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부엉이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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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과 아편에 탐닉하는 페르시안 데카당. 미문, 아름다운 문장은 환장하는 수준이지만 환각 상태의 홀로그램을 과장하더라도 아 글쎄 정도껏 하셔야지. "어느 페르시아 아편쟁이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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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가시 대산세계문학총서 184
시마오 도시오 지음, 이종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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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지 않았다. 고통을 수반하는 책 읽기. 아오, 이게 사소설이라고? 그로테스크한 전후 데카당 소설로 읽었다. 손에 이 책을 든 독자들이여, 이 책을 읽는 건 당신의 팔자다, 팔자. 읽느라고 미치는 줄 알았다. 그래도 별 넷? 다섯? 헛갈리다 넷에서 멈추기로. 내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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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5-25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할 이 책 산 거 제 팔자 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05-25 18:5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5-25 19:26   좋아요 2 | URL
이게 열두 편의 단편을 정리해서 장편 하나로 만든 거거든요. 그러니까 소소한 절정이 열두 번 나옵니다. 그때마다 징글징글해서 별 둘 부터 시작해 나중엔 다섯까지 올라갔다가, 에휴, 흥분하지 마, 넷 정도면 좋아, 했습니다.
정말 징글징글해요. 읽어보셔요. ㅋㅋㅋㅋ
 
앨프리드와 에밀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8
도리스 레싱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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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진짜 만년, 89세, 우리 나이로 90세에 쓴 작품. 드디어 엄마 아빠와 화해하는 도리스. 여태까지 읽은 도리스 레싱과 완전하게 다른 해피 엔드. 마음 편하게 잡숫고 읽으셔도 되는 유일한 레싱. 별점을 세 개 줄까, 네 개 줄까 망설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네 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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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 미스티카
유프레이즈 케질라하비 지음, 양철준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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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케질라하비는 <로사 미스티카>의 주인공 로사가 태어나 소년기까지 지낸 빅토리아 호수 안의 섬 오케레웨의 나마곤도에서 1944년 출생했다. 당시 탄자니아에서는 집안에 경제적 여력이 없더라도 아이가 공부를 좀 하면 상급학교에 무난히 갈 정도의 지원은 해주었나 보다. 저자도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하다가 다르에스살람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같은 학교에서 스와질리어를 강의했다. 동시에 스와질리어로 시와 소설을 발표했는데, 대표작이 오늘 읽은 <로사 미스티카>라고 한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보츠와나 대학 교수를 지내다가 은퇴 후에 다시 탄자니아로 돌아와 살다가 2020년에 천국의 편안함을 찾아, 갔다.


​  뒤편에 실린 역자의 해설에는, “인간의 성품이나 개성의 중요한 형성기인 어린 시절, 가부장적 억압구조, (아버지의) 일상적 폭력에 항상 노출되어 그녀가 가졌던 본성을 상실하고 늘 추구하고자 했던 꿈과 희망마저 거대한 벽에 부딪”혀 “삶의 지난한 여정에서 계획하고 이루고자 했던 많은 일들이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고, 대신 가혹한 상황과 예기치 않은 일들이 밀려온다”고 했다.

  반면에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의 책소개는 “아프리카의 미성년 여학생의 임신이 크게 증가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이 책은 이 문제를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다룬 최초의 아프리카 소설”이라고 했다. 여학생들의 임신 문제의 “원인으로 가부장제를 지목”하고, 작중 주인공 “로사 미스티카는 딸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아버지 자카리아의 억압과 통제로 인해 어떤 남자와 그 어떤 접촉도 하지 못한 채로” 자라나서 “남자와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을 전혀 배우지 못”해 “이후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는데 “이는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일으킬 만하다”고 단정한다.


​  그러니까 둘을 합해서 말하자면, 이 소설은 탄자니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일대에 어린 여학생의 임신(으로 인한 학업 단절)이 크게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고, 유프레이즈 케질라하비는 이의 원인을 아버지(들)의 억압과 통제 때문에 어려서부터 여자 아이들이 남자하고 건전한 인간관계를 맺는 법을 모른 채 성장했기 때문이다, 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맞나?

  주인공 로사 미스티카의 아버지 자카리아는 전직 교사 출신이지만 알코올 의존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학교에서 해고당한, 그나마 지식인 출신이다. 원래 성격은 농담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 처자식과 즐겁게 지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놈의 술이 웬수라서, 술만 마셨다 하면, 하긴 일주일에 8일 마시는 인간이니 언제나 그랬다는 뜻이긴 했지만 하여간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 이상만 됐다 하면, 이런 때는 거의 오밤중이었는데, 밤하늘 별이 총총한 벌판 저 끝에서부터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데시벨로 “E lucevan le stele / Ed olezzava la terra / Stridea l’uscio dell’orto” 푸치니가 작곡한 “별이 빛나건만”을 꽥꽥거리며 다 쓰러져가는 집에 들어와서는 자빠져 자고 있는 아내와 맏이부터 차례대로 로사, 플로라, 호노라타, 스텔라, 스페란티아 이렇게 딸만 다섯을 다 깨워, 우리나라 술주정뱅이 아빠들은 대개 집에 오다 사가지고 온 바가지 과자나 군 고구마 같은 걸 먹고 자라고 하겠지만, 이 자카리아 선생은, 아이들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고, 자신은 아이들 노래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는 거였으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밤이면 밤마다 이게 무슨 달밤의 체조냐고.

  그러다 하루는 아빠가 가장 예뻐하는 넷째 딸, 스텔라가 술 취한 아빠한테, “아빠, 아까 어떤 오빠가 로사 언니한테 편지 한 장하고 20실링을 주는 걸 봤지 모예요.”라고 일러 바쳤고, 이 장면을 읽는 나는, 아이고 이제 알코올 의존자 아빠가 로사한테 20실링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돈 다 뺏기고 얻어 터지고 난리가 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카리아 선생이 로사를 입술이 터지고 입안이 터져 피가 나게 두드리는 건 맞았는데 이 한밤중에 오른손엔 아프리카인들의 무기였던 창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로사의 어깨를 밀어가며 청년 찰스 루사토가 묵고 있는 찰스의 외삼촌이자 선생의 절친한 이웃 사촌인 은달로의 집에 쳐들어가, 알고 보니까 로사가 받은 돈은 5실링이었으니 이 5실링을 찰스 군 발 앞에 내던지면서 오늘 이후에 자기 딸과 말을 트는 것을 그만 두라고 엄숙하게 명령한다. 사랑의 편지엔 뭐가 써 있더냐? 아빠가 맏이 로사한테 그걸 내 놓으라고 하니, 죽으면 죽었지 폭군 같은 아빠한테 달달한 연서를 보일 수 없어 그걸 꼬깃꼬깃 접어서 그냥 입에다 넣고 꿀떡 삼켜버렸지만, 뻣뻣한 종이가 쉽게 넘어가나 어디. 순간 자카리아 씨는 왼손으로 어여쁜 로사의 목을 콱 부여잡았고, 오른 주먹으로 어린 여자 아이한테, 때릴 데가 어딨다고, 그냥 사정 안 보고 안면을 와다다다 강타해버렸으니 결국 캑캑거리며 다시 토해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여튼 이 일 이후에 로사는 절대로 남자를 향해 말을 하지도, 표정을 짓지도, 심지어 눈길 한 번 제대로 주는 적이 없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 우등생 상급 학년이 되어, 자카리아 선생은 자신이 딸 교육 하나는 엄청 잘 시켰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우연히 로사에게 기회가 주어지자, 로사는 단번에 로저리 여학교의 최고 스타로 발돋움하게 됐고, 당시 동아프리카 여학생이 사회문제라 하던 다양한 경험을 했으며, 심지어 데오그라시아스, “신의 은총으로”라는 화려한 이름을 가진 남자로부터 청혼을 받았으며, 승낙을 했으며, 함께 고향집에 들러 결혼 승낙까지 받기도 했으며, 당연히 알코올 의존자인 장인과 어울리다 딱 사위 후보만 크게 경을 쳐 파투가 나버렸는데, 알고 보니 데오그라시아스는 마흔두 살, 아내 두 명과 많은 아이를 거느린 유부남, 로사가 세번째 아내 후보였으니까, 로사가 남자 보는 눈이 없긴 없었던 거다. 이 와중에도 공부를 해 사범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세상 남자 모두를 거부하지 않아 로사는 남학생 사이에 실험실, 어떤 체위, 어떤 방식의 시도도 가능한 “랩Lab”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다가 또다시 유부남과 활활 불이 붙어, 상대의 아내에게 귀를 물어 뜯겨 짝귀가 되어버리고 만다. 짝귀가 <타짜>에만 나오는 줄 아나?

  상태가 이러니 결말이 비극을 향해 가는 건 당연하겠다. 비극도 어쩐지 저 에밀 졸라 식 막장 비극으로 갈 거 같지? 그렇다. 막장 중의 막장 행 열차에 탑승한다.


​  이제 내가 읽은 감상.

  출판사의 책 소개와 역자 해설이, 작가 케질라하비가 작품을 통해 하는 얘기인 건 맞다. 문제는 작가의 의견이 옳다는 건 아니라는 말씀. 작품 속에서는 아름답기가 왕소군 같고 착하기가 심청이 같은 우리의 로사 미스티카가 원래는 조신하고, 성품 착하고, 수줍은 성격이었는데, 계속된 아버지의 억압적 훈육 때문에 점점 자라면서 남자와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래서 아무나, 말만 잘 하면 함부로 성적 관계를 맺는 헤픈 여자가 되어 학교에 다니면서도, 우리나라 학제로 말하자면 고등학교 시절에만 두 번의 낙태를 경험했고, 유부남과 두 번 결혼하려 했겠느냐, 하는 거다. 많은 문제가 있는데 문제들 가운데 동아프리카에서 전래적으로 내려오는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과 차별이 중요한 거였다고 하면 좋다. 당연히 옳은 이야기니까. 하지만 전적으로 그것 때문이라고 하면 곤란하지. 우리나라도 특히 딸을 억압적으로 키운 부모, 이중에서도 아버지는 많았다. 나도 어려서 연애할 때, 아휴, 그땐 셀폰도 없어서 지옥 같았는데, 걔네 집에 전화라도 하면, 제발 전화하지 말라고, 오빠나 아빠, 하여간 빠 들어가는 인종들이 남자한테 전화오는 거 알면 골치 아파진다고, 했던 시절이었으니, 그럼 그때 우리나라에서도 어린 여학생의 낙태가 사회문제였겠네?

  많은 문제 중에서 탄자니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의 여학생 임신과 낙태 문제에 가장 중요했던 건 올바른 성교육과 피임교육, 피임 도구와 약의 자유로운 접근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두 번의 낙태를 경험한 로사 미스티카도 피임약을 해방의 십자가처럼 여기게 된다. 자석의 N극과 S극더러 제발 붙지 말라고 고사를 지내봐라, 그게 안 붙어지나. 말린다고 다 말려지면 어찌 춘향전이 나왔겠으며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왔겠느냐고.


​  하나 더.

  말 안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에잇, 모르겠다. 역자 양철준의 번역이 너무 직역이라 마치 구글 번역기 돌린 것처럼 읽힌다. 물론 구글 번역을 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다시 강조하건데 그의 어학 실력이 아니라 번역해 놓은 우리말이 어색하다. 한두 곳이 아니다. 주로 수동태의 우리말 번역이 그렇다. 무지하게 많지만 예를 하나만 들겠다. 비가 엄청 오는 날, 어느 여인이 홀딱 비를 맞고 집에 들어왔다. 근데 몸을 수그리고 있어서 누군지 모른다. 얼굴을 드니 아하, 이제 알겠다. 이런 상황.

  “바로 그때 그 사람이 얼굴을 내보였다. 그녀는 아주 분명하게 누구인지 인식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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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5-25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친절하게 올려주신, 해학이 넘치는 이 리뷰가 아니었던들 제가 어떻게 탄자니아 소녀들의 성억압과 재생산 건강 문제를 다룬 작품을 알겠어요? 당장은 못 읽겠지만, 이 작품, 제 관심과 닿아있어 소중하게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 수동태 문장! 저도 저도 모르게 참 많이 쓰던데, 주의해야겠다는 마음이 골드문트님의 말씀으로 다시 올라와요^^

Falstaff 2023-05-25 17:24   좋아요 0 | URL
동아프리카 문제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에휴.... 교육이 문젭니다, 교육이.
수동태 문장은... 저도 여간해 쓰지 않으려 하는데요, 하도 오랜 세월 교육 받고 그렇게 사용을 해서 쉽게 고쳐지지 않더라고요. 큰 문젭니다.
 
2022 봄 작가, 겨울 무대 희곡집
구지수 외 지음 / 지만지드라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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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작가, 겨울 무대>는 신춘문예를 통해 역량을 인정받은 신진 작가들에게 신작 장막 희곡 집필과 무대화 과정을 통해 희곡을 완성할 기회를 제공하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작가 지원 프로젝트입니다.”


​  아르코와 대학로예술극장은 머리말에서 “작가와 희곡이 더 빛나도록”이라는 제목으로 <봄 작가, 겨울 무대> 시리즈(프로젝트)의 기획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요즘은 모르겠고, 전에는 일부 문예지의 등단은 별개로 하고, 많은 작가들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을 했는데, 등단 이후 숱한 작가들이 1월 2일자 잉크 냄새가 가시지도 않은 신문에 실린 자신의 데뷔작이 곧 은퇴 기념 작품이 될 정도로 이후에 글을 쓰던지 말던지, 쓰면 그걸 발표할 장을 마련하든지 말든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꽤 오래 전부터 신춘문예에 당선한 중단편 소설과 시 등을 단행본으로 출간하고 있는 걸로 안다. <봄 작가, 겨울 무대>는 여기서 한 번 더 진화하여,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신예 극작가에게, 당선한 작품이 아니라 새로 장막 희곡을 쓰게 하고, 그것을 그저 발표하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을 뛰어넘어, 등단 당시엔 책상 위에서 극작가 홀로 무대를 상상하며 작품을 썼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무대에서 공연을 하며, 비록 낭독극이기는 하더라도, 자신의 희곡이 드라마투르그(또는 드라마터지)의 손을 통과한 새로운 대본으로 바뀌고, 다시 연출가의 해석과 배우의 표현이라는 필터를 어떻게 거쳐 실제 극이 되고, 이 극이 관객과 소통하는 광장으로 나오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그리하여 신출나기 극작가들이 이 모든 과정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각 단계별로 수시로, 현장에서 수정하며 진정한 극작의 경험을 갖게 하는 뜻 깊은 행사였을 것이다.

  이런 행사를 아마도 처음 갖은 극작가 신영은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모든 이들과 / 무대를 채워 준 함께해 준 모든 이들과 / 이 ‘기억’을 함께 나눠 줄 여러분, 너무 감사해요. / 언제나 건강하세요.” (p.79)

  신영은은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얼마나 고마웠을까? (이것도 뭐 사람 사는 일이라서 다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겠지. 그래도 이 정도면 횡재한 거 맞다.)


​  특히 극단에서 이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서울 연극제” 같은 건 빼더라도, 매년 시행하는 “희곡 우체통” 시리즈도 신인 극작가 뿐만 아니라 뜻이 있는 모든 극작가들의 작품을 받아, 이 가운데 좋은 작품을 선정해 직접 무대에 올려주고, 공연이 끝난 후에 희곡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나도 몇 년 동안 재미있게 읽은 적 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문학의 출간을 보면 이런 행사에도 불구하고 시나 소설에 비해 희곡이 상당히 적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나로 하여금 희곡집에 관심을 두게 한 요인이기도 하다. 나라도 자주 읽어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예술장르의 하나인 희곡의 저변을 조금이라도 넓힐 수 있으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서.

  이 책에 작품을 수록한 극작가의 이름을 나열해보자.

  구지수, 신영은, 황수아, 김마딘, 조은주, 김미리, 이예찬, 이도경, 김정수.

  작품은 위의 작가 순으로, 과자집에 살아요, 달콤한 기억, 마지막 포에티카, 사라의 행성,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역할 없는 사람들, 유나바머와 거인, 친절한 식구들, 붉은 가을, 이렇게 아홉이다.

  작가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을 나열한 것은 오늘의 독후감에 아홉 작품을 전부 소개할 수 없어, 빠진 것이 생긴다면 혹시나 서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희곡은 읽기만 죽어라 읽었지, 제법 많이 읽은 거 같은데 내가 보기에도 읽은 만큼 작품을 해석할 내공이 생기지 않는 장르인 거 같다. 그리하여 희곡을 읽고 쓰는 독후감은 시집을 읽고 쓰는 것만큼 난감할 때가 있다. 이 독후감도 마찬가지이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무쪼록 이해를 바랄 뿐이다.


​  대부분의 극작가가 20대와 30대 정도로 보였다. 내가 무슨 <친절한 식구들>에서 나오는 엄마처럼 샤먼이라서 척 보면 아는 건 아니고, 작가들이 세상을 보는 방향과 자신들의 망막에 잡힌 상을 해석하는 것이 40대 아래로 보여서 그리 짐작할 뿐이다. 젊은 세대 답게 이들의 관심은 다양한 방면을 향하고 있었으며 특히 두 작품, <과자집에 살아요>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에서 요즘에 관심을 받고 있는 보호종료아동이 비극의 당사자로 등장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호종료아동은 아동보호소 등의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라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and) 만 18세가 넘어 정부로부터 현금 5백만원의 정착금을 받아 퇴소한 청년을 일컫는 말이다. 사회에 나오기는 했지만 사회적 학습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라서 실제로 많은 이들이 속임에 넘어가거나,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미리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못해 피해를 입거나, 심지어 돈을 관리해본 적이 없어 전 재산 5백만원이 흐지부지 없어지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단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리한 일을 당해도 물어볼 사람도, 어디가서 고민을 상담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경우도 숱해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은 적 있다. 그럼에도 아홉 명의 작가 중에서 두 명이 이 경우를 작품에 풀어서 사용했으면 대단한 관심이라고 할 수밖에.

  그래도 가장 많은 주제는 의사불통과 객체화, 소외, 삶의 곤고함, 풍요 속의 지독한 가난 등이다. 이런 주제를 다루니 당연히 거의 모든 작품이 대단히 우울할 수밖에 없다. 요즘 우리나라 문학을 뒤덮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독한 우울의 먹구름은 얼마나 두터운지 질식할 지경이다. 아홉 작품을 읽으면서 한 번도 피식, 겨우 피식, 하고 헛웃음을 날리지도 못했다.

  과자로 지어진 집에 사는 건 거지꼴을 하고 부모한테 버려진 남매와 보호종료아동 출신으로 ‘아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스물한 살 먹은 법적 성인 여성이고, 어려서는 귀한 조미료였던 백설탕을 할머니와 함께 숟가락으로 몰래 퍼먹은 기억이 있는 비정규직 사내는 설탕을 쏟아붓는 사일로(인 듯한) 기계 안에서 질식해 숨져가며, 숱한 사람들이 가산을 팔아 유토피아라고 알려진 삶 저 너머의 장소 포에티카로 가는 열차에 탑승하려 하고, 결국 너와 나는 애초 다른 행성의 인류였다는 것을 지나, 길고양이에게 극약을 먹인 후 쇠꼬챙이로 눈알을 관통시키기도 하고, 이별 후에 다시 좋은 관계를 맺기는 하지만 대신 다른 커플이 갈라져야 하며, 폭탄을 제작해 거인을 제거하려는 미친 천재에, 아버지 최후의 유산을 찾으려 매장 1년밖에 안 된 묘지를 파헤쳐 관을 열고 시신을 뒤지기도 하고, 풍비박산이 난 집으로 다시 돌아간 남매 앞에서 부모는 처참하게 자살해 있는 이야기. 이것 참.


​  기억에 남는 것을 다 쓸 수는 없다. 작품이 좋아서라기보다 인상적인 장면이 <유나바머와 거인>의 마지막 장면, 유나바머가 죽은 후, 지금부터 몇 십 년 후, 그의 뇌를 스캔해 저장해둔 상태. 인류는 시시때때로 이미 죽은 시신과 별개로 스캔한 천재 유나바머의 뇌를 호출하고, 여기에 이미 떠둔 그의 영상, 즉 홀로그램에 입혀 그를 호출한다. 그러나 유나바머의 뇌가 스스로 창조, 개선, 진화할 수 있는 AI가 아니라서 그는 호출한 사람이 세팅한 시점부터 다시 이것이 처음인 양 똑 같은 행위를 계속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인류가 전기를 만들어내는 한 영원히 컴퓨터와 모니터를 감옥 삼아 지내는 형벌을 받는 셈이다. 아오, 며칠 전에 읽은 김희선의 작품 <달을 멈추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뇌를, 슬라이스를 하던 하지 않던, 스캔해서 컴퓨터 메모리 칩에 저장한다는 것이 김희선 혼자만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젊은 작가들 특유의 감각은 알겠는데 암만해도 너무 우울하다. 한 두 편이면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사흘 동안 하필이면 봄비가 내려 가뜩이나 푹 가라앉은 마음에 큼지막한 돌 하나를 올려놓은 군내나는 동치미 무가 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작가들이여, 당신들 때문이 아니었다. 전적으로 내가 군내나는 무여서 그랬을 뿐이니. 앞으로 꽃 길만 밟고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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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5-23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무 골드문트 ㅋㅋㅋㅋ

Falstaff 2023-05-23 16:02   좋아요 1 | URL
ㅋㅋㅋ 나름대로 어울리지 않습니까!

2023-05-23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3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3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