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간, 불태우다 쏜살 문고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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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크너의 단편집은 한 두 권 읽었는데, 독후감을 써놓지 않은 모양이다. 쓰긴 썼는데 술 한 잔 마시고 들여다보니 마음에 차지 않아 싹 지워 버렸든지. 뭐 그렇게 사는 거지. 찌질한 독후감 하나 써놓고도 그게 부끄러워 나중에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세상에 그리도 많은 책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책을 내는 순간에는 자기가 쓴 것이 특별하고, 기발하고, 명문장으로만 채운 거 같아서 그걸 책이라는 하드웨어까지 갖추어 시장에 내보낸다. 그러면 어깨가 으쓱거리고, 친구 모임에 가면 생맥주 한 조끼 크게 한 모금 하면서, 이번에 내가 책을 냈는데 조금 부끄럽군, 하며 가오도 잡을 수 있겠지.

  문제는 그후에 온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써 놓은 것이 조금씩, 처음엔 아주 조금씩, 그러다가 가속도가 붙어 점점 화끈거린다 싶고, 그것 참 못난 글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건 내 경우이겠지만, 이러면 나는 서슴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 내가 쓴 독후감을 지워버린다. 그걸 읽은 분들의 댓글도 달리고 몇 분은 공감 표시도 누르셨지만 아마도 여태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라 믿으면서. 내가 사용하는 SNS에서는 이게 가능하다. 근데 책으로 만들어 소량이지만 돈을 주고 사서 읽은 독자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책에 실린 활자는 죽어도 지워지지 않으니까. 끝까지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야 하나? 아니면 정말로 끝까지 자기가 쓴 소위 ‘작품’이 명작이라고 오해하면서 죽어야 해?

  윌리엄 포크너를 읽으며, 그의 작품을 읽고 쓴 독후감을 언제 한 번 삭제해버린 기억을 떠올렸으며, 글을 쓰는 일의 엄정함이랄까 줄타기랄까를 생각하게 됐고, 이미 쓴 글의 부끄러움까지 생각이 연장되어, 만일 책을 낸다면, 자기가 쓴 결과물이 윌리엄 포크너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라고 자부심을 가질 정도라면 책을 내도 괜찮겠다, 즉, 카프카나 포크너, 발자크를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작가가 될 꿈을 꾸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몽상까지 했다.

  실제로 1950년 이후에 글을 쓰기 시작한 세상의 거의 모든 소설가에게 강한 영향력을 끼친 작가들 가운데 포크너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근데 그의 작품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가 만만하겠어? 지금 이 책에 관해 한 마디도 못하면서 버벅거리고 있는 중이다.


  소설집 《헛간, 불태우다》에는 다섯 단편소설과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이 들어 있다.

  다섯 작품 모두 포크너의 영토인 요크나파토파 커미티, 제퍼슨 시 인근이 무대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지역주의 작가라서 자신의 문학적 영토 요크나파토파 안에 마치 구약성서의 여러 도시들이 들어 있거나 구약에 쓰인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게 결국 사랑이나 연민 또는 희생 등과 연결이 된다는 걸, 단 한 권의 포크너를 읽었을 뿐인 독자라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편소설집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단편 속에 그가 쓴 장편소설의 등장인물이 다시 등장해 조연을 맡는다. 같은 영토 거주민이라서 얼마든지 다시 만날 수 있는 개연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포크너가 기억하거나 들은 이야기들 속의 기간이 대강 미국내전과 1차 세계대전, 그리고 2차 세계대전까지. 《헛간, 불태우다》에서는 내전과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남자들과, 참전군인이 해야 했던 남성의 일을 한 강한 여성, 그리고 약간명의 흑인이 등장한다. 법적으로 완전히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법적으로 차별을 당했던 흑인. 여성이 함부로 오해해 흑인의 범죄를 고발하면, 진짜 그 흑인이 범죄를 저질렀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백인 여성이 한 말을 유일한 진실로 확정하고, 아무런 법적 판결 단계를 생략한 채 주민들에 의한 즉결 처분을 하는 것이 가능하고, 가능해야 했던 시절이다. 이 즉결처분이 가능했던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가 날은 9월이건만 비가 내리지 않아 건조한 먼지만 횡행하는 제퍼슨 시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불쾌지수 수치에 짓눌리는 사람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사람을 죽여본 경험이 있는 귀향 군인들. 검둥이 하나 정도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 남부연합 출신 내전 참전자들. 즉결처분에 반대하지만 이들을 결국 말리지 못한 한 명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앞에 실린 <가뭄이 든 9월>.


  젊은 시절 말 중개일을 해, 말을 관리하거나, 다른 소유주가 있는 말을 훔쳐 자기 말인 양 꾸며 팔아버리는 일에 통달한 아버지도 등장한다. 이 단편의 제목이 표제 <헛간, 불태우다>.

  소작인 애브너 스놉스씨의 돼지가 해리스 씨의 옥수수 밭에 들어갔다. 돼지가 밭에 들어가면 상당한 피해를 끼친다. 해리스는 마음이 언짢았지만 이웃 스놉스에게 돼지를 돌려주었다. 근데 그게 다시 밭에 들어왔고, 이번에는 돼지와 함께 돼지 움막을 지으라고 철조망까지 넉넉하게 보태주었다. 그럼에도 돼지가 다시 해리스 씨의 옥수수 밭을 침공해버렸다. 이번에는 화가 난 해리스 씨가 돼지를 자기 돼지 우리에 감금하고 직접 스놉스 씨의 오두막에 찾아왔다. 그랬더니 돼지 움막을 만들 때 쓰라고 보내준 철조망이 마당 구석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걸 보았다. 더 화가 났다. 그래서 자기네 돼지 우리 사용료 1달러를 보내면 애브너의 돼지를 돌려주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이날 저녁에 해리스 씨네 집에 처음 보는 검둥이가 1달러를 가지고 와서 돼지를 받고 돌아갔다. 가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장작이랑 건초는 불에 잘 탄다고 전하라고 하더군요.”

  장작과 건초, 소와 말, 양 같은 가축과 농기구 같은 모든 건 큰 목재 건물에 넣어 두는데 그걸 헛간이라 부른다. 대륙 농가의 헛간을 우리나라 농가의 작은 헛간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 헛간에 불이 났다. 바로 그날 밤에. 해리스 씨가 헐레벌떡, 어떻게 해서 가축들은 모두 대피시켜 목숨을 건졌지만 나머지는 모두, 홀랑 타버렸다. 재만 남았다. 아무리 마음 좋은 해리스 씨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근데 애브너 스놉스는 백인이다. 마음 같았으면 주민들 모아 죽여버리고 싶었겠지만, 치안판사에게 고발을 해 제퍼슨 시에서 제일 큰 가게에 임시 재판장을 꾸려 애브너의 막내 아들 커널 사토리스이 증언했어도 판사와 해리스 씨는 아무런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앞뒤 정황으로 보아 애브너와 그의 맏아들이 불을 지른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증거도 없으며, 불을 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뭐라 할 말도 없다. 그리하여 판결하기를:

  “스놉스, 당신 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충고 한 마디 해야겠소. 이 마을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마시오.”

  애브너 스놉스는 대답한다. “나도 그럴 생각입니다. 이런 인간들이 사는 마을엔 살고 싶지 않아서요.”

  그리고 뒤로 돌아 30년 전에 훔친 말을 타고 가다가 남부 연방 헌병대 초병이 쏜 총에 발 뒤꿈치를 맞은 부상 후유증으로 뻣뻣한 걸음을 걸으며 임시법정 복도를 빠져 나갔다.

  임시법정 앞, 그러니까 가게 앞 광장 주변에 세워둔 마차 속에는 엄마와 이모, 두 명의 뚱뚱한 누나가 타고 있었고, 거기까지 걸어가는 동안 몇몇 소년들은 스놉스의 막내아들 사토리스한테 돌을 던지며 “헛간에 불을 지른 놈”이라고 욕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 애브너는 아들을 마차에 태우고 그길로 제퍼슨 시를 떠난다. 이미 이런 판결이 날 줄 알고 얼마 되지 않는 살림살이를 다 싣고 떠날 준비를 다 해둔 터였다. 이렇게 해서 단편의 앞부분이 끝난다.

  뒷부분은 2~3일 후에 도착한 요크나파토파의 다른 시골지역. 흰색으로 페인트칠한 저택. 지주댁인 드스페인 소령을 찾아오기 전에 작은 판자집에 이미 식구를 다 내려놓고 화자인 막내 사토리스만 데리고 지주를 찾아간 길. 대문 앞에 말이 방금 싸 놓은 똥무더기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걸 피하지 않고 그냥 밟고 지나간다. 저택의 현관까지 가서 문을 열어준 흑인을 무시하고 장화에 묻은 말똥도 닦지 않은 채 그대로 응접실까지 진출하는 애브너. 2층에서 드스페인 부인이 내려와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양탄자를 말똥 밟은 발로 짓이기고 있는 애브너를 보고 경악,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옆에 섰던 흑인 하인은 이 사태가 결코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듯 창백한 얼굴로 변명하기에 급급하며 애브너를 집 밖으로 몰아낸다.

  이튿날, 드스페인 소령이 직접 양탄자를 말아 말에 싣고 애브너를 찾아온다. 이어서, 게으른 누나 두 명이 세탁한 양탄자를 다시 돌려주고,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소령은 100달러의 보상금을 요구하는데, 지금은 돈이 없을 터이니 가을 탈곡하고나서 옥수수 550kg으로 갚으라 한다.

  그래서 애브너 스놉스 씨는 또 한 번 헛간에 불을 지를 수 있을까? 기회가 오긴 온 것 같은데. 여러 정황을 보면 이 가족의 가장 애브너 스놉스 씨는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의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사이코패스 쪽에 조금 더 가깝지만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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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서 거장의 클래식 5
천쉐 지음, 김태성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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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완 소설가 천쉐. 중국의 소설가 찬쉐와 다른 사람이다. 천쉐(陳雪)는 1970년에 타이완에서 출생한 퀴어 소설가이고, 찬쉐(殘雪)는 1953년 후난성에서 출생한 중국 아방가르드 문학의 대표 작가이다. 한 끗 차이로 같은 사람인 줄 알고 읽으면 깜짝 놀랄 수 있다. 선택할 때 조심하실 사.

  타이완 작품이라면, 물론 최근에 읽은 작품에 국한해 보자면 그렇다는 것인데, 유난히 퀴어 소설이 많다. 바이센융의 <서자>, 천쓰홍의 <귀신들의 땅>과 <63번째 천산갑>, 궈창성이 쓴 <피아노 조율사> 등등. 탕푸루이의 <바츠먼의 변호사>에서 게이 커플이 나오나, 안 나오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타이완 국회는 2019년에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동성간 결혼을 합법화했다. 이게 쉽게 됐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듯.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적지 않은 기간 동안에 외쳤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고, 이 외침 가운데 앞 줄에 섰던 것이 1995년에 발표한 천쉐의 대표 저작 《악녀서》이었다. 《악녀서》가 출판되자 타이완 정부가 책을 읽어보고 “동성간의 사랑(행위)를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금서 지정을 했는지, 하여튼 금방 절판을 시켜, 책을 쓴 천쉐마저 자기 책의 초판본을 한 권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고.

  출판사 글항아리에서 “거장의 클래식”이라는 시리즈를 2023년부터 3년간 여섯 권을 냈는데, 어째 《악녀서》는 읽어볼 생각을 안 했다. 이 시리즈는 중국과 타이완의 소설에 집중하고 있다. 1번이 위에서 말한 바이센융의 작품 <서자>. 이어서 찬쉐의 <신세기 사랑 이야기>, 츠쯔젠 소설집 《가장 짧은 낮》, 옌롄커 작 <해가 죽던 날>, 5번이 《악녀서》이고, 6번이 며칠 전에 읽은 티베트 회족 출신의 젊은 작가 딩옌이 쓴 《설산의 사랑》이다. 바이센융부터 옌롄커까지는 거장 소리를 들어도 마땅하다고 여겼지만 아무래도 70년 개띠 천쉐와 젊은 작가 딩옌에게 거장의 칭호를 가져다 바친 건 좀 심했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말이 나왔으니 하는 이야기인데, 글항아리의 “거장의 클래식” 시리즈는 참 괜찮다. 딱 한 권 빼고. 바로 이 《악녀서》. 물론 당연하게 내 취향에 입각해 그렇다는 말씀. 여태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이 시리즈 목록에 오른 책들은 꼬박꼬박 읽어야겠다.


  《악녀서》가 왜 마음에 들지 않았느냐 하면, 퀴어 소설이라거나, 여성간 사랑의 행위를 과하게 적나라한 묘사로 그리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 책에 네 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는데, 모든 작품이 너무 우울해서 그랬다. 동성애를 하겠다면 그건 그 사람들 문제니까 내가 알 거 없고 그냥 사랑하는 마음과, 몸과, 행위를 읽으면 되지만 과하게 우울한 문장은 독자를 질리게 한다. 아울러, 심하게 우울한 작품은 간혹 참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나는 악마의 가면을 쓴 천사를 보았다. 비틀비틀 더러운 진흙탕 위에서 몸을 일으켜 한 칸 한 칸 문자의 긴 사다리를 향해 파리하게 마른 두 팔을 뻗었다. 그렇게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p. 27)


  번역시를 좋아하지 않아 거의 읽은 게 없지만, 뭐 보들레르나 로트레아몽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렇다. 아, 랭보도 읽어봤다, 크. 위 인용이 제일…, 에잇, 솔직하게 메모한 대로 이야기하자, 따옴표 속 문장이 제일 유치해서 인용한 것이 아니고 이제 겨우 27페이지인데 벌써 이런 과장된 은유가 지겨워 눈에 띄는 대로 그냥 한 귀절을 가져온 것뿐이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두 작품 속에서 우울한 겨울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는 심정. 나중에는 천쉐가 소설을 쓰는 대신 신경정신과에 일차 왕림하여 우울증 치료를 받았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까지 든다. 물론 고루한 사회에서 여성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 그것을 구태여 커밍아웃하고, 극복 또는 사회를 바꿀 목소리로의 창작을 하는 것의 스트레스가 이런 우울을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하여간 읽는 독자 입장에서 그러했다는 말이다.


  첫번째로 실린 작품 <천사가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의 주인공 차오차오. 차오차오의 아버지는 오래 전에 죽었다. 이제 과부가 된 아름답고 젊은 엄마는 자신의 앞날도 구만리 같지만, 자기만큼 예쁘고, 자기보다 훨씬 공부 잘하고, 자기보다는 조금 덜 아름다운 딸 차오차오와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 고급 창녀였다. 뛰어난 학생들만 갈 수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열일곱 살 때, 차오차오는 아마도 아무 남자를 골라 처음 섹스를 했다. 아래가 발갛게 부을 정도였지만 아무 감정도 나지 않았다.

  “맙소사! 넌 어째 이렇게 아무런 느낌도 없이 태연할 수 있는 거니?”

  처음부터 남자하고의 관계는 느낌은커녕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몸으로 태어난 차오차오. 이 아이의 첫 남자는 차오차오의 생식기에 가위가 하나 있어서 자신의 음경을 자르고 사랑도 매장해버린다고 주절거렸다는 건 그렇다고 쳐도, “얼마 후 그는 무능자가 되었다”라니. 스물다섯 살 이전의 젊은 여성이 쓴 글이라서 그랬는지 좀 웃겼다. 웃으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걸 어떻게 해. 이것도 은유로 읽어야 할지, 정말 하필이면 그런 27세의 청년이 걸렸는지, 아니면 책상 위에서 뇌로만 쓴 글이라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엄마가 고급 창녀로 많은 돈을 벌어 차오차오는 좋은 고등학교와 좋은 대학을 다닐 수 있었으며, 밤마다 바에 가서 칵테일 블러디메리를 벌컥벌컥 마실 수 있었는데, 블러디메리를 여섯 잔 마신 날 바에서 만난 진정한 연인 아쑤. 차오차오는 엄마와의 애증 관계를 겪다가 동성 연인 아쑤를 통해 진실한 사랑과 삶을 알아가기 시작한다는 이야기.


  두번째 작품 <이상한 집>은 여성 야설 작가, 세번째 <밤의 미궁>에서는 난지 아홉 달 만에 죽은 딸을 둔 젊은 엄마, 마지막 <고양이가 죽은 뒤>는 엄마, 외할머니, 외삼촌이 몽땅 죽어 혼자 남은 어린 여자가 등장하고, 모두 여성간 동성애를 그렸다.

  하도 농도가 짙어 정부가 나서서 책을 절판시킬 정도였다는 동성간 섹스 장면을 웬만하면 좀 옮겨볼까 했다가, 관두었다. 진하기는 진하다. 야설에 조금 못 미칠 정도의 수준. 점잖은 이웃분들 보시라고 인용했다가 여차하면 귀싸대기 두어방 얻어 터질 것 같아서.

  그래도 괜찮으니 조금만 옮겨 보라고?

  에이, 왜 그러셔. 진짜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시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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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1-20 09: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타이완에서 정말 유독 퀴어 작품이 많이 소개되는 것 같기는 해요. 이 작가 말고도 누구더라? 구묘진인가 이 작가 책 읽다가도 우울해서 질려버렸.... 으으.

전 이 책 처음 나왔을 때 궁금해서 미리보기로 직접 읽어봤다가 으윽 하고 그냥 안 읽기로 햇었는데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귀싸대기는 그냥 접어두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1-20 15:57   좋아요 0 | URL
아하, 미리보기의 효용이 이럴 경우에 딱이구먼요! 저도 과한 우울은 정말, 정말 싫어요.

얄리얄리 2026-01-20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천대루> 보았는데, 사람마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제게는 좋았습니다.

다음으로 읽어볼 작품으로 찍어두었던 게 <악녀서>였는데..
저 요즘 우울한 작품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라 좀 더 줄에 세워둬야 하나 봅니다.

Falstaff 2026-01-20 16:00   좋아요 0 | URL
아휴, 제 말 믿으실 필요 없습니다. 완전 아마추어인 걸요. 그냥 팍팍 지르시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더구나 전작을 좋게 읽으셨는 걸요.
 
짐승처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7
임솔아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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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독후감을 업로드하는 날이 2026년 1월 중순이겠지만 독후감을 쓰는 지금은 만추, 깊은 가을이다. 아니, 11월이니까 아직은 가을이어야 한다고 우기고 싶은 딱 그때. 하루라도 더 가을에 살고 있을 때.

  낙엽이 두꺼워지기 시작하면서, 아직 해가 덜 뜬 아침에 도서관 가는 길, 아파트 후문으로 향하는 샛길. 특히 늦가을에는 조심해야 한다. 곳곳에 지뢰가 묻혀 있다. 신새벽에 집에서 기르는 개를 데리고 배변 산책을 나서는 주민들. 덩치가 크고 작은 개들이 싸 놓은 분변이 낙엽 밑에 깔려 있기 십상이다. 바로 옆에는 누군가가 그걸 밟고, 신발 바닥에 묻은 개똥을 지하 주차장 환기구 턱에 문질러 떼낸 흩어진 똥 덩어리가 어김없이 묻어 있다. 드런 것들. 신발 바닥에 묻은 개똥을 환기구 턱에 문지른 사람 말고, 똥 싼 개 말고, 개보다 못한 개 주인들 말이다.

  “우리 아이는 밖에 나가야 똥을 눠요.”

  자랑이다 자랑. 딱 찍어서 나 사는 아파트에 은퇴한 맹인 안내견인지, 맹도견 시험에 떨어진 종자인지 하여간 순하고 큰 개를 새벽마다 데리고 다니는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다. 이 개가 특정한 정원석과 특정 자리에 오줌을 누고 똥을 눈다. 개가 크면 똥도 커서, 그 똥이 개가 싼 건지, 개 같은 개주인이 싸지른 건지 도무지 구별이 안 간다. 하여간 똥 근처에 똥 묻은 화장지가 안 보이는 걸로 보아 개가 싼 것으로 추정할 뿐. 그러면 니네 애가 쌌으니 니들이 치워야 할 거 아냐? 개 키울 자격도 없는 개보다 못한 나쁜 것들.

  큰 개들만 똥오줌 싸지르고 다니는 건 아니다. 작은 개들도 마찬가지다. 작은 똥은 치울 생각도 안 하는 개주인들이 몇 명 있다. 이 아파트 단지의 민도가 유독 낮아서 그런가?

  크거나 작거나 개가 똥을 눴으면 치워야지. 선량한 개 주인들은 그걸 치운다. 요리할 때 쓰는 일회용 비닐 장갑을 낀 손으로 똥덩이를 집어 검정 비닐봉투에 넣어 가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일회용 비닐 장갑이 무척 얇다. 개 주인들도 바보가 아니거든. 얇은 비닐 장갑이 개가 똥 눈 시멘트 바닥과 닿으면 가끔은 비닐이 찢어지겠지. 그러면 개똥이 손가락에 묻겠지. 재수없으면 손톱 밑으로 개똥이 파고 들겠지. 내 아이지만 진짜 내 배 아파 낳지는 않은 아이, 라고 떠들고 다니는 개가 싼 똥이 내 손톱 밑에 끼면 좋을까? 드럽게 싫겠지? 그럼 어떻게 해? 비닐 장갑 낀 손으로 똥의 윗부분만 살짝 들어서 치운다. 그러면 길바닥에 똥의 1/4, 심하면 1/3이 그냥 붙어 있다. 이런 건 청소하는 분이 치우지도 않는다. 비가 와야 흔적이 겨우 없어진다. 모를 줄 알았지? 염병이다.

  나도 오래 전에 회사 출근 버스 타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낙엽 밑의 푸짐한 개똥 밟아본 적 있다. 기분이 어땠겠어? 아, 아침부터 사랑스런 개가 싼 개똥을 밟았으니 횡재했네 횡재했어, 오늘은 로또 한 장 사야지,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행복했겠어? 개똥을 밟고 나서 아무리 신발 바닥을 긁어도 냄새가 없어지겠어, 안 없어지겠어? 히터 빵빵하게 들어오는 출근 셔틀을 어떻게 타느냐고, 미친다, 미쳐! 내 속에 있다가 나온 똥도 드러운데, 남의 속도 아니고 개새끼 뱃속에 있던 똥을 묻힌 채, 아오! 개 주인들아, 너 같으면 버스 바닥에 똥 묻히면서 출근 셔틀 타겠니? 그래서 휴가 내고 회사 못 갔다는 거 아냐.

  꼭 한 줌도 안 되는 개 키우는 암수 빌런들이 대다수 선량한 애견인들을 엿 먹이고 욕보인다니까!


  임솔아의 <짐승처럼>을 왜 읽었느냐 하면, 이이가 소설가 이전에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는데, 시를 쓸 때 50번이 넘게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전에 읽은 소설집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를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근데 <짐승처럼>은 읽는 내내 개, 고양이, 닭, 염소, 기타 등등 사람을 제외한 짐승 이야기다. 물론 두 딸과 엄마로 이루어진 가정 이야기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하여튼 절반 이상이 짐승, 특히 개 이야기. 임솔아는 한 번도 자기가 키우는, 남들이 키우는 개더러 개라고 하지 않는다. ‘애’란다. 그게 개지, 애니? 하긴 자기 개를 자기 애라고 부른다는데 내가 뭐라할 건 없지만서도.

  애를 키우거나 키워봤던 사람들은 안다. 밤에 애가 아파 울거나, 열이 펄펄 오르면 그걸 보는 미어지는 부모 심정을. 주인공 ‘나’가 키우는 ‘별나’라는 이름의 작고 어린 개가 아팠다. 믹스 진도견이라니까 사실 작은 개도 아니다. 적어도 가운데 중, 중형 개는 된다.

  “하루에 오줌을 서른 번 넘게 누고, 매일 밤 울었다. 그 자그마한 몸에서 그렇게 큰 울음소리가 어떻게 날 수 있을까 싶었다. 채빈(‘나’의 동생)은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p.69~70)

  이 개 주인들 미친 거 아냐? 매일 밤 울었으며, 그것도 겁나게 큰 울음소리로 울었는데도 주인공인 두 ‘짐승사랑 자매’는 침대에 자빠져 있었을 뿐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그러면, 얘네들이 키우는 ‘별나’가 개지, 애니? 애 키우면서 밤마다 울면 그냥 자빠져 꼼짝도 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진짜 너네 애면 아무리 새벽이라도 품고 응급실로 달려나가야 할 거 아냐! 그러면서 말로만…. 꼼짝도 안 한 게 아니라 걱정을 했다고? 걱정한 건 뭔가를 한 게 아니다. 그런 거 아직도 모르니? 해결을 위해 아무리 피곤해도 몸을 직접 움직여야 무엇을 한 것이라는 거.

  또, 밤마다 “그렇게 큰 울음소리”로 울고 있는데, 개 안 좋아하는 아파트/빌라 주민 입장에서는 웬 양식 없는 인간이 키우는 개새끼가 밤이면 밤마다 밤새 큰 소리로 짖고 있을 뿐, 그 이웃들 생각은 못하니, 안 하니?

  억지로 읽었다. 등장인물과 작가 모두 당연히 채식만 할 것으로 믿는다. 나는 오늘 돼지고기 앞다리 수육에 쐬주 한 병 깠다. 여러가지로 짐승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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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빌라 공주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7
E.T.A. 호프만 지음, 곽정연 옮김 / 책세상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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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6년 1월에 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에른스트 테어도어 빌헬름 호프만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법학자, 변호사, 작곡가, 음악평론가 겸 고딕 판타지 소설가 에른스트 테어도어 아마데우스, 그리하여 E.T.A.가 된 호프만. 일찍이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칸트를 사사하고, 음악을 가르쳐준 열 살 많은 유부녀를 사랑해가면서 익힌 재주로 훗날 직접, 이제는 잊힌 오페라 <운디네>를 작곡하기도 했지만, 이이의 영역은 누가 뭐라 해도 고딕 판타지 소설 쪽이었다.

  호프만의 다른 책 《밤풍경》 독후감에도 썼듯이 이이의 작품 가운데 <호두까기 인형>과 <코펠리아>는 페터 일리치 차이콥스키와 레오 들리브가 발레로 만들었으며, 단편 <모래사나이>등을 차용해 자크 오펜바흐는 불멸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를 작곡했다. 로베르트 슈만은 <수코양이 무어의 인생관>에서 힌트를 받아 피아노곡 <클라이슬러리아나>를 쓰는 등 후배 예술가에게 무진한 영향을 끼친 인물으로, 오늘 소개하는 <브람빌라 공주> 역시 나치 시절 “퇴폐예술”로 분서갱유의 작가로 지목된 유대인 출신 작곡가 발터 브라운펠스가 오페라로 작곡하기도 했다. 나치의 퇴폐예술에 대한 분서가 하도 무지막지해서 오페라 <브람빌라 공주>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거의 잊혀지다시피 했다가, 2003년 아일랜드의 (존 밴빌의 고향)웩스포드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다니엘레 벨라르디넬리의 지휘로 기사회생했다. 이 실황공연은 마르코폴로 음반사에서 녹음을 해 대사집 포함해 36.400원에 팔고 있다. 삼성카드로 구입하면 더 할인해서 25,480원에도 살 수 있다는데, 말이 퇴폐음악이지 뭐 별로 색다른 거 없으니 사서 들으시든지 마시든지 알아서들 하시라. 


웩스퍼드 오페라 축제 실황 공연 2003년 10월


  <브람빌라 공주>에는 “야콥 칼로를 따른 카프리치오”라고 부제가 붙어 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호프만 선생이 하루는 책을 뒤적뒤적 하다가 책 한 권에서 17세기 초 프랑스의 유명한 풍자화가 쟈크 칼로의 동판화를 보게 됐다. 이탈리아 사람들로 보이는 인물들이 별 이상한 가면을 쓰고, 역시 별 희한한 복장을 한 채 아마도 사육제를 맞아 춤추고, 노래하고, 연극임에 틀림없는 듯 넓은 나무칼을 들고 겨루는 장면들. 판화를 들여다보는 호프만의 머리속에서는 벌써 예측 불가능한 상상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세상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엽기적 판타지, 이를 일컬어 카프리치오라 했으니, 그것 참, 어울리는 부제가 아닐 수 없다.

  호프만 자신도 작품에 들어가기 전, “서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을 심각하고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책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둡니다.”

  이것 가지고도 모자랐는지, 18세기 이탈리아 정통희극의 정수인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기수 카를로 고치(졸문 “카를로 고찌, <까마귀>” 참조하실 수 있음)의 말을 첨언하기도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갖가지 유령들의 등장만으로는 동화에 영혼을 불러넣기에 충분하지 않고, 심오한 근거로써, 삶에 대한 철학적 견해에서 얻은 주요 이념으로써 비로소 동화가 영혼을 얻는다.”

  그런데 독자는 정작 카를로 고치의 의견을 안 읽으니만 못하다. 이제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삶에 대한 철학적 견해에서 얻은 주요 이념”? 그게 뭔데?

  E.T.A. 호프만은 평생, 작가로 살면서 하루도 빼지 않고 독일의 위대한 문호이자 아예 독일 문학의 아버지로 군림하는 추밀고문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에 대하여 일종의 질식감을 부담하면서 살았던 거 같다. 기후 때문에 그런지 가뜩이나 재미없고 무겁기만 한 엄숙주의적 독일 문학이 하도 도도해, 호프만 같이 판타지 성향의 작가들은 과장되고 장중하기만 한 독일 문학에서 벗어나 숨 좀 마음대로 쉬어 보고자 앙탈을 부렸던 거 같으니, <브람빌라 공주> 역시 이 노력의 일환이 아니겠느냐는 말씀.


  아무리 깡다구 좋은 호프만이라고 해도 동판화 몇 장을 보고 연상한 판타지 소설의 무대를 엄숙무비한 독일 땅에서 구현하기가 쉽지 않았던지 이 작품의 무대는 찬란한 태양빛의 나라,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가장 활기찬 날, 사육제 이브부터 사육제 기간 내내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들로 꾸몄다.

  사육제 전날밤. 사랑스럽고 예쁜 소녀 지아친타는 재단사 베스카피 선생의 보조로 바느질과 수를 담당하고 있는 가난한 아가씨. 18세기 소설의 주인공이니까 아무리 가난해도 무지하게 예쁘다. 예쁜 만큼 천방지축이기도 하다. 지아친타는 보모인지, 하녀인지, 가난하니까 하녀는 아니겠지만 하여간 늙은 베아트리체와 함께 2층의 좁은 방에서 적어도 공주가 사육제 때 입을 옷에 장식품을 달고 있다. 기껏 바느질을 하는 열여섯 살의 소녀지만 꿈은 커서 백작 따님이나 공주님을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이 옷을 입는 건 사람이 아니고 신비로운 요정일 것이라고 바느질을 하면서 꿈 속을 떠돌아다니니 이게 제대로 되겠어? 그러다가 기어이 바늘로 자기 손가락을 푹 찔러 피가 무도복 위로 똑똑 떨어지고 말았다. 아야야, 비명을 지르니 저쪽에 서 있던 늙은 베아트리체가 다가와 얼마나 다쳤는지 본다고 석유등잔을 기울여보는 순간, 제대로 정제하지 않은 석유가 또 무도복에 꼴꼴 쏟아져 그만 크게 얼룩이 저버렸다. 이걸 어째?

  그러거나 말거나 장식품으로 흉을 대강 가리고 나서, 이 옷을 사육제에서 누가 입든지 간에 어쨌든 아름다운 지아친타가 제일 먼저 입어보아야 한다고 바람을 잡는 베아트리체. 단테의 베아트리체하고 달라도 너무 다르지? 그래서 정말로 지아친타가 옷을 입었는데, 아이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이야.

  이 순간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남자가 들이닥치는데, 누굴까? 만일 옷을 주문한 마이스터 재단사 베스카피 선생이면 지아친타는 골로 가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니다. 스물 네다섯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 남자 주인공이자, 작품의 스토리를 밀고 나가는 진짜 주인공 지글리오 파바. 당연히 매우 사랑스럽고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이며, 로마 극단의 비극 전문 배우. 자기 아니면 로마에서 비극을 제대로 공연할 수 있는 배우가 없다고 기고만장한 콧대를 결코 꺾을 것 같지 않으니 다른 일에서도 마찬가지겠지? 안 봐도 삼천리. 그래서 아가씨 방문을 노크도 없이 벌컥 열어 젖히는 거겠지.

  근데 서민극에서 잘생긴 주인공들이 부자인 경우가 몇 건이나 돼? 이이 역시 겉만 멀쩡하지 주머니는 텅 비어 있는 상태. 지아친타의 기묘하고 변덕스럽고 거리낌 없는 성격은 급기야 지글리오의 귀싸대기를 후려 갈기는 사태까지 이르렀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들은 내일 사육제에서 놀라운 인연을 만나 정말로 백작의 딸이나 공주가 되고, 여왕이나 공주의 애인 또는 남편이 되는 몽상에 빠진다.


  완전 동화 같지? 근데 호프만이 동화작가는 아니어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별 희한한 판타지 적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하니, 책을 읽는 독자가 다 어질어질할 정도이다.

  드디어 밤이 깊어지고 사육제 전야가 시작되어 가장행렬이 벌어진다. 제일 눈에 띈 것으로 말씀드리자면:

  눈같이 흰 열두 마리의 일각수가 끄는 마차 위에서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이 지나가고, 뒤를 이어 거대하 타조 두 마리가 끄는 수레 위에 황금 튤립이 놓였는데 튤립 속에 기다란 흰 수염의 작은 노인이 정좌하고 있었다. 이 뒤를 좇는 것이 긴 창과 짧은 군도를 차고 화려하게 치장한 열두 명의 건장한 흑인이 알통을 불근거리면서 ‘트로이를 세운 현명한 코페투아 왕의 증손녀이자 세렌디포의 위대한 왕의 조카딸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집트의 브람빌라 공주를 호위하고 행진하는 거였다.

  그럼 브람빌라 공주가 로마에는 왜 왔을까?

  공주와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가 사랑니가 함부로 자라 도무지 치통을 견딜 수 없어 위대한 돌팔이 의사 첼리오나티한테서 이를 뽑히려 로마에 온, 브람빌라 공주의 친구이자 신랑인 아시리아의 코르넬리오 키아페리 왕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쯤 되면 어여쁜 소녀 지아친타와 젊은 미남 배우 지글리오, 그리고 이집트 공주 브람빌라와 아시리아 왕자 코르넬리오 커플이 서로 바뀌는, 당연히 판타지 적으로 바뀌는 거니까, 알고보니 지아친타와 지글리오의 출생의 비밀이 어쩌고 저쩌고 하겠는데, 호프만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는 것에 문제가 좀 있을 걸? 한 마디로 그리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어떤 결말이 되는지 알고 싶으면 굳이 책 한 권을 끝까지 다 읽어야 하지만 지금 이 책은 품절도 아니고 절판. 처음에 소개한 CD를 들으며 자디잔 글씨를 읽는 일도 쉽지 않을 터. 그냥 모르고 사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즉, 여태까지 쓸데없는 독후감을 괜히 길게 썼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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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컬렉션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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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리스 먼로. 실패하지 않는 선택을 원하면 먼로의 책을 읽으면 된다.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시골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앨리스 레이드로. 이 아이의 아버지는 여우와 밍크 목장을 운영했다. 짐승들의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부상을 입었거나 늙어서 이젠 안락사를 시켜야 하는 큰 덩치의 가축들, 예컨대 말 같은 짐승을 사들여 창고에서 총을 쏴 죽이고 각을 뜨기도 했겠지. 훗날 웨스트 온타리오대학 동창인 제임스 먼로와 결혼해 앨리스 먼로가 되어 글을 쓰고자 했을 때, 남편이 아이들 뒷바라지도 하고 요리도 하며 앨리스를 나름대로 돕기도 했지만 1931년생 시절의 여성으로 그리 쉽게 살림살이 내버려둘 수는 없었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단편소설에 집중하는 것이었다고. 네 아이를 낳고, 한 아이는 낳자마자 죽었지만, 21년의 결혼생활을 끝냈다. 4년 후에 다시 프렘린씨와 결혼해 37년을 살다가 과부가 된 해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문학상 받은 것을 빼고 이런 앨리스 먼로의 생 가운데 있었음직한 장면이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에 등장한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 먼로가 내겐 어머니뻘인데, 이런 사람하고 한 번 살아봤으면, 부부가 아니라 모자지간이라도 좋고, 숙모나 외숙모라도 좋은, 한 세대 윗사람으로 내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거였다. 앨리스 먼로처럼 소설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그냥 그 시절 여성들이 늘 그랬듯 가정주부여도 좋고, 헛헛한 세월 먹고 살기 위하여 생선가게나 배추장사 아니면 칼국수 장사를 해도 좋으며, 운이 닿아 정여사처럼 공부를 할 수 있어서 펜대 굴리는 직업여성이라도 좋았을 텐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쩌면 이런 생각이 앨리스 먼로를 위한 최고의 찬사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면, 이 책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아홉 편의 중단편 속에서,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먼로의 눈과 입술은 모질지 않다. 어느 한 구석 등장인물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들의 삶에 대하여 냉소를 흘리지도 않고, 아니꼬운 눈꼬리를 짓지도 않으며, 결코 질투도 없이, 그냥 그렇게, 너는 잘 살고 있는 거야,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맞아, 네가 하는 일, 네가 품고 있는 타인에 대한 욕정 같은 것도 살면서 다 그럴 수 있는 일이지. 정말로 일을 벌이고 나서, 그걸 굳이 고백해 평온한 삶을 크게 뒤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뭐 그것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그렇게 어깨를 토닥이는 것 같다.


  이 책이 2001년에 나왔다. 이때 먼로가 70세. 살만큼 살았고, 겪을 만큼 겪었으며, 명성도 누릴 만큼 누린 노년. 먼로만큼 현명하게 늙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세상을 관조하고 포용할 수 있는 시점이지만 정말로 넉넉한 품을 가진 노인은 많지 않다. 앞으로 남은 생이 20년도 넘는다는 것을 이 때는 몰랐을 것이고, 세상에서 제일 큰 문학상을 받을지도 아마 몰랐을 것. 그리하여 이제 새삼스레 큰 욕심도 부리지 않으며 틈나는 대로, 하지만 기억이 예전 같지 않아 가물가물한 저 오래 전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쓴 글 같이 보이는 작품들. 이런 기억의 매력은 연륜을 더한 사실의 왜곡에 있는 지도 모른다.

  당연히 책에 실린 모든 작품이 다 좋았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도무지 어느 하나를 골라 소위 “깔” 수 없었다. 다른 독자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그렇게 먹먹한 심정으로 읽었다.

  사는 건 어렵다. 노년에 이런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건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먼로 같은 사람하고 한 번 살아볼 기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부부나 연인 말고 한 세대 위, 그래서 내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이로. 하긴, 나 한테 그런 행운이 어디 있었겠어? 또 모른다. 내가 눈이 어두워 못 보고 지났으면서 이제 와서 애먼 지청구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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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1-15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4개에 이런 극찬은 뽈님 독후감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데 말입니다. 독후감만으로 보면 별5에 필적할 정도입니다. 이것도 리스트에...요즘 뽈님 때문에 구매하는 문학 리스트가 계속 늘고 있음요~~ㅎㅎ

Falstaff 2026-01-15 16:26   좋아요 0 | URL
ㅋㅋㅋ 낚시일 줄 모릅니다. 조심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