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
팜 제노프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쟁은 많은 것을 바꾼다.

많은 것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생사를 가르기도 하고 누군가의 운명도 바꾼다.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전쟁의 파괴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을 매혹시키기도 하는데 특히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가슴 아픈 로맨스와 영웅담은 언제나 환영받는 소재이기도 하다.

이 책 사라진 소녀들은 그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섞인 아주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레이스가 소녀들의 사진을 발견한 건 정말로 우연이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출근을 서두르다 벤치 옆에 떨어져 있던 누군가의 가방을 주었고 그 가방 속에서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군인같이 보이는 어린 소녀들의 사진을 보고 그레이스는 호기심 많은 성격답게 사진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그 소녀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그레이스가 이름도 모르는 소녀들의 흔적을 쫓아 여기저기를 찾아가는 과정과 2차 대전중에 뒤에서 남자들의 작전을 돕기 위해 급하게 여성조직을 만든 엘레노어와 그 조직원 중 한 사람인 마리가 독일군이 주둔한 파리로 숨어들어가 펼치는 작전이 그려져있다.

그래서 그레이스가 나오는 현재 시점에서는 작은 단서를 쫓아 소녀들의 미스터리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는 반면 마리와 엘레노어 시점에서는 언제 들킬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 독일군의 눈을 피해 작전을 수행하는 마리의 모습을 보면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전쟁이 한창일 때 어린 소녀의 몸으로 적진에 숨어들어 작전 수행을 돕고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렸음에도 전쟁이 끝난 후 소녀들은 잊힌 존재가 된다.

이 소녀들 역시 그렇게 잊힐 뻔한 걸 엘레노어의 집념과 그레이스의 호기심이 합작해 천하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지만 그 진실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대를 위한 희생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된 폭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같은 전쟁에서 남자들은 직위를 비롯해 모든 행적이 남아 성과 여부에 따라 대우를 받거나 유공자 대접을 받는 반면 그에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음에도 누구도 그 존재조차 몰랐던 소녀들의 죽음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했다.

처음 읽으면서부터 단숨에 몰입하게 되었고 뒤로 가면서 소녀들의 활약하는 장면에 가슴 조이며 읽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로맨스에 달달함을 느끼기도 하는 등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전쟁이라는 소재를 그다지 좋아하지않는 나였지만 그럼에도 너무 재밌게 읽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상한 휴가 - 교황과 달라이라마의 5일간의 비밀 여행
롤런드 메룰로 지음, 이은선 옮김 / 오후의서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황과 달라이라마가 바티칸을 탈출해 휴가를 즐기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다소 황당한 설정으로 봐서 유쾌한 코믹극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묵직함을 전해주고 있다.

교황의 사촌이자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랐다는 특권으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황의 수석 보좌관이 된 파올로는 어느 날 교황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부탁을 받는다.

며칠간이라도 평범한 휴가를 갖고 싶다는 다소 엉뚱한 부탁이지만 언제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삶을 살고 있는 교황의 위치를 알고 있기에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파올로는 이 기상천외하고

위험한 휴가에 동행한다.

어찌어찌해서 바티칸을 벗어나긴 했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얼굴을 가진 교황과 달라이라마 두 사람을 데리고 여행을 떠난 길이 쉬울 리 만무하다.

이에 파울로는 별거 중인 아내의 도움을 얻어 두 사람의 변장시키지만 언제 들킬지 몰라 조마조마한데 이런 그의 심정과 달리 두 사람은 모처럼 얻은 휴식 같은 날들이 즐겁기만 하다.

처음엔 단순히 오랫동안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받는 생활에 지친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일탈은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는 데 그 이유라는 게 다소 뜬금없다.

소개 글을 봐서 가볍고 유쾌한 좌충우돌 여행기일 거라는 예상은 거침없이 빗나갔을 뿐 아니라 현재 종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고민 즉 갈수록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 줄어들고 종교를 믿지 않는 청년층의 증가와 같은 실질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교황의 사촌이자 보좌관인 파올로조차 신앙심이 옅어진지 오래고 주일 예배 역시 꾸준히 다니지 않는 처지라는 것만 보더라도 현재 가톨릭이나 종교단체의 위기는 호들갑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급변하는 세계에서 구태의연하게 느껴지는 종교의 교리와 맹약은 그 자체만으로도 약점이 되는 시기다.

특히 젊은 층이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거부감에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는데 이 책에선 그 역할을 교황의 조카이자 파올로의 딸 안나가 맡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종교에 갖는 의심과 불신, 거부감을 안나와 그들의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교황 그리고 달라이라마의 대화 속에서 마치 교리문답처럼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교황과 달라이라마라는 서로 다른 종교의 지도자를 내세워 종교를 넘어서는 메시지...즉 앞으로 종교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듯 하다.이제는 서로 분열과 배척이 아닌 화합이라는...

신앙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상이 주는 기쁨과 삶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수상한 휴가는 마냥 딱딱할 것만 같은 소재를 부드럽게 풀어놓았을 뿐 만 아니라 믿음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하지만 교황과 달라이라마의 여행의 진짜 목적에 관한 부분에서 다소 뜬금없는 상황의 전개를 보여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이제까지 현대 사회에서의 종교의 역할과 책임에 관한 문제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다 느닷없이 우화로 빠지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어렵다고 생각한 종교를 조금 더 쉽게 접근하게 한 부분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나의 고장난 시간
마가리타 몬티모어 지음, 강미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아닌 다른 시간으로 이동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막연하게 생각하면 너무 신나고 재밌을 것 같은데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듯하다.

그래서 이런 타임슬립이나 타임워프를 소재로 하는 소설이나 영화가 자주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타임워프나 타임슬립은 일회성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어느 시대로 혹은 언제 어떨 때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알 수 있는데 반해 이 책에서의 우나는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겪는지를 모를 뿐 아니라 일회성 단발로 그치지도 않는다.

매년 자신의 생일인 12월의 마지막 날 밤 12시가 지나면 어딘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자신의 나이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새롭게 일상을 시작해야 하고 그 생활을 1년 하다 익숙해지면 또다시 다른 시간대로 타임워프한다.

매번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눈을 뜰 때 느낄 당혹감과 두려움을 매해 느껴야 한다면...

처음 워프를 한 후 우나가 느꼈던 혼란과 두려움의 감정이 십분 이해된다.

더군다나 눈뜨기 전엔 막 19세의 생일을 맞았던 소녀가 눈 떠보니 50이 넘은 중년이 되어있는데다 몸조차 살이 쪄서 자신의 몸이라 느껴지지 않는다면 누군들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1년이 지나 다시 눈뜨면 20대 혹은 30대가 되기도 하는 등 자신이 현재 몇 살인지도 모르고 눈뜬 곳이 어딘지도 모를 때의 그 두려움과 막막함을 매번 매해 겪어야 하는 우나

막연히 타임워프하는 능력이 생긴다면 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우나가 겪는 일은 혼란과 혼돈의 연속이다.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 친구라며 다가오기도 하고 눈 떠보니 낯선 남자가 자신의 남편이라 주장하며 한 집에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우나가 왜 그렇게 혼란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지 십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마치 세상은 다 아는 것을 자신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기분이 아닐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우나의 상태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 매번 새롭게 깨어날 때 곁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우나를 도와준다는 정도와 미래를 알고 있다는 장점을 살려 투자를 해서 재정적으로 넉넉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우나의 상태를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인 우나의 엄마는 우나가 겪는 혼란을 알면서도 알고 있는 사실을 미리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나 역시 처음 워프를 한 이후 매번 워프를 겪으면서 조금씩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이미 알고 있는 미래를 바탕으로 후회되는 부분이나 안타까운 부분을 바꿔보려 노력도 했지만 자신의 의도와 달리 다른 쪽이 어그러지거나 오히려 처음보다 나빠지는 등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나는 서서히 깨닫는다.

누구도 한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며 우나는 비록 뒤죽박죽 시간이 뒤섞여 있지만 그 시간 역시 한 번뿐이라는 것을...

비록 남과 달리 순차적으로 살지는 않지만 지금 현재의 시간은 한 번뿐이라는 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타임워프를 하던 그냥 평범하게 시간을 보내던 한 번뿐인 인생... 지금 현재의 삶, 현재의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삶의 철학이 담긴 이야기를 우나라는 다소 특수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겪는 일을 통해 들려주고 있는 우나의 고장난 시간은 타임워프라는 소재의 특성상 가볍거나 로맨틱한 스토리로 흘러갈 거라는 예상을 깨고 제법 묵직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진지하고 무거운 건 아니고 적당히 로맨틱한 스토리와 타임워프를 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을 적절히 섞어놓은 에피소드를 곁들여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엘리 라킨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적 자신의 눈앞에서 아빠가 죽는 모습을 본 충격으로 언제나 자신이 너무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멀어지고자 했던 여자 케이틀린

그런 이유로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영혼의 반쪽임을 알아봤던 옛사랑 루카를 너무 사랑해서 그를 잃을까 두렵다는 이유로 그에게서도 달아났다.

그렇게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만 그 결혼마저 실패로 끝나고 모든 것을 놔둔 채 그저 사랑하는 개 바크만 데리고 할머니가 사시는 플로리다로 돌아왔지만 할머니 집 역시 예전의 집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로부터 얻은 트라우마를 가진 채 성인이 된 여자가 그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는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특별하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착했던 손녀와 좀 더 오래 살기 위해 평소 먹었던 식단을 모두 버린 채 채식주의자가 되고 운동을 열심히 해 활력이 넘치는 케이틀린의 할머니 나넷은 당연하고 나넷의 오랜 친구이자 영혼의 단짝인 빗시 역시 평범함을 거부하는 인물이다.

삶을 사랑하고 현재를 온전히 즐기는 그녀들을 보면서 일흔이 넘은 노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스트레칭을 하고 수영으로 몸매를 다지고 새로운 연인을 사귀는 등... 우리가 생각하는 노인의 삶과 다른 그녀들의 삶을 보면서 누가 그들을 그렇게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중간에 그녀들의 나이가 언급됐을 때 조금 놀란 것도 사실이다.

아빠의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성인이 되고 아이를 유산하고 배우자의 부정으로 이혼까지 한 케이틀린에게는 이런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녀를 평가하지 않고 긍정적이고 애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할머니들 곁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런 할머니를 위해 케이틀린이 낸 아이디어가 바로 오래전 할머니들이 젊었을 때 했던 인어쇼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특기를 살려 할머니들의 인어의상을 마련하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할머니의 동료들과 연락을 취해

인어쇼를 하기로 하면서 옛사랑이자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있던 루카와도 재회한다.

이렇게 모든 것이 술술 긍정적으로 풀려가는 듯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케이틀린이 받는 압박감 역시 커져가면서 오래전처럼 이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한다.

사실 케이틀린은 누구에게도 제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적이 없다.

아직도 아빠가 돌아가신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도 그날 이후로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떠날까 모든 것이 두렵다는 사실도 입 밖에 내지 않은 채 언제나 괜찮은 듯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습관처럼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너무나 예민하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은 바크와 닮아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안락사되기 직전 그녀가 입양해 온 개 바크는 모든 것을 낯설어하고 두려워하는 개였다.

사소한 소리에도 겁을 먹고 꼬리를 말며 으르렁거리고 낯선 사람이나 낯선 환경에 처하면 두려움으로 다리를 달달 떨어대는 모습이 안쓰럽고 애처롭기 그지없는 그런 개였다.

아마도 그런 모습...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고 소심한 모습을 보면서 케이틀린은 자신을 연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바크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조금씩 변해 여느 개와 같아졌다는 걸 깨닫는 순간 케이틀린 역시 자신의 틀에서 한 발 벗어날 용기를 얻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부모로 인해 삶을 두려워하고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하게 된 케이틀린에게 빗 시가 어떻게 죽을 건지만 생각한다면 행복한 이 순간을 얻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순간을 즐기라는 말은 영화에서도 책에서도 자주 접한 말이긴 하지만 오랜 세월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을 살아왔던... 이제는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적은 사람의 삶의 지혜가 곁들여진 말이라 더 감동적으로 와닿았다.

책을 읽으면서 왠지 할머니들의 에너지와 플로리다의 햇살이 느껴지는 듯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지음, 백지민 옮김 / 푸른숲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기가 남과 다른 성향을 가졌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은 어떤 느낌일까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루드비크는 그걸 깨닫는 순간 스스로를 경멸하고 수치스러워했다.

친구를 보면서 느끼는 설렘, 두근거림에 스스로도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누군가가 알까 봐 본능적으로 눈길을 피하고 숨기는 루드비크의 모습은 자신의 성적 취향이 일반 사람들과 다름을 알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한 행동과 닮아 있었다.

요즘은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고 세계 어느 곳에선 법적으로 혼인도 가능하지만 이 책의 배경은 1980년대 그것도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사회주의 국가인 폴란드라는 걸 생각하면 루드비크의 입지가 얼마나 좁았을지 짐작이 간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도 없고 한창 사춘기 시절 자신 안에 있는 욕망과 욕구 그리고 불만 같은 뭔가가 들끓고 들끓어 참고 참다 견딜 수 없어지면 공원의 어둡고 외진 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 해결하면서 그가 느꼈을 비참함과 비루함... 그럼에도 한순간이나마 해방된 듯한 느낌은 그를 더욱 자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숨기고 숨기려 해도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게 드러나게 된 건 그가 대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간 농촌 특활 활동에서 야누시를 본 순간이었다.

단숨에 그에게 사로잡혀 그가 모를 때 그를 쳐다보면서 가슴 두근거림을 느끼고 그런 자신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습은 사랑에 빠진 여느 연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좋아하면서도 금지된 자신의 사랑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다 그 역시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란 걸 알게 된 순간 마치 모든 걸 손에 넣은 것처럼 행복하고 또 행복해하는 모습은 천진난만하게 느껴지면서도 그가 사는 곳이 폴란드라는 걸 생각하면 이 사랑의 결말이 눈에 보여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 둘의 위태로운 사랑은 사실 결말이 예견되어 있다.

누구라도 짐작하는 것처럼 그건 그들이 사는 곳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핸디캡 때문만이 아니었다

둘은 너무 다른 성향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명확하게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자유연애가 인정되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살았다 하더라도 그 커플의 미래는 밝지 않았을 것이다.

루드비크는 현재의 폴란드 체제를 못 견뎌하고 있었다.

그가 자유를 억압하고 언론과 학문에 대한 통제와 규제가 심한 이곳이 숨 막힐 듯 답답해 언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몽상가인 반면 야누시는 국가의 명령에 순응하면서 그 속에서 제 살길을 찾아 빨리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지극한 현실주의 자이다

그래서 현체제에 대해 부정적이고 거침없이 비판하는 루드비크를 야누시는 이해하지도 이해할 마음도 없다.

그건 서로를 사랑하고 원하는 마음과는 별도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차이는 곧 현실에서 부딪치며 갈등을 빚는다.

책 속에는 금지된 사랑에 괴로워하는 청춘의 모습뿐만 아니라 폴란드의 80년대 모습... 필요한 걸 하나 사기 위해 끝없이 줄을 서야 하고 그나마도 제대로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파도 진료소조차 갈 수 없어 약을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힘이 있는 누군가를 통하면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부조리한 세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 중반까지는 루드비크가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게 된 계기와 이로 인해 그가 겪은 수많은 갈등과 고민에 대해 펼쳐졌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연인과의 갈등을 통해 당시 폴란드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는 단순히 퀴어 문학으로 취부하기엔 담고 있는 내용이 가볍지 않다.

흥미 위주로 쓰여있지 않다는 점도 그렇고 이중 제약에 힘들어하는 루드비크를 통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