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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1 - 4부 ㅣ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평점 :
제목에서부터 카이사르가 등장하는 시리즈가 시작된다. 다른 시리즈처럼 이번 시리즈 역시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게 꽤나 노골적이다. ‘카이사르의 여자들’이라... 그가 바람둥이로 유명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고대 로마에서 그게 엄청난 추문이 되어서 정치적으로 매장될 만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새삼 흥미롭다. 문득 몇 년 전 박근혜 정권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혼외자 스캔들을 터뜨렸던 것도 생각나고.
그럼 이번 시리즈에는 어떤 여자들이 등장할까? 우선은 카이사르의 어머니인 아우렐리아가 있다. 우아하고 고상한 성격으로 젊은 시절 술라가 반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까지 가지고 있던 그녀도 이제 늙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카이사르가 상담을 할 수 있는 현명함을 지니고 있다.
또,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가 있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아름다운 외모에 생각도 깊은 캐릭터로 등장한다. 카이사르는 그를 브루투스(바로 그 브루투스다!)와 약혼을 시킨다.
그리고 세르빌리아가 있다. 카이사르와 오랫동안 내연관계를 유지하던 인물로, 앞선 시리즈에서 오직 자신의 아버지에게만 호감을 느끼는 꽤나 괄괄한 여자 아이였던 바로 그 인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카이사르의 딸과 약혼을 한 브루투스의 어머니... 상당히 주도면밀하면서, 감정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독특했던 인물.
여기에 율리아를 낳고 죽은 카이사르의 아내의 자리에 새로 들어오게 된, 술라의 손녀딸 폼페이아가 있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머리는 텅텅 빈 캐릭터. 평판이 좋지 못한 부인들만 만나면서, 곧 일어날 그 사건(“카이사르의 아내는 작은 흠조차 있으면 안 됩니다”를 내뱉게 할)을 내다보게 한다.
이 중에서도 단연 눈에 들어오는 건 세르빌리아다. 카이사르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배고도 (병약한) 남편과의 협상을 통해 남편의 아이로 삼게 하는 모습은 뜨억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당당한 불륜이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결혼이 가문 사이의 정치적, 경제적 계약이었던 고대 로마에서 이런 케이스가 단지 세르빌리아 하나뿐이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번 편에서는 폼페이우스의 명성을 지중해 전체에 확산시켰던 그 유명한 해적소탕 작전이 등장하고, 그 말미에 유대 지역의 하스모니안 왕조의 초라한 최후도 폼페이우스의 편지 형태로 살짝 등장한다. 카이사르는 착실하게 관직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중으로, 고등조영관이 되어 또 그 유명한 초호화 축제를 개최했고, 마침내 최고신관의 자리에 오른다.
사실 전임 사제 계층이 없었던 로마에서 신관이란 다른 일들을 하다가 제사가 있을 때만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겸직 신분이었지만, 최고신관만큼은 종신직으로 관저까지 주어졌다. 한창 빚에 쪼들리고 있었던 카이사르에게는, 빚쟁이들에게 자신이 좀 더 높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빚독촉을 늦추는 효과도 있었고, 하층민들의 주거지인 수부라 지역을 떠나 최고신관 관저로 집을 옮길 수 있었던 것도 유익이었다.
아, 이번 편에서 유독 눈에 띠었던 것 중 하나는 카이사르의 큰 빚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가 평생 엄청난 빚을 지고 살았던 그였지만 별 걱정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식으로만 묘사했었는데, 여기에선 점점 복리로 불어나는 빚을 당장에 감당하지 못해 초초해 하는 모습도 보인다. 사실 원로원 의원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정 금액 이상의 재산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자격 조건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관직의 사다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위기이기도 했으니 이 쪽이 좀 더 사실과 가깝지 않았을까.
여기에 비로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소(小) 카토에 대한 묘사나 우직하지만 뛰어난 장군으로만 알고 있었던 루쿨루스의 새로운 모습, 그리고 음습한 음모꾼과 장난꾼 사이를 위태롭게 오고가는 듯한 클로디우스 등 새로운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로마의 정치판이 신나게 묘사되어 간다. 역사덕후는 그저 즐겁게 책장을 넘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