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지음, 안영옥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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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20세기 스페인의 황금기, 소위 27세대의 일원으로 워낙 유명한 극작가, 시인이라 말을 보태면 오히려 누가 될 정도이다. 문외한인 극동 변방의 이교도이자 이방인들이 보기에 이이의 유명세는 오히려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파를 지지하다가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팔랑헤당에 체포당해 재판도 없이 고향 그라나다에서 총살당한 비운의 시인, 극작가인 것이 한 역할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도 프랑코 비슷한 오랜 군사정권의 영향이 컸을 지 모른다. 뭐 아마추어 의견이니 신경쓰지 마시라. 하여간 로르카는 우리나라 독자에게 그리 크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언어와 정서 탓이 크겠다. 그리고 시인, 극작가, 에세이스트로 이름을 냈으니 외국 소설도 잘 안 읽는데 하물며 번역시는 누가 그리 읽겠으며, 희곡은 또 얼마나 읽히겠는지, 생각해보면 로르카가 유명세에 비해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것이 납득이 간다. 나도 이전에 읽은 로르카는 이이가 스무 살 때 쓴 기행 에세이 <인상과 풍경>밖에 없다. 그것도 소설인 줄 알고 읽었다가 에세이라서, 그라나다, 안달루시아의 환한 빛과 건물 말고는 생각나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드라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인상과 풍경>과 확연하게 다르다. 분위기 자체가 그렇지 않다. 두 작품 사이에 18년이라는 터울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으나 역시 에세이와 극작품의 간극 때문 아닐까 싶다.


  베르나르다 알바. 60살. 작품을 쓴 시기가 1936년이니 당시 기준으로 보면 노파다. 어머니 마리아 호세파는 스무살에 베르나르다를 낳아 지금 80.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문학작품 속에서 이렇게 뇌 쪽으로 약간 비정상인 사람들이 특색있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이이도 좀 그런 편이다.

  베르나르다는 딸만 다섯. 순서대로 앙구스티아스, 마그달레나, 아멜리아, 마르티리오, 아델라. 첫째 앙구스티아스는 서른아홉 살이며 유일한 전남편의 딸이다. 전남편이 상당한 부자로 죽어서 그의 유산으로 앙구스티아스만 거액의 상속분을 보유하고 있다. 다른 네 명도 평생 쓸 만큼의 유산을 상속받겠지만 돈이란 것이, 특히 있는 것들이 있을수록 더 지독한 건 아시지?

  그리고 중요한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 하녀 라 폰시아. 베르나르다와 같은 나이로 올해 환갑이다. 거의 평생 베르나르다와 함께 지내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서 만사 훤하지만, 냉정한 베르나르다는 폰시아의 충고나 기타 귀띔에 그리 신경쓰지 않고 면박만 준다. 어이, 폰시아. 너는 그냥 시키는 일만 하고 대가로 돈을 받으면 되는 거야, 알겠어? 이런 식.


  막이 올라가면 장례식 날이다. 베르나르다가 두번째로 정식 과부가 된 날. 그리하여 첫째 앙구스티아스만 빼고 전부 검정 상복을 입어야 하는데, 앙구스티아스 얘도 염치가 있으면 아무리 자기 아빠가 아니더라도 상복을 입는 것이 예의일 터. 이 문제는 앙구스티아스의 성격을 설명하는 장치 말고는 기능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면 좀 그렇고, 이후 딸들 가운데 발생하는 갈등과 대립을 얼핏, 그리고 앞서 조금 보여주는 장치일 수도 있다.

  무슨 갈등이냐 하면, 이웃하는 귀족 가운데 키 크고, 잘 생기고, 덩치 좋고, 하여튼 사방팔방으로 어디 한 구석 꿀릴 것 같은 외모의 청년 페페 엘 로마노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스물다섯 살 페페는 스물네 살의 마르티리오가 자기하고 맺어질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찔러보고 싶은 못 먹는 감이다. 막내 스무 살짜리 아델라는? 정확하게 얘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네에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밴 처녀를 살해하려는 일이 벌어지니까 아델라가 자기 배를 쓰다듬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이미 페페 엘 로마노와 할 거 다 한 사이로 보인다.

  그런데 당시 스페인 사회에 국한해서 그런지, 아니면 유럽 지역, 더 확장해서 전 지구적으로 비슷한 지는 잘 모르겠다. 정식 결혼을 하기 위하여 알바 집안의 다섯 딸 가운데 한 명한테 청혼을 하려는데, 누가 당첨될 것 같으냐 하면, 유력 후보인 넷쩨 딸 마르티리오와 막내딸 아델라를 뺀 나머지 여성들, 하녀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 전부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를 꼽는다. 페페보다 무려 열네 살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여간 이렇게 내정 비슷하게 된 상태라서 이제 페페 엘 로마노는 밤 시간에 앙구스티아스의 창문에 등장해 “밤드리노니다가” 간다. 그런데 시간이 문제다. 분명히 앙구스티아스의 창문에서는 밤 1시 반에 이별을 고했는데, 새벽 네 시에 페페가 그제야 알바 저택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사람이 속속 등장한다. 누구? 생각하고 말고 할 것 없이 당연히 아델라로 보인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인다는 거.

  서양 사람들이 나이 차이 때문에 장유유서 따지는 거 못 보셨지? 자매들 간에도 그렇다. 더구나 씨가 다른 자매들이라 분위기는 더욱 험악하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붙여야 하는 것이, 무대와 작품의 제목이 “베르나르 알바의 집”이라는 딱 갇힌 공간. 이곳은 한 명의 독재자 베르나르다 알바가 지배하는 공간으로 이이의 앞에서는 어떠한 말대답도, 반항 비슷한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알바 저택을 내전이 한창 진행중인 스페인 정세와 비유해도 괜찮을 거 같기는 하지만, 이제 세월이 몇 십 년 흐른 바에 구태여 그렇게 봐야 하는 이유도 없다. 이런 건 다 감상자의 선택일 바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저택 안에서 치매 증상이 있지만 특유의 옳은 이야기를 복잡하게 하는 80 노인 마리아 호세파의 전망도, 베르나르다를 혐오하지만 충실하고 오래된 하녀 폰시아의 조언도 다 필요 없다.

  그리하여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안에서 자매들 간의 사랑에 관한 시기, 증오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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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26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투비컨티뉴드가 궁금한데 그럴려면 읽어야겠죠? ㅎㅎ

Falstaff 2025-05-26 16:57   좋아요 1 | URL
아휴.... 도서관 가셔요.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는 막 뮤지컬로도 공연하고 뭐 그랬지만 희곡으로 읽는 재미가 덜 할 줄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yamoo 2025-05-27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띠...별5 또 출현인데...그게 로르카네...이거 이거 되게 고민됩니다. 하필 로르카라니...그래도 사야겠죠..별5개라는데..^^;;

Falstaff 2025-05-26 16:58   좋아요 1 | URL
흠. 저는 책임 안 집니다. 하여간 만사 불여튼튼입니다. ㅋㅋㅋ
 
페르시아의 신부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9
도리트 라비니안 지음, 서남희 옮김 / 들녘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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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트 라비니안은 이스라엘 중부 샤론 지역에서 1972년에 이란계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중동 지역을 생활의 기반으로 하는 집안 출신 유대인 작가는 처음 읽는 것 같다. 아모스 오즈도 그러지 않나 싶어 검색해보니 라트비아계 아버지와 폴란드계 어머니가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선입견인지 외모로도 약간 차이가 있는 듯. <페르시아의 신부>가 첫번째 발표한 소설이란다. 데뷔작이 아니란 얘기냐고? 그렇다. 데뷔는 1991년 시집 《예, 예, 예》로 했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위키피디아를 읽어보면 2014년에 소설 <접경생활Borderlife>이 이스라엘 여성과 팔레스타인 남성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반 자전적 소설이라는데, 흠, 좀 놀랐다. 하긴 사랑에 국경이 어디 있나?

  제목이 <페르시아의 신부>라서 나는 어린 소녀를 신부로 삼는 극한 조혼에 따른 사회문제나 무슬림 종교에서 신음하는 여권에 관한 페미니즘 소설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극한 조혼 풍습인 건 맞는데 자꾸 그쪽으로 생각해보려 해봐도 페미니즘 소설은 아니다. 그냥 20세기 초∙중엽 이란의 유대인 게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풍경을 어린 신부와 어린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소녀를 주목하면서 그렸다고 보는 편이 좋을 듯하다. 당연히 이란, 페르시아 지역을 배경으로 하니까 남성의 가부장적 부당한 행위도 여러 번 등장하지만 라비니안은 그것을 강조하는 데 힘을 주지 않았다. 독자도 처음엔 좀 신경 써 읽기 시작했다가 진도가 나가면서 재미있게 후루룩, 배고플 때 덜 뜨거운 잔치국수 들이마시듯 즐기며 읽기만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내 생각이 그렇다는 말씀.


  열일곱 살 먹은 꽃 Flora플로라. 전보다 몸이 훨씬 불었다. 첫번째 임신이다. 근데 신랑이 토꼈다. 그래서 울고 운다. 울어도 그냥 우는 게 아니라 훨씬 분 몸에 걸맞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곡소리로 엉엉 온동네 사람들이 이미 다 알듯이 드높고 드높다. 얼마나 우는지 여인네들은 이제 쿠치크 마다르, 즉 어린 엄마의 임신이 이것이 끝이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다. 참 별스러운 임산부. 엄마 미리암 하놈이 말하기를, 결혼하고 며칠 후 저주받은 월식일 밤에 그렇게도 말렸건만 하필이면 그날 악마가 밤하늘에 넘실거리는 시간에 아이를 만들어서 이 사달이 생겼단다. 근데 엄마의 말씀이 사실인 것을 알려면 신랑의 직업과 영업 방식에 관해서 좀 더 상세하게 알아야 한다. 왜 신랑은 습관적으로 질외사정을 고수했을까?

  나한테 음란마귀가 씌웠나 어쨌나, 신랑 이름을 읽고 거 참 웃기네 했다. 이름이 ‘샤힌 보지도지’이다. 벌써 십여 년 전에 2차 호프집에서 노동조합 집행부를 우연히, 진짜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위원장, 부위원장, 사무국장, 투쟁부장, 복지부장 기타 등등. 나하고 동석했던 이들은 당시 노무팀장, 생산실장. 우리는 노무팀장 면을 살려주려 합석에 응했다. 그래 서너 조끼씩 순배가 돌아가고 얼근히 취한 나는 어떤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웃음을 흘렸다. 그걸 본 위원장이 좋은 표정으로. 팀장님 왜 웃으셔요? 대답하기를 소학교 때 송창식과 변웅전이 하는 이야기 들은 생각이 나서 그렇지요. 뭔데요? 송창식과 변웅전이 서로 이름에 붙은 받침 떼고 읽으면서 티격태격, 거 가관이더군요. 그래서요? 우리 복지부장님도 받침을 떼고 읽으니 흐흐 재미 있습니다 그려. 이런 적 있었다.

  이야기하기 전에 틀림없이 노조 사람들 모두한테, 말하기 싫다, 당신들 열 받을 지 모른다, 했고, 그들이 천만의 말씀, 전혀 그럴 일 없으니 마음 편히 이야기 해보시라, 해서, ‘받침 뺀 복지부장’을 꺼냈으며, 전원 우하하하하 거창하게 웃어 제쳤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심각한 사무국장 새끼가, 자기도 나더러 마음 편하게 얘기해라 해놓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노조 간부한테 그게 무슨 말입니까, 했다. 그랬더니 단 1초도 안 걸려 같은 노동형제가 하는 말에 휘까닥 돌아버린 위원장이 아이고, 술병 깨고, 술잔 집어 던지고, 그런 생 난리가 없었는데, 그 사람들, 돈도 안 내고 그냥 가버렸다. 뭐 그런 일도 있었다.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그래서 어쩄든 나한테는 좀 민망한 이름의 샤힌 보지도지(‘염소도둑’이라는 뜻)는 사기꾼 성향이 농후한 전형적인 유대인 포목상인인데, 온갖 변설을 떨어 무슬림 집안에 안주인한테 천 두루마리를 보여준다. 옷감 여러 필을 방에 촥, 펼쳐놓고, 노가리를 실컷 푼 다음, 말이 좀 먹히면 이제는 옷감을 직접 들고 사모님 몸에 척 가져다 대고, 세상에 이런 몸에 이런 옷감이 없으리, 울룰랄라 칭찬을 하면서 몸을 비비적 거리다가 슬그머니 뻣뻣하게 경직된 살을 슬슬 문지르는 단계까지 이른다. 그러면 결국 할 거 다 하게 되는데, 언제나 마지막 결정적 순간에 뇌리를 떠나지 않는 아버님의 교훈, “샅에 달린 누에를 이방인 여인의 고치 속에 넣으면 안 되느니라.” 이교도 나비들을 태어나게 해서는 안 되니까 그 순간이 오면 얼른 빼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비단 손수건에 사정을 하는 게 하도 버릇이 되었다. 그래 결혼식을 한 날부터 시작해 계속 비단 손수건을 꺼내다가 하필이면 악마가 허공을 채우는 불길한 월식날 밤, 그날부터 별을 따기로 결심을 했던 거였다.

  페르시아 옴리쟌에 들어와 유대인 도살업자 집안의 사위가 된 샤힌 보지도지는 결혼식 포함해 6개월 동안 지내다가 머나먼 도시 이스파한으로 장사를 떠나 2개월, 아무리 길어도 3개월 안데 돌아올 터이니 몸 건사 잘 하고 있으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날들이 가고 점점 초조해진 라토리안 집안. 옴리쟌을 거쳐가는 상인들에게 샤힌 보지도지를 물어보니 한 장사꾼이 하기 싫은 이야기를 한다는 표정과 어투로 시투룽하게 하는 말이, 그가 지나간 길에 어린 신부 셋과 과부 한 명이 배가 남산 만하게 불러 있다는 거였다.


  플로라의 아빠는 이름난 도살업, 정육점 가문의 쌍둥이 아들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동생 내외가 깨를 볶으면서 잘 살다가 하루는 식중독에 걸려 한날 한시에 딸 하나만 남겨둔 채 숟가락 놨다. 딸의 이름이 나지아. 사촌 언니 플로라보다 네 살이 어려서 열세 살.

  플로라의 엄마 미리암 하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옴리쟌의 모든 유대인 게토 여성뿐만 아니라 게토 밖 무슬림 진영의 1부 4처 집단까지 아울러 가장 게으른, 게으르다기보다 집안일에 관심이 없는 여자였다. 물론 가정교육 문제인데, 원래 무진장 깔끔했던 집구석이 하루아침에 가장 어질러진 집안꼴로 변해버린 건 전적으로 못된 아빠 책임이었는데, 미리암은 아무튼 소녀시절부터 이런 미풍양속을 몸 깊이 간직한 채 시집을 와서 두 딸 역시 세상에서 가장 게으르고 식탐 많은 여성으로 키우는데 성공했다. 날이 갈수록 지저분한 집구석 꼬라지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미리암은, 시동생 부부의 장례식에 갔다가 당시 겨우 일곱 살 난 시조카 니지아가 얼마나 야물딱지게 청소, 요리 같은 집안일을 잘 하는지 홀딱 반해버렸다. 이미 동서가 죽기 전에 절대로 죽을 것 같지 않아, 정말로 자네가 죽는다면 니지아를 내 며느리로 삼기로 맹세를 함세, 이래버렸기도 했고, 아다시피 유대교나 무슬림에서 한 번 맹세를 하면 이건 절대 인간의 힘으로 취소할 수 없는 거라서 께름칙하던 차에, 마침 남편도 이번 기회에 니지아를 집에 데려와 키우자 하는 걸 못 이기는 척했다. 딱 한가지 조건을 달고. 자기를 ‘아메 보조르그’ 즉 존경하는 숙모님이라고 부르라는.

  근데 이 미리암이 워낙 미인이라서 순서대로 딸-아들-딸이 전부 생긴 건 하나 거의 완벽했다는 말씀. 비록 숙부네 집에 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의 하녀 수준의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지만 니지아는 잘 생긴 사촌오빠 무사와 결혼해 플로라처럼 어린 엄마, 쿠치크 마다르가 될 꿈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있을 게 아직도 없는 거다.

  플로라는 열세 살에 초경을 했다. 처음이라 뭐가 뭔지 몰라 종아리와 발꿈치에 꾸덕꾸덕한 피딱지가 앉은 걸 보고 그것의 근원지를 찾아 올라가다 보니 그게 초경인 줄 알고 나지아한테 말했고, 나지아는 앞날의 남편 무사에게, 무사는 누나 호마에게, 호마는 아빠한테 말했으며, 아빠는 엄마한테 한 마디 함과 동시에 집집마다 키우는 전서구, 우편용 비둘기를 몇 십 마리 날려 지역의 각 게토에 널리 소식을 알린 바 있다. 그러자 다음 주부터 페르시아 각지에서 청년과 청년의 어머니들이 속속 모여들어 결혼 신청을 하기 시작했던 걸 나지아는 봤던 것.

  나지아도 빨리 초경이 터져야 무사 오빠하고 결혼을 할 터. 가만 보니 오빠는 더 기다리기 힘든 거 같다. 왜 힘든 줄은 모르겠지만 괜히 그렇게 보인다. 나지아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손가락으로 슬쩍 아래를 훑어, 아직 깜깜한 새벽이니 냄새를 맡아보고, 그때마다 실망한다. 이제 열네 살이 됐는데도 소식이 없으니 이걸 어쩜 좋아.

  하지만 가히 소설 한 편의 주인공으로 발탁할 정도의 캐릭터라면 무슨 수를 쓸 것이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걱정하지 마시라. 정말 독한 방법으로 아직 멘스가 터지지 않은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나지아, 이 아이의 소원은 이루어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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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인
마리 은디아이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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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2009년에 파리 2구에 있는 드루앙 레스토랑에서 수여하는 공쿠르 상과 소액의 상금 10유로(16,220원)를 받아 전세계 잡지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다들 아시겠지만 공쿠르상은 세계에서 상금을 주는 문학상 가운데 가장 적은 돈을 수상자한테 주는 걸로 유명하다. 대신 최고의 프랑스 문학상이라 공쿠르 상만 받았다 하면 단박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스토리가 그럴 듯하면 영화로 만들어져 금세 돈벼락을 맞을 수 있어, 프랑스 소설가한테는 이 상 받는 것이 일생의 로망이기도 하다. 한 작가에 딱 한 번 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유일하게 두 번 받은 작가가 있었으니 로맹 가리. 이 심술궂은 작자가 에밀 아자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자기 앞의 생>을 출간해 1956년에 이어 75년에 한 번 더 공쿠르 상을 받았다. 이런 염병할 작자가 있나. 누군가한테는 필생의 소원일 텐데, 1975년이 ‘누군가’에게 절호의 기회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지.

  마리 은디아이는 프랑스 누아르Loiret의 피티비에에서 세네갈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1967년에 둘째 아이로 태어났다. 첫째는 65년에 세상을 본 아들 팝 은디아이. 국가교육청소년부 장관을 거쳐 2023년부터 유럽 평의회 프랑스 대사로 재직중인 역사가 겸 정치인이다. 마리 은디아이가 첫 돌을 넘기던 해에 세네갈 아버지는 처자식을 몽땅 버리고 세네갈로 돌아가 호적등본 상 가족의 인연을 탁 끊어버렸다. 이후 홀어머니와 함께 설마 평생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유년기까지는 함께 살았다고 책의 앞날개에 쓰여 있다. 그래도 백인 홀엄마가 “1960년대에” 유색인 남매를 이렇게 둘 다 번듯하게 키웠으니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세 여인>을 읽어보니 마리 은디아이의 다른 작품은 굳이 찾아 읽을 거 같지 않아 이 정도만 가비얍게 소개하고 만다. 이 가운데 제일 중요한 소개는 은디아이가 돌 지나자마자 세네갈로 돌아간 아버지.

  작품 속 세 여인 가운데 첫번째 여자의 이름은 노라. 서른여덟 살이다. 결혼을 했었는지 모르겠고, 프랑스에서는 중요하지도 않지만, 딸 뤼시와 함께 살았던 변호사이다. 얼마전부터 법학을 공부하는 남자 자콥과 그의 딸 그레트를 자기 집에 데려와 주민등록등본에 올리지 않은 가족으로 함께 살고 있다. 다행히 뤼시와 그레트는 사이가 좋아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함께 잘 논다. 아이들이 그러면 됐지 뭘 더 바라나. 다만 자콥이 이제는 법학 공부에도 관심이 없고, 따라서 변호사가 되고자 한다는 말도 허풍선으로 밝혀져 암만해도 노라가 버는 돈으로 모두 먹고 살아야 할 형편인 것 같다. 가정의 권력은 경제력에서 나오는 법이니, 이 가족의 왕초는 당연히 노라이다. 두번째 공동으로 아이들, 그리고 제일 꼬붕이 자콥이며,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개는 키우지 않는다는 것. 노라는 거의 모든 교육과정을 “총을 들고 건설하는 보람에” 사느라고 죽을 똥을 싸는 향토예비군처럼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졸업을 했고, 어렵게 변호사 자격을 땄으며, 넓지는 않지만 집값에 관한 한 전세계적인 악명을 향유하고 있는 파리에서 30년 할부로 아파트를 구입한 데 대하여 도처에 자부심을 은밀하게 뿜어대는 중이다.

  그런데 무려 30년 전에 순서대로 딸-딸-아들을 키우고 있다가 다섯 살 난 아들만 홀딱 데리고, 사전에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세네갈로 잠적해버린 아버지한테, 급하게 세네갈로 오라고, 꼭 와야 한다는 연락이 온 거였다. 학교에 다니는 뤼시도 있고, 파리 직장에서 해야 할 일도 있어서, 아몰랑! 단칼에 거절했건만, 딱 한 번만 방문해달라고 끈질기게 부탁, 아니, 간청하는 아버지를 끝까지 모른 척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노라는 세네갈 공항에서 내려, 아버지가 보낸 구형 검정 메르세데스를 타고 저택에 도착하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30년 전에 세네갈로 돌아온 아버지는 해변가의 휴양 리조트를 프랑스인에게 인수받아 이를 성공적으로 리모델링해 대단한 성공을 이룬 왕년의 부자였다. 휴양 리조트를 넘길 수밖에 없었던 전 사장은 유럽에서도 소설에 나오는 아버지들이 주로 완벽하게 더럽고 난폭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동업하던 세네갈 흑인 남자를 때려 눕힌 다음 커다란 트럭을 앞뒤로 몰아 나가 떨어진 동업자의 해골을 바퀴로 짓이겨 죽여버렸다. 자신은 감옥에 수감된 상태에서 당시 세네갈에선 뇌물로 안 되는 일이 없어 어떻게 권총을 감옥에 반입해 총구를 입에 물고 장하게 방아쇠를 당겨 숟가락 놨고. 전 사장의 처자식은 다시 프랑스 보르도 지방으로 돌아가 살다가 아들 뤼디가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세네갈로 가서 고등학교 교사를 했다. 이때 같은 학교에서 불문학을 가르치던 현지인 교사 판타와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는데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러 해고를 당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사는 게 2부. 그래서 좀 자세하게 쓰는 거다.

  세네갈에서도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가는 법. 노라의 아버지 사업도 날이 갈수록 시들기 시작해 견디다 못해 지금은 리조트 전부를 팔아서 생긴 현금으로 어떻게 살고 있다. 그동안 아들이자 노라의 사랑하는 동생인, 정말 남매간의 우애는 아주 좋은 상태인데, 아버지의 아들 소니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정치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번 방문이 노라의 첫 세네갈 나들이는 아니다. 열두 살 때부터 몇 번 온 적이 있다. 한 번은 날이 가면 갈수록 가난해지는 가정을 견디기 어려워 어머니는 미용실 헤어디자이너를 때려 치우고 조금 비싼 매춘부를 하기 시작했었나보다. 이때 나이도 좀 많고 경력이 있지만 다정다감한 은행 지점장을 만나 처음으로 엄마, 아저씨, 그리고 엄마의 두 딸이 세네갈을 방문한 적도 있다. 당시엔 아버지도 세네갈에서 잘 나갈 때라, 엄마가 결혼해 가정을 다시 꾸렸다는 것에 안심을 해 지점장 아저씨와 친밀하도 위풍당당하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만나는 아버지는 과거의 오만과 당당하던 풍채는 완전히 사라지고, 늘 깔끔하고 광채나던 의복과 신발은 간데없이, 길고 누런 발톱을 깎지도 않은 채 샌들을 신은 반바지 차림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불룩 나온 배를 숨기지도 않은 차림이었다. 한 마디로 이제는 쇠락해도 많이 맛이 간 상태에 처했다는 것. 이 아버지는 이제 막 도착한 노라를 식탁으로 안내해서 하인 겸 메르세데스 운전수 마세크와 하녀 카디 뎀바에게 일러 방문객을 대하는 세네갈인의 전통인지 뻑적지근하게 저녁상을 차리게 하고 오직 먹는 일에만 집중한다.

  이 이야기에는 완전하게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하녀 카디 뎀바는 책의 3부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좋은 남자와 결혼을 해서 임신을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수태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남편이 죽고 만다. 시댁으로 들어가 대바구니 짜서 내다 파는 일을 했지만 시누이들과 비교해 전혀 생산성도 없고 영업도 하지 못해 하루는 종이쪽지에 주소를 써 주면서 유럽의 사촌, 앞에서 말한 고등학교 불문학 교사 판타를 찾아가라고 돈 몇 푼을 쥐어주고 쫓아버린다. 그래서 역시 갖은 고생을 하며 프랑스로 장정을 떠나는 이야기가 3부이다.


  아버지는 둘째 딸 노라를 왜 와달라고 그렇게 간청했을까? 집에 와서 보니까 아버지가 최근에 낳았다는 딸 쌍둥이는 있는데, 명색이 아버지이면서 딸 쌍둥이의 이름도 모르고, 쌍둥이의 엄마도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나, 이럴 수가. 알고 보니, 그렇게도 점잖고, 말없고, 내성적이고, 절대 과격하지 않은 서른다섯 살 먹은 동생 소니가 쌍둥이 엄마이자 아버지의 새 아내인 여자와 수년 동안 간통을 했으며, 틀림없이 쌍둥이가 소니의 딸임에도, 의붓어머니가 자신한테 싫증을 내는 것 같아서, 나일론 빨래줄로 목을 졸라 죽여버렸다는 거다. 이렇게 증언을 하고, 한 점의 부인도 하지 않은 채 최종 심판을 앞두고 유치장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범죄의 질이 하도 좋지 않아 세네갈에서는 어떤 변호사도 사건을 수임하지 않으려 해, 아버지는 언어가 같은 프랑스에서 변호사를 하는 노라에게 소니의 변호를 맡기려 한 것. 그리하여 세네갈의 비위생적인 유치장에서 소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소니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어떠한 증명도 하지 않으며 이렇게 말한다.

  “누나,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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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5-05-22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일천한 독서 경험에 의하면...

뭔 상 받았다고 해서 마냥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특히 그 중에서도 공쿠르상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5-05-22 14:52   좋아요 1 | URL
저도 동감입니다. 공쿠르상 받은 책 중에 나랑 안 맞는거 제일 많음요. ^^

Falstaff 2025-05-22 15:59   좋아요 1 | URL
저도 오랜 세월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21세기 들어와서 많이 읽을 만? 보통 독자들한테 어필할 만한? 하여간 그렇더라고요.
특히 21세기로 접어들어서 영어의 제국주의적 언어 지배도 특별히 생각하는 시절입니다.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4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박종소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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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드밀라 울리츠카야가 1943년생인데, 이 또래 가운데, 특히 여성 중에서 소비에트 연방 치하에는 꼭꼭 펜을 숨겼다가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에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제법 있다. 옛 소련 같은 체제, 지금의 북한 같은 곳에서 글을 쓰고, 음악을 작곡하고, 미술행위를 하는 건 정말 재미없을 거 같다. 그러느니 차라리 그냥 보통 생활인으로 살았다가 해빙이 오자 봇물이 터지듯 자신의 예술혼을 만개한 사람들. 울리츠카야는 소련 시절에 결혼해 아들 둘 낳은 후에 유대인 극장에 들어가 문학 감독을 하며 각본, 평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희곡이라고 하지 않고 각본으로 표기한 것을 보니까 드라마투르그 비슷한 일을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전적으로 추측이다. 연표를 보면 훗날 희곡을 썼다고 해 이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영화 시나리오일 수도 있다. 책 뒤에 부록으로 붙어 있는 연표 상으로는, 1992년 마흔아홉 살 때 중편소설 <소네치카>가 처음 발표한 작품이다. <소네치카>로 러시아 부커 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96년에 프랑스 메디치 상, 98년에 이탈리아 주세페 아체르비 상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2012년에 작품집 《소네치카》로 비채 출판사에서 출간해 표제작과 <스페이드의 여왕>,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을 합해 한 권으로 팔았던 것을 2023년에 문학동네에서 공역자 두 명으로 구분해 두 권으로 개정판을 냈다. 이게 미워서 책 읽기를 미루었다가 이번에 읽어봤는데, 아이 씨, 진작 읽을 것을. 평점을 줘도 그게 얄미워 별 한 개 정도는 까려고 생각했어도, 특히 <소네치카> 문장이 얼마나 예쁜지 도무지 깔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어서 <부하라의 뜰>을 빼고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한 울리츠카야는 죄다 읽는 셈이다. <소네치카>는 처음 발표한 작품이라서 그런지 나름대로 유명세를 탄 21세기 책들과는, 글쎄 아마추어가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표현, 즉 이야기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렇게 느꼈다.

  책에는 표제작과 단편 <스페이드의 여왕>이 실렸다. <소네치카>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소네치카는 ‘소냐’의 애칭이다. 러시아 소설 읽으려면 한 이름 갖고 무수하게 다른 애칭으로, 또 자주 무지하게 긴 이름으로 쓰는 걸 참아야 한다. 이 각오 없이 러시아 소설 읽으려면 뇌에 땀날 수도 있고, 읽다가 때려치우기 십상이다.

  소네치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독서광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아이들은 문자를 누가 가르쳐주어 배우는 게 아니다. 아무리 복잡하게 생긴 문자를 사용하는 나라에 살아도 “아주” 어린 아이가 책을 읽는 경우가 제법 있다. 내가 말하는 건 “아주” 어린 아이. 그냥 아이들은 많으니까 혹시 내 아이가 영재 아닐까, 이런 생각하기 없기. “아주” 어렸을 때 글자를 저절로 익힌 아이들이 그렇다고 천재는 아니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고, 아마도 평생 따라다닌다. 공부 머리가 그렇다는 거다. 공부머리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니까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

  어려서부터 책만 팠으니 그러면 체형이 어떻게 됐을까? 게다가 소네치카가 유대인이라면. 당연히 서양배pear 모양으로 부푼 코, 넓은 어깨, 길고 가느다란 체격, 마른 다리, 납작한 엉덩이, 이런 모든 것과 달리 일찍 성숙한 큰 여인네의 가슴. 한 마디로 생긴 건 별볼일 없다는 거. 아, 못생긴 건 아니다. 그냥 보통 수준이겠지.

  일곱 살때부터 스물일곱 살까지 쉼 없이 책을 읽었다. 마치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소냐는 인쇄된 글자에 너무 매료되고 공감해 실제 사람 사는 것보다 활자 속의 인생이 훨씬 더 진실에 가까운 것처럼 생각했을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러시아 내전 시기 때 시계공방을 그만둔 아버지와 함께 저 멀리, 스베르틀롭스크로 피난을 갔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싱어 재봉틀로 빈궁한 시절에 어울리는 옷을 만들어 팔아 살아서 세상에 가장 무서운 인간이 세무조사원이었단다.

  도서정보 전문학교를 졸업한 소냐는 스베르들롭스크의 오랜 도서관 지하 보관실에서 일 하기 시작해 몇 년 후에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부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냐한테는 도서관 지하실이 유일한 희망의 공간이었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다. 이날은 1층 대출과에 직원이 휴가를 낸 바람에 소냐가 대신 앉아 있었다. 운명은 그렇게 온다. 우연히. 소냐 앞에 나타난 남자. 로베르트 빅토르비치. 역시 유대인이다. 비쩍 마르고 키가 작은 남자. 그가 프랑스어로 된 도서목록이 없느냐고 묻는다. 없다. 있었는데 찾는 이가 없어서 흐지부지 망실됐다. 대신 소냐는 로베르트를 데리고 서유럽 서고로 가고, 그곳에서 프랑스 장서를 발견한 로베르트는 경탄을 하며 전율한다. 뒤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소냐가 조금 반한 것도 같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이날 남자는 소냐에게 세 권을 대출해달라고 하고, 대출증을 만들려 했지만 그의 거주지가 이곳으로 되어 있지 않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로베르트는 며칠 안에 반드시 가져오겠다고 맹세를 하고, 소냐는 아무 이유도 없이 맹세를 믿고 책을 빌려준다.

  이틀 후, 신문지에 싼 책을 반납하러 온 로베르트. 신문지 포장을 벗기고 소냐가 발견한 것은 거친 종이에 부드러운 갈색과 세피아 색 물감으로 그린 소냐의 초상화였다. 소냐가 보기에는 자기 같지 않다. 하지만 누가 그림을 본다면 틀림없이 소냐를 그렸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로베르트 빅토르비치는 이제 마흔일곱 살 더하기 3일. 1930년대 초에 프랑스에서 귀국한 전설의 사나이다. 전설은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전설이 아니라 파리의 전설이라는 뜻이다. 갑자기 사라진 구 러시아 시대의 화가. “불행한 이들 속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불렸던 그의 작품에 대하여 훗날 미국의 평론가들은 각종 매체에 멀쩡하게 살아있는 로베르트더러 이제 죽어 사라진 한 세월의 대가로 극찬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의 그림 값은 천장을 뚫어버린다. 그러니 대단한 화가인 모양이다. 전쟁 당시에 그는 실제 삶과 상관없이 점령된 파리의 죽어가는 갤러리들 속에서 비방과 망각을 다 견디고 죽음과 부활을 겪게 되는, 이상한 그림들과 함께 구전적인 삶으로만 살고 있었다. 소련에 입국하자마자 스탈린 시대가 줄창 그러했듯이 교화 수용소에서 5년형을 마치고 보호관찰하에 변방 중의 변방, 스베르틀롭스크의 공장관리부에서 화가로 일하고 있었다. 당연히 생산전투를 독려하는 그림 같은 걸 그렸겠지.

  그가 소냐에게 초상화를 건네며 말한다.

  “이건 제 결혼 선물입니다. 사실 당신에게 청혼하러 왔어요.”

  이미 열네 살에 짝사랑했던 동급생 비티카 스타로스틴, 잔인한 오네긴에게 독한 거절의 말을 들어 소냐로부터 사랑의 불꽃이 떠나버린 것으로 여기고 살았기 때문에 소냐의 대답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

  “뭐예요, 지금 농담하시는 거예요?”

  스타로스틴의 유령이 찾아왔던 거였다. 하지만 노쇠한 로베르트 빅토르비치와 태생적으로 허약한 소네치카는 피란 생활의 지극한 곤궁 속에서 새 삶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바로 두 주일 후에.


  결혼을 했으니 당연히 임신도 하고, 그것도 산달을 꽉 채웠을 때, 로베르트는 모스크바로 가게 된다. 소냐도 함께 갔다. 위험한 상태이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혼자 보낼 수 없고 남편과 따로 살 수도 없어서 남편과 함께 의자가 다 뜯어진 열차에 올랐다. 딸 타냐, 2킬로그램의 타네치카를 낳아 튼튼하고, 키도 크고 비쩍 말랐지만 별로 아프지도 않게 잘 키웠다. 타냐는 책을 읽지 않았다. 공부도 하지 않았다. 다른 것에 소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 그런 거지. 부모가 바라는대로 되는 자식이 몇이나 되랴?

  이렇게 세월이 갔다. 타네치카에게 친구가 생기고, 불쌍한 고아로 성장한 친구 야샤에게 자기 집에 와서 머물라 권하는 소네치카. 애초에 정조관념이 없고, 고아로 홀로 성장하기 위하여 생존할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을 잘 알고 있던 야샤는 이 가족에게 휘청거리는 충격파를 몰고 오지만, 우리의 소네치카는 이것도 다 사는 것이라고, 그냥 그냥 넘어간다. 어쩌면 그것,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 더 지혜로웠던 것일 수도 있을까? 모르겠다.

  정작 내가 넘어간 건 스토리가 아니라 문장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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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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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에 프랑스 생제르맹앙레Saint-Germain-en-Laye에서 출생한 소설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장바티스트 앙드레아가 영화 관련일로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이이가 세계적인 영화제가 열리는 칸에서 자랐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파리로 올라가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한 다음에 다시 영화계에 뛰어들어 감독도 하고, 시나리오도 쓰다가 소설이 더 매력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설쓰기에 전념해 <나의 여왕>으로 데뷔, 첫 작품부터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이후 오늘 독후감을 쓰는 네 번째 소설 <그녀를 지키다>로 2023년에 모든 프랑스 소설가의 로망인 공쿠르 상을 받기에 이른다.

  앙드레아의 모계가 이탈리아 출신이고, 알제리에 살던 프랑스, 그리스, 발레아레스 혈통도 섞인 모양이다. 왜 혈통을 말하느냐 하면, <그녀를 지키다>의 주인공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 약칭 ‘미모’가 프랑스 출신 이탈리아 사람이며 작품의 대부분이 이탈리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986년 가을, 피에몬테의 피르키리아노 산꼭대기에 있는 사크레 디 산미켈레 수도원. 죽음의 침상을 둘러싸고 서른한 명의 수도사가 수도원에서 유일하게 서원하지 않고 40년을 머물렀다가 이제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려 하는 140센티미터의 왜소증 환자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의 영면을 기다리고 있다. 이 죽어가는 노인의 차마 꺼지지 못하는 영혼은 자신의 일생을 회상한다. 자신이 기억할 수 있을 때부터 기억하고 싶은, 그러나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지극한 비밀, 은밀한, 그러나 정결했던 사랑 이야기를.


  미모는 1904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미모를 낳기 15년 전에 제노바 리구리아를 떠나 프랑스에서 터를 잡은 조각공방의 마이스터였다. 1889년의 프랑스는 벨에포크 시절. 물자는 풍부하고 전쟁도 없는 태평시대. 저택과 고급주택, 그리고 성당은 자신의 건물과 분수대와 정원을 꾸미기 위하여 조각 공방에 잔뜩 주문을 해대던 시절이라 비탈리아니 집안은 이탈리아 이민 가족과 달리 전혀 어렵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정부는 아버지의 출생증명을 10년 젊게 기록하고는 징병 대상에 이름을 올려 버렸다. 아버지는 전사했다.

  갑자기 견디기 힘들 정도의 궁핍을 맞게 된 어머니 안토넬라는 미모를 토리노에서 역시 작은 조각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삼촌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1916년 10월 미모는 아버지의 동료 가운데 마침 이탈리아로 귀국하는 술주정뱅이 카르모네와 함께 기차를 타고 토리노로 갔으나, 알베르토 삼촌은 미모를 난쟁이라는 이유로 도제로 받아주지 않으려 한다. 카르모네는 어쩔 수 없이, 그러나 이탈리아 식 의리는 있어서(떼어먹지 않고), 어머니가 미모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했던 봉투의 돈 전부를 삼촌에게 주어 도제로 삼게 한다. 이 돈은 아버지가 번 돈 가운에 남아 있던 거의 모든 재산을 현금으로 만들어 이탈리아에서 혼자 살아야 하는 미모의 앞날을 위한 것이었다.

  제네바 항구에서 잘 나가는 매춘부의 아들인 알베르토는 당연스레 미모의 돈을 손에 넣고 단 한 푼도 미모에게 주지 않는다. 말만 도제일 뿐 조각과 관련한 일은 전혀 알려주려 하지도 않고 잡일만 노예 수준으로 하게 만들고. 당연히 보수도 전혀 없다. 일찌감치 조각에 관한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미모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조각에 관한 다양한 시각과 철학을 익혀, 삼촌이 조각가로서 완벽하게 3류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지만 그렇다고 겨우 열두 살의 소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찾을 수는 없었다. 삼촌은 미모와 지내면서 미모가 간혹 보여주는 번쩍이는 조각가로서의 재능에 심각하게 질투하고, 못난 사람들이 종종 그러하듯 더욱 미모를 괴롭히게 된다. 이들의 악연은 조금도 풀리지 않은 상태로 훗날 삼촌이 제네바 매춘부 출신으로 큰 부자가 된 어머니의 재산을 상속받아 떠날 때까지 이어진다.


  토리노에서 상황이 나빠지자 삼촌은 미모를 데리고 리구리아의 시골 피에트라달바에 있는 공방을 거의 헐값에 인수해 떠난다. 피에트라달바는 오르시니 후작 가문과 부르주아 감발레 가문이 적대적으로 이웃하며 이들 주변으로 농민들이 거주한다. 고도가 높고 샘이 산재한 지역으로 유명한 산피에트로 델레 라크리메 성당이 있으며 갓 부임한 파드레 돈 안셀모가 주임신부이다. 파드레 안셀모가 자랑하는 성당의 보물은 17세기에 이름없는 장인이 만든 조각품 <피에타>. 십자가 아래에서 죽은 자식을 안고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어머니는 성 마리아, 죽은 자식은 그리스도이다. <피에타>의 죽은 그리스도는 대개 고귀한 모습을 한 미남 소년으로, 어머니는 역시 고결한 외모의 젊은 여성으로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곳에 가서 우연히 돈 안셀모 신부와 이야기하게 된 미모. 신부가 조각을 극찬한다. 미모가 처음엔 수긍하다가 신부가 너무 오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솔직한 품평을 해버린다.

  “이건 엉터리예요. 어머니는 슬퍼 보이지 않아요. 예수의 팔이 너무 길고, 외투 자락도 저렇게 길게 내려오면 성모님이 걷다가 발에 걸릴 거예요.”

  미모는 천부적으로 인간의 신체를 해부학적 균형에 입각해 볼 줄 아는 시각을 지녔다. 게다가 작품을 놓을 장소에 따라 인체나 사물의 비율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것도 아버지한테 배웠다. 한스 홀바인이 그린 <대사들> 아랫부분에 심하게 찌그러진 시계 기억하시지? 계단에 걸 목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계단 아래에서 보면 정확하게 시계가 보이지만 정면으로 그림을 보면 찌그러진 원반 같이 보일 뿐인 거. 이런 장면은 뒤에서 미모가 피렌체의 필리포 메티 공방에서 일할 때 수석 도제의 조각을 품평하며 적나라하게 나온다. 지붕 꼭대기에 설치할 조각은 사람들이 건물 아래에서 올려다보기 때문에 머리 쪽을 더 과장해야 정상 비율로 보이는 현상.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그 유명한 작품 <다비드> 상도 이 때문에 해부학적 균형이 맞지 않게 조각한 건 더욱 유명하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 성 베드로 성당


  숱한 조각가들이 도전한 작품이 바로 <피에타>. 미모가 눈물의 성 피에트로 성당 신부에게 솔직한 품평을 하니, 신부는 미모가 교만의 죄와 신성모독을 저지르고 있다고 가볍게 야단친다. 성모는 기품이지 추함이 아니라면서. 이때 독자는 한방에 알아차린다. 미모가 언젠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피에타>를 조각할 것을. 이것을 위해 미모의 이름을 미켈란젤로라고 지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불멸의 <피에타>를 조각했다. 반면에 독자는 결코 미리 알 수 없는 것이 ‘미모’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의 또다른 걸착 <피에타>는 부오나로티를 능가하지만 결코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독특한 가치가 있어서 저 먼먼 산꼭대기 성당의 지하 보관소에 안치하고 있다는 것. 정말이냐고? 순진하기는.

  작품 속 미모의 <피에타>를 본 레너드 B. 윌리엄스 박사는 이렇게 썼다.

  “비탈리아니는 자신의 선배(부오나로티)와는 다르게 그리스도에게 아름다움을 부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사후에 발생한 젖산 가득한 육신의 경직 속에서 십자가형의 후유증이 드러난다. (중략) 얼굴의 안도감, 입술에 걸린 희미한 미소와의 대조, 비탈리아니는 아름다움을 부여하려고 애쓰지 않지만, 매끈한 뺨이 임종의 고통으로 움푹 패고, 어머니가 방금 위무의 손길로 두 눈을 감긴 그리스도는 의도와 상관없이 아름답다. (중략) 이러한 대조는 눈부신 마리아의 얼굴에서 절정에 달한다. 어머니는 아들을 다정한 미소로 내려다보는데, 기이하게도 두려움과 고뇌는 찾아볼 길 없어…(후략)” (p. 310~311)

  사후 경직이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라니. 정말 놀랄 만하지 않나? 만일 이런 <피에타> 상이 있어서 세상의 한 큰 성당에 안치한다면 숱한 예술가들은 열광을 할지라도, 더 많은 수의 가톨릭 신자들은 조각가를 화형에 처하라고 요구하면서 바티칸 광장에 집결할 지도 모른다. 바티칸 여우들도 이런 가능성을 충분히 감안하여 산 꼭대기 수도원의 지하 보관실에 묻어 버린 것이겠지.

  그런데 내가 더 놀란 것은 미모가 훗날 교황 비오12세가 될 파첼리 추기경이 주문한 <천국의 열쇠를받는 성 베드로> 상이었다. 미오는 최후의 만찬을 한 날, 밤이 새기 전에 그리스도를 세 번 모른다고 한 그 양반이며, 최초의 교황이며, 로마에서 도망가려다가 십자가를 다시 지고 로마로 들어가는 그리스도한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물었다가 다시 로마로 가서 스스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임을 당한 사람을 조각하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베드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염 기른 혈색 좋은 현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남자라면 그럴 수밖에 없듯이, 살면서 고통스러워했으니까, 1년 내내 세계의 온갖 교회에서 그가 저지른 배신에 관한 성경 구절을 읽어 댔으니, 아무도 그가 아픈 과거를 잊고 살게 놔두지 않았다. 또한 그는 다른 성 베드로들이 보여주는 그런 대가연하는 표정으로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지도 않았다.” (p.334)

  그래서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어떻게 받느냐 하면,

  “열쇠는 그것을 받으려고 벌린 베드로의 경직된 손과 땅바닥 사이 어딘가의 허공에 걸려 있었다. (중략) 그 효과는 강렬했다. 하느님은 자신의 교회를 올릴 반석으로 자신의 아들을 세 번 부인했던 남자를 골랐다. (중략) 내가 창조한 성 베드로는 법열에 빠진 성인, 이제 은퇴한 건강하고 권태로 가득한 종교인이 아니라, 자신의 임무 앞에서, 그의 늙은 두 손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물건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안 그래도 두 손은 그걸 막 놓쳐 버렸다. 어쩌면 혹시 열쇠가 깨지는 건 아닐까, 자신이 벼락을 맞는 것은 아닐까 자문할지도 몰랐고, 그러면서 공포에 질려 열쇠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p.335)


  훗날 교황 비오12세가 될 추기경 파첼리가 주문을 해서, 이 <천국의 열쇠를 받는 성 베드로>를 성당에 모시지는 못하고 대신 자기 사비로 비용을 지불해 개인 소장하겠다고 했으니, 미모,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는 조각가로 최고의 명성을 떨치게 된다. 미모의 배경에는 피에트로달바의 오르시니 후작 가문이 있다. 후작은 아들 셋과 막내 딸이 있다. 첫째 바르질리오는 1차 세계대전에 지원해 참전했다가 유명한 열차 사고를 당해 전투 한 번 못해보고 죽고, 둘째 스테파노는 일 두체, 무소리니의 파시스트로 맹활약하다가 미모 때문에 오히려 파시스트에 체포된 후 곧바로 해방을 맞는 바람에 거의 죽었다가 살아나며, 셋째 프란체스코는 젊은 나이에 차례대로 사제, 주교, 추기경까지 올라가지만 역시 미모 때문에 교황까지는 가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자줏빛 수단을 몸에 두르고 지낸다.

  막내딸이 비올라. 누군가 그랬지, (현악기)비올라는 여인의 눈물샘 같다고. 이 동네 성당 이름이 “눈물의 성 피에트로.” 비올라는 미모와 생년월이 같다. 미모가 우연히 비올라의 생일을 알고 있어서 둘이 한꺼번에 생일을 말하는데, 22일, 같은 날 태어난 것으로 오해해 둘은 진정한 우정을 나눈다. 우정은 당연히 진정한 사랑이 되지만 신분의 격차는 둘에게 정결한 사랑을 요구하고, 둘은 이에 순응한다.

  하여간 이 집의 셋째 아들이 추기경까지 오르니, 오르시니 가문의 후원을 받는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는 귀족과 바티칸의 후광을 입어 찬란한 꽃길을 갈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집안 사람들과 아들들이 가장 우선하는 것은 가문의 자존을 지키는 것. 그것을 위하여 성직자임에도 더러운 거짓말을 종용하기도 하고, 권력을 얻기 위해 파시스트가 되기도 하지만, 끝까지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비올라는 20세기 초반의 여성이라는 제약에 걸려 자신의 뜻을 전혀 펴지 못한다.

  재미있는 책이다. 이런 책은 책꽂이에 꽂아 두어도 좋다. 혹시 아는가, 나중에 한 번 더 읽어볼까, 이런 생각이 들 지. 오늘 독후감을 길게 썼는데, 스토리의 1/10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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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05-2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번쩨 소설만에 콩쿠르상 수상이라...이 작가 엄청나군요! 거기에 별 다섯 개라...이거 또 안 살수가 없네요..뽈 님때문에 전 세계 몰랐던 작가의 걸출한 작품을 하나씩 알아가네요..^^

Falstaff 2025-05-20 16:41   좋아요 0 | URL
넵. 강추 작품입니다. 즐기셨으면 좋겠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