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책

 인터넷 친구가 어느 날, 내게 있어 어떤 것이 인생책이며, 어떤 문장이 인생문장이냐고 물었다. 흠. 인생책. 인생책이란 것이 머리 속에 도사리고 있다가 단박에 나오지 않더라. LDT, 레르몬토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로 이어지는 러시아 작가들, 이에 못지 않는 영어, 프랑스어, 독어권 거장들. 세르반테스를 필두로 라틴 아메리카까지 아우르는 스페인, 포르투갈 언어권 작품들. 게다가 인생책, 자신이 여태까지 살면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란 뜻 비슷하리라 생각하는데, 그건 때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하리라. 철조망 있지? 그걸 왼쪽 관자놀이로 집어넣어 오른쪽 관자놀이로 뺀 다음 누군가가 양쪽을 두 손으로 잡고 뱅뱅 돌리는 것 같은 기분. 철조망? 철조망, 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있으신가? 철조망에 눈알이 걸린 채로 죽어간 인간, 누혜. 그를 만들어낸 작가 장용학. 아주 예전에 신구문화사라는 출판사가 있어(검색해보니까 지금도 있다!), <현대한국문학전집>을 내놓았고 그 가운데 네 번째 책이 "장용학"이다. 1965년 출간. 모두 스물 몇 권의 책으로 되어 있으며 소설과 시를 망라했다. 이 책을 생각하면 슬프다. 집안이 거덜이 나 가족 해체를 당하는 와중에 친척집 지하 창고에 맡겨둔 정음사 세계문학전집과 이 신구문화사 전집은 10년이 넘는 세월을 당해 심하게 손상되어 기어이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는데, 이 가운데 "최인훈"과 "장용학" 두 권만큼은 절대 버릴 수 없었다. 쥐똥을 까맣게 뒤집어 쓴 지하실에서 발견한 장용학. 바싹 말라 순식간에 바스스 헤질 것 같은 책을, 스카치 테이프로 붙혀가며, 그 후 네 번을 더 읽었다. <원형의 전설>. 인생책을 찾는 일. 그건 내 가슴 속에 묻어버려 이젠 더 이상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거의 아문 상처를 다시 내보이는 일이었다는 걸 미쳐 몰랐다.

 

 

 책에는 <원형의 전설>과 중편 <비인탄생>, <역성서설>, 단편 <요한시집>, <현대의 야>, <상립신화>가 실려있으며, 여태까지 발표한 모든 장용학 평론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고 일컬어지는 김현의 해설 <에피메니드의 역설>이 들어있다. 한자를 배우지 않으신 분들은 이 책을 읽을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조사를 뺀 나머지 거의 모든 단어가 한자로 되어 있어서. 이후 두산출판에서 같은 목차로 완전히 한글로 바꿔 출간한 적이 있는데, 희한도 하지, 난 도무지 읽지 못하겠어서 술친구 줘버렸다. 몇 번 이야기한 가톨릭 환자 증세가 농후한 술친구. 그이는 무지하게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장용학은 환자였다. 무학여고 국어교사로 정년퇴직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97년이던가, 문학잡지에 마지막 인터뷰가 실렸다. 자신이 아직도 작가, 소설가로 불리는 걸 싫어했다. 이제 글을 쓰지 못하는데 무슨 작가며 소설가인가.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2. 인생문장
 숱한 문장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불행하고 희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더 불행하다." 젊은 시절의 정호승이 쓴 시에 나온다. 이젠 비록 시 쓰는 기계에서 고치에서 실 뽑듯 비슷한 시를 가공 생산하는 업자지만, 젊은 시절 괜찮은 서정시인이었다. 이거? 아니. "이미 죽어버린 내 몸뚱이 위로 누군가 유유히 오줌을 갈기고 떠나갔어." 최승자의 처녀시집 <이 시대의 사랑>에서 나온 문장인데 꽤 근사하다. 이거? 이것도 아니다.
 대학에 입학했다. 당연하게 서클, 요즘엔 동아리라고 불리는 서클에 가입을 했다. 내가 활동하던 서클 바로 옆에 "철학연구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아 개방공간을 캐비닛으로 분리를 하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모두 가난한 시절이었다. 요새 학생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철학연구회 캐비닛에, 이후 몇 십 년이 지나 이젠 내 카톡 소개말에도 적혀 있게되는 인생문장이, 멋진 그림과 함께 쓰여 있었다.
 "진로眞露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정말이라니까. 보실랴?

 


3. 꼴값하는 영숙이
 영숙아, 어쩌려고.... 얘가 드디어 미쳤다. 그제 아침 변기 위에서 알았다. 염병할 계간지 '창피'가 영숙이의 중편소설을 실었단다. 창피도 미쳤다. 정말 개잡종들이다. 영숙이는 누차 얘기했듯이 데뷔작부터 플롯 표절로 시작해 오랜 세월 꾸준하게, 도전정신에 충만해 글 도둑질을 해 온 도둑년이다. 내 말이 비약이나 아마추어의 선입견이라고 생각하면 나무위키에서 검색해보시라. 어마어마하다. 근데 워낙 책이 잘 팔리는, 당연히 문학성 여부는 제쳐두자, 나는 영숙이가 쓴 <기차는 일곱시 반에 떠나네>이후 돈 아까워 절대 얘를 위해 돈을 쓰지 않았으니까, 하여튼 책이 잘 팔리니 백낙천, 글씨 잘 보세요, 낙청이가 아니고 낙천입니다, 낙천, 백낙천이 의붓딸을 삼았는지 어땠는지, 늙은 몸을 이끌고 맨발로 뛰어나와서, 세상 사람들아, 내 위대한 허명을 걸고 말하노니, 영숙이가 어떤 영숙인데 글도둑질을 하겠느냐, 절대 아니다, 라고 했으며, 애초에 그가 발행인이었던 출판사 창피 역시 그게 '문자적 유사성'이지 어떻게 표절이냐고 대한민국 국민과 독자를 정말로 우습게 본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언젠가 영숙이가 다시 나팔을 불며 "푸르스름한 말 한 필"(요한묵시록 6장 8절에서 인용) 위에 타고 등장할 것이다, 라며 걱정 비슷하게 했었는데, 이것 봐라, 이것 봐. 얘가 사람이야? 창피가 당대 지식인들이 모인 출판사야? 이 상녀러 연놈들이 지금 뭐 하는 짓인지, 뭐 애초에 이럴 줄 알았지만, 막상 당하니까 정말 우습고 가소롭다. 이러니 내가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문학작품에 정이 가겠어, 안 가겠어? 영숙이 얘도 이젠 나이도 먹고 했는데, 나이는 항문으로 먹었는지 아직도 철없고, 얌전하지만 버르장머리라곤 아예 없는 열두 살짜리 털도 안 난 아이 같으면 어쩌겠느냔 말이지. 이게 투정 아냐? 뭐라? 작가더러 글 쓰지 말라면 죽으란 얘기냐고? 아니다. 쓰던 말던 관심이 없지만 죽지는 말아라. 써. 안 쓰면 죽을 거 같다며? 그럼 써. 그리고 자비 출판해서 아는 사람끼리 돌려봐. 무대에는 나오지 말라는 얘기다. 어려운 말로 이런 걸 뭐라 그러는 줄 알아? 자숙自肅이란 거다. 죽을 때까지 자숙하라고. 영숙아, 넌 애초에 작가가 아니었어.

 근데 영숙이가 정말 영숙이는 아닌 거 같다고요? 맞습니다. 영숙이 아닙니다. 본래 이름이 있었습죠. 얘가 몹씨 좋지 않은 일을 했거든요. 우리말 문법에 이런 경우에 적용되는 기가 막힌 현상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데요,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초성자음 부끄럼 탈락'이라고. 그래서 이름이 '영숙'이로 바뀐 겁니다.

 

 

4, <분례기>에 관한 슬픈 이야기

 

 <분례기>에, 읽은 다음에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정신지체 부부가 등장한다. 정신지체자도 자신이 약간 모자르지만 비장애인과 똑같이 희로애락을 느끼며 인생을 산다. 그래 부부 사이에 아이가 하나 생기는데 산통이 너무 커서 엄마가 아이를 보기만 하면 눌러 죽이려고 하는 거다. 그래 시어머니가 아이를 키우기에 이르는데, 문제는 퉁퉁 붓는 젖. 아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으면 젖이 딱딱해지면서 고통스러운 유방통을 겪는다고 한다. 그래 이걸 짜주어야 하건만 어떻게? 이때 같은 정신지체 장애인인 남편이 아이 대신 젖을 쭉쭉 빨아먹는다. 근데 암만해도 밍밍하고 좀 느끼할 거 같지? 남편도 딱 그렇다. 그래 젖을 다 빨아먹은 다음에 충청도 예산 사투리로 아내에게 한 마디 한다.
 "짐치."
 표준어로 하면 '김치'. 이게 구개음화되어 '짐치'로 발음하는 것. 젖을 먹어 느끼한 입을 김치 한 조각 먹어 말끔하게 입가심 하는 장면. 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래 이 이야기를 마누라쟁이한테 해주었겠다! 이게 사달. 내 마누라, 가는 곳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문제의 이 남편이라는 듯이 마구 해댄 거다. 어쩐지 마누라하고 친한 여자들 나 보면 싱글싱글 쪼개는 게 이상하다 했더니, 이런 일이. 하이고 나 참. 쪽팔려 내가 사는 작은 도시에 함부로 나다니지 못한다.
 여기까지면 뭐 그러려니 할 수도 (없지만 굳이 이야기 하자면) 있지만, 작은 아이도 그게 나 젊은 시절 내가 저질렀던 만행인줄로 확신하고, 엄마 말씀이니까 분명히 사실일 거야, 자기 애인한테, 지금은 물론 엑스 걸프렌드지만, 고스란히 다 말해줬단다. 밥 먹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밥알을 튀어가며 길길이 뛰었다. 아니라고, 그건 방영웅이란 소설가가 쓴 <분례기>에서 나오는 일화라고. 네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아이가 엄마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니까, 염병할 마누라가 배시시 웃으며, 그게 사실은, 이러더라.
 <분례기> 초판본도 역시 친척 지하실에서 전사해버리고 만다. 그래 새 책을 한 권 구하려 오래 알아봤다가 이제 한 권 발견했다. 6월이나 7월에 읽을 거 같다. 아 썅. 이 책 찍은 데가 출판사 '창피'다. 이 출판사가 환장하겠는 건, 맘에 들지 않으면 안 읽으면 그만인데, 도무지 읽지 않을 수도 없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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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5-30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전 장용학 책은 ‘책세상‘에서 나온 <요한시집> 밖에 없는데, 저 한자투성이 장용학 책은 정말 탐나네요. 탐난다고 그 한자를 읽을 자신은 없습니다만. ㅋㅋㅋ

그나저나 영숙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낙천ㅋㅋㅋ 창피 ㅋㅋㅋㅋㅋㅋㅋ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하셨군요. ㅋㅋㅋㅋ

Falstaff 2019-05-30 15:20   좋아요 0 | URL
ㅋㅋㅋ 웃으면서 읽으셨다니 저도 좋습니다.
저 한자투성이 신구문화사 전집의 ˝최인훈˝ 편에 실린 <광장>도 디테일이 문지에서 나온 것하고 좀 다릅니다. 이래저래 굉장히 귀한 전집으로 변신해서 신구문화사의 대표적 과거 업적으로 승격했더군요. 최악의 보관상태라서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생각날 때마다 아주 절통입니다.

syo 2019-05-30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세로쓰기다..... 사진에서 굉장한 위엄이 느껴집니다.

요며칠 영숙이 사건에 관한 많은 글들을 읽었지만, 그 글들은 이제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초성자음 부끄럼 탈락‘이라니. 으아아아아아아아(‘으하하하하하하‘의 초성자음 포복절도 탈락)

Falstaff 2019-05-31 09:33   좋아요 0 | URL
게다가 두 줄 세로쓰기랍니다. 그래 두껍지 않은 책에 많은 분량을 실을 수 있던 것이지요. 글씨가 너무 작아 이젠 읽지 못해요. ㅠㅠ

ㅎㅎㅎ 재미있으셨나봅니다. 고맙습니다.
 
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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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세키. 이 사람이 무려 에도 시대에 태어난 인물이다. 1867년생. 조선은 소세키가 태어나서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1876년에야 일본에 의해 개항을 하고 마흔세 살 되던 해에 식민지로 떨어지니 얼마나 오래된 인물인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리 오래 묵은 작품 같지가 않아서이다. 물론 요새 사람은 아니지만 이미 죽고 103년이 흘렀다는 게 영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과거의 인물로 인식하게 된다. 서른세 살 되던 1900년에 국비 유학생으로 영국에서 유학했다고 하는데, 당시만 해도 변방이었던 일본의 젊은이가 태양이지지 않던 나라에서 그리 풍족하지는 않았겠지만, 거의 모든 문화의 최신 경향 속에서 지낸 것이 (당대 일본의 작가들을 포함해) 다른 아시아 작가들에 비해 매우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했을 것이다. 내가 뭐 제대로 알고 하는 이야기겠는가. 그냥 작가 소개를 읽고 때려 짚으면 그렇다는 말이지.
 <도련님>을 출간한 때가 1906년.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를 밟아버린데 이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아직 시퍼런 왕권을 쥐고 있던 로마노프 집안을 가볍게 물리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콧대를 세우던 시절이다.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러시아까지 쫓아냈으니 숟가락만 들면 조선반도는 저절로 밥상 위에 올라올 예정이니 정권이나 국민들 모두 제국주의적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그러나 소세키는, 적어도 내가 읽은 그의 작품 속에서 이런 정치적, 사회적 움직임에 관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다. 순문학적이고 다분히 사소설로 구분할 작품을 약 십 년가량 만들어낸 후 49세를 일기로 눈을 감는다.
 <도련님> 역시 마찬가지. 1인칭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는 성격이 급하고 뭐든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다혈질 소년으로 태어나 성격을 바꾸지 못한 채 물리학교를 졸업하고 저 시코쿠 근방 바닷가 온천을 낀 작은 촌마을의 중학교 수학교사로 임용된다. 거기서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다시 도쿄로 오기까지 만나서 부대끼는, 사람 사는 얘기를 적어놓은 것. 그렇다. 그게 다다. 이렇게 얘기하는 건, 그곳에서 ‘나’가 만난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사람이 살아가며 만나서 관계를 맺는 다양한 인간들이 하나도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집단Gesellschaft에서도 별의 별 인간종이 다 있는 법이다. 그걸 <도련님>의 주인공 ‘나’는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어 한 시골마을에서 처음 발견한 것일 뿐. 아무리 읽어봐도 나는 소세키하고 별로 친하지 못하다. 이젠 정말 그만 읽어야겠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우미인초>, <그 후>, <행인>, <산시로>에 이어 <도련님>까지 여섯 권 읽었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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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84호 - 2019.여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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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미워도, 책 좀 읽으려면 당신네 창비 책을 안 읽을 수 없다는 게 진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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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5-28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 씨가 창비를 통해 활동을 재개한다는 게 참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입니다.

Falstaff 2019-05-28 14:12   좋아요 1 | URL
창비가 드디어 미친 거예요. 자기 자신한테 취해서 말입죠.

잠자냥 2019-05-28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사태를 보고 정말.... 문학권력이라는 게 대단하긴 대단하구나. 창비너마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창비가 제가 알던 그 창비가 아닌거지요. 에휴......

Falstaff 2019-05-28 14:54   좋아요 1 | URL
오랜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군요. 문학권력도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기대했던 독자들이 바보, 호구였던 거고요.

레삭매냐 2019-05-28 15: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절 사태 당시 출판사에서 약속한 게 하나
라도 이루어진 게 있었던 가요.

답이 없어 보이네요.

시간이 지나 슬그머니 돌아오겠다는 그
누구의 행태도 어이가 없네요. 적어도
반성문 하나 정도는 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적폐를 덮고 가자는 어느 정당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해서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羞惡之心 義之端也 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Falstaff 2019-05-28 15:50   좋아요 1 | URL
반성문을 아무리 많이 써도 그이가 지은 표절의 죄는 씻기지 않을 거 같습니다. 외국이라면, 그것도 유럽이라면 회복불가의 공개비난 대상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다른 출판사는 몰라도 한 때, 시절의 양심이라고도 했던 창비의 행태가 어처구니 없는 일이고요. 아직 우리나라 문학계는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슬그머니 디밀 것이 따로 있지 말입니다.
 
춘향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
송성욱 풀어 옮김,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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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는 ① 열녀춘향수절가(완판본), ② 춘향전(경판본), 그리고 ③ 열여춘향슈졀가(영인본) 이렇게 세 편의 <춘향전>이 들어있으나, ①을 읽으면 ②와 ③은 읽을 필요도 없으며, 읽히지도 않는다. 책에 대한 솔직한 생각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은 읽어봐야겠다는 것. 정말 재미있다.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 그냥 그럴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 우리말 특유의 해학이 얼마나 능청스럽고 기발한지 무릎을 탁, 칠밖에.


 이제 내가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것들을 소개한다.
 - 책 한 권에 세 편의 <춘향전>을 올리는 대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번의 제목을 『신재효 사설집』으로 하고, <춘향가>, <박타령>, <토별가>, <적벽가>, <심청가>, <변강쇠가>를 모두 실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지금 여섯 사설을 한 권에 읽을 수 있는 책 한 종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우리 고전'을 널리 알린다는 의미로 다른 역자가 풀어놓은 판본이 하나 더 있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지 않겠나.
 - 예전 고문古文 시간에 배웠던 <춘향전>을 기대하며 읽었으나 역자가 너무 많이 풀어 옮겨 고문 특유의 맛이 덜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런 의견은 주장하기도 뭣하고, 역자가 독자들의 요구에 맞출 수도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수준의 독자를 기준으로 할지, 고문을 배우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은 어떻게 읽을지가 전혀 계산이 안 될 듯하니. 그러니 처음부터 전적으로 내 입장에서 안타깝다고 미리 이야기를 해 놓은 것이기도 하다.
 작품에 대하여 더 왈가왈부 하는 건 참 쓸데없어 보인다. 그걸 알면 이쯤에서 마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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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멜랑콜리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구소영 옮김 / 알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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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만 520쪽의 장편소설. 헝가리의 한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트로이 목마 사건. 이렇게 간단하게 적어놓으니 만만하게 생각하실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쉬운 마음으로 책을 넘기면 곧바로 코피 터진다. 첫 문장을 옮겨볼까?


 “티서강 제방에서부터 저 멀리 카르파티아산맥 발치까지 뻗어 있는, 남쪽 저지대의 얼음에 뒤덮인 단지들을 연결하는 여객 열차는 불행하게 제 발부리에 자꾸 걸리는 철도원의 애매한 해명이나 불안스레 기차역에서 가다 서다 허둥거리는 역장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올 생각을 안했기에(‘그것 참, 연기처럼 다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나…….’ 철도원은 떨떠름한 표정을 구기며 어깨를 으쓱했다) 딱 이런 ‘비상’용으로 건사하고 있던, 오로지 두 대로 이뤄진 나무의자 객차를, 한물가고 영 시답잖은, 진짜 마지막 방책으로만 사용되는 424 기관차와 맞걸어 운행에 들어갔다.” (11쪽)


 이렇게 시작되는 1부 ‘도입:이례적인 상황들’은 107쪽에 가서 끝나는데, 도입부 본문 97쪽이 딱 두 문단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긴 문단으로 된 장편소설은 본문 490쪽이 단 두 문단으로 되어 있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멸> 이후 처음 읽었다. 베른하르트의 <소멸>은 우리가 늘 읽는 보통의 문장들로 되어 있는 반면, 변두리 유럽의 작가라 이름을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크러스너호르커이가 쓴 <저항의 멜랑콜리>의 문장은 길고 길다. 이렇게 긴 문장 안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쉼표 뒤엔, 예의 상 그렇다는 말이 아니고, 정말로 한 번 쉬고 읽지 않으면 문장을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나도 책 좀 읽는다, 라고 자만하며 사는 인간 종족 가운데 한 명이긴 하다. 그런데도, 읽다가 무려 첫 페이지로 돌아와 다시 읽기를 시작하고, 같은 문장을 서너 번 읽는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심지어 중간쯤에선 읽고 있는 문장을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습관적으로 다음 문장으로 건너가는 일도 많이 발생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 크러스너호르커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또는 의미의 20퍼센트나 이해했는지 자신이 없다. 읽는 독자도 그랬거늘, 원작을 한글로 고쳐 쓴 역자는 어땠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다. 어순이 다른 언어로 만든 긴 문장과 그 속의 쉼표의 순서 같은 건 어떻게 처리했을까. 독자는 이런 거에 신경 쓰지 않을 권리가 있기는 하지만.
 다시 위에서 인용한 첫 문장으로 돌아가서, 한겨울이라 얼음에 덮인 도시(團地)들을 연결해주는 열차가 무한정 연착이 되는 걸 보다 못한 역장이, 기어이 나무의자 객차 두 량으로 구성한 비상열차를 하나 배정해 운행을 하기로 결정해, 친척을 만나러 왔던 교양 있는 중산층 플라우프 부인을, 앞으로 사건이 벌어질 소도시로 이동시킨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임시 열차 안에서 마늘 소시지와 싸구려 담배와 독한 과일 브랜디 팔린카를 마시고 신트림을 하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 객실에서 가난하고 무식하고 염치없는 하층민들과 섞여 고생스러운 여행을 마친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이 안락하고 잘 꾸며놓고 먼지 하나 없어 음식물이 바닥에 떨어져도 그냥 집어 먹으면 될 것 같은 청결한 나의 집. 남편이 두 번 죽어 이젠 슬하에 먼저 남편이 낳은 아들 ‘벌루시커’ 하나만 남아 있는데, 알코올 중독 수준의 술주정뱅이라 집안에서 내쫓아버리고 지금은 혼자 산다. 아들 벌루시커는 지역 우체국에서 신문배달을 해 근근이 먹고 살며 은퇴한 지휘자 에스테르 선생의 수발을 들어주고 있다.
 1부 ‘도입’ 두 번째 문단의 주인공은 에스테르 선생이 몇 십 년을 참고 살다가 은퇴와 더불어 졸혼을 선언하는 바람에 집에서 내쫓긴 에스테르 여사. 벌써 쉰 살이 넘었으나 큰 키에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어 소도시의 경찰서장과 내연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놀랍게도 아직도 하루에 몇 번이나 절정에 달할 수 있는 신기의 테크닉을 보유한 여인.
 그런데, 앞으로 소설을 만들어나가는 요소를 소개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도입’에서 이 여성들이 앞으로도 주연급으로 등장은 하겠지만, 뭐 중요한 조연급일 수도 있고 하여튼, ‘도입’이라는 면에서 나이든 여인들 보다는, 기상관측 이래 이례적으로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이번 겨울에 수십 년간 멈추었던 교회 시계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고, 유랑 서커스단이 세계에서 가장 큰 고래를 보여주겠다면서 고래를 거대한 차량에 싣고 도시에 들어오는 일이다. 실제로 가장 큰 고래라고 하는 수염고래는 길이가 30미터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거대한 수중동물을 어떻게 내륙지방까지 운송할 수 있는지 나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책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초라고 추정한다고 한다. 그럼 인간을 포함한 특이한 생명체를 구경거리로 돈을 벌던 시기는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터무니없이 고래라니. 안 돌던 시계가 갑자기 돌기 시작하는 찰나에. 이건 혹시 작품을 쓰던 1989년, 소비에트가 서서히 무너지던 동구권에 갑자기 쳐들어온 시대의 전기, 트로이 목마 아냐? 실제로 이 서커스단을 책 속에서 트로이 목마에 딱 한 번 비유한다. 그런데 또 문득 든 생각이, 책을 간행한 해가 1989년이면 정말로 책을 쓴 시기는 아직 냉전시기의 헝가리였을 터. 그럼 가장 큰 고래를 광고하며 도시에 들어온 서커스단은 무엇을 은유하는 것일까.
 이쯤에서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작가가 카프카다. 측량기사 혹은 은행원 K에게 닥치는 운명 또는 필연을 만드는 체제. 그런 체제가 사회와 시민을 질식시키는 기압골 같은 것. 작은 도시가 고래와 서커스 열풍 속에서 갑자기 폭동이 벌어지고 이어서 군대가 진입해 새로운 질서를 잡는 모습을 읽으며 카프카를 떠올리면 안 될까? 본문에 들어가 첫 문단이 나오면 주인공이 은퇴한 음악가 에스테르 씨가 되는데, 그가 자신을 챙겨주는 벌루시커에 연관해 “‘타고난 성향으로 뭉친’ 지역사회는 벌루시커를 단순한 백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그로서는(그도 이런 면모를 벌루시커가 개인적인 끼니와 전반적인 협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자신의 투명한 은하계의 고속도로를 거니는, 딱 봐도 제정신 아닌 이 방랑자가, 타락이라고는 모르고, 쑥스럽긴 해도 보편적인 영혼의 너그러움을 지니고 있어, 실로 ‘현 시대를 상당히 갉아먹고 있는 퇴폐의 힘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임을 의심하지 않았다.”(179쪽)고 여기기는 하지만, (이거 스포일러 아닌가 몰라?) 거의 유로지뷔 수준인 벌루시커가 기어이 불행한 결말에 빠지고야 마는 것으로 미루어 그렇다는 말씀.
 하여간 헝가리의 이름 없는 작은 도시는 군대가 진주해, “그들이 처박힌 착각의 냄새나는 진구렁에서 끌어내 법, 질서, 명확한 사고의 고귀한 대의명분 속에서 어느 정도 현실감각을 도로 함양”시키며(478쪽), 현재해 있던 구식 고귀함을 장사지내는 것으로 마감한다. 법과 질서, 명확한 사고를 요구하는 군대라니. 생각해봄직한 일이다.
 책을 읽고 그 속에 든 것을 이해하는 방식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아니, 이해하고, 말고 전부 독자의 몫이다. 고백했거니와 나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비의를 거의 눈치 채지 못한 채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가. 나는 내 식으로 <저항의 멜랑콜리>를 읽었고,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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