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경찰관 을유세계문학전집 147
플랜 오브라이언 지음, 이정화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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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랜 오브라이언. 처음 듣는 이름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것 같다. 완성한 소설은 다섯 편 밖에 안 되는 과작 작가인데도 그렇다.

  1911년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 영국 관세청 공무원 아버지와 북아일랜드 민족주의자 집안 출신 어머니 사이의 12남매 가운데 (아마도) 둘째 아들 ‘브라이언 오놀란’으로 태어나 더블린에서 학교를 마쳤다. 당시 남학교는 거의 비슷했던 모양이라, 폭력과 체벌이 상습적으로 벌어지던 청소년 시절을 꿋꿋하게 견뎌냈지만 평생의 트라우마로 작용했는지 더블린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도 쓰면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나머지 평생을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이이가 멀쩡한 본명을 두고 여러가지 필명을 사용한 건, 당시 아일랜드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이 필수사항이라 가끔 신문에 기고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단다. 이어 소설도 몇몇 다른 이름으로 발표했지만 함께 일하는 사무실 사람들은 내놓고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들 이이 작품인 줄 알았다고. 자기가 공무원이면서 공무원 사회를 우스갯거리로 삼고 그랬다나.

  알코올 중독자는 끝이 좋지 못하다. 술 많이 마시면 작건 크건 반드시 사고를 치게 된다. 오브라이언은 술을 마셨다 하면 주로 주둥이에 발동이 걸려 높은 양반들과 조직에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누구나 인정하는 업무처리 능력을 보였다니, 그것 참 별일일세. 인후두암에 걸린 오브라이언은 그러나 1966년 만우절날 심장마비로 갔다. 이이의 아빠가 열두 아이들을 남겨놓고 일찍 죽는 바람에 소설 쓰는 형하고 열 명의 동생을 먹여 살리는데도 애썼다는 좋은 형, 오빠였다. 동생들 가운데 잘 큰 아이들도 많다. 위키피디아에 다 나온다. 요즘엔 검색만 하면 안 나오는 게 없어.


  <세 번째 경찰관>을 뭐라고 해야 할까? 포스트모던인데 이렇게만 말하면 아쉽다. 이거나 저거나 다 포스트모던이다, 하면 될 정도로 범위가 너무 넓어서 탈이라. 성인용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끼굴을 타고 땅속 나라로 떨어지는 앨리스. 검은 금고를 찾아 저택의 비좁고 깊은 창문을 뚫고 들어가는 ‘나’가 일단 땅속 나라로 들어가거나 창문을 뚫고 들어가 검은 금고를 찾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가면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되는데, 모험도 모험 나름이지, <세 번째 경찰관>은 아이들 읽는 책이 아니라서 별의 별 말도 안 되는 발명품도 나오고, 희한한 이론도 등장하고, 결국 이름 없는 ‘나’는 재판 없이 교수형을 선고받아 목 매달리려던 순간 기적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해피엔드일 거 같지? 안 알려드린다.

  왜 ‘나’가 자기 발로 경찰서를 찾아가는 지 알아보자. 놀랍게도 이 일은 살인 사건과 관련 있다.

  ‘나’는 그렇게 젊지 않다. 오래 전에 태어났다고만 나오는데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간에는 확실하게 젊지 않다. 아버지는 진정한 농부였고 어머니는 손님이 별로 많이 찾지 않는 술집 주인이었다. 그래도 시골에서는 제법 부유한 농장을 꾸리고 있었고, 형편도 넉넉했으며, 세 가족은 나름대로 충분히 행복했다고 기억한다. ‘나’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아버지는 남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로 말도 잘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해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양치기개가 순서대로 죽었다. ‘나’는 졸지에 고아가 됐고, ‘나’는 어른들에 의하여 곧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오브라이언이 생이 끝나는 날까지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던 폭력과 체벌의 난장판인 남자 기숙학교로. 근데 책에서는 기숙학교에서 고생하는 장면은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열여섯 살이 되던 3월 7일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학교에서 마지막 두 페이지가 없는 드 셀비의 책 <금빛 시간> 초판을 발견한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부터 남은 평생을 드 셀비를 연구하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결국 ‘나’가 저지른 치명적인 범죄도 드 셀비를 위하여 벌인 짓일 수 있다. ‘나’가 학교에 있는 동안 농장과 술집은 ‘존 디브니’라는 남자가 맡았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이 고용해서 농장과 술집을 경영하고 대신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월급을 받아 생활한다. 이이의 급료는 아버지가 사망 전에 모든 비용을 현금으로 이미 지불한 총 자금에서 나온다.

  20세에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집에 가는 대신 몇 달 동안 드 셀비의 저서 같은 것도 더 구할 겸 견문을 넓히려 여행 중에 큰 사고를 당한 ‘나’는 왼쪽 다리 대신 나무 의족을 단 채 집에 돌아왔다. 근데 존 디브니는 말로만 곧 그만두고 집에 갈 거라고 하더니 끝내 그럴 마음이 없이 뭉개버린다. ‘나’가 서른 살이 될 무렵 디브니와 ‘나’는 좋은 친구로 이름을 내기 시작해 동네 사람들이 “아일랜드를 통틀어 제일 가는 두 크리스천”이라는 평판을 받을 만큼 겉 보기에 좋은 친구였지만 세상의 어떤 두 사람도 사실 이 두 사람만큼 서로를 격렬히 싫어할 수 없을 정도로 원수지간이었다.

  농사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나’는 드디어 “드 셀비 색인”의 원고를 다 썼다. 이때 디브니가 살살 꼬이기 시작한다. 책을 내라고. ‘나’ 수준의 향토 연구자가 책을 내려면 자가 출판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니, 디브니는 50년 동안 가축거래 사업을 하다가 은퇴를 했으나 여전히 대리인을 통해 사업을 하고 있는 이웃 매더스 노인에게 돈을 빌리라고 설득한다. 3천 파운드 이상의 현금은 틀림없이 가지고 있을 거라나.

  그리하여 어느날 밤, 존 디브니와 ‘나’는 속이 빈 쇠막대로 직접 만든 자전거 펌프(디브니)와 삽(‘나’)을 가지고 매더스 노인 집 근처로 갔는데, 노인과 딱 마주치자마자 먼저 디브니가 노인의 뒷목을 힘차게 가격해 거의 목숨을 끊어 놓았고, 이어서 ‘나’더러, 끝장을 내, 나지막하게 말했고, ‘나’는 삽날로 매더스 노인의 턱을 한 번, 두 번, 세 번… n번 찍어 완전히 보내 버린 후, 미리 파놓은 땅 속에 파묻어 버렸다. 노인을 정신없이 찍는 동안 디브니는 노인의 집에 들어가 검은 금고를 어디다 숨겨 놓았다. 이런 세상에.


  몇 년 후, 디브니가 금고를 숨긴 장소를 알려주어 ‘나’는 그것을 찾으러 노인의 집에 다시 들어갔는데, 에그머니, 한 방에서 의자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매더스 노인과 맞닥뜨리고 만다. 그와 조금 이야기를 하다가 금고를 찾으러 집 밖에 나가 노인이 일러준 곳의 경찰서로 가는데, 거기에 경찰관 세 명이 있으니, 첫째가 플렉 경사요, 둘째가 순경 맥크루스킨이고, 셋째가 순경 폭스가 된다. 그러니까 책의 제목 “세 번째 경찰관”은 순경 폭스라는 말씀.

  그런데 여기까지, 즉 ‘나’가 경찰들을 만나는 순간, 본격적인 책읽기의 고난의 행군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모르시지? 이제부터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초판 표지


  예를 들어 첨부한 아일랜드 원서의 표지처럼 한 사람이 거울을 들고 더 큰 거울 앞에 서 있으면 n개의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자기 모습을 보는 행위는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울과 거울 사이라면 빛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도 아주아주, 아주아주 짧지만 일정 시간이 필요하니까 거울 속에 n번 반사되어 아주 작은 ‘나’는 시간이 거꾸로 흘러 좀 젊은 ‘나’의 모습일 거란 것.

  빛의 속도? 초속 30만킬로미터. 거울과 거울 사이가 1미터라면 왔다 갔다 하는 거리는 2미터. 빛이 2미터를 왕복하는 시간은 2/300,000,000 초. 혹시 이 시간을 zero 0이 아닌 건 확실하니까 거울 속 나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실 분 있나? 그럼 이 책을 읽지 마시라. 3억 분의 2초는 zero 0이다. 그래서 이걸 주장하는 맥크루스킨의 말은 틀렸다.

  이 허들을 넘어가도 여전히 골 좀 썩일 일이 쌔고 쌨다. 나 같은 경우엔 각주 보는 일이 너무 힘들다. 드 셀비의 주장을 자주 인용하는데, 이 내용에 대해 오브라이언이 주석을 많이 첨부했고, 주석의 글씨가 너무 작아, 나는 주석 읽기를 포기했다. 이제 눈이 전 같지 않다. 그걸 읽어야 지금 ‘나’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될 터인 것을 알고도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독자는 다른 이유로 헤맬 것이다.


  하여간 재미있는 책이란 건 확실하다. 읽는 일이 좀 고되서 그렇지. 힘내서 한 번 도전해볼 만한데 다만 읽은 다음에, 아니면 읽는 중에라도 내 욕은 하지 마시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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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6-02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인용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말씀이 딱인 것 같습니다.
저 초판 표지가 잘 보여주네요.
근데 저는 ㅋㅋㅋㅋ 앨리스 싫어해서 ㅋㅋㅋㅋ 이 작품도 걍 그랬던 거 같아요.

Falstaff 2026-06-02 16:31   좋아요 1 | URL
넹. 이거 참, 골 때리는 소설이더라고요. ㅋㅋㅋ 뭐 읽다 보면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고 ㅋㅋㅋ
 
죔레는 거기에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30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김보국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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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작품. 모두 11장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다 합해 11개의 문장이겠지? 아니다. 나도 놀랐다.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다 읽어봤는데,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짧은 문장으로 <죔레는 거기에>를 시작한다.


  “더 이상은 불을 때지 않겠다.”


  이렇게 결심한 사람은 주인공 카다 요제프. 오늘 1월 6일에 92세가 된 노인이다. 이 정도로 나이가 든 노인이 주인공이면 많은 소설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사망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크러스너호르커이도 그럴까? 안 알려드린다. 재미있는 책이니 직접 확인하시라는 의미에서. <뱅크하임 남작의 귀향> 때부터 알아봤는데, 그거 말고도 <헤르쉬트 07769>처럼 크러스너호르커이 역시 종말론적인 무게감 넘치는 작품이 아닌, 읽으면서 키득거릴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도 썼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 자체가 익살극이다.


  카다 요제프의 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헝가리 역사를 13세기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이 당시 몽골의 오코타이 칸이 헝가리 왕국을 점령하고 벨러4세에게 철군의 조건으로 아름다운 공주 욜란더를 자신의 아들이자 위대한 칭기즈칸의 손자인 카단 칸의 아내로 맞았다. 그런데 혈통이 문제다. 카단 칸은 노랑머리 여인과의 혼인 사실을 몽골의 왕족한테 보고하지 않았고, 벨러4세 역시 이 혼인을 교황이 승인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 숨겼으나, 카단 칸과 욜란더 사이에 아들이 생긴다면 헝가리의 아르파드 왕가를 이어갈 보험으로 사용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

  카단 칸이 욜란더를 지극히 사랑해서 철군과 함께 돌아가지 않고 헝가리 땅에 살며 성姓 ‘카단’에서 n자를 삭제해 카다라는 이름으로 가계를 이루어, 아름다운 욜란더의 남편이자 아들 카다 벨러의 아버지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카다는 5년 후에 숟가락을 놨다. 아직 법적으로 혼인한 적이 없는 욜란더는 이후에 폴란드의 한 공작과 다시 결혼해 갔고, 아들은 헝가리 왕 벨러4세가 거두어 철통 같은 보안 속에서 자라며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신자가 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하는 법. 이때 헝가리 왕가 아르파드 가문의 카다 벨러라는 이름을 받아, 이후 750년간 혈통을 유지해왔으나, 망한 왕조의 왕가들이 늘 그러하듯, 이 후손들도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으니, 마지막 아들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카다 요제프 되시겠다.


  문제는 1944년의 일. 19세기 후반부터 1차세계대전 종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란 이름으로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의 황제들에게 지배를 받은 헝가리 사람들은, 2차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다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망령을 떠올렸다. 불안은 근거 없이 찾아오는 법. 과거의 그들이 종전과 혼란의 틈을 타 다시 헝가리를 넘볼지도 모른다는 다급 및 조급증이 생겨 1944년 6월, 당시 왕이 없는 헝가리 왕국의 섭정을 맡은 호르티 미크로시가 아르파드 왕가의 유일한 후손인 젊은 카다 요제프를 부다 성으로 불러서 갔더니, 그곳에는 호르티 섭정을 위시해 총리와 장관들, 독일국가를 대표한 사복입은 사람 한 명과 국회의장, 세르디 유스티니안 대주교 추기경 등이 모여, 카다 요제프를 헝가리 왕국의 적통을 이어받은 왕위에 오르는 대관식을 거행해주었다. 이렇게 주장한다.

  즉 자신은 벌써 왕이며, 이때 에스테르곰 대주교 추기경이 자기 머리 위에 아르파드 왕조의 창업군주 이슈트반1세가 만든 왕관을 씌어 주었으며, 대관식이 끝난 후에는 섭정이 직접 관을 내려 다시 추기경에게 보관하라고 당부했단다. 호르티 섭정은 카다 요제프가 헝가리 왕국의 왕임은 사실이지만 지금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이를 널리 공포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여 이 영광스러운 대관의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신임 왕 카다 요제프1세를 포함하여 모두 대관식과 새로운 왕의 즉위를 엄중한 비밀로 유지하기 바란다고 당부, 사실상 명령을 내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왕위에 관한 것을 함부로 입에 올렸다가는 한 생명 골로 가는 건 식은 죽 먹기라서 누구보다 당사자인 카다 요제프 본인이 이 나이가 되도록 합죽이가 됩시다, 합! 입을 다물고 살았건만, 21세기 들어 세월이 하수상해지고 헝가리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자 위기감을 느낀 일부 세력들이 어떻게, 어떻게 카다 요제프의 정체를 알아내 일차 왕림하면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익살극 또는 피카레스크 소설의 막이 올라간다.

  그들은 92세의 노인이지만 그 나이치고 상당히 건강한 수준이며 정신도 멀쩡한 것처럼 보이는 할배를 꼼짝도 하지 않고 상당한 시간을 그저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경의를 표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고, 이제부터 당신을 섬길 것입니다, 폐하, 당신 앞에서는 앉지도 않겠습니다, 이렇게 예를 차리는 거였다. 이때까지 만해도 노인은 불을 때지 않는 실내에서 난로 위에 전기 풍로를 올려놓고 감자국수를 끓이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다시 전열기로 달려가 국수가 냄비 바닥에 눌어붙지 말라고 휘휘 젓고 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겠지.

  그들이 결국 알아낸 걸까? 이제 막 영국 여왕으로부터 성 조지기사단의 검을 받았고, 오래전에 이미 그 기사단에 선출되었다는 것을?

  그럼 이들은 누구일까? 첫번째 방문에는 모두 여덟 명이 왔다. 늙은 요제프는 일곱인지 여덟인지 헛갈리지만. 그들을 직업별로 보면 전기 관련 기술자, 기타치는 유랑가수, 자동차 도장공, 토종 종마 사육사, 말단 경찰, 고문 회계사, 체구가 다부진 퇴역 원사, ‘교수’라고 불리는 전직 고등학교 역사 교사. 이들 가운데 기타치는 유랑가수의 이름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이 양반이 시도 썼으니 유랑가수라고 해도 좋겠지. 기타도 치지만 동유럽 전통악기 발랄라이카도 연주하고 작곡도 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래 폐하께 충성을 바치는 인물. 그럼, 이름이 어디서 왔는데!

  이 모임의 이름은 KP. 헝가리어로 Koordinalt Platform, “조율된 플랫폼.” 왕정복고 플랫폼 회원들이다.


  KP 단원이 두번째로 방문을 했을 때, 요제프는 옷장 위에서 성 조지기사단의 검을 꺼내 보여주며 영국 여왕이 기사 작위를 수여하며 자신한테 보낸 편지, 사실은 편지 봉투를 보여준다. 에게를로바 시, 탄치치 미하이 거리 23/d번지. 아, 또 주소가 나온다. 헤르쉬트 07769에 이어. 세번째 방문 때는 훨씬 많은 단원들이 모였는데, 이때는 헝가리인이 미국으로 밀반출했던 이슈트반1세의 왕관을 1978년 1월에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되돌려줄 때 요제프에게 보낸 편지의 복사본도 보여준다. 당연히 원본은 훼손 방지를 위해 숨겨 놓았단다.

  카다 요제프의 집안도 헝가리의 세게드에서 살다가 19세기 말에 미국 디트로이트에 자리를 잡았고, 마지막에는 카다 집안의 법적 상속자로 아내와 함께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언덕 제일 꼭대기에 있는 집, 미하이 거리 23/d번지로 옮겨왔다. 슬하에 딸 하나만 두어 카다 가문의 맥은 자신 대에서 막을 내려야 할 터. 그래도 자기가 카다 가문이 헝가리 아르파드 왕조의 맥을 이은 것처럼 두 외손자 가운데 하나가 대를 이어 왕조를 물려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위대한 아르파드 왕조를 계승하고 이미 1944년에 대관식까지 한 정식 왕이기는 하지만 세월이 변했으니 폐하라는 거북한 호칭 말고 그저 “요지 아저씨”라고 불러주기를 청한다.


  여기서 독자가 결정해야 할 것은, 요지 아저씨가 주장한 것들, 성 조지기사단의 검을 영국 여왕으로부터 받았고, 이미 기사단 신분으로 기사 작위도 얻었으며, 벌써 대관식을 거행한 정식 왕이기 때문에 새롭게 대관식을 여는 번거로운 절차 말고, 그냥 왕의 자리, 왕의 의자가 있으면 뚜벅뚜벅 걸어가서 앉기만 하면 끝난다는 주장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거다. 이에 따라 소설을 이해하는/따라가는 방법이 다를 수 있을 텐데, 한꺼번에 두 가지 선택을 다 감안하면서 읽으면 더 재미나다. 한편으로는 정식 왕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될 수도 있고, 또 한 편으로는 노망난 후안무치의 설레발꾼이 벌이는 난장판을 구경할 수 있어서 넘치게 즐길 수 있으니까.

  근데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하거나, 왕을 참칭하는 행위는,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서 사실 목숨을 내놓고 주사위를 던져야 할 만큼 무시무시한 작업이다. 아무리 헝가리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고 경제적으로도 불안하지만 감히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왕정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다니,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크러스너호르커이 말고 다른 한 명을 고르라면 작가가 직접 감사의 말을 전한 토마스 핀천 정도. 또 있나? <황제를 위하여>를 쓴 이문열?

  크러스너호르커이의 팬이여, 일독을 망설이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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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종려나무 - 예루살렘이여, 만약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95
윌리엄 포크너 지음, 권지은 옮김 / 민음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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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나파토파를 벗어나 미 대륙을 종횡무진하는 <야생 종려나무>와 남부 미시시피 일대의 죄수 이야기 <노인>을 섞어 놓았다. 전에 영화나 소설에서 본 플롯인 듯한 기시감. 하지만 새삼스레 놀라 자빠진 포크너의 문장이라니! 이이더러 괜히 전설이라 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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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 소시민의 칠거지악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승진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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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히트는 좀 읽었다. 웃긴게, 나는 작곡가 쿠르트 바일을 통해 브레히트를 알게 된 점. 이 책에서도 <결혼식>보다 <소시민의 칠거지악>을 읽기 위해 골랐는데, 독일어로(움라우트 표기 생략) Die Sieben Todsunden der Kleinburger, 일곱가지 죽을 죄. 이것 역시 쿠르트 바일이 작곡한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먼저 들었다. 근데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더라는 것. 이 작품이 바일이 브레히트한테 오페라 작곡을 위한 대본 성격의 희곡이 아니라, 발레극의 대본을 써달라고 해서 망명지인 파리에서 일부일 만에 썼다고, 역자 해설에 나온다. 해설을 읽은 다음에야 오페라가 이해가 되는 거였다.


  브레히트는 나치의 마수를 피해 모스크바에서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을 지나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매카시 선풍이 불자 고국인 독일의 동베를린으로 귀환한 공산주의자. 그리하여 <소시민…>의 칠거지악, 일곱가지 죽을 죄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돈을 벌고 큰 집을 짓는 성공을 하기 위하여 저지르면 안 되는 죄목을 노래한다. 아주 지독한 반어법을 썼다.


  첫째. 불의를 저지를 때 게으름을 피우는 행위

  둘째. 자신의 상품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자만

  셋째. 비열함에 대해 분노를 표하는 행위

  넷째. 스스로를 해하는 절제 없는 폭식

  다섯째.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랑

  여섯째. 배척당할 수 있게 탐욕을 드러내는 행위

  일곱째. 더러운 방식으로 성공한 행복한 사람을 시기하는 행위




  죽을 죄가 저러니 가사를 읽고 도무지 이게 무슨 내용인 줄 꿈 속에서나마 알아차릴 수가 있었으랴. 안나 1과 안나 2는 같은 사람으로 봐도 좋은데, 이들이 성공을 위하여 루이지애나에서 도시로 흘러든다. 출발한 곳 루이지애나에서 부르는 노래가 첫번째 죽을 죄. 이것이 서곡. 1곡은 그냥 도시. 뉴올리언스 정도로 보면 된다. 이곳에서부터 안나 자매는 온갖 나쁜짓을 하는 데 게으름이 없다. 2곡은 멤피스. 카바레 댄서로 취직을 하고, 3곡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영화배우를 한다. 4곡의 필라델피아에서 스타가 되었는데 안나2가 먹성이 좋아 살이 찌기 시작해 폭식이 죽을 죄가 되는 것이고, 5곡은 보스톤에서 부자 남자 에드워드와 가난한 남자 아돌프 가운데 부자를 꼬인다. 이어 6곡으로 가면 테네시, 부자 남자 에드워드는 안나2 때문에 거렁뱅이가 됐고 이를 비관해 권총자살 해버렸다. 이어서 두어 명의 남자도 목을 매든지 빌딩 옥상에서 자유낙하 해버렸다. 마지막 7곡에서 두 안나는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다시 루이지애나로 돌아와 큰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산다. 나는 행복하니까 시기하지 말라는 것. 흠, 그랬군.

  그런데 <소시민…>은 단연 무대 공연을 보아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싶다. 유튜브에 Seven deadly sin을 검색하면 화려한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웃기고, 그로테스크하며 한편으로는 험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브레히트-바일 콤비가 원래 좀 그렇다.


  사실은 원래 책의 목적인 <소시민의 칠거지악>보다 <결혼식>을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단막극. 결혼식이 막 끝나고 신혼부부 마리아와 야콥의 집에서 축하연을 하며 생긴 일이다. 처음엔 정상적인 파티로 시작하지만 점점 엉망진창이 된다. 야콥은 아마추어치고 자신의 손재주에 자만심이 있어서 집안의 가구를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 아교도 자기가 끓여 나무를 붙였는데 극의 후반으로 가면 이 아교에서 나는 냄새가 등장인물들을 환장하게 만들어버린다. 근데 이건 나중 일이고 처음엔 축하연에 모인 사람들이 전부 자기 이야기만 떠들어댄다. 그러니 소통도 없고 오직 시끄러울 수밖에. 그리고 당연히 말하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과 또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도 생길 수밖에. 그게 점점 심해지면 나중엔 신랑, 신부, 마리아와 야콥 사이에도 껄끄럽게 변한다.

  각자 떠들어대다가 드디어 춤 출 시간이 되지만, 전통적으로 제일 첫 춤은 신혼부부가 마빡을 맞대고 추어야 하거늘 각자 다른 파트너를 골라 춤을 추기 시작한다. 조금 후에는 사람들이 기대고 있는 가구가 뿌지직 부러지거나 다리가 떨어지거나 하여간 뭔가가 다 망가지기 시작한다. 사람들 사이도 마찬가지. 마리아의 동생은 손님으로 온 남자와 즉석 연애를 시작하고, 하객 한 명은 마리아가 결혼하기도 전에 임신을 한 것을 은근히 비꼰다. 이 시절이 1920년대라서 혼전임신이 상당한 수치였던 모양이다. 사태가 심각해진데다가 앞에서 말한 아교 냄새, 악취가 진동해 축하객들이 모두 퇴장한다.

  드디어 둘만 남은 신혼부부. 이들은 젊은 사람답게 금방 화해하고, 이제 남은 게 딱 하나 있지? 그걸 치루기 위하여 야콥이 마리아를 번쩍 들고 침실로 가서, 침대 위에 내려놓는 순간, 와지끈, 침대마저 부서지고 만다.

  역자 이승진 원광대 명예교수는 이 작품을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비판, 개인의 소멸 같은 말을 보태 설명하고 있다. <소시민…>은 그렇게 해석을 해야 감상이 가능하지만, <결혼식>은 그저 재미있는 코미디로 생각하고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브레히트 참 매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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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티
테주 콜 지음, 한기욱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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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에 미국 미시간주에서 나이지리아 부모의 네 자매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아마도 테주 콜이요루바족인 거 같은데, 나이지리아의 소설가 가운데 이보족이 아닌 종족은 테주 콜이 처음이다. 치누아 아체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치고지에 오비오마, 전부 이보족이다. 따라서 작품 속에 종족간 분쟁에 따른 피해가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나이지리아 작가이기도 하다.

  나이지리아의 있는 집 사람들은 대개 영국이나 미국으로 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귀국해 고급관리 등 지배계층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테주 콜의 부모도 미국으로 가서 대학에 다니다가 테주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단 엄마와 어린 테주만 먼저 나이지리아에 돌아온다. 아빠는 MBA를 딴 뒤에 귀국해 가족과 합류했다고 위키피디아에 쓰여 있다. 테주 콜은 17세가 되자 자기 출생지인 미시간 칼라마주로 돌아가 칼라마주 칼리지에서 학사, 이후 미시간 주립대인 것 같은데 거기 의과대학에 진학했다가 중도작파하고 런던 대학을 거쳐 컬럼비아 대학으로 가서 미술사 석사를 받았다.

  그리하여 이이가 쓴 첫 장편소설 <오픈 시티>의 주인공 줄리어스도 (컬럼비아 대학이 있는) 뉴욕의 종합병원에서 정신의학과 전임의 과정을 수료 중인 나이지리아계 미국인으로 설정했다. 요루바족이기는 한데, 아빠가 나이지리아 요루바족, 엄마는 금발의 독일 여자로 설정했다. 유럽-아프리카 혼혈로 한 이유는, 작품 속에 줄리어스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가서 3주 정도 산책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인 듯 보인다.


  내가 왜 이 책을 골랐을까? 무려 1년 가까이 도서관 관심도서로 올려놓았던 건 또 왜?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지금을 잊었지만.

  하여간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장편소설일 경우에 메모할 준비를 딱 마친 상태에서 읽기 시작하는데, <오픈 시티>는 애초에 메모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도시를 산책하면서 세상 오만 것에 대하여 사색하는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먼저 읽었다. 산책? 색깔과 방향은 다르지만 로베르트 발저나 W.G. 제발트의 문법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싶었던 거다.

  그래서 지금 이틀 전에 읽은 책의 독후감 쓰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반면에 읽을 때는 좀 더 집중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뭐 다 좋을 수 있나, 어디.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주인공 줄리어스가 참 나쁜 의사새끼라는 거였다. 학부 3학년 시절 은사였고 지금은 친구로 지내는 사이토 교수를 찾아가 “그에게 최근의 상담 사례 중 하나를 들려주었다.” 오순절교회파라는 보수적인 기독교들로 “그들의 하나뿐인 열세살짜리 아들이 나중에 심각한 불임 위험을 야기하는 백혈병 치료를 곧 받을 예정이었다. 소아과 의사가 그 가족에게 건넨 조언은 소년의 정액을 냉동 보관했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어 결혼했을 때 아내와 인공수정을 하면 자식을 가질 수 있다는 거였다.”

  이걸 지난 시절의 은사한테 이야기해준다고? 의사의 비밀준수 의무는 내다 버렸어? 세상에 둘도 없는 지성으로 묘사하는 은사 사이토는 그걸 듣고 자빠졌어? 뭐 좀 이상하다.

  저 뒤에 가면 정신의학과 의사들도 환자에게 “미쳤다”라는 말을 환자에게 직접 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들끼리 있으면 그런 용어를 사용한다면서, 사실 정신의학과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이 남들한테 인상깊게 해 줄 수 있는 스토리가 무척 많다고 지껄이기도 하는데, 이런 걸 듣는 초기 우울증 예비환자가 될랑말랑한 인간은 더럽게 기분이 나쁘더라는 거, 나빠지더라는 거. 가뜩이나 (특히 우리나라 또는 내 경우) 상담의 진입장벽이 높은 진료과목이 정신의학과인데, 거기 전임의 과정에 있는 새끼 의사이자 불과 1년 후에 개인병원을 동업해 개업할 작자가 이런 수준이니 기분이 좋을 턱이 없지.

  그렇다. 저 위에 말한 오순절교회파 가족의 열세살짜리 소년 이야기 하나가 아니라 몇 개가 더 나온다. 그러면서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나는 친구들이 바라는 대로 그들에게 내 환자들에 관해, 외계인의 방문과 정부의 감시, 벽 속의 목소리, 가족의 음모에 대한 의심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신질환, 특히 편집증 환자의 공포에서 비롯되는 유머러스한 이야기는 언제나 많았다.” (p.396~397)


  딱 위의 생각을 먼저 해서 그렇지 사실 이 책에는 생각해볼 거리가 많다.

  특히 이스라엘과 유대인, 그리고 미국에 의하여 자행되는 폭력이 그렇다. 이 독후감을 업로드할 때는 전쟁이 끝났는지 아직 진행중인지 모르겠는데, 지금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벌인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지역 점령 여부를 보고 있자면, 작중 브뤼셀에서 줄리어스한테 아프리카인 철학자이자 PC방 점원인 파루크가 하는 말이 틀린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뭐라 했느냐 하면:

  “미국이 알카에다야.” 이어서 “미국은 일종의 알카에다야.”

  911 테러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폭파한 알카에다가 아니라 그들과 다르지 않은 방법으로 중동과 아프리카 일부에서 전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력의 근거는 2차 세계대전 앞뒤로 독일 나치에 의하여 학살당한 유대인 6백만명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이 6백만명의 목숨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사람을 학살했고, 땅을 빼앗았고, 그걸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2천년 전에 자기 조상들이 살았다는 이유로. 그럼 우리나라의 조상 가운데 한 국가인 고구려가 중국의 지린성, 헤이룽장성을 지배했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중국인, 만주인, 몽고인, 여진인 등을 다 몰아내고 깔고 앉아도 되겠네?

  파루크는 계속 말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나치 수용소를 지었나? 그리고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어떡하고? 유대인이 아니라서 그들의 죽음은 의미가 덜한 건가? 육백만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를 말해줄게. 그건 유대인이 선택된 민족이라서야. 캄보디아인들은 잊어. 미국 흑인들은 잊어. 이게 유일무이한 고통이야 하는 식이지 (중략) 유대인들은 세상을 침묵시키기 위해 그 숫자를 이용해. 난 사실 정확한 숫자가 뭔지 아무 관심 없어. 젠장, 모든 죽음은 고통이야.” (p.248~249)

  평소 내가 하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자기 종족들이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고 자기들도 다른 종족을 죽여도 된다고 믿는 이스라엘. 나는 현대의 이스라엘이 싫다. 테주 콜도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거 같은데 스스로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여차하면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것이 “반유대주의”를 주장한다고 몰매를 맞을 수 있단다. 우리나라는 모르겠는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상당히 근거가 있을 거 같다.


  이렇게 테주 콜, 또는 주인공 줄리어스는 뉴욕과 브뤼셀 거리거리를 산책하면서 주로 폭력에 대한 심사숙고를 펼쳐간다. 그러다가 저 뒷부분에 가면 줄리어스도 뉴욕의 거리에서 10대 청소년 세 명에게 얻어 터지고 발로 차여 꿰매거나, 이가 부러지거나 빠지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엉망이 되고 손을 밟혀 퉁퉁 붓고, 휴대폰과 지갑을 뺏기는 강도를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읽을 분들을 위해 어떤 것인지 지금 밝힐 수 없지만 줄리어스 역시 한 인간을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만들 폭력을 저지르기도 했다. 자신이 의도적으로 잊고 살았거나, 그것이 피해자에게 그렇게 중요한 폭력이었는지 감을 잡지 못했거나, 잊지도 않았고 감을 못 잡지도 않았지만 굳이 끄집어내어 죄책감에 시달리기 싫었을 수도 있다.

  결국 누구나 폭행을 당하고 폭행을 저지르며 산다. 그렇게 살기는 한다. 나는 아니라고? 그걸 누가 알아. 폭력인 줄 모르면서 저지르는 폭력. 그걸 당신은 한 번도 저질러보지 않았다고?

  사는 건 복잡하다. 아주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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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05-29 07: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영국 문학비평가 제임스 우드가 쓴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에서 봤어요. 지금 찾아보니 ‘익숙한 탈식민주의 요소들과 W. G 제발트의 방랑적 이민자 감수성을 결합‘한 작품이라고 나오네요.
거리를 산책하며 역사의 폭력을 깊게 생각하는 지식인 또한 한 인간을 망가지게 한 폭력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참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사람들...저도 그렇구요. 정말 사는 건 복잡하고 무지 어려운 일입니다. ㅠㅠ

Falstaff 2026-05-29 07:36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인상적인 책이었습니다. 나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꽤 있구나, 하는 점에서 위안을 받기도 했고요. ㅎㅎㅎ 사는 게 다 그렇지요.

그레이스 2026-05-30 12:49   좋아요 0 | URL
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네요! 제발트에게서 그런 영향을 받다니! 참 인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