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히칸족의 최후 열린책들 세계문학 203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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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쿠퍼는 19세기 초반에 활약한 미국 작가 가운데 상당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근데 왜 여태 몰랐을까. 작년에 이이가 쓴 <개척자들>을, 우습게도, 무척 흥미롭고 한편으론 대단히 지루하게 읽은 경험으로, 다른 건 몰라도 진짜 초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일 거란 생각은 했다. 미국 동부지역에 광활하게 뻗어있던 원시림. 그리고 개척지. 백인 미국인이지만 개척지에서 살기를 거부하고 인디언과 함께 그들의 정서를 공유하며 사는, 가죽 각반脚絆을 찬 명사수 내티 범포를 주인공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겨울 광경 묘사가 특별하게 기억나는 책이다. 사실은 그때 제임스 쿠퍼의 책을 한 권 더 읽기로 하고 이 <모히칸족의 최후>를 보관함에 담아 놓았다가 이제야 읽은 거다. 책을 읽으면서 번쩍 눈에 띄는 이름, 내티 범포. <개척자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죽 각반을 찬 키 큰 명사수 이름. 아, 맞아, 맞아. 가죽 각반을 영어로 하면 ‘레더 스타킹.’
 제임스 쿠퍼가 쓴 소설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 바로 “레더 스타킹 시리즈”라고 불리는 여섯 권의 연작 장편이라고 한다. 각 권은 내티 범포를 주인공으로 하지만 별개의 스토리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데, <모히칸족의 최후>를 읽으면서 분명히 이 책을 <개척자들>보다 먼저 썼을 것이라 짐작했다. 읽는 도중에 그게 궁금해서 (근데 그게 왜 궁금했지? 나도 나를 모르겠어!) 책 뒤편의 해설을 보니까, 아니란다. <개척자들>이 시리즈의 첫 번째고 이 책이 두 번째란다. 왜 이렇게 생각했느냐 하면, <개척자들>에선, 이거 얘기하면 <개척자들> 읽으실 분한테는 스포일러지만, 내티 범포와 비밀리에 함께 사는 인물이 모히칸족의 마지막 왕 비슷한 검은 뱀, ‘칭가치국’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선 칭가치국이 늙어 결국엔 숨을 거두는 장면이 나오는 반면, <모히칸족의 최후>에선 나이는 먹었지만 아직 웬만한 젊은 인디언하고 맞짱을 떠도 절대 꿀리지 않을 완력을 보유한 건강한 상태로 등장하니 내 착각도 뭐 정당하다할 만하겠지.
 미국 판 무협지다. 선한 인디언 부자와 가죽 각반의 사나이 내티 범포. 여기서 범포는 일명 ‘라 롱그 카라빈’ 불어로 ‘긴 카라빈 총’ 즉 ‘장총’으로 불린다. 인디언 부자는 위에서 말한 칭가치국과 그의 아들 펄펄 뛰는 사슴이란 뜻의 ‘웅카스’. 이들이 선한 집단, 소위 ‘우리 편’이다. ‘너네 편’은 프랑스 사령관인 용감한 후작과 군대, 그리고 밍고라고 불리는 인디언 집단과 그들의 우두머리 ‘마구아’. 즉, 아직 미국은 독립하지 않은 18세기 중반으로 밀림 속에서 프랑스와 영국, 그들을 지지하는 인디언 부족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시절. 수적으로 열세에 처한 영국군 진지에 사령관으로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배 다른 자매가 젊은 영국군 소령의 보호아래 우리 편인 줄 알았던 마구아를 길잡이 삼아 출발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마구아는 영국군 사령관인 대령의 큰딸에 흑심을 품고 이들을 납치하려 호시탐탐 노리다가, 성공한다. 여기에 혜성같이 등장하는 인물이 있으니 영국군에게 호감을 느끼고 영국 왕에게 충성을 하기로 결정한 백인이자 미국인 장총, 내티 범포와 그의 인디언 친구들.
 이 정도면 그림이 그려지시지? 우여곡절 끝에 두 아름다운 아가씨를 구출하고, 비록 백마는 타고 오지 못했지만 가난한 젊은 소령은 아가씨와 결혼에 성공해서 늙어 죽을 때까지 날이면 날마다 바가지 득득 긁히는 거. 근데 정말 그럴까? 그렇게 뻔한 도식처럼 이야기가 흘러간다면 그리 많은 후세의 작가들이 <모히칸족의 최후>를 자주 언급하지 않았을 것. 당연하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더 이상 책의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개척자들>처럼 지루하지 않다. 그 책은 문학과지성사의 큰 판형과 조밀한 편집으로 해설 포함해 750쪽의 위용을 자랑하면서도 인색하게도 400쪽을 넘길 수 있는 인내심과 질긴 엉덩이 가죽을 가진 자들에게만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반면에 <모히칸족의 최후>는 처음부터 어려움 없이 읽히는 가독성을 지녔다. 역시 제임스 쿠퍼가 쓴 이 책의 미덕은 무협지와 비견하는 내용이라기보다, 아메리카 인디언 특유의 자연친화적 삶의 방식을 포함한 자연에 대한 외경과 관찰방법을 감상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상상도 할 수 없는 동부 미국의 광활하고 빽빽한 삼림의 풍광도.
 고백하노니, 미국문학을 전공하는 분이 이 고백을 들으면 대경실색하는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지만, 나는 책의 주인공이자 여섯 권으로 이루어진 레더 스타킹이며 라 롱그 카라빈, 장총이기도 한 내티 범포를 보면서, 정말로 엉뚱하게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에 나오는, 확고한 신념의 주인공 에스터의 진짜 남편 ‘칠링워스’가 떠올랐던 거다. 물론 내티 범포는 평생 독신獨身이자 독신瀆神으로 일관한 삶을 살지만, 만일 그가 어느 결에 혼인이란 걸 했다면, 당연히 칠링워스처럼 악당은 아니겠으나, 아내로 하여금 가슴팍에 금실로 “A”자 수를 놓은 주홍빛 천을 달고 다니게 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 아니다. 범포 같으면 비록 아내 혼자 날마다 독수공방하게 내버려둘지언정 그렇게까지 아내를 불명예스럽게 만들지는 않았겠지. 하여간 칠링워스의 삶의 방법이 숲 속의 사나이 래더 스타킹과 비슷했을 수도 있다, 이거지 뭐. (내티 범포, 혼자 살기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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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의 120일 동서문화사 월드북 201
사드 지음, 김문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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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소돔 120일>을 읽었다. <미덕의 불운>을 읽고 뭐 이런 작자가 다 있는가 싶어서 다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했다가, 많은 책에서 <소돔 120일>을 인용하거나, 언급을 해서, 특히 레몽 장이 쓴 <책 읽어주는 여자>을 보다가 눈길을 끈 것이 이 책을 읽게 된 경위다. 서문과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까지는 완성된 ‘작품’. 2부부터 4부까지는 미완성 스케치라고 해야 할 터. 전해오는 이야기 그대로다. 완전 변태 성욕과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부도덕한 모든 형태의 죄악들이 선천적으로 미덕을 보유한 소년, 소녀들을 학대하는 내용이다. 71쪽 까지 이어지는 머리글에서부터 이런 부도덕과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엽기 잔혹한 내용이 준비되고 있다.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루이 14세 집권 말기라고 하니까, 18세기 초반의 프랑스를 이끌어가는 집권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50세의 블랑지스 공작과 공작의 친동생인 46세의 주교. 환갑을 갓 넘은 법원장 퀴르발과 53세 먹은 공작의 학교 동창이자 징세청부인 뒤르세가 이들. 징세청부인徵稅請負人에 대하여 좀 알아보자. 국가에서 특정인에게 도급을 주어 세금을 걷게 했는데, 도급을 받은 사람을 징세청부인이라고 하고, 대개 이런 인간들은 마땅하게 징세할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이 긁어모아 차액을 착복해 거액을 거머쥘 수 있었다고 한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인생의 첫출발>에서 보면 오스카르라고 하는 인물이 전쟁에 나가 한 팔을 잃고 돌아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징세청부인이 되는 장면이 나온다. 근데 당연히 이 징세청부인이라는 이름의 세리는 대부분 악당이거나 조금씩 악당에서 악마로 진화하는 것들이 보통이라 시민들의 원성을 대단히 많이 사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국민을, 얼마나 악질적으로 착취를 했겠는가. 실제로, 질량불변의 법칙을 발견한 화학자 라브와지에 아시지? 이 양반도 젊은 시절에 잠깐 징세청부인을 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대가리가 날아가 버렸을 정도다.
 작중 시대는 부르봉 왕가의 루이 14세 집권 말기. 당시 공작, 주교, 법원장, 징세청부인이라면 가히 골고루 시민들의 등골을 쪽쪽 빼먹던 인물들 가운데 대표선수들만 고른 것. 사드 후작이라고 흔히들 얘기하는 도나티앵 알퐁스 프랑수아는 당대(또는 조금 선대)에 시민들과 직접 대면하여 그들의 고혈을 짜냈던 계급들을 무대의 중심에 놓고 21세기에도 상상하기 힘든 악덕과 불의를 쉽게 저지르는 모습을 그려냈던 거였다. 내용이 얼마나 지저분한가를 보이려면 불유쾌하게 본문의 특정 장면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그냥 머리글에 나오는 이들의 가족관계만 요약하면 충분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철저히 인색한” 구두쇠, “거짓말쟁이에 욕심쟁이, 주정뱅이, 남색에 근친상간자, 살인자, 방화자, 도적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수많은 악덕을 보상할 수 있는 미덕은 하나도 지니지 않은 채 어떠한 미덕도 존경하기는커녕 혐오하고 있”는 짐승들로(18쪽) 막대한 재산을 남긴 아버지의 돈을 마음대로 쓰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해 친어머니를 독살하고 모친살해를 공모한 여동생마저 살해하는 것도 모자라, 친딸과 근친상간의 관계까지 맺는 정도는 그냥 일반 상식인 말종들이다.
 이 네 짐승들은 역시 아이까지 생산해준 착한 아내들마저 죽게 만들어 홀아비 신세인데, 서로 그들의 딸들에게 관심이 있어 돌림 사돈을 맺게 이른다. 공작의 큰딸은 법원장의 아내가 되고, 법원장의 딸은 징세청부인의 아내가 되고, 징세청부인의 딸은 공작의 아내가 되고, 사실은 주교의 핏줄이지만 주교라는 직업 때문에 친형인 공작의 호적상 둘째딸에 올린 소녀는 네 명의 공동 아내가 되는데, 이미 모든 부녀가 근친상간의 죄를 상습적으로 지고 있어서 언제든지 합의하지 않고 누구의 아내든지 공유할 수 있도록 약속을 했다. 이 정도면 <소돔의 120일>의 성격은 능히 짐작하실 수 있을 터. 근데, 천만의 말씀.
 나는 <소돔의 120일>을 읽으면서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떠올렸다. 아시다시피 <데카메론>은 열 명의 귀족 남녀가 피렌체의 페스트를 피해 시골로 요양을 가서 열흘 동안 소풍을 가 각자 한 가지씩 재미난 얘기를 하는 내용. 14세기 중반에 피렌체 귀족들은 당시 도덕수준에 비추어 대단히 야하고 음란한 얘기까지 서슴없이 이야기하고, 박수치고 즐거워한다. 그 후 434년이 지난 1785년, 뱅상 감옥에는 독방 6호실에는 성적으로 편집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45세 사드의 후작이 몇 년 째 외곬으로 앉아 폭 12cm, 길이 12미터의 두루마리에 촘촘하고 작은 글씨로 단 37일 동안 <소돔의 120일> 머리말과 1부를 완성하고 있었는데, 위에서 얘기한 네 명의 악당이 12세에서 15세까지 (특히 엉덩이가)아름다운 여덟 명의 소녀와 12세에서 15세까지 (역시 특별하게 엉덩이가)아름다운 여덟 명의 소년, 하녀 네 명, 다른 것은 아무 조건 없이 페니스가 거대한 네 명의 마장馬藏(남색용 사나이)과 이들이 거느린 네 명의 졸개 마장, 악당의 아내들, 여덟 명의 요리사, 그리고 네 명의 여자 이야기꾼을 대동해 알프스 산맥 저 오지 가운데서도 오지, 아무도 찾지 않아 새가 아니라면 도달할 수 없는 벽지에 지은 저택에 도착하여, 이야기꾼이 날마다 다섯 편의 음란하고, 더럽고, 폭력적이며 무엇보다 비인간적인 내용의 짧은 이야기를 각자 30일씩, 총 120일 동안 600가지 악덕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악당들은, 이야기를 마치고 맛있게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 <데카메론>의 발랄한 귀족들과는 달리 이야기에 나오는 것을 흉내 내 변태적이고, 더럽고, 부도덕한 변태성욕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으며, 읽을 필요 없는 2부~4부의 스케치에 의하면 가학성향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나는 사드가 <데카메론>을 염두에 두었다고, 아니면 조금은 염두에 두고 썼을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이 짐작이 확신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건, 그의 다른 작품 <미덕의 불운>에서도 산골 외딴집에서 한 정숙하지만 불운한 미덕의 아가씨가 작살나는 장면, 역시 외진 수도원에서 많은 수도사들로부터 능욕당하는 장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럼 왜 사드는 옥중에서 이따위 글을 썼을까. 혁명 몇 년 전이라 아직 프랑스 가톨릭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사회 분위기에서. 흔히들 감옥에서 쓰는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좀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며 가끔 불세출의 걸작까지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글쎄 그게 정말 그럴까. 1968년부터 88년까지 20년이 넘게 감옥생활을 한 신영복 선생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감옥, 그것도 18세기 감옥의 독방이라면 그게 아무리 귀족을 유치하는 감옥이라 하더라도 한 귀퉁이에 뚜껑이 없는 변기가 놓여 있고, 키가 닿지 않는 높이의 유리(또는 덮개) 없는 창, (없을지도 모르지만)조그만 나무 책상과 나무 침대. 이런 곳에서 오래오래 홀로 있으면서 가뜩이나 약간의 성적 도착이 있는 남자가 외곬으로 빠지는 건, 바람직하지는 못하지만 한편으론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더구나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인간을 독방에 홀로 있게 하는 것은 (요새 자주 언급되는, 회사의 갑질에 의하여 직장 내 왕따가 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대상자의 폭력성과 비타협적 가해 증상으로 대표하는 공격성을 상당히 높여준다고 보고되고 있다. 언제 감옥에서 나갈지 모르는 사드 후작. 일찍이 탈옥에 성공했던 경험도 있으나 결국 다시 들어온 감옥에서 그의 뇌 속에서는 실제 생활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성적 판타지가 지극히 폭력적으로 나타나는 거, 그건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감옥에 갇힘으로 해서 스스로 폭력의 대상이 되었음을 늘 인지하는 한 똑똑한 인간이, 그의 뇌 안에서는 현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간으로 환치시킬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대리인이 거의 틀림없는 공작의 입을 통해 196쪽에서 이렇게 말한다.
 “뒤클로, 진실을 말해주지 않겠나? 당신은 부인이 숨을 거두자 참을 수가 없어서 스스로 몸을 비비지 않았어? 범죄가 불러일으키는 미묘한 관능적 감각이 당신의 쾌락 기관을 자극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리하여 날마다 벽만 쳐다보며 대뇌의 화학작용에만 박차를 가하는 사드 후작은 위 대사에서 보듯 범죄의 완성과 성적 쾌락을 연결시키게 되고 이후 끔찍이도 지저분한, 아니, 더러운 성적 판타지로 변질되는데, 현재 독방에 수감된 자신의 모습인 피해자에 대한 동정은 완벽하게 반의적으로,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전혀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에게 봉사한 인간은 우리에게 관대한 마음을 기대할 권리가 없어. 그런 자들은 우리에게 봉사하고 있을 뿐이지. 그런 자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가 강한 정신의 소유자에게는 치욕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들을 경멸하고, 귀찮게 굴지 못하게 내쫓아버려야 해.” (201쪽)
 그러나 사드 후작은 안다. 지금 자신이 쓰고 있고 앞으로 2부, 3부, 4부로 확장해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실제로 인간 생활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감히 말하는데, 나의 상상력은 나의 실행력을 넘어서는 것이야.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악행을 범했지만(악행에 대해 서술했지만), 모두 나의 상상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악행뿐이었어.” (151쪽. 괄호 안은 내가 썼음)
 사드 후작은 성적 판타지가 유난히 화려한 한 명의 똑똑한(아니, 천재적인)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직접 보거나 듣지는 못했지만 유사한 이야기와 대화를 통해 과장되게 알고 있던 것들을, 분변 냄새가 언제나 대기 중에 충만해 있는 감옥의 독방에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정상적인 중년의 남성도 한 번 상상해보지 못한 하드코어로 확대 재배치한 것이다. 정말로 책의 내용은 역겹고, 끔찍하고, 더럽고, 차마 읽지 못할 수준이지만 한 불운한 천재가 이해받지 못한 사회 안에서 나름대로 처절하게 반항한 흔적이라고도 할 수는 없을까.
 이 책에서도 문제는 권력이다. 주인공 공작, 주교, 법원장, 징세청구인. 정치, 종교, 사법,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우위에 있는 이들에 의하여 벌어지는 지옥의 모습. 그리하여 소설 <폭력적인 삶>을 쓰기도 한 좌파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그의 작품 <살로, 소돔의 120일>에서 자신들의 성적 만족을 위하여 가볍게 인간과 인간성을 말살해버리는 권력자들을 파시스트라고 규정한 현대극으로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역시 1부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용은 참 역겹기 그지없다. 읽어볼 만은 하나 권하기는 힘들다. 아니, 도저히 추천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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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6-22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1992년인가 새터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그때 10대였는데 친구가 이 책을 동네 서점에서 훔쳐주고(쿨럭;) ㅋㅋㅋㅋㅋ 그 훔친 책을 집에서 몰래 몰래 읽다가... 급기야 구토를 했더랍니다. 너무 끔찍하고 역겨워서 책을 읽다가 마구 마구 토했답니다. (어린 마음에 정말 충격;;) 절반쯤 읽다가 결국 포기하고 엄마 몰래 내다버렸는데..... 글쎄 그 뒤로 그 책이 절판되고 중고 시장에서 10만원을 호가 하더라고요. 버리지 말걸... ㅋㅋㅋㅋ 암튼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책입니다.

Falstaff 2018-06-22 09:56   좋아요 0 | URL
ㅎㅎㅎ 10대 아가씨가 이 책을... 거 정말 상상이 안 됩니다. 지금 제가 읽어도, 아니 다시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히는 걸요. 어쨌거나 조숙하셨습니다. ㅋㅋㅋ
근데 왜 이 책이 후배 작가들의 작품 속에 끊임없이 거론이 되는 건지 참 그렇단 말이지요.
하여간 제 인생에 더 이상의 사드는 없습니다!!!

잠자냥 2018-06-22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친 독서 욕구가 불러일으킨 폐해라고나 할까요. ㅋㅋ 금기하니까 더 읽고 싶은?? ㅋㅋ 아무튼 아무거나 아무때 주워먹으면 탈나는 법이지요. 다시 생각해도 정말 꾸엑...
네, 저도 제 인생에 사드 배치 절대 반대입니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18-06-22 13:16   좋아요 0 | URL
저도 여태까지 살면서 별별 희한한 야설(우린 그걸 ‘빨간책‘이라고 했는데) 등의 패관문학에 관한 ‘한 한 패관‘ 했다라는 자부심으로 살았었건만, 단방에 무너졌습니다.
완전히 K.O. ㅋㅋㅋㅋ
 
토머스 페인 상식 효형 클래식
토머스 페인 지음, 남경태 옮김 / 효형출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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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에 화자로 등장하는 네이선 주커먼이 주인공 아이라 린골드를 멘토로 여기게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기轉機가 바로 토머스 페인이 쓴 <상식>이다. <상식>은 1776년 1월에 필라델피아에서 발간한 소책자로 아메리카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서문과 네 가지 텍스트 및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초간본이 나온 18세기가 아닌 현 시점에서 3부 “아메리카의 현재 상태에 관한 고찰”과, 4부 “현재 아메리카의 힘에 관한 몇 가지 잡다한 생각”, 그리고 부록은 이미 지나간 역사의 한 순간에서 당대 선구자가 생각했던 투쟁의 필요성이라고 할 수 있어서 더 이상은 인상 깊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아메리카의 현재”와 “현재 아메리카”라는 것이 1776년의 영국 식민지 지배 하의 유럽 이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부 “정부 일반의기원과 취지, 그리고 영국 제도에 관한 간략한 고찰”과 2부 “군주제와 권력 세습에 관하여”는 21세기의 세계사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페인은 왕에 의한 정치, 즉 왕정을 가장 저급한 통치체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거기다가 왕권을 세습하는 행위 그 자체가 세상이 거의 모든 죄악을 포함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당연히 일련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입헌군주제를 선택하고 있는 영국 역시 당대 유럽의 왕국들과 다를 바 없는 체제로, 부도덕한 왕실을 유지하기 위해 부당하게 아메리카를 탄압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지만, 그런 논조를 펴기 위해 주장하는 페인의 세계관은 당연히 심사숙고해볼 만하다. 그동안 240년여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당대엔 아메리카의 건전한 시민(당연히 백인 남성들만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모두에게 식민지의 독립, 즉 식민모국의 입장에서 보면 혁명을 주장하는 사자후였겠으나, 시대가 변한 21세기에 와서 <상식>이란 소책자를 읽기 위한 적절한 시기는 고등학생 높은 학년 정도일 것 같다. 그 정도 연령대에서 정치체제와 권력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현재 세계 정치상황에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시각을 세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분명히 좋은 저작이긴 하지만 미국인이 아니라면 전편을 다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1부와 2부만 인터넷이고 어디고 간에 볼 수 있다면 참 좋은 한 편의 강의講義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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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4월 4일 부터 6월 16일까지 읽은 책 가운데 명작이나 걸작이라고 칭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공감하고, 감동하고, 재미있었고, 숙고해볼 만하고, 새삼스레 사람살이를 되돌아 볼 기회를 주었으며 그리하여 읽기에 즐거웠던 책들을 소개합니다. 개인의 호오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만 그게 또 사람 사는 재미 아니겠습니까. 혹시 책을 고르실 때 조금 도움이라도 된다면 제게도 참 고마운 일일 겁니다. 순서는 읽은 차례이며, 원본의 초간 발행 순서일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1. 알렉상드르 뒤마, <삼총사>

 

 '소설 읽기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단연 뒤마와 위고 아니겠습니까. 이 책은 거의 누구나 소년시대에 축약본이나 만화로 본 적이 있어서 그냥 넘어가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원전을 한 번 읽어보시면 전체에 깔려있는 음모와 드라마의 진행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구성되어 있는지 세 권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금세 뚝딱 읽어치울 수 있을 겁니다. 진정한 팜 파탈의 전형을 구경하는 것도 이 책의 대단한 즐거움이고요.




 2. 알렉시 드 토크빌,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 혁명>

 

   프랑스 혁명보다는 혁명 전 시기, 즉 앙시앵 레짐이 권력 안에 혁명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을 역량을 갖추고 있었으나 문제와 해결의 방법을 체제 내에서 찾지 못한 정치가와 철학자들을 은근히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높은 압력으로 구체제 안의 제도와 프로세스를 뚫고 뿜어져나온 인민들의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불평등을 초래한 당대 전제정치의 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 귀스타브 플로베르, <부바르와 페퀴셰>

  

  플로베르의 미완성 장편소설이며 희극입니다. 독후감에 저는 "희극의 힘은 대단하다. 진정한 슬픔이 없는 희극은 희극이 아니라서"라고 썼습니다. 두 필경사가 서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어, 난데없이 큰 돈이 생겨 귀향해 벌이는 촌극입니다. 하는 일마다 되는 거 없는 두 중늙은이들의 인생의 석양. 그들이 씁쓸한 웃음으로 다시 필경의 업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가슴이 컥 막히는 희극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4. 헨릭 시엔키예비츠, <쿠오바디스>

 

  한때는 연말연시만 되면 TV에서 방영해주던 영화의 원작입니다. 영화를 봤으니 굳이 책은 읽어 무엇할까, 싶은 마음에 이제서야 그냥 별 생각없이 들춰봤더니, 하, 책을 읽어보지 않고 흘려보낸 세월이 한탄스러웠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십자가를 지고 로마로 향하는 모습을 보는 베드로가 묻기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청빈하고 순종하고 정결했던 초기 기독교를 충분히 공감하며 읽었던 한 무신론자가 있습니다.




 5. 제임스 M. 케인,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이것 역시 예전에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영화로 만들어진 현대 소설은 뭐 별로겠지, 라는 선입견에 오래 빠져있어서 여태 읽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괜찮은, 아니, 저하고 궁합이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얼핏보면 로드 무비일 수도 있고, 케루악 류의 비트 문학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거 다 놔두고 재미있는 치정 소설로 읽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학이 언제나 고상한 건 아니잖아요?




 6. 아서 밀러, <모두가 나의 아들>

 

 가족간의 기다림과, 사회적 정의가 가정에 끼치는 파편에 대한 드라마라고 거칠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희곡을 이리 단순하게 얘기하는 건 참으로 말도 되지 않는 일이겠습니다. 희곡을 읽는 재미는 머리 속에서 독자가 스스로의 무대를 만들어 연출을 해보는 일인데, 이 책은 가족간의 갈등이 다방면에 걸쳐 등장하여 다양한 드라마와, 결국에 가서는 어쩔 수 없는 회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7.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절망>

 

  30대 초반에 썼는데도 나보코프 특유의 말장난과 인용, 패러디 등등. 이런 성향이 너무 강해 번역서에서는 제대로 그 맛을 알고나 있기는 할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선배작가는 도스토옙스키. 특히 <죄와 벌>, <악령>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터이고요. 내용은 뭐 말도 되지 않는 범죄행위를 구상하고 실현하는 것이지만 그걸 핑계로 창작을 하는 작가의 지옥불길 같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8. 아르카디/보리스 스트루가츠키, <노변의 피크닉>

 

  마치 중류 정도의 가족이 차를 몰고 캠핑을 가서 때려먹고 놀다가 온 장소처럼, 13년 전에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놀러와 한 판 잘 놀다 쓰레기를 남기고 떠난 것을 전제로 합니다. 미개한 지구인들은 외계 생명체가 흘리고 간 것들이 어떤 영향을 주고, 무슨 기능을 하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것들을 엄정하게 관리하는 가운데 도굴을 직업으로 하는 집단도 생긴답니다. 아주 재미난 착상으로 펼치는 상상력의 개가. 역시 스트루가츠키 형제들의 짓궂은 솜씨입니다.




 9. 카를로스 푸엔테스, <미국은 섹스를 한다>

  

  지금 절판이며, 원래 제목은 <다이아나>입니다. 한글 제목을 참 더럽게 지어놓아서 그렇지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책입니다. 무대는 1969년에서 1970년으로 넘어가는 12월 31일 밤. 미국은 마틴 루터 킹, 케네디,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말콤 X를 잡아먹고 거친 오른쪽 파쪽으로 넘어가고 있었으며 베트남에선 유사이래 최초의 패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미국에서 온 달의 여신 다이아나와 연애를 벌이는 푸엔테스. 제목이 후져서 그렇지 가히 푸엔테스 최고의 작품입니다.




 10.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오늘 소개하는 작품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수작. 아니, 명작의 반열에 까지 올려놓아도 별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거의 완벽하게 건조한 짧은 문장으로 구성된 3부작. 3부 전체를 한 권으로 새로 만들어 내놓았습니다. 일란성 쌍둥이일 수도 있고, 분열된 자아를 보는 한 인간일 수도 있는 형제 루카스와 칼루스. 독자들은 1부 첫 장을 넘길 때 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긴장을 멈출 수 없지만, 하도 재미 있어서 그런 건 하나도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근데 재미만? 아닙니다. 명작의 반열에 올릴 정도라니까요.




 11. 에두아르도 멘도사, <구르브 연락 없다>

 

  이것도 외계 생명체 이야깁니다. 멘도사 책 가운데 처음으로 범죄소설이 아니군요. 외계인이 UFO를 타고 지구에 상륙해 모습을 지구인과 똑같이 바꾸고 이름을 구르브라고 정했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도무지 소식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화자 '나'는 키 170cm, 두개골 크기 57cm, 눈알 두개에다가 꼬리 없는 여자로 변신하여 구르브를 찾아 나서서, 온갖 난처한 사태를 만나는 얘기입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멘도사 작품의 특징은 독자로 하여금 새삼스레 뭔 깊은 생각을 할 필요 없이 만들어준다는 것이지요. 항상 무거운 책만 읽으면 사람, 겉 늙습니다.




 12. 마이클 온다치, <잉글리시 페이션트>

 

 저는 이 책에서 가장 깊은 관심으로 읽은 장면이, 영국인의 사랑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인도 출신의 공병 폭발물 처리반으로 등장하는 시크교도 출신 공병 중위입니다. 왜 유색인종인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터뜨렸는가 하는 항의의 표현으로 탈영을 해버리는 장면입니다. 그는 단언하지요. 백인 국가에는 그런 무시무시한 폭탄을 절대로 떨어뜨리지 않았을 거라고. 그러나 번역한 한글 문장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13. 필립 로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대박입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가 횡재한 느낌입니다. 가히 로스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날 로스는 생을 마감했습니다. 화자의 청소년 시절에 멘토로 삼은 공산주의자의 일생을, 화자와 그 공산주의자의 형이며 화자의 고등학교 영어 교사이기도 했던 90세 은사와 지난 날을 회고하는 장면입니다. 1976년대 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미국을 장악했던 우파에 대한 비판과 로스의 책답게 유대인의 정체성 찾기도 가미된 수작입니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미국은 섹스를 한다>와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좀 더 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이 책이 더 우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14.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

 

 짧은 소설입니다. 죽음의 침상에 누운 사제가 지난 날을 회상합니다. 그와 그를 둘러싼 칠레 지식인들의 허위에 찬 가식을 적나라하게 들려줍니다. 볼라뇨가 하는 말이 전부 반어법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읽으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장기가 훼손당하고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고문대 바로 위의 볼룸에는 술과 여자가 넘치는 파티가 벌어지며, 대통령 궁이 군대에 의하여 폭격을 당한 다음날 아침, 세상이 참 조용하구나, 평화로워, 라고 읊는 사람들의 초상. 볼라뇨, 처음엔 별로 좋지 않았는데, 읽어볼수록 점점 끌리는 매력을 지닌 작가입니다.




 15.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천국은 다른 곳에>

 

  이것 역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책입니다. 그러나 품절이라 중고책방을 뒤져야 하지만 충분히 그 정도의 노고를 바쳐 마땅합니다. 미친 네덜란드 환쟁이 고흐의 아뜰리에를 떠나 타히티에 정착한 고갱. 매독으로 종양이 퍼져 다리를 절뚝이고 나중엔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되는 고갱이 타히티에서 인생의 마지막으로 불태우는 예술혼, 그리고 고갱의 외할머니이자 맹렬 사회주의자이며 선구적 페미니스트였던 플로라 트리스탕의 말년을 생생하게 그려놓았습니다. 정말 추천하고 싶은데 품절이라 아깝습니다.




 16. 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

 

 파리의 고급 아파트에서 한 지붕을 이고 사는 두 천재 여성의 만남. 한 명은 못생긴 쉰네 살의 수위, 또 한 명은 일찌감치 인생은 투명한 어항 속의 금붕어 이상이 아님을 알아채 오는 6월, 십삼 세가 되는 생일날 자살을 거행하기로 결심한 열두 살 소녀. 이들 속에 혜성같이 등장하는 돈 많은 은퇴한 일본 남성. 가난하고 못난 여성이 과하게 똑똑한 것은 사회생활 하는데 방해만 줄 뿐인 것을 충분히 이해한 수위의 은둔을 알아챈 소녀와 남성이 서로 맺는 따뜻한 연대가 어떻게 될지는 직접 확인을 하셔도 좋을 겁니다.




 17. 존 맥그리거, <개들조차도>

 

  읽기 거북할 수 있습니다. 죽은 지 7일 만에 발견된 시체를 집 밖으로 내오고, 시체 공시소에 저장하고, 꺼내 부검하고, 장례를 치루는 것까지 상세하게 묘사해놓았습니다. 친지와 가족이라고는 마약 중독자들 뿐이고, 결코 존엄하지 않은 시신만을 남긴 인물은 지독한 알콜 중독으로 자연사 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루저들이 만들어내는 인생도 존중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들의 삶도 전혀 의미가 없는 삶은 아니니까요.




 18. 이병률, <찬란>

 

 개인의 독백이나 과도한 물기 또는 남발하는 은유가 판을 치는 시집들 가운데 이런 시집을 하나 고른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시로 말하자면 최고의 미덕은 시인이 뭘 노래하는지 독자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조금씩 궁상맞고, 쓸쓸하고, 마음이 저린 이병률의 시들을 읽으며 참 오랜만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완전 아마추어, 잘 봐줘도 딜레탕트에 불과한 한 독자가 두달 여에 걸쳐 읽은 책 가운데 좋은 느낌으로 읽은 것들을 추려본 것입니다. 다시 얘기하자면, 혹시 이 감상문을 읽는 분들의 의견과 달리하는 것들을 발견하신다 해도 그냥 평범한 독자의 선택이라는 것을 이해하시어 심하게 까탈을 잡지는 말아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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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73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지리아 출신의 재원. 사실은 재수 없는 인간. 나이지리아에서 어쨌든 1990년대 후반 또는 2000년대 초반 미국으로 유학갈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집 따님이지, 나이지리아 슈카 대학, 드렉셀 대학,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대학, 존스 홉킨스 대학, 예일 대학 등을 두루 섭렵하고, 섭렵한 만큼 의약학, 언론정보학, 정치학, 문예 창작, 아프리카 학 등을 공부했으며, 발표한 소설을 읽고 감격 먹은 미국의 평론가들로부터 미래를 이끌 젊은 작가 20인으로 뽑히기도 한데다가, 예쁜 얼굴에, 오동통하지만 보기 좋은 신체까지, 좋은 것들은 몽땅 갖춘 이. 우린 이런 사람들은 가끔 재수 없는 남자 또는 여자, 이를 다 합친 개념으로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딱 보면 그림이 그려지실 것. 이렇게 생겼다.

 

피부색은 뽀샵을 해서 원래보다 밝게 나온 거 같다

 

 

 나이지리아 작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아무래도 아프리카 삼부작이라고 일컫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신의 화살>을 쓴 치누아 아체베. 그의 조국에서는 아디치에를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이라고 할 정도란다. 그래서 그런가, 유심히 읽어보면 이 책의 주인공 이페멜루와 주위에서 작품을 끌어가는 인물들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끝 장면에서 스스로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해버리는 오콩고와 같이 이보족族 출신이기도 하다. 아체베는 조국이 영국 식민지 치하에서 어떻게 투쟁했고 스러져갔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그의 ‘21세기의 딸’은 어쨌든 독립을 쟁취한 나이지리아 사회의 전반적인 부패와, 서구를 향한 열망과, 영·미에서 아프리카 출신 비미국 흑인으로 사는 것과, 다시 귀국하여 중산층 이상의 계급으로 편입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의 주인공 이페멜루는 1960년에 독립을 하고도 신생국이 거의 다 그렇듯 일정기간 (특히 군사정권 기간 중) 거치기 마련인 경제, 문화적으로 반식민半植民 시절의 막바지에 똑똑한, 그리고 나름대로 보통의 시민들보다 여유가 있던 나이지리아 젊은이들이 흔히 그랬듯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중등학교 시절부터 연애를 해온 첫사랑 오빈제를 내버려두고. 대한민국도 기억한다. 부잣집 똑똑한 도련님이 전액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더라도 접시 닦아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1960년, 70년대를. 제삼세계 국가에서 ‘좀 사는’ 정도로는 미국에선 생활도 못하는 수준. 이페멜루는 두 가지 핸디캡을 더 견뎌야 했으니, 나이지리아에 살 때는 조금도 실감 또는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이 흑인종이란 사실과, 여성이라는 젠더. 이거 참. 미국 안에서는 ‘흑인-미국인’과 ‘흑인-비미국인’이라는 간극도 있단다.
 두 권으로 된 작품의 1권(1부와 2부)은 이페멜루가 뽀글뽀글한 아프리카인 특유의 머리를 땋기 위해 미장원에 들러 무려 여섯 시간 동안 머리를 하면서, 중등학교와 나이지리아의 대학에 다니면서 오빈제와 사랑을 하고, 첫 경험을 하고, 75%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떠나고, 미국에서 아프리카 출신 비미국인으로 살고, 나머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유사매매춘을 겪고, 유사매매춘을 했다는 절망으로 첫사랑 오빈제와 결별을 하고, 다른 사랑을 만나고, 대학생활을 하고,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미국에서 흑인-비미국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블로그를 운영하여 유명인사가 되고, 성공적인 블로그로 인해 돈도 무척 벌고, 나이지리아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고, 그러기 위해 남자와 이별을 하는 걸 회상하는 걸로 꽉 메워져있다.
 2권에는, 이페멜루가 미국생활을 하는 동안 첫사랑 오빈제가 교수 엄마가 학회 참석하는 걸 조수 명분으로 함께 런던에 갔다가 불법체류를 하다 위장결혼의 순간 체포되어 추방을 당해, 다시 나이지리아로 와서 오히려 부패한 정부와 ‘끈 대기’에 성공해 부동산 재벌이 되는 이야기인 3부, 반흑인 오바마와 흑인 미셸 여사가 대통령 후보로 나와 결국 당선에 이르기까지 미국 내 유색인종들의 모습과, 드디어 나이지리아로 돌아온 이페멜루의 정착과정, 그리고 이페멜루-오빈제의 재회를 그려낸다. 오빈제는 그동안 어여쁜 아내 코시와의 사이에서 역시 어여쁜 딸 부치를 둔 유부남으로 변신했고, 이페멜루 역시 블로그를 통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름을 알린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가 됐는데, 과연 어떤 결말이 나올까. 이들 사이에 나이지리아 특유의 변형·고착된 기독교적 가치관이 마구 섞이는데.
 어떤 결말인지는 절대 알려드리지 않을 것이고, 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평생 온전한 극동아시아 황인종이자 한 번에 열흘 이상 아메리카의 호텔방에서 고단한 머리를 뉘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기회가 확실하게 없을 내게, 길고 길게 이어지는 흑인과 흑백 혼혈과 유색 미국인, 유색 비미국인 등등 복잡하기 그지없는 피부색 타령은, 나이지리아에서 살던 소년시대 당시의 작중 주인공들인 이페멜루와 오빈제처럼, 이해는 가되 실감까지는 나지 않았다는 거. 근데 피부색 이야기가 너무 장황한 묘사의 파도에 둥둥 떠다녔다는 거. 2017년 3월 허핑턴 포스트에 나온 바와 같이, 페미니스트인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트랜스젠더의 성적 정체성에 대하여 비판 받을 수 있는 독특한 의견을 낸 건 자신이 트랜스젠더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듯이, 나도 미국에 오래 살았던 적이 있는 흑인이 한 번도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 내의 유색인종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에 조금 질렸단 핑계를 대야할 거 같다. 반면에 1990년대 후반의 나이지리아, 특별히 군사정권 치하에 있는 그들의 조국 안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는, 나도 직접 겪어봐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던 것이겠다.
 아디치에가 책 속에서 이페멜루의 입을 통해 이야기한 것을 흉내 내서 말하자면, 백인 중심사회인 미국 문화계에서는 영어로 작품을 쓰는 나이지리아 출신 미국 시민권자인 아디치에가 인종간 차별을 강조한 작품을, 그들이 진심으로 좋게 생각했든 아니든 관계없이,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즉, 조금 삐딱하게 말하자면, 역 어드벤티지를 받았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심정.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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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6-19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도 미국 언론에서 추켜 세워서 일단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마무리를 못 지었네요.
아마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장면까지 읽었던 것
같습니다.

장편보다 어쩌면 단편이 더 나은 지도 모르겠네요.

독서모임에서 자극 받아 그전에 사둔 단편을 하나
읽었는데 흥미롭더군요.

그나저나 나이지리아에 대해 알려면 아체베부터
섭렵해야 하나요...

Falstaff 2018-06-19 16:36   좋아요 2 | URL
암만해도 나이지리아 문학하면 반反식민주의 작가인 아체베가 시작이겠지요? 아체베가 조지프 콘래드를 식민소설 작가라고 몰아부친 식민/반식민 논란은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 다음 세대로 벤 오크리가 있는데 <굶주린 길>은 반半식민에 대한 리얼리즘 적인 소설을 재미있게 써서, 아체베와 현대 나이지리아의 사이를 연결한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근데 굳이 나이지리아 문학으로 국한하지 않고 (식민지 시대를 본격적으로 경험한) 흑인대륙문학으로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식민, 반식민적 작가로 케냐의 응구기 와 시옹오, 남아프리카의 에스키아 음파렐레 등을 들 수 있겠고요.
같은 아프리카 문학이라도 존 맥스웰 쿳시나 도리스 레싱, 알라 알아스와니 같은 비 흑인이 쓴 작품은 당연히 흑인대륙문학에선 제외해야 하겠군요.
에구, 죄송합니다. 잘난 척이 넘 심했습니다. ㅠㅠ