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광기와 우연의 역사 (최신 완역판) - 키케로에서 윌슨까지 세계사를 바꾼 순간들 츠바이크 선집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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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라는 책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정신의학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혹은 과학사에 족적을 남긴 우연한 발견에 대한 내용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커다란 역사의 사건 뒤에 숨겨진 어떤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를테면 워털루 전투에 대해 쓰면서 나폴레옹이 아닌 그루쉬를 주인공으로 삼고,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인 잔혹한 행위에 대해 쓰면서 피사로가 아닌 발보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아는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전혀 모르는 인물들이 튀어나오고, 전혀 모르는 이야기인 듯 싶다가도 모두가 아는 결말로 끝나게 된다. 그런 글이 열네 편 실려있다. 거의 모든 문장이 현재형으로 적혀 있어서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살아숨쉬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글은 '황금의 땅 엘도라도의 저주'와 '봉인 열차'다. '황금의 땅' 이야기는 서터라는 사람과 캘리포니아, 그리고 골드러시에 얽힌 이야기인데 이렇게 엄청난 이야기가 실화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 정도로 다이내믹할 수가 있을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더 이상은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쓸 수 없다.)


'봉인 열차'는 누구나 다 아는 레닌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혁명 시기의 레닌이 아니라 혁명 이전 스위스에서 구두 수선공 세입자로 살던 시기의 레닌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읽어본 다른 역사책에는 1917년 2월 혁명이 발발하자 당시 국외 망명 생활 중이었던 레닌이 독일이 마련해준 특별 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핀란드역으로 귀국했다고만 쓰여있었다. 혁명 이전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다. 다른 에피소드들은 거의 다 어떤 사건 혹은 인물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데 레닌의 경우 제일 재미있는 지점에서 서술을 끝내버린다. '여기서 끝내면 어떡해!!제발 좀더 써주세요!!'를 외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괴테, 헨델에 관한 내용은 쪼오끔 재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호불호의 문제이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발은 책 전반적으로 고르게 훌륭하다. 심지어 톨스토이에 관한 챕터는, 톨스토이의 미완성 희곡 작품에 덧붙여 슈테판 츠바이크가 짧은 희곡 하나를 쓴 것인데, '뭐야, 희곡? 재미 없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다가 완전히 빠져들어버렸다. 그리고 유럽이랑 미국 사이에 전신 연결한 이야기, 이것도 정말 재미있다.


이 책에서 특히 좋은 점은 지도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동로마 제국 최후의 전투가 벌어진 장소의 지도, 발보아가 이동한 경로의 지도가 있어서 좋았다. 이거 없었으면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번역도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막히거나 갸웃거리는 부분이 한 군데도 없었다. 이 번역가가 츠바이크 선집을 쭉 번역하신다면 계속 따라가면서 읽을 생각이다. 역자 해설도 읽으면 도움이 된다. 키케로와 츠바이크를 엮어서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해설을 읽고 나니 키케로 챕터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글을 너무 잘 쓴다는 것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이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어볼 생각인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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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색하는 인간은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리기 때문에 결정적 순간에 행동하는 경우가 드물다. 역사에서 이런 비극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울려 나온 소리는 차곡차곡 벽돌처럼 쌓이며 보이지 않는 탑이 되어갔다. 천재가 짓는 투명한 건물은 그림자 하나 없이 찬란하게 위로 쑥쑥 솟아올랐다."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그를 끌어 올려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명징한 감각의 세계로 데려가더니 이제 그를 내동댕이쳐 버렸다. 몽롱한 피로감이 그를 덮친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깊이 잠든다. 그러는 동안 그의 내면에 깃들었던 창조자, 시인, 천재는 다시 죽어버린다."


"이 진지한 사람들이 그 와중에 겨울의 정점인 6월에 멋진 성탄절 파티를 했으며 「사우스 폴라 타임스South Polar Times」라는 익살스러운 신문을 펴내며 즐거워했다는 기록을 읽으면 뭉클해진다. 예를 들어 고래가 나타난 일, 조랑말이 넘어진 일과 같은 자잘한 일들이 엄청난 사건이 되고, 작열하는 오로라, 끔찍한 혹한, 상상을 초월하는 고독감 같은 대단한 일들이 익숙한 일상이 된 삶은 묘한 감동을 준다." 


"우연한 성공과 손쉬운 성취를 보고 고무되는 것은 명예욕에 불과하다. 한 인간이 막강한 운명을 상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벌이다가 몰락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우리의 마음을 드높이는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어느 시대에나 가장 위대한 비극이다. 시인은 몇 차례 그런 비극을 만들어 내지만 삶은 수도 없이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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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책 파는 법 - 온라인 서점에서 뭐든 다하는 사람의 기쁨과 슬픔 땅콩문고 시리즈
조선영 지음 / 유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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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파는 법>의 부제는 ‘온라인 서점에서 뭐든 다하는 사람의 기쁨과 슬픔‘이다. 온라인 서점 MD가 어떤 직업인지, 출근해서 뭘 하는지, 책을 팔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는지 말해준다. 아주 오랫동안 온라인 서점을 이용했지만 정작 온라인 서점 MD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뭘 하는지는 정확히 몰랐기에 '재밌겠다'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이 저자, 글을 상당히 잘 쓰신다. 막히는 부분 없이 잘 읽힌다. 무엇보다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얼마 전에 해외 출판 편집자가 쓴 책은 주제에서 벗어난 글이 너무 많아서 읽다가 중단했다. 일관되게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온라인 서점 MD가 출판사에 연락해서 책을 주문하고 그 책들을 판매해서 서점의 매출을 책임지는 사람들이라는 걸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온라인 서점 MD라고 하면 막연하게 여러 가지 책을 읽고 구매자들에게 추천할 책을 고르고 간략한 리뷰글을 쓰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MD 추천‘란에 들어가는 그런 글 말이다. 그런데 이분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책 재고 주문부터 하는 사람들이었다. 


온라인 서점 MD의 출근 시간은 8시.(이분은 예스24 직원이다.) 상당히 이른 시간이다. 출판사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회사에 도착해서 전날과 새벽에 들어온 주문서들을 싹 검토해서 책 주문을 넣는다고 한다. 아니, 나는 이런 건 시스템이 알아서 하는 건 줄 알았다. 일일이 고객들의 주문량을 검토해서 오늘은 이 책을 몇 권 주문해야 하는지 정하는 직원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21세기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해 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세상에도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있고 그 중 하나가 온라인 서점 MD의 책 주문 작업이라는 게 정말 흥미롭다.


온라인 서점 MD는 재고를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사들이고(당연히 많이 사야 싸다) 그 책들을 얼마나 많이 파는가, 로 승부를 보는 직업이다. 많이 팔릴 거라고 생각해서 사들인 책들이 생각보다 안 팔릴 때는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MD도 많이 주문할 땐 즐겁다. 많이 주문할수록 공급가 조정도 좀 더 수월하니 원래 가격보다 3~5퍼센트 낮춰서 사들이면 정말이지 신이 난다. 문제는 책이 안 팔려 지옥을 맛볼 때다. 아무리 스테디셀러라고 해도 특별한 이슈가 없다면 판매는 자연 감소하게 되어 있다. 더 이상 책을 쌓아 둘 공간이 없으니 안 팔릴 것 같으면 주문 좀 하지 말라는 물류센터 담당자의 항의에, 특별한 판매 계획이 없으면 출판사로 반품하라는 팀장의 통보 메일을 받아 보시라. 사들일 때의 흥겨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쪼그라든 죄인이 되어 지옥을 맛본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전화를 걸어 “혹 반품이 가능할까요”라고 어렵게 입을 뗀다. 내가 보낸 대량 주문 발주서를 받으실 땐 웃으셨던 부장님의 깊은 한숨이 전화기 너머로 들리니, 나는 더욱 움츠러들어 작아지고 또 작아진다. “아, 알겠습니다. 반품은 역시 어렵겠죠. 대신 굿즈 제작비 지원은 가능하실까요……?"」


출판사에 전화해서 책을 반품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온라인 서점 MD의 괴로움이라니...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 했다. 책 판매는 오로지 출판사의 사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온라인 서점 MD는 때로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하지 않는 일을 해야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책의 크기와 무게를 재서 기입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들어보면 직관적으로 아는 정보들을 온라인 서점에서는 알 수 없으니 그런 걸 구매자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도 어디선가 자동으로 입력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는데 MD들이 일일이 가로세로 길이 재고 저울에 무게 달아서 기입했다고 한다.(지금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예전에는 그렇게 했다고 한다.)


굿즈 관련 내용도 빠지지 않았다. 알라딘 서점이 굿즈로 대박을 치고 나서 다른 온라인 서점들도 너도나도 굿즈 전쟁에 뛰어들었던 기억이 있다. 저자는 굿즈의 진화를 굿즈 1.0시대부터 3.5시대(현재)까지 나누어 설명한다. 굿즈의 진화 과정을 지켜봤기에 새록새록 옛날 기억이 떠올라서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 중 내 혈압을 오르게 한 부분이 있다. 바로 '띠지'다. 저자는 웹상에 띠지 두른 표지를 올리느냐 마느냐를 두고 온라인 서점과 출판사의 의견이 갈리는 것을 '띠지 갈등'이라고 표현했다. 출판사는 띠지가 책 판매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면서 띠지 두른 표지를 웹에 올리기를 원한다. 온라인 서점은 띠지 없는 표지를 올리기를 원한다. 웹에 띠지 두른 표지를 올리면 구매자들은 띠지도 엄연한 상품의 일부라고 생각해서 배송 중에 띠지가 훼손될 경우 책을 아예 바꿔달라고 항의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 입장에서는 띠지가 골치 아픈 존재다. 


하지만 띠지 갈등을 논할 때, 출판사도 온라인 서점 관계자들도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전자책 구매자들의 불편함이다. 책을 받아서 띠지를 제거할 수 있는 종이책 구매자들과 달리, 전자책 구매자들은 웹상에 있는 표지에서 띠지를 벗길 수가 없다! 띠지를 입힌 채로 웹에 올리면 내 전자책 책장에도 그 띠지 두른 표지가 보여지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띠지를 선호하지 않는데, 특히 사람 얼굴이 들어간 띠지는 정말로 선호하지 않는데, 온라인 서점이 띠지 두른 표지를 올려버리면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그 표지를 간직해야만 한다. 나는 그게 온라인 서점의 횡포라고 생각했는데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었다니, 대충격이다.


이런 생각을 나 혼자만 한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전자책 관련 네이버 카페에 '띠지 없애기 캠페인'을 벌이는 분이 나타나셨다. 그 분은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서 웹에 올리는 표지에서 띠지를 제거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하신다.(그 분은 그게 출판사의 정책이라는 걸 진작에 알고 계셨나보다.) 그 메일을 보고 실제로 표지에서 띠지를 제거해준 출판사가 있고 그런 요청 따위 사뿐히 무시하고 띠지 두른 표지를 고수하는 출판사도 있다고 한다.


제발 출판사들이 띠지에 대한 집착을 버렸으면 좋겠다. 아니면 띠지를 따로 촬영해서 이 책을 사면 이런 띠지가 나간다고 안내를 해주든지.(그럼 온라인 서점MD의 일이 엄청나게 늘어날테지만.) 아무튼 나는 띠지 없는 표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바이다. 출판사와 온라인 서점 간에 ‘띠지 갈등‘이 벌어졌을 때 부디 온라인 서점이 승리하시어 깔끔한 표지가 웹에 등록되기를 바란다.


고개를 갸웃하게 했던 것은 리커버에 대한 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몇몇 환경 관련 책을 리커버하면서 나무 심기라는 공익적 활동까지 묶은 이벤트를 기획한 적이 있다고 한다. 리커버와 환경 운동, 올바른 조합인건지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매대에 깔린 책이 이 모두 소진되고 나서 이왕 새로 찍는 거 새로운 표지로 바꾸겠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리커버 되는 책들 중에는 유행따라, 계절따라, 판매부수 따라 책표지를 갈아치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이 책에도 언급되지만 봄에는 벚꽃 에디션을 출시하면 잘 팔린다고 한다.)


책을 굿즈처럼 소장하는 팬덤을 지닌 작가들의 책은 리커버 할 때마다 판매량이 늘어날테니 출판사나 온라인 서점 입장에서도 욕심나는 작업일테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것도 하나의 마케팅이니 리버커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환경 운동과 묶은 리버커라는 말이 가능한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환경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전자책을 홍보하는 건 어떨까. 전자책은 종이도 필요없고 인쇄도 필요없다. 온라인 서점 MD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재고 관리도 필요 없다. 물류센터 공간도 차지 안 하고, 배송도 필요 없다.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물론 내가 모르는 전자책 관련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건 그저 전자책을 사랑하는 한 독자의 근거 없는 헛소리다.)


아무튼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다. 여기 쓴 내용 말고도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이 아니라면 온라인 서점 MD가 뭘 하는 사람들인지 어디 가서 알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책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어디 가서 온라인 서점 MD가 뭐 하는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것이 책 읽는 사람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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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똑같은 책을 또 샀다. 같은 책을, 심지어 똑같은 전자책인데 또 산 것이다. 왜냐하면...파일 형식이 다르다. 예전에 산 것은 PDF 버전이고 이번에 산 건 epub 버전이다. 하...똑같은 전자책을 두 번 사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PDF로 읽는 거 너무 불편해서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이걸 사고 보니 그동안 똑같은 책을 두 번 산 적이 적잖이 있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대부분은 종이책으로 갖고 있다가 그걸 팔고 전자책으로 새로 산 것이다. 생각나는 책들만 대강 검색해봤는데도 꽤 된다.



-러시아 미술사

우선 <러시아 미술사>. 이 책은 러시아 여행 가면서 들고 갔는데 다녀와서 종이책은 처분했다. 그 후에 전자책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전자책까지 살 생각은 없었는데 러시아 여행을 추억하면서 이 책이 다시 필요하게 되어서 아주 최근에 전자책으로 구매했다. 보통은 월초에 전자책 캐시를 미리 구매해두고 그 안에서 전자책을 구입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책 그만 사자는 심정으로 전자책 캐시를 하나도 쟁여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최근 들어서는 거의 유일하게 전자책 캐시가 아니라 쌩돈 주고 산 책이다. 여기에 소개되는 러시아 화가들 그림 중에서 일리야 레핀, 바실리 수리코프 그림이 참 좋다.



-돈키호테

그리고 <돈키호테>. 양장본 나왔을 때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구매했었는데 종이책을 전부 정리하면서 중고로 팔았다. 그리고 어차피 안 읽을 것 같아서 잊고 살다가 이수은 작가의 <평균의 마음>을 읽고서 <돈키호테> 전자책을 구입했다. 그 책을 읽으면 자동으로 <돈키호테>가 읽고 싶어진다. 이래서 책에 대한 책을 조심해야 한다.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장바구니에 책이 십수권 담기게 된다. <돈키호테>는 종이책으로 갖고 있었을 때는 완독 못 할 것 같았는데 전자책이니까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 희한하게 벽돌책은 종이책으로는 안 읽히는데 전자책으로 읽으면 그나마 읽힌다. 무게나 두께가 안 느껴져서 그런 듯 싶다. 벽돌책은 전자책으로! 아무튼 <돈키호테>는 올해 안에 읽을 거다. 무조건!



-프랑스 중위의 여자

<프랑스 중위의 여자>도 종이책으로 갖고 있다가 팔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전자책이 나온 걸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전자책으로 사고 싶어서 정말 여러 번 검색했는데도 안 뜨길래 거의 반포기 상태였는데 어느날 검색해보니까 전자책이 나왔길래 바로 샀다. 예전에 갖고 있던 종이책은 한 권 짜리였는데 전자책은 분권이다. 거기다 가격 차이 무엇. 그래도 전자책이 있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도 두 번 샀다. 예전에 갖고 있던 종이책은 세 권 짜리였는데 전자책은 통합본이다. 통합본도 버전이 여러가지인데 내가 산 전자책은 제일 못생긴 맨왼쪽 표지다. 나도 예쁜 리커버 표지의 <존.세.거> 갖고 싶은데 전자책 이용자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다. 표지 따위 안 보면 그만이라고 위안을 얻어 보지만 그래도 가끔씩 열 받는다. 전자책 사용자에게도 표지 선택권을 달라!!우리에게도 미적 감각이 있다!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도 두 번 샀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 책에 대한 집착이 있다. 안 읽으면서도 계속 보관하려고 한다. 이번 달에는 나 혼자 슈테판 츠바이크 작품 뽀개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에, 이번 달에 이거 진짜 읽을 거다.

지금은 <광기와 우연의 역사> 읽고 있는데 이거 다 읽으면 바로 <어제의 세계>로 넘어갈 계획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책 썩겠어...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거의 모든 것의 역사>도 두 번 샀는데 이 책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종이책을 팔고나서 뭔가 허전한 마음에 전자책을 다시 샀는데 몇 달 후에 개정판이 나온 것이다ㅠㅠ이왕 새로 살 거면 개정판을 샀었어야 했는데 두 번을 사면서 구판만 샀다. 슬프다. 개정판이 훨씬 좋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개정판 전자책을 또 살지도 모르니 아예 리뷰도 보지 않는다. 표지 말고는 바뀐 게 별로 없기를 바라고 있다.



-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도 두 번 샀다. 그런데 <장미의 이름> 처음 종이책으로 산 게 무려 2003년이다. 믿기지가 않는다, 20년 전에 사놓고도 아직도 안 읽었다는 게! 그때는 <장미의 이름>을 읽을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있어보이고 싶어서 사놓고 책상에 꽂아두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 사서 전시하는 걸 더 좋아했다. 그러다가 종이책을 전부 처분하고 코로나 시절부터 마음이 심란해서 진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했던 시절에 비해 정작 책을 읽은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것도 구매 20주년 기념으로 올해 진짜 읽어야겠다. 이탈리아에서 만든 드라마가 있다는데 그걸 먼저 보고 읽으면 더 쉽게 읽을 것 같은데 OTT에 아무리 뒤져도 없다. 이탈리아 드라마 어디서 구하져...아무튼 드라마 못 구해도 꼭 읽을 거다. 나와의 약속이다.


사실 이것 말고도 두 번 산 책은 엄청 많다ㅋㅋㅋㅋㅋ


왜냐하면 나는 김영하의 팬이고 김영하 작가의 책을 전권 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있었는데(전부 초판) 나중에 결정판 시리즈로 새로 나왔길래 그걸 전부 전자책으로 다시 샀다. 알라딘 전자책 적립금 들어올 때마다 구슬 꿰듯이 하나 하나 사서 모았다. 몇 달에 걸쳐 사면서도 뭐 하는 짓인지 약간 회의감이 들기는 했다.



이제는 웬만하면 구독 서비스 이용하려고 노력 중이고 책 안 사려고 하는데 그래도 가끔씩 들어오는 전자책 적립금의 혜택을 외면할 수가 없다. 뭐라도 사야 할 것 같은 이 마음!!게다가 30명 추첨, 50명 추첨 이런 식으로 주는 추첨 적립금도 은근히 당첨 확률이 높아서 하나도 안 빼놓고 계속 응모 하다보면 적립금을 계속 건질 수 있다. 이거 완전 마약이다. 적립금의 마약에서 벗어나려고 핸드폰에서 알라딘 어플 알림 꺼놓은 적도 있었는데 딱 한 달 갔다. 그 후에 알림 다시 켜고 또 적립금 모으는 중이다...하 그나마 종이책으로 안 사니까 안 쌓인다는 게 위안이기는 한데, 안 보여서 더 사는 것 같기도 해서 뭐가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세상에는 똑같은 책을 알면서도 두 번씩 사는 바보가 있다. 전자책 시장이 커져서 모든 책이 전자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알면서도 또 살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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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읽는가 - 서울대 교양강의 ‘동서양 명작 읽기’
서영채 지음 / 나무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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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갈 때마다 새로 들어온 책 코너를 꼭 구경하는데 거기서 이 책을 발견했다. 예쁜 초록색 표지가 눈길을 끄는 새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새 책을 읽는 경험은 흔치 않기에 냉큼 빌려왔다. 


이 책은 서울대 교양강의 '동서양 고전 읽기'를 정리한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 마담 보바리, 호밀 밭의 파수꾼 등등 유명한 고전을 다루고 있다. 학생들이 해당 주차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면 이 책의 저자인 교수가 그 독후감을 읽고 의견을 나누면서 강의가 시작된다. 교양 강의라고 해서 간단한 내용일 줄 알았는데 상징계, 상상계 이런 얘기도 나오고 아난케, 에로스 이런 단어도 등장한다. 문학 분석에 이미 익숙한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이 필요없겠으나 문학 읽기에 대해 깊이 공부해본 적이 없는 나한테는 딱 필요한 책이었다.


나는 그동안 비문학 위주의 독서를 해왔다. 소설을 읽더라도 스토리 라인이 단순한 책들만 읽었고 소위 말하는 고전이나 조금 난해한 소설들은 잘 읽지 못 했다. 문학 작품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비유들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작가가 말하지 않은 어떤 것들을 상상하는 힘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토니오 크뢰거』에 관한 부분이다.


「여러분의 글을 읽으며 의아했던 게 있어요.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토니오 크뢰거가 한스와 잉에를 만나잖아요? 두 사람이 커플이 되어 나와요. 그런데 그 둘은 주인공 토니오를 알아보지 못해요. 토니오는 두 사람을 바로 알아보는데, 그 둘은 토니오를 보고도 누군지 '모른다고? 이상하지 않았어요? 이 대목에 대해 이상하다고 쓴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이상했어요. 헤어진 지 너무 오래돼서 못 알아보나요? 토니오가 한스를 만난 것은 만 열네 살 때, 잉에를 만난 것은 만 열여섯 살 때, 그러니까 중· 고등학교 시절이에요. 현재 토니오의 나이는 서른 근처로 되어 있어요. 토니오가 고향을 떠난 지 불과 13년 만이에요.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못 알아봐요? 이상하지 않아요?」

네? 소설가가 두 사람이 토니오를 못 알아본다고 썼으면 못 알아본 거 아닌가요? 


그렇지만 저자는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소설가가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전부 다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소설 속에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이다. 숨겨진 것을 상상하라! 이렇게 간단한 진리를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그 이후로는 소설을 읽을 때마다 쓰여지지 않는 뭔가를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소설에서 남편이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과거 연인이었던 여성에 대해 구구절절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남편의 이야기가 끝난 후에 부인이 응접실로 들어오고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난다. 여기서 멈칫. 부인은 분명히 응접실 밖에 서서 남편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거기에 대해 쓰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소설에서는 어떤 여성이 다른 남성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남매 같은 사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남매 같은 사이라면서 그 남성이 집을 떠났을 때 그렇게 운다고? 하지만 그 여성은 독자들에게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소설의 끝에서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밝혀진다. 예전 같았으면 '깜놀, 대박' 이랬을 텐데 작가가 숨겨놓은 부분을 어느 정도 추측한 나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왜 읽는가>를 읽고 나서 문학 작품을 보는 눈이 크게 달라져서 요즘에는 책을 볼 때도, 영화를 볼 때도 '말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하고는 한다. 그런데 나한테 변화를 준 이 내용은 이 책의 내용 중 아주 지엽적인 부분에 속하고 실은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인상 깊었던 부분 위주로 정리를 해 본다.


▶ 존재론적 간극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도 허무함은 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이름을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솔로몬 왕조차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탄식할 정도였으니, 솔로몬 왕보다 더 대단할 수 없는 인간들이 느끼는 허무함은 오죽 하겠는가.


하지만 솔로몬 왕에게는 그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이 있었다. 바로 절대자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다. 근대 이전의 세계라는 것은 그런 시대를 뜻한다. 신이 인간을 위해 이 세계를 창조했고,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며 완벽한 원리에 따라 이 세계가 돌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존재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1609년,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한다. 망원경으로 본 우주는 완벽하지 않았고, 달 표면은 울퉁불퉁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진짜 세계'가 갑자기 눈 앞에 당도한 것이다. ​완벽하다고 믿어왔던 세계는 완벽하지 않았고,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작은 별일 뿐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신이 인간을 위해 이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뭐지? 나는 왜 존재하는 거지?


​이렇게 근대성에 눈을 뜬 인간들은, '그동안 세계라고 믿었던 것'과 '진짜 세계', '나라고 생각했던 자아'와 '진짜 자아' 사이에서 괴로워했다. 그것이 바로 존재론적 간극이다. 그것은 '진짜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말한다. 거기서부터 모든 불안이 생겨난다.


소설은 바로 이러한 존재론적 간극이 낳은 깊은 회의주의와 공허함을 다룬다. 흔히들 소설은 근대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신이 없어진 자리에 뭘 채워넣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사람들이 찾은 해답은 행복이다. 우리는 뭘 위해서 살아가는가? 행복을 위해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 아쉽게도 행복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다.


여기에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두 사람이 결투를 벌이고 이긴 자가 주인, 진 자가 노예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 상태는 영원할 수 없다. 주인 마음 속에서는 저 노예가 언젠가는 다시 싸움을 걸어올텐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생길 수 있다. 두려운 마음은 노예의 정신이다. 즉, 현실에서는 주인이지만 마음은 노예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노예의 마음 속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왜 저 인간은 주인이고 나는 노예여야 하지? 한 판 더 붙으면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들이받아, 말아?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자신이 우위라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노예라는 신분 제약에 묶여있다. 즉, 강인한 정신을 가졌지만 현실은 노예다.


저 위에 언급한 ​존재론적 간극은 '불안함'을 야기하고, 주인과 노예로 나누어진 자아는 '불행함'을 야기한다. 어째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내 마음 속에도 노예와 주인이 동시에 존재하고 그래서 때때로 불행함을 느낀다.


타자의 시선

소설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향해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다. 이때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때 등장하는 것이 '시선'이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를 보기 때문이다.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과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을 내제화해서 그 렌즈를 통해 나를 본다. 내 안에 들어와있는 타자의 시선, 그것이 언제나 문제가 된다.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날 문득 가슴 한구석이 시린 순간이 찾아온다.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맞나? 내 안에 있는 타자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순간이 찾아오면 인간은 흔들린다.


「사람은 누구나 배우라는 거죠. 사회적 배역을 수행하는 배우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유일한 관객으로 삼고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거예요. 진짜 관객은 내 마음속 깊이 들어와 있는 타자의 시선이죠. 자기가 배우라는 사실을 보통 때는 잊고 살다가 어느 순간 문득 깨닫곤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건 연기가 잘못됐기 때문이에요. 몰입에 문제가 생긴 거죠.」


이런 이야기들을 펼치다가 마지막에 '왜 읽는가, 무엇을 읽을까, 어떻게 읽을까'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 책이 두꺼운 이유가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 강의여서 반복하는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루는 내용이 방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 형식이라는 특성 때문에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작품을 모두 읽은 독자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거기에 나오는 걸 한 권도 안 읽는 나 같은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다가 이건 빌려 읽을 책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바로 알라딘에서 주문했다. 앞으로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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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아침에 일어나는 걸 늘 힘들어했다. 저혈압이라서 그렇다고 핑계를 대보기도 하지만 어쨌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이 익숙했던 거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면 개운하기는 하지만 하루를 도둑 맞은 것 같은 생각에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최근에 두 가지를 시작했다. 모닝페이지와 신문 구독.


모닝페이지는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45분 동안 손으로 세 쪽 일기를 쓰라는 것이다. 


2012년에 나온 첫 책은 아주 예전에 종이책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엄청 감명깊게 읽고 모닝페이지를 썼다. 그때는 손으로 쓰기가 싫었는지 컴퓨터로 썼다. 그때 쓴 한글 파일을 찾았는데 열려고 하니까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한다ㅋㅋㅋㅋㅋ핸드폰 번호 뒷자리부터 생년월일까지 다 넣어봤는데 안 열리더라. 나 도대체 무슨 숫자를 입력해놓은거지? 아무리 시도해도 열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그렇게 2012년에 쓴 모닝페이지는 날아갔다. 도대체 무슨 대단한 비밀이 있다고 비밀번호까지 걸어놓은 건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어쨌든 2012년에 낸 <아티스트 웨이> 이후로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티스트 웨이>, <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와 같은 책들이 더 출간됐다. 그 중에서 <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 전자도서관에 있길래 빌려봤는데 사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뭔지 알 것 같아서 속독하면서 넘어갔다. 어쨌든 모닝페이지를 쓰면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인생이 달라진다는 식의 이야기를 잘 믿지 않는 편이어서 그런 메시지에 혹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서 45분 동안 일기를 쓰자, 라는 구체적인 방법이 맘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할 일을 만들어두면 일찍 일어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작년 말(그래봤자 몇 주 전)부터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하루 딱 해보고서는 이거 나랑 아주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나는 손글씨 쓰는 걸 아주 좋아하고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기억력이 짧아서 기록을 안 해놓으면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 다 까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녁에 일기를 쓰려면 너무 귀찮고 피곤해서 내일 쓰지 뭐, 하면서 건너뛰기 일쑤였다. 그런데 모닝페이지를 쓰니까 전날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니까 저녁에 써야할 일기를 다음날 아침에 쓰는 것이다. 모닝페이지를 쓰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를텐데, 나는 무조건 전날 뭐 했는지 쓰면서 시작한다. 모닝페이지를 쓰니까 그날 있었던 일을 당일에 기록하지 않고 잠들면서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내일 일어나서 쓰면 되니까 굳이 밤에 피곤하게 일기를 쓸 필요가 없다. 예술가들은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영감을 찾을 것이고, 고민이 많은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을텐데, 기억력이 짧은 나 같은 사람은 전날 있었던 일을 소 여물 먹듯이 되새김질 하면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모닝페이지를 쓰고 나면 바로 나가서 동네를 산책한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다. 해가 뜨고 나면 선크림을 바르고 나가야 하는데 그게 귀찮아서 보통 집밖에 나가는 건 해 뜨기 전과 해 지고 난 후다. 예전에는 해 지고 나서 밤 9시, 10시에 걷기 운동을 했는데 모닝페이지를 쓰면서부터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어서 해 뜨기 전에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거창한 건 아니고 30분 정도 걷는데 걸음수 3500보 정도가 찍힌다. 그렇게 아침에 걸음수를 저축해놓고 시작하면 이자가 붙듯이 걸음수가 차곡차곡 쌓여서 저녁에는 7000보 정도로 마감을 할 수 있다.


걷기 운동 하고 돌아오면 신문을 읽는다. 당연히 종이 신문이 아니고 디지털 신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들 보는 경제 신문 하나를 돈 주고 구독하고 있다.(중고나라에서 1년 구독권 사서 그나마 저렴하게 구독 중이다.) 그 신문사에 내 돈 보태주는 거 너무 싫었는데, 제대로 된 디지털 신문 구독 서비스가 그 신문사밖에 없는 것 같아서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했다. 그거 다 보고 나면 네이버 컨텐츠에 들어가서 다른 신문사들 기사도 두루 살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다면 경제 신문 거기도 굳이 구독하지 말고 네이버에서 봐도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이게 내 돈 주고 보는 거랑 공짜로 보는 게 확실히 다르다. 정말 다르다. 돈 주고 보는 신문은 확실히 집중해서 보게 된다. 너무 피곤해서 가끔씩 안 보고 지나갈 때도 있는데 돈 낸 게 아까워서 금방 다시 돌아오게 된다. 반면 네이버에서 공짜로 보는 뉴스들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하는 기분이다. 구속력이 없다. 이래서 뭔가를 제대로 하려면 일단 돈부터 들이라는 조언이 생겼나보다. 솔직히 책도 돈 내고 보는 게 훨씬 재미있다. 구독 서비스나 전자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책들은 재미가 80%밖에 되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보관함에 있는 모든 책을 샀다가는 파산하고 말 것이기에 오늘도 책 구입과 대여 사이에서 갈팡질팡 줄다리기를 한다.


신문까지 다 보고 나면 확실하게 정해놓은 아침 루틴은 끝난다. 그 다음에 하는 일은 매일 다른데 그래도 요즘에는 하루 30분에서 1시간 정도를 투자해서 영어 단어를 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영어 원서를 너무너무 읽고 싶은데 단어가 발목을 잡는다.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왜 이렇게 많은건지 이해가 안 된다. 그래도 꾸역꾸역 단어 찾아가면서 읽었는데 어느새 네이버 영어사전 단어장에 미암기 단어가 1000개가 쌓였다ㅋㅋㅋㅋㅋㅋ그래서 지금은 원서 읽는 걸 중단하고 영어 단어 뽀개기에 집중하고 있다. 미암기 단어 1000개 다 외우고 나서 다시 원서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런데 하루에 아무리 외워도 50개 이상 외워지지가 않는다. 이것도 외우는 게 아니라 뇌 표면에 잠시 얹어두는 것이다. 다음 날 일어나면 또 까먹고 또 외운다.


지금 읽고 있는 원서는 두 권. <기묘한 나라의 여행기>로 번역된 <Don't Go There>, <경험 수집가의 여행>으로 번역된 <Far and Away>다. <Far and Away>가 압도적으로 어렵다. 원서읽기 초급자가 도전할 레벨이 아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책을 골라서 셀프 고통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보통 영어원서 초급자들에게 추천하는 쉽고 말랑말랑한 책들은 도무지 내 취향이 아니다. 영어 원서든 뭐든간에 어쨌든 책이라서 취향이 맞아야 읽는다. 나도 청소년 필독도서 읽으면서 단계별로 실력을 늘리고 싶은데 성격상 그게 안 된다. 못 읽어도 좋으니까 재미있어 보이는 거 읽고 싶어서 사서 고통이다. 이거 다 읽고 나면 <In Cold Blood> 원서로 읽고 싶다. 그거 다 읽고 나면 이언 매큐언 소설. 도대체 내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를 의지라고는 0.1그램도 없다.


이렇게 거창하게 써놨는데 모닝 루틴 시작한지 얼마 안 됐다. 적어도 반 년 이상 지속하면 루틴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 솔직히 신문? 안 읽어도 되고, 운동? 저녁에 해도 되는데, 모닝페이지만은 꾸준하게 쓰고 싶다. 두툼하게 쌓인 일기장 보면 올해 연말에 뿌듯할 것 같다. 연초부터 연말을 생각하면서 올 한 해 동안 뭘 해야 행복한 연말을 맞이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확실한 건 모닝페이지와 독서. 그 중에서도 영어 원서. 저작권 만료되어서 인터넷 상에 무료로 풀린 고전 영미권 소설들 원서로 읽는 게 꿈이다. 연말에 이 페이퍼 다시 보면서 2024년을 점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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