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에덴 1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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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은 11년 전에 중편 <야성의 부름> 꼴랑 하나 읽고 그런 작품을 쓰는 작가인 것으로만 알았다. 그러니 더 읽어볼 마음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특히 미국 소설을 읽으면 드물지 않게 이이의 작품을 짧게 인용하는 장면들이 있어 언젠가 한 번 읽기는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2022년 가을에 <마틴 에덴>이 출간되고, 출판계를 선도하는 녹색광선이 책값 인상의 기치도 드높이 들고 있는지라 분량도 많지 않은 책을 두 권으로 분책한 다음에 표지만 딱딱하게 양장으로 분식하고는 한 권에 정가를 2만2천원을 책정하는 바람에, 내 돈 주고는 안 사겠다, 해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었다. 그러나 나보다 조금 먼저 신청한 이용자가 있어 책이 입고되자마자 읽지 못했다. 그후 예약, 예약, 상호대차 신청 등 온갖 이용자의 손을 거치더니 세상에나, 한 빌런이 이 책 1권만 빌려놓고 1년이 넘도록 반납을 하지 않아 사람의 헛심만 빼놓았다가 이제야 겨우 손에 들어 읽게 되었으니, 그동안 책방 독자 리뷰란에 열화와 같은 성원의 글을 읽어 마음 속에 작품에 대한 기대만 커지고, 커지고 또 커지고 있었던 거디었던 거디었다.


  미국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도시 다섯 군데를 고를 때마다 거기 한 자리를 꿰차지 않으면 성질내는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사는 도시, 범죄자들의 마음의 고향 오클랜드. 만을 가운데 두고 대륙쪽 도시가 오클랜드, 태평양쪽 도시가 샌프란시스코. 원래 가까운 도시끼리 서로 못 잡아먹어 눈을 부릅뜨는 법이지만 아직 1차 세계대전이 터지지도 않은 20세기 초의 캘리포니아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피아라고 불릴 본격적인 갱단 말고 동네 젊은 건달 패거리들은 지역에 따라 몇 집단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리에서 전혀 이상한 짓도 하지 않은 부잣집 도련님이 패거리한테 둘러 싸여 있었다. 워낙 곱게 자라 굳은 살 한 군데 박인데 없는 샌님이 설마 험악한 양아치하고 눈이라도 마주쳤겠느냐고. 그냥 몇 양아치들이 되도 않는 시비를 걸고 있었던 것이겠지. 지나가다가 이 장면이 눈에 들어온 정의의 건달, 젊은 뱃사람이자 한 양아치 무리의 대표 고수 마틴 에덴. 마트가 보기에 그냥 가난한 양아치들이 귀한 집안 아들 하나를 심심해서 두드려 패려 하는 것 같다. 심심해서. 흠. 그러면 안 되지. 마틴이, 어이, 형제, 그러지 말고 그냥 가, 응? 귀찮은 듯이 손등을 휘휘 내저었는데, 네가 마틴 에덴이냐? 마틴이면 마틴이지, 우리 나와바리에 와서 눈에 힘주면 안 되지. 뭐 이런 식으로 사건이 전개되어 1대 몇으로 와다다닥 주먹싸움이 벌어져, 물론 마틴도 몇 대 얻어 터지기는 했지만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몇 놈은 똥을 지렸고, 넋을 잃은 것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으며, 팔 다리 부러진 것들은 추풍령 낙엽만큼이더라고. 하이고, 덕분에 목숨까지는 아니고, 어디 한 군데 다친 곳 없이, 주머니와 지갑도 털리지 않고, 입고 있는 최고급 정장과 외투, 구두도 뺏기지 않은 귀한 집 자제는 너무도 고마워 자기 이름이 아서 모스인 걸 밝히고, 은인을 며칠 후 자기 집에 와서 만찬을 즐기자고 초대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마틴 에덴>의 첫 장면은 으리으리한 모스 저택을 방문하는 씬. 아서가 앞장서고 양아치와 뱃사람 특유의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로 뒤를 따르는 스무살의 마틴 에덴. 교육을 잘 받은 아서는 집에 가서 아버지, 형, 누나, 그리고 엄마한테 침을 튀며 마틴 에덴이 자신을 구해줄 당시가 얼마나 급박한 상태였으며, 양아치들을 제압한 마틴의 무공이 얼마나 절륜했는지 흉내까지 내가면서 설명을 해두었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부르주아 가문의 아들을 구해주었으니 부모, 누나, 형 입장에서 아무리 하찮은 출신의 양아치라도 밥 한끼 근사하게 먹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야 한다고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어릴 때부터 받은 좋은 교육 덕택에 몸에 밴 예절이니까.


  이렇게 해서 저 밑바닥, 완전 프롤레타리아 계급에서도 하빠리 인생만 전전하던 마틴 에덴은 대도시 오클랜드에서도 크게 방귀 깨나 뀌는 법률가 모스 집안을 난생 처음 구경하는 기회를 얻는데, 세상에나, 계급 차이라니. 계급 간의 차이는 사람 사이의 차이보다 훨씬 멀어서, 의자에 앉는 방식, 말하는 문법, 발성하는 목소리의 크기, 대화를 이어가는 순서 기타 등등이 전부 다르다는 걸 마틴은 처음으로 알게 된다. 아, 저들과 나는 아예 다른 인간들이로구나. 그래, 그래. 이제 스무살. 뭘 알겠니.

  몇 마디를 하다가 이제는 회합의 메인 테이블, 식당에 들어 턱 앉은 자리가 자신보다 서너살이 많은 루스, 가느다란 가지에 핀 옅은 황금색 꽃이며 정령이고, 거룩한 존재이며 여신처럼 지상의 것이 아닌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었다. 무지렁이 마틴이 그래도 천성적으로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있어서 루스에게도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해, 루스를 위해 자신의 나머지 삶을 살 만한, 자신을 내던질 만한, 싸울만한, 죽음을 무릅쓸만한 어떤 것이 있다고 단정했다.

  이때 마틴을 본 루스의 속마음도 분량이 만만치 않다. 그걸 다 쓸 수는 없고, 손목 위로 남자의 몸을 만져본 적 없고, 자기 손목 말고는 남자의 손이 거친 적 없는 스물세 살 숫처녀 루스는 상처투성이 손과 빳빳한 칼라에 익숙하지 못해 빨갛게 스친 목, 거친 생활로 얼룩지고 더렵혀진 젊은이의 거친 힘이 눈에 보이면서, 파바박, 찌르르, 전류가 시각을 통해 목구멍의 갈증을 유발하고 신경줄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아랫배까지 내려가 간질간질한 조그만 요동을 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당장 두 손으로 마틴의 목을 잡고 그의 정열을 자신이 받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는 했지만 잘 배운 구중궁궐의 규수가 어찌 함부로 손을 내밀 수 있었으랴.


  여기까지 읽으면 노동자, 노동자 계급 가운데서도 (당시 시각, 출연진 가운데 모스 가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듯) 더러운 동성애를 밥 먹듯 저지르고 기항지마다 현지처를 두는 천하디 천한 선원 출신의 무식한 남자와, 법률가 가문의 톱 클래스 부르주아 여성 사이의 로맨스를 다룬 희비극이겠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그랬다. <야성의 부름>을 쓴 잭 런던이 그런 이야기 말고 또 뭘 쓰겠나 싶기도 했다. 이런 생각은 나처럼 무식한 것들이나 한다는 걸 모르는 채.

  마틴과 루스가 서로 사랑을 시작하면서, 작가의 방점은 이들의 사랑에 있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문학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계제를 만들었다는 데 찍힌다. 루스가 책을 빌려주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IQ가 한 300 수준인 것처럼 보이는 마틴한테 문학과 철학, 자연과학 가운데서 특히 진화에 관한 독특한 관념을 세울 기회를 마련해준다. 모스 저택을 나서면서 마틴은 루스가 빌려준 책에서 시작해 공립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온갖 어려운 책을 섭렵해가며 자신의 주관을 정립해 나간다.

  다음에 수백 페이지를 할애해 전개되는 이러저러한 과정, 며칠씩 밥을 굶으며 글을 쓰는 마틴 에덴. 자전거와 정장을 팔고, 임대해 쓰는 타자기를 회수당하는데도 야박한 매부들은 상종도 하지 않는 고독한 천재작가. 오직 같은 노동자계급의 하숙치는 문맹 아줌마 마리아와 빨래방 전문가 조 같은 이들만 조금씩 돌보는 가운데, 후에 나타나는 천재 폐결핵 환자 시인의 등장과 죽음. 그리고 루스와의 약혼과 파혼 같은 건 다 생략하자.

  드디어 마틴 에덴은 한 시절 찬란한 별이 된다. 천재 작가. 혜성처럼 등장한 상식을 깨는 소설가, 단편작가, 에세이스트, 철학자. 세상은 마틴 에덴에 열광한다.


  그런데 독자의 눈에는 서걱거린다. 이건 처음부터 로맨스 소설이 아니었다. 루스와의 연애와 약혼, 파혼은 마틴 에덴의 천재를 돋보이게 하려는 중요한 포장길에 지나지 않았던 거다. 작품의 가장 큰 주제는 한 가난하고 무식한 천재가 눈을 떠 지독하게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초기의 일천한 과정도 조속하게 마쳐, 극악의 상태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걸작 몇 작품을 생산하고, 결국에는 성공하는 과정이다. 불쌍한 루스는 아차, 더 말하면 스포일러다.

  나는 이 책, 특히 2권을 읽으면서 에인 랜드가 쓴 <파운틴 헤드>의 눈부신 주인공 하워드 로크를 떠올렸다. 물론 마틴 에덴은 스무살부터 스물두셋까지인 반면에 하워드 로크는 20대에서 시작해 40대까지 올라가기는 한다. 그러나 미국사람들한테 나이가 무슨 소용. 오히려 철학적 사고만 놓고 보면 마틴이 하워드보다 몇 길이나 위인 것을.

  이 둘의 공통점은 개인주의자라는 것. 다른 점은 마틴의 경우, 변하지 않는 신념은 세상은 강한 자들이 이끌어야 하고, 나아가 강한 자들만 살아 남는다는 약육강식 법칙의 신봉자라는 점. 육체적으로 강건하고 정신적으로 천재적인 마틴 에덴이니까 이런 생각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 같은 독자는 속이 별로 좋지 않다. 어쨌거나 전지전능한 마틴 에덴은 그리하여 신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여성작가 에인 랜드가 창조한 개인주의자 하워드 로크가 남성작가 잭 런던이 창조한 마틴 에덴보다 57배쯤 더 좋다. 그러니 당신도 시간 있으면 <마틴 에덴> 말고 <파운틴 헤드>를 읽으시라.

  이 작품은 연애소설이 아니다. 한 천재의 궤적을 통해 문학 또는 예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유도하는 미끼 소설이다. 별로 잘 쓰지도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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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재앙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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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어드리크를 읽고나서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도 마음에 들어 다음 작품을 골랐으니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 클럽>이었다. 근데 그게 대박. 이후 어드리크를 더 파 봐야겠다 싶어 한 편을 더 읽에 삼세권을 만든 후, 한꺼번에 어드리크만 꽈과광 연달아 읽기도 뭣해서 좀 있다가 읽자, 그랬는데 그만 잊고 해를 넘겼다.

  <비둘기 재앙>, 재미있다.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 클럽>만큼 대박은 아닐지언정 책 뒤표지에 박여 있는 필립 로스의 주례사처럼 “상상력의 자유로움”이 놀랄 만하다.


  사건은 노스다코타주 원주민 보호구역 근처의 작은 도시 플푸토 외곽지역에서 발생한다.

  1911년 한 가정에서 부모와 십대 소녀, 여덟 살과 네 살 소년이 살해당했다. 그러면 누군가가 죽인 ①살인범이 있을 건 당연지사. 플루토 시에서는 와일드스트랜드 가문과 부켄도르프 가문이 시가 생길 때부터 결정적 공헌을 한 권력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백인 가족의 집단 살인을 조사도 하기 전에 틀림없이 인디언들의 소행이라고 판단해버렸다. 살인 현장을 좀 더 세심하게 조사했더라면 결코 그들의 범행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었을 터이나, 사실 이들은 아직 범행 현장을 가보지도 않았지만 ②두 가문의 수장들 생각은 확고했다.

  피해자 가족이 몰살한 건 아니다. 난 지 ③일곱 달 된 아기가 침대 모서리에 끼어 있는 것을 살인자가 발견하지 못해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 아기는 선한 부부에게 입양되어 극진한 사랑을 받아 좋은 교육을 거쳐 동부의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플루토 시에 돌아와 중요한 시의 일원으로 평생을 살게 된다. 어떤 인물인지는 알려주지 않겠다.

  선량한 인디언 아시지낙과 홀리 트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소년, 그리고 다른 인디언 커스버트와 ④세라프 밀크 이렇게 네 명이 우연히 만나 아시지낙과 홀리 트랙이 만든 수공예품 바구니를 팔러 가다가 하필이면 살인사건이 벌어진 현장에 도착한다. 이들이 보니까 사람들은 다 죽어 있고, 침대 모서리에 낀 아기만 살아 있어서 ③아기를 안고 젖이 잔뜩 불어 고통스러워하는 암소에게 가 젖을 빨게 해준다. 이래서 ③은 생명을 구한 것.

  하지만 이때 ②들이 이 현장에 도착해 인디언 네 명이 있는 것을 보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법칙, 살인범은 범행 현장에 반드시 다시 와본다, 이들을 붙잡아 즉각 범인들로 확정해버린다. 그리하여 이들을 총으로 위협해 팔과 다리를 꽁꽁 묶어 수레에 태운 다음 숲을 돌아다니며 튼튼한 가지가 달린 나무를 찾아 여지없이 목매달아 버렸다. 거의 죽어갈 즈음 ② 가운데 유진 와일드스트랜드가 ④세라프의 목을 당기는 줄을 끊어 ④만 살려준다. 왜 그랬을까? 당연히 안 알려줌.


  그럼 ①은 누구지? 누구기는 누구야, 백인이지. 지금 내가 1911년에 있었던 백인에 의한 “부당한 정의” 사건을 먼저 써서 그렇지 작품의 시작은 1896년에 이어 1960년대의 한 시절이 나온 후에, 60년대 화자의 주인공 열네 살 먹은 에블리나가 (원주민 미치프족의 말로 ‘무슘’) 외할아버지 세라프 밀크가 해주는 당시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도 진실이 아니라 1911년에 목에 밧줄을 걸었다가 살아난 유일한 한 명의 이야기이니 당연히 자기 입장에서 진술한 것. 물론 독자는 이 사실을 저 뒤편에 가서야 알게 되지만. 그래서 이이가 살아난 진짜 이유를 내가 말하지 않는 거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무슘이 교수형 현장에 있었고 집행에 직접 참여했던 유진 와일드스트랜드의 친아들이라는 설도 있고 뭐 그렇다. 궁금하시라고 조금만 일러드리는 것.

  훗날, 아마도 1980년대 정도 될 걸로 보이는데 ①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뭐 그렇다. 이것도 내 말을 믿지는 마시고. 딱 쓰여 있지 않지만 전사한 인물은 진짜 살인범이 아닐 듯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위의 범죄 사실을 정의에 입각해서 밝히는 것, 흠,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하여간 내가 읽기로는 그 사건을 앞뒤로 해서, 앞으로는 플루토 시를 만들기 위한 극한 조건에서의 탐험, 훗날 플루토 시의 유지 가문으로 말뚝을 박을 와일드스트랜드와 부켄도르프가 차파웨족과 프랑스 혼혈인 앙리와 라파예트 피스 형제의 인도로 목숨을 건 서부 개척부터, 개척 당시엔 합류했다가 다시 동부로 돌아가 공부를 더 해 플루토로 온 판사/변호사 가문, 그리고 무엇보다 목 매달렸다가 살아난 세라프의 손녀까지,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실꾸리를 푸는 재미에 있다. 위에서 말한 가문의 후손들이 전부 등장한다. 등장하는 선을 넘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지지고 볶다가, 이혼(당)하고, 납치도 하고, 사제의 연도 맺으며, 옛 시절의 진짜 사연에도 불구하고 후손이 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는, 한도 끝도 없는 인연의 뒤엉킴. 뒤엉킨 세상이 뭐야? 그게 바로 사는 일이지, 사는 게 별거냐?


  게다가 나를 미치게 하는 건, 주인공 격인 에블리나와 무슘. 목 매달렸다가 살아남은 ④세라프 할아버지 말야, 이 두 사람이 독자를 배고파질 때까지 웃게 만든다. 특히 무슘이 자기 친동생 샤멩과, 어렸을 때 소 뒷발에 채여 왼팔이 부러져, 부러진대로 뼈가 비틀렸어도 소도시 수준으로 최상의 바이올린 연주를 하게 되는 새멩과와 더불어 플루토 시의 주임신부 캐시디를 놀려 먹는 대목이, 정말, 죽여준다.

  캐시디 신부라고 얌전히 가만 있을 수 있나? 세월이 흘러 바이올리니스트 샤멩과가 죽어 진혼미사를 집전하는데, 제일 앞줄에 앉아 있는 고인의 친형 세라프를 추도하는 강론만 드립다 해대는 거다. 조금 정리해서 본문을 앞뒤로 다시 배열해 보자면:

  “세라프 밀크, 원죄 없는 잉태와 동정 출산에 의심을 표해 그의 영혼이 어쩌면 지옥에 갔을지 모르지만 동정녀 마리아가 그를 돌봐주고 계실 겁니다. 비록 ‘나는 마리아가 사기를 쳤다고 생각하오.’라고 했을지라도 말입니다. 지금 세라프는 지옥이 무한하지도 아주 뜨겁지도 않다는 믿음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남동생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악마의 불꽃을 싹 틔우는 바이올린을 켜고 그 활에서 거룩한 고통을 쥐어짜면서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루이스 어드리크가 희극적인 묘사도 이렇게 잘 할 줄은 내 미쳐 몰랐다. 그래, 이건 알려드리지. 술을 워낙 좋아하는 캐시디 플루토 성당 주임신부는 세월이 조금 흐르면 그깟 사제직 때려치우고 큰 도시로 진출해 미국산 와인이던가 뭔가를 일본 등지에 수출하는 일을 해 큰 부자가 된다. 술 하나는 실컷 마셨겠지? 지방간을 넘어 간경화나 안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비둘기 재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야 할 것 같다. 작품의 뒤쪽에 한 번 더 나오지만 뒤편의 비둘기 재앙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지는 직접 궁리하시는 걸로 하고, 진짜 19세기 말, 1896년에 있었던 비둘기 재앙.

  이때의 비둘기는 공원이나 광장에서 흔히 보는 유해조류를 말하는 게 아니고, 지금은 거의 멸종됐다고 하는 비둘기 떼를 가리킨다. 마치 메뚜기떼처럼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노스다코타주의 농장마다 밀 모종, 호밀, 옥수수를 먹어 치우고, 과수 꽃송이는 물론이고 왕겨까지 하여간 소화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고갈시켰다고 한다. 노스다코타 지역의 인디언과 백인 농장주는 시즌이 되면 이 비둘기 떼를 없애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포획해,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고, 비둘기 볶음탕도 해먹고, 백숙, 전골, 매운탕, 하여간 먹다, 먹다, 먹다가 지칠지언정 전체 개체수로 치면 새발의 피, 티도 나지 않았단다. 그리하여 나중에 먹지도 않고 보이는대로 다 잡아 죽였는데, 그러면 뭐해, 널브러진 비둘기 시체는 또다른 비둘기가 포식, 영양보충을 한 비둘기들이 더욱 왕성하게 번식을 할 정도였다니. 그리하여 1896년에는 무슘의 의붓형이 주임신부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교구민 전부에게 사발통문을 돌려 미사할 때 입는 의례복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미사경본을 챙겨 성요셉 성당에 모이라고 해서, 형제자매들을 총동원해 벌판으로 나가 하느님께 열심 기도를 할 정도였다는 거다. 이 장면이 책의 제일 앞에 나온다. 비둘기 재앙이 무슨 계시록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아니, 계시록적일 수도 있기는 하겠다. 백인에 의한 원주민 살해, 즉 부당한 정의를 계시록적 비극이라고 판단하면.

  결말은 어떻게 될까? 당연하지. 어떤 형태로든지 1911년의 비극은 해소되어야 한다. 그럼, 근 70년 이상이 지나 와일드스트랜드와 부켄도르프 가문의 후손들이 인디언 후예들에게 무릎 팍 꿇고 사과라고 해야 하나? 흠. 책에서는 아니다. 그걸 해결해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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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2-17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려고 사뒀는데 평이 좋아서 기대가 됩니다 배고파질 때까지 웃게 만든다니😄 배부를때 읽겠습니당ㅋㅋㅋㅋ

Falstaff 2026-02-17 21:1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전 이 책 좋았는데요,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 클럽>이 좀 더 좋더라고요.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최측의농간 시집선 3
심재휘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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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토끼띠 문예콘텐츠 창작학과 교수 심재휘의 시집. 2002년 문학세계사에서 나온 책을 2017년에 복간한 시집이다. 출판사 “최측의농간”이 시집선 시리즈를 모두 일곱 권 찍었는데 처음 세 권은 이 시집처럼 이미 절판된 시집을 복간한 것으로 당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출판사가 마지막으로 출간한 책이 2020년에 찍은 책이다. 짐작하건대 좀 어려운 처지를 당한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심재휘는 21세기 들어 우리나라 시들이 전위를 향해 용맹돌진하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 시쓰기를 고수하는 몇 안 되는 시인 가운데 대표적 한 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한테 익숙한 서정시인이라는 의미겠지. 이런 의미에서 제일 앞 순서로 실린 시 전문을 읽어보자.



  남쪽 마을을 지나며



  서러움 하나 간신히 빠져나갈

  참나무 숲을 지나자 가을 저녁은

  목화밭 너머의 봉분들과 참

  다정해 보였습니다

  마을은 낡은 그림자들을 

  탐스럽게 매달고 있었습니다

  초행길이었습니다

  엉겁결에 전생 하나를 밟고

  신발이 더러워지기도 했습니다만

  무덤 같은 신발로 오래 걷다 보면

  낯선 곳에서도 겨울은 맞을 만합니다

  단지 잎 다 진 키 작은 나무에

  탐욕스럽게 매달려 있는 모과처럼

  오늘과 나는 서로 이복형제 같아서

  조금 서러웠습니다  (전문. p.13)



  시를 척, 읽으면 탁, 하고 알 거 같다. 하지만 내가 읽기에 국한해 말하자면 문제가 있다. “오늘과 나는 서로 이복형제 같아서 / 조금 서러웠습니다” 제목이 남쪽 마을이라고 해서 참나무 숲이 있는 산골 지나 초행길 마을로 여길 수도 있고, 그걸 팍 확장해서 그냥 사람 사는 판이라 생각해도 괜찮을 듯하다. 근데 왜 오늘과 내가 이복형제 같았을까? 그게 왜 서러웠을까? 이복異腹이라니까 오늘을 낳은 엄마하고 내 엄마가 달라서? 그걸 앞에서 수식하는 절節이 있다. “단지 잎 다 진 키 작은 나무에 / 탐욕스럽게 매달린 모과처럼” 나의 또다른 고민은 이 절 앞에 “단지”는 왜 썼을까, 하는 것인데 그건 그냥 넘어가자. 그러면 [오늘 = 잎 다 진 키 작은 나무] 그리고 [나 = 탐욕스럽게 매달린 모과]라고 볼 수 있을까, 없을까? 만일 이 등식이 참이라면 바야흐로 시가 그리 쉽게 읽히지 않는다. 시절 또는 시간 혹은 63년 토끼띠가 지내온 현대사와 오늘의 간극이 존재해버릴 수도 있다는 거. 에이, 물론 아니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쓸데없는 고민만 열라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없는 머리 숱만 더 듬성듬성해지지.

  학교 졸업한지 몇 년인데 아직도 이렇게 시를 읽어야 하느냐고 타박하지 마시라. 이 화두를 깨지 못하면 시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나? 물론 내 경우겠지만 시 한 수 읽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병맛이라고? 그럼 할 수 없고.


  독자들이 이 시집에서 제일 인용을 많이 하는 시가 <편지, 여관, 그리고 한평생>인 것 같은데 전문을 인용하려면 좀 길다. 모두 7연으로 되어 있는 시. 이 가운데 처음 세 연만 가져와보자.



  후회는 한평생 너무나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

  시장 입구에서는 우체통이 선 채로 낡아갔고

  사랑한다는 말들은 시장을 기웃거렸다


  새벽이 되어도 비릿한 냄새는 커튼에서 묻어났는데

  바람 속에 손을 넣어 보면 단단한 것들은 모두 안으로 잠겨 있었다


  편지들은 용케 여관으로 되돌아와 오랫동안 벽을 보며 울고는 하였다  (부분. p.18)



  시를 읽는 건 독자 마음인데, 그렇다고 다 마음대로 느끼라는 건 아니지 싶다. 1연에서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이 어느 동안일까, 나는 모르겠다. 이 시에서 여관방의 이미지는? 피곤한 나그네의 심신을 쉴 수 있는 여관방이라기보다 뭔가 사연이 있어 머물 수밖에 없는 누추하고 슬픈 장소의 분위기가 풍긴다. 그러니 이 방에 머물며 많은 편지를 썼지만 편지들이 수신인한테 제대로 가는 대신 다시 시인이 머문 여관방으로 회송된 것. 이 시도 읽으면서 독자가 감지할 수 있는 건 이미지, 여관과 편지로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일 뿐이다. 서정시의 외피를 입은 반half구상시라고나 할까? 물론 시를 읽으면서 메시지를 얻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이미지만 포착할 수 있어도 그게 어디냐. 다만 시의 무대인 여관이 아주 오래 전에 신경림이든가 정호승이 즐겨 쓰던 시어 “여관잠”하고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던 건 왜 그랬을까?

  독자마다 시를 읽으며 느끼는 것이 다른 이유는 시인이나 독자나 다 개별적이기 때문이겠지. 그게 어떻게 교집합을 이루면 시인하고 궁합이 맞는 거고, 아니면 마는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이 시는 읽으며 꼭 인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환자들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스는 잠그고 나왔을까 또

  난로는 켜 둔 것이 아닐까 병이

  더 깊어지면 말입니다

  발로 비벼 끈 담뱃불이나 이별 같은 것들도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데요 그게 말입니다

  달아오른 난로나 끓어 넘친 가스레인지

  한동안 외로움에 지지직거리던 TV의 마음에도

  요새는 안전장치가 있어서 제풀에 꺼지더라

  이 말입니다 새카맣게 타버리지는 않더란 말입니다

  꼭 죽지 않을 만큼만 죽고 싶다가도

  금방 멀쩡하더란 말입니다 신기하게도

  다시 불이 붙더란 말입니다

  세상 도처에 깔린 안전장치들

  너무 안심이란 말입니다  (전문. p.69)



  이 양반이 훗날 낼 시집 《중국인 맹인 안마사》에서 그러듯이 이 시집에서도 구질구질하게 첫사랑 이야기를 제법 한다. 왜 구질구질하냐고? 첫사랑. 그런 거 오래 기억하지 말라. 우연이라도 만나지 말고, 꿈에서도 마주치지 않는 게 신상에 편하다. 잠꼬대라도 했다가 옆에서 침흘리고 자던 마누라 들으면 곡소리난다. 정말로 다시 만나 사고치면 그거 보통 일 아니다. 농담이라도 입에 올리지도 말고 살아라. 근데 심재휘는 그러지 못하겠던 모양이다.



  첫사랑



  장충동에 비가 온다

  꽃잎들이 서둘러 지던 그날

  그녀와 함께 뛰어든 태극당 문 앞에서

  비를 그으며 담배를 빼물었지만

  예감처럼 자꾸만 성냥은 엇나가기만 하고

  샴푸향기 잊혀지듯 그렇게 세월은 갔다

  여름은 대체로 견딜 만하였는데

  여름 위에 여름 또 여름 새로운 듯

  새롭지 않게 여름 오면

  급히 비를 피해 내 한 몸 겨우 가릴 때마다

  비에 젖은 성냥갑만 늘었다 그래도

  훨씬 많은 것은 비가 오지 않은 날들이었고

  나뭇가지들은 가늘어지는 운명을 향해 걸어갔다

  가늘어지기는 여름날 저녁의 비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후로 많은 저녁들이 나를 지나갔지만

  발아래 쌓인 세월은 귀갓길의 느린 걸음에도

  낡은 간판처럼 가끔 벗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른 꽃잎에게 묻는 안부처럼


  들춰 보는 그 여름 저녁에는 여전히

  버스만 무심하게 달리고 있었다

  이별도 그대로였다

  비가 오는 장충동 네거리 내 스물두 살이

  여태껏 그 자리에 서 있던 거였다  (전문. p.100~101)



  스물두 살의 비 내리는 장충동 공원 바로 옆 태극당의 첫사랑 그녀. 이 첫사랑이 정말 첫사랑 그녀를 향한 것인가? 이렇게 묻지 말자. 그냥 스물두 살의 첫사랑이라도 충분히 좋으니까. 괜히 시인의 22세 시절, 재수없게 혁명과 투쟁의 구호와 분신 시위의 시대에 살던 책무 같은 걸로 포장하지 않아도 얼마나 어여쁘냐, 그렇지?

  근데 그렇게 생각해도 좀 문제가 있다. 심재휘는 첫사랑도 참 여러 번 한다.

  <자작나무 흰 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위하여 서울로 버스타고 올라갈 때 “그때 고향에 두고 온 것들 이를테면 / 눈 맞으며 손 흔들어주던 사랑도 이제는 / 쌓이고 녹고 하여 또 내일처럼 낡아갔는데”라고 노래하고, <나무 계단에 관한 오래전 이야기>에서도 “내가 손을 잡았던 사진관집 딸이 다만 어디쯤에서 홀로 늙어가듯”이라 노래했는데, 그것들은 사랑 아니었나?

  하긴, 시인들한테는 다정도 병이니까.

  심재휘를 읽으며 다시 느낀다. 시 읽는 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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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9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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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작품. 김희선은 두 권의 소설집 2019년 《골든 에이지》와 2021년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사이에 이 책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를 냈다. 김희선의 단행본은 챙겨 읽는 편이다. 2019년부터 2021년, 이 시기에 김희선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조금 이르게 찾아온 갱년기? COVID-19 감염? 아쉬울 만큼 이 3년간의 결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긴 일개 독자가 아쉬워해봤자 중요하지 않겠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어쩌면 역작 <무한의 책>을 낸 이후 그에 필적하는 다음 작품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컸을 수도 있고, 장편을 썼으니 좀 쉬는 의미에서 가벼운 것들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그렇게 됐을 수도 있겠지. 뭐 내가 아나, 그런가 보다 할 따름이지.


  작품은 모종의 죽음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책임자의 사무실에서 시작한다. 책상, 의자, 집기, 캐비닛 등 모든 비품과 사무실의 색깔까지 전부 회색인 곳. 이곳에 비가 내리고 회색 레인코트를 입은 책임자(처럼 보이는 인물)이 회색의자에 앉아 시집 한 권을 꺼낸다. 이 죽음에 관한 사업을 하는 책임자(인 것처럼 보이는 인물)은 사실 시를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해서 사무실에 한 짝에 5백만원 하는 앤올롭슨사의 하이엔드 스피커를 갖춰 놓았다.

  그가 신봉하는 말: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백만 명을 죽이면 혁명이 된다.”

  또 이런 표현들.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이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은 모르게 하라.”

  이런 문장이 첫 세 페이지 안에 몰려 있다. 독자가 읽기에, 세상에, 클리셰 만땅이네.


  큰 호수, 아마도 소양호나 충주호 같은 곳을 연상하면 비슷한 가상의 월상호. 월상시도 좋고 월상읍도 좋은데, 이곳에서 월상호 전망대까지 가는 길에 다섯 곳의 마을이 있다. 아니,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두 곳은 출생 없이 사망이나 전출만 발생해 마을이 소멸됐고 이제 세 곳이 남았는데 이 가운데 여덟 호, 열 명의 주민만 남은 팔곡마을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사건이 벌어진다. 이걸 제일 먼저 눈치 챈 사람은 연락선을 타고 우편물 배달을 하는 우체부 김씨.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평소엔 우편물을 선착장에 자신이 설치한 우편함에 넣고 곧바로 다음 목적지로 향했지만 이날은 직접 팔곡마을에서 내려 마을 이장 피 노인 집으로 향한다. 우편함에 주민들이 찾아간 것들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문이 잠겨 있지 않아 곧바로 마당에 들어갔지만 인기척이 없다. 그래서, 워낙 노인들만 사는 곳이라 집안에 험한 일이 있을지도 몰라 염치불고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봤다. 그랬더니 피 노인이 잠들어 있는 듯 이부자리가 두둑하게 솟아 있어, 이크 정말 큰일인지 모르겠군, 하면서 이불을 들춰보니까 옥수숫대를 마치 사람이 누워 있는 것처럼 모양을 만들어 놓은 거였다. 이불 속에 왜 옥수숫대가 들어 있다고 했을까? 안 해도 좋을 것 같은 묘사를 앞으로도 자주 읽을 수 있다. 이제 시작일 뿐.

  기겁을 해서 집 밖으로 나온 우체부는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마을회관에도 가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거 수상한데 싶은 우체부 김씨. 그는 월상읍에 돌아와 파출소 소장 박경위에게 신고하고, 일단 민원을 접수했으니, 평소에 등산을 좋아하는 박경위는 자기 생각에 무슨 일이야 생겼겠느냐만 그냥 지나쳐버리면 또 인터넷에 의견 달고 지지고 볶을 지도 몰라 시간이 남으면 뒷산에라도 올라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직접 팔곡마을로 향한다. 퉁퉁한 몸집에 손목에는 의자 모양과 영어로 “New Generation”이라는 문신을 한 연락선 선장한테 특별히 부탁을 해서.

  팔곡마을로 가는 길에 선장은 우체부 김씨와 박경위에게 가는 동안 재미는 없지만 비디오라도 보라고 하나 틀어주는데 제목이 “죽음을 이기는 법”에다가 월다잉 협회에서 그냥 틀어달라 부탁한 거란다. 비디오에는 쉬운 얘기로 자살을 선택한 중환자나 노인들이 자유 의사로 죽을 수 있는 암스테르담이 나오고, 이어서 우리나라 종로3가 탑골공원쯤 되는 노인 밀집 지역을 대비시킨다. 이걸 보면서 독자들도 쉽게 알 정도로 박경위는 일종의 최면에 걸려 물 속으로 뛰어들려는 순간, 우체부 김씨가 막아서고, 드디어 이들은 팔곡마을에 발을 딛는데, 때를 맞춰 먹구름이 밀려와 시간이 아직 이르건만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범죄와 국가 수준의 음모론으로 확장한다. 구성은 다분히 김희선 답지만 문제는 문장이다. 어째 읽는데 문장이 입 속에서 버벅거린다. 여태 일곱 권의 김희선을 읽었고 이번이 여덟 번째. 이 책의 문장이 제일 아쉽다. 2019년에 잡지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서 책으로 엮은 건데도. “무엇보다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란다는 작가의 바램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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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양장)
아서 밀러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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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보이면 일단 읽을 욕심이 생기는 (극)작가 리스트 가운데 20세기 중엽 미국 사람 세 명이 있다. 유진 오닐, 아서 밀러 그리고 테네시 윌리엄스. 이 가운데 윌리엄스는 미국 남부의 크지 않은 도시를 무대로 남부 전통의 몰락이나 가족 간의 갈등을 습하고 더운 남부 날씨를 닮은 우울한 비극을 그린 반면, 밀러는 뉴욕을 중심으로 무너져가는 가족 또는 커뮤니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섬뜩하게 그려냈다. 정말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읽은 얼마 되지 않는 작품을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밀러의 희곡집은 이제 겨우 네 권을 읽었을 뿐이니 무엇 하나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이 아니다.

  심지어 거의 모든 이들이 밀러의 대표작으로 <세일즈맨의 죽음>을 꼽는 반면, 나는 <모두가 나의 아이들>을 더 흥미롭게 읽었다. 그런데 이제 1번 밀러 작품을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옮겨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작품을 읽기 전에 미리 감안해야 할 점.

  극의 주인공 에디 카본은 아니더라도, 에디의 아내 비어트리스는 이탈리아에서도 일찍이 알 카포네와 프랭키 예일을 배출한 시칠리아 출신이다. 에디 역시 이탈리아 문화권에서 예외가 아닌 것이, 주로 이탈리아 이민으로 구성된 뉴욕 항구 하역 노동일에 종사하면서 이들과 같은 의식을 공유한다.

  남자는 돈을 벌어오고, 아내와 아이들을 외부로부터 지켜야 하며, 무엇보다 명예를 우선한다. 이들에게는 미국 법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관습법이 존재하니, 바로 남자는 비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가장 추한 행위는 고자질. 겨우 열네 살에 불과한 꼬마 남자 아이가 이탈리아에서 온 불법이민자를 이민국에 고발한 일이 있었을 때, 이곳, 뉴욕항을 면한 동네의 남자들은 아이를 일단 때려눕힌 다음 발목을 잡고 지하실로 끌고 내려갔다. 계단 한 단을 내려올 때마다 열네 살 꼬마의 뒤통수가 시멘트 계단에 텅, 텅 부딪힌 건 당연하다. 이후 꼬마는 동네에서 사라져 다시는 주민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게 극의 초입에 에디를 포함한 동네 남자들이 맥주 한잔하면서 나눈 이야기 가운데 한 소절.

  남자는 또한 어떻게 해서라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기상 상황이나 불경기 때문에 뉴욕 항에 접안하는 화물선이 없다면 절반에 불과한 일당을 받더라도 다른 항구에 가서 노동을 하고, 알량한 돈으로 만든 음식을 자기는 굶더라도 가족들 입에 들여보내야 한다. 여자는 대신 가사노동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남자에게 복종해야 했다. 남자는 먹이를 구해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가족을 어떤 위협/위험에서도 보호해야 한다. 가족을 지키다가 자기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위의 조건을 지키려면 남자는 사람이라기보다 어느 정도 야수 비슷한 기질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작품을 읽었다면 어떤 방식인지 대강 짐작하실 수 있을 것. 만일 누군가 이런 정당한 비합법적인 불문율을 깨뜨리려 하거나 깨뜨려버렸다면, 이에 대한 복수 역시 비합법적으로 정당할 수밖에. 물론 이후에 법에 의하여 처벌을 받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문제이고. 만일 복수를 하지 않으면? 그것 역시 비겁한 일이다. 이렇게 벤데타의 단검을 이 사람들은 품고 살았다.


  미국으로 이민 온 이탈리아 가족 비어트리스와 에디 카본. 1956년에 발표한 작품이니 아마도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뉴욕이 무대일 것 같다. 카본 부부한테는 아쉽게도 아이가 없다. 대신 비어트리스의 죽은 언니가 낳은 어여쁜 딸 캐서린을 자기 아이처럼 살뜰하게 키워 이제 열일곱 살의 청춘으로 만들어 놓았다. 키우는 내내, 적어도 극 안에서는 자기 아이보다 더 정성을 들여 애지중지한 것처럼 보인다.

  막이 올라가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에디나 비어트리스, 또는 캐서린이 아니라 역시 이탈리아 이민 출신인 50대 변호사 엘피에리 씨. 엘피에리는 이 할렘가 구성원들의 출신, 성향에 대하여 설명하고 이어서 에디 카본의 직업이 무엇인지도 말한다. 어디서 본 것 같지? 그렇다. 그리스 고전극의 코러스가 하는 일을 그대로 맡아 극의 진행을 관객에게 설명하고 있다. 특정 상황에서 등장인물이 왜 이런 식으로 행위할 수밖에 없는지, 이후에 사건이 어떻게 진행했는지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관객은 이를 통해 극의 스토리를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건 아서 밀러만 사용한 기법이 아니라 그리스 고전극 이후에도 그리 드물지 않게 채용한 수법이라 특별할 건 없다.

  코러스 역의 엘피에리 씨는 종종 극 속에 변호사라는 특정인의 신분으로 직접 등장해 주인공 에디가 스토리를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게 만들기도 한다. 당연하겠지만 엘피에리 씨는 코러스가 진화한 등장인물이다.


  전쟁이 끝났지만 패전국 이탈리아에서는 일자리가 없다. 산업기반이 없는 시칠리아는 더 심각하다. 비어트리스의 사촌 마르코는 이 와중에 세 아이 가운데 하나가 결핵에 걸려 고통받고 있지만 수중에 돈이 없어 치료도, 약도 먹이지 못하는 지경이다. 도움의 손길도 찾을 수 없다. <표범>을 쓴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공작 같은 극소수 중의 극소수 사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칠리아 사람들 역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가장들 한테는 아이들 목구멍이 범의 아가리 같이 무서운 형국이라서. 그리하여 마르코는 금발의 잘생긴 동생 로돌포와 함께 뉴욕에 사는 사촌누이 비어트리스를 찾아 불법 이민, 불법 취업하기로 결심한다.

  당연히 이것이 또다른 시련의 시작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마르코는 가난하지만 거구의 힘센 장사. 로돌포는 아담한 체구에 잘생기고 하이 테너로 노래도 수준급에, 여자 의상을 재단하는 솜씨마저 뛰어나다. 그러나 로돌포도 뉴욕에 가면 부두에서 하역 노동을 해야 한다. 주급 30~40 달러면 그게 얼마냐. 뉴욕에선 푼돈일지 모르지만 시칠리아에 보내면 한 식구 잘 먹고, 병든 아이 약도 사 먹여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충분한 돈인 것을. 이렇게 마르코와 로돌포는 뉴욕에 도착해 비어트리스와 에디의 작은 집에 몇 달 기한으로 머물기로 한다. 빈 손으로 와 뉴욕의 불법이민 브로커에게 빚을 갚으려면 비싼 월세를 주고 방을 얻기 곤란해서 폐를 끼치는 일인 줄 알지만 이 또한 시칠리아 식 사고방식으로는 친척으로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에디 역시 기꺼이 자기 집에 공간을 마련해주기로 동의한다. 부부 침실의 침대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침대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건 집주인인 자신이 결코 (자기 침대는 손님에게 주고) 맨바닥에 자지 않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속으로는 마땅하지 않은 건 물론이다. 솔직히 나 같아도 속으로는 그렇겠다.


  에디의 또다른 고민.

  정말 애지중지, 아예 눈꺼풀 안에 넣고 키우던 캐서린이 벌써 열일곱 살. 몇 달 지나면 열여덟 살의 성인이 되는 데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부는 더 시키지 못했지만 밖으로 내돌리기 싫어 속기학원 또는 직업학교에 보내는데, 여기서도 특출난 재주를 보여 타자와 속기의 최우등 실력을 보였다. 그래 속기학원 원장이 때마침 직원을 뽑아야 하는 배관회사에 주급 50달러 자리를 마련해준다. 실력이 이미 졸업생을 능가하는지라 아직 졸업이 1년 남았지만 1년 후에 학교에서 졸업시험만 보면 학력을 인정해주겠다는 특별 배려 수준이다.

  그러나 에디는 마땅하지 않다. 에디 눈에는 아직도 아이 같다. 저 여린 것이. 게다가 배관회사가 있는 곳이 브루클린의 험한 부두노동자가 득시글거리는 항구 근처, 그것도 모자라 해군기지 바로 앞에 있으니 가히 늑대굴 바로 코앞이다.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캐서린은 그것도 모르고 벌써 짧은 치마를 입고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걸어다닌다.


  드디어 시칠리아에서 마르코와 로돌포가 도착했는데, 마르코는 그렇다고 치고, 하나도 유감이 없지만, 젊고 잘생긴 로돌포는 노래도 잘해, 금발이기도 하고 게다가 캐서린의 옷도 기막히게 수선해준다. 이것만 가지고도 열불이 나건만 둘이 데이트를 하는 눈치. 2막으로 가면 아이쿠, 집에 들어오니까 비어트리스가 시장에 간 사이 옷차림이 어수선한 캐서린의 방에서 로돌포가 나오는 거 아니냐는 말이지.

  아직 캐서린을 품에서 풀어줄 마음이 없는 에디 카본. 그는 그가 생각하는 가장 나쁜 방향으로 이들을 떼어놓으려 하지만,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게 몇 개나 있나. 오히려 이들과 이 골목 사람들이 에디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몰아가게 되는데, 그리스 고전 비극을 연상하게 만드는 종말이 어떻게 되는지는 차마 내가 여기서 이야기할 수 없으니 직접 확인하시라.

  다른 독자는 모르겠고 이제부터 내게 제일 중요한 아서 밀러는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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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2-12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마 여기서 말해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 <다리...>이 그만큼 좋으셨군요! 암
튼 엄청난 비극이긴 합니다....

Falstaff 2026-02-12 15:28   좋아요 1 | URL
이 극의 결말은 특히 얘기해주면 김 샐 거 같은 걸요! 위고가 썼다고 해도 믿고 싶어지는데 그걸 어떻게.... ㅎㅎㅎ

yamoo 2026-02-12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아직 못 읽어봤는데, 나머지 작가의 작품들은 한 권씩 읽어 봤으요~~
읽고 드는 생각이...희곡은 정말 나와 안 맞는다는 거였습니다. 재미도 없고, 인상적이지도 않고..
주제도 좀 구태의연하고...뭐, 그렇습니다..희곡 중에서 그래도 가장 재밌었던건 이강백의 <파수꾼> 정도.. 걍 제가 희곡을 정말 안 좋아하는 듯합니다..ㅎㅎ
근데 별 5개!! 궁금증이 일긴 하지만 희곡이라서 패쑤~~

Falstaff 2026-02-12 15:29   좋아요 0 | URL
다행입니다. <파수꾼> 읽어봤습니다.
안 좋아하시면 어쩔 수 없는 거죠 뭐. 어떻게 다 좋아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