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르한 파묵의 책은 나로 하여금('하여금'이 조사인지 부사인지 끝내 떠오르지 않아 결국 사전 찾아봤다. 부사란다. 그럼 떼어 써야지) 망설임 없이 고르게 만든다. 그렇다고 책방에서 '오르한 파묵'을 검색해 아득바득 찾아 읽는 수준은 아니고 이리저리 서핑하다가 눈에 띄면 아무 생각없이 장바구니에 넣는다는 말씀. 지난 1월 책 살 때 세 편의 파묵을 구입했던 것. 그 가운데 마지막 책이 오늘 독후감 쓰는 <새로운 인생>. 역시 이난아의 번역. 이 정도의 오탈자면 그냥 불평하지 않고 읽어준다. 근데 <고요한 집>에선 왜 그랬어!

 <검은 책>과 <내 이름은 빨강> 사이에 썼다는데, <검은 책>은 다음 분기에나 읽을 예정이라서 모르겠고, 하여튼 흥미로운 작품이다. 바로 뒷작품 <내 이름...>하고도 완전히 다른 감각.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읽는 책은 그전과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나부터도 열아홉 살 시절에 소위 "금서"란 딱지, 그게 얼마나 매력이 있었는지.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 또 뭐가 있더라, 아 그새 다 잊었네, 까치, 돌베개, 한길사 등에서 찍은 책들. 거기다 며칠 전 얘기했던 <농무> <한국의 아이> <저문 강에 삽을 씻고> 같은 시집(전부 다 '창작과비평'에서 나온 거다. 당시 창비란, 백낙청이란 참!). 주관식 세대이긴 했지만 정규교육에선 전혀 생각도 못했던 글편들을 읽고는, 이전 12년의 교과과정이 관념을 얼마나 한정시켰는지 단박에 알아차리면서, 동시에 과거엔 틀림없이 모범생이었던 몇몇 동무들은 자신의 앞날을 여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실천적 운동으로 투신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중엔 피라미드 회사의 더블 다이아몬드가 돼 만날 골프만 치러 다니기도 하고, 실업자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아직 국회의원 후보 공천 한 번도 못받은 인간도 되고, 대학에서 선생도 하고, 대기업 임원도 되고, 회사 다니다 하나도 명예스럽지 못한 명예퇴직도 하고, 닭도 튀기면서 나하고 별로 다른 인생을 살지 않지만 하여간 그런 동무들은 한 시절, 자신의 인생에 말 그대로 완전한 전환점을 이루었는데 대부분 첫 출발은 책 한 권으로 시작했던 거다. 비록 충격을 받았을지언정 자신의 인생까진 바꾸지 않았던 평범한 모든 나에게도 책들이 던져 주었던 충격은 가히 작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쉽게 말하여 여태까지 감고 있었다는 것도 모른 눈이 떠지는 느낌.

 <새로운 인생>에 바로 그런 한 권의 책. 여태까지 잘 먹고 살던 인생을 한 방에 걷어차고 새로운 인생을 만들게 하는 딱 한 권의 책을 읽은 이들. 그 젊은이들이 어떻게 인생을 바꾸는지를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기억하시지?)메타포, 아주 큰 메타포를 이용해 그려나가고 있다. 우연히 아름다운 여학생(문학의 유구한 헛점. 여주인공은 언제나는 아니지만 대체로 예쁘고 똑똑해야 한다는 조건을 파묵 역시 따르고 있는 거디다) '자난'을 알게 된 우리의 주인공 오스만.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여대생들이 그랬듯 책 몇 권을 가슴에 끼고 다니던 자난은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빼 마시기 위해 책을 테이블에 놓게 되는데 순간 오스만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그날 오후 학교 옆의 중고책 노점상에서 같은 책을 사 읽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책 한 권을 읽은 다음 눈알에 뺑그르르 돌아버린 오스만. 그는 길고 긴 버스 여행을 떠난다. 무대가 몇년대더라? 지금 당장 기억나지는 않는데, 하여간 제대로 질서 혹은 현대화가 되지 않았던 터키 전역을 밤새고, 밤새며 또 밤새워 달린다. 이때쯤 소설은 터키판 로드 무비도 전환. 근데 아무리 옛날이라도 참 교통사고 많이 난다. 교통사고. 오스만, 참으로 신기하지, 자신은 언제나 별로 다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구조하기도 하다가, 구조하면서 이미 죽은 어떤 사내의 품 속에서 두툼한 지갑을 빼내 돈을 쓰며 또다시 로드 무비를 이어가며(물론 안 그랬다간 소설이 단박에 끝나버리기 때문에) 사고가 날 때마다 자신의 인생이 바뀌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데, 스토리는 여기까지만.

 여자 주인공 자난의 이야기? 안 하겠음.

 세상, 별 거 없다. 인류가 만든 거의 모든 탈출기는 주인공이 다시 원래 생활로 돌아오는 회귀의 순간 끝난다. 아니면 회귀 후의 회고와 에필로그로 끝나던지. 영화 <빠삐용> 보셨잖아.

 파묵의 모국이며 이 책의 무대가 되는 터키. 이슬람 국가라서 색다른 종교적 외피는 서비스로 책 전체에 깔려있는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도 혹시 이슬람 적 문제제기 아녔어? 읽어보시고 판단하는데 언제나처럼 당신이 내릴 판단이 옳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룬과 이야기 바다 문학동네 청소년 14
살만 루시디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이의 책은 <한밤의 아이들>과 <악마의 시> 두 편을 읽었을 뿐이다. <한밤의 아이들>은 처음부터 감탄을 거듭하며 읽었고, <악마의 시>는 막 읽고나선 뭐 별로, 이렇게 생각이 들다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꾸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었다. 당시 <악마의 시>는 읽자마자 독후감을 써놔서 아마 그리 좋다는 얘긴 하지 않았을 거 같다. (확인 중....20분 흐름) 내 말 맞다. 그랬다(아직도 <악마의 시>를 그렇게 걸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독후감 쓴 때만큼 후진 작품으로도 여기진 않는다. 그냥 읽어보실 분은 읽어보고 아닌 분은 아니고, 그러나 읽어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수준으로). 하여간 문제적 작품 <악마..>를 실제로 읽는 수고는 하지 않고 아래것들이 결재올린 보고서에 훑어보고나서 완벽한 신성모독이라 결정을 내린 당시 이란 회교 민주주의 공화국의 정교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 선생 왈, "세상의 모든 형제들이여, 지독한 신성모독을 저지를 루슈디를 처단하라고 명하니 이는 신의 뜻을 내 입으로 전하는 것이노라". 이후 9년 동안 세상의 모처에 틀어박혀 살던 중 아이를 위한 동화 비슷한 우화소설을 하나 썼으니 오늘 얘기하는 <하룬과 이야기 바다>.

 당연히 하룬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모험담. 그의 아버지 라시드 칼리파는 알파벳 도시의 독보적인 이야기꾼. 근데 어느날 당대 최고의 설레발장이 라시드의 입이 꽉 다물리고 만다. 얘기할 거리가 몽땅 떨어졌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것. 그런데 진짜 큰 문제는 얘기를 들려줘 댓가로 먹고 사는 인간인데, 이야기거리조차 말라버려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거. 아, 이쯤이면 눈치를 채야하지 않겠는가 말씀이야. 라시드는 작가 루슈디 스스로를 조금쯤 일컫는구나.

 그럴 수 있는데 라시드의 말문을 꽉 다물게 한 인간이 바로 친아들 하룬이라는 사실. 어느날 하룬의 어머니 소라야 여사께서 사무원으로 일하는 이웃집 놈팽이 생굽타 선생하고 눈이 맞아 남편, 아들을 버리고 내빼버린 겁니다. 생굽타는 '허풍대왕'이라는 별호를 즐기고 있던 하룬의 아버지 라시드 알기를 맨날 '사실도 아닌 이야기를 맨날 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데?'라고 우습게 알고 있었는데, 그 별볼 일 없는 작자가 다른 여자도 아니고 엄마를 데리고 날라버린 것이 거 참 묘해서 아버지한테 정말로 이렇게 물어봤던 거.

 "아버님. 사실도 아닌 얘기를 맨날 떠들고 다니는데 그게 국민생활에 무슨 도움을 주겠나이까. 세 가지만 알려주시면 황감하겠나이다."

 라시드, 이제 세상에 하나 남은 아들 하룬으로부터 이따위 얘길 듣고 입이 꽉 닫혀버린 거다.

 그 후 라시드 선생이 떠벌리고 다니는 이야기의 원천 '이야기 바다'를 향하는 버스를 우연히 얻어타게 되고 그리하여 드디어 이야기 바다에서 '이야기' 폐색증에 걸릴 위험천만의 상황에 맞게 되는데, 동화의 형식을 띠고 있음을 감안하면 당연히 해피 엔드로 끝나야 하는데 말씀이야.

 (모험의 내용은 함구! 한 번 얘기하면 끝장을 봐야할 거 같다)

 완전 살만 루슈디라는 이름 하나 보고 읽은 책. 원래 내가 동화책도 즐겨 읽기는 한다. 근데 다 읽고 잠깐 생각해보니(내 인생에 곰곰히 생각했다고 말하고 썼던 건 전부 구라다. 겪어보니 곰곰히 생각해보나, 밤새워 고민해보나, 잠깐 생각해보나 결론은 다 비슷했다. 오히려 잠깐 생각해보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었다) 동화라고 하기엔 좀 무겁고, 소설이라고 하긴 숨어있는 내용이 문제고, 하다가, 에라, 소설이라고 하자, 결론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 저렇지 않았다면 진즉 읽었을 텐데 제목만 보고 어째 청소년용 로맨스 소설 같다는 선입견으로 여태 미뤄두다가 이제 읽었다. 읽은 소감을 짧게 얘기하자면, 제목처럼 달콤 쌉싸름하지는 않지만 참 맛있게 잘 쓴 전형적 라틴 아메리카 소설. 이제야 이리 예쁜 소설을 읽었다는 게 아쉬웠을 정도. 못 믿으시겠다고? 읽어보셔. 정말 작품이 참 예쁘다니까. 당연히 전 연령층 독서 가능, 하지만 성인독자가 읽으면 더 재미있을 그런 소설. 내가 젤 싫어하는 것이 뭔 얘기 하면서 "더 재미있을 '그런' 소설", 이따위로 애매하게 얘기하는 일. 근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멕시코에 데 라 가르사, 라는 가문이 있었는데 이 빌어먹을 가문의 빌어먹을 전통 가운데 하나가, 참 말도 안 돼, 막내딸에겐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 부모가 죽을 때까진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거. 이 가문에 드디어 막내딸 티타 데 라 가르사 양이 태어났는데 티타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자신이 이 가문의 막내딸로 결혼도 못하고 따라서 자손 하나 없이 외로운 일생을 보내야 한다는 걸 안다는 듯이 배냇기름으로 허연 몸뚱이를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찰싹 때릴 것도 없이 그냥 앵앵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럴 것이 티타가 나오던 날 밤에 아버진 읍내에서 테킬라 두 병을 안주도 없이 장하게 자시고 먼 길을 걸어오다 동네 돌다리 위에서 푸짐하게 싸 놓은 개똥을 밞아 미끈덩, 다리 아래로 떨어져 흐르는 개울물에 익사를 했던가 아니면 그냥 추락사던가 하여간 숟가락 놔버렸으니, 독자는 이 사건으로 미루어 짐작하여 티타의 사주엔 애초부터 막내딸로 태어나게 되어 있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으리.

 하여간 그렇게 세상으로 내쳐진 티타. 얘네 엄마, 그것도 친엄마 엘레나 여사, 앞으론 이 여자를 편의상 마마 엘레나로 부를 것인데, 하여간 이 여잔 졸지에 죽어자빠진 남편 덕에 티타를 낳고도 그만 기가 팍 질려서 당연히 티타가 먹어야 하는 인간의 모유가 완전히 말라버려, 이후 티타는 늙은 부엌데기이지만 참으로 애정이 넘치는 요리의 고수, 나차의 손에 자란다. 친엄만지 웬순지 잘 모르겠다 싶은, 마마 엘레나 입장에서 생각해주자면 티타를 볼 때마다 저년이 내 서방 잡아먹은 년이야,하는 억하심정이 솟아나 그런 것이 분명하다 싶을 만큼, 앞으로 나 죽을 때까지 저 애가 나 뒷바라지를 다 해야 하는, 딸이라기보다 종년에 더 가까운 인종이라고 생각하는 듯 마마 엘레나는 티타의 사소한 잘못에도 예외없이 야물딱지게 귀싸대기 한 대 씩을 올려붙였는데, 그놈의 사소한 잘못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너무 '사소'하기 때문에 긁어내기로 작정을 한다면 언제든지 하나 씩은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서 티타는 날이면 날마다 귀싸대기 얻어 터져가며 길고 긴 유년시절, 소녀시절, 청소년 시절, 사춘기 시절을 다 보내야 했다. 참 이정도면 팔자도 이리 드런 팔자 별로 없을 듯.

 세상 이치라는 것이 참. 티타도 어느덧 자라 앞가슴이 봉긋해지고 엉덩이가 둥그렇게 커지면서 그만, 세상에 빌어먹을, 사랑이란 걸 하게 된다. 평생 엄마 뒷바라지하고 나아가 늙어 움직이지 못하면 똥오줌 다 받아내야 하는 가문의 빛나는 의무를 진 아가씨가 연애를 해? 이거 뭐가 잘못되도 크게 잘 못된 거다. 지금이야 막내딸한테 패악질을 서슴지 않는 마마 엘레나라고 해도 나중에 나이먹어 늙어 움직이기 힘들면 그때가서 평생 얻어맞고 산 거 차근차근 다 돌려주며 즐길 수 있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제일 중요한 건 동네 준수한 청년 페드로와 당장 결혼을 하고 싶다는 거. 잘 배운 페드로 도련님 역시 이 사건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결론을 내 심사숙고 끝에 아버지 대동하고 티타네 집을 방문해 정식으로 청혼이란 절차를 거친다.

 마마 엘레나. 참, 인간도 아니다. 하시는 말씀이, 우리집 전통에 의하여 티타는 평생 처녀로 부모 봉양의 의무를 져야 하는 일종의 가비家婢라서 결혼이라니 당치 않다. 하지만 티타 대신 맏딸 로사우라하고는 결혼할 수 있다. 로사우라 역시 미모와 좋은 예절을 갖고 있는 마춤한 규수이니 한 번 신중하게 생각해보시라. 페드로? 잠깐, 오래도 아니고 잠깐 생각하더니, 아이고 장모님 그거 참 좋은 생각이올시다. 해버리고 만다. 왜? 그게 평생 티타 옆에서 그녀를 보며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서. 근데 그게 마음대로 될 거 같아? 마음 먹은대로 되면 그게 인생이야?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결혼식이 벌어지고, 티타는 정성을 다해 '차벨라 웨딩 케이크'를 굽는다. 굽긴 굽는다. 그러면서 어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있었으리오. 부엌 바닥을 눈물에 발목이 잠길 정도로 울며 울며 또 울며 그러나 지성껏 성의를 다해 보기에도 먹음직하고 아름다운 케이크를 구워 결혼식 파티장에 내가니 하객마다 어찌 큼지막한 포크를 들고 크게 한 입 먹어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아, 기막힌 맛이여. 달콤하여 혀 위에 올려놓자마자 사르르 없어지는 부드러운 밀가루의 오비디우스 적인 변신의 맛이여. 그러나 차벨라 웨딩 케이크엔 억장이 무너진 티타의 마음과 넘쳐나는 눈물이 다 들어 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경탄할 수밖에 없는 미각을 주면서 동시에 견딜 수 없는 비탄의 맛은 하객들의 유문 괄약근에 갑자기 경색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동시에 분문이 활짝 열려 파티 석상에서 위에 담은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시 식도와 구강을 통해, 먹었던 것과 정확하게 반대방향으로 뿜어내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저택의 넓은 정원엔 어디 한 구석 하객들이 분수처럼 뿜어낸 토사물을 뒤집어 쓰지 않은 곳이 없었고 수많은 하객들 모두 토사물을 뒤집어 쓴 채 서둘러 최악의 피로연에서 도망하게 만들어버렸다.

 여태까지 쓴 것이 소설의 도입부. 이제부터 진짜 이야기가 벌어지는데 난 언제나 진짜 얘기는 해주지 않겠다. 요리와 음식을 매개로 한 재미난 라틴 아메리카 소설. 그동네 특유의 환상문학적 요소도 적절하게 가미되어 있고, 특이하게 음식이름으로 된 모든 장章이 재료부터 레시피를 소개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할 얘기는 다 한다. 책은 티타의 손자가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쓴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티타가 어떻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모양이지? 글쎄, 정말 그랬을까? 감질나게 약올리지 말고 시원하게 말 해보라고? 약오르면 직접 읽어보셔. 아 글쎄 재미난 책이라니까.



 * 로사우라와 페드로의 결혼식 전날 밤. 밤새 웨딩케이크 구울 준비를 하다가 시간이 잠깐 나서 마마 엘레나의 엄한 눈길을 피해 마굿간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눈물바람을 하고 있던 티타. 그녀가 노래한다.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잠 못 이루고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사람은 간 곳이 없고 외로이 남아 있는 저 웨딩 케익.
  그 누가 두고 갔나 나는 아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남겨진 웨딩 케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네." 


 이거 진짠지 거짓말인지 궁금하시지? 글쎄 직접 읽어보시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스본의 겨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1
안토니오 무뇨쓰 몰리나 지음, 나송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참 재미나게 읽은 책 중에서 <폴란드 기병>이 있다. 얼마나 재미나던지 다 읽은 즉시 인터넷 책방 '알라딘'에 쳐들어가 <폴란드 기병>을 띄운 다음 작가의 이름을 클릭했더니 그가 쓴 다른 책이, 없었다. 그런줄 알고 근 일년을 보내다가 민음사에서 '안토니오 무뇨쓰 몰리나'가 쓴 <리스본의 겨울>이란 책이 있는 걸 발견했다. 흠. 중간 이름 '무뇨스'와 '무뇨쓰'가 이렇게 중요한 차이구나.

 각설하고, 책 얘기하자.

 습기가 가득하고 어두운 실내. 더블 베이스가 마치 퍼커션 처럼 둥둥 울리고 그 위를 체념한 듯한 피아노가 불협화음으로 절뚝거리며 거닐기 시작할 때 쯤해선 아직 악기를 손에 들고만 있는, 시거를 입에 문 트럼펫 주자의 목엔 주름을 따라 땀이 투명한 선으로 그어진다. 흐를듯 말듯.

 듀크 엘링턴이나 텔로니어스 멍크 같은 이들만 피아노를 하는 건 아니어서, 즉 뉴 오를레앙, 아 실례, 뉴올리언스에서 시작한 재즈는 시간이 흐르며 북상을 거듭했고, 순식간에 대서양을 건넜다. 유럽에선 자연스럽게 백인 재즈가 만들어지는데 가장 높은 곳엔 트럼펫의 성인聖人 빌리 스완이 있으며, 평생 그를 흠모하게 되는 우리의 주인공이자 피아니스트 비랄보, 또는 자코모 돌핀이 있다. 돌핀. 입에 문 담배 연기가 위로 올라 눈을 자극하고 그래서 가득 눈을 찡그린 것도 모자라 허리를 한껏 뒤로 젖혀 오직 팔과 가는 손가락만으로 무심한 듯 건반을 두르리는 남자. 잠깐 자리를 더블 베이스나 트럼펫에 물려주는 틈을 타 오리지널 버번 위스키를 크게 한 모금 마시며 늘씬한 웨이트리스의 엉덩이와 종아리를 감탄하듯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러나 사실은 강한 조명 때문에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무대 앞쪽 취객들의 발목이상이 아닌 알콜중독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뇌쇄적인 육체와 아름다운 얼굴의 루크레시아. 물론 우리의 주인공 비랄보의 눈에 그렇다는 얘긴데, 이름만으로도 이미 한껏 능욕을 당했을 것같은 색다른 매력의 여인. 그녀의 동업자이자 동거인이며 동시에 범죄자, 심지어 살인자이기도 한 말컴. 그의 엄중한 눈길에도 불구하고 비랄보와 루크레시아는 어느새 돌이킬 수 없고, 세월마저 희석시키지 못한 정열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니 이 또한 인생이 아닌가. 여기에 말컴보다 더한 권위를 갖는 범죄자 커플이 등장하여 절도와 사기와 살인, 그로 인해 범죄자들이 얻어낸 결과물은, 범죄자 집단과 이런 류의 소설, 영화 등이 거의 언제나 그러하듯 한 사람의 손에 들어오고 나머지 악당들은 바로 그 한 사람을 찾아내 취득물의 회수와 동시에 복수를 위해 접근한다.

 얘기 돌리지 말자. 재즈의 블루, 우울하고 퇴폐적이고 알콜에 푹 전 삶의 모습과 기막히게 어울어진 범죄 이야기. 루크레시아라는 이름의 팜 파탈. 진정한 재즈의 성인 빌리 스완이 죽음의 침상까지 자신의 가장 순수한 혼을 불사르는 재즈 트리오. 내겐 범죄 이야기 보다는 재즈 연주가들의 삶에 훨씬 관심이 갔고, 오직 그거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이 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의 근간은 범죄 스릴러. 이런 쟝르의 책에 관해 여러 얘기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얻어맞을 만한 일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오늘은 여기서 스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점심 맛나게 먹고 심심해서 한 번 골라봤습니다.

역시 책의 순서는 의미 없습니다.


-----------------------



1. 황순원 단편집 <학 / 잃어버린 사람들>

 

 황순원 선생한텐 좀 미안한 얘기지만 선생의 작품 가운데 백미는 역시 단편이다. 어느 하나 뺄 수 있겠는가만 <학>을 제일 좋아한다. 국어 교사를 하다가 조선어 말살 정책이 시행되자 평양 인근 고향집에서 두문불출하며 오직 조선어로만 작품을 썼던 진짜 선비.

 

 

 

 

 

 

 

 

 

 

 

2. 최인훈, <태풍> 

 

 

 우리나라 최초의 가상 역사 소설.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는 이 작품이 없었으면 나오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온갖 형식의 소설을 다 실험해본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우화.

 

 

 

 

 

 

 

 

 

 

 

 3. 장용학, <원형의 전설>

 

 

 

 <원형의 전설>은 두 출판사에서 나오는데, 두산동아에서 찍은 건 원래 작품 속에 있는 모든 한자어를 다 한글로 바꾼 것. 그것도 좋지만 장용학은 뜻의 명확한 이해를 위해 조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글자를 한문으로 썼다. 지만지 책이 원본에 의거하여 만든 책. 나 같으면 이걸 고르는데 다른 분을 위해선 암만해도 두산동아로 가는 것이 좋겠다. 그 책엔 <원형의 전설> 말고도 정말로 기념비적인 장용학의 단편들, <요한시집> <현대의 야> 같은 것들도 다 실려있어서. 한국전쟁은 작가들에게 실존에 관한 묵직한 숙제를 내주기도 했고 장용학은 처음부터 실존 문제에 집착, 아예 끝장을 봤다가 정말로 끝장이 난 문제적 작가. 난 이이를 굉장히 좋아한다.

 

 

 

 

 

4. 하근찬, <수난이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절묘하게 묘사해놓은 단편. 하근찬 선생에겐 좀 미안하지만 <수난이대>말고는 히트작이 별로 없는 것이 좀 아쉽다.

 

 

 

 

 

 

 

 

 

 

 5. 김승옥, <무진기행>

 

 

 

 

 <무진기행>도 무진기행이지만 이 책에 같이 실려있는 작품들, <생명연습> <서울, 1964년 겨울> 같은 눈부신 소품들이 즐비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여신의 멘스. <생명연습>에서 여고생이던가, 하여간 청춘학생이 하는 얘기. 우리나라 문학계에 제대로 뒤통수 한 방 때리며 혜성같이 등장했던 사내의 내밀한 감각. 덩치는 이따맣게 큰 인간이 말야.

 

 

 

 

 

 

 

6. 이청준, <소문의 벽>

 

 

 

이청준의 '전짓불의 공포'에 대한 각인이 찍혀있는 나는 전짓불을 빼고 그를 생각할 수 없다. 유년의 기억 속 한밤에 난데 없이 나를 향해 내쏘는 전짓불. 불을 비추는 저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생사를 가르는 대답을 해야하는 갈림길.


 

 

 

 

 

 

 

 

 7.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난 아이들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이 책을 사줬다. 책을 완전히 다 읽어내면 적어도 지적인 시각으로 다 자란 것에 가깝다고. 인간의 기본적인 공포, 죽음에 관한 박상륭의 깊숙하고 유명짜한 고찰. 내 책은 한 권이었었는데 언제 두 권으로 분책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신자유주의란.

 

 

 

 

 

 

 

 8. 이문구, <관촌수필>

 

 

 

 말이 필요없는 명 문장들의 향연. <우리동네> <장한몽> 기타 등등에서 보인 이문구 식 걸쭉하고 유장한 입심과는 또 다르게 명징한 서정으로 유년과 조부에 헌정한 책.

 

 

 

 

 

 

 

 

 

 

 9. 황석영, <장길산>

 

 

 

 젊은 황석영표 대하소설. 홍명희의 <임꺽정>도 좋으나 역시 좀 오래 전 것이라 황석영의 이 책을 꼽을 수밖에 없다. 힘찬 영웅들의 모험담. 또다른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질박한 조선 민중들의 건강한 알통과 애뜻한 사랑 이야기.

 

 

 

 

 

 

10. 최명희, <혼불>

 

 

 

 길고도 재미있고도 무엇보다 아름다운 장편소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얼마나 섬세하게 썼는지 책을 읽으며 작가 최명희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던 경이. 이렇게 긴 이야기를 썼음에도 진도가 반 정도 밖에 나가지 않은 듯한 아쉬움. 최명희의 단명을 탄함.

 

 

 

 

 11. 신경림, <농무>

 

 

 

 내가 번 내돈으로 처음 사본 책. 세상의 모든 쇠붙이, 총칼을 녹여 호미며 쟁기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어깨를 걸고 노래하는 한 바탕. 아,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만 18세 청년은 새롭게 눈을 떳었다.

 

 

 

 

 

 

 

 

 

 

 

12. 서정춘, <죽편>

 

 

 

 겉멋이 아닌 진짜 시의 맛을 알게 해준 시집. 데뷔 29년이던가 만에 펴낸 처녀시집. 편편이 알뜰하게 써내려간 시들이라니. 하나의 노래라도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내 책은 동학사에서 나온 것인데 그 회산 그새 망했나보다.

 

 

 

 

 

 

 


* 근데 이거 쓰기 정말 힘들다. 점심시간 지난지 벌써 40분 됐다. 괜히 시작해 눈치 보인다. 타의에 의해 그만 쓰겠다. 잘못하면 잘리겠다. 정말 이 포스트는 쓰다 만 거다. 이래놓고 보니까 시간 없어 이름을 올리지 못한 작가/시인들한테 미안하다. 오정희, 이문열, 김수영, 김주영, 조세희 등등(여기서조차 이름을 빼먹은 작가들한텐 진짜진짜 면목없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7-06-0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 서정춘, <죽편>은 처음 들어봅니다. ^^ <원형의 전설>하고 챙겨봐야겠군요. 감사합니다.

Falstaff 2017-06-09 11:34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 읽고 뭐 할 얘기가 없더라고요. 극도로 절약한 단어들로 만든 짧은 문장과 짧은 시. 그러면서 할 얘긴 다 하는 거요.
일갈하더군요. ˝설사하듯˝ 시쓰는 시인에 관해서. 죽여주는 시가 많이 들어있는 아주 얇은 시집입니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竹篇·1 ― 여행> 전문

대나무 마디마디가 기차가 되어 고향마을에 가는데, 결코 갈 수가 없는 것이지요. 백년이 걸린다니 살아생전엔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봄 밤에 술 한 잔 마시고 고향 생각하는 시인이 눈 앞에서 삼삼하지 않으셔요? ㅎㅎㅎ

그의 다른 시집 <봄, 파르티잔>도 역시 절창입니다.

Falstaff 2017-06-09 11:37   좋아요 0 | URL
<원형의 전설>.... 제가 잠자냥 님의 세대를 몰라 드리는 말씀인데요, 학교 다닐 때 한문 배우지 않았으면 두산동아 판으로 읽으셔요. 알라딘엔 품절이고 다른 인터넷 서점엔 재고가 있는 거 같더라고요.
한문 배우셨으면 당연히 지만지 책이고요.

잠자냥 2017-06-09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한글전용세대라 지만지판 잠깐 보니 안되겠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