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비왕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5
알프레드 쟈리 지음, 장혜영 옮김 / 연극과인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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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3년 프랑스 마옌 주 라발에서 태어나 겨우 서른네 살이던 1907년에 파리에서 결핵성 뇌막염으로 생을 마감한 알프레드 자리. 너무 짧게 살다 가서, 아니면 내가 아는 바가 적어서 그런지 크게 성과를 냈다고 하기는 좀 힘들겠다. 열다섯 살이던 1888년에 자리는 렌 고등학교에 입학해, 청소년들이 보기엔 참으로 기발한 인물을 만나게 되니 물리를 가르치던 에베르Hébert 선생이었다. 이 선생을 학생들은 차마 그대로 부를 수 없어 Hébe 또는 Eébe라고 불렀다.
  자리의 학교 선배 가운데 샤를르 모렝이란 학생이 1885년에 이 에베르 선생을 폴란드의 왕으로 변모시켜 <폴란드인>이란 작품을 구상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샤를르의 동생 앙리가 자리와 동급생으로 입학하고, 자리의 글 솜씨를 알게 되자 형의 초고를 보여준다. 자리는 Hébe 또는 Eébe를 위뷔Ubu로 다시 바꾸어 <오쟁이진 위비>의 초본을 쓰고, 이게 몇 번의 변신을 거쳐 <위뷔 왕>이란 희곡으로 탄생한다.
  프랑수아 라블레가 쓴 <가르강튀아>는 “고매한 술꾼 그리고 고귀한 매독 환자 여러분”한테 헌정한 작품이다. <위뷔 왕>을 읽어보면 저절로 <가르강튀아>를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과장은 현저히 덜 하더라도, “배설과 돈, 성과 관계된 표현, 물욕, 식욕, 성욕에 관한 노골적인 묘사가 등장한다.”(역자 해설) 동시에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도 상당한 부채를 지고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렇게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셰익스피어 비극/사극의 구성과 라블레의 희극성을 합해놓은 짬뽕밥의 결과는, 내용의 비극성보다 표현의 희극으로 향하는 것 같다.

 

  폴란드의 방세즐라스 왕에 의하여 백작의 품계를 받은 다음 날, 위뷔 아범은 아내 위뷔 어멈과 자신을 따르는 보르뒤르 대장, 지롱, 필, 코티스 등을 규합하여, 다음날 백작 취임 기념 열병식에 위뷔 백작을 그토록 신임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참석해 자리를 빛내준 방세즐라스 왕과 세 아들 가운데 열네 살 먹은 막내 부그르라스 왕자를 뺀 두 왕자를 시해하고 왕관을 쓴다(역자는 믿는 도끼가 되어 왕의 발등을 찍은 맥베스와 닮았다고 해설에서 말한다). 취임하자마자 국고를 털어 국민에게 창고와 궁전을 열고 음식과 금을 내주어 인기를 끈 위뷔 왕은, 바로 다음 날부터 세금을 두 배, 며칠 있다가 세 배 늘려 착취를 일삼는 한편, 이제 사냥을 끝낸 뒤라 충성했던 사냥개 보르뒤르 대장을 지하 감옥에 유폐해버린다. 동시에 온갖 귀족, 법관, 세무관리 등을 눈에 띄기만 하면 사형에 처해버리는 폭정을 펼쳐 인심을 잃기 시작하는데, 와중에 보르뒤르 대장이 탈옥해 러시아로 건너가 폴란드의 하나 남은 적통 왕자 부그르라스를 왕위에 오르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리하여 러시아의 알렉시스 황제는 군대를 이끌어 폴란드로 침공해 위뷔 왕과 전투를 벌이고, 궁전에서는 부그르라스 왕자가 위뷔 어멈을 내쫓고 왕위를 회복한다. 죽을 고생을 하다가 겨우 목숨을 건진 위뷔 왕은 북해에서 배를 얻어타고 (햄릿이 사는) 덴마크의 엘시뇨 성으로 떠난다는 내용.
  이 작품은 사실 내용보다 위뷔 아범, 위뷔 왕의 행위와 사용하는 언어, 시시때때로 변하는 임기응변과 비겁한 성격, 이를 다 합해 극을 희극으로 몰아가는 <헨리 4세>의 조연 폴스타프 닮은 행동이나, 숨을 한 번 죽인 가르강튀아 같은 모습을 보는 것이 진짜인데, 거 이상하지, 비극에 비해서 희극은 진짜 공연을 보는 것이 더 좋더라는 말씀. 물론 번역 작품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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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13 10: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이 작품은 폴스타프 님 같은 ˝고매한 술꾼˝을 위한 작품이군요! 저도 고매한 술꾼 단계에 올라가면 읽어보겠습니다. 아직은 비루한 술꾼이라... ㅋㅋ

Falstaff 2021-07-13 10:43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술꾼은 고매합지요. ㅋㅋㅋㅋㅋ

stella.K 2021-07-13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치 않아도 궁금했는데 여쭤 보기도 뭐하고
이제야 알았네요. 어디서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ㅋ
웬지 제목이 술 안주가 생각이나는 제목입니다.ㅋㅋ

Falstaff 2021-07-13 12:48   좋아요 1 | URL
아, 이 작품을 궁금해 하시는 분도 계시네요.
진짜 읽어보면 뭘 풍자했는지 몰라서 정신 사납습니다. ㅋㅋㅋ
데친.... 미나리에 삼겹살 올려서 말입니까? ㅋㅋㅋ 너무 더워서요.

stella.K 2021-07-13 13:24   좋아요 1 | URL
아, 아뇨. 폴스타프라는 이름 말이어요.ㅠ
그래도 별점은 네 개를 주셨으믄서...ㅋㅋ

Falstaff 2021-07-13 13:4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그렇군요.
희극을 가지고 노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그랴 보너스로 별 하나 더 주었습지요. ^^
 
레베카 (초판 출간 80주년 기념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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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참. 아 글쎄 누가 레베카가 죽었다고 그래요? 레베카는 영국 또는 세상 어느 구석에서 리모컨으로 맨덜리 장원을 조종하고 있거나, 아니면 드 윈터 가문에 의하여 저 지하 깊은 모종의 곳에 유폐되어 있거나, 하여튼 둘 중에 하나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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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7-12 21: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레베카에 대한 절묘한 생각이십니다.
정말 그런거 같아요~~
저는 레베카의 망령이 씌여있는 덴버스 부인을 노래한 옥주현 뮤지컬 배우가 넘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책으로도 어서 읽어봐야겠어요**

Falstaff 2021-07-12 21:45   좋아요 5 | URL
앗, 뮤지컬로도 만들었군요! 흠... 괜찮겠는데요. ^^

붕붕툐툐 2021-07-12 21:2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어제 강남역 2번 출구에서 레베카 본 거 같아요! 막 이래~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12 21:45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주머니 속의 송곳 같은 툐툐님!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7-12 21: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크- 별 다섯!!!!!

Falstaff 2021-07-12 21:46   좋아요 5 | URL
오, 정말 오랜만에 독자 뒤통수 후려 갈기는 통쾌한 작품이었습니다. 다섯 개 플러스!!

꼬마요정 2021-07-12 21: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레베카는 드 윈터 가문에 과분한 사람이라니까요^^

Falstaff 2021-07-12 21:47   좋아요 5 | URL
ㅋㅋㅋㅋ 드 윈터 집안에서 보면 아닌 밤에 날벼락 맞은 꼴이니까 그게 그겁니다.
하여튼 레베카, 죽여주는 팜 파탈이었습니다. 아우.... 레베카하고 안 살아서 을매나 다행인지요. 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7-12 22: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레베카는 폴스타프님 마음속에 살아 있는 듯 하네요 ~!! 저도 반전 예상 못하고 깜놀했었는데 ㅎㅎ

Falstaff 2021-07-13 08:55   좋아요 3 | URL
옙. 뒤에 가서 화들짝, 세상에... 했답니다. ㅋㅋㅋㅋ
근데 이 작품엔 착하고 용기있는 인간은 우짜 하나도 안 나온답니까?
전부 도라이 아니면 눈치보는 아부꾼, 아, 한 명 나옵니다. 산과 의사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1-07-13 10: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사실 화자보다 레베카가 훨씬 매력적이었어요.... 앗, 레베카가 이 먼 타국의 저마저도 리모컨으로 조종하고 있는가 봅니다!

Falstaff 2021-07-13 11:02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
이 책이 매력적인 건, 다 잠재적 악당들이란 겁니다. 그래 더 사람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요. (심지어 바보 벤 마저 착하지 않더군요.) 화자는 바보, 소심의 극치, 비호감입니다. 고구마 세 개.
레베카는 가히 천재라고 할 수 있잖아요? 나쁜 방면으로. ㅋㅋㅋㅋ 세상에 이런 사람 둘이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엿먹이기 시합하면 진짜 볼 만할 거예요.
듀 모리에가 좀 더 오래 살아 레베카하고 레이첼, 두 레씨 형제들 붙여놓았으면 볼만 했을 텐데요. ㅋㅋㅋㅋ
 
보헤미아의 빛 대산세계문학총서 51
라몬 델 바예-인클란 지음, 김선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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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들어보는 작가. Ramon Maria del Valle-Inclan, 1866~1936. 이 양반이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비야누에바 데 아로사의 지식인 계급 가정에서 태어나,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 자제들이 자주 그랬듯이 부모의 뜻을 따르느라 법과대학에 진학했지만 결국 사주팔자를 따라 나중에 아버지가 죽자마자 1890년, 스물네 살에 공부를 때려치우고 마드리드로 가서 콩트와 비평서 등을 출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892년에 (겨우 일 년 동안이지만) 멕시코로 건너가서 기자 생활도 하고 그랬는데, 짧은 멕시코 생활에서 바예-인클란은 자신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줄 모더니즘을 경험한다. 바예-인클란은 원래 전통적인 보수주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고, 당시 마드리드엔 부르주아 일상극 열풍이 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새로운 사조의 문학은 바예-인클란에겐 큰 전환점이 되었으리라. 실제로 이후 이이의 작품엔 모더니즘 성향이 내재되어, 쾌락적인 에로티즘, 종교적 상징주의, 관능과 결부된 이교주의, 미술적 표현과 신비주의적인 요소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옮긴이 김선욱은 해설에 쓰고 있다.
  이 책 《보헤미아의 빛》은 1920년에 잡지 연재하여 24년에 출판한 표제작과 1919년에 발표한 <성스러운 말씀>, 1922년에 출간한 <은빛 얼굴>, 이렇게 세 편을 싣고 있는 희곡집으로, 바예-인클란 스스로 창안한 “에스페르펜토”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역자해설에 의하면 에스페르펜토를 스페인 한림원은 “첫째, 단정치 못하고 빈약한 외양의 추한 사람이나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고, 둘째는 엉뚱하고 불합리한 것”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바예-인클란의 새로운 미학에 대한 총칭으로 비극적인 것과 그로테스크한 것의 변증법적 조합”이라고 괜히 어렵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여기서 변증법이 왜 나와? 그냥 “비극과 그로테스크의 동침”이라 하면 딱 이해가 안 되나?
  라몬 델 바예-인클란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98세대 작가다. 스페인 문학을 읽다보면 흔하게 “98세대”가 등장한다. 1898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독립운동이 일어난 쿠바를 진압하기 위해 스페인에서 군대를 보냈다가 쿠바 독립을 지원한 미국하고 전쟁이 붙어 쌍코피가 터지는 바람에 마지막 식민지 쿠바와 필리핀까지 모두 내주게 되어 이후 스페인은 식민지를 모두 상실하게 되어버린 사건이다. 스페인은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 수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어 그곳에서 들어오는 재화가 넘쳐흘러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산업혁명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던 나라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식민지까지 잃어버리니 이후 스페인은 유럽국가 가운데서 힘없고, 돈도 없고, 그저 가진 것이라고는 높은 영아사망률이라는 그림자가 있긴 하지만, ①사랑이 넘치는 나라라서 끔찍하게 높은 인구증가율과 ②굴뚝 공장이 없으니 청정한 물과 공기밖에 없었다. 여기에 하나만 더 꼽으라면 중세 시대에 머물러 있는 국민의 가톨릭 종교관. 이러니 당대의 스페인을 그대로 묘사만 해도 바예-인클란이 주창한 에스페르펜토가 구현이 되지는 않았을까.
  이런 와중에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1년이 지난 1915년, 바예-인클란은 전통적으로 독일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던 스페인 주류들과 단절을 선언했다는 것. 이건 당연히, 위에서 말한 98 세대답게 갈수록 쭈그러지던 스페인의 역사,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어 작가 자신이 “급진적 진보주의로 전향해, 유산계급, 군대, 성직자 계층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노동 계층의 투쟁과 무정부주의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해설에 씌어있다. 이런 정치의식은 고스란히 책에 담긴 세 편의 희곡에 반영되어 있어, 세 작품 모두 정치적 공연을 위한 작품이라 한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하나의 장애를 넘어야 하리라. 작품들의 무대는 모두 작가의 고향인 스페인 북서부, 포르투갈과 가까운 국경지대이며, 차승원과 유해진이 민박집을 하는 바람에 널리 알려졌으나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가톨릭 신자들이 평생 한 번 걷고 싶어하는 산티아고 순례 길의 마지막 도착지 산티아고를 주도로 하는 갈리시아 지방이다. 그래 주인공이 아닌 무지렁이 촌사람이 등장인물인 경우엔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을 했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더라도, 지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관용구를 어떻게 번역했는지, 역자는 과하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시도 때도 없이 무수한 각주를 읽어야 한다는 거. 그거 읽다가 정작 스토리는 놓쳐버리는 일이 정말로 생긴다. 만약 우리말 관용구 ‘언 발에 오줌 누기’를 스페인어로 번역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는. 이런 딜레마의 전도顚倒를 숱하게 경험해야 한다는 말씀.
  표제작 <보헤미아의 빛>에서는 ‘막스 에스트레야’라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 등장하는데 맹인이다. 이이는 남부 스페인 세비야 출신의 실제 장님이자 광기의 시인인 알레한드로 사와를 극화한 인물이라고 한다. 막스는 비록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와 비견되는 스페인 최고의 시인이지만 밝혀지지 않는 이유로 정부와 관계가 매끄럽지 않다. 그래 네 편의 연대기를 신문사에 보냈음에도 황소 아피스로부터 원고계약 해지를 통보받는 끈 떨어진 갓 신세. 여기서 ‘황소 아피스’가 무엇일까. 이게 장벽이다. 막스 에스트레야가 일하던 신문사의 편집장이란다. 내놓고 신문사 이름을 대면 검열에 걸린 우려가 있어 이렇게 돌려서 써야 했다는데 각주가 없다면 우리나라 독자들 몇이나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여튼 이 위대한 맹인 시인이 이제 친구라기보다 객꾼이자 시인의 말대로 빌붙어 사는 ‘개dog’인 돈 라티노 데 이스팔라스와 함께 저녁때 집을 나서 몇 푼이나마 벌어 갈 요량으로 온갖 곳을 다 다니다가 술에 취해 돌아올 때까지의 하룻밤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12장에 소위 에스페르펜토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오목 거울에 비친 옛 영웅들의 모습”, “스페인은 유럽 문명의 그로테스크하고 뒤틀린 형상체”, “오목 거울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것도 부조리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등. 그래서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했던 거 같다.  두 번째 <성스러운 말씀>. 후아나 라 레이나가 뇌수종에 걸린 아들을 수레에 싣고 장터마다 다니며 아이의 장대한 아랫도리를 구경시키고 돈을 받아 생활한다. 그러다 어느 날 아들을 남겨놓은 채 혼자 죽어버리는 바람에 ‘돈이 되는’ 수레와 아이를 맡아 키우겠다고 이모와 외삼촌 내외 사이에 다툼이 인다. 결국 외삼촌에게 넘어가고, 엉뚱하게 외숙모가 수레와 아이를 이용해 돈이 생기자마자 외간남자가 생기는데 그만 아이가 죽어버린다. 외삼촌 부부는 자기네 돈으로 장례를 치르기 아까워 수레에 시신을 싣고 이모네 집 앞에 방치해버린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조카 시신의 일부, 주로 얼굴과 팔을 돼지가 다 뜯어먹었는데, 이모 역시 고분고분 장례를 치러줄 수 없어 다시 동생네 집으로 수레를 끌고 간다. 결국 수레를 성당 앞에다 끌어다 놓고 장레비용을 구걸하는 이모와 외삼촌 내외. 이 와중에 외숙모는 전에 정분이 있던 남자와 수풀 속에서 거사를 치르다 사람들한테 발각되어 옷을 홀랑 벗긴 채 춤을 추는 치욕을 당한다.
  마지막 작품 <은빛 얼굴>은 앞의 두 작품도 그렇지만 도무지 연극으로는 공연하지 못할 것 같은 장면(전환)과 등장하는 짐승들이 많다. 내용은 전형적인 서부극. 연극을 위한 희곡이라기보다 시나리오 같다. 몬테네그로 집안 역시 갈리시아 지방의 거대한 토지를 소유한 부르주아. 집안의 가장인 돈 후안 마누엘라는 재판을 걸어 여태 자신의 땅을 걷거나 말을 타고 가축시장으로 향하던 길을 폐쇄해버린다. 가축을 몰고 통과하려는 목동들과의 마찰을 일으키고 있던 주인공 ‘은빛 얼굴’이, 누구나 통행금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환자의 종부성사를 하기 위해 땅을 가로지르려는 먼 친척이기도 한 수도원장의 길 역시 막아선다. 그리하여 열받은 수도원장은 몬테네그로 집안에 위탁해 온 조카이자 은빛 얼굴이 사랑하는 사벨리타를 집에 데려오고, 두 집안은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린다. 이의 화해를 위해 은빛 얼굴은 카드 게임에서 수도원장이 속임수를 쓰는 것을 뻔히 알고도 일부러 거금을 잃어주지만 오히려 싸움이 나고, 원장은 이후에도 돈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며칠 후 사벨리타가 성당에서 마을의 거지에게 추행을 당하려는 찰라에 은빛 얼굴의 아버지 돈 후안 마누엘라에게 납치되어 다시 몬테네그로 집으로 오게 되고, 이를 알아차린 은빛 얼굴은 아버지를 쪼개 죽이기 위해 도끼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데, 복수를 위해 수도원장 역시 총을 들고 집에 와 있다.

 

  뭐 이런 작품들. 에스페르펜토라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위에서 잠깐 말한 장벽도 있어서 읽어보시라 권하긴 힘들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작품을 발표했던 1920년대에는 전위라는 관까지 썼던 (극)작가이고 작품이다. 당연히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를 읽고 스페인 희곡에 관심이 생겨 선택한 책이지만, 그만큼의 감동을 느끼기는 힘들다. 우리 독자에게 동감이나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세계문학의 중요한 한 지점을 차지한 작가의 대표작을 소개하기 위해 번역, 출간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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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카베자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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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나게 마시고 있다. 근데 밤 열 시 배송은 뭐냐. 배송이 좀 늦어 하루쯤 커피 못 마신다고 결코 숨 넘어가지 않는다. 배송 기사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커피 맛있게 마시고 있지만 자꾸 미안한 기분이 들어서, 이젠 오후 늦게 주문해야겠다. 여유있게 스케쥴 잡아서 보내라는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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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녀의 일기
옥타브 미르보 지음, 이재형 옮김 / 책세상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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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말 프랑스를 뒤집어 놓은 사건 가운데 하나가 향후 백 년 동안 지구상 모든 지식인의 양심과 행동의 모범으로 인용되는 ‘드레퓌스 사건’이었다. 여러 지식인이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 편에 서서 시대를 타고 들불처럼 번지는 반유대주의를 극복하고 그의 무죄를 주장해 결국은 해피엔드로 마감을 했다. 이때 가장 눈에 띄는 행동하는 지식인 상像으로 흔히 세 명, 에밀 졸라, 아나톨 프랑스, 그리고 옥타브 미르보를 꼽는다. 그래서 비록 작품은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옥타브 미르보라는 이름 하나는 굳세게 기억하고 있었던 터.
  일은 이렇게 생긴다. 엉뚱하게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의 <저 아래>를 구입하기 위하여 기웃거리다가, 책읽기를 주제로 강의하는 유명 서평가, 평론가, 교육자, 노문학자께서 미르보의 책이 번역해 나와 있으며, 자신의 중요한 직업인 유료 강의에 프랑스 작품 가운데 여성 주인공의 운명을 다룬 작품들을 모아 강의를 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까지 읽게 된다. 책 좀 읽는다 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인사가, 돈 받고 하는 강의 대상 가운데 하나로 꼽은 작품을, 감히 돈 내고 강의 들을 생각은 아니더라도 어찌 한 번 읽어볼 생각이 나지 않겠느냐 하는 것. 그렇겠지? 그렇다니까. 그래 나도 그이의 짧은 소개 글을 읽고 생전 처음으로 한 권을 골랐으니 이게 바로 <어느 하녀의 일기>가 되겠다. 내, 다시는 그이의 쪽글을 읽고 책 사나 봐라.
  그런데, 이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솔직한 느낌을 이야기하자면, 그 선생께서는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거 같다, 는 거.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그 양반이 이 책을 안 읽었다, 가 아니라, 안 읽어본 거 같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분명한 사실을 주장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요새 법적으로 호소하는 일이 많아 함부로 입 털었다가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 석교도 여러 번 노크한 다음에 워킹 크로스 해야 하는 시대니까 구차하게 말을 끌더라도 용서 또는 양해 바란다.
  나는 특히 장편 소설일 경우 등장인물의 가족, 친구, 친척, 연인관계, 이야기가 갈림길에 접어들 분수령이다 싶은 부분은 메모하면서 읽는다. 모두 17 챕터, 520쪽 분량의 장편 <어느 하녀의 일기>는 1장을 읽고 메모 노트 덮었다. 메모까지 하며 읽을 필요는 없다, 그만큼 정성을 들일 필요가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이의 다른 작품도 여럿 있다. 그것들도 다 이 책과 같은 수준이라고는 주장할 수 없으니 만일 번역되어 나온다면 적어도 한 편 정도는 더 읽고 판단을 하리라.

 

  프랑스 북부의 작은 항구 오디에른에 어부 부부가 딸, 아들, 딸, 2녀 1남을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소설을 만들기 위해 가난하지만 행복한 어부 가족에게 시련이 닥쳐 딸이 한 열서너 살 되었을까 했을 때, 아버지가 고기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폭풍을 만나 며칠 후에 익사체로 떠오른다. 이후 절망한 어머니가 의지한 것은 알코올. 한없이 술을 마시고, 술에 취했다 하면 자식들 가운데 특히 제일 어려서 힘도 없는 막내 셀레스틴을 두드려 패는 걸 멈추지 않았고, 지긋지긋한 살림살이도 하루 이틀이지 언니는 그길로 대강 남자 하나를 꼬드겨 대처로 나가 아마 매춘부가 되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오빠는 무턱대고 해군에 자원해 중국에 있거나 아니면 아프리카 근해에 빠져 죽었을 거라고도. 어린 셀레스틴은 주민들이 수녀들이 운영하는 보육원에 보내 그곳에서 읽기와 쓰기, 셈법, 청소, 바느질 등의 기본 자질을 배우고 출원과 동시에 하녀생활을 시작한다. 셀레스틴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셀레스틴이 최근 2년 동안만 따져서 열두 번째 일터로 선택한 곳이 노르망디 지방의 메닐-루아라고 하는 작은 시골 마을. 하녀로 일할 곳은 백만 프랑의 재산을 보유했으나 구두쇠로 이름이 드높은 알부자 라부르 씨 댁으로 저택의 이름을 르 프리외레라고 한다. 작품은 하녀로 일하기 위해 노르망디의 조그만 시골 동네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때가 9월 중순. 일기는 다음 해 7월 말까지 모두 열일곱 편이다. 셀레스틴은 그동안 세계의 수도 파리에서 하녀생활을 했을 뿐더러 몸매도 훌륭하고, 세기말 작품의 주인공답게 얼굴은 어여쁘고, 험한 하녀 생활을 해도 주로 식사 시중이나 안주인 몸종을 했기 때문에 손도 고운, 갈색 머리카락에 그거 있잖은가, 뽀얀 피부를 과시해, 시골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주민들 입초리 마를 새가 없게 만든다.
  그래 작은 동네에서 무슨 로맨스가 벌어지기도 하고 사건도 생기고 당연히 주인과 주민들 간의 갈등도 생기지만, 이에 못지않게 작품에서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당시 부르주아, 귀족들의 허위에 찬 생활양식이다. 귀족, 부르주아의 도덕적 방탕과 물질주의, 어리석음 기타 등등을 나열하는데 오히려 더 열중하는 바람에, 미르보는 작은 마을 메닐-루아에서 벌어지는 엽기적인 소녀 강간 살인 사건과 주인공이 하녀 생활을 하는 르 프리외레에서 생긴 절도 사건을 긴장 없이, 전혀 긴장을 느끼게 하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에피소드 정도로만 읽히게 만들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스토리 라인이 셀레스틴이 다년간 경험했던 주인집들에서 발생했던 에피소드에 비해 분량도 적고, 심각하지도 않아서, 혹시 이게 전작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역자 및/또는 출판사 편집인에 의하여 축약된 결과물이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었다. 아니겠지. 믿고 살아야 건강에도 좋으니까 아니라고 믿겠다.
  그러면 결과는 당연한 것. 세기말의 모든 프랑스 부르주아와 귀족들은 멍청이, 부도덕한 자, 사치와 방탕, 혼외정사에 몰두하는 백치이며, 하인과 하녀들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지배당하거나 적어도 조정당하면서 살고, 모든 부조리의 원흉이라는 거. 하층 계급 역시 부도덕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게 다 먹고살고자 하는 몸부림이란다. 훤하게 그림이 그려지니? 그렇다. 맞다. 그래도 다행인 건 빈자, 약자가 선, 부자는 악이라는 이분법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
  이 책을 강의 목록에 포함시키겠다는 명사분이 읽으면 대단히 기분 안 좋을 독후감이지만 그렇다고 감상을 솔직하게 쓰지 않을 수 없다. 읽지 말라고 비추를 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권하지는 못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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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7-09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Falstaff 2021-07-09 09:40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죠, 그 선생이 보면 기분 안 좋겠지요? 뭐 인생인 걸. 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7-09 09:43   좋아요 1 | URL
못보시기에는 너무 가까운곳에 ㅋ
제 추측이 맞으면요;;

잠자냥 2021-07-09 09:43   좋아요 3 | URL
주정뱅이 폴스타프는 보란듯이 직설을 합니다. -제 말은 그러니까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09 09:44   좋아요 1 | URL
아이고.... 내가 졌음. 1:0 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7-09 09:46   좋아요 1 | URL
저는 그럼 관람석에서 !

잠자냥 2021-07-09 09: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 전 1964년작 동명의 영화를 너무 재미나게 봐서 이 책 한 번 읽어볼까 싶었는데, 안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ㅎ 책 정보 보니 사람들이 의외로 이 책을 많이 읽어서 놀랐는데, 아....최근 리메이크 작품 때문인 것 같군요(레아 세두 출연작).

500쪽이 넘네요? 이것도 뜻밖입니다. 두껍다.... 안 읽어야지;;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09 09:42   좋아요 2 | URL
뭐 제 입으로 읽지 말라고는 하지 못해도 두껍고 비싸고 그렇습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1-07-09 0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책 별로였다고 지난번에 댓글 달고 나서 ‘그런데 폴스타프 님은 엄청 좋게읽으시는 거 아닐까‘ 했는데 별 두 개 주셨네요. 어휴 속이 다 시원합니다.
책에서 갑과 을에 대한 얘기를 할 때는 공감하는 지점이 있었는데 소녀 성폭행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제가 전혀 공감할 수 없게, 욕하게 써놔서 제가 이 책을 싫어했던 것 같아요. 주인공인 하녀가 성폭행범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에게 욕망을 느끼는 그런 지점이요. 그래서 제가 이 책은 별로인 책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Falstaff 2021-07-09 09:55   좋아요 1 | URL
하여튼 전체적으로 다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락방님이 이 댓글 다실 줄 알았거든요. 저번에 하신 얘기는 제 감상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ㅋㅋㅋㅋㅋ
예. 강간살인범을 미화까지는 아니어도 지극히 정상인 남자처럼 묘사하는 것이 제일 정떨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거 말고도 다른 흉악범죄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면서 겉으로는 진실한 일꾼인데, 그냥 휙 스케치하듯 지나가버리는 게 진짜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파이버 2021-07-26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아 세이두 좋아해서 영화 보고 책까지 읽었었는데 ㅎㅎ 저는 그나마 배우 영향이었던지 영화가 쬐끔 더 나았던 것 같아요…

Falstaff 2021-07-27 08:35   좋아요 1 | URL
아, 영화도 보셨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