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르소, 살인 사건 - 카뮈의 <이방인>,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카멜 다우드 지음, 조현실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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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첫 독후감 <후리>를 쓴 작가 카멜 다우드. 그가 쓴 첫번째 장편소설 <뫼르소, 살인 사건>이 4월의 첫 독후감이 된다. 이런 걸 우연이라고 하나? 2015년에 공쿠르상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다. <후리>로 2024년 공쿠르상을 받았으니 10년 전부터 싹수가 보였던 셈이라고 할까?

  사람이 참 웃긴 것이, 전에는 아무리 개가실을 돌아다녀 봐도, 바로 눈 높이에 이 책이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카뮈의 <이방인>을 다른 시각으로 본 작품이겠거니, 그냥 그렇게 치부하고 지나쳤는데, 이번에 딱 보니까 책을 쓴 이가 카멜 다우드, 바로 <후리>의 작가였던 거다. <후리>를 재미나게 읽어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고. 그러면서 속으로 미셸 트루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과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들하고 비슷한 내용이겠거니.

  근데 문제가 있다. 카뮈의 <이방인>을 읽은 것이 저 까마득한 옛 일이라서. 거의 반세기 전 고등학교 다닐 때 읽고 이후에 다시 읽어본 적 없으니 제대로 연결을 하기 어려울 것. 게다가 <이방인>과 나 사이에는 시절이 끼어 있다. 백기완 선생의 일갈. 식민국인 프랑스 청년이 아무 이유 없이 식민지 국민인 알제리 청년을 쏴 죽인 이야기에 왜 열광하느냐, 어찌 감동할 수 있느냐는 민족주의적 꾸짖음이 시절의 경종처럼 두개골 공간을 난타했다. 에세이집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에 나오는 걸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지 않다. 나 역시 전혀 익지 않고 피만 끓을 때라, 그간 <이방인>과 뫼르소에 경도하던 청년으로 이게 대단히 부끄러웠다는 말이지. 그땐 그랬다. 오직 리얼리즘만 거리를 휩쓸고 모더니즘 작품을 읽으려면 집구석에 박혀 읽고는, 읽었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염병할 시절.

  핑계가 길다. 긴 핑계는 변명이다. 쉽게 얘기해, <뫼르소, 살인 사건>을 똑 부러지게 읽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읽었다는 말이다.


  첫 문장부터 죽여준다.

  “오늘, 엄마는 아직 살아 있네.”

  카뮈, <이방인>의 가장 유명한 우리말 번역은 아마도 민음사 세계문학에서 나온 김화영 번역일 듯한데, 그 책의 첫 문장이 이렇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이방인>에 진짜 열광하는 독자는 이 첫 문장이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어떻게 다른 지 그 이야기만 해도 밥도 안 먹고 2박 3일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나? 별로 관심 없다. 근데 카멜 다우드의 첫 문장은 확실히 죽여준다. “오늘”, 한 박자 쉬고, “엄마는 살아 있네.”

  그런데 이어지는 문장이:

  “엄마는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지만, 해줄 수 있는 얘기가 많을 걸세.”

  초장부터 화끈하게 알려드린다. 이 작품은 일흔살이 넘은 알제리의 늙은 남자 하룬이 카뮈 또는 <이방인>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하여 일부러 하룬을 찾아온 프랑스 대학생과 바에 앉아 술잔을 홀짝이며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2인칭 소설로도 읽힌다. 프랑스 대학생이 왜 하룬을 찾아왔느냐 하면, 하룬의 형이 1942년 여름에 프랑스 국적의 청년 뫼르소가 해변에서 쏴 죽인 “아랍인”이기 때문이다.

  <이방인>하고 다른 점은, 뫼르소가 살인죄가 아니라, 엄마가 죽었어도 제대로 상도 치루지 않고 애인 마리와 동침을 하고, 술도 마시고, 대낮에 돌아다니다가 햇볕을 너무 쫴 일사병인지 열사병인지 하여간 가볍게 어지럼증이 일어,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이 너무 심심해서, 아무 이유 없이 한 “아랍인”을 쏴 죽여 비윤리적이라는 죄목으로, 살인이 아니라 “비윤리”라는 죄의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집행은 되지 않아 몇 년 후에 감방에서 나와 당시의 일을 소설로 썼다. 그런데 책을 읽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다이아몬드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진 완벽한 언어 앞에서 살인자의 고독에 공감했다면 한껏 멋부린 언사로 위로를 보내”기에 바빴다고 주장한다. 즉 살인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무죄를 얻고 시작했으며, 세계인들조차 그의 살인이 아니라 고독에 공감을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뭐가? 다이아몬드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진 완벽한 언어, 즉 기막힌 문장이. 문장의 힘이 그렇게 무섭다니까? 저 어둠의 시절에 폭포처럼 쏟아지던 백기완 선생의 문장처럼. 웃기지? 뫼르소의 문장은 살인을 지워버렸고, 백기완의 문장은 뫼르소를 지워 버렸으니. 그럼 독자는? 그저 책을 읽으며 이쪽으로 흔들, 저쪽으로 흔들, 쇠부랄처럼 이리저리 흔들거리기만 하면 된다. 정말? 뭐 아니면 말고.


  뫼르소가 죽인 건 알제리 청년이 아니라 “아랍인”이었다. 그런 뫼르소더러 유럽인이라고 하면 듣는 프랑스 인종들은 기분 좋겠어?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이슬람의 전통인 누구의 자식인지도 말하지 못했고, 시신이 어디에 묻혔는지도 몰랐다. 그냥 없어졌다. 그저 아랍인 하나가 없어진 일이다.

  1942년의 일로 죽은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한 무식쟁이였다. 이름 하나 가질 여유조차 없었던 익명의 존재, 작품 속에서도 기껏해야 두 시간밖에 못 살고 불분명한 장례를 치루고 70년이 넘게 계속 죽은 상태로 있어야 했지만, 살인자는 이야기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그것도 아주 뛰어나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 줄 알았기 때문에 자신 말고 다른 모든 것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

  무싸와 하룬. 이 형제를 만든 아버지는 형제가 어렸을 때 처자식을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하여 이들의 이름에 부칭은 없다. 무싸빈OO. 하룬빈OO. 하이틴 때부터 집에서 아버지 역할을 하던 무싸가 하루 아침에 죽고, 시신도 찾지 못한 어머니는 무싸를 바다에 빠져 죽은 것으로 해서 빈 관을 매장하고 알제를 떴다. 바다와 물은 꼴을 보기 싫어 내륙으로 가 프랑스 지주의 하녀로 일했다. 1962년까지. 독립전쟁에서 알제리가 승리해 독립을 쟁취하자 프랑스인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엄마는 하녀로 일하던 집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후에 화자 ‘나’ 하룬은 공부를 시작했다. “객석이 비어가는 동안에도 무대 뒤의 침묵 속에 감춰진 내막을 떠벌리는 것이 나의 존재 이유”라서 형의 흔적을 형 대신 프랑스, 적의 언어로 떠들기 위하여. 국유재산관리국의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는 틈틈이 무싸가 결코 할 수 없었던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부조리. 그것을 등에 지거나 땅 속 깊숙이 품고 있는 건 무싸 형제들이지 결코 뫼르소와 그의 동조자일 수 없다는 주장. 하룬은 슬픔이나 분노를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형을 애도하는 것도 아니라, 정의가 이루어지기 바라는 것이라 하는데, 여기까지 읽으면 이제 다분히 반식민적 희생에 대한 소설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룬의 1962년. 프랑스가 패전해 물러갈 때. 알제리의 혁명군 병사들이 임의로 프랑스인 두 명을 살해한 죄목으로 총살당한 일이 있었을 때, 하룬은 프랑스인의 집이었다가 자기 집으로 바뀐 곳에 밤중에 숨어든 프랑스인에게 권총 두 방을 쏴 죽여버린다. 그냥 그가 밤중에 집에 들어와서. 자기 등 뒤에서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죽여, 죽여버려, 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당국에 의하여 체포당한 하룬. 그의 죄목은 당연히 살인이다. 알제리 독립투쟁 기간이었다면 살인은커녕 장한 일을 했다고 칭찬받을 수도 있었으나, 독립하고 이틀 지난 후라서 살인은 그냥 살인이라는 범죄일 뿐이다. 세상은 하룬의 살인을 어떻게 판정할까? 정말 독립 전과 후의 살인은 다른 것일까?

  뫼르소의 살인과 하룬의 살인의 차이. 이것이 결론일 것 같은데, 책은 <후리>처럼 잘 읽히지 않고 쉽지도 않다. 확실한 건 민족주의적 작품은 절대 아니라는 거. 하긴 카멜 다우드가 그럴 인간이 아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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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6-04-01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작품이 쉽지 않군요. 저는 카뮈의 작품은 모셔만 두고 있습니다. 좀 쉬우면서도 의미있게 쓰는 작가는 없을까요? ㅋㅋ 매일 책을 읽으시고 독후감을 쓰시는 폴님 그저 존경할뿐입니다!

Falstaff 2026-04-01 15:41   좋아요 2 | URL
호, 아닙니다. 읽기 어렵지도 않아요. 걍 파박 읽으면 암토랑도 안혀요.
ㅎㅎㅎ 저야 이제 스스로 뒷방에 물러앉은 신선 아닙니까. 좀 기다려셔요. ㅋㅋㅋ
 
묵동기담 / 스미다 강 대산세계문학총서 140
나가이 가후 지음, 강윤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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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묵동기담.” 나는 제목이 싫어서 그동안 읽기를 미루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세계문학 시리즈인 대산문학총서 140번 작품이었지만. 전쟁 전 일본 작가들이 자주 쓰는 귀신 나오는 ㅆㄴㄹ 소설일 것 같아서. 일본 어느 지역에 묵동이란 곳이 있었는데 그곳 수풀이나 음산한 절 또는 사당 같은 곳에 사는 3백살 넘은 노파나 중 혹은 귀신들이 창궐하는 이야기일까봐 그러니까 ‘묵동’이 문제가 아니라 뒤의 두 글자 ‘기담’이 문제였다. 기담奇譚. 이상하고 야릇한 이야기. 이런 거라면 그저께 읽은 정보라의 <저주 토끼>로 너무 충분했으니 새삼스레 또 읽을 필요가 없잖아? 근데 오직 대산세계문학총서라는 것 때문에 책을 꺼내 눈에 힘을 주고 (책등이 아니라) 표지를 봤더니 <묵동기담濹東綺譚>이라 쓰여 있더란 것. 기담의 ‘기綺’가 기괴하다 할 때의 기가 아니라, 비단, 문채, 고울 기. 그래서 더 알아봤더니, PC에서 프린트할 때 지원이 되는지 아닌지 모른다는 묵濹 자는 네이버 사전에 뜻이 없고 발음 ‘묵’만 내주는 단어인데, 일본 도쿄를 흐르는 스미다 강변을 노래할 때 자주 쓴 한자란다. 그냥 스미다 강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그럼 됐다. 스미다 강변은 아니고 스미다 강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곳의 기담, 비단 이야기. 비단으로 지은 옷은 누가 입지?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지은 예쁜 소설 <비단>에서 치명적으로 어여쁜 일본의 아가씨가 비단옷을 입잖아? 그 젊은 아가씨가 늙은 비단 패밀리 보스의 정식 아내는 아니고. 맞다. 일본의 화류계 아가씨들이 입는다. 그러면 제목 ‘묵동기담’이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이 간다.

  1879년에 도쿄에서 내무성 엘리트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나가이 가후는 어린 시절 엄마한테 노래와 악기 연주 특히 샤미센에 재미를 붙였다. 위키피디아에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데, 하이틴 시절에 병원에 입원해 몇 달을 보낸 후, 훗날 작가가 되는 친구와 함께 홍등가로 본격 진출한 모양이다. 이렇게 사는 바람에 당해년도에는 대학에 갈 수 없어서 아버지를 따라 상하이에 갔다가 돌아와 도쿄 외국어 학교에 입학하고 이후 작품을 쓴다. 이 정도만 알면 되리라.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청소년이 홍등가를 드나들었으니 이게 공무원 집구석에서 가당한 일일 수가 없었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가이는 그 시절의 즐거움이 나이가 들어도 그리웠던지 <묵동기담>에서 쉰여덟 살이 된 주인공 ‘나’ 오에 다다스로 하여금 스미다 강둑이 멀리 보이는 좁은 골목 속의 홍등가 여인을 찾아가게 만들었다.

  작품은 주인공 ‘나’의 일인칭으로 쓰였지만 독후감은 오에 다다스, 3인칭으로 쓰겠다.

  오에는 활동사진을 좋아하지 않아 1897년경 극장 간키칸에서 샌프란시스코 시가지 광경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관동지진이 있었던)1923년 이후에는 영화 말고 극장 간판을 유심히 보면 이미 영화의 스토리를 대강 다 알 거 같아서 간판 구경하는 것에 취미를 붙였는데, 거리를 어슬렁거리면서 도쿄 시내를 거닐다보니 도착한 곳이 하필이면 유곽 진입로였다. 지진 전만 해도 유곽의 아가씨들과 삐끼들이 지나가는 행인의 모자를 빼앗아 손님을 거의 강제로 끌어오는 거친 행동도 했지만 이젠 순사 파출소에서 엄히 단속해 그런 경우는 없다. 그래도 삐끼는 여전하다. 이 동네에 유곽과 관련없는 유일한 곳이 헌책방. 오에의 단골집이기도 하다.

  그곳에 들러 오래 묵은 잡지 한 권을 둘러보고 있던 차, 예순 살은 먹어 보이는 사내가 보따리를 하나 가지고 들어오더니 무늬가 자잘하게 들어간 홑겹 옷과 소매와 몸통 부분을 서로 다른 천으로 만든 나가주반(전통 부인복에 사용하는 질기고 고운 비단)을 꺼내 보인다. 자, 기綺, 비단 나왔다. 오에는 별 생각없이 헌잡지 몇 권과 충동적으로 나가주반을 샀다. 통속소설의 표지를 싸면 좋을 것 같아서.

  헌책방에서 나와 길을 걷는데 순사가 오에를 부르더니 파출소로 연행해간다. 불심검문. 군국주의 일본에서 순사의 취조는 그리 친절하지 않다. 이를 위해 오에는 지갑 속에 인감증명과 호적초본을 가지고 다닌다. 이 두 개를 확인한 순사가 몇 시간에 걸친 취조를 마치고 방면하는데, 오에가 파출소를 나서며 하는 말이 “애초 헌 옷은 재수없는 물건이야.”


  오에가 순사들한테는 밝히지 않았지만 직업이 작가다. 쉰여덟 살. 메이지 12년 기묘생. <실종>이라고 제목을 붙인 소설을 구상했다. 다 쓰면 부족하지 않은 작품이 되리라는 약간의 자신감이 든다.

  극이라면 극중극이다. 소설이니까 작중작이라면 되겠다.

  주요인물은 다네다 준페이. 쉰 살 정도. 사립중학교 영어교사. 아내 죽고 3~4년 후에 미쓰코라는 여인과 재혼했다. 미쓰코는 정치인의 집에서 안주인의 몸종으로 지내다가 주인에게 속아 아이를 임신했다. 다네다의 친구이기도 한 집사 엔도가 일을 처리하기로 해서, 만일 미쓰코가 아이를 낳는다면 20년간 양육비조로 월 50엔을 줄 것이며, 다른 남자와 결혼이라도 하면 상당한 수준의 지참금까지 주겠노라, 단, 아이는 절대 이 집의 호적에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홀아비 친구 다네다한테 찾아가 아이 하나 달린 어여쁜 여자하고 결혼만 했다 하면 팔자가 핀다고 꼬드긴다.

  이렇게 혼인을 해 들어온 아들 다메토시에 이어 다네다의 딸 요시코, 아들 다메아키를 키우며 산다. 20년 후, 주인집에서 양육비를 딱 끊어버리자 이때부터 대학과 고등학교를 보내야 하는 아이들의 학비며 생활비를 대기 위하여 다네다는 야간학교 두세 군데에 더 강의를 맡아야 할 지경이었다.

  다메야키는 운동선수가 되어 나중에 서양으로 나가 살고, 요시코는 배우 중에서 그냥 배우가 아니라 은막의 스타가 된다. 문제는 이렇게 성공하기 전에, 다네다가 피곤을 무릅쓰고 집에 들어가면, 그동안 일본 불교 특정 종파에 들어간 아내는 신도를 모아놓고 집구석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첫째 아이는 울퉁불퉁한 청년들을 모아 집이 들썩들썩하고, 요시코는 쭉쭉빵빵한 아이들을 데려와 날마다 파티를 여는지 도무지 시끄러워 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참다 못한 다네다는 쉰살이 되어 직장에서 퇴직하는 날 퇴직 보너스를 챙겨 집에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잠적해버리고 만다. 전차에서 우연히 전에 자기집에서 하녀 일을 하던 현직 카페 접대원 스미코의 집에서. 처음부터 그런 사이가 되려는 건 아니었는데, 사정을 털어놓고 딱 하루만 신세를 짓자고 했다고,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여기까지 구상했고, 이후 어떻게 이야기의 결말을 지을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


  작가 오에는 머리 속으로 별의별 구상을 해가며 초가을 저녁 산책에 나섰다. 근데 난데없이 소낙비가 우다다닥 내리친다. 일본의 초가을은 날씨가 사납다. 태풍도 겁나게 자주 오고, 소나기는 말할 것도 없다. 오에는 그래서 우산 없이 외출하는 법이 없다. 우산을 활짝 펴고 서 있는데, 이때 우산 속으로 불쑥 들어오는 전직 우츠노미아 게이샤 출신의 유녀 오유키. 오에는 시간도 많고, 어렸을 때부터 유녀 다루는 것도 익숙해서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유키를 폭포같이 쏟아지는 비 속에서 그이의 집에까지 데려다 준다. 오유키가 사는 곳? 다다미 몇 장짜리 작은 방 두개와 부엌 등이 있는 2층집. 당연히 영업집이다. 유곽.

  오에는 소낙비에 홀딱 젖었다. 미장원에서 방금 나온 오유키를 덜 젖게 하기 위해 우산을 그쪽으로 더 쓰게 했으니 완전 물에 빠진 꼴이었겠지. 오유키가 말한다. 옷을 좀 말려야 하겠으니 벗으시고 다른 걸로 갈아 입으세요. 오에? 당연히 유곽의 예법을 안다. 이 집에 있으면 있는 시간만큼 오유키의 영업을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오에는 오유키에게 돈을 건네며, 한 시간 정도로 치면 되겠지요?

  이후 오에는 처음엔 거의 매일 오후가 되면 이 집에 들러 밤이 될 때까지 쉰다. 말 그대로 쉬기만 했는지 쉰다는 핑계로 다른 것도 했는지, 전쟁 전의 소설이라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할 건 다 했다고 봐야겠다.

  나중에는 오유키가, 주인한테 빚 다 갚으면 나를 데리고 살아줘요, 라고 부탁까지 할 정도로 친해진다. 그러나 선수 오에는 이런 여성들이 진짜로 집안에 들어와 위협에서 벗어나면 갑자기 삶이 자유로워져서, 세상의 게으름뱅이에 나태한 주부가 되는 걸 자주 봐, 애초 그럴 마음은 없다.

  나이도 있고, 소설도 계속 써야겠고, 해서, 오에는 나중엔 3, 4일에 한 번 그러다가 한 주일에 한 번, 이런 식으로 점점 멀리하기 시작한다. 사는 게 다 그런 것처럼.

  오유키. 그저 낡은 비단, 나가주반이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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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6-03-31 1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담이라고 냉큼 집었다가는 낭패였겠습니다. 하지만 어찌보면 奇談 같기도 합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다 그렇겠죠. 그런데... 가끔 궁금합니다만 지바고도 그렇고 오에도 그렇고 무슨 매력이 있는 걸까요?

Falstaff 2026-03-31 15:34   좋아요 2 | URL
맞앛요, 요정 님은 기담 좋아하시지요. ㅎㅎㅎ
지바고는 길기만 하고 재미도 없는 책이라고 읽었고요,
오에.. 오에가 오에 겐자부로라면... 작품의 구성이 벽돌 건물처럼 탄탄한 것이 놀라울 정도라서요. 게다가 사소설 적인 스토리에 일본 근대사, 반핵, 뇌 헤르니아 아들, 뭐 이것저것 다 합친 스토리가 또 괜찮아서요. 근데 제가 뭘 압니까, 그냥 읽기에 그렇다는 것이지요. ^^
 
토볼트 이야기 쏜살 문고
로베르트 발저 지음, 최가람 옮김 / 민음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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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베르트 발저는 1910년대에 자신의 도플갱어라고도 볼 수 있는 작중 등장인물 토볼트를 발견했다. 물론 아무나 도플갱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로베르트 발저 가족 가운데 아버지는 사업을 실패한 뒤에 우울증 상태가 지속된 것으로 보이고, 어머니는 정서적 문제로 장기 치료 후 사망, 남매들 가운데 첫째 카를은 화가, 둘째 에른스트는 정신병으로 갔고, 헤르만은 대학교수, 누이 리사가 학교 교사, 다른 누이 파니가 로베르트에게 권해서 로베르트도 정신병원에 장기입원하고 있다가 추운 날 산책 나갔다가 죽었다. 하필이면 그날이 크리스마스였다.

  그러니까 기질적으로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아버지 사업 실패 후에 부모와 자식들은 그나마 조금의 지원은 받을 수 있었겠지만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야 했는데 유독 로베르트는 길 위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모양이다. 마음은 당연히 작가가 되고 싶지만, 자기만의 방도 없는 주제에 지금이나 그때나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써 언제 고료를 받을 지 모르는 상태에서 고료만 바라보며 배를 곯고 있을 수도 없어서 스물일곱 살 먹었을 때 베를린에 가서 정말로 하인양성소에 들어가 하인 일을 배웠고, 진짜 하인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사실 이 시기에 하인으로만 일했던 건 아니다. 출판사 두 군데에서 사무직도 하고, 배우가 되려고 극단을 기웃거리기도 했으며, 스위스로 돌아가 다른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작품을 쓰는, 당시로는 드물게 월급을 받으며 글을 쓴 작가였다. 울프가 말했듯 문학은 돈 좀 있는 자재들이나 할 수 있는 리그였다는 뜻이다.

  이런 작가들은 자기의 삶 가운데 직업이 중요한 소재가 되겠지. 발저의 경우엔 그리 길게 일 하지 않았지만 상실레지아의 담브라우 성에서 귀족의 하인으로 잠깐 일한 전력이 상당한 문학적 재산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게 독자에게도 영향을 끼쳐, 나도 여지껏 로베르트 발저, 하면 그의 장편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떠올린다. 그런데 사실은 하인 말고 여러 (당시 사람으로서는)괜찮은 직장을 다니긴 했지만 견디지 못해서, 아마도 집안 내력인 정신질환의 불규칙적 발현 때문일 수도 있었겠는데 하여간, 사람들 사이에서 겪는 여러 경우를 참아내지 못해 회사에 들어갔다가 곧장 때려치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너무 오버해서 읽는 지도 모르겠으나, 발저가 자신의 도플갱어 비슷한 인간 토볼트를 만들어낸 것이 이런 정신적 특이성에서 시작했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걸 괜히 길게 써서 좀 보기 싫게 됐다.


  하여간 《토볼트 이야기》를 보면 1912년에 토볼트를 만난다.

  <낯선 사내>라는 아주 짧은 단편일 수도 있고 산문일 수도 있는 픽션 속에서 발저는 고백한다.

  자신은 심각한 태만의 죄를 짓고 있고, 태만의 죄를 짓고 있어서 스스로가 자신한테 맞지 않는 엄청난 악당이란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한테 와 주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중이지만 한 사람이 고대하고 고대할수록 기다리는 그 무언가는 결코 오지 않는 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무엇인가를 찾는 듯 보이는 이상한 생면부지의 남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올려다봐? 그렇다. ‘나’는 열린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남자와 ‘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를 차갑게 떠나 보내고 말았다. ‘나’는 ‘나’를 올려다보던 그 사람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 ‘토볼트’라고. 짧은 산문은 이렇게 끝난다.

  “그는 이제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일까?”

  이 물음은 사라지지 않고 뒤에 다시 출현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마땅하겠다. 정말 영영 사라진다면 이런 말을 쓰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후 로베르트 발저의 분리된 의식은 ‘나’의 한 조각일 수 있는 악한, 버림받은 여인 혹은 지배자로 변용하여 토볼트와 지문 없는 희곡 형식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당연히 한 사건에 대한 사실적 논의가 아니라 다양한 관념과 관념이 이끄는 정신상 현상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읽기가 그리 쉽지 않다.

  나는 이 책으로 로베르트 발저의 책 세 권을 읽는데, 세 권 가운데 <타너 가의 남매>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고, 나머지 두 권은 어째 아직도 정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로베르트의 진가가 어떻든지 간에, 내 독서 생활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로베르트 발저는 눈에 띄는 책이 있어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작가이다. 이번에도 도서관 책 치고는 거의 새 책이고, 본문도 76페이지에서 끝나지만 무려 다섯 소품이 들어있을 뿐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고 착각해 선택한 거다.

  읽을 때는 뭔가 있는 것 같고, 부르주아의 파티 장면 같은 것도 색다르게 묘사해서 괜찮게 읽었는데, 이제 하루가 지나 독후감을 쓰려니 뭐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 어제 앱 ‘북적북적’에다 왜 별점 4를 주었을까? 발저가 조금 과하게 포장되어 있는 작가 같고, 나도 포장 규모에 잠깐 현혹되었는지 모르지. 괜찮아, 괜찮아. 가끔 과대 포장된 사람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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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3-30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도 <타너 가의 남매>가 발저의 대표작이 아닐까 싶어요..
<벤야멘타...>보다도 <타너 가>에 좀 더 발저의 생각이 여러 가지로 집약된 거 같아서요.

Falstaff 2026-03-30 15:26   좋아요 0 | URL
저도 <타너 가..>가 훨씬 좋습니다. 근데 우짰든 로베르트...는 이넘이건 저넘이건 그리 정이 안 가더라고요. ㅋㅋㅋ
 
저주토끼 (10만 부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양장)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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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라, 하면 괜히 빚을 진 거 같다. 스타니스와프 비트키예비치와 브루노 슐츠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읽을 수 있게 해준 것만 가지고도 그렇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이가 쓴 《저주 토끼》가 몇 년 전에 부커-인터내셔널 최종심까지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가로서의 정보라가 SF 소설을 쓴다고 오해하고 있었고, 그 분야를 별로 즐기지 않아 그동안 찾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걸 누군가 도서관 이용객이 희망도서 신청을 해 새 책이 들어와 읽어볼까 싶어 그렇게 했다. 아오, 괜히 읽었다. 꿈자리 사납겠다.

  SF? 천만의 말씀. 누가 SF 작가라고 그랬어? 맞다. 그렇게 들은 적 없다. 내가 괜히 혼자 그렇게 짐작했을 뿐. 이런.

  그동안 정보라, 하면 이이가 쓴 책이 《저주 토끼》인지 《엽기 토끼》인지 헛갈려 꼭 뭐였더라, 두 번 생각했다가 이번에 책 읽고 글 쓴 이에게는 안 된 말씀이지만 이젠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겠다. 꿈에 나올라…. 호러도 그냥 호러가 아니더라고.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특별하게 어린 아이 죽는 장면이 끔찍한데, 이이도 그런 모양이다. 독자한테 더 끔찍한 느낌을 주기 위하여 그래서 어린 아이가 죽거나 초현상적인 이상 생명체 혹은 비생명체로 변신하는 장면이 다른 작가에 비해 높은 빈도로 등장한다. 끔찍한 상상을 초래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나처럼 선량한 마음씨로 평생 산 독자들로서는 이거 뭐 도무지 감당이 안 될 수준이라서, 거 참.

  표제작이자 소설집의 제일 앞에 실어 문패 역할을 한 <저주 토끼> 한 편만 그런 게 아니라 go go mountain, 갈수록 태산이다. <머리>, <차가운 손가락>, <몸하다> 등등. 도대체 이이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까? 이게 다 궁금하더라니까? 뭐 사는 거야 이이나 나나 별다른 게 있겠어? 하긴, 이러니까 사람의 곱창이 아스팔트 위에서 꼼지락 거리는 <브로츠와프의 쥐들>을 그렇게 실감나게 번역했겠지만. 그것도 읽으면서 곱창으로 줄넘기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야, 싶은 수준이었다.

  정보라님. 앞으로 작품은 읽지 않더라도 폴란드나 러시아 사람이 쓴 숨어있는 좋은 작품 열심히 우리말로 바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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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7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27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6-03-2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보라, 김초엽, 천선랑 등 최근 등단한(개인적으로 공선옥 작가를 마지노선이라 생각히나 요즘 등단작가로 인식될 수 있겠네요..ㅎㅎ) 작가들의 작품들은 읽을 수가 없고...읽다가 덮고...그렇습니다. 읽어야할 세계문학 작품이 넘칩니다. 정보라, 김초엽, 천선랑 등의 작가들보다 더 좋은 작품을 읽는 것이 제한된 시간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다 읽어가지만...명성보단 번역 때문에 진짜 짜증이 나긴 하는데, 이거 읽는게 최근 핫한 한국 여성 작가들 작품 읽는 것보다 저는 훨씬 만족도가 높습니다. 겉 표지 이쁘게 만드는 건 정말 요즘 출판사들 기가막히더라구요. 표지 보면 막 소장해서 읽고 싶게 만드는...디자인팀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Falstaff 2026-03-27 15:42   좋아요 0 | URL
뭔 말씀을... 그래도 공선옥 63년 엽기토끼띠 여사님 후배들이 세상에서 좋은 상은 다 받더구먼요 뭘. ㅋㅋㅋ

yamoo 2026-03-30 11:15   좋아요 0 | URL
흠...뽈님께서 보시기에 공선옥 작가와 비교해서 현재 정보라 김초엽 천선랑 등의 작가들이 읽을만한가요? 상을 받는 거하고 좋은 소설하고는 비례하지 않는 듯합니다. 뽈님은 한국 작가 소설도 많이 읽으시니 어떤가 싶네요. 저는 전경린 소설을 마지막으로 한국 작가 소설은 읽지 않고 있는데...표지가 너무 좋아서 몇 권 읽기 시작했는데 그냥 덮었습니다. 재밌었던 작가 작품 몇 권 추천해 주시면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6-03-30 11:28   좋아요 0 | URL
저는 우리 작가들이 쓴 포스트모던 쪽을, 그쪽만? 하여간 게릴라, 파르티잔들에 관심 있습죠. 휴대폰으로 쓰는 게 영 적응이 안 설라무네.. 일단 여기까지만 하겄습니다. ㅎㅎ

2026-03-30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30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6-03-28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 딸이 읽고 무섭다고 해서 전 보류했어요 ㅎㅎ

Falstaff 2026-03-28 15:52   좋아요 1 | URL
ㅋㅋㅋ 따님이 효녀네요! 마음도 고운 거 같고요!!
 
사라진 모든 열정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2
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정소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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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2년에 영국 켄트의 노울 하우스 Knole House에서 은수저를 입에 물고 방긋 웃으며 엄마 배 속에서 나온 부르주아 귀족 따님. 아빠는 3대 색빌 남작 라이오넬 색빌웨스트. 엄마는 외교관이었던 2대 색빌 남작이 스페인 무용수 페피타와의 사이에서 출생한 서녀 빅토리아 색빌웨스트. 그러니까 적장자와 서녀 간의 결혼에서 출생한 무남독녀 외동따님이다. 위키피디아에서 비타의 부모가 4촌 사이라 했는데 그냥 편하게 말해서 그렇다는 거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복남매 간의 근친결혼이다.

  비타가 출생한 노울 하우스가 어떤 집인고 하면, 옛적에 대주교가 살던 궁전이다. 약 4백헥타아르 규모의 공원 속 5천평 규모의 건물이다. 전 잉글랜드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를 자랑한다니까 얼마나 대단한 집안이었는지 감 잡히시지?


Knole House, Kent


  근데 딱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두 작품의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한사상속.” 딸에게 상속을 금하는 가문의 법칙이다. 이 거대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원과 저택과 남작 작위를 3대 색빌 남작 라이오넬이 자기 외동딸 비타한테 상속하지 못했으며, 색빌웨스트 가문 종친회가 모든 고정자산과 작위를 라이오넬의 동생 찰스가 이어받으라고 결정했다. 찰스 입장에서는 그려, 고기국물 떨어지기를 평생 기다렸는데, 당연히 넙죽 받아 자셔서 4대 색빌 남작 자리에 올랐다.

  이이의 생애를 소개할까 싶었다. 그러나 워낙 화려무비해서 짧게 써도 원고지 2백장 짧은 중편소설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여 안타깝게 직접 위키피디아라도 검색해보십사, 권하는 수준에서 끝낸다. 아휴, 정말 웬만한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다. 딱 하나만 소개하자면 개방결혼을 했다는 것. 즉 혼인의 배우자 말고 서로 자유롭게 이성간, 동성간 연애를 배우자가 다 알게 비밀 없이 내놓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즐겼는데, 두 명의 아들은 과연 남편의 아이일까? 그것도 좀 궁금하다. 이이의 숱한 연인 가운데 역시 개방결혼 비슷한 결혼생활을 한 버지니아 울프도 들어 있다. 울프하고는 10년간 연인으로 지냈다고 한다.


  작품은 94세의 헨리 라이얼프 홀랜드 제1대 슬레인 백작의 사망으로 시작한다. 거의 모든 영국인들이 불멸의 존재로 인식할 만큼 오랜 세월 영국의 유력인사로 활약한 전설적 인물. 빛나는 대학시절, 매우 젊은 나이에 정부 내각에 참여해서 가터 작위와 바스 훈장, 인도의별 훈장, 인도제국훈장에 빛나는 쾌락주의자, 인문주의자, 운동 잘하는 사람, 철학자, 학자, 매력적이고 재치있는 인물, 진정 성숙한 정신의 보유자이며, 전직 인도 총독, 전진 총리를 역임했으며, 일체의 (알려진, 또는 발각난, 혹은 비밀스러운)스캔들도 없이 평생 사랑스런 아내와 금슬 좋은 사이를 유지하여, 순서대로 허버트(며느리 메이블), 캐리(사위 롤랜드), 찰스, 윌리엄(며느리 러비니어), 케이, 이디스, 여섯 남매, 그리고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손주, 증손주를 든 다복한 인간. 다복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 가운데 왕만 빼고 안 해본 것이 하나도 없는 행운아. 진실한 귀족. 평생 검약해 그러나 가진 재산이라고는 런던의 저택과 약간의 현금과 은행 금고 안의 얼마 되지 않는 보석, 당시 귀족들이라면 그리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정도의 가공되지 않은 원석 수준의 보석이 전부였다.

  열여덟 살에 결혼해 여든여덟 살에 과부가 된 슬레인 백작부인이자 전 총독부인인 데러바 홀랜드는 남편과 전혀 달리 태생적으로 냉소와 거리가 멀었으나 백작과 70년을 살며 냉소의 얇은 막을 쓰는 법을 조금 배웠다. 여섯 자식이 보기에 부인은 자기 의견이라고는 없이 그저 남편이 이끄는대로 순종하며 남편의 지위, 세력에 따라 자신한테도 바쳐지는 자리에 지극히 어울리는 관례를 훌륭히 수행한 인물이다. 남편이 이제 죽었으니 부인이 얼마 남지는 않았겠지만 자기 생활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실행까지 할 수 있을까, 이게 여섯 자식들의 공통된 의문이다. 68세의 장남 허버트, 66세 참견쟁이 딸 캐리, 65세 불만쟁이 전직 육군 장군 찰스, 64세 최강의 인색꾼 윌리엄은 혼자 남은 어머니의 앞날이라는 문제에 무겁게 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독립적인 의지가 없는 어머니. 어떻게 할꼬?

  저택은 세금 문제 때문에 틀림없이 처분해야 할 터. 작은 집에 혼자 사시게 하는 건 세상 사람들 보는 눈이 있어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어, 이들은 자식들이 순서대로 한 3개월 정도씩 모시는 걸로 하고, 모시지 않는 형제자매들은 월 2파운드 35실링을 추렴하자고 뜻을 모았다. 다섯째, 독신이자 천체天體, 나침반, 아스트롤라베 전문가인 케이는 전혀 모실 마음이 없고, 역시 독신인 60세 이디스는 이제서야 자신 소유의 작은 아파트에서 하녀 한 명을 두고 벽난로 앞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평생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소망을 갖게 됐다. 이디스의 눈에는 여기 모인 친남매들이 시커멓고 늙은 까마귀처럼 보인다. 죽음이 이들을 불러 모았다.

  아이쿠, 독후감이 늘어진다. 빨리 가자.


  하여간 웨스트민스터 사원 지하에 남편 그리고 아버지인 헨리 홀랜드, 슬레인 백작을 묻고 저택으로 돌아온 가족들. 부인은 두 살 아래의 프랑스인 하녀 저누를 시켜 은행 금고에서 찾아온 보석을 가지고 오라 해놓고, 그걸 몽땅 2대 백작부인이 될 맏며느리 메이블에게 준다. 이걸 바라보는 맏딸 캐리하고 특별히 욕심이 많은 둘째 며느리 러비니어의 속이 어땠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부인은 얄짤없이 전부 다 맏며느리한테만 준다. 그게 가문의 전통이란다.

  이어서 2대 슬레인 백작이자 맏아들인 허버트가 앞으로 어렇게저렇게 어머니를 모시겠습니다, 하고 설명하니까, 세상에 자기 주관대로 일을 만들거나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부인이 뭐라 하느냐면:

  “오, 잠깐만. 너무 앞서 나가는구나. 허버트, 내가 동의한 건 아니야. 난 혼자 살 생각이다. 햄프스테드에서. 봐 둔 집이 있단다. 30년 전에.”

  자녀들이 걱정하는 건 사람들의 시선. 평판 같은 거. 그걸 걱정하는 게 웃긴 막내 이디스. 뭐 그렇다.


  이리하여 백작부인은 하녀 저누만 데리고 무척 먼 거리는 아니지만 런던에서 당시 교통수준으로 하루에 다녀오기에는 쉽지 않은 햄프스테드의 호젓한 작은 집으로 옮겨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평생 처음 여유로운 시간을 살게 된다. 그러면서 집주인 벅트라우트씨, 건축사 고셰런씨, 그리고 예술품 수집가 피츠조지씨, 이렇게 세 명의 늙은 남자들과 유쾌한 일상을 즐기기 시작한다. 이것이 1부와 3부.

  2부에서는 슬레인 백작부인이 어렸을 때부터의 꿈인 화가가 되지 못한 이야기. 다분히 버니지아 울프의 저작 <자기만의 방>과 흡사한 주장을 펼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나타난 헨리 홀랜드가, 자신이 헨리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그가 선택해 결혼을 하게 된 것 같고, 여섯 아이들도 낳고, 사실 ‘키웠다’라고 주장하기엔 좀 그렇긴 하지만, 하여간 지켜봤고, 남편을 따라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를 다니며 총독부인의 지위에 맞는 생활을 해야 했다. 이 와중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그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자상한 헨리도 아내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다고 신혼 시절에 말한 바 있고, 정말 그랬다.

  이런 생각을 “감정이 지글지글 끓으며 주조 틀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절, 복잡하고 모순된 욕망으로 가슴이 찢어질 듯한 그런 (젊은)시절”이 아니라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단색의 풍경뿐이라 다 똑 같은 모양에 색채도 바래 흐려지고, 말 대신 동작만 남았을 뿐”(p.101)인 노년에 다시 생각해본들 뭣하리오.

  오히려 여든여덟, 그 나이를 먹도록 자신이 평생 남다른 은덕을 입고 살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슬레인 백작부인이 거 참. 처음에는 헨리가 나타나 데버러 리, 이 촌 젠트리의 딸을 총독 부인으로, 정치 명망가의 부인으로 만들어주었으며, 노년에는 피츠조지가 등장해 금은보석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물론 백작부인이 이런 걸 다 바라지는 않았다고 항변하건만, 유독 슬레인 백작부인에게만 이런 행운의 행성이 공전하는가 말이지.

  70년을 함께 산 절친한 하녀 저누의 삶도 부인은 한 번을 돌아보지 않았다. 가난한 부모의 열두번째 아이로 태어나 헐벗은 농장에서 헛간에 짚을 깔고 자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일을 제대로 못하면 매를 맞고, 자라면서 형제자매를 만날 수도 없었던 아이. 열여섯 살이 되자 갑자기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 영어 한 마디도 하지 못하면서 한 집안의 딸이 시집갈 때 몸종으로 따라가 평생을 모셔야 했던 여성.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슬레인 백작부인은 오직 자기 자신의 불만, 화가가 되지 못한 것만 한탄할 뿐, 자기 바로 옆에 있는 많고, 많고 엄청나게 많은 무산자들의 삶은 쳐다보지도 못한 생을 살았다. 부인이 어떻게 알아? 저누가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예술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는지? 런던 뒷골목에서 주머니칼을 쥐고 술 취한 자의 주머니를 터는 악동들 속에 마티스와 샤갈을 능가하는 예술혼을 가졌지만 자기들은 그런 줄도 모르는 아이들이 있는지?

  비타 색빌웨스트가 노년을 바라보는 착 가라앉은 시각은 참 그럴 듯해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자기만의 방? 그런 건 생각도 못해보는 당대의 다수, 21세기인 지금도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무수한 사람들을 바라보는(심지어 내려다봐도 좋다!) 시각이 없는 건, 태생이 귀족 부르주아라서 그랬을 것이다. 슬레인 백작부인이 데버라 리였던 시절에,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뭐든지 해서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면, 그래도 그림을 그리겠다고 주장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있겠지. 있었겠지. 쉽지는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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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3-26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타 색빌웨스트....발음하기도 어려운 생소한 작가네요..^^;;
궁금하긴한데, 찾아 읽고 싶지 않은....그런 작품입니다..ㅎㅎ 저는 뽈님의 리뷰로 대산할까 합니다..ㅎㅎ

Falstaff 2026-03-26 14:54   좋아요 0 | URL
이 책 제법 재미있습니다. 땡기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는 거지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