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서교동에서 죽다 GD 시리즈
고영범 지음, 리덕수 그림 / 알마 출판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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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읽는 즐거움을 거의 모르고 살았다.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달까. 그런데 얼마 전에 카렐 카페크가 쓴 <로봇>이라는 희곡을 우연히 읽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인물들의 대사로만 이야기가 진행이 되니까 몰입도가 높았다. 그래서 다른 희곡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알마 출판사의 GD시리즈가 생각이 났다. 민음사 유튜브에서 어떤 편집자님이 GD시리즈로 나온 책을 소개해줘서 기억에 남아있었다.(이때 소개된 책은 <소프루>였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살펴보다가 <서교동에서 죽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주인공은 현재 59세인 '진영'이다. 미국에서 지내다가 누나 때문에 잠깐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누나는 암에 걸려 항암 치료 중이다. 누나인 '진희'는 '진영'을 보자 이렇게 부탁한다. 자신의 딸인 '도연'을 만나서 글 같은 거 때려치우고 정신을 차리도록 설득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 '도연'은 사범대를 졸업하고 나서 임용고시를 보지 않고 대학에 다시 들어갔다. '도연'의 전공은 그 이름도 거창한 디지털서사콘텐츠창작학과. '도연'은 편의점에서 일을 하면서도 짬을 내어 글을 쓴다.


엄마인 '진희'의 눈에는 자신의 딸이 임용고시도 보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이 인생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진희'뿐 아니라 '진영' 역시 처음에는 '도연'에게 그거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한다. 누나인 '진희'의 부탁도 있었겠지만 '진영'의 눈에도 멀쩡하게 사범대학까지 나와놓고는 선생님을 하지 않고 글을 쓰겠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도연 : 그럼 삼촌 생각엔 제가 뭘 해야 돼요?  // 진영 : 그 디지털창조학과인지 뭔지 당장 때려치우고, 미국 올 생각도 하지 말고, 임용고시 준비해야지.  // 도연 : 그럼 사는 게 나아져요?  // 진영 : 그거랑은 별개의 문제지  //도연 : 예?  // 진영 : 내가 지금 얘기한 건 생계 대책의 문제고, 네가 말하는 건 삶의 의미의 문제잖아. 하나는 야구고, 하나는 축구야. 룰이 달라.】


그런데 그런 '진영'도 글을 쓴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어떠한 장면이 계속 떠오르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한다.


【도연 : 뭐 쓰세요?  //진영 : 비행기 타고 오는데, 앞줄이 텅 비었더라고. 그걸 둘러싼 몇 사람의 신경전과 허탈한 결말...아무것도 아닌데, 자꾸 그 장면이 떠오르네. 그래서 써서 없애려고.】


이것이야말로 '도연'이 글을 쓰려고 했던 이유다. '도연' 역시 계속해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기에 그것을 최대한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왜 써야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할수는 없기에 '도연'과 '진영'은 모두 글을 쓴다. 그리고 내가 리뷰를 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나는 읽은 모든 책을 리뷰로 남기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쓰지도 않는다. 한 책 끝내고 다른 책을 읽다가 전에 읽은 책이 계속 머리에 떠다니면 리뷰로 쓰는 편이다. 그래서 '진영'이 말한 '써서 없애려고 글을 쓴다'는 말이 굉장히 공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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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는 자신의 딸이 하라는 선생님은 안 하고 디지털무슨창작학과를 다니는 바람에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딸 때문이 아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느라 고등학교도 못 간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고 억울해서 병이 난 것이다. 이루지 못 했던 자신의 욕망을 죄다 딸에게 투사했는데 그런 딸마저,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대학도 나오고 더이상 남부러울 것이 없는 처지인데도, 사회가 정의하는 성공을 거머쥐지 못하자 딸에게 분노를 쏟아 낸다. 내가 봤을 때, 등장인물 중에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은 바로 '진희'다. 그녀는 가슴 속에 맺힌 울분을 어떻게든 풀어냈어야 했다. 


1974년, 이들 남매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가 망하고 이들은 서교동을 떠나 도망치듯이 화곡동으로 이사를 간다. 거기에서 이들 남매의 어머니는 과일 가게를 하나 맡았다. 어머니는 하루종일 밖에서 일을 하고 아버지는 쓰러져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 하고 있으니 나머지 모든 집안 일은 남매들의 차지였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식구들의 간병을 해야했기에 '진희'가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어머니의 과일 가게를 온전히 떠맡았다.


이래서 희곡이든 소설이든 한국 문학을 잘 읽지 못하는 편이다. 외국 문학은 나와 일정한 거리감이 있어서 그렇게 아프지 않다. 아프긴 아픈데 그래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나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문학은 읽을 때 너무 힘들다. 이 희곡은 현재와 1970년대를 오가는데 그게 우리 엄마, 이모,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아서 쉽사리 책장이 넘어가지를 않는다. 문학이 다루는 대상과 나의 거리가 너무 가까울 때 그것은 감상이 아니라 체험이 된다. 그래서 괴롭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희' 때문에 괴로웠고 '도연' 때문에 괴로웠고 1970년대를 살아갔던 그 시절 사람들의 어려움 때문에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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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남매의 어머니는 기억이 오락가락 하신다. 그래서 '도연'을 보고도 다른 자식들의 이름을 불러댄다. '도연'은 그때마다 상황에 맞춰서 연기를 해주는데 어느 날은 자신의 엄마인 '진희'의 입장에서 연기를 해야만 했다. '도연'이 자신의 엄마가 되어, 외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너무 슬펐다. 도연은 자신의 엄마를 연기하면서 어느새 엄마의 삶을 이해했다. 마음 속으로 공감하는 그런 거 말고, 진짜로 그 사람이 되어서 말을 해보면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구나. 자신을 그렇게 구박하던 엄마인데도 '도연'은 '진희'의 삶을 변론하고 있었다.


'도연'이라는 캐릭터를 보며 배운 것 하나가 있다면, 자신의 삶을 위로하려면 글을 써야 하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말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글 쓰기는 기본적으로 내 감정과 거리두기를 하는 행위이고, 타인의 삶을 연기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굉장히 가까워지는 행위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너무 가까이 들러붙어 있기 때문에 타인의 삶과 자연적으로 멀어지게 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글 쓰기를 통해 나 자신과는 거리를 두고 타인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가 정말정말 싫어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을 한다는 건...혀를 깨물고 싶을 정도로 싫다ㅠ그 사람의 입장에서 연기까지 했다가는 정말로 그 사람을 이해해버릴까봐 너무 싫다. '이해해야 해, 하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아'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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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희곡의 제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남매는 서교동에 살다가 화곡동으로 이사 왔는데 서교동에서 죽은 건 누구였을까. 희곡 안에 이에 대한 힌트가 있다. 그래서 제목을 생각할수록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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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티파니에서 아침을 트루먼 커포티 선집 3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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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 보고 소설부터 봤는데 너무 좋았다. 홀리 고라이틀리라는 인물은 커포티의 문장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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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티파니에서 아침을 트루먼 커포티 선집 3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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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커포티 선집의 세 번째 책이다. 앞선 두 책에 비해 확연하게 대중적인 색채가 묻어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커포티의 소설보다 동명의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나조차도, 검은 드레스를 입은 오드리 헵번의 모습이 눈 앞에 촤라락 펼쳐질 정도이니 얼마나 유명한 영화였는지 알 법하다. 오히려 이 영화가 원작 소설이 있으며, 작가가 <인 콜드 블러드>의 트루먼 커포티라는 걸 알고서 놀랐을 정도였다. <인 콜드 블러드>와 <티파니에서 아침을>...? 잘 매칭이 되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주인공은 십여 년 전 홀리 골라이틀리라는 여인을 알고 지냈다. 그녀와 연락이 끊긴지 오래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그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커포티의 인물 묘사이다. 주인공 ‘나’가 홀리를 처음 봤을 때 나오는 이런 문장들이 너무 좋다.


【여름에 가까운 따뜻한 저녁이었고, 여자는 날씬하고 시원한 검은 드레스에 검은 샌들을 신었으며, 진주 초커를 걸고 있었다. 세련되게 마른 몸매였지만 아침 식사용 시리얼처럼 건강하고 비누와 레몬처럼 청결한 분위기를 풍겼으며, 거친 분홍빛이 뺨을 짙게 물들였다. 커다란 입에 위로 들린 코. 검은 선글라스가 눈을 가렸다. 유아기를 넘어선 얼굴이었지만 아직 어른 여성의 이편으로 넘어왔다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여자가 열여섯에서 서른 사이 어디쯤이리라고 짐작했다.】


시리얼처럼 건강하고, 비누와 레몬처럼 청결한 분위기를 가졌다니. 영화에서는 오드리 헵번이 홀리를 연기했지만 소설 속 홀리는 오드리 헵번과는 약간 이미지가 다르다. 내 상상 속 홀리는 좀더 야생마 느낌이다.


【여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뒤에 따라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여자의 엉덩이를 움켜쥔 통통한 손은 약간 부적절해 보였다. 도덕적인 면이 아니라, 미적인 면에서. 그는 키가 작고 몸통이 거대했으며 햇볕에 탔고 포마드를 발랐다. 몸을 감싼 핀스트라이프 정장 옷깃에 꽃은 카네이션은 시들시들했다.】


홀리의 엉덩이에 어떤 남자가 손을 얹는 것을 보고서 도덕적인 면이 아니라 미적인 면에서 부적절해 보였다는 문장 보고 빵 터졌다ㅋㅋㅋㅋㅋ. 주인공은 홀리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닐까 헷갈리는 부분들이 많다. 여러가지 정황을 봤을 때 홀리를 여자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홀리를 보지 못하는 나날 동안 분개심까지 느꼈다는 걸 보니 도대체 홀리라는 사람의 매력이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하루하루 지나면서는 그녀에게 어떤 얼토당토않은 분개심까지 느꼈다. 절친한 친구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심란한 외로움이 내 삶에 들어왔지만 더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제 그들은 소금도 없고, 설탕도 치지 않은 음식처럼 맹맹하게 느껴졌다. 수요일쯤 되자 홀리에 대한 생각, 싱싱 교도소와 샐리 토마토, 화장실 갔다 오라고 남자들이 50달러를 찔러주는 세계에 대한 생각이 계속 달라붙어 일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소설을 읽다가 또 빵 터진 부분이 있다. 주인공 ‘나’의 직업은 소설가인데 이제 막 잡지에 소설을 싣기 시작한 단계다. 홀리는 헐리우드에서 스타 대리인으로 일하는 오제이 버먼과도 인연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나’의 소설을 보냈다. 그 소설을 받아본 오제이는 ‘길을 잘못 들었다’면서 ‘흑인과 아이들 이야기라니, 그걸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평한다. 홀리 역시 이렇게 덧붙인다.


【"뭐, 나도 그 사람 생각이랑 같아요. 그 소설 두 번 읽어봤는데. 짜증 나는 애들이랑 흑인이랑. 떨리는 이파리. 게다가 묘사뿐이고. 아무 의미도 없잖아요"】


이 대사를 보자마다 트루먼 커포티의 초기 소설인 <다른 목소리, 다른 방>이 떠올라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짜증 나는 애들'은 조엘과 아이다벨, '흑인'은 미주리 피버, 게다가 '떨리는 이파리'까지.(그 소설에는 자연 묘사가 엄청 많이 나온다.) 커포티가 자신의 전작을 의식하고 쓴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래서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인 소설을 좋아한다. 주인공의 삶에 작가 자신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머싯 몸이 쓴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도 재미있게 읽었다. 여기서는 주인공이 작가이자 스파이다. 


다시 커포티의 책으로 돌아와서, 홀리는 자기 자신을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소위 말하는 방랑벽과 역마살의 끝판왕인 캐릭터다.


【"하늘을 바라보는 편이 하늘에 사는 것보다는 더 좋답니다. 무척 공허한 곳이에요. 무척 흐릿하고. 천둥이 치면 다들 사라지는 그런 나라일 뿐이야."】


방랑벽이라는 것은 참 묘해서, 어떤 장소에도 정착하지 못할 뿐더러 어떤 사람에게도 쉽사리 정착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홀리도 그것을 깨닫고 하늘에 사는 것은 무척 공허하다고 말한다. 홀리가 처음 만나는 '나'에게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도 전부 공허함 때문일까. 겁이 없고 당찬 캐릭터인데도 이런 쓸쓸한 면모까지 있어서 홀리가 더욱 매력적인 인물이 된 것 같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티빙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오드리 헵번이 티파니 진열장을 바라다보며 시작하는 그 유명한 영화. 그런데 확실히 소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영화는 홀리의 장면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홀리의 시점에 이입하여 보게 된다. 그래서 홀리가 쉴새없이 말을 쏟아내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저 캐릭터는 왜 저러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나’의 일인칭 시점이라 어차피 홀리를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전제로 깔고 들어가서 그런지 '홀리는 왜 저럴까'와 같은 생각은 아예 들지 않았다. 홀리를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커포티의 유려한 문장까지 더해지니 더욱 좋았다.


책 맨 뒤에 실린 옮긴이 해설을 보면 커포티가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트루먼 커포티 선집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정성스러운 옮긴이 해설이 있다는 것이다. 소설 뒤에 해설이 있으면 꼭 챙겨 보는 편인데 어떤 해설은 작품에 대한 애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청탁 받았으니까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시리즈에 실린 옮긴이 해설에서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그런 게 참 좋았다. 


【우리가 이 세속적인 도시에서 살아야만 한다면 물질적인 욕망이 순수하게 종교적이 되는 순간이 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그런 속물성까지도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도시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안내서, 기도서 같은 책이다. 모두 홀리 골라이틀리와 함께 언제나 여행 중이지만, 언젠가는 환한 창가의 고양이처럼 자기 자리를 찾기를 바라며.(옮긴이 해설)】


캬, 해설도 문학적이다. 


이 책을 다 읽었으니 이제 다음 책인 <인 콜드 블러드>로 넘어가야 한다. <인 콜드 블러드>는 몇 년 전에 이미 읽었던터라 건너뛸까 말까 고민이 들기는 했지만, 워낙 좋아하는 책이니 이참에 재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커포티를 알게된 것도 <인 콜드 블러드> 덕분이었으니까 말이다. 트루먼 커포티 선집 읽기는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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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의 <화성과 나>를 읽었다. 얼마 전에 <타워>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것도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역시나 좋았다. 


<화성과 나>는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매우 독특하다. 먼 미래에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아보고 싶다는 연구 의뢰를 받고 화성 연구에 착수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 의뢰는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의뢰자인 외교부 공무원이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되면서 공식적인 연구 자체는 거기서 끝이 난 듯 하다. 하지만 연구 보고서를 본 과학자들이 강의 요청이 해왔고 그렇게 해서 계속해서 화성 이주에 대한 연구자로서의 호기심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우리나라 정부 기관이 화성 이주에 관한 연구를 의뢰한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걸 SF소설가에게 의뢰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물론 외교학으로 석사까지 마친 소설가여서 그런 연구 의뢰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 안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붉은 행성의 방식>과 <위대한 밥도둑>이다. <붉은 행성의 방식>은 화성에서 벌어진 첫 번째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화성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라니, 말만 들어도 재미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살인사건 자체에 대해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살인사건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지구의 법을 따를 것인가 화성만의 법을 만들 것인가, 이런 논의들이 주를 이룬다.


화성에는 정치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논의할 사람이 별로 없다. 사람들은 정치인이 화성에 가면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조종사, 엔지니어, 의사, 생물학자와 같이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과학자 및 공학자 집단들이 주로 이주 초기에 화성으로 왔다. 하아...이래서 '문송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지구가 망하고 화성으로 가게 된다면 그 우주선에 날 태워달라고 설득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웬만한 기술로도 안 되고(미용사도 안 태워준다) 인간의 삶에 획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술이 하루아침에 나한테 뚝딱 생길리가 없다. 망해가는 지구에서 행복하게 사는 수밖에.


아무튼 화성에 몇 없는(아마도 유일한?) 정치인인 '희나'는 화성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해 '상식적으로 처리하자'는 과학자들의 말을 듣고 열이 받아 버린다. 상식적으로 처리하는 게 도대체 뭔데?! 그들은 모든 걸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인 희나의 입장에서는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화성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어떤 법을 따라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정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계기였다.


【"어느 상식?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할까? 거주지 내규가 벌거벗겨서 곤장을 치는 거면 받아들일래? 설마 군법을 말하는 건 아니지? 에이, 설마. 그래도 민간 형법이 낫겠지? 그럼 어느 나라 법으로 할까? 당신 나라 법, 아니면 우리 나라 법? 피살자 출신지 법으로 해. 아니면 피의자 출신지로 해? 그런데 이 법들은 관할 지역이 전부 지구 대기권 안이지? 피의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어떻게 할래? 판단은 누가 하지? 지구 법정에 원격으로 세울까? 화성에 변호사는 한 명도 없으니까 지구 변호사를 선임하게 할 거지? 단심제로 해, 아니면 삼심제로 해? 항소 기간에 피의자는 어디에 머물러? 집행은? 형이 정해지면 해당 거주지 구성원들이 직접 집행하게 해? 살인이니 똑같이 사형시켜? 30년 형쯤 나오면 어디에 수감해? 전문 교도관을 화성으로 보내나? 감옥은 새로 하나 짓고? 아니면 우주선 태워서 지구로 보낼래? 그러다 중간에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지지? 이송 비용은 누가 부담해? 이송 기간은 수감 기간으로 계산하나? 화성 거주 기간 전부를 수감 기간으로 쳐달라고 주장하면 어쩌지?"】


화성은 완전히 다른 행성이고 다른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다. 화성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도망가지 못한다. 지구라면 그야말로 '지구끝까지'라도 도망갈텐데 화성에서는 갈 곳이 없다.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역은 (비유적으로)한뼘 정도의 공간밖에 되지 않기에 도망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역설적으로 보면, 도망치지도 못 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구인의 시각에서는 도저히 예측하기가 어렵다. 배명훈 작가는 이 소설에서 '희나'의 예측보다는 좀더 늦게 살인사건이 발생했다고 쓰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화성에 이주하자마자 살인이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붉은 행성의 방식>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단편이라서 아쉽다. 도대체 범인은 왜 피해자를 살해했는지(물론 책 안에 이유가 나오기는 하는데 그것 말고 좀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 그런 일을 저지르고 나서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화성에서 벌어진 첫 번째 살인 사건 소식을 듣고 나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어떠한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 등등 알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이래서 단편소설집은 너무 좋아도 막 심각하게 좋아지지는 않는 것 같다. 궁금한 게 많은데 풀리질 않아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 다음으로 좋았던 건 <위대한 밥도둑>이다. 뭔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평생토록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 그는 화성에 이주해서도 별로 힘들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이거 먹고 싶다, 저거 먹고 싶다'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평생 뭔가를 먹고 싶어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어느 순간 지구의 어떤 음식을 강렬하게 갈망하게 되는데.......그후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위대한 밥도둑>은 플롯이나 주제보다도, 주인공이 자신이 먹고싶어하는 음식을 설명하는 그 대사가 너무 좋았다. 이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어 나간다면, 외국인들이 저 부분을 보고 당장 저 위대한 밥도둑을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한 번 반성했다. 끼니마다 '오늘 뭐 먹지' 고민하는 것도 귀찮고 나를 위해서건 누구를 위해서건 요리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한동안 포만감 느껴지는 알약 개발을 강력하게 원한다고 떠들고 다닌 적이 있었다. 하지만 화성으로 이주할지도 모르는 미래 인류를 생각한다면, 내가 한 말은 그야말로 있는 자의 배부른 소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화성으로 보내져서 맨날천날 아무 맛도 없지만 생명은 유지하게 해주는 식량들을 먹으면서 살다보면 뭐 먹을지 고민하면서 사는 지구에서의 삶이 얼마나 좋았는지 뼈저리게 반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얼마 전에 봤던 영화 <다운사이징>이 떠올랐다. 어떤 과학자가 생명체의 몸을 아주아주 작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 그 과학자는 인간의 몸을 아주아주 작게 만들어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거기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다운사이징 수술을 받는다. 사람의 몸이 작아지니까 환경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몸이 작아졌으니까 한달 식비도 엄청나게 줄어들고, 당연히 엄청나게 작은 집에서 살아도 되니까 집세 걱정도 완전히 사라진다.(작은 집이라고 해도 다운사이징한 사람들에게는 대궐 같은 집이다.) 다운사이징 수술은 지구의 환경 문제와 개인의 경제적인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해결책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사회에서 다운사이징 수술을 받은 사람은 5%에 불과하다. 집 문제, 돈 문제 한꺼번에 해결이 되는데도 그 수술을 선뜻 받겠다고 결정한 사람들이 극극극소수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대궐 같은 집에서 살게 해준다고 해도, 너무나도 작고 연약한 존재가 되는 것에 겁을 먹는다. 게다가 원래 크기의 인간들은 다운사이징 수술을 한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렇게 작아지는 수술을 받고 세금도 덜 낼 거라면 투표권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을 한다. 영화에서는 깊게 다루지 않지만 다운사이징 인류와 非다운사이징 인류의 갈등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화성과 나>에서도 지구에 사는 사람과 화성으로 이주해온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미묘한 알력 다툼이 등장한다. 지구에서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낼 때마다 매번 더 힘 있는 사람을 보내서 화성에 대한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화성으로 온 권력자들은 처음에는 화성 사람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다음 번 우주선이 올 쯤이 되면 갑자기 화성 친화적으로 바뀐다. 그 우주선에는 자신보다 더 권력이 센 사람이 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힘 있는 지구인에게 지지 않으려면 화성인들끼리 대동단결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운사이징 수술이든, 화성으로의 이주든, 결국은 인간 집단 간의 갈등이 문제다. 인간이 '화성'에 가서 산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이 화성에 가서 산다는 것이 중요하다. 화성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인간에 방점이 찍히게 된다. 기후 문제로 인해 인류의 앞날이 계속해서 힘들어질 거라는 우울한 전망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요즘, 화성으로 가거나 다운사이징 수술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과연 선뜻 나설 수 있을까. 이런 소설을 보고 이런 영화를 볼수록 쉽사리 답하기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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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뱀이 깨어나는 마을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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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캐릭터가 사람과 접촉하는 걸 싫어하면서도 또 이웃이 부르면 달려가고, 굉장히 용기있다가도 또 급소심해지는 성격인데 그게 엄청 매력적이었다. 꽤 두꺼운 책인데, 클래라를 응원하면서 끝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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