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연인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
찬 쉐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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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2022년 초에 독자들이 열광했던, 그러나 생각만큼 흥분이 오래 가지는 않았던 작가 찬쉐(殘雪)를 읽었다. 당시 나는 중국의 3세대 소설 작가들의 문법에 조금은 식상하고 있어서 찬쉐가 여성작가이며, 제목이 <마지막 연인>이란 것만 가지고 징글징글한 중국의 현대사를 다룬 남성 3세대 작가들과 달리 조금은 달달하고 도시적 감수성을 보여주지 않겠는가, 생각했으며, 기회가 닿으면 한 번 읽어 보기는 하겠는데 찬쉐에 대한 찬사가 좀 가라앉은 다음에 그리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했다. 그리고 코피 터졌다. 시대가 2020년대에 징글징글한 남성작가, 달달한 여성작가, 제목 가지고 스토리 짐작하는 것 등등, 이 모든 것이 말짱 헛생각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짐작한 내가 참 한심했다. <마지막 연인>은 참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언제부터인가 좀 야릇한 소설이 등장하면 “카프카와 보르헤스를 잇는 작가가 등장했다.” 라고 하면서 어깨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찬쉐의 경우에도 “중국산 카프카”라 칭하는 작가/평론가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래. 작품을 해설하기 힘들 때 카프카나 포크너 비슷하다,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하면 반은 먹고 들어가니까. 내가 읽은 <마지막 연인>은 자전적 이야기 같던데. 물론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헷갈릴 경우에 “자전적 이야기” 운운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즉 나처럼 <마지막 연인>을 달달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책을 사거나 빌려 읽은 사람은 초장부터 보기 좋게 코피가 터질 것이다. 찬쉐는 자신의 이야기, 부유하게 살다가 폭삭 망했으며, 자기를 돌보던 외할머니마저 굶어 죽는 참화와 스스로도 심각한 결핵을 겪었으면서도 문학의 꿈, 작품 속에서는 책을 읽고 읽은 책의 스토리들을 다 합쳐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만들고자 하는 등장인물 존처럼 소설쓰기를 운명 또는 세상에 자신을 밀어낸 저 지하 또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부터의 운명이다, 라고 작품의 주제를 밝혔고, 형식적으로는 그걸 “초현실주의”에 발을 담그고 쓴 작품이라고 읽었다.


​  “옮긴이의 말” 속에는 “중국의 초기 선봉파 작가들이 평이한 현실주의로 선회할 때 찬쉐는 오히려 30여 년 동안 꾸준히 가장 전위적인, 때로는 서양의 모더니즘 작가들보다 훨씬 더 모험적인 실험을 감행했다.”라고 쓰여 있다. 선봉파?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  선봉파先鋒派. “문학예술에서의 선봉, 아방가르드란? 20세기 초에 기성의 문학예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나선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등 첨단의 문예사조를 말한다. (중략) 1980년대 중반 이후 개혁개방정책이 실효를 거두고 상품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조성된 사회, 경제적 환경의 변화 때문이며 개혁 개방이 시작되면서 쏟아져 들어온 외래사조의 영향도 선봉문학이 등장하는데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출처: 씽크존)


​  찬쉐는 1986년, 33세 때 <황니거리>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또래 작가들은 시작은 선봉파로 했을지언정 점점 중국 안에서 잘 팔리는 현실주의로 선회했고, 찬쉐를 비롯한 골수 아방가르드 들은 끝까지 선봉파의 선봉에 섰다는 의미다. 그러면 옮긴이 강영희의 말마따나 초기 선봉파 작가로 훗날 평이한 현실주의로 선회한 대표적인 작가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칭한 것일까?

  내가 꼽기로는 찬쉐보다 3년 아래, 중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모옌, 아닐까 싶다. <홍까오량 가족>, <열세 걸음>, <술의 나라>, <인생은 고달파>, <달빛을 베다>, <풀 먹는 가족> 등등의 작품 속에 일정한 만큼 또는 적당할 정도의 (포스트)모던한 향미 첨가물을 살포해 놓았다. <개구리>는 좀 덜 그렇지만. 모옌과 비슷한 경우를 현실주의로 선회한 작가 그룹으로 봤을 수 있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단언하는 건 아니니 이 대목을 어디 가서 써먹지 마시라. 망신당할 수 있다.

  하여튼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니) 거장으로 이름 높은 모옌 선생의 이름까지 끌어들여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단지 찬쉐가 강단있게 중국의 아방가르드, 선봉파의 입장에서 굽힘 없이 작품을 썼으며, 그것으로써 중국 소설계의 다양성 확보에 크게 복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작 읽어볼 것을 그랬다. 소설, 또는 문학을 포함한 모든 세상살이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바로 다양성일 터이니. 나하고 맞고 맞지 않고는 관계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과 표현법과 문자놀이로 감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일 것이다.


​  작품 속에는 서로 관계가 있는 세 커플이 등장한다. 장소는 특정하지 않은 세상의 어떤 곳, A나라 B시. 그곳에서 의류회사 “로즈”를 차려 사장으로 있는 빈센트와 발랄하고 영리하면서도 요염한 중년여성인 아내 리사. 회사 “로즈”의 영업부 매니저로 작은 키에 고집스러운 중년과 노년 사이의 남자 존과 존이 벌어오는 돈으로 귀금속 같은 장식품을 열라 수집하다가 정신차려 이제 직기를 사용해 벽걸이 카펫 작업을 해 제법 돈을 벌고 있는 아내 마리아. 존과 마리아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부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열일곱 살 먹은 아들 대니얼이 있다. 얘는 공부하기 싫어서 학교 때려치우고 정원사가 되려 알아보고 있는 중으로 나중에 꽤 그럴듯한 정원사가 된다. 다행이다. 그리고 “로즈”의 오래된 고객으로 온열대 지방인 남부지역에서 거대한 규모의 고무나무 플랜테이션 농장을 경영하는 레이건 씨와 그가 오랑우탕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갈색 피부와 새까만 곱슬머리를 한 아시아 여자 에다.

  이 A나라 B시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여인이 있으니 도시 청소부로 아침부터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깨끗이 쓸고 있는 흑인여성 조이너. 조이너는 이 B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빈센트의 아내 리사는 도박의 도시 출생으로 나이든 빈센트가 한 번 마음먹고 아내의 고향인 도박의 도시로 길을 떠나 기차에 내렸을 때 텅 빈 도시에서 단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바로 흑인 여성 청소부 조이너였다. 도박의 도시에서 조이너가 말하기를 B시의 조이너가 자신의 자매라고 하고, 도박의 도시에서 사용하는 룰렛을 비롯한 모든 도박 장비는 벽 속에 들여놓았으며, 사람들은 지하 또는 동굴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언제 지진이 나 건물이 무너질지 모르는데 지하에 있으면 안전할 것이란다. 그렇게 조이너의 말에 따라 여관 지하에 숙소를 정하고 무작정, 조이너의 약한 반대를 무릅쓰고 아내의 옛집을 찾아갔더니, 이게 웬일? 이미 죽었다고 알고 있는 리사의 부모가 안락의자에 누워 앵무새와 말장난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러면 이곳은 시간의 차원이 없는 곳.

  존, 사실은 작품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일의 기단을 만드는 인물이다. 존은 영업부 매니저 일을 하면서, 워낙 머리가 좋아, 서류 아래에 소설책을 한 권 깔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어가면서도 능숙하게 업무를 처리해 사장조차도 존이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 하며 그만두지 않을 거란 다짐을 받고 싶어한다. 존은 또 사장의 태도를 자신이 그만두어 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표시하는 것으로 여기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하여간 엄청난 독서량은 서재에 책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게 했으며, 그의 소원은, 물론, 당연히, 자연스럽게, 틀림없이 작가 찬쉐와 같은 소원으로, 평생 읽은 소설의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더 읽고 난 뒤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보겠다는 웅대한 계획이다.

  뭐라고? 존의 계획이 존을 태어나게 한 작가 찬쉐의 계획이라고? 당연하지. 그리하여 이후의 작품은, 비록 상충하고 연결되지 않으며 버석거리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막 흐트러져버린 것처럼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행위, 겪었던 경험, 그들의 공통점인 ①지하 또는 동굴, ②불운과 불행을 상징하는 뱀, 까마귀, 늑대, 말벌 같은 토템이랄까 상징, ③지진과 산사태로 입은 피해와 정신적 외상, ④몇몇 선한 동물에서 뿜어 나오는 자기장은 모두, 적어도 책의 앞갈피에 쓰인 극히 짧은 찬쉐 소개글과 “옮긴이의 말”에 나온 작가에 관한 정보 만으로도,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때로는 직접 말하고 거의 대부분은 변형하고 비튼 이야기임을 “추리”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사를 따라가보려 노력할 필요 없다. 나는 습관적으로 스토리 전개의 요약을 위해 메모를 하며 읽기 시작했다가 금방 때려치웠다. 책의 초반을 읽을 때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수면에 문제가 있어요. 잠이 모자라요. 그러니 낮에 졸려요.) 많이 헤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반 이후에는 오히려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그만큼 문장/문단이 독자를 흡인하는 파워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작품은 한 번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아마 독자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 선봉파 문학을 조금 하다가 적지 않은 작가들이 괜히 평이한 현실문학으로 노선을 바꾼 건 아니다. 찬쉐처럼 평단과 독자들의 박한 평가를 무릅쓰고 자기의 길을 걸은 외고집이 가끔은 멋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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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7-28 0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 궁금해 하실 줄은 아는데요, 그냥 아무 뜻 없이 다음 주 독후감 계획 알려드립니다. ㅋㅋㅋ
화요일, 피에르 르메트르 <우리 슬픔의 거울>
목요일, 익명의 여성 <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
금요일, 그레이엄 그린 <조용한 미국인>

stella.K 2023-07-28 10:53   좋아요 2 | URL
ㅎㅎㅎ 아뇨. 궁금해요. 근데 이리 알려주시니 기대되네요.ㅋ
근데 골드님 대단하십니다. 저는 한 주에 한 권 읽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이리 읽으시는지 존경스럽습니다.^^

우끼 2023-07-28 12:0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매우궁금합니다 독후감 매번 잘 읽고 있어요!

Falstaff 2023-07-28 15:0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백수잖아요. 책이나 읽는 사람하고, 생활인하고 그냥 비교하시면 안 됩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3-07-28 1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 중국산 카프카 왜 이렇게 저렴해 보입니다 ㅋㅋㅋㅋㅋㅋ중국산 똘스또이 중국산 밀란 쿤데라 개터지네요 ㅋㅋㅋ내 안의 특정 국가 혐오 반성...중국산 고추가루... 중국산 우엉 중국산 고사리(중국 사람들 우엉 고사리 둘다 안 먹는대요 그럼 우리한테 뭘 먹이는 거냐 대체...ㅋㅋㅋㅋ)

Falstaff 2023-07-28 15:04   좋아요 2 | URL
크.... 분명히 중국인 차별입니다! 중국에도 좋은 거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배추와 오동나무입니다. 써 놓고 보니 둘 다 1차 산업이네요.
문학도 괜찮은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 ㅎㅎㅎ 진심으로요.

반유행열반인 2023-07-28 15:31   좋아요 3 | URL
중국인 차별 아니고 중국산 차별로 수정해주옵소서ㅎㅎ(반체제) 문학이랑 ‘옛날’ 영화는 괜찮은 게 꽤 많은 걸로요...지금은 읍읍 아임그루트

얄라알라 2023-08-01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께서 새벽에 깼다 다시 자는 제게 말씀을 남겨주셨는데, 골드문트님 역시 밤에 푹 숙면하시지는 못하시나봐요.

초반에 ‘코피 터졌다‘고 하시길래, 무슨 말씀이신가했네요. 흐앙...줄거리도 난해하네요^^ 메모를 중단하셨을만큼 흡인력이 대단하다시니, 아직 중국 작품은 읽어본적이 거의 없는 저도 ˝찬 셰˝ ˝찬 쉐˝ 기억하고 갑니다. ^^

Falstaff 2023-08-01 16:07   좋아요 1 | URL
알라 님한테 댓글 달기 전에 쓴 독후감이거든요. 그래 별 것이 다 반가워서 얼른 댓글 단 겁니다. ㅋㅋㅋㅋ
메모 스톱 할 만큼 흡인력이 있는 게 아니라.... 메모 해봤자 나중에 하나도 써먹을 것이 없다... 뭐 이런 취지였습니다. ^^;;;
 
그녀, 아델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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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 아델>을 읽은 건, 올해 초 <타인들의 나라>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었다. <달콤한 노래>를 통해 절대로 달콤하지 않은 비정한 스릴러를 경험해서 조금은 조심스러운 심정으로 <타인들의 나라>,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을 읽었는데, 예상 외의 수작이어서 슬리마니의 데뷔작인 <그녀, 아델>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는 거다.

  아델이라는 여자. 무슬림인 듯한 아버지 카데르와 프랑스인 엄마 시몬 사이의 외동딸로 태어나 어머니의 무관심 아래 자란다. 열 살 무렵 어머니와 단 둘이 파리 여행을 한 적이 있지만 어머니는 아델을 호텔 방에 혼자 둔 채, 딸아, 방 밖으로 나가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란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한 발자국도 나가면 안 돼. 누가 방문을 열어달라고 해도 절대 소리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알겠지, 이렇게 교육을 시켜놓고 자기 혼자만 열심히, 아주 열심히 즐기고는, 마지막 날, 내일 다시 돌아가는 날이라면 오늘 딱 하루, 처음 보는 남자와 엄마가 생색을 내듯 아델을 데리고 “파리 관광”을 시켜주었는데,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하필이면 간 곳이 몽마르뜨 언덕이라, 겨울이었음에도 거의 헐벗은 옷차림을 한 채 남자들의 시선을 찾아 눈을 두리번거리는 매춘부 구경만 실컷 한 경험이 있었다. 성인이 된 아델은 (마치 슬리마니 자신처럼) 영화계 스타가 한 번 되어볼까 싶어서 연기 학원에 다녔으나 그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 어영부영하다가 조르주 퐁피두 병원에서 위장병 전문의 리샤르 로빈슨을 만나 결혼을 해버렸다. 팔자가 좋으려니 리샤르는 아델 수준에서 보기엔 상당한 부잣집 맏아들이었으며, 병원에서도 거의 내과 과장 정도의 직책으로 높은 연봉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는 곳도 파리에서도 부촌으로 알려진 18구의 널찍한 호화 아파트를 비싼 월세로 빌려 살고 있었다. 슬하엔 아들 뤼시앙이 있고, 얘는 지금 한창 미운 다섯 살이다. 넓은 아파트에서 아들 하나만 키우면 재미가 없을 거 같았던 찰나, 남편 리샤르의 친구 아버지가 신문사 출판국장이라 낙하산을 타고 신문사 기자로 입사해 처음엔 불꽃 같은 실력을 내뿜으며 회사 돈으로 세계 방방곡곡 안 다녀본 곳이 없었고, 특히 튀니지에 관한 한 신문사에서 거의 독보적인 실력을 가진 기자라고 일컬었었다.

  대단하지?

  세상에 뭐든 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게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읎잖여? 아델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근데, 거 참. 이걸 뭐 어떻게 내놓고 이야기하기도 거시기한 바, 거의 중독 수준인 건 자신도 알고 있어서 나흘 동안 32 킬로미터를 달리고, 술 한 잔도 마시지 않으면서 중독 증세를 이겨내려 집중하고 있었건만, 도무지 아랫배에서 찌리리, 온몸의 신경을 타고 진저리가 쳐지는 증상을 아델 스스로도 참지 못하겠는 거라. 참다, 참다, 결국 견디지 못해, 아델은 남편과 아들이 잠든 새벽에 샤워를 하고, 옷을 차려 입고, 밖으로 나가서, 지하철을 타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난 애인 또는 친구의 작은 아파트로 여덟 시도 안 된 시간에 쳐들어가, 실 하나 걸치지 않은 아담을 깨웠고, 자기도 하와처럼 훌렁훌렁 외투와 원피스와 속옷과 스타킹을 벗어버린 후에, 했다, 하긴 했는데 아담이 원래 사정을 빨리 하는 편이라 마치 하다 만 것 같았고, 그럼에도 일단 몸 속의 금단증상은 멈출 수는 있었으며, 내가 읽기로 정말 드러워 죽겠는 것이, 하여튼 하자마자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라, 곧바로 속옷부터 스타킹, 원피스, 외투를 입은 다음 출근을 해버렸다는 거다. 으이그… 씻지도 않고.

  이런 여자가 결혼은 왜 했을까? 리샤르와 뤼시앙. 남편과 아들에게 자신이 정말 필요한 존재이기는 할까? 아버지와 아들만 살아도 행복에 전혀 지장이 없을 거 같을 정도로 자신은 좀처럼 그들과 맞추기 힘든, 거북한 존재처럼 여겨진다. 생활이 이러니 아델은 무수한 거짓말과 거짓 증거와, 시의 적절한 알리바이를 준비해 두어야 한다. 휴대폰도 그렇다. 흰색의 구식 폴더 폰을 하나 더 장만해 남자들에게 오는 연락만 취하고, 일상적인 통신은 스마트 폰으로 따로 통화한다. 그럼에도 아델은 결혼과 출산을, 세상에 귀속되어 타인들과 그 외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즉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아닌 아델 자신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뤼시앙을 임신해 배가 부른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아델을 치유해줄 것이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임신 때문에 자신의 뭔가가 죽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스스로 깨우치기를, 자신은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돌보기에 적합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며, 이것은 아들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로 끔찍한 일이라는 점. 그리하여 아델이 얻은 거의 모든 사회생활/복지 등은 리샤르와 합의를 통해 이룬 가족/가정에서 소유하기 시작했음에도, 가족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다.

  불행하게도 아델이 고치지 못하는 질병은, 아니 어쩌면 질병이 아니라 그저 형질, 우연히 노랑 머리와 투명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형질 뿐일 수 있는데, 노란 머리카락에 초록 색 눈동자를 가지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여간 하느님이 하필이면 심술을 부려 아델에게 떨치지 못하고 갖고 있게 만든 것이 님포매니악. 여자일 경우도 간혹 있었던 것 같지만 주로 남성과의 결합을 참지 못하며, 어느 중독이 그렇지 않겠느냐만, 간혹 끔찍한 피학 변태성까지 보이는 아델의 형질은 그녀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어갈 뿐이다.

  책 속에 나오는 아델의 상대 남자는 순서대로 아담, 신문사 사장 시릴,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이름 모르는 연하 남, 남편 리샤르, 장관minister의 보디가드, 아프리카의 프랑스 대사 참사관, 친구 로렌이 은근하게 포기하지 않은 남자 마티외, 로렌의 사진전에서 만난 낯선 남자, 한 달 전 마드리드 학회에서 만나 콘돔 없이 애널 섹스를 허용한 니콜라, 첫경험이었던 루이, 남편 리샤르의 병원 동료 자비에, 코카인을 나누고 쓰리 섬과 피학 성애를 즐긴 메디와 앙투안, 그리고 뱅상, 올리비에, 한 번 더 자비에, 엄마 집의 8층 남자.

  이 명단에 이름을 두 번 올린 인물이 배 나오고 키 작은 병원 내과 과장 자비에. 부자이며 심성이 고운 자비에는 아내 소피에게 꼬투리를 잡히고, 얼마 버티지도 못한 상태에서 전부 좔좔 불어버린다. 소피는 또 득달같이 리샤르에게 달려가 당신 마누라 아델이 내 남편 자비에한테 꼬리를 쳐서, 어쩌고 저쩌고… 그림이 그려지시지? 이번 아비규환을 겪으며 정말 부처님 가운데 토막 itself였던 리샤르는 독한 마음을 먹고 선언을 하기를, 파리에서 가장 실력 있는 변호사를 구해서 이혼 소송을 벌이겠어, 당신은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뤼시앙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는 상태로 이혼하게 될 거야. 우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 살게 될 거야.

  근데 그게 쉽게 돼? 그럼 그게 소설이냐고.

  굳이 레일라 슬리마니의 <그녀, 아델>을 읽어볼 필요가 있을까? 자극적인 장면이 종종 출몰하면서도 그것 참 신기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기까지 하다니 말이지. 뭐 그냥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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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7-27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님 리뷰만으로 그 드러움이 충분히 알 것같네요. ㅎㅎ 이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네요. ㅋ

Falstaff 2023-07-27 19:03   좋아요 1 | URL
굳이 읽으실 필요까지 있을까 싶습니다. ㅎㅎ
 
봄, 파르티잔
서정춘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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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



 "하이고, 세상에나..... 아직도 이렇게 시를 쓰는 사람이 있었을까나?"


 사실 오늘 글을 쓰는 목적인, 서정춘 시인의 ≪봄, 파르티잔≫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딱 한 줄의 감탄문을 쓰기만 하면 충분할 겁니다. 도대체 이 작자가 어떤 시를 썼기에 초봄부터 이리 방정이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당신이 아무리 콘크리트로 만든 심장을 가졌기로서니 시인이 겨우내 갈아낸 뼛가루를 피에 섞어 울음 울 듯 적어간 단 석 줄의 짧은 시를 읽는다면 초봄의 호들갑을 그래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봄입니다. 어느새 새순이 돋고 꽃도 필 겁니다. 철새들도 날아오겠지요. 그걸,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더군요.


 꽃 그려 새 울려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봄, 파르티잔> 전문, 11쪽


 글쎄 봄이 꽃을 피운 것이 아니라, 꽃을 그렸다는 겁니다. 산과 들을 캔버스, 또는 화선지 삼아서 봄이란 놈이 꽃을 그렸더니, 새는 그 꽃 그림을 보고 가슴이 또 얼마나 아려서 울었겠습니까. 그 가슴앓이를 참지 못한 새는 기어이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는데, 그래서 파르티잔, 소위 빨치산이라는군요. 게다가 운율이 또 기막히지 않으세요? 소싯적에 배운 3,4,3,4 / 3,4,3,4 / 3,5,4,3 뭐 이런 시조의 마지막 장을 읽는 것 같은 절묘한 운율이 입 속에서 뱅뱅 돌지요. 그런데 또 그 운율이 아련한 봄소식, 겨우내 기다려마지 않았던 봄소식을 너무나도 기막힌 애뜻함으로 만드는군요. 제아무리 장편의 소설이 있다고 해도 어찌 이 석 줄의 짧은 시보다 읽는 사람의 가슴을 아리아리하게 만들 공명(共鳴)이겠습니까.

 원 참, 석 줄의 시를 감상하는데 원고지 두 장이 꽉 차게 드는군요.


 서정춘 시인은 조금 별스런 사람입니다. 이제 환갑을 넘긴 예순 둘의 노인이지요. 전라도 순천에서 나서,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제껏 책 만드는 동네에서 밥을 먹고살았습니다. 스물 여덟 살에 신춘문예에 당선을 해 소위 시인이라는 딱지를 달았지만 여간해서 시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시인의 인생으로는 종을 쳤는줄 알았었지요.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해온 사람들은 전적으로 무죄입니다. 자신의 시집을 처음으로 찍었을 때가 쉰 여섯 살이었으니까요. 시인 딱지를 단지 스무 여덟 해만에 낸 첫 시집 ≪죽편:竹篇≫을 펴내면서 기껏 한다는 말이 이랬습니다.


아 나의 농사는 참혹하구나

흑!

흑!  ≪죽편≫ 5쪽, 시인의 말, 동학사, 1996년


 ≪죽편≫을 펴낸 1996년. 시인들은 아마 그 해를 악몽같이 기억할지 모릅니다. 그때까지 잘 팔리던 시인들은 공장에서 가전제품을 만들어내듯이 시를 찍어내는데 너무 익숙해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이지요. 서 시인이 지은 참혹한 농사에 대해 수많은 시인들이 경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편편이 어디 하나 버릴 것 없는, 뼈를 갈아 쓴 시들이었으니, 그간 잘 먹고 잘 놀았던 자신들이 무척 초라했을건 물론이고, 아마 무척 당혹스러웠을 겁니다. 설사하듯이 시를 쓴다면 자신도 그럴 수 있었다고 일갈을 했으니 말이지요.

 그러다가 또 육 년의 세월이 지나, 예전의 충격이 조금 가실 만하자 서정춘 시인은 시퍼런 칼날을 서걱서걱 갈아 자신의 뼈를 깍은 두 번째 시집을 발표하였으니 오늘 소개하는 ≪봄, 파르티잔≫인 것입니다.


 도대체 그의 시는 조금의 더함도, 덜함도 용납하지 않는 반듯한 서정의 길에 서있군요. 그래서 이 책 ≪봄, 파르티잔≫에 실린 작품들은 아주 짧습니다. 말을 극도로 아낀다는 뜻일 겁니다. 시에 있어서 만큼 서정춘 시인 같은 구두쇠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집을 읽다가 뭐 이딴 시인이 다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시적 구두쇠 기질에 대한 찬탄을 금치 못해 뱉었던 말이었습니다. 그러니 사실 정말로, 정말로 오랜만에 읽는 시다운 시들을 우러러 찬미한 것이지요.


 그의 시를 하나 더 읽어보겠습니다.


 

 길고 긴 두 줄의 강철 詩를 남겼으랴

 기차는, 고향 역을 떠났습니다

 하모니카 소리로 떠났습니다 <전설> 전문 33쪽


 이 석 줄의 짧은 시 또한 피울음이지요. 길고 긴 두 줄의 강철 시. 그러니까 자신이 떠나온 고향. 고향을 떠나올 때 몸을 실었던 철길이군요. 누구에겐들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자신의 시에 대한 모태가 시인에게도 역시 고향입니다. 고향. 자신의 태를 묻은 생물학적인 고향일 뿐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에 먹줄로 새겨진, 너무 그립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겠습니다. 그곳을 떠나 고향을 그리는 애절한 마음을 시인은 두 줄의 강철로 만든 시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기차 얘기가 나오니 전에 그가 썼던 또 하나의 절창을 이야기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의 고향 남도엔 대나무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그에겐 대나무 또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시적 도구인 것이 너무 당연하겠지요. 이번엔 대나무를 시인이 노래합니다. 이렇게......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竹篇·1 ― 여행> 전문, 죽편≫ 22쪽


 아, 어쩔거나..... 이젠 대나무가 기차가 되어버렸습니다. 대꽃이 피는 고향마을로 가는, 대나무 마디마디 하나가 전부 기차 한 칸씩이 되어 시인은 대나무라는 기억의 열차를 타고 어느 외로운 밤, 죽어야 갈 수 있는 고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가려면 백년이 걸리는, 그리하여 이젠 가슴속에만 자리한 고향으로 시인은 대꽃이 피는 늦은 봄 밤 소주라도 한 잔 걸치며 눈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우리 시단에 서정춘 시인이 있다는 것만 가지고도 아직 시인들을 위해 기꺼이 인세를 지불할 수 있을 겁니다. 서정춘 시인은 우리 시대의 보석이지요.

 봄 밤. 달뜬 몸뚱이가 가끔 거추장스러울 때, 어느 시인이 자기 뼈를 깍아 그 위에 서슬 퍼런 정을 쪼아 쓴 시를 읽으며 단어 하나 하나를 가슴 깊이 외워보는 것, 이 또한 너무 멋진 봄 나기가 아니겠습니까. 당신의 봄 나기를 위해 정말 즐겁게 이 책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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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7-26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서정춘 할아버님은 이제 84세가 되셨군요... 골드문트님이 시집 읽고 감탄할 때 소인은 뭘 읽었드랬나... 채팅하고 놀았네요. ㅋㅋㅋㅋ 무라카미류69 호밀밭의 파수꾼 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까져갖고) 그런 거 조금 읽고 시는 안 보고 진짜 여름 내내 펑펑 놀았습니다...

Falstaff 2023-07-26 21:50   좋아요 1 | URL
무라카미 류. ㅋㅋㅋㅋ 저도 쬐매 읽었습지요. 근데 그 당시에 놀지 않으면 언제 놀겠습니까. 무죕니다, 무죄!

반유행열반인 2023-07-26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
요즘 어린이들은 아씨개멀어 다섯자로 압축할 걸 적당히 예쁘게 눌러놓으셨고 골드문트님은 구절구절마다 잔에 소주랑 눈물을 눌러담으시고...(망상 죄송합니다)

Falstaff 2023-07-26 21:5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뭔 말을 못해요. ㅋㅋㅋㅋㅋㅋ

dalgial 2023-07-27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지간한 시집 뒷 해설보다 당연히 좋습니다. 감탄과 감동에 공감합니다.
골드문트 님 글이 너무 좋아요.

Falstaff 2023-07-27 05:55   좋아요 1 | URL
그저 아마추어가 쓴 잡글인 것을요.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oolcat329 2023-07-27 0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골드문트님이 ‘우리 시대의 보석‘이라고 칭송하시는 시인이니 이름을 기억해야겠어요.
저는 시보다 골드문트님의 글이 더 재미있네요. ☺️

Falstaff 2023-07-27 06:54   좋아요 1 | URL
읽어보셔요! 꼭 해야할 말, 써야할 문자만 딱 있는 그런 시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전 한눈에 휘까닥! ㅋㅋㅋㅋㅋ

jmlee130 2024-10-05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정춘 시인님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Falstaff 2024-10-05 16:40   좋아요 0 | URL
앗, 반갑습니다!

jmlee130 2024-10-05 1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의 글을 계속 읽고 싶습니다.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 대산세계문학총서 174
아마두 쿠루마 지음, 이규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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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은 아마두 쿠루마. 1927에 코트디부아르에서 태어나 2003년 프랑스 리옹에서 삶을 마친 작가. 그가 쓴 다섯 편의 소설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이란다. 우리나라엔 네 번째 소설, 아프리카의 소년병 이야기인 <열두 살 소령>과 동화책 <아프리카의 사냥꾼 야쿠바> 이렇게 번역 출간했다. 이 책을 읽고 곧바로 <열두 살 소령>을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 올렸다. 처음 보는 작가의 첫 작품인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 이하 “들짐승”으로 표기>를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다는 의미랄까?

  어느 곳이 됐건 간에 1927년에 아프리카에서 흑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식민지, 독립전쟁, 독재, 냉전, 혁명 또는 내전 등등, 살면서 단 하나라도 겪지 않으면 좋을 다양한 불행을 모두 경험해보았다는 말이 된다.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프랑스에 저항한 할아버지를 둔 괜찮은 집안 출신인 쿠루마는 1950년부터 54년까지 프랑스 식민지 부대원으로 인도차이나에서 베트남 독립군들과의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경험은 작품의 주인공인 독재자 코야가의 이력 가운데 하나로 작품에 등장한다. 이후 프랑스 리옹으로 건너가 회계사 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여성과 결혼해 2년 동안 일을 하다, 코트디부아르가 독립을 한 1961년에 귀국했다. 그러나 독립 정부는 쿠루마를 곧바로 체포하고, 악명 높은 아프리카의 감옥을 경험하게 한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독립을 했으나 여전히 신식민주의와 절정을 맞은 냉전시대의 기류 속에서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던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얼마 안 가 석방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이후 신생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야만적인 일들에 관한 글을 써서 세상에 알리겠다고 결심을 한다. 이렇게 프랑스의 한 공인회계사는 문학적 투사로 변신을 하고, 한 편의 희곡, 다섯 편의 소설, 다섯 편의 동화를 남긴다.


​  <들짐승>은 구성이 특이하다. 우리나라의 판소리하고 비슷하다. 화자는 ‘빙고’. 사냥꾼의 위업을 노래로 칭송하는 소리꾼이며 음영시인으로 ‘그리오’라 불린다. 사냥꾼의 전통적 정화 의식인 돈소마나를 주관하며, 작품은 모두 여섯 마당의 돈소마나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오에게는 제자이자 조수, 우리의 판소리와 굳이 비교를 하면 고수와 비슷한 티에쿠라가 하나 있어서 돈소마나 중에 코르두아, 즉 광대 비슷하게 춤도 추고, 고수처럼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토템이 매falcon인 ‘코야가’로 군인이자 대통령, 가장 위대한 장군, 가장 위대한 “사냥꾼”이다. 그리하여 코야가와 그의 오른팔인 교육부 장관도 하고 내무부 장관도 하는 마클레디오를 앞에 놓고 돈소마나를 열 수 있던 것. 코야가는 람세스 2세, 순디아타와 함께 인류의 가장 유명한 세 명의 아프리카 사냥꾼으로 골프 공화국의 독재자. 이이의 실제 모델은 차마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을 쓸 수 없었던지 토고의 지도자 ‘냐싱베 에야데마’란다.  내게는 코트디부아르와 토고, 하면 드로그바와 아델바요르, 각 한 명씩 잉글랜드 프로축구 선수 이름을 댈 정도로 아는 것이 없지만, 이들 나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는 참으로 다양한 독재자가 오랜 세월을 해먹었다. <들짐승>에서도 다양한 독재자의 스케치가 등장한다. 산봉우리 공화국 기니의 대통령 세쿠 투레, 흑단 공화국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필릭스 우푸에부아니, 두 개의 강 나라 중앙 아프리카의 하이에나 토템 황제 장베델 보카사, 산악 및 사막 국가 모로코의 자칼 토템 왕 하산 2세 등등 쿠루마는 특히 중부 아프리카를 골라 내놓고 비아냥거린다.

  코야가는 토고의 산악지역에 사는 나체족 출신이다. 처음엔 나체족 역사상 가장 놀라운 에벨마, 즉 격투기 챔피언이었던 ‘차오’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 차오는 의사소통 실수로 그만 프랑스 군대에 징집을 당해 1917년 1차 세계대전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베르됭 전투에 참전, 급한 성격을 참지 못해 중위의 명령에 불복하고 독일군 진지로 혼자 뛰어들어 다섯 명을 죽여버리고 자신은 부상을 입는다. 이에 깜짝 놀란 프랑스 군은 차오에게 무공훈장, 십자무공훈장, 레지옹 도뇌르 십자훈장, 식민지 훈장, 이렇게 사관왕에 올려놓는다. 아프리카 촌놈이 번쩍이는 훈장을 자랑하고 싶지만, 고향에 와봤더니 전부 발가벗고 다녀 도무지 자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차오는 나체족 역사상 처음으로 옷을 입었고, 옷 위에 훈장 네 개를 붙인 채 뻐기고 다니는 걸 좋아했다. 이러니 차오가 주인공이라고 오해할 수밖에. 차오가 옷을 입음으로 해서 프랑스 식민정부는 나체족을 포함한 모든 원주민에게 1년에 세 달 동안 무보수로 백인 이주민을 위해 의무적으로 노동을 하게 했고, 인두세를 부과하는 등 노골적인 경제적 착취를 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잔뜩 기대했던 차오는 독자의 기대를 무시한 채 금방 죽어버리고 대신 그의 아들 코야가가 등장해 아버지보다 더욱 찰진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코야가는 아버지를 닮아 힘도 좋고 날쌔고, 훗날 천하에 둘도 없는 사냥꾼이 되었듯이 다섯 살 때부터 동네에서 쥐 잡기의 명수로 불렸다. 게다가 똑똑하기도 해서 산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갔는데, 일년에 한 번 있는 축제 시기에 고산지역 소년들을 몰고 단체로 도망가 축제 때마다 벌어지는 격투기 시합에 참가했고, 당연히 1등을 먹었으며, 대가로 학교에서 퇴학조치를 받았지만 식민 정부의 백인이 퇴학 명령을 철회시키고 만다. 그러나 맹수는 길들여지지 않는 법. 이후 매년 산악 지역 축제인 하마르탄 때마다 탈출을 하고 그 벌로 수사 선생한테 서른 대씩 얻어 터지지만 원주민한테 그깟 얇은 회초리로 맞는 거야말로 껌이었다. 식민지 행정관은 코야가에게 도의적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독일군 다섯 명을 죽이고, 나체족에게 옷 입기를 도입했으나 자신이 바로 그 영웅 차오를 죽인 셈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무난히 졸업을 했고, 머리가 좋아 행정관은 계속 공부를 시키고 싶어했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한 코야가는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불량한 선동꾼으로 자리를 잡았다. 학교는 그의 불량기에 진저리를 치다가 생루이의 군부대 자녀를 위한 학교로 전학을 시켰고 거기서 기어이 퇴학을 맞는다. 그리하여 들어간 곳이 세네갈 원주민 보병부대.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인도차이나로 파병됐다.

  프랑스에서 온 백인들은 베트남의 덥고 습기 많은 기후에 적응을 하지 못해 고생을 한 반면 원래 더운 지방에서 낳고 자란 아프리카 군인들은 미끈미끈한 진흙 구덩이에서도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고 주장한다. 백인들의 눈으로 볼 때, 아프리카 출신 보병. 가운데서도 산악지방 원주민, 이들이야말로 보병대의 꽃이었다. 산악 지역 출신 남자들도 코야가가 제대한 이후 프랑스 군대에 입대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으며, 여성들이 제대한 남자를 특별히 그윽한 눈길로 쳐다본다는 것을 알아챈 이후에 더했는데, 하여튼 줄줄이 징집이 아니라 지원병으로 들어가, 줄줄이 인도차이나로 파병을 갔다. 그들의 속셈은 제대 후에 고향에 돌아와 고향의 풍습에 맞게 제대로 약탈혼을 하기 위해서.


​  고국으로 복귀한 코야가는 아버지 차오처럼 나대는 대신, 때를 잘 만나 독립을 한 조국의 수도에서 한 번 투옥되었다가 탈옥에 성공을 한 후, 프라카사 산토스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모의를 한다. 모반자들은 대통령 관저를 포위하고, 코야가가 이끄는 스무 마리의 아프리카 들개, 리카온과 함께 공격을 시작한다. 리카온 하나가 총으로 대통령을 쏘았으나 가까운 거리에서도 맞추지 못한다. 쇠붙이는 위대한 자의 살을 뚫지 못하는 법이라서. 그리하여 코야가는 독을 묻힌 수탉의 며느리발톱이 달린 화살을 쏘아 프리카사 산토스 대통령을 푹 쓰러뜨린다. 한 병사가 연속 사격으로 목숨을 완전히 끊은 다음 몸을 구부린다. 그는 이미 죽은 대통령의 바지 단추를 끄르고 익숙한 솜씨로 거세를 하고, 피로 뒤덮인 성기를 시신의 입 안으로 찔러 넣는다. 요사의 소설 한 장면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이걸 고문이나 지독한 복수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일종의 의식. 죽은 자는 자신의 살해자를 공격함으로써 죽음에 대해 복수하는 힘이 있는데, 살해자는 희생자를 거세함으로써 시신에 내재하는 힘을 제압한다는 거였다. 일종의 액막이. 이후 독자는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 죽자마자, 할례를 받지 않은 자는 죽기 전에 이와 같은 의식을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여기까지는 독재자가 되기 전의 일. 이후엔 독재자가 된 후 독재를 지키기 위한 장면이 길게 나온다. 이에 덧붙여 이웃 나라 독재자들의 다양한 모습도 소개를 하고, 독재를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도 소개한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 우리도 경험해봐서 아니까. 여차하면 등장했던 문구들. 북괴의 남침 야욕. 운운.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공산주의의 확장을 두려워한 미국과 서유럽이 공산주의보다는 차라리 독재자를 지원했던 것이 장기 집권과 부패의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럴 듯하다고 본다. 서유럽과 미국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웃기고 있다.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서유럽과 미국의 부르주아들이 소비에트의 공산주의를 차단하기 위하여 히틀러의 군비확장을 눈감아준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이유로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독재자들을 비호한 것일 뿐. 공산주의가 폭망한 이유? 하여간에 권력이란. 공산주의 국가들이 하나 같이 독재를 해서 결국엔 부패한 것이 첫째고, 자본주의에 비하여 능률적이지 않아 경쟁에 실패했던 것이 다음이다. 마르크스가 너무 순진했다. 인간의 본성을 너무 선하게 봤다.

  우리나라 독재자가 자주 썼던 구절, 한국적 민주주의. 민주주의면 민주주의지 한국적인 건 뭐야? 독재 아냐? 파시즘 아냐? 파시즘/독재는 누구/어떤 집단에 의해 저질러지던 무조건 나쁜 거다. 동무들아, 현혹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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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이야기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4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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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개스켈을 읽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된다. 2015년 여름이었으니 딱 8년 전이다. <남과 북>을 읽었는데, 빅토리아 시대에도 이런 ‘여류’ 작가가 있었어? 놀랐던 적이 있다. 과학과 산업과 무엇보다 자본의 세기, 19세기에 부르주아 계급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속에서 가난한 공장 직공들의 저항을 바라보는 시선이 놀랍도록 따뜻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에게 직원들의 복지를 요구하는 자본주의 아내. 대산세계문학총서 시리즈로 읽었다. 잉글랜드의 농업중심인 남부와 공업지역인 북부, 자본과 노동, 인권, 노동자 복지 등등, <남과 북>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조지 엘리엇 보다 더 재미있었다. 요새는 문학동네 세계문학 시리즈에서 <북과 남>이란 제목으로 새로 나왔다. 이후 <크랜포드>도 읽었고 그게 재미 있어서 배고픈 줄도 모르고 읽기는 했지만 지금 기억하는 건 별로 없다. 어쨌든 엘리자베스 클레그헌 개스켈의 책은 눈에 보이면 읽으려고 한다. 《고딕 이야기》는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 한 달 만에 받아 뚝뚝 읽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리즈에서 낸 개스켈의 《회색 여인》하고 겹치는 작품(“늙은 보모 이야기”)이 있고, 마녀와 유령이 등장하는 플롯(“빈자 클라라 수녀회”)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은행나무 에세의 개스켈과 휴머니스트 캐스켈, 두 권을 다 읽으면 좋겠지만 그건 돈과 시간이 많으면 그렇게 하셔도, 아니면 두 권을 각기 좌우 양편에 놓고 왼 손바닥에다 침을 탁 뱉은 다음에 오른 손가락으로 냅다 쳐서 침이 튀는 방향에 놓인 책을 고르시는 것도 현명하겠…….지?


​  다음은 역자 박찬원에 관하여. 박찬원은 좋은 교육과정을 밟은 후 지금은 전문 역자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나라 중견 역자다. 나도 이 양반의 번역서 꽤나 읽었다. 재미있게 읽은 순서로 치면 두 번째 자리에 가져다 놔도 고맙지 않을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부터 시작해 <지킬 박사와 하이드>, <벤자민의 시계…>, <펠리시아의 여정>, <아가씨와 철학자> 등등. 이렇게 꼽아보니 번역에 관해 내가 까탈을 잡을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근데 《고딕 이야기》는 아니다. 왜 한자어를 쓸까? 자신이 한자어를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쓰니 문장 속에 인용하기엔 엉뚱한 단어를 고를 수밖에. 난공불락하고 또 뭐가 있었더라, 하나가 더 있었다. 또, 사실 역자에게 이런 말을 하면 너무 가혹할 수 있지만, 여태 불만 없이 읽은 역자라서 애정을 갖고 얘기한다고 믿어주시면 좋겠는 바, 비문이 많다. 이이의 우리말 수준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발생하는 비문은, 독자가 읽으면서 뭔가 이상한데 하여튼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는 있다, 라고 느끼게 되기 때문에 더 해롭다. 개스켈의 문장은 복문이 많다. 그리하여 크게 주어와 술어를 찾을 수 있지만, 문장 안에 든 절節이 비문일 경우엔 대책이 없다. 예를 들기 위하여 책을 다시 읽지는 않겠다. 같은 문장을 몇 번 확인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는 정도에서 끝내겠다. 역자를 포함해 글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비문을 발생시킨다. 이건 숙명이다. 그러면 문제는? 퇴고와 출판사의 칼 같은 교정작업. 나는 역자의 실력이 아닌, 이 “퇴고와 교정”에 시비를 걸고 있는 중이다.


​  모두 일곱 편의 단편과 중편을 담고 있는 책. 전부 다 고딕 이야기. 고딕. “중세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 일으키는 유럽 낭만주의 소설 양식의 하나.”라고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나와 있다. 계속 설명을 하기를, “고딕소설들은 잔인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통해 신비한 느낌과 소름끼치는 공포감을 유발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지금 시대도 고딕 소설은 쓰이고 있다. 나는 고딕, 하면 저절로 앤젤러 카터를 떠올리는데, 이이 외에도 카슨 매컬러스, 구스타프 마이링크(이 양반은 여기 끼기에 너무 올드한가?), 그리고 최제훈 같은 이도 고딕하고 관련이 있겠다. 나는 작년 봄에 휴머니스트와 은행나무에서 한 방에 두 권의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책을 내놓았고, 그것들이 또 모두 고딕 중단편이란 걸 알고, 어떻게 개스켈 같은 이가 고딕 소설을 썼는지 한 편으로는 의아해 하고, 한 편으론 흥미로웠으며, 또 한 편으론 조금 실망도 했다. 지금은? 아니다. 개스켈의 고딕도 보통 고딕이 아닌 것을 확인했다.

  고딕 소설의 구분법. 책을 읽다가 오소소해지는 느낌. 가족들 다 잠든 한밤이 아니더라도, 가을바람 스산한 그믐밤이 아니더라도, 한 여름 대낮에 고딕 소설을 읽으면서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끼치면 그건 일류 고딕이다. 한밤이라면 갑자기 뒤통수가 뻣뻣해져서 혹시 뒷벽 창문에서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 비록 7층 아파트일지라도, 고개를 돌려 컴컴한 창문을 힐끗 쳐다보게 만들면 특급이다. 거기다 적절한 수준의 에로티즘까지 소스로 뿌려주시면, 환상이지 뭐. 그러나 일단 침을 닦으시라. 개스켈의 작품에서 에로티즘을 바라는 건 벼락맞아 죽은 살구나무에 꽃 피길 기다리는 것하고 비슷할 터이니.


​  엘리자베스 크래그헌 개스켈은 19세기 사람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 나오는 여러가지 상황이 예상 외로 어디선가 본 듯한 구성일 확률이 높다. 예컨데, 네댓 살 정도에 갑자기 조실부모한 로저먼드 아기씨가 보모와 함께 후견인인 아기씨의 삼촌인 퍼니벌 경의 대저택으로 가서 살게 됐다고 치자. 저택엔 입구에 잡초 하나 없고 건물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도, 나무도 없이 황량한 저택인데, 저택의 주인인 퍼니벌 경은 거의 언제나 여행을 떠난 상태로 여든이 멀지 않은, 마르고 키가 크고 청각을 거의 상실해 나팔형 보청기를 사용하는 퍼니벌 부인이, 원래 하녀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늙은 부인의 오래된 친구로 늘 옆에 있는 냉정하고 무감정한 스파크 부인이 저택을 지배하고 있다. 저택은 동관, 서관, 북관이 긴 복도를 통해 연결되어 있어서 어린 로저먼드 아가씨는 자유롭게 뛰놀 수 있다. 다만 동관 만 빼고.

  왜 동관을 빼? 고딕 소설에선 당연한 거다. 뭔가가 감추어져 있는 비밀스런 곳이니까. 곧이어, 아니면 뜸을 잔뜩 들인 다음에 결정적으로 파국이나 반전이 그곳에서 시작할 터이니. 많이 본 것 같다. 어려서부터 질리게 본 디즈니 만화에서. 또 숱한 영화를 통해.

  그런데 재미있다. 이 내용이 <늙은 보모 이야기>이고, 이것 말고 <빈자 클라라 수녀회>, <그리피스 가문의 저주>도 그렇다. 일곱 작품이 실렸다. 일곱 개 다 좋기를, 설마, 바라시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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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7-22 0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이렇게 갑자기 끝내신다구요? 좀 더 써주시지...열라 읽다 휙 뺏긴 느낌..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다는 아녀도 아무튼 재밌단 말씀으로 듣겠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세요.

Falstaff 2023-07-22 13:2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렇게 중간에 뚝 끊어야지 읽는 분들이 궁금하셔서라도 책을 읽어보시지 않을까 싶거든요.

잠자냥 2023-07-22 0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지 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7-22 13:29   좋아요 1 | URL
귀신 ㅋㅋㅋㅋ

그레이스 2023-07-23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고딕소설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장르여서...!

Falstaff 2023-07-23 21:01   좋아요 1 | URL
넵. 고딕은 여차하면 눈에 차지 않아서 오히려 쓰기가 더 힘들 거 같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