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0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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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2021년 10월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작품을 번역한 책이 없었다. 구르나가 호명되자 깜짝 놀란 출판사들 가운데 문학동네가 제일 먼저 구르나와 접촉해 다음해인 2022년에 네 권을 번역 출판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다. 아직 한 권의 책도 보태지지 않았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문학 쪽과 거리가 좀 있는 2016년 수상자 밥 딜런을 제외하면 가장 초라한 대접을 받은 거 아닐까 싶다. 나는 그가 쓴 <배반>과 <낙원>을 재미있게 읽었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독자들의 평도 좋은 편이었음에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잔지바르에서 출생해, 1963년 잔지바르 독립 후 신생공화국의 특징인 쿠데타에 이은 독재와 학살을 피해 68년에 영국으로 망명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영어로 작품을 써서 <낙원>이 부커상 최종심까지 올랐고, 오늘 독후감을 쓰는 <바닷가에서>가 예심에 올랐지만 켄트대학에서 영어와 탈식민지 문학 교수로 정년퇴직하고 4년 후인 202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아, <배반>의 독후감에서 내가 “부커상을 타는 게 노벨상을 받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기도 했다. 당연히 우스개소리였다. 노벨상은 문학성도 문학성이지만 세계각국의 눈치를 보는 것에도 도가 터서 요즘들어 홀수 해는 남자작가, 짝수 해는 여자 작가에게, 영, 불, 독,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대륙별/지역별로 골고루 상을 배분하려 하기 때문에 여차하면 한림원 판정관들의 눈알이 가자미 눈알 비슷하게 될 처지로 몰렸다. 구르나의 노벨상 수상 당시에도 “식민주의 하 식민지 문화와 (아프리카-유럽)대륙 사이의 간극에서 식민주의와 난민으로서의 운명이 끼친 영향을 단호하고 열정적으로 관통해낸 공로”(나무위키의 내용을 약간 수정함)가 이이의 선정 사유로 꼽았다.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처럼 구르나의 책을 번역해 시장에 나온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할 정도로 영국 로컬 작가였던 모양이다. 이딴 거 사실 알 필요 없다. 나도 이번에 독후감 쓰느라 여기저기 들락날락거리다가 주워들은 풍월이다. 독자인 우리는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은, 이 책 속에 (탈)식민주의와 난민/망명자들의 삶에 관한 것이 들어있을지언정, 서사는 현재 케냐의 해변 일부를 포함한 잔지바르 술탄국이 독립 전후, 쿠데타에 이은 탄압 과정에 맺힌 불화를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런던 근교 해변 동네에서 화해하는 장면까지이다. 당연히 양쪽 사이에 거의 굳어졌던 오해가 풀리는 과정에 (탈)식민주의는 다음으로 한다. 구르나가 켄트대학에서 탈식민주의 문학 교수로 지냈다는 선입견이 거의 필요하지 않지만, 이 정보를 알고 있는 독자 나는 자꾸 그 방향으로 읽는 잘못을 저질렀다.

  또한 등장하는 난민/망명자는 특히 21세기 들어 유럽으로 밀려든 아프리카, 중동, 라틴 아메리카와 특히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사람들이 아니라, 거의 인구유동이 없었던 1960년대의 일, 그것도 예전에 자신의 식민지 지역에서 벌어진 독재와 학살을 피해 망명을 선택한 소수에 관한 일이라, 우리가 얼핏 생각할 수 있는 난민문제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난민을 직접 대하는 영국의 이민국 당사자, 공항에서 처음 접촉한 케빈 에덜만도, 이후에 오랜 세월 주인공을 직접 접촉해 관찰하는 난민위원회의 레이철 하워드도 유색인 난민인 주인공을 정중하게 대하고 편의를 봐준다. 심지어 친절하기도 하다. 친애하는 작가 앨리 스미스의 계절 4부작에 나오는 험악하고 열악하기가 형무소보다 나을 것이 1도 없는 난민 수용소 같은 건 아예 구경할 수조차 없다. 당시 세월이 그랬었나 보다.


  중요한 스토리 라인은 두 이슬람 가족 이야기.

  한 쪽은 이슬람임에도 불구하고 만날 술타령에 성실하지 않은 생활로 일관하던 샤아반 마흐무드 가족. 아버지 무하마드가 일군 큰 재산을 홀랑 말아먹지는 않았다. 그것만 가지고도 크게 성공한 거다. 샤아반은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었다. 아들 라자브 샤아반 역시 충실하게 아버지의 전철을 좇아 술과 허랑방탕한 세월을 보냈는데 아마도 아버지처럼 여색을 밝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슬람 사회에서 네 이웃의 아내를 탐했다가는 훤한 대낮에 돌팔매를 맞아 처참하게 숟가락 놓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보잘것없고 소심한 사내 라쟈브 샤아반이 감히 마음먹지 못했지도 모른다.

  제일 먼저 계절풍 ‘무심’에 관해 이야기해야겠다. 아라비아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해변을 따라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 이때 페르시아와 인도의 상선들이 향료와 후추와 기타 등등을 싣고 아프리카 해변을 따라 소말리아, 케냐, 잔지바르를 거쳐 탕가니카와 마다가스카르 등으로 항해했고, 이곳에서 서너달을 머무르며 사업을 진행한 다음 거꾸로 역풍이 불면 다시 품목을 싣고 북상해 온 곳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명나라 환관 정화가 원정을 떠났을 당시 잔지바르와 마다가스카르, 그리고 탄자니아와 모잠비크까지만 흔적을 남긴 것도, 이 아래쪽으로 진출하면 남극해에서 오는 한류와 부딪혀 난파하기가 십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역사책에서 읽었다. 어느 책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 무사를 타고 잔지바르에 도착한 큰 장사꾼 후세인이 있었다. 그가 한량인 라자브와 어울려 잘 먹고 잘 놀았으며, 영어에 능통해 라자브의 맏아들 하산한테 영어 과외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동네사람들 한테는 후세인이 하산과 친하게 지내는 걸 보고 둘이 연인이라는 소문도 돌았고, 원래 태어나기를 님포마니아 성향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안주인과도 모종의 것을 맺지 않았느냐 하는 수근거림도 있었다. 그러나 워낙 활수한 후세인은 라자브와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동업을 제의했고, 동업에 따른 자금을 대기 위하여 라자브가 그의 고모한테 유산으로 받은 좋은 집과 기물 일체를 담보로 후세인에게 돈을 빌렸다.


  그리고 또다른 주인공 살레 오마르. 1958년에 아버지가 별세하는 바람에 유산을 물려 받은 잔지바르의 전직 행정 공무원. 열여덟 살 때에 잔지바르의 다른 학생 세 명과 더불어 영국 정부에 의하여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의 마케레레 대학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공부하고 돌아와 영국 식민정부에 들어가 한 4년 동안 재무부 행정관으로 일했다. 캄팔라에 가 있을 동안 아버지에 이어 아버지가 들인 새어머니도 세상을 접으면서 이제 큰 밑천이 생겨 행정관을 그만 두고 제법 크게 사업을 시작했다. 가구상.

  주요 고객은 영국인들과 살던 곳이 크루즈 1박 기항지라서 몰려드는 유럽 관광객들. 이들에게 살레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영국인들이 헐값으로 넘긴 소품과, 무심을 타고 들어온 아라비아 상인 한테 구입한 말레이반도와 인도 등지 원산인 정밀 세공 가구를 비싸게 팔아 제법 돈을 벌었다. 당연히 큰 상인이었던 후세인과도 사업상 친하게 지낼 수밖에. 후세인은 말레이산 원목을 정교하게 가공한 검정 탁자에 눈독을 들였다. 그래서 오랜 공을 들이다 크메르에서 구한 얼마 남지 않은 향목을 선물하는 등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 살레와 흥정에 성공, 끝내 그걸 구입해 라자브의 맏이 하산에게 선물했다.

  이어 라자브한테 제안했던 것과 연결, 살레에게 큰 돈을 빌려달라고 제안했고, 이에 대한 담보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라자브의 집과 기물 일체에 대한 증서를 제시했다.

  결과만 말하자면, 돈을 들고 북아프리카로 (라자브의 맏이 하산과 함께) 떠난 후세인은 폭삭 망해버렸으며 두 번 다시 잔지바르에 나타나지 않았고, 우연이라도 라자브, 살레와 마주치지도 않았다. 알고보면 살레와 라자브는 친척이라면 친척이랄 수도 있는 사이. 살레는 이러저러한 좋은 조건으로 자신도 돈을 받고, 라자브도 집을 건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했지만 야물딱지게 거절당했다. 그래서 화가 나, 이슬람인들의 인정상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집과 기물을 자기 소유로 해버렸다. 쉽게 말해 라자브 집안이 하나도 잘한 게 없으면서 살레를 원수처럼 여길 수밖에 없는 이상한 관계로 처한 것.

  세월이 흘러 잔지바르 술탄국이 독립을 하고, 1년도 되지 않아 쿠데타가 벌여졌으며, 아랍 출신으로 보이는 살렘은 당연히 체포당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감옥에 처박혔다. 이 사이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도 죽고 말았다. 정권이 바뀌어 특사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살레 앞에는 또다시 생명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어서, 출국 금지 조건으로 석방된 60대의 늙은 살레는 라자브 샤아반의 기물을 처분할 당시 보관했던 소품 한 점 안에서 이미 죽은 라자브 샤아반의 출생증명서를 발견해, 라자브 샤아반 이름의 여권을 만들어 망명길에 올라 런던 개트윅 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앞에서 이야기한 공항 이민국 당사자 케빈 에덜만 씨, 난민위원회 담당자 레이철 하워드 씨, 그리고 잔지바르 출신의 영국 시인이자 영문학 교수이며, 라자브 샤아반의 둘째 아들 라티프 마흐무드. 무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만난 사람들. 이들은 서로 바라본다. 자신이 알았던 사실, 알았다고 믿었던 사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세월은 모든 것을 무디게 만드는 아름다운 마모도 가지고 있는 걸,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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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단의 방문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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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니퍼 이건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우리나라에 장편 네 권, 소설집 한 권, 합해서 다섯 권의 단행본을 출간했고, 미국에선 2018년부터 펜아메리카, 그러니까 미국 펜클럽 회장을 맡을 정도로 이름을 알렸다는군. 1962년,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초가을에 시카고에서 출생한 이건은 킴프턴 가문에서 태어난 거 같다. 뭐 내가 전화해본 거 아니니까 분명하지는 않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학사 후에 케임브리지 세인트존스 칼리지에서 석사. 이렇게만 쓰여 있다. 진짜로 영국에 날아가 학위를 땄는지, 미국에서 대학간 교류로 학위를 인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위키피디아도 웃기다. 제니퍼 이건이 대학 다닐 때 스티브 잡스와 연애를 했고, 잡스가 이건의 침실에 매킨토시를 설치해 주었단다. 설마 잡스가 이건의 침실에다 데스크탑을 설치만 해주고 끝나지는 않았겠지? 이런 건 뭐하러 올려 놓지? 이렇게 내밀한 사생활을? 웃겼어. 잡스가 그만큼 훌륭한 인간이었고, 잡스하고 연애를 했으니 제니퍼 역시 같은 레벨이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여간 잘 나가는 작가라고. 이 책에 대한 책방의 독자 서평도 괜찮은 편이다. 2010년에 출간하고 2011년에 소설부문 퓰리처 상을 받은 작품이다.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100대 도서에 39번째로 올라간 소설이 <깡패단의 방문>이라서 그냥 심심풀이로 한 번 검색해봤더니 도서관에 있다. 제목 속 “깡패단”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코믹 폭력물 아닌가 싶어서 읽을까 말까 좀 망설였다가 결국 상호대차서비스 신청해서 읽었다. “뉴욕타임스 21세기 1백대 도서” 목록 안에 든 소설은 그리 믿음이 가지 않아 망설였다. 거의 영어소설이고 특히 미국작가들의 작품에 편중해 선정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아프리칸 미국인 또는 중남미 출신 미국인들의 노예시절이나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작품이 내 입장에서는 과하게 많다. <깡패단…>은 미국의 백인여성이 썼으니 좀 다르겠지, 해서 읽었는데, 다르다. 재미있고, 입심 좋고, 아이디어도 돋보이고, 그랬는데 유감스럽게 벌점 주면 만점은 못 주겠다.

  열세 개의 에피소드, 또는 개별적인 단편소설로 읽을 수도 있고, 모두 합해 한 편의 장편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단, 장편소설로 읽을 경우에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서사는 포기해야 한다. 1장의 주인공은 사샤라는 이름의 서른다섯 살 뉴욕 거주 여성. 현재 직업이 레코드회사 대표의 비서. 다음 장은 사샤의 보스이자 레코드회사 사장이었다가 자기 회사 지분을 팔아 돈을 챙긴 다음 같은 회사의 고용 사장으로 있는 베니 살러자르.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아마도 북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서 이민 온 조상을 두고 있는 것 같다. 3장은 베니 살러자르가 젊은 시절 별 자질도 없이 밴드 “플레이밍 딜도스” 활동을 하던 시기에 함께 밴드를 하던 멤버들. 이런 식으로 시간의 수열적 배치 없이 인물끼리 얽히고 설킨 단편을 배열시킨다. 각 장마다 개별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어서 읽기 편하고 서로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시간의 비수열적 배치는 독자로 하여금 등장인물의 과거와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이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아마도 제니퍼 이건이 보여주고 싶었을 시간의 폭력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구성이다.


  이런 구성인 줄 모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도 괜찮은 독서법이었다.

  1장의 주인공은 사샤. 35세의 뉴요커. 오하이오 출신으로 지극히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 부모답게 어린시절 사샤의 아빠가 (아마도 남자)애인과 함께 야반도주를 해버려 집안이 쫑났다. 엄마는 현명하게도 마음이 넉넉하고 재산은 훨씬 더 넉넉한 괜찮은 남자를 골라 두번째 결혼을 했다. 사샤는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여자애들과 완전히 재미로 잡화점에서 무엇인가를 슬쩍 훔쳐내는 장난을 한 적이 있다. 소녀들은 경쟁적으로 자잘한 상품을 훔쳤는데 친구 누구도 몰랐다. 사샤는 이 일탈을 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지극한 간질거림, 공포와 긴장 속에서 몸 전체가 꼼질대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것을. 이후 사샤는 자기만의 방법을 개발해 끊임없이 도벽을 향상시켜나갔으니, 글쎄 새아빠로 들어온 남자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황당한 꼴을 겪느냐는 말이지. 그럼에도 새아빠는 몇 번이나 경찰서에서 사샤를 찾아오고, 변상도 하고, 전문 상담사와의 비싼 상담도 진행하면서 온 정성을 다했다.

  사샤가 점점 자라 17세가 되자, 무슨 생각이 들었든지 갑자기 집을 나가 세상 방방곡곡을 헤매기 시작한다. 일본, 홍콩, 중국, 중동, 유럽 각지에서 시도 때도 없이 돈 좀 보내달라는 전화를 할 때마다 새아빠는 엄마와 함께 사샤를 찾으러 그곳이 어디든지 간에 안 가본 곳이 없다. 이 정도면 정말 보살도 이런 보살이 없다. 이런 새아빠들이, 많은 작품 중에서, 사실 알고 보면 별 희한한 파렴치한 작자일 경우가 많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거 1도 없다. 그저 착한 새아빠.

  사샤가 집을 나가 세계를 떠돈 지 3년이 흘러 이제 스무 살. 이탈리아 나폴리에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번에는 새아빠가 엄마와 함께 직접 날아갈 짬이 없어서 어릴 때 사샤를 돌보곤 했던 외삼촌을 대신 보냈다. 외삼촌은 3류 대학의 미술사 종신교수. 그는 나폴리에 도착해 사샤를 찾는 대신 미술관과 성당 등 훌륭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명소들만 순례하고 있다. 그러다 물론 사샤를 만나기는 하지. 사샤가 돈도 없이 어떻게 나폴리에서 오래 살 수 있었을까? 나폴리에서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나폴리 주민만큼의 인구를 구성하는 미국과 유럽의 관광객. 사샤는 어린시절부터 단련해온 화려한 절도 및 소매치기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해 현지 안목 없는 소매치기가 눈여겨보지 않을 섬세한 품목을 훔쳐 스웨덴인 플루티스트에게 넘겨 돈을 만들었다. 때로는 장물 없이 자기 몸을 허락하는 대가로 조금의 돈을 얻기도 하고.


  위에서 한 사샤의 이야기는 1장에 나오지 않는다. 저 뒤에, 작품 후반부에 가면 사샤의 시절들이 등장한다. 위 장면은 20세까지, 훗날 1장보다 한 10여년 흘러, 도벽이 드러나 회사에서 아무리 사장이라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을 무릅쓴 채 사샤를 자를 수밖에 없었고, 이제 의사가 된 옛 대학시절 애인과 연락이 되어 다시 만나 결혼을 하고, 나이로 보아 인생에서 거의 마지막 가능성이 있을 때 아들과 딸을 낳아, 중서부 사막지대에 큰 집을 짓고 사는 이야기 중에 나온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해서 좋을 것 없지만 많은 등장인물 중에서 한 명에 불과하니 당신이 이 책을 읽는다면 벌써 이런 작은 이야기들은 싹 잊었을 확률이 높아 말해버리는 거다.

  1장에서의 사샤는 여전히 못 말리는 도벽을 갖고 있는 35세의 커리어 우먼. “소우 이어Sow Ear” 레코드 회사의 제너럴 매니저 베니 살러자르의 비서로 12년째 일하고 있다. 즉, 나폴리에서 돌아와 개과천선해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 와 자리를 잡은 거다. 집에 돈이 좀 있다고 해서 아무나 사샤처럼 열일곱 살에 가출을 감행해 3년씩이나 전 세계를 유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과단성도 있고, 매사 결단력은 물론이고 기본적으로 뇌가 다른 이들과 비교해 쌩쌩 돌아가는 총명함도 구비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관리직 높은 자리를 꿰찰 수도 있건만 사샤 본인이 그냥 비서자리를 유지하기 원해서 그렇게 지내고 있을 뿐이다. 사장 베니도 이를 알고 있지만 당장 자신이 일하기에 사샤만한 인물이 없다.

  소설의 막이 오르면 장소는 라시모 호텔 화장실. 소개팅에 나온 사샤가 거울을 보면서 아이섀도우를 다시 칠하고 있다가, 바닥에 놓인 가방을 발견한다. 화장실 안에서 여자 오줌누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여자가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가방을 놓고 들어간 거 같다. 한눈에 척 보니까, 전문가이니만큼 딱 한 번의 눈길로 가방 가장자리 안쪽에 옅은 초록색 가죽 지갑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심리상담사한테 비싼 돈을 주며 도벽에 관한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사샤는 절대 훔치려 하지 않았지만, 오줌 누고 있는 여자의 사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짜증이 났다. 그랬다고 믿기 시작했다. 사샤는 무엇인가로 이 여자한테 징벌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오줌줄기가 약해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지갑을 자신의 백 속으로 집어넣고 유유히 화장실을 떠났다.

  이 장면을 스토리만 잡아서 이야기하니까 별 감흥이 없지만, 제니퍼 이건의 화려한 입심으로 각 장면마다 심리상담사와의 대화를 연상하기도 하고, 절도 순간의 마음 같은 것의 묘사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크. 사실 별볼일 없던 소개팅 상대 알렉스가, 지갑을 훔쳐나온 이후엔 꽤 괜찮은 남자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호텔 라운지에서 나온 이들은 사샤의 절도 콜렉션이 있는 사샤의 집에 함께 가고, 알렉스는 이야기 속에서만 읽어본 부엌 안에 욕조가 있는 집에는 처음으로,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으로 와본 경험이 되었는데, 둘이 별 애정도 없이 만나자마자 그 밤으로 한 번 한 다음에 정말로 욕조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사샤의 집에서 나왔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아침이 될 뉴욕 거리를 걷는 알렉스의 뒷주머니에 더 이상 알렉스의 오래되어 헤진 지갑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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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01-29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처음 나왔을 때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읽지는 않았어요ㅋ 여기서 ‘깡패‘가 시간을 의미하나 보네요. 적절한 비유 같아요. ㅠㅠ

Falstaff 2026-01-29 15:4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재미있는 책이더라고요. 뭐 사는 게 다 그렇지요. ^^
 
친구 사이
아모스 오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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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만에 다시 찾은 아모스 오즈. 나한테는 오즈 선생이 참 난처한 작가이(었)다. 이전에 일곱 작품(집)을 읽었는데, 처음엔 도무지 정이 가지 않다가, 하도 유명 작가라고 이름을 떨친 바 있어 딱 한 개만 더 읽어보겠다고 고른 책이 문학동네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두 권짜리 장편소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이 작품에 제일 먼저 뻑 갔고, 그 다음 한 번 쉬었다가 현대문학에서 찍은 <유다>로 두 번째 뻑 갔다. 이어 열린책들과 계약이 끝나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블랙박스>도 즐거이 읽었다. <블랙박스>는 뚜껑열린책들 판 헌책으로. 그러니까 비교적 오즈도 눈에 띄면 읽는 작가 목록에 든다고 볼 수 있다. 도서관 개가실을 서성이다 ‘기타국가 소설’ 칸에 유대인 작가들이 꼽혀 있다. 요즘 이스라엘이 아랍-팔레스타인 한테 하는 짓이 꼴 보기 싫어 콧바람만 핑핑 불고 있었다가 그저 우연히 손에 잡힌 책이 다비드 그로스만의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근데 이게 대박이었던 거라. 이날 이후로 다시 유대 서가에 조금은 신경 쓰기 시작했고, 당연히 오즈의 목록도 눈에 들어왔건만, 대개 읽은 책, 아니면 손때가 하도 묻어 내 손때를 보탤 마음에 생기지 않는 책들만 있었다. 이 가운데 그나마 좀 덜 헤진 책 한 권을 골랐으니 바로 《친구 사이》.

  책 한 권 고른 사연을 참 지루하게 이야기했지? 단편소설 모음집을 읽고 나면 대개 할 말이 그렇게 없어서 그냥 후딱 지나가야 할 이야기거리도 일부러 좀 길게 쓰고 뭐 그런 거지. 이해 좀 해주셔.

  말 나온 김에 쓸데없는 이야기 좀 더 보태볼까. 책을 골라놓고 보니 이게 활자로 큼지막하고, 편집도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범들과 친하게 페이지만 열라 늘린 편집. 본문이 209페이지에서 끝나는데 마음먹으면 반나절 좀 넘는 시간에 홀랑 읽어 치울 수 있겠다. 이런 책을 언제 읽느냐 하면, 오늘 내일로 희망도서 또는 상호대차서비스 신청한 책들이 들어올 거 같을 때, 그러나 언제 들어올지는 모를 때 읽는 거다. 괜히 두꺼운 벽돌 쌓다가 신청한 책 들어오면 허겁스러우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 책 빌리자마자 상호대차 신청한 책 세 권 들어왔다고 카톡 왔다. 그게 어제 오후. 오늘은 도서관 안 가고 집에서 《친구 사이》 읽고, 오후 되면 고 정여사 제사 지내러 갔다가, 내일 신청한 책 받아 읽기 시작해야지. 골치 아프게 살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 아니면 머리 굴릴 일이 도통 없는 천국에서 살아서 그렇다.


  아모스 오즈는 나기는 예루살렘에서 나고 열다섯 살 먹었을 때, 뭐 사춘기 소년답게 삐딱선을 좀 탔는지, 부모형제 내팽개치고 혼자 이스라엘 집단농장 키부츠 홀다에 들어간 인간이다. ‘키부츠 홀다’를 그냥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홀다 집단농장’, 이 비슷하게 이해하면 된다. 오즈의 부모 이름은 ‘오즈’가 아니다. 키부츠에 들어간 김에, 설마 진짜로 가족들과 연을 끊으려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이름마저 ‘힘’을 뜻하는 히브리어 ‘오즈’로 바꾸어버렸다. 이이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아랍-팔레스타인 지역을 떠나지 않았던 터줏대감의 자손 같지는 않다. 검색해봤더니 아버지는 리투아니아, 어머니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지역 출신이다. 그러면 짧은 독립국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중요한 세대. 신생국도 아니고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에서 태어나 소년시절부터 키부츠에서 성장했으니. 이 바로 뒤가 신생 이스라엘의 키부츠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세대. 내가 뭐 아나, 책에 이런 얘기가 나와 있으니 그런가보다 하는 것이지.

  키부츠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건, 《친구 사이》에 수록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의 무대가 모두 키부츠 예캇이기 때문이다. 시간적 공간은 1950년대. 아모스 오즈가 키부츠에 들어간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이 책을 출간한 것이 2012년. 오즈가 73세 때로 무려 60년 전의 기억을 오늘에 되살려, 이 기억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았겠지만, 하여튼 60년 전의 경험을 깔고 쓴 셈이다. 혹시 모르지, 집안이 풍비박산나는 바람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아빠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정부가 키부츠에 보낸 고등학생 모시가 자신의 분신일지도. 아니겠지만.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 한 많은 미아리고개 넘어 몇몇 인간들의 마음의 고향 미아리텍사스와 센 강을 격한 북향의 우울한 건물 속에서 주로 국사 선생이 온몸에 침을 튀며 이상향으로 부르짖던 키부츠가, 아마 그 국사 선생도 몰랐을 걸, 거의 완벽한 공산주의 생산체계에 입각해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을. 이들은 아모스 오즈가 보기에 키부츠의 높은 관리자들은 순정한 사랑의 종교인 초기 유대교를 버리고 죄와 탈선, 금지와 엄격한 규칙으로 가득한 새 종교를 만들어 버렸던 거였다. 남편을 버리고 독립하기로 결심한 <데이르 아즐룬>의 주인공 니나가 168쪽에서 한 말에 의하면 그렇다. 이들은 유대교를 다른 종교로 바꾼 사람들이란다. 마르크스가 탈무드이고, (공산주의식)총회가 교회당이며 (교조적 유대교 교사인) 다비드 다간이 랍비인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단다. 일체의 사생활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 아이들마저 한 부부에 속한 아이인지, 키부츠에 속한 아이인지를 키부츠 총회에서 다수결로 결정하는(했던) 사람들. 아이들은 부모의 노동시간이 끝난 저녁 때 집으로 돌아가 부모자식 간의 정을 조금 나눈 후, 취침시간 전인 오후 9시까지 탁아소로 돌아와 집단으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아이들이 아름답고 선해? 누가 그래? 당연히 집단으로 따돌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언제나 그렇듯이 따돌림 또는 괴롭힘의 대상은 좀 늦게 크는 아이이거나 체력이 약한 아이일 것이다. 만날 자기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걸 알게 된 아버지가 참다, 참다못해 결국 꼭지가 돌아버려 탁아소로 냅다 달려가 자기 아이를 괴롭힌 꼬마 말고 엄하게 얻어걸린 아무런 아이의 귀싸대기를 연달아 올려붙이는 <조그만 아이>의 주인공 로니.

  이게 말이 되냐고? 아이를 부모가 기르지 못하고 탁아소에 보내 평등한 교육과 평등한 육아, 그리고 평등한 먹거리, 잠자리를 제공한다니. 이탈리아로 가서 무기 부품 사업에 성공한 옛 키부츠 동지는 키부츠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아예 이스라엘로 돌아오지 않고 그냥 이탈리아에 주저 앉아 크게 돈을 벌었다. 유대인들 가족 사랑이 대단하지? 그래서 누나 아들, 조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도 마치기가 무섭게 편지를 해 자기한테 보내면 모든 학비와 자기 집에서 살면 되니까 주거비와 식비는 당연한 거고, 생활비까지 모두 보태 주겠으니 서두르라고 했다. 키부츠 출신이 대학에 가려면 군복무 말고도 키부츠에서 무조건 노동을 3년 한 다음에 심의를 거쳐 갈지 말지 다수결로 결정을 한단다. 근데 내 아이는 대학에 못 가는데, 다른 집 아이가 대학에 간다면 마음이 편하겠어? 즐겁게 찬성 표를 던지겠느냐고? 어림도 없지.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건 평등이 아니다. 공부 머리가 좋은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손재주가 좋은 아이는 기능사를 만들고, 몸이 잽싸고 덩치가 큰 아이들을 운동선수로 키우는 것이 재능에 따른 평등 아닐까 싶다. 내가 지금 치사하게 시냇물의 가재, 붕어, 개구리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건 대를 이어 청룡, 황룡, 흑룡과 가재, 붕어, 개구리 신분을 세습하겠다는 치졸하고 파렴치한 봉건주의자의 생각이고, 진정한 공산주의라면 당연히 재능에 따라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각자의 노력에 대한 소득 격차가 있기는 있되 그리 크지 않으면 서로 열 받을 필요도 별로 없지 않겠나.

  《친구 사이》에는 그냥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키부츠라는 곳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던 집단. 어디서나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이다. 사람 사는 곳에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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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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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을 2년이 지나서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욘 포세 열광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긴, 바로 다음해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나라 작가 한강이 상을 받았으니 그 파도에 주저앉아 버린 게 당연하기는 하다. <아침 그리고 저녁>이 두 번째 읽은 포세의 책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속으로 이렇게 속삭였다. “포세 씨, 우리 다시 만나지 맙시다.” 속삭임, 속삭임.

  “ㅆㄴㄹ 소설.”

  잊으셨을 거다. ‘ㅆㄴㄹ’이 뭔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설이라는 뜻. 나, 이거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근데 완전히 ㅆㄴㄹ이니 어찌 또 만날 수 있으리.

  재미없느냐고? 아니, 재미없지는 않다.

  별 감흥이 없느냐고? 감흥이 있을 수도 있고, 감동 먹을 사람들은 감동 먹을 만하다.

  다 좋은데, 딱 하나, “ㅆㄴㄹ 소설”이어서 싫을 뿐.


  분위기도 익숙하다. 노르웨이 피오르 해역에 떠 있는 외딴 작은 섬에서의 출생이 아침. 피오르 만을 끼고 형성된 도시에서의 죽음이 저녁. 출생과 죽음, 아침과 저녁의 주인공은 요한네스.

  오래 전. 약 80년쯤 전에 노르웨이 피오르 해역 멀리 작고 외딴 홀멘섬에서 마르타가 진통을 하고 있다. 마르타와 어부 남편 올라이 사이에는 이제 곧 사춘기를 맞을 딸 마그다가 있고 이후 임신을 하지 못했다. 부부는 마그다가 어여쁘고 총명해 굳이 국영수 학원에 보내지 않더라도 담임선생의 칭찬이 대단해 딸 하나로 충분하고, 하느님의 축북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때는 20세기 초. 피오르 해역의 어부들은 어선에 절대 여자를 태우지 않았다. 액운이 닥칠 수도 있어서. 그렇게 믿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택시 운전수들이 재수 없다고 새벽 첫 손님으로 여자를 태우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고 자기 배를 물려받을 아들 하나가 없는 게 많이는 아니고 조금 섭섭했던 올라이한테 늦게라도 마르타가 임신을 한 게 얼마나 좋았는지. 이번에는 틀림없이 아들일 거야. 아들이 나오면 내 아버지의 이름 ‘요한네스’를 물려줘야지.

  올라이는 오래 전에 이 올멘섬을 샀다. 장가도 들지 않았고, 고기 잡아 파는 젊은 어부가 벌면 얼마나 벌었을까? 자신의 모든 돈을 다 긁어 섬을 샀다고 해도 얼마 안 되는 돈이었을 터이니 작고 험하고 외진 섬이겠지. 올라이는 바람이 제일 약하게 부는 따듯한 만의 중턱을 골라 자기 손으로 집을 짓고, 보트하우스와 부속 건물도 지었다. 물론 형들과 이웃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자기가 섬을 개척하고 집을 지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만큼. 그래서 섬과 집과 배와 아내와 딸에 대해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보태 이제 마르타가 진통을 하고, 올라이는 늙은 산파 안나가 지시하는 대로 물을 끓여 방 앞에 대령하는 장면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이어서 본격적인 마르타의 진통과 분만이 이어진다. 포세의 특유한 문장. 같은 단어나 구절을 반복해 리듬감과 호소력까지 담아 독자가 훅 빠지게 만든다. 이 장면이 끝날 때까지 포세는 줄을 바꾸지 않고 계속 진술한다. 마침표도 없다. 아마 실수로 한두 번 찍은 것처럼 보이는 마침표 말고는 그 작고 새까만 점을 독자는 구경할 수 없다. 누구 생각나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문장은 저 뒤, 아주 먼 먼 뒤로 가면 그래도 마침표 하나는 찍혀 있다. 근데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에는 끝까지 작고 까만 점이 없다. 하지만 줄, 행은 띄어 있다. 다만 마침표만 없을 뿐. 이렇게.


  그래그래. 마르타가 말한다

  이 아이는 요한네스라고 부를 거야,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올라이가 말한다

  그래, 요한네스라고 부르자, 마르타가 말한다 (p.26)


  이러면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고? 작지 않은 글씨체의 널럴한 편집을 보태 본문을 무려 135쪽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분량을 만들 수 있다. 크러스너호르커이처럼 마침표 없고 행 구분도 하지 않으면 편집을 아무리 풍성풍성하게 해도 1백쪽 미만에서 끝낼 수 있을 걸?

  하여간 이렇게 요한네스가 피오르 해역의 작고 외딴 홀멘섬에서 출생했다. 아침. 1부.


  이어지는 2부, 저녁. 요한네스의 아빠 올라이, 엄마 마르타, 누나 마그다. 다 죽었다. 마그다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갔다. 가족 모두 어떻게 갔는지는 설명도 없다. 그냥 갔다. 요한네스, 그동안 에르나와 결혼해 일곱 아이를 두고, 몇 명인지도 모르는 손주들의 재롱도 넘치게 받았다. 아이가 다섯 생기자 도무지 작은 홀맨섬에서 살 수 없어 피오르 해역에 접한 마을로 이사했다. 전에 읽은 포세의 <보트하우스>에서 본 그 동네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프로데 그뤼텐의 책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는 더 어울린다. 심지어 내용도 비슷하다. <닐스 비크…>를 그대로 <아침…>에 옮겨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정말이다.

  <닐스 비크…>는 주인공이자 선한 연락선 선장 닐스 비크가 죽는 날 하루 이야기이고, <아침…>은 새벽에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자다가 곱게 죽은 노인 요한네스의 귀신이 제일 친한 친구 페터스의 귀신을 만나 저승으로 안내를 받기까지 이야기라는 게 다른 뿐이지 어차피 똑 같은 ㅆㄴㄹ 소설. 분위기, 장소 같은 게 모두 판박이. 피오르 출신 작가들은 그 동네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라도 있는 걸까?

  뭐 이런 말 하지 말자. 내가 싫으면 안 읽으면 되는 것이지, 좋게, 공감하며, 심지어 감동 먹어가며 읽은 독자도 있을 터이니 괜히 떠들어 좋을 게 없다. 다만, 포세 씨, 우리 더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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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1-27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절교를!
ㅋㅋㅋㅋ

Falstaff 2026-01-27 14:40   좋아요 1 | URL
좀 매정했습니까? ㅋㅋㅋ

잠자냥 2026-01-27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만, 포세 씨, 나도 더불어 더 보지 말자!
ㅋㅋㅋㅋㅋㅋ
욘 표세 지겨워서 노벨상 이후 아무리 책이 더 나와도 저는 안 읽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폴님의 손절이 반가워요.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1-27 14:41   좋아요 1 | URL
두 권 읽었으면 성의 표시는 충분히 한 걸로 쳐도 괜찮겠습지요?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6-01-27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닐스 비크에서도 부인 이름이 마르타 아닌가요?
그곳의 피요르드는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왠지 죽음에 대한 책은 다 좋고 숭고합니다 ㅎㅎ

Falstaff 2026-01-27 14:43   좋아요 1 | URL
옙. 마르타 맞습니다. 오스트리아 이북 지역에 특히 마르타가 많더라고요.
이 동네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톱 랭킹에 오르기 바로 직전까지 세계 자살률 1등 먹었던 지라 유독 죽음과 관련한 작품이 많을 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농담입니다. ㅎㅎ
 
물은 끓고, 영원에 가까워진다
윤해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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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해서는 2017년에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의 독후감을 업로드하고 3년 터울로 2020년, 2023년에 이어 2026년, 네 번째 독후감을 쓴다. 네 권이면 과작寡作 스타일의 작가치고 그나마 많이 읽은 편이다. 그만큼 《코러스크로노스》가 좋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물은 끓고, 영원에 가까워진다》에서 끓는 물과 가까워진 영혼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윤해서는 10년 동안 더욱 오리무중이 되었으며, 이미지를 가능한 한 꼬불치려 안달하는 것 같고, 여전히 문장의 음악성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전 만큼은 아니다. 아이고, 세상에. 이러는 사이 윤해서, 벌써 마흔여섯 살이 되어 버렸네, 아, 세월이란.

  더욱 놀라운 건 일곱 편의 단편소설에서 적어도 두 편에서는 우리나라 작가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또는 쓸 만한 흔한 마음 서림/아림의 작품이었다. 좋게 말해서 그렇다는 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문제의 두 작품, 즉 <우리의 눈이 마주친다면>과 <변성>은 2류 발라드 뽕짝이라는 말씀. 즉 전혀 윤해서 같지 않아서, 윤해서한테 결코 바라지 않던 글이라는 거였고, 그래서 폭싹 실망했다는 뜻이다. 다른 작가가 썼다면 이리 혹독하게 말하지 않겠지만,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주목해온 윤해서라서 그렇다. 물론 내가 소설과 문학에 대해 쥐똥도 모르면서 책 좀 읽는다고 딜레탕트 흉내만 내는 허접한 독자라는 건 알지만, 딜레탕트 아마추어도 책 읽는 감정이 있고 소감도 있으니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뭐 그러고 보니 윤해서가 퐁당퐁당이기는 했다. 좋았다가, 실망했다가 다시 좋아졌으니 이제 또 실망할 차례인가보지 뭐. 이렇게 스스로 위안하고 다시 3년 후를 기약해보겠다. 어쩌면 3년 후 정도가 마지막 윤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작품 때문이 아니라 시력이 별로 받쳐주지 못할 거 같아서 그렇다. 물론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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