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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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첫날 업로드할 독후감. 신중하게 고른 책은 아니고 모디아니와 테드 창 중에서 연말과 연초에 어울릴 작품을 고른 것이다. 읽고 난 다음에 순서를 정하지 않았다. 그저 모디아니의 작품이 새해 아침에 읽을 만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해서 모디아니를 먼저 읽었을 뿐. 좋은 선택이었다.

  소위 “양력 설”이라도 떡국 한 그릇씩 배불리 하셨기 바란다. 한 살 더 자시건 말건 그건 본인들이 알아서 선택하시고. 나는 꾸역꾸역 한 살 더 먹기로 했다.


  테드 창. 나는 ‘테드 창’히면 영화 <극한직업>에서 오정세가 분장한 주둥이만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불쌍한 2번 악당이 먼저 떠오른다. 그 다음에야 중국 혈통의 미국 SF 작가. 이름이야 많이 들어봤는데 SF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읽기를 머뭇거리고 있었다. 거의 비밀댓글로 말씀을 주시는 서재 친구께서 테드 창을 권하시기에 마음에 두고 있었다가 개가실에서 보니 문제가 있었다. 분량이 녹록하지 않은 건 나 한테 별로 문제가 되지 않건만, 얼마나 많은 독자들의 손때가 묻었는지 하나같이 책이 너덜너덜해서 도무지 지문을 보태기 싫더라는 점.

  흠. 손때가 이리 많이 묻은 걸 보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열혈독자를 지닌 작가군.

  그렇게 날만 갔다.

  하루는 다른 책 검색하다가, 이웃 도서관 목록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책이 《당신 인생의 이야기》. 장편소설인 줄 알았다. 그리고 한 가지 반짝 떠오른 생각. 이웃 도서관은 주변에 거주단지가 별로 없어서 책 상태가 좋지 않을까? 한 번 빌려보지 뭐, 싶어서 즉각 상호대차 서비스 신청해 받아 읽었다. 빌린 김에 함께 빌린 책이 모디아노와 내일 업로드 할 이대흠의 시집.


  테드 창, 강봉남姜峯楠 씨는 1967년 뉴욕에서 스토니 브룩 대학의 기계공학 교수인 아버지와 사서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화인민공화국 개국 당시 대륙에서 타이완 섬으로 간 중국인, 소위 ‘본토인’ 출신인 강씨 집안의 일원이다.

  공학 교수 아버지한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강봉남, 테드 창은 물리학을 공부하려 했다가 아이비리그 가운데 한 곳인 브라운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이랄까 과학을 선택해 졸업했다. 동아시아 출신 학생답게 공부도 제법 했을 거 같다. 대학 다닐 때부터 SF 소설에 관심을 두고 습작을 했지만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첫번째 작품이기도 한 <바빌론의 탑>으로 네뷸라 상Nebula Award를 받으면서 SF 소설의 기린아로 떠올랐다고 위키피디아에 적혀있다. 네뷸라 상은 미국에서 출판한 최고의 SF 및 판타지 작품에게 수여하는 높은 권위의 문학상이라고.

  이후 써서 출판하는 책 마다 뉴욕과 서울의 종이값이 천정을 뚫게 했던 모양이다. 그의 작품 목록을 보면 생각과 달리 전부 중∙단편이다. 그것도 몰랐다. 도서관에 있는 이이의 책들마다 만만치 않은 두께를 가졌던데 그게 모두 독자들 손때가 묻어 불은 건가? 그것 참.


  중단편 여덟 편이 실려 있는 작품집. 이 가운데 <인류 과학의 진화>는 본문이 겨우 네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휙 읽어버리면 될 손바닥 소설 같지? 천만의 말씀. 나도 그렇거니 하고 읽었다가 혼났다. 이 작품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분량의 단편소설은 2000년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해 로커스 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초인간적인 지성을 갖고 있는 ‘메타인류’의 탄생.  이후에도 인류 문화가 미래에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지 여부가 관심이다. 컴퓨터와 연결해 탄생한 초지성은 디지털 신경 전이로 현상을 분석해 전달, 보관 기타 등등의 작업을 할 터인데, 문학 특히 시의 정서와 음악, 미술, 공연 등 감성의 호소는 그런 상황에서도 존재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의 지면을 차지했던 작품인지라 결코 쉽지 않다. 비록 네 페이지 분량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렇게 적은 분량에 세계 곳곳에서 읽을 과학적 재능들을 만족시킬 내용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있으나 마나 한 일체의 서술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위에서 말한 <바빌론의 탑>을 읽으며, 이게 나의 첫 테드 창이었는데, 눈이 팽, 돌아갔다. 이랬어? 이런 작가였나? 바빌론의 탑이면 당연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벨탑이다. 인간이 하느님과 더욱 가까이 있고자 하는 욕심으로 만든 거대한 탑. 하느님 생각하시기를, 저 하찮은 것들이 감히 나하고 맞먹으러 드네? 그리하여 한 날을 잡아 당시까지 모든 인류들이, 사실은 모든 유대/무슬림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언어를 전부 바꾸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자 곧바로 바벨탑 건설이 중단된 건 당연하고 얼마 있지 않아 와장창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바벨탑 신화. 원래 신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다. 일단 진흙으로 자신의 모습을 따 인간이라는 종種species를 만들어 놓고 그 다음부터 죽어라 고생시키고, 구박하고, 핍박하고, 질투하고, 서로 싸움 붙이는 등 하여간 못살게 구는 존재.

  그런데 테드 창의 바벨탑을 그렇지 않았다.

  만일 그 탑을 수메르의 평야에 눕혀 놓는다면, 한 끝에서 다른 끄트머리까지 걸어 가려면 족히 이틀이 걸린단다. 현대인들의 경우 하루에 한 30km 걸어갈 수 있으려나? 40km? 옛날에 걸어서 문경새재 넘어 한양에 과거 보러 갈 당시에 하루 거리를 백리 쳤으니까 40km라고 하자. 그러면 이틀이라 했으니 꼬박 80km. 그 거리를 똑바로 세우면 바벨탑의 높이가 나온다. 8만 미터. 에베레스트 산을 아홉 개 쌓은 높이다. 애초 사람이 살 수 없는 고도. 물론 픽션이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뭐. 평지로 생각하고 걸으면 이틀, 그걸 수직으로 세워서 걸어 올라가려면? 한달 반. 근데 그냥 올라가나? 탑을 더 높이 올리기 위하여 목재와 벽돌을 구울 흙을 수레에 싣고 올라야 하니 넉 달이 걸린단다.

  탑이 하도 높아서 저 8만 미터 상공에서 일하던 벽돌공이 떨어져 죽은 이만 해도 한두 명이 아니겠다. 사람들은 이골이 나 그저 어떤 놈이 떨어져 죽어도 그런가보다, 산재보험 나올 터이니 처자식 먹고 사는 데는 문제없겠지, 이렇게 지나가는데, 벽돌 한 장이 떨어지면 눈물 콧물 바람을 했단다. 떨어진 벽돌을 만드는 흙이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또다시 넉 달을 사람이 끌고 와야 하니까. 이게 히브리 전설에 나오는 모양이다. 책 뒤편에 “창작 노트”라고 태드 창, 강봉남 씨가 직접 써서 말했다.

  여기까지는 탑을 꼭대기까지 짓는 일. 하여간 그렇게 해서 탑이 하늘과 맞닿았다고 치자.


  인간이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보니, 있으라고 하는 하느님은 보이지 않고 마치 화강암인 듯한 돌 천장이 꽉 막고 있는 거다. 인간은 긴장한다. 일찍이 저 노아의 시절을 겪지 않았느냐는 말이지. 당시 폭포 같은 비가 무려 40일간 “하늘에서 쏟아져” 인류의 거의 전부를, 인류 좋아하네, 유대인의 거의 전부를 멸망케 하지 않았느냐는 기억 또는 이야기. 이제 흙으로 빚은 인간이 하늘에 도달했건만, 하늘의 입구를 돌로 막은 건 하느님이 만나지 않겠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대족장의 꿈에라도 나와 허연 수염을 휘날리며 “나는 너희들을 만날 의향이 없도다.”라고 알려주든지 말이야. 아무런 언질도 하지 않고 이번에도 노아 시절처럼 꽈광 멸망의 길을 걷게 하고 나중에 “그때 너희가 오만했느니라.” 한 마디 하면 인간은 너무 억울한 거다. 혹시 이 돌 천장을 깨고 하늘에 닿으면 뚫린 구멍을 통해 또다시 거대한 물더미가 쏟아져 제2의 홍수를 만나는 것 아닐까? 인간의 고뇌는 깊어간다.

  그러나 여기서 말 수는 없는 법. 바빌론 사람들은 지금의 이란 땅에 있던 도시왕국 엘람에서 태어난 석공 힐라룸을 초빙한다. 동시에 석공 기술에 관한 한 피라미드 건조를 통해 세상 어디보다 탁월한 노하우를 지닌 이집트 기술자도 부른다. 그들 모두 바빌론의 탑 꼭대기에 올라 불을 피우고, 별의 별 짓을 해서 드디어 하늘에 이르는 돌의 터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니, 에그머니, 아니나 다를까, 물, 불이 없는 석굴의 암흑 속에서 온통 물이 쏟아지기 시작해, 주인공 힐라룸은 물 속에서 급류에 휘말려 부상도 당하고 꿀꺽꿀꺽 배고플 수 없을 정도로 물도 마시고 어디엔가 도착한다. 이곳이 어디일까? 그 고생을 다 해서 드디어 하느님 전에 끓을 수 있었을까?

  안 가르져드린다.

  인생은 쉼없이 뫼비우스의 띠에서 맴을 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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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6-01-01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봉남 씨라고 해서 한궄 사람인 줄 알았더니 중국계였군요. 요시절에도 촌시런 이름 많았죠. 요즘엔 이름도 세련되게 잘 쓰더만 그래도 아주 드물게 고전스런 이름을 쓰기도 하더군요. 이 책 저도 SF 자신없어 멀리 보기만했는데 저도 언젠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6-01-01 13:03   좋아요 1 | URL
중국인들 이름이라서 촌시러운지 아닌지 잘 모르겠구먼요. ㅋㅋㅋ
작년 마지막으로 읽은 책의 작가 왕웨이롄....의 웨이롄은 ˝윌리엄˝이라더군요. 타이완 사람들이 영어 이름을 쓰는 건 뭐 그렇다 쳐도 중국인 이름이 윌리엄이라... 인구가 많으니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얄리얄리 2026-01-01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빌론의 탑>이 첫번째 테드 창이었습니다. 그땐 뒷머리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는데, 다시 보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하네요.

Falstaff 2026-01-02 05:51   좋아요 0 | URL
아오, 저도 <바빌론의 탑>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여태 테드 창 읽기를 괜히 주저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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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에 업로드할 마지막 독후감이 파트릭 모디아노가 됐다. 특별하게 고른 건 아니고 그냥 우연히 모디아노가 걸렸다. 지금은 창밖 아파트 마당 느티나무의 낙엽이 절정이고, 독감 인플루엔자가 일찌감치 세상을 덮쳤다는데 실감은 나지 않고, 입법/사법/행정부는 유신 시절이나 당시 고초를 겪은 계파가 정권을 쥔 지금이나 거의 변하지 않은 채 또 1년을 마감하려 한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모디아노를 읽고 보니 한 해의 마지막 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도무지 이이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가 (심지어 다시는 안 읽겠다고도 했었으니) 초가을에 <잃어버린 거리>가 재미있어서 다시 한 권을 골랐다. 때마침 문학동네 세계문학 시리즈에도 김화영이 번역한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의 중판을 냈는데 그건 도서관에 있는 초판을 읽기로 했다. 좀 더 있다가.

  <잃어버린 거리> 독후감의 제목을 “재미있는 모디아노도 있네?”라고 했다. 근데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이후 “네가 길을”>가 더 괜찮았다. 당연히 내가 읽은 소감이 그렇다는 것이니 독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2014년에 발표한 작품. 이 해에 모디아노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그동안 이이의 책을 찍어 판 문학동네, 이 문둥이들이 대박이 났었다. 대박 까지는 아니고 중박 정도? 한강이 수상했을 당시 판매량 이후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경우는 몽땅 중박 수준으로 내려 앉았을 걸?


  <네가 길을>은 본문이 164페이지에서 끝난다. 여유롭게 편집해 분량이 중편 수준이다. 그렇지만 읽기가 수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디아노가 늘 그렇듯이. 내 경우에, 이번 모디아노는 문장이 마음에 딱 들었다. 역자 권수연이 우리 독자 (또는 내) 취향에 딱 맞는 문체를 가진 것 같다.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을 정도로.

  주인공은 장 다라간. 소설가이고 처음엔 늙었다는 건 알겠는데 얼마나 늙었는지는 모른다. 한 시간 정도 읽고 나면 60대 초반 정도이겠다고 짐작할 수 있다. 파리의 넓고 좋은 집에 혼자 사는 것처럼 보인다. 일찌감치 자신과 멀어진 부모 말고 가족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부모도 어머니가 파리 아르카드 가街에 있는 극장의 전직 배우였고, 아버지는 같은 길 끝 오스만 대로 73번지 건물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아들 장 다라간을 건사하기가 버거웠는지 어린 장을 파리 근교에 있는 한 시절 한센병 환자 전용 병원이었던 저택의 소유자에게 맡기고 이후 작품에서 두절된다. 이때 장 다라간이 여섯 살.

  여섯 살 시절 생뢰라포레에 있던 저택에서 한 1년 정도 함께 살던 아니 아스트랑.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여성. 여섯 살에 부모와 떨어져 외진 변두리에서 살았으니 이 시절의 손실과 고독과 슬픔이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 게다가 정확하게 무슨 일인지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니 아스트랑과 함께 집을 떠나 기차를 타고, 이름을 장 다라간에서 장 아스트랑으로 바꾼 위조 여권을 든 채 “로마”로 가려 했던 기억.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 세월이 15년쯤 더 지나 이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장 다라간은 생뢰라포레의 기억을 더듬어 <그 여름의 어둠>을 쓴다.

  그리고 또다시 흐른 세월이 40년. 인디언 섬머의 더위가 만만치 않은 오후 네 시경, 햇빛이 닿지 않는 구석의 소파에서 졸고 있던 다라간은 난데없는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깨 기분이 언짢다. 전화를 건 남자의 목소리. 기분 나쁘다. 느른하되 위협적이다. 다라간이 잃어버린 연락처 수첩을 자신이 가지고 있어 전화를 했다. 수첩 첫 장에 쓰여 있다.

  “이 수첩을 습득하시면 다음 주소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다라간은 수첩에 인쇄된 줄에 기계적으로 자신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 두었다. 연락처 수첩에 든 이름들에 지금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중요한 사람은 모두 외우고 있어서 굳이 수첩에 적어놓을 필요가 없다. 수첩이 마음에 쓰이는 이유는 자기 존재의 정보가 다른 사람 손에 있다는 것 하나다. 위협적인 목소리가 계속 말한다. “댁으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편하신 날 편하신 시간에요.” 아무래도 기분이 언짢은 다라간은 다음날 오후 아르카드가 42번지 카페에서 보기로 정한다.

  프랑스 소설판에서 이미 명성을 얻은 것처럼 보이고 예순 살이 넘은 장 다라간은, 어쨌든 내 눈에, 건방지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늙은이다. 그는 카페에 여자친구 샹탈 그리펭와 함께 나타난 40 전후로 보이는 남자 질 오톨리니한테 수첩을 건네받고 무례하게 자리를 뜬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 작품이 혹시 추리소설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든다.


  왜 오톨리니가 굳이 다라간을 만나려 했을까? 수첩 속에 ‘기 토르스텔’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지금은 파스키가에 있는 광고회사 스베르트 에이전시에서 일한다는 오톨리니가 전에 언론쪽에서 일을 했는데 아주 오래된 사건에 관해 기사를 썼단다. 이때 경찰 쪽 아는 사람이 꽤 많은 정보를 주었고, 이 정보들 속에 기 토르스텔이라는 사람이 나온다고. 자신이 다라간이 쓴 소설 <그 여름의 어둠>도 읽어 보았으며 작품 속에도 역시 토르스텔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다고 말하지만 다라간은 <그 여름의 어둠>이란 작품을 자신이 정말로 썼는지도 너무 까마득한 과거라 가물가물하다. 토르스텔이라는 이름도 생소하고.

  아주 오래된 기억 속의 인물들. 아마도 이미 유령이 되었을 존재들이 갑자기 다라간의 앞에 튀어나올 수 없는 일. 다라간은 오톨리니를 돈을 목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기꾼 정도로 인식하며,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서 이런 작자를 떨구는 방법 정도는 쉰아홉 가지 정도 알고 있다. 그래서 카페에서 무례하게 두 사람을 자리에 앉힌 채 그리 무례하게 자리를 뜬 것일까? 유명해지면서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몸에 배서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내 의견이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네 시쯤 다시 전화가 한 통 온다. 이번에는 오톨리니의 여자친구 샹탈 그리펭으로부터. 샹탈. 지금은 드물지만 다라간이 젊었던 시절엔 흔한 이름이었다. 자신과 내연의 관계에 있던 여성의 이름도 샹탈이었다. 파리의 그레지보당 지구에 있는 좁은 다락방에서 주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뜨거운 관계를 유지했던 여자. 샹탈의 남편 폴과 폴의 친구들이 파리 인근 카지노로 도박하러 가면 일요일 밤이나 월요일 아침까지 둘 만의 시간이 생겼다. 이때 다라간은 폴과 폴의 친구들과도 안면을 텄고, 아주 가끔은 함께 이동하기도 했다. 가물가물한 기억들. 모든 기억은 다라간이 샹탈 그리펭의 아파트에 방문해, 샹탈이 전해준 자료를 받으면서 나눈 대화, 집에 가져와 작은 글씨로 적힌 것들과 복사본을 보면서 아주 어렴풋하게 떠올린 암각화였다. 이 암각화 가운데 한 장면. 한 사람. 기 토르스텔. 40년 전의 샹탈과 이이의 남편 폴이 뒷자리에 타고, 다라간이 앞자리에 앉았을 때 자동차를 운전했던 사람. 그가 기 토르스텔이었다. 이때 이름을 잊지 않아 당시에 쓴 작품 <그 여름의 어둠>에 등장하는 엑스트라 인물의 이름으로 사용했던.


  이렇게 장면은 60대, 20대, 여섯 살의 장 다라간이 순서 없이 교차한다. <그 여름의 어둠>의 무대 생뢰라포레. 그곳에서 유일하게 장 다라간이 의지할 수 있었던 사람 아니 아스트랑. 40년 전에 소설을 쓸 당시에도 다라간은 생뢰라포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니 아스트랑과 함께 어떤 이유로 로마에 가려 했는지를 유년시절의 막막한 외로뭉과 아니에 대한 그리움을 깔았던 것. 후에 듣기에 아니 아스트랑이 “감옥살이”를 했다고 하는데, 왜 감옥살이를 했을까? 누구도 그녀가 감옥살이를 하게 된 범죄 행위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다라간이 <그 여름의 어둠>을 쓴 후에 아니 아스트랑을 만난 적이 한 번 있기는 했지만 그녀 앞에서 어떤 잘못을 지었느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또 40년이 흐른 지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게 단편들이 조각조각 흩어져 기억의 곳곳에 산재할 뿐 그것들이 정연하게 모아지지 않는다. 모든 게 그렇다. 어떤 기억도, 어떤 일도, 그래서 어떤 인생도. 이렇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또 일년이 갔다. 편안하게 한 해를 보내시라.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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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5-12-31 0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Falstaff님, 해피 뉴 이어!

Falstaff 2025-12-31 06:13   좋아요 1 | URL
곰돌이 님도요!!!

페넬로페 2025-12-31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도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Falstaff 2025-12-31 15:47   좋아요 1 | URL
아이쿠, 따라가시기는요! 시간만 남아서 읽을 뿐인 걸요. ㅎㅎㅎ
페넬로페 님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25-12-31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둥이! 하긴 그렇게 부를만 하죠? ㅎㅎ 노벨문학상이나 받아야 눈 한 번 꿈적해 중박 정도하니 그러고도 울나라 세계 10위의 출판대국이라는 게참. ㅠ 그래도 알지도 못하는 책들 출판하는 거 보믄 기특도하고, 안쓰럽기도 해요. 좋은 책이라는 건 알겠는데 선뜻 손이 안 가고 이런 책 누가 사서 읽을까 싶은 책 있거든요.
내년에 또 어떤 책이 왕좌를 차지할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 때문에 더 어두운 구석탱이로 들어갈 책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네요. 사람 눈이 네개쯤 돼야하는데. ㅎㅎ
올해도 폴님 때문에 즐거웠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책 부탁드립니다. 새해 평안하십시오!^^

Falstaff 2025-12-31 15:49   좋아요 1 | URL
모디아노는 정말 문둥이들도 깜짝 놀랐을 겁니다. 아오, 이 양반이 노벨상을 받았댜, 이게 웬일이니? ㅋㅋㅋㅋ
그것도 다 운이고, 운도 재주니까 축하할 일입니다.
내년에는 좀 더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blueyonder 2025-12-31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Falstaff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를 맞아 저도 한 자 남겨 봅니다. ^^
좋은 책 소개 늘 감사합니다!

Falstaff 2026-01-01 03:37   좋아요 1 | URL
벌써 새해네요! 욘더 님도 늘 좋은 일만 생기기 바랍니다!
 
토끼 잠들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7
존 업다이크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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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다이크의 토끼 시리즈는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북부에 있는 브루어 지역이 무대이다. 근데 4부이자 마지막 편인 <토끼 잠들다>를 펴면 난데없이 사우스웨스트 플로리다 지역공항 인근의 딜리언 시가 등장해 독자를 잠깐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플로리다는 따듯한 곳. 나이 들어 겨울만 되면 뼛속에 냉기가 차는 돈 많은 늙은이들이 겨울 한 철 동안 몰려들어 사는 동네가 이 딜리언 시에 있다. 미국에서 돈, 하면 당연히 유대인 커뮤니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서, 골프장 등 휴양 시설을 완비한 클럽 하우스 비슷하게 지은 아파트의 소유자 대부분이 나이든 유대인 부부 또는 과부다. 이 아파트에 한 가구를 해리와 재니스 앵스트롬 부부가 구입해 1년 중 절반을 와서 지내고 있다.

  플로리다? 3부 <토끼는 부자다>를 읽은 독자는 플로리다 하면 그리스계 중고차 딜러이자 한 때 재니스 앵스트롬과 진한 연애, 잠깐이지만 동거까지 한 찰리 스태브로스가 (헤리의 아들 넬슨이 켄트 주립대학을 때려치우고 할머니 집으로 돌아올 때 동행한 여대생) 맬러니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 곳인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때 플로리다 지역이 해리의 머리 속에 콱 틀어박혔겠지. 3부의 시점이 1979년~80년. 4부는 1988년의 마지막 며칠부터 1989년 9월까지. 어느새 해리의 아들, 철없고 고집불통이고 자기 좋은 건 무조건 해야 하고, 다분히 우울증 증세가 있는 넬슨이 어느새 서른두 살이 됐다. 켄트 대학의 서무과 직원이었던 프루와 결혼하자마자 낳은 딸 주디가 벌써 여덟 살이다. 주디의 동생 로이가 네 살.


  넬슨이 처자식을 부양하는 한 가족의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하게 만들려고 넬슨의 엄마 재니스는 재니스의 아빠, 해리의 장인, 넬슨의 외할아버지가 맨손으로 시작해 만들어 놓은 “스프링어 모터스”의 실제적인 대표 자리를 외아들 넬슨에게 넘기고, 여태까지 진짜 사장 노릇을 하던 남편 해리와 함께 1년의 절반을 저 멀리 떨어진 플로리다 끝자락에 있는 딜리언으로 가 부자父子의 물리적 거리를 확실하게 떼어 놓았다. 이게 가능한 것이 잰의 엄마이자 해리의 장모가 죽으면서 예상했던 것과 달리 모든 재산을 재니스한테만 주었기 때문이다. 스프링어 모터스의 사장이 누구든 관계없이 확실한 대주주, 실제적인 소유주가 재니스라서.

  그냥 펜실베이니아에 있으면 될 거 같은데 왜 플로리다까지 갔느냐 하면, 2부 <돌아온 토끼> 시절 집이 홀랑 타버렸을 때 해리의 집에 머물며 소년 넬슨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좋은 관계를 만들던 질이 죽는 순간, 넬슨이 불타는 집 속으로 뛰어들어 질을 구하려 했던 것을 끝내 못하게 말린 때부터 아버지와 아들은 깊고 깊어서 죽음이 부자 사이를 갈라놓기 전까지는 화해할 수 없는 골짜기를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해리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백이면 백, 넬슨까지 죽었을 터이지만 소년 넬슨은 그걸 이해할 정도로 여물지 못했을 시기였다. 이제 막 사춘기를 시작할까 말까 했으니까. 그날 이후로 넬슨은 점점 빗나갔다. 일찍이 농구선수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던 아빠 해리에 비하면 잘 생기지도 않고, 키도 작은데다가 그리 돋보이지도 못해 더 거리가 벌어졌을 수도 있다. 아빠 해리도 그런 아들한테 지기 싫어서 아들이 하는 행동이 (물론 엄청 문제가 많은 골통이기는 하지만) 마땅하지 않았을 터, 그때마다 격려를 해주고,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돕기는커녕, 그것봐라 이 한심한 놈아, 비슷하게 비웃고, 비아냥거리고 뭐 그러다가 나중엔 저절로 넬슨이 하는 말/주장/건의를 될 수 있으면 반대 방향으로 단정하고 싶어졌고, 저절로 그렇게 됐다. 스프링어 모터스에서 부자가 낯을 맞대면 날마다 그럴 터인데 엄마 재니스가 보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아들을 자리잡게 만들어주기 위하여 멀고 먼 플로리다까지 내려가게 된 것.


  그래서 막이 올라가면, 1988년 크리스마스 직후의 플로리다. 연말 연휴를 맞아 아들내외가 두 손주의 손을 잡고 부모를 뵈러 내려왔다. 이제 해리의 나이 쉰다섯. 며칠 있다가 쉰여섯이 된다. 사실상 은퇴한 상태로 하는 일이라고는 집 옆의 클럽 회원으로 날마다 자기보다 나이가 더 든 유대인 노인들과 골프를 치고, 게임에 져서 내깃돈 20달러를 건네주는 일이다. 190cm의 키에 104kg. 농구선수 출신이니 젊을 때는 얼마나 멋있었겠어? 농구와 배구가 실내운동이라서 농구선수, 배구선수들이 진짜로 보면 제일 멋있다. 지금이야 선크림 좋은 게 많아 그렇지 않지만 1970년대의 축구, 야구 선수들은(차범근, 이선희?) 몸이 새까맣게 타서 얼굴이 얼룩덜룩, 마치 야수 같았다. 그러나 세월은 해리의 옆구리와 배꼽을 앞뒤로 해서 부드럽지만 묵직한 피하지방을 달아 주었으며, 대장과 소장 사이에도 만만치 않은 양의 내장지방까지 덤으로 붙여 주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190cm에 104kg이면 그리 과하지 않건만, 당시엔 이게 심각한 과체중이었나보다(아닐 것 같다. 그것보다는 인슐린저항성에 관한 앵스트롬가의 숨겨진 내림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해리는 땅콩 박힌 초콜릿바 같이 달고 기름지거나, 소금 뿌린 콘칩 같이 짠 음식을 그렇게 좋아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 결과 이젠 포르노 잡지를 봐도 충동이 아니라 지루함을 느끼고, 공항에서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깜빡 기억나지 않아 손녀와 함께 그 큰 공항에서 길을 잃게 되며, 간헐적으로 가슴에 통증을 느껴 종말에 임박했다는 기분이 차가운 물처럼 뱃속에서 똑똑 떨어지는 느낌이 난다. 겨우 쉰다섯 먹은 중장년이.

  손녀 주디와 함께 공항에서 길을 잃었다고? 왜? 아들 넬슨은 손자 로이를 안고 혼자 뚜벅뚜벅 수화물 찾으러 떠나버리고, 아내는 며느리와 조잘대느라 정신이 없는데, 손녀 주디의 손을 잡고 공항을 빠져나가던 해리의 눈에 땅콩초콜릿이 포착되었던 거였다. 그게 먹고 싶어서 주디에게, 너도 먹고 싶지? 할아버지가 하나 사줄까? 뭐 이러다가, 결국에 하나 샀고, 먹었고, 주디와 함께 공항을 빠져나오다가 그만 일행을 놓쳐버렸다. 그래서 주차한 곳으로 직접 가려 일단 넓고 넓은 주차장에 나왔더니 글쎄, 차를 어디에 두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 거다. 넓고 넓은 주차장에서, 아무리 12월이라지만 미국 최남단 플로리다의 땡볕 아래에서 말이지. 그래, 그래. 결국 식구들을 찾기는 했다. 초장부터 이산가족이 되면 안 되니까. 잔뜩 열을 받은 상태에서 아빠 해리를 발견한 넬슨. 어디 있었느냐고 불같이 화를 내는 거다. 아이, 씨. 뒤도 안 보고 먼저 걷던 건 넬슨이었음에도 “애 둘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짜증을 팍 내는데, 이게 송곳처럼 해리와 재니스의 아픈 곳을 찌르는 말이었던 걸 넬슨을 알았을까?

  1부 <달려라 토끼>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헤매던 재니스가 집 욕실에 실수로 빠뜨려 죽게 만드는 사고를 넬슨은 그리 깊게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던 것이겠지. 이제 4부가 되니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할 참. 넬슨에게 넬슨도 모르는 여동생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근데 조금만 더 읽어보면 이제 콧수염을 기르고 한쪽에만 귀걸이를 한 넬슨도 여전히 한심한 지경에, 한심한 짓만 골라서 한다. 훅, 빨아들이는 일. 뭘? 코카인. 자신은 결코 중독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만일 중독일지언정 코카인 중독은 알코올 중독보다 인체에 덜 해롭다고 침을 튄다. 코카인을 얇게 몇 줄 깔아놓고 그걸 한 줄씩 코로 훅 빨아들이면 몇 분 지나지 않아 곧바로 천사들과 함께 비행할 수 있다나? 넬슨이 전에 저 북쪽에서 프루, 멜러니와 행글라이딩을 즐길 때 히피들과 어울려 시작했을걸?

  이게 문제다. 넬슨의 코카인 중독. 그리고 조금 지나면 이젠 비싸디비싼 크랙으로 진화해 엄청나게 돈이 들어간다. 아들 가족이 플로리다에 온 1988년말에는 얼추 1만5천 달러의 빚이 있는 걸로 보인다. 초급 과장 정도의 1년 연봉 수준이다. 그러다 1989년으로 넘어가 아빠 부시가 대통령을 하는 동안에 넬슨은 과감하게 크랙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대충 20만 달러 가까운 돈을 스프링어 모터스에서 빼돌리게 된다. 근데 스프링어 모터스가 누구 것? 그래, 엄마 거다. 외할아버지가 애초에 자기 손자인 넬슨이 대를 이어 경영하기 바랐던 사업체. 지금은 창업자 프레드 스프링어의 외동딸인 재니스 스프링어가 소유주로 있는데, 엄마가 아들을 감옥에 보내기가 있기, 없기? 프레드의 외동딸이 재니스, 재니스의 외동아들이 넬슨. 3대로 이어지는 내리사랑. 눈물이 앞을 가리겠지? 이 와중에 해리 앵스트롬의 복장만 남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심장 동맥에 카테터를 끼우고 풍선을 불어 관상동맥을 80퍼센트 넘게 막고 있는 혈전을 밀어내는 시술까지 받아야 하는데, 이 정도면 해리가 오래 살지 못하겠다는 걸 당연히 쉽게 짐작한다. 당연히, 그리고 쉽게? 같은 말 반복.


  해리 래빗은 아들, 자기가 보기엔 재니스와 외조부모 등 외갓집을 빼다 박은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하는 짓이 영락없이 젊은 시절의 해리 래빗 자신인 넬슨, 하는 짓마다 사고를 치며 가족 전부를 곤란한 지경에 빠뜨리고 마는 문제아 아들과 화해할 수 있을까? 하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제아 출신의 갱년기 심장병 환자 해리도 마지막으로 한 방, 결정적인 사고를 칠 예정이긴 하지만.

  하여간 자칭 스웨덴인 해럴드 C. 앵스트롬. 서민 출신이었다가 장가 잘 든 세미 부르주아 백인 미국인. 한 세상 잘 먹고 잘 살다가 한 세상 접은 이야기. 특히 4부는 1~3부까지의 앞선 독서가 없으면 읽으면서 스토리 이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시라.

  토끼 4부작 가운데 2부 <돌아온 토끼>와 3부 <토끼는 부자다>에 비하면 순한 맛이다. 왜냐하면 토끼가 근 10년 단위로 나이가 듦에 따라 한창 시절인 2부보다는 3부가 순하고, 3부에 비하면 4부의 해리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그러니 순할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토끼 4부작의 주인공 해리슨 C. 앵스트롬은 끝까지 기본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어쩌면 성적 대상으로만 본다고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 물론 죽기 전의 토끼가 그에 대한 변명을 빠뜨리지 않기는 해도, 변명이 독자를 납득시킨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이 점을 감안하고 읽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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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12-30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별은 조금 과하다. 그렇다고 4별은 심하고.
 





  웃긴다. 4년 전에 읽은 시집. 심지어 사서 읽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도서관에서 빌려 또 읽었다. 독후감도 또 썼다. 진짜 웃긴다. 세상에 이런 일이. 하긴 살면서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않을쏘냐. 4년 동안 시를 읽은 감상이 어떻게 변했을까?

  다시 쓴 거 또 읽어보니까 진짜. 진짜, 진짜 웃기다. 본문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처음 읽은 박소란의 시집" 쇤네 미친 거 아님? 아니면 알츠하이머?




  이번에 쓴 독후감은 이렇다. 별점 3



  시인의 이름은 오래 전에 들어 귀에 익었다. 정작 읽어본 시가 없었지만. 이름이 재미있으니까. 소란. 웃는 난, 笑蘭. 소란騷亂스러운 소란. 뭐 대강 이런 이미지였다. 본명일까? 본명이면 이름을 누가 지었을까? 1981년생이니 사람의 이름을 지을 때 미소를 지으며 웃을 소笑자를 넣을 수 있었겠다. 이름에 쓰는 ‘소’자는 대개 흴素나 새둥지 소巢, 밝을 소昭 같은 걸 쓰는데 웃을 소는 이이가 처음이다. 그래서 이름자를 보자마자 단박에 기억하고 있었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자라 동국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09년에 문학수첩을 통해 등단한 시인. 간략해서 좋다. 요즘 동국대와 동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가 핫하다. 이젠 문예창작과가 없는 대학이 별로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 각 대학(원)별로 누가누가 시인 소설가를 많이 배출하느냐, 하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듯한데 남산 기슭 동국대가 이름을 날리고 있는 듯. 근데 내가 뭐 알아? 어떻게 시인, 소설가 출신을 보면 동국대 문창과가 눈에 자주 들어온다는 것뿐이지.

  사실은 하고 싶은 말은, 내 주제에 무슨 특별한 증거가 있거나, 증거를 갖고 이야기하지는 못하겠고 그냥 심정상 그렇다는 건데, 숱한 문예창작과들의 경쟁 도구가 당년도 데뷔 시인, 소설가를 몇 명이나 배출하느냐, 하는 데 몰려 있는 거 같아서. 어느 고등학교에서 서울대를 몇 명이나 보내느냐, 하는 것으로 고등학교의 질을 판단하려는 것 비슷하게 말이지. 뭐 그렇다는 거다. 그것 때문에 우리 시와 소설이 비슷해진다는 의견은 양심상도 그렇고 아는 것이 없어서도 주장하지 못하겠다. 그냥 내 짐작이 그럴 뿐이니, 아마도 오산 가운데 큰 오산일 것이다. 이런 헛소리가 마땅하지 않더라도 심한 질타는 참아 주시면 좋겠다.


  처음 읽은 박소란의 시집. 도서관에 박의 시집이 몇 권 있다. 이 가운데 원래는 《심장에 가까운 말》을 읽으려 했다. 근데 소설책에는 훨씬 덜한 반면, 시집엔 왜 그리 밑줄을 많이 그어 놓는지. 밑줄 그어진 시는 생각보다 읽기가 어렵다. 내 시각으로 보아 전혀 중요하지 않은 대목에 그것도 삐뚤빼뚤, 정성이 한 개도 없는 줄이 그어져 있으면 시를 읽는 분위가 싹 잡쳐버리고 만다. 물론 내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10년 전에 출간한 《심장에 가까운 말》은 10년 동안 한두 명이 밑줄을 그어 놓은 게 아니어서 도무지 읽어줄 수 없어 대신 고른 시집이 《한 사람의 닫힌 문》. 동네 도서관 서가의 책에 밑줄이 하나도 안 그어져 이걸 선택했다.

  그런데 시인의 이름하고 어울리지 않게 왜 이리 우울해? 시들이 주로 슬프고, 외롭고, 무섭고, 버림받고, 의지처를 잃고,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뭐 그렇다. 시집의 제일 앞에 내세운 시가 <벽제화원>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시립 승화원의 옛 이름이 벽제화장장. 이곳 초입에도 다른 화장장 들어가는 길목과 마찬가지로 꽃 파는 화원이 늘어서 있다. 시인이 승화원에 갈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누구나 갈 일이 있어 화장로 앞에서 눈물 한 번 짜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듯한 장소. 시인은 화원을 보면서 노래했다.



  벽제화원



  죽어가는 꽃 곁에

  살아요


  긴긴낮

  그늘 속에 못 박혀


  어떤 혼자를 연습하듯이


  아무도 예쁘다 말하지 못해요

  최선을 다해

  병들 테니까 꽃은


  사람을 묻은 사람처럼

  사람을 묻고도 미처 울지 못한 사람처럼


  쉼 없이 공중을 휘도는 나비 한마리

  그 주린 입에

  상한 씨앗 같은 모이나 던져주어요


  죽은 자를 위하여


  나는 살아요 나를 죽이고

  또 시간을 죽여요 (전문. p.10~11)



  아무렴. 아무도 예쁘다 하지 못하지. 승화원에 화장장만 있는 게 아니거든. 공용 납골당도 있고, 개인 납골묘도 있고, 숱한 수목장에 안치된 골분함도 있고, 뼛가루 뿌리는 산골터도 있는 장소에, 누가 함부로 빨갛고 파랗고 샛노란 꽃을 들고 갈 수 있겠어? 그러니 벽제화원, 화장장 인근의 꽃집에 희거나 노란 주로 국화류의 꽃다발만 전혀 저렴하지 않게 팔겠지. 봄부터 소쩍새가 열라 울어주는 바람에 가을에 핀 국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꽃도 보기에 따라 아름답다거나 예쁠 수 있지만, 절대로 꽃으로 보고 예쁘다 할 수 없는 장소와 환경과 분위기 뭐 그런 거지. 그렇게 살다 가면 그걸로 끝인 게 인생이니 이리 유별을 떨 필요도 사실 없다. 하지만 유별 떨 필요가 없다고 유별날 짓을 하지 않으면 그게 시인이야?

  이런 시 한 번 읽어보실래?



  비닐봉지



  알 수 없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또 그리워하는지


  퇴근길에 김밥 한줄을 사서

  묵묵한 걸음을 걷는


  묵묵한 표정을 짓는

  입가에 묻은 참기름 깨소금을 가만히 혀로 쓸 때마다

  알 수 없는,

  참 알 수 없는 맛이다


  밥을 먹을 때면 늘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어째서

  그것은 죽은 사람의 얼굴인가


  쉽게 구멍이 나는


  버리면 된다, 이런 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검게 읊조리는


  자정이 지난 골목을 혼자 서성이는

  까닭도 없이

  달리는

  내처 나는, 날아보는, 제 더러운 날개를 찢어버리려는 새처럼

  어디로든


  언제든

  도무지 썩지 않는 (전문. p.18~19)



  밤, 특히 겨울 밤에 아스팔트나 보도를 횡행해 날아다니는 검은 비닐봉지를 보고 쓴 시가 한 둘이 아니다. 인상깊게 쓴 검은 비닐봉지 시를 읽은 적 있는데 가물가물, 아마 집에 있을 터인데 누가 지은 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근데 박소란의 비닐봉지가 검은 색이라는 증거가 없다. 그냥 비닐봉지. 아마도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 먹고, 잔치국수 한 그릇 후루룩 마시는 결에 함께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한 줄 먹고 입 주변에 깨소금이나 참기름을 묻혀 나오면서, 사장님 깁밥 한 줄 싸주세요, 해서 알루미늄 포일에 싼 김밥을 비닐 봉지에 넣어 받았겠지. 박소란. 밥을 먹으면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습관이 있는데 늘 죽은 사람이거든. 그래 독자는 비닐봉지가 결국 검정 비닐봉지로 딱 연상하게 만든 다음, 이제 시는 삶의 방법으로의 먹음에서 자정이 지난 골목을 배회하며, 날아다니며, 세상의 불운과 죽음을 살포하는 불길한 검은 비닐봉지의 세상으로 만들어냈다. 그것 참. 저 앞에서 말했듯이 시 두 수가 슬프고, 외롭고, 무섭고, 버려지고, 무엇보다 우울하다.

  시집을 읽는 내내 밝고 기뻐서 시인의 이름 소란笑蘭처럼 청아한 아름다움을 기대할 수 없었다. 사랑과 연애마저 그러했다.



  원룸



  비의 꿈을 꾼다


  윗방이 이사를 오고 난 후 줄곧

  장대처럼 굵고 거센 오줌 소리를 듣는다


  밥을 먹으며 듣는다

  잠을 자며 듣는다


  침대에 누워

  그 소리를 가만히 듣다보면 천장이 왈칵

  쏟아져내릴 것 같다 꿈은

  흥건히 젖어 막무가내로 불어 어디론가 떠내려갈 것만 같다


  지금쯤이면 그의 꿈도 흐르고 있겠지, 내가 오줌을 누면

  우산도 없이 우리는 만나

  꿈과 꿈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인사를 나누겠지


  누렇게 얼룩진 아침은 황급히 뒷걸음쳐 숨겠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없겠다

  기어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


  그 사랑은 참 우습고 더러운 사랑

  우리는 자주 거짓말을 하겠지 지그시 서로의 귀를 막으며 (전문. p.62~63)



  원룸 윗방에 튼튼한 국가대표급 전립선 보유남성이 이사 왔나 보다. 그랬더니 아무 때나, 밥 먹을 때, 잠잘 때를 가리지 않고 콰르르르, 이과수폭포처럼 사나운 물총을 난사한다. 아, 씨. 부러워라. 침대에 누워서 오줌발 소리를 들으면 왈칵 천장이 무너져 영화 <지만지>의 폭우 장면처럼 휩쓸려갈 것 같단다. 여기서 의식이 확장된다. 시인이 오줌을 누면 정말 있는지, 없는데 있는 것처럼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꿈에서 그를 만나, 이 다음 연, “누렇게 얼룩진 아침” 그러니 젖은 꿈, 즉 몽정의 밤을 보낸다. ‘그’와 나는 이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지만 이 사랑마저 우울하다. 우습고 더럽기 때문에. 지그시 서로 귀를 막으며 거짓말을 찍어대고 있을 터이니.

  같은 주제로 얼마든지 유쾌한 시를 쓸 수도 있다. 이윤기(맞다 그 이윤기. 에코의 <장미의 이름>,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번역한 이)가 한밤중에 윗집에 혼자 사는 스튜어디스의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들으며 유쾌한 상상을 했듯. 소설집 <나비 넥타이>에 나온다. 윗층에서 들려오는 거칠고 난만하고 맹랑한 오줌 누는 소리. 그걸 들으며 그도 내가 누는 오줌 소리를 들으면 좀 야한 생각이 들까? 생각할 수도 있고, 꿈에서나마 만나 사랑할 수도 있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문제는 역시 마지막 연. 구태여 박소란은 그 사랑을 더러운 사랑으로, 오직 오줌과 누렇게 얼룩진 사랑으로 몰고 간다.

  이런 시집이 많다. 이래서 시집 읽기가 점점 어려워/어지러워진다. 물론 시를 읽는 스펙트럼이 짧아 이렇게 느끼는 거겠지만 마음에 드는 시집 골라 읽기가 갈수록 쉽지 않다. 세월 탓이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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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2-29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픔, 소외, 두려움, 버림받음, 잊어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읽은 책 깡그리 잊고 새 책처럼 또 읽는 게 우리 인생 아닙니까? ㅋㅋㅋㅋ

Falstaff 2025-12-29 16:08   좋아요 1 | URL
ㅎㅎㅎ 자냥님은 역시 재치 만땅이셔요.

2025-12-29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30 0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5-12-29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지어 사서 읽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 저도 그런 책이 많아요 ㅎㅎ

Falstaff 2025-12-29 16:10   좋아요 0 | URL
위에 자냥님 코멘트처럼 책 ˝쫌˝ 읽는 사람의 숙명 아닐까요? ㅎㅎ

그레이스 2025-12-29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쥐스킨트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무심코 꺼내서 읽은 책에서 같은 줄에 밑줄을 긋게 되는데, 처음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밑줄 그은 것도 자신이었다고!

Falstaff 2025-12-29 16:13   좋아요 1 | URL
쥐스킨트가 그런 이야기도 했군요! 저 같은 경우에... 전에 쓴 독후감과 오늘 올린 페이퍼, 함께 인용한 시가 하나밖에 없어서.... 근데, 시 한 수가 얼맙니까? ㅎㅎㅎ 이렇게 위안하고 있습니다.
 
브로츠와프의 쥐들 : 카오스 브로츠와프의 쥐들
로베르트 J. 슈미트 지음, 정보라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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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로베르트 J. 슈미트 본인이 1962년에 폴란드의 브로츠스와프에서 태어났다. 위키피디아에 공상과학 및 판타지 작가, 역자 및 저널리스트라고 나와 있다. 이이의 작품은 더 이상 읽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의 바이오 역시 더 파본들 무엇하랴. 어쩜 세상에 나하고 이리도 맞지 않는 작가도 없을 듯. 슈미트 씨, 우리 다신 보지 말자고.

  이 책은 역자 정보라와 폴란드 작가의 궁합, 딱 그거 하나 보고 희망도서 신청해 첫빠따로 읽었다. 먼저 발견한 건 <브로츠와프의 쥐들 : 철창>이었는데 서점에서 상품 내용을 보니까 1부가 <브로츠와프의 쥐들 : 카오스>라서 이왕 읽을 건 처음부터 읽자, 싶어 이걸 먼저 신청했다.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다음편을 신청하면 될 터이니. 하이고, 잘 생각했지.

  여러 번 이야기한 거 같은데, 정보라가 소개한 폴란드 작가들. 스타니스와프 비트키예비치와 브루노 슐츠, 그리고 스타니스와프 렘. 이 책들이 좋아 정보라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틀림없이 많이 팔리지 않을 거 같은 책을 번역해주어 독자 입장에서 얼마나 흡족했겠느냐고. 그래서 이번에 또 정보라가 번역한 폴란드 작가의 작품이 나왔길래 다른 정보는 귓등으로 흘리고 그대로 희망도서 신청을 해버렸으며, 나는 또다시 내가 사는 도시의 기업체, 자영업자, 시민들이 현금으로 낸 지방세를 축내 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 방에 두 권 다 신청하지 않았다는 점.

  미리 말하고 지나가자. 이 책의 독자 평점이 좋다. 아마 이 장르, 과학은 아니고 공상, 판타지 소설 방면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한테는 명작까지는 모르지만 그 비슷한 수준에 근접한 작품으로 치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 독후감을 읽고 작품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거부감은 터무니없을 확률이 높다.


  작품은 1963년 8월 9일 금요일 19시 50분, 브로츠와프 시 외곽에 있는 키에우초프스카 거리 43a번지 소재 격리병동에서 시작한다. <브로츠와프의 쥐들> 1편이 2014년에 출판되었다니까 당시는 2019년에 시작한 전세계적 감염병과 거리가 있을 텐데, 슈미트는 브로츠와프 시 몇 군데에 격리 폐쇄병동을 만들어 바이러스 감염 의심자들을 3주간 수용했다. 3주 안에 발병하지 않은 사람은 음성으로 판정하여 다시 집과 직장으로 보내 정상생활을 하게 했다. 브로츠와프 시민들을 위협하는 치명적 바이러스는 출혈성 천연두였다. 두창이라고 하기도 했다. 작품의 무대가 1963년이라서 천연두가 치명적이지 지금은 인간에 의하여 완전히 박멸된 또는 박멸되었다고 여기는 바이러스이다.

  키에우초프스카 거리의 격리병동의 경계를 담당하는 경찰부대의 지휘관은 파트리크 미엘레흐 경사. 도시 외곽의 옛 엔진공업학교 부지에 위치한 병동을 완벽하게 격리시켜 시민들을 치명적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이기도 했으나 신경정신과 치료를 충실하게 받아 지금은 전혀 알코올을 흡수하지 않고 지낸다. 물론 경비대장의 덕택은 아니겠지만 이 격리병동에 있다가 퇴원한 후에 천연두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효과적인 격리 정책을 썼다고 봐도 좋다. 이는 의사와 간호사 등의 의료진의 헌신적이며 (공산)당적인 임무 수행의 결과라고 보아야겠는데, 이 가운데 아름다운 금발의 간호사 아그니에슈카 크로코비츠가 미엘레흐 경사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다.

  아그니에슈카는 환자가 발생하면 발생한 가정으로 출동하는 왕진 팀의 일원으로 환자와 환자 가족의 1차 밀접 접촉자라는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감염자 또는 증상발현자가 발생하면 즉시 공산당중앙의료위원회에 전화하고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막은 상태에서 몇 십분이고 대기하다 도착한 의료차량을 타고 돌아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에휴. 여기까지 읽고, 이 작품은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든지, 파트리크 미엘레흐 경사와 아그니에슈카 크로코비츠 간호사 사이의 연애 사건이 불꽃 튀겠구나, 라고 생각해 나름대로 흥미진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63년 8월 9일 오후 7시 50분, 격리병동 5동 2층의 창문이 박살이 나면서 간호사 이나 므위치츠카가 그대로 추락해 떨어졌다. 이어서 두 명이 더 추락했다. 이들은 불행하게도 머리가 먼저 땅에 닿는 즉시 경추가 부러졌으며 팔과 다리 뼈가 골절되었다고 한눈에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비틀려 있었다. 깜짝 놀란 미엘레흐. 그는 격리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아직은 연인으로 가까워지지 않은 아그니에슈카와 눈을 맞추며 사랑을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므워치츠카 간호사가 천천히 땅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흰 간호사 제복은 온통 새빨간 피로 범벅이 된 상태였고 오른쪽 무릎 아래 종아리에는 부러진 뼈가 허옇게 드러난 상태였음에도. 척추가 더 이상 받쳐주지 못한 머리통은 이상한 각도로 매달려 있고, 양팔을 앞으로 내민 채로 아그니에슈카를 향해 빠르지 않은 몸짓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를 보고 있던 수많은 환자들은 순식간에 패닉 상태에 빠져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므워치츠카 간호사가 아닌 누군지 알 수 없었던 세 번째 추락한 사람이 맨손으로, 아무것도 들지 않은 손으로 미엘레흐가 연정을 품고있던 아그니에슈카의 복부, 배를 찢었고, 열린 복부에서 회분홍색 내장과 역겨운 가스 냄새가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도살의 시작이었다. 가시가 맨몸에 깊은 상처를 내는 것을 무릅쓰고 철조망을 넘어 도망하려는 인파와 사방에서 들리는 아비규환의 비명, 무시무시한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중에도, 이미 죽은 것이 확실한 세 구의 시신은 아그니에슈카의 계속 경련하는 신체를 미엘레흐의 시선 앞에서 찢어발기고 있었다. 그의 사랑을.

  곧이어 다른 움직이는 ‘변질자’들 무리가 미엘레흐 쪽으로 이동하고 있어 허리춤에 찬 권총을 꺼내 쏘았으나 권총 정도로는 택도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됐다. 변질자들은 가시철망이 몸에 박히는 건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무심하게 넘으려 하고 있었다. 앞에 선 변질자들이 가시철망에 걸려 있으면 뒤를 따르는 다른 변질자 무리가 앞선 변질자를 밟고 넘어섰다. 아주 빠르지는 않지만 쉬지도 않고, 속도도 늦추지도 않고 계속 앞으로 움직였다.

  이때 퍼뜩 드는 생각이, 격리병동이라는 것이 잠재적 천연두 바이러스 보균자들을 흩어지지 않게 해서 대중에게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저 괴물 또는 짐승들의 타깃이 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요약해 말하자면 거의 모든 피 격리자들, 단지 몇몇 명만 뺀 대부분의 피 격리자들이 이 변질자 또는 괴물,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말로 해서 좀비들에게 산채로 뜯어 먹히고,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또다른 좀비로 변하게 된다.


  어떠셔? 읽을 만하신가?

  아휴, 난 아니었다. 근데 혹시 모른다. 위에 조금 소개한 것 같은 엽기적 장면이 작품의 앞부분에 한 번, 중간에 또 한 번, 나중에 다시 한번, 이렇게 세 번 정도 나온다면 뭐 그런대로 읽을 만하겠다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이 다음 장면은 같은 날 20분 후, 인민경찰 지역본부의 최상위 바로 아래 고급 지휘관의 사무실이다. 금요일 밤을 맞아 보드카 등 가벼운 마실 거리를 즐기는 가운데 최상위 결정권자들은 총기 사용을 절대 금지한 채 브로츠와프를 떠났다. 주말 동안 어떤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자기 소관으로 하지 않고 전권 위임한 지휘관 대리 우카시 브란디스 대위에게 떠넘기기 위하여. 그런데 브란디스 대위는 바보인가? 천만의 말씀이지. 그와 동류의 지휘관들 역시 소위 피박을 면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다. 그깟 민간인 목숨 몇 개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다음 서기장 자리에 자기가 올라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항해중에 배가 침몰할 것 같으면 탈출하려고 먼저 날뛰는 쥐들. 그래서 작품의 제목이 <브로츠와프의 쥐들>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미엘레흐 경사가 전화로 이들에게 ‘변질자’ 발생을 통보했고, 또다른 경찰 병력을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무기를 소지한 상태로 출동시켰음에도 그들 역시 변질자, 좀비에게 전원 당하고 만다. 그리고 잔혹함의 수위가 가면 갈수록 더하다. 이젠 피해자의 배 속에서 나온 회분홍색 창자마저 살아 숨쉬는 자의 발목을 잡아채기 위하여 꿈틀거리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그렇다고 작은창자로 줄넘기를 하는 건 아니고.

  몇 페이지 넘기면 또 간호학교 기숙사. 기숙사에서 잠자고 있던 간호학교장과 학생들도 남아나긴 글렀다. 이 여성들도 또 좀비들에 의하여 몸이 찢어지고, 그들에게 신체 일부가 먹히고… 그만하자, 그만해.

  이게 뭐야? 이거 뭐 도무지 읽어줄 수가 있어야지. 총 767페이지 가운데 278페이지까지 억지로 읽고 때려 치웠다. 아, 시민 여러분. 여러분의 피 같은 세금이 또 이렇게 날아갔습니다. 죄송합니다. 흑흑.

  좀비 이야기는 내 수준에 콜슨 화이트헤드가 쓴 <제1 구역> 정도가 딱이다. 슈미트는 너무 독하고 세다. 포르노 수준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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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2-26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저도 좀 궁금했는데 폴스타프 님이 때려친 책으로... 접수. 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5-12-26 15:19   좋아요 1 | URL
진정 엽기발랄 도무지 적응 불가였습니다. 자냥님도 걍 때려 치시는 걸로....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