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정제 이산의 책 17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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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왕조는 만주족 누르하치가 세운 후금에서 시작되어 30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된 중국의 마지막 왕조다. 역대 중국 왕조 중 원나라를 포함하는 몽골제국 다음으로 영토가 넓었고, 현대 중국 영토의 기초가 되기도 했던 나라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우리에겐 그리 익숙하지 않은 나라이기도 하다. 두 차례의 호란과 관련해 우리나라와도 연결이 되긴 하지만, 딱히 그 왕조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인기 있는 주제는 아닌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의 주인공인 ‘옹정제’가 누구인지 한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른 중국 황제들과 달리 흔히 부르는 이름이 OO제로 끝나는 세 글자라는 점에서 청나라 황제구나 했을 정도. 이 책은 청나라의 다섯 번째 황제인 옹정제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책의 내용은 정사 기록에 충실하다. 흥미로운 건 이런 책이라면 왠지 중국의 학자가 썼을 것 같은데, 의외로 일본 학자가 쓴 책이라는 점이다. 사실 일본이 이런 종류의 역사나 인문학 등의 분야에서 상당히 앞서나가고 있는 나라이긴 하니까 뭐 이상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어쩌면 공산당 독재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 중국에서 왕조 시대의 역사에 대한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싶다. 역사마저 현대 공산당 통치의 우월함을 선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게 작금의 중국 학계 현실이니까.


학문적인 책이지만 그 내용이 또 아주 딱딱하지는 않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이야기 식으로 풀어나가고 있으니 오히려 술술 읽혀 나간다. 몇 개의 주제로 장을 구성하고, 곳곳에 저자의 평가와 설명이 더해지는데 이게 그리 눈에 거슬리지도 않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행적은 제위 계승 과정이다. 직전 황제인 강희제는 무려 서른다섯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위 계승 과정에서 황태자가 두 번이나 폐위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치열한 후계다툼이 벌어졌고, 제위를 이어받은 것이 후궁 출신이었던 옹정제였다.


즉위 후 그는 황권에 경쟁자가 될 것으로 여겨지는 형제들과 공신들을 집요하게 핍박해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이 부분만 보면 치졸하기 그지없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그가 열성적으로 통치하는 중후반 내용을 보면 또 평가가 급히 달라진다. 옹정제는 말 그대로 워커홀릭의 전형이었고, 소수민족 출신의 황제가 대륙 전체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늘 고민했던 성실한 인물이었다. 덕분에 그의 치세 동안 부정부패가 줄고, 각종 부당한 일들이 개선되기도 했고.


그런데 이 정도로 넓은 땅을 다스리기에는 황제 한 사람의 탁월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청대에는 몇 개의 성들을 묶어 총독들을 임명했고, 그 아래에는 다양한 관료들이 층층이 존재했다. 결국 통치는 관료조직을 통해 하는 건데, 이 조직은 나름의 방식과 동기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에, 황제 같은 절대군주로서도 이들을 완벽하게 움직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저자는 여기에 제법 깊은 고찰을 더하는데, 이 부분이 또 읽어볼 만하다. 민주화된 오늘날에도 대통령 한 명이 바뀐다고 해서 나라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는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많은 면들에 변화가 생기기는 하겠지만, 결국 나라 운영은 소위 ‘늘공’이라고 불리는 관료들의 손을 통해서 이루어지니까.


독재의 역사에 대한 기억 때문에 중앙집권에 대한 경계가 강해지면서 이런 권한은 더욱 퍼지게 되는데, 그만큼 개혁도 힘들어 지는 면도 있다. 지방의 경우 토호들의 입김이 훨씬 더 강하게 미치곤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치라는 게 어렵다.




분명 옹정제는 대단한 개혁을 이루었지만, 그의 통치는 겨우 10년을 넘겼을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너무 많은 일을 해서 과로사 한 게 아닌가 싶지만, 저자는 또 여기에 독특한 해석을 더한다. 개혁이란 기본적으로 이전의 관행과 제도를 바꾸는 일이다. 개혁이 좋고 의미 있다는 걸 안다고 해서, 마음 깊숙한 곳부터 개혁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당장은 기세에 눌려 좀 바꾸는 것처럼 할지 모르지만, 그런 게 영원할 수는 없다.


저자는 그의 개혁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시간이 10여 년이 아니었겠느냐고 말한다. 그가 죽은 뒤 나라를 이어받은 건륭제는 아버지의 정책 중 상당부분을 이전의 관행으로 되돌린다. 당시 관료사회가 그런 개혁을 오랫동안 참아낼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다시 한 번 개혁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동서양의 유능한 영웅들이 개혁이 아닌 혁명을 택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강력한 전제군주제에서도 힘든 개혁이 오늘날 권력의 파편화를 특징으로 하는 민주사회에서 얼마나 가능할까 회의적이다. 이 어려운 일에 단지 개인적 탐욕이 아닌 이유로 뛰어드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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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귀스타브 도레 그림,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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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 3권을 모두 읽었다. 과연 확실히 글쓰는 재주가 있는 작가였고,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자세하게 관련된 내용들을 읽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 갔을 때 또 한 권의 책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19세기 초 십자군 역사 속 다양한 장면을 삽화로 그려낸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들을 보고 영감을 받은 시오노 나나미가 백 여 장의 그림을 싣고 여기에 간단한 설명과 지도를 붙여 전체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그러면 이 책이 본편인 세 권을 다 쓴 후에 만든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이 책을 먼저 내고, 그 후에 본편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또 삽화에 직접 붙여 놓은 글들을 보면, 앞으로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의 전체 윤곽은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충분한 자료 조사를 마치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작가의 글쓰기 방식이 묻어 나오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건 저자의 사정이고, 십자군 역사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독자라면, 단순이 여기에 짧게 실린 코멘트만을 가지고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내 경우처럼 본편을 모두 읽은 다음 이 책을 보면서 앞서 읽었던 내용을 회상하는 식이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저자가 매력을 느꼈던 도판들은 판화 형식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당연히 흑백이지만, 의외로 농담이 들어가서 입체적인 느낌도 준다. 간략한 캐리커처 보다는 세밀화에 가까운 느낌의 삽화들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뭔가 역사의 한 장면을 그렸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그림이 잔뜩 실려 있는 책을 보면, 더구나 그 내용이 자신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다면 뭔가 책을 쓰고 싶다는 느낌이 들기도 할 것 같다.


뭔가 새롭고 대단한 내용이 담겨 있는 건 아니지만, 가볍게 전체를 훑어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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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2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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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열한 번째 책. 이번 책에서는 키케로가 집정관이었을 당시 벌어졌던, 공화정 말기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인 “카틸리나 반란”이 중심 소재다. 파트리키 출신이었지만 좀처럼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지 못했던 그는 자신과 비슷한 불만을 품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지방 출신으로 태생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키케로는 그런 파트리키 카틸리나를 체제전복세력의 수장으로 몰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물론 여기에는 단순한 질투만 작용했던 건 아니고, 키케로 자신은 정말로 자신이 공화국 로마를 (말로) 지키는 수호자라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카틸리나의 “음모”를 입증하기에는 증거가 너무 적었고,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 문제를 마무리 짓고 싶어 했던 키케로는 결국 로마의 법체계를 넘어서는 초법적 방식인 “원로원 최종 권고”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원로원 최종 권고”는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계엄령과 비슷한 조치였다. 현행 법률보다도 상위에 있는 특별한 명령. 키케로는 이 조치를 근거로 카틸리나의 공모자 다섯 명을 기존의 법에 규정된 재판 과정 없이 살해해버렸다. 물론 그들이 아예 혐의점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온갖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면서 재산을 모으고 권력을 유지해왔던 원로원 계급 대다수보다 특별히 더 부패한 것도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건 그저 동족혐오나 근친살해와 비슷한 일이었다.




문제는 이 조치가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모자들을 죽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주모자 격이었던 카틸리나는 북쪽으로 도망쳐 병력을 모으고 있었으니까. 키케로는 최종권고를 카틸리나 사건이 끝날 때까지로 연장시켰고, 그 동안은 원로원 독재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이런 조치에 반발하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이 시리즈의 주인공 카이사르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제대로 된 힘이 없었고, 오래 전 호민관 사투르니우스를 원로원 최종권고로 살해했던 사건을 들어 한 늙은 원로원 의원을 재판에 회부하는 식으로, 그 조치가 가진 법적 문제를 상기시키는 것으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 권고”가 유효한 상황에서 원로원파는 카이사르를 제거하기 위한 자잘한 음모를 꾸미지만, 노련하게 위기를 빠져나간 카이사르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먼 히스파니아 속주의 총독으로 떠난다.




이번 책의 핵심은 “원로원 최종 권고”의 적법성이다. 키케로는 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일종의 편법을, 아니 법적 근거가 없는 특별 조치를 감행해도 상관없다는 뒤틀린 확신을 갖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캐릭터를 현대에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법 위에 존재한다는 특권의식으로 가득 찬 채, 혹은 자신이 나라를 구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온갖 권력기관을 동원해 반대파를 탄압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는 소시오패스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카이사르가 호헌파였으냐 하면 그런 건 아니었다. 그 역시 당시의 현존 체제의 불완전성을 느끼고 그걸 해속하기 위해 나섰으니까. 역사를 아는 우리야 훗날 그가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종신 집정관이 되어 사실상 제정을 수립한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뭐. 하지만 그런 결단은 어쩌면 기존의 원로원 계급이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볼 수도 있고.


쉴 새 없는 정치적 대립과 머리싸움을 보는 맛이 있는 시리즈. 다음 권 이야기가 기대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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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시대, 중세 - 폭력과 아름다움, 문명과 종교가 교차하던 중세 이야기
매슈 게이브리얼.데이비드 M. 페리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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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는 멸칭으로 부르곤 한다. 암흑의 시대, 즉 아무 것도 볼 게 없고, 기억해 둘 만한 것도 없는 낙후되고 뒤떨어진 미신의 시대, 인류의 진보 역사에 도움될 게 하나 없는 무지와 야만의 시대라는 의미다. 당연히 이런 평가는 지나친 감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르네상스 초기 인문주의자들의 오만함을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너무 매도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그렇게 답이 없는, 절망적인 느낌으로 와 닿았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어떨까.


이 책의 저자들은 바로 그런 중세에 관한 이미지를 뒤집고자 했다는 것을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중세는 암흑의 시대가 아니라 “빛의 시대”라는 것. 이 책의 저자들은 중세 곳곳에서 빛을 발했던 자리들을 크게 보면 연대순으로 살펴나가면서, 중세에 관한 일종의 역사적 스케치를 진행해 나간다.




사실 이런 내용 자체야 크게 드물지 않다. 이제 진지하게 역사를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중세를 “암흑의 시대” 같은 시대착오적인 표현으로 부르지 않을 테니까. 역시 관건은 그러면 어떻게 이 작업을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 내면서도 학문적 성과를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느냐 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이 책은 두 가지 목적을 훌륭하게 달성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사실을 기술하는 방식이 아름답다는 점이다. 어쩌면 책을 쓰면서, 여기에 실린 문장들을 반드시 자주 인용되게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멋있다. 단순히 미사여구를 잔뜩 붙여서 과장스럽게 표현했다는 말이 아니다. 사안의 핵심을 분명하게 표현하면서도, 질질 끄는 식으로 이어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원문 자체가 뛰어났을 수도 있고, 번역자가 훌륭하게 작업을 했던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둘 다일 수도 있고. 책을 읽는 입장에서 문장의 질은 의외로 중요한 요소다.


단순히 문장만이 아니다. 전체적인 구성도 나쁘지 않지만, 군데군데 박혀 있는 탁월한 통찰은 책을 읽는 맛을 더해준다. 예를 중세의 여러 민족단위의 개종에 정치적인 고려가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야 많이들 지적하는 부분이지만, 당시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선택지―아리우스파와 가톨릭파―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른 각각의 이익에 관해서 저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리우스파를 선택할 경우 정통파에 속한 황제나 대주교, 교황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었고, 반대로 가톨릭파를 선택할 경우 기존의 권력망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얻게 되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는 아리우스파 선택에 따른 독특한 이익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또, 중세에 수없이 건설되었던 성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의 재고(대개는 나무로 만들어진 조악한 성이었다)나, 또 자주 개최되었던 공의회에는 당대 약화되었던 왕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신앙에 기초한 일종의 대안 질서를 세운 것이라는 설명도 흥미롭다.




물론 천 년에 달하는 그 시기 전체가 환하게 밝기만 했던 건 분명 아니다. 하지만 어디 하나 빛나는 곳 없이 어둡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당시 접할 수 있었던 다양한 지식의 원천으로부터 얻은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나름의 합리적 사고에 따라 살아왔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빛은 그 시대 곳곳에 알알이 박혀 있었다.


중세에 관한 잘못된 이미지는 단지 과거에 대한 정보 오류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건 오늘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들은 이 부분을 제대로 지적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중세에 투사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려고 애쓴다. 그 중 하나는 중세를 어둠의 시대로만 봄으로써 근대의 이성주의적 사고의 위엄을 뽐내려 하는 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인종이나 종교관의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한 도구로 중세를 윤색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이런 면을 조명하는 책들이 자주 나오는 것 같아 반갑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퀄리티까지 좋으니 금상첨화다. 중세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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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초승달 동맹 - 우리가 알지 못했던 기독교 이슬람 연합 전쟁사
이언 아몬드 지음,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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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세 서양사를 보는 여러 프레임 중 하나가 “기독교 vs 이슬람교”라는 대립구도다. 십자군이라는 종교에 기초한 대규모 군사원정이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고, 유럽은 교황권과 황제권 사이의 질긴 투쟁이,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는 이슬람 내부의 복잡한 세력다툼이 있던 시대이기도 했으니까.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두 세력이 지속적으로 대립(하기만)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는 그런 역사적 사실만 영향을 주는 건 아닌 듯하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무슬림들에 대한 반감이 더 크게 영향을 끼쳤을 지도 모른다. 9.11테러와 그에 이어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ISIS를 비롯한 다양한 이슬람 무장테러단체들의 만행들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슬람은 과격하고 호전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굳어져버렸고, 이런 인식이 과거를 바라보는 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런 통념이 사실과는 좀 거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은 그 시기 기독교인과 무슬림들은 같은 편에 서서 함께 싸우는 일도 잦았다는 것. 앞서 읽었던 비슷한 제목의 책(『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에서도 크게 보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사실 추천을 받아 구입했는데, 비슷한 제목의 책이 나와 그냥 두 권 다 사버렸다), 그 책이 주로 문화적 차원에서의 교류를 다뤘다면, 이 책은 군사적 차원에서의 교류가 중심이다.





책은 크게 다섯 개의 장면을 중심으로 설명을 한다. 첫 번째는 한창 레콘키스타가 벌어지고 있던 11세기 이베리아 반도다. 첫 번째 이슬람 왕조였던 우마이아 왕조가 이베리아반도 중남부를 차지한 이후, 북부 산악지역으로 밀려난 기독교 세력이 끊임없이 남부의 무슬림들을 몰아내기 위해 싸워왔던 것 같지만, 실은 양측 사이에 길고 질긴 협력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 특히 이슬람 세력이 약화된 후에는 기독교국가들이 일종의 보호비를 받으면서 쪼개진 이슬람 자치국을 도와주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두 번째는 13세기 이탈리아 반도 중심에 무슬림들의 집단 거주구역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이탈리아 남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2세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북아프리카와 가까워서 일찍부터 그곳의 무슬림들이 많이 이주해 있던 시칠리아의 안정을 위해, 그곳에 살던 무슬림들을 집단으로 내륙의 루체라로 이주시켰고, 여기에서 황제의 군대를 위한 무기를 제조하거나, 군에서 직접 싸우기도 했다는 것.


세 번째는 좀 더 동쪽으로 위치를 옮겨 동로마제국 후반기를 다룬다. 제국 말기 동로마제국은 소아시아에서 치고 올라오는 이슬람 세력에 맞서 싸우고, 또 북쪽에서 내려오는 세르비아나 헝가리와도 싸워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 중이었는데, 여러 황제들이 왕실의 여성들을 이슬람 세력가들에게 시집을 보내곤 했다는 것.(당연히 군사적 교류도 많았다) 그 수가 하도 많아서, 왕조 자체가 자주 바뀌었던 동로마 제국의 상황에서 오히려 무슬림의 지도자 쪽이 혈통적으로 더 황제의 자리를 주장하기에 적합했다는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네 번째는 16세기다 종교개혁과 그 후속 전쟁으로 복잡했던 유럽을 크게 위협했던 오스만 제국의 빈 포위전을 다룬다.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정면충돌로 보이지만,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오스만군에도 기독교인들이 적잖게 있었고, 빈을 돕는 군사세력 중에서도 무슬림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지막은 크림 전쟁이라고 불리는,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의 충돌을 다룬다. 19세기가 되면 오래된 나무가 서서히 죽어가든 오스만 제국도 거의 무너질 즈음이었는데, 러시아의 서진을 염려한 서방국가들이 그런 오스만을 도와 러시아와 맞서 싸우게 되었고, 당연히 이슬람 중심의 오스만군과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온 기독교인들이 함께 싸웠다는 말이다. 사실 이 부분으 앞서의 이야기들에 비해 기본적으로 임팩트가 살짝 적긴 했다.




두 종교 사이의 이 오랜 군사적 교류들의 이야기를 보노라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평소부터 자주 두 종교인들이 접촉할 수 있는 지역에서 이런 교류들이 잦았다는 것. 뭐 당연한 말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우리는 그 접촉의 형태가 대립과 충돌, 그리고 정복의 형태로만 나타난다고 봐왔지만 실상은 좀 달랐던 것이다.


오히려 그런 일상적인 접촉이 없었던 사람들 사이에 더 격렬한 적대감이 나타나는 것 같다. 상대와 직접 만날 일이 없으니 얼마든지 과격한 말을 내뱉기도 하고, 그런 오류를 교정해 줄 경험을 전혀 하지 못하니 시간 지날수록 확증편향이 심해진다. 이건 유튜브에 악플이 범람하는 이유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저자도 여러 번 짚고 넘어가듯, 그렇다고 해서 이 시기 양측의 협력관계가 아름답고, 정의롭고, 완전히 서로 호혜적이기만 한 관계였던 것처럼 미화할 필요까지는 없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았고. 다만 우리가 서로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만나려 하지 않는다면, 결국 한없이 고립된 채 모두를 적대시하는 일종의 자폐상태에 스스로 빠져버리고 말 것이라는 역사의 교훈을 주는 데 이 책은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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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23-07-22 0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있는 책이네요. 오랫만에 알라딘 들어왔다가 인사하고 갑니다.

노란가방 2023-07-22 08:2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 오랫만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