 언명은 비트겐슈타인의 판타지랜드에나 존재한다는 건 이미 판명 난지 오래입니다. "묘사"라는 게 철저히 기술적, 중립적으로 대상을 그리기만 한다고 여길 수 없으며, p48에서 로저 스크루턴이 말하듯, "무엇을 묘사할 때는 그것을 비난하는 힘이 깃들기 마련"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A 매킨타이어는 "사실 진술이 참 또는 거짓이듯, 평가 역시도 진위 판정의 대상이 된다"고까지 말합니다. 이렇게, 이른바 객관성이라는 게 항상 기계적이고 중립적일 수 없다고 말하는 데서, 이글턴이 옹호하는 사실주의가 어디를 바라보는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p63에서 이글턴은 사실주의를 중간계급이 낳은 아이라고 확인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사실주의는 귀족이 만들어낸 과장된 낭만주의, 위선적 도덕주의와 대치되어 탄생했습니다. p76을 보면, "대실재(the Real)는 본질적으로 환상적"이라는 정신분석학의 역설적 언명이 다시 소환됩니다. 사람은 원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좋아하지도 않고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건 백일몽(reverie)이지 단단한 중력을 뿜는 대지, 부동산(realty)가 아닙니다. 대실재라니, 원 그런 건 지구상 어디에도 없습니다(자연주의에 대해서는 특히 이 책 p181 이하 참조). 

마르셀 뒤샹은 철물점에서 파는 변기 하나를 갖다놓고 "분수"라 명했는데 원래 인간의 인지라는 게 다 이런 식이며 발자크니 스탕달이니 플로베르니 하는 위인들도 결국은 모든 걸 오브제화(化)한 데 지나지 않습니다. 다만 재현과 반영, 배제와 왜곡(p93) 사이의 넘나듦이 여전히 불편한데, p97에서 이글턴은 근대 사실주의의 큰 업적을, 페트라르카 식의 소네트 규칙으로부터 창작자와 향유자를 해방시킨 데서도 찾습니다. p107에서 이글턴은 롤랑 바르트를 인용하며 "사실주의는 조작, 왜곡, 편파"라고까지 극언합니다. 사실 진술에 가치가 개입하는 걸 넘어 아예 대놓고 왜곡이라 규정하는 과감함에 놀랄 뿐입니다. 

p124에서 이글턴은 아들뻘 매슈 보몬트(<평론가의 임무>에서 대담했죠)를 인용하며 사실주의는 순진하면서도 정직하지는 못한, 일종의 환상에 대한 집요한 추근댐, 혹은 트롱프뢰유(tromp-loeil)라고까지 비난(?)합니다. 하지만 이글턴의 책을 여태 읽어 온 우리가 알듯, 이글턴의 타매는 나중에 칭송으로 바뀌는 예가 비일비재하죠. p134에서 의미심장하게도 이글턴은 카프카의 <변신>을 예거하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이글턴적 관점에서 사실주의의 극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크스는 사실주의를 일러 모든 직업, 신분에 대한 환상을 깼다며 띄우고, 반대로 막스 베버는 환멸(p135)의 괴로움을 개탄합니다. 

루카치는 당연하게도 이 책 곳곳에서 이글턴의 까마득한 선배처럼 멘토처럼 모셔져(?) 결정적일 때마다 논거로 피난처로 활용됩니다. 이글턴이 할 말은 애저녁에 루카치가 다 해 놓지 않았을까요? 루카치가 불멸이 아니기에, 그가 미처 못 한 말은 우리가 이글턴에게 마저 듣는다고 간주해도 되지 않을지. 이 독후감 서두에서 제가 바람 잡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p163 이하에서 본격 논의되는데 재기발랄하신 이글턴도 여기서는 우리 독자의 예상 범위를 크게는 벗어나지 않습니다. p201 이하에서 이글턴은 신교와 구교의 차이까지 논급하며 구교가 다분히 생과 세계에 대해 환상을 유지하길 원했다면 신교는 금기를 해제하고 생의 불쾌함을 사람들 앞에 그대로 노출한 공(?)이 있다고 단언합니다. 결국 우리는 사실주의를 향해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사실주의이기에 (그에게서 정말 흥미롭게 들을 수 있을) 포스트모던에 대해서는 p217 이하에 아주 짧게만 논의됩니다. 짧은 예고편만이지만 이상하게 재미있는데 다 그의 썰 푸는 재능 덕인 줄 우리가 익히 압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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