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퀘이크
커트 보니것 지음, 유정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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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트 보니것 탄생 백주년 기념으로 2022년에 문학동네가 찍은 보니것의 마지막 소설책. 진짜 마지막은 아니고 이 책 찍은 다음에 보니것이 앞으로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했단다. 이때가 1997년이니까 그의 나이 일흔 넷? 다섯? 하여간 그 근방. 70대 중반에 접어든 보니것이 소설을 써 보니 이젠 힘이 달려 은퇴를 선언했겠지. 잘 했다.

  근데 돌려 생각해보면 보니것 자신이 썼지만 읽어보니까 이젠 더 이상 예전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뭘 비교하느냐고? 뭐든지. 하여간. 그래서 딱 지금이 은퇴하기 좋은 시간이란 걸 알아차리고 재빨리 그만 쓰기로 했다면, 비록 작품은 장난기 그득한 촌철살인으로 메워져 있지만,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무릇 노인이란 물러날 때를 알아야 존경이고 뭣이고 간에 얻어 받을 수 있는 거다. 그걸 놓치면 소위 노추老醜, 노망난 꼰대 취급이나 당하는 것이다.


  수십억 년 전 텅 빈 공간에서 빅뱅, 꽈과광 폭발이 일어나 찬란하게 우주가 탄생했다. 그랬다는 거다. 정말 빅뱅이 있었는지 누가 봤어? 사진이라도 찍은 거 있냐고. 그냥 과학자들이 그렇게 추리하는 바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지. 아, 그렇다고 하늘에 게신 우리 아버님이 만든 건 아닌 거 같다.

  커트 보니것의 우주도 물리학자들의 우주 기원설에 입각해 빅뱅이 터진 다음에 한 순간도 빼지 않고, 순간도 순간 나름이라 지금 얘기하는 건 퀙토세컨드quectosecond 즉 10의 -30제곱 초의 시간도 쉬지 않고 계속 팽창했고, 지금도 열라 팽창 중이다. 근데 우주가 잠깐 경기가 났는지 고뿔이라도 걸렸는지 잠깐 딸꾹, 뒷걸음질, 즉 순간적으로 팽창 대신 아주 잠깐, 진짜 잠깐 수축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 지구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졌느냐 하면, 글쎄 시간이 10년 뒤로 훌쩍 넘어가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1991년 2월 17일부터 2001년 2월 13일, 1년에서 사흘 모자란 기간을 다시 한번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했던 거다.

  그리하여 지구상 모든 생물체는 10년 전에 이미 겪었던 것을 그대로 다시 한번 당해야 했는데, “(경마장에서)또다시 엉뚱한 말에 돈을 걸고, 또다시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고, 또다시 임질에 걸리고, 무슨 일이건 한번 더!”(p.14)


  우주가 잠깐, 퀙토세컨드 정도의 시간 살짝 팽창으로 포기하고 수축하는 순간 땅이 진동한 수준을 넘어 시간이 움찔, 경련을 일으켜 10년 세월 뒤로 물러서버렸으니, 죽었던 사람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거나 화장로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왔다고? 그건 아니다. 죽은 사람은 정말 짜증나게시리 죽을 때 고통을 다시 한번 또 겪어야 하는 팔자가 되어 버렸다. 오, 나 죽은 다음엔 결코 이런 일 생기지 않기를! 아무 생각 없이 책을 따라가면 혹시 백투더퓨처, 10년 전에 내가 저지른 과오를 올바르게 되돌릴 기회가 있으려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런 기대는, 예전엔 이런 표현도 썼는데, “깨몽”, 꿈 깨시라. 사는 동안 행복한 법은 없으니 인간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건 그저 생로병사의 고달픔뿐일 걸?

  소설이기는 하지만 화자는 틀림없이 작가 커트 보니것 본인일 터. 그가 말하고 있는 시점, 오늘은 1996년 11월 12일이다. 즉 타임퀘이크가 있고 5년 여가 흘렀을 때. 그의 나이 일흔네 살. 커트 보니것의 아빠도 이름이 커트인 건 아시지? 그래서 이이는 커트 보니것 주니어인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그냥 ‘주니어’라고만 부른다. 물론 보니것 면전에서 그냥 주니어라고 해버리는 간 큰 인간은 없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 그렇게 부른다. 누가? 보니것의 장성한 여섯 자식들이. 이 가운데 셋은 암에 걸려 일찍 죽은 누이동생의 아이들로 동생이 죽은 다음에 입양한 조카들이고 나머지 셋은 진짜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문법으로 말하자면 “내 아내의 산도에 사정을 해 만든” 자식들.


  타임퀘이크가 발생한 내력과, 10년 전으로 돌아가 고스란히 과거의 경험을 똑같이 당해야 하는 걸 설명하는 프롤로그가 끝나면 당연히 본문이 나온다.

  이제부터 독자는 그동안 커트 보니것이 책을 통해 주구장천 주장해왔던 이야기들을 한 번 더 들어야 한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물리학자 고 안드레이 사하로프. 망상에 빠진 소비에트 연방을 위해 수소폭탄을 만들고 그 폭탄을 확실하게 작동하게 하고, 그 후 핵무기 실험 중단을 요구한 공로로 1975년애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물. 이에 소련 당국은 사하로프를 반체제 인사로 구분해 연방과학원에서 추방, 당연히 모스크바에서도 쫓아내 저 초라한 동토의 마을로 유배해버렸다. 세상의 눈이 있어 그러지 못해 망정이지 하마터면, 시절이 스탈린 체제였다면, 얄짤없이 죽였을 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도 그랬잖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니까 한다는 말이, 동무, 가서 노벨상 받고 싶으면 받으시오. 다만 한 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오. 알아서 기시오. 사하로프도 결국 오슬로에 가지 못하고 소아과 의사였던 아내 옐레나 본네르가 대신 가서 받았다.


  사하로프 동무는 실화. 근데 다음 건 어디서 읽어본 것 같기는 한데 실화인지 픽션인지 모르겠다.

  미군 폭격기 조종사의 어머니 이름이 조이 피터슨. 조종사는 자신의 애기에 페인트로 ‘조이스 프라이드’라 이름을 써 붙였다. 이 인간은 1945년 8월 어느 날 이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전쟁은 서류에 서명하는 일 빼놓고 거의 끝난 상태인데, 승전이라는 훌륭한 과업을 완수한 양키들을 위한 심심한 감사의 표시이자 이제는 쇼 비즈니스로 접어든 축제 삼아 무지하게 커서 도저히 폭탄 투하실에 싣지 못하는 대용량의 원자폭탄 ‘개쌍놈’을 폭격기 배 아래에 붙들어 매고 요코하마로 날아가던 중, 거의 다 가서, 즉 요코하마 상공까지 오기는 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어 하늘에서 그대로 유턴, 출격했던 바날룰루 기지로 귀환해버렸다.

  당연히 지시 불이행 또는 항명 또는 반역의 죄목으로 영창에 수감됐고, 이어 열린 바날룰루 군사법정에서 “어머니가 그렇게 하길 바랐을 것이기 때문에” 유턴해 돌아왔다고 최후진술을 했다. 이어 재판장이 형을 선고하려는 순간, 태평양 바닥에 거대한 균열이 생겨 바날룰루 군사법정, 폭격기 조이스 프라이드, 사용하지 않은 원자폭탄 ‘개쌍놈’과 그밖의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이 요코하마 원자폭탄 개쌍놈 이야기는 커트 보니것의 페르소나인 킬고어 트라우트, 일찍이 <챔피언들의 아침식사>에 등장해 117편의 장편소설과 5천편의 단편소설, 물론 이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야설이긴 하지만 어쨌든 막강한 필력을 과시하던 소설가가 쓴 <타임퀘이커1> 가운데 <웃음거리 아님>에 나오는 에피소드이다.


  이렇게 2차 세계대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보니것의 대표 서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서사인 반전 메시지가 등장하고, 특유의 아이러니와 블랙 유머를 동반한 문화비평이 한 줄로 죽 늘어선 장편소설. 그리하여 장편소설이라고 해도 특별한 서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파편의 연속으로 그가 주장하는 메시지를 독자는 알아서 읽어야 한다. 그럼 뭐 같겠어? 그려, 단편소설을 주욱 나열한 연작.

  웃기는 얘기 많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여러분이 부모님을 정말 괴롭히고 싶다면, 그럼에도 동성애자가 될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않다면,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게 바로 예술 분야로 진출하는 겁니다.”


  킬고어 트라우트가 즐겨 쓰는 말이 “땡그랑, 땡그랑”이다.

  미국 대서양변 경치좋은 제너두에 미국문학예술협회가 건설한 창작을 위한 건물이 있었던 모양이다. 트라우트가 거기 헤밍웨이 실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지냈을 당시, 2001년 조개구이 파티에서 들은 이야기.

  한 도망자가 여자 사는 집으로 숨어 들어갔다. 집이 마치 성당처럼 생겨서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게 지었는데 아뿔싸, 시간 맞춰 경찰들이 집집마다 도망자를 찾으러 검문을 하다 드디어 이 집에 도착했다. 도망자가 잽싸게 서까래 위에 숨었으나, 저걸 어째, 그의 초대형 불알이 서까래 아래로 축 늘어져 눈에 훤히 보이더라고. 경찰이 여자한테 수상한 사람 봤냐고 물어보니까, 여자는 능청맞게 못 봤단다.

경찰 하나가 서까래 아래로 늘어진 불알을 보더니 저게 뭐냐고 물었는데, 집이 성당처럼 생겨서 여자가 중국 범종이라고 했다. 경찰은 여자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평소 소원이 중국 범종을 한 번 쳐보는 거란다.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경찰이 경찰봉으로 불알을 세게 툭 쳤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당연하지 살가죽에 부딪혀봤자 무슨 소리가 나겠어? 그래서 경찰이 더 세게, 다시 훨씬 더 세게, 또다시 몹시 세게 불알을 때렸더니 도망자가 이렇게 소리쳤다나?

  “땡그랑이다, 이 개자식아!”


  뭐 재미있는 장면만 소개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아쉬운 건, 예순세 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가 거의 이 비슷한 톤이라는 거. 그래서 어느 순간이 되면 재미있기보다 좀 지루해진다. 이 단계를 지나도 마찬가지이고 더 나아가면, 커트 보니것, 은퇴하는 거 잘 생각했구나, 라는 생각까지 든다. 보니것의 영원한 팬인 내가 이런 생각이 들었으니 그건 보니것을 위한 일종의 걱정이었을 거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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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4-17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니것의 팬인데 이 분 책이 좀 호불호가 생기더라구요. 읽다보면 농담이 좀 지겨워진달까? ㅎㅎ

Falstaff 2026-04-17 16:18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맞습니다. 어쩔 수 없어요. 나이 들면 곱게 가는 게 최선입니다.

yamoo 2026-04-1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니것은 일단 평타는 칩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아주 인상적이지가 않은 게 흠. 저도 보니것 소설과 에세이 몇 권 읽어본바 보니것의 촌철살인은 처음에는 신선하지만 자꾸 읽으면 깊이 빠지는 뭐 그런거..ㅎㅎ 최고 작품은 아직 못 만나 봐서 최고로 좋은 한 권만 제외하고 이제 정리하려고 합니다..^^

Falstaff 2026-04-17 16:2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ㅋㅋㅋ
그래도 필립 로스 열 명하고 보니것 한 명 하고는 바꾸지 않을 겁니닷! ㅎㅎㅎ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8
제임스 웰든 존슨 지음, 천승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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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수정헌법에 의해서 노예를 해방시킨 1865년에서 불과 6년 더 지난 1871년에 플로리다 잭슨빌에서 태어난 제임스 웰든 존슨. 당시 잭슨빌은 부르주아들의 유명 여름 휴양지였는데 그중에서도 세인트 제임스 호텔이 꽤 고급이었던 모양이다. 존슨의 아버지는 이때 그곳에서 수석 웨이터 일을 하고 있던 혼혈 흑인이었다. 엄마는 바하마 출신으로 서인도제도의 백인을 포함해 모든 유색인종의 유전인자까지 가지고 있어서, 제임스 존슨은 아프리칸 미국인 가운데 그나마 덜 검은 피부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인이었던 존슨은 애틀랜타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으니 졸업했다고 봐야 하는데, 졸업 후 음악, 특별히 작곡에 자질이 있는 동생 로자몬드와 함께 뉴욕으로 가서 유색인종의 지위향상을 위하여 조직을 만들어 일을 했다. 플로리다 출신이라 스페인어를 습득할 수 있었을 것. 존슨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선거 보좌진으로 들어가 공을 세웠던지 당선 후 7년간 베네수엘라와 파라과이의 영사를 지내기도 했다.

  시민권 운동도 하고, 할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흑인예술이 만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데 아쉬움이 없었다는데, 뭐 남의 나라 작은 역사 부스러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위키피디아 기록에 의하면 딱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으니 그게 바로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이다. 미국에서는 대단한 유명인사 가운데 한 명. 그의 이름을 딴 일련의 작업을 보더라도:


  2007년 애틀란타 에모리대학, 제임스 웰던 존슨 인종과 차이 연구소

  메릴랜드 볼티모어 고핀 주립대학 내 제임스 웰던 존슨 빌딩 건축

  플로리다 존슨빌 그의 출생지에 제임스 웰던 존슨 중학교

  플로리다 세인트피터스버그 소재 제임스 웬던 존슨 커뮤니티 도서관

  1988년 2월, 미국 우정국, 존슨 사진 우표 발행

  2020년 플로리다 잭슨빌의 헤밍 공원 이름을 제임스 웰던 존슨 공원으로 개명

  2021년 메인주. 6월 17일을 제임스 웰던 존슨 연례 기념일로 제정.


  핫따. 이 정도면 자기 이름 하나는 확실하게 남겨놨군. 죽은 다음에 이런 거 부질없다, 부질없어.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존슨의 행적은 이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이야기와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그리 연관되지 않으니 굳이 알 필요 없다. 근데 왜 이리 장황하게 소개를 했느냐 하면, 이거라도 쓰지 않으면 독후감 분량이 너무 적어질 것 같아서.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라고 하니까 지금은 적어도 흑인이 아니라는 말씀. 흑인이 아니면 그새 백인이라도 된 거야? 아니다. 흑인에서 사람으로, 백인도 백인에서 사람으로 되는 것처럼. 물론 이 책 나온 시점이 1912년 또는 1927년이라 아직도 버스에 백인 남자가 탔는데 흑인 임산부가 앉아 있으면 버르장머리 없다고 무차별 폭행을 당하던 시기라 정확히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저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선언이겠지. 1920년대에는 아.마.도. 백인이 타는 버스, 흑인이 타는 버스가 따로 있어서 이런 불상사도 없었을 것 같지만. 여전히 흑인은 백인과 비교해 어리석기 짝이 없고, 마땅한 결론을 내릴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인이 늘 돌보고, 지도해주고, 귀여워해야 그나마 자기 생을 살아갈 수 있는 고등한 미개 영장류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1865년 흑인 해방 이전에도 주로 합중국 북부에 산포해 있었을지언정 자유신분증을 품에 가지고 다니며 여러 사업을 벌여 돈 푼 깨나 벌어서, 좋은 집에 아이들 교육도 빵빵하게 잘 시킨 백인들 사교계에 말석이기는 하지만 기웃거릴 정도의 중산계급 정도는 벌써 발생한 상태였다. 이들 바로 밑으로는 탁, 떠오르는 작가가 있지? <패싱>을 누가 썼더라? 맞아, 넬라 라슨. 라슨의 작품에서 본 적 있는 밝은 피부의 유색인. 그래서 자신을 백인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했던 주인공들의 안간힘이라니. 하지만 이 책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주인공 화자 ‘나’. 남북전쟁이 끝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조지아주의 작은 도시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이라 어렴풋하게만 기억나는데 앞마당에 꽃밭이 있던 작은 집. 집 뒤켠 헛간에 큰 빨래통이 세 개 있었으니 이 빨래통은 평생에 걸친 혐오품목 1호에 오른다. 엄마가 ‘나’를 발가벗겨 통이 집어넣고는 하도 박박 문질러 때를 벗기면 아예 껍데기가 홀랑 까지는 것처럼 얼마나 아팠는지.

  이 시절을 기억하면 어머니와 검은 콧수염을 얍삽하게 기른 키 큰 남자가 보인다. 2~3주에 한 번 집에 올 때마다 ‘나’에게 5센트짜리 동전을 주고는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오던 날에는 ‘나’를 무릎 위에 앉히더니 10달러 금화에 구멍을 내고 줄로 꿰어 ‘나’의 목에 걸어주었다. 10달러 금화 목걸이는 이후 ‘나’의 인생에 절반을 넘어 매달리게 되고 아직도 작은 보석함에 보관하고 있다.

  이 백인 남자. 독자가 척, 보니까 당연히 ‘나’의 아버지. 이른바 생부다. 혼자 사는 확실한 흑인 여성, 그러나 피부가 까맣지는 않고 옅은 갈색으로 보이지만 누가 봐도 흑인이라고 할 정도의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여성과 혼인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사랑, 사랑? 사랑 까지는 턱도 없이, 그저 마음에 들어 내연의 관계를 갖다 보니 아들이 하나 생기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백인 남자가 아주 막 나가는 인종이 아니라서 다른 보통의 흑인가족에 비하면 상당히 여유있는 환경에서 살게 해주었다. 여자도, 아이도 그 당시에, 그러니까 19세기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2층집에 살며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면 말 다 한 거 아냐? 게다가 ‘나’는 작가 제임스 웰던 존슨의 친동생 존 로자몬드 존슨처럼 피아노 연주를 비롯한 음악 일반에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클래식부터 재즈, 래그타임까지 연주하지 못하는 장르가 없다. 당연히 이 피아노 솜씨와 음악적 재능은 앞으로 ‘나’가 배를 곯을 일이 별로 없을 것임을 미리 알려주게 된다.


  키 큰 백인이 ‘나’에게 목걸이를 만들어준 날, 어머니와 ‘나’는 존슨빌을 떠났다. 마차로 서배나에 가서 다시 증기선을 타고 도착한 곳이 뉴욕. 거기서 또 마차로 코네티컷의 작은 도시로 갔는데, 그곳이 이른바 소년시절의 고향이 된다. 거의 모든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 거기가 고향이지.

  어디서 살았느냐 하면, “호사스러울 정도로 잘 갖춰진 조그만 독립가옥. 그리고, 그랜드피아노는 아니지만 새 피아노도 있다. 이 집에서 ‘나’는 옷도 잘 차려 입어 자부심도 빵빵해져 마치 완벽한 꼬마 귀족이 된 기분이었다. 이 집에서 본격적으로 피아노 교습도 받았다. 글공부도 시작했는데, 음악이나 글이나 ‘나’는 전체를 한 덩어리의 그림으로 여겨 ‘나’가 생각하는 의미로 재구성하는 것이 재미 있었다. 쉬운 얘기로, ‘나’가 대단히 똑똑하고 뭐든지 잘 배우는 신동이었다고 겁나게 잘난 척하는 중이다.

  아홉 살 때 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는 검은 피부와 갈색 피부를 가진 남녀 학생도 섞여 있었다. 많이 검지는 않지만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아이도 있어서 ‘나’는 그를 “빛나”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가면서 진짜 이름을 잊었다. 훗날, 한 삼십 년가량 흐른 다음에 좋은 자리에서 다시 만난 기회가 있었으니 그때도 ‘나’는 그를 “어이, 빛나! 오랜만이네.”라고 인사할 예정이다.

  ‘나’는 학교 성적은 우수했지만 워낙 장난이 심해 품행성적이 좋지 못했다. 제일 특별한 학생은 당연히 빛나였지만, 피부색 때문인지 아무리 특출해도 좀 업신여김을 받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장이 교실에 들어와 백인 학생들은 전부 나가고 유색인 학생만 남아 있어요, 라고 지시를 했다. ‘나’는 당연히 주섬주섬 ‘나’의 소지품을 챙겨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인자한 담임선생이 ‘나’의 팔목을 잡더니, 너는 여기에 있어야겠다, 라고 하는 거였다. 아오, 이런 수치가.

  학교가 파하고 당장 집으로 뛰어가 거울을 본다. 곱슬곱슬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카락. 상앗빛 피부, 아름다운 입매에 크고 촉촉한 눈. 깊고 검실검실한 눈썹. 엄마한테 달려가 묻는다.

  “말해줘 엄마! 내가 깜둥이야?”

  어머니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가 묻는 질문에 정확한 대답은 아니다.

  “아니, 엄마는 백인이 아니야. 하지만 네 아버지는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중 한 분이셔. 네 몸 속에는 남부의 가장 훌륭한 피가 흐르고 있어.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나중에 이야기해주마.”


  백인 친아버지는 어머니한테 편지라도 받았는지 정말로 코네티컷의 작고 화려한 집에 와서 자기가 아버지임을 말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흑인, 정확하게 아프리칸 아메리칸은 아니지만 유전자 속에 흑인의 인자가 어쨌든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고, 본격적으로 흑인 커뮤니티 안에서 살게 된다.

  작가 제임스 웰던 존슨이 성공한 유색인이라 주인공인 ‘나’도 인생이 우리가 흔히 소설책에서 보는 대다수의 흑인처럼 짜부러들지 않는다. 교육도 마치고, 애틀랜타 대학에 입학하러 갔다가 입학금 전액을 도둑맞아 빈털터리가 되어도 ‘나’한테는 피아노 연주 솜씨가 있으니. 하여간 그 재주 때문에 파리에도 가고, 런던과 암스테르담, 독일 구경도 하면서 여러나라의 언어도 습득한다. 파리의 오페라 공연장에서는 아내와 딸을 동반해 관람석에 앉아 있던 친아빠도 만난다. 눈길을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사랑도 하고, 어여쁜 백인 소프라노 부잣집 아가씨와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한다.

  그리하여 결론은? 저 앞에 써 놓았다.

  스토리만 이렇게 써 놓아 재미있어 보일 지 모르지만, 작품의 반은 에세이다. 에세이로 쓰면 재미가 적을 것 같아서 소설 형식으로 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논의를 21세기에 읽는 건 그리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동양 사람들 눈꼬리나 옆으로 찢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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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6-04-16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Falstaff님 덕분에 책 한 권 읽은 기분입니다. 스스로는 찾아 읽지 않을 책을요. 감사합니다.^^

Falstaff 2026-04-17 03:56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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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동유럽 유대인 혈통의 이민 2세의 남자와, 아홉 살에 이민 온 한국 여성이 십여 년 후에 코네티컷의 고등학교에서 동창으로 만나 IBM에서 근무하는 동안 개브리앨 제빈을 낳았다. 1977년 뉴욕생.

  자란 곳은 플로리다. 그곳에서 공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스톤으로 올라가 하버드대에 입학해 영어와 미국문학을 전공했다. 공립고등학교에서 하버드라니 쉽지 않았을 텐데? 하긴 세계적으로 머리 좋은 거 하고 극성떠는 거에 관해 두번째가 서러울 유대인과 한국사람의 DNA가 만났으니 그 정도야.

  하버드를 졸업한 후에 계속 맨해튼에서 살며 직장 없이 작가 생활을 한 거 같다. 하여간 위키피디아에서 다른 경력은 보이지 않으니까. 성인소설도 쓰고 청소년소설도 썼는데,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 제빈이 쓴 다섯 번째 성인을 위한 소설이라고. ‘성인용 소설’이라고 해서 군침 꿀꺽 삼킬 필요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성인소설 같은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거나 아예 안 나온다.


  세 명의 주인공이 있다. 두 명의 진짜 주인공(해리와 헤르미온느 급)과 한 명의 중요한 주인공(론 위즐리 급)이 등장한다. 이 귀여운 천재들을 먼저 소개하자.

  샘슨 메이저Mazer. 원래 이름은 샘슨 매서Masur였는데 메이저로 이름을 바꾼 후에 유대계 청년에서 세계창조전문가로 변신한 기분이 든단다. 작가는 샘의 정체성을 동유럽유대인과 아시아인의 혼혈이라는데 이건 작가의 정체성과 똑같다. 생물학적 아버지는 LA에서 연예 프로덕션 일을 하지만 샘 출생 당시 엄마와 결혼상태는 아니었고 출산에 관계하지 않았지만 샘이 태어나자 당시 화폐가치로는 거금이었던 만 달러를 모자에게 건네주었다. 엄마는 브로드웨이에서 연극과 뮤지컬에 출연하는 조연급 배우였지만 여유있게 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잘 살아가다가 샘이 열 살 되는 해, 공연을 보고 엄마와 귀가하던 밤에 하필이면 엄마와 이름도 같은 ‘에미 리’라는 홈드레스를 입은 한국인 여성이 10미터쯤 앞에 떨어져 자살해버리고 말았다. 이때의 충격으로 엄마는 샘을 끌고 샘의 외조부가 K타운에서 피자 가게를 하는 LA로 이사한다.

  세이디 그린은 동유럽에서 온 이민 유대인 부르주아 가족. 구성은 할머니-부모-언니 앨리스-세이디. 나중에 언니는 UCLA 의사가 되고, 세이디는 MIT에서 컴퓨터 공학을 배운다. 막이 오르면 언니 앨리스가 소아 백혈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부모의 거의 모든 관심이 앨리스에 쏠린다. 세이디는 앨리스의 (평소에는 심하지 않았던)심술 때문에 가끔 곤혹스럽기는 하지만 에잇, 그것쯤, 잘 견디고 있었다. 병실에서 쫓겨나 복도에서 빈둥거리다 마음 좋은 간호사가 닌텐도 게임기가 있는 휴게오락실에 가서 놀고 있으라 해서 달려가봤는데, 거기 환자복을 입은 또래 남자애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하고 있었다. 근데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교통사고로 27군데의 다리뼈가 부러져 철심으로 얼기설기 해 놓은 환자. 이 아이가 샘슨, 샘이다. 둘은 게임에 관하여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샘이 세이디에게 자리 차례이기는 하지만 이번 회전에는 세이디가 플레이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이걸 현명한 간호사가 눈여겨 본 모양이다. 그래서 세이디의 어머니한테 저 아이가 입을 연 것은 사고가 난 후 6개월만에 처음이다, 세이디를 매일은 못하겠지만 시간 나는 대로 병원에 보내 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해줄 수 있겠느냐, 그러면 정신적 트라우마 치료에 대단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가 생각해보니, 내년에 12살이 되면 유대성년식인 바트 미츠바를 해야할 터, 이때 봉사활동 점수에 포함시킬 수 있으니 그것 괜찮겠구나, 하고 흔쾌히 동의했다.

  샘이나 세이디는 머리가 좋다. 좋아도 무지하게 좋다. 그래서 친구가 없다. 이런 아이끼리 만났으니 단박에 서로를 알아보고 친한 친구가 된다. 그리하여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함께 게임을 하고, 게임을 하는 도중에 치트키 라는 것이 있다며? 그런 것에 대하여 서로 주고받으면서 매우 가까워졌는데, 세이디는 병원에 왔다 가면서 ‘봉사활동 증명서’에 꼭 사인을 받아 갔다. 세이디의 현명한 할머니이자 LA의 부동산 거물로 실무에서는 엄정하고 용의주도하며 양심적인 사업가라 중평이 나 있는데, 이 프리다 할머니가 샘과 세이디의 우정을 의심한다.

  “세이디, 우정은 우정이고 자선(봉사)은 자선(봉사)야. 만일 누가 너에게 자선을 베풀어주면, 너는 그 사람하고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단다.”

  세이디는 14개월 동안 계속 샘을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지냈다. 그리고 906시간, LA 시나고그에서 가장 긴 시간의 봉사시간을 채워 상까지 받으며 바트 미츠바를 치뤘는데, 이에 샘이 났는지 막 백혈병에서 완치되었지만 환자였을 때 심통부리던 습관을 깔끔하게 없애지 못한 언니 앨리스가 이 사실을 샘에게 알려줌으로 해서, 샘은 그동안의 우정이 우정이 아니라 봉사, 자선이었구나, 누가 저더러 봉사나 자선 같은 걸 해달라고 했나, 잔뜩 오해하고, 원래 몸이 아픈 환자는 오해가 심한 법이라 이런 영향도 무지 받으면서, 세이디와의 우정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글쎄 노인네 말 들으면 틀리는 법이 없다니까.


  이후 샘슨 머서는 LA 동쪽의 평범한 공립 고등학교를 다니고, 세이디 그린은 LA 서쪽의 고급 사립학교를 다니며 캘리포니아와 LA 지역에서 있었던 많은 수학, 과학 경연에서 만나 진검승부 끝에 둘 중에 한 명이 최우수, 다른 한 명이 우수상을 번갈아 탄다. 세이디가 MIT로 진로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샘은 그러면 난 고려대상 가운데 하나였던 MIT 안 간다, 하버드 가겠다, 해서 워낙 공부를 잘 하니까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 입학했다. 세이디는 부잣집 딸이니까 걱정이 덜한데, 샘이 문제다. 교통사고를 당해 엉망이 된 왼쪽 발 부분 때문에 보행도 쉽지 않은데다가 조부모 이동현씨와 이봉자씨가 아무리 뒷바라지를 잘 해주려 해도 그저 공부에만 몰두하기가 쉽지 않을 터, 몸이라도 편해야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어떻게 버텨볼 텐데.

  하여간 서부 해안의 건조하고 따듯한 기후를 기준으로 옷을 준비해온 보스톤은 그러나 겁나게 추웠다. 근데 하버드 기숙사 룸메이트가 누군가 하면 마크스 와타나베. 사업을 경영하는 와타나베 씨와 대학에서 직물예술을 가르치는 교수의 기가 막히게 잘 생긴 외아들.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자제 답게 매사에 차분하고, 남의 말 잘 들어주고, 가장 합리적인 판단으로 원만하게 세상 일을 풀어갈 줄 아는 다감한 사나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모든 이의 연인이이도 했다. 사랑이 끝날 시점이 돼도 언제나 여자의 뜻으로 이별을 결정한 것으로 국면을 마무리했는데, 그래야 사랑은 사라질지라도 우정이 계속되는 법이란다. 그걸 20대 초반에 알고 있었으니 이쯤되면 신선이었지. 이 마크스 와타나베가 샘과 세이디 사이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다시 우정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심지어 함께 사업을 시작하고 그걸 크게 키울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전력을 위하여 이 커플의 사업과 성공에 도움을 주는 제3의 주연. 샘과 세이디가 해리-헤르미온느 급이라면 마크스는 여지없이 론 급이다.


  샘과 세이디는 3학년 때 만난다. 게임 론칭 행사로 엄청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 승강장에서. 세이디는 게임 프로그래밍을 배운 교수와 연애하던 시기였고, 샘은 하버드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수학에 대단한 재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 하고 싶지는 않은 상태. 필즈 상을 노리고 있는 지도교수도 샘의 상태를 한 눈에 알아본다. 그리하여 샘이 세이디와 함께 1년 동안 학교를 쉬면서 불멸의 히트작이 될 <이치고>라는 게임을 개발하는 것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여긴다.

  이들 세이디와 샘은 마크스의 추동에 의하여 하루 열여덟 시간 이상을 쓰며 개발을 하기 시작해 드디어 기한에 맞추어 <이치고>라는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낸다. 이제 이들은 3인 공동대표가 운영하는 게임회사 <언페어 게임>을 만들어 젊은 부자의 대열에 올라섰으나 마크스만 빼고 샘과 세이디에게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 현명한 마크스는 이들을 위하여 언페어게임사를 캘리포니아 LA로 옮기자고 제안하고, 샘은 세이디를 위하여, 세이디는 샘을 위하여 마크스의 제안에 동의한다고 여기면서 본격적인 단계로 올라선다.

  이제 회사가 정상궤도에 올랐으니 남아 있는 것은 단 하나.

  두 천재 샘과 세이디의 갈등. 최초의 갈등이 우정과 봉사(자선). 두번째 갈등은? 그것과 비슷한 오해겠지. 세번째 갈등은? 그건 안 알려드린다.


  내가 이 책을 잘 읽은 것은 40대 중반의 작가가 20대 초반의 등장인물을 보는 아련한 시선이었다. 1부의 마지막 장면에 샘과 세이디는 (우정-봉사 이야기)화해한다.


  “’약속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더라도, 서로 말도 안 하고 6년을 보내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나한테 약속해. 넌 나를 무조건 용서하는 거야. 나도 너를 무조건 용서하겠다고 약속할게.’ 이것은 물론, 생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쟁여놨는지 쥐뿔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함부로 맺는 서약의 일종이었다.” (p.103)


  이 문단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슬펐는지. 20대 두 아이들 앞에 어떤 험하고 지저분하고 힘든 일이 남아 있는지 전혀 모르고 오직 하나, 젊었다는 것 때문에 쉽게 약속을 하는, 해버리는 두 아이들이 내 마음을 후벼파서 가슴이 아리고 아리더니 결국 눈까지 매캐해지다가 붉으레하게 만들어버렸던 거다. 저 뒤쪽에서 한 번 더 그렇게 되는데, 그건 가르쳐드리지 않겠다. ‘샘의 할아버지 이동현 때문에’라는 힌트 정도야 뭐.



  의아했던 것도 말해보자.

  좀 웃겼다. 개브리얼 제빈은 정확하고 완벽한 미국인이다. 미국인의 눈으로 보면 유럽은 크게 동, 서, 남, 북유럽으로 달리, 자주는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등의 개별 국가로 구별해야 하지만 아시아인은 세상에서 제일 크고 제일 인구도 많은 대륙 어디서 왔건 간에 그냥 아시아인이다. 엄마가 아홉 살 이전엔 한국에 살던 한국인이었더라도 마찬가지다. 타이완, 파키스탄, 베트남, 레바논, 다 같은 그냥 "아시아 사람"들이다. 미국인의 눈으로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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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4-15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거 재밌을 거 같아요. 별4개반 주셨나요? 어쨌거나 이 소설은 찜해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Falstaff 2026-04-15 11:44   좋아요 0 | URL
재미난 책입니다. 5점 만점에 4.6 ㅋㅋㅋ

바람돌이 2026-04-15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아했던 것에 덧붙이자면 서울과 지방의 관계도 마찬가지인듯한데요.
저는 부산이 시골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는데 서울 사람들 눈에는 서울 말고는 다 시골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은 느낌을 꽤 여러번 받았어요. ㅎㅎ

Falstaff 2026-04-15 15:07   좋아요 0 | URL
저는 서울/경기 인간인데요, 정말로 그런 적 없거든요. 1990년대 초에 먹고 살려고 지방도시로 세 번째 직장따라 갔는데 태백-춘천-대구에 주민등록 초본 기록 있고, 지역 최고 명문 학교 나온 이웃 팀장이 지방(당연히 부산 포함)에서 온 직원한테 명절 때마다 ˝촌에 안 가냐?˝라고 묻던걸요. 서울 아니면 전부 시골이라 하면서 말입죠. 그때 처음으로 바람돌이 님 하시는 얘기 들었습니다. 아하, 이쪽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요.
뭐 이런 인간도 살고 저런 인간도 있는 게 사람 사는 일 아니겄습니까? ㅎㅎㅎ
 
잃어버린 낙원
세스 노터봄 지음, 유정화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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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3년생인 노터봄이 일흔한 살이던 2004년에 발표한 소설.

  한 평생 신나게 산 작가인 것처럼 보인다. 내가 그 속을 어떻게 안다고 92세의 노인더러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런 것처럼 보인다는 걸로 충분하지. 나는 사는 게 지옥이었는데 노터봄은 낙원 속에서 살았을 리가 없잖은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이이가 세상 천지에 안 가본 곳이 별로 없을 만큼 신나게 돌아다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나 세상을 다닐 수 있나 어디? 농사 질 땅이 변변치 않아 뭐 해 먹을 게 없어서 예부터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장사해 먹고 산 네덜란드 사람이니까 몇 가지 외국어에 능통한 거야 뭐 그럴 수 있어도, 주머니가 좀 넉넉해야 비행기를 타던, 배를 타던, 기차를 타던 멀고 먼 장거리 여행을 갈 수 있는 것이고, 세상 천지에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객지를 돌아다닐 용기도 제법 갖추어야 할 터인데 그것마저 별로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니 그나마 행운의 별이 노터봄의 정수리 위에서 반짝이긴 했던 모양이다.


  이 소설도 ‘나’가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3국 국경에 위치한 보덴제 호수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 프리드리히샤펜(Friedrichshafen, 책에서는 “프리드리샤펜”)에서 베를린의 뎀펠호프 공항으로 비행하는 작고 아담한 비행기 대쉬Dash 8-300 비행기에 오르며 시작한다. 이게 본문은 아니다. 프롤로그.

  작은 비행기라서 조종석에 앉은 조종사를 탑승객이 볼 수 있다. 아직 비행기의 엔진도 켜지 않은 상태. 시간이 남아서 그런지 ‘나’의 옆 좌석이 비었다. 실내를 둘러봐도 빈 자리가 무척 많다. 이 노선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글쎄, 한 50대 후반 정도의 남자. 그런 것처럼 보인다. 좀 지루했는지 ‘나’는 의자 등판에 꽃아 놓은 기내지를 꺼낸다. 늘 보는 항공사 광고와 ‘나’가 탄 작은 항공사가 운행하는 베를린, 빈, 취리히에 대한 정보가 조금 실렸고, 이어서 자유기고 기사가 두 꼭지 있다.

  기사 하나는 오스트레일리아와 그곳 선주민에 관한 것이다. 암각화와 화려하게 채색된 돛배 사진. 다른 하나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관한 기사. 지평선을 따라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부자들의 고급 주택가가 있는 반면, 이에 못지 않는 그림 같은 초라한 판자촌, 도시 빈민가도 보인다. 물결 모양의 함석지붕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은 판잣집들, 거기에서 사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이에 관한 장방형 프레임. 당연히 ‘나’는 프레임 밖의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이미 그곳을 다녀와본 적이 있으니까. ‘나’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진은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껏 떠났던 모든 여행을 여차하면 데자뷔 비슷한 비현실적 느낌이 들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미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여성이 비행기 기내로 들어왔다. ‘나’는 옆좌석이 비어 있어서 당연히 이 여성이 옆에 앉았으면 좋겠지만, 희망은 늘 배신하는 속성이 있는 것이라 그이는 앞 좌석 창가에 앉는다. 카키색 바지에 착 달라붙는 티셔츠 아래로 살며시 흔들리는 젖가슴을 바라보는 게 짜릿하다. 그녀는 진홍빛 포장지에 스카치테이프로 포장된 책을 꺼내 읽다가 잠시 후에 그냥 의자 위에 엎어 놓는다. ‘나’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그러다가 여자도 기내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고 상파울루를 달리다가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 그림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한참을 더 써야겠지만 아직도 프롤로그이니 결론만 말하자. 이 여성 승객이 가지고 타서 읽어보려 포장을 뜯은 책은 지금 내가 읽으려고 하는 세스 노터봄의 <잃어버린 낙원>이다. 그러니 화자 ‘나’ 역시 세스 노터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기는 한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엄연하게 픽션이니까.

  무엇보다, 이 프롤로그에서 독자가 책을 읽으며 보게 될 장소가 다 나와 있다는 것. 첫째가 브라질 상파울루요, 두번째가 오스트레일리아 남서부의 대도시 퍼스와 황량한 호주 사막. 마지막으로 프롤로그의 화자 ‘나’가 갔던 것처럼 보이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부근의 알펜호프라고 부르는 스파.


  만일 프롤로그의 화자 ‘나’가 세스 노터봄이라고 한다면, 물론 아니겠지만, 그가 본 기내지 두 곳, 상파울루와 오스트레일리아 퍼스, 그리고 알펜호프 이야기는 기내지에서 기사를 보고 자신이 구상한 이야기인 것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얇은 책이지만 내용이 많다. 상파울루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젊은 여성 이야기만 해보자.

  상파울루의 여름밤. 자르뎅이라는 부촌. 이곳 주민들은 밤외출을 하지 않는다. 해가 지면 이 동네 집안에서 하녀, 가정부, 요리사, 정원사로 일했던 노동자들이 대중교통 차량을 타고 두 시간 동안 지친 몸을 버텨내야 도착하는 집에 가기 위하여 어둠 속 그림자로 거리를 메운다.

  그러나 이날, 알마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엄마의 세컨드 카를 빌려타고 한밤중에 차고를 나섰다. 소형차는 상파울루 여기저기를 배회하다가 금지된 구역인 파라이소폴리스, ‘낙원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상파울루에서 가장 열악한 빈민가이자 언제라도 피가 튀는 범죄가 발행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지역으로 진입했다. 여름밤의 무드 때문에 충동적으로 밤 드라이브를 선택한 알마. 하늘은 알마에게 무드 대신 고난을 주기로 결심했는지, 엄마의 세컨드 카가 낙원의 도시에 진입하고 얼마 되지 않아, 푸르륵, 작은 신음과 함께 엔진을 멈추고 말았다. 거의 완전한 어둠. 아무도 없는 공포. 하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알마는 자기를 원처럼 둘러싼 검은 그림자들을 보았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림자들의 잊혀지지 않을 웃음소리. 그들 목소리에 한없이 깊숙하게 깔린 증오와 분노가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 같았고, 실제로 삼켜버렸다. 몇 명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마치 쓰레기라도 되는 듯 내버리고 가버린 그림자들. 가장 끔찍했던 것은, 차와 알마의 가방 속 모든 것이 없어진 것도, 몇 명인지도 모르는 그림자들이 자신을 윤간한 것도 아니라, 자기를 내버려두고 가버린 것이었다.


  키가 크고 금발의 미인 알무트. 알마의 가장 친한 친구. 알무트가 경찰에 신고했고, 산부인과에도 함께 가주었다. 기골이 장대한 미인이라 브라질 남자들은 알무트만 보면 사족을 쓰지 못했다. 이걸 잘 알고 있는 알무트는 자신을 보탄의 딸, 부륀힐트라고 불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마와 알무트는 부르주아 딸들이 전공하면 가장 어울리는 과인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어 했다. 알무트는 윌링 드 쿠닝, 뒤비페 같은 현대미술, 알마는 라파엘, 보티첼리, 지오토 등의 르네상스 미술. 둘은 열다섯 살 시절부터 암스테르담, 드레스덴, 피렌체, 파리 같은 곳을 순례하며 실물 명화를 직접 보기도 했다. 보통 부자가 아니다.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이들 할아버지 둘 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독일에서 브라질로 건너와 자신의 과거에 대하여는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은 인물이다. 아버지들도 자기 아버지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독일어를 배울 생각도 없었다. 아하, 그렇구나.

  두 미술사 전공 아가씨들 눈에 들어온 것이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의 땅이었다. 시간과 기억 이전의 시대, 세상이 편평했고 텅 비어 있었으며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땅. 그리고 사람들. 그들도 없던 곳의 드림 타임.

  상파울루에서의 사건 이후 집안의 자기 방에서 두문불출하던 알마에게 알무트가 오스트레일리아 행 저렴한 항공권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가져온다. 선주민이 인간 최초로 만들었던 예술품들. 벽화와 암각화, 그리고 지금의 선주민들의 회화. 시드니를 거쳐 선주민의 낙원인 시크니스 드리밍 플레이스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두 아가씨는 여행지에서 돈을 벌 수 있게 물리치료사 과정 수료부터 완료한다. 그래야 식당이나 술집에서 접시닦이, 홀 서빙, 애 보기 같은 허드렛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물리치료사를 고집하는 것은 정작 물리치료 또는 마사지시술로 돈을 버는 건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니라 오스트리아 알펜호프이기 때문이다. 그럼 호주에선 뭘 해 돈을 버냐고? 천사가 나타난다. 정말이다. 천사.

  2백쪽에 불과한 분량. 읽기 편하겠지? 아마도 아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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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멜랑콜리의 묘약 레이 브래드버리 소설집 1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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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읽는 SF의 전설, 레이 브래드버리. 1959년에 발표한 소설집. 벌써 6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이와 비슷한 연배에 유독 눈에 띄는 SF 작가들이 제법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스타니스와프 렘. 1920년 부근에 갑자기 태양 흑점 폭발이 심했었나? 그래서 상상을 초월하는 방사능을 지구에 쏟아부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거명한 사람들과 브래드버리를 구별하게 만드는 건, 브래드버리는 시를 쓰기도 해서 그럴 것 같은데, 번역문을 읽으면서도 문장이 여간 고급진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독자를 유혹하는 힘이 있다. 게다가 SF, 즉 과학소설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그로테스크 또는 고딕과 (결코 귀신은 아니지만)귀신 비슷한 것도 출몰한다.

  이 소설집 《멜랑콜리의 묘약》은 SF라기보다 고딕과 그로테스크 소설을 더 많이 실었다. 외계생명체와 우주여행을 주제로 하는 건 두세 작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긴 이 두세 작품을 영향이 다른 비슷비슷한 고딕/그로테스크 작품에 비하면 훅, 하는 무게감이 상당하지만.


  모두 열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들어 있다. 이 책을 고르면서 조금 캥겼던 것은 이이의 다른 (우리나라에서 유명한)단편집 《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과 겹치는 작품이 있을까, 하는 거였다. 독자라면 당연히 의심하는 것일 텐데,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읽으시라. 한 편도 안 겹친다.

  이 책은 1959년판 《A Medicine for Melancholy and Other Stories》를 두 권으로 분책에 옮긴 첫 권이다. 다른 한 권은 《온 여름을 이 하루에》라는 제목의 소설집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찍었다. 그냥 한 권을 한 권으로 만들면 안 되었을까? 합하면 7백쪽에 조금 못 미치는 분량이라 책이 팔리지 않을 거 같아 그랬을까? 뭐 그냥 장삿속이었겠지. 출판사도 돈 벌어야 하는 기업이니 우리가 이해하자.

  이 책, 어제 읽었다. 지금 목차를 보면 그래, 이거, 이거, 이것은 어떤 이야기였지. 재미있었어. 이렇게 떠올릴 수 있지만 일 주일 있다가, 더 멀리, 이 독후감이 업로드 된 날에도 여전히 기억할 수 있을 지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


  제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 제일 앞에 배치한 <어느 잔잔한 날에>.

  미국인 부부 조지와 앨리스 스미스는 여름 한낮에 남서 프랑스 해변인 비아리츠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남편 조지는 대단한 예술 애호가. 그중에서도 회화를 좋아하고 파블로 피카소를 추앙하다시피 한다. 문제는 해변에서 조금, 몇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어촌의 별장에 하필이면 때를 맞춰 피카소가 와 있다는 것. 조지는 괜히 기분이 들썩들썩. 카라바지오의 과일 정물, 맹인조차 이글거리는 화사한 해바라기 꽃을 그린 고흐도 좋지만 지브롤터 전역에 한여름의 소나기를 퍼부며 수평선 위로 우뚝 솟아오른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도 같은 <거울 앞의 소녀>와 <게르니카>의 창조자인 파블로 피카소만큼은 아니다. 그런데 그가 조지한테 얼마 머지않은 곳에 있다. 실물의 피카소가.

  바다에 첨벙 몸을 담그고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멀리 힘을 다해 수영을 해봐도 그를 그저 한 번 보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해변엔 저녁이 다가오고, 오래 수영을 해 진이 빠진 조지와 다른 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훌쩍 떨어진 저쪽에 조지 스미스보다 키가 작고 머리를 각지게 자른 한 남자가 홀로 고요한 대기 속을 걷고 있었다. 이렇게 해안선 무대가 마련되었고 몇 분 후 두 남자는 마주칠 운명이었다.

  낯선 남자는 주위를 흘끔거리더니 자신이 혼자 있는 걸 확인하고 잠깐 몸을 돌려 모래 위에서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들었다. 라임 맛 아이스크림을 꽂았던 가느다란 막대. 그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더니 몸을 숙이고 부드럽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그가 제일 잘 하는 일을 지금 모래 위에서 시작하는 거였다.

  모래 위에서 태어나기 시작한 굉장한 형태들. 금세 자신의 작업에 완벽하게 심취하여 몽혼의 상태에 이른 짧은 머리의 남자. 두번째, 세번째 형체에 이어 계속 이어지는 사물의 모습.

  해변을 따라 걷던 조지 스미스의 저 앞쪽에 남자의 숙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니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까맣게 그은 몸을 한 남자가 몇 살이나 되었을까? 예순다섯? 일흔? 어쩌자고 모래밭에 저토록 거친 그림을 마구 펼치고 있을까? 어떻게….

  한 발자국 그림에 더 가까이 접근한 조지. 그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

  편편한 모래밭에는 그리스 사자와 지중해 염소, 금가루 모래로 살집을 만든 처녀, 손으로 깎은 뿔피리를 부는 사티로스, 바닷가를 따라 꽃을 뿌리고 춤을 추는 아이들, 하프와 리라를 연주하며 깡충깡충 뛰는 악사들, 젊은이와 유니콘. 님프와 나무 요정들이 이삼십 미터가 넘는 길이로 펼쳐지고 있었다.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상형문자 또한. 모래는 녹아내린 구리색이 되어 어느 시대, 어느 인간이 읽어도 오래오래 음미할 수 있는 영원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였다.

  그러다 허리를 펴고 눈길을 든 늙은 화가.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짓는 천진한 모습. 어깨를 으쓱하는데 마치 이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한 짓을 보시오. 어린애 장난 같지 않소? 누구나 한 번은 바보가 되는 법이라오. 당신도 그럴 수 있지 않겠소? 그러니 이 바보 같은 늙은이를 용서해주시오. 아무렴. 아무렴.”

  늙은 화가는 발길을 돌려 갈 길을 갔다. 조지 스미스는 넋을 잃은 채 황금 가루로 그린 바닷가의 대작, 칠 팔미터를 훌쩍 넘는 대작 중의 대작을 보느라 해가 완전히 떨어져 어둠이 내리는 지도 몰랐다.

  숙소로 돌아온 조지 스미스.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너무 배가 고파서 먼저 식당으로 내려가 밥을 먹었다. 함께 식당 테이블에 앉은 부부. 조지가 메뉴를 집어들고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그리고.

  “들어봐.”

  아내는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안 들려?”

  “응. 무슨 소린데?”

  “그냥 파도 소리.” 그는 잠시 눈을 꼭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밀물이 들어오고 있어.”


  아오, 정말 좋지 않나? 뭐 열일곱 편 가운데 하나를 좀 자세하게 소개했다고 줘어박지는 않겠지.


  이것 말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다락방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다가 정말로 그 세계로 가버린다는 <사르사 뿌리 음료수 냄새>도 즐겁게 읽었고, 외계 생명체 이야기인 <번데기가 된 사나이>도 흥미진진했다. 사람이 번데기가 돼? 그럼 다음 단계는 성충이다. 사람이 변태하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까? 눈이 서너개 더 달릴 수도 있고, 몸의 피부가 뼈만큼 단단한 갑각으로 바뀔 수도 있다. 혹시 모르지 가슴 근육이 완전 빵빵해지고 등 뒤로 날개가 달려 인간 드론으로 변할 지도. 더듬이까지 생길 수 있다. 빽빽하게 공중을 메우고 있는 모든 전파를 잡아낼 수 있는 더듬이, 영어로 하면 안테나. 어떻게 변하는 지는 안 알려드리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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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4-13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작가의 책을 사악한 것이 온다 한권 읽었는데요. 너무너무 별로였어요. 화무래도 첫 책을 잘못 잡은듯..... 대표작인 화씨451을 읽어봐야할까요? 그럼 좋아질까요? 아니면 이 단편집을 읽으면 좋아질까요? 저는 이 시대 sf들 좋아하거든요.

Falstaff 2026-04-13 16:51   좋아요 1 | URL
<화씨 451>은 읽은 지 10년이라 별로 기억에 있지 않습니다. 만일 추천한다면 그래서 현대문학에서 나온 단편집을 선택하고 싶은데, 아이고, 책임지지 않습니다. 저는 451이 그리 좋다,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걸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