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조차도 민음사 모던 클래식 56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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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맥그리거. 전에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을 재미있게 읽고 다른 작품을 검색해보았다. <너무나 많은 시작>과 <개들조차도> 두 권이 있었지만 둘 다 “절판”. 품절도 아니고 판을 끊어버린 상태. 전에 <기적을....>은 내가 구입하자마자 곧바로 “품절” 딱지가 붙어 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암만해도 민음사가 “모던 클래식” 시리즈는 그만 두기로 작정을 한 거 같다. (작년에 노벨문학상 받아먹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들만 빼고. 이시구로의 책은 돈이 되잖여? 그래서 좋잖여?) 그래 맥그리거의 다른 책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운이 닿아 알라딘 중고책방에 하나 있는 거, 건져 읽었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에 좋은 책들 많은데 왜 절판이 많을까? 나, 전부터 민음사 되게 좋아했다. <사람의 아들> <달궁> <김수영 전집> <숲속의 방> 시절부터. 근데 2010년대 들어와 애정 접었다. 책의 기본인 교정, 교열도 개판.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책이 아무리 좋아도 팔리지 않으면 곧바로 절판. 실험적 소설의 모험출판도 전무. 제발 출판사 이름이나 좀 바꿨으면 좋겠다. 민음(民音)은 너무 크다.
 흠. 괜히 열 올리지 말자. 나만 손해다.
 <개들조차도>. 좀 난감. 첫 문장부터 강력 내공이 솟구쳐 오름.


 “12월 말에 그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시체를 밖으로 옮겼다.

 공기는 악랄하게 차갑고, 새파란 하늘이 냉혹히 꿰뚫어 보며, 얼어붙은 태양 아래 나무들은 백골빛으로 바래 있다. 우리는 잠긴 문 옆에 모여 있다.”


 죽은 시체. 이름이 로버트. 전처 이본과의 사이에 딸 로라가 있다. 로버트는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죽은 상태를 유지하고, 소설은 130쪽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인물들, 즉 로버트의 친구인 마이크, 헤더, 대니, 벤, 스티브, 앤트와 딸 로라, 이렇게 일곱 명의 뽕쟁이, 약쟁이들의 시선으로 만들어진다. 정체불명의 화자. 로라를 제외한 여섯 명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고, 작가는 아닌 누군가의 시점일 수도 있다. 왜 작가의 시점이 아니냐하면, 문장이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다. 10쪽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일러두기라고 있는데 이렇다.
 “어법에 맞지 않거나 불완전한 문장 사용, 문장부호의 생략 등은 원전을 따른 것이다.”
 글을 써서 밥 먹고 사는 작가의 시점이라면 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어법에 맞지 않을 수도 없고, 주구장창 불완전한 문장을 험악한 욕설과 함께 섞어 쓸 수도 없고, 문장부호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웠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 의견을 굳이 말하자면 작품의 시점은 죽은 로버트의 여섯 친구들 공통의 시점으로 씌어졌다. 이런 불완전한 원문을 효과적이고 심지어 음악적으로 읽히게, 그것도 뜻이 거의 완벽하게 절단될 수 있도록 번역한 역자의 노고에 어찌 찬사 한 마디가 없어야 되겠는가.
 1960년대 아주 초반 태생의 영국 남자들. 세상은 전에 없이 태평성세에 곳곳에서 함포고복이 드높을 줄 알았었다. 그러나 영국 젊은이들은 그들의 사납고 욕심 많은 조국에 의하여 세상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해야 했던 모양이다.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을 필두로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은 세상 구석구석, 평소엔 그런 곳이 있었는지 관심도 없었던 곳에 떨어져 다리가 잘리고, 파편에 맞아 뇌 속에 50 펜스짜리 동전만 한 금속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야 하고, 떠들썩하고 약간은 난폭한 젊음을 소비하다가 간혹 로버트 같은 이들은 결혼이란 걸 해서 딸도 낳고, 그러나 새로이 발견한 행복의 평원,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은 산산이 해체되고, 나머지 젊은 청춘들은 심심풀이로 시작해 이젠 구제할 수 없는 마약 중독자의 길로 접어들어 자신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이 나약하고 불행한 영국시민들의 삶과 죽음을, 바로 그들의 시선으로 적어 놓았다.
 약물 중독자들의 글을 빌었기 때문에 문장은 완전히 끝나지 못하고 중간에서 뚝 끊어지고, 상스런 욕설들이 즐비하다. 그러면서 약물을 좇는, 좇아야 하는 이들의 간절함, 동시에 이젠 더 이상 중독 상태를 계속할 수 없다는 자각과 숱한 결심과 금단현상 등, 21세기 진짜 루저들의 모습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죽은 지 약 7일 만에 발견된 로버트의 시체. 당국은 그의 시신을 완강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캐비닛에 보관하다가, 친지(딸 로라)를 발견할 수 없어 친구 몇 명이 보는 가운데 해부를 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원인을 밝힌 다음, 다시 봉합해 장례를 치루는 과정까지를 그리고 있다.
 알콜 의존 정도의 마지막 단계를 넘어선 남편 로버트에 질려 어린 딸 로라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린 이본. 이본과 로라가 다시 자기에게 돌아올 가망이 없다는 걸 확인 또는 확신한 로버트. 자신에게 남은 가장 확실하고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었던 이본과 로라의 부재를 영원한 상실로 단정하고 이제 스스로 사형을 선고한 그는 하루에 약 3~5 리터의 사과술을 자신의 몸에 투입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한 가족의 구성원이 아닌 로버트의 주위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모여들었고, 스스럼없이 자신들의 혈관을 찾아 주사바늘을 꼽았으며, 더 이상 바늘을 찌를 혈관이 남지 않은 앙상한 팔과 다리만 남은 친구들의 목 혈관에 조심스레 헤로인, 코카인, 필로폰을 투입해준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조금만 다른 곳에 찔렀다간 그길로 그냥 진짜 천국으로 가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한 실패한 인간이 죽음에 이르고, 시취를 느낀 이웃의 신고로 경찰에 의하여 시신을 발견하고, 상세한 부검과정이 나오고, 장례에 이르기까지 사나운 장면들이 등장한다. 거기다가 마약 중독자들의 비루하기 이를 데 없는 행위들까지 읽어야 하는 독자의 심정이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 사는 이야기. 이런 것도 예상외로 가슴이 아릴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전쟁과 전쟁에서의 부상, 그 후에 갑자기 등장하는 여전한 젊음과 젊음의 멀미 같은 것 때문에 모든 영국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오는 것과 같은 소수 실패자들의 삶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 역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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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38
율리 체 지음, 이재금.이준서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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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장 최근에 물리학 과목을 수강한 것이 무려 38년 전이다. 제목 속에 든 “평행 우주”라는 개념도, 책 속에 나오는 “끈 이론” 같은 것도 당시엔 그런 것이 있는지 꿈도 꾸지 못했다. 이 책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은 현대 물리학의 기초적 지식이 있는 사람은 더욱 재미나게 읽을 것 같다. 숫자 1 뒤에 스물여섯 개의 0을 붙인 숫자만큼의 은하계가 있어야 또 다른 인간 수준의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 존재한다는데, 말이 ‘스물여섯 개의 0’이지 하이고. 아인슈타인 이후의 물리학은 글쎄, 정말 인간 생활에 필요한 건지 아니면 물리학자들이 자신의 천재성을 겨루는 것에만 기능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마치 현대 수학이 몇몇 수학자들의 두뇌 경연대회로 전락 또는 (구름 위 궁전으로)승격한 것처럼.
 왜 이렇게 초장부터 초를 치느냐 하면, 작품의 주인공은 책을 열고 이야기가 40%쯤 지나야 등장하는 ‘실프Schilf’라는 50대 초반의 뇌질환을 앓고 있는 늙다리 형사이지만, 실프와, 실프의 경찰학교 제자이자 커다란 손과 거대한 유방을 가진 독신녀 ‘리타 스쿠라’에게 일거리를 제공하는 인물이 제바스티안과 오스카라는 물리학자다. 오스카는 태생부터 천재였음을 스스로도 알고 주위에서도 다 인생해준 인물로, 살면서 자신과 어깨를 그나마 맞댈 수 있는, 물론 자신을 능가하기엔 역불급이긴 하지만 그나마 인간 같은 인간으로 대학 동창 제바스티안 딱 한 명만 인정하는 특출한 인간이다. 190cm가 넘는 장신에 댄디한 외모, 잘 가꾼 화법과 어딜 봐도 조금 거만하다는 느낌을 주는 오스카는 현재 제네바에 살고, 이론물리학에 전념하여 세상의 본질을 단번에 밝힐 야망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독신. 제바스티안은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최연소 교수로 임용을 하고 평생교수직을 얻은 물리학자. 아름다운 아내 마이케는 현대미술을 취급하는 화랑의 대표로, 마이케와의 사이에 똑 부러지는 아들 리암과 여유 있고 폼 나게 인생을 즐기고 있다. 제바스티안의 주요 연구 분야가 바로 평행우주. 아인슈타인이 이미 증명한 바 있는 시간의 가변성을 n번 변주하여 참 형이상학적 물리학을 만들어낸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평행우주 이론이다. 책에 평행우주에 관한 내용이 잔뜩 쓰여 있어서 이해는 할 수 있으나, 유클리드 물리학 말고는 아는 게 거의 없는 내가 평행우주가 뭔지 간략하게 설명할 수 없는 심정, 이해하시지?
 프라이부르크의 대형 병원에서 심장수술 도중 혈액의 흐름에 관한 약을 잘못 사용하여 네 명의 환자가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다. 이는 개발 중인 약을 환자에게 생체실험을 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던 차에, 수술에 간여한 마취 담당 의사 과장 ‘다벨링’이 살해당한다. 어떻게 죽었는지 밝히지 못하는 심정. 왜냐하면 살인이 벌어지기 전에 살인의 방식이 ‘옆으로 누워있는 선’ 즉 복선伏線으로 깔려 있어서, 차마 그걸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여튼 참혹한 살인사건과 연이은 수술 중 사망사고가 겹쳐 제약회사, 병원 관계자, 집도의사, 사망자 가족 등이 일단 용의자 선상에 올라갈 수밖에 없으나 도대체 단서가 잡히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워낙 파장이 큰 사건을 담당한 리타 스쿠라 경장이 아무리 방방 떠도 갈피를 잡지 못하자 프라이부르크 시장은 주도州都 스튜트가르트 경찰청에 SOS를 치기에 이르렀고, 도지사(겠어 설마? 도 경찰청장 정도겠지)가 실프 경위를 파견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천재적인 두 명의 현대 물리학자와 한 명의 천재적 두뇌를 보유한 형사, 그로부터 교육을 받은 적극적인 행동파 여형사, 이렇게 네 명이 참혹하게 살해된 시체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의 틈바구니에서 본격적인 두뇌싸움이 벌어지는데, 문제는 형사 실프. 이이는 사건의 해결과 가해자에 대한 처벌로 얼른 종결시켜버리자는 가슴 큰 제자 리타 스쿠라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근본 원인까지 치밀하게 파헤치는데, 이 과정에서 난데없이 현대 물리학 이론이 마구 쏟아진다. 다 좋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추리소설다운 좀 더 드라마틱한 결말이 나왔으면, 했다는 거. 작가 율리 체 자신이 똑똑한 건지, UN에 근무하며 작가로 데뷔했고, 이후 독일 법조계에 종사하면서 소설을 쓰는 74년 범띠 극성 여성이 평소 자신 스스로가 관심을 크게 두고 있었던 시간의 확장과 평행이론 등을 소재로 추리 소설을 썼단다. 근데 놀랍게도 바쁜 중에도 체가 발표한 작품의 수가 만만치 않다는 거. 난 이런 사람 보면, 뭐 하러 이리 바쁘게 사는지 별로 이해가 안 가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 받지 않는데 뭐 하러 그리 허겁지겁 사느냐는 거다. 그래도 한 세상이고 나 같아도 한 세상인데 말이야. 난 여유 있게, 평생 안 바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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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마을 이야기 1
제임스 캐넌 지음, 이경아 옮김 / 뿔(웅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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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뿔>. 마지막으로 책을 낸 것이 2012년. 그럼 일단 [뿔>이란 브랜드는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근데 문제는 엘러스데어 그레이의 <라나크>,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 <황금 노트북> 같은 것도 함께 사라져버렸다는 것. 웅진지식하우스라는 브랜드는 왕성한 작업을 하고 있는 바, 이런 것들도 좀 다시 찍어주시라.


 

 위키피디아에서 작가 제임스 캐넌을 검색해보면, 1968년 콜롬비아에서 낳고(구체적 지명은 나오지 않는다) 자라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비리그 가운데 하나인 콜롬비아 대학에서 문예창작 MFA, 석사를 받았다고 한다. 2007년에 <과부마을 이야기 Tales from the Town of Widows>를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 모국어인 스페인 언어가 아니라 영어로 발간했단다. 그러니 이 책을 러시아 문학 전공자 이경아가 번역했다는 걸 나처럼 의아해하지 않기 마시기 바람. 난 노문학자가 서문학 책을 번역한 걸로 단단히 착각하고 틀림없이 영어본의 중역 아니겠는가 짐작했었다.
 굳이 <과부마을 이야기>를 위키피디어까지 뒤져 검색해본 이유는, 책 뒤표지에 쓰인 찬사가 너무 과하다싶어서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콜롬비아 작가가 바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이의 대표적 작품이 <백년의 고독>. 솔직하게 말하자면, <백년....>은 읽어본지 마치 백년은 된 거처럼 하도 오래 전이라 지금은 그냥 책에 대한 감정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여보 의사양반. 내 가슴에 심장이 어디 있는지 점 좀 찍어줘, 그러시지 않겠습니까요, 그래서 쇤네가 심장의 위치에서 1cm 옆에다 점을 찍어드렸습죠. 그랬더니 아니나 달라, 대령께서 거기다가 권총을 쏴버렸지 뭡니까요, 하는 장면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반군들과 마르케스 특유의 환상적 리얼리즘, 내가 일컫기를 “아몰랑 주의” 작품의 특징을 흔히들 이야기하는 바, 그게 벌써 언제 적 환상적 리얼리즘이냐고. <백년...>이 1967년 아닌가 말이다. 1960년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 소설문학에서 무수하게 쏟아진 아몰랑 주의 작품 또는 아몰랑 형식을 무려 40년이 지난 2007년에 다시 또 써먹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닌 거 같다.
 1992년 11월, 심심산골의 외딴 마을 마르키타에서 사건은 벌어진다. 공산주의 반군이 마을에 쳐들어와 늘 하던 대로, 그게 다 산골마을의 불쌍한 인민들을 위해 투쟁하려고 하는 충정어린 행위인 것뿐인데, 투쟁도 뭘 먹어야 하니 산골마을 인민들이 먹을 걸 싹 공출해가고, 투쟁도 리비도가 너무 쌓이면 도무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라서 동네 아무 여자나 그냥 겁탈해버린다. 여기까진 늘 해오던 식이니 뭐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나 그날은 글쎄 거기다가 하나를 더 보태, 열세 살이 넘은 남자들까지 몽땅 혁명군으로 공출을 해버린 것. 당연히 게릴라 대원이 안 될 방법도 있긴 있다. 그들이 쏜 총알을 피하는 재주만 있으면. 그리하여 적지 않은 남자들이 총 맞아 죽고, 죽은 사람보다 월등히 많은 사내들은 울며불며 게릴라 대원의 임명장을 받아들었으며, 딱 한 명, 마을의 초등학교 교사 ‘앙헬 타마카’만이 공산주의 혁명의 완수를 위해 자진해서 게릴라 부대에 지원한다. 그리하여 마리키타에선 모랄레스 여사의 기지로 여자 옷을 입어 징집을 피할 수 있었던 십삼 세 훌리오 모랄레스를 포함한 어린 소년 네 명과 로마 가톨릭 신부 라파엘, 이렇게 다섯 명의 남자, 나머지는 전부 여자, 합해서 99명의 주민만 남아 외딴 산골에서 스스로의 삶을 살게 된다. 아, 두 명 더. 어느 깊은 밤, 혼자 떨어져 동네로 들어와 후임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되는 세뇨리타 클레오틸테, 비극의 밤에 근동의 커피농장에서 일을 하던 청년 산티아고. 클레오틸테는 과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당시 반정부군에 의하여 능욕을 당했던 적이 있어 극도로 남성을 혐오하는 자칭 숫처녀. 산티아고는 전형적인 동성애자로 여성의 역할을 하는 소위 바텀 전문. 여성의 리비도와 인류의 영속을 위한 측면에선 전혀 필요 없는 남성.
 여자들만 남아 있는 마을. 시기는 비록 20세기 말이었으나 콜롬비아 산골이라는 지역적 구속은 여성들로 하여금 어떠한 일도 스스로 결정해서 행동으로 쉽게 만들어가지 못했다. 비록 여러 가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줄 아는 비교적 현명한 여성 로살바 파티뇨가 남자가 없는 와중에 피해조사 차 방문한 공무원으로부터 치안판사로 임명을 받았다고 해도 말이다. 마을은 길거리마다 각종 쓰레기와 집 없는 개와 고양이로 넘쳐나고, 당연히 냄새가 코를 찌르는 불결한 환경에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인플루엔자의 습격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지긋지긋한 게릴라 부대의 공포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떠나버려, 더욱 황폐해져버린 상태.
 작가는 애초부터 로마 가톨릭하고 맺힌 것이 좀 많았던 모양이다. G.K. 체스터턴이 주인공으로 내세운 브라운 신부는 못생기고 머리 벗겨지고 배도 나와 겉으로 보기엔 참 인상 좋지 않은 인물을 엔간해선 악당으로 지목하지 않는 반면, 이 책의 작가 제임스 캐넌은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오고, 못생기기까지 한 라파엘 신부를 좌익과 우익 게릴라들보다 더 흉악한 악당으로 만들어버렸다.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종교, 종교라고 해야 콜롬비아에선 로마 가톨릭 말고는 없었으니 당연히 가톨릭이지만 하여간 종교를 배척하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너무 했음. 사제와 예수와, 하느님과, 천국과 지옥을 빙자한 이리 상태가 너무 적나라하다. 그렇게까지 했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데, 뭘 가지고 그러는지 궁금하시지?
 기어이 여자들만 남아 16년 동안 거의 완벽하게 외부와 격리된 생활을 하는 마을. 그들은 자연스럽게 공동체 사회를 만들고 자연과 비슷하게 변모할 수밖에 없는데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이게 책을 읽는 핵심인데 그걸 알려드릴 수는 없지. 책은 재미있어서 술술 읽히기는 한다. 또 잘 쓴 아롤랑 기법을 쓴 소설들이 그렇듯이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그건 지금이 1960년대가 아니라 21세기라서 그렇게 읽힐 수도 있는 것. 근데 나도 참 무식했던 것이, 콜롬비아의 내전은 20세기에 끝난 걸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 세상에 어렵게 사는 사람들한테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장르의 작품을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칭하는 독자들과 평론가들이 있을까? 난 솔직히 모르겠다. 정말 <과부들....>을 리얼리즘 문학으로 줄을 그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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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의 죽음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1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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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피디아를 보면 ‘막스 갈로’라는 사람은 어려서 이태리에서 이민 온 사람이라고 한다. 이태리 이민자가 프랑스에서 막강한 유명세를 탄 사람을 나는 한 명 더 안다. 이브 몽탕. 불세출의 선배 가수 에디트 피아프가 힘껏 밀어줘 유명세를 타고 스타가 된 다음에 입 싹 닦음.  몽탕은 나중에 정계에 입문하려다가 했나? 못 했나?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반면에 막스 갈로는 이태리 출신 프랑스 인으로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 바로 아래 차관도 하고, 하여간 프랑스의 대표 지성으로 추앙받다 어? 바로 작년 2017년에 죽었단다. 원래는 공산주의자였다가 좀 온화한 사회주의자로 변신한 (남자의 변신도 무죄!) 사학자이자 소설가, 작가, 언론인, 정치가 등 이력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세계적 인물을 대상으로 소설을 쓴 이 양반의 작품으로 다섯 권짜리 <나폴레옹>도 있고, 프랑스 사회주의자 <장 조레스>도 있고,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도 있으며(이건 꼭 읽어봐야겠다), 내가 주시하고 있는 로마의 주요 인물 다섯 명에 관한 소설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시리즈도 있다. 번역물로 나온 역사책으론 <프랑스 대혁명> 정도.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시리즈의 첫 번째 인물이 스파르타쿠스. 원래 책의 제목도 그냥 <스파르타쿠스>인데 번역을 거치면서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으로 꼬랑지가 붙었다. 작가 자신이 프랑스 사학계의 대표선수였던지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필요 이상으로 영웅시되었던 한 인간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 EBS든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든가에서 스파르타쿠스 전쟁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방송해준 기억이 나는데, 이태리 중남부에서 시작해 시칠리아와 실금 같은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둔 레기움에 이르기까지 검투사 출신의 노예가 이끄는 반란군의 장정과 전술에 관해 참 재미있게 봤다. 책을 읽으니 당시 TV에서 본 반란군의 행적이 새삼스레 기억나는 거다. 아니면 기억은 무슨 개뿔 같은 기억, 그냥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마치 전에 TV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을 수도 있었겠지. 하여간 그랬다.
 물론 이 책은 최고의 사학자 겸 소설가가 쓴 ‘픽션’이라서 등장인물 전원이 실제 당시를 살고, 투쟁하고, 피살을 당하든지 남아서 동료들의 행적을 기술하든지 했던 것은 아니다. 갈로가 생각하기로는, 로마는 스파르타쿠스와 노예들의 반란에 관한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기를 바란 것 같다. 아니면 반란을 일으키긴 일으켰지만 그들이 얻은 건 잔인한 보복과 죽음뿐이었다는 단편적 사실 정도를 당대의 로마 시민이나 노예들이 알기 바랐을 거라고, 실제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한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입을 통해 얘기하고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잔인하기로 이에 비교할 수 없다고 책에서 강조하는 장군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아마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에도 나오는, 영웅 수준의 전략가일 걸? 시선을 스파르타쿠스, 노예 신분에서 스스로 해방을 시켜 자유를 위한 투쟁을 벌인 자들의 입장에서 서술했기 때문에 실제보다는 과하게 잔인한 인물로 묘사했을 수도 있겠다. 왜 이렇게 생각하느냐 하면, 그래도 영웅이라 후세의 역사가가 칭할 정도라면, 물론 책의 주인공 스파르타쿠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수많은 병사들을 한꺼번에 장악하는 매력을 동반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을 읽고,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에 대해 경악을 했다. 흔히들 이야기하기를, 역사는 승자들의 것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역사는 기록한 자들의 것이다. 또 얘기하는 바,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모두 아홉 번을 싸워 그 가운데 딱 세 번만 페르시아가 졌다. 근데 그리스에선 헤로도토스라는 특출한 역사가 또는 기록자가 있어서 그걸 <역사>라 제목을 붙여 그리스가 이긴 딱 세 번의 전쟁만 기술해놓았다. 결론은, 역사는 이긴 자가 아니라 기록한 자의 것이고, 기록을 유실하지 않고 보관해 성공적으로 후세에 전한 자들의 것이라는 진실. 중요한 건, 누군가가 끝까지 살아남아 투쟁의 전 과정을 기록하는 것. 이 책에서도 막스 갈로는 스파르타쿠스의 입을 통해 선언한다. “기록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 법이야.”
 나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 매력을 느끼는 만큼 막강한 통일 진秦나라 군대의 말단 하사관 계급 진섭陳涉의 반란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 또 우리나라 역사에서 진정한 영웅은 스스로 밭을 갈고 똥지게를 날라야 했던 왜소한 체구의 잔반殘班 전봉준이라고 여긴다. 예속과 핍박과 노예상태 또는 노예상태에 준하는 착취에서 스스로 백성들을 규합하고 체제를 전복시키려했던 인물들. 이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반란에 성공하여 권력을 탈취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겉으로는 몰라도 진심으로는 해보지 못했으면서도 거세게 저항했다는 점. 이들이 진정한 혁명가 아니었겠는가.
 책은 생각만큼은 재미있지 않았다. 그건 정말로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해온 스파르타쿠스의 격랑과 폭풍과 투쟁은,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삼국지연의에서 단칼에 목이 떨어지고 일마단기로 적진을 휩쓰는 무협지, 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긴박감 넘치게 보아온 드라마틱한 장면으로만 포장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스 갈로라는 사학자는 결코 그렇게 쓰지 않았으며 그리 쓸 수도 없었겠지. 주어진 사료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보다 객관적인 한 노예출신의 영웅의 삶을 자신의 역사관에 맞게 서술해나갔겠지. 언제나 진짜 인간의 삶은 드라마나 영화, 무협지보다는 덜 드라마틱하니까 당연히 생각보다는 재미가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몇 달 후, 갈로의 두 번째 로마 인물 소설 <네로의 비밀>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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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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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그느넬 가 7번지, 부르주아 계급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진짜로 머리 좋은, 거의 천재 수준의 여자 두 명이 우연하게도 한 지붕을 이고 산다. 이 여자들에 대한 묘사를 한 번 옮겨보자.


 내 이름은 르네. 쉰네 살. 이 건물의 수위 아줌마다. 나는 과부고, 못생겼고, 오동통하고, 발에는 못이 박여 있고, 나를 혐오하는 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아침엔 가끔 입에서 매머드 냄새가 풍긴다고 한다. 학교는 가보지도 못했고, 항상 가난했고, 말이 없었고, 남의 관심을 끌지도 못했다.


 나는 열두 살이고, 우리 부모는 부자이고, 우리 가족은 부유하고, 언니와 나는 당연히 잠정적으로 부자다. 아빠는 예전에 장관을 거친 국회의원이고, 결국 국회의장이 되어 국회의장 공관이 라세 관館의 포도주 저장고를 비우게 될 것이다. 엄마는 결코 석학은 아니지만 많이 배웠다. 엄마는 문학박사다. (얘 이름? ‘팔로마 조스’다.)


 먼저 르네. 지독하게 가난한 산골마을 출신. 가난한 여자에겐 과하게 아름답게 생긴 것 못지않게 과하게 똑똑한 것도 큰, 크나큰 결점이었다(과거시제다. 오해 없기를). 20세기 중반까지도 너무 가난해서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여자에겐 과하게 아름다운 것도, 과하게 똑똑한 것도 오직 불행만을 예고할 뿐이었다. 이건 동서가 마찬가지다. 다행스럽게 르네는 아름다운 외모를 갖지 않았다. 열세 살에 끝나고 만 학교생활에서 르네는 알파벳의 무한 조합과 멋진 소리가 주는 아름다움을 단박에 알아채, 처음엔 몰래, 그 후엔 독서가 줄 즐거움과 이익을 마음속에 숨긴 채 만끽하는 한편, 독서가 줄 즐거움과 이익에 언제나 배고파하는 소녀였다. 자신이 또래들과 비교해 월등하게 우월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숨겨야 한다는 지혜까지 습득한 애늙은이였던 거다. 그러나 일찌감치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일도 하고, 부모 형제들과 함께 밭에서 일을 하다가 열일곱에 결혼을 했다.
 이미 열다섯에 휜 등, 굵은 허리, 짧은 다리, 팔자걸음, 수북한 털, 탁한 인상 등으로 쉰 살처럼 보인 르네 앞에 뤼시앵이 나타나 너무나도 20세기답게 청혼을 한다.
 “르네, 난 음탕한 여자가 될 뛰어난 여자들이나 예쁜 얼굴 뒤에 참새 뇌 이상의 것은 없는 여자 중의 하나가 내 처가 되길 원치 않아. 난 정조를 지키는 여자,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주부를 원해. 난 내 옆에 있어주고, 나를 지지해주는 조용하고 신실한 동반자를 원해. 반대로 넌 내게 성실히 일하고, 집에서는 조용하고, 좋은 순간에는 부드러운 사람을 바라도 돼. 난 나쁜 놈도 아니고, 최선을 다할 거야.”
 이처럼 느릅나무 그루터기처럼 조그맣고 투박하지만 그래도 늘 미소를 띤 보기 좋은 얼굴을 한, 비록 교양은 없지만 모든 것에 재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예절을 갖춘 동반자, 그리고 지식인은 아니나 그보다 덜 영리하지도 않은 뤼시앵 미셸과 혼인을 하고, 27년 전부터 아파트 수위로 있다가 15년 전에 암으로 뤼시앵을 떠나보낸 뒤 수위실과 지하방에 터를 잡고 홀로 살고 있었다. 원래부터 문자가 만들어놓은 모든 업적을 이해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르네는, 파리에 널려있는 도서관과 미술관, 박물관을 순례하며 매우, 매우 상당한 수준의 철학, 역사, 미술, 음악적 소양을 완전한 독학으로 습득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앞에서 얘기했듯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시골 출신의 여자가 부르주아들만 사는 아파트의 수위로 먹고 살면서, 자신이 그들보다 지적으로 한참 윗길에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 그건 자신에게 오직 불행만을 약속할 뿐이라는 굳센 신념으로 자신을 은폐하고 스스로 폐쇄해버린다.


 앞으로 국회의장이 될 것 같은 아버지를 둔 팔로마 조스는 이제 열두 살. 아무리 공부를 하지 않아도 국어, 수학, 역사 등등 모든 과목에서 일등을 먹는 특별한 존재지만, 자신만큼 똑똑하고 공부에 재능 있고, 다른 사람과 다르고,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뛰어난 존재마저도 역시 삶은 이미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이미 이해해버린 조숙한 아가씨. 아직 사춘기를 맞지도 않았으면서도 세상은 너무 부조리하여, 겨우 열두 살밖에 먹지 않았으면서 세상살이란 마치 어항 속의 빨간 금붕어 같아, 투명한 유리벽에 머리통을 퉁퉁 부딪기만 할 뿐,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넘어갈 수 없다는 데 벌써 “절망”을 했다.
 세상은 언제나 똑같을 것이고, 우둔함은 늘 뭔가를 꿈꾸는 반면, 자신처럼 뛰어난 사람의 성공은 인생을 씁쓸하게 만든다고 확신하는 이 꼬마 아가씨는 그리하여 돌이킬 수도 없고 취소할 수도 없는 결과를 초래할, 한 가지 결심을 하고 만다. 열세 살이 되는 6월 16일에 그르넬 가 7번지 아파트에 불을 질러버리고, 소방대에 전화를 해서 기술적으로 자기네 집만 불태운 다음, 외갓집에 가서 자살을 해버리는 거다. 어떻게 죽을까? 물에 빠져 죽거나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독극물을 삼켜 위와 장의 고통을 유발하거나, 심지어 혀를 빼물고 목을 매다는 건 생각만 해도 정말 바람직하지 못해서, 수년간 정신분석에 매력을 느껴 일 년에 6천유로 씩 지불해가며 얻은 처방전에 의거해 거의 매일 수면제를 복용하는 엄마의 약병에서 역시 수년간 매달 딱 한 정의 수면제를 모아놓기를 한 번도 빼먹지 않아, 수십 알에 이른 수면제를 한 번에 꿀꺽 삼켜 잠자는 듯 죽어버리기로 결정을 했다.


 쉰네 살의 은둔 폐쇄형 천재 수위 아줌마와, 열두 살의 천재 꼬마 아가씨가 서로 이렇게 살고, 불싸지르고, 자살하면 그게 소설이야? 여기에, 책이 어느덧 중간쯤 도달했을 때, 한 명의 문제적 인물이 등장한다. 영상, 음향기기 수입업자였다가 이제 은퇴한 무지 돈 많은 일본인 가쿠로 오즈. 왜 여기서 생뚱맞게 일본 남자, 오즈, 오즈의 마법사가 등장하느냐고? 이 책을 쓴 뮈리엘 바르베리의 일본 선호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대목에서 바르베리의 전작 <맛>을 떠올렸다. 데뷔작이자 히트작인 <맛>에서 바르베리는 수다한 음식들을 열거하고, 각 음식들이 주는 아주 독특한 맛의 향연을 “문자화”하는데 대단한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인 <고슴도치...>에서도 여러 음식에 관한 촌평이 나온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음식이 한 점에 40유로씩 하는 ‘생선회’였다. 물론 이것 말고도 작가는 일본의 특정한 미학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외, 오주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 <무나카타 자매>에 나온다는 이끼 위에 핀 동백꽃, 교토에 있다는 진보라빛 산봉우리들 같은 것들. 왜 굳이 일본의 미학까지 사용하기에 이르렀을까. 바둑을 일본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아버지 친구한테 그건 중국의 것이라고 바락바락 기어오르다 아빠한테 꾸중을 듣는 팔로마의 예를 보면 꼭 바르베리의 일본 취향이라고 할 이유도 없는데. 혹시 외로운 철학자 르네 아줌마가 수십 년 간 지하방과 도서관에서 습득했던 문화적 경지가 유럽 권에만 머물지 않고 동양권역까지, 그러니까 거의 무한대까지 이르렀다는 얘길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사실 일본 문화는 생선회, 영화 <무나카타 자매>, 그리고 소위 망가라는 일본 만화에 국한한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닐 수도 있고.
 톨스토이를 흠모하는 르네가 우연하게 던진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알아들은 일본인 오즈 씨는 그녀를 입주자 전부가 알 수 있게 내놓고 리모델링한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데, 사실 집 안에서는 특별한 일본식이라 내놓을 만한 것은 없다. 오히려 집에 들어서자마자 르네의 눈을 사로잡았던 건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에테르 클로스Pieter Claesz의 모사 정물화.

 

(책에서 오즈 씨의 아파트 벽에 걸린 그림이 이건 아니다. 클로스의 그림 가운데 설명과 가장 비슷한 것으로 골랐다.)


 이 그림이 모사품이라는 것도, 클로스가 그렸다는 것도, 화가가 17세기 네덜란드 사람이란 것도 한 눈에 알아보는 르네. “속을 편안하게 하는 곳은 어딘가요?” 라는 물음 끝에 화장실에 들어가 좁은 방광을 비운 르네는 또, 변기 물을 내리자마자 어디선가 난데없이 터져 나온 포르테 시모의 “Confutatis”.

 

 

 모차르트 미완성 진혼미사곡의 일곱 번째 곡 역시 비록 방광을 비운 뒤 옷도 올리지 못한 채 황망하게, 화들짝 놀란 상태로 들어서 그렇지, 귀에 선율이 닿자마자 곧바로 모차르트가 작곡한 어떤 곡인지 알아내는 지성을 (자신은 그리 숨기려 했건만)과시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거기다가 칸트 부터 에드문트 후설까지 온갖 철학적 소견을 떠르르 꿰는 다방면의 천재상태를 그나마 자연스레 보여줄 수 있게 만드는 '상대 인물'로, 바르베리는 (편견에 사로잡힌)유럽인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가장 먼 곳, 동양의 끝, 일본 아니었을까? 그중에서 난 생선회와 메밀국수 등 미각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에 만 원 건다. 실제로 그르넬 가 7번지 아파트에서 생을 마감하는 한 입주자의 직업이 프랑스 최고 권위의 맛 전문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렇다. 르네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국의 남자가 등장해야 한다는 내 의견에 동의해주기 바란다. 프랑스의 오래 묵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여성” 또는 “가난하지만 영리한 여성”에 대한 편견 없이 접근이 가능한 50대 중반부터 60대 초반까지의 “돈 많은” 남자를 어디서 구해야 할까.


 자, 얘기는 다 했다. 비록 480쪽에 달하는 장편소설이지만 바르베리의 감각적 문장들은 읽는 즐거움을 주기 충분하고, 가끔 숨어있는 간질간질한 장면들도 재미있는데, 420쪽을 넘기면서 적어도 콧잔등이 시큰해지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도 아니라고 여기게 될 만큼, 한 여성이 편견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정 있게 그린 작품이라고 단정해도 무방하리라. 진짜배기는 언제나 마지막에 나온다. 그 진짜배기가 뭐냐고?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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