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백수린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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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쯤 전에 이탈리아 사람 에밀리오 크레스피가 프랑스에 와서 파리의 남서부, 오를리 공항이 있는 비트리쉬르센에 정착했다. 그는 건설회사에 들어가 벽돌공을 하며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사는 시 외곽의 숙소에서 2년 정도 혼자 살았다. 이곳에서 열린 이탈리아 사람들의 연간 파티(연말 파티인지, 정기적으로 1년에 한 번 여는 파티인지는 모르겠다)에 혼자 찾아온 앙카 리솝스카야라는 이름의 스무 살 여성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으나 아주 어려서 죽었다. 아이 이름이 블라디미르였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첫 아이 이후에 순서대로 에르네스토, 잔, 수잔나, 조르조, 파블로, 호르텐시아, 마르코, 이렇게 일곱 아이를 더 생산하지만 어머니의 마음 속에서는 에르네스토가 두번째 블라디미르, 조르조는 세번째, 파블로가 네번째, 막내 마르코도 다섯번째 블라디미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곱 아이 중에서 위로 둘, 에르네스토와 잔 만 제대로 된 이름으로 등장하고 나머지는 필요에 따라 ‘남동생들’, ‘여동생들’ 또는 다 합해 ‘동생들’로 칭하고 만다. 

  <여름비>는 1989년에 쓰기 시작해 90년에 발표한 말기 작품이다. <부영사> 독후감에서 말했듯이 50년대 후반, 콕 집어서 말하자면 <모데라토 칸타빌레> 부터 뒤라스의 작품 속에는 서사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누보로망에 한 발을 담그게 되는데, 기존의 누보로망 작가들과는 다른 방식이다. 이이는 사물이나 사람 또는 생명체를 미분하듯이 쪼개 놓는 대신, 소리치고, 대상을 바라보며 넋이 나가기도 하고, ‘광폭한 행복’을 누리기도 하지만 그냥 그렇다는 거다. 이 속에 작가가 별로 개입해 있지 않다는 듯이. 세상의 어떤 작가가 등장인물의 감정에 개입을 하지 않겠는가? 다만 독자가 작품을 읽으며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지.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정선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확실히 시침 뚝 뗀 것처럼 읽힌다. 물론 그렇게 읽힌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고.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채 아직도 체류자 신분으로 살며, 벽돌공 외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 없는 장기 실업자로, 부양가족 수당과 실업수당을 받아 하루도 빼지 않고 감자로만 배를 채워야 하는 이 가족은 방 하나 부엌 하나 두 칸짜리 집에서 사는데, 부모와 맏아들 에르네스토가 작은 방에, 나머지는 모두 한꺼번에 부엌을 겸한 거실에서 잔다. 수당이 나오는 날엔 엄마와 아버지는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외출을 해서 적어도 자정이 지나고, 심하면 새벽 세 시까지 술집을 순례하며 잔뜩 취한 채 돌아온다. 아버지는 우크라이나와 우랄 산맥 사이에서 출생한 엄마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왔을 때 열차에서 만난 남자와 나눈 사랑을 질투하지만 그냥 그렇다는 거다.


  진짜 내가 주목했던 것은, 아버지 에밀리오는 교외선 기차(역)에서 책을 주워 오는 습관이 있다는 것부터 시작이다. 주운 책을 읽고, 책 읽기에 재미를 들이면서 이젠 쓰레기통 옆에 이사간 집이나 학생이 버린 책도 가져와 읽더니, <조르주 퐁피두의 인생>을 재미있게 읽은 다음부터 헌책방 진열대에서 슬쩍 훔쳐오기도 했다. 책방 주인이 아버지가 헌책을 주머니에 넣는 걸 확실히 본 것 같은데 그냥 내버려둔 것은 책값이 별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버지 행색이 너무 추레했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작품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에르네스토와 잔도 모른다. 이 부부는 그냥 지금 사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에르네스토가 너무 총명하다. 그래, 그게 문제다.

  부부는 아이들을 방치해 학교에 다니는 애가 하나도 없다. 이것을 시청에서 알게 되면 처벌을 받을 거라고 누군가 귀띔하자, 아버지는 어머니를 데리고 학교에 가서 면담을 했고, 선생은 에르네스토와 잔을 학교에 보내라고 한다. 그런데 뒤라스 하는 말을 들어보면, 에르네스토의 나이가 12세에서 20세 사이란다. 덩치가 큰 12세? 그럴 수도 있고. 학교에 다니지 않았으니 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가 한 명도 없다. 아버지가 늘 책을 주워 오거나 훔쳐오는 집인데도.

  이웃집의 개방형 지하실은 거의 창고로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집 아이들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하루는 에르네스토가 지하실의 중앙난방용 파이프 통로 석고 파편 아래에서 검은 가죽표지로 장정된 아주 두꺼운 책을 발견한다. 이쪽 저쪽이 불에 타고 잔혹하게 훼손된. 이걸 본 동생들이 울었을 정도였다. 에르네스토는 이 책을 가져와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글을 모르니 읽는 건 아닐 터이고, 그의 말에 의하면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자기가 책을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글을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스스로 글 읽기와 쓰기를 터득한 것.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많은 아이들이 누구에게 글자를 배우지 않고 읽기 시작하니까.

  이때 불탄 책에 미쳐 있던 에르네스토가 다른 하나에도 집착을 했다. 카멜리나가街 사이 모퉁이에 철제 울타리로 둘러 싸인 정원이 있고, 정원 안에 오직 한 그루의 나무, 직선처럼 곧고 궁륭 모양으로 우거진 가지에 물에 젖은 아름다운 머리카락처럼 빽빽하고 윤이 나는 무성한 잎사귀가 달린, 에르네스토가 생각하기에 프랑스에 딱 한 그루밖에 없을 것 같은 나무가 대상이었다. 에르네스토는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단 한 명, 사랑하는 누이동생 잔에게만 말했을 뿐. 잔은 에르네스토가 책이 지닌 고독과 나무가 지닌 고독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에르네스토는 나에 대해서도 생각했어.” 이후 불탄 책과 나무는 에르네스토의 것으로, 그가 발견했고, 손과 눈과 생각으로 만졌으며, 에르네스토가 잔에게 전해준 “무언가”가 되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책을 주워 오거나 훔쳐오는 일, 그리고 책을 읽는 행위에서 에르네스토의 불에 탄 책으로, 그리고 카멜리나가 정원에 선 나무로. 이렇게 뭔가가 흐른다. 이 작품이 <율리시스>나 <델러웨이 부인>을 쓴 작가들의 것이라면 자신있게 “의식의 흐름”이라고 할 텐데, 똑 부러지게 의식이 흐른 것 같지는 않고, 어쩌면 그것도 “의식”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하여튼 뭔가가 흐르기는 흐른다. 실제로 나는 책이 끝날 때까지 정원 속의 나무가 언제 등장할까, 여간 신경의 쓰였던 것이 아니다. 알려드릴까? 안 나오더라. 나오건 나오지 않건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서사가 없으니.

  불탄 책에서 무언가를 읽었다고 말하는 에르네스토. 그에게 읽는 행위란,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가 자신의 고유한 육체 속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이것에 주목하면, 뒤라스 자신이 <여름비>라는 작품을 쓰긴 했으나,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이것을 다시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 즉 작가 자신은 독자가 독자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해독불능의 언어”만 제공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50년대 후반부터 뒤라스의 소설은, “빠짐없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많은 작품에서 서사가 사라져 독자는 갈 길을 잃은 미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마 이 점이 뒤라스를 읽으면 뭔가 조금 만족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내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읽는 행위가 독자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여야 하니 독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한다. 문학을 한 번도 배우거나 공부해본 적이 없는 나는, 책읽기에 독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 누보로망의 전제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마르그리트 뒤라스도 이들 무리의 일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싶다. 물론 누보로망 작가라는 것이 무슨 벼슬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오히려 에르네스토는 불탄 책이 아주 오래 전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진 한 나라를 다스렸던, 그 자신도 이방인이었던 한 왕에 대한 이야기라고 믿으며, 그럼 누구? 당연히 예수일 터이고 검은 가죽 정장의 두꺼운 불탄 책은 신구약 성서일 것이다. 뒤라스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은 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뒤라스 역시 비시정권에서 검열 일을 하며 뒤로 레지스탕스를 하다가 남편이 부헨발트에 끌려가 몸무게가 38킬로그램까지 빠진 상태로 종전을 맞기도 했다. 이때 전 유럽 사람들은 유대인 학살에 큰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도 큰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유대의 조상 이야기책인 불탄 책 성경을 읽으며 난데없이 동생들에게 “비트리에 있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은 그들의 부모님”이라고 말한다. 뒤라스와 같은 시절의 사람들은 그럴 듯하다고 하겠으나, 솔직히 어처구니없긴 하다.


  재미있게, 등장인물의 대화 부분은 (괄호 없는) 지문도 있는 희곡처럼 쓰였다. 뒤라스 본인이 괜찮은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해서 내가 읽기에는 희곡 양식을 채택한 것이 독자에게 더 빠르고 효율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거 같은데, 독자들은 이것도 좀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작가의 메시지가 뭔지, 등장인물 간에 의사소통이 진짜로 제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졌는지, 그것도 불분명하지만. 하여간 그렇다. 하여튼 그랬다. 독서는 독자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이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를 내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당신도 알지 못하리. 그냥 그렇게 읽을 수밖에. 하여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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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2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름이니까~ 습한 날의 뒤라스는 어쩐지 어울립니다. 읽고 다시 읽으러 오겠습니다!

Falstaff 2024-07-02 05:32   좋아요 1 | URL
예. 그러고보니 뒤라스는 고온다습한 날씨에 어울릴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ㅎ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송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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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집. 모두 아홉 편을 실었다. 책 앞날개에 간단한 작가 소개가 있다. “1987년 서울생.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펑크록 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가 당선되어 등단.” 검색해보면 2022년에 한국일보문학상을 받는 바람에 소설 때려치우고 창업을 하려 했다가 소설을 좀 더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다. 이 책 이후에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두번째 작품집도 팔고 있다.

  이 책, 오늘 오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컵밥 먹고, 오후부터 읽기 시작해 네 시간만에 다 읽었다. 휴게시간 포함해서. 그냥 훌훌 읽으면 된다. 성장소설 비슷한 것도 있고, 새로 성인으로 진입은 했지만 조금은 갈팡질팡하는 청춘을 다룬 것도 있고, 나는 이게 제일 좋았는데, 여성 연대로 볼 수 있는 <흔한, 가정식 백반>도 있고, 그러고 보니 “가정식 백반” 들어간 여성 작가 작품이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근데 그건 내 소설 취향이 이미 한물 간 시대이기 때문에 나이 든 여성들이 나오는 사는 이야기라서 그런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여튼 그렇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책 뒤에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신샛별도 참 기가 막히게 입을 턴다. 이래봬도 내가 면허증 있는 평론가야, 평론가. 서평가가 아니라는 말씀이야, 하는 것도 같다. 신샛별이 첫번째 작품집을 낸 송지현을 두고 “에피메테우스 형 소설가”라고 선언한다. 와. 에필로그 더하기 프로메테우스. 아니다, 아니다. 프로메테우스, 즉 Pro가 앞에 나오는 거니까 형, 에피메테우스, Epi가 뒤에 따라붙는 거니까 아우, 동생이라는 말씀.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프로메테우스형 인간의 반대 요소만 생각하면 되겠다. 무슨 뜻이냐고? 모르겠다. 난 그런 거 모르고 그냥 읽었다. (평론가가)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은 가지만 그걸 단어로 써서 설명하려면, 아니 그냥 모르겠다. 아니면 신샛별의 해설을 읽고나니까 야코죽어서 도무지 말을 보태지 못하겠다. 역시 사람은 가방끈이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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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6-28 05: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마르그리트 뒤라스, <여름비>
화요일. 커트 보니것, 《아마겟돈을 회상하며》
목요일. 모드 방튀라, <내 남편>
금요일. 정지돈, <브레이브 뉴 휴먼>

stella.K 2024-06-28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천하의 팔님께서 야코를 당하시다니요. 말도 안되십니다.
그래도 뭐라고 써놔는지 궁금하네요. 예전에 평론가들 주례사한다고 엄청 욕먹고 살았는데 요즘 평론가들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ㅎ

Falstaff 2024-06-29 04:54   좋아요 1 | URL
여전히 주례사입니다. 이젠 평론가들도 통통 튀어야한다는 강박이 있는 거 같아 짠하기도 하고 뭐 그렇더라고요 ㅎㅎ

2024-06-28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29 0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골동품 진열실 을유세계문학전집 13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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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표 구라, 장광설. 최고의 발자크인 <잃어버린 환상>의 최상위 귀족 버전. 게다가 짧기도 하다. 서문, 헌사, 본문 합해서 235쪽. 물론 활자 수는 만만치 않을 걸? 발자크의 능란한 문장에 별5를 바침. 나, 도서지원 안 받고 별5 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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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6-27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계속 발자크 읽고 있는데
발자크는 잘 나가다가 끝에서 조금 매끄럽지가 않아 좀 안타까워요.
골동품 진열실, 기대됩니다^^

Falstaff 2024-06-27 20:51   좋아요 1 | URL
ㅎㅎㅎ 발자크가 하도 많이 작품을 써서요.
여기서도 자잘한 에러가 숱하게 많습니다. 30만 프랑을 이야기했다가 뒤에는 10만 에퀴, 즉 50만 프랑이 되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빨리 작품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에러를 낳고, 마무리를 산뜻하게 하지 못하게 만든 거 아닌가 싶어요. 결론으로 가면 작가들이 좀 급해지는 경향도 있잖아요. ^^
 
호랑이 등에서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호밀밭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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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위대했던 오스만 제국에도 어느덧 황혼이 내린다. 오랜 세월 유럽 국가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오스만 제국은 선대 정복 황제가 쌓은 영광과 호사에 취해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들불처럼 번진 산업혁명을 외면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다. 대항해 시대부터 유럽 열강이 전 지구를 식민지화 하기 시작한 건, 당시 오스만제국이 동남부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인도 서쪽에 이르는 방대하고 방대한 영토, 그것도 석유 생산지역 거의 전부를 지배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제 비로소 오스만과 비슷한 수준이 된 것 뿐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특별히 “과학의 세기”라고 불린 19세기가 되었건만 세계적 흐름에 전혀 눈을 돌리지 않은 결과는 참혹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하며 바야흐로 모든 질서가 뒤집혀버린 것을 오스만제국은 모르고 있던 거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과학이 돈을 위해 복무할 때 과학 스스로도 가장 빨리 발전하며, 적어도 20세기 중반까지 제일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전쟁이어서, 오랜 세월 동안 마음만 먹으면 적어도 오스트리아 빈까지는 우습게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자만에 취해 있던 오스만제국은, 이제 놀라운 군비를 갖춘 유럽 열강들이 보기에 식탁에 오를 준비가 된 암소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제국의 황제들이 몰랐을까? 몰랐을 것이다. 알기는 해도 실제 격차가 그렇게 많이 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1855년, 제32대 황제 압둘아지즈는 황태자와 두 조카와 함께 나폴레옹 3세의 초대에 응해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참석해 유럽 각국의 기계공학을 실제로 체험하고 경악을 했을 것이다. 박람회에 오스만제국이 자랑스럽게 출품한 품목이란 그저 카펫, 촛대, 실크 제품, 금은으로 수놓은 보자기, 기도용 깔개, 터키 커피와 긴 담뱃대 같은 기호품 수준이었으니. 만일 이런 차이를 알았다 하더라도, 복잡한 민족 구성과 이슬람과 쿠란의 계율 같은 것이 유럽의 과학, 기술을 오스만제국 안에서 개화할 기회를 만들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쥴퓌 리바넬리의 의견인 것처럼 읽힌다.


  유럽, 이 가운데서 열강이라 할 나라엔 이미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던 독재 공포정치가 오스만제국에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의 황제는 언제, 어디서, 누가 배반, 반역을 도모하고 있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았고, 배반자, 반역자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자기 외의 모든 신하, 지방 군벌, 백성, 심지어 친척과 자식들까지 의심하고, 사찰해 그들을 색출해 먼저 처단해야 했다. 그러나 오스만제국 황제로서는 처음으로 영토 밖에 나가 파리 만국박람회에 이어 영국까지 방문해 빅토리아 여왕을 만나고, 선진문물을 견학했으며, 시시각각 위협으로 접근해오는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협조를 요청하는 의의를 전한 압둘아지즈 황제도 1876년에 결국 신하들에 체포되어 두 손을 잘린 후 출혈과다로 죽음을 맞았다.

  이 정변을 주도한 장군들은 선황제인 31대 압둘메지드 1세의 큰아들이자 폐제 압둘아지즈의 장조카인 무라드 5세를 33대 황위에 올렸다. 유럽 신사 자체이며 빼어난 미남이었던 무라드 5세는 그러나 마음이 약해서 그랬는지, 삼촌이 양 손목이 잘려 죽는 것을 보고 정신줄을 놓아 불과 몇 달 만에 폐위되고, 무라드의 동생이자 <호랑이 등에서>의 주인공이자 오스만제국의 34대 황제인 압둘하미드 2세가 제위에 오르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한 미탓 장군은 청년 하미드에게 제위에 오르는 조건으로 영국과 비슷한 입헌군주제를 시행할 것을 약속하게 한다. 하미드 입장에서는 당연히 약속할 수밖에. 안 그러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칼 또는 비단 실뭉치 가운데 어떤 것이 될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즉위하자마자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발칸반도의 패권을 넘겨준 압둘하미드 2세는 헌법을 제정하기는 했으나 1877년 곧바로 이를 폐지하고 자신을 제위에 올려준 미탓 장군을 체포해, 죽이지는 않고, 저 멀리 타이프,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지역 한 원격지로 유배를 보내고, 그곳 수용소 소장이 알아서 목 졸라 죽이게 한다. 오스만제국에는 이미 황혼이 내린 상태. 1881년엔 제국의 영토인 튀니지가 프랑스에 점령당하고, 이집트는 영국 영향권에 드니 이때 구 오스만 식민지 사람들의 피폐상을 그린 작품이 레바논 사람 아민 말루프가 쓴 <타니오스의 바위>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길도 보이지 않는 제국의 끝 무렵에 황제에 오른 압둘하미드 2세는 1876년부터 무려 33년간 황제의 위를 지킨다. 특히 황제 암살과 쿠데타의 이력이 화려한 오스만제국 같은 나라에서 황제 자리에 있다는 건 호랑이 등을 타고 앉은 것과 같다, 라고 리바넬리는 말한다. 가장 용맹한 맹수의 등에 걸터앉아 세상을 호령하는 황제. 피와 살과 뼈를 분쇄하는 가공할 힘과 무기를 장착한 맹수의 근육을 다리 아래에 감각하면서도 아무리 피곤해도 절대 내려설 수 없는 자리. 등에서 내리는 순간 여태 타고 있던 맹수는 그 독한 송곳니를 사정없이 목덜미에 꽂을 것이라서. 이런 이치를 잘 이해하고 있던 압둘하미드 2세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리를 지켰고, 지키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의 희생만을 불렀을 뿐이지만, 다민족국가의 복잡한 신하, 의회, 장관의 행위를 모두 관여할 수 없었다. 책임도 오롯이 져야 했던 건 물론이다. 압둘하미드 2세 치하의 젊은 장교들은 황제를 “피를 토하게 만들고 숨을 틀어 막았던 잔인하고 흉포한 흡혈귀”라고 불렀으며, 프랑스 사람 알베르트 반달은 황제가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흐르게 만들었다고 별명을 “붉은 황제”라고 지어 신문 삽화에 게시했다. 이외에도 황제의 별명으로 피의 황제, 붉은 이교도, 아을드즈 궁전의 올빼미, 악마의 영혼 등 다양했다.

  테살로니키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청년 장교들이 중심이 된 연합진보위원회는 1908년에 혁명을 일으켜 헌법을 부활시키고, 1909년 4월 27일에 압둘하미드 2세의 이복동생인 메흐메디 5세에게 제위를 이양하게 만든다. 폐위의 사유는 “이슬람을 해쳤고, 무슬림이 무슬림을 죽게 했으며, 이슬람 율법서를 금지했다”고. 전 이슬람 세계의 칼리프이자 누구보다 독실한 이슬람 교도인 그에게.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4월 28일에 압둘하미드 2세는 큰 키에 사슴 같은 눈을 한 체르케스 출신 미녀들로 구성된 다섯 명의 아내와, 세 공주,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밤열차를 타고 혁명군의 근거지인 테살로니키의 옛 로빌론 장군의 숙소건물인 알라티니 저택에 감금되면서 장편소설 <호랑이 등에서>를 시작한다. 그렇다.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느라 오늘의 독후감 전부를 사용했다.

  나라고 튀르키예의 근대사에 관심이 있었겠는가? 앞에서 이야기한 아밀 말루프의 작품 <타니오스의 바위>를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아 뇌활동에 도움이 됐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망해가는 나라라도 오스만제국과 비교하기조차 부끄러운 조선이라는 나라의 고종이 읽는 내내 떠올랐다. 나라와 사직은 급속도로 몰락을 향해 달음박질하는데 뭔가 할 수 있는 기회도 없고, 신하들은 통제가 되지 않으며, 곳곳에서 배반을 도모하고 있는 지경.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행위는 그들이 했을지언정, 책임은 오직 한 명, 최고 통치자가 지어야 하는 것이니까.

  이 책, 재미있다. 그렇지만 수작 <세레나데>를 읽은 독자들은 쥴퓌 리바넬리를 판정하는 기준이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그것에 비견하거나 능가하지 못하는, 못하는 것처럼 읽히는 작품을 상찬하기는 힘들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기 전에 “쥴퓨 리반엘리”가 쓴 <살모사의 눈부심>을 먼저 읽는 게 도움이 될 듯하다. (아쉽게 아마 절판일 걸?) 오스만제국의 황위 세습과 이에 관련한 관습법, 하렘의 구성 같은 것을 이해하는데 특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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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26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네요. 세레나데 작가라고 해서 놀랐는데 살모사...를 먼저 읽으라고 하시니 산너머 산이네요. 더구나 살모사는 절판이라니 우주점엔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암튼 오늘도 친절한 조언 감사합니다 . ^^

Falstaff 2024-06-26 16:38   좋아요 1 | URL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팍팍 진도 나갑니다. 살모사는 저도 도서관에서 읽었습지요. 안 읽고 그냥 이 책 읽는다고 설마 사달이 나겠습니까? ㅋㅋㅋㅋ
 
호른의 죽음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김충남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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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토프 하인은 1944년에 지금은 폴란드 영토로 넘어간 접경지역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나 주로 라이프치히에서 활약한 소설가, 연극인 기타 등등 하여간 예술가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통일 독일의 통합 초대 펜클럽 회장을 지냈다고 위키피디아에 쓰여 있다. 표제에 이름을 올린 호른 씨도 라이프치히를 터전으로 하는 역사학 박사였으며, 화자 크루슈카츠 씨도 라이프치히 사람이다. 이렇게 작품 속에 흔적을 남기는 작가들이 많아 그들의 내력을 알고 읽는 것도 재미가 괜찮다.

  그러니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이전까지 하인은 동독 작가였다는 건데, 그래서 그런지 다른 동독 작가들 작품에서 자주 읽을 수 있는 불행한 일이 호른 씨에게도 들이닥친다. 독일 통일 이전부터 동독 사람들은 서독이 훨씬 더 잘 사는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하여간 갖가지 수단을 써서 서쪽으로 월경을 도모했다. 관광여권을 갖고 헝가리나 체코슬로바키아 등 같은 동구권 지역으로 갔다가 거기서 서독으로 넘어가는 장면은 자주 발견할 수 있고, 페터 슈나이더인가 누군가의 작품에서는 심지어 장대 높이뛰기 하는 식으로 겁나게 달리다가 작대기에 몸을 의지해 장벽을 훌쩍 뛰어넘어가는 것도 읽은 적 있다. 시기적으로 장벽 붕괴에 가까워지면서 월경의 위험과 영향이 점점 작아지다가 급기야 거의 없어지는 경향이 있었지만 <호른의 죽음>의 경우엔, 호른 박사의 누이가 서독으로 탈출한 것이 1955년 경인데, 당시는 전 세계가 극도의 냉전상태에 있었을 때라 가뜩이나 수정주의의 혐의를 받고 있던 호른 박사한테는 기총소사 하듯 종파주의자라거나 당파성의 원칙을 훼손했다거나 하는 비난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결국 호른 박사는 당에서 축출당하고, 학계에선 학위를 박탈당한 채 라이프치히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시골마을 굴덴베르크의 낡은 성에 달린 향토박물관의 학예사로 좌천당한다. 이때 당적을 몰수하고 학위를 박탈한 위원회의 위원 가운데 한 명이 앞에서 말한 크루슈카츠 씨였으며, 1년 후 크루슈카츠 씨가 굴덴베르크의 시장으로 선임되면서 이들은 재회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호른 씨가 종파주의나 당파성 같은 어처구니없는 명목의 피해를 당한 일에 초점을 맞추는 건 아니다. 호른 씨는 1957년에 죽는데, 이 때의 사건을 주민 다섯 명의 기억 또는 호른 씨와 얽힌 일을 담고 있다. 이후 사반세기 이상의 세월이 흐른 1980년대 초반에 그해 여름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니 각기 다른 화자의 일인칭 시점으로 쓰였다. 이들은:

  이곳저곳에 수많은 자식들을 살포한 바람둥이 부자 남자를 아버지로 둔 사생아이자 그의 머리 좋은 아들인 슈포테크 의학박사.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는 똑똑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대단히 삐딱하고 적어도 해발 8천 미터까지는 솟은 자존심 끝판왕에, 가시 같은 혀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사람의 귀를 따갑게 하는 독설가이지만 알고 보면 소심하고, 마음 약하고, 그러나 전혀 착하지 않은 인간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 토마스. 일반 시민들과 구분이 되길 바라고, 실수라도 사람들이 자기한테 닥터라고 부르면 속으로 좋아 죽겠는 속물이지만 겉으로는 점잖고 근엄한 약사의 아들. 한 살 위인 껄렁한 친구 파울과 어울려 다니며 예전과 달리 한 달 정도 늦게 도착한 집시한테 시간 일자리를 얻었다가 천한 집시에게 고용되는 것이 아빠의 뜻과는 완전히 다른 일을 저지른 짓이라서 외출금지도 당하기도 한다. 늙은 화가 골 씨를 도와 친하게 지내고, 결정적으로는 늦여름 아침에 파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가 마가목 나무에 목을 매단 호른 씨의 툭 튀어나온 눈과 쑥 빠져나온 거의 보라색의 혀를 보게 된다.

  마를레네. 화가 골 씨의 정신지체 딸. 1943년에 나치 정부가 아리아 인들의 품종을 개량하기 위하여 장애인을 수용하기로 결정했을 때, 자신을 대신해 엄마가 수용소에 들어가 죽는 바람에 죽다가 살아남았다. 세상이 바뀐 1950년대가 되고나서도 마를레네는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성폭행을 당했고, 임신을 했으며, 아버지를 따라가 인공중절을 경험한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굴덴베르크에서 정신장애자를 다루는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는 의미일까?


  게르트루데 피슈링거. 파울의 엄마. 처녀로 결혼을 하고 파울을 낳았지만 남편은 다른 여자를 좇아 집을 나갔다. 같은 마을에서 사는 게 남부끄러워 남편더러 파울의 양육비를 받지 않을 테니 다른 데 가서 살라고 해, 파울과 함께 굴덴베르크에 남아 식료품점을 한다. 지방정부가 남은 방을 세놓으라 해서 들어온 사람이 호른 씨. 원래 1년 이하를 계획했지만 호른 씨가 죽기 전까지 계속 머문다. 사춘기의 극점을 달리고 있는 파울은 점점 삐뚤어지기 시작하는 것 같고, 자기하고는 말도 하지 않으려 해서 호른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깨끗하게 거절당한다. 서로 소 닭 보듯, 예의만 엄청나게 지키는 드라이한 생활을 하지만 나중에 몇 달은 결국 같은 침대에 오르게 된다. 호른 씨가 생을 접기 전에 자살자들이 흔히 그러듯이 다른 것들처럼 관계를 정리하기 전까지. 상점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다리에 류머티즘이 심해 퉁퉁 붓고 고통이 자심하지만 알아주는 인간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마지막으로 굴덴베르크 시장 크루슈카츠. 유서 깊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한 때의 사학자였으나 공직에 뜻을 두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시골이기는 하지만 굴덴베르크의 시장에 취임한다. 취임하고 보니 굴덴베르크도 시골 특유의 배타성과 텃세가 여간 아니라 취임 첫날에, 타지인인 당서기만 방에 찾아와 축하를 했을 뿐, 시청에 근무하는 현지인은 누구 하나 고개 디미는 것들이 없었다. 문제의 1957년엔 5월 23일 목요일에 집시들이 도착해 여느 때처럼 도시 한복판인 블라이허비제에 캠핑카를 차렸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굴덴베르크의 시의회에서 집시 캠프는 변두리 늪지대인 블루트비제에 설치하게 규정해 놓았다. 그러나 세상에 말 잘 듣는 집시들이 있기나 하나? 집시들의 도착 보고를 듣고 당시 시의회 의원이자 시장대리이며 나중엔 크루슈카츠 시장을 음해해 어떻게 차기 시장을 한 번 해볼까 꿍꿍이를 꾸리기도 할 바흐오펜, 그리고 여비서와 함께 집시들을 찾아가 설득을 시도하지만 당연히 집시 대장한테 무시당하고 만다. 바흐오펜은 처음부터 경찰한테 위임해버리라고 조언을 했으나, 명색이 시장이라면 거절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시도는 해봐야 하는 거라 생각했던 거다.

  크루슈카츠가 시장으로 취임하고 1주일 후에 시내 낙농장 앞 보도에서 우연히 호른 씨를 만나고야 만다. 같은 작은 도시에 살기도 하고, 향토박물관의 학예사니까 시장이 직속 상관이라 언젠가는 만나야 했지만 그는 1년 전 위원회에서 크루슈카츠를 바라보았던 바로 그 상처입은 눈길을 가지고 있었으니 좀 캥기기도 했을 듯. 당시 크루슈카츠는 고통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며, 이를 호른 씨가 전혀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웅변하는 눈길을 여태 잊지 못했다. 크루슈카츠는 호른이 주관적으로 보아 어떤 죄도 범하지 않았지만, “당파성의 원칙을 맹신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체제에 큰 피해를 입혔음을 확신”해, 공동의 일과 위대한 목표를 위해서, 그리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용인한(누이의 서독으로의 탈출?) 호른의 비겁함을 인식하고 실수를 철저하게 떠안아야 한다고 생각해 당적 몰수와 학위 취소를 찬성했다고 변명했다. 이게 벌써 1년 전이니 시간이 약이라고 이젠 좀 상처가 아물었겠지. 그래서 “뜻밖의 재회를 위해 한 잔 해야지요?” 라고 반갑게 제의했지만, 호른은 “아닙니다.” 단호하게 거절하고 말았다.

  같은 해 9월 1일 일요일 아침, 숲속에서 아이들이 호른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을 비롯한 모든 관련자들은 자살이란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히 집시와 연결 짓는 건 적절하지 못했지만 어디 사람들이 그런가. 나치 시절이 12년 전에 끝났어도 집시무리를 정상적인 시각으로 보지는 않았던 거다. 물론 이건 책에서 딱 꼬집어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작가 크리스토프 하인이 숨겨놓은 코드라고 봐야 하리라. 당시 시장은 3년째 굴덴베르크에 살고 있었다. 처음 시의원으로 발령이 나고, 시장이 되자 라이프치히에서 살고 있던 사랑하는 아내 이레네를 굴덴베르크로 불러 살림을 합친다. 이때 이레네는 평생 시골에서 살게 하지 말라는 조건이었고, 정말로 그렇게 됐으나, 안타깝게도 이레네가 불치의 암에 걸려 라이프치히의 대학병원으로 실려가고 석 달 만에 생을 접었다. 그러나 남편을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요일마다 호른 씨가 주재하는 굴덴베르크 문화사 모임을 바흐오펜 씨가 음해하여 상부에 보고한 일을 시장이 모르고 있었으며, 라이프치히에 이어 같은 사람이 똑같이 아무 죄도 없으면서 같은 혐의로 명예가 훼손되려는 위기에 처해,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일이 벌어지자, 이레네는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다. 부부의 행위가 끝난 후, 이레네는 침상 위에서 말한다. “이전에는 결코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이제 당신은 역겨워요.”


  공산주의 치하였던 1985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런 소설을 쓸 수 있고, 출간할 수 있었다는 거 하나 가지고도 정말 기가 막히다. 크리스토프 하인은 참으로 다양한 시각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비단 시장 크루슈카츠와 학예사 호른의 관계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등장하는 다른 화자 네 명도 모두 자신이 직접 사는 생활 속에 각기 다른 질곡을 부담할 수밖에 없었던 것. 사는 게 다 그렇기는 하지만 참 어렵다.

  새삼 하고 싶은 말은, 수정주의, 종파주의, 당파성. 지긋지긋한 단어들. 그러나 눈을 뜨고 귀를 열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종파주의와 당파성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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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6-24 0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4는 분명히 야박했다. 그렇다고 별5는 조금 과하고.

잠자냥 2024-07-11 22:39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가 5별 줬습죠… 이제 이 책은 4.5별이 되는 겁니다!🤣🤣

Falstaff 2024-07-12 05:40   좋아요 0 | URL
앗, 그랬습니까? 잘 하셨네요. 이 양반 책 또 읎나.... 싶습니다.

잠자냥 2024-06-24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희망도서로 신청하고 주말에 받아왔습니다요! 기대됩니다!

다락방 2024-06-2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면 저도 사야겠네요!

다락방 2024-06-24 11:15   좋아요 1 | URL
악 너무 비싸네요? 다행히 도서관에 있습니다. 후훗.

잠자냥 2024-06-24 11:43   좋아요 0 | URL
그래서 내가 희밍도서한 거라능 ㅋㅋㅋㅋ 지만지 책 비싸서 못 사!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