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역시 의원내각제는 한국의 사정에 맞지 않는 정치제도로 결론이 난다. 국민들은 안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슬렁슬렁 이권다툼만 하면서 적당히 굴러가면 그만일 수도 있는 제도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일본을 보면 답이 나오는 것이다. 런 의미에서 당원들과 국민들의 절대다수가 원했던 후보를 일개 의원들이 내부의 짬짜미로 탈락시키고 엉뚱한 사람을 의장으로 뽑은 이번의 사태는 아주 큰 교훈으로 남게 될 것이다. 


꼴에 법조인이라고 한때 법조인출신들이 그나마 낫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판검사출신들이 주류로 활동하는 한국의 법조계라서 딱히 이들의 다수가 국회나 정부요직으로 진출한다고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지도 꽤 됐다. 


세상이 혼란한 것이 세기말의 휴거사태보다 더한 것 같다. 2차대전 후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에서 2000년대의 다극화시대를 넘어 이젠 세상이 일종의 군웅할거시대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 70년이 넘는 세월동안 누린 평화의 댓가로 우린 엄청난 빈부격차와 status quo가 강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고 본다. 절대로 법이나 도덕으로는 개선이 될 수가 없는 이슈라고 보는데 Great War로 인해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보통의 사람들의 시대를 열었고 2차대전으로 인해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강고한 어떤 시스템, 그리고 그 밑에서 부와 힘을 축적하고 있는 계층이 무너지려면 결국 엄청난 수준의 전쟁이나 대파국수준의 재앙밖에 없다고 점점 더 믿게 된다. 게다가 오랜 억압과 slow genocide끝이라고는 하지만 대량으로 이스라엘인들을 살해한 하마스의 테러와 이를 기회로 삼아 국내의 정치적인 이슈를 전쟁으로 갈아엎은 네탄야후가 주도한 팔레스타인사람들의 대학살을 보면서 humanity에 대한 기대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 요즘이라서 더욱 그렇다. A.I.는 결국 전쟁을 위해 쓰이게 될 것만 같다. 우린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인간종이니까.


지금과는 다른 시절 최고의 자리에 오른 디바의 이야기. 아주 알아듣기 쉽게 요점을 적절하게 잘 짚어서 그녀의 일생을 서술한 책이다. 풍월당주 박종호선생은 클래식의 다양한 장르를 평생 추구해온 매니악급 마니아가 아닌가 싶다. 클래식과 재즈를 즐겨온 것이 12-15년 정도가 되지만 그 지식도 일천하고 귀는 아마도 영구적으로 열리지 않을 것 같아서 다른 좋은 입문서들과 함께 그의 책을 길라잡이로 보곤 한다. 이분처럼 한 걸음 멀찍이 떨어져서 그렇게 낭만을 좇아다니면서 한 세상을 사는 것도 이런 시대를 이겨내는 방법일게다. 오페라는 너무 난해하고 아직 제대로는 커녕 시작도 못해봤지만 관심이 있어서 가끔씩 어디선가 들어본 음반이 눈에 띄면 일단 사놓고 본다. 음악에서 사람으로, 사람에 관심을 갖고 음악으로 어떤 길이든 좋다. 가곡은 좋아하는데 일전에 어떤 가수의 책을 읽고 그의 음반을 듣기도 했으니까. 마리아 칼라스가 필요했던 건 오나시스의 사랑이었으나 오나시스에게 필요했던 건 장식품 역할이나 할 디바가 필요했으니 오나시스가 만지고 다룬건 다 부서지다 못해 나중에는 자기자신도 부서져버린 것이 참 그렇다. 이 대가수가 노년의 원숙함에 이르기 전에 커리어가 멈춘 건 아트에 있어 큰 손실이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드라마틱한 것이 마리아 칼라스의 삶이다. DVD든 비디오테잎이든 예전부터 모인 것을 다 갖고 있는데 작년엔가 짐을 정리하다가 보니 아마도 어머니가 사놓고 보셨을 유명가수들의 공연실황녹화가 몇 개 있었는데 그 중에 마리아 칼라스가 있었다. 귀하게 모셔두었다가 혼자 즐길 생각이다. 















지난 주말 일요일 모처럼 푹 쉬면서 하루종일 책을 볼 기회가 있어 내리 읽었다. 일찍 운동을 마치고 커피를 마시면서 밝은 낮의 빛에 기대어 읽다가 오후로 넘어오면서 TV에 YouTube으로 비내리는 종로의 모습을, 산속 어딘가의 비오는 오두막을, 카페를, 서점을 그렇게 빗소리를 BGM으로 틀어놓고 어두워질때까지 책을 봤다. 평일에는 저녁에 퇴근하면 하루의 힘이 다 빠져서 책은 커녕 TV도 안 보는 일상이라서 이렇게 가끔 주말에 한나절 책을 보면 꽤 힐링이 된다. 소설도 좋고 역사나 문학도 좋겠지만 특히 책읽기란 행위에 힘을 실어 주는 책을 보면 아주 좋다. 


1. 김화영이란 불문학자이자 불어번역가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선생이 번역한 책은 다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는데 이미 절판된 책도 꽤 많아서 실망.

2. '하류인생'이란 특이한 책의 저자. 예전에 본 책이다. 도서관을 비롯해서 공공사업엔 효율이나 이익을 따질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들을 돈의 논리로만 대하는 정치와 행정의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아실 공공사업은 그 사업의 존재와 수행 그 자체가 효율이고 이익인데 말이다.

3. 금정연이 인천에 연고가 있고 1981년생이란 사실이 충격. 훨씬 더 젊은이의 글이라고 예전에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니 그가 처음 책을 냈을 무렵엔 팔팔한 젊은이였던 것이 맞았고 지금은 그도 나이를 먹은 것이다. 


이걸 왜 샀고 읽었을까 지금도 알지 못한다. 논문처럼 빡빡하여 기실 내용이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주제의 흥미도 덜했기 때문에. 







어쨌든 수요일까지 살아냈다.  


어려운 시대에도 책은 읽어야 하고 지식과 지혜의 불꽃은, 아니 불씨는 계속 지켜져야 한다. 언제 어느때 세상이 개판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 책만큼은, 그리고 조금 욕심을 내면 영화까지 무조건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모은 것들에 관심을 가져주는 뒷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처절한 전투와 반복되는 봉쇄, 폭격속에서도 책을 읽고 지켜가던 젊은이들의 이야기에서 용기를 얻는다. 슬프게도 이 책에 나온 사람들 대부분은 죽었거나 생사를 알지 못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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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5-23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책 읽고 싶네요.
80년대 생들이 나이 드는 거 보면 우리만 나이드는 거 아니구나 그런 생각 들 때가 있어요. 하긴 밀레니엄 베이비들이 20대니 말해 뭐하겠습니까. ㅎㅎ

transient-guest 2024-05-24 01:29   좋아요 1 | URL
90년대생이 30대가 됐으니 말 다했죠 뭐. ㅎㅎ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처절하게 낭만적이라서 지금 생각하면 더욱 슬퍼집니다.
 

평생 책을 읽어왔고 앞으로도 읽겠지만 단 한번도 책을 읽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거나 누군가에게 찍힌 적은 없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공부도 오래 했고 변호사로 일을 하고 있으니 나에겐 무엇인가를 읽고 쓴다는 건 그저 일상의 모습일 뿐이다. 


지적인 열등감과 관심병자의 행보를 보이는 모씨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우연을 가장하여 굳이 사진에 담아서 곳곳에 뿌린 것을 보니 드는 생각이다. 


공부도 잘했고 부잣집에서 태어서 고생이 뭔지, 어렵게 산다는 것이 뭔지 모르는 그가 왜 이다지도 심한 관심병과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것일까. 충분히 높은 자리까지 갔고 지금 나와서 로펌에 들어가도 좋은 대우를 받을 것이며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은 아이들은 어쨌든 현재 명문에서 수학 중이며 배우자는 국내 최고의 로펌에서 일하고 있고 모르긴 해도 돈도 아주 많을텐데. 무엇이 이자의 문제일까. 


글이 무척 찰지고 나이가 든 느낌이라서 통통 튀는 듯한 글보다 훨씬 더 정겹게 눈에 들어온다. 책값이 다른 것들에 비해서는 훨씬 싸다고는 하지만 돈이 없으면 그 싼 책을 더 싸게 사야하니 헌책의 매력은 일단 가격에서 나온다고 본다. 여기에 물성으로써의 책을 말한다면 헌책은 새책 한 권의 값이면 여럿을 살 수 있으니 읽는 것 못지않게 사들이는 것을 즐기는 많은 독서인들 중에는 헌책을 훨씬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인천에서 자란 저자는 책으로 밥을 먹는 사람인데 글에서 보이는 그의 나고 자람과 살아온 과정이 만만하지는 않았음인데 어쩌다가 책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게 되었을까. 이 노틱한 글을 쓴 사람은 아무래도 나보다 한두 살은 어린 것 같다. 우리들의 십대의 후반까지는 인천의 다운타운이었던 동인천의 대한서림, 양키시장, 애관극장 등 반가운 곳들을 추억할 수 있었다. 


아벨서점의 경우 나이가 많이 들어서 알게 되었지만 늘 헌책을 생각하면 그리운 곳인데 한국에 살던 시절엔 따로 헌책방을 찾아다닐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아마 학교에서 집까지 빨라도 버스로 한 시간, 여기에 학교건물에서 제물포역전의 버스정류장까지 15-20분은 족히 걸려 걸어서 내려오는 짓을 매일 하느라 가급적 집으로 가는 방향의 서점에서 책을 찾았기 때문. 반대방향으로 가야 하는 배다리골목을 갈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일찍 헌책과 헌책방을 만났더라면 책값을 많이 아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약간의 아쉬움, 그보다 더한 건 많은 멋진 공간들, 그리고 어쩌면 기연을 통해 만났었을지도 모르는, 십대나 이십대의 내가 무척 많은 걸 배웠을지도 모를 인연들을 놓쳤다는 것. 



소설도 에세이도 다 좋은 줌파 라히리의 책. 여럿을 예전에 사두고는 꽤 오랬동안 열지 못하다가 엊그제 일하기 싫은 날이 이어지는 와중에 읽은 한 권. 거의 끝까지, 아니 역자의 글을 읽을 때까지 난 이 책이 에세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너무도 저자의 삶이 많이 묻어나오는 탓도 있었고 꼭지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영국의 도시 어딘가의 거리, 교복을 입는 학교, 그보다 더 많이는 이탈리아의 도심, 카페 같은 곳을 계속 떠올렸다. 저자가 가르치고 있는 프린스턴은 제대로 된 모습을 모르기도 했고 프로비던스주의 모습이라고는 도통 상상할 수 없었기에 미국의 그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난 연말에 돌아가신 서경식선생처럼 줌파 라히리도 소속과 언어가 origin과 태어나 살아온 곳, 공부한 곳, 살고 있는 곳이 뒤섞여 한 곳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과는 다른 비전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잔잔하면서도 치열한 글이 좋다.



먹는 것, 움직이는 것, 등등 무병장수에 중요한 많은 것들 중에서 community와 사람과의 관계에 포커스한 이야기. 책에서 비판하는 양양제과용, 운동과다, 건강한 음식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저자는 사람들과의 교류와 community의 결속에 큰 점수를 준다. 결국 data를 어떤 방식으로 얻었는지 어디에 집중한 것인지 등 리서치라는 것의 내재된 이슈가 있어 약간은 비판적으로 받아들여도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운동이나 영양제, 식단관리처럼 여기서 중요시되는 것들 또한 결국 causation과 correlation을 혼동 혹은 혼용하는 사례가 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충분히 공감하고 참고할 의견이지만 따라서 이를 무조건 신뢰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이 balance해서 듣고 실천하는 것이 좋겠다. 운동, 음식, 영양제일부, 여기에 사람들과 관계와 교류가 중요할 것이니 무엇이 다른 무엇보다 더 혹은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의욕이 너무 떨어진 한 주를 보냈다. 해야하는 일만 겨우 처리하면서 하루씩 버틴 것 같다. 다음 주는 더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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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4-05-17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는 아주 저렴한 가격의 낡은 헌책을 샀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책곰팡이가 무서워져서 (곰팡이 핀 책 모르고 잘못 들이면 다른 책에 옮는건 아닌가 걱정이 되서) 알라딘 중고책 최상등급까지만 주문합니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담그고 있지요... ㅠㅠ 그래서 책값이 부담스럽지만 나름 덜 사고 (두번 세번 아니 수십번 고민하고 주문합니다), 더디게 사고 (당장 읽고 싶은 신간이 나와도 중고로 나올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리고 빨리 읽고 (바로 여기가 보틀넥입니다..) 다시 되팔아 또 사고 그러는 중입니다.

transient-guest 2024-05-17 10:26   좋아요 1 | URL
곰팡이는 진짜 무섭죠. 사실 헌책방에서 한 권씩 살피면서 사면 그런 걱정을 안하겠지만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어떤 책이 걸릴지 알 수가 없겠네요. 저는 산 책은 가급적 갖자는 주의라서 나중엔 모르겠지만 지금은 팔고 있지는 않습니다. 갈수록 책이 비싸지고 있는 것도 그렇고 해서 점점 조금씩만 사려고 합니다. ㅎ

stella.K 2024-05-17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변호사님이시군요. 근데 왜 전 사업하신다고 알고 있었을까요? ㅠ
지난 몇년 사이 책값이 많이 비싸졌더군요. 그래서 저도 중고샵을 주로 애용하고 있습니다. 중고샵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나 싶어요. 아무튼 헌책 읽고 싶네요. 언제고 중고샵에서 발견되면 한번 읽...ㅎㅎ

transient-guest 2024-05-17 10:29   좋아요 1 | URL
제가 자영업이란 표현을 많이 써서 그러신 것 같아요.ㅎㅎ 사실 큰 회사도 아니고 저 혼자 일하는 개인오피스라서 그냥 장사하는 기분으로 일합니다. 헌책방에서 한나절 책을 보면서 하나씩 골라잡는 재미를 다시 느껴보고 싶네요. 가급적이면 바깥이 추운 겨울, 그래서 따뜻한 난로가 있는 서점 안이 좋은 그런 계절에 말이죠. 가면 화평동냉면을 한 그릇 먹고 슬슬 걸어서 아벨서점으로 가려고 합니다. ㅎㅎㅎ ‘아무튼 시리즈‘가 있어서 관심가는 걸 가끔 구해보고 있어요.

추풍오장원 2024-05-17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사법시험을 할까 행정고시를 할까 고민하다가 법관 되지 못할거면 그냥 행정고시로 가자 싶어서 행시치고 공직생활 중인데 가보지 못한 변호사의 길도 궁금합니다...ㅎㅎ

transient-guest 2024-05-18 01:2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변호사라서 한국과는 좀 다를 것 같고 또 개인 practice라서 로펌 등 조직생활과도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혼자 일하다보니 조직생활이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여기도 K공기업들도 많이 나와있는데 행시출신은 뵌 적인 없네요. ㅎ

나와같다면 2024-05-17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워팰리스에 사는 한 위원장이 왜 굳이 서민들이 오가는 공공 도서관에 가서 SF 소설책을 펴들고 앉아 있었을까?
조용히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사색을 해보면 어떨까요? 아, 윤석열 대통령이 버리고 갔다는 책들을 한 전 위원장에게 선물해 줬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transient-guest 2024-05-18 01:27   좋아요 0 | URL
원래 선물하려고 추려놨다가 총선 후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버린 건희??? ㅎㅎㅎ 그 똑똑하다는 머리가 왜 이렇게 구린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세상에 그렇게 사진이 찍혀서 올려지면 누가 우연이라고 믿을까요?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 같습니다. 전에 집무실도 그렇고 뭔가 남이 자기를 이렇게 봐주었으면 하는 모습을 자꾸 project하는 것 같아요.
 

봄 이맘때면 늘 꽃가루 앨러지에 시달리곤 한다. 한 해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는데 4월까지 비가 내린 이번 해에는 5월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달라고 있다. 마지막 비가 그치고 나서 날이 따뜻해지면서 바람과 함께 사방에서 온갖 식물들의 때춤이라도 시작된 건지 이틀 전부터 눈과 코가 멀쩡할 겨를이 없다. 참고 참아 눈을 비비지 않더라도 눈은 벌게지고 눈주위는 전날 과음을 한 것처럼 붓고 코에서는 콧물이라 말하기엔 너무도 맑고 투명한 것이 수도꼭지라도 틀어놓은 냥 줄줄 흘러내린다. 잠깐 운동을 하면서 조금 가라앉기도 하지만 씻고 집을 나서면 다시 시작된다. 눈이 오지 않는 이곳의 겨울을 춥게 느끼지 시작한 해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는 봄의 행사 아닌 행사가 되겠다.


뭐라도 읽어야지 싶어서 이런 저런 책을 뒤적거리다 보면 어느 날엔가 한 권씩 끝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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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5-10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고, 알러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신가 봅니다.ㅠ
이곳 서울도 지난 연휴 때 비가 오고 제법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밤에는 선선하다 못해 한기까지 느껴져 이불도 꼭 덥고 자고요.
근데 스베덴보리의 책을 갖고 계시는군요. 저도 얼마전 소개 받고 중고샵에 있길래 샀는데 아직 읽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분의 영향력이 대단하더군요. 나중에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24-05-11 00:53   좋아요 1 | URL
매년 겪는 일이지만 매년 힘드네요.ㅎㅎ
스베덴보리의 책은 이번에 처음 읽었어요.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단순히 신비주의자가 아니라는 건 이번에 알게 되었네요. 어떤 느낌인지 정리가 잘 되지 않아서 다음에 다시 보면서, 아니면 다른 책도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ㅎ
 

주말엔 계획했던 대로 하루 종일 책을 보면서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토요일에는 새벽 일찍 운동을 하고 오전에 미리 장을 봐 놓고 이런 저런 책을 보면서 한 권씩 다 읽어냈고 일요일에도 계속 책을 잡고 하루를 보냈다. 약속이 취소되어 딱히 갈 곳도 없었고 특별히 볼만한 전시도 없어서 이젠 대놓고 위험해진 샌프란에 갈 생각도 없었다. 이전엔 자주 가던 하이킹도 공원 곳곳이 무너진 후 매년 비가 올때마다 보수할 곳이 늘어난 탓에 갈 곳이 정말 없어진 것이다. 일부러 일을 만들어 어딘가를 찾아가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귀찮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쉽게 눈이 잘 들어오는 이야기가 잔잔하니 정말 좋았다. 이곳의 시각으로 보면 많이 느껴지는 고급아파트, 명문대지향, 만년강사를 하면서 집안의 돈을 까먹고 사는 아버지까지 절절하고 묘하게 한국사회의 일면을 잘 그려낸 것 같다. 같은 의미에서 한국사회의 따뜻한 이면 또한 순례 주택의 사람들을 통해 그려졌는데 다소 이상적이긴 해도 분명히 80년대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친하게 지낸 집들끼리 애들과 어른들이 함께 오가고 음식을 나눠먹고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같이 장을 봐서 나누던 기억이 있는 나에겐 매우 리얼한 우리네의 모습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나 또한 그렇게 이웃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꺼리는 탓에 아마 다시는 그런 시절의 살지는 못하겠지만. 다들 조금씩은 철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공부 잘하는 딸내미는 아마 바뀌지 못할 것 같다만. 



빌려 읽은 책 두 권. 달리기가 하고 싶어지게 만든 조금은 감동적인 이야기와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즐길 수 있는 각각의 책을 보면서 역시 도서관도 가끔씩 가서 빈약한대로 다른 이의 큐레이션에 따라 들여온 책을 골라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모든 책을 알 수 있기는 커녕 고전조차 다 못 보고 있으니 이렇게 해야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책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Hawke라는 성이 아마도 Hawker, 즉 매를 부리는 사람에서 왔을 것이란 추정과 함께 자신의 조상 누군가로 추정되는 사람이 다음 날 모두가 전멸해버린 전투를 앞두고 자녀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것이 오랜 시간 어딘가 묻혀있다가 발견된 것을 복원했다고 한다. Ethan Hawke가 편집한 이 책의 영문버전은 아주 작은 책자로 예쁘게 제본되어 눈에 쏙 들어온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할 수 있었던 날, 네 시에 커피를 내리면서 한 챕터씩 읽고 깊이 음미하려고 노력했다.




얼마전 지인의 아들에게 강조했던 몇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Roth IRA를 시작할 것, 가능하면 팟타임으로라도 일을 할 것, 그리고 교양을 쌓기 위한 기초적인 독서를 할 것 이렇게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다. 마침 이 책을 보던 차에 빌려주려 했더니 사보겠다고 하던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여기서 길잡이로 줄거리를 읽은 50권을 시작하면서 고전의 즐거움을 조금씩 배워나가고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서 전작을 하면서 계속 지평을 넓이고 더욱 깊이 들어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면 아직은 머리가 fresh한 십대라서 금방 기초적인 4-500권의 고전을 완독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진짜배기들은 투자니 성공학이니 이딴 것이 아닌 셰익스피어와 그리스-로마의 고전을 quote하는 수준은 되어야 기초적인 교양이 있다고 인정을 한다는 이야기도 곁들였으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고 열심히 성찰하는 것만으로는 편향된 녀석의 사고가 더 유연해질 것 같지는 않다.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사람이 된다는 건 이제 믿지 않으니까. 다만 그래도 자기 머리로 지식과 정보를 받아서 판단할 능력이 생기면 사람이 될 가능성이 조금은 더 많아지니까. 나도 그 나이땐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소년소녀문고판으로 이런 저런 고전의 맛은 봤더랬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내가 뭐라고 한다고 바뀔 일도 아니고 해서 관심을 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 살기도 바쁜 세상인데.


어깨도 아프고 몸도 뒤틀린 듯 늘 어디가 골골하다. 덕분에 오늘 했어야 하는 chest/triceps를 내일로 미뤄버렸다. 하지만 그냥 있을 수는 없었기에 가장 원초적인 걷기, 그리고 땀을 조금 내기 위한 자전거머신을 굴리는 것으로 운동을 이어갔다. 뭐라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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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와중에도 가끔씩은 일정이 비거나 정신이 가출할 지경으로 탈진하여 운동마저도 쉬어버리게 되는 하루가 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수요일까지는 일정을 무사히 잘 마치고 운동도 잘 했기에 부담 없이 임한 목요일의 일정이 그 원인이 되는 것 같다. 주말에 지인에게서 곧 대학교에 지원하는 자녀의 진로상담을 부탁을 받고 별 생각 없이 응한 것. 


문제는 내가 아이들을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고 관심도 별로 없고. 그저 어린 친구들의 우경화를 걱정하는 것이 거의 전부인 내가 받지 말았어야 하는 청이 아닌가 생각을 지금은 하고 있다만 그건 어제를 겪고 난 후의 일이고 당시엔 뭐 한 두 마디 해주고 밥을 먹여서 보내면 될 것이라 가볍게 생각했었다. 


만나고 나서 한 세 시간 정도를 보낸 것 같다. 밥도 먹이고 대화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책도 사주고 등등. 다 끝나고 느낀 점은 일단 기가 빨린 듯 무척 피곤했다는 것이고. 내가 아이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대화를 유도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점. 거기에 성향 등 아이에 맞춰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았다는 점이다. 부탁을 들어줬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싶다만 일단 오늘까지도 털린 체력이 회복되지 않고 있음이다. 


가볍게 업무처리를 하고 남은 하루는 늘어져 있는 것으로 한 주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일대기 만화부터 모두 즐겁게 읽었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는 늘 생각할 것이 많아지게 한다. 조이스의 일대기는 그의 작품과 함께 보면 가장 좋겠다.
















모두 빌려 읽은 책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몇 권을 중고로 사버린 것도 결국 이렇게 읽다가 보니 벌어진 일이고 잭 리처의 이야기는 언제나 속이 시원하게 해주기 때문에 완판으로 다 구입할 수만 있다면 갖고 싶다. '붉은 박물관'과 '샘 호손 박사의 불가능 사건집'도 시리즈 몇 권이 있는 것 같은데 나중에 구하게 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상당히 흥미롭게 봤다. 


편향된 독서라도 안 읽는 것보단 훨씬 희망적이다만 그 지평을 얼른 넓혀가지 못하고 나이를 먹어버리면 이렇게 다원적이고 깊은 세계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가진 판본은 끝의 절판된 것이고 지금은 첫 번째 판본을 구할 수 있다. 가끔씩 가볍게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읽는다. 읽는 다는 행위, 책을 사는 행위가 전후 미국의 어느 곳에 살던 그다지 유명하지 않는 것으로 끝날 어떤 글쟁이 노처녀와 런던의 서점직원들이 소식을 주고 받으면서 우정을 나누게 해주었음에서 느껴지는 설렘과 따뜻함이 좋다. 이번엔 그냥 노처녀의 히스테리를 더 많이 느끼긴 했지만.


Classified Dossier 시리즈 세 번째. 사교계에 갑자기 나타난 도리언 그레이와 괴인들로 이뤄진 서커스단의 비밀을 추적하면서 하나씩 드러나는 흑막의 정체를 (자랑은 아니지만) '괴인'에서 금방 추론할 수 있었다. 여러 작품들에서 모티브를 가져다 구성한 세계관이기 때문에 이건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아니라면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이름이었다만 그만큼 쉽게 예측이 가능한 인물이기도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따라간 추리의 끝에서는 이미 죽은 모리어티 교수의 그림자가 짙게 배여있다. 언제 다음 이야기가 나올지, 아니 나오기는 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홈즈의 세계관은 이미 다양한 작품에서 펼쳐지고 있어서 원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를 구할 수 있어 즐겁다. 지금도 이미 세 권 정도를 집에 가져다 놓고 하나씩 보고 있을 정도로 많다. 다 끝내면 아마 홈즈와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엮어낸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할 것 같다.



그림이 예쁘고 글이 따뜻하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본 '슈퍼'와 '연쇄점'이 생각나면서 아련하게 83년의 도화동 제일시장 앞의 동네의 모습이 살아나는 것 같다. 꼬맹이 주제에 '여자친구'와 동네를 걸어다니면서 데이트를 했으니 모든 것이 late bloomer였던 녀석치고는 꽤 빠른 시작이었구나 싶다. 이렇게 옛집을 개조해서 가게와 살림집, 그리고 집 안쪽으로 마당공간이 있는 구조의 집이 참 예쁘게 보인다. 



요즘 애들은 부모의 성향이나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우편향이 강한 듯. 뭔가 알고서 그런다기 보다는 그냥 그렇게 자라나는 것 같다. 


균형있는 독서, 그리고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를 강조했고 특히 기초 400권 정도의 고전을 읽을 것을 강조했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으니 feedback이 없는 걸 보면 별로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내 피곤과 맞바꾼 시간 및 이에 따른 '비용'을 생각하면 좀 아깝다는 생각. 주말엔 운동력을 회복하고 술을 멀리하고 책으로 힐링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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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4-20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 시간이나...듣기만 해도 힘드네요. ^^ 지인이 참 고마웠겠습니다. 저 <동전 하나로 행복했던..> 저도 좋아하는 책이고 어린 시절 생각 나 참 아련해지더라고요. 타임머신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생각했어요.

transient-guest 2024-04-22 12:34   좋아요 0 | URL
쉽지 않더라구요. 더구나 말수가 없는 아이여서 더욱 힘들었어요. 어린 시절의 동네모습이나 사람 사는 모습이 그립기는 합니다. 그때라도 다 좋은 것도 아니었을텐데 말이죠. ㅎ

stella.K 2024-04-20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우리도 젊을 때가 있었는데 말이죠. 몸만 늙어 갈 뿐이지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라고 해도 막상 젊은애들 만나면 얼게되니 나이 들어가는 거 실감합니다. 그래도 3시간이면 잘 만나신 거 같은데요? 싫으면 그렇게 오래 못 만나죠.
암튼 수고 많으셨습니다. ^^

transient-guest 2024-04-22 12:35   좋아요 1 | URL
그냥 다른 인종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아이들이. ㅎㅎ 은행에 가도 그렇고 심지어 gym에서도 불특정 젊은이들 다수에게 ‘sir‘이란 소리를 듣고 있네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