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아로새겨진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7
다와다 요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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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창세 신화에 이자나미 여신과 이자나기 남신이 나온다. 이자나미는 아자나기의 동생이자 아내로 두 신은 하늘에서 창을 바다에 꽂아 휘휘 저어 육지가 솟아올라 일본 열도를 만든다. 지상에 내려온 신은 궁궐을 만들고 혼인, 즉 동침을 해 넓은 국토와 일본에 특별히 많은 여러 신god을 만든다/낳는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불의 신을 낳다가 이자나미는 생식기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어 끔찍한 고통 속에서 구토를 하고 방뇨, 방분을 하면서 죽음에 이른다. 창조의 여신이 죽어가며 쏟아냈던 구토와 방분, 방뇨 속에서 진흙, 물, 곡물(토기에 농사지은 곡물을 요리한 것을 의미)의 신이 탄생한다. 이후 죽은 아내이자 누이와의 복잡한 갈등과 대결 같은 것이 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두산백과 참조했음.)

  다와다 요코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창세신화는 조금 다르다. 여러가지 버전이 있는지, 아니면 소설가의 픽션인지는 모르겠다. 이자나미와 이자나기가 일본 열도를 만들고 궁궐을 지은 다음에 동침해 맏이를 낳은 것이 딸 히루코 여신이다. 그러나 애초에 여신 이자나미가 먼저 이자나기한테 동침하자고 옆구리 쿡쿡 찌른 벌로 히루코蛭子(거머리) 여신은 신들의 기대치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허약체로 태어나 살이 마치 거머리 같은 수준이라서 맏이임에도 불구하고 축복을 받기는커녕 갈대로 만든 배에 실려 바다로 떠내려 보냈다. 다들 금방 죽었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그걸 누가 알아?

  히루코 여신보다 한참 나이 어린 동생 가운데 스사노오라는 이름의 신이 태어났다. 무시무시하고 거친 청년으로 자라 여기저기서 폭력을 써 누나(거봐라, 바다에서 안 죽었다)를 힘들게 하더니, 말의 가죽을 벗겨 그걸 뒤집어쓴 채 피륙 짜는 젊은 여자를 위협하다가 와중에 베틀의 뾰죽한 부분으로 여자의 음부를 찔러 죽게 했다. 이 히루코와 스사노오는 작품 속에서 Hiruko와 Susanoo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Hiruko는 모르겠고, Susanoo의 나이는 상당해서, 십대 후반 기껏해야 이십대 초반의 에스키모 청년 나누크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 주인의 할아버지와 동업을 하다가(할아버지의 비슷한 또래라는 말씀), 한 야성적인 여자 카르멘을 쫓아 남프랑스 아를에 정착했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도 놀랍게도 거의 늙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젊은 모습의 나이든 Susanoo를 이해하기 위하여 일본의 전래 동화 하나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우라시마 타로라는 잘 생기고 가난하고 마음씨 고운 청년이 지나가다 보니까 아이들이 거북 한 마리를 잡아서 몹시 괴롭히고 있었다. 타로는 거북이 너무 불쌍해서 아이들을 혼내 쫓은 다음에 거북을 바다로 돌려보냈다. 며칠 후 바닷가를 거닐던 타로 앞에 거북이가 나타나 내 등에 타시오, 좋은 구경 한 번 해봅시다. 하는지라 그렇게 했더니 용궁에 도착했고, 수염이 허연 용왕 대신 공주가 나타나서 온갖 부귀영화를 다 선물해주었다. 이렇게 며칠을 보내고 이제 이별의 장면. 공주는 보석함을 기념 선물로 주더니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이게 가당한 이야기인가? 집에 돌아온 타로는 당연히 보석함을 열었고, 순간 보석함에서 피어나온 연기가 타로의 기도를 타고 폐로 들어가, 용궁의 열흘은 지상의 칠십 년이라, 단박에 일흔 살을 더 먹어버려 장가도 들지 못한 꼬부랑 할아범이 되고 만다. 용궁의 공주, 원래 이런 족속들이 하는 짓이 다 그렇다. 애초에 안 줬으면 될 거 아니냐는 말이지. 사람의 특징이 호기심인데, 누가 그걸 안 열어보고 배겨?


​  다와다 요코는 1960년생으로 와세다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 추억이 워낙 강했던지 1982년에 독일에 정착해 함부르크 대학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이후 취리히 대학에서 독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고 들었는데, 이중국적인지 일본 국적을 버리고 독일인으로 살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작가가 모국어를 버리고 언어체계가 완전히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며, 이국의 문자로 작가 활동을 시작하고, 상당한 정도의 성취를 얻는 일은, 우리가 밀란 쿤데라나 아고타 크리스토프 같은 몇 몇 특별한 천재들의 이름에 익숙해서 그렇지 이게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위의 두 작가는 그래도 어순이 비슷한 지역에서 서유럽으로 넘어간 경우인 반면, 다와다 요코는 완전히 문장 구조가 다른 동아시아에서 자란 다음에 낯선 문장체계로 진입해 더욱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독일어로 작품을 발표할 경우에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빈도가 잦았다고 하는데, 이방의 언어로 글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자기 모국어에 대한 향수가 절절했을까? 이 책에서도 Hiruko는 덴마크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의 조금씩 다른 언어를 나름대로 편집해서 반도국들의 문장에 합당하지 않지만 이들 모든 나라 사람들과 충분할 정도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나름의 언어를 만들어 사용한다. 그러나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하면 당연히 더욱 적절한 소통이 가능할 터인데 Hiruko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책의 후반에 같은 언어를 쓰는 Susanoo와 만나기 전에는.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그러나 듣기만 할 뿐 한 마디도 할 의사가 없는 Susanoo에게 기총소사 같은 대화의 폭포를 쏟아낼 때에 자연스럽게 (이미 잊은 줄 알았던) “인연”같은 단어가 자신도 의도하지 못한 사이에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한다. Susanoo가 왜 한 마디도 모국어를 하지 않느냐고? 그가 말을 하는 것은 위에서 이야기한 옛이야기 가운데 공주가 준 보석함을 여는 행위와 같은 것이라서 그동안 유지한 젊음을 한 순간에 잃어버려 늙어 쪼그라든 노인으로 변할 위험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런 것들을 합하여, 이 책의 주제는 독일, 유럽에서 자기의 말을 사용하지 못하는 작가의 초상, 모어에 대한 그리움, 그것을 찾아 떠나는 오딧세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  책은 “Hiruko 삼부작” 가운데 첫 권이다. 2권은 은행나무 에세 시리즈의 12번으로 2023년 8월에 출간했고, 3권의 제목은 <태양제도太陽諸島>인데, 태양제도는 일장기와 섬나라, 즉 일본을 가리키는 거 같으며, 2022년 출간이라 했으니 지금 번역 중이지 않을까 싶다. 즉 1권만 보면 미완성 작품이란 뜻이지만, 여느 삼부작이 거의 그렇듯이 <지구에 아로새겨진> 역시 독립적으로 읽어도 좋다.

  디스토피아 적인 미래. 세상의 원자력 발전소가 차례차례 고장이 나서 물고기 개체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온난화 역시 가속화된 지 오래, 그린란드에 사는 에스키모들도 사냥과 물고기 낚시 대신 빙하가 녹아 드러난 대지 위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계속 ‘이누이트’ 대신 ‘에스키모’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말은 “눈 신발 끈을 묶는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란다. 반면에 다와다가 직접 소식을 듣고 심한 충격을 받았듯이, 세계 각지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차례차례 심각한 고장을 일으켜 다량의 방사능 물질이 바다로 유입되는 바람에 바다 생물 개체수가 극적으로 줄어든 것도 에스키모들이 사냥을 하지 못하게 된 중요한 이유이다.

  세상은 변하는 법이라 그린란드는 오랜 식민지 시대를 마감하고 덴마크에서 독립을 쟁취했으나 여전히 포스트 식민주의라는 관계로 종속되어 있다. 덴마크는 세상이 다 알아주는 정치적 청결성과 비폭결성을 유지하고 있는 작은 나라로 비오는 수도 코펜하겐이 첫 무대다. 집에서 TV “사라진 조국”에 관한 토크 쇼를 보던 중요 등장인물 크누트는 화면에서 전혀 다른 인종의 여자를 발견하고, 그가 신기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단한 흥미를 느낀다. 그도 그럴 것이 크누트기 언어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방송국에 전화를 해서 여자를 만나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 여자가 주인공 Hiruko. 중국 대륙과 폴리네시아 사이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열도 출신으로, 열도가 침몰하기 전에 유럽으로 공부하러 왔다가 이젠 갈 곳이 없어진 인종이다. 다와다 요코는 열도 침몰을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빗댔다고 한다.

  Hiruko는 오덴세의 메르헨 센터에서 동화를 구현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역시 언어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 더군다가 자신의 모(국)어, 나라가 없어졌으니 그냥 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도 모르게) 애타고 찾고 있었다. 크누트가 내일 사라진 나라의 언어를 연구할 수 있는 연구 과제로 적당한 마을인 룩셈부르크의 고대 로마 도시 트리어에서 열리는 우마미 페스티벌에 갈 예정이며, 페스티벌의 초점은 Tenzo전좌典座, 불교 선원에서 식사, 의복, 방석, 이부자리를 담당하는 직책을 가리키는 이름을 가진 열도 사람이 일본 음식의 국물을 내는데 중요한 방식인 ‘다시’ 다시마, 가다랑어, 멸치 등을 적절하게 혼합한 첨가물에 관하여 강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혹한 Hiruko는 자신의 모어를 사용하는 사람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득히 안고, 기꺼이 크누트와 함께 자신의 언어를 향해 대 항해를 시작한다.

  재미있는 책이다. 이런 작품이 늘 그렇듯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우연이 작가가 사용하는 언어를 국어로 하는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얽히게 구성을 해, 약간 억지스러운 대목이 눈에 띄긴 하지만 이 정도도 이해하지 못할 독자는 없을 것이다. 읽는 내내 작가 다와다 요코가 조금 짠했다. 이국의 땅에서 얼마나 모국어에 대한 향수가 절절했으면 이런 작품을 썼을까? 하긴 작가더러 유럽까지 가서 살라고 옆구리 쿡쿡 쑤신 사람은 없을 것이니 다 작가의 팔자소관이긴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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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9-21 0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야간열차”를 예전에 읽었는데 그 책에서도 이국의 땅과 언어를 살아가는 쓸쓸함을 읽었어요. 그런데 “지구에”는 설화를 쓴다니 그 향수가 더 진하게 드러나겠군요. 서늘한 아침에 어울리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3-09-21 16:02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저는 이 책 읽으면서 베를린 사는 우리나라 작가 배수아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 소설 보면 오에의 처남이자 영화감독이 쉰 살 때 연애해서 아이까지 출산한 애인이 베를린에서 살았던 것도.... 하나 더, 얼마 전에 본 영화 <타르>에서 베를린 필의 수석지휘자 타르가 사랑하기 시작한 러시아 출신 첼리스트 올가한테 반해 올가 사는 집에 쫓아가다가 사고나는 장면.
세 씬 다 이국의 언어를 쓰면서 베를린 빈집에 사는 예술가(지망생) 이였습니다. 낡고 지저분한 무법의 폐허에 사는 사람들 말입죠.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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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재. 정말 오랜만에 읽는다. 가장 최근에 읽은 이문재 시집이 25년은 확실하게 지났고 30년까지는 안 됐다. 언제나 가까이 있는 듯해서 눈에 자주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때 마다 조금 있다 읽지, 해서 차일피일, 그게 하세월이 됐던 시인이다. 이 양반이 나와 고향이 같다. 나는 태생이 서울이지만 누가 고향을 물어보면 큰집이 있고, 양친 이주사와 정여사의 뼛가루가 놓인 김포가 고향이라고 얘기한다. 저 넓은 들 너머로 아른하게 보이던, 공 잘 차는 회택이네 집, 공부 잘하는 구택이네 집, 하면 김포 사람이면 누구나 알던 검단면 당하리 큰 들, 거기는 내 고향이고 이문재도 아마 이 근처일 거 같다. 이거 여차하면 같은 집안 사람 아녀? 거기 사람들이 쓰는 경기도 사투리는 이북 말을 닮았다. 이문재의 늙은 아버지도 그 말을 썼을까? 시를 읽다 보면 아버지가 대강 50대 중반에 늦둥이를 둔 거 같던데, 그럼에도 동생도 있는 거 같았는데. 동생이 나중에 이랬다던데.



  문자 메시지


  형, 백만 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전문)



  시인이 쓰는 “시”는 픽션일까, 논픽션일까? 아니면 그딴 거와 관계없는 자연의 모방일까? 여기서 말하는 자연이 꼭 산천초목만 일컫는 게 아니라, 사람, 특히 노래하는 인간의 가슴앓이나 뇌세포의 화학작용도 다 자연이라고 볼 때의 그 자연을 모방하는 것일까? 뭐, 가슴앓이가 심근경색을 말하는 거냐고? 그럴 수도 있다. 그것도 자연활동이라면. 이문재가 1959년 9월생. 이제 딱 예순 하고도 넷. 시 쓰기 좋은 나이네. 그가 십년 만에 낸 시집에서 가장 앞에 내세운 작품을 읽어보자.




  사막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전문)



  먼저, 무엇보다, 1연과 2연은 중복이다. 같은 말의 중언이다. 근데 시의 독자인 나는 시인더러 두 연 가운데 하나를 지우라고 요구할 수 없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시인도 번하게 알면서 그렇게 썼을 터이니까. 좋다, 나는 시인이 이 두 연을 써 놓고 왜 미소를 짓는지 알고 따라 웃을 수 있는 염화시중이 아니다. 그러나 독자는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뜻과 달리 시를 자기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해석하고 오해할 권리가 있다. 그리하여 당신한테 묻는 바, 빈틈없이 광활하게 펼져진 모래 사막에, 모래 알갱이보다 더 많은 “모래와 모래 사이”가 뭘 말하는가? 여러가지 답이 있을 것이고 모든 답이 타당하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인 이유”라는 제목으로 해설을 쓴 평론가 신형철은,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모래와 모래 사이다’라는 것은 이 시가 생산해낸 시적 인식”이라며 “시적 인식은 과학적 인식과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아울러 “도대체가 사막에서는 ‘모래와 모래 사이’라는 표현이 성립될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아하, 시적 인식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모래와 모래 사이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그런데 말이지, 이문재가 시를 쓰면서 저 드넓은 사막의 무한대 성 모래알이 그렇게 밀집되었으면서도 서로 어깨를 부딪는 가운데 모래와 모래 사이에는 반드시 유격, 이격, 공간, 거리가 있다, 그리하여 이 모래와 저 모래가 하나가 아니어서 사막에, 사람과 사람이 서로 달리 흙 위에서 그러는 것처럼 살 수 있다고, 오래 전부터, 애초부터 그래왔던 거라고 말한 것이라면?

  신형철의 해설은 이쯤에서 그만 읽었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다시 훑어보니까, 모래와 모래 사이, 할 때, “사이”를 ‘관계’로 해석할 수 있고, 그래서 “’모래보다 /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라는 말도 개별 개체 그 자체보다는 개체 간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고 썼다. 흠. 이런 해석이라면 내가 시를 읽고 느낀 것과 그리 틀리지 않군.


  이왕 평론가의 해설을 인용한 바에 하나만 더 해보자. 신형철은 “아포리즘은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대중성의 표지처럼 간주된다. (중략) 그리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포리즘보다는 중언부언과 지리멸렬이 언제나 더 견디기 힘들다”고 단언했다. 이후 아포리즘에 관해서는 시인의 시를 인용해가며 충분하게 설명을 하지만 중언부언과 지리멸렬은 이것으로 끝이다. 이문재를 읽으며 감히 “지리멸렬”은 생각할 수 없다고 쳐도, 중언부언이라면 또 이이가 한 가락한다. 첫번째 시 <사막>에서도 ‘모래’와 ‘사이’를 너무 남발한 느낌이 들지만 이후의 것들 가운데 별 생각 없이 하나 고르면,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어릿광대처럼 자유롭지만

  망명 정치범처럼 고독하게


  토요일 밤처럼 자유롭지만

  휴가 마지막 날처럼 고독하게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혼자 자유로워도 죄스럽지 않고

  여럿 속에서 고독해도 조금 자유롭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그리하여 고독에 지지 않게


  나에 대하여

  너에 대하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는 브람스가 자신의 바이올린 소나타에 붙인 악상기호다.  (전문)




  어떠셔? 도마 위에 통배추 올려놓고 식칼로 난도질하는 난타 공연하는 것처럼 ‘자유’와 ‘고독’이 프레스토 템포로 도돌이표를 돌고 있어서 멀미 날 거 같지 않으신가? 물론 시 자체는 디크레센토로 끝나는 거 같은 여운이 있기는 하다. 이문재의 이 시집에서는 이렇게 단어를 무한 반복하는 시들이 많다. 의도적으로 문장을 “~것이다.”로 끝내는 것도 자주 눈에 띄고. 뭐 시인이 그렇게 쓰겠다는 데야 내가 왈가왈부 할 건 아니지만, 나야말로 시에서 같은 단어나 비슷한 표현이 나오고, 나오고 또 나오고 또다시 나오는 거에 대하여 심한 알레르기 증상이 있어서 읽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을 냈을 때 시인의 나이가 55세. 그동안 배고픈 시인의 세월도 다 보내고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회적 책임도 어깨에 짊어질 위치가 되었으나, 여직 시인의 본령은 도시에 있지 않다. 전국 각지의 산골과 바닷가와 냇가 같은 자연 속에, 새롭게 돋는 생명을 보고 경탄하기도 하고, 이젠 다시 경험하지 못하고 오직 추억 속에서만 가능한 여름 천렵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자본주의의 성세와 남북 분단의 현실을 아파하기도 한다. 그래, 세월이 흘렀다. 이문재도 이런 세월을 만난다.

  그의 이런 노래 하나 읽어보고 참혹한 독후감을 끝내기로 한다.




  천둥



  마른 번개가 쳤다.

  12시 방향이었다.


  너는 너의 인생을 읽어보았느냐.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어보았느냐.  (전문)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 꽝.  뭐라? “연탄재 발로 차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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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09-19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더 반가운 골드문트 님의 리뷰입니다^^

Falstaff 2023-09-19 16:23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ㅎㅎㅎ 고맙습니다.

햇살과함께 2023-09-19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좋네요!!

Falstaff 2023-09-19 16:24   좋아요 0 | URL
마지막 두 연은, 소리내서 ˝천천히˝ 읽으면 음악적 효과도 나는 거 같습니다!
 
올마이어의 어리석음
조셉 콘래드 지음, 원유경 옮김 / 이타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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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이 책의 세일즈 포인트 76이 뭔가? 하긴 나부터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는 했지만. 책꽂이에 꽂아둘 가치 있는 책인데 여간해서 팔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책을 다른 작가가 썼다면 별 다섯이 마땅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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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9-16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콘래드 책으로 안보이는 화사한 표지네요.

Falstaff 2023-09-16 21:07   좋아요 0 | URL
저도 표지만 보고 편안하게 읽겠다, 싶었다가 속았습니다. ㅎㅎㅎㅎ

유부만두 2023-09-16 21:08   좋아요 2 | URL
역시나 콘래드 입니까?

다락방 2023-09-16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샀습니다!!

Falstaff 2023-09-16 21: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좋습니다.

잠자냥 2023-09-17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거 솔직히 전 중고로 사 보려고 기다렸는데 중고로 풀려도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표지가 좀……. 별로 ㅋㅋㅋㅋㅋㅋ 읽고
싶은 마음 떨어뜨려요.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9-16 21:59   좋아요 1 | URL
옙. 이 책은 표지가.... 꼭 동화 같아서 말입죠. ㅋㅋㅋㅋ

잠자냥 2023-09-16 22:03   좋아요 2 | URL
표지가 어리석었네….

coolcat329 2023-09-17 06:21   좋아요 2 | URL
저두요. 콘래드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이 책은 손이 안가요.
표지 문제였네요.

꼬마요정 2023-09-16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안 보고 어떤 책이기에 다른 작가면 별 다섯일까 했다가 바로 아! 했습니다. 표지는 이쁘네요 ㅎㅎㅎ

Falstaff 2023-09-17 06:00   좋아요 1 | URL
표지 예쁘긴 한데요, 내용이 저렇게 조용하고 예쁘고 동화적이지 않답니다. ^^
 
노스트로모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4
조지프 콘래드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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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작품이 꼭꼭 숨어서 독자의 눈에 띄지 않는다. 민음 세계문학 414, 415인데 시리즈에 노출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아무리 그래도 세일즈 포인트 399가 뭔가. <올마이어의 어리석음>은 또 작가 이름을 조셉 콘래드라고 써 놓아 검색하기 쉽지 않다. 하여간 눈 밝으신 분들은 찾아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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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9-17 0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또 콘래드 책이네요. 이런 알림 너무 좋네요~☺️

Falstaff 2023-09-17 07:23   좋아요 0 | URL
이 책 재미있습니다. 즐기시기 바랍니다. ^^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김현경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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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에 겐자부로의 1973년 작품. 이이의 작품은 뇌 헤르니아를 갖고 태어난 아들 오에 히카리, 중국에서 붉은 가죽 가방을 가지고 귀국해 가족과 함께 살다가 익사 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일본의 개화기에 오에 집안 주변에 있었던 민란, 전쟁 후 (대체로 우익 학생들에 의해 저질러진) 반 정부 집단 행동 등 몇 가지에 주목하고 있다. 도쿄 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작가는 영어와 불어에 능통한 천생 지식인이라서 아버지의 생애나 옛 시절의 민란 그리고 젊은이들의 반 정부 집단에 관해서는 늘 관찰자 역할에 충실히 머물렀다. 그렇게 알았다.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이하 “홍수는”>은 이런 믿음에서 벗어난다. <홍수는>에서 가명 “오키 이사나”를 사용하는 주인공은 젊은이들로 구성된 일종의 도피자들의 그룹인 “자유 해양단”에 기꺼이 가입하여 집단의 일원으로 행동한다. 여태 오에의 여덟 작품을 읽으면서 굳어진 그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산뜻한 경험이었다.


  나는 일본 작가 가운데 오에 겐자부로를 가장 좋아한다. 이이의 작품을 읽어보면 어느 하나 빠짐없이 공고한 직조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꽉 짜여진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커다란 구조물을 짓고 있는 벽돌공이랄까, 완성된 건물에서 벽돌 하나, 고인 나무 하나를 빼더라도 모두가 와장창 무너질 것 같지만 정작 지어놓은 건물 자체가 벽돌이나 나무 하나를 빼지도 못하게 완강하게 조여진 듯한 작품. 이것이 오에 겐자부로를 읽는 기분이었으며, 읽을 때마다 나로 하여금 경탄하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같은 이유로 작년 말에 한 번에 오에의 장편소설 세 작품을 연달아 읽을 때는 무척 혼이 나기도 했지만. 그때 읽은 것이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그리고 <책이여, 안녕>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멀미가 나는 거 같다. 그러니 오에의 작품은 적어도 몇 개월의 터울을 두고 읽는 게 좋을 듯. 실제로 오랜만에 읽으니까 문장이나 구절 하나하나 섣불리 지나치지 않고 꼼꼼하게 읽어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이렇게 질리지 않았던 이유는 물론 원래 글이 훌륭해서 이겠지만, 나처럼 아마추어 독자들은 아무래도 심리묘사만 무난히 계속 이어지는 것보다 약간 울퉁불퉁한 서사의 비포장 도로를 달려주는 것이 흥미를 끄는 법인데, 놀랍게도 전혀 오에 답지 않게 등장인물들 거의 모두가 극단적인 성격이랄까, 하여튼 비정상적인 과격성을 가지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도무지 대충 읽을 빌미를 주지 않았던 것이 컸다.

  주인공 오키 이사나는, 한 시절 일본 정계에서 꽤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의회 거물 의원의 최측근 비서였다. 의원이 정치적으로는 선량한 쾌남이었지만 흔히들 그렇듯이 알고 보면 괴물 가운데 괴물이라서 의원 근처의 모든 이들은 그를 괴물의 ‘괴怪’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심지어 전후 일본이 숭상했던 미국으로 유학해 거의 모든 몸가짐과 사고방식을 미국식으로 탈바꿈해 돌아올 것을 지시받아 그렇게 한 친 딸마저. 후에 괴는 기꺼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을 오키의 아내로 보낸다.

  괴가 괴일 수 있는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세계 어디를 가나 현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을 자신의 침대 위에 대령시키라는 지시를 비서에게 하달하는 거였다. 이사나 역시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괴의 지시를 한치 어김도 없이 수행하였으나, 발칸 반도의 한 나라에서 그만 사고로 괴의 호텔방에서 소년 한 명이 죽어버리는 사고가 생긴다. 이사나는 사건을 무마하기 위하여 죽은 소년을 방 옆 건물 모서리로 안고 가서 실족에 의한 추락사로 위장하기 위하여 떨어뜨리려는 순간, 소년의 정신이 돌아온 것을 알았고,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엉겁결에 손을 놓았으며, 소년은 순간적으로 이사나의 손목을 할퀴기까지 해버렸다. 괴와 이사나는 다음날 아침에 곧바로 출국하여 완전한 범죄로 끝날 수 있었으나 사건과 죽은 소년이 남긴 이사나의 흉터는 물론 고스란히 지울 수 없었다.


  이후 이사나는 건축회사로 직장을 옮겨 흥미롭게도 핵 셸터를 제작해 판매하는 사업부의 책임자로 일하게 됐다. “핵 셸터”. 띄어쓰기 하지 않고 그냥 핵셸터라고 표시하는 이 건축물은, 20세기 말 한때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건축물로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을 사용하는 전쟁이 발발해 닥칠 심판의 날을 대비한 피난처로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든 3미터 x 6미터 크기의 지하벙커다. 회사는 견본 핵셸터를 무사시노 대지 서쪽 끝자락에 만들었지만 세계적으로 핵전쟁의 위협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로 변함에 따라 기업화까지 진행하지 못했고, 견본 셸터는 일본 유일의 핵셸터로 남았다.

  이사나는 아들 진을 낳고, 낳자마자 뇌수술을 해야 했고, 태어난 순간부터 뇌수술을 해야 하는 동안 <개인적인 체험>에서 보듯 아내와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미 사이가 멀어진 괴와는 상종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정신과 육체가 모두 정상적이지 못한 진이 아무 이유 없이 쓰러져 여기저기 상처를 입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 이사나는, 나중에 보면 분명 유도의 낙법을 사용할 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진처럼 그냥 맥없이 고꾸라져 코피가 터지고, 광대뼈가 무너지고, 심지어 생 이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기도 하는 이상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울증에 진입한 이사나는 아내에게 진과 함께 버려진 핵셸터로 거처를 옮기겠다고 부탁해 승낙을 얻는다. 부탁을 한 이유는 지하에만 건설을 한 핵셸터 위에 3층 건물을 증축해 (피난처가 아니라 살림용으로) 오래 살 수 있는 집을 아내나 장인의 돈으로 마련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얼마 후 핵셸터를 포함한 좁은 면적의 3층 건물로 옮긴 부자. 아버지는 프리즘쌍안경을 통해 숲을 관찰하는 것으로 소일하면서 자신을 나무와 고래의 대리인으로 자처한다. 얼마 후 이이는 자신의 이름마저 오키 이사나(大木勇魚: 큰 나무 용감한 물고기)로 개명해버린다. 물론 호적까지 바꾸지는 않지만. 또한 아들은 아버지가 녹음해준 새소리를 들으며 몇 십 종의 새소리를 구분할 줄 알게 된다. 당연히 천재적인 음감을 가졌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오에 겐자브로는 일찍이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핵 공격의 비극에 관해 깊게 이해한 바 있으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비핵 또는 반핵 운동의 선봉에서 활약한 평화주의자였다. 그가 쓴 소설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 반핵주의자로 핵셸터에 집을 짓고 사는 것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건 독자들의 생각이고, 일반 일본 국민의 입장에서, 반핵과 전쟁에 관한 공포로 이상 심리상태가 된 “세상의 이모저모”에서 소개한 별난 외국인 몇 명을 제외한다면 유독 두드러진 사람이기도 하다. <홍수는>에 나오는 핵셸터의 주민들도 이사나를 보고 자기들끼리 “미치광이”라고 부르며, 이사나가 마을 사람들과 소통을 하지 않는 외톨이로 지내지만 마을의 모든 주민들은 이사나를 알고 있다. 독특하거나 별난 사람을 다른 말로 하면 “모난 사람”이라서.


  그러나 이사나에게 접근하는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자유해양단.”

  이들은 만일 도쿄에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큰 지진이 나면 백 년 전에는 지진 피해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서 생긴 일이라고 호도하며 조선인을 학살했지만, 이제는 자신들 같은 권력이나 힘 없는 청년들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크지 않은 선박을 (물론 제일 좋은 건 돈 주고 사는 것이긴 하다) 탈취하거나 얻어서 공해상으로 나가 국적을 포기한 후 세계인으로 살겠다는 뜻을 가진 젊은이들이다. 대개 십대 미성년자로 구성되었으나 “오그라든 남자”로 불리는 전직 잡지사 프리랜서 카메라 기자 단원은 마흔이 넘었다.

  이들은 단원 가운데 한 명 있는 여자아이 이나코를 시켜 거구의 형사 한 명을 유혹해 아지트 근방으로 유인했고, 그로부터 권총을 약탈하는 데도 성공했지만, 와중에 형사가 가장 어린 단원 “보이”를 체포하기 위하여 자신과 보이의 팔을 연결해 수갑을 채웠고, 보이는 칼로 형사의 손목이 아니라 자신의 손목을 잘라 도망하려 하자 형사는 할 수 없이 수갑을 풀고 혼자 도망을 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깊게 자상과 창상을 입은 보이의 손목이 탈이 났다는 것. 보이는 열이 오르고 헛소리도 해대는 등 파상풍 비슷한 증세를 보여 그들도 바라지 않는 바이나 어쩔 수 없이 이사나의 셸터에 보이를 들이고 이나코로 하여금 간호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된 것은 아니어서 이사나와 해양단 서로간의 기싸움도 있었고 음란하게 보이기도 하는 시도도 있었으나 내용은 밝히지 않겠다. 하여간 그렇게 된 후 우연히도 이나코와 이사나의 아들 진이 유난한 친밀도를 유지하게 되고, 덕분에 이사나 역시 조금씩 자유해양단에 관해 호감이 생겨, 결국 자유해양단의 대변인, 작품 속에서는 “말”, 쉽게 말하는 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작품은 이사나와 진, 독특한 성격의 자유해양단 단원, 괴와 그의 딸 등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주축을 이룬다. 주축 정도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스토리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드라마틱해지고, 아주 예외적으로 거친 대단원을 맞는다. 그러니 읽기에 따라 재미가 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장면 묘사보다 역시 오에 겐자부로를 읽는 진짜 묘미는 문장과 문단 자체가 갖고 있는 긴장과 견고한 맛을 음미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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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9-15 06: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화요일.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목요일, 다와다 요코, <지구에 아로새겨진>
금요일. 지넷 윈터슨,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이 삽질을 계속 해야할지 몰라......

유부만두 2023-09-15 07:27   좋아요 2 | URL
계속 해주십쇼!

coolcat329 2023-09-15 07:50   좋아요 2 | URL
오렌지 리뷰 궁금합니다.
어떤 소설일지 궁금했거든요.

Falstaff 2023-09-15 16:42   좋아요 2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조금 더 계속해보겠습니다.
<오렌지...> 이거 참, 기대보다 훨 좋았습니다. 별 다섯을 주지 않겠지만 아주 제대로 마음에 들더라고요!

건수하 2023-09-15 20:44   좋아요 1 | URL
오렌지~ 저도 궁금해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coolcat329 2023-09-15 07: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한 권도 안 읽어 봤는데 읽기 쉬운 작가는 아니군요. 어떤 작품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개인적인 체험과 애너벨 리 가지고 있어요~^^

Falstaff 2023-09-15 07:38   좋아요 2 | URL
조금 거칠지만 <개인적인 체험>이 장편 데뷔작이니(맞나?) 그것부터 시작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후 곧바로 대표작 <만옌 원년의 풋볼>로 치고 들어가시는 것이... ㅎㅎ

coolcat329 2023-09-15 07:49   좋아요 2 | URL
훌륭한 작가이자 지식인이라 잘은 모르지만 존경심을 갖고 있네요.
골드문트님 감사합니다 😄

자목련 2023-09-15 0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예정 리뷰, 세 권 모두 기대가 됩니다^^

Falstaff 2023-09-15 16:38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근데 읽어보시면 별 거 없는 걸로.... ^^;;;

수이 2023-09-15 08: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을 떠나고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골드문트님 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Falstaff 2023-09-15 16:39   좋아요 2 | URL
아휴, 이런 황감한 말씀을요.
지금 쉬고 계신 것이지 떠나지는 않았잖아요. 세월이 무지하게 깁니다. 편하게 마음 잡수시기 바라요. ^^

그레이스 2023-10-01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이름을 바꾸셨네요^^
저도 이 책 들여놨습니다.

Falstaff 2023-10-02 06:13   좋아요 1 | URL
넵. 골드문트 하니까 추레하게 늙은 것이 젊은 티 내려고 발악하는 기분도 좀 들더라고요. ㅋㅋㅋㅋㅋ 그저 생긴 대로 살아야 좋은 법이라서요.
이 책은 재미는 있지만 좀 억지스러운 장면들도 왕왕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