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의 매력은 순문학만 고집하고 있지 않는데 있습니다.데실 해밋의 <몰타의 매>, 너세니얼 웨스트의 <메뚜기의 날>, 제임스 존스의 <지상에서 영원으로> 같은 대중소설도 기꺼이 시리즈에 포함시키고 있어서 가끔 깜짝 놀랄만한 작품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그게 열린책들 시리즈의 진짜 매력입니다. 별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해 놀라운 작품을 발견하는 맛. 정말 기가 막히지요. 물론 완전 반대로 똥 밟을 때도 많긴 합니다만.

 출판사 열린책들, 빡빡한 글씨간격과 줄간격으로 악명과 동시에 매니어 층을 이루고 있는데, 전 글씨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편집을 아주 좋아합니다. 예전에 내려쓰기 두 줄로 빽빽했던 정음사 세계문학전집, 청구문화사의 현대한국문학전집 같은 불멸의 시리즈에 익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열린책들의 조판에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근데 정음사, 청구문화사. 정말 불멸의 문학전집을 냈던 출판사의 공통점은, 다 망했단 겁니다) 말이 길어집니다.

 역시 이 시리즈를 통해서 제가 읽어본 책들만 대상으로 쓰겠습니다. 예를 들어 <마의 산>은 오래전에 삼중당 문고판으로 읽었고,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민음사 책으로 읽어 대단한 작품입니다만 여기에 포함시킬 수 없었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가나다 순서로 하겠습니다.

 

 

 

 줄리언 반스, <10 1/2 장으로 쓴 세계역사>

 

 여권 발급받고 비자 받아 노아의 방주에 탑승한 임종벌레와 눈치보며 밀항에 성공한 나무좀벌레의 입을 통해 서양 역사의 중요 변곡점을 아주 제대로 비틀어버린 명작. 반스의 다양한 시도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송을 해도 아깝지 않다. 그의 작품은 눈에 띄는대로 선택할 만하다.

 

 

 

 

 

 

 

 

 

 

 

 아르투로 페레스 로베르테, <검의 대가>

 

 

 재미있는 점잖은 스릴러. 요새 넘쳐나는 활극하고 비교하면 심심하기 그지 없겠지만 고전적인 검술의 대가들이 플뢰레 검을 베고, 찌르는 역동적인 묘사는 가히 일품. 시간 죽이기에 더없이 좋은 책.

 

 

 

 

 

 

 

 

 

 

 

그레이엄 그린, <권력과 영광>

 

 오역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예를 든 원어를 내가 읽어도 정말 오역시비는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러나, 가톨릭 땡초 신부 이야기. 예쁜 수녀와의 사이에 아이도 하나 있는 '위스키 사제'란 별명의 진짜 땡초 신부, 오역 시비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재미가 있어 추천하지 않을 수 없는 책.

 

 

 

 

 

 

 

 

 

 


 하인리히 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패전한 전쟁에 참전했던 독일인 이야기. 전후 폐허 독일에서 가난과 황량 속에 팽개쳐진 시민들의 쓸쓸한 뒷모습. 뵐의 다른 작품들도 참 좋다.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 그러나 대표작은 문학동네에서 찍은 <어느 어릿광대의 고백>.

 

 

 

 

 

 

 

 

 

 

 

 

 짐 크레이스, <그리고 죽음>

 

 비위 약하신 분은 아예 책을 열지 말 것. 초장부터 두 죽음과 부패의 상세 묘사 등장. 사람을 역겹게 만들다가 인류 또는 생명의 불멸성에 관한 담론이 펼쳐지는데, 참 볼 만하다.

 

 

 

 

 

 

 

 

 

 

 

 

 보리슬라프 패키치, <기적의 시대>

 

 

 이제 내가 명하노니 눈을 뜨고 나를 보라, 하자 장님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에이 썅, 누가 이놈의 세상을 보게 해달라고 했어? 괜히 오지랖은 넓어서 지랄이야, 하고는 다시 자기 손으로 자기 눈을 파내더란 얘기. 대단한 역설. 궁금하시지?

 

 

 

 

 

 

 

 

 

 

 

 윌라 캐더, <나의 안토니아>

 

 

 미국의 대표적 지방주의 작가. 쉬운 얘기로 촌년이 쓴 재미나고 건강한 소설책. 제발 촌년이라고 썼다고 때리지 마실 것. 난 애정을 담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까 싶어서 쓴 단어다. 광활한 네브라스카 평원으로 이주한 북구 출신 이민자들의 삶과의 투쟁 이야기. 읽어보신 분은 자연스레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떠올릴 것이다. 이토록 쌔가 빠지게 고생해 건강하게 살던 이들이 1930년대에 거지꼴을 하고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풍경으로 연결된다니,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역시 열린책들에서 나온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도 아주 건강하게 좋다.

 

 

 

 

 

 

 

 버지니아 울프, <델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재미로 읽는 사람이 있는지는 몰라도 난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스토리의 전개보단 문장과 인물을 가지고 노는 울프의 글쓰기 자체가 대단히 멋있다. 소위 말하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고맙게도) 짧은 소설책. 적어도 의식의 흐름, 하나만을 감상하자면 길고 긴 <율리시즈>를 고통스럽게 읽을 필요는 없을 터.

 

 

 

 

 

 

 

 

 

 

조르지 아마두, <도나 플로르와 그녀의 두 남편>

 

 나 이 책 읽고 이렇게 발랄하고 발칙한 상상력을 낼 수 있는 브라질이란 나라가 급격히 좋아졌다. 잘 생기고 털도 많은 남편과 돈 많은 약사 남편, 둘을 거느리고 사는 팔자좋은 플로르 여사가 사랑과 오르가즘이 충만한 섹스를 찾아 선택하고 그걸 누리는 흥미로운 이야기. 아주 딱 내 수준. 지금 글 쓰면서 생각하기만 해도 비실비실 흘러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존 파울즈, <마법사>

 

 

 이 책은 끝까지 읽어야 끝난다. 말 이상하지? 읽어보신 분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실 것. 이마빡 한 번 치고 나중에 결정적으로 뒤통수 한 방 후려갈기는 책. 완전 사기꾼 이야기. 파울즈의 대단한 입담은 이미 세상에 다 알려진 바인데, 그 결정체가 바로 여기 있다. 역시 같은 시리즈 <프랑스 중위의 여자>도 재미있지만 <마법사>에 비하면 조족지혈, 즉 새 발의 피.

 

 

 

 

 

 

 

 

 

 허먼 멜빌, <모비 딕>

 

 

 

 고전 중의 고전. 이 소설은 자체가 인류의 유산이다. 과장이라고? 천만의 말씀. 읽어보시면 안다니까. 영화 하나 보시고 모비 딕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건, 이 소설과 멜빌에 대한 모욕이다. 포경선이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이토록 광대한 서사가 나올 수 있다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기념할 만한데, 거기다가 감동까지.

 

 

 

 

 

 

 

 

 

 에밀 졸라, <목로주점>

 

 

 이 책 역시 오역의 극치라는 평가를 즐기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목로주점> 읽었단 얘기하지 말라는 수준. 난 오역에 관해선 모르지만 굳이 그런 평가를 알고 선택할 수 없으니 다른 출판사의 <목로주점>으로 대신하시라. 팔자 드런 한 여인의 생애. 이 책을 읽어야 졸라의 다른 소설들, <나나>, <제르미날>, <작품>, <인간짐승> 같은 것의 배경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루공 마카르 총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소설. 자연주의 작품의 전형을 볼 수 있다. 거위 잡아서 파티하는 장면, 알콜 중독자의 금단현상 장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으.....

 

 

 

 

 

 

 

 싱클레어 루이스, <배빗>

 

 미국 사회의 허리를 이루는 중산층의 허위 의식을 절묘하게 까발린 소설. 루이스로 말할 거 같으면 미국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입담 죽임. 겁많은 잡놈이자 순진하기도 하고, 완벽한 속물을 구경하고 싶으신 분 계시면 서둘러 책방에 달려가 이 책 고르시라.

 

 

 

 

 

 

 

 

 

 

친기즈 아이트마토프, <백년보다 긴 하루>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런 작품을 번역한다는 거. 이 책 읽기 전에 아이트마토프에 관해서 아무것도 몰랐는데, 아, 가공스런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경의를 이런 식으로 풀어내다니. 난 이 책 하나로 맛이 갔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

 

 

 

 

 

 

 

 

 

 

잠시 우리 부부 커플 사진 한 번 감상하시고 넘어가자. 즉, 쉬는 시간. (오줌 마려)

 

 

 

 

 

귀스타브 플로베르, <성 앙투안느의 유혹>

 

 자유분방한 방귀쟁이, 수다쟁이, 오입쟁이, 설레발꾼 플로베르가 어쩌자고 이런 작품을 썼을까? 이거 역시 끝까지 읽어야 끝나는, 희곡 양식에 입각한 소설. 그냥 산문으론 성 안토니우스와 악마의 유혹에 관해서 설파하기 좀 곤란했던지 난데 없이 희곡을 가져다 댔는데, 거 참. 재미하고는 별개로 읽어볼 만한 책. 난 틀림없이 얘기했음. 재미하고는 별개라고. 흐흐.

 

 

 

 

 

 

 

 

 

아르까지 스트루가츠끼, 보리스 스트루가츠끼,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

 

 골때리는 두 형제가 마음 먹고 힘을 합해 한 권의 재미난 책을 내놨다. 흠. 도대체 주인공이 누구야? 지구, 즉 가이아의 항상성. 지구를 파괴할 수도 있는 열쇠를 가진 사람들. 그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책, 나중에 독자한테 숙제 하나 내주는데 그 숙제, 생각해볼 만함. 이게 소비에트 시절에 출판됐었다니 참. 말 하나 보태자면, 이 책을 쓴 형제가 나중에 신, 파충류의 외모를 한 신으로 진화한다는 거. 물론 다른 책에서.

 

 

 

 

 

 

 

 

 

미셸 우엘벡, <소립자>

 

 인류의 멸종에 이르는 과학의 길을 그린 디스토피아 미래관. 주목할 것은 종의 멸망과 비극적 세계관을 그림으로써 오히려 인류에게 서로 사랑하며 살 것을 강조한다는 점. 전철 안에서 읽기엔 좀 버거울 정도의 베드씬은 꼭 필요했을까?

 이 작가는 작품별 편차가 큰 편. 다른 작품 고르실 때 조심하실 것.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악령>

 

 말이 필요없다. 필독서.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사회주의에 경도된 일당들과 한 인물 스따브로긴의 행적. 단연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으로 거론할 수 있는 걸작, 명작, 명작, 불후의 명작.

 

 

 

 

 

 

 

 

 

 

 

 

 헨리 제임스, <여인의 초상>

 

 내가 읽은 헨리 제임스의 소설 가운데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책. 워낙 널리 알려져 출판사마다 이거 안 찍는 곳이 없을 정도. 세상에 부모 잘 만나 평생 부자로 사는 인간도 있고, 이 책의 여주인공 이사벨 아처처럼 이모부 잘 만나 갑자기 돈 벼락 맞는 일도 있으니, 그대, 아직 생을 포기하지 마시라.

 

 

 

 

 

 

 

 

 

 

빅토르 위고, <웃는 남자>

 

 

 한 시절의 궁중 광대를 만들기 위해 안면 성형수술을 했다고 하는데, 어려서 시술을 받아 베트맨의 조커(히스 레저!)처럼 입술이 귀 아래까지 찢어져 웃는 모습을 지니게 된 불행한 인간의 이야기. 열린책들의 또다른 빅토르 위고, <93년>도 재미있으나 둘 가운데 굳이 하나를 꼽으라는 악마의 독촉을 받는다면 나는 <웃는 남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원수들, 사랑 이야기>

 

 북유럽 출신 아쉬케나지 유대인들 이야기. 뉴욕에 한 기구한 유대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 인간이 왜 기구하냐면, 아내가 세 명이다. 유럽에서 나치의 손아귀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구해준 지금의 법적 아내, 법적 아내가 자기 수준하고는 맞지 않아 러시아 유대인 수용소를 거쳐 입국한 유대인 아가씨와 중혼, 그리고 아우슈비츠의 유령 속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본마누라. 이 사기꾼을 둘러싼 따뜻한 이야기. 재미남. 이거 읽고 그의 모든 번역 소설책을 읽기로 결심했음.

 

 

 

 

 

 

 

 

 

 조지 버나드 쇼, <인간과 초인>

 

 암만봐도 코메디 맞음. 가정이란 세속적 규법에 끝까지 반대한 인간 버나드 쇼의 결혼에 관한 매우 신랄한 독설이 상쾌하다. 촌철살인의 단어와 가끔 툭 뱉는 한 마디. 근데 사실은 버나드 쇼가 결혼을 못한 건 너무 못생겨서 그랬다나? 읽어보시라 추천하지는 않겠음. 맞지 않는 사람은 무지 지루할 수도 있을 듯.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이런 건 읽어줘야 어디 가서 교양 떨 수 있다. 기독교에 관해서 더할 수 없을만큼 무식한 나는 가끔 지루한 장면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코의 중세 종교에 관한 지적 탐구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굵직한 기둥과 이를 둘러싼 눈부신 가지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나무 한 그루를 올려다보는 일. 이 책을 읽는 것이 그렇다.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

 

 카뮈의 성장소설. 그러나 그의 미완성 유작. 알제 출신의 공부 잘하는 똑똑한 청년. 자신보다 더 젊은 시절에 전사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작중 주인공이 알제의 곳곳에서 옛 시절, 평범하고 똑똑한 소년의 뒤를 밟아 나가는데 왜 그가 최초의 인간이 되고 말았을까?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최후의 세계>

 

 명작. 1년에 한 편 나오는 소설. 수준높은 우화적 상상력. 유배지로 떠나 살아 로마로 돌아오지 못한 오비디우스를 좇아 유배지 흑해 연안의 토미로 간 주인공 청년 코타. 토미에서 숱하게 코타의 눈에 들어오는 오비디우스 표 변신의 증거 또는 표식들. 더 이상은 스포. 이런 소설은 아무 정보 없이 읽어야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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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9-0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이 글 보면서 점심 먹다가 밥알 뿜을 뻔했습니다.... 부부커플 사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전 <마법사들> 빨랑 읽어야하는데 말이죠! ㅎ

Falstaff 2017-09-01 14:49   좋아요 0 | URL
우리 부부 생긴 것이 워낙 감동감화 가득한지라 가끔 잠자냥 님 같은 분들이 계시죠. ㅋㅋㅋㅋ
<마법사들>은 일단 뒤통수에 뭐라도 대신 다음에 읽는 것이 만수무강에 좋습니다. ^^

레삭매냐 2017-09-01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의 좋은 책들이 이렇게 많았었나요?

팔스타프 님 덕에 <남쪽으로> 구해서 잘
읽었습니다 :>


하인리히 뵐의 책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읽
은 책은 꼴랑 한 권이네요 반성해야겠습니다.

Falstaff 2017-09-01 15:24   좋아요 0 | URL
저 위에서 얘기했듯이 열린책들 시리즈에선 생각하지 못한 작가들이 툭 튀어나와 상당한 즐거움을 주는 경우가 왕왕 있더군요. 그게 이 출판사 최고의 매력입니다.
ㅎㅎㅎ 그리고 <남쪽으로> 정말 괜찮지요? 저도 우연히 중고책방에서 구해 매력있게 읽었습니다.
 

 

 오래전에 비슷한 취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관해서 쓴 적이 있습니다. 이번 역시 같은 뜻입니다. 제가 읽어본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리스트입니다. 한 번 더 강조. 제가 읽어본 것들입니다. 양서를 소개하는 것도 부족한 시간에 굳이 이런 리스트를 작성하는 건, 나만의 '비추' 목록도 몇몇 분에겐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일은 "난 이 책들이 좋다" 라는 제목으로 추천 리스트 역시 올릴 예정입니다. 혹시 열린책들 관계자 분들이 보시면 열 받지 마시라고 미리 말씀드립니다.

 순서는 열린책들 시리즈 번호를 그대로 썼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9. 막심 고리키, <어머니>

 

 

 

 이거, 교재다. 소설 아니다. 특정 운동을 위한 좋은 입문서일지언정 등장인물 가운데 누구 하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회의하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책. 오직 하나, 혁명에 몸과 마음을 바치기로 작정한 철인같은 이들만이 할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의 행위만 구경할 수 있다. 사회주의적 계몽주의의 대표 작품.

 

 

 

 

 

 

 

 

 

17. 조지 오웰, <1984년>

 

 이미 화석화된 옛 시절의 유물. 기본적으로 조지 오웰이란 작자의 개념이 매우 맘에 들지 않는다. 정치를 하지 왜 소설을 썼어? 나 한테 욕 먹으려고?

 

 

 

 

 

 

 

 

 

 

 

 

18.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이것도 옛 시절의 유물이자 아무리 열씨이이미 읽어봐도 도무지 문학의 분류에는 넣지 못하겠던데, 하여간 솔제니친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런 시절의 추억이 듬뿍 담긴 책이라 서슴지 않고 읽어봤는데, 이건 영어를 모국어 비슷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나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림. 당신이 스무살을 넘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책 읽은 다음엔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주장함.

 

 

 

 

 

 

 

 

 

 

 

24. 25. 어윈 쇼, <젊은 사자들>

 

 그냥 통속 전쟁소설. 한 여자를 매개로 하여 극적인 인연이 생긴 세 남자들이 소위 젊은 사자들인데, 두 명은 미국군, 하나는 독일군. 공통점은 대단히 용맹한 군인들이라는 거. 이들이 책 말미에 서로 조우하여 총질을 해대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400쪽이 넘는 책 두 권을 다 읽어야 이들이 어떻게 된다는 걸 알게 되는데, 전쟁영화의 결말하고 아주 똑같다. 뭐 시간 죽이기엔.....

 

 

 

 

 

 

 

 

 

60. 존 스타인벡, <의심스러운 싸움>

 

 어차피 스타인벡을 읽으려면 <분노의 포도>를 피할 수 없다. 만일 <분노...>를 읽었다면 이 책은 전혀 고려해볼 필요가 없고, 읽지 않았다면 나중에 <분노...>를 읽을 때, 아 그때 <의심스러운....>을 읽은 것이 시간과 돈 낭비였단 걸 확실하게 인식할 것이다.

 

 

 

 

 

 

 

 

 

 

 

63. 대실 해밋, <몰타의 매>

 

 

 후대 미국문학에 큰 영향을 준 추리소설. '샘 스페이드'란 이름의 탐정이 소설의 주인공인데 현대 미국 소설책에서 스페이드를 아주 자주 볼 수 있다. 그렇게 유명한 작품. 문제는 처음 나온지 벌써 100년 가까운 추리소설을 지금 읽으면서 재미나다고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 그게 비록 타임이 선정한 100대 영문소설 가운데 하나라도 말이지.

 

 

 

 

 

 

 

 

 

64. 블라디미르 마야꼬프스끼, <마야꼬프스끼 선집>

 

 난 번역한 시는 읽지 않는다! 근데 이 책이 시집인 줄 모르고 샀다. 돈이 아까워 다 읽기는 했는데 도무지 건질 만한 시가 많지 않다. 석영중 선생의 번역이 아까운 건 알지만 그래도 어쩌랴, 번역한 시하고는 어떻게 해도 친해지지 않는 걸.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출판사 열린책들은 이 책 하나 가지고 혹독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이렇게 훌륭한 텍스트를 어째 이따위로 만들어 팔 수 있는가. 더구나 Mr, Know 시리즈에 이은 중판임에도 불구하고. 번역한 홍성광은 또 뭐하는 인간인가. 자기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인데 한 번도 들춰보지 않은 거야? 개판도 이런 개판이 있을까. 교정, 교열을 대한민국의 중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외국인이 했다는 데 만원 건다. 이렇게 책 만들 바에 차라리 출판사 문 닫는 게 훨씬 양심적이다.

 

 

 

 

 

 

 

 

 

70. 71. 72. 제임스 존스, <지상에서 영원으로>

 

 

 시간을 죽일 목적 딱 한 가지면 뭐 좋을 수도 있겠다. 미 육군에 헌정한 책. 따라서 무수한 마초들의 울뚝불뚝한 근육 구경은 실컷 할 수 있다. 읽어보니 이미 용도폐기된 남성성에 대한 옛 시대적 찬가 이상이 아니다. 흑백 영화, 몽고메리 크리프트와 프랭크 시나트라가 열연하는 흑백 영화를 보시는 것이 훨씬 좋을 듯.

 

 

 

 

 

 

 

 

 

 

 

79. 알렉산드르 세르게이 푸시킨, <예브게니 오네긴>

 

 운문소설? 그런 것도 있어? 소설은 산문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행위가 아니었나? 혹시 모르겠다. 그리스 시대부터 유구한 서사시의 전통을 자랑하는 서양에선 그게 가능한지. 근데 그걸 번역하면,아냐, 아냐. 다른 사람은 감격할지 몰라도 나한텐 영 아냐, 아냐. 이건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냐. 그냥 오페라 대본이야.

 

 

 

 

 

 

 

 

 

 

 

84.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너무 지독한 사소설, 이라고 읽었다. 근데 읽어본지 하도 오래라 의견에 자신이 없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트에 포함시키는 건, 그때 지독할 정도의 사소설이라고 머리 속에 확 박혀, 무지하게 오랜 세월 뛰어난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를 읽지 않게 했다는 그거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하다.

 

 

 

 

 

 

 

 

 

 

 

102. 아서 코난 도일, <바스커빌 가의 개>

 

 

 소년 시절의 추억은 건드리지 말고 그냥 내비두는 게 좋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했다. 1970년 쯤 소년중앙을 통해 처음 읽어본 코난 도일, 그 위명에 혹해서, 물론 소년시절처럼 극적인 감동까지는 아니어도 홈스의 환상적인 추리가 끝내주겠지, 싶었는데 똥 밟았다. 영국 드라마 <셜록>이 훨씬 재미있으니 그리 아시라. 역시 당신이 20세 이상이면 절대 비추.

 

 

 

 

 

 

 

 

 

136. 137. 138. 139. 140. 141. 앙투안 갈랑, <천일 야화>

 

 여섯권의 <천일 야화>를 읽어보고 남은 하나는, 알라딘이 중국 북서부 지방의 회교도라서 청나라 식 변발을 하고 있었다는 거. 영국인 리처드 버턴 판은 어떤지 몰라도 앙투안 갈랑의 책은 차암 재미 없더라. 근데 그거 아셔? 셰헤라자데가 밤에 미친 왕한테 이야기를 해주고 둘이 드디어 침대에 들어 찐한 애정을 나눌 때, 침대 옆에서 셰헤라자데의 친동생 두냐자데가 광경을 빤히 바라보면서 침을 꼴깍 넘기곤 했다는 거.

 

 

 

 

 

 

 

 

 

148. 149. 150. 마거릿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 놀라울 정도의 인종차별적인 작품이 어떻게 아직도 읽히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지나간 시절의 지나간 소설가에 의한 화석이라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거 참. 그리고, 세상에나 스칼렛 오하라가 미인이 아니라니! 그것도 책의 제일 앞에 스칼렛 오하라더러 미인은 아니라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할 거냐고. 전형적인 대중소설. 대중소설이라서가 아니라 인종차별적 소설이라 이건 마땅히 도서관 지하창고에 짱박혀 있어야만 한다.

 

 

 

 

 

 

 

 

 

152.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예술을 위한 예술, 이란 관점을 빼면 하나도 남지 않는 소설. 영화나 만화 기타 매체에 의하여 과도하게 미화, 찬양된 작품. 프리즘을 통과한 파우스트가 바로 도리언 그레이.

 

 

 

 

 

 

 

 

 

 

 

 

 

159. 사드, <미덕의 불운>

 

 

 솔직히 말하자면 사드란 이름에 혹해서 읽었다가 망했다. 뭐 이런 작자가 다 있어. 머리통 속에 딱 하나, 가학성애 말고는 아무것도 들지 않아야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다행. <미덕...>을 읽어 사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서 그의 다른 작품 <소돔...>을 아예 제쳐놓을 수 있었으니.

 

 

 

 

 

 

 

 

 

 

17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네프, <루진>

 

 

 루진이란 이름의 잘 생긴 남자가 왜 사브르를 높이 처들고 파리 꼬뮌 한 가운데 있게 된거야? 결정적으로 너무 작위적인 설정 하나 가지고 이 리스트에 오름. 물론 <악령>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뚜르게네프를 좀 비아냥 거린 것에도 영향을 받았음을, 흠, 숨기지 않겠음.

 

 

 

 

 

 

 

 

 

 

 

212.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울프는 "이 책들이 좋다"에도 리스트가 한 권 올라갈 거고 "이 책들이 싫다!"에도 하나를 올렸다. 이 책은 도무지 정이 안 가는데 물론 이건 내가 소설을 읽는 교양이 일천하기 때문이리라. 하여간 나하고 맞지 않는 책. 세상의 모든 소설가는 나 하나를 위해 소설을 쓰다가 죽는 사람들이니까 내가 싫으면 그건 이유가 있건 없건 간에 적어도 나한테는 진리다. 아냐?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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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8-3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몇몇 작품 빼고는 대체적으로 공감합니다. 읽다가 정말 포기하거나 전혀 손이 안 가거나 읽고 나서 욕 바가지로 한 작품이 저도 저 리스트 가운데 많군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제 심금을 울리는 명작 중 하나인데, 열린책들 버전 교정교열은 어떤지 궁금해서라도 서점 가서 한 번 펼쳐봐야겠습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영화보고 나서 원작이 궁금해져서 원작도 읽어볼까 싶었는데 관둬야겠습니다. 무려 거기다 상중하 3권으로 나왔지요? 워매..... -_-

Falstaff 2017-08-31 10:20   좋아요 1 | URL
ㅎㅎ 전 어느 책들이 잠자냥님 하고 제 의견이 다른지 안답니다. ^^
그리고요,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정말 읽지 마세요. 영화가 원작보다 좋은 몇 안 되는 진기한 소설이예요. ㅋㅋㅋ 그리고 몽고메리 크리프트가 넘 잘 생겼잖아요!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조영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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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점 쇼윈도에서 마네킹 사이에 진짜 사람이 하나 진열되어 있는 상황. 길을 가던 사람들은 저 마네킹이 사람일까 아닐까 궁금하기 짝이 없고 그만큼 관심의 대상이 된다. 많은 눈길을 받는 디자이너의 옷이 더 많이 팔리는 건 당연한 일. 이 일을 하는 여자의 이야기. 디자이너가 진짜 모델로 데뷔시켜준다는 말에 혹해서 수시로 그와 밤을 보내지만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 일 없는 우울하고 가난한 존재. (마네킹 24호)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해 집안에 틀어박혀 온 종일 가위로 이것도 오리고, 저것도 오리고, 나를 괴롭히고 두드려 패던 아이들 앞에서 금붕어를 손에 쥐고 그것도 오려 아이들을 기가 질리게도 만들고, 아빠는 잘 다니던 회사에서 이유 없이 해직당해 급기야 원양어선을 타게 되고, 엄마는 급격히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심방(尋訪: visit)오는 목사님 덕택에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만드는데, 명왕성은 더 이상 태양계의 위성이란 지위를 유지하지 못했으며, 자일리톨 껌은 대한민국을 평정, 나를 포함한 우리 식구는 영락없이 명왕성 꼴이지만 그래도 줄기차게 하루에 두 통 씩 자일리톨 껌을 씹어댄다.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반 지하 월세 방에 살지언정 여섯 살 어린 비린내 나는 청년이 내 외로운 밤을 달래주지만 실상은 무수한 인간들의 발 건강을 위해 하루 종일 이놈, 저년의 발을 주물러야 하는 신세, 간혹 발을 주물리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변태들은 젊은 아가씨가 자기 발을 주무르고 있는 와중에 팬티 속에 양 손을 쑤셔넣고 끙끙 신음을 해대기도 하건만 150 씨씨 오토바이를 사주지 않으면 날 떠날 애인을 위해 변태의 명함에 박힌 전화번호를 눌러야 한다. (굿 초이스)

 처음 세 단편의 내용. 모두 열편이 실려 있는 단편선. 조영아는 초지일관, 몽땅 궁상의 극치를 달리는 등장인물을 선택하여 책을 읽는 내내 시종일관 우울 모드를 이루는데 (자랑인지는 모르지만) 성공했으며, 대다수에서 숱하게 비정상적 상태의 주인공 또는 주인공과 가장 가까운 가족, 그것도 아니면 유난히 관심이 가 관찰하게 되는 인물로 설정했다. 비정상 가운데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이 조울증, 우울증, 정신분열 등 자살이나 심각한 자해의 가능성을 가장 많이 보유한 경우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곧 죽을 질환을 가진 인물의 남편이나 가족. 하여간 징글징글하다.
 지금 잠깐 내 서재 검색해봤다.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윤보인의 <밤의 고아>. 이거 다 문학과지성에서 찍은 거다. 여기에 이번에 읽은 조영아의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까지 포함해서 우연하게, 문학과지성에서 찍은 요새 작가들의 공통점은 가난하고, 외롭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 내가 읽은 요새 작가에 국한해서 하는 얘기니까 분명히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나도 안다. 원래부터 내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찍은 한국문학은 소설책이 됐든, 시집이 됐든 상당히 궁합이 잘 맞았었는데 21세기에 접어들어선 영 그렇지 아니하다. 읽는 재미는 언젠가부터 소설판에서 사라졌거나 매우 귀해졌다. 하여간 그렇다는 말씀.
 언제부터 우리나라 소설판이 이렇게 심각한 국면(내용이 심각하다는 의미지 문학계가 심각하다는 거 아니니 오해 마시압. 거기야 항상 심각했으니까 말씀입니다.)으로 접어들었을까? 좀 읽는 맛이 나는 재미난 글을 쓰면 등단하는데 애로사항이라도 있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너도나도 별로 다르지 않는 책을 쏟아내는지도. 완전 내 생각이다. 그러니 당연히 사실하고 다른 이야기일 거라는 점은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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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영역의 확장
미셸 우엘벡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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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 우엘벡의 첫번째 장편소설. 이 책을 발간한 때가 그의 나이 36세. 소설가로 한창 무르익을 무렵. 그러나 그는 (내)예상과는 달리 시를 써서 문단에 데뷔를 하고 이미 두권의 시집을 상재한 다음이었다고, 작가 소개에 나와있다. 소설 데뷔작을 그의 작품으로는 네번째로 읽었다. <소립자>와 <지도와 영토>를 읽은 다음에, 글쎄, 그 다음이라면 어떤 우엘벡을 읽어도 만족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다.

 게다가 출판사 열린책들은 이 책을 품절상태로 내버려두고 있고, 중고책 가게에서도 그리 흔하게 구경하는 편은 아니다. 누가 먼저 읽어봤다면 틀림없이, 굳이 찾아가면서까지 읽을 필요가 있겠어? 하고 반문했을 듯. 그래서 그야말로 굳이 찾아 눈에 띄자마자 사 읽지는 않았을 듯.

 품절 상품이라니까 까놓고 얘기하는데, 여기서 우엘벡이 말하는 "투쟁영역"이 뭔가하면, 자연상태, 만인이 만인에 대한 이리(狼: Wolf)상태를 언급하는 거 같다. 먹이와 섹스를 놓고 유일한 강한 수컷만이 둘 다 취할 수 있는 와일들링 필드. 인간세계로 치면, 힘이 있거나 돈 많은 놈들이 다수의 여성을 취하는 반면, 학력도 후지고, 돈도 없고 생기기도 별 볼 일 없는 찌질한 수컷은 몇 년에 한 번 연애를 할까말까한 경우, 그걸 투쟁영역이라고 결론짓고, 보다 구체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섹스를 투쟁영역이라고 분명한 단어로 말한다.

 집 밖, 내가 밥 빌어먹고 사는 직장의 정문 한 발자국 바깥부터 시작하는 정글 상태. 오직 경제논리에 의하여 재화와 섹스가 결정되는, 뭐 별로 새로울 거 없는 이야기. 그리하여 책은 두 명의 찌질한 인간이 등장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바, 둘 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전문 엔지니어지만 하나는 애인과 헤어진 2년 전 이후 한 번의 연애도, 시시한 섹스도 하지 못했으며, 직장에선 자기보다 어린 상사로부터 은근한 해고 위협을 눈치채는 인간이고, 다는 하나는 유대인을 부모로 둔 건 이젠 아무 까탈이 아닌 세상을 만났으나 결정적으로 너어어무 못생긴 외모로 인해 전문 엔지니어임에도 불구하고 낼 모래 서른의 나이에 육박하는데 아직도 총각 딱지를 떼지 못한, 그러나 여태까지 살아온 생애가 억울해서 기어이 딱지를 떼보려 여기저기 쉼없이 껄떡대지만 그때마다 딱지를 맞는 한심한 인간이다.

 다시 말씀드리는데, 별 볼 일 없는 작품. 절판 상태가 해소되면 틀림없이 출판사 열린책들이 열라 광고를 해댈 것이다. 유혹에 넘어가건 아니건 그건 당신 마음. 그러나 내 의견을 보태자면, 세상엔 이거 말고도 읽을 거리가 넘쳐난다는 거. 그럼에야 굳이 나처럼 찾아서 읽을 필요는 더구나 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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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속의 외침 - 2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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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번째 읽은 위화.

 어째 그리 하나같이 궁상맞은지. 위화가 1960년생.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중국이 딱 그럴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의 중국하고 비교하면 뽕나무 밭이 넓은 바다로 서너번은 바뀌었지만. 격심한 현대사의 파도를 뚫고온 세대의 끝부분에 위화와 같은 1960년 생들이 있을 것이다. 이건 위화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다음 세대와 비교해 놀라울 만큼 풍부한 추억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대의 젊은 세대들도 위화의 작품들을 읽으며 자신들의 부모가 이런 시대를 살아내 지금에 이르렀을까, 조금쯤 의심을 하기도 하고 또 많이는 놀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도 그렇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0년 안쪽에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 부머라고 일컫는데, 이들은 워낙 대가리 수가 많아 세상에 나오자마자 전쟁 후의 극심한 빈곤 속에서 또래끼리 끔찍한 수준의 경쟁을 겪으며 성장하면서, 궁상스런 극빈부터 천민자본주의와 재벌들에 의한 정경유착 같은, 유럽의 백인들은 한 세기 이상 걸려 경험할 것을 한방에 다 겪으며 살아온 것하고 비슷하다. (이야기가 또 경상남도 삼천포 시로 빠졌다.) 하여간 위화가 (내가 읽은 네 편의 장편소설로만 판단하면) 초지일관 굳은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소년시절에 겪은 듯한 중국의 일반 농민 계급, 그것도 아주 날것의 솔직하기 짝이 없는 하이퍼 레알리즘 식 묘사가 현대 중국인들에게 대단히 신선하지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을 것 같다.

 <가랑비 속의 외침>은 작가가 처음 발표한 작품이란다. 읽어보면 첫작품이란 수식이 어울리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유명작가의 운명을 띠고 등장했다, 라는 표현이 어울릴 수도 있다. 물론 최용만의 번역이 유독 위화와 궁합이 맞아 한글로 읽는 이이의 작품으로 그렇게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책의 마지막에 '역자 한 마디'에서 최용만은 위화와의 친밀한 관계를 은근히 과시하기도 한다), 아주 쉬운 문장과 '촌철살인'이란 낱말의 사전 그대로의 뜻을 분명하게 시연하는 난데 없는 대사의 상쾌함과, 도무지 예상하지 못할 등장인물들의 행동 또는 행위,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던 바늘 끝을 휙, 나꿔채 눈부신 문장으로 만들어내는데엔 이이와 어깨를 견줄 이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석대학 문창과 교수이자 시인인 안도현이 위화의 소설을 (이 책의 뒤표지에 나와있다) 이렇게 묘사한다. "위화의 소설은 끈적끈적하고, 거무튀튀하고, 때로는 붉다." 소설을 어떻게 읽었는가에 관해서 시인의 의견은 그리 참고할 만하지 않다. 역시 제일 중요한 건 독자 개인의 느낌이니. 난 차라리 이이의 작품 <가랑비....>는 '반투명한 안개 속을 유영하는 맑은 눈eye'이라고 하고 싶으니, 안도현과 완전히 반대의 느낌이다.

 화자 쑨광린은 삼형제 가운데 둘째 아들. 책은 화자가 이야기하는 석공 출신 증조할아버지와 비참한 최후를 맞는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쑨유위안과 부잣집 출신의 전족을 한 할머니, 개잡종처럼 보이는 아버지 쑨광차이와 어머니, 그리고 삼형제 쑨광핑, 쑨광린, 쑨광밍의 삶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기억해낸다. 읽으면 독자가 혹시 이거 작가 자신의 이야기 아냐, 라고 오해하기 딱 맞을 정도의 능청은 (이 책이 데뷔작이란 걸 기억하시라!) 벌써부터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고, 자기 기억 속의 1960년대, 그니까 한 1965년 전후의 중국 농촌에 한 가정을 상정하여 당시 중국의 가난하고 불행한 농촌의 삶을, 한 집안에 집중포화를 퍼부어 만들어낸 소설이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나' 쑨광린은 시내에 돈 좀 있고 슬슬 바람도 피우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의 손에 이끌려 양자로 팔려가고, 5년만에 말도 없이 파양당해 다시 고향, '남문'으로 돌아와 소년시절을 끝마치고 또다시 '남문'을 떠날 때까지,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세월이란 게 무서운 것이, 일을 당할 때는 참 무섭고, 아프고, 슬프고, 지랄맞고, 억울하고 그래도 나중에 그때를 돌아보면, 아 추억이란 이름의 진통제, 그냥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모양이다.

 당연히 성장소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런 류의 소설은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데, 그러나 <가랑비....> 만큼의 질량으로 사람을 웃기게하고, 울게도 하고, 간질이기도 하는, 간단하게 말해 딱 집어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같은 문화권의 작품이라서 그럴까? 책의 스토리는 굳이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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