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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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재. 정말 오랜만에 읽는다. 가장 최근에 읽은 이문재 시집이 25년은 확실하게 지났고 30년까지는 안 됐다. 언제나 가까이 있는 듯해서 눈에 자주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때 마다 조금 있다 읽지, 해서 차일피일, 그게 하세월이 됐던 시인이다. 이 양반이 나와 고향이 같다. 나는 태생이 서울이지만 누가 고향을 물어보면 큰집이 있고, 양친 이주사와 정여사의 뼛가루가 놓인 김포가 고향이라고 얘기한다. 저 넓은 들 너머로 아른하게 보이던, 공 잘 차는 회택이네 집, 공부 잘하는 구택이네 집, 하면 김포 사람이면 누구나 알던 검단면 당하리 큰 들, 거기는 내 고향이고 이문재도 아마 이 근처일 거 같다. 이거 여차하면 같은 집안 사람 아녀? 거기 사람들이 쓰는 경기도 사투리는 이북 말을 닮았다. 이문재의 늙은 아버지도 그 말을 썼을까? 시를 읽다 보면 아버지가 대강 50대 중반에 늦둥이를 둔 거 같던데, 그럼에도 동생도 있는 거 같았는데. 동생이 나중에 이랬다던데.



  문자 메시지


  형, 백만 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전문)



  시인이 쓰는 “시”는 픽션일까, 논픽션일까? 아니면 그딴 거와 관계없는 자연의 모방일까? 여기서 말하는 자연이 꼭 산천초목만 일컫는 게 아니라, 사람, 특히 노래하는 인간의 가슴앓이나 뇌세포의 화학작용도 다 자연이라고 볼 때의 그 자연을 모방하는 것일까? 뭐, 가슴앓이가 심근경색을 말하는 거냐고? 그럴 수도 있다. 그것도 자연활동이라면. 이문재가 1959년 9월생. 이제 딱 예순 하고도 넷. 시 쓰기 좋은 나이네. 그가 십년 만에 낸 시집에서 가장 앞에 내세운 작품을 읽어보자.




  사막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전문)



  먼저, 무엇보다, 1연과 2연은 중복이다. 같은 말의 중언이다. 근데 시의 독자인 나는 시인더러 두 연 가운데 하나를 지우라고 요구할 수 없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시인도 번하게 알면서 그렇게 썼을 터이니까. 좋다, 나는 시인이 이 두 연을 써 놓고 왜 미소를 짓는지 알고 따라 웃을 수 있는 염화시중이 아니다. 그러나 독자는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뜻과 달리 시를 자기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해석하고 오해할 권리가 있다. 그리하여 당신한테 묻는 바, 빈틈없이 광활하게 펼져진 모래 사막에, 모래 알갱이보다 더 많은 “모래와 모래 사이”가 뭘 말하는가? 여러가지 답이 있을 것이고 모든 답이 타당하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인 이유”라는 제목으로 해설을 쓴 평론가 신형철은,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모래와 모래 사이다’라는 것은 이 시가 생산해낸 시적 인식”이라며 “시적 인식은 과학적 인식과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아울러 “도대체가 사막에서는 ‘모래와 모래 사이’라는 표현이 성립될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아하, 시적 인식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모래와 모래 사이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그런데 말이지, 이문재가 시를 쓰면서 저 드넓은 사막의 무한대 성 모래알이 그렇게 밀집되었으면서도 서로 어깨를 부딪는 가운데 모래와 모래 사이에는 반드시 유격, 이격, 공간, 거리가 있다, 그리하여 이 모래와 저 모래가 하나가 아니어서 사막에, 사람과 사람이 서로 달리 흙 위에서 그러는 것처럼 살 수 있다고, 오래 전부터, 애초부터 그래왔던 거라고 말한 것이라면?

  신형철의 해설은 이쯤에서 그만 읽었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다시 훑어보니까, 모래와 모래 사이, 할 때, “사이”를 ‘관계’로 해석할 수 있고, 그래서 “’모래보다 /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라는 말도 개별 개체 그 자체보다는 개체 간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고 썼다. 흠. 이런 해석이라면 내가 시를 읽고 느낀 것과 그리 틀리지 않군.


  이왕 평론가의 해설을 인용한 바에 하나만 더 해보자. 신형철은 “아포리즘은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대중성의 표지처럼 간주된다. (중략) 그리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포리즘보다는 중언부언과 지리멸렬이 언제나 더 견디기 힘들다”고 단언했다. 이후 아포리즘에 관해서는 시인의 시를 인용해가며 충분하게 설명을 하지만 중언부언과 지리멸렬은 이것으로 끝이다. 이문재를 읽으며 감히 “지리멸렬”은 생각할 수 없다고 쳐도, 중언부언이라면 또 이이가 한 가락한다. 첫번째 시 <사막>에서도 ‘모래’와 ‘사이’를 너무 남발한 느낌이 들지만 이후의 것들 가운데 별 생각 없이 하나 고르면,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어릿광대처럼 자유롭지만

  망명 정치범처럼 고독하게


  토요일 밤처럼 자유롭지만

  휴가 마지막 날처럼 고독하게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혼자 자유로워도 죄스럽지 않고

  여럿 속에서 고독해도 조금 자유롭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그리하여 고독에 지지 않게


  나에 대하여

  너에 대하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는 브람스가 자신의 바이올린 소나타에 붙인 악상기호다.  (전문)




  어떠셔? 도마 위에 통배추 올려놓고 식칼로 난도질하는 난타 공연하는 것처럼 ‘자유’와 ‘고독’이 프레스토 템포로 도돌이표를 돌고 있어서 멀미 날 거 같지 않으신가? 물론 시 자체는 디크레센토로 끝나는 거 같은 여운이 있기는 하다. 이문재의 이 시집에서는 이렇게 단어를 무한 반복하는 시들이 많다. 의도적으로 문장을 “~것이다.”로 끝내는 것도 자주 눈에 띄고. 뭐 시인이 그렇게 쓰겠다는 데야 내가 왈가왈부 할 건 아니지만, 나야말로 시에서 같은 단어나 비슷한 표현이 나오고, 나오고 또 나오고 또다시 나오는 거에 대하여 심한 알레르기 증상이 있어서 읽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을 냈을 때 시인의 나이가 55세. 그동안 배고픈 시인의 세월도 다 보내고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회적 책임도 어깨에 짊어질 위치가 되었으나, 여직 시인의 본령은 도시에 있지 않다. 전국 각지의 산골과 바닷가와 냇가 같은 자연 속에, 새롭게 돋는 생명을 보고 경탄하기도 하고, 이젠 다시 경험하지 못하고 오직 추억 속에서만 가능한 여름 천렵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자본주의의 성세와 남북 분단의 현실을 아파하기도 한다. 그래, 세월이 흘렀다. 이문재도 이런 세월을 만난다.

  그의 이런 노래 하나 읽어보고 참혹한 독후감을 끝내기로 한다.




  천둥



  마른 번개가 쳤다.

  12시 방향이었다.


  너는 너의 인생을 읽어보았느냐.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어보았느냐.  (전문)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 꽝.  뭐라? “연탄재 발로 차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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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09-19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더 반가운 골드문트 님의 리뷰입니다^^

Falstaff 2023-09-19 16:23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ㅎㅎㅎ 고맙습니다.

햇살과함께 2023-09-19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좋네요!!

Falstaff 2023-09-19 16:24   좋아요 0 | URL
마지막 두 연은, 소리내서 ˝천천히˝ 읽으면 음악적 효과도 나는 거 같습니다!
 
올마이어의 어리석음
조셉 콘래드 지음, 원유경 옮김 / 이타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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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이 책의 세일즈 포인트 76이 뭔가? 하긴 나부터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는 했지만. 책꽂이에 꽂아둘 가치 있는 책인데 여간해서 팔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책을 다른 작가가 썼다면 별 다섯이 마땅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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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9-16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콘래드 책으로 안보이는 화사한 표지네요.

Falstaff 2023-09-16 21:07   좋아요 0 | URL
저도 표지만 보고 편안하게 읽겠다, 싶었다가 속았습니다. ㅎㅎㅎㅎ

유부만두 2023-09-16 21:08   좋아요 2 | URL
역시나 콘래드 입니까?

다락방 2023-09-16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샀습니다!!

Falstaff 2023-09-16 21: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좋습니다.

잠자냥 2023-09-17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거 솔직히 전 중고로 사 보려고 기다렸는데 중고로 풀려도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표지가 좀……. 별로 ㅋㅋㅋㅋㅋㅋ 읽고
싶은 마음 떨어뜨려요.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9-16 21:59   좋아요 1 | URL
옙. 이 책은 표지가.... 꼭 동화 같아서 말입죠. ㅋㅋㅋㅋ

잠자냥 2023-09-16 22:03   좋아요 2 | URL
표지가 어리석었네….

coolcat329 2023-09-17 06:21   좋아요 2 | URL
저두요. 콘래드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이 책은 손이 안가요.
표지 문제였네요.

꼬마요정 2023-09-16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안 보고 어떤 책이기에 다른 작가면 별 다섯일까 했다가 바로 아! 했습니다. 표지는 이쁘네요 ㅎㅎㅎ

Falstaff 2023-09-17 06:00   좋아요 1 | URL
표지 예쁘긴 한데요, 내용이 저렇게 조용하고 예쁘고 동화적이지 않답니다. ^^
 
노스트로모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4
조지프 콘래드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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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작품이 꼭꼭 숨어서 독자의 눈에 띄지 않는다. 민음 세계문학 414, 415인데 시리즈에 노출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아무리 그래도 세일즈 포인트 399가 뭔가. <올마이어의 어리석음>은 또 작가 이름을 조셉 콘래드라고 써 놓아 검색하기 쉽지 않다. 하여간 눈 밝으신 분들은 찾아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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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9-17 0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또 콘래드 책이네요. 이런 알림 너무 좋네요~☺️

Falstaff 2023-09-17 07:23   좋아요 0 | URL
이 책 재미있습니다. 즐기시기 바랍니다. ^^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김현경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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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에 겐자부로의 1973년 작품. 이이의 작품은 뇌 헤르니아를 갖고 태어난 아들 오에 히카리, 중국에서 붉은 가죽 가방을 가지고 귀국해 가족과 함께 살다가 익사 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일본의 개화기에 오에 집안 주변에 있었던 민란, 전쟁 후 (대체로 우익 학생들에 의해 저질러진) 반 정부 집단 행동 등 몇 가지에 주목하고 있다. 도쿄 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작가는 영어와 불어에 능통한 천생 지식인이라서 아버지의 생애나 옛 시절의 민란 그리고 젊은이들의 반 정부 집단에 관해서는 늘 관찰자 역할에 충실히 머물렀다. 그렇게 알았다.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이하 “홍수는”>은 이런 믿음에서 벗어난다. <홍수는>에서 가명 “오키 이사나”를 사용하는 주인공은 젊은이들로 구성된 일종의 도피자들의 그룹인 “자유 해양단”에 기꺼이 가입하여 집단의 일원으로 행동한다. 여태 오에의 여덟 작품을 읽으면서 굳어진 그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산뜻한 경험이었다.


  나는 일본 작가 가운데 오에 겐자부로를 가장 좋아한다. 이이의 작품을 읽어보면 어느 하나 빠짐없이 공고한 직조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꽉 짜여진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커다란 구조물을 짓고 있는 벽돌공이랄까, 완성된 건물에서 벽돌 하나, 고인 나무 하나를 빼더라도 모두가 와장창 무너질 것 같지만 정작 지어놓은 건물 자체가 벽돌이나 나무 하나를 빼지도 못하게 완강하게 조여진 듯한 작품. 이것이 오에 겐자부로를 읽는 기분이었으며, 읽을 때마다 나로 하여금 경탄하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같은 이유로 작년 말에 한 번에 오에의 장편소설 세 작품을 연달아 읽을 때는 무척 혼이 나기도 했지만. 그때 읽은 것이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그리고 <책이여, 안녕>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멀미가 나는 거 같다. 그러니 오에의 작품은 적어도 몇 개월의 터울을 두고 읽는 게 좋을 듯. 실제로 오랜만에 읽으니까 문장이나 구절 하나하나 섣불리 지나치지 않고 꼼꼼하게 읽어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이렇게 질리지 않았던 이유는 물론 원래 글이 훌륭해서 이겠지만, 나처럼 아마추어 독자들은 아무래도 심리묘사만 무난히 계속 이어지는 것보다 약간 울퉁불퉁한 서사의 비포장 도로를 달려주는 것이 흥미를 끄는 법인데, 놀랍게도 전혀 오에 답지 않게 등장인물들 거의 모두가 극단적인 성격이랄까, 하여튼 비정상적인 과격성을 가지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도무지 대충 읽을 빌미를 주지 않았던 것이 컸다.

  주인공 오키 이사나는, 한 시절 일본 정계에서 꽤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의회 거물 의원의 최측근 비서였다. 의원이 정치적으로는 선량한 쾌남이었지만 흔히들 그렇듯이 알고 보면 괴물 가운데 괴물이라서 의원 근처의 모든 이들은 그를 괴물의 ‘괴怪’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심지어 전후 일본이 숭상했던 미국으로 유학해 거의 모든 몸가짐과 사고방식을 미국식으로 탈바꿈해 돌아올 것을 지시받아 그렇게 한 친 딸마저. 후에 괴는 기꺼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을 오키의 아내로 보낸다.

  괴가 괴일 수 있는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세계 어디를 가나 현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을 자신의 침대 위에 대령시키라는 지시를 비서에게 하달하는 거였다. 이사나 역시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괴의 지시를 한치 어김도 없이 수행하였으나, 발칸 반도의 한 나라에서 그만 사고로 괴의 호텔방에서 소년 한 명이 죽어버리는 사고가 생긴다. 이사나는 사건을 무마하기 위하여 죽은 소년을 방 옆 건물 모서리로 안고 가서 실족에 의한 추락사로 위장하기 위하여 떨어뜨리려는 순간, 소년의 정신이 돌아온 것을 알았고,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엉겁결에 손을 놓았으며, 소년은 순간적으로 이사나의 손목을 할퀴기까지 해버렸다. 괴와 이사나는 다음날 아침에 곧바로 출국하여 완전한 범죄로 끝날 수 있었으나 사건과 죽은 소년이 남긴 이사나의 흉터는 물론 고스란히 지울 수 없었다.


  이후 이사나는 건축회사로 직장을 옮겨 흥미롭게도 핵 셸터를 제작해 판매하는 사업부의 책임자로 일하게 됐다. “핵 셸터”. 띄어쓰기 하지 않고 그냥 핵셸터라고 표시하는 이 건축물은, 20세기 말 한때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건축물로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을 사용하는 전쟁이 발발해 닥칠 심판의 날을 대비한 피난처로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든 3미터 x 6미터 크기의 지하벙커다. 회사는 견본 핵셸터를 무사시노 대지 서쪽 끝자락에 만들었지만 세계적으로 핵전쟁의 위협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로 변함에 따라 기업화까지 진행하지 못했고, 견본 셸터는 일본 유일의 핵셸터로 남았다.

  이사나는 아들 진을 낳고, 낳자마자 뇌수술을 해야 했고, 태어난 순간부터 뇌수술을 해야 하는 동안 <개인적인 체험>에서 보듯 아내와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미 사이가 멀어진 괴와는 상종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정신과 육체가 모두 정상적이지 못한 진이 아무 이유 없이 쓰러져 여기저기 상처를 입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 이사나는, 나중에 보면 분명 유도의 낙법을 사용할 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진처럼 그냥 맥없이 고꾸라져 코피가 터지고, 광대뼈가 무너지고, 심지어 생 이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기도 하는 이상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울증에 진입한 이사나는 아내에게 진과 함께 버려진 핵셸터로 거처를 옮기겠다고 부탁해 승낙을 얻는다. 부탁을 한 이유는 지하에만 건설을 한 핵셸터 위에 3층 건물을 증축해 (피난처가 아니라 살림용으로) 오래 살 수 있는 집을 아내나 장인의 돈으로 마련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얼마 후 핵셸터를 포함한 좁은 면적의 3층 건물로 옮긴 부자. 아버지는 프리즘쌍안경을 통해 숲을 관찰하는 것으로 소일하면서 자신을 나무와 고래의 대리인으로 자처한다. 얼마 후 이이는 자신의 이름마저 오키 이사나(大木勇魚: 큰 나무 용감한 물고기)로 개명해버린다. 물론 호적까지 바꾸지는 않지만. 또한 아들은 아버지가 녹음해준 새소리를 들으며 몇 십 종의 새소리를 구분할 줄 알게 된다. 당연히 천재적인 음감을 가졌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오에 겐자브로는 일찍이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핵 공격의 비극에 관해 깊게 이해한 바 있으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비핵 또는 반핵 운동의 선봉에서 활약한 평화주의자였다. 그가 쓴 소설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 반핵주의자로 핵셸터에 집을 짓고 사는 것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건 독자들의 생각이고, 일반 일본 국민의 입장에서, 반핵과 전쟁에 관한 공포로 이상 심리상태가 된 “세상의 이모저모”에서 소개한 별난 외국인 몇 명을 제외한다면 유독 두드러진 사람이기도 하다. <홍수는>에 나오는 핵셸터의 주민들도 이사나를 보고 자기들끼리 “미치광이”라고 부르며, 이사나가 마을 사람들과 소통을 하지 않는 외톨이로 지내지만 마을의 모든 주민들은 이사나를 알고 있다. 독특하거나 별난 사람을 다른 말로 하면 “모난 사람”이라서.


  그러나 이사나에게 접근하는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자유해양단.”

  이들은 만일 도쿄에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큰 지진이 나면 백 년 전에는 지진 피해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서 생긴 일이라고 호도하며 조선인을 학살했지만, 이제는 자신들 같은 권력이나 힘 없는 청년들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크지 않은 선박을 (물론 제일 좋은 건 돈 주고 사는 것이긴 하다) 탈취하거나 얻어서 공해상으로 나가 국적을 포기한 후 세계인으로 살겠다는 뜻을 가진 젊은이들이다. 대개 십대 미성년자로 구성되었으나 “오그라든 남자”로 불리는 전직 잡지사 프리랜서 카메라 기자 단원은 마흔이 넘었다.

  이들은 단원 가운데 한 명 있는 여자아이 이나코를 시켜 거구의 형사 한 명을 유혹해 아지트 근방으로 유인했고, 그로부터 권총을 약탈하는 데도 성공했지만, 와중에 형사가 가장 어린 단원 “보이”를 체포하기 위하여 자신과 보이의 팔을 연결해 수갑을 채웠고, 보이는 칼로 형사의 손목이 아니라 자신의 손목을 잘라 도망하려 하자 형사는 할 수 없이 수갑을 풀고 혼자 도망을 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깊게 자상과 창상을 입은 보이의 손목이 탈이 났다는 것. 보이는 열이 오르고 헛소리도 해대는 등 파상풍 비슷한 증세를 보여 그들도 바라지 않는 바이나 어쩔 수 없이 이사나의 셸터에 보이를 들이고 이나코로 하여금 간호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된 것은 아니어서 이사나와 해양단 서로간의 기싸움도 있었고 음란하게 보이기도 하는 시도도 있었으나 내용은 밝히지 않겠다. 하여간 그렇게 된 후 우연히도 이나코와 이사나의 아들 진이 유난한 친밀도를 유지하게 되고, 덕분에 이사나 역시 조금씩 자유해양단에 관해 호감이 생겨, 결국 자유해양단의 대변인, 작품 속에서는 “말”, 쉽게 말하는 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작품은 이사나와 진, 독특한 성격의 자유해양단 단원, 괴와 그의 딸 등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주축을 이룬다. 주축 정도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스토리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드라마틱해지고, 아주 예외적으로 거친 대단원을 맞는다. 그러니 읽기에 따라 재미가 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장면 묘사보다 역시 오에 겐자부로를 읽는 진짜 묘미는 문장과 문단 자체가 갖고 있는 긴장과 견고한 맛을 음미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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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9-15 06: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화요일.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목요일, 다와다 요코, <지구에 아로새겨진>
금요일. 지넷 윈터슨,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이 삽질을 계속 해야할지 몰라......

유부만두 2023-09-15 07:27   좋아요 2 | URL
계속 해주십쇼!

coolcat329 2023-09-15 07:50   좋아요 2 | URL
오렌지 리뷰 궁금합니다.
어떤 소설일지 궁금했거든요.

Falstaff 2023-09-15 16:42   좋아요 2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조금 더 계속해보겠습니다.
<오렌지...> 이거 참, 기대보다 훨 좋았습니다. 별 다섯을 주지 않겠지만 아주 제대로 마음에 들더라고요!

건수하 2023-09-15 20:44   좋아요 1 | URL
오렌지~ 저도 궁금해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coolcat329 2023-09-15 07: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한 권도 안 읽어 봤는데 읽기 쉬운 작가는 아니군요. 어떤 작품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개인적인 체험과 애너벨 리 가지고 있어요~^^

Falstaff 2023-09-15 07:38   좋아요 2 | URL
조금 거칠지만 <개인적인 체험>이 장편 데뷔작이니(맞나?) 그것부터 시작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후 곧바로 대표작 <만옌 원년의 풋볼>로 치고 들어가시는 것이... ㅎㅎ

coolcat329 2023-09-15 07:49   좋아요 2 | URL
훌륭한 작가이자 지식인이라 잘은 모르지만 존경심을 갖고 있네요.
골드문트님 감사합니다 😄

자목련 2023-09-15 0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예정 리뷰, 세 권 모두 기대가 됩니다^^

Falstaff 2023-09-15 16:38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근데 읽어보시면 별 거 없는 걸로.... ^^;;;

수이 2023-09-15 08: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을 떠나고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골드문트님 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Falstaff 2023-09-15 16:39   좋아요 2 | URL
아휴, 이런 황감한 말씀을요.
지금 쉬고 계신 것이지 떠나지는 않았잖아요. 세월이 무지하게 깁니다. 편하게 마음 잡수시기 바라요. ^^

그레이스 2023-10-01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이름을 바꾸셨네요^^
저도 이 책 들여놨습니다.

Falstaff 2023-10-02 06:13   좋아요 1 | URL
넵. 골드문트 하니까 추레하게 늙은 것이 젊은 티 내려고 발악하는 기분도 좀 들더라고요. ㅋㅋㅋㅋㅋ 그저 생긴 대로 살아야 좋은 법이라서요.
이 책은 재미는 있지만 좀 억지스러운 장면들도 왕왕 나옵니다. ^^
 
산의 거인족
루이지 피란델로 지음, 장지연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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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극 myth drama. 피란델로는 신화극 3부작을 썼으며 이는 정치 신화극 <신식민지>(1927), 종교 신화극 <라자로>(1928), 예술 신화극(1936)으로 되어 있다고 각주를 달아 놓았다.

  루이지 피란델로는 1867년 시칠리아의 유황 광산주의 아들로 태어나 홈 스쿨링을 하는 등 유복하게 성장했다. 문재가 있어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열두 살 때는 벌써 5막짜리 비극을 가족을 대상으로 공연했단다. 팔레르모와 로마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독일의 본 대학에서도 학위를 받는다. 이후 시, 소설, 극작가로 이름을 높였으며 193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렇게 보면 최상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행복이란 것이 그리 쉽게 오는 법이 아니라서 그도 삶의 곡절을 피할 수 없었다. 피란델로는 아버지의 부유한 동업자의 딸과 결혼을 했지만1903년에 아버지와 아내가 투자한 광산이 홍수로 거덜이 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파산을 맞이하게 됐고, 동시에 이 충격으로 아내마저 정신착란, 조현병이 발현한다. 아내를 병원으로 보내라는 주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1919년까지 15년 동안이나 집에서 아내의 정신병을 수발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의 광기에 시달리는 동안, 아들마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포로로 잡혀 버렸다. 아내의 정신병적 광기, 포로 상태에 빠진 아들, 그리고 재정적 파탄에 시달리다 할 수 없이 아내는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아들은 풀려나 귀가했으며, 끊임없는 집필생활로 경제적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작가, 예술가 앞에 새롭게 등장한 것은 호전적인 파시즘이었다.

  이 극작품 <산의 거인족>을 더 재미있게 읽으려면 피란델로가 대본을 쓴 오페라 <바뀐 아들 이야기>를 알고 있으면 좋을 텐데, 비록 이것이 유럽에서는 곳곳에서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민담으로 동아시아에서도 책 좀 읽는 사람들한테 줄거리를 말해주면 당장에 비슷한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하겠지만 민담의 제목 <바뀐 아들 이야기>로 내용을 단박에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쉬운 얘기로 하자면 체인즐링 스토리다. 가난한 부부가 금발의 아름다운 아들을 낳았는데 어느 날 밤 마녀가 나타나 아기를 데려가고 대신 검은 머리의 못생긴 사내 아이를 남겨 놓았다, 아기는 북국의 왕자 신분이 되어 좋은 교육을 받고 잘 자라 청년이 되었을 때 남쪽으로 여행을 하다가 진짜 엄마를 만나고, 역시 청년이 된 힘센 검은 머리의 아들이 사정을 알게 되어 자기가 차지해야 할 왕좌를 빼앗기는 거 같아서 금발 청년을 죽이려 하지만 의붓어머니의 간절한 저지로 그냥 길을 떠나 북국의 왕좌에 올랐으며, 착한 진짜 아들은 깨끗하게 왕위를 포기하고 가난한 엄마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이런 민담을 오페라로 작곡을 했단다. 근데, 초연을 감상하던 ‘일 두체’, 이탈리아의 두목 베니토 무솔리니는 1막이 끝나서는 열심히 박수를 치더니 2막에선 팍 기분이 상한 얼굴을 했고, 막이 내리자 욕설을 퍼붓는 청중에게 더한 소란을 유도했다는 일화가 있다. 쉬운 얘기로 하자면 폭력적인 검은 머리의 아들을 혹시 호전적인 파시스트의 대장인 자신을 빗댄 건 아닌지 매우 불쾌했던 것이고,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무솔리니가 히틀러나 스탈린 보다는 좀 덜 독한 놈이 되어 관련자 모두의 코에다가 담배연기를 뿜어 사형에 처하지 않았고, 저 알프스 산맥 오지 탄광으로 유배를 보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이 광경을 보고 대오각성한 루이지 피란델로는 예술행위에 있어서 질적으로, 영적으로 좋은 작품, 대중과의 접촉성 등에 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 신화극 3부작을 마무리하는 예술 신화극 <산의 거인족 I gigantic della montagna>를 집필하게 되었는데, 아뿔싸, <바뀐 아들 이야기>가 무솔리니 앞에서 거덜이 난 해가 1934년, 1936년에 삶을 던져버릴 그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총 3막 4부로 구성한 작품을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만다. 그러나 대단원을 이루는 3막은 “숨을 거두기 전 아들 스테파노에게 3막 구상을 이야기했고 스테파노는 아버지가 전한 내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하여 전했다. 따라서 3막은 구체적 대사들은 없지만 피란델로가 구상했던 내용이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 있다.” (5쪽 각주) 즉 미완성 작품이며 마지막 막은 대사 없이 지문, 산문식 설명으로 되어 있다.


​  이 작품은 세 집단의 상호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제일 먼저 백작부인의 극단.

  연극 배우로 활약하던 미모의 일제에게 홀딱 반한 백작이 일제에게 청혼을 했고, 이를 수락하여 일제는 단박에 백작부인으로 승격을 한다. 일제에게는 꼭 공연을 해보고 싶은 걸작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바뀐 아들 이야기>였다. 작품을 검토한 백작 역시 이런 걸작이면 자신의 운도 걸어볼 만하다는 확신이 들어 공연을 지원하기로 결심을 했는데, 문제는 약 42명의 배우가 등장하고 무대와 의상, 조명 같은 것들도 뻑적지근, 워낙 대규모 공연이라서 한 두 푼 가지고 될 일이 아니었던 것. 그래도 예술에 조예가 깊고, 예술을 위한 희생정신이 투철한 백작은 기꺼운 마음으로 아내 이름의 극단을 만들어 <바뀐 아들 이야기>를 지원한다. 그러나 공연은 참패에 참패를 거듭해 쫄딱 망한 백작은 자신의 영지와 성도 한 순간에 날아가버렸으며 백작을 포함해 겨우 여덟 명의 배우만 남아 건초를 실은 수레에 백작부인 일제를 태우고 유랑공연을 해야 하는 처지에 떨어졌다.

  이들이 걸식을 하며 동가식서가숙 유랑을 하다 스칼로냐(Scalogna: 불행)이라는 이름의 빌라에 도착한다. 이 빌라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을 스칼로냐티(Scalognati: 불행한 자들)이라 일컫고 모두 일곱 명이 살고 있으며 마법사 코트로네가 사실상 스칼로냐티의 대장이다.

  스칼로냐는 마법사의 마술에 따라 각종 조명과 (이를 테면 번개, 오로라, 반딧불 같은)효과를 내면서 일반 민중들의 접근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작부인의 극단은 이런 마법에 마치 친근한 듯 빌라에 도착을 하는데, 왜냐하면 스칼로냐에 거주하는 집단과 마찬가지로 극단에 속한 이들도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스칼로냐 입주민들은 고급 예술을 할 능력과 결과물을 소유하고 있지만 일반 민중과 스스로를 격리시키며 이들끼리의 왕국이랄까, 리그에 만족하고 있는 거다. 물론 20세기가 막바지에 이르면 미술, 음악, (일부)문학의 많은 장르가 스칼로냐의 유지를 이어받아, 일반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이 고도로 교육받은 소수 전문가 집단들만 향유할 수 있는 특별 구역 안에서 존재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대강 이해하기 쉽다. 나는 그렇게 했다.

  1930년대 중반의 이탈리아의 한 빌라 스칼로냐에서도 마찬가지라, 이들을 대표하는 코트로네는 백작부인 극단한테 잘 교육받은 탁월한 전문가들의 모임인 이곳에서 자기들과 함께 머물라고 강력하고 집요하게 권유하지만, 명목상 극단주인 백작부인 일제는 끝까지 대중 앞에서의 공연을 주장한다. 일제는 민중과 함께 하는 예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반드시 크게 망하고 말 것임을 확신하는 코트로네는 어쩔 수 없어 마침 거인족 커플 우마 디 도르니오와 로파르도 다르치파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무대에 위대한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바뀐 아들 이야기>를 올리기로 한다. 그러나 결혼식의 주인공인 커플을 비롯해 거인들은 공연을 관람하지 않고, 즉 작품에서는 한 번도 “산의 거인족”은 등장하지 않고, 그들의 하인들이 관객석을 빼곡하게 모인 채 공연을 시작한다. 하지만 공연을 그저 재밋거리, 광대놀음쯤으로 생각하는 관객들은 걸작 <바뀐 아들 이야기> 내내 산만하게 공연을 망쳐버리고 이에 열받은 백작부인 일제가 무대에서 관객을 향하여 “에잇, 짐승 같은 것들!”이라 쏘아부쳤으며, 이 말을 들은 다중의 관객은 순식간에 흥분하여 무대 위의 일제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너무 잔인하다고? 신화극이라지 않는가, 신화극.


​  이 정도면 일제를 찢어 죽이는 대중이 어떤 집단을 비유하고 있는지 딱 눈치를 채시겠지? 재미있는 희곡 작품이다. 근데 나는 왜 루이지 피란델로가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 스페인 작가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당연히 파시스트 역시 무솔리니가 아니라 프랑코 개자식인 줄 알았다. 괜히 피란델로한테 미안해지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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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9-15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에 이런 극작가가 있었군요. 대중과 소통하는 예술을 추구했나보네요. 근데 백작부인을 찢어 죽이는 부분에서는 이런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에 대한 실망을 보여주는 거 같네요.
이런 작품도 소화해내시는 골드문트님 덕분에 오늘도 한 작가를 알게 되었어요~

Falstaff 2023-09-15 16:41   좋아요 1 | URL
자기가 오페라 대본, 리브레토를 쓴 작품을 혹독하게 비판한 것이 매우 언짢았던 모양입니다. 정치는 예술에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 게 옳지만 그게 늘 어려운 건가 봅니다.
하긴 뭔들 그렇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