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대이동 - 달러와 금의 흐름으로 읽는 미래 투자 전략
오건영 지음 / 페이지2(page2)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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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회사를 입사했다. 

1998년은 1997년부터 시작된 한국 금융 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은 해이다. 이때 취직을 했으니 다행이었지만, 당시 분위기는 정말로 안 좋았다. 신입 사원은 회사에서 티 내지 말라는 안내를 받았다. 당연히 입사 축하나 회식은 없었다. 입사가 취소된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나마 출근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경제가 나빠진 것에 대한 피해는 그대로 받으면서 대체 왜 이리 경제가 나빠진 것에 대한 이유에는 관심이 없었다.


2008년에 미국의 유명한 회사가 망했다. 그런데, 미국의 회사 한 개가 망했는데, 그게 뭐 그리 큰일인지 갑자기 경제가 나빠졌다. 이때도 다니는 회사가 망하지 않고, 부채가 없는 상태에서 한 채의 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았지 왜 경제가 나빠졌는지 관심이 없었다.


경제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빚을 줄이고, 저축을 하고, 꾸준한 근로 소득만 확보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경제적 독립은 어렵고,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근로 소득만으로 따라잡기에 쉽지 않다. 자본을 만들지 못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 보면 어불성설이다. 

그동안 발생한 큰 경제 충격도 어찌 보면 역사의 일부분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사라예보 암살 사건으로 촉발되었다는 것만 아는 것은 극히 일부분만 이해한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오건영님은 쉽게 글로 설명하는 재능이 있다. 먼저 읽었던 부의 시나리오도 비교적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회사 부서 내 작은 도서관을 운영 중인데, 많은 사람들이 경제를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부의 시나리오>, <부의 대이동> 책을 구매해서 비치했다. 하지만, 젊었을 때의 내가 그랬듯이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고, 책도 대여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경제 관련 역사적 사건을 이해했다.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고 싶으면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처음 이야기는 1929년 미국이다.

1910년대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유럽의 경제 시설이 망가졌을 때 미국은 아무 손해를 받지 않았다. 미국 내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고, 고용이 늘어나면서, 소득이 증가했다. 경기가 너무 좋다 보니 생산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많은 제품에 대한 공급 과잉 현상이 발생했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기업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1929년 미국 주식 시장이 무너지고, 미국 정부가 무역 장벽을 높이 세우면서 전 세계의 교역이 중단되고, 성장 둔화, 공급 과잉, 금융시장 붕괴로 '세계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런 위기에 기회를 잡은 사람도 있으니 바로 히틀러이다. 가장 유명한 악인을 뽑는다면 히틀러를 뽑지 않을 수 없다. 히틀러가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는 것이 당시 독일 사회가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투표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영향을 끼쳤던 1998년 한국은 어땠을까?

1995년 수출 산업 전망이 좋고, 일본의 엔화가 초강세이니 기업들은 투자를 늘리고, 한국 금융 회사들은 해외에서 돈을 빌려와서 원화로 환전, 국내 기업들에 대출을 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이 그해 4월 '역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를 약세 기조로 바꾸었다. 일본이 힘이 있으니 프랑스, 독일, 미국, 영국이 엔저 유도에 대한 합의를 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되는 존재이다. 

반도체에 대한 성장이 둔화되고, 엔화가 약세로 돌면서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 결과 해외 은행이나 투자자는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로 대출 연장을 안 하고, 빚을 독촉했다. 정부가 외화 보유고에 비축한 달러를 풀었지만, 이것도 소모되어 결국 환율은 2000원까지 오르고, IMF 구제 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뼈아픈 역사이다. 이때, 일본이 가장 먼저 빚 독촉을 하면서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말이 있다. 충분히 그럴만한 나라이다. 

지금은 1998년 대비 재정 현황이 많이 좋다. 무역수지는 98개월 연속 흑자이고, 요즘 환율이 오르기 했지만, 아직 수출 경쟁력이 있다. 2021년 기준 외화 보유고는 4,631억 달러이다. 1997년 89억 달러, 1998년 485억 달러에 비해 양호하다. 2021년 6월 당시에 통화스와프 현황은 사전한도가 없는 캐나다를 비롯해서 600억 미국, 590억 중국, 스위스 106억 등이다. 한국 국채도 글로벌 시장에서 매력적이라고 한다.


2008년 한국을 이해하려면 20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야 한다. 

중국의 중심으로 이머징 국가들의 경제가 본격적으로 좋아진 것은 저가의 노동력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선진국 미국은 제조업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다. 미국의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은 내수 성장을 늘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득이 늘어야 소비가 늘 텐데, 소득이 늘어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미래 소득을 당겨서 쓸 수 있도록 대출을 활성화시켰다. 

가계 대출이 늘고, 주택 담보 대출도 늘어났다. 은행들이 대출을 주면서 채권을 받았는데, 이 채권들을 모아 담보로 해서 하나의 채권(자산유동화 증권)을 더 만들었다. 대출해 주고, 다시 돈을 모아서 또 대출하고, 다시 돈을 모으고를 반복한 것이다. 모든 채권이 부실이 되지 않는다면, 자산유동화 증권도 부실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외국도 여기에 투자하고, 국제 신용평가 회사들도 신용 등급을 AAA로 부여했다.  

하지만, 부동산, 주식, 금, 원자재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면 한꺼번에 하락하지 않겠지만, 부동산 경우에 앞집은 그대로인데, 내 집만 하락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모두 한꺼번에 하락할 확률이 더 높다. 

결국, 우리가 기억하는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가 도래했다. 이때 미국은 양적완화를 통해 달러를 시장에 풀고, 몇 년동안 달러 약세가 지속되었다.


이런 책을 읽는다고 당장 부자가 되지 않는다. 경제 신문에 나오는 기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고, 나에게 왜 이런 경제적 시련이 오는지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우크라이나에서 벌여진 전쟁으로 인해 자동차 주유할 때마다 오른 기름값을 본다.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린다고 하니 미국 주식 시장이 하락하고, 국내 주식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높아서 양적 긴축을 한다고 하니 환율이 올라가고, 주식 시장도 안 좋다. 결국,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수출을 하는 우리나라에 영향이 크다.


이 책은 주식보다는 달러와 금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안전 자산으로 주식 대신 달러와 금을 확보하라는 단순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에게 환율, 금리, 채권을 이해하고, 금본위제의 역사를 이해하라고 한다. 또한, 원자재, 귀금속, 화폐로서의 금의 차이를 이해하고, 달러와 금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라고 한다. 이해할 것들이 많고, 어렵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저 이 책을 읽으면 된다. 


2022.05.02 Ex. Libris HJK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율‘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드는 생각이 ‘매우 복잡하다‘일 겁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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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심리학 (10만 부 기념 골드 에디션) -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
모건 하우절 지음, 이지연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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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이 많다. 

코로나 때 자영업자를 위해 많은 돈을 풀었는데, 코로나가 진정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증가하여 미국 3월 소비자물가 지수가 8.5%라고 한다. 미국 고용 시장은 좋은데, 인플레이션 문제로 인해 연준에서 금리를 올리고, 국채를 매도함으로써 시중에 있는 돈을 흡수하는 양적 긴축을 진행한다고 한다.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높아지고, 일본의 엔저 현상으로 한국의 수출 경쟁력도 떨어진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는 시점이라서 한국의 저성장이 주 40시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타나고, 소부장 경쟁력 강화로 일본에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있는 마당에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는 사람도 나타난다. 


자본주의에서 돈에 대한 이해는 필수라고 생각하지만, 왠지 돈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 돈만 밝히는 사람인 거 같았다. 주식에 관심 보이면 투기하는 개미라는 느낌을 받았다. 누가 뭐라 한 것이 아니고, 그냥 혼자 생각이다. 주식에 관심을 멀리했다. 그저 저축, 집, 그리고 연금 정도만 생각했다. 


이 책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돈이라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바꾸는 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 돈은 창피한 것이 아니고,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고,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이다. 


외제차에 관심이 있어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방문하면 간혹 하차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승차감은 차를 탔을 때 편안함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라면, 하차감은 내릴 때의 느낌일 것이라고 대략 추측할 수 있다. 외제차에서 내릴 때 남들이 나를 부러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느끼는 기쁨이 하차감이다. 외제차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싶은 소망이다. 외제차와 나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외제차에 대한 부러움이 곧 나에 대한 부러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외제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볼 겨를이 없다. 외제차를 구경하고, 해당 외제차를 가지고 운전하는 자신을 상상할 뿐이다. 요즘 외제차도 많아져서 웬만한 외제차에는 시선을 두지 않는다. 남들이 관심을 안 가지는 하차감 때문에 카푸어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차는 이동 수단일 뿐이다.


저축을 왜 해야 할까?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서, 집을 구입하기 위해서, 은퇴 후 살아가기 위해서,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모두 맞는 말이다. 나 또한 중고차로 시작해서 새 차를 살 때 일정 부분을 현금으로 지급했고, 분양을 받았을 때도 일정 부분 중도금을 저축한 돈으로 지불했다. 은퇴 후 살아가기 위해서 연금저축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저축은 틀렸다. 

저축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미래에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만약에 발생할지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 저축을 해야 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해야 한다. 내가 소유하고 싶어서, 소유한 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저축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저축은 투자를 포함한 개념이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자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5년, 10년 경제 계획도 세워보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자산도 관리가 용이하도록 정리를 했다. 만약, 20대, 30대에 좀 더 경제를 이해하고, 자산과 자본의 차이를 공부하며, 경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아무도 모른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예측은 무의미하다. 

인생의 전반전이 조금 지났을 뿐이니 나에게 아직 기회는 있을 것이다. 


경제적 독립, 즉 부자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원할 때,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것을, 원하는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 위함이다. 그리고, 부자가 되는 것과 부자로 살아 가는 것은 다르다. 돈을 버는 것과 돈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개념이다. 복권 당첨이 이후의 인생을 부자로 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자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확률을 조금 높여줄 뿐이다.


이 책은 한 번 읽을 책은 아니다. 옆에 두고, 인생을 함께 보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인용할 만한 내용은 많았지만, 귀차니즘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정독을 추천한다.


2022.04.29 Ex. Libris HJK


대학 시절 LA에 있는 어느 고급 호텔에서 주차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의 이야기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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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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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이다.

북유럽에 살고 있는 형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꺼운 책이지만, 읽는 내내 몰입감이 있었다.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계속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으니 기본적인 소설의 재미는 있다고 볼 수 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살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고, 사고로 위장하는 과정을 읽으며 새삼 인간의 잔혹성에 무서움을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을 위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하나의 사상, 이념, 기득권을 위해 잔혹해지는 인간을 보았는데, 이번에는 가족을 위해 끝없이 잔인해지는 인간을 보았다.


"우린 가족이다. 우리가 믿을 건 가족뿐이야. 친구, 애인, 이웃, 이 지방 사람들, 국가. 그건 모두 환상이야. 정말로 중요한 때가 오면 양초 한 자루 값어치도 안 된다. 그때는 그들을 상대로 우리가 뭉쳐야 해. 로위. 다른 모든 사람 앞에서 가족이 뭉쳐야 한다고. 알았지?" (P.13)


넷플릭스 미드 YOU(너의 모든 것)가 생각난다. 시즌 2, 시즌 3으로 가면서 막장으로 치닫지만, 시즌 1은 몰입해서 봤던 기억이 난다. 자신을 정말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이 사실 자신을 스토킹하고, 계획적으로 접근하고, 나를 위한다고 다른 사람들을 죽인다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무 일이 없듯이 지낼 수 있을까? 이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에게 정말 잘 해주는데, 나만을 위해 산다고 하는데,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킹덤>은 반대로 나를 위해서 저지르는 범죄를 묵인하고, 동조하는 이야기이다.


읽는 동안에 재미있었다. 지루한 부분이 별로 없었다. 연속된 사건 속에서 궁금증이 계속 생겼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모든 기대가 깨졌다. 화가 났다. 짜증이 났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 700Km가 넘게 달려왔는데, 목적지에는 아무것도 없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세요라는 표지판만 본 느낌이었다. 


2022.02.03 Ex. Libris HJK

개가 죽은 날이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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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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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에서 혼자 살면서 제대로 된 유서를 쓰기 위해 죽지 못하고 버티는 한 여자와 제주도 산속에서 은둔하면서 살아가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이 두 명은 친구이고, 제주도에서 사고를 당한 여자를 위해서 서울에 사는 여자는 자살을 잠시 미루고, 제주도로 떠난다. 

 

가끔 '나는 자연인이다'와 '건축 탐구 집'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본다. 볼 때마다 한적한 곳에 나만의 집을 짓고,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과 함께 할 수도 있지만,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자녀에게 함께 하자는 것은 이기적이고, 아직까지 와이프와 뜻이 맞지 않는다. 물론, 내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직접 살아보면 온갖 불편을 견디지 못해 후회할 수도 있으니 실천을 못하고 있다. 

눈이 내리면, 전기가 끊기고, 읍내 가는 버스도 끊기고, 난방도 안되는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쩌면 홀로 아픔을 견디기 위한 방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자연인이다'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고, 아픔이 있다. 


소설에서 나오는 대로 제주도에 이렇게 눈이 많이 올 수 있는지 미처 몰랐다. 허리까지 파묻힐 정도의 눈이 내리는 제주도라니 낯선 느낌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면서 보통 사람들은 하얀 눈이 내린다. 아름답다. 예쁘다 정도의 표현이 전부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차가 막히겠네, 도로가 미끄럽겠네라는 걱정이 더 앞설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가가 바라보는 눈은 다르다. 소설가는 하나의 대상에 대해 관찰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장갑 낀 손등에 방금 내려앉았다가 녹은 눈송이가 거의 완전한 정육각형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뒤이어 그 곁에 내려앉은 눈송이는 삼분의 일쯤 떨어져나갔지만, 남은 부분은 네 개의 섬세한 가지들을 본래 모습대로 지니고 있었다. 부슬부슬한 그 가지들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 소금 알갱이같이 작고 흰 중심이 잠시 남아 있다가 물방울이 되어 맺힌다. (P.109)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가 내 손등에 내려앉는다. 구름에서부터 천 미터 이상의 거리를 떨어져내린 눈이다. 그사이 얼마나 여러 차례 결속했기에 이렇게 커졌을까? 그런데도 이토록 가벼울까. 이십 그램의 눈송이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커다랗게 펼쳐진 형상일까? (P.111)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이는 어떤 모습일까? 아픔은 똑같을 수 있지만, 억울함이 포함된 아픔을 아픔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그 아픔을 책을 읽는다고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대할 때 그 사건의 원인과 맥락, 그 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판단하고, 생각하지만, 그 역사적 사건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저자인 한강은 제주도 4.3 사건에 대해 과도한 설명을 배제한 채 오로지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사건과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행동, 마음을 묘사하는데 노력한다. 역사적 이유가 어떻든 억울한 피해자로서 나머지 여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기를 바랐을 지도 모른다. 


역사에 대해 조그만 관심을 가지면, 인간에 대한 혐오가 생길지도 모른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잔인해질 수 있을까? 한 사람의 범죄는 그 사람 자체만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한 사회, 한 민족, 한 국가가 행한 조직적 범죄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민족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라는 말에 동조해서 앞장서서 범죄를 저질렸던 사람들을 그냥 두고 봐야만 하나? 얼마 전에 끝까지 광주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잘못을 시인 안하고, 죽은 쿠데타 주범은 여생을 편하게 살다가 죽었는데, 이게 공정과 정의로운 모습일까?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맹목적으로 하나의 사상, 하나의 관념, 기득권 유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세상을 얼마나 무섭게 바꿀 수 있는지를 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조장하여 권력을 잡고자 하는 이와 그 주변에 붙어서 기생하는 자들이 있음을 안다.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진 구성원의 힘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역사는 또다시 반복된다.


2022.01.30 Ex. Libris HJK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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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을 부탁해
헤이즐 프라이어 지음, 김문주 옮김 / 미래타임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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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인 노부인이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손자를 만나고, 아버지의 선물을 기억하며 남극에 있는 팽귄 탐사기지를 방문한다. 팽귄 서식지 근처에서 팽귄을 관찰하면서 팽귄 연구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증하겠다는 마음을 가진다. 


해피엔딩으로 따뜻하게 끝나는 소설이다. 남극, 팽귄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무대는 넓지만, 전반적으로 평범하다.

끝까지 다 읽었으니 재미 없는 것은 아닌데, 재미있다고 추천할 만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2022.01.25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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