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영역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쓰시마 유코 지음, 서지은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쓰시마 유코라고 하면 8년 전이었던 2015년 이이의 장편 소설 <불의 산>을 참 재미있게, 흥미롭게 읽은 것이 워낙 기억에 남은 작가다. 그리하여 단박에 다른 작품 <웃는 늑대>까지 내달렸지만 아쉽게도 전작보다는 감흥이 덜 해 이후 좀 뜸했던 작가다. 그저 <불의 산>의 강렬한 느낌만 간직한 채 세월은 흘렀다. 올해 이이가 신인시절에 쓴 연작 장편 <빛의 영역>을 번역 출간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가, 동네 도서관 개가실에 들렀더니 신규 구입 도서 테이블에 놓여 있기에 주저하지 않고 빌려 읽었다.

  이이의 생부가 본명, 쓰시마 슈지, 유코가 첫 돌을 지나자마자 유곽의 호스티스와 함께 동반자살에 성공한 <인간실격>의 저자 다자이 오사무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것이니 살을 붙여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터. 돌 때 죽은 아버지라는 건 사실 아무 의미도 없다. 쓰시마 유코가 평생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자에 대한 뒷이야기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말고는. 그래 홀어멈이 된 엄마하고 둘이서 열심히 살다가 유코 역시 작가가 되어 서른두 살 때 연작소설 <빛의 영역>을 발표해 노마문예 신인상을 받는다. 새삼스레 쓰시마 유코의 살아온 행복하지 않은 내력을 소개하기가 좀 거시기하지만, 이이의 작품과 비교하기 위하여 중요한 것만 간추려보면, 스물다섯 살이던 1972년에 결혼을 하고, 딸을 출산하지만 곧바로 이혼을 한다. 그래서 미운 다섯 살의 딸 하나를 키우며 이혼에 성공해 홀어멈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작품이 오늘 독후감을 쓰는 <빛의 영역>이고, 쓰시마 엄마의 경우, 여덟 살에 다운 증후군에 죽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웃는 늑대>다. <빛의 영역>은 1979년, <웃는 늑대>는 2000년에 일본에서 문학상을 받는다. 어차피 집구석에서 작가가 한 명 나오면 그 집안은 거덜이 나는 거니까.


  책 뒤편엔 일본인 카와무라 미나토의 해설이 붙어 있다. 같은 글에서 카와무라는 해설을 “빛, 소리, 꿈” 이렇게 세 가지 측면에서 관찰하고 서술한다. 길어봐야 2백쪽도 되지 않는 작은 소설이지만 명색이 훗날 일본을 대표할 작가 가운데 한 명이 될 인물이 신인상을 받은 연작소설이라서 이런 거창한 제목의 해설을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거 참, 꿈보다 해몽이다. 작품에서 쓰시마가 빛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소리에 관해서는 생각보다 덜 묘사하고, 꿈은 현대 소설가치고는 과하게 많이 등장시킨다. 과장 좀 하자면 꿈 꾸는, 꿈 속 장면이 한 열 페이지 될까 싶다. 이런 거 말고 해설의 핀트를 1970년대 중후반의 일본에서 아이 딸린 홀어멈이 꿋꿋하게 홀로 서는 과정, 즉 페미니즘 적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이 책이 투쟁적 페미니즘 작품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세계적으로 여성 인권이 향상되지 않은 최악의 나라 가운데 하나로 “매년” 지목되는 일본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남편 후지노와 이혼하려 한다. 시작은 후지노에게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낳은 김에 혼인신고도 했으나, 변변한 직업도 없이 연극 영화 판에 빌빌거리며, 새로 생긴 처자식이 나름대로 부담이 되는 철부지 남편. 반면에 ‘나’는 TV 방송국의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남편한테 크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적지 않은 돈을 사업자금이나 성공을 위한 종잣돈으로 대주고 돈을 날려 먹는 걸 손 하나 까닥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 키우는 것도 시간 많은 남편이 가끔 유아원에 데려가는 것 정도만 도와주었을 뿐이다.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남편을 위해 보필을 할지언정 부부간 의견차이가 생기면 가끔, 아주 가끔 귀싸대기를 얻어터지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하루는 남편 후지노가 정색을 하고 ‘나’와 진지한 대화를 해보자 하더니, 이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리셋해서 처음부터 다시 살고 싶다고 주접을 떨더니 이혼을 전제로 별거에 들어간다. 이혼을 하더라도 후지노는 아이를 부양할 형편도 안 되고, ‘나’가 양육권을 가지게 되더라도 육아비용과 향후 교육비도 보태줄 처지가 아니며, 결혼 생활 도중에 ‘나’에게 얻어 쓴 적지 않은 돈도 갚지 못하겠노라고 선언하고, ‘나’는 묵묵부답, 그저 그런 줄 안다. ‘나’는 1940년대 생이며 1970년대 중반의 일본에서 여성은 당연히 찍 소리 하지 못해야 했던 거니까.

  ‘나’가 방송국 다니면서 억대 연봉, 일본이니까 천만 엔 이상의 연봉을 받는 능력자라고 해도, ‘나’는 후지노를 향해, 거 참 드런 새끼, 이혼하자고 해서 고맙다, 하면서 새 남자를 찾거나 여러 남자를 찾는 대신, 아직은 이혼하지 않은 법적 남편 후지노와 함께 채광이 좋은 셋방을 얻으러 도쿄 시내를 뒤지고 다녔다. 속으로는 이혼해서 따로 사느니 어떻게 어영부영 새롭게 리셋한 삶을 살고 싶다는 후지노 마음이 변해 그냥 이대로 살 수 있을지 궁리하면서. 문제는 후지노한테 자금이 많이 들어가 ‘나’의 수중에 돈이 별로 없다는 것. 이 와중에 4층짜리 건물의 4층. 원래 주거용 건물은 아니지만 집주인 가족이 오랜 세월 살았던 4층이 주머니 사정에 딱 맞게 월세로 나와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거야말로 빛의 영역, 사방팔방 그렇게 채광이 좋을 수 없었던 것.


  이렇게 해서 딸 하나 달린 홀어멈이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어처구니없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은 생각한 것처럼 되지 않는다. “조정”을 위한 가정법원의 호출에 남편 후지노는 참석할 의도가 없어 달이 가고 해도 간다. 그러다가 결국 후지노는 조정 없이 이혼 서류에 인감도장을 찍어 ‘나’에게 건네줘 처음엔 다시 함께 살기를 바라다가 나중엔 빨리 좀 정리가 되었으면 싶었던 이혼이 성립되자, 주인공 모녀는 채광이 찬란했던 건물의 4층 방을 나와, 거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다른 셋방으로 가면서 작품은 끝을 낸다.

  짧은 소설. 시간 죽일 목적으로 좋은 작품. 1970년대 중반. 지금 시각으로 보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었던 시절의 어중간한 소재와 수위.




* "홀어멈"은 공선옥이 작품에서 평이하게 자주 쓰던 표준말입니다.
.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3-08-11 05:3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예정 :
화요일, 서정인 <귤>
목요일, 페터 바이스 <마라/사드>
금요일, 루이 아라공 <오렐리앵>

바람돌이 2023-08-11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에게 딸이 있었군요. 내 인생에 하나도 준게 없는 아버지가 나를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리고 죽어버렸다는거..... 에고 참....저는 처음 듣는 작가인데 생각보다출간된 책이 많네요. 골드문트님 말하신 불의 산은 절판인데 도서관에 있으려나.

Falstaff 2023-08-11 11:35   좋아요 1 | URL
ㅎㅎㅎ 넵. 하여간 다자이, 그렇게 죽지나 말던지, 장가를 들지 말던지, 그렇더라도 아이를 낳지 말던지, 하지 말입니다.
<불의 산>은 아마 도서관에 있을 거예요.

stella.K 2023-08-11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가 아버지라는 건 저도 첨 알았네요.
제목이 근사해서 기대했는데 전 웬지 안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긱이...ㅋ

Falstaff 2023-08-11 11:35   좋아요 0 | URL
뭐 굳이 읽으실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ㅎㅎ

2023-08-11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1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윌리엄 트레버 콕스는 1928년 아일랜드 코크 카운티에서 태어나 2016년에 잉글랜드 데번 카운티에서 생을 마감했다. 물이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일랜드 작가 중에 글 좋은 사람이 많다. 번쩍 떠오르는 사람이 당연히 제임스 조이스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이 다음에 거론되는 작가가 윌리엄 트레버와 존 벤빌을 꼽는데, 약간은 책 판매를 위하여 트레버와 벤빌의 이름을 “후까시”한 것 같은 기분은 든다. 이 중에서 윌리엄 트레버는, 확실한 건 아니고 전에 어디서 들은 것 같다는 전제로 말해서,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루시 골트 이야기>에서 주인공 루시의 아버지 에버라드 골트 씨처럼 아일랜드로 이주한 잉글랜드인의 후손, 아닌가? 하여간 스물여섯 살에 아일랜드를 떠나 잉글랜드에 정착한 것으로 보아 크게 다른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혹시 그렇다면 아일랜드 사람들이 무척이나 경멸하는 잉글랜드 인을 자기네 대표적 작가로 추앙하고 있는 것도 같고 뭐 그렇다.

  트레버의 호적을 가지고 이렇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가 트레버를 읽은 감상으로 말씀드리는 것으로, 작품의 무대가 아일랜드 또는 농촌 지역일 때와, 런던 등 대도시일 때, 거의 완전히 상반된 느낌을 받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아일랜드와 (지역을 불문하고) 농촌을 무대로 한 작품은, 트레버 특유의 감상성, 부끄러움, 심상함, 창백, 감수성, 고딕적 반작용을 품은 소극적 태도 같은 것이 절묘한 긴장으로 빠지게 하는 반면, 대도시가 무대일 경우에는 좀 덜 어울리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문장이야 죽여주지만 그의 장기가 아스팔트 위에서 불꽃을 튀지는 않는 거 같다.

  《마지막 이야기들》은 2016년에 숨을 거둔 후, 미발표 작품을 모아 바이킹 출판사에서 2018년에 출간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윌리엄 트레버의 연표를 보면서 궁리해봤더니, 그의 창작은 2008년 또는 2009년 정도에 마감을 한 듯 보인다. 여든 살까지 픽션을 쓴 거니까 대단한 노익장이었다. 《마지막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도 이 점이었다. 이 책이 “미발표” 작품을 모은 것이라 하더라도, 2009년 이후, 그의 만년에 쓴 작품을 모은 것인지, 아니면 평생 작가가 책으로 내놓지 않았던 것을 모은 것인지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나는 후자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증거는 없다. 그냥 작품(들)을 읽어보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하는 것일 뿐.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의 무대가 참 다양하기 때문이었다. 아일랜드도 있는 것 같았고, 런던도 있고, 농촌지역도 있다. 그래서 책 한 권, 열 편의 단편소설을 읽으며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래, 내 스타일이야, 하면서 영탄한 작품도 있으며, 뭐 트레버치고는 별론데, 한 작품도 있었다. 즉, 내 취향에 따라 얘기해서, 공감의 정도가 들쭉날쭉했다는 거.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플롯(들)이 재미있었다. 첫번째 이야기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점. 피아노 선생님 미스 나이팅게일한테 천재 제자 한 명을 교습하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생긴다. 선생의 입장에서 얼마나 감격적이고, 흥분유발의 원천이 되며, 정성을 모아 집중하게 만들겠는가 한 번 생각해보시라. 피아노 선생님이 아니라 일반 과외 선생이라도 비슷할 듯하니까 독자들의 청춘시절 아르바이트 경험을 떠올려도 나쁘지 않을 터. 그러나 이 소년이 브람스를 치고, 쇼팽을 배우고 또는 연주하고 돌아간 다음에는, 미스 나이팅게일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쇼콜라티여서 수집한 아기자기한 각종 그릇 같은 것들, 예컨데 백조 도자기, 예쁜 냄비의 뚜껑(뚜껑만! 차라리 냄비 한 세트 몽땅이면 더 좋았을 것을), 고리가 말썽이어서 빼놓은 귀걸이 같은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거였다. 그럼 독자 입장에서 미스 나이팅게일 선생님하고 소년 사이에 모종의 갈등이 생겨서 진짜는 아니더라도 뭔가가 치고 박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감, 이럴 때면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인 긴장의 레벨이 팍팍 상승하게 만들어놓고는, 그냥 그렇게 끝나버리는 거다. 오, 놀라운 뒤처리 스킬.

  이런 작품이 연달아 몇 개 나온다.

  그러다가 뒤로 가면 <겨울의 목가> 나오는데, 스물두 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노느니 시골 목장에서 열두 살, 몇 달 뒤에 열세 살이 되는 소녀의 개인교사나 하자, 싶은 청년 앤서니가 등장한다. 앤서니는 조금 조숙한 열세 살짜리 메리 벨라와 좋은 추억을 만들고 얼마 안 되어 떠난다. 메리 벨라를 우리나라 소녀들과 평행 비교하면 중1. 조숙하지 않더라도 잘 생기고 말 잘하고 유머 있는 청년에게 얼마든지 빠질 수 있는 사춘기 초입이니 이 시기의 경험이 메리 벨라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던 것은 물론이다. 앤서니는 이후 니콜라라는 참한 아가씨와 결혼을 하고, 딸 둘 낳고 행복하며 편안한 가정을 꾸려 나갔다. 메리 벨라는 엄마가 60세가 되는 생일날 갑자기 숨을 거두고, 이에 낙심한 아버지 역시 얼마 있지 않아 말을 달리다가 낙상을 해 줄초상이 나는 바람에 농장을 상속받아 가업을 잇기 위하여 직접 경영을 하게 된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지도 제작자가 된 앤서니는 출장을 자주 다녔고, 하루는 자신이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한 농장 부근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으며, 바로 그 농장을 찾아가 아직 홀로 사는 메리 벨라와 오랜만에 상봉한다. 둘은 세월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새록새록 연모의 정이 새로워지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앤서니의 가정생활에도 파도가 치기 시작한다.

  나는 이쯤에서 마치 미스 나이팅게일과 피아노 천재 소년처럼 서로 번히 알고 있는 감정의 요동을 뒤로 하고 슬쩍 작품을 매조지했으면 참 좋겠다, 하고 생각했고, 점점 희망하게 됐고, 제발 그래라, 그래라, 응원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윌리엄 트레버는 기어이 스토리를 화다닥 복잡하게 흩어버리고 만다. 물론 독자가 이걸 참견할 수는 없다. 나도 책의 앞쪽에서 몇 작품의 인상적인 마무리를 읽지 않았다면 조금도 결말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서 그랬을 뿐이다. 내 생각대로 마무리를 하지 않아도 트레버는 충분히 트레버답게, 단편의 왕좌에서 빛나는 만년필을 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아쉽다는데 뭐? 어떤 기분인지 아실 듯.

  하여튼 이런 느낌의 단편 열 작품이 실렸다. 좋은 건 좋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아, 위에서 소개한 <겨울의 목가>도 나쁘지 않았다.


.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목련 2023-08-10 08: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 편 모두가 각자의 매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말씀처럼 감탄할 정도의 단편도 있고 오랜 여운을 안겨주는 단편도 있고, 이건 뭐지 싶은 것도 있고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계획대로(?) 리뷰를 써주셔서 감사하고요^^

‘물이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에서 많이 웃었습니다!

Falstaff 2023-08-10 09:35   좋아요 2 | URL
ㅎㅎㅎ 자목련 님께선 마음이 고우셔서 작품이 이끄는 대로 작품에 푹 빠져 감상하시는 분이잖습니까. 제가 굉장히 부러워하는 성향이십니다. 늘 작품을 즐기시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 생활도 그렇게 하실 거 같아요. ㅎㅎ

페넬로페 2023-08-10 0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부분이 궁금했어요.
10편의 단편의 출간연도가 없어서요.
제 리뷰 제목에 노작가가 말년에 썼다고 했는데 그게 틀릴 수도 있군요.
출판사가 자세히 적지 않아 조금 그랬어요.

Falstaff 2023-08-10 09:37   좋아요 2 | URL
요즘엔 단편집에 출간연도가 적혀 있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게 아쉬워요. 중요한 정보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전에 읽었던 단편집은 언제, 어느 잡지에 발표한 것이라고, 아니면 언제 썼지만 미발표 작이라고 일러주고는 했는데요. ^^

우끼 2023-08-10 16:38   좋아요 2 | URL
오.. 출간연도도 중요한 정보인데요

바람돌이 2023-08-10 1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 저 지금 이 책 읽고 있어요. 저는 도시편도 쫄깃쫄깃하게 읽고 있습니다. 지금 반쯤 읽었는데 아 저는 언제나 트레브 단편의 그 마지막 문장들이 다 너무 좋습니다. ^^

Falstaff 2023-08-10 21:11   좋아요 2 | URL
다 쫄깃하게 읽으신다니 다행이고 좋은 일입니다. ㅎㅎㅎ 장편도 좋지만 단편은 왕이라니까요. ^^
 
우체국 아가씨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오랜만에 츠바이크를 읽는다고 기분이 설랬다. 제목 <우체국 아가씨>만 보고, 속으로 <어느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같은 소품을 기대했는데 어라, 430페이지 짜리다. 음. 만만하지 않군. 이렇게 생각하고 첫 페이지를 열었다. 역시 츠바이크. 작가 특유의 쓸쓸한 문장으로 사람의 정서를 살살 긁어내린다. 오전에는 거의 할 거 없는 우체국 여직원. “여직원”이라고 했다 해서 성차별 운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체국은 관료주의의 특권계급이 신성시 하는 사무공간에서는 눈에 띄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성장”과 “쇠퇴”의 법칙 미 적용 지대라고 하면서, 교체할 수 있는 “정부 비품”은 여성이 유일하다고 썼다. 본문을 읽어보면 한 15년에서 20년 정도 여직원이 근무하다가 그만 두면 다른 젊은 여직원이 바로 그 자리를 물려 받아 다시 15년에서 20년 정도 똑같은 일을 한다는 의미다.

  수도 빈에서 기차 타고 두 시간 거리, 크렘스 시에서 멀지 않은 곳의 보잘것없는 마을 클라인-라이플링 우체국의 여직원 크리스티네 호프레너. (여기서 처음으로 고개를 갸웃거림. 츠바이크가 크리스티네라는 이름의 여성을 흠모한 적이 있었나? 혹시 첫사랑이야?) 궁정고문관을 했던 삼촌이 우정사업부의 고관한테 청탁을 해 조카에게 얻어 준 일자리로 1926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제공황의 고난 속에 그래도 억지로 먹고 살아가고 있던 크리스티네의 권태가 뚝뚝 떨어지는 우체국 오전, 정말로 오랜만에 황동 전신기에서 모스 부호가 울리기 시작하고, 원통형 수신기에 용지를 가져다 댄 크리스티네가 전보을 읽자마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  “크리스티네 호프레너. 클라인-라이플링. 오스트리아.

  너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든지 날을 정해 와라. 오기 전에 미리 도착시간을 알려다오. 클레르-안토니.”


​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게 살고 있는 스물아홉 살의 크리스티네에게 이게 웬 전보. 그러다가 클레르라는 이름이, 30년 전에 지역에선 제법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키고 집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건너간 이모, 클라라인 것을 알아챈다. (나도 이제는 확실히 알아챘다! 그래서 별 하나 뺀다.) 미국 남부에서 목화 중개 사업을 크게 성공시킨 이모부 안토니 반 볼렌, 네덜란드 출생으로 이름의 ‘반’은 독일의 폰von처럼 귀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흔하게 반 고흐처럼 두 번째 이름으로 쓰는 것뿐인 이모부가 이제 사업을 두 아들에게 맡겨놓고 부부동반 해서 스위스 남동부 중에서도 최남단, 풍광 좋은 알프스의 엥가딘 계곡에서도 가장 비싼 팰리스 호텔에서, 크리스티네의 엄마이자 이모의 친언니한테 한 번 놀러 오라고 했던 것이고, 엄마는 전쟁 중에 병원에서 일하다가 얻은 다리 부종 때문에 꼼짝 못한다면서 괜찮다면 크리스티네를 두어 주 휴가 겸해서 보냈으면 좋겠다 했던 것.

  크리스티네의 가족은 오스트리아에서도 가장 유명한 박제 장인 집안이었으나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오빠가 전사하고, 전시에 무슨 사치 장식품인 박제, 집안 경제도 거덜이 나, 그래서 아빠도 몸이 아프건만 의사한테 한 번 보여줄 생각도 못한 채 와중에 최절정의 젊음을 향유하려던 크리스티네는 바로 그 젊음이 흐지부지, 시새푸새 빠져나가 버렸다. 살면서 휴가다운 휴가를 지내보지 못한 크리스티네는 그리하여 등나무 가방에 간단한 짐을 챙겨 넣고 알프스 행 기차에 오르고,


​  여기까지 읽은 다음, 나는, 책을 덮어버렸던 거디다.

  왜? 이미 읽은 책이거든.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라는 제목으로. 이게 원래 제목이 Rausch der Verwandlung, “변신의 중독”이다. 독일어 제목만 그대로 우리말로 고쳤어도 애초에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우체국 아가씨>라니, 거 참. 우리나라에 츠바이크 팬이 많아 나같이 덜 떨어진 독자라면 책을 또 사서 후회하고 자빠지지 않겠나 하는 출판사가 뇌를 좀 굴렸는지 모르지만, 진짜 그랬으면, 지옥 간다, 지옥 가.


  내가 이렇게 거품 문다고 해도, 이 책은 읽어보시라. 진짜 츠바이크, 소위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반전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니. 어쨌든 나는 츠바이크 말고, <Rausch der Verwandlung> 또는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가 아닌 <우체국 아가씨>라는 책을 읽다가, 더 읽을까, 하다가, 이만큼 읽어준 것만 해도 충분히 성의는 보여준 거다, 싶어 덮어버렸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3-08-09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작품이 형편없어 덮었다는 건줄 알았네요. 그리고 말씀하신 그 사람이 바로 접니다. 집에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갖고 있었는데 <우체국 아가씨>를 또 샀지 말입니다? 그게 같은 작품인줄 전혀 모르고요. 하아- 출판사들 너무해요 ㅠㅠ
아주,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Falstaff 2023-08-09 11:06   좋아요 0 | URL
ㅎㅎㅎ 다락방님이 그러셨다고요? 저는 정말 사려고 하다가 다행히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눈에 띄었답니다.

건수하 2023-08-09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다락방님이 사셨고 누가 얘기해주셔서 전 안 읽었지만 알고 있었는데....
골드문트님 이번엔 사서 읽으셨군요. 안타깝습니다 ;ㅁ;

어쨌든, 매력적인 반전의 마무리... 읽어볼 책에 추가했습니다 :)

Falstaff 2023-08-09 11:06   좋아요 0 | URL
사기 바로 전에 안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요. ㅋㅋㅋ
안 읽으셨으면 돈 들여 구입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책입니다!

Jeremy 2023-08-09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독일어 직역본이 아니라 영어판의 번역본인가 봅니다.

이 책의 영어판 제목이 <The Post Office Girl>이라서
원래의 책 제목, 독일어로 <Rausch der Verwandlung> 를 영어로 직역하면
아마도 <The Intoxication of Transformation> 쯤,
즉 님 말씀대로 <변신의 중독> 정도 되겠지만
이렇게 평범하고 직관적인 책 제목, <우체국 아가씨> 도
나름 받아들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어쨌든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엄청난 가난에 시달리던
Vienna, Austria-Hungary 오스트리아-헝가리 비엔나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우체국 여직원으로 일하던
크리스틴 호플레너 Christine Hoflehner 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요.

영어권에서는 Stefan Zweig 를 <시작>하기에 좋은 소설로 평가받고 있답니다.

Falstaff 2023-08-09 11:0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럼 이 책이 중역본일 수도 있겠군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잠자냥 2023-08-09 09: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는 당연히 골드문트님이 이 책이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인줄 알고 계시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체국 아가씨> 리뷰 쓰신다고 해서, 아니 왜 이 책을 또 읽으셨지 했더랍니다..... 미리 귀띔해 드릴걸....

츠바이크는 국내에서 이미 나왔던 책을 제목만 살짝 바꿔서 다시 내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주의해야 합니다.

Falstaff 2023-08-09 11:09   좋아요 0 | URL
윽, 또 있어요? 저도 속으로, 츠바이크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썼네... 의아해 했던 작가 가운데 한 명이었는데 그런 것이 있었구먼요. ㅎㅎㅎ 돈 되는 정보, 고맙습니다!

잠자냥 2023-08-09 11:41   좋아요 4 | URL
<연민>(넥서스, 2007년) 도 <초초한 마음>(문학과지성사, 2013년)으로 다시 나왔잖아요. 이 두 작품 원제는 <Ungeduld Des Herzens>입니다.
그리고 츠바이크의 단편은 이렇게저렇게 조합을 달리하고 제목 살짝 바꿔서 발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저도 츠바이크 좋아해서 신간 나오면 살펴보는데, 사기 전에 검색해보면 예전에 다른 제목으로 나온 경우가 많더라고요.

stella.K 2023-08-09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좀 빡치셨겠는데요? 저도 예전에 크리스티네 읽은것 같은데 전 언제부턴가 츠바이크를 잘 안 읽게 되더군요. 근데 책이 저러고 나오니까 사 볼까하는 생각이 들긴하던데 그런걸 좀 출판사 측에서 미리 알려주면 헷갈리지도 않고 좋을텐데 왜 그걸 공지하지 않을까요? 어찌보면 그것도 범죄라면 범죄일 수도 있을것 같은데. 출판 산업이 취약하다보니 이리봐주고 저리봐주고 하니 그런거쯤 이런들 어떠하리 가볍게 생각하는가 봅니다. 글고 츠바이크의 원제를 좀 존중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원작자는 하난데 출판사에서 책 낼 때마다 제목을 바꿔치기하면 엄한 독자 열받죠.😡

Falstaff 2023-08-09 15:17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라 빡치지는 않았습니다. ㅎㅎㅎ
저도 츠바이크의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같은 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근데 안 읽기엔 글이 너무 좋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트레버하고 비슷한 정서도 있는 거 같고요. 근데 제가 뭘 알아야지요. ^^

레삭매냐 2023-08-09 1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호곡... 하마터면 살 뻔했에요.
안 그래도 서점에 갈 때마다 만지작
거리던 책이었는데.

기록을 뒤져 보니 <크리스티네>는
12년 전에 읽은 책이었더라구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Falstaff 2023-08-09 15:18   좋아요 1 | URL
ㅋㅋㅋ 이게 문제예요. 책 좋아하시는 분들, 관심 저자 등장하면 일단 지르고 본 다음에 후회할 거 있으면 후회하는 거요. ㅋㅋㅋㅋ

coolcat329 2023-08-09 1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당연히 북플의 고수님들은 이 책이 <크리스티네...>와 같은 작품으로 알고 계실 거라 생각했어요. ㅎㅎ
저는 이 책이 새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기에 아 드디어 나왔구나! 하고 샀는데 고수님들이 모르고 또 사셨다니 놀랍네요.

Falstaff 2023-08-09 15:19   좋아요 1 | URL
에휴... 저는 고수 아닙니다.
당연히 몰랐습니다. 오히려 쿨캣 님 같은 분이 매사 꼼꼼하셔서 실수가 없을 거 같은 걸요. ㅎㅎㅎ

bitsogul 2023-08-09 14:5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빛소굴 출판사입니다.

저희 출판사의 책 <우체국 아가씨>에 관심 가져주시고 이렇게 리뷰를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목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말씀 올립니다. 일반적으로 원제 <Rausch der Verwandlung>로 알려진 이 작품은 츠바이크 사후인 1982년 독일에서 처음 출간된 작품입니다. 상기한 원제는 츠바이크가 직접 지은 것은 아니고, 원고를 편집했던 편집자 Knut Beck가 지은 것입니다.
츠바이크의 유고 원고에 등장한 가제는 Postfräuleingeschichte이고 이것이 영문판 <The Post Office Girl>의 제목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요컨대 이 책을 출간한 발행인은 <변신의 중독>으로, 츠바이크는 집필 중에 <우체국 아가씨 이야기>로 제목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이 상황에서 빛소굴 출판사는 츠바이크가 집필 중 고려한 제목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더욱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여 <우체국 아가씨>를 최종 제목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영문 중역본이 아니고, 옮긴이 남기철 교수님은 독문학 박사입니다.

늦었지만 바로잡기 위해서 한 말씀 더 올립니다. 이 책이 개정판임을 알리는 내용을 포함한 서지정보를 온라인 서점에 동일하게 전송했습니다. 예스24에는 정보가 제대로 반영되었지만 알라딘과 교보문고에는 이 정보가 누락되어 있음을 파악했습니다. 미리 파악하지 못하여 혼란을 드린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서지정보를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앞으로 이런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서지정보란뿐만 아니라 출판사에서 배포하는 상세페이지에도 복간 사실을 뚜렷이 명시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착각으로 책을 구매하신 고객님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립니다. 만약 환불이 가능하신 상황이라면 다소 번거로우시더라도 환불 진행해주시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시면 빛소굴에서 나온 다른 책을 보내드리는 것으로 미진한 보답이라도 드리려 합니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연락주실 이메일은 아래에 적어두겠습니다.

bitsogul@gmail.com

Falstaff 2023-08-09 16:01   좋아요 6 | URL
ㅎㅎㅎ 제목에 관해서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크리스티네 변신에 중독되다> 보다는 <우체국 아가씨>가 훨씬 좋다는 의견입니다. 출판사가 원 제목을 직역해서 번역서를 내야 한다는 법도 없잖아요. 제 오랜 인터넷 친구 말마따나 로버트 테일러, 비비안 리 나오는 영화 <Waterloo Bridge>보다는 <애수>가 훨씬 매력적인 제목인 것과 같이요.
다만 이 책이 나오기 전에 <크리스티네...>가 있었으며, 그것의 새로운 번역이라는 것을 독자가 미리 알 수만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말씀입지요.
제 독후감의 요지는 다 각설하고, 이미 전 번역을 읽은 분은 선택에 주의하시고, 안 읽은 분은 매력적인 작품이니 읽어보시라는 거....라는 건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독자들끼리 노는 곳에 저자, 역자, 출판사께서 말씀을 보태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빛소굴 출판사처럼 진솔하게 말씀하시는 회사를 여태 경험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친절한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번창하시기 바랍니다.

stella.K 2023-08-09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일이 말복인데 골드님 계 타셨네요.
출판사에서 저런 댓글도 보내주고. 축하해요. ㅎㅎ
근데 빡친다면 알라딘에 쳐야지 출판사는 아니었네요. 이런...ㅉ

Falstaff 2023-08-09 16:23   좋아요 2 | URL
윽, 내일이 말복입니까? 아휴... 세월이 참.
글쎄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 그냥 그렇다니까요. ㅋㅋㅋㅋㅋ
 
소용돌이 대산세계문학총서 175
호세 에우스타시오 리베라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콜롬비아 소설. 콜롬비아 작가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당연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 다음이 <폐허의 형상>과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을 쓴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와 <청부 살인자의 성모>의 작가 페르난도 바예호. 그리고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의 알바로 무티스와 <과부마을 이야기>를 쓴 제임스 캐넌. 콜롬비아는, 다른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20세기가 열리기 전부터 지금까지 하고 한 날을 쿠데타와, 혁명의 탈을 쓴 반란으로 숱한 민간인들이 죽어 나갔고, 콜롬비아는 이에 더하여 전세계 코카인의 80퍼센트를 공급했던 메데인과 칼리의 마약 카르텔(파블로 에스코바르!) 덕택에 드센 이웃나라하고 비교할 수도 없이 치안이 개떡 무인지경이었는지라 조금 살 만한 집안의 자제들은 미국이나 멕시코, 스페인 등지로 이민을 가버리던지, 하여간 그쪽에서 살다가 에스코바르가 강변에 검은 색의 하마 몇 마리를 남기고 지붕에서 총맞아 죽은 이후에 귀국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에 예를 들었던 작가들 중에서도 가브리엘 마르케스, 가브리엘 바스케스, 페르난도 바예호, 제임스 캐넌이 이런 축이다. 알바로 무티스와 오늘 읽은 호세 리베라는 비록 정쟁은 심했지만 적어도 에스코바르가 오직 마약 하나를 팔아 전 세계 7위의 부호로 꼽히기 전 사람, 그러니까 노땅 축에 들어 평생 콜롬비아를 떠나지 않고 작품을 쓴 사람들이고. 호세 에우스타시오 리베라의 생몰연대가 1888~1928. 이렇게 오래 전 사람인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콜롬비아 기준으로 최상의 교육을 받아 법학과 정치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해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소네트 55편을 발표했으며, 1924년에 유일하게 남은 장편소설 <소용돌이>를 출간했다. 이 작품에서 필을 받은 리베라는 후속으로 <흑점>을 써 거의 완성한 거 같은데, 1926년에, 미쳤다고 그걸 뉴욕까지 가지고 가서, 거기서 택시에 두고 내렸는지, 지하철 철로 위에 흩뿌려졌는지 하여간 분실했다. 그리고 2년 후, 콜롬비아에서 불과 마흔 살의 나이로 날 때부터 입에 물고 다니던 은수저를 뱉고 천국의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했다.


​  <소용돌이>의 주인공은 ‘아르투로 코바’라는 이름의 피끓는 청년이다. 이 청년이 알리시아 아가씨와 연애를 하는데, 자기들 원하는 대로 연애가 이루어지면 그건 소설도 아니라서, 젊은 연인은 양가 모두로부터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다. 하지만 이미 불이 확 붙어버린 상태. 불이 붙어도 너무 붙어서, 탈 대로 다 타버려 이제 재가 되어 그랬는지 아르투로가 보기에 알리시아의 두 눈에서 불행을 감지해버렸고, 이 때는 벌써 순수한 애정에 대한 희망을 버린 상태였단다. 그럼 뭐냐 하면, 애초부터 애정이 많은 남자도 아니어서 그랬는지, 알리시아가 자신에게 후회를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불안감을 진정시켜주는 존재 비슷하다고 여겼다. 그래도 한 번 사랑한다고 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투철했던 거 같은데, 사실 알고 보면 그러지 않았더라도 알리시아는 나름대로 한 평생 이럭저럭 살만 했었으니, 부모가 늙었지만 돈이 무척 많은 지주한테 시집을 보내 남편이 죽기만 하면 그날로 팔자가 활짝 필 수 있게 다 조치를 해두었던 찰나였다. 하여간 아르투로의 자존심 혹은 소유욕 때문이었는지 더는 견딜 수 없을 즈음, 아르투로와 알리시아 커플은 수도 보고타를 떠나 말 잔등에 올라 동쪽으로 동쪽으로, 저 광막한 지평선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오리노키아 지방의 광활한 지역, 이 중에서도 카사나래로 야반도주를 떠난다. 이렇게 작품은 시작한다.

  평원에서의 자잘한 에피소드도 있다. 한참 잘 가다가 자칭 보안관이라고 주장하는 혼혈인 페페 모리요 리에토, ‘피파’라는 작자가 등장하여 시비를 좀 걸다가 스스로 알리시아의 종복이 되기를 자청한다. 그렇지만 그날 밤에 피파는 돈과 물건이 든 안장을 채운 말을 훔쳐 유유히 사라진다. 물론 저 뒤로 가면 다시 나타나서 한 번 더 이들의 종복을 자청하고, 또다시 배신을 한 후에 한 순간 비명으로 생을 마치긴 하나 그렇게 큰 비중이 있지는 않다.

  60세가 넘은 돈 라파엘. 아르투로의 아버지 친구이기도 하고, 과거엔 잘 나갔지만 지금은 쇠락한 사람 특유의 품위를 간직해서 1부가 끝날 때까지 연인들의 충실한 도우미로 활약하는 돈 라파엘, 돈 라포는 현재 평원을 떠돌며 일종의 보따리 장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세 명은 사이 좋게, 당연히 경험 많은 돈 라포가 될 수 있는 대로 편한 일정을 잡아 고단한 행진을 며칠 동안이나 거듭한 후, 드디어 황포 돛대는 휘날리지 않지만 이름만은 라 ‘마포리타’라 지은 촌락에 도착한다. 이곳에 백인의 집이 있어서 집 주인은 피델 프랑코, 안주인은 그리셀다 아가씨.

  피델 프랑코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안티오키아 출신으로 아라우카 경비대에 중위로 복무하다가 그리셀다에게 찝적거리는 경비대장을 칼로 폭폭 찌른 후 탈영을 해 아무도 찾지 않는 카사나래로 와서 가우초 일, 물론 가우초도 나름으로 최고 가우초를 해서 살고 있다. 그리셀다 아가씨가 귀에 에메랄드 귀걸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살림이 그리 궁색하지 않은 거 같다. 실제로 근동의 대목장주 수비에타 노인이 소 천 마리 또는 그 이상을 싼 가격에 팔겠다고 제의하니까, 돈 라포와 뜻을 맞추어 선뜻 천 마리 이상의 소를 사겠다고 덥석 제의를 받기도 한다.


​  그런데 이때, 수비에타 노인의 집에 얹혀 있으면서 수작을 부리는 악당 바레라가 있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백인들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라틴 아메리카 밀림에서 인디오들의 씨를 말려가며 노예노동을 통해 고무채취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다. 악당 바레라는 카사나래 일대를 돌아다니며 물라토, 인디오, 심지어 백인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비차다 지역의 고무농장에서 일할 일군을 모집하고 있다면서, 그곳에서 일을 하면 삼시 세끼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 일당으로 5 페소를 지급할 것이라고 떠들고 다닌다. 이게 당시엔 파격적인 조건이었나 보다. 카사나래의 거의 모든 목동, 가우초와 식구들은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매일 술이나 마시고, 빈둥빈둥거리고, 소 젖도 짜지 않아 벌판에 암소들의 곡소리만 처량한 거였다.

  아르투로 커플이 임시로 지내고 있는 마포리타에도, 특히 두 여인이 광막하고 벌판 밖에 없는 살벌한 카사나래에서 사는 것보다 밀림 속이기는 하지만 보다 나은 복지를 약속하는 비차다로 떠나고 싶어 한다. 이 집엔 현명한 물라타 (백인과 인디오 사이의 딸) 노파 세바스티아나와 그녀의 삼보(흑인과 물라토/물라타 사이의 소생) 아들 안토니오가 있었는데, 젊은 여성 둘을 제외한 모두는 말을 탈 수 없는 울창한 밀림은 사람 살 곳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 와중에 우리의 주인공 아르투로는 자기 커플에게 숙소와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피델의 아내 그리셀다와 할 건 다 했으나, 그렇다고 피델 모르게 두 여자를 데리고 비차다로 갈 수는 없었다. 딱 이 때 수비아토 노인이 소 천 마리를 싼 값에 팔겠다고 했고, 돈 라포와 피델이 돈을 구하러 떠난 사이, 아르투로는 노인의 집에 쳐들어가 온갖 술주정을 부렸고, 정신이 들어 마포리타로 돌아와보니, 이미 두 젊은 여자는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쓰이는 관계로 의심을 했었는 바, 바레라를 따라 비차다로 달아난 다음이었다.


​  뭐 스토리가 그렇다는 거다. 이게 1부. 이어지는 2부는 아르투로, 피델, 삼보 안토니오, 다시 등장해 뒷덜미를 잡힌 인디오 출신 피파, 이 네 명이 여자들을 찾아 나선 여정. 한 번 더 이야기하자면, 스토리가 그렇다는 것.

  스토리보다 더 중요한 건, 라틴 아메리카의 독자들이라면 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극동아시아의 독자인 내가 읽기로는 끝도 없는 벌판과 열대 밀림이 펼져치는 파노라마. 이걸 묘사하는 1920년대의 조금은 예스러운 화려한 문장들. 그것만 감상해도 충분하다. 말로는 쉽지만 광경 자체를 진짜로 본다면 숨이 꼴딱 넘어갈 것 같은 대평원의 노을. 습지 원시림을 싹 쓸어가는 수억 마리 병정개미들의 행진, 지옥같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사람을 흰 뼈만 남기고 몽땅 뜯어먹는 피라니아. 이런 놀라운 자연 속에서 어쩌면 라틴 아메리카의 붐 문학은 이미 배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잘 읽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용한 미국인
그레이엄 그린 지음, 안정효 옮김 / 민음사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그레이엄 그린, 이라고 하면 당연히 <제3의 사나이>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흑백영화 <제3의 사나이>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두 컷의 장면을 담고 사는데, ① 폐허가 된 빈의 대관람차에 오른 해리 라임(오슨 웰스)가 평생 친구인 홀리 마틴스(조지프 코튼)에게, 지상의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라고 하면서, 저 가운데 하나 혹은 둘이 지워진다고 한들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겠느냐, 라고 했던 대사와, ② 말 그대로 비처럼 쏟아지는 낙엽을 뚫고 걸어와 차를 옆에 세워둔 채 담배 한 개비를 물고 그녀를 바라보던 장교 캘러웨이(트레버 하워드)를 완전히 무시하고 가던 길을 계속 걷던 애너 슈미트(알리다 발리)의 장면이었다. 나처럼 보통의 독자가 그린을 소설문학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나는 건 그리 드문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 살다가 우연히 책을 좋아하는 습관을 들였을 경우, 책 가게에서 그레이엄 그린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게 되면? 어떤 작품이 됐던 간에, 일단 구입을 하고 본다. 이게 정상이다. 나도 마찬가지라 여태 <권력과 영광>, <제3의 사나이>, <그레이엄 그린 – 정원 아래서 외 52편>, <브라이턴 록>을 사서 읽었고, 이제 다섯 번째로 읽는 그린, <조용한 미국인>은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역자 고 안정효의 해설을 보면, 그레이엄 그린 자신이 대중적 호소력에 의존하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은 대중 소설가였으며, 그런 화법의 추리소설들을 스스로 오락물(entertainment)라고 불렀다고 한다. 오락물로의 소설. 이건 필연적으로 다수 작품을 영화로 다시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서, <조용한 미국인> 역시 스스로 “헐리웃 키드”인 안정효가 아주 재미있게 영화 버전의 그린 작품들을 비교해가면서 설명/해설한다. 진짜로 읽어 보시라. 대중예술로의 영화와 소설, 헐리웃 은막 위에서 펼쳐는 환상과 꿈이란 시각으로 보면 안정효의 해설과 <조용한 미국인>이 얼마나 재미있나 말이지. 이 작품의 무대가 1950년대 초반 인도차이나, 베트남에서의 대 프랑스 독립투쟁 시기였다. 안정효는 게다가 처음엔 카빈 소총을 들고, 후에 본격적으로 악명 높은 베트콩의 땅굴 소탕 작전 당시엔 M16 소총을 들고 베트남 전선에 직접 투입이 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니 상황을 기가 막히게 잘 표현했겠다 싶다. 그러나 딱 거기 까지다. 그레이엄 그린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토머스 파울러는 영국의 신문사에서 사이공으로 파견한 종군 기자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선을 누비는 종군 기자 말고, 베트남 전쟁이 늘 그랬듯이 똑부러진 전선이 있다고 말하기 힘들어 주로 사이공에 머물면서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간혹 전선을 둘러보고 기사를 쓰는 정도다. 나이가 지긋한 파울러는 영국에 아내와 다 큰 자식들이 있지만 도무지 가정에 정을 붙지 않아서 아주 오랫동안 베트남에 발을 붙이고 있다. 부부간에 금슬이 좋은 적이 없어 인도차이나로 오기 전에 앤이란 아가씨와 정분이 나기도 했으나 원래 불륜이란 것이 늘 그렇듯이 책임없이 헤어진 바 있고, 베트남에서는 후엉凰 암컷 봉황이란 이름의 날씬한 베트남 여성 특유의 낭창낭창하고 뇌쇄적인 여성과 동거를 하고 있다. 마음 같으면 아내와 이혼을 하고 후엉과 재혼을 하고 싶으나, 아내가 하필 성공회 고교회파라서 이혼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이들 사이를 한 미국 남자가 파고 든다. 올든 파일. 32세. 미국 경제지원단 소속으로, 홍보나 연극 어쩌면 극동분야 연구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학위를 받아 인도차이나의 발전, 그리고 작품 속에서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인도차이나의 공산주의화를 저지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파견된 아주 진지하고 순진한 남성이다. (세상에 순진한 남자가 어딨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러니까 늙은이 토머스 파울러와 연애를 하고 있던 후엉, 50년대 초반 작품의 여주인공답게 매혹적인 얼굴과 몸매에 어울리게 속이 시원할 정도로 무식한 지적 수준을 지닌 후엉에게 한 눈에 반해 기어이 파울러의 품에서 낚아채, 미국으로 데려가서 뉴 잉글랜드 부모님을 접견시키고 보스턴에서 신혼살림을 꾸리는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진짜로 파울러한테서 여자를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파울러는 당연히 열통이 터지지만 나이든 영국인답게 며칠 후 이들의 관계를 인정하고 어차피 깨진 쪽박, 그나마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수준에 이른다.

  그러나, 책을 열면,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자 토머스 파울러는 이 조용한 미국인 파일을 음침한 냉혈동물이며 겉만 번지르르한 허풍선이라고 단정해버린다. 이 때는 독자가 아직 갈피도 잡지 못하고 있을 즈음으로 파일이, 다카오로 가는 다리 밑 강물에서 익사한 변사체로 발견이 된다. 흙탕물에 빠져 질식사해서, 폐에 다량의 진흙을 발견한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여태까지 파일을 설명한 구절들, 조용한 미국인이니 허풍선이니 하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파울러가 파일의 시신에 대고 독백을 하기를, 적어도 쉰 명의 목숨을 앗아간 장본인이란다. 그러니 어떻겠어? 이 작품은 파일의 정체,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파일이 무려 50여 명의 사람을 죽였으며, 누구를 죽였는지를 밝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파울러의 파일에 대한 독백이 상당히 앞부분에 나와서 소개를 하는 것이지, 아니면 모른 척했을 텐데, 하여간 독후감 쓰기는 편해졌다. 파일더러 아메리칸 합중국에서 파견한 “경제지원단” 소속이라고 했는데 적어도 50명의 인명을 살상한다? 그럼 그는 경제지원단의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 전략사무국)의 후신인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 중앙정보국)의 일원일 수도 있다. 책에서는 얼핏 가능성만 이야기하는 바, 파일 및/또는 파일이 속한 조직은 어차피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무력으로 지배하는 데 실패할 것으로 전망하고, 만일 권력을 베트남 시민들에게 이양할 것이라면 공산주의를 주창하는 베트콩이나 베트민한테는 절대 집권을 허용할 수 없기 때문에 세력도 약하고 행동도 극악하지만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테 장군을 지지하기로 결정해 대량 살상무기를 지원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하는 짓이 다 그렇듯이, 이것들이 미국이 지원한 무기로 사이공 시내에서 다중을 향한 무차별 테러를 저지르는 거였다. 이 내용을 밝히는 것도 께름칙한데 어떻게 또다른 주인공 파일이 죽음에 이르는가, 하는 건 정말 말할 수 없다.

  1950년대 전 세계인들이 미국과 서유럽 헤게모니에 현혹당한 일은,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한 것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르주아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 였다는 거. 나중에 보니까 공산주의 하는 나라가 하나도 빠짐없이 극한의 독재를 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결과적으로 당시의 투쟁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였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게 되었다는 거. 세상 참 살기 어렵다, 그지? 뭐 그런 거다. 올든 파일은 1950년대 초의 미국이라면 당연히 행했을 세계질서 재편작업의 일환으로 매우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이기도 한 행위를 하다가 미국 역사에 한 줄도 남기지도 못하고, 장가도 못 들고 그렇게 죽어갔다. 삼가 명복을?

  아무리 그레이엄 그린을 좋아한다고 해도 식민지에 관한 그의 시각에는 동의하기 쉽지 않다. 주인공 토머스 파울러가 인도차이나 독립전쟁의 당사국 국민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도, 파울러의 모국인 영국 역시 식민 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바에, 식민지 베트남에서 파울러는 철저하게 국외자로만 존재한다. 베트남이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결정이 될지,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중에 파일에 의해 대중 50명 이상이 희생을 당한 후에야 베트남 내 좌익세력과 모종의 일을 꾸미는 것을 빼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편 피우고, 후엉의 몸을 만지고, 파일에 은근한 질투를 하고, 이혼해주지 않는 아내 때문에 포기하는 마음이나 먹고, 뭐 이런 것이 주류다. 다른 건 아닌데, 이런 면에서 좀 그린 답지 않다. 하긴, 그린에게 무슨 철학적, 또는 역사적, 탐미적 작품을 바란 건 아니지만, 아니, 아니, 그러면 됐지. 세상 모든 작가가 다 진지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재미있게 잘 읽었다. 하지만 그린 치고는 조금 덜 재미있다.


.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3-08-04 06: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오늘도 삽질해 봅니다. 다음 주 예정 독후감입니다.
화요일, 호세 에우스타시오 리베라 <소용돌이>
수요일, 스테판 츠바이크 <우체국 아가씨>
목요일, 윌리엄 트레버 <마지막 이야기들>
금요일, 쓰시마 유코 <빛의 영역>

stella.K 2023-08-04 15:35   좋아요 1 | URL
쉬엄쉬엄 읽으십시오. 눈에서 땀띠나십니다.ㅋㅋㅋ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더위를 먹은 나머지 골드님을 시기 질투하고 있는가 봅니다. 사탄 원수 마귀를 물리치십시오.ㅠ ㅋㅋㅋㅋ 😆
아, 빛의 영역 기대됩니다.^^

Falstaff 2023-08-04 15:4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오늘은 하루 종일 책 한 페이지도 들춰보지 않았습니다.
어제 위스키 마시고 뻗었다가 하루종일 빌빌거렸습니다.
좀 있으면 또 쐬주 마시러 나가야 합니다. 매운 낙지가 안주로 좋으려나, 흠... 큰일입니다. 오징어, 낙지, 문어... 이런 종류 안주 싫어하는데 말입니다. ㅜㅜ

자목련 2023-08-04 08: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이야기들>기대할게요.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Falstaff 2023-08-04 08:46   좋아요 1 | URL
앗,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
어제 위스키 좀 마시고 자버렸더니 지금 강시...처럼 변해서 도서관도 못가고요 흑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