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 바디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8
헨릭 시엔키에비츠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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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유명한 영화. 오래 전, 연말연시에 연휴 3일 있던 시절, 연휴 기간에 TV만 틀었다하면 어느 채널이건 간에 일 년에 한 번은 구경할 수 있던 영화. 로버트 테일러와 데버러 커가 주인공 비니키우스와 리기아 역할을 했던 바로 그거. 근데 <쿠오 바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에 다 본 기억이 없다. 하도 오랜 세월 조금 조금씩 보다보니 장면이 연결되어 마치 다 본 것처럼 착시를 일으켰던 것. 영화 자체도 그리 재미가 없었던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마 그랬던 거 같다. 그리하여 <쿠오 바디스>를 여태까지 작가의 이름은 모르지만 스페인 사람이 썼을 거라고 짐작해왔던 것인데(왜 스페인이라고 생각해왔는지 나도 모르겠어!), 놀랍게도 폴란드 작가의 작품이다. 그것도 1905년이긴 하지만 어쨌든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내겐 철저하게 무명씨인)헨릭 시엔키에비츠. 이 책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8/129호. 비교적 앞 번호라 초판이 2005년 12월. 내 책은 2009년 8월 초판 5쇄. 일단 5쇄니까 좀 팔린 책이란 얘긴데 왜 난 읽을 생각을 여태 하지 않았을까. 암만해도 영화 탓인 거다.
 아직 이 책 안 읽어보신 분, 거수. 놀라지 마시라. 겁나 재밌다. 두 권에 1천 쪽 넘는 분량인데 하루 종일 책만 읽는다고 가정해도 이틀 동안 밤마다 쐬주 한 병 마실 수 있다. 한 번 책을 들었다하면 도무지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얼굴에 물만 칠하고 읽기 시작하면, 때 돼서 밥만 먹고 오후 일곱 시까지 하루에 한 권 독파 가능. 내 연세에 눈이 침침해 나흘 걸렸지 그거만 아니었으면 이틀이면 뚝딱 해치운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떤 종류의 책인지 아시겠지?
 남자 주인공 로버트 테일러 비니키우스는 옛 집정관의 아들이면서 장교로 오랜 소아시아 원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온 청년. 귀향 도중에 약간의  부상을 당해 은퇴한 장군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의 집에서 치료를 받느라 세월을 좀 죽이는데 (폴란드 민족임을 은유하는)북부 유럽의 친 로마 성향을 띤 리기족族에서 인질로 와 훌륭한 아울루스와 정숙한 폼포니아 그레키나 부부의 양딸 정도로 잘 자란 아가씨 ‘리기나’에게 홀딱 반해버렸다. 다친 것을 다 치료하고 이제 로마에 남은 유일한 혈육인 외삼촌 페트로니우스를 방문해 리기나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 고민을 털어놓자, 삼촌이 직접 아울루스 장군을 방문하여 리기나를 품평한 다음, 곧바로 황제 네로를 찾아가 리기나는 인질로 로마에 와 있는 것이라 황궁에서 보호하는 것이 옳다고 고하여 아가씨의 충실한 자유인 신분의 하인 우르수스를 동행해 입궁하게 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여기서 주인공 비니키우스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또 다른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외삼촌인 페트로니우스(1권 표지에서 나신의 여자가 키스를 퍼붓는 조각상의 주인공이 바로 페트로니우스). 애초부터 종교에는 정말 관심이 없는 나는 이 책, 페트로니우스 한 명을 읽기 위해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쾌락주의자. 회의주의자. 이 정도로 소개할 수 있는 사람. 다시 한 번 얘기하는데, 난 정말로 종교, 특히 기독교에 관해선 관심이 없다. 그래서 서양 역사에 가장 큰 비극은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와 분방하고 자유스럽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헬레니즘 문화가 뚝 부러졌다는데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페트로니우스, <쿠오 바디스>의 진정한 영웅이자 주인공인 이 인물이 헬레니즘의 축복을 받은 마지막 인물 비슷하다. 시, 음악, 연극 등에 달통하고, 세 치 혀를 적재적소에 촌철살인으로 날릴 줄 알고, 뛰어난 인물 중에서도 주머니 속의 송곳 같은 이. 네로에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는 당대 유일한 인물.


 “폐하. 앞으로 만수무강하시더라도 제발 대중 앞에서 노래는 하지 마십시오. 양민을 학살하시더라도, 아무튼 시는 쓰지 말아주십시오. 사람들을 독살하시더라도, 부디 춤은 추지 마십시오. 또다시 불을 지르시더라도, 부탁이니 그 서투른 키타라 연주는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폐하의 벗이자 ‘고상한 판관’인 페트로니우스가 폐하께 드리는 충고입니다.”


 내가 비록 종교엔 아무 관심도 없지만 이 책에서 묘사하는 초기 기독교를 읽고 느낀 것이 많았다. 한 마디로 숭고함. 희생. 헌신과, 무엇보다 사랑.
 카타콤. 그리스에서 온 다신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비의적秘儀的 진리를, 위로는 위성국가의 공주님부터 로마 집정권의 아드님에 이어 저 아래로 노예들, 거기다가 황제의 근위병사까지 자신의 생명을 바쳐 받들어온 기독교. 정확하게 얘기해서 AD 60년대 초기의 카타콤. 로마의 학정 속에서 미미한 카타콤을 기반으로 생명력을 이어온 기독교. 비록 유물론자를 자임하는 나는 종교란 '의식의 아편'임을 주장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위대한 종교.
 그리스 로마의 신들이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정점에서 등장한 기독교. 또는 예수. 그래, 여기서도 문제는 권력이다, 권력. 주피터, 헤라를 위시한 숱한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의 다신을 모신 최고의 전성기가 바로 네로 시대. 전성기라 함은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내리막길밖에 없다는 얘기. 맞지? 서양세계에서 내리막길을 대체할 종교로 ‘사랑’을 얘기하는 기독교가 자리 잡은 것도 참으로 기막힌 행운이며, 그걸 넘어 기적이란 것. 이것도 맞지? (이 책에서 묘사한 작가의 모든 것이 옳다면)초기 기독교가 보여준 순결, 순응, 청빈의 미덕이라니! 그러나 참 얘기하기 힘든데,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권력이라는 거.
 주피터를 정점으로 무수하게 나열된 그리스 로마의 신들이 그들의 권력을 사용해, 카타콤에서 비롯한 겸허한 기독의 정신을 박멸하려 할 때가 전성기였듯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승인한 3세기 이후 근 1,700년 동안 기독교의 전성기 아니었나? 그동안 쾰른에선 무려 700년 동안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대성당을 건축하였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오늘도 공사 중이다. 만일 기독교의 하느님이 정말로 있다면 그분이 쾰른이나 바르셀로나에서 벌어졌고 벌이고 있는 겁나게 화려하고 겁나게 비싼 건축물을 보고 정말 좋아할까? 대한민국에 모텔의 수만큼 많은 개신교 교회의 난립도 자신을 위한 봉헌으로 여기고 있을까? 나는 왜 이런 것들이 초기 기독교 시절의 그리스 로마 신들을 보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느끼지? 종교의 순결이 아니라 종교가 갖는 권력이 진짜 문제라니까. 교회의 권력, 교회 내에서의 권력, 다 마찬가지다. 어디서나 일단 권력을 갖게 되면 그까짓 겸손과 순결과 순응과 청빈을 뭐 하러 귀찮고 고생스럽게 짊어지고 다니겠느냐 말이지. (아직도 목자의 품에 안기지 못한 집 나간 검은 양 한 마리의 의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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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바르와 페퀴셰 1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33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 책세상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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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에서 플로베르 연구로 석사와 박사를 한 전인혜의 역작力作이자 역작譯作. 일찍이 플로베르를 공부하면서 왜 하필 플로베르를 시작했을까, 후회하고 지루해지고 느슨해졌을 때 이 <부바르와 페퀴셰>를 발견하고는 눈이 번쩍 띄었다고 책 뒤편의 역자소개에 썼다. 그러면 적어도 이이의 <부바르와 페퀴셰>에 대한 애정은 충분히 짐작하고 남을 듯.
 내가 읽어보니까, 이 책은 한 번 읽어서는 제 맛을 알기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읽고 한 십 년 지나 다시 한 번 읽어야 이 우울한 명상형 은둔자 플로베르가 가난에 찌든 말년에 접어들어 마지막 작품으로 왜 이 책을 쓰고, 기어이 미완성으로 생을 마감했을지 짐작이나마 할 수 있겠다.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 난 엉뚱하게도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주제페 베르디가 여든 살이 넘어 자신의 마지막 작업으로 만든 셰익스피어 원작의 희극 <팔스타프>를 떠올렸다. 베르디와 동시대를 살다 간 플로베르도 자신의 마지막으로 슬픈 희극 <부바르와 페퀴셰>를 선택했다. 평생을 살고 이제 황혼이 찾아와 문득 돌아보니 그거야말로 정말 코미디, 한 판 웃긴 인생극이었더란 깨달음이라도 있었을까? 베토벤도 마지막 죽음의 침상에서 “여봐, 희극은 끝났어!”라고 말하고 숨을 거두었잖은가. 이렇게 희극의 힘은 대단하다. 진정한 슬픔이 없는 희극은 희극이 아니라서.

 

 생 마르탱 운하의 두 수문이 있는 부르동 거리. 한 여름의 일요일에 두 사람이 나타난다. 바스티유에서 한 명이 오고, 다른 이는 식물원 쪽에서 걸어와 하필이면 같은 벤치에 앉아 똑같이 모자를 벗어 각자의 옆에 놓았다. 키 큰 사람의 모자 속에 ‘부바르’라는 글자가 씌어있고, 상대적으로 작은 남자의 모자 속엔 ‘페퀴셰’란 글자가 적혀있어, 이 두 싱거운 남자들은 동시에 아, 당신도 모자 속에 이름을 써 놓는군요. 이런 우연이라니, 이거 반갑기 짝이 없습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어디 가까운 곳에 가서 곱창구이에 쐬주나 한 잔 하실까요? 이런 절차를 밟아 친구가 된다. 한 잔 술에 마음을 터놓으니 참 이런 우연은 하늘이 만들어준 것이라 같은 필경筆耕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이고, 나이도 마흔 일곱으로 같고, 부바르는 삼촌한테 종자돈을 얻어 상점을 차려 좀 여유 있게 사는 남자였으나 결혼하자마자 아내가 금고 속의 현금과 보석들을 홀랑 들고 꽁무니를 빼버린데다가 타고난 게으름 덕택에 지금은 홀아비 신세고, 페퀴셰는 여자 알기를 호환, 마마쯤으로 여겨 독신을 주장하고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놀라지 마시라, 52세 넘어 까지 숫총각 상태를 유지하고 있게 된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나이 마흔일곱이면 은퇴까지 삼년 밖에 남지 않은 상태인데, 은퇴를 하고 나면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시골에서 여유롭게 은인자적하고 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책 2권의 384쪽엔 이렇게 설명을 해놓았다.

 

 “부바르는 항상 말horse과 모든 여행 장비, 부르고뉴 지방의 특급 포도원, 그리고 화려한 저택에 친절하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소유하고 싶었다. 페퀴셰는 철학적인 지식에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 특별한 사람들이 몇 있는데, 부바르도 그런 족속 가운데 한 명이라서 여태까지 삼촌인줄만 알았던 은인, 은인은 은인이지, 상점을 차려 그런대로 여유롭게 살게 종자돈 대준 사람이니까, 하여간 그 삼촌이란 사람이 알고 보니까 자신의 생부라는 거였으며,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생부가 죽으면서 유서에 그동안 직접 돌봐주지 못해 미안한 감정을 가득 담아 호적상 친아들 말고, 호적상 조카, 생물학적 맏아들한테 전 재산의 절반을 뚝 떼 주었다는 편지를 공증인으로부터 받았던 거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부바르는 부르고뉴 지방의 농장과 저택을 구입하고자 했으나, 아이고, 돈이 조금 모자란다. 이 이야기를 들은 페퀴셰는 자신의 전 재산을 홀랑 보태 부바르의 꿈을 이루어지게 해주고 자신도 은퇴하면 곧바로 합류하겠다고 선언했으나, 부바르가 천성적으로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깟 삼 년도 남지 않은 은퇴, 지금 당장 해버리라고 강권하여 드디어 둘이 함께 칼바도스로 낙향하는데 성공한다. 칼바도스.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외투 주머니에 손을 질러 넣고 안개가 잔뜩 낀 한밤중에 돌다리를 건너다 우연히 마주 걸어오는 한 여인 조앙 마두를 만난 라비크가 주점에 들러 주문하는 술. “술을 주시오. 쓴 술을 주시오.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는 매우 쓴 술이 아니면 안 되오. 칼바도스로.” 1992년 잠실 롯데호텔 바에서 미친 척하고 칼바도스 한 병 주문해 조그만 한국 남자 둘이서 앉은 자리에 한 병을 다 마셔버리니까 옆 자리에 앉아있던 거구의 백인들이 멀뚱멀뚱 쳐다보던 바로 그 술. 쓰긴 정말 오지게 쓴 술이다.
 바로 칼바도스의 쓴 맛. 부바르와 페퀴셰를 기다리고 있는 전원생활의 맛이다. 제일 앞에서 이 책을 나는 ‘슬픈 희극’이라고 단정했고, ‘진정한 비극이 없는 희극은 희극이 아니다’라고 허튼 소리를 했다. 인생의 차분한 마지막 단계를 준비하기 위해 부르고뉴로 내려온 두 장년. 이들이 장년을 넘어 노년에 이르도록 부르고뉴의 칼바도스에서 그들을 순서대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온갖 실패의 연속이다. 도착하자마자 토질과 토양을 핑계로 온갖 불평만 해대는 소작인을 해고하고 스스로 농사를 짓고,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고, 당연히 과수원도 하려는 주인공들. 평생 사무실이나 상점에서 물건을 팔거나 필경을 해온 이들이 아무런 경험도 없이, 현지인들의 불순한 호기심어린 눈길에 싸여 시도하는 것은 농업, 화훼, 수목학 전문 서적. 철석같이 믿고 책에 나온 대로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가지치기를 하고, 피를 뽑고, 별 난리를 다 부려도 두 명의 도시인이 한 일 년 농사는 완전 폭망. 그들의 ‘은퇴 후 활동’은 이제 농사에서 화석과 지질학으로 바뀌고, 다시 문학과 연극으로, 병자에 대한 치유법으로, 하여간 온갖 방향으로 개구리 뜀박질 하듯 하는데, 독자가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는 귀엽고 슬픈 실패들로 완전하게 점철된다.
 그래, 그게 사는 방법이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몇 번이나 여행했던 부유한 청춘이었던 플로베르가 이제 병상에 누워, 조카딸의 파산을 면해주기 위해 마치 고리오 영감처럼 선택한 자발적 가난에 허덕이며, 동네에 있는 마자린 도서관의 명예직에서 나오는 약간의 수입과 미미한 수준의 연금에 기대 마지막으로 자기 인생을 돌아보니 부바로와 페퀴셰가 저질렀던 것처럼 완전한 실패의 연속에 불과했던 것. 자신의 눈엔 그렇게 보였겠지. 지나고 보니 그저 한 바탕 코미디로. 그리하여 미완성 유작이 출판된 지 130여 년이 흘러 작품을 읽는 저 아시아 변방의 사내도 부바르와 페퀴셰가 벌이는 칼바도스 맛의 실패를 보며, 그래, 그게 사는 거야, 오늘 밤에도 쐬주 한 병 해야겠다, 라고 마음먹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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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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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알제리에 파견나간 프랑스 군인 드강 대위가 현지 왕족의 따님 한 분과 연애를 하더니 딸을 낳았다. 왕족의 따님은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안타까운 명을 다해, 아무리 식민지라도 남의 나라 땅 알제에서 남자 혼자 젖먹이를 키우기 난감한 장교는 두 살 먹은 딸을 데리고 잠깐 귀국, 베르농에서 잡화상을 하는 사촌누이 라캥 부인을 찾아와 어린 딸 테레즈를 맡기고 다시 알제리로 갔다가, 곧바로 전사해버렸다. 테레즈는 군인 아버지와 혈통 좋은 왕족 엄마를 닮아 튼튼하고 씩씩한 떡잎을 자랑하는 건강한 소녀로 자라났다.
 라캥 부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찍이 아들 하나만 둔 과부인데, 테레즈보다 두 살 더 먹은 아들 카미유가 어려서부터 도무지 알통이란 것을 찾아볼 수 없어 늘 병치레를 해야 했다. 그래서 늘 약을 먹어야 하는데, 불쌍한 카미유가 약을 먹지 않겠다고 징징거리는 걸 마음이 약해 억지로 먹이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던 라캥 여사는, 테레즈더러 카미유하고 같이 약을 먹으라고 은근히 달래서 천애고아 카미유도 약을 먹게 하는 잔머리를 몇 년 동안이나 굴려, 이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고 튼튼하기만 한 테레즈 역시 매일 한 움큼의 약을 입 안으로 털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골골거리는 카미유와 어려서부터 한 방에서 잠을 잔 테레즈는 본능적으로 카미유와 결혼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숙명을 체득하고 있었다. 평생 골골거리는 카미유의 병수발을 할 별자리를 타고났다는 걸. 이 결과로 몸과 마음이 튼튼 강건했던 테레즈는 몸은 몰라도 정신적으로 어딘가 좀 이상한 강박에 휩싸인 청춘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카미유와 테레즈가 점점 자라 각 스무 살, 열여덟 살이 되고 이제 각방을 쓰게 되었을 때, 라캥 부인은 카미유에게 테레즈가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는 결혼할 수 없다고 선언을 하고, 기어이 그때가 될 때까지 굳세게 기다렸다가 스케쥴에 따라 둘을 결혼시켜버린다. 아무 사랑의 감정도 없이 그냥 그렇게 되기로 예정했던 거니까. 그리고 곧바로 라캥 집안은 베르농에서 25년 동안 운영해온 잡화상과 살림을 접고 파리의 습기 많은 지역, 퐁네프 파사주로 옮겨 역시 작은 잡화상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좁고, 습기 많고, 어두컴컴하고, 끈적이고, 냄새나는 지역. 프랑스 소설 가운데 퐁네프 지역이 가끔 등장한다. 밤이 깊으면 주로 도둑떼, 거지들, 적어도 노숙자들이 행인을 협박하여 금품을 갈취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음습한 지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얼핏 쥐스킨트의 <향수>가 떠오른다, 이 책에서도 결코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 불쑥 나타나는 카미유의 어릴 적 소학교 친구 로랑. 적당한 키에 완강한 몸매와 두텁고 짧은 목. 솥뚜껑만한 손바닥의 건강체질. 일찍이 아버지가 파리로 보내 대학공부를 시켜주었지만 짜식이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등록금 가지고 그림 그리는 친구들하고 몇 년 잘 때려 먹었다가 아버지한테 들켜 거의 부자의 연이 끊어지고 만 처지다. 서양의 아버지는 이렇게 겁난다. 한 번 삐딱하면 부자지간도 그걸로 끝. 심지어 로랑이 결혼하겠다고 허락해달라고 편지를 보내자, 베르농의 농부 아버지가 답장을 하길, 결혼을 하든지 목을 매달든지 선생님 마음대로 하세요.
 자, 냄새 나시지? 건강체질의 테레즈와 시들시들, 골골한 남편. 그리하여 결혼은 했지만 숫처녀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젊디젊은 테레즈의 눈에 근육이 불뚝불뚝한 로랑이 들어온 것. 로랑도 한 눈에 보니까 별로 예뻐 보이지는 않지만 묘하게 끌리는 테레즈의 무뚝뚝한 모습이 눈에 삼삼한데다가 여인을 품어본 지 하도 오래라 밀려오는 욕정이 뿜뿜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그래. 당연히 교통사고 난다. 거의 매일 카미유의 집에 찾아오던 그가 어느 날 하루 방 안에 테레즈와 단 둘이 남겨진 잠깐의 순간, 그녀의 허리를 부여안고 깊게 키스를 해버리고 만다. 안 돼 이 작자야! 거칠게 반항하는 것도 아주 잠깐. 이내 양 팔을 아래로 축 내리고 근육질의 무자비한 입술을 고스란히, 맛나게 받아들이는 테레즈.
 자, 여기까지.
 이 작품으로 스물여섯 살의 에밀 졸라는 처음으로 문제적 작가의 위치에 올랐다고 한다. 소설 자체를 놓고 당시 비평가들은 비도덕적이네, 더럽네, 말이 많았던 반면, 특히 세잔, 마네, 드가 등의 화가들에겐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는데, 화가들과의 교류는 아시다시피 졸라가 평생을 걸쳐 집필하던 루공 마카르 총서의 한 권이며, 제르베즈 아줌마의 장남 클로드가 주인공 화가로 나오는 <작품>의 출판시점까지 계속된다. (솔직히 <작품> 중에서 클로드를 너무 미친놈으로 그려놓기는 했다. 열받은 세잔이 졸라에게 절교를 선언한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그러니까 졸라는 자신의 문학인생이 막 시작하던 시점인 스물여섯 살부터 소위 자연주의적 작품을 생산했던 것이다.
 그렇다. 지금 나는 <테레즈 라캥>도 자연주의 장르에 포함시켜버렸다. 눈치 빠른 분들은 이 한 단어 가지고 다음 스토리를 짐작할 수도 있으리라. 연애 백과사전 8장엔 남녀가 걸어갈 때 서로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이 나오고, 9장엔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과연 10장엔 뭐가 나올까? 그렇다. 테레즈와 로랑 역시 마지막 10장까지 진도를 빼고, 자연주의 작품에 특별한 감미료인 범죄가 나온다. 무슨 범죄? 다 짐작하시리라 믿음.
 범죄는 또 다른 범죄를 부르는 법. 작 후반에 가면 졸라의 장황한 설명에 좀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분명히 그건 마지막 장면의 정당성을 위해 열심히 준비작업을 하는 것일 테다. 나도 눈치 좀 있는 편. 벌써 짐작하고 남음이 있음에도 젊은 졸라, 참 구구절절 말도 많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범죄의 ‘방법’이 의외이기는 했다. 짐작도 못했다.) 그래서, 그리고,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를 몇 권 읽어본 내 감상으로는, 나중에 졸라가 그야말로 ‘무르익어서’ 어떤 글을 썼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테레즈 라캥>이 그리 훌륭한 졸라는 아니란 의견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다. 대신 젊은 졸라의 팔팔한 미숙(‘졸라의 미숙’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작가적 미숙’이란 말은 절대 아니다. 오해 마시라!)을 구경하는 심정이라면 일독을 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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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람보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계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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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읽은 플로베르. 당연히 <보바리 부인>을 제일 먼저.  이어서 <성 앙투안느의 유혹>과 <감정교육>을 거쳐 <살람보>까지 오게 된다. 앞의 두 개는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책 읽는 것도 컨디션이 중요한 것인지 어쨌는지 하여간 <감정교육>은 읽고 플로베르한테 감정 생겼다. 와 닿지 않았던 것. 새삼스레 다시 읽어볼 정성까진 없어서 다음 작품으로 작가의 최고 히트작 <보바리 부인> 바로 다음에 쓴 <살람보>를 선택했다. 서양 소설을 좀 읽어본 사람들한테 ‘살람보’라고 하면 좀 이국적이면서도 용맹스런 전사를 떠올릴 것 같고, 나도 사실은 그랬는데, 용감한 전사는커녕 동그란 원의 형태로 국경이 그어졌었다고 하는 나라, 카르타고의 최고 집정관 하밀카르 버르카스의 딸이다. 또한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영웅 한니발의 누나이기도 하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역시 19세기 예술인답게 동양에 관한 모호한 호기심과 동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넉넉한 젊은 시절을 보낼 수 있어서 스물일곱 살 때 1년 반 동안 이집트를 위시한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을 답사했던 적이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 시기에 플로베르는 알렉산드리아의 흑인 창녀로부터 그를 평생 괴롭힐 이집트 매독을 방문 기념품으로 얻어 가지고 왔다. 프랑스 땅에서 플로베르가 자신의 기념품인 이집트 매독을 널리 퍼뜨렸는지 아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 병의 후유증으로 고생깨나 했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것도 같은데, 사실 19세기에 매독은 당시 예술가들 일부에겐 결핵과 더불어 은근한 선망이 되기도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지도 않다.
 어쨌든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을 쓴 다음 곧바로 당시의 경험과 노트를 참고하여 차기 작품으로 <살람보>를 구상해 무려 5년에 걸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의 말에 의하면 <보바리 부인>과 같은 서구의 “혐오스러운 현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고대 동양을 선택했다고, 역자 김계선은 해설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인터넷도 없던 당시에 플로베르가 <살람보>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바쳤는지 짐작을 할 수 있다. 파리의 도서관을 이 잡듯 싹 뒤졌을 거 같고, 현지답사도 한 번 쯤 더 하지 않았겠는가 싶을 정도다. 이런 인간이 시대가 바뀌어도 “전설적 인물”로 추앙받는 거다. 자신의 대단한 역량을 바탕으로 끈질긴 노력까지 바치는 사람. 천재는 역량과 노력, 둘 다를 요구한다.
 시대적 무대는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한테 코피가 나게 얻어터진 카르타고가 거액의 전쟁보상금과 시칠리아 섬의 지배권을 로마에게 양도해서, 그 결과 국고가 완전히 거덜이 난 상태다. 거기다가 로마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박 터지게 싸운 포에니 전쟁에서 영광의 준우승을 하기 위해 다수의 용병을 고용했지만, 거덜이 난 나라 살림으로 용병들에게 파이트머니조차 지불해주지 못하는 상태로 전락해버렸다. 전쟁이 끝나고 일단 카르타고에 총집결한 용병 부대들. 다양한 민족/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말 그대로 전 세계 싸움꾼이란 싸움꾼들, 강도, 도적떼 같은 인간들이 모두 모여 어쨌든 전쟁에 참가해 용감하게 싸운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가, 어찌어찌해서 최고 집정관 하밀카르 버르카스의 집에서 패전국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파티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술과 고기를 위장이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들이켜고 뜯어먹은 다음 천생 투사들인 용병들은 하밀카르 집정관이 아끼는 코끼리부대의 코끼리의 코를 싹둑 잘라버리기도 하고, 아무대서나 허리띠를 풀고 용변을 보는 건 물론이며 심지어 자기들끼리 심심풀이로 싸움을 벌이는 난장판을 만들고 있다. 이 때 테라스에서 모습을 보인 살람보. 그녀는 타니트 신을 섬기는데 이 신은 달의 신. 카르타고의 공식 신은 다신교 다알 신(들)으로 해의 신이다. 다알 신은 다들 아시지? 구약성서 속에서 히브리족의 여호수아 신만 만나면 그냥 타도되어 버리는 역할만 하는 신. 신들은 어쨌거나 테라스에서 서성이는 그녀의 모습을 한 번 보고 그만 넋이 나간 사내가 하나 있으니 용병 대장 마토. 그래, 이래야 소설이 된다. 천상의 미모를 갖은 높은 신분의 여인과 용맹하기 짝이 없는 대장 마토. 눈에 불이 튀는 마토는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살람보를 취할 수도 있겠다는 일타이피(一打二皮: 전문용어. 고스톱 칠 때 내 손의 화투장을 쳐서 피 껍데기 한 장 집어오고, 판에 깔린 거 뒤집어 때려서 또 한 장 집어오는 고급 스킬을 일컬음. 동의어, 일타쌍피)의 심정으로 용병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주장하면서 내전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스 노예 출신의 똑똑한 부하대장과 함께.
 이 정도면 내용은 충분하다. 살람보는 사실 책에서 그리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럼 뭐가 분량을 채우는가 하면, 놀랍게도 플로베르의 상상력. 열 살 먹은 한니발을 제외하고는 모든 등장인물, 모든 사건은 다 플로베르의 두뇌에서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책의 70 퍼센트 가량이 전투, 전투원 묘사로 채워져 있어 숨 막히게 긴박한 장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숨 쉴 틈을 주지 않아 읽는 재미를 높여주기도 한다. 내가 왜 거의 전부가 작가의 상상이라고 단정하느냐 하면, 전쟁이란 것이 극적인 반전이 상당히 드물며, 사실 전쟁이 시작하면서부터 거의 대부분 승패를 점칠 수 있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살람보>에선 한쪽이 거의 멸망할 수준으로 떨어졌다가 하나의 계기가 주어져 극적 반전이 일어나고, 그런가 싶다 했는데 또다시 뒤집혀 기적적으로 전세가 재역전이 되는 상황이 자주 나와서 그리 짐작했다. 과연 카르타고에서 제1차 포에니 전쟁이 끝나고 용병들에 의한 내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걸 누가 알랴. 카르타고는 아시다시피 제3차 포에니 전쟁 막바지에 로마에 의하여 아예 민족 자체가 절멸당해 아직도 카르타고가 있었던 정확한 위치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바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480쪽에 이르는 장편소설을 꾸며낼 수 있었던 플로베르의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까지 이르는 것일까. 등장하는 용병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싸움꾼들에게 각자 생김새와 옷차림과 행동양식과 종교 등의 특징을 부여하는데 조그마한 모자람도 없이 상세하고도 그럴 듯하게 묘사하는 플로베르. 참 대단하긴 대단하다. 이런 낭만주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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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 1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이규현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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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책 읽는 재미, 적어도 이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감히 누가 있어 알렉상드르 뒤마와 어깨를 견줄까. 아주 오랜 동안 읽고 싶었던 책인데 마음과는 달리 선뜻 책을 사게 되지 않아 자꾸 뒤로 미루기만 했던 소설. 당연히 소년시절부터 <삼총사>의 축약본, 만화책, 영화 같은 것들 숱하게 봐왔지만 정작 뒤마가 쓴 소설의 완역본은 처음 읽었다. 다 읽은 다음에, <삼총사>는 당연히 완역본을 읽지 않으면 진짜 제 맛을 알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사건이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게, 연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일어난다. 그리고 이걸 축약하여 소년용, 영화 시나리오, (아동용)만화책으로 만들려면, 음모와 악마성과 기타 등등, 성인이 읽기엔 흥미진진할지언정 소년들에게는 선뜻 권하기 힘든 비도덕의 전형이 책을 힘차게 견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로 만들었거나 청소년용으로 다시 쓴 <삼총사>를 보면 거의 대부분 세 권으로 된 이 책의 첫째 에피소드로만 구성된 것이 보통이다. 그야말로 진짜 <삼총사>를 만들어가는 초입만 읽거나 보고 감히 <삼총사>를 읽고 봤네 하는 것이니, 마치 현덕, 운장, 익덕이 분홍빛 복숭아꽃이 만발한 과수원 뜰에서 염소 한 마리 잡아놓고 좋은 술 진탕 때려 마시면서 의형제를 맺는 소위 “도원결의”까지 읽고 나서, 내가 <삼국지연의>를 읽었네, 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니면 자기 형 무대를 독살한 형수 반금련과, 혼인의 침상에서 분탕질을 친 푸줏간 주인이자 용맹하기 이를 데 없는 서문경이를, 무대의 아우 무송이 한 주먹에 때려죽여 복수하는 것까지 읽고, 내가 <수호전>을 읽었네, 하는 것과 같다. 못 믿겠지? <삼총사> 읽어보시라니까.

 

 


 얼마나 재미있는지 세 권에 천 쪽이 넘는 걸 하루에 한 권씩, 그것도 밤마다 소주 한 병씩 마셔도, 사흘에 완파할 수 있을 정도다. 무슨 뜻이냐 하면, 한 번 손에 들었다하면, 낮엔 소위 “뒤마 폐인” 또는 “삼총사 폐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는 거.
 내용이야 뭐 다들 아시는 거니까 여기다 또 주접스럽게 소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완역본을 읽기 전까지 전혀 몰랐는데, 다르타냥과 세 명의 귀족 출신 총사들의 맞수가 처음엔 추기경과 떨거지들이었다가, 나중엔 상대역이 안느 드 브뢰유, 또는 라 페르 백작 부인, 또는 밀레디 드 윈터, 또는 샤를로트 바크송, 사실 네 명이 다 같은 여자인데, 이 신출귀몰하고 눈부신 금발에다가 글래머, 경국지색의 미인과 떨거지들로 바뀐다. 여기서 미인과 그 ‘떨거지’의 범위 속에 놀랍게도 붉은 모자의 추기경까지 포함된다는 사실. 당연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추기경은 추기경 나름대로 어깨에 힘을 팍팍 주고 있으나, 책의 후반으로 가면 틀림없이 그도 밀레디의 떨거지 가운데 한 명임이 분명하다. (책에서는 목적상 추기경이 국왕 루이 13세와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음흉하고 현명한 악당으로 나오지만, 역사상 리슐리외 추기경은 국왕을 도와 왕권의 강화와 확립에 혁혁한 공을 세운 훌륭한 “중세” 권력자였다)
 밀레디. 당연히 영어로 Milady를 일컫는 말일 텐데, 나는 왼쪽 어깨에 백합 문양의 낙인이 찍힌 이 여자만큼 팜 파탈을 본 적이 없다. 앞에서 말했듯 적당한 키에 맑고 흰 피부, 눈부신 금발에 당시 미인의 기준에 딱 맞을 포동포동한 살집과 한 번 봤다, 하면 숨이 넘어갈 때까지 결코 잊지 못할 빼어난 외모에다가 숨 막히는 말솜씨, 순간순간 능란하게 변신하는 순발력과 상대의 심리상태를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파악하는 안광의 소유자. 웬만한 인간이라면(남자는 당연하고 여자를 포함해도) 이 여자와 5분간의 대화만 했다하면 거의 틀림없이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초인간적인 설득력까지, 거의 신 또는 악마의 바로 옆에 그녀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만일 이 여자가 남자였다면? 그리 잘 생긴 사람이 신 또는 악마, 가운데 거의 대부분 악마의 바로 옆에 있을 정도로 악역을 준 인물은 누구? 이거 퀴즈다. 어느 작가가 또 19세기에 있어서 굉장한 미남을 자기 작품마다에 등장시키는데 하나같이 악당으로 만든 소설가는? 궁금하셔? 바로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못생겨서, 잘 생긴 남자한테 자격지심이 있어서 그랬다고 치고, 뒤마는 왜 절세미인한테 이리 야박한 배역을 줬을까? 뭐라? 별 걸 다 가지고 고민한다고? 그렇다. 그냥 놔두자.
 19세기를 프랑스 문학의 역사로 만들기 시작한 알렉상드르 뒤마. 앞에서 말했듯 다른 건 몰라도 책 읽는 재미, 스토리 하나로 독자를 확 잡아당기는 힘에 관해서는 도무지 이이와 어깨를 견줄 작가가 별로 없다. 죽을 고생을 하다가 우연히 무지막지한 거액의 보물을 손에 넣고 복수를 실행에 옮기는 <몽테크리스토 백작>, 완벽한 검정색을 띈 튤립을 만들어낸 <검은 튤립>에서의 펄쩍펄쩍 뛰는 현장감에 이어,

 

 

 한 소설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팜 파탈의 악마적 장악력을 구경하는 일 역시 매우 즐거울 것이다. 물론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등장인물들의 순진성 같은 것이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혹시 알아? 무대가 되는 1620년대의 프랑스에선 사람들이 정말 그리 순진했었는지. 베토벤의 교향곡 악보를 지금 보면 너무 단순해서 깜짝 놀라지만 아직도 감동을 하듯, 우린 알렉상드르 뒤마의 순진한 등장인물들을 보고 여전히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이다. (글쎄, 날 믿으시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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