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0
구스타프 마이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책세상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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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이링크가 1913년에서 14년까지 잡지에 연재한 것을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참일 때 독일에서 출간하여 2년 만에 25만 부가 팔린 놀랄만한 기적을 이룬 책이다. 책 뒤에 보면, 이때 마이링크가 살림이 곤란해서 인세를 받는 대신 그냥 판권 자체를 팔아넘겨 자신은 별로 돈을 만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쩌랴 그게 인생인 걸.
 책을 읽다가 첫 부분부터 고딕 소설의 양식을 띤 초현실주의 문학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고딕 소설은 당시 에드가 앨런 포와 메리 셸리,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같은 것들에게 영향을 받았을 수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골렘>이 나오고 2년 후에나 기욤 아폴리네르에 의하여 주창이 되고, 출간 후 거의 10년이 지나 1924년에 앙드레 부르통에 의해 전성기를 맞을 초현실주의의 면면이 보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여기서 잠깐. 이 작품에 관해 누구도 초현실주의 운운하지 않는다. 완벽한 아마추어 독자에 불과한 내가 읽어보니 그 사조의 기미가 보인다는 뜻이다. 게다가 구스타프 마이링크 자신이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국무대신 폰 파른뵐러 남작과 궁정극장 여배우인 유대인 처녀 마리아 마이어 사이에 사생아로 태어”나 (427쪽) 고독한 소년기를 지내고, 이후 청년기가 되어 방탕한 생활을 지속하다가 20대 초반에 권총자살을 결행하려는 순간 신비주의의 가르침을 적은 ‘찌라시’ 한 장 때문에 자살을 포기하고 마법, 신비주의, 연금술, 카바라, 요가, 도교, 불교 등등에 몰두하기 시작했단다. 잘 했다. 죽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말은 이리 쉽게 해도 생각해보시라, 이런 아들을 둔 부모 마음을. 그러나 걱정도 팔자. 아버지는 끝내 마이링크가 자신의 후손임을 부정했고, 어머니 역시 오직 하나, 배우로서의 자신의 경력에만 관심을 두었다니. 이런 성장과정의 특이점이 모이고 모여서 그의 나이 마흔일곱에 유대 산 괴물 하나에 집중되었으니 이름하여, 골렘.
 ‘골렘’하면 사실 이름이 낯설지 않다. 골룸 때문에. 난 <반지의 제왕>에서 등장하는 골룸보다 조혜련의 골룸을 훨씬 재미나게 생각하는 인간인데, 하여간 이미지는 비슷하다. 골렘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17세기, 그러니까 1600년대 유대 랍비가 만들어낸 작은 프랑켄슈타인 정도로, 아랫니 안쪽에 부적을 붙여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존재였단다. 그런데 간혹 랍비가 깜빡 잊고 부적을 떼지 않는 밤이 혹시라도 있을 거 아닌가. 이럴 땐 만월이 비추고, 만월을 바라보고 있던 어떤 인간의 송곳니가 솟으면서 하울링을 시작하는 늑대인간으로 변신할 때, 골렘은 창백한 시선과 괴물 같은 모습으로 동네 골목, 골목을 다니면서 깽판을 쳤던 것이란다. 그래 유대 랍비는 이 골렘이란 유사 괴물을 출입구가 없고 오직 작은 창문 하나만 달린 높은 탑 위에다 유폐를 시켜버렸는데, 거기서 아랫니에 부적을 달지 않은 상태로 백년이고 천년이고 흘러갔다면 당연히 소설이 성립되지 않으니, 구스타프 마이링크는 33년에 한 번씩 프라하의 유대인 거리, 즉 게토 지역에서 이 골렘이 나타나고, 그때마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고, 그런 민간전승이 있다고 밑밥을 깔고 소설을 시작한다.
 앞에서 마이링크가 동양의 신비사상에 빠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초입에 불교적 화두를 하나 던진다.


 “까마귀 한 마리가 비곗덩어리처럼 생긴 돌멩이를 향해 날아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저기에 맛있는 게 있을지 몰라.’ 그렇지만 까마귀는 거기서 맛있는 거라곤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날아갔다. 그 돌멩이를 향해서 다가갔던 까마귀처럼 우리 유혹자들은 금욕적인 부처를 그냥 버려두고 떠나간다. 그에게 더 이상 애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8쪽)


 방금 책장을 덮은 내가 다시 읽어봐도 이 화두를 완전히 풀지는 못하겠다. 화자 ‘나’는 불면에 시달리는 증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 의식의 저 안쪽에서 비곗덩어리를 닮은 돌멩이를 열나게 찾는데, 그건 책의 거의 끝부분인 388쪽이 되어야 앗, 하는 순간에 겨우 나온다. 그러니 가르쳐드리지 못하지. 그게 결론인 걸. 그냥 뒤통수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는 말만 하자. ‘나’는 오래 전에 어디서 실수로 다른 사람의 모자를 내 것인 줄 알고 썼던 기억이 있다. 하필이면 그 모자가 내 머리에 잘 맞아 집에 도착해 모자 안쪽을 들여다 본 후에야 남의 모자인 줄 알았을 정도였다. 당시 사람들이 쓰던 모자는 머리카락이 닿는 안쪽에 비단으로 안감을 대고, 안감에 모자의 주인 이름을 대개 황금색 실을 써서 재봉틀로 들들 박아 놓는 것이 보통이었다. 19세기 생인 내 조부님도 그런 모자를 쓰고 다녀서 안다. 거기엔 “아타나시우스 페르나트”란 이름이 쓰여 있었다.
 여기서 갑자기 화면의 전환이 발생한다. ‘나’와 ‘아타나시우스 페르나트’의 혼동이 발생하는 것. 그래 한 순간 ‘나’는 예술가 수준의 보석 세공인 페르나트가 되어 유대인 언청이 고물상 주인 ‘바서트룸’을 중심으로 장편소설이 되기에 충분한 이야기를 꾸려나가기 시작한다.
 한 얘기 한 번 더. 이야기는 약 일 년의 구치소 생활을 제외하고는 프라하 내 게토지역에서 벌어진다. 게토라는 것이 반유대주의의 한 표징으로 유대인들(만)이 모여 살라고 집단 거주지로 만들어 놓은 곳이기 때문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며, 골목이 좁고, 길은 진흙탕 등등 그리 밝은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책 뒤표지에 쓰여 있듯이 골렘은 ‘게토 지역에 감도는 어두운 집단적 심리 상태’일 수도 있고, 비밀의 문을 통해 출입구 없이 창문만 하나 나있는 탑 위의 방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나’의 의식의 저편 또는 도플갱어일 수도 있다. 안다, 알아. 지금 내가 하는 말, 무슨 뜻인지 모르시겠지? 이해해주시라. 내 의견이 틀리겠지만, 하여간 초현실주의와 근접한 자리에 있는 고딕 소설을 어떻게 콕 짚어서 설명을 할 수 있겠는가. 한낱 아마추어가 말이다. 만일 앞으로 이 책을 읽으실 분이 계시다면, 바라옵건데 비곗덩어리를 닮은 돌멩이를 찾는 건 물론이고, 금욕적인 부처를 그냥 내버려두고 떠나는 일이 없으시기 바란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부담되셔? 그럼 다행이네. 이 책, 지금 ‘절판’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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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 - 선원, 빌리 버드 외 6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7
허먼 멜빌 지음, 김훈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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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빌의 중단편집.
 그래 책은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 거다. 이 책에 실린 두 번째 작품 <베니토 세레노>가 132쪽, 마지막 <선원, 빌리 버드>가 128쪽. 엔간한 출판사에서 이 분량이면 넉넉히 세 권은 만든다. 기막힌 편집으로 페이지 수 팍팍 늘려가며. 저번에 윌리엄 트레버에서 잠깐 거론했는데, 앞으로 외국 단편집을 고를 땐 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을 제일 먼저 고려하기로 결심한 바 있다. 그리하여 허먼 멜빌을 이번에 읽었으며, 몇 주 후에 진 리스의 단편집을 또 읽을 예정이다. 몇 달 후엔 윌리엄 포크너, 그레이엄 그린 단편집도 일단 골라놓았다.
 멜빌의 단편집에서 기대했던 건 역시 아직도 읽지 않고 버텼던 <바틀비>와 <선원, 빌리 버드> 두 작품. 책의 첫 번째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두 중단편이다. 읽어보니 이 두 개하고 두 번째 작품 <꼬끼오! 혹은 고귀한 수탉 베네벤타노의 노래>도 재미있었다.
 멜빌의 생몰이 1819~1891년. 당대로 치면 일흔두 살까지 살았으니 장수한 편이지만 일생을 그리 재미있게 보내진 못한 거 같다. 쓰는 글은 절대 안 팔리고, 심지어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마땅한 걸작 <모비딕>은 서점에서 수산업 관련 코너에 쑤셔 박히는 지경을 당했을 정도였으며, 큰 아들은 자살 비슷하게, 둘째 아들은 폐결핵으로 먼저 보내야 했고, 온갖 불행에 점점 우울증은 심해지는 와중에도 먹고 살기 위해 세관원으로 근무해야 했으니 거참. 그렇다고 초년 운이 좋았던 것도 아니어서 일곱 살에 성홍열에 걸려 평생 나쁜 시력을 가져야 했는데, 아버지가 사업을 하느라 온갖 동네에서 빚을 얻어 쓰다가 일찍 저 세상으로 가는 바람에 열세 살부터 식구 부양을 위해 잡일을 전전해야 했단다. 그러니 사람이란 건 어쨌거나 사주팔자가 중요한 거다. 생각해보라. 같은 인간이긴 하지만 당신 팔자가 좋겠어, 이건희 씨 외아들 팔자가 좋겠어.
 멜빌은 안 좋은 별자리를 타고 태어나서 그렇다 치고, 존 클래거트라고 하는 선임위병 부사관이란 인간은 뭐야?


내가 살아생전 한 번도 갖추지 못했던
아름다움, 용모, 선함!
난 나면서부터 타락의 세상 속에서만 살았어!
그 속에서 찾은 평화는 지옥의 율법 위에 있었다고.....
벨리포텐트 호의 선임위병 부사관, 나 존 클래거트는 권력을 가지고 있단 말이다.
반드시 널 파멸시키고 말리라!

 

화질은 별로지만 당대의 보탄이었던 제임스 모리스의 노래로 골랐다.


 무대는 18세기 말, 혁명 후 5인 집정관이 이끄는 프랑스 해군과 대치상태에 있는 지브롤터 부근의 영국 전함 벨리포텐트 호. 전임 부사관이 노령으로 은퇴를 하고 새로 마흔 살이 넘은 선임위병 부사관이 배를 탔는데, 이 인간이 어찌 된 일인지 아름다움과 선함만 봤다하면 알레르기 현상이 벌어진다. 프랑스의 인권과 자유사상이 들어오는 걸 바라지 않았던 영국 왕실과 귀족, 부르주아들은 집정제를 택한 프랑스와 한 판 전쟁을 벌이기 위해 마구잡이로 징병을 해, 불만에 가득 찬 젊은이들을 육군과 해군에 배치하기에 이르고, 포화상태에 이른 징병자들이 두 번에 걸쳐 해상반란을 일으킨 뒤끝이다. 이런 시기에 하필이면 클래거트 같은 인간이 있는 전함에, 잘생기고 천성이 선하고,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주변이 화목해지게 되는 그런 청년 빌리 버드가 오르게 된다. 사건이 터지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마련된 것.
 선임위병 부사관이란, 예전 말로 군대의 군기를 담당하는 부사관. 유럽에서 화약무기를 쓰기 전엔 뭐 칼이나 단도 같은 무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일을 했지만 18세기 말 영국해군의 주력무기는 16세기 말의 조선처럼 경쟁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월한 대포였다. 그래 선임위병 부사관이란 이제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지나가는 사병들 세워놓고 단추를 목까지 채웠네, 안 채웠네, 흰색 바지에 줄이 제대로 잡혔네, 안 잡혔네, 이따위를 따지면서 해당 병사한테 엎드려뻗쳐, 일어나, 엎드려뻗쳐, 일어나, 앞으로 취침, 기상, 뒤로 취침, 어 이거 동작(반 박자 쉬고) 봐라,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자동, 이따위 짓이나 하면서 국민들 세금이나 축내고 있는 작자였단다. 그러니 클래거트도 나름대로 자만심이 상할 대로 상했을 수 있었겠지. 그러나 멜빌이 주장하고자 하는 건 그런 자격지심이 아니라, 혈관을 타고 흐르는 선함에 대한 본능적 거부. 선과 악이 특정 환경 아래에서 부딪혀 어떻게 결말을 맺는지에 관한 탐구다.
 <모비딕>을 쓴 세관원 멜빌답게 장황한 서술을 동반하지만 인간 본성에 관한 집중적인 모색을 시도한 <선원, 빌리 버드>는 세월이 흐르더라도 언제나 읽어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벤자민 브리튼이 작곡한 오페라 <빌리 버드>의 원작인데, 두 가지가 원본과 다르니 ① 빌리가 탄 배 이름을 인도미터블Indomitable 호로 바꾸었고, ② 용감하고 현명한 함장 비어 대령의 노년이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는 뭐 아셔도 그만, 모르셔도 그만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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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3-14 0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현대문학 세계 단편선 가격대비 정말 훌륭한 책입니다. 웬만한 단편집에 있는 작품들은 다 수록되어 있고요. 번역질도 괜찮은 편이고... 전 이 시리즈 거의 다 갖고 있는데, 재미나게도 멜빌 단편선은 안 샀어요. ㅋㅋㅋ <필경사 바틀비>를 다른 책으로 읽은 터라 그랬나봐요. ㅎㅎ

Falstaff 2019-03-14 10:16   좋아요 0 | URL
예. 전 <윌리엄 트레버>로 이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는데, 와, 다른 출판사에서 찍었으면 그 책도 아마 세 권은 넉넉하게 나왔을 겁니다. 참 좋은 시리즈예요.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말입니다.
전 포크너가 잠자냥 님하고 비슷한 이유로 갈등 중입니다. ㅜㅜ

잠자냥 2019-03-14 10:51   좋아요 0 | URL
포크너 이 양반, 참 넘어서기 어려운 양반이긴 해요. 포크너 단편집도 몇 작품만 읽고 일단 모셔두고 있어요. 이 양반은 단편도.... ㅋㅋㅋㅋㅋㅋ <소리와 분노>도 읽다 말았는데, 언젠가는 꼭 전작을 다 읽어야 할 작가이긴 하죠;;; 음.....

2019-03-14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4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4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나무 2019-03-14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정말 단편집하면은 이제는 현대문학 단편집 이렇게 됩니다! ㅎㅎ
제법 되는 두께로 인해 가지고 다니지는 못한다는 게 단점이지만.... 근데 그게 참 양심적으로 다가와서 이 출판사와 이 시리즈는 믿음이 가더라구요. ㅎㅎ
앞으로도 이 시리즈는 계속 나왔으면 좋겠어요. ^^
<허먼 멜빌>은 <필경사 바틀비> 책을 따로 갖고 있지만서도 <선원, 빌리 버드>때문에 구입해 두었는데 이참에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19-03-14 11:3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정말 좋은 시리즈예요.
교정 교열도 상당한 수준이고요. 현대문학이 사실 전통이 있는 책가게 아닙니까. 월간지가 먼저 떠올라서 그냥 잡지사거니, 해서 그렇지요. ^^

slobe00 2019-03-1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드하우스를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어찌나 두껍던지요~

한 권씩 사 모으는 중인데 다음 타자로 멜빌 찜해둬야겠어요^^

Falstaff 2019-03-14 12:33   좋아요 0 | URL
ㅎㅎ 하여간 흥미로운 시리즈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고맙기도 하고요.
<윌리엄 트레버>도 아주 좋게 읽었습니다. ^^
 
일곱 박공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2
너대니얼 호손 지음, 정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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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읽은 호손의 장편소설. <주홍 글자>와 <블라이드데일 로맨스> 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완전히 내 입장에서 발언하는 건데, 더 재미있게 읽은 건 비교한 두 작품보다 훨씬 ‘덜’ 종교적이라는 의미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와 뉴잉글랜드 지역의 광활한 밀림지역을 차지한 핀천 가문. 이들 가운데 야심과 욕심이 넘치고, 활달하며 매사 (지나치게) 적극적이고 그래서 공격적인 핀천 대령이 있었다. 대강 17세기 중엽 아닐까 싶고, 프랑스 군과의 전투에 참전해서 대령 계급장을 달았단다. 당시는 유럽에서도 마녀사냥이 가장 유행하는 스포츠였으며, 이런 유행은 신대륙에서 청교도적 맹신으로 한층 심화 발전시켜 마녀, 마법사 비슷하기만 하면 바로 인간사냥을 벌였던 모양이다. 이런 과도한 청교도적 분위기는 <주홍 글자>에서도 본 바 있으니 그런가보다 하면 된다. 하여간 그런 시절에 핀천 대령의 거대한 땅 노란 자위 부위엔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나는 샘이 있었는데, 샘을 둘러싼 농토 몇 마지기를 직접 개간해 살고 있는 농부이자 목수인 매슈 몰이 또한 있었다. 원래 가진 자의 욕심이란 건 끝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몰 가족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다 저택을 지어 자손만대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핀천 대령은 자신의 재산권을 당연하게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 매슈를 어떻게 처리할까 몇날 며칠을 끙끙 앓더니 에라 모르겠다, 마법사로 몰아 목을 매달아버린다. 마법사 소유의 땅은 당연히 치안판사를 겸했던 핀천 대령이 꿀꺽 해 잡수시고. 그리하여 드디어 샘가 옆 비옥한 검은 땅 위에다 집을 짓는데, 당시만 해도 지역의 랜드 마크가 될 정도로 큰 저택으로 박공이 무려 일곱 개에 달하는 뻑적지근한 저택이었다. 핀천 대령이 얄궂은 것이 하필이면 집을 짓는 목수로, 자기 손으로 목매단 매슈 몰 씨의 아들 토마스 몰을 대목장 비슷하게 임명했다는 거. 매슈 몰의 목에 밧줄이 감길 때, 마지막 유언으로 그는 손가락으로 핀천 대령을 지목하면서 큰 소리로 “신이 저자에게 피를 마시게 할 것이다.”라고 저주까지 했는데 말씀이야. 그래서 그랬나, 맑은 물이 퐁퐁 샘솟던 샘은 일곱 박공의 집이 들어서자마자 검은 색으로 바뀌었으며, 동물이 이 물을 마시면 꼭 탈이 나기 시작했으니, 미국 판 <마농의 샘>? 하여간 매슈 씨의 아들 토마스는 오직 직업과 일과 보수만 여기고 어차피 지난 과거를 굳이 들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아주 탄탄하게 주문대로, 자손만대 잘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주었다. 당연하지, 돈을 받았으니까. 근데 오직 그것만?
 그리하여 이른바 오픈 하우스. 테이프 커팅을 하는 날, 대령의 집엔 통구이한 암소 두 마리와 돼지 여섯 마리, 삶은 개 열 마리를 준비해 부지사를 비롯한 상류계급을 물론이고 동네 천것들 까지 모두 불러 성대하게 잔치를 벌였는데, 내가 벌써, 여러 번 얘기한 바와 같이, 문학작품에서 불길한 예언은 언제나 들어맞는다는 소설작법 제 2강 15조에 의거하여, 이 좋은 날 테이프 커팅 시간이 되도 대령은 등장하지 않는 거다. 열 받은 부지사. 그깟 대령이 계급이라고 이게 날 초대해놓고 코빼기도 안 보여, 무슨 일이 있어도 열지 말라는 제2 응접실의 문을 벌컥 여니, 대령은 안락의자에 앉아 커다란 흰 넥타이를 피로 물들이며 죽어 있는 거였다. 오픈 하우스가 파투난 건 당연하고, 아마 뇌졸중 가운데 한 현상 같은데, 이런 병증으로 대령의 자손 가운데 바로 이 장소에서 적어도 두 명은 더 죽어나가게 된다. 물론 책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죽음만 두 명이고 나머지 그냥 흐지부지 넘어간 죽음은 더 될지 호손은 밝히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2세기가 지난 19세기 초중반이 작품의 시간적 공간이다. 그럼 여태까지는? 들어가는 내용이다.
 일곱 박공의 집은 이제 세월의 때가 잔뜩 묻어 비가 새고 정원엔 잡초가 무성해 겉으로 봐도 퇴락할 대로 퇴락한 상대다. 집엔 근시가 심해 항상 얼굴을 찡그려야 해서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누가 보면 언제나 화가 잔뜩 난 것처럼 보이는 늙은 헵지바 핀천이 고독하고 가난하게 살고 있다. 30년 전에 삼촌이 죽으면서 모든 재산을 헵지바의 사촌 오빠 재프리 핀천에게 유증하면서 시집도 못 간 헵지바가 불쌍하니 그녀가 죽을 때까지 일곱 박공의 집에서 살게 하라고 해 이날까지 묵고 있지만, 사촌 오라비이자 지역 판사이며 유력한 차기 도지사 후보인 핀천 판사께서 먹고 사는 일에 별로 도움을 주지 않아(도와주긴 했다. 충분하지 않아서 그렇지), 일곱 박공 가운데 하나를 홀그레이브란 이름의 은판 사진사에게 사글세로 내주었고, 그것도 모자라 귀족 신분으로서는 매우 굴욕적으로 일곱 박공의 집 한쪽에 상점을 내 영업을 하기로 결정한다. 가게를 여는 날이 장편소설 <일곱 박공의 집>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날. 늙기는 했지만 귀족 처녀가 평민들한테 물건을 판다? 되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서 헵지바는 굴욕적이고 비사회적이고 적응불가능 상태에 빠져 허둥대다가 시간이 되자마자 문을 닫아버린다. 대강 그림이 그려지실 것. 그런데 난데없이 집 앞에 포장마차가 서더니 밀짚모자가 먼저 보이고 깡총, 소녀 하나가 마차에서 내려서 헵지바 앞에 등장하는 것. 친척 조카 피비. 아빠가 죽고, 이제 엄마가 다른 남자한테 시집을 가기 때문에 자기를 돌봐줄 가장 가까운 친척을 찾아온 것. 여기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탁, 알아채실 것. 그렇다, 이 어린, 아니, ‘어린’ 까지는 아니고 젊은 처녀가 쇠락할 대로 쇠락한 일곱 박공의 집에 활력을 주기 시작한다.
 아쉽지만 내용은 여기까지. 이제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니 그 앞에서 멈춰야지 그렇지 않으면 스포일러가 되기 십상이리라.
 재미있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851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당신의 눈높이를 19세기 중반으로 낮추어야 함은 물론이다. 눈 빠른 독자들은 중간 정도 읽으면 사건이 어떤 결말로 끝날지 훤히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장황한 서술에 책을 덮을까 말까 고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초간 바로 전 해에 생을 마감한 오노레 발자크의 “인생극” 편편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내 읽기에 역자 정소영이 대단한 공력을 기울여 번역 작업을 한 것처럼 긴 문장을 잘 읽히게 우리말로 만들었으며 교정 수준도 보통 이상이다. 여기다가 제일 앞에서 얘기했듯, 호손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훨씬 덜 종교적이라 나처럼 지옥의 유황불을 예약한 인간들도 별로 캥기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원래 읽지 않으려 했던 작품이었으나, 에잇, 마지막 호손으로 한 권만 더 읽어보자, 했다가, 나로 하여금 앞으로도 호손은 계속 읽기로 작정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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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아의 고백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9
알프레드 드 뮈세 지음, 김미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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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드 뮈세가 프랑스 시인이란다. 번역시에 관심이 없는 내가 그의 이름을 알 턱이 있겠나. 그것도 19세기 전반기에 대표작을 쓴 시인이라니. 그가 유일하게 남긴 완성품 장편소설이 바로 <세기아의 고백>. 1836년 2월. 뮈세의 나이 25년 3개월 때 일이었다.

 도대체 세기아가 뭘까. 물론 사람 이름이겠지. 이렇게 생각했다. Sègiat 정도? 그래 혹시 비슷한 말이 있나 네이버 사전 검색해보니 seguia, ‘북아프리카의 관개용수로’를 일컫는 말이란다. 거참. 일단 책을 넘겨보자. 책을 쓴 시기가 1835년 쯤 됐을 터. 서론 부분에 당시 시각으로 프랑스 현대사, 1793년 루이 16세의 처형부터 프랑스 혁명이 사실상 종결되는 1814년 보나파르트가 엘바 섬으로 추방당할 때까지, 사학자의 시선이 아니라 다분히 시인의 눈길로 고찰을 하고, 이후에 진정한 새로운 세기, 즉 19세기가 개막한다고 주장한다. 새롭게 펼쳐지는 19세기 초반. 프랑스 젊은이들을 거의 깡그리 몰살시켰던 나폴레옹 시대 이후에 새롭게 대두된 시대. 비록 왕정복고와, 21세기까지 프랑스 시민들의 유구한 전통이 될 바리케이드를 동반한 폭동이 일어났지만 대체적으로 평화적이고 비종교적인 자유사상이 젊은이들에게 유입되기 시작한 새로운 세기, 그 19세기의 아이, 총아를 ‘세기아世紀兒’라고 칭했던 거였다. 작가 알프레드 드 뮈세가 1810년 12월 출생. 본인 자신이 세기아임은 당연하다. 세기아, 유럽 말이 아니라 역자가 한자를 이용해 만든 단어. 좀 웃겼다.


 다시 한 번 강조. 뮈세가 최고의 전성기를 이룬 시기가 20대 초반. 이 정점에 <세기아의 고백>을 썼다. 뮈세 자신이 펄떡펄떡 뛰는 청년이었다. 뭐 아무 때나 펄떡펄떡 뛴다는 말이 아니라, 시야에 외모가 괜찮은 여자, 기혼 미혼, 과부, 이혼녀 등을 망라하고 하여간 여자만 앞에 있으면 그런 상태가 되는 시기였다는 뜻. 청년 시대에 전성기를 마감한 ‘19세기’ 작가의 가장 큰 주제는 역시 사랑과 질투, 복수, 결투가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이다. 거기다가 젊은 뮈세에겐 특이한 전력이 있었는데 책을 쓰기 한 삼 년쯤 전에 애 둘 달린 이혼녀 조르주 상드와 불꽃 튀는 연애를 하다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는데, 어딘가에서 병이 들어 그들을 진료하던 의사에게 상드를 빼앗겼다나 어쨌다나. 난 남의 상열지사에 관해 별로 관심이 없어서 (진짜?) 잘 모르겠지만 사내가 그때 일을 잊지 못하고 쪼잔하게 장편소설을 써서 만천하게 드러낸 작품이 바로 이 <세기아의 고백>이다.
 모두 5부로 되어 있는 작품. 1부는 맛보기. 전형적인 룸펜 부르주아 약골 주인공, 도(C)에서 시(B)까지의 음역을 일컫는 이름을 가진 옥타브가 애인과 함께 가면무도회를 즐기고 만찬 자리에 참석을 했는데 밥을 잘 먹다가 그만 젓가락 한 짝을 떨어뜨리고 만다. 아무 것도 아닌 일 같지? 천만의 말씀. 젓가락을 주우려 고개를 숙이니까 식탁 커버 아래, 바로 눈앞에 보이는 애인의 다리가, 근엄한 척하며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는 남자의 다리와 서로 엉겨 있는 거 아닌가 말이다. 화들짝 놀라기는 했지만 만인이 좌정한 앞에서 열을 낼 수는 없고, 그냥 덤덤하게 만찬을 끝낸 다음 집에 돌아오며 생각해보니 이거 질투가 나서 살 수가 없는 거다. 그래 친구를 대동하고 다음날 새벽에 신사도 규칙에 맞는 결투를 하다가 오른 팔에 총알 하나를 기념으로 박아두게 된다. 그러고 나서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우리의 옥타브. 결국 결투에 이은 자신의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는 애인의 더블데이트를 알고 2부에선 친애하는 동네 형이자 자유주의자이며 사회주의자인 데주네의 인도와 지도편달 아래 본격적으로 도박과 매춘 등 환락에 빠져들게 된다. 외아들 하나 남은 것이 이렇게 논다니로 놀아나니 아빠 마음이 편하겠나. 그것이 병이 되어 고향의 아버지가 어느 날 뇌출혈이 발병해 파리에서의 엽색행각이 마감하는 것으로 2부까지 끝.
 고향에 돌아온 3부에서 드디어 유사 조르주 상드로 분장한 여주인공 브리지트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부터는 내가 더 말 못하지. 직접 사서 읽어보시라는 뜻에서.
 내용은 뻔하다. 위에서 얘기한대로 스물넷 먹은(출간이 스물다섯 해 두 달이니까) 작가가 제일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분야는 바로 연애와 배신과 질투와 실연 기타 등등이란 건 앞에서 이미 말했다. 거기다 조르주 상드에게 실연당한 전력이 있었으니 얼마나 재미있게 쓸 수 있었겠는가 말이지. 하나 더 보태자면 뮈세 자신이 소설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시인이었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솔직히 말해서, 책의 내용은 20대 시절에 사랑과 실연과 질투를 겪어본 (같은 남자) 입장에서 하나도 새롭거나 호기심을 동하거나 특이한 건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나는 이 책의 일독을 당신에게 권하니, 그건 문장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비틀어 말하면 구태의연하고 장식적이며 상투적인 문장의 만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뒤틀어 아예 뒤집어 말씀드리옵자면, 이젠 영원히 볼 수 없고 쓸 수도 없는 예스럽고 화려하고 유려하며 고색창연한 아라베스크를 보는 듯한 문장들에 눈이 부실 터이다. 만날 이런 문장을 읽으라면 정말 고역이겠으나 길고 긴 독서생활 가운데 어쩌다 한 번 이런 글을 읽으니 오히려 색다른 맛을 느낄 기회가 되더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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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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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괄량이 길들이기>, <좋으실 대로>, <십이야>와 더불어 ‘셰익스피어 4대 희극’으로 불린다는데, 왜 여태 나는 셰익스피어한테 ‘4대 희극’이란 것이 있었는지도 몰랐을까. 이 목록은 ‘출판사 제공 책 소개’라는 글에서 처음 읽었다. 암만해도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것 같다. 왜냐하면, 흔히들 이야기 하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는 대단히 탄탄한 구성과 복잡한 인간 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반면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이번에 읽은 <한여름 밤의 꿈>에 국한해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해보자면, 아직은 걸작을 만들어낼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상태였다, 라고 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으로, 예전에 읽고 천하의 셰익스피어도 날 때부터 걸작을 줄줄이 쏟아냈던 건 아니라는 진리를 알게 되어, 초기 작품은 될 수 있으면 읽지 않으려 했었다가, 존 파울즈가 쓴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 안에 이 작품 <한여름 밤의 꿈>이 거론되는 것을 보고, 그래, 언젠가 한 번은 읽어야 한다면 이번에 읽자고 마음을 먹어 구입해서 읽은 거다.
 책을 열면 첫 번째 대사를 하는 인물이 놀랍게도 아테네의 왕자로 일찍이 크레타 섬에 잠입해 미노타우로스를 쳐 죽이고, 괴물의 동복이부 동생 아리아드네를 버린 전적이 있는 테세우스다. 상대역 히폴리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헤라클레스가 쳐 죽인 여인 무사가 아니라 좀 변형된 전설에서 나온 인물로, 한쪽 유방이 없는 여인 전사들인 아마조네스를 이끌고 테세우스와 싸우다 부상을 당해 포로가 된 다음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투스를 낳은 전설 속 인물. 아직 테세우스와 히폴리타가 히폴리투스를 만들기 위해 모종의 작업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둘이 결혼식을 올리기 전날부터 당일까지 약 36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또 극에 드라마틱한 전환점을 만드는 역할은 요정의 왕 오베론과 요정여왕 티타니아, 그리고 그들의 종복인 퍽이 담당한다. 이들은 각기 그리스 로마 전설과 (역자 해설을 보니) <보르도의 휴온>에서 따왔다 하니 작품의 주연으로는 함량 미달.  그때나 지금이나 극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재는 역시 남녀관계다. 그중에서도 한 커플이 순조롭게 연애하고, 조금 갈등하는 척하다가 결혼에 골인 하는 건 16세기나 21세기나 관객들이 똑같이 진부하게 여기기 때문에 좀 복잡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만든 구성이, 드미트리우스는 헬레나와 약속한 사이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허미아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허미아의 부친 이지우스의 마음을 확실하게 잡아버렸다. 허미아는 그러나 라이샌더와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 당시 아테네에서는 결혼에 관해서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 처녀에게 주어지는 것은 딱 두 개. 하나는 죽음, 또 하나는 평생 수도원에 들어가 영원한 처녀로 사는 일. 당신과 당신 파트너가 허미아와 라이샌더와 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할 거 같은가. 그렇다. 이들도 당신 생각과 같은 일을 저질러 버린다. 이름하여, 야반도주.
 여기서 혜성처럼 등장하는 커플이 바로 오베론과 티타니아. 이 요정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 베버의 <오베론>에선 여자와 남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진실한 사랑을 하는가 가지고 난리굿을 펴더니, 이 책에선 훔쳐온 미소년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신경전을 펴다가 오베론이 약효가 평생을 가는 사랑의 묘약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래 종복 퍽을 시켜 티타니아와, 인간들의 원만한 행복을 위해 드미트리우스의 눈에 바르라고 시켰는데, 명령문이 참으로 애매해서 (아테네 복장을 한 잘생긴 젊은 남자 눈꺼풀에다가 발라버려!) 퍽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아테네 남자 라이샌더의 눈꺼풀에다 묘약을 덕지덕지 발라버린다. 그래 티타니아는 나귀로 변신한 ‘바틈Bottom’이란 장사꾼에게 한눈에 반해버리고, 라이센더는 눈을 뜨자마자 함께 야반도주를 한 허미아가 키가 작다는 걸 이유로 “가 버려, 이 난쟁이야. 성장억제 풀 먹은 초왜소 생명체야. 이 염주 알, 도토리야.”라고 거친 말을 퍼붓고는 곧바로 헬레나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호소한다.
 그 다음 이야기는 안 알려줌.
 또 재미난 것이 <한여름 밤의 꿈>에서 ‘극중극play-within-a-play’을 연출한다는 것. 극중극 도중 당대의 권력자 테세우스와 히폴리나, 그리고 주인공들이 숱하게 끼어들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역자의 의견으로는 그 극중극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씨앗일 수도 있단다. 그러나 너무 기대하지 마시라. 그만큼 재미있지는 않으니.
 <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 등을 읽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대를 한껏 끌어올린 독자들은 그냥 기념 삼아 한 번 읽어보실 만하다. 난 이제 정말로 그의 초기작품은 읽지 않겠다. 그것들 말고도 읽을 책은 많고 많거든. 안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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