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의 불편함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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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이 가족 구성원을 잃고 서서히 슬픔으로 붕괴되어가는 과정을 담담한 필체로 처연하도록 슬프게 묘사해

인터내셔널 부커 상을 최연소로 수상한 작품이 된 그날 저녁의 불편함은 시작부터 파멸의 과정까지 한순간도 과장되게 슬픔을 묘사하거나 휘몰아치는듯한 감정의 변화를 그리지 않는다.

단지 아이를 잃은 엄마는 먹는 걸 거부하는 것으로 그리고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동생은 그날 입은 외투를 벗지 않고 몸에 마치 철갑을 두른 듯 두르고 있고 배변을 거부하는 것으로 자신이 느끼고 있는 슬픔을 표현할 뿐...

어느 날 아침에 웃으면서 작별을 고한 아이가 돌아오지 않을 때까지 이 집안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빠는 젖소농장에서 소젖을 짜고 그날의 우유 생산에만 관심을 두었고 엄마 역시 집안일을 하고 있었던 여느 날과 다름없었던 그날...

하지만 오빠가 자신을 데려가지 않았다고 심통이 났던 열 살의 야스는 자신이 빌었던 소원 때문에 오빠가 그렇게 된 거라고 자책한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기다리며 그리움과 자책으로 밤 잠을 설치고 그날 이후로 외투를 벗지 않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의 슬픔에 압도되어 있었던 부모는 야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이를 잃은 부모를 보면 그들이 느낄 슬픔에 동조하고 위로하기 바쁘지만 누구도 그 집의 남은 아이들 역시 부모와 마찬가지로 형제를... 자매를 잃은 거라는 걸 미처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더군다나 남은 아이들의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더욱 그 아이들도 충격을 받고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이 책의 부모 역시 그랬다.

자신들이 잃은 첫아이로 인한 슬픔 때문에 남은 아이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그런 사이에 남은 아이들은 스스로 상처를 위로하는 방법을 찾는다.

둘째는 난폭한 행동과 욕설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표현할 뿐 아니라 그 행동은 갈수록 지나쳐서 동생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 정도였지만 이를 제재하거나 아이들을 보호해 줄 부모는 여기에 없다.

평소에 감수성이 예민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쉽게 동조되는 야스는 그 위로의 방법이 더 극단적이지만 아무도 이를 눈여겨보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로지 어린 동생만이 그런 야스를 이해하고 안아줄 뿐...

야스는 자신의 두려움을 오빠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리고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죄책감을 알아주고 자신을 돌아봐주고 안아줄 부모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지만 그날 이후로 부모는 서로를 바라보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

마치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을 묵묵히 견디는 구도자와 같은 자세로 이 모든 불행과 슬픔을 참아내고자 할 뿐이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이 집안에 결정타가 내려진 건 대를 이어 해온 목장에 구제역이 발생하면서이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망연자실한 채 무너지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이 가족에게도 희망이 찾아올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두꺼비의 행동을 지켜보고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농장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세심한 관찰과 관심을 가졌던 야스를 통해 오빠가 그렇게 사라진 후 자신이 느끼던 감정과 가족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그날 저녁의 불편함은 이들이 사는 곳의 평화로운 정경과 이 들 가족이 겪는 압도적인 슬픔과의 대비 때문에 더더욱 처연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서 마지막의 야스의 선택은 더욱 안타깝고 가슴이 먹먹해지게 만들었다.

시종일관 담담하게 그려서 더 그들의 슬픔과 불행이 와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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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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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가다 보면 분명히 맞는 말을 하고 그 사람의 행동이 옳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거나 거부당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너무나 완벽한 도덕주의자 거나 정의로운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같은 수위를 요구할 때가 많고 타협을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태도를 보여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다.

이 책의 주인공 친구인 앤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부유한 집의 외동딸로 태어난 백인 여성

빈부격차가 심하고 인종차별을 일상처럼 여기던 시대에 그렇게 태어난 걸 스스로 수치스럽게 여기고 부모로부터 받는 모든 걸 거부했지만 정작 그녀가 그렇게나 신경 썼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 특히 흑인들은 그녀의 그런 마음을 오히려 오만하다고 여겨 배척했다는 것에서 그녀의 딜레마를 엿볼 수 있었다.

그녀가 살아온 평범하지 않은 삶의 여정을 같은 대학에서 룸메이트로 지낸 조젯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려내고 있는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는 1960~70년대 미국을 관통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반전운동이 일어나고 모든 것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히피 문화가 발달하고 온갖 약물과 대마초를 피워대며 자유를 구가하던 시대

페미니즘이 성장하고 인종차별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가던 시절...

이 모든 일에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앤은 하지만 이내 모든 활동을 접고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에게 눈길을 돌린다.

똑똑하고 부유하고 열정적이며 이런 모든 일들에 앞장섰던 앤과 달리 조젯은 캐나다 국경 인접에서 나고 자라 어릴 적에 처자식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로 인해 엄마 홀로 벌어 아이들을 양육하는 집안에서 어렵게 자랐을 뿐 아니라 그 주변 대부분의 집들처럼 폭력에 익숙하고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순종적인...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 조젯이 대학에 들어와 처음으로 함께 했던 앤... 당당하게 의견을 말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다 잘하는 앤을 동경하고 자랑스러워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앤 역시 자신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 다른 성격을 지닌 조젯이 매력적으로 비쳤을 듯...

하지만 이 내 둘은 서로의 다른 성격차이로 결별하고 각자의 인생을 걷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평범한 가정을 가져보지 못한 것 때문에 조젯은 앤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잡지사에 취직해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는 평범한 길을 가지만 앤은 조젯과 달리 굴곡진 인생을 살게 된다.

당시 분위기에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않았던 흑인 남자와의 사랑은 당연히 모두에게서 질타를 받지만 앤은 소신처럼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행복한 듯 보였지만 앤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믿지 않았던 경찰 살해 사건이 벌어진다.

재판정에서도 그녀는 평소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한 대가로 오랫동안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녀의 삶 대부분은 이렇게 구속된 채 살아가는 비극을 겪지만 이 부분에서도 그녀는 다른 사람과 다른 반응을 보인다.

어쩌면 그녀는 감옥에서 더 자유로웠던 것처럼 보였다. 마치 스스로를 옭아매던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그녀는 이상주의자였고 평화주의자였으며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부류...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걸 겁내지 않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국의 가장 격동적인 시절을 관통하며 살았던 두 여자의 서로 다른 삶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진지하고 덤덤하게 그려져 인상적으로 와닿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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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기도할 때
고바야시 유카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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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자식 앞에 선 늘 죄인일 수밖에 없다.

아이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 성인이 되는 게 별거 아닌 게 아닌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요즘은 특히 더 그렇다.

언제부턴가 각종 뉴스에서 등장하는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는 우려할 수준을 넘어 심각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내 아이는 그 대상이 아니길 바랄 뿐...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폭력 역시 단순히 아이들의 장난 수준을 넘어 기성세대의 범죄와 다를 바 없는 잔인함과 폭력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미디어나 소셜 네트워크 같은 첨단 기기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요즘 아이들은 기존 세대와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보이고 있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기분은 참담함을 넘어선다.

작가의 데뷔작인 저지먼트에서 죄의 무거움에 비해 처벌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강하게 했다고 하는 데 작가는 이런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듯하다.

평범했던 집이 아버지의 불륜으로 깨어지고 엄마마저 집을 나가 이혼하면서 자신은 가족에게 버림받았다 생각하는 도키타는 삶의 의욕이 없다.

그런 도키타가 학교의 불량배인 류지 일당의 표적이 되어 매일 돈을 뜯기고 괴롭힘을 당하는 등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도키타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바랄 수 없고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친구에게마저 배신당했다 생각하던 도키타는 자신을 괴롭히는 류지를 죽이고 자신 역시 죽고자 결심했을 때 마치 기적처럼 구원의 손길을 뻗어온 사람이 있었다.

삐에로 분장을 한 그 사람은 도키타에게 그 간의 사정을 듣고 그를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도키타는 어른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을 류지 일당으로부터 도와준 그에게 신뢰감이 생긴다.

심지어 그는 도키타가 제대로 계획을 세운다면 같이 도와주겠다는 제안까지 한다.

그는 왜 도키타의 계획을 말리지 않고 오히려 범죄 계획을 돕는 걸까?

사실 도키타가 사는 동네에는 괴소문이 돌고 있었다.

몇 해 전 한 소년이 학교에서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그 소년이 자살한 날인 11월 6일에 자살하는 사람이 해마다 나오고 있고 올해도 누군가가 죽을 거라는 괴담

도키타는 그 괴담을 이용한 살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청소년이 자신을 괴롭힌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살인 계획을 세운다는 단순한 사실만 떼어놓고 보면 그 아이의 계획을 찬성하거나 옳다고 생각할 어른은 없다.

하지만 그 아이가 이런 계획을 세우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본다면 그 아이의 계획을 단순히 도덕과 원칙의 문제로 대할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악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을 뿐 아니라 영웅담처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니는가 하면 자신들이 어떤 짓을 저질러도 법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걸 아는 영악함을 보이는 그 아이들은 어린아이라고 마냥 도움을 주기엔 거부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런 아이들을 교화로 변화시키는 게 가능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갈수록 잔인해지는 청소년 범죄와 어떤 죄를 지어도 벌할 수 없는 촉법소년의 문제가 자주 거론되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교정할 여지가 있다는 사회정서에 묻혀 늘 흐지부지되고 있는데... 피해자들과 그 가족이 겪는 고통과 괴로움을 생각하면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 공론화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피해자 가족이 겪은 참담한 비극 앞에서 먹먹해짐을 느끼게 했다.

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책을 읽고 난 뒤 그들을 단죄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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캑터스
사라 헤이우드 지음, 김나연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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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 원칙을 중요시하고 계획을 세워 그 계획대로 해야만 하는 여주 수잔

그녀는 자신의 일이 아니어도 누군가가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부당한 일을 하면 그냥 지켜보고만 있지 않는다.

반드시 이의를 제기하고 행정당국에 민원을 접수할 정도로 적극적이지만 그녀 주변의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고지식하고 유머감각 없는 사람이라 평가절하하기 일쑤다.

어쩌면 그녀의 진급이 늦어지는 데는 그런 주변의 평가도 한몫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그녀에게 두 가지 큰일이 벌어진다.

하나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사망으로 받게 될 유산이 공평하지 않게 남동생에게 유리하게 정해졌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조차 없는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부조리한 일은 그냥 참고 넘길 성격이 아닌 수잔은 적극적으로 유산 분배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만 엄마의 생전에 쓴 유언장은 강력한 효력을 발휘해 재판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고 오랫동안 자신과 파트너 관계를 맺었던 남자에게는 관계 정리를 통보하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유산을 둘러싼 싸움을 벌이는 상대가 서로 얼굴조차 보기 싫어하는 남동생 에드워드이고 사람들에게 다소 피곤하고 까칠하게 구는 성격의 수잔에 비해 언제나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에드워드에게 사람들이 더 호의적이어서 그녀의 재판에 유리한 증언을 할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보이는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 그녀의 까칠하고 예민해 보이는 태도가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의 나이는 마흔을 훌쩍 넘긴 마흔다섯 살... 어린 나이도 아니고 어느 누가 사소한 모든 일에 불만을 터트리고 옳은 소리라 해도 늘 잔소리를 하는 여자를 환영할까?

그래서 이야기 초반에는 그녀에게 동조하기 보다 그녀의 성격이 너무 예민하고 까칠하다고 여겨지는데 뒤로 갈수록 그녀가 왜 그렇게 사람들을 멀리하고 주위에 가시를 두르고 사는지 이해가 가면서 연민의 감정이 느껴졌다.

철도 들기 전부터 늘 술에 찌들어 사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기 일쑤고 집안에서는 싸움이 잦았으며

가족이 함께 뭔가를 하면서 즐겁게 웃거나 어디를 간 기억조차 없다면 성인이 되어 가족을 이루는데 부정적인 그녀를 탓할 수 없을듯하다.

여기에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하나뿐인 남동생은 어린 시절 아팠다는 이유로 엄마의 과보호를 받아 누나의 모든 것에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건다면 그런 동생과 사이가 나쁜 것 역시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이런 와중에 마지막까지 엄마는 유산을 동생에게 더 물려줌으로써 수잔으로 하여금 자신이 동생보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 해준 거나 마찬가지...

그녀가 기를 써서 유산에 이의를 제기한 이유가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오랫동안 파트너 관계를 유지한 사람은 있었지만 결혼은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수잔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임신을 받아들이면서 변화는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

평소의 그녀라면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을 윗집의 두 아이 엄마 케이트에게 작은 도움을 주면서 시작된 관계는 수잔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늘 주변을 통제하고 스스로가 정한 선을 넘지 않으려던 수잔이 임신을 하면서 몸이 변화하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친절에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덤덤하게 그려진 캑터스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조금씩 무게를 덜어내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공감이 갔다.

마흔다섯... 세간의 시선에서 보면 훨씬 전에 어른이 되고도 남을 나이지만 그 나이에도 동생보다 덜 사랑받았다는 진실을 깨달으면 상처받는 건 똑같고 별것 아닌 일에도 형제간에 싸우는 모습을 보면 나이를 먹었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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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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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제법 친숙하게 들리는 거리가 있다.

범죄를 소재로 하거나 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거나 혹은 가난한 흑인들의 거리로 알려진 할렘이 그렇다.

할렘이 흑인들만 거주하기야 하겠냐마는 뒷골목 혹은 빈민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대부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이 책 할렘 셔플은 특히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1950~60년대의 할렘 거리의 풍경과 당시의 모습을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전작들에서도 노예제도를 비롯해 흑인들이 겪어왔던 사회 전반에서의 인종차별에 대해 심도 있게 묘사해 퓰리쳐상을 연속 수상한 이력이 있는 만큼 이번에도 할렘 거리에서 왜 평범한 흑인이 범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지 그 구조적인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할렘에서 가구상을 하고 있는 레니는 사랑하는 아내와 곧 둘째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가 살고 있는 지리적 특성상 그리고 그의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가끔씩 사촌으로부터 출처를 정확히 모르는 물건을 부탁받고 팔아주기는 하지만 스스로는 그걸 범죄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비록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힘으로 가구점을 차린 레니는 그런 자신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그런 평범했던 레니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에게 가끔씩 수상한 물건을 전달해 주던 사촌 프레디가 호텔 강도 사건에 연루되고 레니의 이름을 판 순간부터

레니는 더 이상 평범한 가구상으로 남을 수 없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점점 깊숙이 범죄 세계로 빠져들면서 위기는 커져가고 할렘 최고의 폭력범 칭크와 연관되면서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과정이 느리지만 서서히 조여오듯 위기감을 고조시켜 그려진 할렘 셔플

큰돈이 움직이는 곳엔 어디나 이권과 관련된 커넥션이 있기 마련이고 자의든 타의든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목숨을 장담하지 못한다는 건 평범한 우리도 알 수 있듯이 레니 역시 벗어나고 싶어도 촘촘히 짜인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혈안이 되었고 레니는 이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쩌면 그가 출처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물건을 처리하는 일을 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결과인지도 모르겠지만 건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했던 한 남자가 어쩔 수 없이 범죄의 세계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는 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더군다나 그는 범죄자 아버지를 둬서 자랄 때부터 계속 편견과 오해에 시달려본 적이 있고 범죄자의 말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결과가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평범한 한 남자가 범죄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마치 범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강약을 조절해 멋지게 표현해 내고 있는 콜스 화이트헤드

특히 자신과 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관한 이야기에 있어선 독보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다.

나오는 작품마다 다른 소재와 스타일을 손 보이는 작가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느낌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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