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 여배우 묘보설림 19
등구운 지음, 이기선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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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생 타이완의 배우, 모델 겸 작가. 국립정치대학에서 한국어학과 광고학을 복수전공하고 영국 에식스대학 드라마 스쿨에서 연기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나라 전지현이 타이완에서 코카콜라 광고를 찍으러 갔을 때 172cm, 52kg에 신체 사이즈 32/24/35를 유지하던 등구운이 전지현의 대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고. 많은 연극, 드라마, 영화, 광고에 출연한 배우인데 내가 원래 연얘가 중계를 거의 듣지 않는 편이라 어느 정도 스타였는 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한국어를 전공해서 그런지 자기 이름 鄧九雲도 타이완 발음 ‘덩주윈’ 대산 우리 발음인 ‘등구운’으로 읽어달라고 스스로 부탁해서 작가 이름을 박은 것이라 한다. 우리말 외에 타이완 사람이 자주 그렇듯이 만다린어는 기본이고 법으로 국가언어 가운데 하나로 지정한 영어도 모국어 수준에 일본어도 우리말 정도는 할 줄 안다.

  위키피디아에는 등구운이 영국의 에식스대학 드라마 스쿨에서 연기 석사를 취득했다하고, 중국의 바이두 백과는 영국의 이스트 15 연기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는데, 이스트 15가 에식스 대학에 포함되어 있는 기구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영국에서 학위를 따 왔음에도 타이완으로 돌아오니 작업도 들어오지 않고, 기껏 얻어걸린 드라마에 출연중 사고가 나 스태프 한 명이 죽는 바람에 촬영 중단이 되어버린 일화가 나온다. 이것도 아마 픽션이겠지.

  위키피디아 등구운 페이지에는 “이 항목에는 인생 경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기사에 대한 정보를 확장해주세요.”라는 당부의 말이 적혀있다. 젊은 작가들이 자기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하물며 여배우는 더 하겠지. 그것도 인기 관리의 전략일 수 있으니 더는 모른 척하자.


  두 자매. 황청黃澄과 황첸黃茜. 띠동갑이다. 165cm, 56kg의 외양을 자랑하는 미인 동생 황청은 자기보다 더 잘생긴 것 같은 나이 차 많이 나는 언니 황첸한테 업혀 자랐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그렇게 언니 겸 이모 겸 엄마 노릇도 해가며 살았다. 집안에 네 가족이 찍은 사진이 있다. 엄마, 황청을 안은 황첸, 아빠 순으로 앉아서 찍은 사진에서 엄마는 왼쪽, 아빠는 오른쪽, 황첸은 아래쪽에 눈을 두고,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바라보는 건 황청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황청이 여섯 살 때 사라졌다. 엄마 입에서는 한 번도 아버지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언니한테는 십년 이상이 훌쩍 지나간 후에, 그 인간이 술을 엄청 퍼마셨으며, 집을 나간 이후에도 자기한테만 몰래 와서 돈을 얻어가고는 했단다.

  황청이 본인은 그리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입술이 좀 짝짝이처럼 생긴 바람에, 대학시절에 일본배우 OO을 닮았다는 이야기가 소문이 나서, 그 소문을 들은 방송국에서 찍어간 적이 있었다. 몇 주 후에 일본 배우가 광고 촬영차 타이안을 방문했을 때 조명을 맟추어 볼 대역을 요구하여 22시간 동안 8천 위안을 받기로 하고 대역을 맡았다. 커피숍 한 달 알바비를 하루에 받을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지 싶어서. 그러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손만 나올 대역배우 자격으로 황청이 남자 배우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의 왼쪽 뺨을 오른손으로 후려 갈리니 미안하기도 하고, 얼마나 아플까 싶기도 해서, 아프지 않으세요, 얼마나 아프세요, 막 이런 말을 해야 했는데, 남자배우는 그 역시 조그마한 소리로 괜찮습니다. 더 실감나게 세게 때리셔도 됩니다. 그래서 다시 촬영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실감나게, 빨리 끝내는 것이 덜 때리고 덜 맞는 일이다 싶어 마구마구 후려쳤지만 감독이 컷을 외칠 때마다 얼굴이 부은 남자가 서둘러 냉찜질을 하면서도 황청을 향해, 손바닥이 아프지는 않았느냐고, 이렇게 묻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가.

  물론 이 남자는 작품의 뒤쪽으로 가면 이제 이름을 날리는 유명 배우가 되어 황청과 커플을 이루어 드라마를 찍게 되는데, 드라마에서 두 명 다 커플 배역을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해, 진짜 커플로 소문, 스캔들이 나 그걸 은근히 즐기는 가짜 연인으로 지내기도 한다.


  아빠를 쫓아버린 엄마는 두 딸과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애하고 혼자 사는 사람끼리 만나 가정으로 이루어 볼 생각이 없느냐면서 한 남자를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린 선생. 엄마가 만나보니 큰 키에 섬세하고 자상한데다가 믿음직 한 것이 마음에 딱 들었다. 하지만 린 선생이 세 모녀가 사는 집에 와서 보니까 엄마가 아니라 첫째 딸 황첸이 마음을 아프도록 폭 찔러버린 거였다. 그리하여 린 선생은 황첸에게 잘 해주었는데 그것이 점점 커져 둘은 연인으로 발전해버렸다.

  황첸은 린 선생을 만날 때, 자주 동생 황청과 함께 외출했다. 황청의 나이가 아직 사리분별을 하지 못할 때라 엄마와의 관계는 어느 새 잊어버리고 그냥 린 선생이 황첸 언니의 애인, 그것도 내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잘 사주는 좋은 애인이며, 다만 너무 좁은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는 게 좀 불만인 남자 이상이 아니었다. 하여간 언니는 린 선생과 좋은 시간을 많이, 오래 보낸 모양이다. 그러면 탈난다. 탈 났다. 황첸의 배 속에서 린의 씨톨이 알을 만나 착상을 해버린 것. 린 선생은 할 말이 없어졌다. 그는 그냥 두고 볼 것이다. 만일 아이를 낳는다면 황첸과 가정을 이루면 되는 거고, 그렇게만 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아직 혼인 전이니 여성이 임신중단애 관한 권리를 주장하면, 아이가 있는 돌싱남 입장에서 혼인 불가 통보로 이해하고 임신중단을 막을 수 없다. 이후 성실하게 뒤처리와 계속 연인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으면 그게 차선이다.

  황첸은 어린 아이를 좋아했다. 낳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 고민을 하다가 더 이상 엄마 모르게 연인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하여 엄마한테 린 아저씨의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고, 어머니는 또 한 번 배반을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재단 가위를 가져와 황첸의 머리카락을 여기저기 싹둑싹둑 잘라버렸다. 자기 방에 박혀 꼼짝도 하지 않던 황첸이 침대위에 모로 누워 물끄러미 동생 황청을 보더니 너도 잘라줄까? 했고, 황청이 자기만 긴 머리를 하고 있는 것도 좀 이상해 그러라고 했다. 그래서 황첸이 황청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렸는데, 이게 임신중절을 하기 전인지 한 뒤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 일 이후에 황첸은 엄마한테 질려 보따리를 싸 독립해 원룸으로 나가버린다.


  우리의 주인공 황청은 대역배우를 끝내고 소극장 연극 <불면증> 오디션에 참가, 섬세하고 신비로우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를 원한다는 극단의 요구에 부응하여 합격한다. 세 명의 여주인공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불순한 친한 척’ 속의 비틀림과 경쟁이 불타올랐고, 그렇게 연습을 해 드디어 초연의 막이 올라갔을 때, 관객석의 관객 절반 이상이 황첸 언니의 학교 연극반 동기들이었다. 황청은 친구도 초대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오지 않을까봐. 원래 성격이 이렇다.

  첫 공연이 끝나자 평소 황청과 황청의 연기를 시답지 않게 보던 단장조차 “오늘은 황청의 무대였어.”라고 촌평을 했을 정도의 성공.

  황첸도 무대 위의 동생을 보니 내면에서 뭔가 넓게 퍼져 나가는 듯한 모습이었고, 이제는 동생의 삶에 개입할 자격도 이유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관객으로 존재하기만 하면 되리라고. 근데 그게 쉬워? 12살 차이나는 동생, 그것도 어려서부터 자기한테 기대고 어리광도 부리고, 그러던 아이한테. 이 무렵 황첸은 ‘캉’이란 새로운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해, 작품이 진행될수록 결혼하고,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으려고 애도 쓰고, 한 여자 아이를 입양한 후 캉의 시민권이 있는 미국에 가서 살다가 다시 타이완으로 돌아온다.

  이후 황청이 미인대회 2등상을 타고, 타이완에서 제일 유명한 기획사에 들어가 영화 조역을 따지만 대가로 영화감독의 손을 타게 된다. 당연히 황청만 모르는 지저분한 소문도 다 났겠지. 그리하여 결정한 것이 연기력을 확장하기 위해 연극의 본거지, 셰익스피어의 고장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거였다. 이게 등구운의 이력과 매치되는 부분이다. 여태 히트작 하나 없는 등구운이 무슨 돈으로 영국유학? 엄마 같은 언니 황첸과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부자 형부 캉이 뒤에서 팍팍 지원을 해준 덕분이다. 아, 나도 소싯적에 이런 누나, 매형 있었으면.


  영국에서 돌아온 황청. 이제 남은 건 황청이 스타, 아니면 적어도 상당한 수준의 작품의 배역을 한 번 멋있게 연기해보는 일. 그리고 가능하다면 연애에서도 성공을 해야겠지.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밝히지 않겠다. 연기는 인류가 행위했던 가장 오랜 예술 장르. 그것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 궁금하신 분은 읽어 보시면 좋겠다. 글도 잘 쓰고, 가끔 등장하는 러브씬도 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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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랜지션, 베이비
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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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생 백인 미국인.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에서 교수 아버지와 변호사 어머니 사이의 아들로 나 시카고에서 성장했다. 햄프셔 칼리지를 거쳐 아이오와 대학에서 예술석사, 디트머스 대학에서 비교문학 석사를 취득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 교환학생으로 간 적 있고, 우간다에 체류했을 때는 트랜스를 위해 호르몬 치료를 받을 때였는데 동성연애 등에 관한 우간다의 개별문화를 조사하다가, 우간다 의회가 반동성연애법안이 제의하는 바람에 위협을 느껴(추정)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

  트랜스 여성, 즉 MF 트랜스젠더로 살고 있다.

  2021년에 결혼한 아내와 함께 뉴욕에서 살다가 지금은 콜럼비아 산타마르타에서 터를 잡았단다. 나같은 이성애자는 모르겠지만, ‘결혼한 아내’라는 표현은, MF 트랜스젠더인 토리 피터스가 여성 또는 트랜스 여성과 동성결혼을 했다는 의미다. 여성간 동성결혼의 경우 배우자는 서로를 아내라고 부른다. 즉 부부는 두 아내로 구성된다. 그렇게 알고 있다.


  나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에 관해 별 관심이 없다. 주변에 눈에 띄는 성소수자도 없다. 만일 있다면? 당연히 똑 같은 대우를 하겠다.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물론 속으로 조금 궁금한 게 있겠지. 그래도 하나의 질문 없이 그들과 일상의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자연스럽게 그들을 대한다 해도, 나도 모르게 언어나 행동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그들이 눈치채고 기분 나빠 할 수 있겠지. 그것까지는 나도 어찌 할 수 없다. 그저 솔직하게 말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더 이상은 없다. 그들에게 신경쓰지 않는 것이 최대로 배려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당연하게 많이 예민할 것이다. 다수자들이라면 아주 사소해 모른 척하고 지나칠 것에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러면 어떡하지? 모르겠다. 다수자들은 내 옆, 주위의 사람들도 당연히 다수자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말과 행동에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혹시 말할 수도 있겠지. 먼저 자신이 소수자라고 밝히면 더 세심하게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하지만 이럴 때마다 일일이 커밍아웃하는 소수자도, 그걸 듣고 언행에 조심하는 것도 사실 좀 웃기다. 인종이나 젠더의 경우라면 탁 보는 순간 일종의 규범, 언행의 범위를 결정할 수 있어 자연스레 조절할 수 있으나, 다수자 입장에서 눈치채기 아주 어려운 성 소수자 배려는 그래 더 힘든 것 아니던가?

  나와, 내가 아는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속으로는 몰라도 겉으로는 하나같이 그들과 어떤 형태로도 성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반 정도는 있으나마나 자신한테 중요하지 않다고 하고, 나머지 반은 진저리를 치며 싫어한다. 지금 한국 꼰대 남자들의 수준이다. 젊은 세대의 시각으로 진짜 꼰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꼰대 세대한테는 이것도 많이 발전한 거다. 그렇게만 알면 좋겠다.


  이 책은 미국의 톱5 출판사에서 펴낸 첫 트랜스젠더 작가의 책이라고 한다. 토리 피터스도 이게 첫 작품이라는데, 일곱 개 중요 문학상의 후보로 올라 이중 하나 PEN/헤밍웨이 상을 받았다.

  근데 내가 왜 이 책을 읽기로 결정했을까?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해서 ‘첫빠따’로 읽을 정도로 혹 한 이유는 뭐지? 다른 도서관에도 한 권 있어서 빌려 읽으면 될 텐데 굳이 희망도서를 신청했다는 건 어떤 계기가 있었다는 뜻. 모르겠다. 잊었다.

  제목 “디트랜지션Detransition”은 이 책에 국한해 이야기하자면,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는 아들로 호적에 입적시켰는데, 자라면서 성정체성이 여자인 것을 알게 되어 여성으로 전환transition 해, 여성으로 한동안 살다가 또 뭔가 자각을 했는지 다시 남성으로 복원 또는 환원detransition한 사람을 일컫는다. 전환과 환원을 위하여 다량의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트랜스를 위하여는 에스트로젠을, 환원을 위해서는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해야 하는 모양이다.

  주목할 것은 트랜스 여성이 되느라 에스트로젠 처방을 6개월 정도 받으면, 진짜로 그런지 트랜스들의 대화법이 그런지 하여간 고환이 쪼글아들어 후에 디트랜스를 해 다시 남성이 되더라도 영구 임신 불가능 상태가 된단다. 물론 디트랜스 기간 동안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해 성기능은 원상으로 돌리더라도 그렇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MF 트랜스를 해 여성 에이미가 된 인물이 등장한다. 에이미는 같은 MF트랜스 여성 리즈와 서로 아내로 살다 헤어졌다. 에이미가 여성이 된 직후, 여성으로 살기 위한 거의 모든 하드, 소프트 웨어를 리즈가 가르쳐 주었다. 이런 경우에 리즈는 에이미의 트랜스 엄마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이때 리즈는 사업에 성공해 돈이 무척 많은 개자식하고 살고 있었는데, 자기 아파트를 가지고 살던 에이미가 돈 많은 개자식의 폭행을 당하며 살던 리즈를 구해준 구석도 없지는 않다.

  이렇게 살다가 에이미가 어느 하루, 선언하기를, 이제 우리는 찢어져야 하는 게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길인 거 같다고,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기 위하여 나는 다시 남자로 돌아가야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하여 대판 싸웠겠지. 말이 그렇지, 아름다운 이별이 그렇게 많아? 이들도 서로 웬수 상태가 되어 헤어졌다. 뭐 다 그렇듯이.


  리즈의 문제는 도무지 혼자 있을 줄 모르는 거다. 혼자 만의 삶, 고독으로부터 도망을 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거. 그런데 트랜스 여성이 만날 수 있는 남자들은 시스젠더 여성인 아내와 살다 모험을 즐겨보려고 길거리로 나선 남자뿐인 거 같다. 그래서 트랜스 여성한테 “남자는 다 개”라는 명제가 참이다. 리즈도 두 명의 유부남에게 큰 실연을 경험했으며, 지금 또 한 명의 잘 생기고 매혹적인 유부남 개자식과 밀회를 즐기고 있다. <디트랜지션, 베이비>의 막이 오르면 리즈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유부남 개자식의)BMW에 앉아서 콘돔을 사러 편의점에 간 그 개자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냥 보통의 한국 남자 꼰대들이 알고 있는 거라면, 매체를 통해 그나마 정보를 알게 되는 트랜스 여성들은 우리나라에서 또는 태국까지 원정을 가 음경과 고환을 제거하고, 주름진 주머니까지 싹 잘라버린 다음에 고환이 있던 서혜부에 구멍을 내 직장 위쪽으로 질을 만든 사람으로 알았을 듯하다. 그러나 책의 두 주인공급 트랜스 여성들은 음경과 고환을 달고 있다. 호르몬 주사를 많이 맞아 생식능력은 없지만 책을 읽어보면 음경이 발기도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상태, 유방이 부풀고 젖꽂지가 도톰함에도 음경이 달린 트랜스 여성만 찾는 남자를 구하는 방법은? 20세기에는 자기들끼리의 커뮤니티가 있었겠지. 지금은 미국의 경우에 데이팅 앱에 접속해 취향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런 거 모르고 살아도 괜찮은데, 자꾸 이렇게 알려줄 필요 없는데도 정보가 넘친다.

  하여간 지금 리즈가 만나는 BMW 타는 수캐는 사실 HIV 양성반응자이다. HIV 환자하고 다르다. 그래도 조금 위험한 사람이다. 리즈한테는 치명적이지 않다. 리즈는 에이즈 예방약을 복용했다. 그걸 피임약이라고 일컫는다. 리즈는 에이미와 결혼시절에 자기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어 했다. 위스콘신의 선량한 백인 엄마들이 지닌 여성성에 대한 갈망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다.


  에이미가 에임스라는 이름의 남자로 환원한 후에 프로그래머로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한 시절 아름다운 여성으로 살 수 있었을 만큼 고운 외모를 가진 남자이니 직장 안에서 여직원들한테 인기가 많았겠지? 그렇다. 그러다가 하루 여성 상사 카트리나가 에임스에게 자기 집으로 업무를 가지고 좀 오라고 했다. 남성 상사가 여직원한테 그런 지시를 내렸으면 즉시 성희롱 관련해 직장 윤리위원회 회부감이지만 여성 상사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뭐 이것도 성차별이기는 한데 그냥 넘어가자.

  이혼해 넓은 집을 혼자 사용하고 있는 카트리나가 에임스를 부엌으로 데려가 음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커다란 냉장고를 열고 고개를 수그려 둥근 엉덩이가 눈 앞에 활짝 드러나자, 갑자기 충동이 인 에임스가 코와 입술을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 카트리나의 엉덩이에 탁 밀착시켜 바지 속에서 은은히 흘러나오는 냄새를 흠향하기 시작했고, 원래 그쪽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카트리나도 점점 고양되는 성적 흥분을 이겨낼 수 없었다.

  이미 여성의 몸으로 여성과의 섹스를 알고 있는 에임스. 카트리나는 에임스와의 관계에서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자기 계좌의 모든 돈을 한 장의 수표에 써서 넘겨줄 수 있고, 자기 소유의 서초동 7층 건물의 등기소유권도 넘겨줄 수 있을 만한 엑스터시, 진정한 오르가슴 중에서도 오르가슴의 왕을 배알하게 된다. 그러니 둘이 쉽게 떨어질 수 있어? 계속 몇 달 연애를 하더니, 카트리나가 덜컥, 임신을 해버렸다.


  트랜스여성을 졸업했지만 아직 아버지라는 틀에 적응하지 못한 에임스. 도저히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거 같지 않다. 카트리나는 정상 가정을 만들지 못하면 당장 임신중단을 선택할 거 같고, 그래도 아이는 갖고 싶다. 이때 에임스 머리에 탁 떠오른 인물이 평소에 아이를 갖고 싶어 애달캐달하던 트랜스 시절의 아내 리즈. 에임스는 서둘러 리즈에게 전화를 걸고, 만나 고민을 호소한다.

  아이를 낳고, 셋이 키우자고. 트랜스 여성과 디트랜스 남성, 그리고 시스 여성이.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가족관계가 생기려 하는데 어떻게 흘러갈지 그것 참.

  하지만 워낙 내가 이 동네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충격적인 스토리라도 도무지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알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서 오히려 더 재미있어야 하건만, 일단 이들과 공감하는 데 문제가 있어서 그랬던 거 같다. 트랜스나 퀴어 하여간 성소수자들이 읽으면 공감하고 잘 썼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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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의 날개 1 대산세계문학총서 198
헨리 제임스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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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읽었는데 말입니다, 만일, 착한 밀리 실 미국인 아가씨가 젊은 나이에 병들어 죽어가면서, 아니겠지만, 혹시 자기의 어마어마한 재산 가운데 일부분이라도 케이트 또는 덴셔 한테 상속해 그들의 해피 엔드에 이바지한다면, 다시는 헨리 제임스 안 읽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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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6-02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6-02 16:47   좋아요 1 | URL
아휴, 미워라. ㅋㅋ

잠자냥 2026-06-02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냐?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6-06-02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빌런이 나오나 보네요 ㅋ😅

Falstaff 2026-06-03 05:32   좋아요 2 | URL
1권에는 귀여운 빌런이 나오는데요, 혹시 모르지요, 2권 접어들면 진짜 빌런으로 변할 지는요. ㅋㅋㅋ
 
세 번째 경찰관 을유세계문학전집 147
플랜 오브라이언 지음, 이정화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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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랜 오브라이언. 처음 듣는 이름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것 같다. 완성한 소설은 다섯 편 밖에 안 되는 과작 작가인데도 그렇다.

  1911년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 영국 관세청 공무원 아버지와 북아일랜드 민족주의자 집안 출신 어머니 사이의 12남매 가운데 (아마도) 둘째 아들 ‘브라이언 오놀란’으로 태어나 더블린에서 학교를 마쳤다. 당시 남학교는 거의 비슷했던 모양이라, 폭력과 체벌이 상습적으로 벌어지던 청소년 시절을 꿋꿋하게 견뎌냈지만 평생의 트라우마로 작용했는지 더블린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도 쓰면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나머지 평생을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이이가 멀쩡한 본명을 두고 여러가지 필명을 사용한 건, 당시 아일랜드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이 필수사항이라 가끔 신문에 기고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단다. 이어 소설도 몇몇 다른 이름으로 발표했지만 함께 일하는 사무실 사람들은 내놓고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들 이이 작품인 줄 알았다고. 자기가 공무원이면서 공무원 사회를 우스갯거리로 삼고 그랬다나.

  알코올 중독자는 끝이 좋지 못하다. 술 많이 마시면 작건 크건 반드시 사고를 치게 된다. 오브라이언은 술을 마셨다 하면 주로 주둥이에 발동이 걸려 높은 양반들과 조직에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누구나 인정하는 업무처리 능력을 보였다니, 그것 참 별일일세. 인후두암에 걸린 오브라이언은 그러나 1966년 만우절날 심장마비로 갔다. 이이의 아빠가 열두 아이들을 남겨놓고 일찍 죽는 바람에 소설 쓰는 형하고 열 명의 동생을 먹여 살리는데도 애썼다는 좋은 형, 오빠였다. 동생들 가운데 잘 큰 아이들도 많다. 위키피디아에 다 나온다. 요즘엔 검색만 하면 안 나오는 게 없어.


  <세 번째 경찰관>을 뭐라고 해야 할까? 포스트모던인데 이렇게만 말하면 아쉽다. 이거나 저거나 다 포스트모던이다, 하면 될 정도로 범위가 너무 넓어서 탈이라. 성인용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끼굴을 타고 땅속 나라로 떨어지는 앨리스. 검은 금고를 찾아 저택의 비좁고 깊은 창문을 뚫고 들어가는 ‘나’가 일단 땅속 나라로 들어가거나 창문을 뚫고 들어가 검은 금고를 찾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가면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되는데, 모험도 모험 나름이지, <세 번째 경찰관>은 아이들 읽는 책이 아니라서 별의 별 말도 안 되는 발명품도 나오고, 희한한 이론도 등장하고, 결국 이름 없는 ‘나’는 재판 없이 교수형을 선고받아 목 매달리려던 순간 기적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해피엔드일 거 같지? 안 알려드린다.

  왜 ‘나’가 자기 발로 경찰서를 찾아가는 지 알아보자. 놀랍게도 이 일은 살인 사건과 관련 있다.

  ‘나’는 그렇게 젊지 않다. 오래 전에 태어났다고만 나오는데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간에는 확실하게 젊지 않다. 아버지는 진정한 농부였고 어머니는 손님이 별로 많이 찾지 않는 술집 주인이었다. 그래도 시골에서는 제법 부유한 농장을 꾸리고 있었고, 형편도 넉넉했으며, 세 가족은 나름대로 충분히 행복했다고 기억한다. ‘나’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아버지는 남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로 말도 잘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해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양치기개가 순서대로 죽었다. ‘나’는 졸지에 고아가 됐고, ‘나’는 어른들에 의하여 곧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오브라이언이 생이 끝나는 날까지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던 폭력과 체벌의 난장판인 남자 기숙학교로. 근데 책에서는 기숙학교에서 고생하는 장면은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열여섯 살이 되던 3월 7일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학교에서 마지막 두 페이지가 없는 드 셀비의 책 <금빛 시간> 초판을 발견한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부터 남은 평생을 드 셀비를 연구하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결국 ‘나’가 저지른 치명적인 범죄도 드 셀비를 위하여 벌인 짓일 수 있다. ‘나’가 학교에 있는 동안 농장과 술집은 ‘존 디브니’라는 남자가 맡았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이 고용해서 농장과 술집을 경영하고 대신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월급을 받아 생활한다. 이이의 급료는 아버지가 사망 전에 모든 비용을 현금으로 이미 지불한 총 자금에서 나온다.

  20세에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집에 가는 대신 몇 달 동안 드 셀비의 저서 같은 것도 더 구할 겸 견문을 넓히려 여행 중에 큰 사고를 당한 ‘나’는 왼쪽 다리 대신 나무 의족을 단 채 집에 돌아왔다. 근데 존 디브니는 말로만 곧 그만두고 집에 갈 거라고 하더니 끝내 그럴 마음이 없이 뭉개버린다. ‘나’가 서른 살이 될 무렵 디브니와 ‘나’는 좋은 친구로 이름을 내기 시작해 동네 사람들이 “아일랜드를 통틀어 제일 가는 두 크리스천”이라는 평판을 받을 만큼 겉 보기에 좋은 친구였지만 세상의 어떤 두 사람도 사실 이 두 사람만큼 서로를 격렬히 싫어할 수 없을 정도로 원수지간이었다.

  농사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나’는 드디어 “드 셀비 색인”의 원고를 다 썼다. 이때 디브니가 살살 꼬이기 시작한다. 책을 내라고. ‘나’ 수준의 향토 연구자가 책을 내려면 자가 출판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니, 디브니는 50년 동안 가축거래 사업을 하다가 은퇴를 했으나 여전히 대리인을 통해 사업을 하고 있는 이웃 매더스 노인에게 돈을 빌리라고 설득한다. 3천 파운드 이상의 현금은 틀림없이 가지고 있을 거라나.

  그리하여 어느날 밤, 존 디브니와 ‘나’는 속이 빈 쇠막대로 직접 만든 자전거 펌프(디브니)와 삽(‘나’)을 가지고 매더스 노인 집 근처로 갔는데, 노인과 딱 마주치자마자 먼저 디브니가 노인의 뒷목을 힘차게 가격해 거의 목숨을 끊어 놓았고, 이어서 ‘나’더러, 끝장을 내, 나지막하게 말했고, ‘나’는 삽날로 매더스 노인의 턱을 한 번, 두 번, 세 번… n번 찍어 완전히 보내 버린 후, 미리 파놓은 땅 속에 파묻어 버렸다. 노인을 정신없이 찍는 동안 디브니는 노인의 집에 들어가 검은 금고를 어디다 숨겨 놓았다. 이런 세상에.


  몇 년 후, 디브니가 금고를 숨긴 장소를 알려주어 ‘나’는 그것을 찾으러 노인의 집에 다시 들어갔는데, 에그머니, 한 방에서 의자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매더스 노인과 맞닥뜨리고 만다. 그와 조금 이야기를 하다가 금고를 찾으러 집 밖에 나가 노인이 일러준 곳의 경찰서로 가는데, 거기에 경찰관 세 명이 있으니, 첫째가 플렉 경사요, 둘째가 순경 맥크루스킨이고, 셋째가 순경 폭스가 된다. 그러니까 책의 제목 “세 번째 경찰관”은 순경 폭스라는 말씀.

  그런데 여기까지, 즉 ‘나’가 경찰들을 만나는 순간, 본격적인 책읽기의 고난의 행군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모르시지? 이제부터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초판 표지


  예를 들어 첨부한 아일랜드 원서의 표지처럼 한 사람이 거울을 들고 더 큰 거울 앞에 서 있으면 n개의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자기 모습을 보는 행위는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울과 거울 사이라면 빛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도 아주아주, 아주아주 짧지만 일정 시간이 필요하니까 거울 속에 n번 반사되어 아주 작은 ‘나’는 시간이 거꾸로 흘러 좀 젊은 ‘나’의 모습일 거란 것.

  빛의 속도? 초속 30만킬로미터. 거울과 거울 사이가 1미터라면 왔다 갔다 하는 거리는 2미터. 빛이 2미터를 왕복하는 시간은 2/300,000,000 초. 혹시 이 시간을 zero 0이 아닌 건 확실하니까 거울 속 나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실 분 있나? 그럼 이 책을 읽지 마시라. 3억 분의 2초는 zero 0이다. 그래서 이걸 주장하는 맥크루스킨의 말은 틀렸다.

  이 허들을 넘어가도 여전히 골 좀 썩일 일이 쌔고 쌨다. 나 같은 경우엔 각주 보는 일이 너무 힘들다. 드 셀비의 주장을 자주 인용하는데, 이 내용에 대해 오브라이언이 주석을 많이 첨부했고, 주석의 글씨가 너무 작아, 나는 주석 읽기를 포기했다. 이제 눈이 전 같지 않다. 그걸 읽어야 지금 ‘나’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될 터인 것을 알고도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독자는 다른 이유로 헤맬 것이다.


  하여간 재미있는 책이란 건 확실하다. 읽는 일이 좀 고되서 그렇지. 힘내서 한 번 도전해볼 만한데 다만 읽은 다음에, 아니면 읽는 중에라도 내 욕은 하지 마시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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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6-02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인용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말씀이 딱인 것 같습니다.
저 초판 표지가 잘 보여주네요.
근데 저는 ㅋㅋㅋㅋ 앨리스 싫어해서 ㅋㅋㅋㅋ 이 작품도 걍 그랬던 거 같아요.

Falstaff 2026-06-02 16:31   좋아요 1 | URL
넹. 이거 참, 골 때리는 소설이더라고요. ㅋㅋㅋ 뭐 읽다 보면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고 ㅋㅋㅋ
 
죔레는 거기에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30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김보국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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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작품. 모두 11장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다 합해 11개의 문장이겠지? 아니다. 나도 놀랐다.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다 읽어봤는데,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짧은 문장으로 <죔레는 거기에>를 시작한다.


  “더 이상은 불을 때지 않겠다.”


  이렇게 결심한 사람은 주인공 카다 요제프. 오늘 1월 6일에 92세가 된 노인이다. 이 정도로 나이가 든 노인이 주인공이면 많은 소설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사망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크러스너호르커이도 그럴까? 안 알려드린다. 재미있는 책이니 직접 확인하시라는 의미에서. <뱅크하임 남작의 귀향> 때부터 알아봤는데, 그거 말고도 <헤르쉬트 07769>처럼 크러스너호르커이 역시 종말론적인 무게감 넘치는 작품이 아닌, 읽으면서 키득거릴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도 썼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 자체가 익살극이다.


  카다 요제프의 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헝가리 역사를 13세기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이 당시 몽골의 오코타이 칸이 헝가리 왕국을 점령하고 벨러4세에게 철군의 조건으로 아름다운 공주 욜란더를 자신의 아들이자 위대한 칭기즈칸의 손자인 카단 칸의 아내로 맞았다. 그런데 혈통이 문제다. 카단 칸은 노랑머리 여인과의 혼인 사실을 몽골의 왕족한테 보고하지 않았고, 벨러4세 역시 이 혼인을 교황이 승인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 숨겼으나, 카단 칸과 욜란더 사이에 아들이 생긴다면 헝가리의 아르파드 왕가를 이어갈 보험으로 사용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

  카단 칸이 욜란더를 지극히 사랑해서 철군과 함께 돌아가지 않고 헝가리 땅에 살며 성姓 ‘카단’에서 n자를 삭제해 카다라는 이름으로 가계를 이루어, 아름다운 욜란더의 남편이자 아들 카다 벨러의 아버지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카다는 5년 후에 숟가락을 놨다. 아직 법적으로 혼인한 적이 없는 욜란더는 이후에 폴란드의 한 공작과 다시 결혼해 갔고, 아들은 헝가리 왕 벨러4세가 거두어 철통 같은 보안 속에서 자라며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신자가 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하는 법. 이때 헝가리 왕가 아르파드 가문의 카다 벨러라는 이름을 받아, 이후 750년간 혈통을 유지해왔으나, 망한 왕조의 왕가들이 늘 그러하듯, 이 후손들도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으니, 마지막 아들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카다 요제프 되시겠다.


  문제는 1944년의 일. 19세기 후반부터 1차세계대전 종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란 이름으로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의 황제들에게 지배를 받은 헝가리 사람들은, 2차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다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망령을 떠올렸다. 불안은 근거 없이 찾아오는 법. 과거의 그들이 종전과 혼란의 틈을 타 다시 헝가리를 넘볼지도 모른다는 다급 및 조급증이 생겨 1944년 6월, 당시 왕이 없는 헝가리 왕국의 섭정을 맡은 호르티 미크로시가 아르파드 왕가의 유일한 후손인 젊은 카다 요제프를 부다 성으로 불러서 갔더니, 그곳에는 호르티 섭정을 위시해 총리와 장관들, 독일국가를 대표한 사복입은 사람 한 명과 국회의장, 세르디 유스티니안 대주교 추기경 등이 모여, 카다 요제프를 헝가리 왕국의 적통을 이어받은 왕위에 오르는 대관식을 거행해주었다. 이렇게 주장한다.

  즉 자신은 벌써 왕이며, 이때 에스테르곰 대주교 추기경이 자기 머리 위에 아르파드 왕조의 창업군주 이슈트반1세가 만든 왕관을 씌어 주었으며, 대관식이 끝난 후에는 섭정이 직접 관을 내려 다시 추기경에게 보관하라고 당부했단다. 호르티 섭정은 카다 요제프가 헝가리 왕국의 왕임은 사실이지만 지금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이를 널리 공포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여 이 영광스러운 대관의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신임 왕 카다 요제프1세를 포함하여 모두 대관식과 새로운 왕의 즉위를 엄중한 비밀로 유지하기 바란다고 당부, 사실상 명령을 내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왕위에 관한 것을 함부로 입에 올렸다가는 한 생명 골로 가는 건 식은 죽 먹기라서 누구보다 당사자인 카다 요제프 본인이 이 나이가 되도록 합죽이가 됩시다, 합! 입을 다물고 살았건만, 21세기 들어 세월이 하수상해지고 헝가리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자 위기감을 느낀 일부 세력들이 어떻게, 어떻게 카다 요제프의 정체를 알아내 일차 왕림하면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익살극 또는 피카레스크 소설의 막이 올라간다.

  그들은 92세의 노인이지만 그 나이치고 상당히 건강한 수준이며 정신도 멀쩡한 것처럼 보이는 할배를 꼼짝도 하지 않고 상당한 시간을 그저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경의를 표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고, 이제부터 당신을 섬길 것입니다, 폐하, 당신 앞에서는 앉지도 않겠습니다, 이렇게 예를 차리는 거였다. 이때까지 만해도 노인은 불을 때지 않는 실내에서 난로 위에 전기 풍로를 올려놓고 감자국수를 끓이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다시 전열기로 달려가 국수가 냄비 바닥에 눌어붙지 말라고 휘휘 젓고 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겠지.

  그들이 결국 알아낸 걸까? 이제 막 영국 여왕으로부터 성 조지기사단의 검을 받았고, 오래전에 이미 그 기사단에 선출되었다는 것을?

  그럼 이들은 누구일까? 첫번째 방문에는 모두 여덟 명이 왔다. 늙은 요제프는 일곱인지 여덟인지 헛갈리지만. 그들을 직업별로 보면 전기 관련 기술자, 기타치는 유랑가수, 자동차 도장공, 토종 종마 사육사, 말단 경찰, 고문 회계사, 체구가 다부진 퇴역 원사, ‘교수’라고 불리는 전직 고등학교 역사 교사. 이들 가운데 기타치는 유랑가수의 이름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이 양반이 시도 썼으니 유랑가수라고 해도 좋겠지. 기타도 치지만 동유럽 전통악기 발랄라이카도 연주하고 작곡도 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래 폐하께 충성을 바치는 인물. 그럼, 이름이 어디서 왔는데!

  이 모임의 이름은 KP. 헝가리어로 Koordinalt Platform, “조율된 플랫폼.” 왕정복고 플랫폼 회원들이다.


  KP 단원이 두번째로 방문을 했을 때, 요제프는 옷장 위에서 성 조지기사단의 검을 꺼내 보여주며 영국 여왕이 기사 작위를 수여하며 자신한테 보낸 편지, 사실은 편지 봉투를 보여준다. 에게를로바 시, 탄치치 미하이 거리 23/d번지. 아, 또 주소가 나온다. 헤르쉬트 07769에 이어. 세번째 방문 때는 훨씬 많은 단원들이 모였는데, 이때는 헝가리인이 미국으로 밀반출했던 이슈트반1세의 왕관을 1978년 1월에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되돌려줄 때 요제프에게 보낸 편지의 복사본도 보여준다. 당연히 원본은 훼손 방지를 위해 숨겨 놓았단다.

  카다 요제프의 집안도 헝가리의 세게드에서 살다가 19세기 말에 미국 디트로이트에 자리를 잡았고, 마지막에는 카다 집안의 법적 상속자로 아내와 함께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언덕 제일 꼭대기에 있는 집, 미하이 거리 23/d번지로 옮겨왔다. 슬하에 딸 하나만 두어 카다 가문의 맥은 자신 대에서 막을 내려야 할 터. 그래도 자기가 카다 가문이 헝가리 아르파드 왕조의 맥을 이은 것처럼 두 외손자 가운데 하나가 대를 이어 왕조를 물려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위대한 아르파드 왕조를 계승하고 이미 1944년에 대관식까지 한 정식 왕이기는 하지만 세월이 변했으니 폐하라는 거북한 호칭 말고 그저 “요지 아저씨”라고 불러주기를 청한다.


  여기서 독자가 결정해야 할 것은, 요지 아저씨가 주장한 것들, 성 조지기사단의 검을 영국 여왕으로부터 받았고, 이미 기사단 신분으로 기사 작위도 얻었으며, 벌써 대관식을 거행한 정식 왕이기 때문에 새롭게 대관식을 여는 번거로운 절차 말고, 그냥 왕의 자리, 왕의 의자가 있으면 뚜벅뚜벅 걸어가서 앉기만 하면 끝난다는 주장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거다. 이에 따라 소설을 이해하는/따라가는 방법이 다를 수 있을 텐데, 한꺼번에 두 가지 선택을 다 감안하면서 읽으면 더 재미나다. 한편으로는 정식 왕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될 수도 있고, 또 한 편으로는 노망난 후안무치의 설레발꾼이 벌이는 난장판을 구경할 수 있어서 넘치게 즐길 수 있으니까.

  근데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하거나, 왕을 참칭하는 행위는,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서 사실 목숨을 내놓고 주사위를 던져야 할 만큼 무시무시한 작업이다. 아무리 헝가리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고 경제적으로도 불안하지만 감히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왕정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다니,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크러스너호르커이 말고 다른 한 명을 고르라면 작가가 직접 감사의 말을 전한 토마스 핀천 정도. 또 있나? <황제를 위하여>를 쓴 이문열?

  크러스너호르커이의 팬이여, 일독을 망설이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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