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식당 창비시선 356
김성대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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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을 고른 이유는 작가 김성대가 ①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았으며, 이어 ②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으로 다른 시인도 아니고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데다가, ③ 창비시선의 356번째 시집이기 때문이었다. 즉, 창비에서 등단해 김수영문학상을 받았고 다시 창비에서 낸 시집. 김수영과 창비의 교집합. 이것이 내게 무슨 뜻이었는가 하면, 적어도 시 하나를 읽기 위해 고단위의 문학적 수련 내지는 ‘내공쌓기’ 관문을 통과할 필요가 없을 것이란 기대를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건 희망사항이었다. 김성대는 자신의 시집에 든 모든 노래들 속에 나 같은 보통의 독자들은 애초부터 해독 불가한 암호 또는 기호들로 가득 채워놓았다. (이리하여 창비 역시 기어이 창비만의 색을 포기한 거디냐?)
 그나마 조금 이해했다고 착각할 수 있었던 시는 <이안류 3> 정도.




 이안류 3
 1999년의 사진


 

 눈 속에서 실핏줄 하나가 끊어진다


 플래시가 터졌을 때 누군가의 눈과 마주쳤다
 불현듯 결빙된 얼음 같은
 눈 속의 종소리


 눈을 돌리지 못한
 아직 쏟아지지 않은 빛이
 섞여 있기 때문일 것인데


 역광이 고이는 내 눈 속의 인화
 유성 속을 떠도는 그늘처럼
 어느 시간을 번지고 있는지

 

  *


 눈 속에서 종소리 하나가 해빙된다
 지금의 내 눈과 마주쳤던 것이다
 사진을 보는 나의 눈을 인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번져올 것 같은 충혈이
 눈을 돌리지 못하고
 같은 눈으로 붉어지는


 나의 나의 운석이 되어가는 것일까
 사진 속의 그늘이 흘러나와

 눈 속에서 실핏줄 하나를 놓친다    (전문)




 누구나 경험해봤을 적목赤目현상. 사진을 찍을 때 주위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잘 나타나는 현상으로 사람의 눈동자가 빨갛게 나오는 것을 말한다. 어두운 곳에선 홍체가 활짝 열려 있는데 갑자기 플래시가 터져 밝은 빛이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빛이 눈알 저 뒤편에 있는 망막의 실핏줄에 반사되어, 눈동자가 빨갛게 현상된 사진, 누구나 한 장 이상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플래시가 터졌을 때 누군가의 눈과 마주쳤다”고 이야기하며 동시에 한 순간, 플래시의 환한 빛이 피사체의 망막에 반사되는 짧은 순간에 “불현듯 결빙된 얼음 같은 / 눈 속의 종소리”를 듣는다. 1999년, 세기말 어느 저녁, 역광에서 플래시를 터뜨려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무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종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시인이다. 안구 속을 울리는 종소리.
 이안류離岸流. 골치 아프게 사전 뒤져볼 것도 없다. 해수욕 시즌만 되면 1년에 한 명쯤 골로 보내는 파도. 파도는 파돈데 바다에서부터가 아니라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거꾸로 쏟아지는 파도. 여기에 휩쓸리면 순식간에 얕은 바다에서 먼 바다 쪽으로 확 휩쓸려버리게 된다. 해마다 한국방송 9시 뉴스에 나오니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여름에도 유심히 들어보시라.
 그러니까 플래시에 반사되어 붉게 보이는 실핏줄들의 반사를 거꾸로 흐르는 파도와 유사하다고 보는 건데, 나는 이의 없다. 또 사실 그리 시 애호가도 아닌 내가 이의가 있건 없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나마 이 시집 <사막 식당> 안에서 내가 이해했다고 오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가 이거 하나 정도. 나머지는 처음에 말했듯 오리무중의 암호와 기호로 도배가 되어 있다. 또는 그런 거 같다. 불행하게도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전히 암호해독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눈사람
 오늘의 눈이 녹는 동안 어제의 눈이 쌓인다. 어제의 메아리에 내려앉은 새들은 날개가 얼었다. 영하의 거울 속에서 초인종이 울렸고 올빼미의 눈을 한 사내가 기다리고 있다. 첫 발자국을 향해 몇광년을 건너온 눈사람의 속도로. 절대영도로 이루어진 고집스런 녹는점으로. 사내는 겨울을 깁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가만히 목격되어 있을 발자국들로 자신의 액자가 되어가는.



 시 <겨울 SF>란 시의 부분이다. 첫 문장부터 예사스럽지 않다. 시제가 바뀌었다. 오늘의 눈이 녹는 동안 어제의 눈이 쌓인단다. 여기에다 갑자기 날개가 언 새들, 그것도 어제의 메아리가 내려앉은 새들이 등장하고, 초인종이 울리고 올빼미 눈을 한 사내가 또 등장한다. 올빼미 눈이 말하는 건 어떤 걸까. 원형의 눈에 눈동자가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거? 근데 뒷문장하고 연결하기가 쉽지 않다. 첫 발자국을 향해 몇 광년을 건너온 눈사람의 속도라니. 누가 왔지? 아니다. 눈이 쌓이는 속도를 얘기하는 거 같다. ‘몇 광년을 걸어온 눈사람의 속도’로 어제의 눈이 쌓인다는데, 또 절대영도 그러니까 영하 273도로 이루어진 녹는 점. 고체가 액체로 변하는 온도. 그게 영하 273도. 유클리드 물리학 상 모든 존재가 무無로 사라지는 온도다. 그러니 나 같은 보통의 독자들은 김성대의 시들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배워먹은 것이 없다. 저 구름 위에 노니는 이런 시인들의 뜻을 어찌 뱁새가 알랴.
 심지어 해설 <눈사람의 탄생>을 쓴 장은석조차, “시인은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상황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우선 특정한 감각적 체험을 공유할 수 없는 나머지들이 천천히 섞이도록 놓아둔다. 그런 다음에 일치 불가능한 사태로부터 다른 잠재적 힘이 도래하도록 계속 자세를 바꾸며 그들을 북돋운다.”(139쪽)라고 했다. 물론 시집 뒤편에 달려 있는 해설은 당연히 주례사다. 평론가인 장은석조차, 시인은 독자가 “공감할 수 없는 상황에” 집중하고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특정한 감각적 체험을 공유할 수 없는” “일치 불가능한 사태로부터 다른 잠재적 힘이 도래하도록 자세를” 바꾼다고 했다. 참, 나, 원. 문학평론가조차 공감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상태를 전달하는 것으로 현대시는 진화했나보다. 그것이 또 어떻게 읽으면 바람직하다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평론가의 말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 “일치 불가능한 사태로부터 다른 잠재적 힘이 도래하도록 계속 자세를 바꾸며”? 시 쓰는 게 뭐 섹스 하는 거야? 잠재적 힘까지 몽땅 끌어낼 수 있도록 계속 자세를 바꾼다니, 얼핏 읽으면, 시 쓰는 게 아니라 보다 효율적인 섹스(공감할 수 없는 체험을 공유하는 행위)를 위하여 자꾸 체위를 바꾸는 것같이 읽히는 건 비단 나만 그런가?
 시인과 시집과 시들을 오해하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책의 가장 뒤편에 있는 “시인의 말” 가운데 한 부분을 가져온다.


 

 하나의 밤이 들어가서 닫힌 방
 그 방의 무한한 위치들
 우리의 전야는 반복되기만 해
 우리라는 미간을 띄워놓고도
 어느 얼굴이어야 하는지 모른다
 닮아본 적 없는 그것은
 계속 사라지고 있고
 계속 도착하는 하나의 창,


 ‘밖을 봐요. 섬이 하나 늘었어요.’


 다른 밤으로는 열리지 않는 미간의 기후를
 한쪽 눈을 불어주던 10시와 2시 방향 사이를
 다 살아볼 수 없다
 다시 살아볼 수밖에 없다



 시인은 자신의 방에서 결코 방을 나서지 않는다. 방 안에서 모든 것을 반복시키고, 사라졌다가 도착하기도 한다. 세상을 향한 오직 하나의 틀은 창 하나. 창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은 기껏해야 시계바늘 10시와 2시 사이의 예각일 뿐이다. 이렇게 지극한 개인의 시각으로 쓴, 시인이 장착한 암호와 비의와 은유를, 한낱 독자밖에 안 되는 내가 어찌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겠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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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 세트 - 전4권 나폴리 4부작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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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친한 두 여자의 유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정을 맺기부터 60년 후 결별에 이르기까지를 그린 장편소설. 총 4부로 되어 있으며 2011년 첫 작품 <나의 눈부신 친구> 이후 1~2년 터울을 두고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발표했다.

 

 


 다 합해서 2,300 쪽에 이르는 길고 긴 소설. 이 4부작을 읽기 위해 만 9일이 필요했고, 9일 가운데 이틀은 노느라 단 한 페이지도 읽지 않았음으로 사실은 7일만을 독서하는데 썼으며, 과하게 집중한 때문인지 매일 점안액 두 개를 눈알에 투입했음에도 오후 여섯시 이후가 되면 눈이 침침해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읽은 책. 그러니 참으로 행복한 7일이었다. 낮엔 책 읽고 밤엔 쐬주 마시고, 아침엔 바가지 긁히고. “나하고 얼∼마나 살기 싫으면 그렇게 하루∼도 안 빼고 만날 술이야, 술이! 내가 지겨워서 살지를 못해, 못살아!” 아, 행복한 나날들이여!
 위에서 말한 2,300 쪽은 원고지 2,300 쪽이 아니라 신국판 판형의 소설책 2,300 쪽을 말하는 것. 원고지 2,300 쪽이라도 출판사만 잘 만나면 두 권짜리 장편소설로 불릴 텐데. 하긴 누구라도 자신의 혼자의 평생만 회상하면서 책을 쓴다 해도 장편소설 한 권은 나올 만한데 화자 엘레나와 화자의 평생 친구 릴라, 두 명의 일생과 둘을 둘러싼 이웃, 가족, 남자들, 그들과의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까지 등장시키고 그들 모두의 대략적인 인생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면 이런 분량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1부 독후감에서도 말했듯이 엘레나와 릴라, 이 두 명의 똑똑한 친구들은 평생에 걸쳐서 서로 상반된 성격이지만 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대단한 독서량을 지닌 것으로 등장한다. 머리 좋고 책을 많이 읽은 것, 나폴리 변두리 빈촌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고, 한 남자를 시간 차이를 두고 사랑해 그의 아이를 낳거나, 그의 아이를 낳았다고 착각하는 것, 그 남자와의 관계가 혼인 상태에서 벌어진 불륜이라는 것이 이 두 주인공의 공통점이며, 나머지 모든 것에서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엘레나는 초등학교 담임교사인 올리비에로 선생의 강권 비슷한 압력 덕분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순서에 입각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지만, 엘레나보다 훨씬 더 우수한 릴라는 부모의 완강한 반대와 여성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곧바로 구두수선과 구두제작 일에 종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고 획기적인 구두를 디자인 해 오빠를 비롯한 가족을 부유하게 만들기도 하는 번뜩이는 천재. 그래, 내 표현으로는 릴라를 두고 번뜩이는 천재 말고는 달리 표현하기 힘들다.
 이 번뜩이는 천재가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 4권의 604쪽에 이르러 엘레나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평생 품었던 진짜 마음을 이야기하기에 이른다.
 “인생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어디에 쓰여 있는데?”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이 대사가,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자질을 가진 책의 진정한 주인공 릴라가 숱한 시도와 도전, 학습과 모진 시련 등으로 점철된 인생을 거진 다 살아낸 다음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에 깊게 동의했다. 글 속에서도 나폴리를 무대로 한 소설을 집중적으로 써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엘레나와는 달리 엘레나에게 계속적인 자극을 주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하기도 하고, 세 딸을 돌보아줌으로 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주기도 했으나, 한 순간도 쉼 없이 긴장하게 만들고 틈이 날 때마다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직선적인 비난으로 피곤하게 하는 릴라. 그러나 천생 남부 이탈리아, 나폴리 지역 출신답게 법보다는 폭력과 얼굴을 맞댄 대화와 협박에 친숙하고,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과의 끊임없는 유대를 배반하지 않고, 무엇보다 감정의 표현에 조금의 가림도 없는 전형적인 남부 이태리 현지인으로 늙어가는 번뜩이는 천재. 그녀가 험하디 험한 생을 살아보니, 인생에 꼭 의미가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 화자 엘레나는 책이 끝날 때까지 릴라가 긴 세월을 두고 한 작품을 썼으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릴라가 썼기 때문에 자기의 작품을 가볍게 능가하는 획기적이고 훌륭하고 흉내 낼 수 없는 걸작일 것이리라는 불안감에 평상심을 잃어버리기까지 하는데, 그러면서도 어느 날 자기 앞으로 릴라의 글이 담긴 플로피 디스크가 배달되어 오지나 않을까 하는 ‘겁나는 기다림’을 멈출 수도 없다.
 이렇게 독후감을 썼다고 해서, 내가 ≪나폴리 4부작≫을 “걸작”이나 “명작”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하는 건 아니다. 1950년대 초반부터 2010년까지의 전 이탈리아의 사회상과 정치, 문화의 후진성을 샅샅이 그려내고 있고, 동시에 당시 젊은이들의 (순진하기도 했던)사랑과, 불륜과, 성추행과, 무제한적인 폭력과, 사회운동과 불운한 환경 등을 충분히 감상하게 해줌에도. 그래서 역시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나폴리 4부작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작가의 말대로 그건 독자가 읽는 방법이 언제나 옳다는 것으로 귀결한다. 그래서 책 외피를 벗겨내면 표지의 속지에 각 매체와 평론가, 작가들의 다양한 소감이 적혀있는 것처럼 사회소설로 볼 수도 있고, 페미니즘 소설로 볼 수도 있고, 그냥 성장소설로 볼 수도 있다. 성장소설로 본다면 그냥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남부 이탈리아 변두리에서 전국구 스타로, 무지렁이에서 지식인으로, 짐꾼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벽돌공에서 공산주의 혁명가로 성장하는 성장소설로 볼 수도 있다는 의미.
 내가 여태 아주 중요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어갈 인물 하나를 숨기고 있었다. 큰 키에 마지막 페이지 바로 전까지는 늘씬한 몸매를 지닌 밝은 갈색 머리의 기막힌 지성과 외모의 소유자. 이 빌어먹을 작자의 카사노바 행위를 좇아가는 것도 재미있어서, 앞 문단에서 말한 무거운 주제 말고, 니노란 이름의 놈팡이를 미워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좋다. 이런 다양한 의미에서 재미있는 책.
 소설이 소설 같으려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 주인공을 맡는 것이 좋겠다. 이 책에서도 두 명의 주인공 릴라와 엘레나는 대단한 학습능력을 지닌데다가 노력까지 보탤 줄 아는 수퍼 우먼. 이들이 공통점으로 증오하는 동네 악당 솔라라 형제들은 막강한 재력에 뛰어나고 잔인한 폭력성과 기업경영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라토레 집안의 남자들은 훌륭한 외모에 하나같이 성적으로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이들의 유혹에 무릎 꿇지 않은 여자들이 별로 없고, 사라토레 가문은 높은 학문적, 정치적, 사회적 지위로 가문의 이름 하나만 대는 것으로 거의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러나, 이런 인간들이 과하게 많으면, 소설이 너무 소설 같잖아?
 말하기 참 힘든데,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비록 명작이나 걸작으로 꼽히기엔 역부족이지만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완전한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재미있지만 좀 과하게 평가된 작품 아닌가 싶다. 이토록 세계적으로 난리를 칠 정도는 아니라는 말씀. 21세기 들어 한국 출판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블루 오션이 있는데, 그게 뭔고 하니, 이탈리아 문학이라는 거. 앞으로도 다양한 이탈리아 작품의 소개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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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6-1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점안액 두 개를 눈알에 투입하면서 책을 읽으시는 열혈 독서가 폴스타프 님! ㅋㅋㅋㅋ
폴스타프 님 소개만 읽으면 책은 참 재미날 것 같습니다. (만... 읽을지 안 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상하게 칭찬은 많은데 안 땡기는 작품이네요.;; ㅎㅎ)
전 이 책 표지만 보고는 한길사 책인줄 전혀 몰랐어요.
마지막에 한국 출판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블루오션이 이탈리아 문학이라는 데 깊이 동감합니다.

Falstaff 2018-06-15 09:56   좋아요 0 | URL
옙.
저도 이 책을 권하기는 좀 그래요. 일단 재미 쪽에서 별 다섯개 정도의 수준이니까 출판사에서도 4부까지 계속 쓰게 했을 겁니다. 출판계에서도 광고가 판매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무시하잖아요. 암만해도 이 사람들이 힘을 좀 쓴 듯합니다.
원래 독후감엔 블루 오션에 이이의 작품들을 포함시키는 건 좀 그렇지 않느냐, 하는 거였지만, 공포의 검열 단계에서 빼버렸답니다. ㅋㅋㅋ

sslmo 2018-06-15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꾸벅~(__)

주관적인 시점과 객관적인 시점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이런 님의 리뷰가 웬만한 책보다 더 재밌습니다.^^
전 재미로 보나 작품성으로 보나 이분보단 켄폴릿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Falstaff 2018-06-15 10:53   좋아요 1 | URL
아이고, 이리 칭찬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
켄폴릿이라면 학창시절 스카라 극장에서 본 <바늘 구멍>의 원작자 말씀하시는 거죠? 그당시에 책도 읽은 바 있습니다만 워낙 오래 전이라서요. 한 번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sslmo 2018-06-15 10:58   좋아요 2 | URL
전 ‘바늘구멍‘은 대기 중 아껴읽으려 하구요.
‘대지의 기둥‘ 3권과 ‘20세기 3부작‘ 6권은 빼어나다고 생각해요.
제가 님께 무언가를 권해드릴 깜냥은 아니지만,
켄폴릿만은 강력 추천합니다~^^

Falstaff 2018-06-15 11:29   좋아요 1 | URL
옙. 고맙습니다.
얼른 가서 찾아보겠습니닷!
 
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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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거 안 보고 ‘한길사’라는 출판사에서 찍은 소설책이란 딱 하나의 이유 때문에 선택했다. 책을 고르고 보니, 이게 생전 처음 듣는 엘레나 페란테라는 작가가 쓴 나폴리 4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란 걸 알게 됐고, 그래서 또 나머지 세 권의 책도 싹 구입했다. 근데 왜 한길사냐고? 내 기억력이 엄청 꽝이라서 그랬다. 한길사의 소설이란 걸 시각정보를 통해 인식하자마자 내 큰골의 회백질 안에선 엉뚱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베른하르트의 <소멸>을 떠올리게 됐고, 그리하여 주문하기를 클릭해서 네 권의 나폴리 4부작을 몽땅 결제하고 나서야, <소멸>은 한길사가 아니라 현암사에서 나왔다는 게 번쩍 떠올랐다. 하긴 한길사나 현암사나 나 소싯적에 열라 읽은(솔직하게 얘기하면, 읽으려고 했던, 또는 읽기를 원했지만 갖가지 핑계를 대고 읽지 않았던) 사회과학 책을 많이 찍어 정든 이름이긴 하다.
 작가 엘레나 페란테. 이 여사님도 참 재미나다.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것이 티에리 코엔이 쓴 <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꿈꾸었다>의 주인공 요나처럼, 필명으로 책을 출간하고, 매체와 인터뷰도 서면(또는 e-메일)이 아니라면 극구 사양했던 작가란다.


 (이 자리에 있었던 사진은 페란테가 아니라 페란테의 작품을 번역한 앤 골드스타인 Anne Goldstein 이었기에 삭제했습니다. 오류를 지적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미 나이 들어 늘그막의 그늘에 접어들어 안온한 황혼을 즐기고 있는 화자 엘레나 그레코. 엘레나라는 이름 대신 애칭으로 ‘레누’라고 하니 독후감에서도 엘레나와 레누란 이름을 마구 섞어 부르기로 하자. 읽는 사람들이 헛갈리거나 말거나 그거까지 책임지지는 말자. 어느 날 아침 리노에게 전화가 왔다. 또 갚지도 않을 돈을 좀 빌려달라는 전화인줄 알고 앞 뒤 가릴 필요 없이 “안 돼!”라고 이야기할 찰라, 리노가 말하기를 “엄마가 사라졌어요!” 한다. 그것도 2주 전에. 그러면서 레누가 살고 있는 토리노에 엄마가 가 있는 거 아닌지 궁금해 전화질을 했단다. 레누가 리노에게 장롱과 서랍 기타 등등을 샅샅이 뒤져보라고 하니, 모든 엄마의 물건, 옷, 신발, 장신구, 편지, 사진, 선물, 책 몇 권, 필름, 플로피 디스켓, 컴퓨터, 심지어 출생증명서에다가 통신사 계약서, 영수증, 고지서 등을 싹 챙겨 사라져버린 거였다. 레누, 정말 신경질 났겠지? 엄마가 사라진 다음 2주가 지났는데도 아들이란 놈이 엄마 장롱도 열어보지 않았단 말이다. 이 한심한 중년남자 리노의 엄마가 라파엘라 체룰로. 엘레나만 ‘릴라’라고 부르고 나머지 모든 사람은 ‘리나’라 부르는 66세의 노인.
 이 책이 4부작 가운데 첫 번째 1부라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엘레나의 삶과, 그것(엘레나의 삶)에 밀접하게 접근해 평생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 리나의 삶, 두 인생을 담은 책이 아닐까 하고 예측할 수 있겠다. 독자로서의 나는 엘레나 그레코, 이 화자가 우연히 작가 엘레나 페란테와 이름이 같기도 해서, 조금, 아니 많이 변형시킨 자신의 모습이며 ‘리나’는 엘레나가 평생을 살아가며 자신의 주변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많은 사람 또는 친구의 모습을 모두 합쳐 만든 가상인물인 듯했지만 그건 또한, 전적으로 독자로서의 내 짐작이란 측면에서 정당한 짐작이다. 작가 스스로 말했다.
 “책은 한 번 출간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습니다. 만약 책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다면 저자가 독자를 찾아 나서야겠지만, 남아 있지 않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역자 후기 448쪽)
 작가는 책을 쓰기만 하면 되고 읽는 건 독자 마음이다. 그래서 이 책, 4부작 가운데 1부만 본다면, 이건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릴라가 증발했다는 리노의 전화를 받고, 메일로 릴라에게 도대체 너 어디 있는 거야, 라고 묻지만 결코 답장이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는 엘레나는 곧바로 릴라와의 60년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기억 또는 추억의 저 먼 끈은 초등학교 교사 올리비에로 선생의 말처럼 “천민”들이 우글대는 당시 패전국 이탈리아의 나폴리 변두리에서, 자신의 기억이 흐릿한 유년 시절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이어진다.
 작가가 떠올리는 눈부신 친구 릴라의 첫 번째 인상은 “아주 못된 아이”라는 것. 그런데 그런 아이가 누구나의 인생에 한 명쯤은 있었다. 못 된 아이고, 매사 설렁설렁, 별로 공부하는 거 같지도 않은데 언제나 1등만 먹고, 모든 사람가 사물을 비딱한 시선으로 보며 세상에 중요한 건 절대 없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어린 인생을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 때는 여러 가지로 짐작해보니 1950년대 초반. 패전국 이태리의 한 도시에서도 아주 변두리 빈민지역. 릴라는 매우 탁월한 지능과 못 된 성격을 동시에 지녔으면서도 대표 모범생 엘레나와의 우정을 쌓아간다. 둘 다 매우 똑똑하지만 엘레나는 애초부터 릴라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항상 릴라의 뒤만 졸랑졸랑 따라다니는 소년시절을 지내며, 사춘기로 접어들어선 자신도 모르게 공부는 뭐 그렇다고 치더라도 릴라보다 앞서는 모종의 것 하나는 갖고 싶어 하는 기분. 그래, 이 정도는 얘기해도 되겠지. 릴라가 워낙 특별하고 릴라네 집이 워낙 가난해서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대신 동네 도서관에서 라틴어 교본을 빌려 엘레나와 같이(그러나 릴라는 집에서 오직 혼자) 공부를 시작하는데, 엘레나가 결국 릴라의 극적인 도움을 받아 최고 성적을 맞을 수 있게 된다는 거. 릴라는 똑똑하고, 못된 만큼 삶을 보는 시선이 다각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거. 자기보다 두 배는 더 커다란 힘 센 사내의 목에 칼을 대고 정말로 찔러버릴 깡다구도 있다는 거.
 재미있는 책이다. 릴라와 엘레나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곁다리로 남부 이태리 사람들의 다혈질적 행동습성, 특히 남성들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관습적 폭력도 무지하게 재미있다. 엘레나는 남동생 하나를 둔 맏딸. 동네 껄렁쇠들이 엘레나를 함부로 만지지 못하는 이유는? 만일 엘레나를 함부로 만졌다가는 동생 페페와 잔니가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다 컸다고 자기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 그들의 칼이 자신의 목에 박힐 수도 있기 때문. 복수를 하지 않거나 못하는 건 가문의 최대 수치로 여기는 이태리 수컷들의 관습법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 4부작을 읽고 마지막으로 좋다, 아니다, 나한테 맞다, 안 맞다는 정말로 4부작 끝까지 다 읽고 난 다음에야 얘기하겠다. 일찍이 대단한 작품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를 1부만 대충 보고 아, 이런 재미없는 책이 있나, 싶었다가 몇 달 후에 사 둔 것이 아까워 나머지를 읽어보고 악, 이런 명작을! 그땐 내가 미쳤었나봐, 라고 반성했던 기억도 있으니, 겨우 1부만 읽고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심정을 짐작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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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8-06-1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가가 좀 베일에 싸여 있으면 어때 하는 입장이었다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누구인지 완전 궁금해졌었습니다.
다 읽어낸 지금, 얼굴을 봐도 별다른 감흥은 일지 않는군요~--;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는 분도 잘 보지 못했고,
그래서 다 읽은 후의 감상을 들어보지도 못해서 아쉬웠었습니다.
님도 권을 더해 읽어나가실때마다 시시각각 느낌이 바뀌실지 궁금합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나머지 리뷰들도 꼭 찾아 읽겠습니다.

Falstaff 2018-06-14 10:08   좋아요 1 | URL
책의 주인공이 ˝릴라˝잖아요. 프랑스 소설 가운데 <릴라는 말한다>가 읽는 내내 생각나더라고요. 그 책의 작가 ‘시모‘. 필명이며 누군지 아는 사람은 출판사 편집장 한 명, 어느 매체하고도 어느 방식으로도 인터뷰 같은 거 하지 않아 아직도 시모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
책 다 읽었습니다. 내일 전편 독후감 올릴 예정입니다.
늘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잠자냥 2018-06-14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끝까지 다 읽으셨나봐요?! 이 책 저는 선뜻 손이 안 가던데 ㅎㅎ 폴스타프 님의 전편 리뷰 읽어보고 고려해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는 말씀하신 대로 뒤로 갈수록 재미난 작품이죠. 1부 읽을 때는 저도, 이 책을 왜 덜커덕 다 샀을까 살짝 후회를... ㅋㅋㅋ

Falstaff 2018-06-14 12:43   좋아요 1 | URL
전 이 책이 이리 유명한 작품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답니다. 위에 썼듯이 <소멸>을 찍은 현암사하고 한길사하고 헷갈려서 그냥 한 방에 구입한 것이지요. ㅋㅋㅋ
둘 다 괜찮은 출판사였다고 기억하거든요.
<알렉산드리아....>와 비견한다, 까지는 얘기하지 못하겠습니다. 내일 올릴 예정인 독후감 막바지에도 썼듯이 조금, 아주 조금 ‘과포장‘ 또는 ‘과평가‘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4부 끝날 때 쯤에 작가는 드디어 이 책을 다 써냈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는데, 독자 역시, 드디어 이 책을 다 읽어냈다,는 인내심 고양의 경험을 만끽할 수도 있고요. ㅎㅎㅎㅎ
분명히 좋은 작품입니다. 그러나 책 속에서도 예를 들 듯이, 유명 출판사의 기획성 홍보도 이리 유명세를 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은 것 역시 사실입니다.
 
찬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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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이 나온 것이 2010년. 시인의 나이 마흔세 살. 사십대 초반에 쓴 시들을 모아놓은 것이리라. 한 마디로 잘 읽었다. 내 마음에 딱 드는 시들이 많다. 근데 그토록 많은 문학 지망생들이 왜 시인이 되려 할까. 시집의 초판 1쇄가 2010년 2월. 내 책은 초판 8쇄, 2013년 7월. 이 정도면 시집으로는 많이 찍은 편일 텐데 쇄 당 인세로 얼마나 받을까. 56편의 시를 생산하기 위해 몇 달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러려면 한 달에 몇 편의 시를 써야할까. 시인으로 생활하기 위해서, 암만 생각해도, “생활”하기 위해서는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수돗물처럼 시를 써내야 할 거 같다. 아, 방법이 있다. 돈 많은 부모를 만나거나,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생활비는 벌어올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된다.




 시인은 국경에 산다



 시인의 집에 들러 저녁 때가 되었다


 일 마치고 들어온 시인의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 있던 시인과
 시인의 손님을 위해 밥을 지어 차려주었고
 나는 밥을 먹고 일어나 시인의 방에 들어가 서성인다


 무심코 책 한 권 뽑아들었는데
 책장 저 안쪽에 보이는 반 병의 말간 소주병


 밥을 다 먹고 따라 들어온 시인은
 도로 나가 먹다 남은 반찬과 술잔 하나를 챙겨들고 와
 방문을 닫아걸었다
 숨겨놓은 술병을 열었다


 벌어진 문 틈새로 설거지 소리 굉장히 들리고
 밥 짓는 냄새 격하게 문틈으로 쳐들어왔다
 다시 아무도 살지 않는 집처럼 바깥은 조용했다
 갑작스런 바깥의 고요를 물으니
 이른 출근을 위해 아내는 잠을 자는 중일 거란다


 짠물을 다 나눠 마시고
 더 이상 쓸쓸할 일 없는 작은 판을 치운다


 대문을 잠글 줄 모르지만
 방문은 잠글 줄 아는 시인의 집을 나오는데
 시인의 운명을 수군대는 달빛 참 의뭉하게 가깝다 (전문. 52쪽)



 최하 이 정도는 돼야 시를 쓸 수 있다. 21세기에는. 착하고 부지런한 아내 또는 남편을 얻어 밥을 벌어오게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가한 아내/남편더러 밥을 챙겨달라고 해서 먹고, 아내(또는 남편)가 눈치 채지 못하게 몰래 소주병을 숨겨가며 조금씩 홀짝이면서, 나 죽기 전에 불멸의 시 한 수를 써내겠노라, 허튼 구름 속을 헤맬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삶을 바라보는 이병률의 시들을 두고 시집의 앞날개에서 이렇게 말한다. “처연하고 오롯하다”고. 어느 형용사가 있어서 시인의 작업을 두고 딱 그렇다고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시들은 조금쯤 궁상맞고,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서늘하고, 조금은 저린다.
 시를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동감. 시를 읽으며, 맞아 나도 그랬어, 라는 감정이 생길 때의 우연이라니. 이 시집 속에서 하나 발견했다.




 굴레방 다리까지 갑시다



 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그곳을 지날 적에
 그곳은 어떤 곳일까 생각하였습니다


 굴레방 다리 앞


 의문이 들 적마다 몇 번 굴레방 다리 앞에 내려서도
 물 저장소가 있을까
 또르르 길게 말린 터널 같은 곳일까
 거적을 뒤집어쓰고 살 만한 안온한 곳일까 궁금하였습니다


 그곳을 맥없이 혹은 격하게 그리워하는 사이
 굴레방 굴레방 중얼거리면
 거슬러 받는 기분이 되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니 어느 날엔가는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말하는 것입니다
 굴레방 다리까지 갑시다


 굴레방 다리에 도착해서도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나아지기는커녕
 굴레방 다리는 이곳이 아닌 것만 같은 것입니다


 마음이 정한 굴레방 다리는
 내가 터를 잡은 곳으로부터 북쪽에 있어야 하고
 아무리 맘속을 헤집어도 찾을 길 없어야 하고
 선뜩선뜩 무슨 일이 일어날 듯이 바람 부는 곳입니다


 무진히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곳 하나
 유리 조각처럼 가슴팍을 찔러본다는 것은
 어찌어찌 터지는 끝을 막아보자는 것입니다 (84쪽, 전문)



 독자도 시인처럼, 아니, 시인도 독자처럼 굴레방 다리를 모종의 이유로 “맥없이 혹은 격하게 그리워”하는 모양이다. 될 수 있으면 굴레방 다리를 지나치지 않으려 하지만 신촌에서 이대 앞을 지나 광화문 육교 옆 레코드 가게 ‘슈바빙’에 가려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굴레방 다리, 그곳을 지날 때마다 컥,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무진히” 흩어져 찾을 수 없는 심장 속의 유리 조각을 체험하는, 공감. 이런 것은 특정한 독자만 한 시인의 특정 시를 읽으며 느끼는 공명일 것이다. 공명共鳴. 같이 느끼는 공감을 넘어, 함께 울 수 있는 공명을 시 속에서 문득 찾아내는 일. 가히 오늘의 사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독자로서는.


 참 괜찮은 시집 <찬란>에서 가장 좋게 읽은 시를 소개한다.




 마음의 내과



 이 말이 그 말로 들릴 때 있지요 그 말도 이 말로 들리지요 그게 마음이지요 왜 아니겠어요 몸피는 하나인데 결이 여럿인 것처럼 이 사람을 귀신이라 믿어 세월을 이겨야 할 때도 있는 거지요 사람 참 마음대로지요 사람 맘 참 쉽지요 궤짝 속 없어지지 않는 비린내여서 가늠이 불가하지요 두 개의 달걀을 섞어놓고 섞어놓고 이게 내 맘이요 저것이 내 맘이요 두 세계가 구르며 다투는 형국이지요 길이가 맞지 않는 두 개의 자(杍)이기도, 새벽 두 시와 네 시 사이이기도 하지요 써먹을 데 없어 심연에도 못 데리고 가지요 가두고 단속해봤자 팽팽히 와글대는 흉부의 소란들이어서 그 무엇하고도 무촌(無寸)이지요



 한 그릇에 달걀 두 개를 깨뜨려 놓으면 흰자위와 노른자위가 서로 뭉글뭉글, 이게 정말 섞인 것인지 따로따로인지 애매한 그림을 보고 시인은 두 세계가 다투면서, 길이가 맞지 않는 자ruler라서 어디 써먹지도 못하고 만날 서로 팽팽하게 와글대기만 하는 무촌, 촌이 없는 사이, 즉 부부 비슷한 거란다. 그게 바로 내 맘이고 저것도 내 맘이며, 이것은 네 맘이면서도 저것 역시 네 맘인 것.
 이 시집 속의 시에 관해 맘먹고 떠들라고 하면 하루 종일 조잘거릴 자신 있다. 그러나 언제나 넘치면 하지 않으니 못한 법. 이쯤에서 독후감을 접자. 나한테는 오랜만에 만난 맞춤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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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민음의 시 163
윤의섭 지음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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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특히 시집을 한 권 사서 제일 감격스러울 때는, 페이지를 넘기면서 어쩌면 그렇게 외우고 싶은 시들이 넘쳐날 때, 그 기분 아시지? 그런데 그런 경우는 사실 상당히 드물고, 더구나 요즘 시집들 보면 하나같이 길어서 도무지 외워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그래도 시집 한 권을 읽으면 적어도 한 편 정도는 좋다, 이거 한 번 외워버리고 만다, 하는 심정이 들어야 그나마 본전을 뽑는 기분이 든다. 시 좋아하는 분의 SNS에서 본 얘기, “시집 한 권에 한두 편 건지면”이란 거. 그럼 윤의섭의 시집 <마계>는? 완전히 내 취향에만 국한시켜 말씀드리자면, 본전도 못 건졌다. 지금 막 <마계>를 다 읽고 PC 켜서 독후감을 쓰려 앉았는데 “건진 시”는 하나도 없고, 생각나는 시도 별로 없다. 다시 말씀드리는 바, 이건 전적으로 문학적 소양이 없는 내 취향과 결부시켜 하는 말이다. 나는 시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도 없는 시적 무교양의 영역에서 노닐고 있는 일반인이라 시집 <마계>와 속에 든 시들과 시인을 평가할 조금의 자질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왜 본전도 건지지 못했는가 하면, 시들이 과하게 암울하다.

 

 들여다보면 마법의 세계다.
 시를 쓰지 않아도 천지에 시가 자란다.
 환상통은 아니다.

 

 위는 시인이 스스로 쓴 서문으로의 자서自序다. 여기서 '환상통'은 환상을 보거나 느낄 때의 통증 즉 幻像痛 또는 幻想痛일 거다. 본문으로 들어가면 앞쪽의 작품들은 자서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마법의 세계’, 시가 자라는 천지, 즉 자연을 무대로 마법이 벌어지고 있다.

 

 “사위가 어두워질 무렵 장대비는 더욱 거세졌다 / … / 그제야 풍경은 홀연히 살아나는 것이었다 / 뭉개진 얼굴로 물의 칼을 등에 꽂은 채 / 아니면 빗물을 다 받아 마실 듯한 기세로 / 하늘과의 경계가 지워진 산등성이가 꿈틀거리고 / (후략) ” <起源> 11쪽 부분

 

 본문에 실린 첫 번째 시가 <起源>이다(기원起源은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내 친구 이름이기도 하다). 마법의 세계에서는 하늘에서 거친 장대비가 쏟아지는 것도 풍경이 홀연히 살아나는 것을 보는데, 그것이 “뭉개진 얼굴로 물의 칼을 등에 꽂”는 행위이며 쏟아지는 “빗물을 다 받아 마실 듯한 기세로 산등성이가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왜 뭉개진 얼굴을 한 짙고 검은 구름은 물의 칼을 하필이면 “등”에 꽂았을까? 가슴이나 심장이 아니고. 물의 칼을 받은 객체가 산등성이, 다시 한 번 발음해서, 산.“등”.성.이.라서 그랬을까? 그리고 나서는 또 곧바로 “아니면 (쏟아지는) 빗물을 다 마실 듯한” 장쾌한 마법의 기세로 꿈틀거리는 산등성이. 다시 강조한다. 나는 시를 모르는 그냥 독자일 뿐이다.
 몇 쪽 뒤 <구름의 율법>이란 시를 보면,


 

 “파헤쳐 보면 슬픔이 근원이다 / 주어진 자유는 오직 부유 / 지상으로도 대기권 너머로도 이탈하지 못하는 궤도를 질주하다 / 끝없는 변신으로 지친 몸에 달콤한 휴식의 기억은 없다” 고 구름의 본질을 슬픔으로 규정한다. 구름에게 주어진 오직 하나의 자유는 땅과 하늘 사이 그것도 대기권 너머로는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부유하는 행위뿐이다. 그리하여 구름은 “너무 무거워도 너무 가벼워도 살지 못하는 중천이라 여기고 / 부박한 영혼의 뿌리엔 오늘도 별빛이 잠든다 / 이번 여행은 오래전 예언된 것이다 / 死地를 찾아간 코끼리처럼 / 서녘으로 떠난 무리가 어디 깃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후략) <구름의 율법> 14쪽

 

 한반도 벨트에서 구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하지만 만일 이 시에서 구름의 율법을 “동녘으로 떠난 무리가” 운운하면 참 맛이 나지는 않을 거 같다. 좋다, 서녘으로 떠난다고 표현하는데 동의한다고 치자. 그런데 왜 하필 사지死地,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코끼리 같을까.
 윤의섭의 시는 내 기준으로는 과하게 죽음 지향적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시집의 뒤쪽으로 갈수록 더 심해지는 듯하다. (나는 여전히 비겁하게 ‘심해진다’라고 쓰는 대신 ‘심해지는 듯하다’라 표현한다.) 이제 시집에 마지막으로 실은 작품 전문을 감상해보자.




 눈을 부르는 나무



 춘삼월 산수유 텅 빈 가지에 예년 피었던 꽃은 다시 찾아올까
 찾아와 연노랑 꽃 치마 펼치고 다소곳이 앉을까

 그녀 다시는 오지 않았다
 하늘이 먹먹해지고 계곡에는 뼈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바람 소리 차오르는데

 흩날리는 눈가루 저마다 길을 헤매느라 지상에 쉽게 내려앉지 못한다

 길을 잃었다면 손짓을 따라오오
 내 부르는 거친 숨소리 듣지 못했다면 움트는 온기를 쫓으오

 보일 리도 찾을 리도 만무하련만
 산수유 여윈 가지 사이에 메마른 눈길 걸어 놓는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

 언젠가 꽃눈으로 피어날 눈
 그리울 적마다 소스라치듯 내리는 눈   (전문 136쪽)



 시인에게는 춘삼월 산수유 빈 가지에도 연노랑 꽃이 치마를 다소곳이 펼치고 앉는 대신 찬 눈가루가 흩날리고 만다. 물론 언젠가는 꽃눈으로 피어날 싸락눈이지만 가는 산수유 가지에 메마른 눈길만 걸어놓을 뿐이다. 산수유는 개화시기가 매우 빠르다. 3월이면 지리산 밑동엔 벌써 작고 촘촘하게 노란 꽃이 피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산수유 꽃이 아니라 아직도 앙상한 가지 위로 눈가루가 흩날리는 것을 포착한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을 보는 대신 그것들의 잠복한 슬픔으로 3월에 내리는 싸락눈을 보는 것이겠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나하고, 나로부터, 멀다.





 지금 독후감을 쓰고 세 시간이 지났다. 도무지 주둥이가 근질거려 참지 못하고 기어이 덧쓴다. 시집의 102쪽에 <北巷>이란 시가 있다. 이거 <北港> 아냐? 시를 직접 읽어보시라.



 北巷



 달은 초저녁을 넘기지 못하고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침몰했다
 산봉우리에 간신히 정박한 안개구름마저 거센 폭풍에 사라져 갔다
 그러나 비 내리는 들녘에 서 있으나
 빗물에 젖은 흔적이 없다
 아무도 비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장대비 쏟아질 때면 무거운 몸뚱어리 어렴풋이 떠올랐지만
 거대한 배 한 척 바다 쪽으로 머리를 드리운 채 쓰러져 있었지만
 아무도 출항에 들뜬 어선의 파닥거리는 지느러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들녘엔 산수유 꽃잎이 흩날리고
 언제 그랬다 싶게 달빛이 교교할 뿐이다
 이젠 유령선에 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야 한다
 느티나무로 보이는 돛대와
 푹신한 흙으로 뒤덮인 갑판을
 시퍼런 심해 너머로 끝내 이르지 못한 채 난파한 항해를 잊고 있었다고
 메마른 일지에 적어 놓아야 한다
 다시 바람이 불어온다
 북풍이다
 목숨마저 저버려야 배가 뜰 모양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북항(北港) [부캉] [명사] 북쪽에 있는 항구. 또는 항구의 북쪽 부분.
 북항(北巷) 내용 없음.

 

 네이버 한자사전
 港 1.항구 2.도랑 3.강어귀 4.뱃길 5.홍콩(香港)의 준말
 巷 1.거리, 시가 2.문밖 3.복도 4.궁궐 안의 통로나 복도 5.마을, 동네 6.집, 주택

 

 의문 1. 도대체 뭐야? 민음사, 시집도 교정, 교열이 개판인 거야, 아니면 시인이 제목을 잘못 쓴 거야? 그것도 아니면 진짜 “북쪽에 있는 거리” 또는 “북쪽 복도”란 뜻인가. 그것도 아니면 내가 모르는 지역을 칭하는 고유명사야?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 말이지. 이렇게 불만을 쏟는 건 내가 정말 무식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혹시 시의 제목 북항이 말하는 걸 아시는 분 계시면 한 수 가르쳐주시기 바란다.

 

 의문 2. 9행. 산수유 꽃잎이 흩날려? 산수유 꽃잎이 과연 몇 밀리미터 쯤 될까? 날리긴 날리겠지. 근데 그게 참, 세상 살다가 산수유 꽃잎이 흩날린다는 얘기도 듣는다. 어쨌든, 하여간, 좌우지간, 진짜 독특한 표현이란 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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