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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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필립 로스. 이런 책을 읽으면 저절로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오른다. “명불허전.”
 번역서를 읽다가 순서가 로스로 오면 뭔가가 확 달라진다. 역자의 노고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글 읽기가 매우 쉬워지는 것. 쉬운 글로 매우 복잡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데 조금도 불편이 없는 거장의 솜씨다.
 이이의 책을 읽은 순서대로 보면, <미국의 목가>, <휴먼 스테인>, <포트노이의 불평>, <죽어가는 짐승>에 이어 다섯 번째. 이 가운데 <나는 공산주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작품이 <미국의 목가>다. 유대 미국인과 공산주의를 언급하는 작품. 그래, 곧바로 스토리 이야기로 넘어가자.
 1인칭 소설. 화자의 이름은 ‘네이선 주커먼’이며 60대 중반의 남자로 버크셔 산악지대의 호숫가 자그마한 집에서 평화롭고 외롭게, 오직 소설을 쓰며 지내는 작가. 어디서 본 듯하다. 호숫가 외딴 집에서 전립선을 제거해 비닐로 만든 오줌주머니를 허벅지에 찬 채 집필생활에만 몰두하고 있는 60대 중반. 그렇다. <미국의 목가>와 <휴먼 스테인>의 화자와 같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테나 대학’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휴먼 스테인>에선 심지어 주인공이 그 대학 교수이기도 하다. <나는 공산주의자....>에서 화자에게 한 문제적 인간 ‘아이라 린골드’의 생애를 이야기해주는 고등학교 시절의 첫 번째 영어교사 머리 선생님이, 아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애리조나에서부터 먼 길을 와서 일주일간 개설하는 여름 특강을 들으러 온 곳이 바로 아테나 대학이다. 뭔가 내 머리 속에서 번쩍, 했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책의 제목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바로 옆에 작은 글씨로 ‘주커먼 시리즈’라고 있다. 네이선 주커먼이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 시리즈가 있는 모양이다. 클릭해보니 내가 읽은 세 작품 말고 <유령 퇴장>이란 또 다른 소설이 나온다. 조만간에 그것도 읽어봐야겠다.
 <미국의 목가>에서는 베트남 전쟁 시기에 공산주의자이자 반전주의자 딸을 둔 전형적인 성공한 유대 미국인 스위드 레보브 씨의 좌절을 썼으며, 이 책을 쓴 바로 다음 해에 발표한 <나는 공산주의자....>는 1940년대 말에서 한국전쟁 시기 미국의 한 유대인 공산주의자 아이라 린골드의 몰락에 대해 서술한다. 두 작품 속에서 1990년대, 60대 중반 나이의 작가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공통적으로 얘기/비판하고자 하는 건 미국의 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우스꽝스러운 사상검열이다. 급기야 아무 죄도 없는 부부를 “소련에 미국의 원자폭탄에 관한 정보를 건네기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기로 불법으로 공모한 혐의”로 전기의자에 앉혔던 야만스런 “로젠버그 사건”도 있어서 E.L.닥터로는 이를 토대로 <다니엘 서>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로스는 여기다가 자신의 정체성인 유대인, 그러니까 인종문제까지 섞어 다소 복잡하지만 명품이라고 할 만한 작품을 생산해냈다.
 화자 네이선 주커먼이 2차 세계대전 중 벌지 전투에도 참전했던 영어교사이자 평생 은사로 여기고 살 머리 린골드 선생님을 만나고, 우연히 기회가 닿아 머리 선생님의 6피트 6인치의 키에 마른 몸집을 가진 친동생 아이라 린골드와 알게 되어 그를 숭배하는 것으로, 네이선의 청소년 시대는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게 된다. 6피트 6인치가 얼마만큼 큰 키일까? 계산해보자. 6 * 30.43 + 6 * 2.54 = (30.43 + 2.54) * 6 = 197.82, 즉 2미터의 키. 시절이 1940년대 말. 이 정도면 중국소설에서나 나오는 구척장신 대열에 설 만하다. 링컨을 닮은 외모를 하고 있는데다가 정말로 프록코트를 입고 실크해트를 쓴 채 직업이 라디오 성우인 그가 링컨 역할을 하고 당시에 차별주의자, 노예제도 지지자였던 스티븐 A. 더글러스와의 토론을 하거나 두 번째 대통령 취임 연설이나 게티스버그 연설을 하는 장면은 당시 뉴욕 지역에서 대단한 인기가 있었는데, 아이라는 그걸 각급 학교, 노동조합에서 무료로 공연해주고는 했다.
 머리와 아이라 형제는 어려서부터 지극히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서 살다가 나름대로 삶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형 머리는 자신의 길을 책과 학교와 대학에서 발견해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평생을 살았고, 문제는 아이라, 어려서부터 큰 키와 힘을 갖춘 것에다 인내심 없고 폭발적인 성격, 화를 잘 내고 무엇이든 생각나는 대로 저질러놓고 보는 천성이었는데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해 이란에서 (배에서 군수물자를 하역하는)하역병으로 복무하는 동안 만난 군대 동료 오데이로부터 교육받은 공산주의를 삶의 목표로 삼았다. 오데이는 천생 공산주의자로 파업과 자본주의 미국의 종말을 이끌 혁명을 꿈꾸는 골수 볼셰비키로 1940~50년대 공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코민테른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른 강철 혁명가였다. 그런 오데이로부터 전수받은 공산주의를, 아이라 린골드는 15세에 불과한 화자 네이선에게, 꾸밀 줄 모르는 직접화법으로 혁명을 이야기하고, 미국 내 공산주의자들을 비롯한 진보인사들의 모임에 초대하고, 덤으로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브 프레임의 네 번째 남편의 자격으로 이브 프레임의 집에서 벌어지는 뉴욕 상류층들의 파티에도 초대하는 반면, 당시에도 완전히 우범지역이었던 흑인 밀집지역에서 편하게 앉아 흑인들과 인종차별 철폐와 자본가들의 착취 같은 주제로 토론을 벌이는 자리에 동행함으로서, 네이선으로 하여금 자신을 제2의 아버지,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돋움을 하며 닮고자 하는 모델 또는 멘토로 숭배하게 만들어버린다. 물론 의도하지 않았겠지. 그러나 바람직한 청년이라면 앞으로 30년 후 자신이 되고 싶은 모델이 한 명 이상 있는 법. 네이선에게 그 모델은 가난한 자를 위하여 세상을 엎어버리고, 세상의 모든 차별을 철폐하는데 자신을 전력투구하는(것처럼 보이는) 아이라 린골드인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었다.
 개인의 정치적 선택으로 인하여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헌법에도 불구하고,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공산주의자들은 미국 땅에서 할 수 있는 어떠한 일도 없었다. 모든 사업장에서 소외되었으며, 거의 모든 선량한 국민들은 색이 잔뜩 들어있는 유리창을 통해서만 그들을 바라봤으며, 감방에 갇히거나 심지어 전기의자에 앉기도 했던 거다. 그러나 아이라는 공산주의자이기엔 너무나 낭만적이랄까. 하여간 어울리지 않는 성격. 링컨과 똑 같이 큰 키와 말단비대증을 앓고 있는 아이라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갖고 있어 라디오 방송의 인기 성우로 발탁이 되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브 프레임의 네 번째 남편이 되고, 그래서 최상류 계급에 휩쓸리면서 차별의 반대와 미국혁명을 부르짖었으니 그게 될 법한 일인가. 거기다가 이 유대미국인의 유대미국인 아내 이브 프레임(프레임은 동성애자였던 두 번째 남편의 성姓)은 잔뜩 흥분하기라도 하면 자기도 모르게 눈앞에 유대인만 나타났다하면, “이 더러운 유대인. 더럽고 가증스러운 유대인!”이라 침을 튀는 버릇이 있다. 반면에 우유부단해서 끊임없이 아이라를 곤경에 빠뜨리고, 아이라의 아이를 중절해버리는 박식한 멍청이이기도 하다. 아이라의 몰락은 처음부터 운명지워져 있던 것.
 필립 로스가 천착했던 주제들 가운데 두 가지. ① 자칫하면 전체주의나 독재로 빠질 것 같았던 미국현대사와 ② 유대인의 정체성 문제를 아주 효과적으로 쓴 매력적인 소설이다. 로스 표 베드 씬을 기대했다가는 아무 것도 건질 것이 없어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묵직한 주제를 참으로 읽기 편하고 능숙하게 써내려가는 거장의 솜씨를 구경하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이 책을 위해 지갑을 열 이유는 충분히 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 이래서 필립 로스, 필립 로스 하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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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강기 2018-05-23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목나무 2018-05-2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먼 스테인>으로 이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어느새 작가의 책들이 책장에 많이 늘었더라구요.
오늘 작가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Falstaff 2018-05-23 14:37   좋아요 0 | URL
아, 우리 시간으로 이 독후감을 올린 날짜에 운명을 했군요.
참.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저도 편한 영면을 빌겠습니다.

- 2022-07-0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로스표 베드 씬이 없는 책으로 로스를 입문했군요! 어쩐지 아쉬우니까 베드 씬 있는 다른 거 읽어보아야겠습니다.

골드문트님 리뷰 읽으려고 피시로긴했어요 ㅜㅜ (여전히 골드문트님 리뷰만 북플에서 폭파되서 보이네요) 저 이 책 너무 재밌었어요. 저도 이래서 필립 로스 필립 로스 하는 구나 했네요.
 
뇌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4
차오위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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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렬한 드라마. 그리고 만일 무대가 아니라 TV를 통해 연속극으로 방영한다면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 작가가 쓴 서문을 읽어보면, 초연 이후에 입센을 닮았다느니, 에우리피데스의 <히포리토스: Hippolytus‘히폴리투스’겠지>나 라신의 <페드르>로부터 영감을 얻어 왔다느니 하는 평을 하도 많이 들어 지긋지긋했었나보다. 자기 자신의 아이디어로, 문학의 주인댁에서 금실을 한 가닥씩 떼어와 옷을 짓는 건 죄가 아니라고 했다. 맞는 말씀. <뇌우>를 읽어보면 그리스 신화 같은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걸 굳이 한 단어로 이야기하는 가장 적당한 우리나라 말 단어가 바로 “막장”이다. 생각해보시라. 그리스 신화치고 막장 아닌 거 몇 개나 있나. 또 솔직하게 얘기해서 막장 드라마가 감칠맛은 있잖아?
 드라마이니만큼 줄거리를 다 이야기해도 별로 까탈이 잡히지는 않는다. 원조 막장 드라마 <리어왕>이나 <오셀로> 내용 모르고 연극 관람하시는 분 있나?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까탈 잡히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내용을 홀랑 다 얘기해버리면 조금 김이 샐 수 있으니 간략하게 등장인물 소개 정도로 끝내겠다.


 먼저 조우(周)씨 집안.
 조우푸위안: 조우 집안의 가장. 광업회사 사장. 젊은 시절 하녀와 정을 통해 아들 둘을 낳았지만 둘째를 낳은 지 3일 만에 어머니로부터 강제 이별 당함. 맏이는 조우씨 집안에서 키우고, 쫓겨난 하녀는 실의에 빠져 낳은 지 겨우 3일 된 둘째아이와 함께 강물에 빠져 죽.....었는지 알고 양반 댁 규수와 혼인했으나 첫사랑이었던 하녀를 잊지 못해 바쁜 일상 중에서도 가끔 멍 때리는 취미를 지님. 그러나 마르크스가 지탄했던 탐욕스런 부르주아의 대표선수. 파업광부들에게 총을 쏘아 제압해달라고 지방 경찰청에 부탁해 서른 명 골로 가게 만드는 악덕기업 사장. 큰 아들 이름을 자살한 하녀의 이름을 따서 ‘핑’이라고 지음.
 조우판이: 조우 사장의 두 번째로 정식 결혼한 부인. 지금 나이 35세. 남편이 자기보다 스무 살 많음. 남편에게 별로 사랑받지 못한 중국 부르주아 집안의 후처들은 전통적으로 전실이 낳은 아들과 사통하는 경향이 있는 바, 중국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큰 아들 핑과 살 섞음.(페드라!) 문제는 ‘피 안 섞인 아들’을 진짜로, 남자로 사랑하고 있다는 거. 하긴 살의 맛을 제대로 알 서른다섯 살 아닌가. 남편이란 건 벌써 시들시들. 비아그라 나오려면 앞으로 70년이 더 흘러야 하니 밤마다 송곳으로 허벅지 찔러가며 참아야 하느니라, 타령을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러나, 맛을 보되 사랑하지는 말았어야지. 그래, 죄는 바로 그거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죄.
 조우핑: 엄마보다 여덟 살 적은 조우 집안의 후계자. 엄마하고 관계는 젊은 시절 불장난에 불과해, 이젠 엄마의 집요한 시선이 아주 징글징글함. 엄마한테 정을 떼려 만날 술 마시고, 도박하고, 쉬운 얘기로 막 살다가 자신의 평생을 걸고 사랑할 여자를 발견했으니 집안의 하녀 루쓰펑. 근데 그게 쉽겠어? 조금 있으면 마각을 드러낼 운명이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막장”의 씨앗.
 조우충: 17세 청년. 조우판이가 낳은 아들. 하지만 엄마는 형한테 빠져 있어 자신에게까지 흘러들 사랑은 별로 없음. 17세라니, 참 어지러운 나이. 하루에도 열 댓 번씩 하늘을 향해 불끈 솟아나는 그 힘을 감출 곳을 찾다가 드디어 발견했으니 하필이면 하녀 루쓰펑. 루쓰펑은 참 복도 많다고? 천만의 말씀. 평생 한 사람한테만 사랑을 받는 것이 제일 큰 복이라고 언제 얘기한 적이 있잖아.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잘 교육받은 전형적인 착한 부잣집 도련님. 그러나 날을 받았다. 드라마가 시작해서 끝나는 오늘, 아니, 내일 새벽, 불끈 솟아나는 힘 한 번도 써먹어보지도 못하고 숫총각으로 세상 하직하는 제일 가엾은 아이.


 그리고 조우 집안의 수석하인인 루(魯)씨 집구석
 루구이: 천하의 배워먹지 못한 종자. 48세. 돈 앞에서는 처도, 딸도 필요 없음. 그렇게 생긴 돈으로 하는 짓은 ①술 마시고, ②도박하고, ③여자 사는 삼종세트에 다 처바름. (난 술에만 바름. 착한 아저씨임.) 누가 돈만 준다면 못할 짓이 없음. 조우 집안 <페드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마님과 첫째 도련님한테 은근한 권력을 행사함. 이딴 인간은 대개 끝이 안 좋게 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자는 그렇지도 않음. 물론 팔자가 핀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하여간 이런 작자들 때문에 사건이 비틀어지거나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넘어가는 게 보통이지만(마치 ‘토스카의 부채’나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처럼) 그런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끝나는 지질이.
 루스핑: 남편 루구이 하는 짓이 참으로 눈 뜨고 보기 힘들어 멀리 떨어진 객지에 홀로 나가 어느 학교의 노동자로 일하다가, 날 잡아 하루 집에 오는 날 하필이면 이런 막장 드라마가 펼쳐짐. 알고 보니까 루구이한테 시집 올 때,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여덟 살 먹은 사내아이 다하이를 데려왔음. 그래 그 아이가 ‘루다하이’가 됨. 원래라면 당연이 ‘조우다하이’여야 할 텐데. 무슨 말씀이냐 하면, 27년 전 다하이를 낳은 지 3일밖에 안 됐을 때 죽으려고 다하이를 품에 안고 비가 철철 오는 깜깜한 한밤에 강물에 퐁당 빠졌으나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살아나 어렵게 살다가 루구이를 만남. 즉 조우핑과 루다하이는 친형제 사이. 여태 자기 남편이 종살이 하는 집안의 가장이 옛날 자신의 첫 정이었던 것을, 그와의 사이에 두 아이를 생산했다는 걸 모르고 살았음(이렇게 상세하게 까발리는 것에 대하여 독자의 양해를 바람).
 루다하이: 광산노동자. 계부 루구이가 힘을 써 조우 광업회사의 광부로 취직시켜줌. 노동조합 위원장. 파업 주동자. 광업회사 사장을 만나 담판을 지으려 광산에서 도시로 왔음. 때는 1920년대. 달걀로 바위를 깨뜨리고자 바락바락 자신의 친아빠한테 덤벼들다가 친형한테 두드려 맞음. 파업할 때 경찰이 흘린 거 주운 권총으로 뭔 짓을 한 번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에이 이런 드런 집구석들이 있나, 한 마디하고는 홀연히 입산해 신선이 됨. 철저한 프롤레타리아. 입산만 하지 않으면 혁명 이후에 한 자리 했을 거 같은 캐릭터.
 루쓰펑: 루구이와 루스핑 사이의 딸. 하녀 노릇해서 열라 돈 만들어놓으면 아빠가 와서 홀랑 삼켜버림. 조우 집안에 하녀로 들어가지 말라는 엄마의 명령을 어기고 아빠의 닦달에 못 이겨 기어이 하녀가 됨으로써 인생 완전 망가짐. 동복형제인 조우핑과 연애해서 오매, 임신 3개월. 우리 계산으로 넉 달째로 접어들어 기어이 엄마 가슴에 대못질함. 진정 바라는 건 조우핑과 지긋지긋한 두 집안을 멀리, 멀리, 또 멀리 떠나 둘만 오순도순 사는 거. 그렇게 사는 게 쉬울  걸로 착각하기 좋은 나이 방년 십팔 세.


 출연진 소개하니까 내용도 훤하게 보이시지? 근데 이거보다 더 재밌다. 원래 드라마란 것이 그렇잖은가. 스토리보다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포인트가 맞춰지는 거. 게다가 진정한 막장 드라마는 관객이나 독자를 확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 법. 그리하여 세계적으로도 널리 공연하는 작품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숱하게 무대에 올렸단다. 이 희곡을 각색해서 만든 영화가 장이머우 감독에다, 주윤발과 공리가 뜨는 <황후화>란다. 돈 엄청 쏟아 부어 화려하게 만든 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뇌우>하고 비슷하지는 않았던 기억. 하긴 그래야 각색하는 사람도 먹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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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에디션 D(desire) 14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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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내 사랑 줄리엣 비노쉬가 주인공 역을 한 영화를 생각하면서 읽은 책. 그러나 영화는 제쳐두자. 이 책을 다 읽으면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가 스리랑카 태생의 캐나다 시인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쏙 빼놓고, 유럽과 아메리카의 백인들 입맛에 맞게 얼마나 절묘하게 각색해버린 영화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자, 시작해보자.
 두 작은 그룹small groups이 작품을 만든다.


 첫째 그룹은 다리슬라우 드 알마시 백작을 중심으로 1930년경부터 카이로를 거점으로 북부 아프리카 사막지대를 탐험하던 몇 사람들. 알마시, 진지한 영국인 매독스, 훌륭한 식견을 갖고 있는 독일인 바그놀드. 재즈의 황금시대로 접어든 1936년, 여기에 새로이 백만장자이자 자신의 개인 항공기를 이용해 사진사를 겸하고자 하는 얼핏 보면 낭만주의자 비슷한 제프리 클리프턴이 신혼여행을 겸해 흉골상절흔이 특히 아름다운 아내 캐서린을 동반하여 카이로에 도착, 이들과 합류한다. (흉골상절흔, 책 전체에 특별한 매력으로 묘사된다. 양쪽 쇄골이 마주치는 곳 바로 위에 옴폭 파인 부분, 바로 거기다.) 이때부터 1939년까지의 모임.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할 즈음, 조국으로 돌아간 매독스는 앞으로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바그놀드, 알마시 등과 총구를 맞대야할 지도 모르는 운명에 처한 것을 비관하여, 목사가 침을 튀어가며 참전과 전쟁에서의 승리를 주장하는 붐비는 교회 안에서 자신의 심장을 향해 권총을 당겨 현장에서 즉사한다. 캐서린과 그녀보다 열다섯 살 많은 알마시 백작은 기묘하게 서로를 이끄는 공감으로 내연의 관계를 맺고, 영국인 사교집단의 속성상 벌써부터 이를 눈치 챈 거의 모든 인사들보다 훨씬 나중에 이걸 알게 된 성질 급한 제프리는 아내를 옆자리에 태우고 비행기를 몰아 자살비행에 나선다.


 다른 한 그룹은 온몸이 거미처럼 까맣게 타버린 한 화상환자. 비행기에서 탈출했으나 온몸이 불에 타고 있는 채로 사막 위에서 홀로 서 있는 것을 본 베두인에 의해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한다. 비행기가 추락한 곳이 연합군 지역이었으며 환자가 비행기 조종사임이 확실하니 영국인으로 짐작하여 그냥 ‘영국인 환자’라고들 칭한다. 환자는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상실한 상태. 지금은 피렌체 북쪽에 있는 빌라 산 지롤라모의 옛 수도원 자리에 있는 야전병원에 유일한 환자로 캐나다 출신 간호사 해나의 집중치료를 받고 있다. 해나의 아버지는 용감하게 참전하여 전사해버리고, 해나는 새엄마 클라라만 캐나다에 남겨둔 채 간호사로 전쟁에 뛰어들어 이탈리아 전선에 영국인 환자와 둘이 남아 있는 상태. 그녀는 전쟁 중 전쟁의 비인간적, 야만적인 폭력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죽음 또는 전쟁에 외상을 입은 상태이지만 스스로는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해나를 찾아온 아버지의 옛 친구. 자칭 도둑, 강도라지만 알고 보면 연합군 측 스파이. 이태리에서 연맹국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해 산 채로 양 손의 엄지손가락을 절단하는 고문을 받아 불구가 됐다. 시도 때도 없이 해나가 영국인 환자를 위해 가지고 있는 모르핀 주사를 훔쳐 해나와 환자 앞에서 노골적으로 주사를 맞고 행복해한다. 한 명 더. 조그만 몸집의 인도 시크교도 출신의 폭탄제거 전공 공병중위. 시크교도 가족의 둘째 아들로 원래는 첫째가 군인, 둘째는 의사, 셋째는 사업을 하는 가풍이지만 형은 백인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전쟁에 참가할 수 없다고 징집을 거부해서 감방에 들어가는 바람에 대신 전쟁에 참가하게 됐다. 죽을 확률이 매우 높은 폭탄제거 반에 소속되어 있으나 인도인 특유의 기계공학적 기질이 그로 하여금 폭탄 전문가가 되게 만든다. 젊은이로 다섯 살 어린 해나와 뜨겁지는 않고, 좋은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 등장인물 소개면 뭐 스토리도 다 말한 것과 비슷하다. 더구나 영화도 있으니 스토리 소개를 빙자한 등장인물 소개로 독후감의 주요 부분인 ‘작품의 내용’은 이걸로 갈음한다.


 지금부터는 감상.
 작가가 실론, 그러니까 스리랑카 사람이다. 이이가 쓴 전쟁소설. 전쟁소설이랄 수 있지만, 사실은 전쟁 전과 후를 실제 무대로 전쟁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과 후유증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작품이라고 하면 더 좋겠다. 당연히 문학작품답게 여기에 연애담, 징글징글한, 그래서 아름다운 연애 이야기가 감미료로 들어가 더욱 윤기를 주고 있다.
 다시 한 번 언급하니, 작가가 인도 바로 아래의 섬나라 스리랑카 사람. 그는 자신의 분신, 또는 정말 전쟁에 참가했던 이웃 형이나 삼촌으로 폭탄제거 전공의 공병중위의 발언을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봐도 무방하다. 사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이 소설은 평소 별 말도 없고 사교성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시크교도 공병중위가 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다른 이들이 하는 얘기를 모두 듣고 썼다는 걸 알게 되니, 내 의견이 그리 많이는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토론하거나 남을 공박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에 상당히 소극적이다. 형은 백인들의 전쟁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교도소에까지 들어갔지만, 굳이 시끄럽게 나대기 싫어 그냥 신체검사를 받고 유럽행 배에 탑승해버리고 만다. 일정의 훈련을 받고나서도 온갖 백인들 틈새에서 떠들썩하니 섞여 있기가 싫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공병에 지원해, 딱 두 명의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이 된 인물. 주변에 이런 사람들 생각보다 많다.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 개중엔 이 청년처럼 똑똑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냥 어찌어찌하다가 유럽전선에 있게 되고, 어떻게 하다 보니 퇴각하는 독일군이 도시의 온갖 곳에 지뢰와 부비트랩을 설치해놓은 피렌체로 보내지고 거기서 또 지뢰가 한 가득 뿌려진 벌판 가운데 우뚝 선 빌라 산 지롤라모에 남게 된 것.
 그러나 이 청년이 1945년 8월, 전쟁의 막바지에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9월 2일에 있을 미주리 호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할 일밖에 없는 상황에, 단파 수신용 헤드폰을 통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을 알고는, 인간이라면 도저히 낼 수 없는 비명과 함께, 나름대로 사랑했던 해나를 두고 탈영을 감행, 조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국인이든 프랑스인이든, 난 아무런 상관 하지 않아요. 세계에서 피부가 갈색인 사람들에게 폭탄을 투하한다면, 영국인인 거죠. 벨기에의 레오폴드 왕이 있나 싶더니, 이제는 미국에 해리 트루먼이라는 빌어먹을 인간이 있는 거죠. 모두 그런 것을 영국인으로부터 배운 겁니다.’ (중략) 그는 젊은 군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백인 국가에는 그런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영국은 인도 군을, 프랑스는 알제리 군을 소집해 가장 험한 지역에 배치시킨다. 그건 나도 안다. 반면에 미국의 흑인에겐 무기도 지급하지 않고 태평양 전쟁에 필요한 짐꾼 정도의 노동력만 사용하는 하역병荷役兵으로 배치한다. 유럽에선 식민지 군대를 총알받이로 쓰고, 미군은 흑인들에게 총을 주면 그 총으로 백인들을 향해 난사할까봐 이런 코미디가 벌어진 것. 태평양 전쟁은 별개로 하고,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에 아무 관련이 없는 유색인종들을 불러다 희생시켜놓고 대량살상은 절대 백인끼리는 벌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이 책의 변할 수 없는 주제는 전쟁 후에도 이어지는 폭력 또는 후유증임이 확실하지만, 작가가 유독 강조하고 싶어 하는 이 장면에 대해서도 난 꼭 거론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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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브 연락 없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0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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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마디로 말하자면 멘도사다운 작품. 그의 전작 <경이로운 도시>를 보면 1882년과 1929년에 개최한 바르셀로나 엑스포, 그러니까 만국박람회를 배경으로 돈도 빽도 없는 산골 깡촌놈 오노프레가 사기 치는 천부적 재능을 발휘하여 당대 최고의 악당이 되는 과정을 그렸고, <구르브 연락 없다>에선 1992년 올림픽을 앞둔 바르셀로나 각지에서 벌어지는 온갖 모습을 애정 어린 희화를 그렸으니 조금은 비슷하잖아? 작품의 내용은 <경이로운 도시>나 <사볼타 사건의 진실>처럼 조금은 살벌한 범죄소설이 아니다. 놀라지 마시라. 제목에 나온 ‘구르브’란 이름의 생명체는 외계인이다.
 안타레스 성좌의 한 별에서 탐사 목적으로 지구 바르셀로나 외곽지역에 떨어진 ‘나’와 구르브. 구르브는 상부의 지시대로 지구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 베야테라 자치 대학의 전임교수인 ‘유크 푸익 이 로익’이란 남자를 만났으나 직업이 교수일 뿐, ‘나’의 분석에 의하면 인성 지수가 낮은 편이란다. 어쨌든 신장 170cm, 두개골 크기 57cm, 눈 두 개, 꼬리 길이는 0.00cm(꼬리 없음)의 암컷 지구인으로 모습을 바꾼 구르브는 수컷 지구인을 만나, 구조는 참 간단하지만 조작이 매우 불편한 기계(자동차) 포드 피에스타를 타고 간 다음에 그만 연락이 없는 거다. 그래서 제목이, ‘구르브 연락 없다’가 되는 것.
 ‘나’는 기계에 관해 거의 무식해서 조금 이상이 있는 우주선에 계속 머물 수 없다. 그리하여 우주선을 건물 비슷하게 모습을 바꿔 방치해놓고 바르셀로나 시내로 들어가기에 이른다. 당연히 구르부를 찾기 위해. 그냥 도시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으면 언젠가는 찾게 되겠지만 어느 세월에. 어느 세월? 뭐 사실은 순간이다. 구르부와 ‘나’는 모성母星에서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800년을 우주선에서 함께 살았고, 지구를 떠나 문명을 가진 생명체가 있는 다음 목적지인 켄타우로스 자리의 한 위성 BWR143으로 가기 위해 또다시 784년 동안 비행해야 하니, 그냥 대도시인 바르셀로나에서 한 자리에 앉아 구르브가 자기 앞을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라야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 근데, 그렇게 한 자리에 앉아 죽치고 있으면 그게 소설이 되겠어?
 그리하여 나는 지구인들 사이에 섞여 이들과 어울리면서 인간의 언어를 순식간에 기호로 바꿔 그걸 제대로 인식하고, 자신도 인간의 언어를 쓰며 행위와 행위가 의미하는 것을 빠르게 습득한다. 그러면 뭐가 제일 필요할까? 당연하지! 예, 맞습니다. 돈. 인류의 유일한 친구, 돈. 눈치를 챈 ‘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로마 가톨릭 교황이었던 피오 12세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고 은행에 들어가 25페세타의 잔돈으로 예금 계좌를 개설한 다음, 그날 업무 마감 일 초 전에 초절 과학의 힘으로 자신의 예금 25페세타에 ‘0’을 열네 개 붙여버린다. 얼마냐고? 나도 이렇게 큰 숫자는 천 단위로 콤마를 붙여봐야 안다. 한 번 해보지 뭐. Pts2,500,000,000,000,000, 즉 2,500조 페세타. 가장 최근의 환율인 2002년 환율로 적용하면 15조 유로. 한 번 더 강조하면, “현금” 15조 유로.
 이 소설 속에 바르셀로나 각 지역에 대한 소소한 설명과, 과거의 예술인, 종교인, 학자, 작가, 장군, 프랑코 개자식은 빼고, 하다못해 소매치기까지 등장시켜 올림픽을 앞에 둔 바르셀로나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도시에 대한 멘도사의 애정을 과시한 측면만 온통 말들을 하는데, 기껏해야 딜레탕트인 내 의견으로 말하자면 이건 정말 잘 쓴 무협소설, 무협지다. 여기서 말한 ‘무협’의 협객은 당연히 외계인. 그중에서도 제목에 나오는 구르브가 아니라 화자인 ‘나’. 이 외계 생명체 ‘나’는 지구별에 떨어져 제대로 적응하기도 전에 여기서 얻어터지고, 저기서 걷어차이는 것도 모자라, 술, 즉 알콜의 위력을 제대로 알지 못해 인간종이 주는 대로 벌컥벌컥 들이키는 바람에 아주 죽을 똥을 싸고, 근육 빵빵한 건달한테 자신이 가라데 유단자라고 구라를 쳤다가 뼈가 함몰될 정도로 두드려 맞기도 한다. 심지어 처음 외출 때엔 큰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한 번 보시라.

 

 08:00 나는 디아고날 대로와 파세오 데 그라시아 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본래의 나로 변신한다. 실수다. 나는 곧바로 바르셀로네타와 발 데브론 사이를 운행하는 17번 노선버스에 치이고, 그 충격으로 내 몸에서 머리가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이어지는 차량 행렬 때문에 도로에 나뒹구는 머리를 수습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08:01 나는 노선버스에 이어 오펠 코르사에 치인다.

 

 08:02 오펠 코르사에 이어 배달용 승합차에 치인다.

 

 08:03 배달용 승합차에 이어 택시에 치인다.

 

 08:04 나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분수대에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씻는다. 덕분에 분수대의 물을 분석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주요 성분은 수소와 산소, 나머지 대부분은 똥이다.


 아침 여덟 시에 벌어진 노선버스와의 충돌에 의해 머리통이 떨어져나갈 때까진 으 끔찍해, 이런 반응을 예상할 수 있지만 여덟 시 일 분, 이 분, 삼 분에 이르면 어째 조금 비극의 장면에 웃음기가 돌기 시작하고 사 분에 이르면 드디어 유쾌한 무협소설의 시작을 알게 된다. 무협 소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무공을 연마하는 초절정 신공인데, 이 책의 주인공 ‘나’는 현대 문명의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과학이기도 하고, 그걸 이용해 자기 통장에 현금으로 보유하게 된 2,500조 페세타의 돈일 수도 있고, 모습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변신술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건건 무식하고 몽매한 지구인한테 얻어터지기만 하는 외계인. 그를 보면서 불쌍하다는 생각보다 어째 좀 피식거리는 웃음이 먼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가볍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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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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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독신녀와 유부남의 불륜. 파리에 거주하는 작가와 외국인 남자. 소설의 사실상 첫 문장은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로 시작한다. 1940년생인 아니 에르노가 1991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이 책에서의 상대 불륜남 A는 1990년에 발표한 <탐닉>이란 작품의 S와 동일인이라고 하며, 둘의 사이에 활활 사랑의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한 시기가 1988년이란다. 1988년이면 에르노의 나이 만 48세. 아이들도 웬만큼 커서 이젠 그리 유쾌하지는 않지만 엄마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 A가 아르노의 집에 오기로 한 날엔 아이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엄마에게 들르는 것을 자제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단다.
 그건 그렇고, 만 48세의 완숙한 여인. 성적인 측면에서의 몸도 그렇지만 사회적으로도 남자나 여자나 인생의 황금기다. 이젠 자신의 감정을 나름대로 추스를 줄도 아는 나이라고 오해하기 시작하고, 가끔은 흉내까지 내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감정은 추슬러지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끔찍하게 이해하게 되는 나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육체적 고통 말고, 오장육부를 쥐어짜듯 한 인간을 갈증에 타게 하고 일상의 질서를 무참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이의 연락을 기다리는 일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불행하고, 기다림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욱 불행하다. 20대 초중반에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생각해왔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다림의 고통 같은 감정은 점차 희박해지는 또는 희석되는 것이라 여기고 여태 살아왔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책 속 주인공 ‘나’의 인생은 온통 A로 채워져 있다. TV 드라마도, 생전 처음 본 유선방송에서의 포르노 프로도, 지나가는 여자가 입은 원피스의 모습과 속옷도, PER(파리와 외곽을 잇는 고속 전철) 역의 거지에게 던져주는 동전도(오늘 A에게 전화가 온다면 맹세컨대 처음 마주치는 거지에게 10프랑을 주겠어!), 소파 위에 함부로 던져놓은 브래지어도, 지나가는 생면부지 남자의 얼굴 한 부분에서도 그녀를 지배하는 건 오직 하나, A가 아니라, A를 기다리고 그와의 정열을 불사를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하는 바람이며, 최초의 시도로 전화벨이 울리느냐 마느냐, 울리면 과연 언제 울릴 것인가, 하는 일. 그게 청년이 아니라 완숙한 시기의 중년에게도 유효한 것인지 나는 정말로 몰랐다. 어쩌면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비슷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아예 제거해버렸던 것인지도.
 우스개로 인생에서 가장 꼴불견인 것이 40대 후반, 50대 이후에 “나는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찾았네” 어쩌네 하고 꼴값을 떠는 일이라 말해왔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중년, 노년의 사랑은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이순재와 윤소정이나 하는 것으로 알았지 실제로도 그런지, 궁금하지도 않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이제 와서”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지만, 적어도 만일 내 주위에 그런 커플들이 생기면 이해는 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불행을 선택하겠다. 내 속의 고목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는 불행을, 또다시 누구를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애가 타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상대방으로 착각하는 환시와, 끊임없이 머릿속에 부유하는 환상과, 몸에 대한 그리움 같은 건, 이제 정말로 포기하는 불행을, 그 불행을 선택하는 것을 조금쯤 이해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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