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는 잠들고 더봄 중국문학 전집 12
거페이 지음, 유소영 옮김 / 더봄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거페이의 “강남 3부작” 가운데 <복사꽃 그대 얼굴>에 이은 2부. 무대는 전작 푸지의 상급 현인 메이청현縣. 거페이가 장시성江西省 사람이라 혹시 푸지普濟가 파양호 남쪽에 있는 푸저우抚州시市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1부 <복사꽃 그대 얼굴>의 주인공 루슈미의 아들 탄궁다譚功達, 우리말 발음으로 담공달 씨가 2부 <산하는 잠들고>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40여 년 전 메이청 현 서쪽 산간 평지에 있는 정원이 딸린 영국식 호화스러운 건물이지만 당시에 현의 감옥으로 쓰던 곳에서 슈미 여사가 1년 6개월 동안 수감되었는데 이때 옥 속에서 몸을 풀어 아들을 낳았으니 그이가 오늘날의 담공달 씨, 지금은 마흔살이 훌쩍 넘은 진짜, 진짜 모태솔로, 즉 숫총각이면서 노총각인 메이청 현장이며, 후에 현위원회 서기를 겸임하는 탄궁다 선생이다. 경자년 한여름인 7월3일생. 경자년? 1900년생, 노베첸토. 근데 문제가 있다. 책에 틀림없이 루슈미 여사가 경자년에 탄궁다를 낳았으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바람에 옥졸 메이스광이 데려가서 뱃사공 부자父子 탄수이진과 탄쓰에게 주었고, 이들은 아이를 탄쓰의 아들이라 생각하며 키웠다. 맞다. 그랬다. 그러다 탄쓰가 청나라 군인한테 죽임을 당해 할아버지 혼자 키우게 됐고, 아이가 여섯 살일 적에 어느 하루 길을 잃어 거리를 헤매는 것을 역시 자손이 없는 메이스광 선생이 포구에서 발견해 키우면서 정을 함빡 쏟았다. 아이를 잃은 탄 할아버지가 눈물바람을 하며 온갖 곳을 찾아다녀 드디어 아이를 발견해, 이 아이를 놓고 소송까지 갈 뻔한 것을, 그러면 탄 씨 성을 주어 탄 가문의 대를 잇되, 양육은 메이 집안에서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렇게 아이는 그날로 탄위안바오가 되었다가 위안바오元寶라는 이름이 지극히 봉건적이라서 큰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 훗날 위안바오 스스로 궁다功達로 개명을 했고 이름이 좋아서 그랬는지 메이청 현장까지 올랐다. 그런데, 뒤에 또 보면 구체적으로 아라비아 숫자까지 써서 1912년생이라고 딱 적어 놓았으니 경자 1900년 노베첸토가 아니라 1912년 임자생이 맞다.


  거페이가 좀 헛갈린 듯. 왜 사소한 거 가지고 목숨 거냐고 하실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여자 주인공이자 메이청현장 탄궁다의 비서이며 서로 마음, 순전히 마음으로만 깊고 깊은 사랑을 하게 되는 야오페이페이姚佩佩가 등장하면 좀 복잡해져서 그렇다. 야오페이페이는 상하이의 부르주아 집안 출신이다. 해방이 되어, 즉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페이페이의 아버지는 자본가로 낙인이 찍혀 어느날 늦은 오후에 야오페이페이를 데리고 나가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을 정도로 사준 다음날 총살형을 당한다. 이날 아침 페이페이가 학교에 가기 전에 자기를 품에 꼭 안아주던 엄마는 딸을 학교에 보낸 사이에 집에서 목을 매달아 죽어버리고. 졸지에 고아가 된 신세의 페이페이. 이때 메이청 현에서 소학교 교사와 아이 없이 결혼생활을 하던 고모가 득달같이 올라와, 사실은 친척 가운데 누구보다 먼저 집에 남은 가구나 패물 같은 재산을 거머쥐려 했건만 벌써 다른 친척들이 다 들고 가고 애먼 야오페이페이가 홀로 덩그러니 남아, 눈물을 머금고 데려다 키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던 거다. 몇 해 갖은 구박을 해가며 하여튼 함께 살기는 했다. 그러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까짓 것을 키워봤자 도무지 보탬이 될 거 같지 않아 그냥 쫓아내 버렸고 갈 곳 없는 페이페이는 뒷골목 목욕탕 카운터에서 셈가지 파는 일을 했다. 좋게 말해서 박스오피스에 앉았다. 벌거벗은 남자 전용 목욕탕에서. 한겨울에 탄 현장이 과거의 혁명 동지이자 훗날 처절한 배신자가 될 바이팅위와 함께 공동목욕탕에 갔을 때 성질 겁나게 까칠한 소녀 야오페이페이를 눈 여겨 봤다가 나중에 현사무소 사환을 거쳐 비서까지 올렸던 거다.

  전혀 여성으로 볼 마음도 없었던 탄궁다 현장이 무심결에 낙서를 한다.

  1961 – 1938 = 23

  1938 – 1912 = 26

  27 – 23 = 4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61년. 1938년생 야오페이페이, 본명 야오페이쥔姚佩菊, 가슴에 국화를 단 아가씨 나이가 스물셋, 23세. 1912년생인 자신, 탄궁다와의 나이 차이가 26년이란 거다. 마지막 27 – 23 = 4는 안 알려줌. 그런데 정말로 탄궁다의 마음에 페이페이가 여자로 들어오지 않은 건 맞다. 앞부분에도 이런 뺄셈 낙서가 나오는데 탄궁다는 자신이 의식도 하지 않고 그저 이런 숫자 더하기, 빼기를 쓰는 습관이 있다. 당연히 스스로 의식은 하지 못하지만 저 무의식 중에 무겁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이겠다. 그러나 탄궁다는 애초에 여자를 파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동성애 혹은 발기부전 증세가 있거나 애초 성불구도 아니다. 저 천하의 배신자 바이팅위가 자기의 어리디어린 조카딸을 소개해 결혼하기 바로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뒤편에 가면 아이 하나 딸린 가난한 극성스런 과부가 덮치는 바람에 결혼까지 해버려 아이도 하나 낳는다. 죽으나 사나 사랑은 오직 하나 야오페이페이를 향하지만 과부와 살림을 합칠 때까지 그런 줄도 몰랐다. 뭐 그런 사람도 있겠지. 인구가 워낙 많잖아.


  거페이의 “강남 3부작”은 유토피아, 이백의 싯귀마따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추구하는 작품이다. 근데 이게 말처럼 되는 거야? 아니, 세상에 한 곳이라도 있기는 있는 건가? 말 그대로 별유천지이건만 비인간, 인간은 빼놓고 얘기하자니 말이지. 1부 <복사꽃 그대 얼굴>에서도 다양한 유토피아를 구현하기 위해 몇 사람들이 발버둥을 친다. 슈미의 아버지 루칸 선생부터 시작해서, 진품인줄 알고 살았던 한유의 가짜 그림 <도원도> 이야기. 그리고 슈미 엄마의 혼외 연인이자 혁명가인 장자위안 역시 혁명을 통해 새 세상을 추구했으니 그게 바로 유토피아 아니겠느냐, 하는 것. 슈미 역시 흘러흘러 화자서라는 호숫가 마을의, 척 보면 유토피아와 가장 흡사한 공동체, 그러나 도둑 소굴까지 들어갔던 거다. 그러나 별유천지비인간인줄 알았던 화자서에서도 피와 살이 튀는 살인과 권력투쟁과 슈미를 향한 성폭행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렇게 참담할 수가.

  평생을 유토피아 건설에 정신을 쏟은 슈미의 아들 탄궁다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마오 홍군에 들어가 혁명전쟁에 투신하다 이제 메이청현의 현장으로 부임한 탄궁다는 메이청현을 중국에서 가장 복된 땅으로 만들기 위하여 ①푸지 호수에 댐을 만들어 전기를 생산해 메이청현과 푸지에 광명을 가져오려 하며, ② 장강과 연결한 수로를 건설해 유통의 편리함과 더불어 농업용수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도 모자라 ③ 중국인의 최애 식품인 돼지 사육의 부산물인 분뇨에서 메탄가스를 농축해 연료와 기타 생산공장 운영에 사용하려 한다. 당연히 세가지 중점사업은 현민들과 현사무소 주요 간부들의 저항을 받으며, 심지어 작은 규모의 폭동까지 일어나고, 그걸 구경하다가 떠밀려 낭떠러지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죽는 사람까지 생긴다. 이때 죽은 남자의 아내, 과부가 훗날 마흔살이 훌쩍 넘은 탄궁다의 동정을 수거해서 기어이 남편으로 삼는다니까.

  그러나 엄마 슈미에 이어 유토피아 건설로 자기 나이 드는 지도 모르고 사업에 몰두한 탄궁다를 기다리는 것은 예전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전우, 탄 현장의 직속 부하들의 배반, 그에 따른 추락뿐이었다. 자신은 몰락하고, 비서인 야오페이페이는 모실 상사가 몰락을 한 와중에도 현에서 성省으로, 당원이 되어 영전을 하려다가 인생이 삐그덕, 탄 전 현장보다 더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 1부에서 슈미를 다시 보는 것처럼.

  탄궁다는 베이징에 있는 은인이 힘을 써주어 성 일대를 관찰하는 직을 얻어 길을 떠나 작은 마을에 도착하는데, 에그머니, 그곳이 예전에 슈미 엄마가 자신을 임신했던 화자서. 슈미 엄마 시절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이상적인 마을, 이상향, 별유천지비인간이 실체화되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다. 애초에 무릉도원은 비인간, 인간이 없어야 가능하다고. 탄궁다는 자신이 본 이상적 공산주의가 실현되는 곳, 화자서의 본질을 알아낸다. 당연히 비극이지 뭐.

  재미있다. <복사꽃 그대 얼굴>만큼은 아니지만 읽을 만하다.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5-04-25 0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독후감:
월요일. 앨리 스미스, <봄>
수요일. 그라치아 델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금요일. 나탈리 사로트, <여기 있잖아요>
 
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2
페터 플람 지음, 이창남 옮김 / 민음사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페터 플람은 구글 검색해도 별로 알아낼 것이 없다. 1891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유대인. 본명은 에리히 모스 Erich Mosse. 작가보다는 의사가 더 어울리는 직업이다. 1926년에 데뷔작인 <나?>를 발간한 이후 두 편의 작품을 더 쓰면서 전문의 과정을 마친다. 1933년 역시 유대인인 마리안느와 파리로, 34년에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 정신과 의사로 정착했다. 책 앞날개를 보면 이이의 환자로 윌리엄 포크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유진 오닐의 늙은 사위)찰리 채플린 등이 있었단다. 그렇다고 나머지 생을 의사로만 산 건 아니고, 열심히 작품생활을 한 것도 아니지만 작가로도 산 것 같은데, 존경하는 우리나라의 장용학 선생은 나이 들어 작품을 쓰지 못하게 되자, 자신은 작가가 아니라고, 글도 쓰지 못하는데 무슨 작가라고 부르느냐고, 창피하다고 했던 데 반하여, 플람은 1959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었던 펜클럽 회의에도 참석한 모양이다. 뭐 고향 방문단의 의미였겠지.

  근데 <나?>는 꽤 괜찮다. 본문이 169페이지에 끝나는 짧은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포스트모던하다. 도대체 전간기, 특히 1920년대 북동부 유럽, 폴란드와 독일 유대인 작가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상당히 스타일리시한 작품들이 많다. 폴란드의 유대인 3인방은 누구인지 아시지? 비트키예비치, 슐츠, 곰브로비치. 페터 플람이 이 3인방 수준이라고, 나도 양심이 있으니까 그렇게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이이의 작품도 근처까지는 간다.


  작품의 첫 문단.

  “내가 아닙니다, 재판장님. 죽은 이가 나의 입으로 말합니다. 여기 서 있는 건 내가 아니고, 들어 올려지는 팔은 나의 팔이 아니고, 하얗게 세어 버린 건 나의 머리카락이 아니며, 내가 저지른 일이,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닙니다.”

  이 문단을 논리 혹은 상식적으로 해석하기 위하여는, 화자가 유령이거나, 정신착란이거나, 아니면 어제 읽은 필립 로스의 작품 <샤일록 작전>처럼 ‘내 속의 또다른 나’ 혹은 ‘페르소나’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① 유령은 아니다. ② 정신착란?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③ 내 속의 또다른 나일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페터 플람이 정신의학 전공의 시절이었으니 ② 아니면 ③이다.

  여기서 장면 전환. 1차세계대전 당시의 대표적 격전지인 베르됭. 그곳을 눈 앞에 둔 두오몽의 무수한 시신들. ‘나’는 그곳에 있다. 뼈와 두개골과 재와 ‘나’의 이름, ‘나’의 이름은 아니지만 ‘나’의 이름이기도 한. ‘나’의 운명이 아니지만 ‘나’의 운명이기도 한.

  ‘나’의 이름은 빌헬름 베투흐Bettuch이다. 이게 웃기지만 진짜 이름. Bettuch.침대보라는 뜻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름 때문에 무지하게 놀림을 받았다. 그래도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는 이 이름으로 평생을 견뎠다. 조용히 감내해왔다. 그러나 빌헬름 베투흐라는 이름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1918년 11월 11일. 베를린과 뮌헨에서 혁명이 일어나 전쟁이 4년만에 끝났다고 바쉬 대위가 말했다. 이제 더 이상 폭탄도, 죽음도, 진창도, 강제도, 법도, 무기도, 강박도 없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와해되고, 해체되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나’ 빌헬름 베투흐는 앞으로 뛰었다. 적군이었던 무리의 진영 쪽을 향하여. 그들도 더 이상 충을 쏘지 않을 것이라 믿고. 그렇게 도착한 지점, 한 시절 피아의 접선이었던 곳에 설치한 철조망. 그가 걸려있다. 전쟁이 끝나기 단 하루 전에 부상병을 구하기 위하여 전진했다가 적군이 쏜 총알을 맞고 철조망에 선 채로 걸린 시신. 단 하루 사이에 납탄 하나가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아 버렸다. 베투흐였던 ‘나’는 그의 시신에서 회색수첩을 꺼내 내 주머니에 넣는다. 이제는 내 것이다. 그의 여권이. 그의 이름과 그의 운명이. 이것으로 빌헬름 베투흐는 사라지고 한스 슈테른은 계속 삶을 살아간다.


  이제 ‘나’는 기차 일등칸에 탄 많이 배운 부유한 남자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는 프랑크푸르트가 아니라 베를린행 기차에 타서, 베를린 역에서 내리고, 벨레뷔 거리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그가 말한다. 당신이 돌아왔네요. 그레테가 뭐라고 할까요? 나중에 알려지지만 이이는 친구 보비다. 그가 말한다. 당신이 보낸 마지막 편지가 매우 기묘했어요. 죽음의 예감이랄까, 그런 소문이 났지요. 그러나 이렇게 다시 나타났으니 다 된 겁니다. 아무런 문제없습니다. 아주 좋아요. 보비가 차를 태워 집 앞에 내려준다.

  ‘나’는 올려다본다. 창문에 기댄 그녀. 빛나는 황금 갈색, 티치아노의 머리카락을 한 창백한 얼굴. 달콤함, 두려움, 고통, 동경, 사랑이 가득한 모습. 현관을 열고 들어가자 이 여인이, 아마도 그레테라고 불리는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달려와 내게 입맞춤을 한다. 나는 뜨겁고 둔중하고 몸을 꿰뚫는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여인의 품에서 떨어져 나오자마자 검은 털이 덥수룩한 몸체와 하얗게 빛나는 이빨의 개가 ‘나’의 살을 물고 흔든다. ‘나’의 피가 흘러 양말 아래로 흐른다. 여자는 나를 ‘한스’라고 부르면서 바지를 걷고 물린 상처를 동여매준다. 여기가 ‘나’의 집이고, 이 여자가 ‘나’의 아내? 모든 것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나’는 누구이고 ‘나’의 이름은 무엇일까?

  왼쪽 가슴 위, 왼쪽 주머니 속의 가죽지갑. 그 안에 든 여권. 안개가 유령 같은 어스름처럼 둘러싸인 무방비한 시체의 도난당한 여권. 이것을 가진 순간, ‘나’는 침대보라는 친구들의 놀림과, 댄스홀 금발 아가씨 리젤의 키득거림에서 벗어난다. 이제 그런 곳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다른 사람이다. 간단하게 옷만 바꾸어 입었을 뿐인데. 그 시체가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그의 행운을 탈취했다. 초록빛 눈을 가진 개한테만 말고. 이 개만 ‘나’를 미워하고 다리에서 살점을 뜯어내 피를 흘리게 하고 ‘나’를 노려보고 거칠게 격앙한다. ‘나’는 그래서 이 개를 귀하게 다뤄야 하며, 쓰다듬어야 한다. 네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음에도 개의 이름 네로를 안다. 어디서 이름을 알았을까? 네로. 이름을 부르자 내게 덤벼들어 두 발을 ‘나’의 어깨에 딛고 물기 많은 혀로 얼굴을 핥으며 낑낑대는 울부짖음 비슷한 소리를 낸다. ‘나’의 행동이 옳았다.


  심지어 ‘나’, 이제 한스 슈테른이 된 ‘나’는 집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1층에 있는 병원을 개업한다. ‘나’는 외과의이다. 다친 곳을 소독하고, 꿰매고, 약을 바르고, 뼈를 잇고 깁스를 한다. 어떻게 이런 처치를 할 수 있을까? ‘나’는 한스 슈테른이기 때문이다.

  상처는 치료할 수 있어도 ‘나’의 속 상처는 그렇지 못하다. 전쟁 4년. 그동안 휴가를 받아 집에 온 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작품에서는 말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모른다. 그레테는 알 것이다. 하여간 ‘나’ 한스 슈테른이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그레테는 아들을 낳았고, 당연히 ‘나’의 아들이라 주장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어도 점점 혹시 이 아이가 내 아들이 아닐 지 모른다고, 드물게 생각하게 되고, 이것보다 조금 더 잦게 ‘나’가 없는 동안 수시로 휴가를 나온 법무관이자 지금은 베를린 검찰청의 검사로 있는 스벤 보르게스와 그레테가 연인 사이일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 든다. ‘나’ 속의 프랑크푸르트 출신 프롤레타리아 청년 빌헬름 베투흐는 이런 질투가 한 번씩 휘몰아칠 때 참지 못해 황금 갈색의 티치아노 머리카락을 한 아름다운 그레테에게 손찌검을 하고, 곧바로 뉘우치며 사과한다.

  당연히 행운은 오래가지 않는다. 누구의 아들도 아닌 ‘나’. 빌헬름 베투흐가 한스 슈테른이 되면서 ‘나’는 한 가지를 잃었다. 배꼽. 앞 세대의 누구와도 연결하지 못한 유일한 개체. 그래서 ‘나’의 프랑크푸르트 가족 중 한 명인 누이동생 에마 베투흐는 ‘나’를 결코 알아보지 못한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의사에게 보이기 위하여 무턱대고 베를린에 와서 돈을 벌어보고자 하는 에마. ‘나’는 에마로 인해, 에마와 더불어 비극으로 달음박질치기 시작하며,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정말로 ‘나’를 낳은 어머니조차 ‘나’를 알아보지 못한 채 죽는다. 배꼽이 없으니까. 누구와도 이어지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이게 다는 아니다. 짧은 작품이니 궁금하면 직접 읽어 보시는 편이 좋겠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25-04-23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듣도 보도 못한 작가입니다! 근데 환자들이 어마무시하군요!!ㅎㅎ
슐츠와 곰브로비치 근처에 간 작가라...
일단 첫 문장에 끌려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짧은 작품이라서 더 좋군요.
아쉽게도 별4개이지만 정신분석을 다룬 작품이라 구매해야할 각입니다.
폴스타프 님 아니면 이런 작품 있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알라딘 문학 리뷰 제왕 이십니다!!^^

Falstaff 2025-04-23 15:38   좋아요 0 | URL
아휴... 소쿠리 비행기 태우시면 전 멀미합니다.
이 책 괜찮습니다. 전간기 폴란드 유대인 작가까지 올리기는 여러모로 거시기하지만 일단 짧아서 부담이 없고요, 나름대로 독자들 뇌가 섞이게 만들려고 애 쓰고요, ㅎㅎ 뭐 그렇습니다.
 
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술은 왜 예술일까? 밤이 새기도 전에 제일 사랑하는 동무를 세 번 배반한 늙은이의 모습은 어땠을까? 십자가 형을 받고 죽어 이제 내려와 엄마의 무릎에 뉘었어도 성 아드님은 해부학 적 예외가 가능했을까? 예술 표현의 디테일이 이 작품에서 제일 매력적이라고 나는 읽었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책에 치어 옴짝달싹 못한다. 벌써 이게 몇 년 째야. 1차로 오늘 버릴 책. 일주일에 한 번씩 여름까지만 내다 버리면 될 거 같은데... 에휴.



폴린 레아주의 <O 이야기>가 끌린다고요? 흐흐흐 

저는 남정현의 <분지>가 제일 아깝습니다. <우리동네 아이들>과 <제노의 의식>은 직역이었으면 퇴출시키지 않을 터이고요. <피에르 또는 모호함>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비문과 오식 때문에 명작임에도 내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십대 시절부터 읽으려고, 읽으려고 했는데, 저 책 말고 한두 권 더 있을 겁니다, 그것도 눈에 띄는 대로 버릴 건데요, 도가니 쑤시고 어금니 빠질 때까지 못 읽었습니다. 결국 읽지 못하고 갈 거 같습니다.

다 이렇게 사는 것이지요 뭐.


.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잠자냥 2025-04-21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다 내다버리셨죠?! 후다닥=33

Falstaff 2025-04-21 14:16   좋아요 0 | URL
지금 버리고 왔습니다. 오늘이 재활용 수거일이거든요.

잠자냥 2025-04-21 14: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산책도 아니고 빌린책도 아니고 되판책도 아닌 오늘 내다버린 책이라는 신 분야 개척 폴스타프 ㅋㅋㅋㅋ

Falstaff 2025-04-21 14:16   좋아요 0 | URL
앗, 그런가요? ㅋㅋㅋㅋ 듣고 보니 정말 웃기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04-2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훑어보니...) 내다버릴 만 한 책이 종종 보이는군요. ㅋㅋㅋㅋ
<아르망스>는 절판이라 한때 구하려고 애쓰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O 이야기>는 저는 갖고 있습죠... *에헴*

그나저나 폴님이 내다버리면 반유행열반님이 대체 어디다 내다버리느냐고 묻고서는 화라락 모조리 수거해 갈 거 같은 느낌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5-04-21 14:18   좋아요 1 | URL
아르망스는 읽다가 복창 터질 거 같이 답답해서 말씀입죠.
열반인 댁 옥호가 통곡헌인데, 제가 거기까지 납품하기는 쉽지 않고, 쇤네 사는 누옥까지 오실 거 같지도 않으니 ㅎㅎㅎ 할 수 없지요 뭐.

잠자냥 2025-04-21 14:37   좋아요 0 | URL
아르망스 ㅋㅋㅋㅋㅋ 다시 생각해도 웃긴 넘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4-21 17:16   좋아요 0 | URL
이쯤에서 O 이야기 저는 영화로 봤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보다가 중단한 것 같습니다. 도무지 볼 수 없는 영화라서.....

페넬로페 2025-04-21 15: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저도 책을 왕창 정리했어요.
읽지도 않은 책이 너무 많은데 그 책들이 도서관에 다 있더라고요.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되팔고
나머지는 재활용 날짜에 맞춰 여러 차례 버렸어요. 집에는 밑줄 그은 책이 주로 남아 있는데 앞으로는 무조건 읽을 책만 한 권씩 사기로 했어요.
책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는건 죽을 때가 다 되어서 그럴까요! ㅎㅎ

Falstaff 2025-04-21 15:30   좋아요 1 | URL
이제 책을 옮기고 정리하고 뭐 그럴 힘이 부족해져서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오늘 그것 좀 했다고 에휴 허리야, 몇 번이나 곡소리가 나던지 말이죠. ㅋㅋㅋ
저는 다행스럽게 한 번도 안 열어본 책은 한 권도 없고, 끝까지 다 읽지 못한 책은 거의 없는 데요, 하여튼 못 읽은 책은 안 버립니다. 언젠가는 읽을 거다, 싶어서요.
몰로이, 페테르부르크, 말리나 뭐 이런 책들인데 끝장을 보고 말 겁니다. ㅋㅋㅋ

다락방 2025-04-2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정리좀 해야 하는데요. 이거 보고 자극받아 책 정리 실행해보겠습니다!!

Falstaff 2025-04-21 17:31   좋아요 0 | URL
책을 버리면, 심정이 우짭니까, 그것도 다 읽고 나름대로 좋고 덜 좋고 지지고 볶은 책인 걸요. ㅋㅋㅋ 그랴 꽁치 통조림 까서 묵은지에 볶아 쐬주 한 병 낮술로 했더니 이게 또 천국이구먼요.
다락방 님도 정작 책정리 하시면 기쁘지는 않을 거 같아서.... 말입지요.

yamoo 2025-04-21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80권 보냈고 다음주까지 300권 동생에게 보낼 예정입니다. 읽지 않은 책들..쌓아만 놓은 책들이 너무 많아요..

Falstaff 2025-04-21 19: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그래도 보낼 동생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책 쌓는 건 암만봐도 욕심 같아요. 흑흑흑....

그레이스 2025-04-22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스트 흥미롭네요

Falstaff 2025-04-22 15:4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얘기 듣고서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습니다. ㅎㅎ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5-04-23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절 아까워서 어떻게 버리셨습니까? 저도 몇 번 버렸으나 또 버려야 하는데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책의 4분의 1은 버려도 될 것 같아요. 다시 열어 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이요. 완독한 책도 있고 완독하지 못한 책도 있어요.ㅋㅋ

Falstaff 2025-04-23 15:36   좋아요 0 | URL
그냥 짊어지고 사는 것보다는 아깝지만 정리하는 게 ㅎㅎㅎ 개인 복지 상 좀 더 좋은 선택 같더라고요. ^^

꼬마요정 2025-04-23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한박스 버렸습니다…. 곰팡이가 너무 많아서요. 아까운 책들도 많았는데 곰팡이 핀 책은 어떻게 안 되더군요ㅜㅜ

Falstaff 2025-04-23 19:22   좋아요 1 | URL
에구, 곰팡이는 안 됩니다. 버리기 잘 하셨어요!
 
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미국의 목가>와 <휴먼 스테인>을 재미있게 읽고 단박에 필립 로스의 팬을 자임하고 다녔다가 <유령퇴장>에 급실망, 손절을 해? 말아? 적지 않은 세월 헤맸다. 무려 5년이나 망설이다 <우리 패거리들>을 읽고 으악, 이게 내가 알던 필립 로스 맞아? 작품 속에 간혹 경박한 면이 조금 눈에 뜨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폭력적으로 가볍게 입을, 또는 손모가지를 놀리다니 이제는 정말 가까이할 수 없군. 일단 마음먹었다가,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다 싶어 딱 한 번만 더 읽는다, 하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은 책이 <샤일록 작전>이다. 내가 기억하는 유대인으로서의 필립 로스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으면서,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에 대하여 특별한 프라이드도 갖지 않는, 그러니까 유대인이라기 보다 마치 한국계 미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렇듯이 그냥 유대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보이는 수준이었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그렇게 보였다는 거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샤일록 작전>을 읽으면서 세계 유대인 공동체에서 (어쩌면) 로스가 튀는 행동을 해 오랜 세월 유럽쪽에 머물렀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모르겠으나,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이슬람 지역에서 이슬람교도들과 함께 생활한 유대인들을 주축으로 한 시오니스트들 하고는, 아주 내놓고 그러지는 못했겠지만, 서로 앙금 비슷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이 책에서도 필립 로스는 시오니즘을 내놓고 반대하지 않는다. 그럼 어떤 식?


  로스를 읽으면서 아주 예외적으로 <샤일록 작전>에서 그는 놀랍게도 포스트모던이라 할 수 있는, 그러나 이젠 벌써 클리셰가 되어버린 방식을 채택한다. 1988년 1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친척 앱터가 뉴욕의 필립 로스에게 전화를 해 이스라엘 라디오의 보도 내용을 알려준다. 나는 분명히 뉴욕에 있는데, 또다른 필립 로스가 예루살렘에서 폴란드의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에서 ‘공포의 이반Ivan’이라 불린 존 데미야뉴크의 전범재판을 방청하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혔고, 라디오에서도 필립 로스가 재판을 방청했다고 소개했다는 거다. 이를테면 문학 작품 속에 간혹 등장하는 “또다른 나” 혹은 “페르소나”가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스위트룸 511호에 묵고 있으며, 스위트룸에서 강연회를 겸한 팬들과 만나는 행사로 할 예정이라고. 정작 진짜배기 필립 로스는 책 한 권을 끝마치고 그간 쌓인 긴장을 풀 겸해서 책을 끝마치면 거의 언제나 그랬듯이 맨해튼의 방 두 개짜리 호텔 스위트룸에서 아내 클레어와 함께 거의 5개월 동안 피난민처럼 지내고 있는데 말씀이다. 웃기지? 방 두 개짜리, 맨해튼의 이름있는 호텔 스위트룸에서 5개월 동안이나 불쌍하게도 “피난민처럼” 지내고 있다니 말이지.

  이스라엘의 킹 데이비드 호텔 스위트룸 511호에서 로스 흉내를 내고 있는 미친놈의 입을 빌려, 필립 로스는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이상적이기 때문에 전혀 가능성없는 이스라엘-이슬람,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기막힌 방안을 제시한다. 오죽했으면 나도 읽으면서 화들짝 놀랐겠느냐 말이지.

  이스라엘의 유명한 작가 아하론 아펠펠드가 뉴욕의 로스에게 전한 말에 의하면, 킹 데이비드 호텔의 필립 로스는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의 ‘공포의 이반’, 존 데미야뉴크 전범재판을 방청하기 바로 전에 폴란드 그단스크의 모처에서 레흐 바웬사를 만나, 언젠가 폴란드에서 노동 솔리다리티가 정권을 잡을 때, 폴란드 내에서 유대인들의 재정착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주장했단다. 예루살렘의 로스가 주장하기를,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다시 자기들이 살던 유럽으로 이주하는, 역 디아스포라가 이루어지면, 이스라엘의 인구가 대폭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선을 1948년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어서,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역시 1948년 이전처럼 별 다툼 없이 서로 이웃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만일 지금처럼 미국과 이슬람 세력간의 무력충돌이 계속되면 다만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두 진영 가운데 한 쪽에 의하여 원자폭탄이 날아들어 한 쪽을 거덜내 완전한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는 주장이다. 만일 생존자가 이스라엘이라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지구인이 몽땅 멸망하는 순간까지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예전 나치들과 조금도 다를 것 없는 신세로 떨어질 것이며, 전세계 유대인들도 이마에 불그죽죽하게 찍힌 낙인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란다. 당연히 너무 순진하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과하게 낭만주의적인 발상이지만, 탁 읽어보면 어찌됐던 간에 아이디어 하나는 기발하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인물 한 명. 존 데미야뉴크. 1920년생 우크라이나인. 1940년에 소련군에 징집되어 2차 세계대전에 참전, 1942년에 독일군에 포로로 잡힌다. 북한을 비롯한 붉은 군대 소속원들은 포로로 잡히는 것을 수치로 알았고, 포로였던 병사들이 교환으로 귀국을 해도 경멸을 받았으며 심할 경우엔 범죄인처럼 집단 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소련 시절의 숱한 수용소 소설 읽어보시라. 내 말이 맞다. 스물두 살의 데미야뉴크는 나치군이 유대인 수용소에서 근무할 인원을 뽑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저요, 저요, 손을 번쩍 들어 몇 군데의 절멸수용소에 들어간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데미야뉴크가 특히 트레블링카 수용소에서 공포의 이반이라는 별명으로 유대인으로 이루어진 존더코만도스Sonderkommandos를 지휘하면서 나신 상태로 가스실로 향하는 수만, 수십만 유대인들에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갖은 악행과 고문과 폭행을 저질렀다는 거다. 천운을 타고나 수용소에서 생존한 자들이 그가 ‘공포의 이반’이라고 특정한 반면, 존 데미야뉴크, 본명 Ivan Mykolaiovyxh Demjanjuk는 무려 43년도 넘게 지나 목격자의 기억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이 그곳 교도관이었던 것은 맞는데 공포의 이반은 다른 교도관이었다고 주장한다. 전쟁이 끝나고 1951년에 미국으로 이민 가 포드 계열사에서 자동차 정비일을 하던 데미야뉴크는 1986년에 미국 경찰에 전범으로 체포되어 신병이 이스라엘로 넘겨진다. 이후 1988년에 첫 재판을 받는데, 이걸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511호에 머무는 가짜 필립 로스가 방청을 했다는 거. 하여간 1심에서 데미야뉴크는 유죄, 사행 판결을 받지만 1993년 대법원에서 피고의 진술을 받아들여 진짜 ‘공포의 이반’은 다른 교도관이었다고 판결, 석방되어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2001년에 미국 정부에 의하여 절멸 수용소에서 근무했던 것이 확실하다고 결정이 나 다시 체포되어 2005년에 이번엔 유럽, 독일이나 우크라이나 또는 폴란드로 강제송환할 것을 결정하지만 정작 독일 법정으로 보내진 것은 2009년 5월, 그의 나이 89세 때였다. 뮌헨에서 있었던 1심 결과 데미야뉴크가 2만9천 명의 유대인 학살에 관련이 있는 자라고 판결해 5년 형을 받았으나, 데미야뉴크는 이를 다시 부인해 항소했고, 독일 정부는 일단 그를 석방했다. 아무런 추가 정보가 없어서 모르겠는데 내 생각으로는 보석 아니었을까 싶다. 재판은 계속 진행되지 못하고 2013년 3월 17일이 도래해, 그는 최종판결을 받지 못하고 독일의 노인 복지 시설에서 93세의 나이로 죽었다. B급 문화의 대변인인 나무위키는 엄밀한 의미에서 데미야뉴크는 무죄인 상태로 죽었다고 썼다.

  필립 로스는 <샤일록 작전>을 1993년에 써서 세번째로 펜/포크너 상을 받았다. 펜/포크너 상을 몇 월에 주는 지 모르겠으나, 1993년은 이스라엘 대법원에서 데미야뉴크에게 무죄를 선고한 해인데, 이 책에서 로스는 데미야뉴크가 빼도 박도 못하게 ‘공포의 이반’임을 확신한다. 독일 법정에서도 2만9천 명의 살해에 관련이 되었다고 했지, 그가 공포의 이반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공포의 이반으로 고문과 학대와 폭력을 <샤일록 작전>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실제로 했다면 유대인 관련해서는 거의 무조건적, 습관적으로 엄벌에 처하는 독일 법정이 왜 5년형만 때렸을까?

  하여간 나는 좀 이상하다. 지금 데미야뉴크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범인으로 확정하지 않은 시점에 한 인간을 뒤꿈치로 자근자근 밟고 있는 거다. 실제로 이 데미야뉴크를 이반으로 설정해서 다큐멘터리, 드라마 같은 것도 만들었다. 시청률과 박스오피스는 진실에 우선하니까.


  하나 더. 내 중딩 시절에는 확실하고, 고딩 시절에는 기억이 없는 거 보니까 그랬던 거 같은데, 독일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대표하는 작품은 안네 프랑크가 쓴 <안네의 일기>가 거의 유일했다. 확인하기 위해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을 검색해보니까 소설은 1979년, 영화가 1982년이다. 그럼 맞다. 내 청소년기 시절에는 홀로코스트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

  <샤일록 작전>에서 필립 로스 역시 1960년대까지 나치에 의한 유대인 멸절을 그렇게까지 강하고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나처럼 <안네의 일기> 정도면 충분했다고.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다수의 홀로코스트 작품이 있었겠지. 로스의 주장은 ‘세계인의 주목을 크게 받을 만큼’이 아니었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러다가 1967년 6일 전쟁이 벌어지고, 이스라엘이 거의 완벽하게 이슬람 세계에 승리하면서 영토를 넓히기 시작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전세계적으로 홀로코스트가 알려지기 시작했단다. 유대인은 지난 2천년 동안 차별받고 탄압받은 역사와 아울러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중동부 유럽에서 있었던 불행한 멸절 시대를, 돈과 정치력과 문화의 힘으로 세계만방에 알림으로써, 1차, 2차, 3차…n차 중동전쟁을 통한 무슬림에 대한 가혹행위를 무마하고자 했던 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거, 나도 독후감을 통해 자주 주장했던 것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인 스스로가 유대인인 필립 로스의 입과 펜을 통해 나와 같은 질문을 던지니까, 비록 좋은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반갑기는 했다. 반가워? 아니, 아니. 이런 비극적인 사건에 적당한 다른 단어 없을까? 하여간 눈이 번쩍 띄었다니까.

  결론을 말할 시간이다. 분량이 너무 많다. 비슷한 이야기가 자꾸 중첩되어 지루한 느낌이 든다. 특히 “또 다른 나”와 “페르소나”와의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별점을 준다면 셋 정도가 좋겠다고 생각이 들 즈음, 역 디아스포라를 주장하고, 중동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유행이 터져 별 하나 추가, 넷 정도가 마땅하지 않을까. 필립 로스가 60세에 발표해 펜/포크너 상을 받은 작품이다. 괜히 내 독후감과 선입견 때문에 이이의 작품을 멀리하실 이유는 전혀 없다. 나는 말했다. 분량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했다고. 지루한 스토리를 굳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메모해둔 것이 아깝기는 하네.) 이것만 인용하자. 500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늙은 스파이 스마일스버가가 필립 로스에게 하는 말이다.


  “유대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 역사를 배반했소. 그리스도교인들이 우리에게 한 짓을 우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했다는 뜻이오. 그들을 경멸과 예속의 대상인 ‘타자他者’로 만들어, 인간의 지위를 빼앗았소. 사실은 이것이오. 팔레스타인 민족은 전적으로 무고하며, 유대 민족은 전적으로 유죄다. 내게 있어 경악스러운 일은 소수의 부자 유대인이 PLO에 거액 기부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유대인이 자기도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오.

  (중략)

  언젠가 팔레스타인이 승리한다면, 그래서 여기 예루살렘에서, 예를 들면 지금 데미야뉴크 씨의 재판이 열리는 바로 그곳에서 전범재판이 열린다면, 그 재판에서 거물들뿐만 아니라 나 같은 하급 관리들도 다뤄진다면,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비난 앞에서 나 자신을 변호할 말이 하나도 없을 것이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25-04-2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필립 로스 손절했어요. <에브리맨>이 좋아서 입문했고, 몇 권 읽어봤는데, 제겐 카버가 더 맞는 듯합니다. 그래서 로스 책 모두 처분했어요..ㅎㅎ

Falstaff 2025-04-21 11:20   좋아요 0 | URL
평양 감사도 싫으면 안 하는데 까짓 소설가야 말 하면 뭐합니까, 싫으면 때려 치우는 거지요. 잘 하셨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