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 창비세계문학 6
딩링 지음, 김미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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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링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소피의 일기>와 비교하면 두 권 책의 다름이 실로 하늘과 땅 차이다. 하긴, <소피의 일기>가 1928년.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에 실린 세번째 작품 <발사되지 않은 총알 하나>가 1937년, 두번째 작 <병원에서>가 1938년, 첫번째 표제 작품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가 1940년이다. 이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 당연히 전쟁. 국공 내전 말고 항일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1960년대에 초안을 쓴 것으로 보이는 1978년작 <두완샹> 과의 사이에는 또 반우파투쟁과 악명높은 문화혁명이 있었다.

  1904년에 하필이면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딩링의 평생 팔자가 참 고단했을 거란 점은 명백한데, 애초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 푸이처럼 일찌감치 모든 자격을 박탈당하고 재교육을 거쳐 평범한 정원사의 삶을 살았으면 기중 (마음이나마)편했겠지만 명백하게 부르주아 소설인 <소피의 일기>를 쓰고 불과 4년 만에 공산당 입당을 해 늘그막까지 그 고생을 하느냐고?

  1932년에 일단 공산당에 입당을 해서, 34년엔 국민당에 체포당해 옥중에서 딸을 낳아야 했고, 당연히 여전히 속으로는 부르주아이면서도 다시는 <소피의 일기> 같은 소설은 써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이젠 적극적인 체제 협조적,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는 대로 거꾸로 말하자면 정권에 부합하는 어용소설만 죽자사자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솔직히 말해 그래서 나온 것이 <발사되지 않은 총알>이고 <병원에서>이며 이것들이 찬란하게 피어 눈부신 어용소설 <두완샹>이 태어난 것 아니냐는 말이지.


  나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 핑계를 대고 숱하게 저지른 혁명, 혁명도 아니고 혁명을 빙자한 장기집권과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숱한 마르크스의 후계자들이 벌인 전략이 너무도 지긋지긋하다. 더 쉽게 말하자면 레닌과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카스트로 등이 주장한 권력장악과 지속을 위한 숱한 재교육, 획일화, 숙청 등등 이런 종류의 단어가 너무도 싫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라고는 국토와 삶과 인민의 황폐화밖에 더 있었나? 결국 남은 것이라고는 버킹검. 아무것도 없다. 러시아가, 중국이, 북한에서 혁명 이후에 잽싸게 독재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그래, 역사와 사람과 삶을 망치는 건 결국 권력이다.

  그걸 딩링이 증명해주고 있는 듯. <소피의 일기>가 찬란한 부르주아 소설도 아니면서, 그냥 찌질한 20년대 상하이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소피의 일기>를 쓴 작가가 <발사되지 않은 총알>이나 <병원에서> 그리고, 그리고 <두완샹>을 쓰느냐고! 그렇게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체제를 위하여 딩링도 당에 가입을 하고, 나름대로 열성 당원으로 일하다가, 반우익운동에 걸려 죽을 고생도 하고, 감방에도 가서 5년 동안 옥고도 겪고, 하여튼 다양하게 죽을 고생을 하다가 저 북간도 멀리멀리 다싱안링 산맥 근처 베이다황까지 가서 노동을 했으니. 춥고 거친 일을 해서 안 됐다가 아니고,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작가를 하지 못한 채 농사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각 인민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그게 공산주의 국가지, 펜대 들 손과 머리로 밀 농사를 지으라 하면 어떻게 평등 세상이 작동되느냐는 질문에 어찌 대답을 할꼬?

  딩링의 책, 창비세계문학 6번에 빛나는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를 별 다섯 개 만점으로 채점하면, 작품 전체는 빵점. 그걸 작품이랍시고 번역한 김미란이 말끔한 우리말로 바꾼 실력과 노고를 위하여 두 개의 별을 준다. 거의 찾을 수 없는 오탈자 수준을 보여준 창비의 편집부 담당자의 수고도 포함하여. 내가 아무리 돌팔이 아마추어 허접한 독자일지언정, 권력에 아부하는 어용문학에는 단 하나의 별도 주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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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란언니 - 개정판
김은성 지음 / 연극과인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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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곡집 《목란 언니》에는 표제작과 <뻘>, <달나라연속극> 이렇게 세 편이 실렸다.

  이 가운데 <뻘>의 표지에는 “이 대본은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모티브로, 김은성이 1981년 전라남도 벌교를 무대로 재창작한 작품입니다.”라고 쓰여 있고,

  <달나라연속극>의 표지에는 “이 대본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을 모티브로, 김은성이 재창작한 작품입니다.”하고 쓰여 있다.


  먼저 <목란 언니>. ‘목란’은 놀라지 마시라, 북한의 김일성이 만든 단어다. 원래 우리말 이름은 “함박꽃나무”, 정말 탐스럽게 잘 생긴 흰 꽃인데, 하루는 김일성이 꽃을 보고 너무 좋아 이런 꽃의 이름을 조선말로 천하게 지어 놓아 유감이다. 앞으로 “목란木蘭”이라 부르라. 해서 목란이 됐고, 어이없게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의 국화로 지정되었다는 거다. “목란”을 열라 검색해봐도 요리사 이연복이 운영하는 짬뽕과 탕수육이 맛난 중국집만 나오고 함박꽃나무 이야기는 저 아래, 검색창의 거의 제일 아랫부분까지 스크롤해야 읽을 수 있는 게 이유가 있었다. 나는 ‘목란’ 말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목단’ 그리고 화투패에서 6월 모란꽃을 떠올렸지 뭐야.


함박꽃나무 (목란)


  <목란 언니>에는 등장인물이 스물여섯 명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들 전부에게 이름, 성별, 나이, 직업, 출생지, 거주지, 말씨를 특정해준다. 예를 들어 주인공 조목란. 여, 26세, 아코디어니스트, 평양生, 용인∙서울 거주, 평양말. 그리고 돈만 많은 과부 조대자 씨는 여, 55세, 룸살롱 주인, 부산生, 서울거주, 온갖말. 조대자 씨한테는 아들 삼남매가 있으니 첫째가 36세 먹은 한국사 박사이고 서울生, 서울말. 둘째가 33세의 철학박사로 대학 교수로 있지만 아뿔싸 대학의 학과 정리에 철학과가 포함되는 바람에 실직 위기에 처한 서울生, 서울말. 셋째가 외동딸로 이름이 허태양. 30세의 소설가, 조대자의 막내딸로 서울生, 서울말. 웃긴 건, 어떻게 삼남매 전부 먹고 살기 힘든 문∙사∙철을 시키느냐는 말이지. 일부러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겠구먼.

  여기까지 얘기해도 뭔가 딱 떠오르지? 조목란은 평양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탈북민. 젊고 수더분하지만 야물딱진 여성으로 걱정이 한 가득이다. 5천만원을 모아 브로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아니면 자신이 다시 북으로 가던지. 북에 남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리 데려오고 싶어서. 조대자 사장께서 탁 보니까 조목란이가 여간내기가 아니다. 그리하여 한국사 박사지만 집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는 우울증 환자이자 히키코모리인 허태산과 인연이라도 될까 싶어 허태산에게 기타와 아코디언을 가르쳐주게 한다. 허태강은 앞서 얘기한대로 실직이 코 앞이라 이제 시간 강사자리나 지방대학 조교수 자리를 찾아야 하는 신세고, 소설을 쓴 허태양은 소설은 써지지 않아 제법 돈을 받고 그럴 듯한 국회의원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일을 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대개의 작품에서 그렇듯이 태양은 싫다고, 싫다고 자존심 상해하다가 결국 대필을 해야겠지? 아니라고? 글쎄 두고 보라니까.

  허씨 삼남매를 이나마 키운 건 조대자 사장의 억척스런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 그렇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노고를 속으로 고마워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자랑스레 내놓을 수 없으니 오랜 세월 룸살롱 사장을 겪으며 무슨 짓을 안 했겠느냐 하는 것이지. 요즘 조대자 사장의 레이더에 꽂힌 사람이 재미교포, 아니, 한국계 미국인 강국식. 남자, 66세, 사업가, 도쿄生, LA 거주, 영어+일본어+서울말 사용자. 66세와 55세. 11살 차이니까 뭐 연인 비슷할 수도 있다. 정도 정이지만 둘은 떼돈을 벌 수 있는 합작 투자를 구상하고 있다. 아서라, 아서. 누가 “떼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십중팔구가 아니라 백 중의 아흔아홉이 사기다. 거덜나고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덥썩 물기만 하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저 뒤로 가면 조대자 여사가 조목단에게 허태산하고 좋은 관계가 되면 주겠다는 5천도 주지 못하고 거덜이 난다. 거덜이 날 정도가 아니라 일단 몸을 피신해야 하는 처지까지. 집안이 폭탄 맞는 거지 뭐.


  이게 한 가지 에피소드이고, 다른 하나는 탈북민 커뮤니티. 해방 이후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북청청년단” 같은 반공단체를 만들어 남쪽에서 가장 강력한 우익활동을 한 것처럼, 탈북민들이 남쪽에 정착해 모인 사람들도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단호한 반공단체를 만든 모양이다. 매스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대북 삐라 보내는 사람들도 이런 경우겠지.

  바야흐로 유사이래 언제나 멈추지 않았던 한국사의 난장판이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데, 김은성은 이 난장판의 일부분이라도 한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정말로 한 무대에서 스물여섯 명의 등장인물을 올려 한꺼번에, 사실은 순서에 입각해 모데라토, 혹은 알레그로비바체로 각각의 난장을 동시상영하며 막을 올리니, 다음과 같다.

  처음엔 서울의 한 강당에서 열린 [실향민 어버이 연합 큰잔치], 둘째가 대구의 교회 예배실과 북한 해주의 역전 광장, 셋째는 서울 룸살롱 [한류韓流] 당연히 조대자 사장, 다음엔 서울 허태산의 원룸, 서울의 국회의원실(허태양의 자서전 대필 의뢰 건), 북한 청진의 중학교 운동장, 인천 초등학교 교실, 원주 대학교 강의실(허태강의 철학과), 서울의 한 강당 [통일민주연합 청년대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제목이 “난장판 짬뽕.”

  이 가운데 처음부터 등장해 있지만 끝날 때까지 관객석을 등진 채 김일성 초상만 그리고 있는 남자가 있다. 조선호. 남, 55세, 화가, 조목란의 아버지, 평양生, 청진거주, 평양말. 그러니까 목란 언니 조목란이 어코디어니스트로 조대자의 집에 가서 조태산에게 기타와 아코디언을 교습하는 짬짬이 집안일도 도우며 돈을 벌고 있는 거다. 이 아버지를 데려오든지, 자신이 청진으로 돌아가든지 혹은 직접 가서 직접 데려오려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극은 남쪽의 천민자본과 북쪽에서 온 사람들의 극성 우경화 같은 것을 모두 포함시킬 수밖에 없고, 판이 커져 드디어 난장판이 되어 버린다.

  근데 설마 인기 극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김은성이 자기 작품을 이렇게 끝까지 정신 사납게 내버려 두겠어? 천만의 말씀이지. 난장으로 시작해 결말은 쓸쓸할지니, 기대하시라.


  <뻘>은 김은성의 출생지 전라남도 보성 근처 벌교를 무대로 1막부터 3막까지는 1980년 봄에서 1981년 여름까지. 3막 후반부터 4막은 1991년 겨울에서 다음해 봄까지. 1980년 봄의 전라남도라면 광주항쟁을 피할 수 없겠지? 맞다. 피할 수 없다. 그것, 항쟁과 관계없이 또는 어느 정도 관련은 있지만 새로운 대중예술을 하고 싶은 청년들과, 이곳 출신으로 잠깐 다니러 간 당대의 가수와 작곡가. 두 세대 간의 갈등도 있겠고, 화해도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결론은 아마도 안 읽으셨겠지만 비엣 타인 응우옌이 쓴 <방관자>와 비슷하다. 뭔지 안 알려드린다.

  <달나라연속극>을 재미있게 읽었다. 옥탑 단칸방에 사는 엄마-아들-딸, 그리고 아래층의 대학생 사이의 관계극. 작품의 주제는 내가 자주 하는 말과 같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희곡집이 그리 인기가 많지 않아 사서 읽어보시라는 말은 못 하겠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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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3-20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5별 4별은 과한데 그렇다고 차마 3별은 너무한 것처럼 보여서리...

stella.K 2026-03-20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게 함박꽃나무라니! 예쁜건 아니지만 탐스럽고 후덕하게 생겼다고나 할까요? ㅎㅎ 암튼 우리 남한식 이름이 좋은데 목란이 뭡니까, 목란이가. 이담에 혹시 개를 다시 키우게되면 목란이라 붙여주갔습네다. ㅋㅋ

Falstaff 2026-03-20 15:44   좋아요 1 | URL
맞습네다!
주체사상 울부짖던 인간이 할 얘기임둥? ˝천한 조선말˝이라니 말입지. ㅎㅎㅎ
정말 우리말 좋지 않아요? ‘함박꽃나무‘ 아휴, 목란 이딴거 백만 개하고 절대 안 바꾸겠습네다! ㅋㅋ

:Dora 2026-03-20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뻘을 남산예술센터 에서 봤던 기억이 났네요~

Falstaff 2026-03-20 17:26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까? 아후, 부럽네요. ^^
 
에티오피아 구지 G1 딤투 함벨라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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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미 좋아합니다. 맛있....기 바랍니다. 좋으면 연달아 벌컥벌컥 마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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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3-19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숭늉이 아닙니다.

유부만두 2026-03-19 09:20   좋아요 1 | URL
볶은 콩 우린 물입니다

Falstaff 2026-03-19 20: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걍 후루룩 마시면 됩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6-03-19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산미 많은 커피 반가워요
구매하러 갑니다^^

Falstaff 2026-03-19 20:03   좋아요 1 | URL
저도 약간 신 멋이 나는 게 좋더라고요! ㅎㅎ
 
강변의 조문객 쏜살 문고
메리 셸리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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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셸리, 하면 당연히 <프랑켄슈타인>. 정말 다양하게 변질된 모습으로 유년 시절부터 경험한 캐릭터라서 오히려 작품을 읽지 않게 되는 명작. 그러나 귀동냥으로 한 번 읽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프랑켄슈타인>을 쓴 작가. 하지만 오히려 이 작품이 작가 또는 독자에게 난처한 허들로 작용할 수 있으니, 독자는 메리 셸리의 다른 작품을 읽을 때에도 당연히 <프랑켄슈타인>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단편소설도 마찬가지.


  《강변의 조문객》은 단편소설 아홉 편을 실었다.

  이 책뿐 만 아니라 메리 셸리를 읽기 전에 독자가 감안해야 했던 것은 이이가 18세기 말에 태어나 19세기 전반을 살다 간 작가였다는 점. 제인 오스틴의 딸 뻘이지만 윌리엄 새커리, 찰스 디킨스, 브론테 자매의 이모 뻘이다. 이걸 감안하지 않으면 작품이 어떨 것 같을까? 당연히 조금 촌스러울 수 있다. 지금부터 2백년 전에 쓴 소설이니 어쩌겠어?

  지금 읽기에는 너무 오랜 스타일이다. 2백년 전에 읽었더라면 재미 있었겠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21세기에는 아니다.

  게다가 머리 속에 들어 앉아있는 <프랑켄슈타인>의 그늘.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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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3-19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메리 샐리의 최후의 인간을 읽으면서 천재가 몰락하는 걸 보는듯했어요. 프랑켄슈타인을 쓴 어린 천재가 다른 사회적 경험을 모두 차단당했을 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치만으로는 부족한 인간사의 다양한 디테일을 살려야 할때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차단당한 이가 결국 할 수 있는건 딱히 없구나 싶었어요. 메리 샐리는 지금 태어났다면 정말 역사에 길이 남는 대작가가 되지 않았을까싶어 안타깝더라구요.

yamoo 2026-03-19 09:19   좋아요 1 | URL
프랑켄슈탕인...한 작품으로도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ㅎㅎ
대표작이 넘사벽이면 다른 작품들은 모두 아쉬울 수밖에 없겠죠..^^;;
 
순수한 피 알라트리스테 시리즈 2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권미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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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베르테의 알라트리스테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첫 작품인 <루시퍼>의 독후감에 내가 “레베르테의 대표적 작품” 운운했는데, 이제 그건 취소를 해야겠다. 출판사 책 소개에 당연히 들어가 있는 표현이라서 쓴 건 아니고, 일단 1편 <루시퍼>가 꽤 그럴 듯하게 시작을 해 시리즈가 가면서 스토리가 더 확장되면 꽤 근사하리라 여겨 출판사가 주장하는 작가의 “대표작”이란 표현을 옮긴 것이었다. 이제 두번째 작 <순수한 피>를 읽은 다음엔 설마 이 정도면 이름이 알려진 한 작가의 대표작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저 심심풀이로, 카페에서 연인을 기다리는데 무료한 참에 카페 책꽂이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어서 연인이 도착할 때까지 슬슬 넘길 정도의 책 수준을 조금 넘긴 정도. 목욕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에 책상에 정좌해 읽는 것이 옳다, 이렇게 말하면 곧바로 신경정신병동으로 후송 당할 수 있는 책.

  그리하여 1부 <루시퍼>에서 했던 말, “나는 “알라트리스테 대위” 연작을 나온 데까지 달려볼 생각이다.” 이건 지금 확실하게 취소한다. 두 권 읽었으면 됐다. 레베르테, 좀 지나서 딱 한 번만 더 보자. 아니면 말던가.


  1부에서 영국의 이교도 왕실과의 문제를 해결한 알라트리스테.

  기억하실 턱이 없어서 요약을 해드리면, 대귀족과 왕실 비서 알케사르가 두 검객, 알라트리스테와 시칠리아에서 온 괄테리오 말라테스타한테 마드리드로 들어올 두 영국 귀족에 대한 특정한 조치를 의뢰한 후, 곧바로 같은 자리에 종교재판관 보카네그라가 들어와 특정 조치 말고 아예 영국인들을 처단하라고 다시 의뢰한다. 두 검객, 말이 좋아 검객이지 쉬운 말로 청부업자는 돈을 더 주는 보카네그라의 의뢰를 우선으로 여기고 그들을 만나 싸움을 벌인다. 근데 알라트리스테가 자기 상대 영국인의 희생정신이 감동하는 일이 벌어진다. 깊은 인상을 받아 그들을 살려주어, 결과적으로 스페인과 영국 왕실 사이의 관계가 더 좋은 상태로 유지된다.

  하지만 알라트리스테의 덕분으로 스페인은 조금 더 명망있는 나라가 될 수 있었으나, 왕실비서 알케사르와 종교재판관 보카네그라, 자신의 임무 수행을 방해한 말라데스타는 알라트리스테에게 깊은 원한을 갖게 되고, 2부 <순수한 피>에서 이를 갚아주려 음모를 짠다.

  그러니 이 책은 1부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시리즈. 물론 사건은 권 별로 개별적이라 볼 수 있지만 해당 사건이 왜 일어나는지, 왜 자유스러운 음모인지 알기 위하여 그렇다는 말이다.


  시작은 시대-추리물 답게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에서 투우경기가 있는 날 새벽에, 산히네스 성당 앞에 한 인력거가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부에서 알라트리스테가 궁중 귀족들을 만나게 해주는 사람이 순찰대장 마르틴 살다냐.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가 먼저 등장한다. 인력거 안에 죽은 사람이 하나 타고 있었거든. 그래서 지금 심통이 대단하다. 사건 때문에 여차하면 투우 축제를 볼 수 없을 수도 있으니. 시신은 이제 갓 50대에 접어든 노파. 사인은 목졸라 죽인 교살. 놀랍게도 시신의 손에 금화 50에스쿠도가 쪽지와 함께 쥐어 있다. 메모는 “미사를 올려서 명복을 빌어 주십시오.”라는 짧은 내용.

  이 쉰 살의 노파가 누구인지 앞서 말하면 재미가 없을 텐데, 뭐 설마 이 책을 몇 명이나 읽어보실 것이며, 읽더라도 읽기 전에 내 독후감 먼저 참고하실 분은 없으리라 생각해 무책임하게 알려드리자면, 놀라지 마시라, 수녀원에서 포주 역할을 하는 여자이다.

  시대는 1623년. 왕 필리페 4페는 그저 사람만 좋아 정무와 외무, 내무 같은 거엔 다른 비서관들에게 전권 위임하고, 사법은 거의 종교재판관들한테 넘겨주어, 남고 남는 시간에 프랑스에서 얻은 젊은, 아니, 어린 아내와 속닥거리기나 하고, 좋은 먹거리와 즐길거리만 파고 살았다. 그래서 당연히 궁정의 거의 모든 고귀족들은 왕을 장난감이나 유아기 소년으로 취급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부정부패, 매관매직, 기타 나라가 거덜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무엇일까 골몰하기에 이른다. 날이 갈수록 망해가는 스페인. 이를 지켜보기 힘들어 올리바레스 백작이 현재 스페인 성직자와 귀족의 돈줄인 이탈리아 제노바 은행 대신 신대륙과의 무역을 통해 금을 모은 포르투갈 은행과 협력해서 스페인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니고 그리 멀지 않은 훗날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탐관오리들에게 모함을 당해 불운한 말년을 보낼 예정이다. 이 책이 올리바레스 백작이 전성기 무렵이라 생각하면 된다.


  종교재판관으로 대변되는 기존 권력자들 입장에서 보면 올리바레스가 눈에 가시이다. 그리하여 멀리 보면 그를 제거하기 위해서, 짧게 보면 포르투갈 금의 국내 유입을 막아 제노바 금에 의한 스페인 지배를 유지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는 게 있으니, 바로 얼마 전에 영국 왕실의 왕자 일행의 목숨을 살려준 알라트리스테를 제거하는 일. 이 일은 또 당시에 벌인 칼싸움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시칠리아 검객 말라테스타의 협조를 헐한 값으로 얻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꾸민 일. 아도라시온 베니타 수녀원에 들어가 있는 발렌시아 여인 엘비라 델라 크루스를 지목했다. 이 수녀원의 실제적 주인은 후안 코로아도 수사와 훌리안 가르소 수사이다. 후안은 성당 전속 사제로 수녀원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훌리안은 고해 수사. 둘 다 젊고, 키 크고, 멋지게 생겼으며 귀족의 자제. 사실 이 즈음 귀족의 자제들이 수사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쟁에 나가지 않기 위하여 그랬다는 것이 작가 레베르테의 주장인데, 어려서부터 최고로 좋은 교육을 받아 마음 속에 악마가 들었더라도 입으로는 천사의 말을 나불대는 재주가 있어서, 수녀원의 수녀들을 몽땅 최면에 걸거나, 최면에 빠지지 않는 일부 수녀와 견습수녀한테는 지독한 가스 라이팅을 해, 후안의 경우, 자신과 살을 맞대는 것 자체가 천국에 다가가는 일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했으며, 고해수사 훌리안은 별것도 아닌 죄, 수녀원 안에서 죄를 지으면 얼마나 무거운 죄를 짓는다고 그걸 보속하기 위하여 자기 앞에서 홀랑 누워 있게 만드는데 선수였다.

  발렌시아 귀족의 딸 엘비라 델라 크루스가 이 수녀원의 수녀. 정신이 좀 말짱했는지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아버지한테 말했고, 이에 열을 잔뜩 받은 아버지와 오빠, 동생이 칼을 벅벅 갈더니 마드리드로 쫓아와 먼저 궁정시인이자 한 시절 용감한 군인이었으며, 한 시절 칼과 단검과 권총 사용에 도가 튼 절름발이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를 찾아온다. 1부를 읽은 분은 아실 터. 알라트리스테와는 둘도 없는 전우 사이.

  케베도가 억울한 사연을 듣고 이들을 알라트리스테와 연결시켜주고, 비록 많은 보수를 요구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케베도의 부탁이라 성공하기가 매우, 매우 힘든 수녀원 공격을 감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리 날고 기는 알라트리스테도 몰랐던 것이 있었으니, 자신한테 원한을 가진 말라데스타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을.


  쉽게 말해, 말라데스테와 그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적인 종교재판관 보카네그라 신부는 벌써 이들이 수녀원의 담을 넘을 것을 알고 단단한 경비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당연히 알라트리스테, 케베도와 델라 크루스의 세 부자에 의한 수녀원 공격은 섬멸되고, 이 와중에 델라 크루스의 열여덟 살 먹은 막내 아들은 심한 상처를 입어 죽고 만다. 그리고 작품의 화자, 열세 살의 이니고 역시 말라데스타에게 포로로 잡혀 톨레도의 종교재판 형무소로 들어가니 이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화형.

  왜 하형인고 하면, 엘비라 델라 크루스 수녀의 조상이 개종 유대인. 게다가 포르투갈 은행의 중요한 핵심인물이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순정하지 못한 피, 즉 유대인, 아랍인들을 극도로 박해하던 시절이라 유대인이 수녀원에 들어갈 수 없었고, 종교재판관은 이를 당연히 유대교에 의한 기독교 오염 의도로 해석해버렸다. 이니고를 잡아야 이니고를 미끼로 알라트리스테를 엮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몇 달 동안 톨리도 형무소에 잡아두고, 결국 화형대에 묶어 태워 죽이려 했던 것.

  근데 시리즈에서 주인공 급 화자가 설마 도중에 불에 타 죽기야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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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3-1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 있어요. 시리즈 3권인가 있는데,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만...별 3개면 읽지 말고 처분해야 겠습니다.ㅎㅎ 진짜 너무 읽을 책이 많아요..ㅜㅜ

Falstaff 2026-03-18 15:11   좋아요 0 | URL
집에 책이 있으면 1부 <루시퍼>만 읽고 어떤 책인지 감만 잡으셔요. 그냥 처분하기는 아깝잖습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