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술꾼의 전설
요제프 로트 지음, 김재혁 옮김, 파블로 아울라델 그림 / 책세상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요제프 로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당연히 참으로 재미있는 장편소설 <라데츠키 행진곡>을 읽고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마침 헌책방에서 눈에 띄어 망설임 없이 즉각 집어 들었다. 판형이 크다. B5 정도. 파블로 아울라델, 이라는 화백이 삽화를 그려 (한 번 세볼까?) 스물네 쪽을 채웠다. 본문이 총 75쪽이니 삽화를 빼고 글씨만 들어 있는 건 불과 51쪽. 단편소설 한 편을 달랑 싣고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전형적인 단편. 알코올의존증이 분명한 폴란드 출신의 노숙자 안드레아스. 어느 날 그에게 연속적인 기적이 출현한다. 어느 신사가 200프랑을 주는 것. 명예를 존중하는 안드레아스는 자신이 돈을 갚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적선을 거부하지만 양심상 견딜 수 없으면 생트 마리 데 바티뇰 성당에 있는 테레즈 성상을 위해, 일요일에 미사를 막 끝낸 신부에게 갚으라는 말을 듣고, 반드시 그럴 것이라 다짐하며 돈을 받았다. 알콜의존증 환자가 주머니에 돈이 생겼으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도리가 없는 것처럼 득달같이 카페에 들어가 술을 퍼마시기 시작한다. 카페에서 만난 뚱뚱한 남자가 자기네 집 이사하는데 도와주면 또 200프랑을 준다고 해서 돈을 더 벌고, 잡화상에 가 지갑을 샀더니 지갑 안에 1,000프랑 지폐가 한 장 들어있고, 하여간 돈벼락이 쏟아지는 기적이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1,000프랑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에밀 졸라의 <인간짐승>에서는 1천 프랑을 위해 살인도(그것도 자기 마누라를!) 서슴지 않을 돈이다. 그걸 또 여자와 술에 싹 말아먹고, 희한하게도 바티뇰 성당에 가서 부채를 갚으려고만 하면 그게 어긋나고, 뭐 그게 인생이긴 하지만.
 단편소설의 스토리를 더 이상 소개하면 미친 짓이다.
 작가 요제프 로트 자신이 심각하지는 않지만 하여간 술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애주가였던 모양이다. 거기다가 또 기독교인지 유대교인지 아무튼 그렇고. 그리하여 이 책의 제목에서 나오는 ‘전설’이라는 건 ‘읽을거리’, 그 개념 속에 종교적, 도덕적으로 뛰어난 성자들의 삶을 다룬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92쪽). 그러니까 작가 스스로 그의 말년의 작품 <거룩한 술꾼의 전설>은 한국인들이 거의 고정관념 속에서 생각하는 ‘전설’이 아니라 그냥 종교적 교훈이 조금 담겨 있는 읽을거리라고 여기면 딱이다. 직접 읽어보면 뭘 얘기하는지 아실 것. 작가 스스로도 이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 소설의 하위개념인 ‘노벨레’, 일찍이 고트프리트 켈러의 <젤트빌라 사람들>에서 소개가 된 장르로 규정했다고 한다. 흠. 그럼 노벨레 한 편으로 책 한 권을 만들었다는 얘기지? 이런.
 평생 디아스포라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요제프 로트. 내가 그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아무리 재미있게 읽었다해도, 이 책을 단칼로 잘라 얘기하면,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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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읽은 몇 권의 책 가운데 재미있게, 감명깊게 또는 시간 죽이기 마침하게 읽은 것들만 모아보았습니다. 순서는 읽은 날짜 순입니다.

 

 

1. 주느비에브 빠뜨, <사서 빠뜨>

 유년기 부터 초등학생 까지의 자녀를 둔 부모에게 권하고 싶은 책. 아동 도서관에서 60년이 넘게 사서 직업을 가졌던 전문가가 권하는 책들을 소개받을 수 있다. 특별히 명심해야 할 것은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부모가 가장 가까운 도서관이란 것.

 

 

2. 제이디 스미스, <온 뷰티>

흑인과 백인이 결합하여 가정을 꾸린 두 인텔리 가정의 재미난 야단법석. 한 쪽은 남자가 흑인이고 다른 쪽은 여자가 흑인인데 두 집안이 학문적 갈등으로 시작해 범 가족적으로 원수지간. 거기다가 적당한 베드씬까지 겹쳐 흥미로운 한 바탕의 난장판을 벌이는 게, 아주 끝내준다.

 

 

3. 에밀 졸라, <인간짐승>

목로주점의 제르베즈 아줌마가 낳은 둘째 아들. 혈관 속에 끔찍한 범죄 유전자가 흘러 욕정을 일으키는 순간 상대 여성을 살해하고 싶은 갈증으로 부르르 떠는 인간, 자크.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가 늘 그렇듯이 막장을 향해 모든 등장인물들이 조금도 멈춤없이 질주하는 세기의 혼돈.

 

 

4. 윌리엄 트레버, <루시 골트 이야기>

독후감 쓰기 참 막막했던 소설. 읽고나면 가슴 속에 휑뎅그렁한 바람이 스며들만큼 인간이 가슴 속에 쌓아두는 죄책감과 허무한 그리움을 어떻게 이리 잘도 그려놓았는지. 혹시 당신은 손수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5. 존 드릴로, <화이트 노이즈>

세상에 이런 아이디어가 있을 줄 내 몰랐다. 미국 중부의 한 소도시에 대학이 있는데 글쎄 "히틀러 학과"를 개설했단다. 심지어 독일어도 해독하지 못하는 한 인간이 히틀러 학과를 개설하고 학과장 자리에 앉았는데, 다섯번째 결혼으로 구성된 복잡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해서 정말 바람 잘 날이 없다. 무조건 웃길 거 같지? 예상외로 문명비판적이기도 하고, 근사할 걸?

 

 

6. 발레리 라르보, <페르미나 마르케스>

세월이 흘러흘러, 저 먼 시절 청춘을 맞아 이제 여성을 향한 갈증이 돋을 무렵을 온전하게 보냈던 생토귀스탱 기숙학교의 기숙사.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학온 학생, 어린 수컷들이 시절을 보내는 풋풋한 일탈과 동경과 성장 이야기.

 

 

7. 카를 차페크, <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짧아서 단편이라기 보다 손바닥 장掌 자를 써서 장편소설이랄 수 있는 각 스물네 개의 이야기를 담은 책. 20세기 초반의 체코를 정말로 손바닥 내려다보듯 훤하게 다 써놓았는데, 범죄 이야기가 많음에도, 숱한 범죄자들의 악하지 않은 한쪽 면에 집중하는 독특한 시전.

 

 

8.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싱글 맨>

죽은 남자 애인을 잊지 못하고, 새로운 애인은 여간해 생기지 않는 동성애자 교수. 그의 하루를 따라가는 작가의 시선. 도시 이곳저곳에 사랑의 흔적은 남아있고, 풋풋한 젊고 아름다운 청춘들은 눈에 띄는데 이제 그들에게 접근하기는 또 좀 그렇고, 그래, 그것도 인생이지.

 

 

9. 오에 겐자부로, <만엔 원년의 풋볼>

끔찍한 모습으로 목 매달아 죽은 친구, 뇌 헤르메스를 안고 태어난 아들, 알콜 중독 증세에 빠져든 아내. 아 이렇게 죽을 수도 없고, 이렇게 살 수도 없어 학생운동 출신인 동생과 함께 저 옛날 만엔 원년에 민란을 일으켰던 고향으로 귀향해서, 천만에도 몰랐다, 조선인 거물 백승기와 흥미진진한 한 판 풋볼 게임을 크게 벌이게 될지.

 

 

10. 레슬리 마몬 실코, <의식>

모든 것을 잃고 부유하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삶. 그들은 여전히 자연의 한 개체로 존재하며, 주술과 의식에 의탁하기도 한다. 한때 백인처럼 군인이었던 시절엔 그들처럼 찬란했으나 전쟁이 끝나고 다시 인디언으로 돌아온 이들은 다시 거대 자연의 부분으로 의식을 치루어야 했으니

 

 

11. 존 치버, <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존 치버의 마지막 작품. 비오는 밤, 낡은 집에서 침대에 앉아 읽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작가의 겸사에도 불구하고, 존 치버는 그의 마지막 발언으로 사랑과 환경문제를 선택한다. 앞으로 남은 삶은 눈썹 만한 순간. 그가 생의 끝에서 뒤돌아 본 화면은 무엇이었을까.

 

 

12. 메릴린 로빈슨, <하우스 키핑>

집과 집을 구성하는 가족을 지켜내는 일. 하우스 키핑. 그러면서 사라진 가족 구성원을, 꼭 그런다는 의식도 없이,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는 일. 한 고아 소녀 루스와 그의 이모 루실이 만들어가는 가족. 그리고 기다림. 미국 북서부 지역의 황량하게 아름다운 산과 호수가 배경으로 깔려 있고 책을 읽으며 그걸 머리 속으로 그려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

 

 

13. 토니 모리슨, <재즈>

이런 책을 흔히 필독서라고 부른다. 하지만 읽기가 쉬운 수준은 아니다. 재즈의 진정한 맛은 즉흥 연주라고 하는데, 그걸 본따 토니 모리슨이 그냥 즉흥적으로 글을 썼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흑인 문학이며, 첫 장면부터 쉰 살이 넘은 조 트레이스 씨가 열일곱 살의 아가씨 도카스와 바람을 피우다가 질투에 못이겨 총으로 쏴 죽였으며, 그의 아내도 역시 질투에 못이겨 이미 죽은 도카스 양의 시신을 훼손하려 했던 충격적인 장면을 아예 내놓고 시작한다. 어때 혹 하시지?

 

 

1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리고베르토 씨의 비밀 노트>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새엄마 찬양> 후속편이라고도 한다. 마누라 죽고 장가든 리고베르토 씨가 새마누라 쫓아내고 독수공방을 지키며 비밀노트에 온갖 성적 판타지를 적기 시작했고, 동시에 열 살 먹은 아들놈은 새엄마를 찾아가 화가 에곤 실레를 핑계로 이제 갓 돋기 시작한 은밀한 에로티시즘을 톡,톡 건드리기 시작하는데 하여간 바르가스 요사, 요사스럽기는 하다.

 

 

15.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바람의 그림자>

 

시간 죽이는데 장땡이다. 오랜만에 읽은 스릴러. 도시의 외딴 골목 한 구석에 비밀의 문이 있어서 허락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데, 그곳은 이른바 책의 무덤. 책의 무덤이 있다는 건 극한의 비밀. 그곳에서 발견한 책 한 권 때문에 벌어지는 사달이 이렇게까지 크게 번질 줄은 꿈에도 몰랐지? 시대는 프랑코 개자식의 엄혹한 독재시대.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는 나날과 사건들.

 

 

16. 프랑크 틸리에, <뫼비우스의 띠>

역시 스릴러. 이건 스릴러인지 모르고 선택했던 책. 놀랍게도 과거와 미래가 소통을 한다. 그리하여 미래는 과거를 조정해서 한때 미래였던 현재를 바꾸려 하는데, 과거와 미래가 무한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왔다 갔다 하기를 몇 차례였을까. 노약자와 임산부는 책을 읽지 마시라. 살인 장면이 끔찍 itself이며,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

 

 

17. 윌리엄 트레버, <여름의 끝>

아 어쩜 좋아. 어쩌자고 이리 쓸쓸하고 사람 마음을 텅 비워버리는 진공의 상태로 몰아갈 수 있을까. 트레버가 여든한 살에 쓴 책. 그리 노년임에도 이런 감성이 충만했을 수 있었다니 놀라움 자체다. 읽는 내내 독자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동감의 감정으로 절절매게 만드는 대단한 문장들. 그러나 (언제나 매력적인)불륜 이야기.

 

 

18. 알렉시 제니, <프랑스 식 전쟁술>

해설까지 800쪽이 넘는 길고 긴 장편소설. 인도 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 거기다가 항독 레지스탕스 전력까지 있는 노인의 회고록을 써주는 '나'. 강한 인간이 약한 동족에게 벌이는 잔혹한 학살. 인간 이외의 어떤 동물도 저지르지 않는 무차별적 공포와 살육. 기계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인간에 대한 죽임. 이 모든 것을 알렉시 제니는 한때 많은 식민지를 보유했던 자국민들에게 또박또박 짚어간다.

 

 

19. 피오나 맥팔레인, <밤, 호랑이가 온다>

재미있는 책. 읽기 시작하면 손을 뗄 수가 없다. 호랑이가 뭔지 결코 미리 알려줄 수 없다. 정체를 밝히는 것이 책을 끝까지 읽는 일이기 때문에. 혼자 사는 할머니과 노인복지사. 그리고 저 먼 먼 첫사랑. 사구지역 언덕받이의 집에선 향유고래의 울음소리와 물을 뿜는 모습도 거실의 통창문을 통해 보이는데, 일흔다섯 살의 노파한테는 하필 밤마다 호랑이가 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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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호랑이가 온다
피오나 맥팔레인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원작은 <The night guest: 밤손님>. 그런데 제목을 <밤, 호랑이가 온다>라고 하니 ‘호랑이’에 대하여, 여기서 ‘호랑이’가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꽉 차오는데, 이놈의 ‘호랑이’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스포일러를 만들어버리는 것이라 어금니 꽉 물고 참을 수밖에.
 일흔다섯 살 자신(잡수신, 드신 : 이것들 다 좋은 단어인데 언어의 인플레이션 때문에 홀대당하는 느낌이다. 한국인에겐 나이도 음식이다. 한 해에 한 살씩 먹는 거) 할머니 루스. 흠. 내 아내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자격증이란 게 있다는 뜻이지 그걸로 돈 벌어온다는 뜻은 절대, 절대 아니다. 어쨌든 그래서 아는데, 요즘엔 할아버지, 할머니, 이렇게 부르지 않고 무조건 “어르신”이라고 한단다. 어르신 좋아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얼마나 좋은 단어냐는 말이지. 나도 좀 있어 완전 늙은이가 되어, 누가 ‘어르신’하고 부르면 별로 기분 좋을 거 같지 않다. 좋은 호칭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이를테면 “형”, “오빠”, 너무 남세스러우면 뭐 “아찌” 정도는 포용할 수 있겠지만 ‘어르신’이 뭐야 어르신이, 쪽팔리게.
 하여간 75세의 노파 루스가 밤에 잠을 자는데, 침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거 같다. 복도 넘어 거실에서 커다란 짐승의 헐떡임과 숨소리가 들리고, 이게 몸집이 거대한 포유류의 소리 가운데서도 틀림없이 고양잇과 동물의 소리다. 자기가 기르는 세 마리의 고양이는 침실 안 자기 발치에서 고요하게 자고 있으니 이 짐승들이 내는 소리는 아니다. 거실에서 킁킁 거리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오자 루스는 분명히 이게 호랑이가 내는 소리라고 단정한다. 동물원에서 탈출을 했든 말레이 반도에서 이곳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헤엄쳐 왔든 하여간 분명한 호랑이임이 확실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 루스는 전화기를 들고 자동 입력되어 있는 다이얼을 눌러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첫아들 제프리의 새벽 단잠을 깨우고 만다.
 루스는 선교사이자 의사인 아버지와 훌륭한 간호사이기도 했던 어머니와 함께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가난한 섬나라 영국령 피지 왕국에서 살다가, 영국여왕이 피지를 방문했던 1952년의 (당연히 백인들만 초대받은)무도회에서 젊은 의사 리처드 포터(우연히 우리가 아는 해리 포터의 아빠와 이름이 같다)와 난생 처음으로 키스를 했고, 그와 같은 배를 타고 피지를 떠나 호주로 오던 배에서 리처드에게 약혼자가 있으며, 여태까지 사실을 숨긴 이유는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약혼녀가 일본인 과부라는 것을 밝히기 힘들었다는 고백을 듣는다. 그리하여 배에서 내리자마자 헤어진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삶을 살아 루스는 사무 변호사 해리 필드와 결혼해 아들만 내리 둘을 낳고 잘 살았다. 첫째가 앞에서 말한 제프리. 처가가 있는 뉴질랜드에서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으며 아들 딸 쑥쑥 낳고 행복한 편이다. 둘째는 둘째답게 매사에 낙천적인 필립. 얜 홍콩에서 영어 강사하면서 역시 결혼해 아이들 낳고 즐겁게 잘 살고 있다. 이 정도면 자식농사 대빵이다. 다만 한 가지, 남편 해리. 평생 사무 변호사로 열심히 일만 하던 그는 애초부터 늙어 은퇴하면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살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어온 인물. 그리하여 젊어서부터 지금 루스가 사는 집을 사놓고 주택구입 대출금을 갚느라고 죽을 똥을 쌌으며, 결과 한때는 심각한 변비에 시달리기도 했는데(구라다, 구라. 내가 지은 허튼 구라), 대출금을 다 갚고 난 다음부터 여름별장으로 사용하다가 은퇴를 하고는 정말로 거주지 자체를 바닷가 여름별장으로 옮기고 여태 살던 시드니 집을 팔아버렸다.
 자,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노부부가 정원을 가꾸며 남은 생을 여유롭게 지내던 언덕 위의 바닷가 집은, 사구砂丘 지역이 언제나 그렇듯이 끊임없이 불어오는 모래바람 때문에 하루라도 돌봄의 손길이 없으면 순식간에 황폐화되는 아주 취약한(그러나 아름답고 경치도 좋고, 심지어 계절이 바뀔 때마다 거실에서 거대한 향유고래의 울음소리와 이동하는 모습과 물을 뿜는 광경을 볼 수도 있는) 집이란 거. 게다가, 주택구입 대출금을 몽땅 갚은 상태에서 땅값 비싼 시드니의 집을 팔았으니 해리/루스 필드 부부의 저금통장엔 무지막지하게 많은 돈이 숨 막혀 하고 있다는 거. 그것도 현금으로. 이해가시지?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 산 루스. 근데, 어쨌든 남자 먼저 가는 게 거의 대부분이긴 하지만, 남은 인생 이제 바닷가 집에서 여유를 즐기려고 하는 찰라, 시아버지의 모범을 따라 매일 오전에 근처 시내까지 걸어가 신문을 사오던 남편 해리가, 어느 날 아침, 열라 걷던 도중에 그만 심근경색이 왔는지 길가에서 가슴을 부여안고 죽어버렸다. 남편한테는 안 된 이야기지만, 루스야말로 정말 하늘의 복을 타고난 여자.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 없는 해안가 벽촌에서 남편 병수발 하루도 안 하고 순간에 보낼 수 있는 복이 아무한테나 오늘 줄 알아? 그래, 그래. 그래도 남편 죽은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하여간 병구완 안 하게 해준 서방님이 얼마나 고마운가 말이다. 이런 ‘냉정한 행운’을 알려준 사람이 누군가하면, 일흔다섯 살 먹어 이젠 거동이 불편해진 루스를 하루에 한 시간씩 도와주라고 정부에서 보냈다고 주장하는 ‘프리다’라는 이름의 요양보호사. 프리다가 보기엔 루스의 상태가 절대로 좋은 수준이 아니고, 게다가 안 좋아지는 속도가 심각하게 빨리 진행되고 있어서 정부의 허가를 받아 네 시간으로 늘리기에 이른다. 프리다에게 오빠가 있어 개인택시를 운전하는데, 어머니가 물려준 집(건물)이 도시에 있어서 루스와 합의 하에, 도시에서 바닷가 집으로 왔다 갔다 하느니, 도시에 있는 자기 방은 세를 주고 루스의 집에 있는 빈 방에서 살기로 정해, 이젠 늘 두 여인이 함께 살게 된다.
 프리다의 헌신적인 봉사에 두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가까워지고, 마치 친 자식 또는 조카 비슷한 정도 들어(아, 그놈의 염병할 정情. 일찍이 심수봉이 노래했다. 사랑보다 더 드런 것이 정이라고) 이젠 둘이 떨어져 사는 건 생각도 하기 힘든 지경에까지 이른다. 루스의 회상 속에 잘 생긴 한 남자가 밀려들어오니 바로 첫사랑 리처드 포터. 루스는 과감하게, 이젠 홀아비가 된 리처드를 해안가 집으로 초대를 하고, 리처드 역시 겸손하게 초대에 응해 둘은 무려 오십 년 만에 상봉하는데, 어떻게 되냐고? 리처드의 나이 벌써 여든 살. 여든 살의 남자 노인과 일흔다섯 살의 여자 노인이 가능한 수준에서 모든 걸 다 한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다. 궁금하시지?
 이 책의 스토리에 관해 더 이야기하면 정말로 책 사서 읽으실 분은 김이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서 말면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전혀 건드리지 못하고 글을 마치는 셈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독후감을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보여드리지 않겠다.
 그냥 늙은이들의 사는 모습이려니,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니다. (아, 확 이야기해버리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있다.) 일흔다섯 살의 노파의 눈으로 쓴 소설. 이런 작품도 별로 없었거니와, 있더라도 책의 주인공 ‘루스’ 같은 독특한, 그러나 너도 나도 가능하여 충분하게 개연성이 있는 주인공의 시각으로 쓴 책은 처음이다. 그리하여 내 경우엔 책을 열고 중간에 쉴 틈 없이 책에 몰입해갔다. 도무지 중간에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궁금함.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지경에 대해 한 걸음쯤 물러서서 작가 시점으로 서술한 시선. 팔팔한 청춘이라서 자신의 젊음은 결코 떨어져나갈 것 같지 않은 독자에겐 흥미를 주지 않을 수도 있으나 삶을 살 만큼은 살아내, 이젠 인생의 석양을 생각할 정도면 심각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흠뻑 몰입하여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다만 힌트를 드리자면, 역자해설에서 이 책을 ‘심리 스릴러물’이라는 얘기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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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식 2018-04-05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의 석양‘에 이른자들에게 추천하시니 저도 일독해보겠습니다.
재미를 끌어내는 글이세요. 잘보고 갑니다~

Falstaff 2018-04-05 12:39   좋아요 0 | URL
윽, 필리아figlia는 이태리 말로 ˝딸˝이란 뜻으로 알고 있는데, 인생의 석양이라시니 재미있고 놀랬습니다.
흥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책의 진짜 알맹이는 독후감엔 하나도 써놓지 않았습니다. 직접 읽으실 분을 위해서요. 즐겁게 책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크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흠. 김혜나의 데뷔작이자 ‘올해의 작가상’ 수상작인 <제리>를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어서 기대에 차 다음 작품 <정크>를 읽었다. 김혜나. 요즘 핫한 소위 82년생 개띠다. <정크>가 세상에 나온 해는 2012년. 작가의 나이 서른 살 때. 나름대로 세상 살면서 겪을 거 다 겪었다고 생각하기 쉬운 나이다.
 <제리>가 22세에서 24세 가량의, 인천 소재 2년제 야간대학에 재학하는 여학생들의 방황과 절망 등을 세미 포르노 수준의 성애장면을 통해 절절하게 호소했는데, 여학생들 가운데 하나가 나이 먹어 스물일곱 살이 되고, 성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꿔 <정크>의 주인공 ‘성재’가 된 느낌이다. 학생시절의 루저가 드디어 졸업을 하고 (물론 소설 <정크>의 성재는 조금 다른 길을 걷기는 했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꿈을 꾸는 동성애자로 변신했다. <제리>에서 테마를 이끌고 가는 힘이 함부로 저질러버리는 섹스였다면, <정크>에선 남성 간 동성애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낮은 수준의)마약류라고 하겠는데, 이젠 아쉽게도 완벽한 성인으로 편입한 성재의 방황과 실패들과 절망과 태생에 관한 고뇌는, 짜증이 날 정도로 징징거리기만 한다. 간략하게 얘기해서 김혜나가 데뷔작에서 보여준 젊은이의 깊은 절망과 별로 차별점이 없다는 거. 왜 (김혜나의)젊음은 (징글징글하게)징징거리기만 할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쿨하게 사는 청춘들은 정말 없는 걸까.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 속에 나오는 행크 치나스키의 한국판은 언제나 볼 수 있을까.
 만일 순서를 거꾸로 읽었다면 <제리>에 대해 징징거린다는 감상을 적었을지 모르겠다. 아니다. 아닐 거 같다. <정크>를 먼저 읽었다면 아마도 <제리>를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제리>와 달리 작가가 인물의 행위와 사고에 너무 깊숙이 간섭하는 듯.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아마추어 독자인 내 생각일 뿐임을 밝힌다. 하여간 난 주인공 성재가 처음부터 끝까지 징징거리다가 난데없이 화해하는 (누구와? 절대 안 가르쳐드림) 장면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김혜나. 안녕. 나도 (김혜나가 자기 책에 제목 달 듯) 외래어로 하면,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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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전쟁술
알렉시 제니 지음, 유치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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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런 책 좋아한다. 글씨가 빽빽하게 들어찬 두꺼운 장편소설. 이건 하드웨어 적인 선호랄 수 있고, 내용 면으로도 전쟁에 대한 반대선언과 집단주의와 파시즘에 날선 비판을 날리는 작품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려 800쪽. 문학과지성사가 한 권으로 찍었다. 가격이 조금 비싸서 정가 23,000원. 10% 할인해도 2만원을 넘긴다. 페이지마다 글씨가 조밀하여 순수 독서시간이 대략 스물일곱 시간가량 걸렸음에도 단 한 페이지도 함부로 넘길 수 없는 진지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한 문장, 또는 한 문단을 여러 번 읽어야 하는 경우도 다른 책에 비해 월등하게 많았다.
 전형적인 룸펜 ‘나’. 세상에 중요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허비해가며 루저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는 인간. 불성실하게 다니던 회사에서 ‘당연한 해고’를 당한 후, 아침마다 광고지가 가득 든 수레를 끌며 집집마다 딱 한 부씩 던져 넣어야 하는 일자리를 얻었다. 일과가 끝나는 늦은 오전에 동네 술집에 들러 화이트와인 한 잔을 마시는 걸 낙으로 사는 인생도 조금 따분하지만 못 살 정도는 아니다. 아무렴. 세상살이 마음만 바꾸면 그냥저냥 살 만한 거니까. 근데 비교적 손님이 많은 이 술집에 마른 몸집의 노인 한 명이 두터운 신문을 테이블 가득 펼쳐놓고 꼼꼼히 읽고 있는데 단골손님들은 오히려 이 노인 빅토리앵 살라뇽에게 일종의 경외를 느끼며 두 개의 테이블을 오랫동안 점령한 채 신문을 읽는 걸 당연하게, 또는 마땅하게 여긴다. 그가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한 노병이란 사실 하나로.
 벼룩시장 비슷한 것이 열려 시간도 때울 겸 빈둥거리는 ‘나’. 평소에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있어 주로 그림을 팔려고 나온 아마추어 화가들의 작품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오전 술집의 바로 그 노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나’는 빅토리앵 살라뇽의 집에 초대받아 그의 아내, 아름다운 노파인 에우리디케 칼로아니스를 소개받고, 살라뇽이 자신의 회고록을 쓰려고 준비 중이지만 도무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맥을 잡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쓴 초고를 ‘나’가 다시 쓴 것이 이 작품의 ‘소설’편이다. 살라뇽의 일대기, 그것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항독시민군 활동, 인도차이나 전쟁, 그리고 알제리 전쟁을 중심으로 서술해놓았다.
 현재의 ‘나’의 행적과, 노인 살라뇽, 그의 전쟁광 친구 마리아니 등 작품의 현재시점에 관한 것이 ‘주석’편. ‘주석’편으로 통해 ‘나’가 해고를 당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해 애인과 이별을 하고, 살라뇽(과 그의 친구들)을 만나고, 1991년 이라크 전쟁을 통해 거대국가가 제삼세계 국가의 체제와 국민들을 어떤 방식으로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드골로 대표하는 영웅주의와 폭력주의에 반대한다. 책은 이렇게 주석-소설-주석-소설……주석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장 브륄레르’라는 프랑스 소설가가 있다. 그건 본명이고 소설은 필명 ‘베르코르’로 발표하며, 레지스탕스 문학의 대표주자로 손꼽힌다고 한다. 대표작이 열린책들에서 찍은 <바다의 침묵>이란 단편집. 몇 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 그걸 읽고 난 이렇게 독후감을 썼다.


“솔직하게 이야기할 시간이다.
 프랑스 사람들. 그들도 다른 민족한테 영토가 유린당하고 나서 수치스러워하고 비통해하고 저항하고자 하는구나. 난 전혀 몰랐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식민지를 개척한 나라들 제일 앞자리에 프랑스가 있지 않는가. 자기들이 그들의 영토를 빼앗고 생산품과 자원을 약탈할 때, 식민지에서도 나치 치하의 파리 사람들처럼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던 건 몰랐겠지 뭐. 그까짓 5년 동안 나치 치하에 있었으면서 무슨 죽는 소릴 그렇게 해댈까. 당신들이 문명인이고 아랍과 동남아시아가 미개인들의 집단이어서? 웃기지 마. 그들이 어떻게 살(았)던 간섭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어. 나치도 당신들하고 비슷하게 세계에 ‘질서’를 제대로 잡는다는 핑계로 전쟁을 일으켰잖아.“


 나는 아직도 위에 쓴 것과 똑같이 생각한다.
 나치 치하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의 주특기인 “복종” 또는 “순응”을 하며 시간을 버텨냈다. 알렉시 제니가 직접 이렇게 얘기했다. 다만 그 가운데 예외적인 인간들이 항독시민군 활동을 한 것이고, 사실 이렇게 권력과 절대적 무력을 갖춘 지배자에게 찍소리 못하고 설설 기는 건 세계 공통이다. 프랑스 사람만 유별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의 숫자는 천명 가운데 하나나 될까 하는 수준 아니었는가. 그래서 공포정치는 일정 기간 동안 체제 유지를 위해 아주 훌륭한 방법일 수 있다. 다만 오래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지.
 압도적 무력을 갖고 있는 독일이 레지스탕스들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선량한 프랑스 사람들에게 악행을 했던 건 분명하다. 레지스탕스가 독일 병사를 살해하면 열 배에 달하는 프랑스 시민을 죽임으로 복수하는 동시에 항독군의 활동을 위축시킨 것도 일면 그럴 듯하다. 당연히 점령군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뜻.
 그러면 프랑스는 어땠을까. 그들의 점령지에서.
 “핏빛 정원”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군과 외인부대는 ‘호 아저씨’를 중심으로 하는 베트남 독립운동 세력을 저지하면서 세상 어느 나라 군대보다 전혀 못하지 않게 만행을 자행한다. 한 마을을 불사르고, 처형하고, 고문한다. 책에선 1대 10 정도라고 주장하지만 천만의 말씀. 내가 알기로 1대 100 이상. 당연히 알제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드디어 자유, 평등, 박애? 그건 그들만의 리그. 갈리아 인들에게 한정하고,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백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제니의 소설 속 극우파 인물 마리아니가 그렇게 말한다. 유색인종이 불심검문을 당할 확률은 백인보다 4배 높고, 아랍인이 검문을 당할 확률은 유색인종보다 두 배가 높은 거. 이게 프랑스 식 자유, 평등, 박애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나 특유의 반 유럽 정서 어쩌구 하겠지만, 이건 작가 알렉시 제니가 자기 책에서 주장한 걸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대국 프랑스가 제삼세계 국가들에서 선택한 그들만의 전쟁술.
 1991년 미국에 의하여 저질러진 “사막의 폭풍” 전쟁. 난 아직도 기억한다. 미국이 제작하고 운전하는 정밀기계에 의하여 벌어지고 있던 대량 살상극을 나는 출장지에서 TV를 통해 보고 있었다. 역사 이래 최초로 지구상의 많은 인간종들이 자신과 같은 종의 개체가 한꺼번에 학살당하고 있는 걸 인공위성과 TV 수상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것이었다. 목표로 했던 한 건물에 초록 색깔의 화염이 잠깐 밝혀지던 순간, 건물 속에 있던 이라크 사람들은 순식간에 온몸이 화르륵 타버려 그들이 세상에 한 때는 존재했다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증발해버렸다. 말 그대로 증발. 바로 그 장면을 TV를 통해 보던 지구인들은 ‘기계’에 의하여 ‘인간’의 목숨이 사라진 비극을 비극으로 체험하지도 못하는 의식의 궤멸 상태에 빠졌던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책에 의하면 그에 반하여 미국 병사들 가운데서도 전사를 해 전쟁영웅의 칭호를 받은 소수가 있었다고 하며, 그들 대부분은 전투 중 사망자가 아닌 사고사를 당한 군인들이었으며 정확한 숫자와 이름을 밝힐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라크 군인과 민간인은 누가, 몇 명이나 죽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관련한 사실에 대한 아무런 증빙도 없단다. 이게 현대의 전쟁이다. (강대국이 설계하고 만든)기계가 (제삼세계 군인을 포함한)사람을 차별 없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오직 약소국만의)국토를 파괴하는 것.
 작가가 프랑스 사람이라 제목을 <프랑스식 전쟁술>이라고 했지만 프랑스 말고 다른 어느 국가의 이름을 대체해도 전혀 다르지 않다. 하다못해 대한민국을 그 자리에 올려놔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에서 베트남 민간인을 용감무쌍하게 학살한 우리의 삼촌들 이야기를 얼마나 숱하게 들었던가. 힘 센 인간이 다른 약한 인간 종을 대하는 야만적 방식은 어디나, 누구나 다 같다.


 작가 알렉시 제니는 리옹 출신으로 (책의 무대도 리옹이다.) 고등학교 생물교사였다가 처음 소설을 쓴 것이 바로 이 <프랑스식 전쟁술>인데, 데뷔작으로 2011년 콩쿠르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 책은 2018년에 읽은 기념할만한 작품으로 꼽을 정도로 대작이고, 적어도 걸작의 수준까지 띄워주고 싶다. 다양한 논점을 제기해 읽기 쉽지는 않지만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싶은 분들께 강력 추천할 수 있는 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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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4-0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마무리를 못 지었네요.

대작이라고 하시니 올해 다시 도전을
해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18-04-02 12:56   좋아요 0 | URL
예.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재미도 웬만큼 있고, 하여간 오랜만에 읽는 클래식 급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