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과 강 걷는사람 희곡집 6
동이향 지음 / 걷는사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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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에 살면서 아쉬운 것 가운데 하나가 공연문화에 소외된다는 거다. 하긴 모든 문화행위가 서울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 공연이 끝나면 대강 열 시가 훌쩍 넘는데 여차하면 버스 끊기고, 열차 끊기고 총알 택시 타고 가기는 싫고, 차 몰고 가려면 복잡하고 뭐 이런 저런 핑계로 저절로 멀어지게 되더라. 그리하여 이제야 동이향이라는 극작가를 알게 되었다니, 아무리 핑계를 대더라도 너무 무심했다. 올해 쉰살. 서강대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나 전공과는 무관한 학창시절을 보내 2학년 때 첫 희곡을 쓰고, 주로 연극판을 따라다녔단다. 졸업해서 잡다한 일을 하다가 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에 들어가 공부도 좀 하고, 한겨레신문사 여성월간지 기자도 하다가 망원동에서 ‘이 행성의 이행성을 위한 극장’을 운영하는 ‘극단 두’를 만들어 극작과 연출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계속 하는지는 모르겠다. 5년 전에는 확실하게 그랬다. 윤영선 연극상, 차범석 희곡상을 받은 경력이 있단다.


  동이향의 극작품을 평할 때 거의 예외 없이 어렵다거나 관념적이라는 의견을 개진한다고. 그럴 듯하다. 특정 스토리를 유지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극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독자나 관객이 즉물적으로 이해하기가 거의 가능하지 않을 듯하다. 뭐 관객이나 독자 나름이다. 작품마다 다 어렵거나 관념적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극작가의 스타일이 그렇다는 것이지 확 내놓고 난해하지는 않다. 내 경우에는 다섯 편 가운데 뒤에 실린 소품 두 편 <해와 달에 관한 오래된 기억>과 <지하철 존재론>이 낯선데 특히 <지하철 존재론>의 경우 “배우들의 신체와 움직임을 중심으로, 사운드와 공간, 말, 그리고 영상-브라운관들-을 공연의 매체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움직임, 사운드, 공간, 브라운관 같은 것들을 종이 위에 문자로 표현했으니 연출자의 의도와 설명을 듣지 않은 독자가 도무지 요령부득인 건 어쩌면 당연하다. 오래전 한때 인구에 회자되던 연극 <산씻김>의 대본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씨, 그때가 그립네. 구경값도 헐해서 시간 나면 종종 극장에 들를 수 있었던 나의 20대.


  그런데 이제 나도 연식이 제법 돼서 그런가, 실제로 배우가 나와 공연을 하는 극작품에 살인과 자살(미수도 포함), 섹스가 나오는 건 점점 경원하게 된다. 물론 동이향의 작품이 다양한 주제를 갖고 있으며 그 주제를 위한 장치로 사용하고, 심지어 어렵기는커녕 웃기는 장면으로 잘 윤색되기도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걸 어쩌랴. 내가 죽음이나 자살 같은 걸 경원하는 성향도 <암전>의 등장인물 조율사 H처럼 일종의 트라우마일 수도 있으리라고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너무 자주 사용해서 단지 식상했을 뿐이니까.

  재미있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근데 아쉽게도, 오늘 낮에 읽었지만 이제, 많이는 아니고 조금 늦은 밤에 독후감 쓰려니까 도무지 생각나는 것이 없다. 물에 빠져 죽으려 애쓰는 맥주 잘 마시는 여자 이야기 <간과 강>, 한 회사에서 스물 몇 명이 자살해버리는 <내가 장롤롤메롱문 열었을 때>, 삶(무대)의 한 가운데 갑자기 생긴 땅꺼짐에 떨어져 죽을 수 있는 <암전>. 이 정도가 떠오른다. 하지만 독후감을 읽는 분들이 혹시 오해하실 지 몰라 덧붙이자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는 것일 뿐 기본적으로는 무겁지 않게, 심각하지 않게 그리고 희곡으로 드물게 공들인 문장들로 된 작품이라는 거. 그래, 그래. 욕은 좀 나온다.

  신간 도서 서가에 있던 걸 찾아 읽었다. 도서관에서 나 말고 누가 희곡집을 희망도서 신청했을까? 궁금하다. 만나서 쐬주나 각 일 병씩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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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sum 2025-08-04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씻김굿은 이현화의 극본이었던가요? <불가불가> 때문에 희곡집을 읽었는데 불가불가만 기억하는 와중에 씻김굿은 아이들이 약간 충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나 느낌만 있네요… 오래 전 읽었던 걸 주인장님 때문에 다시 떠올려보았습니다.

Falstaff 2025-08-04 14:54   좋아요 0 | URL
<씻김굿>은 잘 모르겠네요. ㅎㅎㅎ 제가 과문해서... 그런데 검색해보니까 <산씻김>을 쓴 극작가가 이현화인 걸 보니 <씻김굿>이라는 타이틀로 공연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meesum 2025-08-04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 산씻김을 보고 씻김굿이라고 쓴 거였어요 ㅋㅋㅋ 이거 뭐 단기기억력도 형편없음이… ㅠㅠㅠㅠ
 
247의 모든 것
김희선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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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7. 나는 정수를 발견하면 제일 먼저 그 수가 소수prime number인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거의 본능 같다. 2, 3, 5, 7, 11, 13. 13에서 걸렸다. 247÷13=19. 빙고. 247을 소인수분해하면 1, 13, 19, 147의 약수를 가지고 있다. 소수는 아니다. 이번에 김희선은 숫자 247, 1과 자기자신 247을 빼면 오직 두 소수 13과 19만 약수로 가지고 있는 수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펜데믹 이후 반드시 또다시 닥칠 미래의 펜데믹에 관한 이야기라고 광고글을 읽어, 책이 1년 전에 나왔음에도 읽을지 말지 머뭇거리다 세월만 보내고 결국 읽었다. 2백쪽이 살짝 넘는 가벼운 장편. 분량이 가볍다는 말이지 내용까지 가볍지는 않다.


  오래 전, 적어도 40년 세월이 흐르기 전의 어느 날. 강원도 W시의 한 초등학교 4학년 교실. 흰 구름이 몰려오고 습도가 높았다니 아마 여름철이었을 듯한 한낮. 곧 소나기가 쏟아질 거 같은데 교사는 칠판 가득 의미 없는 수식만 잔뜩 써넣고 있었고, 아이들은 졸고 있거나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콧구멍을 후비고 있거나, 연필로 앞에 앉은 아이의 등을 아주 살짝 콕콕 찌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때 갑자기 작지 않은 검은 비행물체가 열어놓은 창문을 타고 빠른 속도로 날아 들어오더니 맞은편 복도쪽 유리에 강하게 부딪혀 철퍼덕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는데, 이 순간 가장 높은 음정과 가장 센 음량으로 비명을 지른 사람은 모르긴 몰라도 담임선생이었을 것이다. 담임은 제일 연장자이고 반에서 생기는 모든 책임을 지어야 하는 사람인 것은 까마득하게 모른 채, 어서 치워, 빨리 저 괴물을 치워버리란 말이야, 악을 쓰듯이, 비명을 지르듯이 마치 패닉에 빠진 신경정신과 적 이상이 있는 사람처럼 부르짖었다. 학생들도 함부로 검정 비행물체에 쉽게 접근하려고 하지 않아 마치 널부러진 듯 꼼짝 않는 검은 물체는 잠깐 동안 외로운 UFO 같기도 했는데, 평소 아무 존재감이 없어서 걔가 우리반이었는지 아니었는지도 별 관심이 없던 김홍섭, 나중에 247이라고 불릴 아이가 한 손에 날개 하나씩 들고 좌악 펼쳐 보이더니, 이거 박쥐인데요, 했었다.

  기가 넘어가기 바로 직전인 담임은 홍섭에게 얼른 가져다 버리라 지시했고, 홍섭은 한 손에 날개 하나씩을 든 채 쓰레기장 쪽으로 걷다가 버리려고 보니 아직 숨을 쉬고 있어서, 사용자가 거의 없어 뽀얗게 먼지만 쌓인 과학실로 데려가 줄로 다리를 매달아 놓았다. 집에 가서 동물도감을 찾아보니 생긴 건 그렇지만 과일만 먹고 사는 박쥐라고 써 있길래, 홍섭은 다음 날부터 박쥐에게 과일을 가져다주기 시작하지만 며칠 가지 않아 박쥐는 죽어버리고 만다. 홍섭도 관심이 멀어져 그냥 그대로 잊고 말았고. 몇 주일 후, 장마철이 지나가 본격적으로 높은 습도가 계속됐을 지도 모른다. 홍섭이네 반에 과학실습을 하는 날이 와서 여자 아이 하나가 기재를 가지러 과학실에 갔는데, 말도 못하게 역한 냄새가 나는 걸 참고, W시에 사는 40년 전 아이들이 경험상 알았듯이 냄새의 원인이 죽은 동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보니까, 새까만 박쥐가 거꾸로 줄에 매달려 이쪽을 향하고 있는데 복부가 일자 비슷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희고 포동포동한 벌레가 꼬물꼬물 기어 다녔고, 가끔 구더기라 불리는 애벌레가 박쥐의 복부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박쥐. 말레이시아가 원산인 커다란 검은 박쥐는 생김새와는 달리 과일을 주식으로 했고, 훗날 밝혀지듯 니파바이러스의 숙주가 되는 동물이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이 박쥐를 직접 손으로 만진 김홍섭, 이제부터 247이라고 부를 남자는 대학에 입학하려고 재수, 삼수를 했지만 실패를 해, 그래도 돈 좀 있는 시골부자 아버지 덕에 동남아시아에 있는 국가 P의 약학대학에 유학한다. 당시 법은 P의 약대를 졸업해도 다시 돌아와 약사시험에만 합격하면 약사면허증을 딸 수 있어서 그것을 노린 것이었지만 늘 있는 듯, 없는 듯했던 247은 졸업 후 돌아와 치른 약사 시험에 불합격하고 만다. 그리하여 들어간 곳이 WCDC세계질병통제센터. 의사도 아니고, 수의사도 아니고, 약사도 아닌 일반 공무원. 그가 하는 일은 구제역, AI 등이 발생할 때마다 소, 돼지, 닭, 오리, 염소, 양 목장에 찾아가 살아 있는 동물을 살처분해 땅을 파 묻는 일이었다.

  살처분? 그렇다고 일일이 총살을 집행하거나 멱을 따지는 않고, 일단 땅을 깊숙하게 판 다음 두꺼운 비닐을 여러 겹으로 깔고 웅덩이에 소면 소, 돼지면 돼지, 가금류면 가금류를 밀어 넣는다. 이후 이산화탄소를 집중 발사해 질식사를 시키는 건데 이산화탄소가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이 마신 가스와 비교하면 청정공기하고 비슷한 수준이라 동물들이 단박에 죽지 않아 거의 생매장을 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땅 속에 짐승을 묻어버리고 시간이 지나면 땅 속에서 박테리아들이 단백질과 지방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모든 죽은 짐승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크기로 부어오르다가 한 순간에 펑, 몸이 터져 골수와 혈장과 액체로 변한 단백질과 지방이, 비록 땅 속이지만 사방으로 분사되고, 매몰한 곳의 토지 역시 진흙 수렁 비슷하게 바뀐다. 죽음과 부패와 바이러스와 혐기성 세균만 득실거리는 수렁.

  어린 시절 니파바이러스가 몸 안에 가득 찼을 지도 모르는 박쥐를 죽을 때까지 만졌으며, 니파바이러스의 종주국이랄 수 있는 동남아에 유학해 공부하고, WCDC에 입사해 니파바이러스의 중간 숙주인 돼지 살처분에 적극적 개입을 한 247은 2020년 COVID-19의 종식 이후 과거의 펜데믹보다 훨씬 강력한 변종 니파바이러스가 다시 세상을 덮치자 국내의 가장 강력한 슈퍼전파자, 가장 강력한 인간 숙주로 밝혀졌다.


  그런데 247이 정말 그렇게 무서운 인간숙주라서 바이러스에 걸리기만 하면 제법 잘 지내다가도 갑작스러운 발병을 해 푹 고꾸라져 죽을 수 있고, 마침 그렇게, 그런 방식으로 몇십 명이 죽는 광경이 생방송으로 우연히 전국민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격리수용을 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을까? 247을 겨냥한 거의 모든 국민의 미움, 미움을 넘어선 증오는 하늘을 찔러, WCDC 관계자가 생각하기에, 국민의 증오가 다른 곳도 아니고 하늘을 찌른다는 말이지? 하여간 그리하여 247을 수천억 혹은 조 단위가 넘게 들지도 모르는 인공위성에 태워 지구 궤도를 돌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고 나면?

  과학저널에 실렸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어떻게 발생했을까? 우주 공간에서 서식하다가 운석에 붙은 상태로 지구에 떨어져도 생존할 수 있는 독한 생명이 바이러스. 이런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핵산 뭉치. 생명체라고도 함부로 말하기 거북한 골치 아픈 존재. 그리하여 세계질병통제센터는 247을 대기권 밖에서 지구 궤도를 하루에 열다섯 번씩 돌게 하다가, 물론 정기적으로 급양과 위생, 즉 먹고 싸는 일은 가능하게 해주고, 극히 좁은 공간에 격리시키다가, 드디어 심판의 날이 와 247이 숨을 거두면, 인공위성을 지구에 다시 추락시켜 재활용을 하는 대신 태양계 밖으로 추진시켜 영원히 바이러스가 지구에 도착하지 못하게 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드디어 247이 죽던 날. 그는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향해 무언가 메시지를 남긴다. 모스 부호를 통해.

  이미 극소수만 사용할 뿐인 모스 부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안전할 줄 알아? 꿈 깨라고. 영원한 격리는 없으니까.”

  아무도 모스 부호를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한다. 훗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247이 위성 안에서 지구인에게 남긴 최후의 메시지는 이랬다고 전한다.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라.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그리니치 표준시로 20XX년 4월 8일 오후 1시 20분에 마지막 생체 반응을 보인 247번 확진자는 WCDC가 인류를 대표하여 죽음을 애도하는 가운데 멀고 먼, 길고 긴 우주 항해를 떠난다. 그리고 며칠 후 247은 지루한 걸 견디지 못해 감히 해치를 열어 우주복도 입지 않고, 안전줄도 매지 않은 채 광활하고 어둡고 추운 우주 공간일 것인 우주선 밖으로 나와, 푸르지는 않지만 하여간 시든 풀이라도 있는 예전의 돼지 목장에 내려 죽은 자 가운데 삼일 만에 부활하는 데 성공한, 인간의 땅에 재림한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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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08-01 0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수인지 아닌지는 생각도 못 해봤어요. 13과 19를 가진 수로군요. 이 책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사람이란 참 자기밖에 모르고 저 좋을대로 생각하는 동물이죠ㅠㅠ 무서우면 물어뜯고 나만 아니면 되고… 희생양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느꼈습니다. 247 인생 어쩔 거야 싶기도 했구요ㅠㅠ

Falstaff 2025-08-01 16:25   좋아요 1 | URL
예. 분량은 짧지만 여러모로 중의적이더군요.
근데....너희들은 서로 사랑하라.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아오 어쩔거나 이 심각한 클리셰 말입지요. ㅎㅎㅎ

hnine 2025-08-01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W시 초등학교 교실 얘기 읽으며 falstaff님 얘기인줄 알았네요 ^^
작가님이 약사 출신이시군요.
재미있겠어요.

(세번째줄 147-->247 이겠지요?)

Falstaff 2025-08-01 16:2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요, 겁이 많아서 짐승 잘 못 만집니다. 아이쿠... 147-->247이네요. 얼른 고치겠습니다 고마워요!!!
넵. 그래서 주인공 247도 P나라 약학대학 출신이고... 뭐 전작에도 좀 그런 거 나오고 그렇더군요. 자연스럽잖아요. ^^

바람돌이 2025-08-01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정이 재밌네요. 저는 순간 저기 가장 히스테릭하게 소리지르는 담임선생님에게 빙의했습니다. ㅎㅎ

Falstaff 2025-08-02 04:53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ㅎㅎㅎ 저는 그 시간에 박쥐가 날아 다녀서 좀 얼떨떨했습지요.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창비시선 405
이설야 지음 / 창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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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설야. 설야雪夜. 정말 이 한자가 맞다. 눈 내리는 밤. 누가 이렇게 이름을 지어주었을까? 나도 비슷한 이름의 여성을 한 명 안다. 안지야芝夜. 일제 시대에 한 부르주아의 혼외자로 태어나 한국전쟁 직후 수도 서울에서 고급 바의 여사장 ‘마담 빠타플라이’로 이름을 떨친 여성. 이장李章의 이복동생이자 연인. 실제 인물은 아니고 내 인생책 가운데 하나인 <원형의 전설: 圓形의 傳說> 여주인공이다. 말 그대로 인생책.  그러니 이 시집을 낸 시인 이설야가 어떤 시를 썼는 지 1도 몰랐어도 이름 하나만 가지고 내 관심을 팍, 끈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아니, 너무 충분했다.

  1968년 인천 동구 화평동 140번지에서 출생. 어려웠던 시절 중에서도 좀 더 어려웠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동네에서 이웃들처럼 어렵게 살았다. 그래서 그 시절 이야기하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이라는 것이 참. 초년 팔자에 겪었던 맵고 신 맛이 시적 경험이자 자산이 될 줄이야. 학력사항은 노출이 되어 있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대학의 문예창작과를 다니는 것이 꿈이었다고. 이때 지역 청년회 가운데 문예창작을 할 수 있는 단체에 가입해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을 만나 훗날 시인의 소위 “민중시”에 영향을 주었다고 “오 마이 뉴스”와 10년 전에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후 풍물패와 인연을 맺고,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공부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하여 방송통신대학과 인하대학 대학원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수료했단다. 시를 쓰는데 그깟 가방끈이 뭐가 중요할까? 얼핏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따박따박 대학과정까지 마친 사람의 생각이고, 지상 최고 수준의 학벌사회인 대한민국에서 그렇지 못했던 사람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으니 조금도 까탈 잡지 말라. 그건 오직 그 사람의 선택에 달린 것이니.

  이설야의 기억에 강렬하게 자리한 것이 지금은 없어진 인천 화평동의 수문통 시장. 그리고 시장 앞을 흐르던 개천. “똥바다”라고 불리던 곳. 시장과 주변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 그들이 만든 분뇨를 거의 그대로 이 개천에 내버려 “똥바다”라고 했으며, 여름에 장마가 지기라도 하면 진짜 똥무더기가 둥둥 떠 개천을 면한 집의 마당은 물론이고 마루와 방에까지 들어차기도 했던 곳. 가물 때면 높은 습도로 인해 지독한 냄새가 도무지 가실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간혹 똥 대신 탯줄이나 신생아가 시멘트 포장지에 둘둘 싸여 흘러 황해 바닷가로 흘러가던 똥바다.

  하지만 이설야가 정말로 민중시를 쓰고자 했으면 좀 더 빨리 등단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가 첫번째 단독 시집 같은데 초판이 2016년이다. 이설야의 기억 속에 있는 1970년대 인천의 도시빈민촌은 이제 그저 한 시절의 기억으로 존재한다. 40년 전 겪은 가난과 소외가 이제는 더 이상 저항과 운동의 동력이 되지 않는 시절이 됐다. 당연히 시인도 이를 알아서 이설야는 그 시절 삶의 신산을 추동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을 노래하기만.



  못, 자국



  검버섯 같은 하늘이 점점 내려오는 저녁

  한 여자가 꽃잎을 여기저기 붙이고 돌아다녔다


  개흙이 훤한 똥바다에 삿대질하다가

  수문동시장 다락방들을 지날 때면

  고래고래 소리까지 지르다가

  만화로다방 앞에 와서는 옷을 다 벗어버렸다


  돈 벌러 중동 나간 남편이 죽었다 하기도 하고,

  아이가 열병으로 죽었다 하기도 하고,


  꽃잎이 하나둘 떨어져서야

  여자의 마맛자국이 보였다

  못 자국 같은 생(生)의 숨구멍들이 보였다


  지금은 솔빛마을이 들어서고

  도로 밑에 개흙, 죽은 물고기들,

  수문통 다락방 젖은 나무들,

  모두 묻혀버렸지만,


  비석 같은 아파트가 세워지고

  마맛자국처럼 하늘에 구멍을 낸

  달이 떠서 또

  바다로 흘러가고 있지만,  (전문. P.12~13)



  이 시에서 보다시피 1970년대 인천 화평동 수문동 시장 근처, 시인의 시적 원형原形의 장소를 기억해 노래할 뿐 “오 마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등장한 “민중시”다운 투쟁이나 저항의 근원으로는 기능하지 않는다. 다른 시들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나는 이설야의 시를 민중시 계열로 넣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도시 서정시로 읽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이설야에게 아버지라는 존재. 겨우 시집 한 권을 읽고 뭐라 하기 어렵지만 다양한 감회를 가진 모양이다. 저번에도 말한 적 있다. 소설, 특히 여성 작가가 쓴 소설 속 아버지는 주로 가정 폭력의 대마왕으로 주폭도 모자라 고기 안 먹겠다는 딸 입 속으로 억지로 탕수육 쑤셔 넣는 등의 상상불가의 기상천외한 개썅노무새끼들이지만, 시인의 아버지는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두꺼비가 한 마리 올라온 것처럼 울룩불룩하게 핏줄이 불거진 손등을 갖고 있다. 이설야의 아버지는 어땠을까? 시인은 자기 아버지를 동인천 시장의 건달이었다고 한다. 건달이라서 집에 올 때마다 마치 사나운 말굽이 방 안을 휩쓸고 간 것 같기는 하더라도 그래도 길고 질겨 끊어내지 못하는 연이 있는 아버지였던 모양이다. 시인은 어떻게 아버지를 그렸을까? 이런 시만 읽어보자.



  백마라사(白馬羅紗)



  백마처럼 하얀 양복 입고 오랜만에 아버지가 나타났다. 사나워진 말굽이 방 안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자 백마라사에서 사온 검정 재봉실이 거미줄처럼 계속 풀려나왔다. 엄마가 손목에다 칭칭 감고 하던,


  발정 난 도둑고양이, 아기 울음소리가 귓속을 파고들던 밤. 잠결에 아버지에게서 빠져나온 엄마의 거뭇한 아랫도리를 보았다. 피 묻은 내 얼굴이 간신히 통과한 곳, 세상의 모든 울음이 터지던 곳간.


  거래 끓던 바람이 문지방을 밟고 오면 도둑고양이와 생쥐와 지렁이들도 함께 울어주던, 백마라사 상표를 매단 하얀 양복이 무서웠던 집. 끊어진 검정 실을 간신히 이어가던 화평동 집.  (전문. p.40)



  어려운 집안 사정을 나 몰라라 하면서 흰 양복을 입고 다닌 한량이었던 모양이다. 당연히 구두도 백구두를 신고 다녔겠지? 그렇게 얌전하지도 않고, 가사에 보탬도 되지 않았던 아버지라서 엄마가 바느질 비슷한 일을 해 입에 풀칠을 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아버지가 집에 오면 집엔 늘 밤 고양이 소리가 났다니 금슬은 좋았던개비여?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 유난한 상실의 기억 속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한탄이나 불만은 이이의 시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오, 철없는 한량 아버지라니.



  은하카바레



  은하카바레 뒷문에서 아버지가 나왔다

  나는 여인숙 난간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아버지는 슬픔을 달래느라

  카바레에다 밤을 억지로 구겨넣었던 것


  거미줄로 목을 감은 전봇대 불빛을

  모으느라 눈이 캄캄해지는 밤

  아버지는 불빛을 여기저기 붙이고 있었다

  그 불빛에 찔려 오랫동안 아무것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백구두 소리가 부엌문을 열면

  내 몸 어딘가 구멍이 숭숭 뚫려 쏟아질 것만 같아

  나는 해바라기 씨앗처럼 불어나는

  새까만 음악 속으로 자꾸만 숨어 들어갔다

  그 속에는 슬픔을 북북 찢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계단 한계단 내려가면 깊은 연못이

  연못 속에는 나와 얼굴이 같은 소녀들이 수장되어 있었다  (전문. P.70)



  거봐, 내가 틀림없이 백구두도 신고 다닐 거라 그랬지? 아버지가 잘 생겼던 모양이다. 카바레 출입을 했다니. 아, 오해하지 말자. 카바레 다닌다고 다 제비는 아닐 터. 춤이 좋고, 음악이 좋고, 어울림이 좋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도 지극히 정상이니까. 그런데 만날 카바레 같은 데만 다니느라 집에 들어올 때마다 면목이 없었던지 대문 또는 현관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부엌문을 연다니 벌써 방안에서 말발굽 소리 내던 기백은 슬그머니 사라진 모양이다. 그려. 그저 수컷이라는 건 벌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부엌문이라도 감지덕지 슬그머니 스며들어야지 별거 있나 뭐. 그렇게 세월이 가고 늙는 것이지.

  자꾸 아버지 타령만 하니까 별로 재미없다. 하나만 더 읽고 끝내자.

  세월 가면 아버지도 간다. 가도 멀리 간다. 아주 간다. 하필이면



  분홍 코끼리와 검은 나비들



  철거를 기다리는 신혼집 다락방

  검정 가방 안에 아버지 이름이 찍힌 내 청첩장

  그 위에 아버지 조의금 봉투들 포개져 있다


  조문하듯 엎드려 있는 봉투들

  밤이 되면 나비가 되어

  내 꿈속을 들락거린다

  분홍 코끼리 어깨 위를 날아다닌다


  분가루 날리는 새벽녘이면

  아버지, 나비들과 함께 검정 가방 속으로 들어간다

  잘못 꾼 꿈을 따라 코끼리 발자국이 이불 위를 지나간다


  만신들의 몸인 집이 흔들린다

  집인 몸들이 봉투 속으로 하나둘 들어간다

  오래된 시간을 염하듯


  내가 다락방을 봉하고 온 조문하던 지문들

  매일 밤 검은 나비가 되어

  이사 간 집 문고리에 앉아 열쇠를 만지작거린다


  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 위를 날아다닌다  (전문. P.80~81)



  이렇게 아버지도 가고, 시인의 화평동 시대도 가고, 이제 남은 건 오직 기억, 기억뿐. 시인은 옛 시절의 가난을 회상하고 노래한다. 가난과 궁핍과 핍진乏盡의 노래라 해서 민중시로 단정하지 말자. 그건 누군가의 가슴 아픈 추억일 수 있고, 유년의 마당일 수도 있으며, 어느 시인의 시적 재산일 수도 있음이라. 시인은 그 시절을 떠올리고, 시로 쓸 때마다 왼쪽 가슴 한 쪽이 뭉텅 떨어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라서.



  (어느 시인인지 작가가 에세이에서 핍진이라는 말을 사용한 후, 글 폼나게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 '핍진'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乏盡과 逼眞은 뜻이 매우 다르다. 아주 조심해서 써야할 말이 요새 남용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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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리얄리 2025-07-3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가족사를 세세하게 알 수 없으니 짐작 정도밖에는 못하겠지만,
시가 그리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볼 때, ‘설야(雪夜)‘라는 시인의 이름을 아버지가 지었다는 심증이 드네요.
그런데 ‘설야‘라 하니, 아마도 모든 고등학생이 공부했을 김광균의 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유명한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말입니다..

Falstaff 2025-08-01 04:14   좋아요 0 | URL
김광균은 시 쓰다가 너무 일찍 사업을 하는 바람에 그저 <와사등> <기항지> 두 시집을 묶은 얇은 시집 한 권만 읽어 뭐라 말을 보태기 어렵네요.
그렇지요? 암만해도 한량 아버지가 따님 이름 지은 거 같습니다.
 
치료탑 행성 마로 시리즈 (Maro Series)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김난주 옮김 / 에디토리얼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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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에 겐자부로가 쓴 유일한 과학 픽션. 그러나 작가가 오에 겐자부로이다.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반핵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던 실천적 지식인. 아직까지 유일하게 원자폭탄에 의한 피폭 경험을 가진 일본인의 후예로 핵과 방사능에 예민하고 강한 저항의식을 지녔던 인물이다. 그리하여 이이의 미래관, 세계관도 핵과 방사능에 의한 비관적 시각으로 일관한다.

  <치료탑 행성>은 미래소설. 시간적 공간은 2040년 이후의 21세기. 애초 오에 겐자부로는 <치료탑>이라는 제목으로 약 3백쪽 분량의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곧이어 2부격인 <치료탑 행성>을 발표하여 전편 이야기를 결말 짓는다. 이후 <치료탑>을 1부, <치료탑 행성>을 2부로 두 권을 묶어 한 편의 장편소설로 합본, 1991년에 <치료탑 행성>이란 제목으로 출간한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대통령 미하엘 고르바초프가 이 해 크리스마스 12월 25일에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에게 핵무기 발사 권한 등 모든 권력을 양도함으로써 74년간 세계를 양분했던 한 축 소비에트는 거대한 막을 내린다. 동시에 냉전시대 역시 공식적으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물론 당연히 이런 조짐은 몇 해 전부터 충분히 전망할 수 있었다. 이 책의 1부 <치료탑>에서도 미국과 소련에 의한 핵전쟁 위기상황은 사실상 사라졌다. 대신 1990년대 초 오에의 시각으로, 핵을 보유하지 않았던 북한이 아니라, 공식적인 핵보유국도 아니고 단 한 번도 실제 핵실험도 하지 않았으나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란 등 중동 국가와, 비공식적인 핵보유국인 이스라엘 사이에 세계대전 수준은 아닐지언정 국지적으로 심각한 핵전쟁이 일어나고, 동시에 아프리카 등 거대국가가 아닌 중소 국가 사이에서도 작은 규모의 핵전쟁이 발발했다고 가정한다.

  여기에 약 5년 전인 1986년에 당시 소련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발생했고, 20년 후인 2011년에 후쿠시마 원전에서 또다시 발생했듯이 세계 각국의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는데, 이번에는 거의 동시에 사고가 발생,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출된 방사능이 전세계를 오염시켜 지구는 극적인 식량고갈과 자원고갈의 기로에 서게 됐다. 체르노빌-후쿠시마 이렇게 25년 터울의 사고가 아니라 한 번에 폭발사고가 난 것으로 보아, 책에서는 자세한 경위를 밝히지 않지만 독자는 이런 다발성 폭발이 우연한 사고라기보다 국제적 테러 집단이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범죄로 인식할 수도 있다. 설마 일본계 독일 작가 다와다 요코가 자기 책 <헌등사>에 쓴 것처럼 하필이면 고단위 폭탄을 잔뜩 싣고 날아가던 세계 각국의 전투기가 갑자기 오작동을 해 정확하게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에 추락했다고 믿는 순진한 독자는 없거나, 거의 없거나, 있어도 별로 없겠지? 전 지구가 방사능 낙진의 두꺼운 침강에 의하여 거의 모든 것이 오염됐고 인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인류는 여태껏 유래가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암종이 발생하는 등 방사능 피폭에 의한 다양한 이색 질병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세계적으로 우울증과 체념, 방관의 기조가 덮쳐 후천성 면역결핍 신드롬, 에이즈가 무서운 기세로 팽창했다. 21세기 말 디스토피아의 도래.

  모든 인류는 절망했다. 못살아, 못살아, 더 이상은 못살아. 근데 못 살면 어쩔건데? 이제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과, 인간이 여태 만들어온 문화, 문명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점에 사람들은 공감했다. 그리하여 지구가 아닌 곳에 새로운 지구를 건설하기로 세계적 합의를 이루었으며, 당연히 새 지구에 전 지구인들을 다 싣고 갈 수는 없는 일이라 이 가운데 탁월한 자원을 선발해 태양계 외 항성계에 있는, 인간이 살기에 그나마 적합한 행성으로 떠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90년경 세계인구가 약 60억 정도로 아는데, 각지에서 터진 핵전쟁과 핵발전소 폭발로 인한 방사능 오염으로 10억 정도가 죽고 50억가량이 남았다. 이 가운데 딱 백만명을 선발, 지구가 가지고 있는, 이라기보다 지구에 남아 있는 거의 모든 자원을 투자해 대규모 탈출, 이른바 대탈출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떠났다. 하지만 10년 후, 이들은 그 먼 항성계의 행성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지구로 귀환하게 되었으니, 서기력 약 2040년 앞뒤, 이제야 소설은 그 막이 올라간다.


  이제 이 책의 1부 <치료탑>을 쓰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의 세계를 기억해보자.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의 자금과 군사력을 장악해서 세계경찰을 자임했던 미국. 이런 미국을 향해 일본의 거대 기업 소니Sony 주식회사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는 일본의 중의원이자 환경청 장관을 역임한 이시하라 신타로와 함께 공전의 베스트셀러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출간했다. 일본의 버블 경제가 극점에 달했던 시기. 6~7년 후에 우리나라가 그러했듯이 일본도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아니면 터뜨리면 안 될 샴페인 뚜껑을 비튼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세상에서 달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바로 옆 분단국가의 남쪽, 한국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나라로부터 존중받던 일본의 작가라서 가능했겠지만, 백만명을 태우고 새로운 지구로 이주하는 범세계적 “스타십 공사公社”의 일본 지부가 프로젝트 비용의 약 1/3을 부담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당시 세계인구가 50억이라면, 백만명이라 해봤자 5천명 가운데 한 명을 골라 외계로 보내는 일이다. 그러니까 5천명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한 명을 선발하는 일일뿐인데, 세상의 다른 곳은 모르겠고, 일본인구가 1억이라면 2만명의 ‘선택받은 자’가 9,998만 명의 ‘잔류자’의 것인 자원과 향유해야 할 문명을 모두 가져가는 것이 옳은 일일까? 좋다, 사회적 합의가 되었다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면 하나 더. 내가 5천명 가운데 4,999명 중의 한명이라고 해서, 누가 나한테 그리고 4,999명한테 “잔류자”를 넘어서 “낙오자”라고 칭하면 그걸 내버려 둬야 하나? 그리고, 5천명 중에서 탁월하고 탁월한 한 명이 사라진 사회가, 핵심 한 명이 빠진 빈 자리를 메꾸지 못한다고? 누가 그래? 만일 정말로 메꾸지 못한다면 그건 사회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다.

  이런 생각, 5천명 가운데 한명으로 뽑히지 못한 4,999명을 낙오자라고 칭하는 것도 모자라, 10년 만에 새로운 지구로의 이주에 실패하고 돌아온 탁월한 자들한테 다시 세상의 헤게모니를 고스란히, 그리고 기꺼이 떠넘기는, 혹은 두 손에 들고 가져다 바친다는 발상은 일본인 아니면 쉽지 않을 것이다. 즉 일본의 소설가가 아니면 상상하기 힘든 상황.

  일본은 우리나라 고려 시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거의 비슷한 무신정권을 세워, 고려의 무신정권이 약 백 년 가량 유지한 반면 일본의 막부는 19세기까지 유지한다. 이 바람에 보통의 일본인은 쇼군과 사무라이 계급 등 상위 계급에 거의 무조건적 충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생사 여탈이 그들 손에 있었으니까. 일본인들이 유난히 친절한 것이, 진심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하여간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한데 무려 5천명 가운데 제일 뛰어난 한명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인간들이 다시 돌아왔으니 속으로는 언짢았을지언정 그들이 다시 세상의 거의 모든 권력을 쥐는 것에는 저절로, 유전자적으로 동의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말씀. 물론 너무 일반화했다는 것도 알지만, 우리나라 작가가 오에의 <치료탑> 비슷하게 썼으면 아마 초장에 거덜이 났을 걸? 당신도 나하고 같지는 않겠지만 비슷하게는 생각하리라 믿는다. 나도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오에 겐자부로가 지구에 잔류한 49억 9,900만 명의 인류한테 “낙오자” 운운할 때마다 열통이 터지는 걸 참지 못했다.


  아이씨. 아직 스토리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독후감 분량이 벌써 마감해야 할 지경까지 와버렸다.

  주인공 키다 리쓰코. 1인칭 소설이지만 독후감은 3인칭으로 쓰겠다.

  리쓰코의 큰 아버지 키다 시게 씨도 방사능 오염 때문인지 아닌지 나오지 않지만 작품을 시작하는 해, 스타십 공사의 우주선이 새로운 지구에서 다시 돌아온 해 봄의 끝무렵에 폐와 뇌로 전이된 암으로 사망했다. 과학자였으며 우주항해를 위해 스타십을 설계하고 건조하는 일본 공사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가 “새로운 지구로”라는 슬로건으로 막대한 예산을 편성하자 자신의 손으로 키운 스타십 공사에서 스스로 물러나와 “대출발” 이후 혼란기에 남은 인류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시스템을 고안하고 그것을 꾸준하게 현실에서 실행해온 인물이다. 그의 빈자리를 친동생 다카시가 물려받아 세계의 백만명 가운데 선정된 일본인 모두를 이끌고 스타십에 태워 새로운 지구로 떠났다. 정당한 선발인지 공사 사장의 입김인지 외아들 사쿠도 데리고. (‘사쿠’는 오에 겐자부로의 이과를 전공한 둘째 아들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가장 현명하고 정의로운 일본인 가운데 한 명이 시게 백부일 터. 그가 살아 생전 이렇게 말한다.

  “이 지구에 인간이라는 의식을 지닌 생물이 출현한 것은 실수였다.”

  이 대사를 읽고 나는 웃었다. 실수는 뭐. 인간이 지구를 망치기 시작한 건 기껏해야 6백년 정도의 시간밖에 안 된다. 앞으로 존속할 기간도 길어봤자, 아주 길어봤자 한 천년? 여태까지의 잘못을 심각하게 반성해서 지구 복원을 힘쓰더라도 원상복구한 지구에서도 끽 해봐야 3만년이다. 지구 나이가 40억살인데 그깟 3만6백년. 인간이 원자폭탄, 원자력 발전소 폭발, 수소폭탄 같은 생 난리를 친다 해도, 인간이 천년 후에 멸종한 다음에 원상복귀에 얼마나 걸릴 거 같은가? 아주 길어봤자 천만년? 지질학적, 우주공학적으로 천만년은 시간도 아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할 필요 없다. 그저 빨리 멸종만 하면 된다.


  스토리는 전부 생략해야겠다. 너무 길어진다. 그러니까 리쓰코가 주인공이고, 새로운 지구에서 헌 지구로 귀환하는 사람 가운데 공사 사장 다카시 백부의 아들, 즉 리쓰코의 사촌오빠 사쿠가 남자 주인공이라서 둘은 당연히 사랑을 하고, 사촌끼리 징그럽게 벌거벗고 잠도 자고, 리쓰코가 에이즈 검사를 한 후에 임신도 하고, 임신한 김에 결혼도 한다. 그러나 귀환자와 잔류자 사이의 결혼이 금지되어 리쓰고-사쿠 커플은 일종의 코뮌 형태의 농장에 숨어들어가고, 웃기게도 그곳에는 정신지체이지만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름도 제법 낸 작곡가 오에 히카리가 또다시 등장하는데, 히카리 나이가 벌써 여든이니, 겐자부로의 맏아들이자 작곡가이며, 오에 겐자부로가 쓰는 소설마다 등장하는 히카리가 1963년생. 이게 내가 연도를 2040년 이후라고 판단한 근거가 된다.

  사쿠는 다시 스타십 공사에 복귀해 우주로 나가, 외계의 지적 생명체와의 교신을 위해 헌신하는 이야기. 오에 겐자부로는 스스로 스타니스와프 렘의 영향을 받았다고 암시하고, 내가 읽기로는 스투르가츠키 형제의 작품 <노변의 피크닉>에서도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재미있다. 천생 문과 인간인 오에 겐자부로는 SF를 써도 여전히 악마같이 거만한 먹물의식에 푹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독자는 모르겠고, 나는 그래서 좋다. 이 책이 지금 절판 상태라서 읽으려면 헌책을 사거나 도서관에 가야 할 듯. 오에의 작품 가운데 인기가 별로 없는지 2018년 초판 1쇄 책임에도 도서관 책 치고 상태가 괜찮다. 재미있는 스토리 이야기를 하지 못해 아쉽지만, 가끔은 아쉬운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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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7-29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에 겐자부로가 이런 글도 썼군요^^

Falstaff 2025-07-29 16:23   좋아요 1 | URL
읽으셔도 좋을 거 같은데요, 추천까지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ㅎㅎ
 
호메로스의 딸 시대의 여성 시리즈
로버트 그레이브스 지음, 한지원 옮김 / 잔상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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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 말고 우리말 번역서가 한 권도 없을 줄 알았던 로버트 그레이브스를 우연히 검색해보았더니 두 권짜리 <그리스 신화>와 한 권이 더 있었다. 바로 <호메로스의 딸>. 더 생각할 것 없이 세 권 모두 손에 들어오는 대로 즉시 읽었다. 이제 다시 그레이브스를 읽으려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그레이브스는 신화학자, 고전학자가 아닌 소설가 로버트 그레이브스였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호메로스는 불멸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가로 몇 천년이 넘게 이름을 날리고 있다. 나도 이 두 영웅전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부터 제법 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 바로 전에 <그리스 신화>를 읽고 트로이 전쟁과 후일담 이야기에 다양한 버전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 책에 의하면 일단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의 바탕이 되는 최초의 작품 또는 서사시를 썼고, 당시엔 기록문학이라기보다 구비문학인 측면이 많았으니 숱한 음유시인이 <일리아스>를 노래하면서 나름대로 조금씩 윤색을 한 것이 대를 잇다 보니 각양각색으로 여러 버전이 탄생했다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세상 모든 나라의 고문학에서도 동일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이때 누대에 걸쳐 <일리아스>를 노래하면서 세상에 알린 음유시인 또는 가객들을 “호메로스의 아들들”이라 칭했으며,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일리아스>는 호메로스의 원전이라기보다 이 호메로스의 아들들에 의하여 다양하게 각색된 버전 가운데 하나라고 그레이브스는 단정한다. 심각한 거 아니다. 당연한 걸 마치 새롭게 알려준다는 식으로 단정했을 뿐이다. 세월이라는 녹은 무엇이든지 변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내가 여태 상상도 하지 못한 의견을 개진한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는 주장. 호메로스의 작품 말고 알기 쉽게 영화를 생각하자. 탄탄한 허벅지로 섹스어필한 매력을 뿜뿜 내뿜었던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우스 역을 한 <트로이>. 턱 밑에 옴폭 팬 보조개에 야만적 남성성을 자랑하던 고 커크 더글러스가 오디세우스 역을 한 <율리시스>. 커크 더글러스의 <율리시스>는 중딩 때 미아삼거리에 있던 대지극장에서 재개봉 영화로 봤는데, 이 영화가 브래드 피트의 <트로이>보다 더 수컷스러웠다고 기억한다. 내용도 그렇잖아? 마녀 키르케와 1년간 동거하고, 칼립소하고는 무려 7년 동안 살았다니 말이지.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그레이브스는 <일리아스>가 남성을 위한 남성의 시라면, <오디세이아>는 <일리아스>보다 적어도 150년 뒤에 쓰여진 여성을 위한 여성의 시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오디세이아>는 호메로스의 작품이 아니라는 뜻. 누가 썼느냐 하면, 후대 음유시인, 가객들의 노래를 거치면서 호메로스가 거론하지 않은 영웅들의 새로운 모험담을 추가해 거대한 불굴의 명작 <일리아스>를 만들었다면, <오디세이아>는 (아가멤논을 비롯한 영웅들의) 비극적인 귀향 이야기에서 소외되었던 오디세우스의 후일담을, <일리아스>가 쓰인 뒷날, 사실은 한 세기 넘어 멀고 먼 훗날 어느 이름을 알리지 않은 작가가 썼을 것으로 가정했다. 가정했다고? 그렇다. 허구라는 의미. 그레이브스가 신화학자, 고전학자이면서 꽤 근사한 소설가라서, 이런 가정은, 자기가 보기에 <오디세이아>가 매우 여성적인 작품이라 이걸 쓴 작가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일 수도 있다고 여겨, 호메로스의 작품을 대를 이어 노래한 가객들을 “호메로스의 아들들”이라고 한 것에 대비해 <오디세이아>의 진짜 작가를 “호메로스의 딸”이라 했다.


  물론 픽션 작품인 <호메로스의 딸>에서 그레이브스는 오디세우스의 정실부인이자 가모장제 사회 이타카의 실질 지배자였던 페넬로페에 대한 다양한 버전 가운데 예상 외의 것을 선택한다. 트로이아와의 전쟁 중에 아랫도리를 함부로 놀린 죄로 신의 노여움을 받은 영웅들. 고국에 홀로 남은 이 영웅들의 아내들 역시 아프로디테의 돌봄을 받아 남편 못지 않은 불륜 사업에 뛰어들었으니 대표 선수로 클뤼타임네스트라와 더불어 페넬로페를 꼽았던 것.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의 불륜담은 워낙 유명해 말을 보태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여태 정절의 표상으로 전세계의 선량한 시민들이 굳게 믿어온 페넬로페도… 뭐라고?

  아시다시피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가까워 오도록 돌아오지 않는 오디세우스. 오디세우스는 전쟁에 이기기는 했어도 폭풍우 치는 에게해를 건너지 못하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받아 배가 침몰, 어복에 장사 지냈다고 알려졌다. “어복에 장사 지내다”는 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어복은 물고기 뱃속. 죽어서 거기다 장사를 지냈으니 물에 빠져 물고기 밥이 됐다는 말씀. 이렇게 여긴 이타카와 주변 도서의 도시국가에서 유력한 미혼남자, 홀아비들이 오디세우스의 궁전에 모여들어 서로 청혼을 했으니 청혼자의 수가 무려 50명이 넘었다. 이때 페넬로페-오디세우스 사이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적어도 10대 후반, 페넬로페도 아무리 적게 봐도 30대 중반, 당시 기준으로 중년 여성이었음에도. 그럴 정도로 부유했으며 페넬로페와 혼인을 하면 저절로 이타카의 왕좌에 오르게 되는 것이라 셈에 밝은 무역국가 그리스 남자들은 혹시나 했겠지.

  하지만 페넬로페가 미쳤냐, 함부로 혼인을 하게. 삼십대 중반, 이제 침대 위의 엑스터시를 제대로 아는 농익은 단계에 접어든 페넬로페 여사는 쉰 명이 넘는 청혼자들을 한 명도 빼지 않고 야심한 밤에 개별 면담을 진행해 몸과 마음의 궁합을 보기에 이른다. 양과 염소의 맹장 끄트머리, 즉 충수를 깨끗하게 씻은 다음에 소금물에 불려 현대의 콘돔을 대신했어도 그만 덜컥, 아이를 배고 말았고, 애를 지우기 위해 보름달이 뜬 야밤에 장독대에 올라 짜디짠 조선간장 한 종지를 벌컥벌컥 들이켰지만 삼신 할매의 뜻이 그러하지 않아 새로 아들을 하나 낳았건만 이게 누구 아이인 줄 알아야지. 그리하여 뒷말하기 좋아하는 인종들이 말을 퍼뜨리기를 그게 반은 염소, 반은 인간인 판 신이라 했다.

  그래도 모래시계는 계속 아래로 떨어져 드디어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상륙을 해 이 허무맹랑한 지경을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청혼자이자 그로 하여금 오쟁이지게 만든 원수들인 50명의 미혼남자 혹은 홀아비들을 전부 도륙하고 페넬로페를 친정으로 쫓아내 버렸다. 그러나 한 많은 청춘시절을 보내다가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찾아 나섰다 맨손으로 돌아오던 아들 텔레마코스와 마주친 오디세우스. 이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건 20년 세월이 아니라 짙고 짙은 안개. 눈에 뵈는 게 없던 텔레마코스는 앞에 선 늙은이가 자기 집 재산을 거덜내고 있는 청혼자 50명 가운데 한 명인 줄 짐작하고 창을 던져 심장을 꿰고 말았다. 그렇게 오디세우스는 허망한 삶을 접는다.

  이게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이 “픽션” 책에서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오디세이아>의 결말이다.


  우리가 아는 <오디세이아>는?

  지명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니 그냥 넘어가자.

  칼립소와 7년을 살다가 정신을 차리고 이타카로 떠난 오디세우스. 칼립소와 만나기 전에 외눈박이 거인 아들 퀴클롭스를 죽인 일 때문에 원래는 그리스 군을 지원했던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 마지막 항해 중에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시칠리아 섬의 서쪽 끄트머리 드레파논에 있는 알키노오스 왕국으로 쓸려 온다. 대신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아이톤”이란 이름의 크레타 섬 타라 출신 이방인. 여기까지는 주인공 이름만 다르지 <오디세이아>와 같다. 때마침 빨래하러 냇가에 온 알키노오스의 공주 나우시카가 그를 발견해 먹을 것과 옷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 딱 여기까지만 같다.

  알키노오스의 왕 알페이데스와 아레테 왕비 사이에는 순서대로 아들-아들-딸-아들-아들이 있었는데 맏이 라오다마스만 이웃나라 공주한테 장가들어 살고 있었으나 여태 아이를 생산하지는 못했다. 둘째 할리우스는 살인과 시신훼손의 누명을 써서 아버지한테 추방을 당해 먼 나라의 실력자로 살고 있다. 셋째가 <호메로스의 딸>인 나우시카. 넷째 클리토네우스는 우리가 아는 <오디세이아>에서 텔레마코스 역을 담당한다. 막내는 이제 젖 떨어진 유소년.

  이 나라에 반역의 세력이 있어서 왕자 라오다마스가 아내의 목걸이를 구하기 위하여 길을 나설 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바다 속에 빠뜨려버렸고, 왕이 아들을 찾아 나선 동안에 공주 나우시카한테 청혼한 112명의 남자들이 의회의 승인을 받아 날이면 날마다 왕가의 재산으로 잔치를 벌이며 나우시카의 결혼 결정을 기다린다. 정적들은 나라를 비운 왕의 시해를 공모하고 있어서, 나우시카가 혼인을 결정한 순간 상대가 왕위를 꿀꺽 삼키게 설계되어 있었다. 이를 모두 알고 있는 나우시카와 동생 클리토네우스는 집안의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 유모 에우리클레이아와 더불어 이들을 도륙낼 계획을 세운다. 그리하여? <오디세이아>의 클라이맥스처럼 일찍이 헤라클레스가 사용했으며 트로이 전쟁에서 필록테테스가 전쟁 유발자 파리스의 목숨을 거둔 활을 정의의 이방인이자 알고보니 나우시카의 외사촌인 아이톤이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가 했던 그대로 과녁을 뚫고, 적들의 심장을 꿰뚤어 무려 112명 가운데 눈치 빠른 한 명을 제외한 111명을 살육한다.

  이후 나우시카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마치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가 겪은 것처럼 <오디세이아>를 썼으니, 그리하여 나우시카는 자칭 “호메로스의 딸”이라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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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28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해석도 있군요. 재밌어보여요. ^^

Falstaff 2025-07-28 16:05   좋아요 1 | URL
ㅋㅋㅋ 넵! 상상이 가지 않았답니다. 하여간 멋있는 소설가인데 소설만 쓰지 뭐하러...

그레이스 2025-07-29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 나우시카!
오디세우스에게 이끌리지만 그를 떠나보내는!

Falstaff 2025-07-29 16:22   좋아요 1 | URL
이 양반, 로버트 그레이브스, 소설은 재미나게 쓴다는 말입지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