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등에서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호밀밭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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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위대했던 오스만 제국에도 어느덧 황혼이 내린다. 오랜 세월 유럽 국가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오스만 제국은 선대 정복 황제가 쌓은 영광과 호사에 취해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들불처럼 번진 산업혁명을 외면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다. 대항해 시대부터 유럽 열강이 전 지구를 식민지화 하기 시작한 건, 당시 오스만제국이 동남부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인도 서쪽에 이르는 방대하고 방대한 영토, 그것도 석유 생산지역 거의 전부를 지배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제 비로소 오스만과 비슷한 수준이 된 것 뿐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특별히 “과학의 세기”라고 불린 19세기가 되었건만 세계적 흐름에 전혀 눈을 돌리지 않은 결과는 참혹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하며 바야흐로 모든 질서가 뒤집혀버린 것을 오스만제국은 모르고 있던 거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과학이 돈을 위해 복무할 때 과학 스스로도 가장 빨리 발전하며, 적어도 20세기 중반까지 제일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전쟁이어서, 오랜 세월 동안 마음만 먹으면 적어도 오스트리아 빈까지는 우습게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자만에 취해 있던 오스만제국은, 이제 놀라운 군비를 갖춘 유럽 열강들이 보기에 식탁에 오를 준비가 된 암소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제국의 황제들이 몰랐을까? 몰랐을 것이다. 알기는 해도 실제 격차가 그렇게 많이 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1855년, 제32대 황제 압둘아지즈는 황태자와 두 조카와 함께 나폴레옹 3세의 초대에 응해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참석해 유럽 각국의 기계공학을 실제로 체험하고 경악을 했을 것이다. 박람회에 오스만제국이 자랑스럽게 출품한 품목이란 그저 카펫, 촛대, 실크 제품, 금은으로 수놓은 보자기, 기도용 깔개, 터키 커피와 긴 담뱃대 같은 기호품 수준이었으니. 만일 이런 차이를 알았다 하더라도, 복잡한 민족 구성과 이슬람과 쿠란의 계율 같은 것이 유럽의 과학, 기술을 오스만제국 안에서 개화할 기회를 만들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쥴퓌 리바넬리의 의견인 것처럼 읽힌다.


  유럽, 이 가운데서 열강이라 할 나라엔 이미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던 독재 공포정치가 오스만제국에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의 황제는 언제, 어디서, 누가 배반, 반역을 도모하고 있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았고, 배반자, 반역자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자기 외의 모든 신하, 지방 군벌, 백성, 심지어 친척과 자식들까지 의심하고, 사찰해 그들을 색출해 먼저 처단해야 했다. 그러나 오스만제국 황제로서는 처음으로 영토 밖에 나가 파리 만국박람회에 이어 영국까지 방문해 빅토리아 여왕을 만나고, 선진문물을 견학했으며, 시시각각 위협으로 접근해오는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협조를 요청하는 의의를 전한 압둘아지즈 황제도 1876년에 결국 신하들에 체포되어 두 손을 잘린 후 출혈과다로 죽음을 맞았다.

  이 정변을 주도한 장군들은 선황제인 31대 압둘메지드 1세의 큰아들이자 폐제 압둘아지즈의 장조카인 무라드 5세를 33대 황위에 올렸다. 유럽 신사 자체이며 빼어난 미남이었던 무라드 5세는 그러나 마음이 약해서 그랬는지, 삼촌이 양 손목이 잘려 죽는 것을 보고 정신줄을 놓아 불과 몇 달 만에 폐위되고, 무라드의 동생이자 <호랑이 등에서>의 주인공이자 오스만제국의 34대 황제인 압둘하미드 2세가 제위에 오르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한 미탓 장군은 청년 하미드에게 제위에 오르는 조건으로 영국과 비슷한 입헌군주제를 시행할 것을 약속하게 한다. 하미드 입장에서는 당연히 약속할 수밖에. 안 그러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칼 또는 비단 실뭉치 가운데 어떤 것이 될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즉위하자마자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발칸반도의 패권을 넘겨준 압둘하미드 2세는 헌법을 제정하기는 했으나 1877년 곧바로 이를 폐지하고 자신을 제위에 올려준 미탓 장군을 체포해, 죽이지는 않고, 저 멀리 타이프,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지역 한 원격지로 유배를 보내고, 그곳 수용소 소장이 알아서 목 졸라 죽이게 한다. 오스만제국에는 이미 황혼이 내린 상태. 1881년엔 제국의 영토인 튀니지가 프랑스에 점령당하고, 이집트는 영국 영향권에 드니 이때 구 오스만 식민지 사람들의 피폐상을 그린 작품이 레바논 사람 아민 말루프가 쓴 <타니오스의 바위>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길도 보이지 않는 제국의 끝 무렵에 황제에 오른 압둘하미드 2세는 1876년부터 무려 33년간 황제의 위를 지킨다. 특히 황제 암살과 쿠데타의 이력이 화려한 오스만제국 같은 나라에서 황제 자리에 있다는 건 호랑이 등을 타고 앉은 것과 같다, 라고 리바넬리는 말한다. 가장 용맹한 맹수의 등에 걸터앉아 세상을 호령하는 황제. 피와 살과 뼈를 분쇄하는 가공할 힘과 무기를 장착한 맹수의 근육을 다리 아래에 감각하면서도 아무리 피곤해도 절대 내려설 수 없는 자리. 등에서 내리는 순간 여태 타고 있던 맹수는 그 독한 송곳니를 사정없이 목덜미에 꽂을 것이라서. 이런 이치를 잘 이해하고 있던 압둘하미드 2세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리를 지켰고, 지키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의 희생만을 불렀을 뿐이지만, 다민족국가의 복잡한 신하, 의회, 장관의 행위를 모두 관여할 수 없었다. 책임도 오롯이 져야 했던 건 물론이다. 압둘하미드 2세 치하의 젊은 장교들은 황제를 “피를 토하게 만들고 숨을 틀어 막았던 잔인하고 흉포한 흡혈귀”라고 불렀으며, 프랑스 사람 알베르트 반달은 황제가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흐르게 만들었다고 별명을 “붉은 황제”라고 지어 신문 삽화에 게시했다. 이외에도 황제의 별명으로 피의 황제, 붉은 이교도, 아을드즈 궁전의 올빼미, 악마의 영혼 등 다양했다.

  테살로니키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청년 장교들이 중심이 된 연합진보위원회는 1908년에 혁명을 일으켜 헌법을 부활시키고, 1909년 4월 27일에 압둘하미드 2세의 이복동생인 메흐메디 5세에게 제위를 이양하게 만든다. 폐위의 사유는 “이슬람을 해쳤고, 무슬림이 무슬림을 죽게 했으며, 이슬람 율법서를 금지했다”고. 전 이슬람 세계의 칼리프이자 누구보다 독실한 이슬람 교도인 그에게.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4월 28일에 압둘하미드 2세는 큰 키에 사슴 같은 눈을 한 체르케스 출신 미녀들로 구성된 다섯 명의 아내와, 세 공주,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밤열차를 타고 혁명군의 근거지인 테살로니키의 옛 로빌론 장군의 숙소건물인 알라티니 저택에 감금되면서 장편소설 <호랑이 등에서>를 시작한다. 그렇다.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느라 오늘의 독후감 전부를 사용했다.

  나라고 튀르키예의 근대사에 관심이 있었겠는가? 앞에서 이야기한 아밀 말루프의 작품 <타니오스의 바위>를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아 뇌활동에 도움이 됐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망해가는 나라라도 오스만제국과 비교하기조차 부끄러운 조선이라는 나라의 고종이 읽는 내내 떠올랐다. 나라와 사직은 급속도로 몰락을 향해 달음박질하는데 뭔가 할 수 있는 기회도 없고, 신하들은 통제가 되지 않으며, 곳곳에서 배반을 도모하고 있는 지경.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행위는 그들이 했을지언정, 책임은 오직 한 명, 최고 통치자가 지어야 하는 것이니까.

  이 책, 재미있다. 그렇지만 수작 <세레나데>를 읽은 독자들은 쥴퓌 리바넬리를 판정하는 기준이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그것에 비견하거나 능가하지 못하는, 못하는 것처럼 읽히는 작품을 상찬하기는 힘들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기 전에 “쥴퓨 리반엘리”가 쓴 <살모사의 눈부심>을 먼저 읽는 게 도움이 될 듯하다. (아쉽게 아마 절판일 걸?) 오스만제국의 황위 세습과 이에 관련한 관습법, 하렘의 구성 같은 것을 이해하는데 특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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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26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네요. 세레나데 작가라고 해서 놀랐는데 살모사...를 먼저 읽으라고 하시니 산너머 산이네요. 더구나 살모사는 절판이라니 우주점엔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암튼 오늘도 친절한 조언 감사합니다 . ^^

Falstaff 2024-06-26 16:38   좋아요 1 | URL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팍팍 진도 나갑니다. 살모사는 저도 도서관에서 읽었습지요. 안 읽고 그냥 이 책 읽는다고 설마 사달이 나겠습니까? ㅋㅋㅋㅋ
 
호른의 죽음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김충남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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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토프 하인은 1944년에 지금은 폴란드 영토로 넘어간 접경지역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나 주로 라이프치히에서 활약한 소설가, 연극인 기타 등등 하여간 예술가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통일 독일의 통합 초대 펜클럽 회장을 지냈다고 위키피디아에 쓰여 있다. 표제에 이름을 올린 호른 씨도 라이프치히를 터전으로 하는 역사학 박사였으며, 화자 크루슈카츠 씨도 라이프치히 사람이다. 이렇게 작품 속에 흔적을 남기는 작가들이 많아 그들의 내력을 알고 읽는 것도 재미가 괜찮다.

  그러니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이전까지 하인은 동독 작가였다는 건데, 그래서 그런지 다른 동독 작가들 작품에서 자주 읽을 수 있는 불행한 일이 호른 씨에게도 들이닥친다. 독일 통일 이전부터 동독 사람들은 서독이 훨씬 더 잘 사는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하여간 갖가지 수단을 써서 서쪽으로 월경을 도모했다. 관광여권을 갖고 헝가리나 체코슬로바키아 등 같은 동구권 지역으로 갔다가 거기서 서독으로 넘어가는 장면은 자주 발견할 수 있고, 페터 슈나이더인가 누군가의 작품에서는 심지어 장대 높이뛰기 하는 식으로 겁나게 달리다가 작대기에 몸을 의지해 장벽을 훌쩍 뛰어넘어가는 것도 읽은 적 있다. 시기적으로 장벽 붕괴에 가까워지면서 월경의 위험과 영향이 점점 작아지다가 급기야 거의 없어지는 경향이 있었지만 <호른의 죽음>의 경우엔, 호른 박사의 누이가 서독으로 탈출한 것이 1955년 경인데, 당시는 전 세계가 극도의 냉전상태에 있었을 때라 가뜩이나 수정주의의 혐의를 받고 있던 호른 박사한테는 기총소사 하듯 종파주의자라거나 당파성의 원칙을 훼손했다거나 하는 비난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결국 호른 박사는 당에서 축출당하고, 학계에선 학위를 박탈당한 채 라이프치히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시골마을 굴덴베르크의 낡은 성에 달린 향토박물관의 학예사로 좌천당한다. 이때 당적을 몰수하고 학위를 박탈한 위원회의 위원 가운데 한 명이 앞에서 말한 크루슈카츠 씨였으며, 1년 후 크루슈카츠 씨가 굴덴베르크의 시장으로 선임되면서 이들은 재회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호른 씨가 종파주의나 당파성 같은 어처구니없는 명목의 피해를 당한 일에 초점을 맞추는 건 아니다. 호른 씨는 1957년에 죽는데, 이 때의 사건을 주민 다섯 명의 기억 또는 호른 씨와 얽힌 일을 담고 있다. 이후 사반세기 이상의 세월이 흐른 1980년대 초반에 그해 여름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니 각기 다른 화자의 일인칭 시점으로 쓰였다. 이들은:

  이곳저곳에 수많은 자식들을 살포한 바람둥이 부자 남자를 아버지로 둔 사생아이자 그의 머리 좋은 아들인 슈포테크 의학박사.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는 똑똑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대단히 삐딱하고 적어도 해발 8천 미터까지는 솟은 자존심 끝판왕에, 가시 같은 혀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사람의 귀를 따갑게 하는 독설가이지만 알고 보면 소심하고, 마음 약하고, 그러나 전혀 착하지 않은 인간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 토마스. 일반 시민들과 구분이 되길 바라고, 실수라도 사람들이 자기한테 닥터라고 부르면 속으로 좋아 죽겠는 속물이지만 겉으로는 점잖고 근엄한 약사의 아들. 한 살 위인 껄렁한 친구 파울과 어울려 다니며 예전과 달리 한 달 정도 늦게 도착한 집시한테 시간 일자리를 얻었다가 천한 집시에게 고용되는 것이 아빠의 뜻과는 완전히 다른 일을 저지른 짓이라서 외출금지도 당하기도 한다. 늙은 화가 골 씨를 도와 친하게 지내고, 결정적으로는 늦여름 아침에 파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가 마가목 나무에 목을 매단 호른 씨의 툭 튀어나온 눈과 쑥 빠져나온 거의 보라색의 혀를 보게 된다.

  마를레네. 화가 골 씨의 정신지체 딸. 1943년에 나치 정부가 아리아 인들의 품종을 개량하기 위하여 장애인을 수용하기로 결정했을 때, 자신을 대신해 엄마가 수용소에 들어가 죽는 바람에 죽다가 살아남았다. 세상이 바뀐 1950년대가 되고나서도 마를레네는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성폭행을 당했고, 임신을 했으며, 아버지를 따라가 인공중절을 경험한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굴덴베르크에서 정신장애자를 다루는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는 의미일까?


  게르트루데 피슈링거. 파울의 엄마. 처녀로 결혼을 하고 파울을 낳았지만 남편은 다른 여자를 좇아 집을 나갔다. 같은 마을에서 사는 게 남부끄러워 남편더러 파울의 양육비를 받지 않을 테니 다른 데 가서 살라고 해, 파울과 함께 굴덴베르크에 남아 식료품점을 한다. 지방정부가 남은 방을 세놓으라 해서 들어온 사람이 호른 씨. 원래 1년 이하를 계획했지만 호른 씨가 죽기 전까지 계속 머문다. 사춘기의 극점을 달리고 있는 파울은 점점 삐뚤어지기 시작하는 것 같고, 자기하고는 말도 하지 않으려 해서 호른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깨끗하게 거절당한다. 서로 소 닭 보듯, 예의만 엄청나게 지키는 드라이한 생활을 하지만 나중에 몇 달은 결국 같은 침대에 오르게 된다. 호른 씨가 생을 접기 전에 자살자들이 흔히 그러듯이 다른 것들처럼 관계를 정리하기 전까지. 상점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다리에 류머티즘이 심해 퉁퉁 붓고 고통이 자심하지만 알아주는 인간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마지막으로 굴덴베르크 시장 크루슈카츠. 유서 깊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한 때의 사학자였으나 공직에 뜻을 두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시골이기는 하지만 굴덴베르크의 시장에 취임한다. 취임하고 보니 굴덴베르크도 시골 특유의 배타성과 텃세가 여간 아니라 취임 첫날에, 타지인인 당서기만 방에 찾아와 축하를 했을 뿐, 시청에 근무하는 현지인은 누구 하나 고개 디미는 것들이 없었다. 문제의 1957년엔 5월 23일 목요일에 집시들이 도착해 여느 때처럼 도시 한복판인 블라이허비제에 캠핑카를 차렸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굴덴베르크의 시의회에서 집시 캠프는 변두리 늪지대인 블루트비제에 설치하게 규정해 놓았다. 그러나 세상에 말 잘 듣는 집시들이 있기나 하나? 집시들의 도착 보고를 듣고 당시 시의회 의원이자 시장대리이며 나중엔 크루슈카츠 시장을 음해해 어떻게 차기 시장을 한 번 해볼까 꿍꿍이를 꾸리기도 할 바흐오펜, 그리고 여비서와 함께 집시들을 찾아가 설득을 시도하지만 당연히 집시 대장한테 무시당하고 만다. 바흐오펜은 처음부터 경찰한테 위임해버리라고 조언을 했으나, 명색이 시장이라면 거절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시도는 해봐야 하는 거라 생각했던 거다.

  크루슈카츠가 시장으로 취임하고 1주일 후에 시내 낙농장 앞 보도에서 우연히 호른 씨를 만나고야 만다. 같은 작은 도시에 살기도 하고, 향토박물관의 학예사니까 시장이 직속 상관이라 언젠가는 만나야 했지만 그는 1년 전 위원회에서 크루슈카츠를 바라보았던 바로 그 상처입은 눈길을 가지고 있었으니 좀 캥기기도 했을 듯. 당시 크루슈카츠는 고통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며, 이를 호른 씨가 전혀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웅변하는 눈길을 여태 잊지 못했다. 크루슈카츠는 호른이 주관적으로 보아 어떤 죄도 범하지 않았지만, “당파성의 원칙을 맹신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체제에 큰 피해를 입혔음을 확신”해, 공동의 일과 위대한 목표를 위해서, 그리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용인한(누이의 서독으로의 탈출?) 호른의 비겁함을 인식하고 실수를 철저하게 떠안아야 한다고 생각해 당적 몰수와 학위 취소를 찬성했다고 변명했다. 이게 벌써 1년 전이니 시간이 약이라고 이젠 좀 상처가 아물었겠지. 그래서 “뜻밖의 재회를 위해 한 잔 해야지요?” 라고 반갑게 제의했지만, 호른은 “아닙니다.” 단호하게 거절하고 말았다.

  같은 해 9월 1일 일요일 아침, 숲속에서 아이들이 호른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을 비롯한 모든 관련자들은 자살이란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히 집시와 연결 짓는 건 적절하지 못했지만 어디 사람들이 그런가. 나치 시절이 12년 전에 끝났어도 집시무리를 정상적인 시각으로 보지는 않았던 거다. 물론 이건 책에서 딱 꼬집어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작가 크리스토프 하인이 숨겨놓은 코드라고 봐야 하리라. 당시 시장은 3년째 굴덴베르크에 살고 있었다. 처음 시의원으로 발령이 나고, 시장이 되자 라이프치히에서 살고 있던 사랑하는 아내 이레네를 굴덴베르크로 불러 살림을 합친다. 이때 이레네는 평생 시골에서 살게 하지 말라는 조건이었고, 정말로 그렇게 됐으나, 안타깝게도 이레네가 불치의 암에 걸려 라이프치히의 대학병원으로 실려가고 석 달 만에 생을 접었다. 그러나 남편을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요일마다 호른 씨가 주재하는 굴덴베르크 문화사 모임을 바흐오펜 씨가 음해하여 상부에 보고한 일을 시장이 모르고 있었으며, 라이프치히에 이어 같은 사람이 똑같이 아무 죄도 없으면서 같은 혐의로 명예가 훼손되려는 위기에 처해,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일이 벌어지자, 이레네는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다. 부부의 행위가 끝난 후, 이레네는 침상 위에서 말한다. “이전에는 결코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이제 당신은 역겨워요.”


  공산주의 치하였던 1985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런 소설을 쓸 수 있고, 출간할 수 있었다는 거 하나 가지고도 정말 기가 막히다. 크리스토프 하인은 참으로 다양한 시각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비단 시장 크루슈카츠와 학예사 호른의 관계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등장하는 다른 화자 네 명도 모두 자신이 직접 사는 생활 속에 각기 다른 질곡을 부담할 수밖에 없었던 것. 사는 게 다 그렇기는 하지만 참 어렵다.

  새삼 하고 싶은 말은, 수정주의, 종파주의, 당파성. 지긋지긋한 단어들. 그러나 눈을 뜨고 귀를 열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종파주의와 당파성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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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6-24 0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4는 분명히 야박했다. 그렇다고 별5는 조금 과하고.

잠자냥 2024-06-24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희망도서로 신청하고 주말에 받아왔습니다요! 기대됩니다!

다락방 2024-06-2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면 저도 사야겠네요!

다락방 2024-06-24 11:15   좋아요 1 | URL
악 너무 비싸네요? 다행히 도서관에 있습니다. 후훗.

잠자냥 2024-06-24 11:43   좋아요 0 | URL
그래서 내가 희밍도서한 거라능 ㅋㅋㅋㅋ 지만지 책 비싸서 못 사! ㅋㅋ
 
회개한 멜모스·아듀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파롤앤(PAROLE&)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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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 분량이면, 다른 작가한테는 중편이겠지만 적어도 발자크는 그냥 단편이라 해야 할 두 작품을 실었다. <회개한 멜모스>와 <아듀>의 공통점이라면 1812년 모스크바를 함락하기는 했지만 추위에 뒷덜미를 잡힌 프랑스군 최악의 퇴각전투인 “베레지나 도하” 참전 군인을 다루고 있다는 거다. <아듀>는 아예 내놓고 전투 장면을 상세 묘사하고 있다. 당연히 발자크가 썼으니 실제보다 더 혹독하고, 비참하고, 춥고, 살 떨리는 장면의 연속상영이다. 그리하여 <아듀>에 관해서는 독후감 열라 써봤자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거야말로 백문이불여일견, 아무쪼록 직접 읽어 보시기 권하고, <회개한 멜모스>를 이야기해보자.


  <회개한 멜모스>는 금천출납계원이라는 직업인에 대한 발자크 식 설레발로 시작한다. 사회계에서 문명이 밪어낸 희한한 인간종이며 인간의 형상을 한 피조물이라고 했으니, 이게 인간, 즉 사람이란 얘기인지 사람도 아니라는 뜻인지 독자를 현혹하기 시작한다. 발자크의 눈부신 구라를 그래도 소개해보자.


  “영락없는 인간의 형상을 한 피조물인 그 종은 신앙심을 통해 수분을 공급받고 단두대라는 지지대로 줄기를 꼿꼿이 세우지만, 악행의 손으로 자잘하게 가지치기되면서 건물 4층에서 참한 아내와 성가신 아이들에 둘러싸여 나무처럼 자란다. 파리에 서식하는 금전출납계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두고두고 생리학자를 괴롭히는 문제로 남을 것이다.” (p.10)


  이어서 발자크는 독자에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덫에 갇힌 생쥐를 앞에 둔 고양이처럼 항상 돈과 마주하고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시겠는가? 방범 철창이 쳐진 좁은 공간 속에서 일 년의 7/8을 매일 7시간에서 8시간 동안 등나무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선박 조타실에 못 박혀 있는 항해사보다도 덜 움직이는 재주를 지닌 사람을 떠올려보시겠는가? 그런 일에 종사하면서도 무릎이나 골반 관절에 경직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을 떠올려보시겠는가? 왜소하다고 할 만한 몸집을 가진 사람은? 돈을 하도 많이 다루어서 돈이라면 신물이 날 법한 사람은?” (p.11)


  발자크가 관찰하고 경험한 금전출납계원은 역사를 이 잡듯 뒤져봐도 번듯한 지위라고 할 만한 자리에 올라간 계원을 발견할 수 없었고, 결국엔 중죄인 감옥에 수감되거나, 외국으로 도피하거나, 마레지구 생 루이가의 어느 집 3층에서 죽은 듯이 살게 된단다. 이 당시 파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층이 위로 올라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니, 생 루이가의 3층에서 “죽은 듯이” 산다는 걸 보면 결국 인생이 찌그러진다는 뜻이겠다. 금전출납계원. 지금 시대에는 거의 사라진 직종이다. 은행에 가면 플라스틱 박스 안에서 주로 현금을 내주고 받는 행원을 말한다. 현금 시대에는 은행마다 있었는데 지금은 본 것 같기도 하고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왜 발자크가 이렇게 하루 종일 지독한 돈 냄새를 맡으며 박봉에 시달리는 사람들한테 박한 평가를 했는가 하면, 견물생심이라고, 돈을 자꾸 만지기는 하지만 정작 자신이 필요한 만큼 돈이 없는 사람한테 사고가 생길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나도 살면서 봤다. 돈 액수에 민감해지지 못하는 은행원. 출납계원과 은행,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부오나파르테 나폴레옹이 쌍코피가 터지고나서 프랑스에선 루이 18세가 왕정을 복고한다. 이 시절인 1815년 이후 돈의 원칙이 명예의 원칙을 대체해 우리 문명의 진정한 상처를 입혔다고 발자크는 주장하는데, 뭐 잘 모르겠다. 상처입은 “우리 문명”에서 ‘우리’의 범위에 아시아인이 들어가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하여간 이 시절 프랑스 파리 생-라자르 가에 뉘싱겐 남작이 자기 이름을 따 “뉘싱겐 은행”을 세우고, 1813년 모스크바 퇴각 당시 자신도 참전한 바 있는 스투드장카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퇴역장교, 명예 대령인 카스타니에 씨를 월급 5백 프랑의 현금출납계원으로 고용한다. 카스타니에는 정수리가 빤질빤질한 대머리의 사십줄에 접어든 사내로 반백의 관자놀이에 동그란 얼굴이며, 뉘싱겐 남작처럼 윗옷 가슴에 레지옹도뇌르 훈장의 약장을 달고 다닌다. 나폴레옹 제정 시대 용기병 대대의 지휘관이었으며 부상당해 2천4백 프랑의 퇴직금을 받고 제대한 인물이다. 은행에서는 현금 출납 외에 가장 핵심인 회계장부 업무도 지휘하고 있다. 그러니까 은행장의 핵심 측근이라는 말씀.

  이 날도 카스타니에는 일과를 마치고 은행문을 닫은 후에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여러 은행 앞으로 발행된 신용장 중에서 런던의 와차일딘 은행 앞으로 발행한 신용장을 집어 들더니, 세상에, 뉘싱겐 행장의 서명을 위조해 슥슥, 신용장에 사인을 했다. 나는 작품을 다 읽었으니 어떤 서명인 줄 안다. 귀 와차일딘 은행께서는 폐 뉘싱겐 은행이 보증하오니 위에 밝힌 카스타니에 선생에게 현금 1백만 프랑을 지급해주시기 바랍니다. 남작 뉘싱겐 서명. 이제 이 한 장을 가지고 런던 와차일딘 은행에 가면 즉시 1백만 프랑에 해당하는 세계 각국의 돈을 받을 수 있게 된 거다. 오늘은 토요일. 내일은 휴무인 일요일. 월요일은 내용은 모르겠지만 출근하지 않기로 합의가 된 날이고, 화요일 정오에 나오기로 했으니 카스타니에는 적어도 3박4일의 시간을 벌어 놓았다. 이 동안 런던에 가서 현금을 찾고 위조한 여권과 변장을 위해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에 이탈리아 피렌체로 가서 페라로 백작이라는 이름으로 여생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다. 페라로 백작은 1813년 젬빈 늪지 전투에서 죽은 불쌍한 대령이다. 이 젬빈 늪지 전투가 뒤에 실린 <아듀>의 핵심 장면이라서 이렇게 저렇게 다 연결이 된다니까.

  하여간 이렇게 신용장 또는 약속어음을 봉투에 담고 속주머니에 넣은 카스타니에는 왜 이 위험한 장난을 할까? 뭐긴 뭐야? 19세기 프랑스 소설에서. 여자 때문이지. 아킬리나. ‘나키’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이 어린 불여우는 사십대 카스타니에의 정부가 되면서 겉으로는 그냥 아닌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면서도 남자가 스스로, 알아서, 자동적으로 온통 비싼 가구, 옷, 귀금속, 보석, 신발, 언더웨어를 사 바치게 만들었다. 2천4백 프랑의 퇴직금과 월급 5백 프랑만 가지고 있던 퇴직 명예 대령 카스타니에는 애초에 정부를 둘 처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미 저질러버렸으니 이걸 어떻게 해. 이제 신용장에 서명하고 속주머니에 넣은 찰라, 에그머니, 이미 은행문을 닫아 걸었건만, 현금출납 철창 뒤편 작은 창구에서 웬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는 거다. 영국인처럼 보이는데, 프랑스 사람이 영국인을 예쁘장하게 그릴 수 없는 법. 발자크 눈에는, 시체의 피를 빨아먹은 것 같은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붉은 입술의 30대 남자. 그는 어음을 현금 50만 프랑으로 교환하러 온 고객으로 이름을 존 멜모스라고 영수 서명했다. 이제야 멜모스가 나온다. 카스타니에가 약속어음을 받으니 희한도 하지, 돈을 주려는 순간, 그가 없어졌다. 돈을 받았다고 서명을 했지, 금고에서 돈도 꺼냈지, 지금 문을 닫으면 화요일 정오에나 열지, 카스타니에는 당연히 현금 50만 프랑도 자기 주머니 속에 넣는다. 일을 다 마친 카스타니에는 남작이 없을 때 늘 그렇듯이 남작부인,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젊은 대학생 라스티냐크의 애인이기도 한 남작부인에게 런던의 와차일딘 은행에서 발행한 약속어음 50만 프랑을 지급했다고 보고하고 드디어 퇴근한다.


  길거리로 나온 카스타니에. 그는 잠깐 즐거운 고민을 한다. 오늘은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정부 아킬리나와 함께 극장에 가서 좋은 시간을 즐기고, 내일 일어나 마르세유로 갈 때는 아킬리나를 데려가야 하나, 데려가지 말아야 하나? 그는 손바닥에 침을 탁 뱉은 다음에 오른손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탁 때려 오른쪽으로 튀면 데려가고, 왼쪽으로 튀면 피렌체에서 새 애인을 찾는 걸로 하고 손을 번쩍 든 순간, 등 뒤가 서늘해 뒤돌아보니, 에그머니, 영국인이 또 나타난 거다. 존 멜모스가. 키 큰 멜모스가 카스타니에의 귀 가까이에서 속삭인다.

  “너는 그녀를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더니 다시 선언하기를,

  “너는 떠나지 못할 것이다!”

  결론은? 언제나 불행한 예언은 들어맞는 법이다. 발자크는 결코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는 않겠지만. 궁금하시지? 얼른 도서관 가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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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6-21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크리스토프 하인, <호른의 죽음>
수요일. 쥴퓌 리바넬리, <호랑이 등에서>
금요일. 송지현,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stella.K 2024-06-2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우리의 발자크 옹께서 이런 단편을 쓰셨다니 저도 좀 놀라운데요? 부담은 적을 듯하지만 왠지 그의 악마같은 표현은 여전히 만만치 않을 것 같네요. ㅋ

Falstaff 2024-06-21 15:41   좋아요 1 | URL
발자크 치고는 장황한 편 아닙니다. 책이 얇아서 권하게 되지는 않네요. ^^
 
백설까마귀 문예소설 8
츠쯔젠 지음, 동동 외 옮김 / 문예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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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작품. 초고는 2009년에 쓰고 다음 해에 두 번에 걸친 다시 쓰기 끝에 마침표를 찍었다. 츠쯔젠의 단편집 《가장 짧은 낮》을 무척 인상깊게 읽고 얼른 인터넷 검색해 이 책 <백설까마귀>를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다. 단편집에서는 헤이룽장성 전역, 저 다이싱안 지역, 즉 대흥안령 산맥의 밀림부터 만주 벌판 황량한 지평선까지 북쪽 지역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자연풍광을 묘사했다면, <백설까마귀>는 1910년 가을에서 1911년 봄까지 헤이룽장성의 성도인 하얼빈 시에서 실제로 있었던 페스트 대유행 사건에 집중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중국 북동지역의 페스트 이야기인 줄 몰랐다. 알았으면 읽지 않았을 것 같다. COVID-19를 겪으면서 벌써 여러 작가들이 당시의 경험을 작품 속에 쓴 바 있어서 지금까지 읽은 것만 가지고도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율리 체의 <인간에 대하여>, 이사벨 아옌데의 <비올레타>, 등. 이 중에 <인간에 대하여> 한 권으로 COVID-19 이야기가 충분했듯이, 1910년대 페스트에 대해서는 이미 알베르 까뮈가 <페스트>라는 노골적인 제목으로 끝내 버렸지 않나 싶었던 거다. 그렇지만 어쩌랴, 이미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책이 도착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작품을 쓴 시기가 2010년, 중국 동북부에 페스트가 창궐하고 딱 백 년이 흐른 시기이며, COVID-19가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펜데믹에 대한 중국적 변명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중국인이 아닌 우리가 이 책을 읽기 전에 감안해야 할 것이 있다. 츠쯔젠이 중국의 국가 1급 작가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거.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문화적 검열을 펼치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이며, 미국과 더불어,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포함해서 세계 원톱 급 애국심을 거의 세뇌 수준으로 고취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국가라는 거. 이런 나라의 국가 1급 작가라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던 청조에 대한 비판은 자유스럽게 표현하겠지만, 중국인의 우수성과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낼 수도 있는 장면은 이이의 글에서 발견하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사실 이건 중국 작가에 국한한 것은 아니다. 세상의 많은 작가들 가운데 작품 속에서 자국민이 국제적인 수모를 당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인간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츠쯔젠이 다행인 것이, 《가장 짧은 낮》에 실린 단편소설 열여섯 편이 모두 명품이었던 것처럼 짧은 이야기를 맛나게 쓰는 작가라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페스트, 한 가지 주제를 스물두 개의 소제목을 달아 단편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각 챕터를 구성하고 썼다는 점이다. 펜데믹, 그것도 20세기 초반에 실제로 있었던 페스트이지만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와 일본이 철도공사를 완성하고, 러시아는 자기들 철길에서부터 (출판사 오식이겠지만) 15,000km 이내의 탄광에 독점적인 채굴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타 청말의 골수를 빼먹기 위해 일본과 서구 열강들이 모두 집결해 있는 도시였다. 그리하여 다른 곳보다 이 먼 변방일지라도 하얼빈에서는 서구 과학과 의학이 선진적으로 유입되어 그나마 나은 편이었음에도 하얼빈 푸자뎬 지역에서 살고 있던 2만 명의 중국인 가운데 7천여 명이 죽었으니 세 명 가운데 한 명이었던 셈이다. 물론 러시아, 프랑스, 일본인들도 죽음의 신을 피해가지는 못했지만 외국인의 피해는 작가의 눈을 적극적으로 끌지는 못한다. 이런 큰 비극에도 역시 츠쯔젠이라서, 이이는 작품 전반을 큰 비통과 곡소리, 참혹, 이기심 같은 것으로 채우지 않는다. 아무리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늘 슬픔과 난관과 호곡과 인내만 있는 건 아니라서 촌철 같은 유머와 풍자와 눈썹 같은 즐거움의 순간도 있는 법인데, 이걸 놓치지 않았다.


  작품은 1910년 가을,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날 시작한다. 하얼빈 시 푸자뎬. 중국인 밀집 지역이다. 당시 하얼빈은 인구가 막 10만 명을 넘긴 상태였다. 러시아에 의하여 중동철도가 놓이고, 이후 철도를 지키고 관리하기 위한 인력이 대폭 유입되어 러시아 사람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철도 노동자나 기타 잡일을 찾아 유입된 중국인 유민이 푸자뎬 지역에 모여 육체노동과 작은 가게를 열어 살았다. 푸자뎬에는 큰 느릅나무가 서 있었고, 가을을 맞아 나무는 엄청난 가산을 탕진한 몰락한 부자처럼 민둥민둥하고 이파리도 몇 개 남지 않았으나 물기가 많지 않은 가지가 아래로 축 쳐져 있었으니 가지마다 새까만 까마귀들이 빽빽하게 앉아있었다.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왕춘션(王春申)이 어두컴컴한 녘에 새까만 말이 끄는 마차를 몰고 돌아온다. 싼푸캉三鋪炕 여인숙의 주인이다. 중국인은 돈 있고 권세가 있다면 세명의 처와 여섯명의 첩을 거느리는 삼처육첩을 특권으로 여기는데, 하얼빈의 빈민가에 초가를 짓고 여인숙을 연 왕춘션은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처 우펀吳芬과 첩 진란金蘭을 두었다. 우펀과 결혼해 오손도손 살기 바랐지만 아이 둘을 연달아 유산한 후로 그만 아기를 들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니, 시어미가 날이면 날마다 모질게 손주 타령을 하는 바람에 그걸 견디지 못해 첩 진란을 들였다. 그런데 이 진란으로 말할 거 같으면 이름만 어여쁘지 푸자뎬에서 추녀로 이름이 높았다. 츠쯔젠은 진란을 사시, 들창코, 돼지 주둥이에 뻐드렁니, 땅딸하고 뚱뚱한 곰보이며 숫처녀라고 묘사했다. 너무 못생겨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뜻일까? 그래도 결혼을 했으니 진란은 임신을 했고, 아들 지바오繼寶, 딸 지잉繼英을 생산했다. 근데 문제는 왕춘셴이 진란과 첫날밤을 치루지 않았는데 아들도 낳고, 딸도 낳았다는 거. 진짜 아이의 아비는 아마도 노점하는 맹인 장씨 아니면 쓰레기 줍는 사마귀 이씨로 짐작할 뿐이었다.

  모친이 죽자마자 왕춘셴은 은기와 집을 팔고 통파가同發街의 초가 판자집을 구입해 여인숙을 시작했다. 큰 방 둘, 작은 방 하나를 구비해 한 번에 스무 명 정도 숙박이 가능하단다. 왕춘셴은 물 기르고, 땔 나무를 장만하고, 음식물 구매와 배표 예매를 대행했다. 우펀은 불 피우고, 정소하고, 이불 세탁하고 장부정리 일을 맡았고, 진란은 부뚜막에서 하는 거친 작업을 했지만 잘 먹을 수 있어 만족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장사가 잘 됐는데, 그러면 뭐해, 남편이 두 여자 가까이에 오지 않는 것을. 한참 나이에 밤이면 밤마다 바늘로 허벅지만 찌르고 있을 수 없던 우펀이 드디어 출장 온 말장수의 배 밑에서 발견되었고, 그래도 남편이란 작자가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인 것을 알고는, 자신 한 몸을 의탁할 수 있는 남자를 물색하기 시작해 하일라르에서 ‘칼 기술자’ 즉 아편 자르는 일을 하다가 당국이 아편을 금지시키자 만주에서 가죽제품 장사로 업종을 변경한 바인巴音을 아예 집에 들어 앉힌다.

  이것을 본 진란도 기죽기 싫어 남자를 물색하지만 워낙 출중하게 눈에 띄는 외모라 남자들이 기겁을 할 뿐이었다. 그러다 드디어 한 남자가 들어왔으니 자금성 환관출신 디이셩. 허벅지 사이가 훤히 비었지만 놀랄만큼 민감한 손과 손가락을 가지고 있어서 손만 댔다 하면 진란은 하룻밤에 대여섯 번도 넘게 죽어 넘어갔다고 하니, 그래, 뭐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가 대처하는 법이 맞다. 바인과 디이셩을 들인 형님과 아우는 이후부터 죽이 맞아 그나마 잘 살았다나? 그런데 여인숙 주인 왕춘셴은 정나미가 똑 떨어져 늙은 말과 병든 말을 관청에서 도태시키는 출청出靑 일을 시작했고, 작업 중에 키가 크고 위풍당당한 대단한 말이 출청 대상에 오른 것을 보고 자신이 그 말을 사서 한 번도 매어 놓은 적이 없을 만큼 아꼈으며, 집에서 나와 마구간에서 지내며 마차 사업을 시작했는데, 마치 자기 자신이 여인숙에서 출청당한 거 같은 기분이었단다.


  당시 하얼빈은 제일 작은 중국인 지역인 푸자뎬 말고 부두 구역과 신도시 구역이 있어서 주로 러시아를 비롯한 외국인이 거주했다. 부두 구역에 디팡꾸이라는 여성이 살고 있었는데 이이가 자금성 환관출신 디이셩은 친동생이다. 집이 하도 가난해서 아들 이셩은 환관으로 보내고, 팡꾸이만 데리고 살다가 빌어먹겠다고 프랑스 선교사한테 넘어가 크리스천으로 개종을 했다. 그러다 하필이면 의화단 사건이 벌어져, 단원들이 예수교 믿는 팡꾸이네 집에 불을 싸지르는 바람에 부모와 막내 여동생이 타죽어 버렸다. 팡꾸이는 길에서 만난 장얼랑한테 겁탈을 당한 후 그의 기름가게에서 함께 살다가 장얼랑이 사고로 죽는다. 정식 혼인을 하지 않아 형네 집에 들어온 장얼랑의 동생이 디팡꾸이를 쫓아내는 바람에 고모네 집으로, 거기서 다시 하얼빈으로 흘러 들어가 이름은 근사한 청운서관이라는 기생집에서 향지란香芝蘭이란 기명의 에이스로 활약하기에 이른다. 화무십일홍이라, 4년 전인 1906년에 부두 구역의 시에원에서 곡물장사를 하는 부자 지용허가 청운서관의 마담한테 돈을 주고 향지란을 속신시켜 자신의 삼처로 삼는다. 첫 아내는 오리 먹이로 쓰려고 물고기나 새우를 잡으러 강에 갔다가 빠져 죽었는데 임신 5개월이었고, 둘째는 난산 끝에 드런 세상 마감했다. 그래서 점쟁이한테 가봤더니 삼처는 반드시 천한 여자를 골라야 한다, 해서 들인 것이 기생출신인 디팡꾸이였던 것. 근데 자수성가한 부자가 특히 더 노랭이인 경우가 많아 암만해도 속신시키기 위해 준 돈이 아까웠던 거다. 본전 생각이 하도 커서 아내 디팡꾸이한테 다시, 물론 가끔, 손님을 받으라고 하고 정작 받은 다음엔 들들 괴롭히기를 계속했으니 이게 사람 사는 일이냐는 말이지.

  이 가게에 싼푸캉 여인숙의 객식구이자 처 우펀의 애인인 바인이 들러, 만주의 콩 풍년 소식을 전한다. 지금 유럽에는 식량이 모자라 난리굿인 모양이니 만주에서 싼 가격에 콩을 사 영국에 수출해 큰 돈을 벌어보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질러보는 거다. 겉으로는 거절하는 척했지만 장사꾼의 본능으로 이게 돈이 되는 일인 줄 알아챈 지용허는 흥정을 하기 시작했고, 무작정 가격을 깎기 시작했고,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바인은 흥정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으로 좋은 가격을 일찌감치 제시했다. 여기까지면 좋았을 것을, 지용허가 더 깎아달라고 조르자, 바인은 뿔따구가 나서 얼굴이 붉어지고, 기침을 그치지 않고 하다가, 결국, 돌판 바닥에 피를 토해버린다. 유민들이 사냥한 설치류 마못에서 시작한 페스트라는 재난이 만저우리滿洲里를 거쳐 하얼빈에 처음 도착하는 순간이다.


  독후감의 처음 부분에서 말했듯이 중국인이 본 펜데믹 대항 소설이다. 서양인 의사는 오진을 하고, 러시아와 프랑스 신부는 성당에 페스트 감염자 수 백명 가득 몰아넣은 채 향불을 피우며 하느님께 전원 치유의 기도를 하다 속절없이 죽어가지만, 피해를 무릅쓴 중국인 연대는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의술을 배운 중국인 의사를 선두로 효과적으로 페스트에 대항해 결국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 이런 불행 속에서도 사람들 본성 가운데 하나인 자잘한 웃음이 별사탕처럼 박혀 있는 재미있는 소설. 역시 츠쯔젠이라는 탄성이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페스트라면 1947년에 이미 나온 알베르 까뮈의 작품 하나가 워낙 독보적 아닌가 싶기도 하다. 원래 세상 사는 게 다 그렇다. 먼저 손 댄 놈, 입에 댄 놈이 대빵인 거. 대빵까지는 아니더라도 크게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거, 이게 사실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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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친데 대산세계문학총서 187
프리드리히 슐레겔 지음, 박상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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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 빌헬름 프리드리히 폰 슐레겔은 1772년,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에 열렬한, 광적인 프로테스탄트 집안에서 태어난 독일의 시인, 문학평론가, 철학자, 문헌학자, 소설가, 동양학자, 기타 등등으로, 그의 형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과 소위 예나 낭만주의의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활동했다. 예나 낭만주의라고 별 건 아니고 그저 독일의 예나 지역에서 노발리스, 피히테, 프리드리히 쉴러,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캐롤라인 셸링 등과 낭만주의 서클을 결성해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문화운동을 펼친 일을 말한다. 이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지금이 어떤 세월인데 누가 어떤 낭만주의를 주장했는지, 알면 좋겠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고, 외울 필요도 없으며, 아무리 기억하고 있어도 어떤 시험문제로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오직 하나, 이때 우리가 잘 아는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죤의 할아버지이자, 독일계 유대 철학자이자, 신학자 모세 멘델스죤의 딸, 도로테아 베이트도 멤버였는데, 슐레겔은 유대교 여성이며 유부녀인 도로테아와 확 불장난을 해버렸고, 원래 이렇게 재미난 일은 북풍의 들판에 붙은 들불처럼 한 순간에 확 번지는 법이라 금방 동네가 시끄러워져, 어마 뜨거워라 싶은 슐레겔이 “관능적 사랑과 영적 사랑의 결합을 신성한 우주적 에로스의 알레고리로 찬양”하는, 쉽게 얘기해서 화끈한 불륜을 변명하기 위하여 1799년에 쓴 유일한 소설이 <루친데>라는 거만 일반 상식으로 알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흠. 알려드리지. 슐레겔과 도로테아 베이트의 화끈한 불륜 이야기는 도로테아의 남편 베이트 씨 귀에도 들어가 둘은 당대의 지성인 커플답게 짝 갈라섰다. 유대교에서는 이혼이 가능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혼 서류에 인감도장 꾹 눌러 찍은 도로테아는 1804년 프리드리히 슐레겔과의 결혼을 위해 유대교를 버리고 개신교로 개종을 해버린다. 초장에 밝혔듯이 슐레겔 집안이 열렬한, 그리고 광적인 개신교 집안 수준을 넘어서 시아빠 자리인 요한 아돌프 슐레겔 선생이 시인이면서 루터교 목사였으니 지가 결혼하고 싶으면 개종을 안 하고 배겨? 근데 4년 후인 1808년에 도로테아가 남편 슐레겔을 살살 꼬드겼는지, 아니면 바가지 벅벅 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부는 가톨릭으로 다시 개종을 해버린다. 목사 집안에서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그리하여 요한 아돌프 슐레겔 목사님은 열번째 자식인 프리드리히를 호적에서 확 파버릴 수는 없고, 하여튼 온 가족이 협심 단결하여 프리드리히 부부만 나타났다 하면, 눈알을 허옇게 뒤집어 깠다고 한다.

  근데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세계 문화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사람인가? 그런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마추어들은 그냥 이런 가십을 즐기기만 하면 될 거 같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까, 독후감이 갑갑하게 됐다. 아무리 18세기 소설이라 해도 그렇지, 참 재미없다. 이 작품보다 무려 50년 전에 잉글랜드 소설가 헨리 필딩이 발표한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 60년 전에 나온 새뮤얼 리차드슨의 <파멜라> 등등과 비교하고, 우스개소리로 “재미없는 독일 소설”임을 감안하더라도, 어떻게 이리도 흥미유발 요인 없이 썼는지 말이야. 물론 자신과 도로테아의 불장난을 변명하기 위해 썼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 타령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이 시절 소설들이 거의 사랑을 위해 복무했을 때이며, 위키피디아 얘기대로 “낭만주의 발기인” 가운데 한 명이어서 늘 발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당대 수준으로 보면 굉장히 야한 묘사도 등장하긴 하지만, 이 작품이 슐레겔이 남긴 “단 한 편의 소설”이라서 그런지 분명 소설은 소설이되, 소설처럼 읽히지 않기도 하다. 에세이 같기도 하고, 서간문일 때도 있고, 지문 같은 거 다 뺀 대사로만 구성되어 있는 챕터도 있고, 막 헷갈리기도 한다.

  슐레겔이라고 읽는 율리우스와, 도로테아라고 읽는 루친데를 중심으로 위 단락에서 이야기했듯 열라 “관능적 사랑과 영적 사랑의 결합을 신성한 우주적 에로스의 알레고리로 찬양”한다. 이걸 써 놓으니까 뭐 할 말이 쑥 들어가 버리더라고. 어떻게 하겠어. 이쯤에서 말아야지.

  그런데 하여간 낭만주의란! 아니면 내가 좀 병적이어서 그랬나? 지극히 낭만적인 대목이 나온다.


  “그러므로 사랑의 수사학이 자연과 순수함에 대한 변호를 모든 여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여인의 부드러운 가슴속에는 신성한 관능의 성스러운 불꽃이 비밀스럽게 깊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황폐해지고 훼손될지언정 결코 완전히 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p. 42)


  하여간 수컷들이란. 여인의 가슴에서 신성한 관능과 성스럽고 비밀스러운 불꽃을 발견하는 게 낭만주의라니. 흠. 그건, 슈레겔 선생, 불꽃이 아니라 그건 그냥 지방fat일 걸? 그게 남자들의 오랜 로망이란 건 알지만, 이젠 그런 얘기 좀 그만 읽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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