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임솔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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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솔아는 용감한 사람이다. 그의 기사를 검색하던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1987년 대전에서 출생. 고등학교 다니다가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글을 쓰면서 살았다. 왜 고등학교를 때려 치웠는지는 모르겠다. 학폭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였는지, 하도 책을 많이 읽어 인생무상을 조기에 알게 됐는지, 공부 수준이 따분했거나 시시해 보였거나 자기한테 전혀 필요 없는 것들만 가르친다고 여겼든지. 하긴 이런 것은 세월이 지나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일찌감치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일찌감치 자기 인생을 글 쓰는 데다 묶어버렸다. 그리다가 스물세 살 때 검정고시를 보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에 들어가 서사창작을 전공, 졸업하기 전인 2013년 스물여섯 살에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시인으로 데뷔했다. 근데 언제 졸업했는 지는 모르겠다. 예종이란 곳이 나이 많은 만학도가 워낙 많은 곳이고, 재학 연수도 일반 대학처럼 딱 입학해 4년 후에 졸업하는 곳도 아니라서(이이가 다닐 때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한 시절엔 확실히 그랬다). 하여간 2017년 학기까지 마치고 졸업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에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2017년에 신동엽문학상, 2020년 문지문학상, 2022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아 필명을 드높였다. 이 책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에 두번째로 실린 <초파리 돌보기>가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2021년 12월에 책을 찍은 문학과지성사가 화들짝 놀라서 즉시 연두색 스티커를 만들어 책 앞표지마다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수록”이 들어 있다고 알렸다. 젊은작가상은 문학동네에서 주는 거라 미리 알지 못해서 그랬을 거다.

  언제부터 작가들의 바이오는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의지도 이해하겠다. 그럼에도 굳이 작가들의 개인사를 좀 알고 싶은 것은, 작품 속에 자주 작가의 삶이 용해되어 있어서 작품 속 어떤 장면이 소위 ‘자전적’ 이야기일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미 죽었거나 더 이상 작품활동을 하지 않는 작가들의 경우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막 가져오는데, 활동중인 사람들의 경우엔 조심스럽다. 그래서 점점 작가 소개를 줄이고 있는 것. 근데 오늘은 좀 길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벌써 닷새 이상이 흘렀다. 특히 단편집의 경우에 며칠만 지나가도 스토리가 머리 속에서 막 뭉개져 제대로 된 독후감을 쓰기가 난감하다. 이럴 때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임솔아가 살아온 세월이 소설만큼, 또는 소설 보다 더 소설 같을 수 있어서 좀 길게 썼다. 나쁜 의도는 전혀 없으니 작가 본인이나 주변인이 이 글을 읽어도 넓게 양해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싫으면 (비밀)댓글로 귀띔해주시고.


  소설집, 재미있게 읽었다. 읽고나서 곧바로 앱 북적북적에 별 넷으로 기록했다. 단편소설집에 별 넷이면 내가 내리는 거의 최상의 평가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책 읽을 당시, 읽은 후의 ‘느낌’ 말고 지금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인 <초파리 돌보기>는 생각나지만, 닷새 전엔 처음에 실린 <그만 두는 사람들>을 더 재미있게 읽었다고 기억한다. 그렇다고 책 뒤에 실린 문학평론가 홍성희의 해설을 컨닝해 비슷하게 옮길 수도 없잖은가 말이지.

  헛소리를 좀 하자면, 왜 그간 독후감을 쓰지 못했을까? 오늘 일 때문이었다. 아침 아홉시 반에 예약하고 치과 가서 어금니 뽑았다. 전에 신경치료 한 건데 치은염인지 치주염인지 하여간 잇몸이 점점 내려앉아 음식물을 전혀 씹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뽑고, 임플란트를 하거나 앞뒤 이로 연결시키는 브리지를 하거나 나중에 결정해야 한다. 이를 뽑으면 술 못 마시잖아? 그래서 강제로 못 마시기 전에 얼른얼른 듬뿍 마셔 두느라고 어떻게 하다 보니 날마다 천국이었다. 생각을 좀 해보셔. 독후감 쓰는 거 하고 술 마시는 거 하고, 뭐가 중헌디? 당연한 이야기 아녀?

  나는 자주 말했다. 요즘 우리 소설은 한 배에서 나온 씨 다른 형제 자매 같다고. 한 번 읽고 이런 느낌이 드는 작가의 책은 다시 찾지 않는다. 주로 섬세한 감각으로 호소하는 작가들의 경우가 이 부류에 든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읽은 박민정 독후감에서도 똑 같은 말을 했구나. 임솔아도 이들 같지 않아서 좋다. 맞다. 내가 우리 소설 읽기를 게을리해서 그렇지 좋은 작가는 늘 새로 등장한다. 이런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은 확실히 즐거운 일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성기에 돌입하는 임솔아도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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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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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한 편으로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출판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애초 원서가 그랬다. 키건의 작품집 《푸른 들판을 걷다》와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더 따듯한 이야기. 누에 실처럼 경묘한 문장들로 촘촘하다. 스토리야 뻔한 이야기지만 뻔한 이야기를 담는 선율이 감미로워 독자가 녹아버린다.

  그러나 숱한 독자들의 감상평을 너무 많이 봤다. 그래서 이 책을 펴기도 전에 마치 다 읽은 거 같았다. 정작 책을 읽으면서는 그렇군, 이렇게 이야기를 뽑아나가는군. 마지막이 어떻게 되려나? 아, 이렇게? 흠. 생각대로네. 스토리는 처음에 시작할 때부터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길로 간다. 한 점 흐트러짐도 없어서 마치 물이 흐르고, 노을이 지고, 밤이 내리는 거 같다.

  하지만, 이제쯤 가슴이 미어져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 때, 아하, 어느 독자평에서 누군가가 그랬지? 마지막에 눈물이 쏟아졌다고. 심장이 여린 독자였나 보네. 책을 덮으면서는 이야기를 담은 그릇, 문장이 간결하고 섬세하다고 생각했다가 몇 시간이 지나 독후감을 쓰는 지금은 마지막 문장만 기억에 남았다. 절묘하다. 읽는 시각에 따라 반전일 수도 있다. 만일 반전이라면 한 순간에 최악의 그로테스크로 뒤집어지는 정말 극적인 반전일 수 있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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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5-06-12 07: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누굴 아빠라고 부른걸까요?

유부만두 2025-06-12 07:40   좋아요 1 | URL
누가 울기까지 했대? 그러고 제가 쓴 예전 리뷰를 보고 왔습니다. 하하.

Falstaff 2025-06-12 07:49   좋아요 1 | URL
앗, 그분이 유부님이셨어요? ㅋㅋ
두 명한테 다 아빠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살짝 살 떨렸습니다. ^^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리:플레이
이은용 지음 / 제철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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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 정보 없이 책을 골랐다. 읽고 나서 독후감 쓰려니 난처해진다. 과하게 우울하다. 아빌리파이정, 프로작, 자나팜, 로라제팜, 스탈녹스, 뉴프람, 리탄. 모두 우울증 치료제. 이 책 말고 다른 소설에서도 들어본 약물들이다. 그나마 진통제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은용은 1992년에 나서 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19년에 데뷔했으며 연극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 백상연극상을 받았으나 2021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아주 오래 전에 예종 연극원 출신 트렌스젠더가 신문에 나온 적이 있다고 기억한다. 가족의 이해와 지원으로 수술을 받아 여성의 삶을 시작했다는데 이이는 아닌 거 같다. 작품 속 등장인물을 감안하면 전혀 아닐 것이다. 이은용의 생전 사진을 구했으나, 그이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예가 아닌 것 같아 아예 저장하지 않았다.


  나하고 친하게 지내던 다른 학교 5년인가 6년 선배가 있었다. 철학을 전공한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척추후만증이 있었다. 지금은 멸칭이 된 질환으로 당시에는 꼽추라고 불렀다. 대기업 공채에 차석으로 합격했지만 일곱 명 뽑는 최종 면접 응시자 여덟 명 가운데 유일하게 낙방했다. 외모도 예쁘장하게 잘 생겼지만 그렇게 됐다. 연애도 했다. 결혼하려고 여자 집에 갔더니 장모 후보자께서 한 말씀하셨다. 자네가 똑똑하고 잘 생기고 품성 좋은 남자라는 건 아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다 좋은데, 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아가씨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내 딸인가? 여사님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렇게 말했단다. 선배는 이별을 택했다. 조금씩 망가졌고, 내가 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을 위해 지방으로 내려간 사이 연락이 끊겼다. 삐삐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극작가 이은용이 내 자식뻘이다. M to F 트랜스젠더이다. 내가 이이의 아버지였으면 어땠을까?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괜찮다, 괜찮다. 네 책임이 아니다, 이랬을 거 같다. 그러나 속으로는 하늘이 무너지지 않았겠나 싶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그렇다.

  부모가 이렇거늘 당사자라면 어땠을까? 이은용은 그걸 연극으로 말했다. 시스젠더에 포위된 삶을 살며 받아야 하는 차별 행위와 격리의 눈길을 견디다가, 익숙해지다가, 결국 우울의 벼랑 위에 서게 되는 삶. 시스젠더의 일원으로 함부로 이들의 감정을 여기에 쓸 수 없다. 예가 아닐 듯해서이지만, 이것조차 다른 의미의 차별일지도 모른다. 사는 게 그렇다. 쉬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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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공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0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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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라스의 1955년 출간 작품. 책 뒤에 실린 뒤라스의 연표 상 1958년에 출판하는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바로 앞 작품이다.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마르그리트 튀라스는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기점으로 작품이 많이 바뀌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바로 직전 발표작인 <동네 공원>도 읽기에 그리 쉽지 않다.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면, 역자 김정아는 연세대 영문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까지 하고, 비교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전문 역자로 활약하고 있는 듯하다. 제인 오스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에밀리 브론테, DH 로렌스, 버지니아 울프 등 주로 영어 작가의 작품을 번역했다. 그런데 올해 4월, 발터 벤야민의 독일어 작품과 더불어 뒤라스가 프랑스 말로 쓴 <동네 공원>도 출간했다. 그러면 김정아가 영어, 불어, 독어, 그리고 우리말, 이렇게 네 개 언어를 상호 번역할 정도로 언어의 천재가 있을까, 아니면 불어(또는 독어)-영어-우리말 중역일까?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서울대 노문과와 미국에서 러시아어 박사를 하고 우리나라에서 특히 도스토옙스키 번역에 이름을 낸 김정아도 있다. 이 김정아와 그 김정아는 다른 사람이다.)

  이렇게 까탈을 잡는 건, 번역에 약간의 불만이 있어서 그렇다.

  작품의 98퍼센트는 공원에서 우연히 같은 벤치에 앉은 여자와 남자의 대화로 되어 있다. 여자는 보름 전에 스무 살이 된 젊은이이고 남자는 마흔, 적어도 삼십대 후반인데, 두 등장인물의 대화가 서로 존칭을 쓴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그쪽 분”이라 호칭한다. 우리말의 경우 서로 존칭을 쓰더라도 나이 차이에 따라 적절하게 어울리는 존칭이 조금 다르다. 세계 다른 어느 나라와도 구별이 가능한 섬세한 디테일이 있을 것이지만, 김정아의 번역문에서는 이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여자가 하는 말인지, 남자가 하는 말인지 구별이 힘들 때가 잦다. 물론 외국어를 직역하면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 있겠다. 그들의 존칭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투박하니까. 대신 우리말에 투박한 것이 그쪽에서는 섬세할 수 있으니 이런 것을 적절하게/매끈하게 보완해주는 것도 역자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아직 뒤라스를 읽는 내공이 부족해서 초중기작품임에도 읽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아 괜히 까탈을 잡고 있는 지도 모르니 역자나 역자 주위에 계신 분이 이 어쭙잖은 독후감을 읽더라도 그냥 웃고 지나가면 좋겠다.


  1955년 작품이지만 책을 열면 1989년 겨울에 뒤라스가 쓴 서문이 제일 앞에 실려 있다.

  파리역. 하차한 가정부들. 수천명의 브르타뉴 여자들과 행상이 역을 가득 메운다. 이들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살아가는 것이란다. 굶어 죽지 않는 것. 지붕이 있는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고, 이들도 가끔 무작정,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말을 나누기도 한단다.

  뒤라스는 1989년 겨울, 세상을 뜨기 6년 반 전에 이렇게 서문을 달았다. 나는 1989년에도 숱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로망의 도시 프랑스 파리가 이런 세월을 겪었다는 말인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1955년 이전에 그랬다는 말이다.


  1955년 이전의 파리. 역에서 내린 브르타뉴 출신 스무 살 여자는 남의 집 하녀로 들어갔고, 늙어 자기 힘으로 일어나지 못해 침대에서 지내며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건만 성질은 더러운 노파의 시중도 들고, 집안의 잡일도 하고, 무엇보다 오후에 아이 도시락을 싸서 함께 공원에 가서 누가 아이한테 해코지하지 않는 지 감시도 해야 한다. 목요일, 이날도 여자는 아이가 먹을 샌드위치를 싸서 공원에 나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뒤라스의 말대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무작정 말을 나누기도 하는데, 마흔 또는 마흔에 육박한 삼십대 후반의 미혼 남자이자 좋은 말로 세일즈맨, 낮춤말로 행상을 해 먹고 사는 뜨내기였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3.8 따라지들끼리 만나 뜻이 통해 말까지 통하는 순간이다.

  네 시 반. 아이 간식시간이다. 잼 바른 빵 두 조각을 자크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아이는 빵을 대충 먹어 치우고 다시 모래밭으로 뛰어가 놀기 시작한다. 같은 벤치에 앉은 남자가 여자의 아이는 아니지요, 묻는다.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자기 애로 보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대답한다.

  남자는 아이가 없다. 가질 수도 있었지만 이대로 만족한단다.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하니까. 쉴 때를 빼고 늘 여행중이란다. 심지어 국경을 넘어까지 기차를 타고 떠났다가 돌아온다. 행상이다. 품목도 매번 바뀐다. 물건을 떼다 노천시장을 떠돌며 좌판을 펴 놓고 판다. 중간 크기의 짐가방에 다 들어갈 정도만 취급하니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가끔은 조금 빠듯하지만 불평할 정도는 아닌 수입이라고 생각한다.

  여자가 묻는다. 쭉 그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살 생각인지, 아니면 언젠가 그만 두게 될 거라 생각하는지. 남자는 모르겠다고 대답하는데 진심이다. 언젠가는 멈추고 싶을 수밖에 없겠지만 이 직업을 왜 버려야 하는지 의문이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살게 됐을 뿐인 것을. 남들과 다름없이 별 수 없이 이 직업을 선택하고 굳이 다른 직업으로 바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싫증 났다고까지 말하면 지나치겠지만 (직업을 바꿀)의욕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자기 생각으로는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란다. 사람들 가운데 변하는 거 없이 사는 데 적응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그런 거 같다고.

  여자는 다르다. 계속 이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활은 당연하게도 조만간 끝나야 한다. 여자 팔자 뒤웅박이다. 결혼을 기다리고 있다. 남들도 다 하는 결혼을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결혼하면 이런 하녀 처지와는 영영 이별이다. 여자는 앞에서도, 뒤에서도 스무 살이다. 91쪽에 스물한 살이라고 주장하는 걸 빼면. 젊고 건강한 여자는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대부분의 남자가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의 여자 가운데 한 명이다. 즉 이 여자가 마음먹고 유혹하면 많은 남자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넘어간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유전자 속에는 가장 조건이 좋은 남자를 선택하는 인자가 들어 있다. 그런 남자를 고르기 위하여 일요일마다 열리는 공원의 야외 댄스 파티에 참석하고 있다.


  이들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남자는 직업이 너무나 보잘것없고, 하찮고, 제대로 된 직업도 아니어서 일인분, 반인분도 못하는 걸 알다 보니 삶이 그런 식으로 단번에 개선되리라는 건 한 순간도 상상이 안 된다. 시간이 없다는 건 앞 일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일 뿐, 다른 것을 생각할 시간은 있다. 직업을 바꿀 기회가 생긴다면 즉시 그 기회를 잡겠지만 적극적으로 전직을 도모할 생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늘 여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따리 행상이 좋기도 하다. 여행과 행상 일을 통해 예전에 비해 사리에 좀 더 밝아진 느낌도 든다.

  여자는 이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벗어날 생각을 항상, 계속해서, 전심전력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언젠가는 누군가 나를 위해 울어줄 것이다. 늘 혼자라서 외롭지만 이런 (하녀)직업을 가지면 적어도 굶을 일 없고, 굶기는커녕 좋은 먹거리를 많이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통통하고 튼튼해지면 좋겠다. 더 괜찮은 여자로 보일 테니까. 더 나은 조건의 남자가 접근해올 확률이 높으니까.

  우연히 같은 벤치에 앉아 맹목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3.8 따라지들.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어느 새 땅거미가 지고 여자가 돌보는 아이 자크도 놀다 지쳐 돌아와 어서 집에 가자고 조른다. 이제 여자와 남자는 헤어져야 마땅하다. 근데 은근히 그 새 정이 든 거 같다.

  일요일 댄스 파티에 오실 수 있어요?

  잘 모르겠어요. 갈 수 있으면 갈게요.

  여자도 알고 남자도 안다. 오지 않을 것임을. 그러나 혹시 모른다. 벌써 아이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많이 지났다. 둘은 길을 나누어 떠난다. 여자가 걷다가 뒤를 돌아본다. 남자는 그냥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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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6-09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5 별. 반 별도 있었으면 좋겠다.

바람돌이 2025-06-09 2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읽다가 그놈의 그쪽분에 완전 미치는줄 일았어요. 나중에는 너무 거슬려서 몇번이나 나오는지 세보고 출판사에 이메일이라도 보낼까싶어ㅛ가니까요? 내가 짜증난 횟수라고 말이죠. ㅋㅋ 별 3개반에 동의합니다
알라딘은 왜 별 반개 제도를 안하는걸까요? 이거 꽤 오래 전부터 얘기되건건데 말이죠.

Falstaff 2025-06-10 06:05   좋아요 1 | URL
<동네 공원>이나 <파란 눈 검은 머리>의 가장 크고 험한 진입장벽은 번역문체입니다. 사로트의 <항성>도 그랬습지요. 역자도 한 30번 정도 퇴고하고 책을 내는 요순시절이 왔으면 좋겠어요. 책값을 반 정도로 깎아 주든지요!
 
방앗간 공격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3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빛소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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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라의 단편소설 다섯 편을 실은 작품집.

  아무래도 졸라,하면 루공-마카르 총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쓴 작품을 저울질하는 기준도 당연히 총서라는, 보통 작가들은 이 가운데 절반도 쓰기 힘들 높은 잣대를 들이댈 것인데, 《방앗간 공격》 같은 작품집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서 독자는 총서를 읽을 때와 비슷한 드라마틱과 삶의 난장판을 기대하게 된다. 단편을 쓰던 188X년 시절의 졸라는 단편소설 속에서도 장편과 거의 유사한 스토리 라인을 유지하고 있어서 이런 기대감은 나름대로 이해할 만하다 하겠다. 이 책 속 개별적 작품들마다 독특한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이야기 상호간의 연관성을 촘촘하게 엮어, 졸라 특유의 질주, 미친 질주를 첨가한다면 충분히 그럴듯한 장편소설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이야기들이 그리 참신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어서 이 책에 실린 단편을 장편으로 개작했어도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은 의심스럽지만.

  하긴 지금 188X년의 작품을 202X년에 읽고 내용의 참신함과 스타일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서 공평하지 않기는 하다.

  그렇다고 지금 나는 이 책의 단편소설들을 폄하하려 하지 않는다. 충분히 졸라스러워서 인간의 속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아쉽게도 작품을 쓴 작가가 에밀 졸라라서 독자는 처음 책을 읽을 때부터 보통 이상의 기대치를 갖고 첫 페이지를 넘기게 될 뿐.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해도 역시 졸라를 읽는다는 셈법이 애초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별 넷이 좀 과하다. 셋 반이면 적당할 텐데, 졸라의 이름값으로 반 더 쳐줬다. 내 맘이잖여? 그잖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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