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문학동네 시인선 224
유수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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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에 구병모가 남자인 줄 알고 어머나, 어머나, 요즘 세상에 우리나라에 남자 소설가도 있네, 했다가 찐따 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유수연이 여자인 줄 알았다가 시집 읽기 전에 먼저 구글 검색해보고 남자 시인인 걸 알아 다시 한번 찐따 되는 불상사를 겨우 막았다. 요즘엔 이름에도 젠더가 없나? 글쎄, 영희가 남자고, 철수가 여자래. 남자 영희? 흠모해 마지않았던 고 리영희 선생은 알지만 여자 철수는 아직 못 봤다. 하여간 남자 수연, 유수연은 1994년에 춘천에서 태어나 안양예고와 명지대에서 시를 공부하고, 성균관대학 대학원 경영학 석사 졸업했다는데 MBA를 말하는 건가? 진로에 고민 많았겠다. 2017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면 생일이 지나지 않아 이이의 나이 스물둘. 춘천이 물이 좋아 오랜만에 20대 초반에 등단한 시인이 나왔나보다. 시집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의 초판이 2024년 11월. 서른 살에 두번째 시집을 냈다. 시는 당연히 20대 후반에 쓴 것들이겠지. 시를 쓸까, MBA 딴 김에 회사를 경영할까? 회사를 경영하면서 시를 쓰면 된다. 암만해도 우리나라에서,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시 하나 쓰면서 먹고 살기엔 너무 팍팍하잖아.

  근데, 인제에서 나서 스무 살에 시집 가 춘천에서 70년 가까이 산 김여사 말에 의하면, 춘천이란 도시가 말만 그럴 듯하지 도시를 휘감고 흐르는 북한강과, 북한강물을 가둔 온갖 댐에서 날이면 날마다 짙은 안개가 밀려와 그런 모양인데, 도시 건설 이래 숱한 폐병쟁이를 양산한 것도 모자라 우울증 환자의 단위 인구별 밀도도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한다. 물론 이건 소양강댐을 지으면서 졸지에 고향을 잃은 실향민 신세로 떨어졌으며,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젊은 시절에 폐병이 도져 군대 징집 면제를 당한 김여사의 다분히 억하심정적 발언이라 그리 믿음직하지 않은 의견이지만 유수연의 시집을 읽는 도중에 왜 여사의 말이 문득 떠올랐을까?

  시집의 1부 소제목이 “네가 웃으니 내 세상이 위로가 돼”이다. 네가 웃어주어야 겨우 내 세상이 위로를 받는단다. 나 혼자 내 세상을 위로할 방법이 없는 시인. 스스로 위로하는 최선의 방법을 알려주노니, 자위를 해라, 자위를. 크리넥스 한 장이면 된다. 돈도 안 들잖아? 괜히 잘 살고 있는 ‘너’한테 실없이 웃으라 하지 말고. 하고 싶은데 자위도 안 되고, 너는 웃어주지 않고, 이러면 결국 남는 건 우울밖에 더 있겠어? 20대잖아, 20대. 지나고 보면 화려했던 거 같은데, 정작 20대 시절을 지내고 있는 이들은 환장하게 어려운 시절. 특별한 사정이 없는 20대라면 적어도 7할은 연애 또는 사랑 때문일 수도 있다. 눈에 확 들어온 건:



  형 물이잖아



  사주를 봐준다는 말이 좋다 내 미래를 예비해주는 것 같다 내 미래를 걱정해주는 말씨도 좋다


  태어난 날 미래가 정해진다는 건 미신 같지만 설명이 가능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이해를 진심이라고 부른다


  나는 금이니 자기랑 잘 맞을 거라던 너는 이제 없지만


  네가 내 생일을 알아내기 위해 사주를 봐주겠다고 한 걸 나중에 알았을 때 내가 태어난 게 처음으로 좋았다 (전문, p.16)



  1부 소제목의 ‘너’가 나의 사주를 봐주겠다는 핑계로 생년월일을 알아냈다. 이런 ‘너’가 있는 게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좋게 만들었다면, ‘너’와 나는 보통 사이를 초월하는 건 분명하니, 연인이라고 봐도 좋다. 근데 ‘너’는 나를 형이라고 부른다. 이 시, 은근한 커밍아웃인 것처럼 읽히기도. 어쨌거나 내가 태어난 걸 좋게 생각하게 해준 너는 이제 없다. 안타깝지만. 원래 그런 거야. 만난 사람은 언젠가 헤어지게 되어 있거든. 어려운 말로 하면 회자정리會者定離.

  그 후배는 금이고 나는 물이란다. 쇠와 물. 쇠, 금인 너는 나를 잘 떠났다. 함께 있어봤자 너는 나 때문에 녹이 슬어 시간이 지나면 나 부스러질 팔자이니. 하긴 그게 사랑이지. 내가 부스러질지언정 너에게만 기대 사는 거. 사랑, 징글징글한 거, 그거 맞아.



  습작


  꿈에서 보았다는 말은 진부하지만 꿈에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은 진부하지 않다 특별하지 않지만 사소하지도 않은 것은 잊혀질 수 없다 팔목에 꽂았던 링거 바늘 자국이, 몸에 박힌 연필심이 오래 머무는 것처럼 나도 몰랐던 내 몸의 어느 점과 같이, 당신이 말해주기 전까지 모를 그런 흔적으로 꿈은 계속 남아 있고 꿈을 앓다 내가 남아나지 않는다 그러나 꿈은 꿈이고 베개는 베개이고 이 슬픔이 슬픔이 아닐 수 있다는 건 지난 내 시의 흔적이다 ‘우리 사랑을 내버려둔 채 사랑하도록 해요’라는 유서를 쓰고 그런 유서만 아니라면 죽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유서를 쓰고만 산다 내게서 더는 다정한 마음을 찾지 말아달라고 고장난 바람이 날개 끝을 검게 물들이는 동안 여름은 가지 않고 새들이 계속 구름을 끌고 창 끝으로 사라졌다 닫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적는 동안 당신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되고 문득 오늘의 슬픔이 어느 날의 기적이 될 수 있기를 그러나 베개가 많이 젖었네, 많이 울었어? 아니, 아 그러면 젖은 머리로 잤구나 오늘은 말리고 자, 말해주던 너는 꿈에도 오지 않는다 눈을 뜨면 아무도 없는 건 모든 삶이 꿈에서 쫓겨난 탓으로 둔다 아무도 없지만 너는 종종 내 옆에 눕고 나는 계속 어떤 문장을 너처럼 안고 잠든다 (전문, p.17)



  위 시의 핵심 단어는 “슬픔.” 시인은 앞뒤 재지 않고 슬픔을 그냥 슬픔이라 발음해버리고 말았다. 슬픔은 끝내 유서와 죽음까지 이어지고, 북한강의 안개 같은 추억 또는 그냥 기억 속에서 치마 걷고 미친년 또는 물귀신처럼 서 있는 근화동 소양강처녀상像처럼 나타나, 울었어? 아니라고? 그럼 젖은 머리로 잤구나, 앞으로는 꼭 말리고 자렴, 하고 말해줄 지도 모른다.

  내 불만은 시에서 직접 슬픔, 눈물, 유서, 죽음이라는 구체적 명사가 등장하는 일. 그래서 언짢은 건 아니고 내 취향상 슬픔, 눈물, 유서, 죽음, 그리고 사랑, 희망 같은 건 노래 속에 포화상태가 되어 저절로 드러나야지 애초에 이리 발음해 나오는 걸 즐기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노여워하지 마시라.

  시인은 “외로움은 혼자 하기도 하고 / 둘이 각자의 외로움으로 슬퍼하기도 한다”거나 “하다 하다 돌까지 사랑하려 한다 /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오래 사랑받아온 돌도 많다”더니 “돌에 하는 사랑을 둘이 못할 것 없었다” 하기도 한다. “슬픔이 바나나보다 빨리 익는다” “보기도 좋은 슬픔이 울기도 좋은 걸 누가 모르나” 누군가 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의 입장에서 보는 건 행복하다” 등등 사랑, 슬픔이라는 단어가 부끄럽지도 않은지 그냥 막 출현한다. 다시 말하는데, 그런 게 내 마음에, 무수히 많은 독자 가운데 겨우 한 명에 불과한 내가 읽기에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리 마음 쓸 것도 없다. (인용한 시귀절 전부 시집에 나온다. 일일이 출처를 밝히지 않겠다.)



  서른



  삶을 밀려 쓴 것 같다


  답지가 아닌 타인을

  계속 들춰보고 싶다


  맞아, 삶엔 답이 없다

  알아, 그래도 있지 않을까


  깨지지 않는 것만으로

  더는 이해받을 수 없다


  그 온도에 물이 끓는단다

  그전에 멈추면 안 되는 거란다


  멈춰도 오래 따뜻할 수 있다


  뜨겁지 않은 체온으로

  사람을 데울 수 있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안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때


  삶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문. P.76)



  시인한테도 시간은 능률능률 흘러 어느 새 서른살이 되었다. 그간 숱한 서른 살이 된 시인의 시를 읽었지만, 어떠셔? 좀 약하지? 서른 살이 뭐야? 세상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쥐뿔도 아는 것 없는 시절. 여차하면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한 걸음 내딛는 듯한 갈팡질팡의 시기. 뭐 나 그리고 내가 읽은 서른 살 시인들이 모두 없이 살아서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멈춰도 따뜻할 수 있고, 삶은 그래도 문제가 되지 않는 서른살을 보내는 시인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래도 서른살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살은 온다”가 제일 멋있었어.

  따뜻할 수 있고, 문제가 되지 않는 삶, 서른살을 사는 시인도 21세기의 불안까지 떨쳐내지는 못하는군.



  원죄



  지갑을 떨군 사람에게 이거 떨어뜨렸다 말하니 자기 것이 아니라 말한다 자기 것이 아니라 믿는 순간이 제 몸을 더듬어 지갑을 찾는 시간보다 짧다 그는 감사하다 말하고 사라졌다


  이거 당신 거 아닌가요

  누군가 쫓아온다


  아닌데요 아니에요 제 것이 아니에요

  수없이 말해도 내 몸을 더듬어 넣어준다


  놓고 간 게 있어요

  내 정신 좀 봐


  다녀오겠다 나선 이가 다녀왔다 말하지 않았다


  그는 문에 단 풍경이 하도 시끄러워 떼었다고 했다

  그 말고는 여닫을 이 없는 말수 적은 목재 문이지만 (전문. p.77)



  지갑 떨어뜨려놓고 주워 줘도 굳이 내 거 아니라고 하더니 그냥 고맙습니다, 말하고는 사라진 인간이 시인이었구나. 왜 그랬을까? 만인 앞에서의 쪽팔림? 내가 지갑 같은 걸 떨어뜨리는 인간이 아니라는 자만? 혹은 모르는 사람이 말을 시켜서? 그보다는 워낙 외로움을 타는 인간이라 딱 그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반응장애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시 쓰는 사람 가운데 종종 보이지. 쯧쯧. 농담이다. 나, 신경정신과 적으로 아는 거 쥐뿔도 없다. 나도 그냥 해본 말이다.

  이제 서른한 살의 팔팔한 시인이니 구름 같은 앞날을 기대할 수 있겠다. 아무쪼록 큰 시인이 되기 바란다. 그러면서 시 감상은 매정하게 한 것 같아 면목 없다. 춘천 출신이라 처가 식구 본 거 같아 더 미안하다. 좋은 말 좀 화끈하게 해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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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2-08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달 전에 구병모가 남자인 줄 알고 어머나, 어머나, 요즘 세상에 우리나라에 남자 소설가도 있네, 했다가 찐따 된 적이 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빵터졌습니다.
아니, 근데 이 시인은 남성 시인...! 저도 여자인 줄 알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5-12-08 15:24   좋아요 1 | URL
ㅋㅋㅋ 자냥님도 참... 쪽팔리게시리 콕 찝어서 말씀입죠.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5-12-08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구병모ㅡ남자
유수연ㅡ여자 아닙니까? ㅎㅎ

Falstaff 2025-12-08 19:0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제 말이요!!!

yamoo 2025-12-0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 이름 여자 이름이 참 알 수 없더라구요...
중성적인 이름은 승현이 있구...현주라는 이름은 여성이 많지만 남성도 꽤 있죠.
현경의 경우도 여자가 많지만 남자도 있고, 은영이라는 이름도 남자 이름이 꽤 있죠. 고3때 담임 별명이 미친개 였는데, 이름이 오은영이었어요..ㅎㅎ 완전 상남자 스탈인데...이름 보면..ㅎㅎ
심지어 김미경이라는 남자 이름도 있더라구요..
근데 제가 본 이름 중 잊혀지지 않는 이름....최고다 씨...성이 최가이고 이름이 고다....주민센터에서 기둘리고 있는데 최고다씨~~라고 부르는...공뭔도 이름이 희한했는지 이름 맞냐는 소리를 바로 앞에서 들었네요..ㅎㅎ

Falstaff 2025-12-08 19:03   좋아요 0 | URL
별 이름이 다 있군요!
배철수 할머니도 계신다더군요. 허연 콧수염 DJ 배철수의 방송에 나왔다는데요, 유튜브인지, 라디오 방송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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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공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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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시그리드 누네즈의 책을 세 권 읽는다. 우연히 그렇게 됐다.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내 눈에 자주 뜨인 작가. 누네즈는 이 정도면 됐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화자 ‘나’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당신에게 보내는 긴 편지. 당신은 죽었다. 병에 걸린 것도, 사고가 나서 비명에 간 것도 아니다. 아마도 테뉴어일 터이고 아직도 생활비가 필요할 텐데 당신은 자살해 버렸다. 그래. 평소 당신 생각에 의하면 노인의 자살은 합리적인 결정일 수도 있지. 완벽한 선택이자 최선의 해결책일 수도 있고. 그래서 그냥 죽어버린 거라고? 뭐 어쨌든.

  하여간 평소에 원했던 대로 당신의 몸은 불살라버렸고, 장례식도 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조문객 접대 행사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아쉬워 아주 약식으로, 크지 않지만 비싸고 부티나는 한 식당에 당신과 결혼생활을 했던 세 여자와 30년의 우정을 쌓은 ‘나’, 이렇게 네 여자만 조촐하게 당신의 생을 추모하는 모임을 마련했다. 다양하게 수다를 떤 것이지.

  당신의 첫번째 아내, 둘째 아내, 셋째 아내를 일일이 그렇게 부르기 귀찮으니까 그냥 1번, 2번, 3번이라고 하면, ‘나’는 뭐라 부르지? ‘나’가 ‘나’를 부르는 거니까 그냥 ‘나’라고 하면 될 거 같군.

  1번은 ‘나’처럼 당신이 학과의 최연소 교수일 때 ‘나’와 함께 당신의 수업을 들은 이를 테면 제자였지. 당시에 당신은 학과의 재원이자 로미오였던 시절이어서 많은 여학생이 당신한테 홀딱 반해 있었고, 솔직히 ‘나’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었어. 그러다가 내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학기가 끝나자 당신은 ‘나’더러 한 번 자자고 했지. 나도 마음은 굴뚝이었는데 어떻게 말을 하다 보니 “둘이 친구 이상 되려는 것은 실수”라고 해버렸어. 당신은 아마 조금의 굴욕감을 느꼈던 것 같아. 하여간 그때 이후로 나이 차이는 좀 있지만 당신하고 ‘나’는 이날 이때까지 좋은 친구, 요즘 동태평양에 있는 사우스코리아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에 의하면 ‘사람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게 된 거야.

  당신은 나 말고도 학생이었던 1번을 유혹했고 급기야 자빠뜨리는 데 성공했어. 그러고도 우리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지. 속으로야 모르겠지만 하여간 겉으로는 애정으로 변질되지 않은 채로 말이지. 당신이 자살해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유럽에서 살던 1번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으려 했는데 1번부터 3번까지 그리고 ‘나’가 ‘조촐한 추도식’이란 명목으로 한 번 뭉치자는 제안을 듣고 비행기 타고 왔으니 정성이 갸륵하기는 해. 1번은 부정할 수 없이 진실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했어. 서로 그랬다고 봐. 그러나 이런 첫 결혼을 깨뜨린 건 당신 쪽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던 거 아냐? 이후 당신은 아마도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1번을 사랑했고, 미안해 했고, 용서를 바랐을 지도 몰라.


  사실 당신의 세 아내 다 ‘나’를 탐탁하게 여기기야 했겠어? 뭔가 좀 찜찜했겠지. 1번이야 학교를 같이 다녀서 좀 덜했고, 3번은 자신이 찜찜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더 찜찜했을 사람이니 그렇다고 치고, 2번이 문제였던 걸로 아는데? 자신 앞에서 어떤 여자를 입에 올리더라도 히스테리를 부렸다며? ‘나’와 과거의 모든 여자들과 완전한 단절을 요구했다고 했잖아. 특히 우리 사이를 의심해 안달복달하고. 나한테는 직접 당신하고 ‘나’의 사이가 근친상간 관계인 거냐고 비꼬기도 하더군.

  당신은 2번과의 사이에서 나온 외동딸하고 소원한 관계였어. 부녀가 그렇게 되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지. 이 딸이 엄마보다 오히려 당신의 여자관계와 외도를 더 용서하지 않았지. 그것도 질투고 일종의 편집증이지. 그만큼 당신을 사랑하기는 했지만 잘못된 방식으로의 사랑이었던 거라고 봐.

  우리, 그러니까 당신과 ‘나’가 가장 가까웠던 짧은 시간은 당신의 이혼과 재혼 사이의 기간이었어.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당신한테는 연인이 없던 적도 거의 없었지. 늘 주위에 여자가 있었으니까. 당신 한테 애인이 생겼을 때 솔직히 ‘나’는 좀 상심했고, 누군가와 결별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 밀려드는 기쁨을 속으로 숨기기에 바빴지. 좋아하지 마. 옆집 잘생긴 총각이 장가든다면 괜히 속상한 거하고 비슷한 기분이었을 뿐이니까. 음, 뭐 그것보다는 조금 더 심각했달까? 좋아, 훨씬 더 진지하게 그랬을 거야.


  3번은 스카프 묶는 법을 쉰 가지나 아는 부류의 여성이야. 예순 살로 보이지만 그 나이의 느긋한 매력을 지녀서 척 보기에도 근사해. 당신의 시신을 발견한 아내야. 혹시 모를까봐 얘기해주는 거야. 그런데 시신을 발견하고 당국에 신고하고, 화장 처리를 하고, 재를 나무 상자에 담아 직접 묻은 여자가, 가장 멋져 보이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 모습으로 나왔어. 아, 지금 못마땅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경외감을 느껴서 그런 거야.

  경영대학을 졸업한 후 곧바로 맨해튼의 한 회사에서 계속 경영 컨설턴트로 커리어를 쌓은 인재 중에서도 인재잖아. 그러면서 명색이 작가이자 교수인 나보다 더 많은 독서량을 유지하고 있는 인텔리이고. 모르긴 해도 연봉도 당신의 두 배는 됐을 걸?

  3번 말에 의하면 당신의 건강상태가 아주 양호했다며. 심장과 근육은 실제 나이보다 월등하게 젊은 상태를 유지했고. 3번은 당신이 강의를 중단한 것이 실수였을 것이라고 하네. 그동안 강의가 당신의 삶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주었다면서. 그러게 왜 여학생들 한테 Dear라고 불렀어? 사전에야 이 말이 “어린 사람을 사랑스럽게 부르는 호칭”이지 대학에 다니는 성인여성woman한테 Dear라고 부르는 시절은 벌써 끝장난 걸 몰랐나? 당신이 이 호칭을 매력적이라고 여긴 건 알지만, 이제 그 단어는 명백하게 여학생들의 품위손상 단어로 격하됐다고. 부적절한 단어라서 학생이 항의를 하면 즉각 사과하고 사용을 그만두어야 했을 것을. 여학생 전원이 서명을 한 항의 서한을 받고 그냥 사직서를 내버리고 만 거야?

  이젠 존 쿳시나 필립 로스의 주인공들처럼 교수가 학생들과 한 번 자볼 생각을 하는 건 물론이고 수업 중에 섹스에 관한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언급도 하면 안 되는 시절이 온 거야. 소위 ‘합평’을 해도 남학생들은 자기 작품 속에 성적인 장면은 스스로 삭제하고 동료들에게 건넨다는 거야. 이런 시절이 도래했거늘 예전 자기 시절만 생각해서 그대로 수업을 진행한 건 당연히 실수였지. 당신은 이런 금기가 수업을 쪼그라들게 만든다고 생각할 수 있고 ‘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 그래도 뭐 시절이 그런 걸.

  근데, 설마 이 일 때문에 죽은 건 아니지? 그럴 수 있겠지만.


  문제는 당신이 3번하고 살 때, 이른 아침에 뛰러 나갔다가 무지하게 큰 개 한 마리를 데려온 거였어. 그레이트데인 순종. 그러나 유기견. 어깨부터 발까지 86cm, 체중은 82kg. 이게 개야, 털 난 공룡이야? 그나마 다행인 건 순한 품종이고 잘 훈련을 받았으며 중성화수술을 받아 함부로 껄떡대지 않는다는 거였어. 3번은 이렇게 큰 개를 키울 자신이 없었지만 당신의 주장을 꺾기엔 너무 느긋한 매력을 자랑하는 잘 교육받은 사람이었지.

  근데 당신이 죽어버린 거야. 누군가 키우다 너무 거대한 덩치 때문이었는지, 무한정 먹어 치우는 사료값 때문이었는지, 개를 키우지 못하는 장소로 이사해야 하는 환경 때문이었는지 하여간 버려진 늙은 유기견을 도무지 3번도 키울 자신이 없었지. 그걸 이제 3번 혼자 키우라고 죽어버린 거야? 3번은, 그 점잖고, 품위있고, 학식 높고, 연봉도 많이 받는 3번이 ‘나’의 손을 간곡하게 잡더니 제발 며칠 만이라도 그레이트데인, 당신이 이름을 아폴로라고 지은 덩치가 산 만한 늙은 개를 보살펴달라고 부탁을 하는 거야. 자신도 이미 나이가 들어 이제는 남은 인생을 여행 같은 걸로 즐기고 싶다고. 어떤 정도냐 하면, 당신이 죽고 단 며칠 만에 결국 견디지 못해 지금 아폴로는 비싸디 비싼 개호텔에 머물고 있다나?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열다섯 평짜리, 미국이니까 물론 50제곱미터라고 얘기해야겠지, 아파트는 주인이 절대 개를 키우지 못하게 하고, 좁아 터져서 어깨까지 86cm, 몸무게 82kg의 늙은 거구와 함께 누울 자리도 없는데 이걸 어떻게 하느냐는 말이지.

  그래, 그래. 결국 삶이 겨우 2년가량밖에 남지 않은 아폴로와 살게 됐어. 이 아폴로가 책 제목 <친구>야. 함께 산책을 해도 보도를 완전히 막아버리는 거구. 변을 보려면 꼭 도로 쪽으로 엉덩이를 내밀어 차에 치일까봐 ‘나’가 도로로 나가 차와 아폴로 사이에 서 있어야 하며, 사람의 것보다 훨씬 푸짐하게 싸 놓은 변을 치울 때마다 지나던 사람들이 유심히,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는 재수없게 쳐다보는 것에도 익숙해졌어. 근데 ‘나’나 재수없는 것이지, 올해 10월 중순에 가을 장마가 오지게 오니까 이 독후감 쓰는 중늙은이는 올해 농사 걱정은 하지도 않고 보도에 묻어 있는 개똥 찌꺼기가 깨끗해지겠다고 좋아하더라니까? 개 키우는 ‘나’ 같은 사람은 이런 거 걱정하지 않지. 깨끗하게 치워졌는지 확인도 하지 않아. 그러면서도 개 싫어하는 인간들을 무지 싫어해.

  근데 역시 뉴요커. ‘나’ 사는 동네 사람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전부 아폴로를 좋아하고, 그래서 만져보고, 늙어가는 걸 걱정해주고, 심지어 안아보기도 한다니까? 역시 뉴욕은 천사들만 사는 곳인가봐, 그렇지? 모든 뉴요커가 다 천사는 아니라고?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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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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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벵하민 라바투트와 그의 지인들은 위키피디아에 1980년에 자신이 출생한 곳과 성장한 곳, 즉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나 헤이그, 부에노스아이레스, 리마애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4세 때 산티아고로 이주했다는 정보만 공개했다. 당연히 작품과 수상내역은 적혀 있지만 그건 뭐 그냥 그렇고.


  라바투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이하 “우리가”라고 표기함>. 그는 스스로 이 작품을 “화학적으로 순수하지 않은 에세이, 이야기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두 개의 이야기, 단편소설, 반semi전기적 산문으로 구성된 책”이라고 했다.

  작가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썼다면 이 책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작품집이 제일 어울릴 것 같다. 독자들은 이 책이 2021년 부커-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였다는 이유 때문인지 작품 간의 연계성에 주목하여 연작소설로 보려하는 것 같은데, 내 생각엔 화학적으로 순수하지 않은 에세이와, 나머지 파동과 입자, 수학과 확률 이야기 사이의 연계가 연작이라 하기엔 많이 해이하지 않은가 싶다. 그냥 모두 개별적 이야기로 읽는 편이 좋을 듯하다. 작품 속 주인공 또는 등장인물이 서로 교차 등장하는 건, 한 시대의 대표 천재들이 몇 명 없었는데 그이들이 대가리 터지게 연구하던 분야를 조망하려면 당연히 천재들이 이 작품 속에도 등장하고, 저 작품 속에도 나와야 할 터이니까. 18세기말~19세기초의 유럽 음악계의 천재를 주제로 단편소설 몇 편을 쓰려 하는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루트비히 판 베토펜을 등장시키지 않을 수 없듯이. 뭐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억지로 앞 뒤 작품의 연관성에 몰두하면 오히려 덜 재미있을 수도 있고.


  나도 이쪽을 공부했지만 때려치운 지 벌써 40여 년이라 양자물리학이 어떤 종류의 학문인지도 벌써 잊었다. 평범한 수준의 IQ를 가지고 있다면 그런 건 나처럼 잊고 사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 천재들의 리그. 그런 것도 있어야지. 가끔 ‘그들만의 리그’라고 하면 입에 버글버글 거품 물고 댓글 쓰는 분도 있는데 오히려 그런 것도 있어야 인류평화가 유지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 너무 열 받지 마시기를 권한다. 아인슈타인, 드 브로이, 보어,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등이 거의 미치광이가 될 지경으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인류는 인구가 조밀하게 모여 사는 두 도시 상공에서 ‘작은 꼬마’와 ‘뚱뚱한 이’라고 이름 붙인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1927년 10월 24일 브뤼셀의 생리학연구소에 백인천재들만 스물아홉 명 모인 양자물리학 학회의 토론에서 아쉽게 패배하고 만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신은 우주를 놓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소.”

  양자물리학에서 웬 우주 이야기? 스타니스와프 렘이 무한 공간인 우주가 얼마나 넓으냐, 라는 물음에 10의 6백 제곱만큼 넓다고 말했다. 단위가 뭐가 되든지 간에. 이 10의 6백 제곱이란 수를 수평으로 죽 그은 선 아래에 두면, 즉 분수의 분모로 두면 그게 극미의 공간을 다루는 양자물리학이 된다. 그러니 양자물리학은 우주를 공상하는 것과 마찬가지. 두 경우 결국 남은 것은 입자와 진동 또는 파장이 아니라 숫자. 또는 일종의 확률이나 분포. 그리고 또다시 신.

  훗날까지 거듭거듭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말을 남기고 떠난 아인슈타인의 뒤통수에 대고 보어는 또 이렇게 말하며 그를 배웅했다.

  “신은 우주를 놓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소!”

  어때? 천재 과학자들끼리도 살벌하지? 그들은 칼만 들지 않았지 만날 때마다 진검승부를 펼친다니까? 오른손을 맞잡고 열라 아래위로 흔들면서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지만 속은 그게 아니었던 거지.


  보통의 지능만 갖추었을 뿐인 나는 그래서 첫번째 이야기, 라바투트가 말한대로 “화학적으로 순수하지 않은 이야기”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프러시안 블루.

  얼마나 아름다운 색깔인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호쿠사이가 그린 <가나가와의 파도 아래>를 물들인 파란 색. 그러나 1782년 스웨덴인 화학자 칼 빌헬름 셰레는 극미량의 황산을 입힌 스푼으로 프러시안 블루를 휘저어 현대의 가장 강력한 독약인 시안화물을 만들고, 이 새로운 화합물에 ‘프러시안산酸이라 이름을 붙인다. 셸레의 파란색. 에메랄드 그린.

  시안화물. KCN. 청산. 강한 휘발성을 띄는 액체. 비등점이 섭씨 26도이며 연한 아몬드 향을 풍긴다. 그렇지만 인류의 40%는 이 냄새를 맡지 못한다. 시안화물 바로 전 단계가 치클론A.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 학살에 사용한 가스. 반면에 캘리포니아 오렌지 밭에 무한정 살포한 살충제. 일반 시민들의 피부에 붙어 기생하던 이, 벼룩, 빈대 등의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이민선을 타고 뉴욕에 내린 유럽인들의 몸에 원하는 만큼 뿌려 주기도 했던 정체 불명의 액체이기도 했다.

  1945년 4월 12일. 베를린 필하모니의 마지막 연주 레퍼토리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와,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로맨틱> 그리고 마지막 곡으로 바그너가 작곡한 <신들의 황혼> 피날레, 브륀힐테가 그녀의 말 그라네를 타고 지크리트를 화장하는 불 속에 뛰어들기 전의 독백으로 꾸렸다. 지크리트와 브륀힐데를 태우는 불은 더욱 커져 결국 신들의 궁전인 발할을 불살라 급기야 신들의 시대에 종막을 고하는 장면. 이렇게 나치 정권 역시 한 줌의 재로 남을 것을 알았던가, 곡이 끝나고 엄숙한 모습으로 퇴장하는 나치 인사들 앞에 귀여운 히틀러 소년단원들이 고리버들에서 캡슐 하나씩 나누어 주었으니, 캡슐 안에 든 것이 바로 시안화물. 포로의 불명예를 당하느니 차라리 신속하게 죽는 게 나을 거라는 뜻이었다.

  비단 시안화물로만 저지른 것은 아닐지언정 1945년 4월에 베를린에서 3천8백명이 자살에 성공했다. 이 가운데 육군 53명, 해군 11명, 공군 14명의 장성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이들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장군들이 베토벤과 브루크너와 바그너를 듣고 퇴장하던 길에 받아간 캡슐을 어금니 사이에 넣고 깨물었을 것이다.

  훗날 2만명이 복용할 수 있는 분량의 디히드로코데인을 가진 채 체포된 헤르만 괴링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소에서 단번에 죽을 수 있는 총살형이 아니라, 목을 매달아 죽이는 교수형 판결을 받자 며칠 후,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다른 장군과 마찬가지로 어금니 사이로 캡슐을 밀어넣고 단번에 깨문 시체로 발견된다. 원래는 총살형을 선고하려 했으나, 자기네 나라 땅에서 2천만명의 국민을 죽이고, 천만명의 부상자를 냈으며, 영토를 쑥밭으로 만든 최고 책임자를 편하게 총살로 보낼 수 없다고 소련 당국자가 득달같이 항의하는 바람에, 목을 매달아 서서히 줄을 당김으로써 똥을 저리며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식의 교수형을 당하게 된 것이 너무 치욕스러웠나보다. 자기가 저지른 학살은 괜찮고, 자신이 당하는 치욕은 참을 수 없었다.

  죽음을 덜 고통스럽게 해주는 독약. 그것이 오직 죽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때문인 치명적 독.

  질소와 탄소, 그리고 포타슘의 화합물. 독약으로 기능하기 전까지는 천사의 로브나 성모 마리아의 장옷을 칠하기 위해 사용한 안료 프러시안 블루였던 물질. 프러시안 블루가 나오기 전까지 유럽의 궁정화가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코츠카 강변 계곡 동굴에서 채굴한 보석인 청금석을 곱게 갈아 천사와 성모의 옷을 그렸었으니, 훗날 숱한 죽음을 초래한 시안화물의 전신인 프러시안 블루가 인간의 예술에 얼마나 크게 이바지 했었으며, 누가 있어서 프러시안 블루로 인한 대량학살을 꿈이라도 꾸었을까?

  칠레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는 이런 발명의 이면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눈부신 푸르름이 초래한 대량 살해와 수학과 과학에 의하여 터져버린 원자폭탄과 계속되는 핵공격에 의한 멸망 시나리오 등을. 이제 언제 갑자기 우리 모두,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 날이 올지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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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군상
하인리히 뵐 지음, 사지원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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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에 <여인과 군상>을 발표한 하인리히 뵐은 1972년에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노벨문학상이 특정한 작품을 보고 수상자를 선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작품이 수상에 큰 역할을 미쳤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가 읽은 우리말 번역서가 1958년생 역자 사지원의 초역, 초판이라고 판권지에 쓰여 있다. 사지원은 하인리히 뵐 재단의 장학생으로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하인리히 뵐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고, 건국대학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지내면서 한국 하인리히 뵐 학회장, 사단법인 생명의 숲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건국대 교수 자리는 정년이 지났으니 명예교수일 터이다. 이이가 번역한 뵐의 작품이 꽤 있다. 뵐 연구로 학위를 받은 사람이니 뵐의 작품은 될 수 있으면 사지원 번역을 찾는 것이 좋을 듯하다. <9시 반의 당구>, <열차는 정확했다>가 눈에 띈다.


  <여인과 군상>에서 여인은 레니 그루이텐 파이퍼. 결혼 전 이름이 레니 그루이텐이고 알로이스 파이퍼와 딱 3일 동안 결혼생활을 했다.

  작품의 화자는 ‘저자’라고 일컫는 작가 자신. 저자는 레니 파이퍼의 현재 상황을 알기 위하여 레니 주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을 인터뷰해 677페이지에 이르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매체의 기자가 쓴 듯한 리포트 형식의 글은 저자가 만난 사람들에 따라 의견이 서로 같거나 다를 수 있어서 독자가 조금 헛갈릴 수도 있다. 그래도 끝까지 다 읽으면 저절로 정리가 되니 그저 편하게 읽어가면 된다.

  레니 파이퍼. 48세 독일여성. 171cm, 평상복 상태로 68.8kg. 검푸른 눈빛과 희끗거리는 숱 많은 머리카락. 32년간 노동의 과정이라 부르는 기이한 과정을 거쳤다. 5년 동안 아버지 사무실에서 훈련받지 않은 보조원으로 일하고, 27년간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화원 노동자로 지냈다. 화원? 규모가 큰 꽃집.

  레니의 아버지는 손재주가 뛰어난 건축가였다. 건물이나 집을 짓는 건축가가 아니라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어서, 프랑스에 마지노 방벽을 틀림없이 히틀러가 따라할 것이라고 짐작해 참호와 벙커 전문 회사를 차렸다. 독일이 먼저 침략할 계획인데 무슨 벙커가 필요하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건 그거고, 정말로 침략을 감행하기 전까지는 마지노선에 대항할, 아니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독일쪽 방어선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던 거였다. 처음에는 회사가 어려웠지만, 아니나 다를까 1930년대 중후반이 되자 회사는 날마다 번창하기 시작해 레니도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다.

  레니가 자동차운전면허를 딴 해가 1938년. 이후 자동차 운전을 열정적으로 즐겼지만 1943년에 독일의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 자신의 차 역시 군대에 징발당한 후 다시 차를 가져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사업도 정점에 달한 순간, 상태가 이상해진 아버지는 하지 않아도 지극히 무방한 서류회사를 만들어 사기 사업을 하다 들통이 나 한 방에 거덜이 나버렸다. 미리 자기 재산을 거의 정리해 여러 사람들에게 활수하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하여간 그랬다. 40년간 그루이텐 가의 충실한 가정부로 일한 마르야 판 도른 아주머니 한테도 많은, 많아도 많이 많은 퇴직금을 주어 그 돈으로 고향에 내려가서 땅도 구입하고, 보험연금을 받으며 편하게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을 정도이다. 마르야 판 도른 아주머니는 저자에게 레니에 관한 진술을 많이 해주는 중요한 보고자 가운데 한 명이며, 레니 주변의 가까운 친구 가운데 한 명이다.


  레니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여성들은 판 도른 아주머니와, 동갑내기 마르그레트 슐레머, 같은 집에서 살기도 한 로테 호이저. 이렇게 세 명이 레니와 거의 평생을 함께 했다. 마르그레트 슐레머도 레니처럼 전쟁과부. 마음이 여려 자신 몸이 특정한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그걸 거절하지 못하는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창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정작 돈을 목적으로 계산적인 관계를 가진 유일한 남자는 죽은 남편이 유일했다. 슐레머 집에서 결혼하면 몇 만 마르크인가를 지참금 비슷하게 준다고 해서. 전시에 군인 병원의 간호사로 일했고, 40대 후반 시점에는 독립병동의 병상에서 불치의 성병을 비롯한 온갖 나쁜 병에 걸려 스스로 ‘완전히 죽은 몸’이라 칭한다. 내분비 기관이 완전히 망가졌다.

  마르그레트와 함께 레니가 어려울 때마다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를 머뭇거리지 않았던 친구 로테 호이저는 레니보다 아홉 살이 많아 쉰일곱 살. 입이 매섭다. 자기 두 아들을 빼앗은 시아버지 오토 호이저와 아들 35세 베르너와 34세 쿠르트를 악당이라고 부르길 서슴지 않는다. 레니가 비참하게 사는 이유가 그들 탓이란다. 호이저 가가 레니의 아버지 그루이텐 가와 무슨 악연이 있을까?


  로테 호이저의 시아버지 오토 호이저는 여든다섯 살이다. 이 나이 사람들이 다 그랬듯이 1차세계대전 참전 군인이었고, 간전기에 그루이텐 씨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의 경리 책임자로 20년간 빼어난 업무솜씨를 발휘한 능력자였다. 실력은 충분하지만 어렵게 시작한 사람 가운데 일종의 열등감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있다. 그게 개인적 발전의 터보 엔진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 오토 호이저가 그랬다. 다만 그루이텐 씨에게 인정을 받은 능력자였으니, 처음엔 충성을 하다가, 조금씩 나도 그루이텐 씨처럼, 그루이텐 씨 만큼, 이렇게 진행하고, 당현히 그루이텐 씨를 능가하는, 을 거쳐 급기야 그루이텐 씨를 깔아 뭉개는 수준의 부자가 되기로 작심을 하게 됐다. 처음부터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인리히 뵐도 작품을 쓰다가 마지막엔 결국 추하게 늙은 노인을 그리지만, 뭐 그렇다는 거다. 아들 하인리히는 2차 세계대전에 나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죽고, 레니의 집에서 즐겁게 살고 있는 두 손자, 그냥 손자가 아니라 매우 총명해 하나를 가르치면 둘, 셋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똑똑한 두 손자 베르너와 쿠르트를 뺏어와 좋은 교육을 시켜 번호사와 기업가로 만든다.

  경제적 개념이 거의 없는 레니가 자기 사정은 생각도 하지 않고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느라 경제적으로 거덜이 날 때 쯤, 오토 호이저가 레니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집을 인플레이션이 왕성하게 진행하고 있던 시기에 사버렸다. 1960년대말 가치로 40만 마르크에 달하는 집을 정확하게 얼마에 사고 팔았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이후 레니가 헐값에 세를 들어 사는 조건이었던 건 맞다. 레니는 이 집에 포르투갈과 독일 부부, 튀르키예 남자 세 명 한테 다시 아주 싼 값에 다시 세를 주어 그 돈으로 생활한다. 포르투갈과 튀르키예에서 온 체류민들의 직업은 도시 청소원. 레니의 아들 레프와 같은 직업이다.

  레니의 아들 레프는 어음위조범으로 교도소에 수감중이다. 어음 위조가 네 번. 이 가운데 세 번은 레니와 주변인들 특히 로테 호이저가 나서서 막아주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세 번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호이저 형제가 네 번째엔 드디어 고소를 해버린 것.

  레프? 재미있는 청년이다. 레프의 아버지는 어머니 레니가 유일하게 결혼한 알로이스 파이퍼의 남편이 아니다. 파이퍼가 전사한 후에 연합군의 폭격이 마치 폭풍우처럼 쏟아지던 밤, 공동묘지 묘혈로 대피한 와중에 만나 평생 사랑하는 사이가 된 소련인 보리스 류보비치의 아들이다. 보리스는 전쟁이 거의 끝날 즈음해서 레니와 친구들의 판단착오로 독일군증명서를 소지한 채 피신하던 중 연합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래서 레프 보리소비치는 ‘레프 보리소비치 그루이텐’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

  호이저 가문이 할아버지 후베르트 그루이텐의 마지막을 생으로 홀딱 떠 먹은 것에 분노한 것 같지만 레프는 기꺼이 시 청소부들과 같은 노동에 만족한 삶을 산다. 일을 조리있고 규모있게 해서 이주 청소 노동자들이 훨씬 많은 휴식 시간을 갖게 하는 효용을 만들어내 독일 시민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쉬는 꼴을 배 아파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를 눈여겨 본 관리자들이 레프에게 현장 말고 사무직으로 옮길 것을 종용했지만 그는 기꺼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남는 것을 선택했다.

  모전자전. 엄마 레니 역시 사회의 하층 계급들을 자기 집에 아주 저렴한, 저렴해도 너무 저렴한 가격의 월세만 받고 세를 들였으며, 스스로도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계약서에 쓰인 대로 내버려 둘 호이저 형제가 아니다. 할아버지를 닮아 똑똑하고 영리하지만 현명하지는 않은 천생 자본주의자인 형제들은 할아버지가 일군 거대한 자본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비스킷에 불과할 레니가 사는 집까지 몰수해버리고 싶어 한다. 레프가 교도소에 가 있는 동안.

  아무리 돈과 권력이 막강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 법. 어떻게 안 되는 일이 있는 지는 안 알려줌.

  이 외에도 레니가 사춘기 시절을 보낸 기숙학교 시절에 만난 라엘 수녀와의 관계도 매우 중요한 축이다.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독후감이 길어져 그걸 소개하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레니가 라엘 수녀에게 배운 바가 매우 크다. 훗날 마르그레트의 집에서 작은 파티를 하던 중 변기가 막히는 일이 일어나자, 남자들도 변기를 뚫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시간만 끌고 있을 때, 레니는 변이 잔뜩 들어있는 변기 속으로 맨손을 쑥 넣어 배관을 막고 있는 사과 한 알을 꺼내 시원하게 분뇨를 배출시킨다.

  아마도 기꺼이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살기로 결정하게 영향을 끼친 것, 레프 역시 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기로 만든 것도 선한 라엘 수녀의 삶을 알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책 전반부는 많은 등장인물의 삶과 에피소드가, 하인리히 뵐 특유의 건조한 문장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읽기가 편하지 않지만, 후반부로 접어들어 스토리가 익숙해지면 그때부터 작품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먹고 지긋하게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로울 듯하다.


  오늘 독후감, 참 못 썼네.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도 모르겠네. 확 지워버리고 다시 쓸까?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지 뭐, 아마추어 주제에. 그냥 냅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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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시개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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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있는 책 가운데 안 읽은 거 없나 보다가 아이들 살던 방에 가봤더니 작은 아이방에 노통의 책이 열댓 권 꽂혀 있다. 맞아, 얘 군대 가기 전이니까 한 십여 년 전에 노통 책을 많이 모았어. 읽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나는 노통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가운데 가장 얇은 책 한 권을 골라 후딱 읽었을 거 같지? 아니다. 역시 나하고 맞지 않아 본문이 80페이지에서 끝나는 진짜 얇은 책임에도 이틀 걸렸다.

  11년 전에 쓴 <적의 화장법> 독후감에서 한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내가 읽은 두 권의 노통, <적의 화장법>과 한 22년 전쯤에 읽은 <두려움과 떨림>이 지금은 완벽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 <적의 화장법>이 “거의 두 명의 화자가 엮어가는 대화로 되어”있단다. 이어서 “차라리 나 같으면 희곡을 썼겠지만 그건 필자 마음대로”라고 말함으로써, 사실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다는 걸 증명했다. 겁나 웃기네.

  <불쏘시개>는 아멜리 노통이 이 책을 발표한 1994년까지 쓴 유일한 “희곡”이란다. 내가 희곡은 좀 읽어봤잖아? 만일 <불쏘시개>를 정말로 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면, 확실히 말하건대, 나는 보러 가지 않을 것이다. 희곡 스타일을 딴 소설이라 하는 편이 더 좋겠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뜻. 술 탄 물, 또는 물 탄 술. 이탈리아나 프랑스 사람이 한 모금 마신 물 탄 커피.


  등장인물은 50대 남자 교수와 서른 살 먹은 그의 조교 다니엘, 그리고 마지막 학기만 마치면 졸업하는 20대 여학생 마리나.

  다니엘은 조교로 있으면서 4학년 여학생들하고 만 연애한다. 그러면 1년 후에는 다른 도시의 직장으로 떠날 것이라 깔끔하게 이별할 수 있다. 이번 순서가 마리나인데 하필이면 전쟁이 터졌다. 진짜 있었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은 아니고 그렇게 작품의 환경을 설정했다. 게다가 겨울. 하필이면 아주 혹독한 추위가 몰아 닥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장소는 어마어마하게 큰 서가가 있는 교수의 방. 서가 말고는 거대한 무쇠 난로와 나무의자 두 개가 있을 뿐이다. 나무의자여야 한다. 언젠가는 거대한 무쇠난로 안으로 던져져야 하니까. 무지하게 추운 날씨임에도 무쇠난로는 아무것도 태우고 있지 않다. 전시라서 장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교수는 두꺼운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무릎 위에 서류 뭉치를 올려놓은 채 뭔가를 쓰고 있다. 직업 또는 직업병이라서.

  다니엘이 들어온다. 여태까지 도서관에 있었다. 전쟁중이라도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 벽에 연결된 보일러 관의 열기에 등을 대고 있으면 뜨듯하니 그렇게 좋아서. 교수는 책상까지 벌써 두드려 패 장작으로 써버렸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책뿐. 맨바닥에 앉으면 더 추울 것이라 의자 두 개만 남겨 놓은 처지.

  이제 책을 불태우는 일만 남았다. 많고 많은 책을 결국 다 태우게 되겠지만, 무수한 노작 가운데 태워 버려도 될 만한 책을 먼저 태우는 것이 마땅한 일. 책장에서 딱 한 권의 소위 “무인도 책”을 고르는 일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일을 교수와, 다니엘과, 조금 후에 도착할 4학년 여학생 마리나가 해야 한다. 그러니 적지 않은 날이 필요하다. 곧 세 명이 방 두개, 침대 두개인 이 집에서 살기로 결정한다. 다니엘과 마리나가 함께 같은 침대를 공유하기로 한다. 섹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둘이 자면 체온을 유지하는데 훨씬 유리하다는 점이다.


  명색이 교수, 조교, 학생으로 되어 있고, 책들은 이들이 가르치고, 연구하고, 배운 책들이라서 세 명이 책과 내용에 관한 토론과 다툼이 주를 이룬다. 그러다가 당연히 다니엘-마리나 커플이 아니라 50대 남자인 교수와 20대 여학생 마리나가 관계를 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묘한 암시도 등장한다. 다니엘이 열폭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럼에도 이야기는 사랑 또는 사랑의 행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책을 끝까지 가지고 있는지, 대화로 치고 받는 데 초점을 맞춘다. 픽션이니까 서양것들이 워낙 야만스러워 장유유서라는 공맹의 도를 모르는 건 그렇다 쳐도, 남의 집에 들어와 얹혀 사는 것들이 집주인한테 바락바락 기어오르기도 한다. 아니, 드러우면 지들이 나가면 될 거 아냐. 나가지 못하겠으면 국으로 죽은 척하고 살든지.

  노통이 하고 싶은 말은, 책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하는 것. 온기를 얻기 위해 책을 태우는 행위. 즉 마지막에 사람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주장과 철학과 이야기로 인류를 덥혀주는 것이 책이라는 말이겠지.

  그래서 전쟁 중이라 길거리에 나가면 점령군에 의하여 무차별 학살을 당할 수도 있는 처지라도 배고파 죽겠다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춥다는 말만 한다. 애초 책을 태우는 행위로 만 가게 디자인했기 때문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성 마리나가 과하게 의존적이다. 마리나가 교수한테 말한다.

  “(마리나가 추워한다는 것을) 아무도 몰라요. 알고 있다면 추운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다면, 사람들이 이미 저를 따뜻하게 해주러 왔어야 해요. 만일 선생님이 제가 어떻게 참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짐작했다면, 갖고 계신 책을 몽땅 당장에 불태웠을 거라고요. 선생님은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죠. 누구든 알리가 없죠. 내가 얼마나 고통받는지 안다면 어느 누구도 그렇게 고통받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p.41~p,42)

  내가 여성이라면 기분 나빴을 거 같은데, 그러지 않아 뭐라 말하기 어렵다. 하여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마리나는 자기가 나서서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고 누군가 와서 자신을 돕기를 바라는 반면, 남자인 다니엘은 도서관 벽을 통과하는 보일러 관이라도 찾아 나선다. 뒤로 가면 한술 더 뜬다.

  “나는 젊고 예뻐. 내가 늙고 추하다면 나를 따뜻하게 할 어떤 방법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어. 나와 마주한 육체를 갖는다는 것은 내 생존 조건의 하나가 된 거야.” (p.75~p.76)

  작품을 쓴 시점이 1994년. 당시 노통 보다 한 세대 정도 과거의 작품이라면 그 당시 사람들의 여성관이 이랬다, 할 수 있겠지만. 토론하자는 거 아니다. 뭐 그렇다는 거다.

  아멜리 노통을 또 읽는다면, 아마도 무지하게 심심해서일 거 같다. 그러나 세상 일 모르는 거라서 꼭 그렇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한 20년 전에 매스컴의 도움으로 우리나라에서 화르륵 인기를 얻었다가, 한 순간의 별들이 늘 그렇듯이 이젠 스르륵 잊힌 작가. 물론 내가 관심이 없어서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전적으로 오직 내 생각이란 걸 전제로 이야기하자면, 출판사 열린책들이 다른 건 모르겠고 마케팅은 참 잘해. 한 번 책 찍고, 조금 있다가 개정판, 조금 더 있다가 한정판, 아주 조금 더 있다가 다시 재개정판. 근데 초판에 맞춤법 틀린 건, 비문非文까지도 끝까지, 개정판, 한정판, 다시 재개정판에도 여전히 맞춤법 틀리고 비문인 거는 뭐야? 뭐 그렇다는 거다. 시비하고 싶지 않다. 이이들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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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2-02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한 번 책 찍고, 조금 있다가 개정판, 조금 더 있다가 한정판, 아주 조금 더 있다가 다시 재개정판. 근데 초판에 맞춤법 틀린 건, 비문非文까지도 끝까지, 개정판, 한정판, 다시 재개정판에도 여전히 맞춤법 틀리고 비문인 거는 뭐야?˝ ㅋㅋㅋㅋㅋㅋㅋ 공감합니다.
열린책들은 심지어 세계문학에 있던 작품 막 쪼개고 나누고 해서 또 내고 이런 것도 잘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5-12-02 19:24   좋아요 0 | URL
마케팅 쪽으로 생각하면 열린책들 만한 곳이 없어요! 개정판, 한정판, 재개정판도 모자라서 특별판, 염가판... ㅎㅎㅎ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장사 좀 하자는데 뭐 시비할 수도 없고 말입죠. ㅋㅋㅋ

yamoo 2025-12-02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멜리 노통 책은 읽다가 못 읽겠더라구요...1권 읽다가 닾고 빠이빠이~~
근데 이 사람 거의 모든 책이 당시 번역된 듯 하더라구요..당시 수요층이 분명히 있었긴 합니다. 베스트셀러였고..ㅎㅎ 노통 읽느니 <몽유병자들>을 다시 읽겠습니다..ㅎㅎ

Falstaff 2025-12-02 19:27   좋아요 1 | URL
노통만큼 매스컴의 각광을 한꺼번에 왕창 받았던 신예도 없었을 겁니다. 아마 그랬을 거예요. <몽유병자들>... 흠. 저는 생각해봐야겠는 걸요? 적어도 읽기 편한 것만 따진다면 몽유병보다는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ㅋㅋㅋㅋ

yamoo 2025-12-03 15:39   좋아요 1 | URL
어쨌든 <몽유병자들>은 읽다가 말아서 완결을 봐야 할 듯해요. 지금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 읽고 있는데, 이거 의외로 밴빌의 <오래된 빛>보다 훨씬 제 취향인 듯합니다. 정말 몰입해서 읽고 있어요. 제 정신 건강에는 현재 아주 좋습니다~ㅎㅎ

Falstaff 2025-12-03 19:53   좋아요 0 | URL
아오.. 특성없는 남자가 취향이시라면 아휴... 저는 뭐 말을 보탤 수가 없네요.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