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만시아.사기꾼 페드로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3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김선욱 옮김 / 책세상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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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반테스의 초기와 후기 희곡 하나씩을 담고 있는 책. 그러니까 19세기, 18세기도 아니고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쓰인 작품. <누만시아>는 초기 비극이고 <사기꾼 페드로>는 후기 희극이다. <사기꾼 페드로>는 세르반테스 이후에도 몇 작품을 통해 당시의 유사한 희극 분위기를 겪었던바 그리 새로울 것이 없어, 독후감은 <누만시아>에 한해서 쓰겠다. 사실 그렇다. 고전 희극엔 당연히 타협하지 못할 악당이 존재하고, 꾀 많은 선한 주인공이 등장해 악당을 골탕 먹여 개과천선하게 한다든가 파멸에 이르는 과정 아니겠는가. 이 정도로만 이야기하자.
  로마를 열었던 영웅 가운데 한 명인 아이네이스가 아버지 안키세스를 업은 채 트로이의 패잔병들을 배에 태워 지중해를 떠돌 당시, 카르타고에 도착해 여왕 디도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신의 계시를 좇아 다시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향할 때, 디도 여왕은 자신의 후손이 이탈리아 땅에 큰 환란을 가져오리라, 유언하며 스스로 불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고 만다. 정말로 몇 백 년 후 지중해의 강자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쟁이 시작되고, 1차전 로마 승리에 이은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의 용사 한니발이 이베리아 땅을 거쳐 코끼리를 끌고 피레네와 알프스를 넘어 로마 전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스키피오의 양 할아버지다. 그래 이이가 대 스키피오, 작품의 주인공은 소 스키피오. 대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가 2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둔다. 카르타고는 로마에 막대한 전쟁배상금은 물론이고 로마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어떠한 전쟁도 일으킬 수 없는 처지에 빠지는데, 이때의 카르타고를 그린 작품이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쓴 <살람보>다
  카르타고, 라면 한니발에 하도 뜨거운 맛을 봐서, 자다가도 소스라쳐 벌떡 깨고는 하던 로마. 이제 3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켜 카르타고를 완전한 잿더미로 만들고 백성들은 모두 도륙을 하든지 노예로 만들어버리는데, 이 3차 포에니 전쟁의 영웅이 바로 소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아프리카누스. 그러나 카르타고를 폐허로 만들어도 만족하지 못한 로마는, 카르타고의 전진기지 중 하나였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로마에게 끊임없이 반기를 드는 용맹한 지역인 누만시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래 자료마다 조금 다르지만 11년, 또는 13년 동안 누만시아 3천여 시민들은 로마의 8만 대군(자료에 따라 3만 대군)에게 절대 함락당하지 않고 콧대를 빳빳하게 세우고 있었던 것. 로마는 다시 한 번 스키피오를 누만시아에 보내게 된다. 여기서 작품은 시작한다.
  로마 입장에 이런 작은 동네가 감히 로마한테 바득바득 기어오르는 것이 마땅하지도 않거니와 기타 작은 부족들에게도 모범이 되지 않았지만, 워낙 사납게 반항을 하는지라, 용감하거니와 지략에도 출중한 스키피오가 결정하기를, 공성전을 하면 함락시킬 수 있겠지만 로마군도 큰 피해를 각오해야 하니, 누만시아 읍성 사방 9킬로미터의 방책을 치고 방책 넘어 깊은 해자를 파서 완전하게 고립시켜버리고 만다.
  특색 있는 것은, 다양한 등장인물들 가운데 누구를 특정하여 주인공이라 할 수 없을 만큼 각자 로마군과 누만시아의 군인, 노인, 여자, 아이들이 모두 독립된 이야기를 갖는다는 점. 역자 김선욱은 해설에서 이를 ‘집단 주인공’이라 하는데 수긍할 만하다.
  이후 드라마의 줄거리는 오직 하나, 누만시아 사람들이 8개월(자료에 따라 일년여)동안 굶주림에 시달리다, 먼저 로마인 포로들을 잡아먹고, 이후 차례로 굶어 죽다가, 한 명도 남김없이 자살을 감행해, 로마가 누만시아에 입성해보니 산 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 그리하여 로마가 이기긴 했으나, 스키피오는 ‘너희들은 죽었지만 나를 이겼구나!’하고 한탄했다는 역사의 한 페이지.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대표작인 <사피엔스>를 통해서, 이 내용은 로마의 승자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기록한 것에서 비롯한 것으로, 자유를 사랑하는 야만인의 이야기를 애호하는 로마인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었단다. 로마가 너무도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사실 8만 명이 3천 명을 상대로 완전 몰살시킨 것이 자랑이 아니라서, 패자들의 기억마저 자기들 식으로 편집했다는 취지. 매우 그럴듯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다. 몽고군 침략 당시 지금의 춘천 시내에 오똑하니 솟은 봉의산에서 토성을 쌓고 몽고군에게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결국 한 명도 남김없이 몰살을 당했던 것. 봉의산에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끈질기게 버텼는지 몽고는 결국 성 밖으로 이중목책을 치고 한 길이 넘는 구덩이를 파서 고립시켜 버렸다고 한다. 식량은커녕 물도 없는 토성에 갇힌 사람들이 거의 초주검이 되었을 때, 몽고인들이 쳐들어와 완전히 몰살을 시킬 수 있었다고. 몽고인들은 로마와 달라서 그들의 완벽한 승리를 감추기 위해 고려인들의 투쟁을 미화시키는 아량이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 희곡 <누만시아>를 단지 한 생각,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왜 전부 몰살을 당해야 하는가. 그것보다는 차라리 아이네이스를 살려 나라 밖으로 도망시킴으로써 동족의 영원성을 이어간 트로이 사람들처럼 일부를 피신시키는 등의 방안을 마련했어야지, 죽음, 그것도 자신들의 모든 재화를 불사르고 집단 자살을 감행하는 행위를, 죽으면 죽었지 항복하지 않겠다는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미화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는 제1차, 제2차, 제3차 포에니 전투라는 명칭이 의미하듯, 지금 항복한다고 그게 영원하다는 의미는 조금도 없었으니까. 물론 이건 21세기식 사고방식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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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 공지다. 방구석과 회사 파티션에 짱박혀 2월 21일부터 4월 말까지 낮술 마시는 날 빼고 만날 읽기를 진행한다. 이번에 무게를 둔 건 산도르 마라이다. 산도르 마라이가 20세기 중반에 쓴 <유언> 1939, <결혼의 변화> 1941, <이혼전야> 1944가 계획되어 있고, 이것으로 산도르 마라이의 번역서는 몽땅 읽게 된다. 독후감 읽으셔도 돈 안 받는다. 구체적인 일정이 아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폴스타프의 산도르 마라이 떨이 하기

 

  1독. 3월 둘째 주, 산도르 마라이 <유언>

 

 

  2독. 3월 둘째 아니면 셋째 주, 산도르 마라이 <결혼의 변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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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독. 2독 후 곧바로. 산도르 마라이 <결혼의 변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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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독. 3월 셋째 주 아니면 넷째 주, 산도르 마라이 <이혼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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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독서 공지다. 독서 공지 하고 연달아 또 책 읽는다고 공지글 쓰는 게 하나도 미안하지 않지만, 독서모임 죽어도 안 하는 나는 이번에도 집구석에서 중국의 현대 희곡을 읽는다.

  출판사 ‘연극과 인간’의 중국현대희곡총서 시리즈의 14번에서 17번까지다. 1번부터 13번까지는 2019년에 읽은 바 있으니 이제 연속성을 확보하게 된다. 2020년에 출간한 책들로 궈스싱의 <바둑인간>, 멍징후이의 <떠돌이 개 두 마리>, 쉬잉의 <로비스트>, 위룽쥔의 <손님>을 3월부터 4월 말까지 두 달에 걸쳐 적당히, 내 맘대로 읽을 예정이다. 현대 중국희곡만 읽으면 좀 섭섭하니까 중국전통희곡총서의 현재까지는 마지막 순서인 <진중자>도 해치울 예정이다.

 

폴스타프의 중국 현대 희곡 읽기

 

  1독. 언젠지 아몰랑. 궈스싱 <바둑인간>

 

 

  2독. 글쎄 언제나 읽을까? 멍징후이 <떠돌이 개 두 마리>

 

 

  3독. 내가 언젠지 모르는데. 쉬잉 <로비스트>

 

 

  4독. 설마 네가 알겠니. 위룽쥔 <손님>

 

 

  5독. 언젠가 읽겠지. 왕런제 <진중자>


  21. 01. 24.

 

  어떠셔? 비슷했나? 그 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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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2-24 09: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의도 해주셔야 합니다?

Falstaff 2021-02-24 09:10   좋아요 1 | URL
아이고, 제 주제에 뭔 강의를요.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2-24 09:34   좋아요 1 | URL
그래야 비슷하죠.^^

noomy 2021-02-24 09: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너무 비슷해서 놀랬습니다

Falstaff 2021-02-24 09:34   좋아요 2 | URL
아, 그렇습니까? ㅋㅋㅋㅋ 드디어 한 건 했군요! ㅋㅋㅋㅋㅋㅋ

noomy 2021-02-24 11:24   좋아요 2 | URL
늘 그분의 초인적인 강의 공지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Falstaff 님의 유머도 감탄을 자아 내는군요 ㅋㅋ

Falstaff 2021-02-24 11:2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고맙습니다.
전부터 한 번 써보자고 했다가 오늘에야 ㅋㅋㅋㅋㅋ

han22598 2021-02-24 1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ㅍㅎㅎㅎ 똑같은데요. 무료인것만 빼고 ㅋ

Falstaff 2021-02-24 10:2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이거 재미난데요. 은근히도 아니고 노골적으로 재미있어요. ㅋㅋㅋ

잠자냥 2021-02-24 1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촌철살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2-24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맨 마지막줄 안 보고도 알아차렸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문제는 폴스타프 님은 책 다 *읽으실* 거잖아욬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2-24 10:4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진짜 재밌어요.
한 번 해보시든지. ㅋㅋㅋㅋㅋㅋ
물론 전 위에 올린 것들 적어도 5월 초까지는 다 읽을 겁니다. ㅎㅎㅎ

coolcat329 2021-02-24 19:34   좋아요 2 | URL
아 저도 첫문장 보면서 이 묘한 기시감은 뭐지? 읽으면서 이거 그 분인데...그 분...ㅋㅋㅋㅋ

수이 2021-02-24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강의도 진짜루 해주셔야죠. 온라인으로 어떠세요? 전 중국쪽은 따라갈 자신 없지만 산도르 마라이는 따라갈 자신 있어요. :)

Falstaff 2021-02-24 11:30   좋아요 2 | URL
아이고, 아이고, 완전 아마추어가 자꾸 이런 말씀 들어서 간땡이가 붓기 시작하면 큰 일 생깁니다.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2-24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책중 읽은 책이 하나도 없어요^^
폴스타프님의 독서공지에 책에 대한 정보를 얻습니다^^
재미있어서 살짝 웃기도 했어요**

Falstaff 2021-02-24 11:31   좋아요 2 | URL
저도 저 책들 가운데 읽은 거 하나도 없어요. ㅋㅋㅋㅋㅋ
웃으셨다니 기분도 좋고 어깨도 으쓱으쓱 거립니다. ^^

단발머리 2021-02-24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고 유익한 공지사항이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모두 즐거워하시는군요.
그 분이 이 글 읽으셨나 모르겠네요. 그게 궁금하군요^^

Falstaff 2021-02-24 20:3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설마 그분께서 일개 서생이 장난으로 한 번 해 본 걸 보고 설마, 설마, 설마, 언짢았겠습니까.
상쾌했으리라 생각하겠습니다. 이제 패러디도 생길 만큼 유명해진 거니까요. ^^

coolcat329 2021-02-24 19: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하하하 🤣🤣🤣🤣🤣카레 맛있게 먹다 뿜을 뻔 했습니다. 노란 색 안 지워지는데 큰일날 뻔 했어용!

Falstaff 2021-02-24 20:33   좋아요 2 | URL
아하, 재미 있으셨다면 백퍼 이상 성공입니다. 처음부터 웃자고, 웃자고 한 얘기거든요. ㅋㅋㅋㅋㅋ

막시무스 2021-02-24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쟈체에 반해서 수강신청을 하려는데 어캐해야 해요?ㅎ

Falstaff 2021-02-24 20:35   좋아요 2 | URL
음하하하.... 그건 제가 조언을 드릴 수 없는 문제네요.

붕붕툐툐 2021-02-24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폴스타프님의 이런 재치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읽는 동안 너무너무 재밌고 즐거웠어요~ 저에겐 함께 읽자는 얘기로 들리네용!!ㅎㅎ

Falstaff 2021-02-25 09:1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렇게 얘기해주시니, 아이 고마워라... ㅋㅋ
산도르 마라이는 함께 읽어도 괜찮은데 책이 다 품절이나 절판이고요,
중국희곡은 워낙 대중적이지 않아서 권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

수이 2021-02-26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ㅋㅋㅋㅋ 선생님이 댓글 다셨네요 저기 위에 ㅋㅋㅋㅋㅋ 거기에 댓글 달고 싶은데 차마 못 달고 ㅋㅋㅋ폴스타프님 댓글 보고 또 한참 웃었어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2-26 16:11   좋아요 0 | URL
ㅋㅋㅋ 거기 직접 다셔도 되는데요.
그분이 직접 왕림해주시고, 이거 참 가문의 영광입니다. ㅋㅋㅋㅋㅋ
조금 신경이 쓰였나봅니다. 뭐 유명인이 그런 거 한두번 겪었겠습니까. ㅎㅎㅎㅎ

수이 2021-02-26 16:1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러시아 문학에 빠지지 않는 로쟈님 ㅋㅋㅋㅋ 저 책 방금 샀어요 나는 고백한다 2권 사면서

Falstaff 2021-02-26 16:19   좋아요 0 | URL
나는 고백한다, 읽기 시작하셨어요? 와우, 좋습니다.
그분이 노어 전공이던가 그러니까요. ㅎㅎ 하여간 재미난 세상입니다. ㅋㅋㅋㅋ
 
조장 책만드는집 시인선 86
황훈성 지음 / 책만드는집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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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훈성. 서울대 영문과 학사, 석사.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 영문학 박사. 베케트 전공 이후 죽음에 천착했다고 여기저기 쓰여 있음. 동국대 영문과 교수. 취미로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자기 시집 선물하기. 영문과 아니라도 상관없음. 내가 읽은 책도 2016년 11월 28일에 “ooo 쌤에게”라는 헌사와 함께 어지러운 사인이 그려 있음. 선물 받고 자기 이름도 안 지운 채 헌책으로 팔아먹은 사람이라도 인권보호 위해 익명 처리함. <지상에 남겨진 신발>, <운평선>, <조장>, <영시암>, <수처작주 입처개진>, 이렇게 다섯 권의 시집을 냈으나, 구글, 네이버를 아무리 검색해봐도 어떤 경로로 시인이란 타이틀을 갖게 됐는지는 절대 발견할 수 없으며, 통박으로 말하자면 지금은 속초 모처에서 살고 있는 듯하니 동국대에선 정년퇴임한 듯. 문과대 교수면 시인으로 등단하지 않고도 시집 다섯 권 낼 수 있음. 아니, 문과대 교수 아니라도 돈만 있으면 가능함.


  시라고 다 같은 시야? 문제는 품질이다.


  참 안쓰러운 사람들 가운데 한 부류가, 시를 좋아하고 자주 쓰는데, 뮤즈한테 크게 뇌물을 먹이지 않아서 그런지 시 쓰느라고 애만 쓰는 사람이다. 물론 내 주위에도 있다. 그이도 시집 한 권을 자비 출판했다. 나한테도 한 권 줘서 읽어봤더니, 전형적으로 보통사람이 쓴 시다. 무슨 뜻이냐 하면, 보통사람이 쓴 시는 낙서고, 시인이 갈긴 낙서는 시라는 말씀.
  황훈성의 시집을 열어보면, 아, 노 시인의 노작을 이리 얘기해서 외람되지만, 그만 얘기할까? 계속해?, 고민 고민하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아마추어 바로 윗동네, 딜레탕트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뭐 나야 시를 그저 읽기만 하는 독자에 불과하지만, 시 좀 읽다 보니까 어떤 것이 시라는 건 조금 눈치 채는 수준이라 자뻑하며 사는 인간이다.
  시는 삶이어야 한다는 전제에 동의한다. 그러나 삶이 시가 되기 위해서는 삶과 시 사이에 놓인 계단 하나를 올라가든, 내려가든 하여간 거쳐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이런 시.



  조장鳥葬


  태곳적 그 누가
  공중의 단백질 덩어리에게
  새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였을까?


  지상의 힘센 단백질 무리가
  쏘아올린 화살에 떨어지는
  공중의 약한 단백질이여
  그대는 곧 지상의 단백질 속으로 편입되리라


  그러나 서러워 마라
  지상의 단백질도
  밀도가 떨어지고
  그 수명을 다하면
  도끼로 분해된 채
  절벽 바위 위에
  순수 단백질 덩어리로 진열되리니


  공중 단백질이여,
  너의 날카로운 부리로
  지상의 단백질을 쪼아
  잃어버린 세월
  복리 이자로 환급받으려무나
  세상의 수지계산은 빈틈없이
  항상 이렇게 이루어지나니.  (전문)



  이게 시인이 생각하기에 시집의 대표작인 것 같다. 그래 자신이 직접 쓴 설명문 ‘자해서’에 첫 번으로 소개했고, 시집의 타이틀로 이름을 걸었겠지.
  조장. 사람이 죽으면 도끼로 시신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시에서는 바위 위, 또는 벌판 위에 방치한다. 그럼 사체를 청소하는 독수리vulture 같은 날짐승이 날아와 뼈까지, 오직 등뼈와 털만 남기고 싹 먹어치운다. 해골은 새들이 먹기 편하라고 큰 돌을 떨어뜨려 박살을 낸다. 그래 완전히 없어진 시신은 축복받은 징표로 여기는 장례풍습인데, 새를 통해 망자가 하늘로 전해진다는 의미란다.
  누구나 읽는 즉시 뜻을 알 수 있는 쉬운 시이기는 하지만 조장의 풍습을 복리 이자로 받는 환급이라고 굳이 알려주는 건 왜 그랬을까. 몇 십 년을 가르치는 일을 해 온 교사의식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뜻을 확실하게 전해주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학자풍의 기질이 그랬을까. 죽음과 장례의식 뿐만 아니라, 몸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마저 ‘단백질’로 체화시키는 원소화. 어째 그게 내게는 그럴 듯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의 시는 쉽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조장>처럼 읽는 즉시 시인의 주장을 알아들을 수 있다. 시인도 애초에 “나는 시를 일기로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의 잔편들을 기록해놓는.”이라 발언한다. 전에 읽은 시집, 오탁번의 《시집 보내다》에서도 말했던 것 같은데, 나이 든 시인에게 흔히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이이는 여전히 시집을 사 읽어보는 모양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와 창궐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편에는 도무지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 마디 하기를,



  한국의 난해 시


  남산 산책길
  장님 부부가 튤립 화단 앞에 서 있다
  꽃을 어루만지며
  이게 무슨 꽃이오?
  향기를 맡으며
  이게 무슨 꽃이오?
  주위를 둘러본다
  표지판을 어루만지며
  “점자도 넣었다면
  무슨 꽃인지 알 텐데 참“


  표지판의 화초명은
  “화단에 들어오지 마세요”
  점자를 거부한
  한국의 난해 시처럼,  (전문)



  시의 내용도 알겠고, 내용에 동의한다. 근데 말입니다. 시가 너무 직설적 아녜요? 난해시도 문제입니다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씀하시면 그래도 시가 되는 건가요?
  나는 살면서 시를 좋아하고, 그래서 많이 읽고, 또 쓰는 사람들을 우러러본다. 정말이다. 조금의 비아냥거림도 없고, 숨김도 없고, 속으로 우습게 알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진심으로 말 하건데 우러러본다. 시를 쓰면서 세상을 사는 일이 어떻게 가벼울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미 은퇴한 듯한 노학자의 시를 읽으면서, 여태까지 쓴 것처럼 좋지 않은 감상을 얘기한 것에 좀 안 된 느낌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황 선생이 거짓 감상을 바랄 것 같지 않아 솔직하게 써버렸다.
  황 선생께선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시고 살기를 축원한다. 그러나 이해해주시라. 앞으로는 선생의 시를 더 읽지 않을 것 같노라 말씀드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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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1-02-23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시종일관 유머스러운 필체에 이끌려 끝까지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우선 저는 저 시집을 읽게 된 동기가 궁금하네요 ㅎㅎㅎ 아마도 자비출판된 시집인 것 같은데 말이죠. 글을 쓰는 것도 자유고 읽을 선택을 하는 것도 독자의 자유아니겠어요. 가끔 제 책을 두고 이런 종류의 비판을 받는 (아니 더 혹독하게) 경우가 종종있는데 쓸 자유, 읽을 자유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게의치 않게 되더라구요 .ㅎㅎ 독자마다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까요. 여아튼 글 재미나게 잘 읽었고 저도 저 분의 시집을 한번 찾아보고 싶네요...

박균호 2021-02-23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에 이 분에 대한 글이 많네요. 그냥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하고 또 어떤 인연이든간에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정이 많은 분 같네요. 시인 타이틀이야 뭐 요새 밤 하늘 별 만큼 많은 것이 시인 등단 경로 아니겠어요? 그런 경로를 통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네요 ㅎㅎㅎ 제가 시를 평가할 위인은 아니어서 그건 패스하고 죽음을 가르치지만 삶을 사랑하고 재미나게 사시는 분 같아요.
https://blog.naver.com/u-jeong/221314630258

Falstaff 2021-02-23 09:48   좋아요 3 | URL
옙.
인생을 아주 건강하게 사시는 분 같습니다. 자녀들에게 책 많이 읽으라고 가끔 잔소리를 하시지만요. ㅋㅋㅋ
지금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대청에 오르신다니, 이 글 읽고 맞짱 한 번 뜨자고 하시면 전 죽은 몸 아닌가 싶습니다. 흑흑흑....

잠자냥 2021-02-23 0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복리 이자로 환급 ㅋㅋㅋㅋㅋ 아 미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제 타입 시는 아니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쉽다고 좋아할 그런 시일 수도 있겠어요.

Falstaff 2021-02-23 09:49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그럼요. 이분 검색해보면 이 시집 선물받고 좋아서 사진 찍어 올리고 그런 사람들, 제자들 찾을 수 있어요. 다 인생이지요 뭐. ㅋㅋㅋㅋ

hnine 2021-02-23 1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단백질이 무슨 죄랍니까 .
그래도 재미있는 시네요.

Falstaff 2021-02-23 10:37   좋아요 2 | URL
예. 조장도 그렇고, 한국의 난해시도 그렇고 재미있는 시이긴 한데, ㅋㅋㅋ
아이고, 뭐라 얘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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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마디로 이 소설을 정의한다면, “강력한 한 방.” 관자놀이에 제대로 된 펀치 한 방을 맞은 느낌하고 비슷하다면 설명이 될 듯. 알라딘의 소설 MD 권벼리에 의하면 에바리스토가 “‘문학에 흑인 영국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게 불만스러워서’ 열두 명의 흑인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다. 책을 직접 읽으면 두 개의 큰 그림이 있고 그림판을 구성하는 중요한 인물의 개별적인, 그러나 결국 두 개의 큰 그림과 교차되는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금 상세히 이야기하기로 하자.
  첫 번째 그림. 앰마 본수, 라는 이름의 유색인 레즈비언 여성. 그러나 아이는 갖고 싶어 속물 인텔리겐치아 롤런드와의 사이에 딸 야즈를 낳아 키우고 있다. 몇 십 년 동안 자신을 따돌리던 주류 연극계에 수류탄을 던지던 이탈자로 살아가다가, 내셔널 씨어터에 최초로 예술 감독 자리에 오른 다음에야 그곳에 입성할 수 있었고, 그 후 주류에 편입되어 어깨에 힘 좀 주기 시작했다고 주위 사람들이 말한다. 심지어 자기 딸 야즈까지.
  2019년에 이 책으로 부커 상을 받아 스타덤에 오른 작가 버나딘 에바리스토가 실제 살아온 삶이 앰마 본수와 많이 비슷하다고 해서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믿을 필요는 없다. 하여튼 앰마는 작가와 유사하게 전교에 유색인이라고는 딱 두 명밖에 없는 학교를 다녔고(작가는 자기 자신 단 한 명이었다고 함), 연극학교를 졸업했지만 피부색 때문에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라붙는 것에 열을 받아 친구 도미니크와 함께 자신의 극단을 만들어버린다. 여기까지는 앰마가 에바리스토의 많은 부분을 빌려온 것이 맞다.
  이제 내셔널 씨어터에 입성한 앰마는 자신이 드라마를 쓰고, 연출까지 한 작품, 아프리카에서 직접 전투에 참가했던 여성 전사들의 이야기 <다호메이의 마지막 여전사>를 공연한다. 그것이 제1장의 첫 번 챕터인 ‘앰마’. 두 번째 챕터는 앰마의 딸 야즈의 탄생부터 대학에 다니는 현재 그의 친구들까지 발랄한 청춘들, 세 번째 챕터는 함께 극단을 만들기는 하지만 극단적 편집증이 있으며 폭력적이기까지 한 미국인 동성애자 은징가에게 홀딱 반해 미국으로 가서 온갖 고초를 겪지만 나름 성공을 거두는 도미니크의 이야기. 이렇게 앰마의 주변에서 어떻게든 연결이 되는 여성들이 제5장 뒤풀이 파티, 즉 첫 공연을 끝내고 이를 축하하는 파티에 다시 모이는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씨줄과 날줄이 바로 첫 번째 그림이다.
  두 번째 그림은 19세기 초부터 영국에 거주한 아프리카 계 유색인종 가족의 후예인 해티를 중심으로 한다. 해티는 스코틀랜드와의 접경 부근인 북부 잉글랜드에서 몇 십만 제곱미터의 농장을 운영하다가 이제는 힘이 들어 황무지가 되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아흔세 살의 노인이다. 해티의 조부모 시절부터 이이의 가족사를 언급한다. 이건 영국 내 아프리카 계 유색인종의 역사가 그리 만만하지 않음을 작품으로 써왔다는 에바리스토의 작업의 연장으로 보인다. 해티에겐 한때 손녀였던 메건, 지금은 모건이라 이름은 바꾼 손녀인지 손자인지, 아니면 손자녀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해티의 3세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아흔세 살의 할머니가 평생 숨겨왔던 하나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이다. 이 진실은 제일 마지막 에필로그에 가서야 드러나게 된다.
  앰마와 해티를 둘러싼 아홉 명의 여성과 한 명의 자유 젠더는 현존하는 영국의 유색인 페미니스트들을 대표한다고 봐야 할까? 여성주의를 잘 알지 못하는 내 수준에서는 확실하게 그렇다. 더 이상 어떤 부류가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는 한 방 제대로 얻어터진 느낌이 든 거다.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바로 나 같은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읽고 조금이나마 깨달음을 얻기를 바랐던 것 같다. 깨달음, 까지는 아니고, 다양한 삶의 방법이 있다는 건 배웠다.
  동성애는? 나는 관심 없다. 동성끼리 연애를 하든, 같이 살든, 그건 그이들 문제일 뿐. 존중? 존중이고 뭐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인간이다. 즉 관심 뚝. 근데 문제는,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동성애자가 나한테 접근하는 일. 세상의 남자들아, 이런 거 한 번씩 당해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 나는 전혀 관심도 없고 눈길도 가지 않은 인간이 내게 연애감정을 갖고 접근하면 정말 기분 나쁘다. 나쁜 수준 이상으로 나쁘다. 그러니 당신 역시 함부로 여성에게 연애 감정을 표하지 말라. 여자들도 내가 느꼈던 나쁜 수준 이상의 나쁜 감정이 생길 지도 모르니까.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은고리로 만든 귀걸이를 달고 두툼한 아프리카 팔찌를 하고 독특한 패션으로 무장한 유색인 페미니스트들이 백인 페미니스트들의 달가워하지 않는 느낌을 받을 때, 이들이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에바리스토는 이런 문제만 제시하고 해결 방법은 찾지 않는다. 내 생각은,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절대로 확실한 말이나 편지를 통해 유색인 동지들을 달갑지 않다고 안 할 것이다. 그렇다고 달가워한다고 믿는 건 바보짓이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 외 아주 다양하게 아프리카, 인도, 중국 등지에서 유입된 유색인들과 그들의 혼혈들이 만들어 온 영국과 다양성에 관한 담론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신 분들이 여기까지 쓴 소위 독후감을 읽으면, 내게, 차라리 논문을 쓰지 그러니? 라고 지탄의 말을 던질지도 모른다. <소녀, 여자, 다른 것들>이 2019년 부커 상을 받은 작품이다. 책을 읽으면 어디 한 군데 답답한 구석이 없다. 처음부터, 헌사를 읽기도 전에 ‘일러두기’를 통해, “이 소설은 운문 형태를 띠는 산문으로” 운운한다. 그럼 일종의 외국어로 쓴 시. 약간 긴장을 한 채 헌사를 읽고, 차례를 훑어보고, 드디어 본문을 읽기 시작하면, 첫 페이지를 다 읽기도 전에 글이나 문장의 형태에 관해서는 무감각해진다. 그딴 건 아무 상관없다. 오히려 단박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걸 알게 된다. 그만큼 재미있다. 세상엔 참 다양한 인간들이 산다. 이 개별적인 인격들이 하나 빠짐없이 삶의 곤고함과 어려움에 찌부러져 살겠지만 그 속에서도 찬란하게 버티고 있다는 건,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것과 모습만 다르지 똑같은 기적이다.
  지금, 쓴 걸 다시 읽어보니, 이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이렇게밖에 책을 설명하려고만 했다니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책은 눈으로 읽고 곧바로 가슴에서 접수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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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2-22 1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책을 물리치고 책장에 버티고 있는 이 책을 읽어야겠다... 라는 마음이 솟구치는 페이퍼.. ;)

Falstaff 2021-02-22 11:10   좋아요 3 | URL
한 번 책을 열면 끝까지 읽게 됩니다. 바쁜 일 없을 때 시작해보셔요. 후딱 하루가 지나갑니다. ^^

잠자냥 2021-02-22 1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리뷰 쓰고 나서 폴스타프 님 리뷰 이제 읽습니다. 이 책 정말 시원하게 술술 읽히죠?
저도 처음엔 마침표가 없다 뭐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읽기 전엔 뭐 골아픈 거 아니야?? 그랬는데 웬걸요 한 번 집어들으니 멈출 수가 없.....(아 물론 지난주에 제 고양이가 아파서 병원들락날락 하느라 좀 중간에 못 읽기는 했어요.)더라고요. 그만큼 대단한 재미였습니다.

그나저나 폴스타프 님 말대로 정확히 말하자면 열두 명의 여성이 아니라 한 명의 젠더프 리 인간이네요? ㅎㅎㅎ

Falstaff 2021-02-22 12:47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저도 민음사 추천글만 안 썼으면 지난 주 초에 독후감 올렸을 건데, 그거 좀 아쉽더라고요. 다음이 궁금한데 이왕 쓰기 시작한 것도 마저 해야 하지 에고...

그죠, 젠더 프리라고 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흑인이라 꼬집으면 안 될 거 같아요. 그래서 계속 저는 ‘유색인‘이라고 썼습니다. ㅎㅎㅎㅎ

잠자냥 2021-02-22 12:49   좋아요 2 | URL
네 유색인이라는 말도 맞습니다. ㅎㅎ 우린 모두 유색인. ㅎㅎㅎㅎ 이 책 다 읽는 분만 아실 내용 히힛-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장폴 뒤부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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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공쿠르상 수상작. 책의 앞날개를 보면, 작가 장폴 뒤부아는 1950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나 아직도 그곳에서 사는 “프랑스의 국민작가”라고 요약한다. 그 나라 사람들이 신줏단지처럼 추앙해마지않는 프라이버시 때문인지 작가의 성장과 교육에 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곧바로 그의 작품활동만 설명해놓았을 뿐이다. 흠. 그러면서 국민작가란다. 하긴 우리야 이이가 국민작가든 논두렁 작가든 그건 알 바 아니다. 그저 작품만 재미있으면 장땡이다. 그리고, 읽는 재미 하나만 가지고 얘기한다면 장땡은 아니더라도 구땡은 된다. 읽으면서 독자가 책에 열성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건 아니고, 책의 띠지에 쓴 것처럼 문학성(이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아직도 모르긴 하지만)에 적절한 대중성이 합쳐져 안온한 트로트를 만들어냈다는 말씀. 그래서 쉽게 독자의 마음에 습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듯하다.

  1955년생 폴 한센. 그는 폭행범이다. 몬트리올 교도소의 1,357명 수감자 가운데 한 명으로 금고 2년형을 받고, 다른 방보다 약간 커서 ‘콘도’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감방에서 한 명 반 분량의 체구와 엄청난 완력을 보유한 헨스 엔젤스 갱단의 멤버 패트릭 호턴과 세면대와 변기를 함께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 패트릭으로 말할 것 같으면, 등에는 “사는 건 엿 같고 그 다음엔 죽는다.”라는 글귀가, 어깨 곡선에서 가슴팍까지는 할리 데이비슨에 바치는 애정을 표현한 그림이 그려진 바이커 갱단의 일원으로, 그들의 적수 록머신의 몬트리올 지부 일원을 살해한 혐의를 받아 재판 대기중인 자로, 책을 시작할 당시엔 치아 농양이 제대로 무르익어 밤마다 타이레놀을 먹어가며 끔찍한 고통을 참아야 했다. 물론 조금 지나면 교도소 치과의사가 갖은 협박과 욕설을 무릅쓰고 깔끔하게 이를 뽑아 완치시키기는 한다.

  폴 한센은 눈폭풍이 몰아쳐 영하 28도, 체감온도 영하 34도까지 내려가는 몬트리올의 한겨울에 실내온도가 14도가 넘지 않는 감방 속에서 얼어 죽지 않기 위해 희한찬란한 냄새가 나는 담요를 몇 장씩 덮고 자는 감방 안에서, 자신을 위안하는 모습을 눈으로 본다. 아내 위노나 마파치, 아버지 요하네스 한센 목사, 그리고 나의 개 누크. 이렇게 세 유령. 이 순간, 독자는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의 스토리 라인은, ‘나’ 폴 한센이 왜 교도소에 들어오게 됐는지와, 이 세 유령과 폴의 관계를 밝히는 것으로 끝날 것임을 알아챈다. 그리고 사실이 그렇다.

  하필이면 책의 첫 장면이 교도소. 그것도 살인혐의를 받아 재판 대기중인 흉악범(일 가능성이 큰 거한)과 주인공이 같은 방을 쓰는 것으로 설정을 해서, 독자는 일찌감치 별의별 상스러운 욕설의 론도를 견뎌야 한다. 뒤부아가 여태 써온 글의 방식을 몰라서 함부로 얘기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작가가 표현한 살인 용의자 패트릭 호턴은 퀘벡의 기술전문학교에서 기계공학과 교수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거의 완벽하게 냉정해 사회적으로 용인이 되는 나이가 되자마자 독립해 지금까지 아버지는 죽은 사람 대하듯 하는 환경을 부여했다. 그러나 패트릭의 본심은, 그가 구사하는 찬란한 욕설과 관계없이 조금은 허풍스럽지만, 아이스하키와 할리 데이비슨에 몰두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며, 순진한 구석이 여기저기 보이기도 해, 차라리 ‘순박하다’는 말도 쓰고 싶어질 정도다. 패트릭의 성격을 이렇게 부여한 건, 책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하는 힌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럼 교도소 감방에 출몰해 주인공 폴에게 위안을 주는 세 유령을 찾아가 보자.

  아버지 요하네스 한센 목사는 1923년 덴마크 최북단 유틀란트 반도의 인구 8천 명의 소도시 스카겐 태생으로, 대대로 어부 집안이었다. 그냥 우리나라 어촌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북해에 면해 있어 황량하기 그지없고, 늘 불어오는 사구의 모래바람은 14세기에 지은 뱃사람들의 수호신에게 바치는 위풍당당했던 교회를 종탑 윗부분만 남기고 몽땅 삼켜버린 곳이다. 어업과 생선 가공공장 말고는 따로 할 것이 없는 스카겐에서 소년 요하네스는 모래에 묻힌 교회를 바라보며 역설적으로 목회자의 꿈을 꾸었고 그것을 이루었다.

  1930년생 프랑스 사람인 엄마 아나 마르주리. 툴루즈 태생으로 외조부모는 ‘르 스파르고’ 즉 ‘나는 씨를 뿌린다’라는 뜻의 작은 영화관을 운영했는데 일찍이 정부로부터 ‘예술과 실험’ 인증을 받아 보조금을 받는 대신 예술영화, 독립영화, 실험영화 등 소위 고상한 영화만을 상영하는 곳이었다. 노부부가 1958년 당시 고급모델이었던 DS19 차량을 전속력으로 운전하다 플라타너스를 브레이크의 간섭 없이 들이받아 차에서 튕겨져나와 죽은 다음에, 딸이 영화관을 물려받았다. 요하네스의 장인, 장모는 그들의 종교인 가톨릭 의례에 따라 장사를 지냈고, 믿지 못하겠지만,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엄마 아나 마르주리는 신앙을 도통 이해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죄라는 개념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근데 어떻게 목사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느냐고? 비록 자신도 모든 남자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관능적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을 지녔지만, 요하네스 한센 목사의 잘생긴 얼굴에 반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그녀 스스로가 고백한 사실이다.

  1968년의 파리혁명을 거치면서 한층 더 반교회적인 이념으로 무장하게 된 엄마 아나 마르주리는 1975년 여름, 당대 최고이며 아직도 클래식 포르노 영화의 대표작품인 <목구멍 깊숙이>를 상영하기에 이른다. 어엿하게 사목활동을 하는 현직 목사의 아내가. 그리하여 수십 년간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툴루즈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목사는 이혼 후에 홀로 프랑스를 떠나 대서양을 건너 퀘벡 남쪽의 석면 광산 도시 셋퍼드 마인스의 작은 교회로 자리를 옮긴다. 나는 학교에 다니다 우연히 경마장에서 세 달 월급에 달하는 돈을 따 아버지한테 다니러 갔다가 그냥 눌러앉아 버린다. 폴이 경마에서 돈을 따 캐나다로 왔으니 자연스럽게 아버지에게 심심풀이 삼아 한 번쯤 경마장 외출을 권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러나 한센 목사는 일언지하 거절한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루카 16장 13, 14절.”

  후에 아버지는 완벽하게 파산을 하고, 석면 가루가 공기 속을 배회하는 셋퍼드 마인스의 교회에서 마지막 목회를 끝낸 후 설교단에서 쓰러져 생을 마감한다. 목사의 시신은 도르발 공항, 제네바, 코펜하겐까지의 하늘길을 경유한 다음 영구차를 타고 그의 고향 스카겐에 이르러 가족묘지에 묻히고, 이제 홀로 남은 ‘나’ 폴 하겐은 몬트리올의 여러 직업을 거친 후에, 교도소에서 불과 1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동네 ‘아헨트식’의 68가구로 이루어진 고급 아파트 렉셀시오르에서 까다로운 관리 실무업무, 즉 만능 집사이자 마법사 수위로 26년간 일을 한다.

  그동안 아일랜드계 어머니를 둔 알곤킨 인디언의 후예이자 몬트리올에서 반경 3백 킬로미터 내의 호수 지역을 왕래하는 1947년산 수상비행기 비버 DHC2기를 운행하는 위노나 마파치를 만나 사랑을 하고, 함께 살고, 알곤킨 인디언의 율법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부가 된다. 11년 후 위노나가 세상을 접을 때까지, 한결같이, 사랑하면서. 그러다가 다친 다리를 끌며 호숫가를 배회하는 개, 누크를 발견해서 한 식구가 되고.

  불행은 다른 불행을 몰아오는 법. 그리하여 늘 우리의 주변에서 보던 평범한 늙은이 폴 한센으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게 하고, 분노를 참지 못한 대가로 몬트리올 교도소의 콘도에서 2년 형을 받게 된 것. ‘나’ 폴 한센이 드디어 형기를 마치고 다시 딛는 세상의 발자국은 어디를 향할 것인지, 그것은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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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2-19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학성에 대중성을 합쳐 안온한 트로트를 만들었다... 는 표현에 격한 공감^^

Falstaff 2021-02-19 11:50   좋아요 1 | URL
ㅋㅋㅋ 사람의 마음을 트로트 만큼 자극하는 것도 드물잖아요. ^^

coolcat329 2021-02-1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땡은 아니지만 구땡! 문학성에 대중성까지 겸비~첫장면 교도소~주인공 폭행범~거기다 별 다섯개~~
저 이 책 도서관에서 보고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 집에 안 읽은 책 쌓아두고 왜 도서관에 와서 이런 고민하나...싶어 그냥 돌아왔는데 이 글 읽고 너무 읽고 싶어 졌어요. 😅

Falstaff 2021-02-19 13:2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도서관 책은 오늘 아니어도 언제나 읽을 수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