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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 - 상
지영 지음 / 아름다운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네버엔딩스토리 에서 활약하시는 프레야님의 '렌'이 책으로 나왔다. 조급증으로 말미암아, 연재하는 소설은 읽지 않기 때문에 어떤 내용인지는 전혀 모르고 책을 샀다. 다만, 많은 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라 어느 정도는 기대를 했었고, 역시나 그 기대는 충족되었다..^^*
때는 조선 선조 30년,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이다. 양반집 자제였던 여주인공 설연은 11살의 나이로 어머니와 함께, 퇴각하는 왜인들의 포로가 되어 왜국으로 끌려간다. 낯선 땅 왜국에서 천민으로 살아가는 조선 백성들의 삶은 짐작할 수 있다시피 비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설연은 조선에서 도움을 주었던 왜인을 만나 천민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되고..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의 양녀가 된다. 하나, 그녀의 운명은 그리 평탄치 않아, 결국 세력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미인계의 목적으로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
읽으면서 처음에는 새로운 용어와 생소한 지명과 낯선 인물들 때문에 조금은 버거웠다. 아래쪽에 각주를 달아놓았지만, 한번 본다고 외워지는 것도 아니고, 자꾸만 각주를 봐야 하니 흐름이 끊기기도 하고...
예를 들어, 에타 - 주로 강가에 살며 마소의 도촉업이나 청소를 담당하던 천민. 갖바치나 백정과 유사 ;; 히닌 - 에도 시대 사형장에서 잡역에 종사하던 사람. 시체 처리를 도맡아 함 ; ; 동자치 - 동자아치의 준말. 남의 집에서 부엌일을 하는 여자. 식모 ;; 토노 - 영주. 귀인에 대한 높임 말 등등...
게다가 워낙에 일본식 이름 외우는데 소질이 없는 나는 도쿠가와 가문의 누구, 도요토미 가문의 누구등 비슷하게 자꾸 등장하는 이름들이 너무나도 헷갈렸다. 다 읽고난 지금도 두 주인공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어렴풋이 밖에 파악하지 못했음이 안타깝다. -.- 연표로라도 정리를 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렌.. 설연의 일본식 이름이다. 기타카와가에 미인계로 바쳐진 렌은 사실 미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고고함과 단아함.. 뛰어난 총명함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매력이었다. 여자에 대해서라면 질렸다고 자부하던 기타카와가의 영주 류타카도 이런 렌의 매력에 속수무책이었다.
렌은 말없이 소맷자락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그러자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살며시 고개를 흔들며 옷소매로 이마를 대충 문질렀다. 그녀가 이상한 듯 쳐다보자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손수건에서 나는 네 향이 없어질까 그런다."
그리고는 그녀에게서 손수건을 받아 마치 귀한 것을 간직하듯 품안에 집어넣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평범할 수가 없다. 포로가 되어 같이 끌려온 사촌오라비를 위해 왜국 영주의 측실이 되었지만, 조선을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어이할까! 또한, 조선인 포로들의 비웃음과, 순결을 목숨보다 중요시하던 당시의 상황은 렌에게는 고통이다. 항상 떠날것만 같은 렌을 바라보는 류타카의 심정도 괴롭다. 정략결혼으로 여러번의 결혼을 하였던 류타카가 처음으로 마음을 준 사람.. 그는 닿지 않는 사랑에 가슴 아파한다.
"왜 하필 왜놈이냐? 차라리 양민이라도 조선인 사내를 만나지, 어째서 그놈이야?"
사납게 힐난하는 오라비의 외침에 그녀는 쓰라린 어조로 되물었다.
"죄입니까? 그를 마음에 품은 것이 그리도 큰 죄인가요?"
"죄다. 나라를 팔고, 가문을 욕되게 한 죄다. 부모를 버리고 형제를 부정한 죄란 말이다!"
"허면, 그 죄...... 나중에 제가 죽어 받으면 안 될까요?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제가 가진 상처와 눈물을 가슴으로 받아 준 사내예요. 정이 많고 깊어 따스하고 온화한 사람입니다. "
렌이 왜국에서 고생하는 동안, 조선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렌과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장례가 진행이 된 것이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끌려간 사람을 찾을 생각은 않고 서둘러 죽었다고 처리해 버리는 무정함.. 왜국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이미 배에 태워진 순간 조선에서는 버려진 것이다. 렌이 그토록 마음 고생을 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나라의 모습이 서글프다...
어느 나라건 세력다툼은 있게 마련이고, 기타카와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암투와 배신으로 갖은 어려움을 겪은 두 주인공이 죽을뻔한 위기를 벗어나고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은 가슴을 짠~하게 한다.
로맨스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저한 해피엔딩을 바란다. 하지만, 렌의 결말은 뭐라고 해야 할까.. 결론에 대해 여러 말들이 있음을 알았기에, 결말을 읽을때는 가슴을 콩닥거리며 읽었다. 사실 두 주인공의 상황이 완전한 해피엔딩을 바라기에는 조금은 무리였다는걸 감안한다면 나는 어느 정도 만족한다. 물론 궁금하시다면 결말은 직접 읽으시기 바란다..^^
두 권을 숨죽이며 읽어 내려갔다. 뒤가 궁금해서 도저히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괜찮은 국내로설이 나와 너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