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속삭임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도메니코 스타르노네 지음, 나윤덕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도메니코 스타르노네의 책이 우리나라에 상륙한 건 어쩌면 우리나라에 넓은 팬덤을 가지고 있는 줌파 라히리가 이이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서 미국 시장에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된 것일 수 있다, 라고 들었다. 스타르노네의 책을 직접 읽어보면 라히리가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우리말 번역서를 읽을 수 있었을 거라고 믿을 만큼 독특한 작가이다. 이이는 주특기로 가족이나, 가족과 비슷한 친밀한 사람들, 구성원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세상에 중요하고 복잡한 일이 무진장 많겠지만 어느 곳에서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다 그렇거니 하고 무심하게 지나치는, 참으로 다양하기 그지없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상처 주고, 상처받는 일. 문제는 내가 상처받는 건 귀신같이 빨리, 민감하고 유별나게 알아차리지만, 상처주는 일은 그게 왜 상처가 되는 말, 태도, 행위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 그래서 그게 당하는 사람한테 일종의 가벼운 폭력인지 꿈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하던 짓 계속, 한 번, 두 번, 세 번… n번. 상대는 그때마다 가슴과 뇌와, 특히 전두엽에 무수하게 실금이 가, 어느 날 드디어 와장창창, 전두엽이고 심장이고 간에 폭발하는 현상을 우리는 뭐라고 한다? 파탄이라고도 하고, 이혼이라고도 하고, 가출 또는 독립이라고도 하건만, 상처를 주고받은 당사자는 여전히 도대체 어떻게 이 단계까지 왔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고는 있었어도 정말로 파투가 날 줄은 몰랐거나, 아니면 설마 저것이 나 없이 살 수 있겠어, 오만방자했던 것이었겠지. 부모자식 사이에도 그렇고, 부부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니 뭐 하러 입 아프게 그걸 말로 해 그냥 그런 것이지. 연인관계도 그렇고, 형제자매 사이도 이하동문이다.

  이런 걸 도메니코 스타르노네는 기가 막히게 포착한다. 가뜩이나 21세기 초장부터 우리나라 출판계에 새롭게 블루칩으로 떠오른 이탈리아 소설 가운데서도, 내 취향으로만 말하자면, 이이만큼 우리 주변 찌질한 인간들의 집합인 가족들의 내밀해서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를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꺼내 독자가 앉은 자리 바로 옆에 놓아두고 시침 뚝 떼는 작가는 드물다. 그렇다고 이이의 이야기가 202X년의 동아시아 끝자락에 있는 우리나라 가족들의 이야기하고 비슷하다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문화의 차이가 있고, 의식 수준과 생활패턴이 다른 사람들 이야기라서, 오호, 이 사람들은 그때부터 이렇게 살았구나, 흥미로울 수 있겠지만, 그러나 시간과 장소를 떠나 이들의 삶에 호흡을 같이 해 읽어가면서 등장인물의 행위와 생각에 동의하는 거야 설마 다를 수 있으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이기에 서두가 기냐고? 좋다. 시작해보겠다.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피에트로 발레가 화자 ‘나’로 등장하는 1부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피에트로 발레는 나폴리에서 전기 기사로 일하는 아버지와 주부 엄마 사이의 네 남매 가운데 맏이로 태어나 가족의 희망을 등에 짊어지고 유년, 소년, 청소년, 청년 시절을 보냈다. 이번에 읽은 책이 기껏 세번째 스타르노네의 작품이지만, 공통점이 있으니, 주인공의 고향이 나폴리, 주로 살고 있는 곳이 로마, 가끔 나폴리에 전처와 함께 사는 아이들 만나러 가든지, 자식의 단기 여행 기간 동안 손주 봐주러 가든지, 하여간 가끔 고향에 발길을 한다는 거. 이 책에서는 피에트로의 고향이 나폴리이고 피에트로의 아내 나디아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하여 공부하는 대학이 나폴리에 있기는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는 점도 있다. 앗, 지금은 나디아가 나올 시간이 아니다.

  피에트로가 그리 특출난 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네 형제 가운데 그래도 공부 좀 잘한 유일한 자식이라서 그랬던 듯하다.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어른들이 보기에 싹수가 있고 뭐 그래서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거였다. 근데 사실을 알고 보면 좀 비극적이다. 피에트로가 보기에도 형제 가운데 그나마 공부에 소질이 있는 건 자기 혼자인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공부를 좀 하는 것뿐이지 그쪽 방면으로는 열심히 해봐야 될 성싶지가 않다. 그냥 좀 하는 것과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루는 건 엄연히 차이가 나는데, 워낙 학문과 거리가 먼 집안 출신이라 피에트로 정도면 적어도 나폴리 수재급이라 여기는 분위기가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 없었다. 재빨리 알아챈 피에트로는 소년기,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하여 특급 모범청소년 모드를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이 결과 피에트로는 매사에, 자기가 특출나지 않으니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매사에 적극적이고 전념을 다하는, 열심히, 열심히, 열쒸미 하는 것이 몸에 배게 되었고, 특히 남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하여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았다. 이렇게 좀 세월이 지나니까 그냥 보통으로 사는데도 저절로 남들 보기에 매사 성실한 모범청년이 저절로 된 거였다. 물론 보이는 것과 피가 혈관에서 벌떡벌떡 뛰는 젊은이의 진짜 모습하고는 차이가 나겠지만.


  하여간 공부 잘하고 성실한 청소년 피에트로는 좋은 대학 국문과에 진학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계속 공부할 재질도, 돈도 부족해서 졸업과 함께 로마의 한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임용되어 오랜 세월이 지나 정년을 맞을 때까지 교편을 잡게 되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하자면, 교편敎鞭, 이게 시대에 뒤떨어진 단어다. 가르침의 회초리. 정확하게 말하자면 말 안 듣거나 가르쳐 줘도 알아듣지 못하면 알아들을 때까지 뒤지게 패도 괜찮은 채찍을 말한다. 근데 요즘에 학생이 말귀를 못 알아듣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짓을 한다고 채찍은커녕 30센티미터 대나무자, 회초리, 지시봉, 대걸레자루, 곡괭이자루, 야구방망이로 두드려 패도 괜찮은 겨? 우리 또래 교사들이야 취미생활로 아이들 차려 시켜놓고 원투 스트레이트, 어퍼컷, 훅, 뒤돌려차기를 밥 먹듯이 했지만 요즘에 교편 함부로 휘둘렀다가는 해고통지서와 함께 덤으로 콩밥까지 먹는다.

  이제 교사가 되었으니, 발레 선생께서는 일찌감치 터득한 지혜, 자기는 죽어도 특급교사가 되지 못할 푼수임을 충분히 감안해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말 그대로 전념을 다하기 시작했다. 다른 선생들은 전부 교탁에 앉아 수업을 진행했지만 발레 선생께서는 단 한 번도, 단 일초도 의자에 앉지 않고 서서, 수업시간 내내 집중한 상태로 학생들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상의 것을 전해주기 위해, 말 그대로, 몸바쳤다. 얼만큼이냐 하면, 학생들도 알 정도로. 아오, 저 선생은 비록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진짜로 열심히 가르쳐주려고 하는구나, 이리 인정할 수밖에 없게. 이 학교에 누구보다 총명하고, 로마 교외지역에서 30년에 한 명 나올까말까 할 수준의 똑똑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테레사’라는 1학년 학생이 있었는데, 가난한 집안의 준천재급 학생들이 항용 그러하듯 성격이 좀 삐딱해 가자미 눈알을 하고 있었음에도, 피에트로 발레 선생을 향해서는 슬금슬금 존경심이 솟구치더라는 거였다. 그럴수록 담임이기도 한 발레 선생에게 가능한 한 대답하기 어려운 짓궂은 질문만 쏟아대고, 그럴 때마다 선생은 또 선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다 하는 것처럼) 설명을 하려 하는 걸 어찌 몰라라 하겠느냐는 말이지. 세상에 참. 이런 담임-학생 관계가 고등학교 3년 내내 이어진다.

  테레사가 빛나는 졸업장을 타고, 로마 최고의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해, 피에트로는 당연히 기억 속에 그런 똑똑한 아이가 있었지, 수준의 추억으로 남았건만, 졸업하고 1년쯤이 지난 오후에 테레사한테서 온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선생님, 저 테레사예요. 진작에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이제야 안부 여쭈어서 죄송해요, 호호호. 오늘 시간 있으세요? 그냥 저녁이나 한 번 했으면 좋겠어요, 어쩌구저쩌구. 이렇게 1년 만에 약속을 하고 학교 앞에 서 있으니 테레사가 은빛나는 모터사이클을 붕붕거리면서 몰고 와 헬멧을 씌워주고 뒷자리에 피에트로를 앉히고는 냅다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그리고 조금 후, 고개를 뒤로 제친 테레사는 난데없이 피에트로 선생의 목을 오른팔로 감싸더니 다짜고짜 뜨겁고, 축축하고, 깊숙한 키스를 퍼부었으며, 이때부터 3년 동안 둘은 격렬하고, 뒤틀리고, 폭발적이고, 위험한 연애를 펼친 거디었던 거디었다.


  뜨겁고 강한 두 사람의 연애. 어찌 잘 될 수 있을까? 당연히 옆에서 보기에도 아슬아슬하게 무려 3년 동안 지속하더니 이제 남은 건 서로 잘, 좋은 모습으로 헤어지는 일인 것 같았다. 서로 그런 단계임을 알았다. 이때 테레사가 제의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만일 들통이 난다면 영원히 매장될 만한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기로. 이런 격렬하고 위험한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둘은 될 수 있는 대로 이별을 미루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그랬겠지. 그리하여 먼저 테레사가 피에트로에게, 그리고 피에트로 역시 테레사에게 만일 다른 사람이 알게 되고, 그것이 사회 일반에게 퍼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비밀을 이야기한다.

  피에트로는 확실히 그랬다. 치명적인 잘못을 테레사에게 말했다. 테레사는? 그렇게 했는지, 아니면 거짓말을 하나 지어 이야기했는지 작품이 끝날 때까지 독자는 모른다. 그리고 며칠 후, 이들은 서로에게 낯설기만 한 점잖은 태도로 서로의 앞날에 행운을 빌며 안녕을 고한다.

  세월이 흐른다. 무정하게 흐른다. 테레사는 과학적 두뇌에 드디어 꽃이 만발하게 피어 전액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위스콘신 대학으로 공부하러 떠나고, 이어서 MIT, 하버드 등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나이가 들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의 반열에 오른다. 피에트로는 역시 성실하게 교육자의 길을 걷다가 이탈리아 교육계의 문제점을 담은 에세이집 두 권을 내면서 교육계의 스타로 등극해 일년 365일 바쁘게 전 국토를 종단하면서 사인회와 강연회, 세미나에 참여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건 같은 학교 대수학 교사였던 나디아와 결혼 후 이야기로, 나디아는 나폴리의 한 대학에서 자리를 얻기 위해 공을 들이다가 실패하고, 맏딸 엠마, 그 밑으로 아들 둘을 낳고 키우느라 죽을 똥을 싼다.

  도메니코 스타르노네가 항용 그러하듯이 피에트로 입장에서 본 80평생이 1부를 이룬다면 2부는 피에트로와 나디아의 맏이 엠마가 본 부모, 3부는 피에트로의 첫 애인 테레사가 여든 살이 되었을 때 피에트로가 교육관련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일이 생겨 그 자리에서 연설하기 위하여 정말 오랜만에 로마로 가기 전에, 그리고 로마에 가서, 테레사가 본 일, 생각한 것 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연히 테레사가 화자로 등장하는 3부에, 하도 이탈리아 교육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지루했던 독자로 하여금 눈이 초롱초롱해지게 만드는 반전이 등장하건만, 그건 내가 말해줄 수 없지.

  하여간 재미있는 작가이고 작품이다. 아직 스타르노네의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은, 명작까지는 아니니까 가뜩이나 어려운 시절에 지갑을 여시라 말은 쉽게 못하겠다. 그래도 이탈리아 소설이 블루칩인 건 아실 터이니 비교적 저렴한 책값으로 즐거운 하루 이틀을 보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은 확실하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5-05-06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이 작가 정말 좋아하시네요. 언젠가 읽어봐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몇 권 사고 싶어지네요~^^

Falstaff 2025-05-06 10:44   좋아요 1 | URL
재미난 양반이예요. <끈>이 인상 깊었습니다. ㅎㅎㅎ
 
여기 있잖아요
나탈리 사로트 지음, 클로에 고티에.권현정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제 네 권째 나탈리 사로트를 읽는데, 오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탈리 사로트가 정말 천재라서 그가 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①애초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부터 평균 이상, 전 인류의 상위 1~2퍼센트 안에 드는 고급 두뇌를 지니고 ② 무지하게 좋은 커리큘럼을 가진 교육과정을 거친 인간들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썼는지, 아니면 어떻게 하다 보니 굳어진 스타일을 동 시대의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평론가들이 마구 띄워주는 바람에 천정 높을 줄 모르고 이름값을 날렸는지, 둔한 내 머리로는 가늠할 수 없다고. 네 권까지 달린 것이 아까워, 최근에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 467번 <향성>은 읽어봐야겠다 싶었다가, 그래도 내돈내산하기 겁이 나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다.

  그나마 사로트의 희곡은 소설에 비해서 그나마 접수가 되는 편이다. 도무지 적응하기 쉽지 않더라도 눈에 보이면 일단 읽고 보는 거, 이것도 병이지? 나도 미친다, 미쳤다.


  본문이 77페이지에서 끝나는 짧은 희곡. 짧다고 우습게 봤다가는 쌍코피 터진다. 원래 사로트가 그렇다. 어느 작품 하나 빼지 않고 다 짤막하다. 근데 뇌세포가 도무지 적응하기를 꺼려한다. 대단한 공통점이다. 소설의 경우엔 소위 신소설, 누보 로망, 찬쉐가 쓴 <오향거리>의 주인공 X여사처럼 사물을 보긴 보되 거울에 반사된 모습으로만 보다가 보살급의 남편이 현미경을 사주자 현미경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사로트 표 누보 로망도 로브그리예처럼 사물과 사람을 현미경을 통해 관찰하는 것 같이 미시적 묘사로 일관하는 바람에 독자의 인내심을 극한까지 치닫게 만든다. 거기에 비하면 희곡은 얼마나 친절한가 말이지. 내가 지금 이렇게 쓴다고 해서, 희곡은 그러면 읽으면 딱 감이 잡히겠구나,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귀족의 후예답게 사로트의 희곡은 프랑스의 유구한 부조리 연극의 바탕 위에 놓여 있다. 쉬운 말을 어렵게 하자면 그렇다. 그냥 쉽게 말하면, 배우가 말하는 대사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거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남1, 남2, 남3, 그리고 여. 대개 남자들과 여자가 나오면 남자들은 헛소리만 하고 여자는 진리의 말씀을 시전하다 결국 남자들에 의해 망가지는 드라마가 보통인데, 이건 거의 전적으로 대개의 (극)작가가 이런 구도로 (극)작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독자가 갖게 되는 선입견이다.

  등장인물은 한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 팀원들인 것으로 보이고, 방금 업무상 회의를 마친 듯하다. 회의를 하다가 여자는 무슨 의견을 말하려 하다가 할듯 말듯, 결국 아무 의견 없이 회의를 끝낸다. 이제 해산해 밖으로 나온 남1과 남2는 왜 여자가 의견을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주인공인 남2가 여자에 대하여 말한다.


  “아, 알아요… 명석한 두뇌는 아니죠… 그렇지만 우리가 말하고 있었던 건 누구나… 훌륭한 지식인이 아니어도… 그녀는 판단할 수 있어요, 그렇죠, 다른 사람들처럼. 그러니 여기, 그녀 안에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 여기… 이곳에… (손가락 두 개를 이마에 갖다 댄다.) 여기에 그녀의 작은 생각이 있어요… 그런데 왜 ‘작은’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안심하고 싶은 걸까요… 그녀는 그녀 안에 자기 생각이 있어요, 생각이 여기 있죠, 감춰진 채. (하략)” (p.10)


  제목 <여기 있잖아요>에서 “여기”란 여자의 머리. 뇌 속, 생각하는 장치가 있는 위치를 말한다. 또는 여자 자신이 있는 곳일 수도 있다. 나는 위 대사를 읽고, 이 대사가 남2의 긴 대사 가운데 거의 처음에 나오는 것이라서 그랬는지, 나탈리 사로트가 페미니즘에 관하여 말하려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남2가 분명히, “여자도 생각할 줄 안다. 비록 작은 생각이지만.”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근데 사로트가 적극적인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페미니즘 작품도 쓴 거 같지 않은데…. (더 읽어보자.)

  남1이 퇴장하고 남3이 등장한다. 잠시 후 객석에서 누군가 종이를 구겨서 뭉친 걸 무대로 던진다. 희곡에서는 남3이 그걸 한 손으로 멋지게 잡아 펼쳐 읽은 후에 남2에게 보여준다. 종이에는 “불관용”이라 적혀 있다. 불관용不寬容. 관용을 베풀지 말아라? 관용을 베푸는 것이 불가능하다? 뭐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뒤에 붙어 있는 해설에 불관용에 관하여 나와 있어 그걸 읽어보았는데도 그렇다. 어제 혈액검사 하느라고 하루 쫄쫄 굶고 빈속에 소주와 막걸리를 부어 꽐라가 된 후유증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사실 어제 염하고 시체 비슷한 수준까지 갔다가 오늘 하루 벌벌 기었지 뭐야, 분명 중요한 메시지 같은데도 모르겠고, 모르겠는 것을 알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오늘은 좀 봐주시라. 술이 웬수다.

  하여간 주인공 남2는 회의 때 여자가 의견을 내지 않은 데 대하여 화를 낸 걸 사과한다. 다음에 여자가 대사를 한다. 여자의 대사를 보면 남2가 이들의 조직에 조금 더 우월한 권력을 쥐고 있는 것 같다.


  “하, 제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결코? 제가 거위처럼 목에 밀어 넣기만 한다? 당신… 당신은, 당신만 ‘생각하신다?’… 당신은, 당신은 ‘아신다?’ 우리는 그것을, 당신의 ‘진실’을 ‘목구멍에 밀어 넣지’ 않아요, 그냥 밀려 들어오는 거예요, 우리는 그저 ‘받는 거예요’. 게다가 저는 그렇게 했어요… 저는 불평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 말이 되는 소리예요?” (p.17)


  그럼 이건 뭘까? 남2를 비롯해 여자에 비해 조직에서 조금 더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1과 남3은 여자의 의견을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 의견을 받아 그것을 자신(남2)의 의견에 동의한 것처럼 만들어서, 세계사적 의미로 과장해 말씀드리자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극)작가는 결코 확실하게 말하지 않지만, 그렇게도 읽힌다. 사로트 자신이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17년 러시아혁명 당시 가족과 함께 소비에트 정권을 피해 파리로 망명을 했으니 스스로 느끼고 있는 의식의 범위가 세계사적 의미로 확장할 수도 있을 터이니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불관용의 딜레마가 한 번 더 내 머리 속에서 터져버리는데, 불관용의 법칙을 어디에 적용하느냐, 이게 문제다. 제목에 밝힌 것처럼 “여기”에 불관용의 딱지를 붙여? 불관용이란 말 자체가 문제라면, 불관용의 반대말인 관용이란 단어도 문제다. 관용이 있으니 불관용이 있을 것. 관용과 불관용은 각종 소통의 부재로 야기되는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불관용하느냐, 이것은, 어떤 문제까지 관용하느냐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고, 사로트가 겪은 20세기 전체에 걸쳐 이 관용과 불관용은 다른 어느 시대보다 커다란 비극을 만들었으니.

  그럼 관용과 불관용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사로트가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그라치아 델레다 지음, 나윤덕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하긴 이탈리아 어느 지역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그라치아 델레다가 1876년에 태어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살던 샤르데냐 섬사람들의 외지인에 대한 텃세는 여간 만만하지 않았다. 그런데 반대로 말하자면, 같은 주민들은 대단한 결속력으로 결집되어 있었을 것이다. 뭐 당연히 서로 이익의 충돌이 되지 않는 선에서이기는 했겠지만. 그리하여 외지 사람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와 괜찮은 집안 사람과 혼인하고, 이후 성실하게 처가의 업을 이어 성공을 할 정도라면 당연히 한 작품의 주인공 또는 주인공을 적극적으로 훼방하는 갑급 조연 정도를 맡는다. 그런데 이 작품 속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보다 조금 무게가 나갈 엑스트라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반면에 섬 구성원의 한 명이, 그것도 귀족 집안의 따님께서 야반도주에 성공해 밤배를 타고 바다 건너 장화를 닮은 반도에 나가, 한 평민과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해서 아들 하나를 낳고 잘 살다가 아쉽게도 이른 나이에 죽었는데, 이 아들이 나중에 머리통이 커지자 어머니의 고향에서 살고 싶다며 귀향했을 경우에는 어떨까? 나도 궁금했다. 뭐 놀랍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는 동네가 쌍수를 들고 귀족도 아닌 청년을 환영한다. 음, 그렇군.

  그라티아 델레다는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는 여성 작가. 전에 <악의 길>을 읽은 기억이 나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 읽었다. <악의 길> 역시 샤르데냐 섬의 주도 누오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베리즈모 오페라였다. 그걸 읽으면서 재미는 있지만 암만해도 이젠 구식이 된 이야기라서 아쉽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여기에다 그 동네 사람들의 핏줄에 밴 가톨릭 종교 의식儀式과 의식意識을 완전히 도배하는 바람에, 엎어치고 메쳐도 골수 유물론자인 나는 3미터 파고 속에 통통배 탄 것처럼 멀미가 나 견디기 쉽지 않았다. 작품도 이미 옛날 옛적 스타일이라서 내가 혹시 80~90년 전 유럽사람이라면 모를까 21세기도 웬만큼 달려온 이 시점에 굳이 참아가면서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라고 쓰면 틀림없이 과장, 작품에 대한 혹독하고 무책임한 비평일 터이니 읽는 분께서 좀 디스카운트해 이해하셨으면 좋겠다.


  샤르데냐 섬의 갈테 마을에 악마처럼 혈색이 붉고 폭력적인 귀족 돈 차메 선생이 살았다. 이이는 성녀같이 아름답고 차분한 마리아 크리스티나 마님과의 사이에 위로 아들 둘, 아래로 딸 넷을 두었으니, 생떼 같은 두 아들은 전쟁에 나가서 죽었는지 염병을 앓다가 죽었는지 하여간 작품 시작도 하기 전에 세상 하직했고, 나이 든 순서대로 루트, 에스테르, 리아, 노에미 이렇게 네 따님이 있었다. 돈 차메가 처음부터 성질 더럽고 폭력적인 건 아니었다. 심지어 두 아들을 잃었을 때까지도 안 그랬다. 천사 같은 마리아 크리스티나 마님이 세상을 접으면서 돈 차메는 조상들이었던 남작들의 난폭한 성질이 발현된 것처럼 딸들에게 엄격하고 못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네 딸을 집안에 고립시켜놓고 젊은 남자가 집 밖에 세 번만 지나가면 사실여하를 불문하고 딸들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사람을 꼬였길래 남자가 집 앞에서 어정거리게 했느냐고 닦달을 할 정도였다. 딸들한테만 그런 것도 아니어서 주민들과도 온갖 소송과 불평, 불화를 만들었고, 하루 종일 이웃집 처마 아래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욕설이나 험한 시비를 붙자고 해 사람들이 아예 길을 돌아다녔으니 오죽했겠을까.

  이 핀토르 가문의 따님들 가운데 셋째 따님이 제일 예쁘다던데, 이 셋째 따님 리아 아가씨가 가뜩이나 좁은 섬에서도 지루한 일상만 해야 하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귀족 딸들을 노예처럼 일을 부리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못살아, 못살아, 나는 못살아, 유행가 가락처럼 입에 달고 살더니 달도 없는 새까만 밤에 깨끔발을 하고 그대로 내빼 버렸다. 소문에 의하면 이 집의 충직한 하인 에픽스가 리아 아가씨를 연모하여, 연모가 뭐야, 사랑도 그런 사랑이 없어서, 리아 아가씨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아가씨의 행복을 성취시켜주기 위해 기꺼이 함께 동네 바깥 다리까지 동행을 해주었고, 거기서 지나가는 마차에 태워 항구에 도착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었다는데, 야밤에 무슨 마차, 아마도 뭔가 수를 써주었겠지. 하여간 부두에 도착해 날이 밝자마자 연락선을 타고 이탈리아 반도로 건너간 리아는 언니들과 동생한테 편지를 부쳐 말하기를, 자기는 가축 파는 상인과 결혼해 차비타베키아에서 유복하게 살고 있다고. 얼마 후에 다시 편지를 보내 알리기를 아들을 낳았다고. 자매들은 편지를 받고 결코 리아에게 답장하지 않았다. 평민, 그것도 가축상인과 결혼을 했으니 이제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한 꼴이라 그랬다는데, 정말 그래서 그랬는지, 아니면 세 자매는 결혼은커녕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팍팍하게 살고 있건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은 리아한테 질투가 나서 그랬는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리아가 낳은 아들이 자기들의 조카인 건 확실해서, 리아한테는 엽서 한 통을 보내지 않았어도 조카 자친토 앞으로 출생 선물 같은 걸 보냈고, 리아가 젊은 나이에 숟가락 놓은 다음부터, 자친토는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마다 이모들한테 열심히 안부편지를 부쳤던 모양이다.

  악마처럼 혈색이 붉은 돈 차메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어느 날 마을 밖 다리, 하인 에픽스가 리아를 배웅했던 곳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는데 시신에서 외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심장발작 때문에 죽었거니, 당시엔 과학수사나 부검 같은 말이 없어서 그렇게 결론을 내고 그냥 파묻었다. 한 때 언덕에 올라 눈에 들어오는 모든 땅이 자기 소유였던 것이 아내 죽은 다음부터 소송이니, 술값으로 다 날려서 이제 투박한 농장과 저택만 남은 상태로, 집에 남은 딸들은 앞에 남은 구만리 같은 세월에 시집 가기는 애초에 텄고, 귀족한테 허용이 되지 않았던 농장의 과수원에서 딴 과일 등속을 몰래몰래 팔아 생계를 이었다니 거 참,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근데 알고 보면, 하인 에픽스가 한 일, 자기 딸 도망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동네 밖의 다리까지 배웅해준 것을 돈 차메가 알아내 잔뜩 열이 올라 에픽스를 때려 죽이려 했고, 맞대응할 생각도 못한 하인 에픽스는 삐질삐질 뒷걸음질 치다가 정말로 맞아 죽을 거 같아서 그냥 손에 잡히는대로 돌을 하나 들어 휙 던졌더니 그게 하필이면 뒤통수를 정통으로 때렸단다. 돌을 맞은 돈 차메가 허청걸음으로 곧 쓰러질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20~30미터 이상을 비틀거리면서 기어이 비운의 다리 위까지 도착해 거기서 자빠져 죽어버렸다.

  이때 벌써 10년 동안 핀토르 가문의 하인으로 일했던 부처님 가운데 토막 에픽스는 이후 자기가 주인을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남은 생을 남은 세 따님을 위해 바치기로 작심을 해서, 세상의 어떤 하인보다 더 지극하게 루트, 에스테르, 노에미 아가씨를 보살피고, 먹여 살리고, 보초 서고, 나름대로 아가씨들 결혼시키려 눈알을 굴리며 늙어갔다. 가뜩이나 충실한 사람이 가톨릭에 입각한 희생까지 뒤집어썼으니 딱 결론이 나지? 이 작품은 에픽스가 죽어야 끝나겠구나, 하고.


  돈 차메가 죽고 20년이 흘렀다. 그러니까 착한 에픽스는 30년 동안 품삯 한 푼 안 받고 하인 노릇을 한 건데, 딸들도 이를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귀족 신분의 고귀한 인간이 하찮은 하인에게 미안하다거나, 언제 주겠다고 허튼 약속을 하거나, 기타등등 아쉬운 얘기를 하기도 싫고, 할 수도 없어 그냥 뭉개기만 했다. 딱 이럴 때 이탈리아 반도에서 편지가 와 말하기를, 조카 자친토가 세관에 다니다가 도무지 비전이 없는 직장이라 세르데냐의 이모댁 근처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 거다. 하나만 알려드리지. 자치토가 세관에서 일한 건 맞는데, 전직 선장이었던 신사가 큰 돈을 납부하기 위해 세관에 들고 와 세관장이 발행한 영수증을 받으려 했는데, 이때 사무실에 혼자 있던 자치토가 세관장이 외출을 해 없으니 돈을 자기한테 맡기고 내일 와서 세관장이 서명한 영수증을 받으라 했다. 거액의 현금이 어쨌거나 수중에 들어온 자치토는 퇴근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곧바로 튀어나가 도박장에서 거액을 몽땅 잃고 만다. 다음날 선장이 와서 영수증을 요구하니까 자치토 하는 말이, 선생께서 내게 돈을 언제 주셨는데요? 나는 받은 적이 없나이다. 이렇게 세관에서 해고당했다. 선장이 이를 불쌍히 여겨 자치토를 자기 집에 불러 밥도 먹이고, 옷도 사 입히고, 좋은 말로 젊은 사람의 실수를 덮으면서 앞으로 열심히 살라고 충고를 했건만, 이를 잔소리로 여긴 자치토는 도무지 견디지 못하여 샤르데냐 이모들한테 가겠다고 한 거다. 이를 들은 선장 부부는 기꺼이 뱃삯과 자전거를 한 대 사주고 앞날의 성공을 기원했단다.

  여기까지 이야기해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줄거리를 대강 짐작하실 수 있을 듯. 당신이 옳다. 자친토는 샤르데냐 섬 갈테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에픽스의 오두막 옆집에 사는 포로이 할머니의 손자 잔안토니오에게 아코디언을 사주고, 동네 사람들 전부한테도 포도주를 사주는 활수한 씀씀이를 자랑한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훤하게 다 안다. 자친토가 써 제끼는 돈을 알고 보면 동네의 고리대금업자 칼리나 여사한테 고리로 얻은 돈이며, 이것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는 아가씨들의 재산이 거덜날 것임을. 이 와중에 핀토르 가문의 딸을 위하여 에픽스가 영웅적인 하인 노릇을 하지 않겠느냐, 하는 건데, 뒤로 가면 갈수록 이야기는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점점 더 가톨릭적 은혜와 구원, 고행으로 회전, 지극한 상투성을 띈다. 그러니까 독자가 생각한 것 보다 남은 이야기가 훨 더 많으며, 그게 읽기에 지겹다는 말이다. 아 씨, 잘 나가다가 말이지. 그래도 이런 점 때문에 이야기는 베리즈모에 머물지 않지만. 근데 베리즈모는 재미라도 있잖아?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3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앨리 스미스의 “계절 4부작” 가운데 세번째 작품. 나만 그런 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대개 1부 <가울>을 읽은 독자들이 경끼(‘경기’가 맞는 말인 건 아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경기’ 보다는 ‘경끼’라고 쓰는 게 여러모로 의사전달이 잘 된다. 그리하여 ‘경끼’)를 해서 이이의 계절 4부작 연달아 읽기를 사부작(의태어) 즈려밟고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다. 나도 <가을> 읽고 경끼했다. ‘경끼’에서 한 발자국만 더 가면 뭐가 있다? 맞아, 이 다음엔 토사곽란이다. 경끼는 어떻게 하고 넘어갔다 쳐도 토사곽란까지는 가고 싶지 않아서, 그럼에도 언젠가는 스미스의 계절 4부작을 다시 읽게 될 줄은 짐작했지만서도, 쉽게 <겨울>을 뽑아 들지 아니하게 되어, 세월만 4년 가까이 흘려보냈던 거였다. 그래 <겨울>을 읽어보니까 어라, 생각보다 수월하고 재미있고, 앨리 스미스 특유의 말장난이 재치 만땅이어서 곧바로 <봄>까지 읽었다. 그래도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앨리 스미스 초기 작품들보다는 아무래도 재미가 좀 덜하긴 하다.

  이렇게 쓰고 여태 쓴 걸 다시 읽어보니, 염병이나, 이걸 쓴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헛갈려서 좀 더 알기 쉽게 말씀드리자면, 개인이자 자연인으로 인간의 뇌활동이 야기하는 특정인의 일탈에 관한 (초기 작품 속)이야기가, 계절 4부작처럼 전 세계적 정치, 환경, 위험과 위협, 난민문제 같은 거대 담론보다 훨씬 내 흥미를 돋구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글이라는 것이 한 번 길을 정하고 나면 다시 옛길로 돌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으니 앨리 스미스는 이제 더욱 본격적으로 소설 속에 다양한 정치를 탐색할 것 같다. 흠. 앞으로 이이의 작품을 선택할 때는 더 조심해야겠군.


  대개 예술 장르에서 “봄”이라는 건 희망과 생식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근데 이 스미스의 <봄>은 종이에 인쇄해 놓기도 끔찍한 차별과 독선과 악의적인 혐오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한 번 읽어보자.

  “이제 우리는 사실 따위는 원치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어리둥절함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반복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반복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권력을 쥔 자들이 진실은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그녀는 배에 뜨거운 칼이 꽂혀 비틀릴 것이라고, 또는 당신 목을 매달 밧줄을 가져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원의원들이 반대 당 위원들에게 자살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다른 권력자들을 가리켜 토막을 쳐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이게 작품의 첫 페이지인 13쪽 전문이다. 이런 문장들이 문단을 바꾸지도 않으면서 더욱 강화된다.

  “우리는 고문 같은 이미지들을 원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접근해야 하고, 우리가 접근해 백인 아닌 누구에게든 린치라는 걸 행사할 수 있다고 그들이 생각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연중무휴로 흑인/여성 국회의원, 아니 공적 위치에서 우리가 싫어하는 어떤 일이든 하는 모든 여성, 아니 공적 위치에서 우리 맘에 들지 않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강간 위협과 살해 위협을 하길 원한다.”

  아오, 나는 이 첫 챕터에 정나미가 똑 떨어져버렸다. 근데 앨리 스미스가 이 책 <봄>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룰 정치현상이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이나 독재와 학정 지역에서 대서양과 지중해를 거쳐 영국으로 흘러든 난민의 정당하지 않은 강제 수용이라, 물론 책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이지만 이렇게 미리 말해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격노를 원한다. 분개를 원한다. 가장 격앙된 어휘를 원한다. 반유대주의자는 좋고 나치는 훌륭하며 소아 성애증 환자라면 정말로 최고다. 변태 외국인 불법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본능적인 반응을 원한다. 우리는 어린이이주자 연령 검사, 국민 98퍼센트가 추방 요구, 이주 행렬을 막기 위한 무장 항공기, 얼마나 더 수용해야 한단 말인가, 빗장을 닫아 걸고 아내를 감추어라를 원한다.”


  이 문제와 연관된 등장인물이 브리터니 홀, 브릿과 교복 차림의 열두 살짜리 이주 유색인 소녀 플로렌스. 브릿은 <겨울>에서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소개한 바 있는 SA4A, <봄>에서는 HO, 즉 내무부 대행으로 여러 곳에서 산하 IRC(이민자 추방 센터)를 운영하는 SA4A 산하 가운데 한 곳, 런던 근교 소재 IRC에서 DCO(수감자 유치 관리관)으로 근무하는 젊은 여성이다. 플로렌스는 엄마하고 영국까지 도착했지만 엄마(가물가물. 밀항 중 익사?)를 포함한 가족, 친지, 친구 등 모든 사생활을 알리지 않은 밀입국자로 현재 위탁가정에서 살고 있다. 나이가 들어 열여덟 살이 되면 영국인으로 살아도 된다는 허가를 얻든지 어느 곳이 됐든지 간에 추방 처분을 당해야 하는데, 적어도 이 책에서 열두 살의 플로렌스가 모든 잉글랜드인, 스코틀랜드인을 가지고 노는 걸 보면 그야말로 대천사나 악마가 환생한 걸 보는 듯하다. 플로렌스를 만나 대화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꼬마 아가씨가 원하는 대로 친절과 편의와, 서비스를 무.료.로, 자.진.해.서 베풀어주며, 소녀가 원하는 대로 행위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심지어 브릿이 근무하는 SA4A의 IRC에 철저한 보안을 뚫고 들어와서 소장을 만나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질문과 관계없는 대답만 얻었을 뿐이면서도 소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직접, 자기 손으로 수용자들이 사용하는 더럽기 짝이 없는 화장실을 말끔하게, 혀로 핥아도 위생상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깨끗이 청소를 하기에 이를 정도. 이 정도면 대천사나 악마의 환생 맞지?

  이 플로렌스가 오후 근무를 하기 위해 출근하는 브릿 앞에 나타나 몇 가지 질문을 해서, 브릿은 휴대전화로 직장에 휴가처리를 한 후 함께 열차를 타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괴물 파충류가 산다는 네스 호수를 목표로 떠난다.

  그리고 북쪽의 한적한 플랫폼. 한 노인을 만난다.


  2018년 10월, 화요일 아침 11시 9분. 텔레비전 연출가 겸 영화감독 리처드 리스. 스코틀랜드 북부 어딘가의 기차역 플랫폼. 한 친구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에서 자신을 지우려 하는 중이다. 그냥 서 있는 남자. 이쪽은 물론이고 반대편 플랫폼에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리처드 말고는. 열차는 자잘한 사고가 있어 연착 중이다. 그의 휴대전화는 커피가 반쯤 남은 뚜껑 닫힌 커피 텀블러에 담겨 런던 유스턴 로드의 프레타망제 식당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든지, 벌써 쓰레기차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이다.

  죽은 친구의 이름은 패디. 리처드보다 열일곱 살이 많은 퍼트리샤 힐. 리처드가 처음 일자리를 얻은 것이 조감독의 조수였다. 이때 한 영화작업이 패디의 대본 작품이었다고. 벌써 거의 50년 전. 여태 패디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초콜릿 한 조각에 난 잇자국의 흑백 이미지가 떠오른다. 비어트릭스 포터의 잇자국. 한 입 베어물고 내려 놓고는 헛간에 남겨 놓은 초코릿을 잊어버린 비어트릭스. 2차 세계대전 전에 생산된 초콜릿바에 남은 잇자국은 잇자국을 남긴 그녀보다 오래, 그녀가 죽은 천구백 몇 년 이후로도 수십년을 더 살아남았다. 리처드가 보기에 패디의 기억은 천재급이다. 리처드와 함께 열일곱 편의 영화 작업을 했으며 이 가운데 대표작으로 <고통의 바다>와 <앤디 호프눙>이 가장 유명하다. <앤디 호프눙>은 베토벤의 성악곡 “An die Hoffnung 희망에 부쳐”를 사람 이름인 줄 알아 An die가 Andy로 바뀐 일이다. 반은 영국인, 반은 독일인이라 양쪽 모두로부터 따돌림을 받아야 했던 활촉처럼 예리한 여자. 진정한 희망이란 사실 희망의 부재란 것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An die Hoffnung> 대본을 4주만에,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이야기하는 창의력이 풍부한 작품을 4주만에 써내려간 사람. 필생의 친구이자 단 한 번 연인이었던 동료.

  리처드는 그래서 무너졌다.

  스코틀랜드 북쪽, 자기도 어딘인지 모르는 시골역의 플랫홈에 서서, 이제 연착이 풀려 객차가 도착하면 슬쩍 객차 아래로 들어가 거대한 무게에 몸이 깔려 산산이 부서지기로 결심을 한 남자, 1970년대,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초반의 유명한 스타 텔레비전 연출자이자 영화 감독 리처드 리스.

  드디어 열차가 도착했다. 리처드는 영국법에 의하여 강력하게 금지된 행위, 철도 레일로 내려가 몸을 굽혀 생각보다 좁은 열차 하부에 몸을 뉜다. 조금만 참으면 되리라. 거대해도 너무나 거대한 무게가 아주 짧은 순간의 고통,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고통의 순간을 지나면 곧바로 자신의 이름을 지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리처드. 바로 이 순간.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섬찟함. 얼른 고개를 돌리는 찰라 열차의 강철 부품에 이마가 부딪혔지만 순식간에 솟구친 아드레날린 때문에 아픈 지도 모르고 눈길을 돌리니 아주, 아주 천연스러운 얼굴로 플랫폼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은 소녀가 말한다.

  “정말이지 그러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하수 2025-04-28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녀가 플로렌스, 북쪽의 한 노인이 리처드???인거죠?
저도 가을에 강력하게 막혀 안 나가기로 했네요^^

Falstaff 2025-04-28 16:38   좋아요 0 | URL
옙, 맞습니다. 이런 댓글 나오기 기다렸는데 은하수 님께서 ㅎㅎㅎ
두 명이 만나는 것이 결론이 아니고요, 이래서 한 고비 넘어간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몽땅 모른 척 했거든요. ^^
 

.


  오늘도 두 줄 만들었습니다. 내일 버릴 겁니다. 

  이번에는, 이 작자가 미쳤나, 싶은 책들도 좀 보인다,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들>, 움베르토 에코가 쓴 <푸코의 진자>를 버리다니 정말 미친 게 틀림없다, 라고요?황석영의 <객지>와 <장산곳 매>는 다른 전집류에 다 실려 있어서. 양선형의 <감상소설>은 많이 고민, 책장에 여유가 좀 있더라도 내치지는 않았을 터인데요. 모옌도 있고, 리영희 슨상님도 계시고 친애하는 김향숙 씨의 <겨울의 빛>도 끼었는데, 윽, 정세랑과 가즈오 이시구로, 코맥 매카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한테 이시구로와 매카시는 단지 시간 문제였습니다. 저는 두 양반을 정세랑, 김향숙, 리영희 선생, 모옌과 비교도 하지 않습니다. 뭐 제 마음인 것을요.

  케스터턴의 <브라운 신부 전집>은, 이제 보니까 1권만 읽고 별로 재미가 없어서 걍 처박아 둔 모양입니다. 띠지가 아직도 둘러 있으면 틀림없이 건들지 않은 거니까요. 이 책이 있었군요. 안 읽은 책. 크크크크....

  <세일즈 맨의 죽음>은 민음사에서 나온 다른 책이 있어서 금속활자본을 지하로 보냈고요, 레일라 슬리마니, 오르한 파묵의 책도 이번에 끼었네요. 파묵의 빨강머리는 요새 친애하는 이웃께서 읽고, 별로다, 해서? 후후...

  시모의 <릴라는 말한다>는 망설였습니다. 에이모 토울스는 다른 분 생각은 모르겠고 제가 읽기엔 별로라는 수준을 넘어 <모스크바의 신사>를 우연하게 잘 쓴 거 아닌가? 하는 마음까지 들게 했으니 당연히 여기 들어야지요.

  김애란과 김숨은 저도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강경애는 두 번 읽을 거 같지 않고요.

  <컬러 퍼플>이 후지다고요? 아닙니다. 제가 원래 소설가가 번역한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장이 너무 좋아서, 어색할 만큼 기가 막혀서 원작이 훼손된 느낌이 강하거든요.

  <마이 퍼니 발렌타인>은 왜 버릴까요? 너무 야해서? 그건 아닌데... 잘 모르겠습니다. 뒷발에 채인 거 같습니다. 야하면 좋잖아요, 안 그래요?


​  오른쪽 줄 맨 위에 Advanced Learner's Dictionary는 손때 묻은 겁니다. 저 영어 못해요. 특히 중딩 때 한 선생이 미우면 과목 자체가 하기 싫어지지 않습니까? 저한테는 지방 국립대 나온 영어 선생이 그랬습니다. 이후 정신차리고 영어공부 졸라 했는데 성적은 전혀 좋아지지 않더라고요. 당연하지요. 과목 자체가 싫으면서도 오직 점수/석차 올리려고 공부하는 게 이게 발전이 있었겠습니까. 수업시간에 자기 실력이면 설대는 걍 갔을 거란 얘기만 줄창 하던 인간. 그 선생이 제 인생 최고의 허들이었습니다. 이 영영사전도 손때가 겁나 묻었습니다만 제 영어는 거기가 거기더라고요. 뭐 인생이 다 그런 것이지요 ㅋㅋㅋㅋㅋㅋ. 애들 볶지 마세요. 안 시켜도 할 놈은 다 하고, 시켜도 안 할 놈은 다 안 합니다. 대신 다른 거 잘 하는 게 하나 정도는 있더라고요. 하다못해 부모한테 대드는 거라도. (아이고, 진짜로 말하건데, 이건 우리 집구석 얘기 아닙니다!)


.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크pek0501 2025-04-26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책 아까워서 안돼요 안돼요 안돼요 돼요 돼요...ㅋㅋ

Falstaff 2025-04-26 21:22   좋아요 0 | URL
이왕 벌어진 일, 확 해버리는 게 낫잖습니까. 저도 마음이 좋지는 않답니다. ㅎㅎㅎ

망고 2025-04-26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왓 아까워요ㅠㅠ 버린다고 내놓으면 누군가 새주인이 나타났으면 좋겠어요ㅠㅠ

Falstaff 2025-04-27 06:02   좋아요 1 | URL
아내가 당근에 내놓으면 가져갈 사람 있다고 하네요. 일단 현관에 내놓기만 해야겠습니다.

hnine 2025-04-26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버리는 거 잘 해요^^ 비워야 또 채울수 있지요.

Falstaff 2025-04-27 06: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미련하게 짊어지고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 ^^

우끼 2025-04-26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태고의 시간들과 푸코의 진자.. 업어오고 싶네요 ㅠㅠㅠ
양선형 소설이 망설여질정도로 좋나요??

Falstaff 2025-04-27 06:05   좋아요 0 | URL
양선형, 읽은 지 오래라 다른 누구와 기억이 헛갈렸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이렇게 헛갈려도 그걸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면 버려도 괜찮을 거 같지 않으셔요? ㅎㅎㅎ

꼬마요정 2025-04-26 2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들의 자리를 다른 어떤 책이 차지하게 될 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ㅎㅎㅎ

Falstaff 2025-04-27 06:05   좋아요 0 | URL
이젠 책 안 살거라, 책장에 숨 쉴 공간이 생기는 거에 만족합니다. 수제 책장이라서 가로목이 막 휘어져요. ㅜㅜ

건수하 2025-04-27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스터튼 전집 저도 1권 읽고 그 다음부터 재미없어서 안 읽었어요 ^^ 그래도 가지고는 있는데…

Falstaff 2025-04-27 15:45   좋아요 1 | URL
앗, 이런 댓글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ㅋㅋㅋㅋ

2025-04-27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4-27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