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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 천황제의 형성
미타니 타이치로 지음, 송병권 외 옮김 / 평사리 / 2020년 12월
평점 :
동아시아의 섬나라인 일본의 역사는, 특히 그 중에서도 근대 역사는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실 우리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주로 제국주의적 침략자의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을 뿐, 왜 일본이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둬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일본의 근대역사를 (복수)정당제, 자본주의로의 전환, 식민지주의, 천황제라는 네 개의 키워드로 분석해 낸다. ‘대중역사서’라는 출판사의 소개와는 달리, 다분히 학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 언급되는 정보의 양과 폭이 꽤 넓고 깊다. 간단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면 고전하기 쉬울 듯하다.
일본의 탈아시아사상은 잘 알려져 있다. 동아시아의 귀퉁이에 위치한 섬나라임에도(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아시아의 제 국가들과는 차별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막부 시대 말기 일본의 지식인들이 ‘미국’을 어떻게 자신들의 모범으로 삼았는지를 언급한다.
그렇지만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 봐도, 미국은 유럽 여러 나라와 동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구별되는 후진국에 속했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과 동등한 위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보다 먼저 유럽 모국인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을 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와 대등하게 일본에 대해 불평등조약이 초래한 권익을 향유했습니다. 당시 막부 말기 세계 정세에 정통했던 일부 일본 지식인에게 미국은 ‘양이’의 성공적 사례로까지 인식되었고, 비유럽국가로서 유럽적 근대화를 이룬 선구적 사례를 제공했습니다.
일본의 근대화는 처음부터 이렇게 서양의 그것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책에서 제안되고 있는 세 가지 요소(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주의)는 서양의 제국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물론 그 구체적인 적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일본적인 현실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는 유럽의 사례에서는 왕권을 견제하기 위한 방식으로 도입된 것에 반해, 일본에서는 오히려 특정한 세력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을 막기 위한 상호견제 시스템으로 도입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막스 베버가 말한, 전문가들의 경쟁을 통해 지배자의 통제를 강화하는 경우와도 비슷하다(51). 이런 차원에서 저자는 권력분립제가 오히려 왕정복고 이념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도입되었다고도 말한다.
즉 메이지 헌법이 상정한 권력 분립제는 막부적 존재의 출현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든 제도적 장치로, 왕정복고 이념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권력 분립제 하에서는 어떠한 국가기관도 단독으로는 천황을 대행할 수 없습니다.
외세에 의한 강제적 개항과 그들에게 다양한 특례를 보장해 주어야 했던 일본은, 초기에는 외국 자본을 들여와 경제를 발전시키는 계획을 완강히 거부했다. 책에는 여기에 남북전쟁 당시 북군 사령관이자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었던 그랜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했던 조언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일종의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발전을 꾀했던 것인데, 다양한 제도를 만들어 실천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대만과 한반도 등지를 식민지로 만들어 ‘수직적 국제분업’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이른다. 식민지를 자원창고이자 상품판매지로 삼는 행태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그것은 조금 다른 면이 있었는데, 유럽 제국의 식민지가 직접 영토를 맞대고 있지 않은 곳이었다면, 일본은 바로 인접한 지역에 식민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174). 그 결과 이는 단순한 경제적 식민지를 넘어 안보선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일제의 우리나라 식민지배에 관해서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조선 총독 자리를 두고 문관을 임명하려는 중추원과 무관을 임명하려는 군부 사이에 제법 오랫동안 대립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의 나라를 멋대로 쳐들어와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죄가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처음에도 이야기 했던, 서로 간의 견제가 지나칠 정도로 강해서 좀처럼 협업이나 정보의 원활한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예처럼 느껴졌다.
천황제에 관해서 일본인들의 사고는 조금 독특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요새 젊은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정권을 틀어잡고 있는 세력이나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의 발언을 보면, 그들에게 천황은 단지 입헌군주국의 상징적 존재를 넘어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저자에 따르면 애초부터 이런 미묘한 문제가 있었다. 서양의 근대로의 발전을 따라잡기 위해 애썼던 일본은, 서양에는 있고 자신들에게는 없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 바로 기독교였다. 기독교는 오랫동안 유럽의 정신적 통합을 이루는 핵심이었지만, 일본의 ‘신’은 단지 소원을 들어주는 문화적 기념물 수준이었다. 이에 기독교와 같은 기능을 하는 존재를 만들고자 했고, 그것이 ‘천황’에 대한 신격화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도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타의에 의해 정리된 측면이 있다. ‘천황’은 더 이상 도덕적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 못하다. 물론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어떤 인사들은 이 부분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것이 애초에 도입될 당시부터 있었던 일종의 모순(‘천황’과 헌법 사이의 관계)을 해결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일본도 한국도, 각각의 근대사를 일국사로서 쓸 수는 없(231)”다. 두 나라, 그리고 중국까지 포함한 세 나라의 역사가 밀접하게 엮여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역사, 특히 근대사에 관해서 제대로 된 지식이나 공부가 없었다는 걸 느끼는 독서 시간이었다. 식민지배 시절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감 때문이었을까.
저자는 한, 중, 일 삼국이 대등한 행위자로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바탕을 둔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전망하는데, 여기에 이 삼국의 젊은이들 사이의 공통되는 몇 곡의 노래가 생기는 것(아마도 K팝을 말하는 듯)을 꼽는다. 언제까지 서로를 적대하고 공격하기만 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을 테니,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 가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북한의 김정은이 할아버지가 일으킨 전쟁에 대해 사과하지 않더라도 관계개선의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일본의 집권 세력이 과거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인정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관계를 탐색해 나갈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