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11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결혼기념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요즘은 그다지 기념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생일도 무덤덤하게 그냥 지나가는 마당에 결혼 기념일이 대수이더냐!! 게다가 작년이 10주년이라 이런저런 행사를 치르고 지나갔기에 올해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한데, 몇주 전부터 남편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우리 올해는 서해안으로 한바퀴 돌까? 휴가도 하루 내서~"
"애들은?"
"처형네 맡기든지 데리고 가든지.. 네 맘대로~"
"글쎄...."
문제는.. 남편은 제안만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는 것은 모두 나다. 여행의 스케줄도 내가 정하고, 떠날 시간이나 숙박지를 정하는 것도 내가 한다. 물론 이런 패턴이 된 것은 내 탓이 크다. 세세한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남편과는 달리, 나는 세세한 것에 무지 신경을 쓰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가끔은 아무 생각없이 남이 결정해 주는 것을 따르고 싶을 때도 있다. 이번이 그런 때였던것 같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때까지도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있었다. 단지, 아산 스파비스나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한번 했을 뿐...
토요일 오전... 그냥 아산 스파비스를 가기로 결정했다. 애들도 데리고 가려고 했다. 애들이 오기까지 약간의 시간은 있었지만 마음이 급했다. 서둘러 인터넷으로 조사를 하고, 지도를 프린트하고, 짐을 쌌다. 물론, 남편은 그냥 구경만 했다..ㅡ.ㅡ
아아~ 서두르다가 프린트한 지도를 놓고왔다.. 두꺼운 전국지도도 안 챙겨왔다. 차 안에 상비하고 있던 얇은 지도 뿐이었다..-.-;;; 토요 휴무제가 실시된 후에 토요일 오후는 좀 덜 막힐 줄 알았더니.. 것도 아니었다..ㅡ.ㅜ 지도없이 어찌어찌 찾아간 아산 스파비스.. 결국 4시 넘어 도착했다.
그런들 어떠하리.. 늦게까지 놀지 뭐.!
캐러비안 베이를 갔을 때 그 큰 규모에 놀랐었고 재밌었다. 설악 한화콘도 내의 워터피아에 갔을 때, 규모가 좀 작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대로 놀만 했다. 아산 스파비스는? 아아~ 무지 작았다. 그냥 약간 큰 풀장 규모일 뿐... 실외온천을 즐겨보려고 했지만, 역시 애들과 같이 있으니 감기 걸릴까봐 오래 나가 있지를 못하고 자꾸 실내에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좋아 죽는다. 나랑 남편은 두 아이가 너무 설쳐대는 바람에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느라 지쳐버렸다.
근처에 깨끗한 모텔이 많았다. 숙박지는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외관을 가진 모텔로 정했다. 내부도 깨끗해서 말만 호텔인 곳보다야 훨 나았다. 숙박비 50000원.. 근데, 모텔은 다 이렇게 러브호텔 분위기를 내야 하는 걸까? 1층에는 에로틱해 보이는 비디오와 DVD가 잔뜩 있고(맘대로 빼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갈때는 키를 엘리베이터 내 바구니에 그냥 넣게 되어 있다. 그런것만 아니면 깨끗하고 (특히 화장실이 끝내주었다..*.*) 커피,녹차 주스도 공짜로 주고 비디오도 공짜고.. 좋았는데~
남편은 어찌어찌 애들 보기에 좋은 홍콩영화를 두 개 갖고 왔다. 소림사2 와 태극권2.. 이연걸이 나오는 소림사 2 라길래 기대하고 봤더니.. 유치뽕짝이다.. 세상에 이연걸이 그런 영화에도 출연하다니...!! 나는 소림사 2를 보고 태극권 2를 틀 때 잠들어버렸다. 애들은 그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단다.. 가지고 가자고 졸랐지만 모범시민인 우리는 반납하고 왔다.-.-
아이들 교육효과를 노리고 현충사와 아산방조제를 들렀다. 내 딴에는 열심히 설명한다고 했는데.. 과연 제대로 기억할 지는 의문이다.
올라오는 길은 국도를 탔다. 오면서 어찌나 후회했는지.. 지도도 안 갖고 간 주제에 국도를 타서 어쩌겠다는 말이냐고..!! 울 나라 도로 표지판.. 제대로 좀 갈아 엎어야 한다.. 작은 지도를 가지고 길 찾으려니 얼마나 신경이 곤두서든지..ㅜ.ㅠ 하여간 오긴 왔다.
결혼기념일 여행이라고 갔지만, 어째 애들 중심여행이 되버렸다. 어쩔 수 없지..-.-;; 좀 더 크면 얘네들이 부모랑 여행 가기 싫다고 거부하겠지.. 그 때까진 줄기차게 붙어다녀 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